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하던 대로 경향신문에서 '작가와 문학 사이' 연재를 옮겨놓는다. 오늘의 한국문학을 이끌고 나가는 젊은 시인, 작가들의 면면을 매주 한 사람씩 확인해보는 일은 즐겁고도 자극적이다. 이번주에 소개되는 작가는 작년에 첫 장편소설 <리나>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여성작가 강영숙씨이다. 문학평론가 심진경의 작가리뷰와 함께 작년 한국일보에 실린 작가의 수상소감을 같이 옮겨놓는다. 어제 세상을 떠난 스승 오규원 선생에 대한 언급도 소감에는 들어 있다(시에서 소설로 장르를 바꾼 건 스승의 권유 때문이었다고). 작가로서건 여성작가로선 앞으로 '큰 작가'로 성장해가는 것이 독자의 바람이면서 돌아가신 스승의 바람이기도 할 것이다.  

경향신문(07. 02. 03) [작가와 문학사이](5)강영숙-여성을 배반하는 여성작가

강영숙은 여성작가다. 그건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게 말하는 건 작가에게 미안한 일이기도 하다. 1990년대 여성문학이 ‘붐’을 이루었을 때 여성작가라는 레테르는 비평적으로 옹호되었을 뿐만 아니라 작가들에게 환영받았다. 그러나 지금 작가들에게 ‘여성’이라는 말은 자신들의 문학세계를 협소하게 만들지도 모르는 부담스러운 것이 되었다. 법률상 여성인 작가들조차 이제는 그냥 작가로 불리기를 원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아직도 여성? 웬 여성문학?” 그러니 강영숙을 여성작가라고 부르는 것이 미안할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영숙은 여성작가다. 그런데 여성작가이되 관습적인 의미에서의 여성을 배반하는 여성작가다.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인물들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일반명사 여성과는 많이 다르다. 일단 그녀들은 덩치가 크지만 힘이 세지 않고 무신경하면서도 섬세하다. 강하면서 나약하고 대범하면서 소심하다. 그들은 어떤 특정한 인물 유형에도 속하지 않는 다면체적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쉽게 포착되기 어렵다.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고 싶지 않았고 남자도 여자도 아닌 일종의 중간자가 되고 싶었다”(‘자이언트의 시대’)는 작가의 고백은 관습적인 성별 범주에서 벗어나고 싶은 작가의 바람을 잘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이즈음 강영숙만큼 여성의 성과 육체를 문학적 사유의 매개체로 적극 활용하는 작가가 있을까. 소설 ‘봄밤’(소설집 ‘날마다 축제’ 수록)의 마지막 구절인 “임신이었다”는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의 마지막 구절인 “초조였다”를 떠올리게 한다. 임신은 초조로 상징되는 사춘기 여자아이의 첫 번째 성장통에 이어지는 제2의 성장통을 암시한다. 오정희 소설에서 초조를 겪는 여자아이의 육체적 변화가 그대로 중국인 거리로 상징되는 낡은 세계의 몰락과 미군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재연하는 것처럼, 강영숙 소설에서 임신한 여자의 육체는 이 세계의 비극적 기미를 포착해냄으로써 그러한 세계의 비극성이 빚어낸 사건이 되기도 한다. 이제 여성의 육체는 강영숙에 이르러 세계의 고통을 통각하고 재현하는 허구적 장소가 된 것이다.



장편소설 ‘리나’의 ‘국경’은 그러한 여성의 육체적 감각법을 통해 구현한 허구적 장소를 상징한다. 일차적으로 ‘리나’는 고통스럽지만 이미 익숙해진 탈북자의 현실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리나’가 성취한 득의의 영역은 매춘과 중노동에 시달리는 탈북여성의 현실을 고발하는데 있지 않다. 오히려 작가는 주인공 리나의 국적을 지우고 기원을 삭제함으로써 탈북자 리나를 국경을 넘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국경 탈출자 일반에 관한 이야기로 만든다.

그리하여 ‘리나’는 불법체류 노동자의 사연이거나 자본의 유통 경로를 따라 남하하는 매춘여성에 관한 기록으로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 과장되게 얘기하면 그것은 우리들의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우리도 언제나 저쪽에서 이쪽으로 경계를 넘어가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그런 과정에서 이전의 ‘나’ 위에 다른 존재들이 겹치고 쌓이는 경험을 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복수적 존재가 된다. 리나의 ‘국경 넘기’는 바로 그런, 이쪽과 저쪽에도 포섭되지 않는 복수적 존재로서의 삶 자체를 의미한다.

결국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리나는 자발적으로 국경을 넘으면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한다. 그러한 ‘국경적 삶’은 고집스럽게 ‘나’를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경 넘기를 통해 리나는 다른 무수한 국경적 존재들과 만나 그들의 비극적 상황을 자신의 육체 위에 허구적으로 구축한다. 우리는 그들을 타자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타자는 주체의 바깥에 거주하는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나’의 단단한 외피를 말랑말랑하게 만들면서 ‘나’ 안으로 들어와 종국에는 ‘나’와 구별되지 않는, 이미 ‘너’가 아닌 존재들이다. 강영숙에게 여성은 그렇게 ‘너’를 ‘나’ 안으로 들여와 섬길 수 있게 하는 문학적 출발점인 것이다. 그러니 강영숙은 어쩔 수 없이 여성작가다.(심진경|문학평론가)

한국일보(06. 11. 20) 제39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 강 영 숙

"우린 모두 리나처럼 슬픔의 자루 하나씩 달고 사는 건 아닐까"
"소설 쓰는 건 벼랑끝서 행하는 피나는 소통 따뜻하고 시원한 공기 한뼘 선물 받은 기분"


