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마음먹고 레비 스트로스(1908- )의 <신화학1>(한길사, 2005)을 구입했다. 레비 스트로스의 압도적인 영향하에 쓰여진 나카자와 신이치의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를 주섬주섬 읽게 되면서 다시 관심을 갖게 됐다. <신화학>의 나머지 세 권과 <구조인류학> 두 권이 조속히, 마저 출간되기를 기대하는/촉구하는 취지로 리스트를 만들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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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회고록
디디에 에리봉 지음, 송태현 옮김 / 강 / 2003년 1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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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가 육성으로 들려주는 자신의 생애. 기본서.
보다 듣다 읽다- 레비스트로스 미학강의, 개정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고봉만.류재화 옮김 / 이매진 / 2008년 6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08년 11월 29일에 저장
품절
슬픈 열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박옥줄 옮김 / 한길사 / 1998년 6월
37,000원 → 33,300원(10%할인) / 마일리지 1,8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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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의 출세작. '학자' 레비스트로스가 아닌 '작가' 레비스트로스와 만나게 해주는 책.
야생의 사고
레비 스트로스 지음, 안정남 옮김 / 한길사 / 1996년 4월
28,000원 → 25,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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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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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ine 2008-02-24 01:04   좋아요 0 | URL
저도 공감합니다..특히 구조인류학은 죽기전에 번역서가 나와야될텐데... 따지고보면 레비스트로스영감님이 구조주의의 수장인데..어째 한국에선 젤 찬밥취급 받는것 같네요...-.-

로쟈 2008-02-24 11:53   좋아요 0 | URL
번역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도 지원여건도 불비한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yoonakim 2008-02-24 01:22   좋아요 0 | URL
아, 나카자와 신이치의 까이에 소바주 시리즈 저도 아주 흥미롭게 봤습니다..방가워서 한마디합니다^^

로쟈 2008-02-24 11:54   좋아요 0 | URL
나름 '일본통'이시죠?^^

yoonakim 2008-02-24 23:09   좋아요 0 | URL
모(우물우물)...나름입니다^^

2008-02-24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24 2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주중에 <시사인>에서 읽은 기사는 최근 <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1,2>(고즈윈, 2008)을 펴낸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과의 인터뷰 기사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52). 지난 10년간 역사 분야의 저술가로 단연 두드러진 활동을 선보이고 있는 저자의 새로운 신간 또한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데 요즘 수위를 다투고 있는 건 박영규의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웅진지식하우스, 2004), <한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웅진지식하우스, 2008) 등이다. 후자가 편술인 만큼 직접 비교할 수는 없겠다. 아울러 지난 몇 년간 국내 학계에서 유난히 18세기에 대한 주목할 만한 연구/저술 성과들이 나오고 또 주목 받고 있는 현상은 흥미를 끈다(학문사가들의 좋은 주제가 될 만하다). 대중적으로 요약하자면 '정조 신드롬'쯤 되겠다. 이에 관한 기사도 생각이 나서 같이 옮겨놓는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7). 한국사회의 무의식을 읽을 수 있는 한 가지 지표가 아닌가 싶다. 

시사인(08. 02. 19) "노론의 당론 여전히 작동 중"

지난 10여 년 사이 역사학의 결과물이 대중화한 성과는 눈부시다. 정치사에 국한된 연구자들의 관심이 생활사와 미시사 따위로 확장되어 간 것이 한 축이라면, 정치사 가운데에서도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했던 인물의 복권 흐름도 거셌다. 요즘 역사서와 역사소설은 출판 시장에 활력을 더하는 주력군이다.



그 중심에 역사 평론가 이덕일이 있다. 펴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리는 그가 최근 <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 1, 2>(고즈윈 펴냄)를 펴냈다. 다시 정조이다. 그는 이미 ‘이덕일의 조선 후기 3부작’이라고 불리는 <사도세자의 고백>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을 통해 당쟁에 얽힌 후기 조선의 성격을 드러낸 바 있다. 이 가운데 1997년 출간된 <사도세자의 고백>은, 추리 소설 못지않은 긴박한 구성과 생생한 묘사로 선풍을 일으켰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여드레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축조함으로써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세력의 존재와 영향력을 부각시켰다. 뒤를 이은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은 정약용의 이름을 전면에 내걸었지만, 사실 정조와 그의 시대에 관한 소고이다. 

그런 이덕일이 이번에는 정조 치세를 정면으로 다루고 나왔다. 위 3부작이 쓰일 때 구상했던 것인데, 4~5년이 늦춰진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자료를 더 섭렵했고, 구성도 파격적이다. 아예 소설을 방불케 하는 일화로 시작한다. 정조가 독살되었다며 거병했다 처형된 영남 양반 장시경 형제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 근거는 명확히 문헌에서 찾았다.

지금까지 그의 저서는 마흔 권 가까이 된다. 박사 논문을 털 무렵부터 집필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12년째가 된다. 숨가쁘게 책을 쏟아냈지만, 그 흔한 출간기념회나 홍보 행사 한번 변변하게 치르지 못했다. 이씨는 “책이 50권쯤 나오면 그때 출간기념회를 하겠다”라며 웃었다. 숭실대학교 사학과에서 <동북항일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년 정도 강사 생활을 했으나 점차 자기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확연해졌다. 교수 충원 방식, 또 이후 강단 생활이 자기 생리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 섰다고. ‘라면 3개와 소주 1병이면 된다고 여긴’ 그는 곧바로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길에 뛰어들었다. 

전문 연구자인 그가 펴내는 역사서는 단박에 대중을 사로잡았다. 사료에 기반하면서도 호소력이 넘치는 긴박한 문체가 상상력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원전 번역이 많이 진행되어 집필 작업이 수월해졌지만, 여전히 원전 해독 능력은 필수이다. 게다가 실록 같은 기록은 편년체이기 때문에 배경 지식이 있어야 기술된 ‘간략 정보’의 의미를 파악하고, 다른 문헌과 대조해보는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

그는 특히 사료의 행간을 짚어보는 데 관심이 많다. 이른바 정사는, 집권 세력이 감추고자 했던 정보가 누락되거나 간략하게 기술되는 경우가 많아서이다. 정조 시대의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서도 관찬 사서뿐 아니라 개인 문집과 외국의 기록을 망라했다. 그의 책에 유독 대화체가 많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실록이나 <승정원일기> 외에도 <일성록> <홍재전서>, 채제공의 문집인 <번안집>, 규장각 사검서였던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박제가의 <정유집>과 유득공의 <고운당필기>, 교황청이 갖고 있는 황사영 백서를 포함한 선교사들의 편지까지 섭렵했다.

