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인가 타대학 도서관에 복사를 신청한 자료가 도착했다는 문자메일을 받았다. 한때는 자주 애용했던 도서관 서비스인데 요즘은 그래도 뜸하게 이용하는 편이다. 신청했던 자료는 월터 카우프만(1921-1980)의 <인문학의 미래>(미리내, 1998) 원서이다. 'The Future of the Humanities'(1995; 초판은 1977). 국역본 자체는 번역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으로 잘 '알려진' 책이다. 예컨대, 출판평론가 표정훈에 따르면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우리말로 번역된 이 책은 번역 문장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해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번역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책"이다. 그럼에도 필요 때문에 원서와 대조해가며 읽어 보기 위해 '고가의' 번역본까지 입수했다(IMF시기이던 1998년에 나온 책이 2만원이다!). 표정훈씨의 리뷰를 자료로 옮겨놓는다(http://www.kungree.com/book/good63.htm).

The Future of the Humanities : Teaching Art, Religion, Philosophy, Literature, and History (Foundations of Higher Education)

월터 카우프만, <인문학의 미래>

인문학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에는 대학의 인문학 관련 연구소 소장(교수)들이 모여서 관련 당국의 정책적 배려와 지원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인문학이 정부의 지원이 없어서 그 위기가 심화되리라는 인문학 교수들의 생각은 가당치 않다. 오히려 정부를 비롯한 외부 기관의 지원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이 인문학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하다. 말하자면, 최근 논의되는 인문학의 위기는 대부분 인문 관련 학과의 위기 아니면 그 학과에 몸담고 있는 교수들의 위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인문계 대학 학과가 모조리 없어지고 인문계 대학 교수들이 모두 직장을 잃는다고 해도, 인문학은 죽지 않는다. 대학이 아닌 다른 곳에서, 대학 교수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요컨대 새로운 터전에서 새로운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방식으로 그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그러한 새로운 터전과 새로운 방식이 당장은 대학에 비해서 비효율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나라 대학의 비효율보다는 사정이 좋지 않을까 한다.

사실, 여기 소개하는 책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 나라의 '학과 또는 교수'의 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헤겔의 <법철학>과 <논리학>을 각각 <권리의 철학>, <논리의 과학>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을 <물리학>으로, 졸라의 <제르미날>을 <저미날>로 번역해 놓은 것은 그렇다 치고, 미로 속을 헤매는 듯한 번역문이 'The Future of the Humanities'와 독자들이 만나는 것을 방해한다. (앞서 언급한 책제목의 오역은 원서의 영역 제목을 무책임하게 그대로 옮겨 놓은 결과들이다.) 물론 저자인 카우프만의 문장 자체가 까다로운 편이기는 하다. 실존주의에 대한 카우프만의 논문을 읽어 본적이 있는데, 영어를 독일어식으로 구사한다. 그러나 나랏돈은 제대로 쓰여져야 한다.

이 책은 한국학술진흥재단번역총서의 하나로 출간되었는데, 번역 지원을 하려면 번역자의 선정에서도, 번역의 질에서도 끝까지 관리, 감독해야 하지 않을까? 궁리닷컴의 '좋은 책' 코너에서 소개하기는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The Future of the Humanities가 좋은 책이라는 뜻일 뿐, '인문학의 미래'가 좋은 책은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시기 바란다.

번역문의 미로를 헤매본 결과, 카우프만은 대략 이런 말을 들려준다. 우선, 인문학을 가르치거나 배워야 하는 까닭 네 가지. 1. 인류가 남긴 위대한 작품들을 보존하고 그것을 보존할 사람을 양성한다. 2. 인생의 존재 이유, 인간 존재의 가능한 목적, 궁극적인 목표에 대한 여러 가지 대안을 탐색한다. 3. 비젼(vision)을 가르친다. 4. 비판적인 정신을 기른다.

그리고 카우프만은 인문학의 이상과 같은 존재 이유들이 무시되는 까닭은,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본래부터 걸맞지 않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각광받는 인문학자들이 있기 마련인데, 언론적 성향을 지닌 인문학자들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새로운 것, 최신의 유행에 대한 관심으로 무장하여, 인간 정신의 위대한 산물들의 보존을 위태롭게 하는 주범들인 셈이다. 저자는 한나 아렌트를 언론인으로 치부해 버리기까지 한다(*얼마전 강유원도 한 서평에서 아렌트에 대한 카우프만의 견해를 인용했다).



카우프만은 인문학 교육의 핵심은 글읽기, 즉 독서라고 한다. 인문학의 개혁은 학생들에게 읽는 법을 가르치는 것에서 출발해야 성과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소개하는 네 가지 독서 방식은 다음과 같다. 1. 해석적 독서. 저자의 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다. 책 자체의 문맥에 관심이 없고, 완전히 자기 방식에 따라 읽는 것이기도 하다. 2. 독단적 독서. 해석적 독서와 비슷한데 그에 비해서 더욱 현학적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3. 불가지론적 독서. 오래되고 드문 책이라는 이유로 책을 읽는 것이다. 글의 스타일이나 아름다움에만 관심을 기울이며, 지엽적인 것에만 주목하며, 내용의 완성도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4. 변증법적 독서가 있는데, 카우프만은 이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책을 통해 문화적 충격을 추구하고, 자신을 돌아 볼 기회를 갖고자 노력한다. 책일 단순히 읽는데 그치지 않고 책에게 질문을 던지고 책과 대화한다. 또한 저자가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저자의 전체 작품 및 저자의 지적 발전 과정 속에서 특정 저작이 어떤 의미,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등을 고민하고, 저자가 처한 여러 배경과 저자가 미친 영향을 고려한다.