올해도 한국일보문학상 후보자 중 한 사람으로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할아버지들이 꽉 들어찬 인사동 커피숍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전화를 몇 통 했다. 후보에 오를 때마다, 올해도 괜찮은 단편소설 하나는 쓴 거라며 연례행사를 치르듯 그냥 흘려보냈고 그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저녁,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는 촌스럽게도 덜컥 몸살이 나버렸다. 데뷔 후 8년 동안 몸 속에서 함께 살았던 그 무엇인가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가면서 이 몸살이 기분 좋아졌고 누군가 지나가면서 머리를 한 대 가볍게 툭 친 것처럼 어리둥절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혹시라도 작가적 기절이 있었다면 그게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볼 때가 있다. 나는 키가 크다는 이유로 초등학생 시절 내내 기초 종목인 장단거리 달리기와 넓이뛰기 선수는 물론 스케이트 선수와 배구 선수로 지냈다(*이 작가에게서 '자이언트' 모티브의 기원이겠다). 일기를 자주 쓰기는 했지만 그저 그 정도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지금까지 직업을 가지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는 게 특이하다면 특이할 수도 있겠다. 가끔은 이렇게 사는 게 지겹기도 하지만 그런 느낌은 금세 잊고 똑같은 삶의 패턴으로 다시 돌아간다. 작가라고는 하지만 작가다운 일상이란 것도 거의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들을 깨워 학교와 유치원에 보낸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는 직장일과 관계된 사람들을 만나고 그런 약속이 없는 날은 국립중앙도서관으로 간다. 3년째 재택근무자인 나에게 천장이 높은 도서관은 공부방이자 사무실이고, 도서관에서 보는 노을은 아주 쿨한 주홍색이다. 그러다 이것도 저것도 다 지겨워지면 시내로 나가 영화클럽 멤버들과 함께 영화를 본다.

80년대 후반의 문예창작과는 시인 지망생들로 넘쳐 났고 나도 아주 섹시한 시를 쓰는 시인이 되고 싶은 학생들 중 하나였다. 오규원 선생님의 충고로 장르를 소설로 바꿨고, 데뷔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발광도 했지만, 그 긴 시간이 역설적으로 어떤 순발력 같은 것을 만들어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춘천에서 살다가 서울이라는 거대도시로 이주한 열 다섯 살 이후부터 아주 긴 일기를 썼다(*춘천은 인천에 이어서 작가 오정희의 도시이기도 하다). 서울은 슬픔에 떠밀려 다니는,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한 척의 거대한 배 같았다고 할까. 습작 때도 그런 막연한 도시 이미지를 묘사했다. 그러나 쓰면서도 내가 무엇을 쓰는지, 내가 왜 쓰는지 알고 시작하지는 않은 것 같다.

어릴 적, 부엌 석유곤로 위의 냄비에서 솟아나는 흰 김을 가만히 바라보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 있었다. 무남독녀 외동딸로 자라 항상 밝은 성격에 친구들이 많았지만 그렇게 무엇인가를 응시할 때, 아주 가끔씩 마음 밑바닥에서 치밀어 오르는 이상한 슬픔을 느끼곤 했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도 크고 작은 슬픔의 자루 하나씩을 허리 끝에 달고 다니는 건 아닐까. 어쩌면 수많은 ‘리나들’ 또한 국경을 넘은 후부터 일정 기간 동안의 시간을 자루 속에 넣어둔 건 아닐까. 누구에게나 그런 사라진 시간은 있는 것 같다.

리나는 어쩌면 밖으로 나가려는 삼라만상, 모든 존재의 여정을 대변하는 인물일 수도 있다. 리나와 나를 동일시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우리는 피차 사회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불만이 많은 사람들은 문제를 드러내고 싸워야 한다. 그것은 불편한 일인 동시에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일이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피나는 소통의 과정인 동시에 뒤로 돌아서면 어디까지가 실제인지 알 수 없는 환각의 공간을 헤매는 것처럼 모호한 일이기도 하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리나>는 우울증의 소산이다. 나는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제안하는 일에 참여하고 소설을 쓴다(*이 작품이 내게 떠올려주는 소설은 카프카의 <성>이다. 나는 작가가 '국경'이란 테마로 또다른 카프카적 세계를 더 발견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멜랑콜리에 유머를 칵테일한). 일의 양이 많지 않아 잠시라도 짬이 나면 슬픔들이 마음을 치고 머리로 올라온다.

긴 노동이 끝난 후에, 따뜻하고 시원한 공기 한 뼘을 선물 받은 기분이다. 내 눈과 뱃속이 열을 받아 다시 따뜻해지길 기다린다. 그리고 내가 한번도 도달할 수 없는, 새로운 텍스트 한 편을 구상하기 위한 시간을 죄책감 없이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갑자기 순한 양처럼 착해져서 아침에 좀더 일찍 일어나야겠다, 엄마를 힘들게 하지 말아야겠다, 온갖 다짐으로 마음이 몹시 분주하다.

07. 02. 03.

P.S. 보너스 트랙으로 <리나>의 출간을 다룬 한겨레 최재봉 기자의 리뷰를 옮겨놓는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아직 소설을 읽지 않으신 분들은 지나쳐도 좋겠다(작가와 독자와의 만남을 다룬 오마이뉴스의 기사는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74739 참조). 읽을 생각이 없으신 분들은 이 탈출소녀의 이야기를 사서 그냥 서가에 꽂아두시길. 그러다 좀 우울할 때 읽어보시면 되겠다. 아니면 어디로 탈출할 때 여권과 함께 가방에 넣으셔도 좋겠고...