사료 더미를 헤치는 것만이라면 수고를 더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기술에는 복병이 만만치 않다. 드러나게 발목을 잡는 일은 관련 문중의 항의와 고소 위협이다. 근거를 들어 설명해보지만, 숫제 고소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일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윤휴와 강화학파에 관심 커

“망자에 대한 명예훼손의 경우 몇 백년 후손이라도 할 수 있어 위협적이다. 지금도 공민왕에 대한 특정 기술 때문에 형법으로 단죄될 수 있으니 우스운 일 아닌가.” 그러나 그에 따르면 무형의 걸림돌이 더 문제이다. 역사학계의 치우친 관점이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는 역사 지식, 특히 조선 시대나 상고사에 관한 대목은 노론의 당론과 마찬가지다”라는 매우 ‘센’ 발언을 내놓았다. 그는 특히 과거 정조 시기 노론의 행태에 선명한 비판의 각을 세운다. 그에 따르면 아직도 노론 후예의 힘은 여전하다. 그들은 일제 시대에도 부귀영화를 누렸고, 유무형의 자산으로 현재까지 유리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 

그는 “한창때는 과거 사례와 당대의 현실을 비교하며 언급하기도 했는데, 3~4년 지나고 보면 그런 대목이 탁탁 걸린다”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큰 언급까지 포기할 생각은 없다. 그는 과거 김대중 정부에 대해, 태종을 닮아야 할 때 세종의 길을 걸으려 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는 더 박하다. 그는 “정적을 죽이는 게 개혁이면 누가 그것을 못하겠는가. 개혁이 어려운 것은 때로는 자기 팔을 도려내는 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지금 거대한 선거 혁명을 치르는 중이다. ‘기존 집권 세력은 안 된다’는 보통 사람들의 정서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어느 시기에나 가진 사람, 배운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자기 방어 능력이 있다. 국가는 유일한 소속 단체가 국가밖에 없는 사람들의 삶을 보살펴야 한다. 지금은 비정규직이나 힘없는 사람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가 앞으로 집중하고 싶은 인물이나 주제는 송시열에 의해 사문난적으로 몰렸던 윤휴와 강화학파이다. “너무 관심이 집중되어 자꾸 과부하가 걸린다”라며 그는 웃었다.(노순동기자)

시사인(07. 10. 22) 2007년 정조가 귀환하는 까닭은?

정조에게는 두 개의 8일이 있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숨이 끊어지는 데 걸린 8일(1762년). 그로부터 30여 년 후. 재위 19년째인 을묘년(1795년)에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사갑(死甲)을 맞아 화성에 있는 사도세자의 묘 현륭원을 찾은 ‘을묘원행’의 8일. 전자는 사도세자의 8일, 후자는 정조의 8일이라고 부르자.

그동안 대중문화 영역에서 영-정조는 ‘사도세자의 8일’을 중심으로 배치되곤 했다. 그 틀에서 영조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넣어 죽인 비정한 아비였고, 혜경궁 홍씨는 그것을 애닯게 지켜보아야 했던 지어미였다. 그들이 주인공인 드라마 속에서 정조는 항상 조연에 머물렀다. 아비의 비극적인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던 어린 왕손, 혹은 신하의 충직한 보필 덕에 가까스로 왕위에 오르는 위태로운 군주가 정조에게 맡겨진 배역이었다. 단적으로 문화방송의 조선실록 시리즈 ‘조선왕조오백년’에서 영?정조 시대의 타이틀은 혜경궁 홍씨의 동명 저서에서 따온 <한중록>이었다.

2007년, 정조는 대중문화 영역에서 가장 강력한 아이콘이 되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정조 혹은 정조 시대와 관련된 책들이 약속이나 한 듯 쏟아져나왔다. 명패도 케케묵은 정조가 아니라, 이산이라는 자연인의 이름으로 귀환했다. 가장 화려한 귀환은 MBC 창사 46주년 기념 드라마 <이산>이다. 여기에 소설 <이산>, 정조  시대에 천착한 소설가 김탁환의 3부작 완결판 <열하광인>, 정조 시대 천재 화가였던 김홍도와 신윤복의 대결을 그린 이정명 소설 <비밀의 화원>, 이상우 소설 <정조대왕 이산>, 강신재 소설 <이산 정조대왕>이 가세했다. 7월에 출간된 이상우(*이상각) <조선의 이노베이터 이산 정조대왕>도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소설과 드라마, 만화책까지 정조 '붐'

‘사도세자의 8일’이 과거 숱한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듯 ‘정조의 8일’에 주목하는 작품도 늘었다. 대표 작품이 올해 11월 케이블 CGV에서 선보일 10부작 미스터리 시리즈 <정조 암살 미스터리 8일>이다. 정조가 사도세자의 묘인 현륭원에 행차한 을묘원행을 소재로, 원행 8일 동안 정조 암살 기도가 벌어진다는 설정 아래 이를 막아내기 위한 정약용의 활약이 긴박하게 펼쳐진다. 지난해 출간된 오세영의 소설 <원행>이 원작이다. 이인화의 화제의 소설 <영원한 제국>을 영화로 만들었던 박종원 감독이 연출을 맡아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만화책도 가세했다. 베스트셀러 인기 시리즈물인 ‘노빈손 시리즈’가 한국사 시리즈를 선보이는데, 첫 책이 <노빈손, 정조대왕의 암살을 막아라>이다. 노빈손이 정약용의 제자가 되어 정조 대왕의 암살을 막기 위해 활약한다는, 파격적인 내용이 아동용 만화책으로까지 나온 것이다. 흡사 정조와 정조가 아꼈던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이유로 정조와 대립했던 이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와 논쟁을 벌이는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9월17일부터 방영 중인 MBC 사극 <이산>은 공중파 사극다운 출발을 보이고 있다. 사도세자의 8일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춧돌을 놓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다. 우선, 사도세자가 기행을 일삼던 광인이라는 정보가 없다. 뒤주에 갇히기 전 상황에 집중하지도 않았다. 그냥 뒤주에서 출발해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는 이어 정조의 즉위부터 치세, 그리고 죽음까지 온전히 이산의 삶을 기록하게 된다. <이산> 연출을 맡은 이병훈 프로듀서는 “홍국영의 활약상을 다루면서 정조의 즉위기를 망라했으나, 정조를 제대로 조명할 기회는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제대로 군주 노릇을 해야 했던 이산의 인간적 번민과 치적을 비로소 다룰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했다(82쪽 상자 기사 참조).



1795년 을묘원행으로 기록되고 있는 ‘정조의  8일’은 왜 중요한가. 정조는 간난신고 끝에 왕위에 오른 뒤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천명해 정적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선언이 힘을 얻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재위 기간 어렵사리 시도한 숱한 개혁의 결과와 그 주체들을 한자리에서 과시하는 행사가 바로 을묘원행이었던 것이다.



사학자  한영우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8일간의 화성 행차는 화성을 무대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모든 친위 세력을 하나로 묶어 세우는 정조의 거대한 정치 드라마였다”라고 평가했다(<정조의 화성 행차,  그 8일>). 그 시위는 한양에 잠복된 구 질서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혼신의 도전이기도 했다. 물론 그의 도전은 기득권 층의 은밀하고도 격렬한 반발을 불렀고, 정조의 급서 이후 급격한 반동의 물결이 밀려온다.



정조를 픽션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것은 1993년 출간된 이인화의 소설 <영원한 제국>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유산은 대중문화 영역에서 쉽게 계승자를 찾지 못했다. 대신 1990년대 말부터 영?정조 시기에 관한 연구 성과가 대중적인 저작의 형태로 봇물을 이루었다. 1998년 박광용 교수는 <영조와 정조의 나라>를 펴내면서 ‘조선의 진정한 큰 임금은 세종이 아니었다. 조선의 르네상스 76년을 이끈 두 대왕 영조와 정조, 그리고 그 시대를 움직인 사람들을 보라’고 선언하고 나섰다.



