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눈길을 끈 뉴스 하나는 정부가 '신빈곤층'이란 용어를 금지어(금기어, 금칙어)로 지적했다는 소식이었다. <1984년> 같은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일이어서(MB의 대한민국은 유토피아다!) '재미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MB부터가 즐겨쓴 이 용어가 현 정부에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준다고 해서 '위기가정'으로 대체될 예정이라고 한다(신빈곤층 문제를 이렇게 간단히 해결하다니!). 스스로 '위기의 정부'임을 광고하는 것인지. 아무려나 '희귀한 사례'가 될 듯싶어서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경기도 안양의 한 보건복지종합상담센터를 방문한 자리에서 "신빈곤층의 사각지대를 찾아내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또 현장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들에게 직접 전화상담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기도 안양의 보건복지종합상담센터를 찾았습니다. 이 대통령은 최근 늘어나고 있는 신빈곤층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원과 일자리 창출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한 모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언급하면서 빈곤층에 "사각지대가 많은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KTV, 09. 02. 06)

경향신문(09. 03. 04) 이명박 정부 금기어 ‘신빈곤층’

3일 일선 지자체가 내놓은 각종 자료에 눈에 띄는 용어의 변화가 생겼다. ‘신빈곤층’이란 용어가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춘 것이다. 대신 등장한 용어는 ‘위기가정’이다. 전북도는 이날 ‘신빈곤층’으로 써 오던 관련 자료 용어를 모두 ‘위기가정’으로 바꿔 사용했다.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신빈곤층’이란 용어는 공식용어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민주노동당은 2일 민생브리핑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이 얼마 전 ‘봉고차 할머니’ ‘목도리 할머니’ 등 빈곤층 찾기 쇼를 할 때 현장에서 직접 사용까지 했던 용어를 며칠 만에 금지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민노당은 “신빈곤층이라는 용어가 현 정권이 만들어낸 빈곤층으로 들린다는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며 “이제 집권 1년이 지난 현 정권의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노당은 “용어 사용에 얽매이지 말고 그 용어 자체가 사라지도록 하는 정책에나 전념하라”고 꼬집었다.

지자체에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전북도는 공식적으론 “정부의 ‘신빈곤층’ 용어 자제요청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료 한쪽 면에 ‘청와대 신빈곤층 용어 사용 금지령’이란 제하의 인터넷판 뉴스를 복사해 첨부했다. 전북도 관계자는 “공식적인 요청은 없었지만 정황으로 볼 때 앞으로 모든 공문서에 신빈곤층 대신 위기가정이란 용어를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시의 한 간부는 “이명박 대통령도 신빈곤층 복지사각 제도를 없애라는 말을 사용했다”면서 “정부 스스로 이 용어를 쓰지 말라고 했다면 뭔가 켕기는 게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남대 김모 교수는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문서작업시 이전 정권에서 주로 사용했던 단어들은 모두 금지어라는 점에 놀랐다”면서 “예컨대 ‘소외계층’ ‘혁신’ ‘참여’ 등의 단어를 보고서에 쓰면 혼쭐난다”고 말했다.(박용근기자)    

노컷뉴스(09. 03. 05)[변상욱의 기자수첩] 국민은 '신 빈곤층', MB정부는 '신 위기층' 

'신빈곤층'이란 용어가 금지어로 지정됐다고 한다. 지난달 26일쯤 관련 보도가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청와대 관계자가 밝히기로 "신 빈곤층이라는 용어 자체가 적절치 않다는 내부 검토에 따라 쓰지 않도록 조치했다. 국민을 계층화 해버리는 의미가 있어 일시적인 것임을 강조하는 쪽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는 내용.

◈ 빈곤층은 '신新' 것인가? 쉰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부터 "새롭게 발생하는 신빈곤층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경제 살리기를 공약했었다. 결국 신빈곤층이란 서민·중산층이 이번에 들이닥친 경제위기로 인해 빈곤층으로 추락하면서 생겨났다는 의미로 '신빈곤층'이라고 규정한 것. 노무현 정부가 미처 대응하고 돌보지 못한 새롭게 생겨나는 빈곤층을 새 정부가 예리하게 파악해 적절한 대응정책을 마련하겠다는 의미로 이명박 대통령이 목도리 할머니, 봉고차 할머니 만나고 어려운 가정들 돌아볼 때 마다 사용하던 용어이다.

그런데 새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나도 신빈곤층은 계속 늘어만 가고 경제성장율이 마이너스가 예상되는 마당에 계속 늘어날 것이고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신빈곤층'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생겨난 빈곤층이라는 이미지가 점점 강해지고 있어 황급히 지워버리고 싶은 게 속내인 걸로 짐작된다.(물론 설명으로는 국민을 계층화하는 부적절한 용어라 계층으로 굳어지는 게 아니라 일시적인 잠깐 고생하다 다시 중산층으로 상승할 계층이라는 이미지로 바꾸고 싶다고 하지만….)