한겨레(06. 09. 16) '국경 탈출’을 사랑한 소녀  

소설가 강영숙(40)씨가 첫 장편 <리나>(램덤하우스코리아)를 펴냈다. 주인공은 열여섯 살 소녀 ‘리나.’ 그는 부모님과 남동생과 함께 국경을 넘어 탈출길에 오른다. 그의 조국은 대륙의 북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나라이고, 그가 향하려는 곳은 “내가 태어난 나라와 같은 말을 쓰지만 때깔이 전혀 다르고 풍요로운 곳이라고 알려진 P국”(344쪽)이다. 그가 남쪽으로 오기 위해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임은 분명해 보이는데, 작가는 구체적인 나라 이름과 지명을 괄호침으로써 현실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부러 흐릿하게 만든다. 그 결과, 국경을 건너는 리나의 탈출 이야기는 영토와 경계를 넘는 탈주와 모험에 관한 일반적인 서사로 옮겨 가게 된다. 독자는 물론 이 소설을 리나라는 이름의 한 탈북자가 겪는 시련과 고난의 이야기로 읽을 자유가 있겠지만, 적어도 작가의 의도는 ‘탈북 수기의 소설화’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리나는 결국 ‘P국’으로 가지 못한다. 소설의 중후반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리나는 대륙의 동쪽에서 서남쪽으로 가로질러 내려갔다가 그곳에서 국경을 넘어 제3국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제3국에서 다시 대륙으로 들어와 동북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대륙을 한 바퀴 돌아 떠나온 지점에 다시 와 있다는 황당한 사실을 안 리나는 울지도 않았다.”(191쪽)

물론 애초에 리나는 ‘P국’으로 가고자 했다. 그곳은 무엇보다 풍요의 대명사였기 때문이다. 최초의 국경을 넘어 대륙에서 마주친 풍요의 일단을 엿본 리나의 생각이다: ‘내가 가서 살게 될 P국은 이 나라보다 더 잘산다고 했어. 나도 저 여자들처럼 청바지와 구두를 신겠지. 정말 대학에도 갈 수 있을까. 배가 터지게 먹기는 할 거야.’(26쪽)

감시와 단속을 뚫고 몇 개의 국경을 넘는 탈출이 손쉬울 리 만무하다. “국경은 그저 퇴로가 없이 사방이 막힌, 비탈지고 조용한 산길의 일부일 뿐”(13쪽)이라고는 하지만, 그 국경을 넘어 다른 영토로 스며들기까지는 숱한 고난을 거쳐야 한다. 장시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산길을 걸어야 하는 탈출자들이 취하는 행동을 보라.

“오후가 되자 노인들은 머리카락을 뒤져 이를 잡아먹었고 남자들은 땅속을 파거나 바위를 들쳐 누에처럼 생긴 벌레를 잡아 구워 먹었다.(…)리나도 잠자리 두 마리와 전갈처럼 생긴 벌레 한 마리를 먹었다.(…)사람들은 불 앞에 모여 앉아서 자기 팔을 입으로 물고 있거나, 겨드랑이를 긁어서 나온 것들을 입 속에 넣거나 발 새에 낀 때를 빼먹었다. 머리가 긴 신혼의 여자는 자기 머리카락을 입에 물고 질겅질겅 씹었다.”(48쪽)

과장된 느낌이 없지 않은 대로, 탈출자들이 겪는 참상이 효과적으로 묘사된다. 이런 시련과 시험을 거쳐 리나는 드디어 ‘P국’으로 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그는 뜻밖에도 식구들을 버리고, 아울러 ‘P국’을 향한 꿈도 과감히 접은 채 또 다른 모험 길에 나선다. 그것이 반드시 “너네 나라는 미쳤고 P국은 썩었어”(109쪽)라는 선교사의 말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탈출의 초기 단계에서 식구들과 헤어져 노예노동과 성적 착취에 시달렸으며, 자본주의적 풍요의 더러운 이면을 엿본데다, 특유의 삐딱한 기질과 모험 충동이 결부되어 내려진 이런 결정은 소설 <리나>를 탈북자들의 수기와 뚜렷하게 구분짓는다. “탈출이란 것이 이제 늘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투석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혈액이 든 비닐 주머니처럼 느껴졌다.”(117쪽) 이제부터 리나의 탈출은 목표를 향한 다가감이 아니라 목적 달성을 끝없이 유예시키는, 탈출 자체를 위한 탈출로 성격을 바꾼다.

이후 리나의 삶의 유전은 현란하다 싶을 정도로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어렵게 넘어간 제3국에서 대륙으로 되돌아온 그는 우연한 계기에 천막 극장의 가수가 되었다가는 집창촌의 창녀로 팔려 가고, 집창촌이 헐린 뒤에는 또 다시 대륙 북동쪽 경제자유구역의 공장 노동자로 전신한다. 소설의 중후반부 이야기는 톈진 정도로 짐작되는 이곳 공단지대에서 펼쳐지는데, 처음에는 단순한 공장 노동자로 일하던 리나는 나중에는 공단 외곽 술집 주인으로 화려하게(?) 변신한다.

최초의 노예노동과 성적 착취에서 벗어나고자 남자를 죽였던 리나는 이 과정에서 또 한 번의 살인을 저지른다. 사람을 죽이는 순간 리나가 “어쩌나, 난 다시는 살인은 안 하려고 했는데…”(261쪽)라며, 흡사 실수로 예쁜 꽃병을 깨뜨리기라도 했다는 듯 말하는 대목은 이 소설의 색깔을 잘 보여준다.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끔찍한 사건이 이어지는 가운데에서도, 소설의 어조는 결코 어둡거나 심각하지 않다. 리나의 낙천적이며 강인한 성격 탓이겠지만, 극도의 고통과 수난조차 한 바탕 유쾌한 모험담쯤으로 그려진다는 데에 소설 <리나>의 개성이 있다.

모험과 탈출을 사랑하는 리나로서도 공단지대의 삶은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술집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쑬쑬했다. 그러나 가스 탱크가 폭발하는 바람에 공단은 쑥대밭이 되고 수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한 가운데, 살아남은 리나 역시 화학 가스에 노출되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다. 정부는 공단을 폐쇄하기로 결정하고, 리나는 또 다시 국경을 넘는 탈출 길에 오르기로 결심한다. 이번에는 남쪽이 아니라 북쪽, “코뿔소처럼 생긴 유목민의 나라”(340쪽)가 목적지다. 리나의 수중에는 그를 ‘P국’으로 데려갈 만한 달러가 모여 있었다. 그러나 리나는 그 돈을 선교사에게 건네며, 이미 ‘P국’에 정착한 식구들에게 전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의 탈출이 지닌 근본주의적 속성을 또 다시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다시 국경. 소설의 앞과 뒤에는 리나가 넘으려는 두 개의 국경을 묘사한 비슷한 문장들이 배치되어 있다.

