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410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일본문학 강의에서 다시 읽은 시마자키 도손의 <파계>(문학동네)를 다루었다. 도손의 소설은 <봄><집><신생> 순으로 이어진다. <봄>이나 <집>이 다시, 혹은 더 번역돼 나오면 좋겠다. 도손은 일본 자연주의 대표 작가로 평가되지만 <신생>부터는 사회소설의 범주를 떠나 본격적인 사소설로 진입한다...
















주간경향(21. 01. 11) 백정 집안이라는 출신 밝힐까


<파계>는 시마자키 도손의 첫 소설이다. 메이지학원을 졸업하고 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처음에는 시인으로 활동했다. 4권의 시집을 펴낸 뒤 집필했다가 1906년에 자비로 출간한 소설이 일본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작으로도 평가되는 <파계>다. 그보다 한 해 앞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잡지에 연재하면서 소설가로서 데뷔한 나쓰메 소세키로부터 “후세에 남겨야 할 명작”이라는 격찬을 받았다. 도손의 문학적 역량을 높이 산 소세키는 도손의 두 번째 소설 <봄>을 아사히신문에 연재하도록 주선하기도 했다.
















소세키와의 인연을 적은 것은 모리 오가이와 마찬가지로 도손의 문학 역시 소세키와의 비교를 통해 잘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1906년에 발표된 소세키의 <도련님>은 <파계>의 좋은 짝이다. 두 소설 모두 주인공이 시골학교 교사로서 불의한 환경에 맞서 고투한다. 다만 장르 면에서 차이가 있는데 <도련님>이 권선징악적 모험담으로서 로망스적 세계에 속한다면, <파계>는 주인공의 내면을 다룬 근대소설에 한걸음 더 다가선다. <도련님>의 일인칭 주인공이 ‘도련님’으로만 불릴 뿐 이름이 나오지 않는 반면 <파계>의 주인공은 세가와 우시마쓰란 이름을 갖고 있다.


공통적인 배경은 메이지유신 이후의 신분제 철폐다. 봉건적 신분제 대신에 사민평등을 도입했는데, 1871년에는 백정 해방령도 단행해 천민으로 분류되던 이들이 평민으로 편입되었다. 우시마쓰는 바로 백정 출신의 신평민이었다. 하지만 제도상으로 평등이 실현된다고 해서 사람들의 의식과 습속까지 바뀐 건 아니었다. 이제까지 천대해왔던 이들을 사회가 동등하게 대우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진통을 거칠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에서 우시마쓰의 아버지는 세상에 나가려는 아들에게 신신당부한다. 어떤 경우에라도 백정 집안 출신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지 말고 숨기라고. 이것이 아버지의 훈계이자 우시마쓰가 지켜야 하는 계율이었다.

<파계>에는 우시마쓰와 같은 백정 출신의 인물이 둘 더 등장한다. 한명은 오히나타라는 거부다. 사업을 통해 큰돈을 벌었지만 백정이란 사실이 들통나면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내쫓기게 된다. 그가 그렇듯 봉변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시마쓰는 분개하지만, 아버지의 훈계를 다시금 뼈저리게 되새길 따름이다. 또 한명은 이노코 렌타로라는 인물로 백정 출신의 사회사상가다. 그는 당당히 자신의 출신을 밝히고 하층민을 대변해 사회적 차별에 맞선다. 우시마쓰는 렌타로의 책을 읽고 그의 사상에 깊은 감화를 받지만, 그처럼 행동할 수 있는 용기는 내지 못한다.

백정 집안 출신이라는 자신의 비밀을 밝힐 것인가, 숨길 것인가라는 두 선택지 사이에서 갈등하던 우시마쓰는 결국 스스로 계율을 깨뜨리게 된다. 아버지와 렌타로의 죽음이 하나의 계기였고, 주변에서 차츰 그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이 또 다른 계기다. 우시마쓰는 동료 교사들에게는 물론이고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들에게도 무릎을 꿇고 사과한다. 학생들은 그의 사직을 만류하지만 우시마쓰는 결국 학교를 떠난다. 그렇지만 그는 새로운 삶의 출발점에 서게 된다. 소세키의 <도련님>이 근대적인 변화를 꺼리면서 회고적인 시점으로 다루고 있다면 도손의 <파계>는 그 진통을 묘사하되 앞으로 나아가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P.S. 도손의 대표작으론  앞서 든 네 권이 소개돼 있고, 산문으로 <지쿠마 강의 스케치>를 더 참고할 수 있다. 소개서와 연구서도 몇 종 나와 있다. <시마자키 도손, 다시 길을 찾다>는 프랑스 체류(1913-1916) 이후의 도손, 후기 도손에 관한 연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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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의 <공무원 생리학>이 나왔을 때 떠올린 책인데, 예상대로, 하지만 예상보다 빨리 번역돼 나왔다. <기자 생리학>(페이퍼로드). 예전에 <기자의 본성에 관한 보고>라는 제목으로 한차례 나왔던 책이다. 요즘 기준으로는 언론과 평단을 싸잡아서 풍자와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놓고 있다.