이후 유봉학, 박현모, 정옥자로 이어지는 전문  연구자들이 각각 역사와 정치, 국문학 영역에서 정조 시대의 의미를 대중서에 녹여내기 시작했다. 2000년 이후 쏟아진 이덕일의 시리즈 <송시열과 그의 나라>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사도세자의 고백> 등은, 정조 시대의 지형과 그의 사람들을 더욱 생생하게 복원시켰다.

그러니까 연구자들 사이에 정조의 현재적 의미에 대한 탐색이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활발히 시도되었고 일정 부분 합의가 끝난 것이다. 그런데 대중문화 영역에서는 뒤늦게 지금 그 관점에 기반한 생산물이 쏟아지고 있다. 문화평론가 이영미씨는 이 현상을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좌절되는 개혁에 대한 아쉬움이 드라마 속에서 아우성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83~84쪽 참조).

“개혁 군주로서의 이미지 획일적” 비판도

한편 개혁 군주 정조에 대한 유보 없는 찬사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최근 문화평론가 김헌식씨는 ‘정조는 과연 개혁적이었는가?’라는 기고 글을 통해 현재 정조에 대한 해석이 너무 획일적이라고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정조는 개혁을 추진한 사람으로만 평가할 수 있을까, 근본적 개혁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보면 결국 그는 왕권 강화를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되풀이한 것은 아닐까라는 문제의식이다.

김씨는 “<한성별곡-정> <이산> <정조 암살 미스터리>로 이어지는 세 편의 드라마가 모두 개혁 군주로서의 정조, 그리고 반개혁 세력에게 핍박을 당하는 구도를 설정하고 있지만, 그가 행한 획기적 정책들은 사실 강한 왕권이나 성리학적 질서를 회복하고자 한 복고적 행태일 수 있다”라고 말한다. 나아가 그는 정조가 암살된 것은 수구파의 책동이라기보다는 개혁파의 정조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 아닐까라는 파격적인 가설을 제시하기도 했다.



소설가 김탁환씨는 이런 메시지를 더 밀고 나간다. 그는 최근 <방각본 살인 사건> <열녀문의 비밀>에 이어 <열하광인>을 내놓아 이른바 정조 시대 3부작을 완결지었다. <열하광인>은 ‘개혁을 추진하던 정조가 왜 ‘문체반정’이라는 반동적 조처를 취하면서 돌연 절대 군주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김씨는 “혁신의 기치를 반성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 수구와 혁신에서의 양자 택일은 이미 낡은 도덕적 틀이다. 이제는 누구를 위한 혁신인가를 더 깊이 따져보아야 한다. 1792년 정조의 혁신이 있었고, 백탑파(금서가 된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중심으로 한 이들의 모임)의 혁신이 있었다. 둘은 오랫동안 한 몸인 듯했으나 결국 다른 미래를 꿈꾸었음이 분명해졌다”라고 말한다.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내내 주자의 마니아였고, 주자의 세계관으로 조선을 ‘품격 있는 나라’로 만들고 싶어했을 뿐이어서 어느 순간 근본 개혁을 꿈꾸며 자신을 지지했던 이들과 갈라설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정조는 결국 왕, 자신의 편일 뿐이었다”라고 단언한다.



<열하광인> 김탁환 "왕은 왕의 편일 뿐"

그는 자신의 작품이 현재적으로 읽히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정조의 눈부심은 정조 사후에 펼쳐진 19세기 초반의 엄청난 암흑으로 인한 부분이 크다. 한국 사회가 1987년 이후  2007년까지 20년 동안, 어쨌든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이룩한 것들이 한순간에 암흑으로 떨어지지는 않을까, 그래서 그 암흑 속에서 과거의 한때는 아름다웠노라고 한심하게 추억하게 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 작품을 썼다”라고 말했다.

정조가 펼친 개혁의 한계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이미 지적되어온 바이다. <영조와 정조의 나라>의 저자 박광용의 문제 의식을 보자. 그는 1998년 이미 “정조는 진보적 개혁을 꿈꾸면서 보수적 개혁을 추진했으며 이것이 정조 개혁의 한계이다”라고 지적했었다. 그러나 박 교수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조 개혁은 그 성과가 매우 컸다고 평가했다. 지식인들에게 급진적 개혁을 추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넣어줌으로써 그 지식인들의 업적이 오늘날 우리에게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다 함께 사는 복지사회’라는 방향을 지닌 다산 정약용의 저술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인간이 등장한다’는 연암 박지원의 소설 등을 예로 꼽았다. 

개혁이라는 말이 이미 염증과 양가 감정을 빚어내고 있는 지금, 대중은 대리 만족할 대상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철이 든 순간부터 죽음의 위협에 시달리면서 개혁을 시도하고, 변화를 꿈꾸던 숱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정조와 그의 시대에 매료되는 이들이 늘고 있다.(노순동기자) 

08. 0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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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관심도서는 단연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새물결, 2008)이다. 재작년부터 출간설이 나돌던 책이 드디어 나온 셈인데 여느 인문서들과 마찬가지로 '지각' 소개된 우리시대의 '고전'이다(그의 호모 사케르 3부작이 그렇다). 이미 지젝이 <실재의 사막에 온 것을 환영하네!>에서 이 책에 한 장을 할애하고 있고 내가 '호모 사케르'란 말을 처음 접한 것도 지젝을 통해서였다(바디우와 아감벤 등이 지젝이 높이 평가하는 동시대 철학자이다). 이제 아감벤의 음울한 시대 진단을 본격적으로 음미해볼 시간이 되었다. 유사 '호모 사케르'로서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경향신문(08. 02. 23) 우리모두의 자화상…호모 사케르 진단

호모 사케르(Homo Sacer)? 신성한 인간?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연작 저서 제목인 호모 사케르는 ‘어떠한 시민적 권리도 없어 종교의 희생 제물로도 삼을 수 없는 로마시대의 특정 인간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아감벤은 이를 “중세의 ‘늑대 인간’, 홉스 시대의 ‘재판에 회부되지 않는’ 어떤 유형의 범죄자들, 나아가 슈미트가 ‘대지의 노모스’에서 논의했던 국제법 탄생 초기의 문제적 존재들이었던 해적들, 그리고 근대 생명정치의 출현 이후의 모든 ‘국민’(나치 수용소의 수감자들은 이들의 지위를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과 같은 수많은 ‘벌거벗은 생명들’”로까지 확장한다.

근대 주권국가의 역사는 이들 특수한 인간을 실정법의 법 테두리 안에 끌어들이는 과정, 예외가 곧 보편 규칙이 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9·11 사건 이후 국경을 넘어가는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인 테러범 취급을 받게 된 것이나, 바로 당신이, 당신의 아들·딸이 언제든 미등록 이주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는 현실이 그 점을 잘 보여준다. 호모 사케르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 된 것이다. 우리 모두는 ‘수용소’에 갇혀 실험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9·11 사건 이후 뉴욕대학의 강의 요청도 거절하며 미국에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있는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연작의 첫권 ‘주권권력과 벌거벗은 생명’이 처음으로 번역됐다. 새물결 출판사가 기획한 ‘What's up?’ 총서 시리즈의 첫번째 책이다(*세번째 책이다). 번역자 박진우씨(파리5대학 박사과정)는 “우리 시대 사유의 근본 범주를 재설정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에 해당할 한 권의 문제작”이라고 했다. 계속해서 호모 사케르 3부작을 모두 번역할 예정이다. 

