발터 벤야민 선집을 출간중인 도서출판 길 주최로 발터 벤야민을 주제로 한 학술심포지엄이 열린다. '2013 벤야민 커넥션'이 큰 제목이고, '쓰여지지 않은 것을 읽다: 발터 벤야민의 현재성'이 부제로 붙었다. 3월 9일-10일 양일간 정독도서관에서 진행되는데, 국내 벤야민 전공자와 연구자들이 대거 망라된 느낌이다. 행사 포스터를 여기에도 옮겨놓는다. 작년에 같은 장소에서 열린 푸코 심포지엄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올해는 벤야민이다. 인문학 전공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 될 듯싶다.

 

 

13. 0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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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가을 암살당한 러시아의 여기자 안나 폴릿콥스카야(폴리트코프스카야)의 책이 출간됐다. <더러운 전쟁>(이후, 2013). '더러운 전쟁'이 가리키는 건 체첸전쟁인데, 폴릿콥스카야는 러시아군과 체첸군의 야만적 행태에 대한 고발로 '러시아의 양심'이라 불리기도 했다(관련 페이퍼는 http://blog.aladin.co.kr/mramor/964254 참조). 고대하던 책인데, 출간돼 반갑다. 아직 자세한 책소개는 뜨지 않기에 당시 관련기사를 일부 가져온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06년 10월) 7일 오후 4시30분(현지시각)께 모스크바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머리에 총을 맞아 숨진 채 발견된 <노바야가제타>의 폴리트코프스카야는 독보적인 언론인이다. 그는 1년 전 영국 <비비시>(BBC)와의 인터뷰에서 앞날을 예견한듯 일상화된 위협을 얘기했다. 그러나 폴리트코프스카야는 “의사가 환자한테 건강을 주고 가수가 노래하는 것처럼, 언론인의 임무는 본대로 현실을 쓰는 것”이라며 굴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옛 소련 관영지 <이즈베스티야>에서 언론계에 입문한 폴리트코프스카야는 1999년부터는 대표적 비판언론인 <노바야가제타>를 통해 2차 체첸전쟁 참상을 고발하기 시작했다. 다른 매체들이 눈귀를 닫을 때 폴리트코프스카야는 폐허가 된 체첸 수도 그로즈니 등지의 현장취재로 참상을 폭로했다. 러시아군과 체첸 정부군의 고문과 집단처형, 납치, 돈을 받고 주검을 가족한테 넘기는 행태 등이 밖으로 전해졌다. <더러운 전쟁> 등 두 권의 책으로도 수십만명이 희생된 전쟁 실상을 알렸다. <푸틴의 러시아: 실패한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삶>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비판했다.(한겨레)

 

13. 0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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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쓰느라 하루종일 재택근무를 하는 날은 수감생활 하는 것 비슷하다. 끼니를 때울 때를 제외하면 여지없이 책상머리다. 물론 음악도 듣고 딴짓도 하지만 멀리서 누군가 관찰한다면 매우 '성실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잠시 주전부리를 하다가 여기저기 널려있는 주간지 가운데 하나를 펼쳤는데, 몇주 전 시사IN이다. 광고면에 제주올레길을 만든 서명숙의 <식탐>(시사IN북, 2012)이 실렸다. "길 이전에 음식이 있었다"가 광고문구다. 최근에 나온 책인가 봤더니 작년 9월에 나온 것이다. 요즘 음식문화에 관심이 생겨서(먹는 데 대한 관심이 아니라 고고인류학적 관심이다) 지난주에는 장인용의 <식전>(뿌리와이파리, 2010)도 구입한 터라 <식탐>에도 흥미가 생겼다. 더불어 최근에 나온 '음식이야기'들에도. 강지영의 <미식가의 도서관>(21세기북스, 2013)과 박정배의 <음식강산1,2>(한길사, 2013)이 거기에 속하는 책들이다. 음식에 관한 책도 책은 책이니만큼 탐서가에게는 좋은 먹거리다. <식전>과 <식탐> 이후의 책들을 모아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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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의 도서관- 어떤 테이블에서도 나의 품격을 높여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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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강산 1- 바다의 귀한 손님들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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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밥상문화- 대표음식으로 본 3국 문화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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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 가득 쌓인 책 가운데 퍼트리샤 마이어 스팩스의 <리리딩>(오브제, 2013)이 손에 잡혀 펼쳐보았다. 사실은 읽어야 할 책들이 너무 많아서 잠시 도피해보려는 심사였다(다른 책으로 도망가는 게 책에서 도망치는 거라니!). '예일대 영문과 교수'였던 저자는 20년 이상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한 교수이자 열렬한 독서가라고 소개되는데, 현재는 버지니아 대학 영문학과의 명예석좌교수란 직함을 갖고 있다. 찾아보니 이런 분이다.