카우프만은 서평에도 시비를 건다. 대부분의 정기간행물들은, 보다 긴 안목에서 영향을 미칠 독창적인 책보다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책을 다루는데 익숙하다는 것. 구체적인 사례로, 카르두치, 오이켄, 에케가레이, 미스트랄 등, 노벨상 초기에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을 들고 있다. 그들과 동시대인들인 입센, 카프카, 릴케 등은 노벨상을 받지 못했지만, 과연 오늘날의 우리는 어느 쪽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가? 말하자면, '서평을 하는 사람들이, 출판사 개최한 서커스의 호객꾼이 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번역도 카우프만의 시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카우프만은 중요한 고전의 영역본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오류들을 구체적인 사례로 들어가며 이야기한다. (도대체 이 책의 한국어판 번역자들인 두 명의 대학 교수들은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학술진흥재단의 번역 지원금 생각? 미국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온 사람들인데, 카우프만이 질타하는 미국 인문학의 현실이 사실인 것 같다.)

전체적으로 보면, 탄탄한 고전학 훈련을 쌓은 유럽의 지식인이(카우프만은 나치의 압제를 피해 독일에서 이주한 지식인으로, 프린스턴 대학에서 오랜 동안 철학을 가르쳤다.), 미국 인문학계의 현실에 대해 불만을 표명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미국 나름의 학풍이랄까 그런 것의 상대적 가치를 인정해주는 태도가 부족하다는 단점을 지니기는 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례들을 풍부하게 원용하면서 인문학의 목표, 의의, 방법 등에 대한 포괄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성찰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영어 원서를 읽거나 제대로 다시 번역할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08. 01. 23.

P.S. 국내에 몇 권의 저작이 번역돼 있지만(나는 그의 <헤겔>을 읽었었다) 카우프만은 무엇보다도 니체의 영역자이자 연구자로 유명하다(청하판 니체 전집에 카우프만의 해설들이 번역돼 실렸었다). 하지만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그의 책은 단 한권도 없는 듯하다. 한때는 가장 유명했던 니체 연구서의 하나였던 <니체: 철학자, 심리학자, 반그리스도>조차도 한국어와는 인연이 없었던 것이니 (아렌트와는 상반되게도) 이젠 잊혀진 철학자의 대열에 합류하는 게 아닌가도 싶다. 그의 홈피(http://www.acsu.buffalo.edu/~adspear/Kaufmann%20entrance.htm)라도 링크시켜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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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학은 인문학의 무덤인가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10-29 08:46 
    미국의 저명한 니체 번역자이자 연구자였던 월터 카우프만의 <인문학의 미래>(동녘, 2011)이 다시 번역돼 나왔다. 과거 <인문학의 미래>(미리내, 1998)라고 한번 출간된 적이 있지만 미진한 번역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던 책이다.에드먼드 윌슨이나 한나 아렌트 같은 '저널리스트'에 대한 비판으로도 유명한데, 실상 초점은 '인문학의 무덤'이 된 1970년대 대학을 향하고 있다.재번역되길 기대했던(그리고 직접 독려하기도 했던)1인으로
 
 
람혼 2008-01-24 01:25   좋아요 0 | URL
정말 청하 출판사 니체 전집의 앞머리마다 놓여 있던 카우프만의 서문들이 떠오르네요.^^

로쟈 2008-01-24 23:27   좋아요 0 | URL
한 시대의 지표쯤 되겠습니다.^^
 

저녁에 교보에 잠시 들렀다가 신간코너에 '지식을 만드는 지식'(이게 책 이름이 아니라 출판사 이름이다)에서 만드는 '고전 천줄 총서'가 출간돼 있는 걸 봤다(메가톤급 프로젝트인데 사실 이게 어떻게 실현 가능한지 궁금했었다). 내가 알기에는 교보문고에서만 판매하기 때문에 알라딘에서 출간 소식을 접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개인적으론 맡은 꼭지들도 있어서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책이 '멀쩡하게' 품위있게 나와서 다행스럽다. 사실 완역본이 아니라 발췌역으로 책을 낸다는 것에 의문을 갖기도 했는데 3600종이 넘는 책을 '완역본'으로 읽는다는 게 가능하지 않은 이상(전공 분야의 책들 몇 권 읽으면 한 해가 지나가는 게 현실이다!) 불가피한 선택이란 생각도 든다(시집들의 경우엔 '발췌역'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책들이 많다는 점이 기대를 갖게 한다.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08. 01. 21) 세계 ‘명품 고전’ 3600권 알토란 부분만 번역

고전 출판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우선 작업범위가 방대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완역이 아니라 중요한 부분만 골라 번역한 뒤 일정한 분량으로 묶는 발췌번역이라는 점이다. 권수로 무려 3600권. 지난 세월 100년 이상 세계 27개 언어권(당연히 조선도 포함된다)에서 읽혀온 고전들 가운데 앞으로도 100년 이상 읽힐 책 3600종을 골라 올해 600권을 시작으로 매년 1000권씩 20011년까지 4년간 순차적으로 출간하겠다는 야심만만한 기획이다.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철학, 역사, 문학 등의 인문학 만큼이나 자연과학, 예술, 기술공학 등에도 비중을 두었다. 이를 위해 그 동안 대학 학과와 학회 등을 중심으로 한 각 분야 전문가 720여명이 50여개 주제별로 나뉘어 1~5년에 걸쳐 번역작업을 해왔다. 따라서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한 극소수 예외를 빼고는 우리 출판계 고질인 중역의 폐해로부터도 벗어나 있다.

그 1차분 30권이 지난 15일(앞으로도 매달 15일에 일정한 종수를 묶어 한꺼번에 출간할 예정)부터 시판에 들어갔다. <베니스의 상인> <필원잡기>처럼 이미 잘 알려진 것도 있지만 <바다 한가운데서, 미망인들>(므로제크), <쭈옌 끼에우>(응우옌 주), <지옥의 기계>(장 콕토)처럼 국내 처음으로 편역되는 것들이 많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일반상대성 이론을 묶은 <상대성 이론>도 국내 최초 편역이다.

