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1956)을 강의에서 다시 읽은 김에 적었다(프롬의 저작 가운데 가장 많이 읽힌 책이기도 한데. 전세계적으로 2,500만 부이상 판매되었다고 한다). 예전에 한 차례 다룬 적이 있어서, 보충하는 뜻도 담았다...

















주간경향(21. 01. 25) 사랑의 핵심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다시 읽었다. 저자의 메시지는 변함이 없을 테지만 독자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책이 갖는 의미도 자연스레 변화하게 된다. 아마도 20대 독자라면 어떤 ‘기술’을 책에서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제목 때문에 연애의 기술이나 비법을 가르쳐주는 책으로 오해돼온 면도 없지 않다. 프롬이 제목에 기술(art)이란 말을 붙인 것은 통념과 달리 사랑이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사랑의 핵심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데 있기 때문에 능력이다. 그리고 이 능력은 당연하지만 훈련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다.


사랑에 대한 희귀한 이론적 검토를 포함하고 있는 이 책에서 프롬은 어떤 능력을 말하고 또 어디까지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마지막 장에서 ‘사랑의 실천’을 다루고 있지만 <사랑의 기술>의 절반 이상은 ‘사랑의 이론’에 할애돼 있다. 프롬의 전제는 인간이 자연에서 분리된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러한 분리가 다른 동물과의 결정적 차이점인데, 문제는 이로 인해 인간이 수치심과 함께 죄책감과 불안까지 떠안게 된다는 데 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의 처지를 떠올려볼 수 있겠다. 그러한 상태에서 인간은 자연스레 개체적 고독에서 벗어나 다시 합일을 희원한다. 새로운 합일 혹은 융합을 모색하는 시도는 다양하다. 프롬은 일시적이지 않고 지속적이면서 각자의 개성도 부정하지 않고 보존하는 가장 완전한 해결책이 바로 사랑이라고 주장한다. 아니, 사랑을 그러한 것으로 정의한다.


대상에 따라 사랑은 여러 유형으로 세분될 수 있는데, 프롬에 따르면 가장 기본적인 사랑은 형제애다. 성서에서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할 때 뜻하는 사랑이 형제애로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인류애로서의 형제애가 우리가 사랑의 능력을 발전시킴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최종 단계다. 그런 만큼 형제애는 까다로운 조건을 필요로 한다. 형제애는 모두가 동등하게 인정받는 사회를 조건으로 요구하고 지향한다.

형제애의 출발점이 되는 무력한 인간에 대한 사랑의 모델은 바로 어린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 즉 모성애다. 모성애는 이타적이고 비이기적이며 무조건적이다(그에 비하면 아버지의 사랑, 곧 부성애는 조건적인 사랑이다. 아버지는 아이가 복종할 때 사랑을 베푼다). 그렇지만 프롬은 성숙한 모성애는 아이의 성장을 북돋워주고 성장한 아이의 분리를 견뎌낼 수 있는 사랑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모성애는 연약한 어린아이에 대한 기만적인 소유욕과 분리되지 않는다. 이성과의 사랑으로서 성애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는 성애의 바탕에는 배타적 독점욕이 있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을 통해 전 인류를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포함한다. 모든 인간이 동등하다면 우리는 한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인류를 사랑하는 게 된다.

사랑의 대상에 따른 유형학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신에 대한 사랑이다. 프롬은 신에 대한 사랑도 어버이의 사랑과 분리되지 않는다고 본다. 무조건적으로 보호해주는 어머니 같은 신의 사랑이 있다면 조건부로 상벌을 주는 아버지 같은 신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느 단계에까지 성장하면 우리의 사랑은 받는 사랑이 아니라 주는 사랑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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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헛헛헛 2021-01-20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사랑의 핵심은 받는 것보다 죽는 것˝이네요 ㅎ 오타가 있는데,,,
뭔가 더 의미심장하고 좋은거 같습니다.
‘주는 것‘보다 ‘죽는 것‘.

로쟈 2021-01-20 15:57   좋아요 0 | URL
말이 안 되는 건 아닌데 오타네요.^^;

수이 2021-01-20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오타-.-;;;;;;;;;;;

로쟈 2021-01-20 15:57   좋아요 0 | URL
고쳤어요.~
 
 전출처 : 로쟈 > '매우 친미적인 대통령'의 나라

9년 전 칼럼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창피하던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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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했던 순간

6년 전에 쿠바 미사일 위기에 관한 책들을 모아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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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공지다. 봄학기에 한우리 광명지부에서는 미국 현대문학 강의를 진행한다(온라인 강의로도 진행하기에 지방에서도 수강 가능하다). 미국문학 강의를 오랫동안 진행해오고 있는데, 이번에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초까지, 제롬 샐린저부터 토머스 핀천까지다. 일정은 3월 11일부터 6월 24일까지이며(매주 목요일 오전 10:10-12:10), 8회씩 두 시즌으로 나누어 진행한다.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와 같다(유료강의이며 수강문의 및 신청은 02-897-1235/010-8926-5607)


로쟈와 함께 읽는 미국현대문학


시즌1


1강 3월 11일_ 제롬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2강 3월 18일_ 제롬 샐런저, <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



3강 3월 25일_ 잭 케루악, <길 위에서1>



4강 4월 01일_ 잭 케루악, <길 위에서2>



5강 4월 08일_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6강 4월 15일_ 노먼 메일러, <밤의 군대들>