노무현 정부 책임으로 귀책되는 빈곤층이냐, 이명박 정부 책임으로 봐야 할 빈곤층이냐. 그런 뉘앙스의 차이인데 어차피 신빈곤층이 줄어들거나 신빈곤층이 먹고 사는 데는 전혀 도움 안 되는 머리 굴림.

◈ 국민은 '신빈곤층'으로, MB 정부는 '신 위기층'으로? 

아직 확실히 결정된 용어는 아니지만 일단 대체해 사용하는 것이 '위기가정'인 모양이다. 왜냐하면 보건복지가족부가 '위기가구'라는 말을 계속해 사용해 왔기 때문에 여기서 빌려 온 듯하다. 전재희 보건복지장관이 지난달 말 인터뷰 때 이야기한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신빈곤층이란 말의 의미가 좀 모호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으니까 "신빈곤층이란 법령적인 것도 학문적 개념도 아니다. 행정적으로 쓰는 용어이다. 경제위기로 인해 소득을 상실해 새로운 위기에 빠진 가정인 셈이다. 복지부는 '위기가구'라는 개념으로 씁니다"

보건복지부의 행정 처리상으로는 소득상실, 폐업, 실직, 주소득자 사망, 이혼, 화재나 교통사고 등으로 생계유지가 갑자기 어려워져 '긴급 복지지원'을 요청하는 경우가 '위기가구'이다. 청와대는 복지부의 '위기가구'를 그대로 베껴 쓰자니 자존심 상하고 개념의 차이도 있고 해서 '위기가정'으로 일단 바꿔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위기가정'이란 용어는 너무 포괄적이다. 조금 더 명확히 하자면 '경제 위기가정' 이렇게 써야 신빈곤층이라는 본래의 표현에 더 가깝다. 그러나 흔히 줄여서 '위기가정' 이렇게 쓴다. 뭔가 경제를 못살려 어려워진 가정, 정부 책임 이런 느낌을 덜 주고 그 가정이 문제가 있고 어려워서 힘을 못 쓴다는 느낌이 강하지 않은가. 은근히 국민에게 떠미는 느낌. 학문적, 행정적 용어를 정리하자면 사회의 계층은 최상위 부유층 - 부유층- 중산층 - 서민층 - 신빈곤층 - 차상위 계층 - 기초수급 대상자 로 이어진다. 위기가정이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

신빈곤층의 특징은 사회안전망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 행정 용어로 '비수급 빈곤층'. 두 가지가 일치하지는 않지만 복지부의 통게로 경제위기 가구는 8만5천5백 가구이다. 올 경제성장율이 마이너스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개념 정리를 어찌 해나가든 신빈곤층은 늘어만 갈텐데…. 국민은 '신빈곤층'으로, 해결 못해 쩔쩔매는 MB 정부는 '신 위기층'으로 가고 있는 중? 

09. 03. 08.  

P.S. 요점은 '신빈곤층'이란 말을 '위기가정'으로 대체함으로써 '정부 책임'이란 뉘앙스를 제거하고 싶다는 것(결국 빈곤은 가정 문제이고 가장의 책임이다?!). 아무래도 정부에는 이 방면으로 머리 쓰는 인재들이 많은 모양이다. 해서, 신빈곤층을 염려하던 이대통령의 멘트도 소급적으로 교정되어야겠다. "위기가정의 사각지대를 찾아내 지원해야 한다"라거나 "이 대통령은 최근 늘어나고 있는 위기가정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원과 일자리 창출이라고 강조했습니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남의 가정 일에도 세심하게 신경 쓰는 정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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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3-08 14:59   좋아요 0 | URL
정권교체를 피부로 느끼라고 이렇게 금지 용어를 지정했군요.

로쟈 2009-03-08 16:11   좋아요 0 | URL
아니요, 요즘은 반대 같아요. 정권교체를 못 느끼게 하려고 애를 쓰니까요. '잃어버린 10년'이란 말도 요즘은 안 쓴다잖아요...

노이에자이트 2009-03-08 21:01   좋아요 0 | URL
내 남자의 여자 김상중 씨의 극중 배역명이 홍준표라고 하더라구요.그래서 홍준표 의원이 왜 하필 내 이름이냐...고 했단 뒷이야기가 있었답니다.

로쟈 2009-03-08 21:49   좋아요 0 | URL
금지된 이름인가요?^^

람혼 2009-03-09 04:04   좋아요 0 | URL
'위기가정'에 덧붙여 '위기국가' 또는 '위기정부'라는 신조어(?)를 자주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싶습니다. 현실에서 할 수 없고 하지 못하는 일을 '언어'의 레벨에서 수행하고자 하는 이 '상징적인 분서갱유'가 무서울 정도로 기가 막혀서 오히려 귀여울(?) 지경/경지이군요.