‘지만지 고전 천줄’ 시리즈. 출판사 ‘지식을 만드는 지식(대표 박영률)’이 1천 줄 정도의 분량으로 발췌번역해 묶은 세계고전 기획작품들이다. 46판형으로 1천 줄의 분량이면 쪽수로는 160쪽 정도. “누구나 만원 한 장으로 책을 사서 틈틈이 읽어도 일주일이면 고전 한 권의 진수를 맛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박 대표의 생각이다.

발췌번역인 만큼 원전의 주요부분을 골라 번역하되 원전 문장 자체에는 절대 손대지 않는다는 원칙을 정했다. 말하자면 필요한 부분만큼 뽑아내서 번역하되 문장 자체를 자의적으로 바꾸거나 요약하는 따위로 변형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문장이나 문단 끝에는 원전의 쪽수를 명기해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뽑아냈는지 원전과 비교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160쪽 정도에 내용 모두를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원전 자체가 짧은 경우에는 완역을 한다. 발췌로 비는 구석은 꼼꼼한 역자 주석과 해설, 지은이 소개로 채운다. 문학작품은 줄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역자 설명이 따로 붙는다.

“먼저 지금까지 한 번도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국내 최초 출간 책들을 찾아내 목록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미 출간된 것들 중에서도 대중이 많이 찾지 않아 절판된 것을 다시 살려내고자 했다. 또 출간됐으나 분량이 너무 많아 일반독자가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들 가운데 꼭 필요한 것들을 골랐다.”

박 대표는 이를 ‘세계 고전’이 아니라 ‘지구촌 고전’이라 부르면서, “지금은 서구 몇몇 열강이 세상을 지배하는 제국의 시대가 아니라 모든 민족, 모든 나라가 나름의 문화를 자랑하며 함께 살아가는 지구촌 시대”여서 “수천년 동안 전해내려온 아프리카의 작은 부족민 신화가 미국 건국사보다 못할 것 없는 시대”라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이 시리즈가 식민지배 등의 역사적 굴곡 때문에 아직도 제대로 뿌리박지 못한 우리 인문학이 ‘현실학’으로 뿌리내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아울러 희망했다.(한승동 선임기자)

08. 0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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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2 2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1-22 23:11   좋아요 0 | URL
교보 라인으로는 다 구입하실 수 있는 걸로 압니다...

2008-01-22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22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yoonta 2008-01-23 00:49   좋아요 0 | URL
"맡은 꼭지"가 있다는 말씀은 로쟈님 번역도 저 총서에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로쟈 2008-01-23 00:57   좋아요 0 | URL
러시아쪽 타이틀만 160여 개가 넘으니 전공자들은 거의 총동원되는 셈입니다...

yoonta 2008-01-23 01:04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요.^^
그리고 저 총서.. 비록 발췌본이라도 3천권이 넘는 책들을 저렇게 출간하려다하니 정말 거창한 프로젝트네요. 돈도 장난아니게 들텐데..무사히 마지막 3600번째 책까지 완간되길 고대해 봅니다.

로쟈 2008-01-23 21:51   좋아요 0 | URL
출판사도 애를 써야겠지만 역자들도 '차질없이' 작업을 해야겠지요.^^;

드팀전 2008-01-23 06:29   좋아요 0 | URL
대단한 프로젝트인 것 같군요.
어느 정도의 발췌본인지는 일단 한권이라도 사서 봐야지 감이 오겠지만....^^

로쟈 2008-01-23 21:52   좋아요 0 | URL
160쪽이면 생각보다는 양이 좀 됩니다...

아프락사스 2008-01-23 09:17   좋아요 0 | URL
왜 완역도 아니고 발췌본을 3600권이나 내려하는지 의아해 했는데, 역주로 그 외 내용을 채운다니 이해가 되는군요. 어떤 책들은 완역보다 외려 값질 수도 있겠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미 읽은 사람들에게도 훌륭한 안내서 역할을 할 수 있겠지요.
과문인 탓이겠으나 '지식을 만드는 지식'이라는 출판사의 이름을 잘 듣지 못했는데, 그다지 유명하지 못한 출판사에서 저런 기획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습니다. (한 해에 10권도 못내는 출판사가 허다한 판이니...) 이런 기획이 많아질 때마다 관련 전공자들의 일거리도 더 늘어나니 은근 반갑기도 하고요. 이 기획이 큰 성공을 거둬서 앞으로도 비슷한 프로젝트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로쟈 2008-01-23 21:53   좋아요 0 | URL
'대담한' 프로젝트이긴 합니다. 저도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반신반의했습니다...

2008-01-23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23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경 2008-01-23 18:53   좋아요 0 | URL
서점 한켠을 완전히 장악하겠군요. 비평고원 프로젝트에 참가한 이후에 로쟈님 이름만 찾아 봐야 겠네요 ㅎㅎ

로쟈 2008-01-23 21:54   좋아요 0 | URL
3600권이면 8만 대장경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여하튼 드문 규모이죠...

라로 2008-01-24 01:26   좋아요 0 | URL
와 정말 대단해요!!

로쟈 2008-01-25 00:17   좋아요 0 | URL
네, 완간된다면 '장관'이겠습니다...

비로그인 2008-01-25 02:30   좋아요 0 | URL
모두 완간되면, 프랑스의 크세쥬 문고에 버금가는 대작이 되겠군요. 그것도 4년만에 말입니다. 전집을 읽다 보면, 주체못할 수집벽이 발동하는 관계로, 애시당초 마음 접고 대학 도서관에 들어오길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네요.
책등의 번호만 없었어도 어찌 해보겠건만.
경탄과 좌절감이 함께 밀려오는군요. (웃음)

로쟈 2008-01-26 17:38   좋아요 0 | URL
그런 좌절에는 얼른 면역이 되셔야 합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논어>는 가장 중요한 동양고전의 하나다. 그 영향력에 있어서 흔히 기독교의 <성경>에 비견될 정도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성경>과 다른 건 소위 '정본'이 없다는 점이다. 국내에 나와 있는 <논어> 번역과 주해만 하더라도 수백 종에 달한다고 하니 좀 역설적이기도 하다(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것만 해도 수십 종이다). 여타 고전들과 다르게 <논어>의 경우에는 너무 많이 번역되어 있는 게 문제라고 할까. 거기에 번역본마다 해석이 불일치한 대목들도 적지 않기에 어느 번역본을 읽어야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는지조차 불분명하다(나부터도 댓 종의 번역본을 갖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지나간 기사이긴 하지만 논어 번역본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교수신문에 연재되었던 '고전번역비평'에서 <논어>에 관한 것이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7703). 연재의 첫번째 꼭지이기도 했다.

