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21에 실은 출판기사를 옮겨놓는다. 최근 부쩍 많이 출간된 '글쓰기' 책들에 대한 인상을 적고 있는데, 아이템 자체는 내가 고른 것이 아니다. 어렵게 작성하진 않았지만 원고를 쓰는 과정에서 몇 가지 해프닝이 생기는 바람에 마감을 겨우겨우 맞추었다. 글쓰기 책을 몇 권 훑어보아도 글쓰기 자체는 늘지 않는다는 걸 다시 확인한 글이기도 하다...

한겨레21(08. 12. 15)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

글쓰기를 권하는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글쓰기’ 자체는 전혀 새로울 게 없지만 그 글쓰기의 주체를 ‘누구나’로 전제한다는 점이 새롭다. 예전의 ‘작문론’이나 시․소설 작법 등과는 성격이 좀 다른 것이다. 바야흐로 “누구나 글을 쓰고, 써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이 새로운 시대적 조건을 만들어낸 것은 인터넷이다. 온라인상의 블로그, 미니홈피, 카페와 클럽, 그리고 토론광장 등 글쓰기의 공간은 차고 넘친다. 그에 따라 글쓰기에 대한 유혹 또한 전면적이며 전방위적이다.

대중문화평론가 김봉석의 <전방위 글쓰기>(바다출판사 펴냄)의 착안점이 그렇다. 인터넷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일방적인 관계를 무너뜨렸다는 것. “따라서 21세기의 글쓰기는 특정한 과정을 거쳐 작가가 된 사람들만의 전유물에서 벗어났다.” 비록 글쓰기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구라 하더라도 그 욕구의 현실화는 멀티미디어 시대, 미디어믹스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누구라도 글을 쓸 수 있게 된 시대, 이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좀더 잘 쓸 수 있을까다. 글쓰기가 타자와의 소통이고 유희라면, 더 잘 소통하고 더 잘 즐기는 법을 아는 것이 유익하지 않겠는가.

<전방위 글쓰기>는 이미 다방면의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현장에서 ‘전방위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는 저자의 노하우를 담고 있다. 글쓰기의 필수 교양 세 가지로 철학적 사고와 경제 상식, 그리고 역사에 대한 관점을 드는 것을 ‘저자만의 노하우’라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대중문학에서 영화, TV, 만화, 음악, 시사비평까지 다루면서 친절하게 요령을 짚어주는 것은 저자만의 강점이다. 그러한 요령과 비법을 습득한 뒤에 자기만의 ‘색다른 정보’를 가미한다면 “누구나 비평가,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자신의 특별한 경험을 살려 얼마든지 특정 분야의 비평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책은 그러한 비평적 글쓰기의 매뉴얼이다.

물론 전방위 문화비평가가 다 짚어준다고 해서 누구나 저절로 그처럼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의 강제’는 필요하다. 이를테면 반드시 일주일에 원고 2-3매라도 꾸준하게 쓰는 일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게 보면 인터넷 시대라고 하여 특별한 글쓰기 노하우가 있는 건 아닌 듯싶다. 그의 결론 또한 우리 귀에 익은 것이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읽고 그리고 꾸준하게 쓰는 것, 그것이야말로 글쓰기의 정도다.”

뭔가 자기만의 주제에 대해서 꾸준히 쓸 수 있게 된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간단하다. 책을 쓰면 된다. 어떻게? 오병곤과 홍승완이 지은 <내 인생의 첫 책쓰기>(위즈덤하우스 펴냄)는 제목 그대로 ‘첫 책쓰기’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책이다. 저자들이 직장인으로서 실제로 자신의 첫 책을 쓰는 데 성공한 경험을 풀어놓고 있어서 그 노하우는 자못 구체적이다. 책을 출판하기 위한 ‘좋은 출판사를 고르는 3가지 기준’까지 제시하고 있을 정도다. “첫 책을 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출판 거절을 경험한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란 구절은 이 책이 얼마나 ‘실전적’인가를 말해준다.   

저자들이 ‘첫 책쓰기’에 도전해보도록 권유하는 독자층은 직장생활 10년차 직장인들이다. “대략 3년에 한 번 꼴로 현재 알고 있는 지식의 3분의 1을 새로운 지식으로 대체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지게” 되기에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는 요즘 직장인들의 10년 공력이면 책 한 권은 너끈하다는 판단이다. “자기만의 노하우나 전문성을 담은 책을 쓰면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저자들은 격려한다. 하지만 이런 대목을 읽게 되면 책 쓰기가 ‘선택’이 아닌 ‘의무’처럼도 여겨진다. “전문가 1.0 시대가 학위나 자격증에 의해 전문성을 인정받았다면 전문가 2.0 시대에는 책쓰기에 의해 판별될 것이다. 따라서 전문가가 되려면 자신의 책을 써야 한다.”