˝발자크가 묘사하는 언론의 생리는 통쾌하면서도 우울하고 슬프기까지 하다. 그가 문단과 언론을 향해 휘갈긴 복수의 펜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 <기자 생리학>이 오늘날까지 유효한 것은 문단과 언론을 향한 무차별적인 고발이 아닌 저널리스트로서 실패한 자신의 모습을 처절하게 해체하고 탐구한 끝에 얻어낸 연구서이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인간 생리학‘ 시리즈의 후속작이 궁금하다(나의 예측은 벌써 바닥이 났기에. 러시아 자연파 문학이 소개되면 좋겠다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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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의 <구토>(1938) 새 번역본이 나왔다. 앞서 두어 차례 강의에서 다루긴 했지만, 번역본(너무 오래전 번역본이다)이 마땅찮았던 대표적 작품 가운데 하나였다(불문학 전공자들도 불만스러워 했었다). 
















다수의 번역본이 나왔었지만 현재 통용되는 건 방곤 역의 문예출판사판과 이희영 역의 동서문화사판이었다. 거기에 젊은 세대 번역자로 임호경 역의 문예출판사판이 추가된 것. 앞으로는 좀더 편안하게 강의에서 다룰 수 있을 것 같아 반갑다. 
















'도스토예프스키와 실존주의' 강의에서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를 읽을 예정이지만(<구토>가 더 일찍 나왔다면 일정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같이 참고하게 될 듯하다. 철학적 주로 <존재와 무>와 <변증법적 이성비판> 사이에 놓이는 책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이다. 분량이 이 대작들을 강의에서 읽기는 어렵기에 그 대안으로 선택한 책이기도 하다. 















<구토>에서 <변증법적 이성비판>까지가 내가 생각하는 사르트르의 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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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21-01-08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토>는 두세번 삼중당으로 읽었습니다.
새번역판 주문했어요 ~
요즘 <헤겔에 이르는 길>을 맑은 정신일 때
읽고 있는데도 어렵더군요; ;
아, 변증법적 이성비판이라니... 오리무중입니다...
 

강의 공지다. 지난해 도스토예프스키 전작 읽기 강의를 완료한 이후에 그 후속 강의를 계속 진행하고 있는데, 이번 2-3월에는 '도스토예프스키와 실존주의'를 주제로 강의한다. 2월 1일부터 3월 29일까지 매주 월요일 저녁(7시30분-9시30분)까지 진행된다(코로나 상황에 따라 시간은 조정될 수 있다).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와 같다(https://cafe.naver.com/paideia21/13363).


도스토예프스키와 실존주의


1강 2월 01일_ 도스토예프스키, <지하로부터의 수기><대심문관>



2강 2월 08일_ 케르케고르, <죽음에 이르는 병>



3강 2월 15일_ 릴케, <말테의 수기>



4강 2월 22일_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



5강 3월 08일_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2)



6강 3월 15일_ 카뮈, <시지프 신화><이방인>


















7강 3월 22일_ 카뮈, <페스트><전락>
















8강 3월 29일_ 사르트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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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을 꼽지 않고 지나갔는데, 궁금해 하시는 분도 있어서 따로 리스트를 만든다. 한 언론에서꼽아달라고 해서 10권 가량의 목록을 보내기도 했는데, 그와는 별개로 '사적인' 목록이다. 기준은 순전히 나에게 유익했던 책들이다. 어떤 주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준 책들에다 지난해 출간한 책 한권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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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부족주의- 집단 본능은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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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길- 1990년대 이후 래디컬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비판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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