교수신문(05. 05. 31) 고전번역비평_최고 번역본을 찾아서 (1)공자의 論語

믿고 읽을 만한 번역본을 선별해주는 것이 전문가들에게주어진 과제 중의 과제이다. 특히 공자의 논어(論語)는 1백종이 넘는 번역본이 있어 일반인이 고르기가 쉽지 않다. 논어는 번역의 역사가 깊고 그 수준도 다른 고전들에 비해 높은 편이다. 이강재 서울대 교수는 “이제 논어번역은 원문의 충실성은 기본이고, 얼마나 자기 것으로 소화해서 전달하느냐에 달려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대학생 수준에서 읽기 좋은 논어 번역본을 추천해달라”며 관련 전공 교수 30명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논어 번역은 연구사를 얼마나 섭렵했느냐, 주희의 역주가 있느냐 없느냐, 창조적 번역의 정도에 있어서 지나치는 면은 없는지, 본문을 잘 이해할 수 있는 해제가 있는지 등을 골고루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 설문 응답자들은 각각의 책들이 이 중 한두가지를 만족할 뿐, 완벽한 번역본은 아직 없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번 설문에서는 동양연구회(*동양고전연구회)가 번역한 ‘논어’와 유교문화연구소가 번역한 ‘논어’가 각각 6명의 추천을 받아 가장 신뢰할만한 번역본으로 드러났다. 

 

 

 

 

둘다 올해 출간된 것으로 여러 연구자들이 장기간에 걸쳐 공동번역한 것이며, 현대어로 재번역하는 데 중점을 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동양고전연구회가 옮긴 것은 유건종 교수를 중심으로 고려대 출신 학자들의 작업으로 “고어적 표현이나 어색한 표현을 많이 완화시켰다”, “교양적 수준에서 쉽게 읽힌다”, “기존 번역본들이 지닌 장점을 두루 참조해 오역이 최소화했다”, “현대 사상가들의 주석을 참조해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등의 의견이 있었다. 이 번역본은 9명의 연구자들이 격주 토요일마다 모여 강독하고 옮긴 지 9년여 만에 내놓은 결과물로 전문성에 있어서도 그 수준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추천자들은 말한다.

9년의 되씹음 거쳐 성과 얻었다
유교문화연구소가 옮긴 책은 논어의 ‘언해본’을 바탕으로 작업했는데 가장 정통적인 번역으로 꼽힌다. 이 책은 “기본으로 돌아가자”라는 모토를 내걸었는데, 공동번역자들은  일제 때 단절된 조선시대 경전읽기로 다시 돌아가는 마음으로 원전의 고전적 맛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추천 교수들은 “현대적인 표현으로 고쳤으면서도 한문도 적절히 써 고전의 장중한 맛이 살아있다”, “읽기 쉽다” 등을 추천의 이유로 꼽았다. 특히 동양고전을 한 단계 더 들어가서 보고 싶다는 학생들에게 적극 추천된다.

 

 

 



그 다음 총 5명이 추천한 김학주 서울대 명예교수의 번역은 老 대가다운 면모를 여실히 발휘하고 있다. 김학주 교수는 1970년대부터 동양고전을 선두에서 번역하면서 고전부흥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활약했다. 김 교수는 현직에서 퇴직한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예전의 번역본들을 꼼꼼히 재검토한 전면 개정판을 계속 내놓고 있어 주목을 끈 바 있다. “쉽게 풀어 썼으면서도 전문가들끼리의 논쟁거리를 충분히 던져준다”, “이만큼 탁월한 해제를 보기 어렵다”라는 게 교수들의 평이다. “번역에 있어서 학자적 양심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책”이란 말이 따라다니는데, 이미 관용어처럼 굳어져서 형식적으로 해석하고 넘어갈 수 있는 어구들도 더욱더 정확히 풀이해놓았기 때문. 

이기동 성균관대 교수의 번역작업도 많은 추천을 받았다. 이 교수는 ‘논어강설’ 외에도 ‘대학·중용 강설’, ‘노자’, ‘장자’, ‘맹자강설’ 등 수권의 동양고전을 섭렵해 역해서를 내놓고 있어 일가를 이루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의 역본이 네 명으로부터 추천을 받았는데, 이유는 무엇보다 “역자해설에서 본문의 내용을 주변의 현상과 견주면서 풀이하고 있어 이해를 쉽게 돕는다”라는 것인데, 이는 전문성이 탁월하기에 가능했다는 평들이다. 현대어로 번역된 건 물론이다.

참신함과 날카로움-배병삼·황희경
김학주·이기동 교수의 번역은 주희의 주석을 중심으로 해석을 했기 때문에 “공자보다는 주희의 시각을 보여준다”는 의견도 많았는데, 이는 한편으로는 정통적인 흐름 속에서의 논어를 익힐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지만, 늘 듣던 얘기인지라 깊이 음미하지 않으면 자칫 고루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도련 교수가 번역한 ‘논어-주주금석’은 주자의 영향에서 탈피해서 논어를 보려는 가장 선구적인 시도이다. “문맥을 정확히 살피는 데 중점을 두고 자구 하나하나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경박하게 주희를 다 쳐내지 않으면서, 정약용의 조선적 글읽기를 참조해 잘 번역했다”는 추천을 받았다.