이 책과 함께 번역된 책은 알랭 바디우의 ‘사도 바울’과 슬라보예 지젝의 ‘전체주의가 어쨌다구?’이다. 90년대 초반 학번인 현성환(파리8대학 박사과정)·한보희(연세대 박사과정)씨가 각각 옮겼다(*이미 소개한 바 있다. <사도 바울>에 대한 리뷰는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71469.html 참조). 이번 총서를 공동으로 기획하고 있는 이들 젊은 연구자들은 “그간 학계와 사회는 소위 386세대의 문제의식에 의해 전방위적으로 지배돼 왔다”면서 “87년이라는 한 가지 역사적 사건에만 과잉 동일시돼 있는 앞 세대와 달리 97체제 그리고 지식인 사회의 죽음을 있는 그대로 횡단하면서 시대적 고민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그간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국제적 흐름을 소개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동시에 우리 현실에 대한 새로운 글쓰기를 부단히 시도하겠다고 밝혔다.(손제민기자)

08. 02. 23.

P.S. <호모 사케르>에 대한 언론의 본격적인 리뷰는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아감벤'이란 이름이 생소한 분은 대학신문의 기사를 옮겨온 '아감벤과 호모 사케르의 시대'(http://blog.aladin.co.kr/mramor/1577009)를 우선 참조할 수 있겠고, 근처에 도서관에 있는 분들은 계간 <문학과사회>(2004년 가을호)에 실린 기획평론 '예외성의 철학: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통치권력과 벌거숭이 삶>'까지도 챙겨볼 수 있겠다(온라인에서 읽어보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가장 좋은 건 번역본 <호모 사케르>를 들고 일단 몇 페이지를 읽어보는 것이다. 얼핏 읽어본 바로는 기대 이상의 번역이며 철학적 사유의 힘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를 경탄과 함께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아, 아감벤!..

P.S.2. '호모 사케르 3부작'은 네 권의 책으로 구성돼 있는데, 모두 국역될 예정인 것으로 안다. <예외상태. 호모 사케르 2-1>, <왕국과 영광: 경제와 통치의 신학적 계보학을 위하여. 호모 사케르 2-2>, <아우슈비츠의 유산: 기록과 증언. 호모 사케르3>이 이어지는 책들이다.   

유튜브에는 아감벤의 강의도 여럿 올라와 있다. '왕국과 영광'('The Power and the Glory) 강의 같은 것이 대표적인데(http://www.youtube.com/watch?v=jz7dxevH7Rs 등), 영어로 강의하는 아감벤의 육성을 직접 들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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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2-23 18:54   좋아요 0 | URL
이 시리즈 3권이 모두 관심이 갑니다....

로쟈 2008-02-23 21:49   좋아요 0 | URL
네 모두 번역될 예정인 것으로 압니다...

드팀전 2008-02-25 12:23   좋아요 0 | URL
ㅋㅋ..아감벤의 3부작이 아니구요..ㅋㅋ what's up 시리즈요..
그나저나 바탕이 얇아서 어려울 듯 보여요..^^

로쟈 2008-02-25 16:39   좋아요 0 | URL
짐작엔 지젝의 책이 가장 쉽습니다.^^

2008-02-28 2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2-28 23:11   좋아요 0 | URL
명불허전인 철학자들이 있지요.^^
 

일간지 사회면이 매일같이 사건, 사고 기사로 얼룩지고 있다. 오늘/내일자 신문들이 다루고 있는 한 가지 기사는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내정자의 표절 논란인데, 기사를 몇 개 훑어보다가 '학계의 상례'와 '학계의 정설'이 서로 상반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흥미롭기에 자료삼아 스크랩해놓는다(*제자와 공동연구한 논문을 자기 이름으로만 발표한 또 다른 '표절' 의혹 사례는 http://www.segye.com/Articles/News/Politics/Article.asp?aid=20080222002145&ctg1=01&ctg2=00&subctg1=01&subctg2=00&cid=0101010100000&dataid= 참조).

한겨레(08. 02. 22) 학계 “자료출처 밝히지 않으면 표절”

박미석(사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내정자에 대해 논문 표절 논란이 일고 있다. 숙명여대 교수인 박 내정자가 2002년 8월 <대한가정학회지> 제40권 8호에 발표한 ‘가정 정보화가 주부의 가정관리 능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이 제자 ㅅ씨가 2001년 12월 숙대 석사학위 논문으로 낸 ‘주부의 정보사회화가 가정관리 능력에 미치는 영향’이란 논문을 표절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의혹의 핵심은, 박 내정자가 제자 논문에 쓰인 설문조사 자료를 활용했다는 점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점이다. 박 내정자는 ㅅ씨가 2001년 2월28일~3월20일 서울과 경기 성남, 부산에 사는 주부 500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자료를 똑같이 활용했지만, ㅅ씨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박 내정자의 논문만 보면, 그가 혼자서 설문조사를 설계·진행하고 분석한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박 내정자는 21일 “자료의 수집과정이나 본인 지도하에 이뤄진 선행 연구에 대해 명확히 밝히지 않은 것은 연구 윤리에 비춰 보면 부적절했다”고 말했다.

두 논문은 제목, 연구 목적, 결론이 매우 비슷하다. 또 ㅅ씨가 “가정 정보화라는 새로운 조류는 … 다양한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다”고 쓴 문장을, 박씨는 한 차례는 똑같이 쓰고 또 한 차례는 조금 수정해 썼다. 제자 논문을 발췌해 쓰다가 실수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이렇게 박 내정자 논문엔 ㅅ씨 논문과 똑같거나 비슷한 문장이 60개 가량 발견됐다. 이 점에 대해서도 박 내정자는 “논문의 취지가 비슷하다 보니, 일부 유사한 표현이 중복되는 점에 대해 송구스럽다”는 뜻을 밝혔다고 이동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변인이 전했다.

그러나 박 내정자의 논문을 학회지에 실은 대한가정학회는 이날 “동일한 논문 자료를 활용한 것은 사실이나, 공동 연구자들은 이 자료를 사용해서 논문을 쓸 수 있다”며 “두 논문은 연구 문제, 연구 모형에 있어 내용을 달리해 ‘다른 논문’이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박 내정자도 “같은 자료를 바탕으로 다른 방법으로 사용해 심화된 연구 결과가 나온다면 다른 논문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학계의 상례”라며 “대한가정학회가 (두 논문이) 다른 논문이라고 판단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말했다. 자료 출처를 명시하지 않은 점은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두 논문이 다른 논문이라는 가정학회 의견에 기대어 표절 의혹을 벗으려 하는 의도로 풀이된다.

