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세상을 떠난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에 관한 기사를 하나 더 옮겨온다(지난주에는 주로 부고기사들이었다). 프레시안의 이 기사에서는 현대 러시아의 '최악의 지도자'였던 옐친의 과오들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하게 적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고르바초프의 사회주의 개혁노선이 쿠데타와 뒤이은 옐친의 급진주의 노선에 의해 좌초당한 사실을 항상 유감스럽게 생각해왔는데, 기사에 따르면 미국의 시사주간지 <네이션>은 지난달 러시아 민주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는 보리스 옐친이 아니라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정당하게 평가했다고. 사실 그런 대목이 눈에 들어서 스크랩해놓는 기사이다.

프레시안(07. 05. 01) 옐친이 '러시아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옐친은 정녕 러시아 민주주의의 아버지인가? 지난 달 23일 사망한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서방 언론, 특히 미국 언론들의 과장된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언론들은 옐친을 '소련을 붕괴시키고 러시아의 민주주의를 가져온 인물'이라고 치켜세우며 그의 생애를 반추하고 있다. 한국의 언론들의 평가도 미국적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경제 개혁은 실패했다' 혹은 '영욕의 삶을 살았다'며 균형을 잡긴 했지만, 그가 1991년 강경 공산주의 군부 쿠데타 당시 탱크에 직접 올라갔던 일에 대해서는 '맨주먹으로 쿠데타를 저지했다'며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지난번 페이퍼에서도 지적했지만, 옐친은 이 이미지 하나로 10년을 집권했다).


  
옐친 전 대통령이 러시아 정치사에서 한 획을 그은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1991년 6월 러시아의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1999년 블라디미르 푸틴 현 대통령에게 권력을 이양하기까지, 의회를 포격하고 알짜배기 국유기업들을 마구잡이로 민영화하는 등 9년여 동안 옐친이 보여줬던 소위 '충격 정치'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너무나 멀었다.
  
민주주의에 반하는 옐친의 정치의 1991년 12월 소비에트 연방 해체 결정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는 의회와의 협의는커녕 법적 절차도 제대로 밟지 않은 채 소련 해체를 선언해버렸다. 소련의 해체가 아무리 역사의 대세였다고 할지라도 절차적 정당성을 결여한 독단적 결정은 국민들을 아연케 하는 것이었고 이후 보여준 비민주적인 정치행태의 시발점이 됐다.
  
소련의 해체 과정에 대해 미국의 정치평론가 스티븐 코헨은 지난해 시사잡지 <네이션>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사회적 합의 및 헌법 중시 태도로부터 이탈한 것"이라며 '위로부터의 변화'라는 제정 러시아 시대의 짜르식 전제정치와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고 혹평했다. 옐친의 그같은 조치는 또한 그에 앞서 미하일 고르바초프에 의해 6년간 실시된 글라스노스찌(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과정에서 이룩한 민주개혁을 뒤흔드는 것으로 대중들의 분노를 샀다.
  
1992년 초부터 시작된 옐친의 이른바 '충격 요법' 정책도 러시아 국민들을 고통스럽게 만든 것이었다. 미국의 경제학자들, 특히 하버드대 경제학자들에 의해 사실상 강요되고 클린턴 미 행정부에 의해 지원을 받은 이 정책은 물가 통제 장치를 없애는 동시에 대규모 국유기업들을 민영화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옐친 주변의 '젊은 개혁가'들에 의해 의욕적으로 추진된 이 정책은 그러나 결과적으로 러시아 경제에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가져왔다. 또 서민들의 화폐 자산의 가치를 추락시켜 러시아 국민들의 절반 가량을 빈곤선 아래로 떨어지게 했다. 그러나 서구의 언론들은 이를 가리켜 '개혁'이라고 선전했다.

1993년 10월 옐친이 의회 건물에 탱크로 발포했던 일은 철권통치를 방불케 했다. 옐친은 자신에게 권력을 부여하고 1991년 쿠데타 당시 자신을 비호했던 의회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반대파를 제거한다는 명목이었다. 이 사건으로 187명이 목숨을 잃었고 5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더 중요한 것은 합법적 선거에 의해 선출돼 행정부로부터 독립적 자세를 견지했던 러시아 의회가 이후 정부의 시녀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붕괴 이후 형성된 러시아의 헌법적 질서는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
  
러시아 대통령이 정당하고 독립적인 선거를 통해 수립된 의회에 대포를 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와 대부분의 미국 언론들은 옐친의 '치어리더'로 활약했다. 당시 미국의 한 고위 관리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클린턴 행정부는 옐친이 더 폭력적이더라도 그를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1994년부터 시작된 체첸 공격도 마찬가지였다. 공격을 멈췄던 1996년까지 수만명의 민간인이 사망했고 헌법에 보장된 연방주의는 공공연히 조롱당했다. 또 핵무기를 가진 국가에서 일어난 첫 번째 내전이라는 위험천만한 전쟁으로도 기록됐다. 러시아의 전투기와 탱크가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에 폭격을 퍼부을 때 클린턴 대통령은 옐친을 링컨 대통령과 비교하며 찬사를 쏟아냈다.
  