비록 웹2.0 시대, 전문가 2.0 시대라고는 하지만 글쓰기의 목표가 비평가나 전문가 되기일 수만은 없다. 박미라의 <치유하는 글쓰기>(한겨레출판 펴냄)는 보다 보편적인 차원에서 글쓰기의 ‘치유의 힘’을 편안하게 풀어나간다. 기본 전제는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글쓰기 안에 모두 담겨 있다는 점. 곧 나를 표현하기, 거리두기, 직면하기, 명료화하기, 나누기, 사랑하기, 떠나보내기, 수용하기가 모두 글쓰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런 글쓰기의 노하우는 머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있다. 그래서 저자는 몸으로 쓰고, 심장으로 쓰라고 권한다.

가령 15살에 가출하여 ‘양아치 오빠들’을 만나 성매매업소에서 일하다 18세에 귀가한 한 여성은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직설적으로 털어놓는다. “집에 들어갔다. 큰오빠한테 좆나게 맞고 작은오빠한테도 좆나게 맞았다. 하루종일 맞았나보나. 맞다가 오빠들한테 그랬다. 씨발 죽었어. 다시는 집에 안 들어와. 씨발, 하고 나는 다시 집을 나갔다. 할머니는 집에 들어오라고 했는데 나는 오빠들이 나를 때려서 정말 미웠다.” 고상한 어휘를 구사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녀의 처지와 가출의 배경 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마음의 문을 열고 상처를 어떤 식으로든 글로 표현해내는 것, 그것이 치유하는 글쓰기의 시작이다. 이 치유하는 글쓰기의 목표는 우리가 조금 덜 불행해지고, 조금 더 행복해지는 것이다. 

글쓰기에 소질이 좀 있다면, 그리고 열정도 갖추고 있다면 보다 ‘본격적인’ 경지로 나아갈 수도 있겠다. 이른바 ‘글을 쓰는 삶’의 경지다. 미국의 퓰리처상 수상 작가 애니 딜러드의 <창조적 글쓰기>(공존 펴냄)는 그런 삶의 다채로운 면모를 그리고 있다. 그녀는 창조적인 글을 쓰는 삶을 ‘가장 자유로운 상태의 삶’으로 규정한다. 물론 자신의 포부에 호응하는 글을 쓰는 것은 전문적인 글쟁이들에게도 언제나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헨리 소로의 말대로 젊은 시절엔 궁전이나 사원을 지을 재료들을 모으지만 중년이 되면 나무 헛간 정도를 짓기로 마음을 고쳐먹는 것이 다반사다. 하지만 작가에게는 그것이 그의 평생의 작업이며 그의 보람이다. 글쓰기는 그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구제하며 고양시킨다.

08. 1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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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08-12-08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휴. 그런데 일주일에 원고 2-3매가 왜 이렇게 안 되냐 이거죠. 어휴어휴. 저 개인적으로는 글쓰기 책 중에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가 제일 좋았어요. 소개해주신 요즘 책 중에선 [전방위 글쓰기]가 궁금해요. (근데 이런 책 읽을 시간에 사실 한 장이라도 더 쓰는 게 좋은 거 아냐? 하는 생각이 할 수 없이 드네요. 킁.)

로쟈 2008-12-09 08:28   좋아요 0 | URL
개인적인 생각으론 일주일에 2-3매가 아니라 하루에 2-3매가 되어야 할 듯싶은데요.^^;

파란여우 2008-12-09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능도 열정도 시시한 사람은 당췌 뭘 해 먹으라는 말에요.

로쟈 2008-12-09 14:20   좋아요 0 | URL
파란여우님에겐 염소들도 있잖아욧!^^;

Arch 2008-12-09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이 저렇게 말씀하시니 전 서재 닫아야할 것만 같고^^

로쟈 2008-12-09 14:04   좋아요 0 | URL
흠, 다들 '본격적인 글쓰기'를 노리시는 건가요?..

nada 2008-12-09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애니 딜러드. 영어 공부하는 사람들이 좋다고 많이 그러든데 번역되어 나왔군요. 근데 163쪽밖에 안 되는데 가격은 왜 다른 책들하고 같은 수준인 거예요. 군시렁군시렁.

로쟈 2008-12-09 14:05   좋아요 0 | URL
앗, 양배추님. 왜 이렇게 뜸하신 거예요. 궁시렁궁시렁...

토란잎 2008-12-10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 꾸준히 쓰는 일...... 글쓰기의 왕도가 있다면 바로 이것일 텐데....
아이궁,
이 게으름이여!

로쟈 2008-12-11 21:06   좋아요 0 | URL
이틀에 이틀치씩 쓰셔도 됩니다...
 

이번주 개봉예정작에는 이미 '걸작'이란 소문이 파다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신작 <이스턴 프라미스>가 포함돼 있다. 명불허전이므로 간단한 소개 기사들만을 챙겨둔다(개인적으론 러시아 마피아를 소재로 한 영화여서 더 기대가 크다). 그럼에도 기사는 꼼꼼히 읽지 마시길...  