 

 

<리리딩>은 저자가 은퇴한 후 소설 수십 권을 다시 읽는 1년짜리 프로젝트를 진행한 결과라고 한다. '다시 읽기'라면 나도 주종목이긴 한데, 이 프로젝트가 '은퇴자'만 시도해볼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충분히 껴봄직하다. 아니 이미 시도했었지. 비록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오월의봄, 2012)가 원저 <리리딩>(2011)보다는 일년 뒤에 나온 것이긴 하지만.

 

 

다시 읽기가 왜 중요한가? <리리딩>의 부제대로 '깊이 읽기의 기술'이어서인가?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시 읽기를 통해서 우리가 인생을 간접적으로 다시 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다시 살 수는 없지만 책은 다시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인생을 다시 살 수 없는 아쉬움을 얼마간 상쇄해준다면 책은 충분히 다시 읽어볼 만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게 부지기수인 세상에서 그나마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책을 다시 읽는 건 우리가 뜻대로 할 수 있는, 얼마 안되는 소중한 일의 하나다.  

 

다시 읽기는 인생을 다시 사는 한 방도이면서 동시에 새롭게 사는 방책이다. 아니, 우리 자신의 변화를 확인하는 한 척도다. 처음 읽었을 때와 두 번, 세 번 읽었을 때의 느낌이 다르다면 무엇이 달라진 것인가. 책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물론 우리 자신이 달라진 것이다. 더 현명해졌을 수도 있고, 더 노회해졌을 수도 있다. 여하튼 그걸 확인하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 바로 다시 읽기다. 저자는 <죄와 벌>을 다시 읽은 경험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젊은 시절 <죄와 벌>을 읽었을 때,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온몸으로 관습에 대항하는 대담무쌍한 젊은이로 보였다. 성인 독자가 된 후에는 바보 아니면 괴물 같은 인간이라고 느껴졋다. 나는 그 소설을 다시 읽었다. 그는 약간의 두려움과 함께 동정적인 연민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새로운 이유로 인해 그 작품에 매혹되었다.(9쪽) 

 

그렇다. 그런 '매혹'이 언제든 발생하는 게 독서이고 다시 읽기다. <리리딩>의 경우엔 어린이책에 이어서 바로 '제인 오스틴의 문명세계'란 장이 이어지기에 저자를 검색해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과 <설득>에 관한 주석서를 갖고 있다. 아마도 오스틴 전공이 아니었을까 싶다. 

 

 

덧붙여서 <지루함: 심리의 문학사>, <프라이버시>, <소설의 시작> 같은 제목의 책들도 눈에 띄는데, 모두 흥미를 끄는 타이틀이다.

 

 

 

저자를 따라서 제인 오스틴 다시 읽기를 시도해봐도 좋겠다 싶은데, 마침 <오만과 편견>(을유문화사, 2013)도 새 번역본이 나왔다. '<오만과 편견> 새롭게 읽기'란 부제의 강의록 <제인 오스틴의 여성적 글쓰기>(민음사, 2012)를 펴낸 조선정 교수의 번역이다. 해설서로는 오정화 교수의 <오만과 편견>(신아사, 2010)도 참고할 수 있다.