영국에 망명한 러시아 억만장자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등 소수의 올리가르히(과두재벌)에 의해 자금을 조달받고 친(親) 옐친 언론의 도움을 받아 치른 1996년 대통령 선거 운동은 불법과 탈법으로 점철됐다. 옐친은 "배당을 위한 융자"라는 악명높은 합의를 통해 자신에게 선거자금을 대주는 올리가르히들에게 러시아의 중요한 경제적 자산 통제권을 나눠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미국 언론들은 이를 '시장개혁'이라고 불렀으나 러시아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범죄행위'에 다름 아니었다. 그같은 조치는 또 러시아의 올리가르히를 재생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러시아의 한 저널리스트는 이를 두고 옐친은 '러시아 민주주의의 아버지'가 아니라 '올리가르히의 아버지'라고 비난했다.


  
1998년 8월 실시한 루블화 평가 절하와 채무 상환 유예(디폴트), 은행 계좌 동결 조치 등의 정책은 서민들의 저축을 또다시 몰수한 셈이 됐고 1991년 이후 형성된 중산층을 몰락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처럼 옐친 치하의 러시아 정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만을 가져오는 반동적인 정치에 불과했다. 러시아인들의 70% 가까이가 권위주의적인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답했던 지난해 여론조사는 옐친의 유산이 러시아 민주주의에 얼마나 해로운 것이었는지를 반증한다.
  
올리가르히에게 러시아의 재산을 독점토록 한 '경제개혁' 역시 씻을 수 없는 실정이다. 유엔개발계획(UNDP)는 1999년 보고서에서 "구 소련에는 현재 사상 유례 없는 위기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으나 미국을 위시한 서방 언론들은 이를 깡그리 무시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다수 국민이 고등교육을 받은 주요 산업국가가 이룩한 수십년간의 경제 개발 결과를 해체하는 현상이 현대 세계사에서 처음으로 나타났다"고 평가했으나 미국의 언론들은 옐친과 그의 '젊은 개혁가들'을 찬양하는 데에만 급급했다. 이에 대해 <로이터> 통신의 한 기자는 "고통이 편집됐다"고 촌평했다.
  
일각에서는 옐친의 충격요법적 경제개혁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러나 옐친이 무모한 정책을 추진하던 당시에도 시장경제를 지지하는 러시아의 경제학자들은 옐친의 정책이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시장경제로의 보다 점진적인 이행을 목표로 하는 '제3의 길'을 주장했다. 시간은 그들의 주장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옐친의 유산을 물려받은 푸틴에 의해 러시아는 더 가난해졌고 양극화는 더 심각해 졌다(*양극화가 심각해진 건 사실이지만 더 가난해졌다?). 푸틴이 권좌에 오르자마자 했던 일은 옐친을 부패 혐의로 기소하지 말라는 포고령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네이션>은 지난달 27일 "언론의 건망증이 심한 건 알겠지만 1985년 소련의 지도자가 된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진정한 러시아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기억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며 "옐친은 언론 검열 철폐, 시장 개혁, 자유선거를 실시한 고르바초프 개혁의 최대 수혜자였을 뿐이었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에 의해 소련 역사상 최초로 도입된 자유선거에서 옐친이 러시아 대통령으로 당선된 반면, 옐친은 자신의 부패에 따른 징벌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심복인 푸틴을 후계자로 지명한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언론이 옐친을 '러시아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극찬하는 것은 그가 서방의 입맛대로 행동했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한 관측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고르바초프에 대한 인색한 평가, 나아가 푸틴에 대한 적개심은 민주주의보다는 러시아의 이익을 지키려는 이들의 독립적인 태도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옐친의 비민주적인 정치행태를 뻔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행정부가 '옐친 개혁'의 후원자가 됐던 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를 대세로 굳히려 했던 미국의 조바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옐친 사후 나타난 미국 언론, 그리고 우리 언론의 태도는 그같은 서구우월적 시각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황준호 기자) 

07. 05.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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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7-05-03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 '쇼군'이 대표작인 제임스 클라벨의 다른 장편소설 노블 하우스를 읽다가 소설 안 소련사람이 -참고로 노블 하우스의 시공간적 배경은 1963년 홍콩입니다- Matyeryebytz란 욕을 하는 걸 봤거든요. 이게 무슨 뜻이죠? 짐작으로는 개새끼 내지는 18놈 같은데. 어떻게 소리내는지도 궁금합니다. 마톄례빗츠 쯤 될까요?