“저만치 앞 허공에 푸른 둑처럼 펼쳐져 있는 국경은 어느 순간 활짝 열릴 거라고 믿었다.”(11쪽)

“리나는 또다시 저만치 앞 허공에 푸른 둑처럼 펼쳐져 있는 국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348쪽)


리나의 삶은 하나의 국경에 이어 또 다른 국경을 거듭해서 넘는 월경의 연속이다. 소설에는 “세기가 바뀌고 난 후 전 세계의 국경이 몸살을 앓고 있다고 했다”(310~311쪽)는 문장도 있거니와, 몸살은 중병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회복과 신생의 가능성 쪽으로도 열려 있지 않겠는가.(최재봉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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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한겨레에 들어가보니 어제 한겨레의 '책과지성'에서 읽은 도정일 교수의 칼럼이 메인 화면에 떠 있다(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87954.html). 시사해주는 바가 많은 칼럼이기에 보다 눈에 띄는 자리로 옮겨놓는 건 당연해보인다. 아침 뉴스를 보니 강남에 고액 영어유치원들이 성황이라고 한다. 1년 원비만 해도 1,000만원이 훌쩍 넘어가 대학 등록금을 무색하게 만든다고 한다(우리사회의 조기영어교육 열풍에 관한 재작년 기사는 http://h21.hani.co.kr/section-021003000/2005/04/021003000200504120555032.html). 또 어제 읽은 바로는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전시회조차도 입시를 위한 학습장으로 변신했다고 한다. 지극히 '현실적인', 한편으론 지극히 '한국적인' 현실들이 여러 모로 입맛을 쓰게 만든다. 도정일 교수의 칼럼은 지미 카터 전대통령의 봉사활동이 실상은 그 어머니 릴리언 카터의 봉사활동과 가치관 교육에 힘입은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우리가 갖고 있는 교육의 목표는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있다. 물론 기사에 붙어 있는 '흑인을 인간대우한 지미엄마 vs 조기유학에 눈먼 한국엄마'라는 도식화 역시 지극히 '한국적인' 단순화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굳이 비교해야 한다면 지미 엄마와 조지(부시) 엄마를 비교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럼은 일독의 가치가 있다.

한겨레(07. 02. 02) [도정일칼럼] 카터의 어머니부터 만나보라

지미 카터가 제39대 미국 대통령이 되어 백악관으로 들어간 것은 지금부터 꼭 30년 전인 1977년 1월20일이다. 그날, 대통령의 취임 첫날을 취재하기 위해 많은 기자들이 백악관으로 몰려든다. 조지아 주 지사를 지냈다고는 하지만 중앙 정가에서는 거의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인물이 지미 카터다. 기자들로선 그 ‘시골뜨기’ 무명인사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그의 입에서 어떤 취임 소감이 나올지 궁금했을 것이다(*그때 회자되던 말이 '땅콩장수 출신 대통령 되다'였다. 가정형편이 어렸웠었나?). 그 기자들에게 카터는 “내 어머니부터 만나보라”며 곁에 있던 79살의 어머니 릴리언 카터 여사를 소개한다. 한 기자가 물으나마나 싶은 질문 하나를 내놓는다. “아드님이 자랑스러우시죠?” 그러자 형형한 눈빛의 릴리언 카터는 전혀 뜻밖의 방향에서 날아온 화살 같은 되받아치기 질문을 던진다. “어느 아들 말이야?”

물론 이건 릴리언 카터가 남긴 유명한 유머의 하나다. 카터 여사에게는 장남 지미 말고도 차남 빌리가 있었지만 빌리 카터는 세상의 잣대로 따져 ‘성공’했다고 말할만한 사람도, 형 지미에 견줄만한 이력을 가졌던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릴리언 카터가 백악관 기자들에게 던진 유머는 인상적인 데가 있다. 대통령이 된 아들이건 자주 엎어지는 아들이건 간에 자기가 키운 아이들은 똑 같은 무게를 가진다는 메시지가 그 유머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릴리언 카터는 고령이 되어서도 사람들이 ‘미스 릴리언’이라 불렀을 정도로 활기 넘치고 공동체를 위한 봉사활동과 인권에 대한 헌신이 남달랐던 여성이다. 그녀는 미국 평화봉사단 역사상 가장 나이 많은 단원이었다는 기록을 갖고 있다. 68살 때 평화봉사단에 지원하고 인도까지 가서 나병환자들을 돌본 사람, 거의 평생 남부 흑인들과 빈민을 삶을 살핀 간호사, 그가 ‘미스 릴리언’이다.

인종차별이 자심했던 20세기 초반의 남부 조지아에서는 흑인이 간혹 백인의 집을 방문할 때는 반드시 ‘뒷문’으로 드나들어야 했는데 어머니 릴리언은 흑인들의 그 뒷문 출입을 금지하고 당당히 ‘앞문’으로 출입하게 했다. 당시 조지아 시골에서 흑인을 인간으로, 친구로, 이웃으로 대접한 최초의 백인 집안이 ‘릴리언 네’였다고 한다.

느닷없이 웬 카터 집안 얘기? 나는 지금 카터 집안의 영광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지미 카터가 ‘나를 키운 가치들’이라 말하는 ‘어머니 릴리언의 가치관’을, 그리고 그것이 요즘 한국의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주입하고 있는 가치들과 얼마나 다른 것인가를 말하고 싶다. 평화, 자유, 민주주의, 인권, 환경 품질, 사람들의 고통 줄이기, 선의의 나눔, 사랑, 봉사, 법치 같은 것이 카터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기본적인 가치의 목록을 이룬다.

Jimmy Carter

2002년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카터는 이런 가치의 실현이 ‘사회의 목표’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시대변화에 맞추어야 하지만 변하지 않는 원칙들도 지킬 줄 알아야”하며 원칙적이고 기본적인 가치들을 지켜내는 일이 다른 모든 일에 앞서 “사회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미국이건 한국이건 간에 이런 기본가치들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과제이고 목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아이들에게 무슨 가치를 가르치고 있고 무엇을 교육의 목표로 삼고 있는가?

