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지성사가로 부를 수 있을 성싶은데, 미국의 역사학자 마틴 제이(1944년생)의 신작이 나왔다. <경험의 노래들>(글항아리). 원저는 2004년간. 마틴 제이는 프랑크푸르트학파에 관한 연구서 <변증법적 상상력>(1973)을 통해 처음 이름을 알리고 국내에도 소개되었던 학자다(아마도 박사논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확인해보니 지난해까지도 저서를 출간했는데, 국내에는 <변증법적 상상력>을 포함해 네 권의 책이 소개되었다. 번역되지는 않았지만 이름은 낯익은 <마르크스주의와 총체성>까지 포함하면(소장도서라서 낯익은 모양이다). 다섯 권 정도가 관심도서다(더 소개될까?). 


<변증법적 상상력>(1973)

<마르크스주의와 총체성>(1984)

<아도르노>(1984)

<눈의 폄하>(1993)

<경험의 노래들>(2004)















"마틴 제이의 <경험의 노래들>은 인간 경험의 본질에 대한 서양 사상의 흐름을 포괄적으로 톺아낸 역작이다. 광범위하고 이질적인 사유들에 대한 명쾌한 비교 분석은 16세기부터 현재까지 왜 ‘경험’이 논란의 촉발점이었는가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서구 경험주의와 합리주의, 종교 사상과 현상학, 프랑크푸르트학파와 포스트구조주의까지 저자는 특정 사상과 학파를 다루면서 그것을 초월하는 주제와 패턴을 발견하고 경험의 지적 역사를 역동적으로 그려낸다." 
















'경험'이란 주제에 초점을 맞춘 지성사 내지 사상사쯤 되겠다. 한편 <눈의 폄하>는 시각을 주제로 한 철학사다. '20세기 프랑스 철학의 시각과 반시각'이 부제. <모더니티와 시각의 헤게모니>와 같이 읽어볼 수 있는 책(마틴 제이도 공저자로 참여했다). 



마틴 제이를 떠올리게 된 건 오늘 책이사를 하면서 아주 오랜만에 박스보관도서를 풀었다가 <변증법적 상상력>(돌베개)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빛바램만 있는 새책 수준(알라딘에는 중고로만 남아있다). 한국어 초판은 1979년에 나왔는데, 내가 갖고 있는 건 1981년 초판중쇄본이다. 아마도 구입한 건 90년대 초반이었을 성싶은데, 그때까지 절판되지도 더 찍지도 않았던 모양. 대학원 시절에 원서도 여럿 구해서 갖고 있었다. 에리히 프롬에 대해 강의하면서 자연스레 프랑크푸르트학파 관련서도 손에 들게 되는데, 20-30년 묵혀둔 책들과 이제는 대면할 때가 되었다. 















올해 강의의 주력은 계속 진행해온 도스토예프스키(강의책을 낼 예정이다)와 여성문학(역시나 책을 낼 예정) 외에 '모더니즘'과 '단편소설'에도 할애할 예정이다. 모더니즘은 도스토예프스키 이후 문학의 향방이란 관점에서 갖는 관심사로 이미 상당수의 책을 구해놓은 상태다. 해서, 모더니즘, 그리고 단편소설에 대해서는 종종 페이퍼에서 다루게 될 듯싶다. 더불어, 오랜만에 묶어서 불러보는데, 루카치와 아도르노에 대해서도 서서히 정리해나갈 예정이다. 


  















역시 지성사 쪽 책으로 유진 런의 <마르크시즘과 모더니즘>(문학과지성사)도 오랜만에 다시 손에 들 참이다(루카치, 브레히트, 벤야민, 아도르노, 4인에 관한 연구서다). 친숙한 이름들과 오랜만에 자주 만나게 될 듯싶어서 기대가 된다...
















P.S. 놀랍게도 <변증법적 상상력>(동녘) 새 번역본이 곧바로 나왔다. 하긴 초역본이 40년 전에 나왔으니 새로 번역될 만하다. 검색해보니 후기 비판이론을 다룬 제이의 <이성의 일식 이후의 이성>도 갖고 있는 책었다. 재작년에 구했는데,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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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냐 존재냐>(1976) 강의 이후에 사후에 편집돼나온(제자인 라이너 풍크의 편집) <존재의 기술>을 다시 구입했다. <소유냐 존재냐>의 3부에서와 마찬가지로 프롬의 강조점은 소유지향에서 존재지향으로의 변화를 위한 개인의 노력과 함께 사회구조(개인을 둘러싼 환경의 구조)가 변화해야 한다는 데 있다(편집자 서문에서의 풍크의 강조점이다). <소유냐 존재냐>를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책으로 국한하여 읽는 것은 존재지향을 무소유지향으로 읽는 것만큼이나 착오적이다(무소유지향은 또다른 소유지향이다)...