 

한겨레(08. 12. 08) 비극은 한 권의 일기서 시작됐지

‘냉혹함’과 ‘포근함’은 서로 다른 세계의 언어다. 새 생명이 태어나는 조산실의 풍경과 사내들이 서로의 목을 향해 칼질을 서슴지 않는 ‘조직’의 세계는 좀처럼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스파이더>(2002)와 <폭력의 역사>(2005)에서 기묘한 느낌의 세계를 구축해 온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신작 <이스턴 프라미스>는 화해할 수 없는 두 세계가 충돌할 때 나타나는 풍경들을 서늘하게 그린다.

런던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조산사 안나(나오미 와츠)는 ‘타티아나’란 이름의 열네 살짜리 그루지야 소녀가 낳은 아기를 받아 낸다. 숨진 소녀와 살아난 아기. 안나는 아기의 연고를 찾기 위해 소녀의 일기장에 꽂힌 명함 주소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인자해 보이는 노인 세미온(이민 뮬러-스탈)이 안나를 맞는다. 세미온은 겉으로는 고급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신사지만, 실제로는 동유럽에 근거를 둔 런던 최대 범죄 조직 ‘보리 V 자콘’의 두목이다. 세미온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안나는 조직의 운전수 니콜라이(비고 모텐슨)에게 묘한 ‘끌림’을 느낀다.

안나는 러시아어로 써진 소녀의 일기를 읽을 수 없다. 세미온은 안나에게 “일기를 번역해 주겠다”고 말하고, 안나는 그에게 일기 사본을 넘긴다. 일기에는 안나가 모르는 뜻밖의 비밀이 담겨 있다. 그래서 ‘세미온의 세계’는 ‘안나의 세계’에 개입한다. 니콜라이는 안나에게 “당신이 있을 곳은 저기 좋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에요. 저 같은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셔야 합니다”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비정한 조직은 니콜라이를 세미온의 아들 키릴(뱅상 카셀) 대신 사지에 내몬다. 사우나실 안에서 무방비 상태로 두 괴한의 침입을 받은 니콜라이가 보여주는 절박한 폭력의 몸짓은 영화의 ‘백미’라 꼽을 만하다. 싸늘한 주검이 된 타티아나가 그랬듯 니콜라이도, 세미온도 한때는 ‘포근함’의 세계에 속했던 사람들은 아니었을까. 11일 개봉.(길윤형 기자)

필름2.0(08. 12. 05) 크로넨버그의 새로운 경지

한 가족사를 통해 폭력의 생태를 짚어나가는 <이스턴 프라미스>는 끊임없이 인간의 본성을 탐구한 크로넨버그가 다시 새로운 경지에 올라섰음을 증명하는 걸작이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런던. 평범한 외관의 이발소와 약국에서 뜻밖의 사건들이 일어난다. 중년 남자가 이발하는 도중 청년에게 살해당하고 약국을 찾은 임신 중인 소녀는 하혈을 하며 기절한다. 소녀는 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지만 아이를 낳고 죽는다. 유품인 일기장에서 소녀의 이름이 ‘타티아나’임을 알게 된 간호사 안나(나오미 왓츠)는 러시아어로 쓰인 수첩 내용을 번역해 아기의 연고지를 찾기로 한다. 안나는 수첩에서 발견한 명함의 식당인 ‘트랜스 시베리아’를 찾아간다. 새미온(아민 뮬러-스탈)이라는 러시아인이 운영하는 이곳에서 안나는 새미온 가족의 운전수로 일하는 니콜라이(비고 모텐슨)를 만난다. 하지만 안나는 곧 식당이 러시아 마피아의 유럽 본거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니콜라이는 위험에 처한 안나와 아기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이스턴 프라미스>는 주제와 형식면에서 <폭력의 역사>(2005)와 연작으로 묶을 수 있는 작품이다. 일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폭력 2부작’이라 불리는 두 영화는 모두 ‘폭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크로넨버그가 그리는 폭력은 여타 영화들이 폭력을 이야기하고 사용하는 방식과 사뭇 다르다. 그의 폭력은 특정한 공간, 주체, 이유, 대상을 갖지 않는다. 폭력이 존재하는 곳은 어두운 뒷골목이 아니라 대낮의 식당 혹은 이발소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이고 폭력을 행하는 이는 익명성이 두드러지는 사람들이다.

세상의 모든 가치에서 우위를 점하는 폭력은 그 자체가 존재 이유다. 그런 폭력으로부터는 보통 사람들도 안전하지 않다. 즉 크로넨버그가 영화에서 그리는 폭력은 평범한 인간과 일상에 기생하는 종류의 것이다. 때문에 쉽사리 발견되지 않고, 은밀하기에 깊고 단단하다. 더욱 무서운 것은 폭력이 인간 본연의 선처럼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크로넨버그가 영화에 담는 것은 바로 이런 폭력의 절대성이다. <폭력의 역사>는 가족 드라마를 내세워 일상에 잠복한 폭력의 속성을 정교하게 그린 수작이었다. 마찬가지로 한 가족사를 통해 폭력의 생태를 짚어나가는 <이스턴 프라미스>는 끊임없이 인간의 본성을 탐구한 크로넨버그가 다시 새로운 경지에 올라섰음을 증명하는 걸작이다.