로쟈 2007-05-03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질문만 하시는데요.^^; 한국어도 그렇지만 제가 욕에는 과문해서 실제로 러시아 욕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흔히 하는 욕은 아닌 거 같고. 앞부분은 '어머니'란 뜻이 맞습니다). 스펠링이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구요...

심술 2007-05-04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짐작컨데 로쟈님은 몹시 건전한(?) 삶을 살아오신 거 같네요.^^
 

한겨레에서 기획기사 '러시아의 20세기'를 옮겨온다. 지난 3월에 출간된 사진집 <20세기 포토다큐 세계사3 - 러시아의 세기>(북폴리오, 2007)의 자료사진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유익하고 생생하다. 6차례에 걸쳐 소개될 예정이라는 이 기사는 모두 옮겨놓을 계획이다. '러시아 이야기'이니까.

 

한겨레 (07. 04. 30) 러시아의 20세기 ① 로마노프 왕조의 최후

» 네 명의 어린 로마노프 공주들. 왼쪽부터 황녀 올가, 타탸나, 마리야, 아나스타시야. 사진/K. E. 한 <북폴리오> 제공
네 명의 어린 로마노프 공주들 = 살해되기 전만 해도 공주들은 유럽에서 신붓감으로 첫째 손가락에 꼽혔다. 1906년 9월 페테르고프의 여름 궁전에서 찍은 사진 속의 주인공들은 왼쪽부터 황녀 올가, 타탸나, 마리야, 아나스타시야다. 가족에 대한 니콜라이의 헌신은 포로로 사로잡은 로마노프 왕조 사람들을 모조리 죽인 볼셰비키를 빼고 많은 혁명가들의 찬양을 받았다. <북폴리오> 제공

중국과 영국에 이어 지난 20세기 러시아 역사를 생생하게 기록한 <20세기 포토다큐 세계사 3-러시아의 세기>(지은이 브라이언 모이나한)를 연재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가장무도회에서 1917년 혁명으로, 스탈린의 잔혹한 시대에서 냉전의 시대로, 글라스노스트에서 1993년의 제2차 혁명으로, 그리고 현대 러시아의 혼란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솔제니친, 레닌, 스탈린, 트로츠키 등 그들의 놀랍고도 극적인 모습들이 실려있다. 여기 대부분의 사진은 공개된 적이 없는 것으로 생생한 현장감이 살아있다. 이번에도 출판사 ‘북폴리오’의 도움을 받았다.

러시아의 세기는 모두 6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순서는 1. 로마노프 왕조의 나라 2. 붉은 혁명 3. 볼셰비키 4. 예술의 꽃 5. 노동자의 삶 6. 사회주의의 죽음 등이다.

» 황후 알렉산드라. <북폴리오> 제공
황후 알렉산드라 = 1910년 7월 황실 요트 스탄다르트호로 니콜라이와 함께 항해하는 동안 보기 힘든 미소를 짓고 있다. 혁명 지도자 알렉산드르 케렌스키는 니콜라이가 “멋진 푸른 눈말고는 유쾌하고 조금은 어색한, 아주 평범한 근위대 대장”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라는 “자부심이 강하고 자신의 통치권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굽힐 줄 모르는 타고난 황후”임을 발견했다.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녀인 알렉산드라는 영어 억양이 섞인 러시아어로 말했으며, 일관된 목표는 ‘아이’, 즉 황태자를 위해 전제정을 보존하는 것이었다. 황제 부처는 매우 친밀했다. 강한 성적 관심이 알렉산드라의 종교적 열정과 결합했다. <북폴리오> 제공

» 특별 개조한 자전거 위에 올라탄 황태자 알렉세이. <북폴리오> 제공
황태자 알렉세이 = 특별 개조한 자전거 위에 올라탄 황태자 알렉세이. 이 자전거는 알렉세이가 쉬 피로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수병 조수 데레벤코가 설계했다. 알렉세이는 혈우병을 앓았으며 체내 출혈은 그를 매우 고통스럽게 만들 수도 있었다. 충성을 바치기로 되어 있던 데레벤코는 혁명 이후 젊은 혈기에 넘쳐 알렉세이를 조롱하고 새로 획득한 자신의 존엄성을 해친다고 생각하는 어떤 임무도 수행하기를 거부했다. <북폴리오> 제공

» 1912년 황실 사냥터인 벨레베슈 푸샤의 니콜라이와 사촌 드미트리 대공. <북폴리오> 제공
니콜라이와 드미트리 대공 = 1912년 황실 사냥터인 벨레베슈 푸샤의 니콜라이와 사촌 드미트리 대공. 나중에 라스푸틴 살해에 참여하게 되는 드미트리는 차르가 좋아한 몇 안 되는 로마노프 왕가 인사 중 한 명이었다. 사슴, 순록, 곰, 여우 사냥은 부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오락이었다. 몰이꾼 수십 명이 포수들 쪽으로 사냥감을 몰아주었고, 하얀 옷을 입은 이들 포수는 겨울 눈 때문에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북폴리오> 제공