 

 

세계문학전집본으로는 민음사판 외에도 펭귄클래식판과 시공사판으로 <오만과 편견>을 읽을 수 있다. 오스틴은 그간에 관심저자가 아니었지만 이렇게 책이 차곡차곡 쌓이니 일독해보고픈 욕심도 생긴다. 물론 <오만과 편견>만 읽는다고 하면 문제는 복잡하지 않지만 '제인 오스틴의 주요작'을 카바하려면 말 그대로 1년 계획은 세워야 한다. 흠, 섣부른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여기서도 적당히 빠져나가야겠다...

 

13. 0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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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다이어의 <지속의 순간들>(사흘, 2013)은 이미 '2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꼽아놓기도 했었는데, 책의 원서를 지난 주말에 받았다. 원서는 몇 종의 버전이 있는데(소프트카바는 두 종), 내가 고른 건 흰 바탕에 주유소 사진이 들어간 표지의 책이다.

 

 

암튼 다이어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저자이지만(영어권에서는 상당한 명망가라고) 이 책 한권으로 자신이 수전 손택과 존 버거와 롤랑 바르트의 레벨이라는 걸 충분히 입증하고 있다(개인적으로는 롤랑 바르트와 존 버거의 책에서 제프 다이어란 이름을 처음 접했다). 그런 만큼 독자로선 주의 깊게 음미하며 읽어야 하는 부담도 있다. 낚시하다가 '물건'이 걸렸을 땐 신중하게 낚아올려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진에 관한 책인 만큼 많은 사진가들이 거명되는데, 일부는 국내에도 소개된 작가들이다. 서두에 나오는 워커 에반스나 도로시아 랭이 그런 경우다(번역본에서는 '도로테아 랭'으로 표기됐다). 로버트 프랭크도 번역됐지만 이미지가 뜨지 않는다.  

 

다이어가 맨처음 꺼내는 화제는 사진집의 구성밥법 혹은 사진의 분류학이다. 가령 에반스는 자신의 작업구상을 정리하면서 '노동자들의 무리에 둘러싸인 모든 계급의 사람들' '자동차들과 자동차가 있는 풍경들' 등의 목록을 설정한다. 다이어가 보기에 이런 목록과 비교되는 것이 루이스 하인의 사진집 <사회적, 산업적 사진들의 목록>이다. 하인은 '완전한 논리를 갖춘 엄격한 목록'을 구성한다. '이민자들' '일터의 여성 노동자들' 같은 주제어가 100가지가 넘고 그에 따른 하위 주제어가 800여 가지에 이르는 식이다.

그에 반해 에반스의 의도에 따라 구성된 목록은, 단일한 규칙에 의해 배열되고 조직된 목록이라고 보기에는 대단히 잠정적이고 우연적이며, 종국에는 지속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그밖의 많은 것들'이란 표현을 보라.) (14쪽)

이런 에반스가 1950년대에 친분을 쌓은 사진가 로버트 프랭크도 마찬기지였다. 프랭크는 자신이 찍을 사진들의 대상에 관한 목록을 이런 식으로 열거한다.

밤이 내린 도시, 주차장, 슈퍼마켓, 고속도로, 자동차 세 대를 소유한 사람과 한 대도 소유하지 못한 사람, 농부와 그의 아이들, 새 집과 기울어진 판잣집, 취향의 받아쓰기, 장엄한 꿈, 광고, 네온 불빛들, 지도자의 얼굴들, 그를 따르는 얼굴들, 가스탱크와 우체국과 뒤뜰들...(18쪽)

이런 분류는 바로 푸코가 <말과 사물>(영어본 제목은 <사물의 질서>)의 서두에서 인용하고 있는 보르헤스를 떠올려준다. '어느 중국백과사전'에서의 인용이라고 눙치면서 보르헤스는 이런 식으로 적었다. "동물들은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a)황제에게 속한 것. (b)술에 취한 것. (c)훈련받은 것. (d)젖먹이 돼지들. (e)인어들. (f)훌륭한 것. (g)길 잃은 개들. (h)이러한 분류에 속하는 것들. (i)미친 듯이 몸을 떨어대는 동물들. (j)수를 셀 수 없는 것들. (k)낙타의 털로 만든 세밀한 붓으로 그릴 수 있는 것들. (l)기타 등등. (m)지금 막 꽃병을 깨뜨린 동물들 (n)멀리서 보면 파리로 보이는 동물들."