개인의 운명적인 발전의 뿌리들이 일차적으로는, 사회경제적으로결정된 오늘날의 인간의 처지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뿌리들을 근거로 하여 나아가는 것이, 그리고 개인을 언제나 사회화되어왔던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 이유 때문에 프롬은 "존재를 향한 단계들에 관한 장(章)을, 구조적 변화들을 위한 그의 제언들로 대체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 때문에 소유지향에서 존재지향으로 옮아가고자 하는 한 개인의 노력은 오직 그 노력들이 동시에 그 사람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경우에만 의미있는 것일 수 있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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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꼽을 만한 저자(몇명 된다)는 폴란드의 화가이자 작가 유제프 차프스키다. 개인적으로는 지난해 가을에 알게 돼 책을 구해놓았던 참이었는데, 뜻밖에도 일찍 번역본이 나왔다. 소련의 포로수용소에서 진행했다는(상황 자체가 놀랍다) 프루스트 강의록이다.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밤의책). 영어판 제목은 <잃어버린 시간: 소련 수용소에서의 프루스트 강의>다. 영어판도 2018년에야 나왔으니 뒤늦게 소개된 편이다(두껍지 않은 평전도 나왔기에 구했다). 

















"프랑스 현대문학의 영원한 거장 마르셀 프루스트와 "20세기 최고, 최대의 소설"로 일컬어지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유제프 차프스키의 강의를 글로 옮긴 책으로, 국내에는 처음 소개된다.폴란드의 화가이자 작가이며 비평가인 유제프 차프스키는 폴란드군 장교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소련군에 포로로 잡혀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포로수용소에서 동료들을 대상으로 프루스트 강의를 했다. 오로지 기억에만 의지해 이루어진 이 강의는 적지에서 비밀리에 기획하고 실행한 지적 저항운동, 곧 문학을 통한 레지스탕스가 되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에 기록된 순간들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또 다른 투쟁의 형태로 나타난, 한 위대한 작가와 작품에 바치는 경의의 고백이다."


















프루스트 강의로도 읽을 수가 있지만, 차프스키라는 새로운 저자의 발견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싶다. 다른 한편으로는 수용소문학의 한 갈래로도 분류할 수 있을 텐데, 소련의 수용소 경험을 다룬 책으로는 (러시아 작가를 제외하고)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와 헝가리 작가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 등이 떠오른다.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에서는 나치 수용소에서 단테의 <신곡>을 떠올리며 견뎌낸 일화가 나온다. 그렇더라도 나치의 수용소와 소련의 포로수용소는 처우가 달랐다고 봐야겠다. 

















한편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펭귄클래식판(<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이 완결된 상태에서 민음사판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나는 전체 7권 가운데 2권까지 강의에서 다뤘었다). 프루스트의 다른 책들도 소개되고 있는데, 단편집과 산문집, 시집 등이다. 가장 최근에 나온 건 프루스트 전공자인 유예진 교수가 옮긴 <어느 존속 살해범의 편지>(현암사)다. 




 












유예진 교수의 다른 관련서들도 프루스트에 대한 독서와 이해와 좋은 참고가 된다. 

















프루스트의 에세이(<독서에 관하여>)와 베케트의 <프루스트>, 그리고 가에타 피콩의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책세상) 등도 떠오른다. 
















조금 아쉬운 건 평전이다. 장 이브 타디에의 평전 <프루스트>가 나왔었지만 절판되었다(그의 시중을 들었던 셀레스트 알바레의 회고록 <나의 프루스트 씨>도 절판되었다). 사실 영어권에서만 하더라도 좋은 평전들 여럿 나왔는데 소개되지 않고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새로 번역되는 김에 좋은 평전도 덧붙여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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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6 1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6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국내에 소개된 에드워드 윌슨의 책이 열 권이 넘는다. <창의성의 기원>(2017)이 지난 연말에 나왔다. 근간 예고에는 윌슨의 출발점, <사회생물학> 개정판이 포함돼 있다. 올해는 나오는 건지 궁금하다...

학문의 두 주요 분야인 과학과 인문학은 우리가 창의성을 추구할 때 서로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둘 다 혁신이라는 동일한 뿌리에서 나왔다. 과학의 세계는 우주에서 가능한 모든 것이다. 인문학의 세계는 인간의 마음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인문학과 과학이 조합된 정신을 바탕으로 우리는 우주의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어떤 힘이든 손에 넣을 수 있으며,
시간과 공간에서 무한을 탐색할 수 있다. 물론 우리 모두가 지닌 무모한 추측과 동물적인 열정에 지배당할 때, 우리의 억제되지 않은 환상이 광기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년)은 인간 조건이 처한 위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마음은 그 자체로 있다.
지옥을 천국으로,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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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완독한 물리학책이 미치오 가쿠였던 것 같다. 그래서 일단 가쿠를 아인슈타인 가이드로 삼았다. 몇명의 저자가 더 추가되겠지만 가독성에 있어서는 추종을 불허하는 듯싶다...

한 언론인이 아이작 뉴턴 이래 가장 위대한 과학적 천재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게 성공에 대한 방정식을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위대한 사색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대답을 내놓았다. "A를 성공이라 한다면 그 방정식은 A=X+Y+Z로 쓸 수 있는데, X는 일하는 것이고 Y는 노는 것입니다."
언론인은 "그럼 Z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아인슈타인은 "입을 다무는 거죠" 라고 대답했다.
아인슈타인이 세계 평화의 대의를 부르짖거나 우주의 신비를 탐구했는지에 상관없이 물리학자, 왕, 여왕, 그리고 대중들에 이르기까지 매력적으로 여긴 것은 그의 인간성과 관대함, 그리고 유머였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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