» 간호복을 입은 황후와 알렉세이. <북폴리오> 제공
간호복을 입은 황후 = 옆에는 알렉세이다. 알렉세이의 병에 기반을 둔 라스푸틴의 영향력은 니콜라이가 총사령관이 되어 모길료프에 있는 군 본부로 떠나자 더욱 커졌다. ‘독일의 압제’가 러시아인의 영혼에 깃든 반유대주의를 대체하고 다름슈타트 태생의 황후에게 따라붙었다. 카페에서 떠돌아다니는 우스갯소리에 따르면, 어린 황태자가 궁전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궁정을 방문한 장군이 “무슨 일이세요, 알렉세이?” 하고 묻는다. 황태자가 말한다. “러시아군이 지면 아빠가 울고, 독일군이 지면 엄마가 울 거예요. 난 언제 울어야 되요?” <북폴리오> 제공

» 그레고리 라스푸틴. <북폴리오> 제공
그레고리 라스푸틴 = 1916년 가을 러시아 정부를 지배한 사람은 라스푸틴이었다. 머리는 장발에 윤기가 없었고, 턱수염은 기름이 번질번질한 냅킨 같았으며, 이는 돌보지 않아 검게 변색되었다. 발레리나 타마라 카르사비나는 거리에서 라스푸틴을 지나치다가 “농민의 얼굴에, 이상한 눈빛을 지닌, 이해할 수 없는 두 눈을 가진, 바로 광인의 눈을 한” 그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이 불가사의한 치료사를 황실에 소개한 사람은 황후의 절친한 친구이자 “비스킷 반죽의 거품처럼 평범한” 여자 안나 비루보바였다. 라스푸틴은 음탕한 언행으로 예절 바른 숙녀들을 흥분시키는 재주가 있었다. <북폴리오> 제공

» 차르의 후계자, 혁명 러시아의 초대 수상 게오르기 리보프 공. 나이아가라 폭포만큼이나 혁명에 무감각했던 둔한 인물이었다. 그는 말했다. “강물은 흘러 떨어진다. 그것뿐이다.” <북폴리오> 제공
» 전직 차르 니콜라이가 유폐 중인 차르스코예 셀로에서 자녀들의 가정교사인 피에르 질리아르와 함께 나무에 톱질을 하고 있다. <북폴리오> 제공
전직 차르 니콜라이 = 유폐 중인 차르스코예 셀로에서 자녀들의 가정교사인 피에르 질리아르와 함께 나무에 톱질을 하고 있다. 니콜라이는 항상 육체노동을 즐겼다. 그와 가족은 유폐되어 있는 동안 자진해서 일했다. 그는 “2시에 우리 모두 정원으로 갔다.”고 일기에 적었다. “다들 아주 열심히, 심지어 즐거워하면서 땅을 파기 시작했고 너무 열심히 일하느라 시계가 5시를 가리키는 줄도 몰랐다.” <북폴리오> 제공

» 1917년 5월 차르스코예 셀로의 정원에서 일을 마친 올가, 타탸나, 아나스타시야, 마리야(왼쪽부터) <북폴리오> 제공
감금당한 공주들 = 1917년 5월 차르스코예 셀로의 정원에서 일을 마친 올가, 타탸나, 아나스타시야, 마리야(왼쪽부터). 2월 쿠데타 이후 그들은 차르스코예 셀로에 감금되었으며 여기서 집안일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10월 쿠데타 후 가택연급은 거의 투옥에 가까웠다. 1918년 4월 그들은 예카테린부르크로 이송되었고, 7월 16일 이곳으로 암호화한 ‘처형 명령서’가 전달되었다. <북폴리오> 제공

07. 05.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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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5-03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되는 시리즈네요. 담아가요.

이름없는괴물 2007-05-03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마노프 황가에 대한 책은 없을까요? 마지막 황가에 대한 낭만 탓에 책을 찾아 보고 싶은데 잘 없더군요.

로쟈 2007-05-03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마노프 황가의 운명>(2003) 같은 책이 있는데(657쪽) 국내에도 소개되면 좋겠습니다...

 

올 전주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은 체코 영화의 거장 이리 멘젤이라고 한다. 이미 전주에 와 있다는 그의 대표작 세 편이 서울에서 곧 개봉할 예정이라고. 모처럼 흥미를 끄는 영화 기사이다. 체코 영화인이라면 밀란 쿤데라와 밀로스 포먼 정도만을 아는 처지인지라(그러니까 상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인지라) 그의 방한은 반갑고 그의 영화는 기대된다(시놉시스상으론 내 취향에 딱 맞는 영화들이다). 흠...