 

이 연상은 제프 다이어 자신의 것이다. <말과 사물>과 똑같게 <지속의 순간들> 역시 보르헤스의 인용으로 시작한다. 그러한 분류에서 "영감을 받은 사람은 내가 첫 번째는 아닐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렇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진들은 이렇게 철저하게 엄격한 방식 혹은 별나고 기이한 방식의 분류법을 따르지 않는다. 그보다는 사진이 가진 무한히 다양한 가능성들을 좋은 뜻에서 무작위로 배열한 이전 사진가들의 시도를 보며 용기를 내어본다."(11쪽) 그 이전 사진가들 가운데 가장 먼저 언급하고 있는 이가 워커 에반스다. 에반스는 제임스 조이스나 헨리 제임스 같은 작가들은 '무의식적 사진가들'이라고 불렀다. 반면에 월트 휘트먼 같은 시인은 대놓고 사진을 찍는 쪽에 속한다.

 

 

그러나 월트 휘트먼은 자신의 시에는 무의식적인 요소가 없다고 단언했다. "<풀잎>의 모든 것들은 문자 그대로 촬영되었다"고 그는 주장했다.(12족)

번역문만 보자면 "<풀잎>의 모든 것들은 문자 그대로 촬영되었다"는 말을 휘트먼이 한 것처럼 보이지만 문맥상으론 워커 에반스의 말이다. "In the case of Walt Whitman there was nothing unconscious about it."를 첫 문장도 "월트 휘트먼의 경우에는 무의식적인 게 전혀 없다"고 해야겠다. 휘트먼의 대표시집 <풀잎> 같은 경우, 에반스가 보기엔 말 그대로 사진 찍기다. 왜냐하면 "그는 가끔, 사진 관련 카탈로그에서 항상 볼 수 있는 광고 문구처럼 읽히는 시"를 쓰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런 게 휘트먼 스타일이다.

...

보라, 힘차고 빠르게 달리는 기관차가 기적을 울리는 모습을.

보라, 농부들이 쟁기질하는 모습을.

보라, 광부들이 갱도를 파내려가는 모습을.

보라, 수도 없는 공장들을.

보라, 공구를 들고 기계를 다루는 기술자들을.

...

에반스가 이런 휘트먼의 시에도 영감을 받았다는 얘기. 제프 다이어는 루이스 하인보다는 그런 에반스와 로버트 프랭크의 작업방식에 호감을 느끼며 그의 사진책(<지속의 순간들>) 또한 그렇게 구성하려고 한다. 무작위적으로 보일 만큼 느슨하지만 정말 무작위는 아닌 어떤 배열 혹은 질서를 사진들에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사진집을 구성하는 더 감각적인 다른 방식이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하인의 방법론적인 접근과 비교하면 대단히 우발적이고 일시적이며, 종종 아무렇게나 시도한 것처럼 보이는 이 책을 본보기로 삼았다.(19쪽)  

'더 감각적인 방식'은 'more sensible ways'를 옮긴 것인데, 사전적 의미도 그렇고 맥락상으로도 '더 분별 있는 방식' 혹은 '더 합리적인 방식'을 뜻한다. 임의적이지 않은 방식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은 부정확한 번역으로 'these ... attempts'를 옮긴 것인 만큼 '이런 시도들'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워커 에반스와 로버트 프랭크 같은 이들의 시도를 가리킨다. 