로쟈 2009-03-10 00:04   좋아요 0 | URL
'상징적인 분서갱유'가 현실화될까 염려됩니다...

쟈니 2009-03-09 13:11   좋아요 0 | URL
수구 정권이 늘 더 세심하게 언어를 쓴다는 생각이 드네요. 언어로 생각을 조정(? 조절?)하려는 건 어느 나라나 다를 바 없어요. 주구장창 외치던 잃어버린 10년도 안쓴다니, 저러다 선거 앞두고 또 당명 한번 바꾸는 건 아닐까 걱정되군요.

로쟈 2009-03-10 00:05   좋아요 0 | URL
재집권만 한다면 뭐라도 하지 않을까요?--;
 

지난주 언론리뷰에서 가장 주목받은 과학책은 마르코 야코브니의 <미러링 피플>(갤리온, 2009)이다. '거울 뉴런'의 비밀을 다룬 뇌과학서로 소개되는데(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42697.html), 무슨 내용인지는 읽어봐야 감을 잡을 듯하다. 그밖에는 특별히 관심을 끄는 책이 없기에, '김명남의 과학책 산책'을 스크랩해놓는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를 다루고 있다. 방대한 분량 때문에 아직 안 읽어본 책이고, 심지어 소장하고 있지도 않은 책이다(칼럼의 말미엔 두 종의 번역본에 대한 품평도 포함돼 있다). 생각해보면 '대학 신입생을 위한 추천도서'로 이만한 책도 드물 것이다. 스물 두 살 청년 다윈의 여행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여행이 진화생물학자들만의 로망은 아닐 것이다. 다윈 책의 이미지들도 추가했다.  

  

한겨레(09. 03. 07) 다윈의 책은 어려울 거란 편견

나도 다윈을 읽기로 했다. 올해가 다윈 탄생 200돌에 <종의 기원> 출간 150돌이다 보니 하루 건너 관련 소식을 듣는 요즘이다. 다윈의 생일이었던 지난 2월 12일에 영국에서는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 하고, 연중 세계 각국에서 행사가 많을 모양이다. 우리나라 매체들의 특집 기사 제목만 봐도 ‘다윈이 돌아왔다’ 하고 ‘다윈이 살아 있다’ 하며 ‘다윈은 미래’라고도 하니, 얼른 유행에 영합해야겠다.  

다윈을 읽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진화론 해설서를 읽을 수도 있고, 전기를 읽을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 늦게나마 스티븐 J. 굴드의 해설이 주가를 올리고 있고, 후자의 경우 데이비드 쾀멘이 쓴 <신중한 다윈 씨>가 훌륭한 읽을거리다. 그리고 나름의 첩보에 따르면 앞으로도 좋은 책들이 더 선보일 것 같다.  

세 번째 방법은 다윈이 쓴 책을 읽는 것이다. 나도 기왕 시간을 들여 보기로 했으니 이참에 원전을 읽는데, 내가 집어 든 책은 자연선택 개념을 제시한 <종의 기원>도, 성선택을 말한 <인간의 유래>도 아닌 <비글호 항해기>다. <비글호 항해기>는 스물두 살의 젊은 다윈이 4년 9개월 5일 동안 영국 해군 선박을 타고 남아메리카와 남태평양 일대를 여행한 기록이다. 항해기라지만 배에 있었던 시간보다 뭍에 올라 남반구의 지리와 식생을 관찰한 시간이 더 많다.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그렇게 사냥과 수집만 좋아해서 커서 뭐가 되려느냐’는 타박을 받았을 정도로 식물, 곤충, 광물, 조개 수집을 좋아했던 다윈이니 난생 보도 듣도 못한 신기한 동식물과 풍경, 원주민 풍습을 접할 기회에 물 만난 고기마냥 활개치는 게 당연하다.  

<비글호 항해기>는 그런 팔팔한 젊은이의 견문록쯤으로 생각하고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유명한 갈라파고스 제도 부분에서도 핀치의 부리 모양이나 이구아나 도마뱀의 생태를 관찰한 내용보다는 새끼 거북이 국거리로 최고라는 둥, 거북 등에 올라타 균형을 잡는 게 아주 힘들다는 둥, 여기서는 모자로도 새를 잡을 수 있으니 총은 사치품이라는 둥 시시콜콜한 잡담이 내 시선을 잡는다. 어째서 훤히 넘겨다보이는 가까운 섬들에서 같은 종류의 동물들이 서로 다른 형태를 취할까 갸웃하는 대목에서는 그가 이후에 구축할 이론이 엿보이지만, 그뿐이다. 다윈이 진화론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영국으로 돌아간 뒤였다.   