한국일보(07. 05. 02) 체코 거장 이리 멘젤감독 대표작 3편 잇따라 개봉

디지털문명의 즉물성에 길들여진 세대에게 ‘고전’ 영화를 소개하는 일은 고통에 가깝다. 잉그마르 베르히만, 페데리코 펠리니, 프랑수와 드뤼포 같은 클래식 아티스트의 작품에 관한 글을 쓸 때면, 그래서 손가락 끝에서 땀이 솟는다. 그러나 체코의 거장 이리 멘젤(69)의 작품은 좀 다르다. 이미 수 십년 전 영화학사전에 이름을 올린 감독이지만, 이 보헤미안의 능청스러운 영화는 오늘 봐도 유쾌하다. 그의 대표작 <가까이서 본 기차>(1966년) <줄위의 종달새>(1968년) <거지의 오페라>(1991년)가 각각 10일, 17일, 24일 서울에서 개봉한다. 그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을 맡아 지금 전주에 머무르고 있다.



가까이서 본 기차
그가 스물 여덟 살 되던 해에 만든 장편 데뷔작.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으며 ‘멘젤’이란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2차세계대전 말기의 보헤미아의 어느 시골역,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밀로쉬’라는 망측한 이름의 어린 역무원은 여자친구와 ‘한번 하는’ 꿈만 꾸며 산다. 그에겐 엄혹한 세상사보다 자신이 조루라는 사실이 자살을 시도케 할 만큼 절망스럽다. 우여곡절 끝에 ‘남자’로 다시 태어나는데 성공하지만 밀로쉬를 기다리는 것은 뜻밖의 비극. 우쭐해진 마음에 어줍잖은 레지스탕스 흉내를 내다가 허무하게 죽음을 맞는다. 경쾌한 리듬을 타고 고조되던 행복감이 단번에 전쟁의 용광로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다. 서른 살도 안 돼 만든 작품이라는 사실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희극과 비극을 교차하는 멘젤의 농밀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줄 위의 종달새
배경이 된 시대만큼 개봉까지의 사연이 많은 영화다. 멘젤은 1968년 ‘프라하의 봄’을 맞아 폭압적이었던 공산정권의 기억을 필름에 담았지만, 곧 이은 소련의 침공으로 이 영화는 20년 넘는 동면에 들어간다. 영화가 개봉된 것은 90년 베를린영화제 때. 국제평론가상을 수상하며 시대를 뛰어 넘는 영화의 생명력을 과시했다. 철학교수 예술가 정치범 등 ‘사회주의의 적’들이 노동을 통해 정신개조를 받는 50년대 초 체코의 고철 공장. 밥그릇과 십자가를 녹여 군수품을 만드는 이 금속성의 시공간 속에, 멘젤은 인간의 온도를 담아 낸다. “사라지고 있는 것은 ‘추상’이 아니라 진짜 사람”이라는 철학교수의 대사에 멘젤의 목소리가 포개진다.



거지의 오페라
비교적 최근작으로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이 쓴 희곡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벨벳 혁명을 경험한 뒤 만든 작품인 만큼, 정신적 가치보다 물질적 풍요에 집착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비꼬는 풍자를 담았다. 슬랩스틱 코미디를 연상케 하는 리드미컬한 전개와 익살스러운 인물 설정이 사회의 부조리를 비트는 해학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이리 멘젤 감독
멘젤은 전주에서 가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하려고 코미디를 할 뿐”이라고 했지만, 그의 영화가 코미디의 형식을 띠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 역설적이다. 나치 점령에서 2차 세계대전, 프라하의 봄, 소련 침공, 벨벳혁명까지. 그가 겪어 낸 조국의 현대사는 웃음과는 거리가 멀다. 권터 그라스 등 많은 예술가들이 체코를 떠날 때도 그는 사실상 예술적 ‘연금’ 상황을 감내하며 조국을 지켰다. “누군가는 있어야 하지 않냐”는, 누가 물으면 애써 시니컬하게 대답하는 단답형 이유와 함께.

결코 만만치 않은 세월의 굴곡을 멘젤은 오히려 웃음과 풍자로 보듬는 지혜를 가졌다. 그의 영화에는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해학이 번득이다가 이내 인간에 대한 유머러스한 따스함이 번진다. 아무리 아픈 기억이라도, 사랑스러운 추억과 함께 녹아 있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보면 이질적인 아이템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거대한 콜라주 작품이 연상된다. 인간이란 원래 그렇게 희극과 비극이 뒤섞인 존재가 아닐까.(전주=유상호기자)

07. 05. 02.

P.S. 장편 데뷔작인 <가까이서 본 기차>의 원작은 체코의 국민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엄밀히 감시받는 열차>(버티고, 2006)이다. 작년 가을에 새롭게 나온 이 책에 대해선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소개한 바 있다(http://www.aladin.co.kr/blog/mylibrary/wmypaper.aspx?PCID=2329086&paperId=955833). 그때 영화 스틸사진도 옮겨놓았었는데 감독이 '멘젤'이란 건 알지 못했다. 여건을 만들어서라도 이 달의 영화로 문득 빠져들고 싶은데, 세상 일이란 게 만만하지가 않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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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05-03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일부터 큐브에서 개봉한다는데 저도 그저 오래 상영하기만을 바랄뿐입니다.
말로만 듣던 '줄 위의 종달새' 네요..