온화한 인상의 식당주인 새미온은 사실 런던 최대 범죄 조직인 러시아 마피아단 ‘보리 V 자콘’의 보스다. 그의 아들 키릴(뱅상 카셀)은 조직의 2인자로서 이발소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청부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운전수인 니콜라이는 조직의 해결사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가 두려운 것은 단순히 마피아여서가 아니다. 이들의 악행이 평범한 사람들에게까지 미치기 때문이다. 범죄세계와 무관한 안나는 연고가 없는 어린 산모가 남긴 아이 때문에 마피아 조직의 타깃이 된다. <폭력의 역사>에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날 벌어진 사건이 평온한 가정과 마을을 피로 물들였듯이 안나의 일상에도 폭력의 공포가 스며든 것이다.

하지만 <폭력의 역사>가 톰(비고 모텐슨)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마을 전체에 피어오르던 폭력의 기운을 담았다면 <이스턴 프라미스>는 폭력의 실체를 좀 더 구체화, 형상화해 보여준다. 건실한 가장의 외피를 뒤집어쓰고 있던 폭력은 <이스턴 프라미스>에서 갱들의 몸을 빌려 표현된다. 검은 정장과 선글라스의 남자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폭력의 잔혹함을 예감케 한다. 그만큼 폭력의 묘사 역시 직접적이다. 아이들의 교내 싸움, 부부간의 섹스 등을 통해 일상에 도사리는 폭력성을 우회적으로 그려내기도 했던 <폭력의 역사>와 달리 영화는 첫 장면부터 폭력의 섬뜩한 실체를 보여준다.

특이할 것 없는 평범한 이발소에서 어수룩해 보이는 청년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유쾌한 농담을 건네던 남자의 목을 칼로 가른다. 벌어진 살 틈으로 피가 뿜어져 나오는 이 장면은 사실적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폭력을 그리는 크로넨버그의 수사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단연 중반부 사우나 격투 신. 니콜라이가 두 명의 킬러와 맨몸으로 싸우는 이 장면은 영화가 구사할 수 있는 폭력의 최대치를 보여준다. 오감이 압도되는 이 장면에서는 가학적이거나 피학적인 쾌감조차 느끼기 힘들다.

크로넨버그가 우리가 몰랐던 일상의 이면이 드러나는 무대로 범죄 도시의 이미지가 희미한 런던을 택한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이곳에서 크로넨버그는 구원도 희망도 찾아보기 힘든 세계를 구축한다. 평범하면서도 어딘가 냉기 어린 고요가 흐르는 런던의 풍경을 잡아내기 위해서 제작진은 런던의 뒷골목을 샅샅이 뒤졌다. 장소 헌팅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러시아인들을 주인공으로 한 만큼 다문화적 특성이 드러난 곳이어야 했다. 고심 끝에 낙찰된 장소는 킬번, 그린위치, 해크니, 할레스덴 등 외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런던의 변두리다.

일상의 한복판에 던져진 폭력의 양상을 탐색하는 크로넨버그는 또 다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폭력의 역사>에서 ‘폭력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나?’로 시작된 질문은 <이스턴 프라미스>에 이르러 ‘구원은 있나?’로 확장된다. 크로넨버그는 이례적으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몇 가지 단서는 남겨놓는다. 아이와 후반부의 반전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구원을 바라도 되는 것일까. 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후에도 이 질문에 답하기란 힘들다.

영화가 담은 폭력의 속성은 결국 변하지 않을 인간의 본질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아이라는 명백한 구원의 요소가 일종의 연민 어린 판타지로 보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폭력을 통해 마침내 인간과 세상의 본질을 관통한 <이스턴 프라미스>는 크로넨버그의 경이적인 성취를 보여주는 영화다.

문신으로 새겨 넣은 폭력의 역사

<이스턴 프라미스> 속 문신은 힘의 과시라기보다 개인의 정체성, 역사와 맞닿아 있다.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수감 기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심지어 그 사람의 성적 취향까지도 드러낸다. 비고 모텐슨의 등과 손목, 발목, 손가락에까지 새겨진 문신은 총 43개. 옥스퍼드 문신 박물관에서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약 4시간 동안 작업한 결과다. 호랑이, 별, 아기와 함께 있는 성모마리아, 십자가, 바벨탑, 예수, 벌거벗은 천사, 나뭇가지, 단추, 까마귀, 약탈자, 스콜피온, 단검, 문장 등 다양한 종류의 문신이 새겨져 있다. 문신들은 각각의 의미를 지니는데 대표적인 문신의 뜻을 살펴본다.