<종의 기원>이나 <인간의 유래>를 읽으려면 현대 유전학이 밝혀낸 내용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우리 평범한 독자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비글호 항해기>라면 그런 부담감 없이 읽어볼 만하다. 일기 형식이므로 곁에 두고 조금씩 읽기도 좋다. 덧붙여, <비글호 항해기>는 완역 번역본이 두 종류가 있는데 둘 다 좋다. 샘터 출판사의 책은 쾀멘의 서문이 딸려 있고 읽기 편한 단문이라는 장점이 있다. 나는 남극 세종기지에서 월동을 하며 개정본 작업을 했다는 장순근 박사의 말에 혹해서 가람기획의 책으로 읽었다.(김명남/과학책 번역가) 

09. 03.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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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에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대학 신입생을 위한 추천도서'를 선정해 발표했다. 취지는 이렇다. "문학, 역사 등 각 분야 12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좋은책선정위원회는 대학 입학을 앞둔 신입생들의 기본 소양 형성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취지에서 매년‘대학 신입생을 위한 추천도서’를 선정, 발표하고 있다." 20권의 책이 추천됐는데, 목록에 대한 소감을 그때 적어두려다가 미뤘었다. 오늘 보니 대학도서관 홈피에도 떠 있고 하기에 다시 생각이 나서 목록과 함께 몇 마디 보탠다. 일단 리스트는 이렇다.  


연번


서명


저/ 역자


출판사


1


광장


최인훈


문학과지성사


2


당신들의 천국


이청준


열림원


3


모던 타임스(Ⅰ,Ⅱ)


폴 존슨/ 조윤정


살림


4


광기의 역사


미셸 푸코/ 김부용


인간사랑


5


마르크스의 유령들


자크 데리다/ 진태원


이제이북스


6


자크 라캉 세미나 11


자크 알랭 밀레 편/ 맹정현 외


새물결


7


전체주의의 기원(1,2)


한나 아렌트/ 박미애 외


한길사


8


극단의 시대(상,하)


에릭 홉스봄/ 이용우


까치글방


9


행복의 지도


에릭 와이너/ 김승욱


웅진지식하우스


10


괴짜경제학


스티븐 레빗 외/ 안진환


"


11


불안


알랭 드 보통/ 정영목


이레


12


세계시민주의 


콰메 앤터니 애피아/ 실천철학연구회


바이북스


13


이분법을 넘어서


장회익, 최종덕


한길사


14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


홍성욱


서울대학교출판부


15


이중나선


제임스 왓슨/ 최돈찬


궁리


16


과학혁명의 구조


토머스 S. 쿤/ 김명자


까치글방


17


공간의 시학


가스통 바슐라르/ 곽광수


동문선


18


고삐 풀린 현대성


아르준 아파두라이/ 차원현 외


현실문화연구


19


리바이어던


토마스 홉스/ 신재일


서해문집


20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김은령


에코리브르

'좋은책선정위원회'는 '이달의 읽을 만한 책' 선정위원회이기도 해서, 리스트를 보면 대략 누가 어떤 책을 추천했는가 짐작해볼 수 있다. 가령, 철학 분야의 책들인 <광기의 역사>, <마르크스의 유령들>, <자크 라캉 세미나 11> 등은 김상환 교수(서울대 철학과)의 추천작일 것이다(한데, 이건 대학 신입생이 아니라 대학원 신입생을 위한 추천도서가 아닌지?). 특기할 만한 것은 국내서가 두 권의 한국 소설을 포함해서 네 권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광기의 역사>와 <리바이어던>은 완역본이 있음에도 발췌역본이 선정됐다는 점(실무자들의 착오가 아니라면 의아한 일이다. 고등학교 신입생을 위한 추천도서도 아닌데 말이다). 몇 가지 분야로 나누어 나대로의 추천도서도 보태본다.  

1. 문학  

 

최인훈의 <광장>(문학과지성사)는 얼마전에 새 전집판이 나왔고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은 문학과지성사판 외에 열림원판이 나와 있다. 국내서가 두 권이므로 국외서를 하나 덧붙이자면, 내가 주로 추천하는 책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그러고 보니 세 권 모두 이념과 삶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2. 철학 

 

푸코의 책 <광기의 역사>는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추천한 인간사랑판 외에 완역본인 나남판이 있다(내가 알기에 인간사랑판은 중역본이 번역도 더 낫다는 얘기를 들어본 바 없다). <마르크스의 유령들>도 일단은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 정도는 읽은 다음에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자크 라캉 세미나 11>도 마찬가지다. 프로이트의 책을 한 권이라도 먼저 읽는 게 순서일 것이다. 나도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김덕영의 <프로이트, 영혼의 해방을 위하여>(인물과사상사, 2009) 같은 책을 조감도 삼아 미리 읽어보는 게 낫겠다. 개인적으론 윌 듀란트의 <철학이야기>가 가장 무난한 책이다. 물론 동양철학은 다루지 않기에, '서양철학 이야기'가 보다 적합한 제목이긴 하지만(국내엔 서너 종의 번역이 나와 있다).  