심술 2007-05-03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귄터 그라스 등 많은 예술가들이 체코를 떠날 때도' 이거 밀란 쿤데라를 유상호 기자가 실수한 거죠?

로쟈 2007-05-03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유님/ 단관 개봉이니까 오히려 사정이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심술님/ 다시 보니 그런 거 같네요. 눈이 밝으십니다.^^
 

메이데이에 맞추어 노동자에 관한 칼럼을 하나 옮겨온다. 보다 구체적으론 '연구직 노동자'에 관한 것이다('고학력 전문직 비정규직 노동자'가 아마도 내가 들어갈 만한 분류항일 텐데, 이들에 대한 처우 문제를 다루고 있다(그러니 남의 얘기가 아니다!). 거기에 '학문의 미래'가 걸려 있어서 좀 거창하긴 한데, '학문의 미래'를 염려하게 된다는 것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교수신문의 관련기사는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3495).

한겨레(07. 05. 01) 연구직 노동자와 학문의 미래

지난 19일 비정규직 관련법 시행령에 있는 고학력의 전문직 노동자에 대한 예외조항, 즉 의사, 변호사, 변리사, 회계사 등과 함께 박사학위를 받고 해당 분야에서 일하는 자는 2년 이상 근무해도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조항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불안한 고용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연구직들에게는 정규직화가 무엇보다도 절실한 문제이겠지만, 연구의 질을 생각할 때에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이 부적절한 종류의 연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비교적 표준화된 매뉴얼을 가지고 연구를 할 수 있는 종류는 정규직이거나 혹은 장기간 고용해도 되는 경우이다. 연구자 개개인의 창의성이 상대적으로 덜 요구되며 매일 같은 장소에 출근을 해야 할 정도로 집단적 작업이 필요한 일이다. 이런 일들을 주로 맡는 연구소들은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경험 있는 연구자들을 장기적으로 고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해마다 그런 비슷한 일들이 계속 주어질 것이며, 비슷한 일을 하는 인력은 계속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이 경우 임금을 아끼기 위해 하급직 연구원들은 비정규직으로 채운다.

그에 비해 표준화된 매뉴얼에 따라 수행하는 방식이 아닌, 개인의 창의력이 많이 요구되는 연구는 좀 다르다. 이 경우는 그 연구와 정확하게 짝이 맞는 능력 있는 연구자를 찾아 일을 맡겨야 한다. 이런 연구를 하는 연구소라면 연구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은 전혀 효율적이지 못하다. 한 연구에 능한 연구자가 다른 연구에도 능하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그 직장에 고용되어 있다는 이유로 연구에 참여하는 경우 연구를 추동할 연구자의 자발성이 생기지 않고 연구의 질은 현격하게 떨어지게 되어 있다.

사실 자신의 영혼의 무게를 실어 머리를 짜내는 창의성 있는 연구에선 한 연구자가 일생 동안 그렇게 많이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영혼의 무게' 같은 표현은 과장이 아닐까? 연구는 '영혼'이 아니라 '정신' 가지고 하는 거 아닌가?).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잘 안다고 다른 주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니, 한 연구자가 능력을 발휘하는 영역은 아주 협소하고 특수한 영역이다. 그러나 그는 바로 그 영역, 그 주제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고, 이 작지만 중요한 성과를 위해 일생을 바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연구는 정규직화가 힘든 대신, 연구에 대한 값을 매우 높게 쳐주어야 한다. 일생의 성과를 파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다. 어차피 정규직화가 힘드니 마음 편하게 사안별로 일을 맡기고, 정규 고용이 아니라는 이유로 매우 싼 가격으로 처리해 버린다. 우리 사회에서 전문적 지식에 대한 가격은 지나치게 싸다. 원고료는 25년 전에 비해 고작 20배 올랐고, 파트타임으로 일을 맡으면 일의 전문성과 무관하게 그저 일용잡급직으로 처리될 뿐이다.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여 알아낸 지식에 대해서도 공짜로 인터뷰하는 것이 상식이다.

돈과 일자리를 쥐고 있는 것은 연구자가 아닌 고용주와 관리자이니, 이를 개선하기란 매우 힘들다. 일의 속성상 개별화된 연구자들은 단결로 힘을 모으기도 힘들다. 가장 열악한 조건의 피고용자이며 도급제 노동자인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아무리 전문가라도 피고용자가 되면 별 볼일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영악한 요즘 젊은이들은, 스스로 고용주가 될 수 있는 의사, 약사, 변호사만 되려고 한다. 똑같이 일하여 똑같이 소중한 전문적 지식을 얻고서도 여전히 불안한 피고용자나 도급제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공 분야나 인문사회 분야 연구자가 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말이다. 이래저래 대한민국의 학문의 미래는 암울하다.(이영미/대중예술 평론가)

07. 05. 01-02.