학계에선 석·박사학위 논문은 지도교수와 논문 작성자의 공동 성과로 간주한다. 하지만 지도교수가 제자와 공동 저자 형식이 아니라 자기 이름으로만 논문을 학술지에 실으면서 자료 출처를 명시하지 않으면 표절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당선인 비서실에서 논문 내용을 검토한 결과, 일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것이 사회정책수석 직무를 수행하는 데 결정적 결격 사유는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김소연 황준범 기자)

국민일보(08. 02. 21) 박미석 사회정책수석 내정자, 제자논문 표절의혹

숙명여대 교수인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내정자가 자신이 지도교수를 맡았던 제자의 논문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20일 제기됐다. 이에 따라 이명박 당선인측의 인사 검증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박 내정자는 2002년 8월 대한가정학회지 제40권 8호에 ‘가정정보화가 주부의 가정관리능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앞서 박 내정자의 제자 A씨는 2002년 2월 숙대에서 ‘주부의 정보사회화가 가정관리능력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불과 6개월 뒤 제자와 비슷한 제목의 논문을 학회지에 제출한 것이다.

두 논문을 비교한 결과, 참고문헌을 제외하고 13쪽 분량의 박 내정자 논문에서 A씨 논문과 똑같거나 비슷한 문장이 최소 60개 이상인 것으로 집계됐다. 연구목적도 비슷했다. A씨는 “정보통신기기 및 인터넷 활용능력과 주부의 가정관리능력의 관련성을 밝혀…주부의 정보활용에 대한 동기유발을 촉진시키고”라고 썼다. 박 내정자는 “정보활용도와 가정관리능력의 관련성을 밝혀…주부의 정보활용에 대한 동기유발을 촉진시키고”라고 서술했다. 결론도 역시 유사했다.

결정적으로 표절 의혹을 받는 이유는 동일한 것으로 보이는 ‘조사대상과 자료수집’ 때문이다. 조사 시점과 대상이 모두 일치했다. 또 박 내정자가 논문에서 사용한 표 6개 중 4개도 A씨 논문 내용과 거의 동일하거나 유사했다. 그러나 박 내정자는 자신 논문의 참고문헌이나 각주 등에서 A씨 논문을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현재 ‘표절 가이드라인’ 기초연구를 마무리했다. 출처없이 6개 단어 이상이 연속적으로 일치하는 경우, 출처를 밝히지 않고 데이터나 조사방법이 동일하거나 유사한 경우 등을 표절로 규정하고 있다. 김기수 변호사는 “표절에 대한 각종 판단 기준에 비춰볼 때, 표절로 볼 근거가 있으며 이는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박 내정자는 “제자의 데이터를 활용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연구비를 줄이기 위해 같은 데이터를 활용하기도 한다”며 “하지만 분명히 다른 연구방법론을 적용해 쓴 논문”이라고 말했다.(하윤해 안의근 기자)

국민일보(08. 02. 21) 60여곳에 판박이 문장… 결론도 비슷

박미석 신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비서관 내정자의 논문이 표절 의혹을 받는 이유는 크게 여섯 가지다. 그러나 박 내정자는 제자의 논문을 전혀 언급하지 않아 표절 의혹을 부추겼다. 한 대학교수는 “박 내정자가 A씨의 논문 지도교수였기 때문에 논문의 주제와 내용, 조사방법까지 다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그런 상태에서 유사한 논문을 제자에 대한 어떤 인용없이 발표한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① 제목과 연구 목적이 비슷=어순만 조금 바꿨을 뿐 두 논문의 제목이 매우 유사하다. 사실상 같은 뜻으로 해석된다. 연구목적도 비슷하고, 제자보다 6개월 뒤에 비슷한 논문을 낸 것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다.

② 너무 많은 동일 또는 유사 문장=A씨 논문 9쪽에 있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여성 특히 주부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가사 자동화(Home Automation)를 들 수 있다’는 문장은 박 내정자 논문 5쪽에 실려 있다. 이처럼 비슷하거나 동일한 문장이 60개를 넘었다. 박 내정자가 A씨 논문의 각기 다른 페이지에 실려있는 내용들을 한 문장, 혹은 두 문장씩 끌어다 합친 부분도 발견됐다.

③ 동일한 것으로 보이는 조사방법=첫째, 조사기간이 2001년 2월28일부터 3월20일까지로 같다. 둘째, 조사 샘플도 서울과 경기 성남, 부산에 거주하는 주부 500명으로 동일하다. 셋째, 회수된 설문지 역시 421부로 같다. 다만 A씨는 421부 중 부실기재된 17부를 제외한 404부를, 박 내정자는 421부중 자녀 1명 이상인 주부 338명의 자료를 각각 최종분석자료로 활용한 점만 다를 뿐이다. 같은 데이터를 공유했다는 의혹이 일만한 상황이다.

④ 표 6개중 4개가 유사=박 내정자의 논문에 있는 ‘조사대상자의 사회인구학적 특성’, ‘인터넷 사용행태’ 등 4개의 표는 A씨 논문에 있는 표와 매우 비슷하다.

⑤ 결론도 비슷=박 내정자는 정보 유용성의 홍보와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 주부들간의 정보격차를 줄일 수 있는 노력 등을 결론으로 제시했다. 또 가정정보화 수준을 측정하기 위한 정확한 척도 모색도 강조했다. A씨 역시 이런 내용들을 자신의 논문에 썼다.

⑥ 제자 논문 문장 중복도 있어=특이한 점도 발견됐다. A씨는 자신의 논문 8쪽에 ‘가정정보화라는 새로운 조류는…다양한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다’라고 썼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문장이 박 내정자 논문 2쪽과 3쪽에 있다. 이런 경우는 또 발견됐다. A씨는 논문 15∼16쪽에 걸쳐 있는 한 문장 역시 박 내정자 논문 2쪽과 6쪽에 있다. 옮겨 쓰다 실수로 2번 쓴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이다.

제자 논문과 다른 부분은 박 내정자 논문 전체 13쪽중 11쪽 일부와 12쪽 일부에 있는 ‘경로분석 결과’, ‘모형적합도’, ‘경로모형’ 등의 내용이다. 박 내정자가 A씨의 연구방법론을 지도하는 등 논문 작성에 큰 도움을 줬다 하더라도, 표절 의혹을 피해가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두 논문이 비슷해도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다. 학위 논문의 저작권자는 집필한 학생이며, 비슷한 데이터와 문장을 출처없이 사용하는 것은 표절로 보는게 학계의 정설이다.(하윤해 안의근 기자)

08. 02. 21.

P.S. 정리하면, "같은 자료를 바탕으로 다른 방법으로 사용해 심화된 연구 결과가 나온다면 다른 논문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학계의 상례”이다. 그리고 동시에 "비슷한 데이터와 문장을 출처없이 사용하는 것은 표절로 보는게 학계의 정설"이다. 이 두 가지 주장을 어떻게 양립시킬 수 있을까? 비슷한 데이터와 문장을 출처없이 사용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심화된 연구 결과'로 간주하면 된다.

가령 "가장 절실한 것은 주부들이 지금까지의 소극적인 마인드에서 벗어나 시대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받아드리는 변화된 자세라고 생각된다."라는 결론과 "아울러 주부들은 지금까지의 소극적인 마인드에서 벗어나 시대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변화된 자세가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결론이 거의 유사해 보이지만, 그건 '소극적인 마인드'로 읽은 탓이다(어여 우리 마음의 전봇대를 뽑아내야 한다!).