 

이상이 저자가 말하는 대략적인 방법론(사진의 분류학)이라면 서론에서 또 하나 밝혀야 하는 것은 책이 다루는 대상이다. 물론 사진이지만 어떤 사진이냐는 것. "이 책은 주로 - 그러나 전적으로는 아니다 - 미국의 사진들을, 적어도 미국에 관한 사진들을 다루게 될 것이다."(22쪽) 처음 의도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미국의 사진을 탐구하는 에세이가 됐다는 것.

 

끝으로 이런 책을 쓸 자격. 흥미롭게도 제프 다이어는 사진에 대해서 문외한이다. 찍는 걸 기준으로 하면 그렇다. "내가 전문적이거나 진지한 사진가가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나는 카메라 한 대도 없는 사람이다. 내가 사진을 찍을 때는 여행객들이 부탁을 할 때뿐이다."(23쪽) 디카와 폰카 시대인지라 사진기 한 대도 안 갖고 있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나 역시도 사진을 거의 찍지 않으니 저자와 공감하는 바가 있다(그러면서도 그는 사진책을 썼고 나는 읽는다!). 사진에 문외한이면서 사진에 대한 에세이를 쓴다? 하지만 제프 다이어에겐 전력이 있다. 악기를 다룰 줄 모르면서 재즈에 관한 책을 쓴 전력이. 그건 핸디캡이 아니라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

 

물론 내가 사진을 찍지 않는다는 사실은 장애가 될 수 있겠지만, 내가 일종의 순수한 입장에서 사진이라는 매체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내게는, 사진에 관한 글을 쓰면서도 사진을 찍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1980년대 후반에 재즈에 관한 책을 쓰면서도 악기를 하나도 다루지 않았던 것과는 다를 것이라는 예감이 있다.(23-4쪽)  

그가 쓴 재즈책이 <그러나 아름다운>이고 이건 우리말로 번역중이라 한다. 인용문의 두번째 문장은 오역이다. 원문은 "I also have a hunch that not taking photographs is a condition of writing about them in the same way that my not playing a musical instrument was a preconditon for writing about jazz in the late 1980s."다. "악기를 연주하지 않는 것이 1980년대 후반 재즈에 관한 책을 쓰는 데 전제조건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이 사진에 대한 책을 쓰는 조건이라는 예감도 든다."

 

물론 차이점도 있다. 재즈에 관한 책을 쓸 때는 참고할 만한 책이 거의 없었지만 사진에 관해서는 좋은 책이 많이 나와 있다는 것. 그러면서 거명하는 이름이 수전 손택과 존 버거와 롤랑 바르트다. 그밖에 훌륭한 연구서나 에세이도 많고. "그러니 내가 쉽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바(bar)가 높이 걸쳐져 있으니 나는 그저 그 아래서 자유로이 거닐기만 하면 되니까." <지속의 순간들>은 그렇게 하여 쓰이게 된 책이다.

 

 

'시작하며'라고 따로 분절된 <지속의 순간들>의 서두를 간추려보았다(원저에는 따로 제목이 붙어 있지 않다). 사실은 페이퍼의 제목이 말해주듯, 제프 다이어가 쓴 영화책이 눈에 띄어 글을 시작한 것인데(겸사겸사 오역도 지적하고) 말이 생각보다 길어졌다(임시보관함에 넣어두면서 쓰기 시작한 게 일주일 전이다). 영화책이라고 했지만 정확하게 어떤 성격의 책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의 책 <조나>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잠입자>(<스토커>)를 다뤘다는 것만 알고 바로 주문했다. 

 

 

<잠입자>에 대해서 한권의 책을 쓸 정도의 저자라면 나는 더 볼 것도 없이 전폭적으로 지지할 준비가 돼 있다. 주문한 책은 3월에 받아볼 텐데, 기대가 된다. <지속의 순간들>로 우리에게 처음 소개된 제프 다이어는 올해의 첫 발견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13. 0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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