발목 수갑 문신 수용자들이 자신의 발목을 그어버리던 베드로 시대의 오마주

가슴의 십자가 종교적 의미가 아닌 모범이 될 만한 도둑이라는 의미를 내포

세 개의 둥근 지붕 모양 교회 3개의 다른 감옥을 의미

무릎의 별 문양 실제 마피아 집단인 보리의 영속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조직 내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을 뜻함

08. 12. 07.

P.S. 최근 데이비드 린치의 책도 출간된 김에, 이 '또 다른 데이비드'의 책도 소개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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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7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8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8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8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8-12-08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노골적인 영화였어요.
특히 아민뮬러스탈의 이중적인 모습은 뮤직박스 이후 두번째 만났습니다.

로쟈 2008-12-08 21:26   좋아요 0 | URL
저도 기대가 됩니다...

드팀전 2008-12-08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작이지요. 비고 모텐슨은 정말 러시아사람처럼 영어를 하던데. <씨네21><필름2.0>이 '배트맨' 이후 집중적으로 좋아라하고 있습니다.ㅋㅋ

로쟈 2008-12-08 21:26   좋아요 0 | URL
네 걸작이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수유 2008-12-08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연말이 되니 좋은 영화들이 한두편 들어오나요, 수첩에 적어야겠습니다!!

로쟈 2008-12-08 21:26   좋아요 0 | URL
볼 만한 영화들은 많은 듯싶어요...

하이드 2008-12-08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등의 해골은 살인자,
팔에 호랑이 문신은 행동대장.

무삭제로 나온다고 얘기 들었는데, 그렇다면 정말 ㄷㄷㄷ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이라고 해서 괴영화를 예상했는데, 지극히 현실적인 영화여서, 더 오래오래 남을듯합니다.

로쟈 2008-12-08 21:27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취향이시죠?^^

2008-12-09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9 0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yoonakim 2008-12-09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많은 매서운 눈들이 있어서 전 이제 영화에 대해 모라고 말을 하기가 겁납니다^^

로쟈 2008-12-09 14:05   좋아요 0 | URL
영화평론도 사양업종이라잖아요.^^;
 

셰익스피어의 <태풍>은 <템페스트>, <폭풍우> 등의 제목으로도 소개된 말년의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와 제국주의'란 주제의 글을 쓰기 위해 번역본과 자료들을 모아서 읽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청어람미디어, 2005)의 저자 박홍규 교수는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나는 셰익스피어가 마지막으로 쓴 1611년의 <태풍>이 식민지 상황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 상징적인 작품이라고 본다."(283쪽) 대략 김재남, 신정옥, 김정환의 번역본을 시중에서는 구할 수 있는 듯싶다(엊그제 김정환 번역본을 서점에서 찾다가 못 구했다). 카리브해 출신의 작가 에이메 세제르가 패러디해서 다시 쓴 <어떤 태풍>(동인, 2004)도 같이 읽어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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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다- 박홍규의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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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 가서 새 키보드를 사다가 교체했다. 아직 손에 익숙하지가 않아서(어떤 키는 세게 눌러야 한다) 타이핑이 더디다. 연습삼아 페이퍼를 올려둔다. 민속학자 주강현 씨가 <등대> <적도의 침묵> 등의 묵직한 책들을 펴내며 해양학으로 관심을 넓혀나간 줄은 알고 있었는데 제주대 석좌교수가 된 줄은 몰랐다. 그의 학문적 이력을 짚어보고 있는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08. 12. 06) '학문의 바다’ 넘나들다 ‘바다의 학문’으로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 어느 정도 관심을 갖는 분야가 민속이지만 민속학자 중에 스타는 드물다. 거의 유일한 민속학의 간판이라면 주강현(52)씨를 꼽지 않을 수 없다. 1990년대 그가 쓴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등과 함께 우리 땅 우리 문화에 대한 재발견 바람을 일으키며 대단한 인기를 모았다. 이후 민속학 관련 책을 줄줄이 쏟아내며 주씨는 국내 대표적인 민속학자로 활동해왔다.

이 주강현씨가 올해 새로운 기록을 하나 세웠다. 교수 출신이 아닌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국립대학 석좌교수가 된 것이다. 그는 이제 제주대 석좌교수다. 재미있는 점은 그가 석좌교수로 임용된 분야가 정확히 민속학이 아니라는 점이다. ‘바다 전문가’로 석좌교수가 된 것이다.

주 교수는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바다 전도사’로 변신했다. 그 스스로 20여년 자신을 수식했던 민속학자라는 타이틀을 거부한다. 이제는 ‘바다학자’로 자기 정체성을 규정한다. 2012년 열리는 여수엑스포 전략기획위원으로 바다올림픽 알리기에 여념이 없다. 잡지 <해양과 문화>의 편집과 해양수산부 통폐합 반대 등 바다와 관련한 분야와 이슈에는 그의 이름이 어김없이 들어가 있다.