3. 역사 

 

역사분야의 책은 두 종의 '20세기사'다. 역사서는 비교적 난이도에 구애를 받지 않기 때문에 읽어봄 직하다(분량은 좀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 한국현대사 쪽으로는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전18권)을 필요할 때 참고할 수 있겠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창비, 2001)도 원서와 함께 읽어봄 직하다(내가 신입생이라면 그러고 싶다).  

 

4. 정치 

 

정치분야의 책은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인데, 이 또한 신입생에겐 좀 부담스러운 책일 듯싶다. 이왕 부담스러운 김에 지젝의 <전체주의가 어쨌다구?>까지 더 얹어놓는다. 

5. 경제 

 

경제학 책으로 추천된 것은 스티븐 레빗 등의 <괴짜 경제학>인데,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와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 등도 같이 읽어봄 직하다. 입장은 조금 다르더라도, 세계경제와 한국경제를 바라보는 조금 다른 시각을 엿볼 수 있겠다. 물론 <88만원 세대> 같은 화제작도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관심을 가져볼 수 있겠고.  

6. 사회 

  

사회분야의 책으론 인도 출신의 문화인류학자 아르준 아파두라이의 <고삐 풀린 현대성>이 추천되었다. 나는 갖고 있지 않은 책인데, "국민국가의 종말, 탈영토화, 탈식민주의 등을 탐구한 평론. 지난 20년간 진행된 세계화가 국가의 경계를 흐리고 있다고 진단하며 ‘탈국가론’을 제시하고, 곧 초국가주의가 도래할 것이라 말한다." 아프리카계 학자인 콰메 앤터니 애피아의 <세계시민주의>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겠다. 나는 거기에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공화국으로>으를 덧붙이고 싶다. 저자가 고등학생도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책이므로 대학 신입생이라면 거뜬히 읽을 수 있을 것이다.  

7. 과학  

 

과학책으론 왓슨의 <이중나선>과 홍성욱의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이 선정됐다. 생물학 책이 빠진 듯해서 보태자면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이젠 '고전'의 지위를 얻고 있는 책이 아닐까. 다윈과 다윈주의에 대한 입문서로서도 유력하다.  

 

장회익, 최종덕 교수의 대담집 <이분법을 넘어서>와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그리고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은 과학철학자의 저작이란 공통점이 있다. 과학과 역사, 그리고 시 사이의 크로스오버를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물론 실제로 읽는 건 만만찮은 일이어서 <이분법을 넘어서>를 제외하면 책장을 몇 장 못 넘길 우려도 있다.  

8. 예술  

흥미롭게도 예술분야의 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공간의 시학>이 이 범주로 고려됐던 것일까? 여긴 뭐 무주공산이므로 그냥 세 권을 채워넣는다.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은 아마도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일 텐데, 최근엔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쪽으로 쏠리는 듯하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누구나 추천하는 책이지만, 그냥 돈 모아서 소장해두는 책이라고 해두자. 나는 러시아문학이 전공이기에 <러시아 미술사>도 필독서로 넣고 싶다.  

9. 교양  

 

에릭 와이너의 <행복의 지도>와 알랭 드 보통의 <불안>, 그리고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교양서로 묶는다(카슨의 책은 이미 '고전'이기도 하지만). 이중 가장 의외의 책은 <행복의 지도>. 지난 가을에 나왔으니까 출간된 지 아직 반년밖에 되지 않은 책이다. 하지만 '어느 불평꾼의 기발한 세계일주'란 부제를 고려해보건대, 가장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 않을까 싶다(나도 읽어보고 싶다!). 소개를 보니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을 찾겠다는 기상천외한 여행기"라 한다. <불안>은 베스트셀러 작가의 수상록이고, <침묵의 봄>은 환경운동의 모태가 된 책. '행복'과 '불안', '침묵' 중에서 자신과 가까운 쪽을 택해 교양으로의 여정을 시작하면 되겠다. 

10. 고전 

  

신입생들이 읽을 만한 고전으론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추천됐다. 한데, 서해문집판은 지적했다시피 발췌본이다. 완역본은 나남에서 두 권짜리로 출간된 바 있다. 가격에서나 분량에서나 모두 부담스러운 책.   

 

정 부담스럽다면, <리바이어던>에 대한 해제서를 읽거나 유사 <리바이어던>을 읽는 것도 좋겠다. 폴 오스터와 보리스 아쿠닌 소설의 제목이 <리바이어던>이다...  

09. 03. 07. 