아이들을 ‘잘 교육시키기 위해’ 캐나다로 조기 유학을 보낸 어떤 한국 어머니가 최근에 겪은 ‘개종사건’ 비슷한 것이 하나 있다. 아이들을 일찌감치 외국에 내보내는 한국인 가정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한국의 살인적인 교육풍토에서 아이들을 해방시키고 싶어, 또 하나는 더 강한 학습경쟁력을 길러주어 외국의 소위 ‘일류’ 대학에 진학시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숫자로 따지면 앞의 경우는 극소수이고 대부분이 후자, 곧 경쟁력 선점주의자들이다. 이 선점파들이 하는 일은 밖에 나가서도 서울 못지않은 학원 과외를 시키면서 아이들을 ‘선수학습’의 열탕지옥에 집어넣는 일이다.

캐나다 뱅쿠버의 꽤 이름난 사립학교에 아이들을 입학시킨 문제의 어머니도 후자의 경우다. 그녀는 고교 1년생인 아들이 화학을 좋아하니까 화학 과목을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해달라고 ‘당부’하기 위해 아들이 다니는 학교로 찾아간다. 그런데 담임선생은 뜻밖의 제안을 내놓는다. 과목 공부는 학교에서 하는 대로 하면 된다, 당신 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 과목에 대한 집중이 아니라 넓은 안목과 소양을 기르는 일이다, 그러니 ‘아트’ 쪽으로 관심을 돌리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교사가 제안한 것이다. 그 교사는 한국이나 대만 부모들이 대체로 그런 식의 학과목 공부만을 강조하는데 그건 우리 학교의 교육철학이 아니다, 이왕 우리 학교로 아이를 보냈으면 이 학교의 교육방침을 따라달라는 말도 들려준다. “미술 교육을요? 우리 아이에게?” “그렇습니다. 길게 보면 미술 교육 같은 것은 아드님의 인생에 강한 힘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당부하러 갔다가 되레 당부를 듣고 돌아온 어머니는 며칠 고민하다가 그 학교의 ‘교육철학’에 아이를 맡기기로 작정한다. 경쟁력 선점주의자가 ‘교육’이라는 것에 눈뜬 것이다.

그 어머니가 듣고 온 것은 그런 얘기만이 아니다. 몇 년 전 동남 아시아 해일 재난이 발생했을 때 그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지진 해일’이 어떤 것인지 연구조사하게 하고 고학년생들을 현지로 보내 “희생자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찾아내어 에세이를 쓰게 했다는 얘기도 그녀를 개종시킨 계기의 하나다. “우리는 아이들이 스스로 연구하고 체험과 봉사경험에서 나온 에세이를 쓰게 했다가 나중 아이들이 원하는 대학으로 보내어 선발자료로 쓰게 합니다.”

선수학습 같은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의 수명은 얇고 짧다. 학습된 영재는 영재도 천재도 아니다. 미국의 유수 대학들은 아시아계 학생들 중에 이런 종류의 학습천재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래서 아시아계 학생들에 대한 입학허가를 대폭 줄이고 있다. 소위 영재교육을 받았다는 한국 아이들이 하바드에 들어갔다가 1년 쯤 간신히 넘기고는 줄줄이 중퇴하거나 나둥글어지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기본과 바탕이 허약해서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육 파국을 손질해야 할 때다.(도정일/경희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07. 02. 03.

P.S. 기본적인 가치들을 무시하면서(말로는 존중하면서) '학습천재들'을 양산해내는 게 교육의 목표일 수도 있다(되는 것도 안되는 것도 없는 게 한국사회다). 그것이 교육의 파국으로 귀결된다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건강에 유익하다면 누가 담배를 피우겠는가?). 그게 또 다른 사회/문명에는 타산지석의 사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니 전혀 무의미한 것도 아닐 터이다. 다만, 가까운/먼 미래에 파국을 맞더라도 우리가 '가지 않은 길'도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두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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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원 시인의 부음을 들었다. 상당히 오래전부터 시인의 투병 소식은 전해져왔지만 그럼에도 죽음은 갑작스럽다.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그리고 시인의 마지막 시집에서 시 한편을 옮겨놓는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경향신문(07. 01. 03) ‘날 이미지의 詩’ 오규원 시인 별세

‘날(生) 이미지의 시’를 추구해온 시인 오규원씨(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2일 오후 5시10분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66세. 폐기종으로 강원 영월, 경기 양평 등지에서 요양생활을 하던 고인은 최근 병세가 갑자기 악화돼 입원했다.

1941년 경남 삼랑진에서 태어난 고인은 동아대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68년 ‘현대문학’에 시 ‘몇 개의 현상’이 추천 완료돼 등단했다. 첫 시집 ‘분명한 사건’(1971)부터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1987),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2005)에 이르기까지 10여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고인은 인식과 관념을 언어로 구상화한 초기시, 자본주의의 허위성·상업성을 비판하는 해체시를 거쳐 90년대 초반부터 시인의 직관에 닿는 사물의 이미지를 그대로 옮긴 ‘날 이미지의 시’를 주창해 시단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날 이미지’란 사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순수한 존재의 이미지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수법. 김수영 문학과지성사 주간은 “‘날 이미지’라는 개념은 철학적인 깊은 고민을 거쳐 나왔다”면서 “치열한 시적 방법론을 통해 자신만의 투명한 언어를 보여준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시론에도 관심이 많아 ‘현실과 극기’ ‘언어와 삶’ 등의 시론집을 내기도 했다.