이런 변신은 그가 오래전부터 바다를 자기의 새로운 연구 주제로 삼고 투자해온 덕분이다. 전국 농어촌을 돌아다니며 80~90년대를 보낸 그는 이후 본격적으로 바다에 대한 책을 쓰기 시작했다.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 <관해기> <돌살> <등대> <독도견문록> <적도의 침묵> 등이 이어졌다. 그동안 3면이 바다, 바다가 살길이란 인식은 높았지만 실제 바다를 인문학의 대상으로, 콘텐츠의 연원으로 바라본 학자는 없었다. 민속에서 출발해 바다를 연구의 ‘블루 오션’으로 삼은 주 교수는 요즘 물 만난 고기처럼 바다라는 주제를 누비고 있다. 만나자마자 그는 바다 이야기를 정신없이 풀어놓았다.

-여수엑스포 준비에 한창이라고 들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계획하고 있는지요?

“유치 때부터 해양문화 전문가로 활동해왔고, 지금은 마스터플랜을 짜는 데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엑스포란 것이 원래 제국주의의 산물 아니겠습니까? 1993년 대전엑스포는 군사정권 시절 증산주의 권위주의 개념의 소산이었습니다. 이번 여수엑스포는 문명적으로 생태적으로 가려고 합니다. 주제도 그래서 태평양의 해양문명을 보여주는 해양문명관의 개념을 제안했습니다. 주제도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입니다.”

-화끈하게 보여주는 것을 선호하는 우리 풍토에선 쉽지 않아 보입니다.

“생태주의적인 사고를 좌파라고 몰아붙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전혀 좌파 개념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유연한 젊은 공무원들이 호응을 해준 덕분에 해양문명관이 들어서게 됐습니다.”

-해양엑스포는 반가웠겠지만 해양수산부가 건설부에 통폐합된 것은 안타까웠겠습니다.

“바다는 통합행정으로 가야 합니다. 수산은 농림부가, 바다는 국토해양부가 맡는 것은 코미디입니다. 운하 파려고 그렇게 만든 것 아니겠습니까? 3면이 바다인데 운하가 무슨 짓입니까.”

-이제는 민속학자라기보다는 해양민속학자라고 해야겠네요.

“저는 이제 민속학자 아닙니다. 해양학자입니다.”

민속과 바다가 따로 떼려야 뗄 수 없을텐데도 그는 잘라 말했다. 그만큼 학문과 활동 모두를 바다에 ‘올인’하겠다는 의지로 들렸다. 그러면 왜 이렇게 변신을 결심하게 된 것일까?

“우리나라 3면이 바다인데 바다에 관심을 안 갖는 것이 이상하죠. 민속학에서도 바다는 당연히 중요합니다. 레비스트로스 등 유명한 인류학자들은 바다와 섬을 뒤지고 다녔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인류학자들을 대신해서 우리나라와 전세계 바다를 돌아다니고 있는 겁니다.”

-무슨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습니까?

“바다는 에너지입니다. 수심 5천미터에 떠 있는 태평양의 과학기지에서 해저면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장엄했습니다. 그때 바다 위에서 고독을 뛰어넘는 어떤 감정을 느꼈습니다. 바다로 전파된 문명의 역사에 대한 갈증이 솟구쳤습니다. 지중해를 둘러싼 문명의 역사와 자본주의의 전개를 써내려간 프랑스의 페르낭 브로델처럼 되자, 한국의 브로델이 되자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이후 주 교수는 자비로 전국 바다는 물론 세계 바다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돌아다닐수록 바다가 서구 제국주의의 시각으로 덧칠돼 있음을 실감했다고 한다. 그래서 쓴 책이 폴리네시아 사람 시각으로 남태평양 해양문명사를 다룬 최근작 <적도의 침묵>이다.

-<적도의 침묵>에서 ‘태평양은 태평하지 않다’고 쓰셨던데요.

서양 학자들은 제국주의 관점에서 원주민들이 미개하냐 아니냐를 먼저 판단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시혜를 베푼 것처럼 이야기를 합니다. 서양 항구도시에 있는 해양박물관에 가 보면 대항해시대 인종학살에 대해서는 일말의 반성도 하지 않습니다. 원주민 시각에서 보면 대항해시대는 수탈의 역사입니다. 그런데도 원주민 중심으로 기술된 태평양의 해양문명사는 없습니다. 직접 배 타고 남태평양 섬에 가서 원주민들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태평양은 태평하지 않다고 쓴 겁니다.”

-연구비 지원이라도 받는지요?