 

 

 



황희경 교수의 번역은 3명에게 추천받았는데, 그의 번역은 “새로운 시각, 날카로운 해석, 장중한 사상적 깊이”로 특징지을 수 있다. 노신, 김근목, 이택후 등 중국 현대사상가들의 논어 주석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참신하다는 것. 그리고 앞의 문맥들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 중간중간 “번역자의 사상이 번득인다”라는 게 추천자들의 공통적 의견이다. 

배병삼 교수의 번역은 ‘튀는 번역’이라고 해 정통유학파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이지만, 오역 없이 원전과 주석을 널리 활용해서 잘 번역했다는 추천을 3명에게 받았다. 무엇보다 한글세대를 위해 완전히 한글로 번역했다는 점, 또한 사회과학자로서의 안목을 곁들였다는 평이다. “오늘날의 문제의식과 잘 연결되도록 논어를 해석했다”라고 전문가들은 견해를 밝힌다. 김형찬 교수의 번역 또한 3표를 얻었다. 그는 기자 출신이면서 동양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의외로 많은 교수들이 추천하고 싶은 번역본이라고 밝혔다. “문장이 고답적이지 않고 일상적인 친근감이 있다”, “젊은 감각에 맞는 언어를 선택했다”라는 게 추천의 변이다.



성백효 번역본-극과 극의 평가
사실 전문가들에게 가장 많이 읽히는 건 성백효 역이다. 주희의 주를 가장 먼저 한글로 번역했고, 문법에 따라서 교과서처럼 정확하게 옮겼기 때문이다. 이번 선정작업에서도 7명 정도가 다른 책을 추천하면서도, 말꼬리에서 성백효 번역이 “가장 정확하고 해제, 주석, 원문, 번역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고어투가 너무나 많다”라는 우려를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 번역본을 갖고 학부생에게 강의해본 여러 교수들은 이번 추천의 변에서 “성백효 역을 대부분 학생들이 어려워 한다”라고 말했는데, 만약 논어도 읽고 한문도 정식으로 배우기 위한 것이라면 이 책이 괜찮다는 의견도 3건이나 있었다.

그 외에 박기봉 교수 번역도 2명에게 추천됐는데 “완역이 아니고, 직역도 아니지만 책이 작고 맹자도 함께 언급하고 있어서 학생들이 가지고 다니며 편하게 읽기에 좋다”라는 게 추천의 이유다. 그 외에 단수 추천된 책으로는 이을호 역, 황갑연 역, 윤재근 역, 김종무 역, 남희근 역, 이우재 역(이상 교수) 등이 있었다. 추천자들은 학자들이 자신의 인생을 배경으로 해서 논어를 읽은 에세이 류를 추천하기도 했는데, 삶 속에 반추된 논어야 말로 ‘진짜배기’ 아니겠냐는 것이다. 이 쪽으로는 남희근·이우재·안병욱 교수 등의 책이 읽어볼 만하다고 추천되었다.

이번 취재결과 또한 “번역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된 역본들도 있었다. 공자의 논어 자체를 현대적으로 번역시도한 경우 자의적인 해석이 많아도 이에 대해서 쉽게 비판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원본과 대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서집주를 번역한 경우는 원본과 곧바로 대조되기에 명백하게 오류들이 드러난다. 김동길·허호구 교수 역은 “다산의 논어고금주를 번역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오역들이 너무 눈에 많이 띈다”라는 지적을 받았다. 정후수 교수가 옮긴 ‘주희가 집주한 논어’(장락 刊, 2000) 역시 “명백한 오역들이 많다”라는 비판을 받았다.  류종목 교수가 옮긴 ‘논어의 문법적 이해’(문학과지성사 刊, 2000)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지만, 여러모로 자의적이고 무리한 해석이 많다”라는 평을 얻었다.(이은혜 기자)

교수신문(05. 05. 31) 번역의 역사_ 공자의 논어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는 ‘논어’이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논어를 번역하는 일이 오히려 난해한 문헌을 번역하는 것보다 어렵다. 논어에 관한한 최고의 주석가라고 할 만한 주희의 경우도 자신의 ‘논어집주’에서 “어떤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未知孰是)”라는 문구를 여러 차례 삽입해 스스로 텍스트의 내용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하물며 주석과는 달리 완전한 번역어를 제시해야 하는 번역의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다.

현재 논어의 우리말 번역서는 시판되고 있는 것만 1백60여종에 이르고 있으며 절판된 책까지 모두 합치면 3백종이 넘는다. 어떤 동양고전보다 많은 양이다. 하지만 수많은 동양고전 가운데서 논어가 가진 특별한 지위를 감안한다면 그리 많은 양이라 할 수 없다.