83년부터 2002년까지 20년간 서울예대에 재직했던 고인은 세심하고 자상한 스승으로도 많은 존경을 받았다. 신경숙 장석남 하성란 강영숙 천운영 강영숙 박형준 등 제자 문인 46명이 그와의 추억과 인연을 회고한 ‘문학을 꿈꾸는 시절’(2002)을 회갑 기념문집으로 냈다. 시인 장석남씨는 “선생님은 엄하면서도 제자들의 성격을 파악해 거기에 맞게 지도해 주셨다”며 “한참 연락이 없다가도 당신이 먼저 전화로 안부를 묻는 등 자상한 스승이었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현대문학상·이산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문학 부문(2003) 수상자로도 선정됐다. 유족으로는 방송작가인 부인 김옥영씨와 2남1녀가 있다.(한윤정기자)

어제 내린 눈이 어제에 있지 않고

오늘 위에 쌓여 있습니다

눈은 그래도 여전히 희고 부드럽고

개나리 울타리 근처에서 찍히는

새의 발자국에는 깊이가 생기고 있습니다

어제의 새들은 그러나 발자국만

오늘 위에 있고 몸은

어제 위의 눈에서 거닐고 있습니다

작은 돌들은 아직도 여기에

있었다거나 있다거나 하지 않고

나무들은 모두 눈을 뚫고 서서

잎 하나 없는 가지를 가지의 허공과

허공의 가지 사이에 집어넣고 있습니다

-시집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문학과지성사)에서

07. 02. 03.

 

 

 

 

P.S. 시인의 삶은 이제 그의 시들이 대신하게 됐다. 시인이 남겨놓은 시의 가지를 '가지의 허공과 허공의 가지 사이에' 집어넣는 일은 우리의 몫이고. 해서, 그의 시집 대부분을 갖고 있어서 따로 사두지 않았던 <시전집>도 구해놓아야겠다. <오규원 깊이 읽기>는 어디에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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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에는 한국일보를 우선적으로 사본다. 가장 큰 이유는 고종석의 연재칼럼 '말들의 풍경'을 읽기 위해서이다. 물론 기사들이야 온라인에도 게재되지만 나는 가급적 '신문지'를 읽는다. 어쩌다 '인터넷 서평꾼'으로 불리게도 됐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화면이 아니라 종이이다(무엇보다도 종이책의 부피, 볼륨감을 나는 사랑한다). 지난 수요일에도 이 연재의 48번째 꼭지 '이름의 생태학'을 읽었는데, 고종석의 글답지 않게 오타/오류 두 가지가 눈에 띄었다. 바쁜 일들로 며칠을 흘려보내다가 마침 다시 생각난 김에 교정해둔다. 문제가 되는 대목의 전후 문단들을 같이 인용하겠다. 칼럼의 전문은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01/h2007013018505185150.htm 참조.

한국사람의 성명이 이렇게 세 음절로 일반화한 것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다. 중국사람들도 성 한 음절(글자)에 이름 두 음절인 것이 상례다. 또 흔히 이름 두 음절 가운데 한 음절로 항렬을 드러내 왔다. 그래서, 이름으로 선호하는 글자가 서로 조금씩 다르고 두 나라에 고유한 성들이 있긴 하지만, 성명이 한자로 표기되면 당사자가 중국사람인지 한국사람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적지 않다. 1970년대 이후 일부 한국인들은 자식의 이름을 (한자로 표기할 수 없는) 고유어로 지으며 언어민족주의를 실천했다. 그리고 이런 고유어 이름(소위 ‘한글 이름’)의 등장과 함께 한국어 성명의 음절수 제약이 부분적으로 무너지고 있다.

그 기다란 이름 탓에 언론에도 오르내린 박차고나온놈이샘이나씨나 황금독수리온세상을놀라게하다씨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이겠으나, 그렇게 별나지 않더라도 고유어 이름이 두 음절 제약에서 풀려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젊은 국문학자 권보드레씨도 그런 경우다. 그러나 고유어로 이름을 지을 때도, 한국인들은 ‘성명 석 자’의 관습을 따라 두 음절 이름을 짓는 일이 많다. 예컨대 (역시 본명인지는 모르겠으나) 연기인 한고은씨나 한예슬씨가 그렇고, 문학평론가 정끝별씨가 그렇다. 그것은 자식의 이름을 너무 이질적으로 만들지 않으려는 부모의 배려와 관련 있을 게다. 주류 한자어 이름으로부터 떨려나려는 고유어 이름의 원심력을 두 음절이라는 관례의 구심력이 맞버텨주는 것이다.

 

 

 

 

인용에서 젊은 국문학자 '권보드레씨'라고 했는데, '권보드씨'가 맞다. 이름과 관련한 오타이니 아무리 사소하다고 할지라도 본인에게는 실례이겠다. <한국 근대소설의 기원>(소명출판, 2000), <연애의 시대>(현실문화연구, 2003) 등의 단독 저작을 갖고 있는 저자의 이름을 잘못 표기한 건 얼른 이해하기 어렵다. 필자의 착오가 확신과 결합된 경우가 아닌가 싶은데, 고유명사를 다룰 때에는 '고중석' 위원도 좀 주의하셔야겠다.

현대 유럽인들의 성명은 이름(퍼스트 네임)과 성(라스트 네임) 둘로 이뤄진 경우가 많다. 가운데이름(미들네임)이 있어도 일상적으론 잘 드러내지 않는다. 가운데이름이 들어간 성명은 얼마쯤 귀족적으로, 다시 말해 젠체하는 듯 들리기 때문이다. 현대 이전에는 그런 가운데이름들이 둘 이상 나열되기도 했다. 독일관념론을 완성한 철학자 헤겔의 정식 이름은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이고, ‘질풍노도’(슈투름 운트 드랑)를 이끈 시인 실러의 정식 이름은 요한 흐리스토프 프리드리히 폰 실러다.