돈 받으면 제대로 된 글을 쓰기 힘들어요. 소설가한테 1억원 주고 ‘좋은 소설 써봐라’ 그러면 좋은 소설이 나올까요? 그리고 한국 학자가 폴리네시아인 관점으로 문명사 쓴다고 하면 어느 재단에서 돈을 주겠습니까. 책 써서 번 돈으로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거죠. 일찍 대학교수가 돼서 민속학 논문만 썼다면 이런 도전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골프나 치고 있었겠죠.”

주 교수는 교수직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교수가 못 된 것이 “남의 밥그릇을 넘보지 않는다는 학계의 불문율을 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국문학에 멈춰 있던 민속학에 역사학의 개념을 도입했고 더 나아가 인류학과 해양학의 범주까지 넘나들다 보니 학계에서 환영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책도 많이 쓰고 활동도 활발한데 교수 임용이 안 된 이유가 뭐였습니까?

지적 풍토가 거지 같은 나라죠. 학계는 자기 밥그릇 깨는 걸 싫어합니다. 저는 처음부터 복합 학문을 했습니다. 국문학과 사학과를 넘나들었죠. 그래서 제 활동에 대해 디스카운트를 많이 당했습니다. 건조하고 딱딱한 것은 학문이고 현장에서 발로 뛰어 만든 저술은 학문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자들과 싸우느라고 게릴라 생활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강사가 노예 같은 처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더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가 바다학자로서 ‘찜’한 주제가 바로 독도다. 최근 펴낸 <독도견문록>은 그의 학문 범주가 어떻게 확장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500쪽이 넘는 두툼한 독도견문록은 독도와 울릉도의 역사와 민속뿐 아니라 지질, 식생, 토양, 기후 등을 망라하고 있다. 14차례나 독도와 울릉도를 직접 찾았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민속학자가 아닌 지리학 생태학에 밝은 해양학자로서의 변신을 느낄 수 있다.

-<독도견문록>을 보면 독도를 여러 각도에서 접근한 것 같습니다.

“바다를 연구하는 것은 환경문제에서부터 시작해서 군사문제, 식생, 지리학, 생물학, 신화학까지 연결됩니다. 거의 대책이 없을 정도로 포괄적이에요. 정말 화두가 큽니다. 그런 생각과 자료를 정리한 것이 <독도견문록>입니다. 독도는 보통 섬이 아닙니다. 신성하고 강인한 섬이죠. 460만년 전에 형성된 독도는 수심 2천미터부터 솟아 있는 조그만 화산섬이 아니라 거대한 대륙입니다. 독도를 조그만 섬이라고 하는 것은 무지의 소산입니다.”

-일본에 견주면 우리나라는 바다를 등한시했죠?

“일본은 1914년 남양군도청을 만들고 남양군도(미크로네시아)를 신탁통치했습니다. 일본의 해양 야욕은 무서울 정도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바다를 거의 안 챙겼습니다. 고려시대까지 중국과 왕성한 무역을 했는데 명나라 주원장이 집권하면서 중국 남쪽의 수군을 가장 무서워했죠. 그래서 아예 바다에 널빤지 하나 못 뜨게 했습니다. 조선은 그걸 그대로 따라했죠.”

-바다는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한민족은 바다로 나가면 승리했지만 바다를 포기하면서 식민지가 됐습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집니다. 다산 정약용이 <경세유표>에서 해도경영론을 썼어요. 유배지에서 바다를 본 그는 ‘버려진 섬들을 관리하면 보물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바다의 가치를 본 것이죠. 우리나라는 분단돼 있어 대륙과 떨어진 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바다를 깊게 생각해야 하는데 운하나 파려고 하고 있고…. 일본의 한반도 침탈은 바다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생가가 있는 야마구치현 하기 해변을 걸으면서 이들의 100년이 넘는 야욕을 곱씹어 봤습니다. 일본과의 해양 영토 전쟁은 끝난 게 아닙니다.”

-앞으로는 어떤 연구를 하실겁니까?

세계의 대표적인 항구도시 스물네 곳을 돌아볼 계획입니다. 항구는 인문학적 지평을 확장해줍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죠. 하멜 표류기는 제주도에서 한양으로 이어지는 게 아닙니다. 하멜이 처음 떠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시작돼 조선을 탈출해 돌아간 네덜란드에서 끝납니다.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것이죠. 해양학은 지금까지 서양인이 한 것입니다. 우리 식대로 접근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바다를 잊어버린 우리 민족에게 바다를 돌려주고 싶습니다.”(권은중 기자)

08, 1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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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2-07 17:15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강단학문에 맺힌 한이 많군요.그런데 학문 경계를 넘는 분야를 학제간 연구라고 해서 하고 있는 것도 같은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로쟈 2008-12-07 17:41   좋아요 0 | URL
여러 분야의 전공자들이 모여서 같이 밥 먹는 걸 '학제간 연구'라고 하지요. 자연계열에서는 혹 성과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인문사회쪽은 '시늉'이라고 합니다. '학제간 연구'라고 해야 연구비 지원이 되는 탓에...