P.S. 암울한 '학문의 미래' 대신에 전도유망한 '의사, 약사, 변호사'들을 한국사회는 양성하게 될 것이니 딴은 그걸로 만족할 일이다. 어차피 주로 수입에 의존해온 학문이니 학문 바이어들이나 약간 명 키우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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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7-05-02 20:01   좋아요 0 | URL
이 글과는 전혀 관계없는 질문인데요 악셀이 어느 유명한 소설 주인공인가요? 제가 읽은 문장은 '사랑이 세상에 더럽혀지는 걸 보느니 죽음을 택한 악셀' 뭐 이랬거든요. 어느 소설이죠? 아, 그리고 늦었지만 안정효-복거일 기사에 나왔던 캐주얼한 관계에 대한 로쟈님 번역을 오늘 봤는데 로쟈님 번역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로쟈 2007-05-02 23:31   좋아요 0 | URL
제가 아는 주인공은 아닌데요.^^;

심술 2007-05-03 19:39   좋아요 0 | URL
로쟈님도 모르신다니 안도가 됩니다.^^

로쟈 2007-05-05 20:26   좋아요 0 | URL
제가 모르는 게 한두 가지겠습니까? '안도'로는 부족하고 '안락사' 수준입니다...
 

지난달 1일은 만우절이어서 '사회적 독서'의 목록을 올리는 일이 멋쩍더니 이달은 또 메이데이(노동자의 날)인지라 이런 노동이 머쓱하다. 하지만 시간강사는 이런 휴무와 무관한 예외적 노동자인지라 5월의 리스트도 올려놓기로 한다(이 또한 예외적 노동인가?).

사실 리스트에는 스스로를 닦달하는 의미도 포함돼 있지만 3월에 학기가 시작된 이후에는 1,2월에 사회적 독서를 처음 구상할 당시에 예기치 않았던 '저항'에 직면하고 있어서 '닦달'의 의미가 무색해지고 있다. 지날달에도 기본 목록으로 내가 꼽은 책은 강경애의 <인간문제>, 리오 휴버먼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그리고 헤겔의 <정신현상학>(서문) 등이었지만 이 책들에 대한 리뷰나 페이퍼를 쓰지 못했다(물론 대학 신입생들을 겨냥한 목록이었지만). 그건 3월의 목록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굳이 (스스로에게) 변명하자면 이 달 안으로 <인간문제>와 <어머니>에 대한 글을 포함해서 몇 가지 아이템에 대한 페이퍼를 쓸 계획이라는 것. 

 

 

 

 

그런 생각들을 떠올리다 보니 아무래도 좀 만만한 책들을 리스트에 올려야겠다는 계산이 선다. 그래서 가정의 달에 꼽은 '사회적 독서'의 목록은 강준만의 <한국인 코드>(인물과사상사, 2006)로부터 시작된다. 사실 '가정의 달'이란 것 자체가 한국적 발상이자 '한국인 코드'에 부합하는 게 아닐까? 여하튼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도 있고, 또 지난 9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지식인으로 강준만을 빼놓을 수 없겠기에(나는 '강준만의 시대'란 표현에 동의한다) '우리시대의 볼테르'에 대한 예우도 갖출 필요가 있겠다. 내가 굳이 군소리를 붙이지 않아도 그의 책들은 많이 읽히고 있지만서도.

<한국인 코드>와 함께 내가 읽어보려는 책은, 며칠전 경향신문의 설문조사에서도 확인이 됐지만 지난 7-80년대 한국사회를 이끈 대표적인 지식인 리영희 선생을 다룬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개마고원, 2004)이다. 강준만의 편저로 돼 있는 책인데, '당신이 없는 사이에' 출간된 책이라 미처 눈길을 주지 못한 인연이 있다(눈길을 주지 못한 인연?). 이미 이 책들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프리'다. 역시나 베스트셀러들인 진중권의 <호모 코레아니쿠스>(웅진지식하우스, 2007)나 스콧 버거슨의 <대한민국 사용후기>(갤리온, 2007) 등을 들춰봐도 좋겠다. 요는 이러한 '거울'들을 통해서 한국인으로서의 우리 자신을 좀 들여다보자는 것이니까.  