이름 뒤에 아버지 성과 어머니 성을 나란히 붙이는 일이 흔한 스페인어권에서는 성명이 세 부분으로(스페인어권에선 이름이 둘인 경우가 적지 않으므로 그 경우엔 네 부분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가르시아는 아버지 성이고 마르케스는 어머니 성이다. 기혼 여성은 어머니 성을 넣을 자리에 전치사 ‘데’(de)를 앞세운 남편 성을 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버지 이름을 변형한 부칭(父稱)을 이름과 성 사이에 넣는 러시아어권 사람들의 성명도 세 부분으로 이뤄졌다 할 수 있다. 러시아어를 쓰는 사람들은 알렉세이 콘스탄티노비치 톨스토이라는 성명만 들으면 이 사람 아버지의 이름이 콘스탄티노프라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두번째는 러시아인 이름에 관한 것이다. 필자는 '콘스탄티노비치'라는 러시아어 부칭이 저절로 알려주는 바가 그 아버지의 이름이 '콘스탄티노프'라는 사실이라고 적었지만 오류이다. 그 부칭이 알려주는 이름은 '콘스탄틴'이기 때문이다. 그 콘스탄틴 톨스토이의 아들 알렉세이(알료샤) 콘스탄티노비치 톨스토이(1817-1875)는 우리가 다 아는 거장 레프 톨스토이 가문의 시인이자 작가로 톨스토이보다는 11살이 더 많다. 대표작은 역사드라마 3부작.

레프 톨스토이만큼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또다른 러시아 작가의 이름 또한 톨스토이 백작 가문에 속하는(몰락한 지계의 톨스토이이다), 알렉세이 톨스토이인데, 그의 풀네임은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83-1945)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이름이 '니콜라이'이다. 이름과 성만 가지고는 두 '알렉세이 톨스토이'를 구별할 수 없으며 이런 경우엔 부칭까지 확인해야 되는 것(흔히 러시아인들은 이름과 부칭만을 부른다).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의 대표작으론 <고뇌속을 가다>(기민사, 1986)와 역사소설 <표트르 대제>(아래는 문고본 사진) 등이 있다...

07. 0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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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2007-02-03 01:18   좋아요 0 | URL
'고유명사를 다룰 때에는 '고중석' 위원도 좀 주의하셔야겠다.'
재미 있네요 일부러 틀리신거죠? 로져님

로쟈 2007-02-03 10:34   좋아요 0 | URL
주의깊게 읽으시는군요.^^

딸기 2007-02-03 12:20   좋아요 0 | URL
코끼리님의 댓글이 더 재밌어요 ㅋㅋ

저 집안은 글을 잘 쓰는 집안인가보군요 ^^

딸기 2007-02-03 12:22   좋아요 0 | URL
알렉시스 톨스토이의 '이비쿠스'라는 책을 갖고 있는데,
그 사람도 저 집안인지 궁금해지네요.

로쟈 2007-02-03 13:05   좋아요 0 | URL
'알렉시스 톨스토이'가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입니다. '알렉세이'를 불어로 읽어준 거 같은데요...

나비80 2007-02-03 18:37   좋아요 0 | URL
좀 지난 이야기지만 '마르시아스 심'씨는 결국 '심상대'로 다시 돌아왔지요.
갑자기 이름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났습니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로쟈 2007-02-03 20:49   좋아요 0 | URL
본인은 그게 정말로 가능한 이름이라고 궁금했었죠. 싱거운 심상대 같으니...
 

나름대로는 신간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지만 (인터넷)서점이 아닌 언론리뷰를 통해서 '새로 나온 책'을 접할 때가 있다. 츨판사에서 책을 서점에 깔기 전에 보통은 언론사에 먼저 돌리는 것이 상례라서 그런 듯하다. 다른 나라들에서도 그런 게 일반적인 관행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튼 그런 경우 책의 실물은 (아직) 없고 그 존재에 대한 리뷰(풍문)만이 떠도는 셈이어서 말 그대로 유령적인 책, 유령으로서의 책을 접하는 기분이 든다. 한겨레의 이번주 북리뷰를 미리 읽어보다가 발견한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앨피, 2007)도 바로 그런 책이다.

한겨레(07. 02. 02) 하나뿐인 진리란 없다

2004년 타계한 자크 데리다는 1930년 알제리에서 유대계 후손으로 태어나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로 활동한 철학자다. 이 문장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는 명료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하나의 뿌리, 하나의 정체성으로 수렴할 수 없는 모호하고 복합적이고 이질적인 것들이 이미 그 안에 들어 있다. 확정적이고 고정된 자기동일성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데리다가 자신의 존재에서 확인하고 70권에 이르는 저작에서 무수히 되풀이한 주제였다. 정체성을 규정하는 단 하나의 근거, 단 하나의 중심, 단 하나의 원천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그는 ‘해체’ ‘차연’ ‘흔적’ ‘산포’ 같은 수많은 용어로 설명하려 했다.

니컬러스 로일(영국 서섹스대학 영문학 교수)이 쓴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은 데리다라는 철학자가 만들어낸 유령들, 다시 말해 데리다의 서명이 들어간 용어들을 그의 사상 속에서 설명하는 책이다. 유령이란 붙잡기 어려운 것이고 난데없이 출몰하는 섬뜩한 어떤 것이다. 정체성이 불분명한 것이 유령이다. 데리다는 의도적으로 유령을 불러내 세상을 어지럽히려 한다. 단단한 지반 위에 튼튼하게 지어올린 건축물이라고 여겼던 모든 사상, 세계관, 형이상학, 나아가 세계 그 자체가 사실은 그리 단단한 것도 튼튼한 것도 아님을 보여주려 한다. 이를테면, 1967년 그가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 <목소리와 현상> <글쓰기와 차이>라는 세 권의 저서를 거의 동시에 폭탄처럼 세상에 내던졌을 때 이 유령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지식세계는 이제 어떻게든 이 유령들과 맞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로일의 이 책 또한 그런 싸움의 하나다.