대학원생은 고작 '생각된다'라고 희미한 결론을 내린데 반해서 우리 교수님은 '요구된다'라고 강하게 못박았다. 이 얼마나 적극적인 자세이며 변화에 대한 순도 높은 갈망인가! 대한가정학회가 두 논문이 서로 '다른 논문'이라고 판단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21일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내정자의 논문표절 의혹과 관련해 사회정책수석 직무수행에 결정적 결격사유는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이 정도 일은 물론 이 당선자에겐 깜도 안되는 일일 터이다.) 우리도 어서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어야겠다. 동료 주부들이여, 정신차리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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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08-02-22 01:34   좋아요 0 | URL
표절이라뇨! 남의 “독창적인” 연구성과를 표절로 모는 것은 대체 어느 나라 공작정치입니까?

본인이 판단컨대, 상기 내정자의 논문은 학문적 “독창성”과 “심화된 연구 결과”를 도출했다는 점이 적극 인정됩니다.

왜인즉슨, 시대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받아드리는 자세”와 “받아들이는 자세” 사이에는 엄청난 차별성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즉 A씨의“받아드리는 자세”는 “받아서” 남에게, 예컨대 상전이나 교수님께 “드리는” 자세입니다. 이에 반해 내정자의 “받아들이는 자세는” 남한테, 예컨대 쫄이나 제자한테 “받아서” 내 주머니나 내 안방으로 “들이는” 자세입니다. 따라서 두 자세 사이에는 근원적이고도 양립할 수 없는 학문적/철학적/경제적/정치적 차별성이 존재/내재/선재합니다. 전자의 개념을 “상납”이라고 하고, 후자의 개념은 “착복” 혹은 “횡령”이나 “갈취”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국가공무원학”에서 두 개념들 간에는 양립가능성이 전무하다는 게 학계의 상례이자 정설입니다. 따라서 내정자 분께서는 아주 독창적으로 새로운 “시대의 흐름”의 개념을 미리 간파하고 주창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논증에 비춰볼 때, 상기의 내정자의 논문을 표절로 추단하는 것은 깜도 안 되는 일일 터입니다.


로쟈 2008-02-22 12:59   좋아요 0 | URL
지승호와의 대담에서 우석훈 왈,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에겐 아직 학자라고 하면 깜박 죽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더 당해봐야 합니다. 유럽 같으면 '교수'라고 해봐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해서 표절의 '순기능'도 인정해줘야겠습니다. 제값의 포지셔닝 과정이라고 봐야겠죠...
 

아침에 전철에서 읽은 건 최근 <백철 연구>(소명출판, 2008)를 출간한 국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와의 인터뷰 기사이다.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련던 '한국문학의 연속성'이란 글이 내가 접한 최초의 글인데, 곧이어 대학에 들어와 강의실에서 글의 '저자'를 대면하고서 묘한 감흥을 느꼈던 기억이 새롭다(나는 그의 강의를 네댓 학기 동안 들었다). 20년의 세월은 희끗한 백발을 무성한 백발로 바꾸어놓았지만 이 노(老)비평가/문학사가의 정신만은 아직 '빳빳하다'는 걸 기사에서 확인하게 된다(더불어 그가 젊은 시절 '비틀스'를 좋아했다는 사실도!). 부드러워지려는 정신을 다시 곧추세운다...  

경향신문(08. 02. 21) “향후 100년 문학의 화두는 ‘우포늪에서 우주 상상하기’”

한국문학의 파수꾼, 문학의 구도자…. 이런 말들을 떠올리면서 지난 18일 문학평론가인 김윤식 명지대 석좌교수(72)의 댁을 찾아갔다. 베란다 너머로 한강과 멀리 관악산이 한 눈에 보이는 용산의 한 고층아파트. 차분한 독서와 사색의 시간들이 물처럼 고여있는 김윤식 교수의 서재에 발을 들여놓았다. 예상했던 것처럼 책이 많다. 마주 보는 양쪽 벽이 책장이다. 창가 쪽으로 책상이 놓여있는데 그 옆에는 자주 보는 책을 꽂아놓은 낮은 책꽂이가 하나 더 있고, 책상 앞뒤로도 책이 여러 겹으로 차곡차곡 쌓여있다. 겉장에 보풀이 일어난 누런 책부터 빳빳한 신간까지. 책상 위에는 수백장의 하얀 원고지가 놓여있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에 대한 원고를 쓰던 중이라고 했다.

“컴퓨터로 글 쓰는 걸 배우다가 포기했습니다. 그나마 세로로 쓰던 걸 가로로 바꾼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그의 저서가 120여권에 이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 많은 원고를 모조리 육필로 작성한 것이다. 그는 최남선, 이광수에서 이상, 임화, 김동인, 염상섭으로 이어지는 근대문학사 연구에서부터 다달이 발행되는 문학잡지의 소설 월평까지 폭넓은 글을 써왔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문단 바깥의 사람들은 짐작하기 어렵다.

처음 소설을 쓰는 풋내기 작가의 글까지 정성스럽게 읽고 분석하는, 소위 ‘현장비평’이라는 것은 흔히 젊은 평론가들의 몫으로 생각돼 왔다. 평론가로 등단을 하고, 박사학위를 받고, 현장비평을 통해 감을 익히고, 대학에 자리를 잡으면 조금씩 현장비평과 멀어지면서 자신의 전문 분야로 귀착되는 것이다. 작가는 창조하고 비평가는 그것을 해설한다는, 이상한 상하구조의 고정관념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일일이 작품을 챙겨읽는 것 자체가 귀찮거니와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엄청난 성실성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평소 그에게 묻고 싶었던 두 가지 질문부터 던졌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책을 낼 수 있었는지, 어떻게 그렇게 꾸준하게 문학현장을 지켜올 수 있었는지. “내 독창적인 글은 써본 적이 없습니다. 남의 글을 갖다가 열심히 읽고 해설을 열심히 썼는데 그것이 책으로 나와있을 뿐입니다. 왜 네 글을 못썼느냐고 묻는다면 거기 대해서는 역량이 없고 생각도 없었다는 게 솔직한 마음일 거예요. 문학연구와 현장비평은 이래요. 거시적 글쓰기와 미시적 글쓰기인데 이 두 가지를 왔다갔다 하는 것 자체가 삶의 활력소입니다. 어느 한쪽에 빠지면 오염되고 부패하고 폐쇄되고 말았을 겁니다. 지속성의 근거가 거기서 나오는 것이지요.”



김윤식 교수의 문학인생 중심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원조로 일컬어지는 문학평론가 게오르그 루카치가 있다. 그가 자신의 문학 입문과정을 들려주었다. “문학을 하겠다고 대학에 왔는데 당시 대학이란 게 과학으로서의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었습니다. 국어국문학과라고 하면 국어학과 고전문학으로 나눠지는데 국어학은 순경음, 반치음을 가르치고 고전문학은 아래 아가 어떻게 변화됐는지를 가르치더군요. 대학 다니는 게 흥미가 없어 군대에 다녀오니 복학생이 됐고 친구가 없어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학문 중 어떤 학문이 가장 그럴 법하냐는 걸 고민했지요. 헤겔과 마르크스의 책을 뒤적이다가 루카치란 인물을 발견했습니다.”