우리 나라에서 논어 번역의 역사는 16세기의 ‘논어언해’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근대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번역은 1909년 최남선이 간행한 종합잡지 ‘소년’ 9호~12호까지 실렸던 ‘소년논어’라 할 수 있다. ‘소년논어’는 비록 완역은 아니지만 원문의 내용을 우리말로 옮기는 수준에 그친 것이 아니라, 원문의 신성성을 떨쳐버리고 주체적인 의미의 번역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소년논어’는 단순히 한문 문자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선에 그치지 않고 삶의 문맥을 활용해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대중어를 이용해 번역했다는 점에서 깜짝 놀랄 만큼 생동감이 뛰어나다. 완역이 되지 못하고 팔일편 첫부분에서 중단되고 만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최남선 이후 지금까지의 논어 번역사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으로는 1974년 박영사에서 문고판으로 간행한 이을호가 옮긴 ‘한글 논어’를 들 수 있다. 이을호 역은 원문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하게 우리의 일상언어로 바꾸어 번역했는데, 자연스러운 대화체를 사용함으로써 마치 공자의 육성을 직접 듣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간결 명료한 번역으로 원문과의 대칭적 구조까지 살렸다는 점에서 절묘한 번역이라 할 만하다. 또 이을호 역은 삶의 문법이 분명히 보이는 번역으로 당시 65세, 막 정년을 앞둔 노학자의 치열한 학문역정을 엿볼 수 있을뿐더러 번역을 통해 권위를 굴레를 벗고 일상 속으로 다가오는 공자의 모습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앞으로 논어를 번역할 이들이 반드시 참고해야 할 탁월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간행된 1백여종에 가까운 논어번역서 가운데에도 훌륭한 것이 많다. 이 시기의 논어 번역서는 주희나 정약용 등 전통 주석가들의 견해를 번역의 근거로 제시하는 한편 현대 학자들의 견해까지 반영하여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논어 원문에 없는 부분까지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부기하고 있는 점, 기존의 번역서에서 해결하지 못한 난해처를 많은 부분 해결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기존의 논어 번역보다 한결 심층적인 번역물이 간행되었다. 예컨대 1998년 동녘에서 간행한 한필훈 번역의 ‘한글로 읽는 논어-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하나의 사례로 들 수 있다. 이 책은 논어 본문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나올 경우에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본문 앞부분에 당시 공자가 그런 말을 하게 된 배경을 간단하게 기술하면서 본문으로 이어지게 편집해서 쉽게 읽히는 논어로 청소년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또 1999년 홍익출판사에서 간행한 김형찬역 ‘논어’는 표현하기 까다로운 특수 용어를 우리말로 적절하게 번역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자로편 21장의 ‘狂者’를 ‘꿈이 큰 사람’으로 번역함으로써 기존의 번역서가 모호하게 처리하고 넘어간 난해처를 분명하고 적절하게 해결하고 있다. 아울러 2000년 시공사에서 간행한 황희경 번역의 ‘논어-삶에 집착하는 사람과 함께하는’의 경우는 학이편 4장을 학이편 1장의 내용으로 해설한 내용, 팔일편 24장에 나오는 의봉인과 공자의 만남을 몽타주 기법으로 해설한 내용 등에서 기존의 논어 번역을 넘어서는 참신함이 엿보인다.

우리는 공자가 논어를 읽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자주 망각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공자가 아니라 논어텍스트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성인으로서의 공자를 가정하고 일상 속의 인간들에게 당신들의 삶은 잘못됐으니 이처럼 비범한 말을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라는 일방적 훈계로 일관된 번역과 해설을 붙여왔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고전 읽기는 우리의 일상을 얕보는 천박한 사고를 부추겨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현실의 모순을 은폐하고 안락한 도피처를 찾아 떠나게 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고전을 해체하고 우리의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는 길만이 참된 의미에서 우리의 고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삶의 문법으로 번역한 논어를 기다리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전호근 경기대 교수)

교수신문(05. 07. 13) 반론:고전번역 비평 기사에 대한 문제 제기

최근 교수신문에서 기획하여 고전 번역에 대한 비평을 연재하고 있다. 그간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고전 번역에 대한 비평이 없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며, 또한 비평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일반인에게 최고의 번역본을 소개해 준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고 보여진다. 다만 기획의 의도와는 달리 번역 비평이 이루어지거나 비평 기사가 작성되는 과정에 대하여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이번 기획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실명 비평이다. 즉 번역서의 저자 실명을 거론하면서 추천된 번역본과 비판된 변역본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서로의 잘못을 덮어주기에 급급한 우리의 학계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면서 번역의 엄밀성에 대한 강조라는 측면에서 신선한 충격을 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실명 비평의 전제는 비평의 대상에 대한 실명만이 아니라 비평 당사자 역시 실명이어야 하며 비평의 이유에 대한 명확한 내용도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다수의 이름 속에서 혹은 익명성 속에서 명확한 비평의 근거도 없이 실명 비평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비판의 대상이 된 실명 변역자에 대해서 변론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채 이루어지는 일종의 마녀사냥으로 변질되기 쉽다. 이를 좀더 거칠게 표현하자면 사이버상에 난무하는 익명성에 근거한 댓글의 일종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실명 비평의 기획 의도를 잘 살리고자 한다면 실명 비평의 방식에 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할 것이다.

이번 기획 기사에서 두 번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추천의 방식이다. 필자 역시 논어에 대한 30명의 추천 교수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필자에게 요구된 추천 방식은 학생들에게 권할만한 논어 번역서가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1-2분 정도 한 차례의 전화 통화뿐이다. 어느 전공 교수라 해도 160여종이 판매되고 있다는 논어의 번역서를 제대로 다 파악할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처음 몇몇 전공 교수를 통해 제한된 우수 번역서를 먼저 선정하고 그에 대한 엄밀한 분석 혹은 추천 교수의 토론을 거친 이후에 추천 번역서 혹은 비판 번역서를 선정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 생각한다. 기사에 제시된 추천 교수가 어떻게 해서 선정된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일방적으로 전화 한 통에 의해 실명 비평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신문에 기사화된다는 것은 상당히 무책임한 대목이다. 많은 교수들은 전화 한 통에 의지해서 무책임하게 작성된 일반 신문의 기사에 의해 속상해하거나 피해를 본 경험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교수를 독자로 삼는 교수신문조차도 이러한 취재 방식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 우리를 매우 슬프게 한다.