드팀전 2008-12-08 10:41   좋아요 0 | URL
예전에 <우리문화의 수수께끼>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 페이퍼를 보니 갑자기 <적도의 침묵>에 관심이 갑니다. 지적 풍토가 거지같다는 말에...잘은 모르지만...대학 사회를 늘상 삐죽거리면서 바라보는 입장에서 웃음이 나옵니다...

로쟈 2008-12-08 21:28   좋아요 0 | URL
대학사회도 점점 재미없어져 가고 있어요...
 

지난주 방한 강연을 가진 우크라이나의 작가 안드레이 쿠르코프의 소설에 대한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 10여 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작가는 (우크라이나어가 아닌) 러시아어로 소설을 쓰며 유창한 러시아어로 우크라이나 문학의 역사와 현재에 대한 강연을 했다. <펭귄의 우울>과 <펭귄의 실종> 두 권을 '12월의 읽을 만한 책'에 올려놓기도 했으므로 조만간 시간을 내 읽어볼 참이다(러시아어본도 참고할 수 있을 듯싶다).

경향신문(08. 12. 06) 고독한 작가와 우울한 펭귄…이 시대 우리들의 자화상

“‘펭귄’은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집단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던 사람들이 갑작스레 집단에서 떨어져 나와 어쩔 줄 모르고 불안을 느끼는 모습을 형상화했습니다.”

<펭귄의 우울> <펭귄의 실종>을 낸 우크라이나 작가 안드레이 쿠르코프(47·사진)가 한국을 찾았다. 쿠르코프는 2일부터 7일까지 한국작가회의에서 주최하는 ‘세계 작가와의 대화’ 행사에 참석해 국내 러시아문학 전공자들과 독자들에게 현대 우크라이나 문학에 대해 강연한다. 그의 소설은 소련 해체 이후 동유럽 사회의 혼란상을 무겁지 않게 그려낸다. 2006년 <펭귄의 우울>이 먼저 우리나라에 소개됐고, 최근 후속작 <펭귄의 실종>이 출간됐다.

<펭귄의 우울>은 쿠르코프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작품이다. 우울증에 걸린 펭귄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등장시켜 우크라이나 사회와 정치를 유머있게 풍자해 인기를 끈 이 책은 영어·프랑스어·일어 등 30여개국의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적으로 250만부가 팔렸다.

경제난에 빠진 동물원이 굶주린 동물들을 방출하면서 펭귄 미샤는 소설가 빅토르의 집으로 오게 된다. 미샤는 우울증과 심장병에 걸렸다. 펭귄은 어느날 자신이 소속된 집단을 잃어버린 동유럽 사람들의 자화상이며, 펭귄과 빅토르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 장편소설 하나 쓰지 못한 그저그런 작가인 빅토르는 어느날 신문에 살아있는 사람들의 조문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빅토르는 자신이 임의로 작성한 조문의 주인공들이 하나씩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면서 거대한 음모에 빠진 것을 알게 된다.

추리소설 형식을 띠면서도 소설은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기보다는 부패와 폭력에 무감각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는 데 치중한다. 빅토르는 자신을 죄어오는 음모를 느끼면서도 굳이 그 정체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쿠르코프는 빅토르가 소련 이후 사회의 전형적인 ‘신생아’라고 말한다. “빅토르는 소련 시절 반체제적이었지만 소련 붕괴 이후 방향성을 잃고 문제를 덮어버리는 전형적인 인간입니다. 저도 빅토르와 똑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형제는 반체제 인사였고 스스로도 소련에 반대했지만 정작 소련이 붕괴되니 혼란을 겪은 거죠.”

'집단’이라는 안정된 우리를 잃어버린 이들은 새로운 집단을 만들어낸다. 빅토르는 펭귄과 함께 우연히 함께 지내게 된 소녀 소냐와 유모 니나와 함께 그럴듯한 가족을 이루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관계에 불과하다.

<펭귄의 우울>에서 빅토르는 펭귄을 남극으로 다시 돌려보내려고 하다가 스스로 남극으로 떠나버린다. 그런 그가 후속작 <펭귄의 실종>을 통해 남극에서 다시 돌아온다. 잃어버린 펭귄 미샤를 찾아 남극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키예프, 모스크바, 전쟁지역인 체첸을 종횡무진하는 빅토르의 여행 이야기 속에 한층 강화된 블랙유머와 풍자를 풀어놓는다.

“우크라이나 사회는 혼란스럽고 부정부패가 판치고 있습니다. 문학의 역할은 사람들을 제정신으로 유지시키는 것입니다. 정치가나 선동가들에 의해 조종당하기 쉬운 사람들에게 올바른 판단력을 길러주는 역할을 문학이 해야 합니다.”

춥고 흐린 우크라이나의 날씨, 추위를 이기기 위해 자주 등장하는 코냑과 진한 커피 등 동유럽의 이국적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이 소설의 묘미다.(이영경기자)

08. 12.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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