‘복되도다, 그 시대는. 창공의 별이 우리가 갈 수 있고 가야 할 길을 훤히 비춰주는 시대는 복되도다.’ 그는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의 유명한 첫 문장을 읊었다. 1970~80년대 그의 수업을 들었던 숱한 제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고, 문학의 길로 접어들게 했던 열정적인 명강의의 일부가 재현되는 듯했다.

“루카치는 자본주의 시대가 오면서 나아갈 길을 잃어버린 인간들에게 소설이 그 길을 가르쳐준다고 했지요. 작가들은 의식뿐 아니라 무의식까지 동원해 소설을 쓰고, 거기 등장하는 문제적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상실한 유토피아를 찾기 위해 방황을 계속하는 겁니다. 나는 그들의 방황에 동참함으로써 인류사회의 나아갈 길을 공부하고 싶어서 소설을 읽고 문학을 연구했어요. 얼마나 가슴 벅차고 멋진 일입니까.”

그는 70년 하버드 옌칭 장학금을 받아서 일본으로 유학을 갔을 때 도쿄대 정문앞 서점에서 루카치의 책을 구입했다고 한다. 사회주의의 ㅅ자도 꺼내기 어렵던 시절이었다. 그후 “대단히 많은 시간을 루카치를 읽고 해석하면서 보냈다”고 한다. 사회주의 사상가의 책을 읽고 학생들에게 강의했던 일로 인해 사상을 의심받고 과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지금도 루카치 전집은 그의 서가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글은 벼랑 끝에서 나오는 것…하찮은 글은 없어”

루카치가 설파한 소설의 이론처럼 군부독재가 계속되던 정치적 암흑기에 예민한 촉수로 우리 사회의 향방을 짚어낸 것은 소설이었다. 그는 현장에서 발표되는 수많은 소설 속에서, 그리고 현대 한국사회의 모습을 만들어낸 모태인 근대시기 작가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역사에 동참하는 길을 선택했다. 앞서 말한 거시적, 미시적 글쓰기에서처럼 근대문학사와 현장비평이라는 영역은 과거와 현재로 구분되는 별개의 실체가 아니라 서로 이끌고 겹쳐지는 뫼비우스의 띠이다.



일제 식민사관 극복이 눈앞의 과제였던 60년대에 학문의 길로 접어든 그는 문학평론가인 고 김현과 더불어 우리 근대문학의 시작을 영·정조까지 확대 해석한 ‘한국문학사’를 내놓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설프다”고 했지만 역사학계의 고 김용섭 연세대 교수가 ‘조선농업경제사’에서 증명한 자본주의 맹아론이 식민지 근대화론에 맞서 자생적 근대화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던 당시의 흥분과 열정이 그의 설명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때는 인문학에 목적이 있었어요. 되찾은 나라를 다시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학문적인 근거를 제공한다는 것이지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전성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도 소비사회로 접어든 오늘날, 너무 잘 살기 때문에 뭘 지키고 이뤄야 할 가치가 없는 때, 인문학이 위기에 처하는 건 당연하지요. 국가에서 연구비 많이 준다고 벗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문학에서도 인류사회의 나아갈 바를 암시하는 문제적 인간들이 활동하는 소설의 시대는 지나갔다. 과거의 인물들이 사회적, 역사적 존재였다면 지금의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이다. 그는 자신이 특별히 좋아하는 두 작가, 이청준과 윤대녕에게서 그러한 세상의 흐름과 변화를 읽었다.



그에게 이청준은 사르트르에게 카뮈가 가졌던 것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다. “사르트르는 ‘이럴 때 카뮈는 어떻게 생각했을까’라고 물었다는데 나는 ‘이청준이 이런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하는 게 늘 궁금했고,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었다”고 말한다. 이청준의 매력을 묻자 “그 양반이 광주일고의 천재였는데 평생 아무 일도 안하고 소설만 썼단 말이지”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이청준 역시 문학의 길을 ‘칠흑같이 어두운 밤, 산 속에서 길 찾아가기’에 비유하곤 했다. 그런 면에서 두 사람이 통할 만도 하다.

90년대에 혜성같이 등장한 윤대녕은 ‘은어낚시통신’이란 작품으로 번뜩이는 영감을 주었다. “그것은 사회적, 역사적 조건 때문에 고뇌하고 망가지던 인간들이 생물학적 상상력으로 방향을 바꾸는 순간이며 인간은 벌레다, 연어다, 메뚜기다라고 선언한 작품”이었다면서 요즘도 그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한다.

김윤식 교수의 하루는 책읽기와 글쓰기로 채워진다. 오전 8시부터 정오나 오후 1시까지는 학문적인 글을 쓴다. 오후에는 산책을 하거나 볼일을 보고, 저녁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과 잡지를 읽는다. 눈이 나빠져서 텔레비전은 보지 않고 주로 라디오를 듣는다. 침실에도, 욕실에도, 서재에도, 식탁 위에도 라디오가 놓여있다. 한달에 한번씩 시내 대형서점에 나가 문학잡지를 사들이고 서울대 도서관에 가서 문학사 관련 자료를 찾는다. 그는 “최인훈이 오랜만에 단편을 썼다면 나는 그걸 집으로 가져오지 않고 명동성당에 들고 가서 읽는다. 그것이 애써 작품을 쓴 작가에 대한 예의다”라고 말한다.

평생 글을 써온 그이지만 글쓰기란 언제나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니 편하고 배부르고 안정되면 글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렇다면 선생은 왜 서울대 교수이면서, 명망 높은 문학평론가이면서 계속 글을 써올 수 있었는지 묻고 싶어졌다. “나는 서울대에 있었지만 마음은 서울대 교수가 아니었소. 유명한 문학평론가도 아니었고. 건강도 그렇고, 모든 문제들이…. 말이 안되지만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네.”

“부드러운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자기에게도, 남에게도 관대합니다. 패배한 사람들은 자기에게도, 남에게도 엄격합니다. 가파를 수밖에 없지요. 늘 패배한 사람, 가파른 사람, 그런 사람이 가능성 있는 사람 아닌가. 부드러운 사람은 끝장난 사람입니다.”

이어진 건 최근 김윤식 교수가 많이 부드럽고 친절해졌다는 문학동네의 소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이 좀 바뀐 것은 사실인 듯하다. 최근 그는 10년간 준비해온 ‘백철연구’(소명출판)라는 책을 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문학평론가 백철의 삶과 문학세계를 그린 평전 형식의 연구서이다. 백철은 우리 문학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존재다.



“흔히 백철만큼 글을 많이 쓴 사람도, 알맹이 없는 글을 쓴 사람도 없다는 말을 하지요. 그는 새로운 사조를 늘 받아들였고, 저널리즘적인 글쓰기를 했고, 계속 시류를 좇으면서 살아온 사람이지만, 우리 가운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겠소. 반드시 깊이있고 일관되게 살아온 삶만이 아름다운지 질문하게 된 것이지요.”

그는 백철이 국어학과 고전문학으로 양분된 국어국문학과에 현대문학이란 영역을 개척한 사람이며, 따라서 오늘날 대학의 현대문학 전공자들은 그에게 큰 빚을 진 셈이라고 말한다. 부제에 단 것처럼 ‘한없이 지루한 글쓰기, 참을 수 없이 조급한 글쓰기’를 병행하면서 문학사 연구와 현장비평을 해온 백철의 모습은 김윤식 교수 자신의 자화상처럼 비쳐지기도 한다.