7강 4월 22일_ 존 윌리엄스, <스토너>



8강 4월 29일_ 존 윌리엄스, <아우구스투스>



시즌2


1강 5월 06일_ 존 바스, <연초 도매상1>



2강 5월 13일_ 존 바스, <연초 도매상2>



3강 5월 20일_ 존 바스, <연초 도매상3>



4강 5월 27일_ 존 바스, <키메라>



5강 6월 03일_ 토머스 핀천< 느리게 배우는 사람>



6강 6월 10일_ 토머스 핀천, <브이>(1)



7강 6월 17일_ 토머스 핀천, <브이>(2)



8강 6월 24일_ 토머스 핀천, <브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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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1 16: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1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번주 한겨레에 실은 '언어의 경계에서' 칼럼을 옮겨놓는다. 일본문학 강의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를 다시 읽었고 그에 대해서 적었다. 소세키 문학의 여전한 의의에 대해서 확인하게 된다...


















한겨레(21. 01. 15) 소세키 최고작이자 패배작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히는 소설은 초기작 <도련님>과 후기작 <마음>이다. 지인의 권유로 쓰게 된 첫 작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가 예상 밖의 호응을 얻으면서 소설 창작의 길로 들어서지만 소위 ‘근대소설’로의 진입은 늦춰진다. 지금까지도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도련님>도 무모한 성격의 시골학교 교사가 벌이는 권선징악적 모험담이었다. 근대적 개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근대사회를 묘사의 대상으로 삼는 본격적인 근대소설은 소세키가 도쿄제국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아사히신문사의 전속작가로 전직하면서 계기가 마련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마침내 이르게 되는 지점이 문제작 <산시로>(1908)다.















소세키의 최고작이라고 평가받을 만한 <그 후>(1909)는 이런 사전설명이 불가피한 소설이다. 제목의 ‘그 후’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 위해서라도 앞에 어떤 인물 혹은 이야기가 있었던가를 확인해야 한다. 소세키의 직접적인 해명에 따르더라도 <그 후>는 <산시로>에 뒤이은 이야기로, 주인공 산시로의 뒷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그 후>의 주인공 다이스케의 결말 이후도 독자에게 ‘그 후’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한다. 소세키의 답변은 후속작 <문>을 통해서 주어진다. 그렇게 해서 주인공은 각기 다르지만 <산시로>와 <그 후>, <문>은 3부작으로 묶인다(그 뒤를 잇는 세 편의 ‘후기 3부작’과 구별하여 통상 ‘전기 3부작’이라고 부른다). 각각을 독립적인 작품으로도 읽을 수 있지만 소세키의 의도를 감안하면 연쇄적인 작품으로 읽는 독법이 필요하다.


<그 후>를 최고작으로 평한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 소설이 놓인 위치 때문에 가능하다. 3부작의 가운데에 놓여 있으면서 ‘본론’에 해당하는 작품이 <그 후>다. 시골 출신의 청년 산시로가 제국대학의 신입생으로 난생처음 대도시 도쿄에 와서 겪게 되는 새로운 경험(학문과 연애가 대표적이다)을 다루고 있는 <산시로>가 ‘서론’이란 것을 염두에 두면, 본론이다(서론적인 면을 고려해야 주인공의 무력감 같은 <산시로>의 특이한 면들이 이해된다). 산시로가 근대세계의 입문자 형상이라면 다이스케는 대결자의 모습이다. 무사 집안 출신으로 메이지유신 이후 사업가로 성공한 부친의 차남인 다이스케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부러 직업을 갖지 않은 ‘고등유민’이다.


다이스케는 경제적으로 아버지와 형에게 의존하고 있지만 사고와 인식에 있어서는 독자적이다. 그는 급속한 근대화로 변모한 일본사회 문제들에 대한 예리한 관찰자이면서 비판가이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용모를 섬세하게 관리하는 심미가이기도 하다. 유럽소설에서 도식을 가져오자면 다이스케는 예술가적 태도로 아버지와 형으로 대표되는 시민계급에 맞선다. 문제는 다이스케의 그러한 입지 자체가 생활 면에서는 기생적이라는 데 있다. 아버지가 권유하는 혼사를 거절하고 자신이 결혼을 주선까지 했던 친구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게 되자 다이스케의 입지는 흔들린다. 친구의 고자질로 아버지와 형은 그에게 의절을 선언하고 다이스케가 갑작스레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는 게 소설의 결말이다. 열린 결말이기는 해도 다이스케에게 가능한 ‘그 후’ 이야기가 낙관적이긴 어려울 것이다.















<그 후>가 최고작이라는 평가는 이 소설에서 근대사회에 대한 인식과 비판이 최대치로 표현돼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소세키 소설의 성취라고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이 성취는 그의 패배이기도 하다. 주인공 다이스케의 몰락이 시사하는 바대로 근대에 대한 소세키의 응전이 이후에는 점차 무력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소세키 문학이 일본 근대문학의 최대치인 것을 감안하면 그의 패배는 일본 근대문학의 패배이기도 하다. 이후에 군국주의로 폭주하는 일본을 일본문학은 제지할 수 없었다. 문학의 역할과 의의가 어디까지인가를 확인시켜준다는 면에서도 소세키는 좋은 교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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