또한 추천 교수 명단에 포함된 교수진은 직간접적으로 해당 번역서와 관련된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에 대한 고려이다. 논어에 대한 추천 교수 명단을 살펴볼 때, 가장 추천이 많이 된 것으로 기사화된 유교문화연구소 간행본과 직접적으로 관여된 교수만 해도 네 명이며 간접적으로 관련까지 고려한다면 훨씬 더 많은 수의 교수가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2005년 3월 20일 발행되어 두 달 정도밖에 지나지 않아 아직 시중에 충분히 배포되지도 않은 도서가 제일 많은 교수의 추천을 받는 일이 가능한 것은 아닐까 의구심을 갖는다. 또한 동양고전연구회 번역서의 집필에 직접 참여한 교수 중 세 사람이 이번 추천교수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다른 추천교수 명단을 보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30인의 추천교수 중 논어 번역서를 낸 바 있는 분이 예닐곱 분이 넘으며 해당 번역서를 낸 교수와 동일한 대학, 동일한 학과에 근무하는 교수나 그 제자가 다수 포함된 것을 볼 때 추천의 객관성에 대해 의구심을 보내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덧붙이고 싶은 것은 논어 번역서와 관련된 기사의 내용 중 상당 부분이 무성의함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번역서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해당 책의 출판연도는 평가의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기사에서는 논어 번역서에 대한 출판연도를 자세히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가령 동양고전연구회의 번역서는 2005년이 아닌 2002년에 초판이 나온 것이며, 김학주 교수의 번역서는 2003년이 아닌 1985년에 초판이 나왔다. 뿐만 아니라 기사에서 주희의 주를 가장 먼저 한글로 번역했다고 되어 있는 성백효 선생 번역본의 경우 1990년 5월 초판이 나왔는데, 이는 같은 해 간행된 김도련 교수의 번역본보다도 약간 늦게 출판된 것이며, 1982년 간행되었던 한상갑 교수의 번역에 비하면 훨씬 뒤늦은 것이다. 이러한 오류는 기사가 완성되기 전에 충분한 사전 조사를 하지 않은 채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며, 이것이 의욕적으로 시작한 고전번역 비평에 대한 기획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할 수 있다.(이강재 서울대 중문학과 교수)

[참고] 이는 문제제기와 관련된 참고자료입니다.

추천인 중 논어 역주서 집필자

[개인 집필자]
이동희 (1997, 계명대 출판부, 논어)
이애희 (1992, 민음사, 공자 사상의 발견) - 직접 역주서가 아닐 수 있음.
임종욱 (2002, 나무아래사람, 논어)
장숙필, 정상봉 (2002, 지식산업사, 논어)
황희경 (2000, 시공사, 논어)
배병삼 (2002, 문학동네, 논어)

동양고전연구회 논어 집필진
고재욱 (강원대 철학과)
김백현 (강릉대 철학과)
* 김병채 (한양대 철학과) -- 추천 교수에 포함
유권종 (중앙대 철학과)
이강수 (연세대 철학과)
이명한 (중앙대 철학과)
* 장숙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 추천 교수에 포함
* 정상봉 (고려대 철학과) -- 추천 교수에 포함

논어 추천 교수 중 유교문화연구소 논어 관련 교수 (직접 관련만)
안재순 (강원대) - 교열위원
이천승 (성균관대) - 집필 위원
최영진 (성균관대) - 기획 당시 유교문화연구소 소장
김영호 (영산대) - 초기 기획 참여

추천 교수 중 영산대 교수(추천된 번역서 역자 배병삼 교수 소속 대학)
배병삼 교수, 김영호 교수, 이상익 교수, 조광호 교수, 황희경 교수

<해명>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논어’가 시리즈의 첫회라 미흡한 점이 많았습니다. 이 점에 대해 앞으로 계속 보완해나겠습니다. 번역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는 취재원의 전문성, 구성에서의 공정성을 더욱 철저히 고려하겠습니다. 다만 5회를 진행하면서 1백20명 교수들 중 몇분 안에 취재가 끝난 경우는 적었습니다. 대부분은 장시간 의견을 밝혔고, 원고지 20~30매로 의견을 밝혀주신 경우도 있었습니다. 번역자를 취재원에 포함시킨 건 기존 번역서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이고, 자기 책은 추천하지 못하게 돼 있었음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이은혜 기자)

08. 01. 22.

Конфуций Суждения и беседыКонфуций Конфуций - Суждения и беседы

P.S. 러시아어 문고본의 <논어>이다. 문고본답게 가격은 저렴해서 3,000원 정도. 제목은 <견해와 대화>로 돼 있다. 오른쪽은 고가 한정본인데 가격은 14만원이 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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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1-24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 종류의 '번역본'ㅡ이렇듯 <논어>를 '타자화'시키기란 어떤 의미에서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ㅡ을 갖고 있지만, 정말 많은 번역본들이 있군요. 소개글에 감사드립니다. 몇 권은 구해서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로쟈님 말씀처럼 어떤 의미에서 <논어>의 '정본'이 확정되는 일은 참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성경>에 대한 연구가 '해석학(Hermeneutik)'의 탄생을 촉발했던 것과도 같은 에너지를 <논어>에서도 또한 기대하게 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논어>는 예나 지금이나 '문제적'이고 '징후적'인 텍스트로군요.^^

로쟈 2008-01-24 23:31   좋아요 0 | URL
이번에 새삼 알게 된 것이지만 서로 모순적인 번역/해석까지도 '공식적'으로 허용하더군요. 우리가 '상상하는' 공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리저호우(리쩌허우)에 관한 기사를 검색하다가 발견한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작년 봄 기사인데, 진수의 <정사 삼국지>를 완역한 김원중 교수와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정사'란 타이틀에 비하면 판매실적은 매우 저조한 듯하다(나로서도 개인 도서관이나 마련되어야 꽂아둘 수 있을 듯하다).

한겨레(07. 03. 16) “조조는 영웅, 유비는 배신자”

“‘위지 동이전’만 보고 우리 고대사를 얘기할 수 없어요. <삼국지> 전체를 봐야 위지 동이전이 제대로 보입니다.” 공자님 말씀이지만 <삼국지> 완역자의 말이라 제대로 힘을 받는다. 네 권으로 나온 한글판 <정사 삼국지>(민음사)를 번역한 김원중(45) 건양대 교수(중국언어문화학과). 그는 중국의 24사를 번역해 우리식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중국의 동북공정에 패배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국가사업으로 번역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최근 중국에서는 학자 200여명을 동원해 <24사 전역> 88권을 낸 것을 생각하면 우리쪽은 미흡하기 짝이 없는 셈이다.

“나관중의 <삼국연의>가 조조의 위가 아닌 유비와 제갈량의 촉을 정통으로 삼음으로써 역사흐름을 왜곡했다는 점에서 최근에 말썽이 되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맥을 같이 합니다.”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비틀리기 이전의 ‘원본 삼국지’를 갖게 된 셈이다. 중국의 한 평자는 <삼국연의>가 ‘칠실삼허’라지만 김 교수는 ‘삼실칠허’라고 말했다.