P.S. 대략 대학 신입생을 위한 간행물윤리위원회 추천도서를 따라갔는데, 이런 목록이야 '일람'의 용도 이상의 의미는 갖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럼에도 뭔가 '잔소리'처럼 덧붙이는 것은 "내가 대학 신입생이었을 때 이런 책들을 읽었더라면" 하는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을 토로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 맘대로 그런 바람을 더 보태자면, 서경식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이희재의 <번역의 탄생>, 고종석의 <감염된 언어> 등을 꼽고 싶다. 모두가 '국가' '국민' '국어'가 무엇인지에 대한, '한국어'와 '한국인'의 운명에 관한 책이다. 대학생이 된다는 것은 얼핏 자명해 보이는 그러한 '조건'에 대해서, 나의 삶과 언어의 '테두리'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다는 뜻이다. 가져도 좋다는 뜻이다. 물론 '나'에 대한 물음은 청소년기에 먼저 떼고 와야 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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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학 신입생을 위한 추천도서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3-07 21:08 
    메를로퐁티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것인데, 흥미롭게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가 선정한 '2010년도 대학 신입생을 위한 추천도서 20종'에 포함돼 있다('대학원 신입생'을 위한 책이 아닐까?). 겸사겸사 추천도서의 리스트를 훑어보고, 분야별로 몇 권씩 묶어놓는다(작년에도 같은 리스트를 올려놓은 적이 있군. 목록을 비교해보도 좋겠다). 폴 크루그먼의 <불황의 경제학>과 알랭 드 보통의 <왜
 
 
람혼 2009-03-07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완역본이 나온 지도 이미 오래인데 굳이 <광기의 역사> 추천도서로 인간사랑에서 나온 축약본을 선정한 것이 좀 이상합니다(번역 자체에 대한 시비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런데 <광기의 역사> 불어완역본의 출판사는 민음사가 아니라 나남출판입니다.

로쟈 2009-03-07 22:0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수정했습니다. 아마 선정위원은 그냥 <광기의 역사>라고만 했겠죠. 실무진에서 찾아본 게 인간사랑판이었을 거구요...

마늘빵 2009-03-07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신입생을 위한 책은 별로 보이지 않는데요. 이건 대학원생을 위한 추천 도서인듯. 그것두 인문/사회대쪽만.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 들어간 게 재밌네요. 나름 학술적인 책만으로 목록을 짜지 않으려고 한 것 같기도 하고.

로쟈 2009-03-07 22:06   좋아요 0 | URL
그게 선정위원들이 그냥 몇 권씩 추천한 걸 합산하지 않았나 싶어요...

마냐 2009-03-08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대학 신입생 시절 이후 강산이 몇번 바뀌었는데, 읽지 않은 책이 훨 많군여..ㅎ 그렇다고 사회인을 위한 추천도서로도 그닥 땡기지는 않지만, 로쟈님의 별도 추천은 귀담아 둘께여..^^;

로쟈 2009-03-08 08:55   좋아요 0 | URL
하워드 진과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들을 집어넣으려다가 국내서로만 갔습니다.^^;

2009-03-08 0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08 0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08 0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08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9-03-08 0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고등학생들은 수준이 좀 높아지긴했지만...이런 리스트들은 늘 교수들의 자기수준에서 '이 정도는 읽어야지 않아'하는 식으로 추천도서를 올린다니까요. 저도 <광기의 역사>는 완역본만 봤는데...서점에서 보니까 두께차이가 거의 두배더군요.^^ 나남판을 결국 다시 사야겠다는 생각만하고 늘 다른 걸로 손이.

로쟈 2009-03-08 08:55   좋아요 0 | URL
저도 절반 정도는 감이 없는 추천이란 생각이 들어요. 또 대학마다 필독도서 리스트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중복성도 있고요. 그런 걸 읽는 교양강의들도 있습니다. 한두 권, 한두 명의 저자와 친숙해지는 게 더 중요한 듯싶어요...

노이에자이트 2009-03-08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수들도 자기가 추천한 책 외에는 읽기 벅차겠네요.우리나라 학생들,대학 입학할 때 대입시험공부 외의 배경지식은 머리 속에 없다는 현실을 잘 알면서 왜 이런 책들을 추천서라고 내놓는지 모르겠습니다.로쟈 님은 그 심리를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로쟈 2009-03-08 16:09   좋아요 0 | URL
'심리'까지는 아니구요, 그냥 '관행'이죠. 약간은 무성의한 번역본 선정도 그런 탓이겠구요...

rkaksh 2009-03-23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몇책들은 고등학교때 읽긴읽었는데...

아직도 잘 모르겟네요...

로쟈 2009-03-24 00:24   좋아요 0 | URL
소설을 제외하고 읽으셨다면 조숙하셨네요.^^

keith 2019-01-15 0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추천 감사합니다.
 