그는 백철 연구서를 쓰면서 두 가지가 몹시 부러웠다고 한다. 첫째는 그가 천도교라는 배경을 가진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점이라고 한다. 두번째는 그의 인생에 늘 건강과 행운, 기회가 따랐다는 점이다. 품위없는 말인지 모르지만 잇따른 상처로 인해 처녀장가를 네 번이나 간 것도 부럽다는 농담까지 했다. 가파르고 치열한 인생만 가치있는 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김윤식 교수는 요즘 식민지시대를 다각적으로 바라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어마저 식민지로 삼으려고 했던 1942~45년에 집중적으로 쏟아진 일본어문학, 친일문학에 대한 연구성과를 내놓고 있다. 그런 그로서는 문인들의 친일행위에 대한 평가를 놓고 누구보다 깊게 고민했을 법하다.

“작년에 이런 일이 있었지요. 수필가 김소운의 아들이 아버지를 친일작가로 매도한 사람들에게 원망을 털어놓았지요. 그의 말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친일작가라는 것도 맞습니다. 일제에 협력한 글이 명백히 남아있으니까요. 그리고 그에게 은관문화훈장을 준 정부도 맞습니다. 그가 조선시를 일본어로 옮긴 건 큰 업적입니다.”

요컨대 민족국가의 정치적인 관점에서만 해석돼온 친일이란 문제는 생활사라는 큰 틀 속으로 흡수돼가고 있다는 것이다. 비로소 친일과 반일의 이분법을 벗어나 다각적인 사고와 조명이 가능해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동시에 국가 민족 표준어 등 근대의 큰 틀이 깨지면서 소설 역시 그 역할을 잃어버렸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요즘 젊은 세대의 상상력을 보십시오. 그리고 일본 만화를 보세요. 자기, 아니면 우주입니다. 소설이 담당해왔던 중간항인 역사나 사회는 빠져있지요. ‘창공의 별’은 사라지고 아주 유치한 동물적 단계와 아주 높은 우주적 단계만 남아있습니다.”

그는 최남선이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한 지 100주년인 올해를 지나 새로운 한국문학 100년을 내다보는 마당에 ‘소년을 우포늪(배한봉의 시집 제목)에 세워서 우주 가로지르기(비틀스의 노래 제목)’라는 화두를 던진다. 환경적 상상력, 우주적 상상력이 없이는 앞으로 100년을 헤쳐나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새로운 상상력을 현재의 소설에서 볼 수 있기에 그는 책을 덮지 않는다.



젊을 적, 그는 그룹 ‘비틀스’를 좋아했다. 그는 ‘비틀스’의 음악이 2차 세계대전 전승국의 자신만만하고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저항하는 방식이었다고 말한다. 유럽 패전국의 아버지들이 퇴폐와 절망, 실존주의로 빠져든 것과는 상반되는 지점이다. 그런 그가 좋아하는 비틀스의 노래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러시아 무인화물우주선에 실려 우주 공간에 울려퍼진다는 내용이 얼마전 발표됐다. 고희를 넘긴 김윤식 교수의 상상력 역시 루카치가 바라보던 창공의 별에서 그 배경인 우주로 옮아가고 있는 듯하다.

▲김윤식은 누구인가…한국 근대문학 비평의 거목

1936년 경남 진영에서 태어났다. 마산상업고등학교를 거쳐 59년 서울대 사범대학 국문과, 62년 서울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62년 월간 ‘현대문학’에 ‘문학사방법론 서설’이 추천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68년 서울대 교양학부 전임강사가 되었다. 76년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79년 서울대 인문대 교수가 되었다.

한국 근대문학에서 근대성의 의미를 실증주의적 연구방법으로 밝히는 데 주력하였으며, 특히 1920~30년대의 근대문학과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가지는 근대상의 의미를 밝히고자 했다. 연구대상은 시·소설·비평 등 모든 영역을 포함하며, 이광수·임화·이상·김남천·염상섭 등 수많은 문인의 작가론을 발표했다. 73년 김현과 공동으로 펴낸 ‘한국문학사 논고’에서는 기존의 문학사와는 달리 근대문학의 기점을 영·정조까지 거슬러 올라가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왜 '한국문학사'가 아니라 '한국문학사 논고'인지?). 소설을 중심으로 기성작가와 신인작가를 구별하지 않고 문학사적인 관점에서 분석하는 현장비평도 활발하게 펼쳐왔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 ‘이광수와 그의 시대’, ‘염상섭 연구’, ‘임화 연구’, ‘이상문학텍스트연구’, ‘오늘의 작가 오늘의 작품’, ‘일제말기 한국작가의 일본어 글쓰기론’ 등이 있다. 대한민국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요산문학상, 대산문학상, 만해대상 등을 수상했다.(한윤정기자)

08. 02. 21.

P.S. 물론 이제 오랫만에 들어야 할 노래는 비틀스의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이다(http://www.youtube.com/watch?v=Rj-4t9drUlM).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아무것도 나의 세계를 변하게 할 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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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주적 상상력
    from True&Monster 2008-02-22 00:26 
    “요즘 젊은 세대의 상상력을 보십시오. 그리고 일본 만화를 보세요. 자기, 아니면 우주입니다. 소설이 담당해왔던 중간항인 역사나 사회는 빠져있지요. ‘창공의 별’은 사라지고 아주 유치한 동물적 단계와 아주 높은 우주적 단계만 남아있습니다.” - 김윤식 '우주적인 차원에서 볼 때 우리는 다 먼지에 불과해'라고 쉽게 나불거리는 일본 만화 속의 캐릭터들은 결국, 자신의 유아적인 욕망을 충족시켜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냉소해버린다. - 노..
 
 
로쟈 2008-02-22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이 담당해왔던 중간항인 역사나 사회가 빠진, 자기 아니면 우주인 세계는 달리 말하면 병리적인 세계죠(혹은 다른 세계). 얼마간의 아이러니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저는 읽습니다...

yoonakim 2008-02-22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이 대뜸 떠오르는 인상적인 대목이었습니다. 자기와 우주 밖에 없는 이상한 세상, 웅크린 소녀가 핸드폰을 움켜쥐고 우주 공간에 떠있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명확한거 하나도 없고 일주일이 넘는 시간 차를 두고 지구의 남자친구와 문자교환을 합니다. 시간 차는 일주일, 이주일, 한달, 일년 그렇게 길어져 가고...재미있죠?

로쟈 2008-02-22 12:54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제가 만화를 잘 안 봅니다.^^

사량 2008-02-22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김용섭 교수가 타계했나요? "역사학계의 고 김용섭 연세대 교수"라는 표현이 있어서요. 뉴스들을 뒤져보긴 했는데 확인을 못하겠네요. ㅜㅜ

로쟈 2008-02-22 12:54   좋아요 0 | URL
타계하셨다면 아주 최근일 텐데, 저도 부고는 보지 못했습니다...

canon 2008-02-22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윤식은 누구인가…이명원에 의해 표절 들통난 사람.

로쟈 2008-02-23 01:30   좋아요 0 | URL
먹을 것도 없는 상을 차리면서 그릇마저 깨먹는 이들보다야 윗길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