 

 

 

 

두번째 책은 경향신문의 설문 중 한국사회에 영향을 준 국내저술 목록에서 단독 저작으로는 다섯번째로 꼽힌 임지현의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소나무, 1999)이다. '미시적 파시즘'과 '대중독재'라는 화두를 통해서, 그리고 한동안 <당대비평> 지면을 통해서 강준만의 <인물과 사상>에 준하는 활동을 펼친 바 있는 저자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백낙청-리영희-최장집-김우창 등의 뒤를 잇는 대표적 지식인의 자기반성적 성찰에 나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이념과 이데올로기의 '속살'을 만지는 게 그의 주특기이다). 개인적으론 그가 민족주의 운동의 전공자이면서 동유럽(특히 폴란드)과 러시아의 사정에 밝다는 점도 호감을 갖게 한다. 사회주의 인텔리겐챠들에 대해서 그보다 더 많이 공부한 사람은 많지 않다.  

 

 

 

 

세번째 책은 한국사회에 영향을 준 해외저술 가운데 다섯번째를 차지한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나남출판, 2003)이다(강원대출판부본은 절판되었다). 그래도 푸코의 저작들 가운데서는 가장 많이 팔린, 가장 대중적인 책이기도 하다. '푸코'란 이름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을 먼저 떠올리는 독자라면 먼저 크리스 호록스의 만화책 <푸코>(김영사, 2003)로 몸을 푼 다음에 읽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감시와 처벌> 정도는 이미 독파한 분이라면 미란 보조비치의 <암흑지점>(도서출판b, 2004)과 대결해보는 것도 좋겠고, 벤담-푸코의 판옵티콘의 응용이라고 할 홍성욱의 <파놉티콘 - 정보사회, 정보감옥>(책세상, 2002)을 디저트 삼아 읽어볼 수도 있겠다.

 

 

 

 

끝으로 네번째 책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엮어낸 <소설 이천년대>(생각의나무, 2007)이다. 영화 <박하사탕>에서처럼 '나 다시 돌아갈래!'를 속으로 외치면서 <소설 구십년대>, <소설 팔십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되겠다(80년대에서 끝난다면 지옥일 테지만). 가정의 달 '5월'이 갖는 또다른 의미를 되새기기에 적합한 여정이 아닐까 싶다.

<소설 이천년대>에 대응할 만한 시집으로는 '젊은 시인 49인 자선 대표작' 모음집인 <21세기 우리 시의 미래>(실천문학사, 2007)가 눈에 띈다. 아무리 문학판이 '일류(日流)' 일색이라고 하지만 아직까지의 시의 영토는 보전되고 있다. 그 영토에서 젊은 시인들이 각자 무슨 구멍들을 파고 있는지 잠시 엿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만한 계절이다. 5월은...

07. 05. 01.   

 

 

 

 

P.S. 이런저런 사정으로 5월의 사회적 독서를 6월까지 연장한다. 내가 따로 고려했던 몇 권의 책은 최상천의 개정판 <알몸 박정희>(인물과사상사, 2007), 그리고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창비, 2000)과 황광우의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있거라>(창비, 2007)이다. 지난 년대에 대한 기억으로 며칠쯤은 채워져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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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theme 2007-05-01 16:31   좋아요 0 | URL
이중에서 한권정도는 꼭 읽어보고 싶네요.

로쟈 2007-05-01 16:40   좋아요 0 | URL
두어 권 읽으셔도 됩니다.^^

antitheme 2007-05-01 20:06   좋아요 0 | URL
제가 소화할 수 있는만큼만 읽어야죠..^^

기인 2007-05-01 21:57   좋아요 0 | URL
오오;; 아직 2007년인데 소설이천년대는 쫌 그렇네요 ^^;;
메이데이에 공익은 쉬지 않습니다 ㅜㅠ

닉네임을뭐라하지 2007-05-01 23:13   좋아요 0 | URL
강준만의 두 권 다 작년에 읽었던 책이라 왠지 으쓱하군요. ㅎ
아, 사진을 보니 이창동 감독 신작 <밀양> 기대되는군요.

로쟈 2007-05-01 23:16   좋아요 0 | URL
antitheme님/ 물론이죠.^^
기인님/ 공익을 위해서라면!^^
연랑님/ 아, '프리'시네요.^^ <밀양>은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나비80 2007-05-02 02:21   좋아요 0 | URL
다행스럽게 몇 권은 가지고 있네요.^^
생각의 나무 판 소설 시리즈는 얼마 전에 구입해 봤습니다. 소장 비평가들의 안목이 얼마나 새로운지 검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괜찮은 것 같습니다. 널리 알려진 작가의 이름난 작품은 최대한 배제하고 작품을 선정했다는 점에서 일단 기존의 컴필레이션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겠네요.

로쟈 2007-05-02 22:2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는 얼마전 서점에 가서 들었다가 생각보다 비싼 책이어서 도로 놓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동대장 2007-05-03 15:38   좋아요 0 | URL
항상 좋은 리스트에 감사 드립니다. 이번달에도 한권 골라 봐야겠네요......

로쟈 2007-05-04 18:16   좋아요 0 | URL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