아래 한국일보의 기사를 밑천 삼아서 20주기를 맞은 시인 기형도 읽기 리스트를 만들어둔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7일은 시인 기형도(1960~1989) 20주기가 되는 날이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와 같은 어두운 이미지가 가득한, 그의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은 이후 수많은 문학청년들의 가슴에 청춘의 화인(火印)을 찍었다. <정거장에서의 충고>는 그의 20주기에 나온 추모문집이다. 지인과 문우들의 고인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이 문집의 편집위원이자 고인과 '목욕탕을 함께 갈 수 있는 사이였다'는 대학친구 성석제씨. 그는 대학시절 문학상을 먼저 받은 기형도 시인이 상금으로 수동타자기와 세계문학전집을 들여놓은 뒤 가늘게 실눈을 뜨고 "너도 상 받으면 먼저 책하고 타자기부터 사"라고 말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묘한 경쟁심 혹은 반발심에 성씨는 상을 받기도 전에 "상금은 내것이나 다름없다"고 호기를 부리며 술값으로 미리 다 써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고인의 충고를 잊지 않았고 다음해 청계천에서 중고 수동타자기와 문학전집을 산 뒤 상금은 내 것이나 다름없다는 흰소리 따위는 않고 글을 써서 문학상을 받았던 일을 기억한다. 어느덧 20년, 중견 소설가가 된 그는 이제 허허롭게 웃는다. "둘 중에 누가 더 장사를 잘했는지 아직 잘 모르고 있다."

시인의 부고를 들었을 때 부친상중이었던 시인 이문재씨. 죽기 나흘 전 그의 상가를 찾아온 고인은 "형, 상복이 참 잘 어울리네요"라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그 난데없는 인사가 자신이 들은 고인의 마지막 육성이었다는 이씨. "그는 늘 나의 아버지와 겹쳐서 떠오른다. 2009년 3월 초순은 혼자서 건너가기가 만만치 않다"며 쓸쓸한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밖에도 1980년대말 문학과지성사 일을 맡고 있던 문학평론가 김병익씨는 그 뜨거운 정치의 계절에도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가장 활발하게 문학기사를 써냈던 젊은 문학기자로 기형도를 추억한다. 고인의 어떤 시 구절처럼 어쩌면 '추억은 황량'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월은 그리움을 증폭시킨다.(이왕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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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거장에서의 충고- 기형도의 삶과 문학
박해현.성석제.이광호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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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전집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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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오늘의한국작가 5
기형도 지음 / 솔출판사 / 199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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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형도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
기형도 지음 / 살림 / 199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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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9-03-07 21:32   좋아요 0 | URL
절판된 책도 있군요.

로쟈 2009-03-08 08:56   좋아요 0 | URL
세월이 흐른 것이기도 하구요...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좀 뒤늦게 올려놓는다. 개강 첫 주라 정신없이 바빴고, 일도 많았다. 물론 그 일들이 다 끝난 건 아니지만, 금요일 밤이라는 핑계로 잠시 한숨 돌린다(내일 일은 내일로 미루자!). 사실 지난달 마지막 날인 28일에 페이퍼를 올려두려고 했으나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웹진이 늑장을 부렸다. 그러니 이렇게 페이퍼가 늦어진 것이 내 탓만은 아니다(돌이켜보니 19일에 올린 달도 있었다!). 이 정도로 변명을 대신하고, '3월의 읽을 만한 책'을 좀 뒤적거려 본다. 흠, 바다 냄새, 화약 냄새가 미리부터 진동하는군... 

1. 문학 

문학분야의 책으로 소설가 신경숙씨가 고른 건 소설가 한창훈의 <나는 여기가 좋다>(문학동네, 2009). 표지에서도 짐작해볼 수 있지만 제목에서 '여기'는 '섬'이고 '바다'이다. 바다와 섬 사람들에 대한 소설. "소설가 한창훈은 바다와, 바다를 생존의 터로 여기고 사는 사람들의 대변인처럼 소설을 쓴다. 오랫동안 그래왔다. 무슨 얘기를 써도 한창훈의 글에서는 바다 냄새가 펄펄 난다. 그러니까 이 소설집의 제목 ‘나는 여기가 좋다’ 란 곧 ‘나는 바다가 좋다’ 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소설가 한창훈, 하면 저절로 그 이름 뒤로 바다가 따라다닌다. 우리나라 바닷가 사람들이 어떤 모양새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려면 사실적인 어떤 기록을 뒤져보는 것보다 한창훈의 소설을 읽는 일이 더 실감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해서 봄보다는 여름이 더 잘 맞을 듯싶은 소설이기도 하다.   

찾아보니 <홍합>(한겨레출판, 1998)으로 널리 이름을 알린 이후에 쓴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문학동네, 2001),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창비, 2003), <청춘가를 불러요>(한겨레출판, 2005) 등도 모두 그의 섬 이야기이고 바다 이야기이다. 이 정도면 일로매진의 대표적인 작가가 아닐까 싶다. 얼핏, <갯마을>의 작가 오영수와 <성삼포>의 시인 이생진이 떠오른다. 제주도의 사진작가 김영갑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휴먼&북스, 2007)은 이 참에 알게 된 책이고(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58495 참조). 흠, 김영갑 갤러리가 제주도 최고 관광지의 하나라고 한다. 제주의 봄이 문득 궁금해지는군...  