데리다의 유령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해체’(de-construction)라는 유령일 것이다. 데리다의 다른 용어들처럼 이 말도 그가 새로 만들어낸 말이다. 해체란 구조(construction)를 분해(de-)하는 것인데, 이것은 단순히 건물을 부수는 것과는 다른 뜻이다. 하나의 구조로 이해되는 언어적 구성물, 곧 텍스트를 면밀히 살펴 그 내부의 자기모순, 자기배반을 드러냄으로써 그 구조물이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 해체의 전략이다. 어떤 구조물도, 어떤 텍스트도 내적 모순이 없는 것이 없고 따라서 해체를 피해갈 수 없다. 애초에 자기 완결적 구조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구조가 없다면 그 구조를 구조로 만들어주고 지탱해주는 중심도 없을 것이다. 지은이는 데리다에게 핵심 관념이 하나 있다면 ‘어떤 중심도 없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중심이 없으므로 주체 중심주의나 이성 중심주의 같은 모든 형태의 중심주의도 토대 없이세워진 것일 수밖에 없다.

데리다의 명제 중에 ‘텍스트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명제만큼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도 없다. 이 명제는 텍스트 바깥에서 텍스트를 설명해주는 사상적 구조물을 찾아선 안 된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바꿔 말하면, 텍스트는 자기 완결적이지 않고 언제나 열려 있으며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 데리다는 자신의 명제가 불러일으킨 오해를 풀어보려고 뒷날 그 ‘텍스트 명제’를 ‘컨텍스트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명제로 바꿨다. 지은이는 그 명제를 더 줄여 ‘컨텍스트밖에 아무것도 없다’라고 표현한다. 모든 텍스트는 자기 완결적이지 않고 열려 있으므로 컨텍스트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새 명제에 담겨 있다. 그러나 데리다에게는 그 컨텍스트조차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것이다. “어떤 의미도 컨텍스트 바깥에서는 결정될 수 없지만, 어떤 컨텍스트도 (그 의미를) 충족시킬 수 없다.” 모든 규정은 다만 잠정적이고 보완적인 것일 뿐 영원하고도 완전한 규정은 없는 것이다. 데리다는 삶이, 세상이, 역사가 그렇다고 말한다. 단 하나의 고정된 중심에 들어앉아 오직 하나뿐인 진리를 호령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진리도 없고 그런 중심도 없다고 데리다는 말한다.(고명섭 기자)

07. 02. 02.

P.S. 알다시피 루틀리지의 '크리티컬 씽커즈' 중의 하나인 이 책은 이미 진작부터 '근간'이 예고돼 있엇고, 나름대로 기다리고 있던 책이다. 지난 2004년 10월 데리다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모스크바에 있었고, 그 사망소식에 접하여 내가 가장 먼저 완독한 책이 바로 니컬러스 로일의 <자크 데리다>(2003)였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언급한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데리다에 관한 가장 쉬운 입문서가 될 책이 출간되어 반갑다. 나로선 '잉여적인' 책이지만(그런 점에서도 유령적이군!) 모스크바의 가을 어느 날들을 보존하고 있는 책이기도 해서 '기념적인' 책이기도 하다. 다음주면 아마 손에 집어들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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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기계 2007-02-02 01:54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고대하던 책이 나와 정말 기쁩니다.^^ 데리다 만세!! 그런데 요즘 유령 같은 책들이 출몰해서 좀 당황(?)스럽네요. 보그의 <들뢰즈와 시네마>는 서점에서 보고 깜짝 놀라고(이상하게 알라딘엔 없군요), 짐멜 선집(3권)도 뜻밖에 출간되고...지젝의 신간과 함께 2월은 축복의 달입니다. 만세!! (넘 야단인가요? ^^)

로쟈 2007-02-02 01:55   좋아요 0 | URL
로널드 보그의 <들뢰즈와 시네마>가 나왔군요. 원서는 진작부터 갖고 있는 책인데, 역시나 번역서가 훨씬 더 비싸네요.^^; 한데, 알라딘에는 책을 아직 안 풀었나 보군요. 흠...

읽는기계 2007-02-02 02:08   좋아요 0 | URL
실시간 댓글이군요 ^^ 보그의 책은 좀 이상한 것이 출간일이 작년 성탄절인데, 알라딘이나 예스24 등에는 도통 찾을 수가 없네요 -.-; 믄 일이 있는지...쩝. 데리다는 실물이 떴네요^^

로쟈 2007-02-02 02:09   좋아요 0 | URL
둘다 교보에 있더군요. 알라딘의 '속보성'이 예전같지 않나 봅니다. 그러저나 이젠 자야겠네요.^^

2007-02-02 0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바 2007-02-02 09:47   좋아요 0 | URL
이번에 앨피에서 <트랜스 비평가 프레드릭 제임슨>도 함께 나왔더군요.^^ 어제 서점에 들렀는데 두권이 나란히 놓여 있더군요...

사량 2007-02-02 20:11   좋아요 0 | URL
제가 생각하는 "데리다에 관한 가장 쉬운 입문서"는 김형효 교수의 [데리다의 해체철학](민음사, 1993)]입니다. 데리다의 원문을 많이 인용하면서도 이를 쉽게 풀이하는데다, 데리다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관련 배경지식(후설, 소쉬르, 하이데거, 레비나스 등)를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어, 데리다의 초기 저작들([회화 속의 진리]까지)을 개관하는 데는 최고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한국사람이 한국어로 썼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로쟈 2007-02-02 22:12   좋아요 0 | URL
에바님/ 귀가길에 두 권 모두 사들고 왔습니다. <제임슨>도 복사해둔 듯한데, 어디에 있는지는 신만이 아시겠죠.^^;
사량님/ 예, 아주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저도 다시 읽으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데리다의 책들과 강의에 본격적으로 접하기 이전에 읽은 책이라서요. 다시 들춰볼까 했더니 아마도 박스에 들어가 있는 듯하네요.^^;

기인 2007-02-06 03:34   좋아요 0 | URL
모스크바.. 그 추위.. 체험해보고 싶은 것이기는 합니다.
생각해보면, 왜 모스크바 여행은 안 땡기나 몰라요. 사회주의 본국인데, 꽁꽁 얼어있다는 생각때문인지, '소련'의 이미지는 역시 여행과는 거리가 먼 것인지.. 춘원 이외에 러시아 여행기(?)를 읽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잘 모르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