우리가 아는 명장면들, 유비-관우-장비의 도원결의, 관우가 술이 식기 전 화웅의 목을 베는 장면과 천리를 단기로 달리며 다섯 관문의 다섯 장군을 베는 장면, 조자룡이 장판파에서 유비를 구하는 장면, 제갈량이 적벽대전에서 화살을 빌려오는 장면과 남만의 맹획을 칠종칠금하는 장면 등은 허구라는 것. 정통성을 촉에 두면서 빚어진 현상들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것을 사실처럼 여긴다는 것.  

서진(西晉)의 진수(233~297)가 마흔여덟에 완성한 <삼국지>는 위나라를 정통으로 삼은 기전체 역사서. 사마천의 <사기>, 반고의 <한서>와 함께 3대 중국 고대사로 꼽는다. 김 교수가 저본을 삼은 것은 1959년 중화서국의 표점본. 마오쩌둥이 중국 통일 뒤 사학전공자를 소집해 작업한 것이다.

 

 

 

 

이번 한글본은 1994년 초역본을 낸 이래 10여년에 걸쳐 재번역한 것이다. 김 교수는 <사기열전>, <사기본기>, <정관정요> 등을 번역하면서 안목을 높인데다 새로운 학문성과를 반영해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번역하면서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수십번도 더 들었다는 그는 교정 보는데만 1년반이 걸렸다고 넌더리를 냈다. 들인 품에 비해 빛이 나지 않는 일이 번역일. “논문이 100이면 번역은 50밖에 연구실적으로 인정을 안해 줘요. 힘은 거의 네 배가 드는데 말입니다.” 관점이 통일돼야 하기에 공동작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지론이어서 번역작업은 오로지 그의 몫이었다. 고전 전공자가 적어 제자들 도움도 기대하기 힘든 형편. 그는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을 잘 자라 함께 일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배송지의 주석을 왜 번역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걸 왜 해야 하느냐고 힐문했다. “그것이 소략한 원본을 풍부하게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번잡하고 초점이 없어요. 게다가 엄밀성이 떨어지고 흥밋거리를 많이 삽입해 원전의 의미를 흐렸다고 봅니다.” 한글판은 배송지가 아닌 김원중의 연구결과와 관점이 들어간 것이라는 그의 말에는 자부심이 배었다.

“우리도 번역에서 정본을 인정해야 합니다. 서양에서는 1800년대에 이뤄진 제임스 레게의 유교경전 번역본을 정본으로 널리 인용하고 있어요.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어느 것을 정본으로 삼아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는 거죠. 논어만 해도 서로 인정하지 않아 번역본이 50여종이나 돼요. 그러니 엉뚱하게 양백준이나 리저허우 같은 이의 것이 판을 치는 거죠.”

다른 사서를 일일이 찾아서 만든 ‘삼국지 관직사전’은 독자들한테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인덱스를 못 넣은 게 못내 찜찜하다면서 다음판에라도 넣고 싶다고 말했다. “조조? 참 대단한 인물입니다. 전략이면 전략, 행정이면 행정, 냉철한 현실감각에다 시인이기도 하지요. 유비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고 배신자에다 부화뇌동자에 불과하죠. 그런데 영웅이라니요.” (임종업 선임기자)

08. 01. 21.

P.S. 참고로, 김원중 교수의 최근 번역은 <삼국유사>(민음사, 2008)의 개역판이다. 을유문화사판 <삼국유사>(2002)를 개정한 것인데, 이젠 <삼국유사>의 경우에도 '정본'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개인적으론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까치글방, 1999)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에 나온 '저렴한' 판본으로 읽어볼까 싶다.

한편, 기사에서 언급된 양백준과 리쩌허우는 각각 <논어역주>(중문출판사, 2002)와 <논어금독>(2006)을 가리키는 듯하다. 저자는 이들 중국학자들의 역주가 번역된 사실을 개탄스럽게 이야기하지만 굳이 불쾌할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논어역주>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논어금독>의 경우 인상적인 건 같은 중국어임에도 시대를 격하고 있기 때문에 '번역'이 필요하다고 보는 저자의 태도였다. 가령, 리쩌허우는 '인(仁)'의 경우만 하더라도 '인덕(仁德)', '인애(仁愛)', '어진 마음(仁心)' 등으로 옮겨주며 '예(禮)'는 '예법(禮法)'으로 옮긴다. 과연 50여 종이 넘는 <논어>의 국역본 가운데 그렇게 '타자화'해서 옮긴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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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당장 여윳돈이 생긴다면(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도서상품권이라고 해두자) 가장 먼저 사두고 싶은 책들은, 어제오늘의 관심에 따르자면, 리쩌허우의 책들이다('리쩌허우'와 '리저허우'가 혼용되고 있다). 그 사이에 몇 권은 절판(품절)되어 아쉬운데, '중국사상의 등소평'이란 평판까지 듣는 걸 고려하면 전집이라고 나와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도서관에서 <논어금독>을 빌려다 잠깐 보는데 900쪽이 넘는 분량인지라 등정은 '부지하세월'이겠다. 한국사상에 대해서 이만한 책들을 써줄 사람은 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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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설- 리쩌허우, 중국의 사상을 말하다
리저허우 지음, 노승현 옮김 / 들녘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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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금독- 오늘의 눈으로 논어를 읽는다
리쩌허우 지음, 임옥균 옮김 / 북로드 / 2006년 11월
39,000원 → 35,100원(10%할인) / 마일리지 1,9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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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국고대사상사론
리저허우 지음, 정병석 옮김 / 한길사 / 2005년 8월
30,000원 → 27,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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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근대사상사론
리저허우 지음, 임춘성 옮김 / 한길사 / 2005년 8월
33,000원 → 29,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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