2. 역사 

역사학자 이덕일씨가 고른 역사분야의 책은 박재광의 <화염병기>(글항아리, 2009)이다. 서저에서 봤을 때 바로 떠올린 건 영화 <신기전>인데(예고편만 봤다), 실제로 조선의 병기를 다룬 책이어서 신기전 얘기도 나온다고. "고려 말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여러 화기에 대해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이 책은 이처럼 일반의 상식을 뛰어넘는 사례들로 풍부하다"는 것이 추천의 이유다.    

 

무기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보통 전쟁사의 애독자이기도 할 텐데, 저명한 전쟁사가 존 키건의 <1차세계대전사>(청어람미디어, 2009)가 마저 출간됐다. 먼저 나온 <2차세계대전사>(청어람미디어, 2007)의 짝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세계전쟁사>(까치글방, 1996)과 세트를 맞추어도 좋겠다(키건의 책은 몇 권 더 출간돼 있다). 방대한 분량의 세계대전사를 집필한 저자도 놀랍지만, 개인적으론 역자인 조행복씨에게도 경탄을 금치 못하겠다. 작년 봄부터 펴낸 역서가 굵직한 책으로만 여섯 권이다. 더러 지체되어 나온 책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초인적인 작업량이라 아니할 수 없다.   

3. 철학

김상환 교수가 추천한 철학 분야의 책은 나도 최근에 서평을 쓴 바 있는 바우만의 <유동하는 공포>(산책자, 2009)다. 추천사는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속담은 어떤 지각이론을 담고 있다. 그것은 시각이 청각보다 우월하다는 이론이다. 조금 더 비튼다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백 가지 말, 백 가지 설명이 하나의 이미지만 못하다. 백 가지 이야기도 어떤 시각적 이미지로 수렴되지 못하면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다."란 구절로 시작하는데, '3월의 읽을 만한 책'을 소개하는 기사는 이걸 받아서 <유동하는 공포>의 핵심을 "백 가지 말, 백 가지 설명이 하나의 이미지만 못하다는 사례를 들어 이미지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고 요약했다. 이미지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책? 역시나 직접 읽지 않고 들은 풍월로만 전달하다 빚어지는 오류라고 해야겠다.   

이미지 얘기가 서두에 나온 건 바우만의 근대성의 이미지를 '불(빛)'에서 '물'로 바꾸어놓았다는 얘기를 꺼내기 위해서였다.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근대성을 물의 이미지에 담아 설명했다. 이것은 우리가 통상 근대성에 대해 가져왔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계몽, 이성의 빛 등과 같이 근대성을 표현하는 말들은 오히려 밝은 불의 이미지를 중심에 두고 있지 않은가."라는 식으로 말이다. 최근에 바우만의 책을 여러 권 입수했는데, 아직 소개되지 않은 '유동성' 시리즈 몇 권도 마저 출간되면 좋겠다.     

그리고, '물의 이미지로 본 근대'라고 해서 생각난 것인데, 러시아의 근대야말로 '유동하는 공포'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다. 내가 염두에 둔 건 푸슈킨의 서사시 <청동기마상>으로, 표트르대제가 핀란드만 옆에다 세운 인공도시 페테르부크르의 대홍수를 다룬 작품이다. 가난한 하급관리 예브게니가 홍수로 약혼녀를 잃고 헤매다가 나중에는 청동기마상(표트르 대제의 동상)에 쫓긴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알렉산드르 베누아는 그 장면을 이렇게 그렸다.  

 

"가련한 미치광이가 어디로 가든 청동기마상이 무겁게 말발굽 소리 울리며 밤새도록 그의 뒤를 따라왔다." 공포스럽지 않은가?! 이 또한 '유동하는 공포'라 이름붙이고 싶다.  

4. 정치 

손호철 교수가 추천한 정치분야의 책은 공진성의 <폭력>(책세상, 2009)이다. "이 책은 폭력이란 무엇이며, 폭력과 비폭력은 어떻게 구별하고 누가 이 같은 기준을 정하는지, 나아가 폭력과 법과는 어떠한 관계에 있으며 민주주의에서 폭력은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며, 미래 사회에서 폭력은 어떠한 양상을 띨 것인지 등 폭력에 대해 우리가 궁금해 하고 있으며 알아야 할 의문들에 쉽게 답을 해주면서 이 문제에 대해 성찰을 하도록 만들어주고 있다."라고 소개한다.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라서 나는 지난 1월말에 책을 읽었는데, 저자가 주장하는 몇 가지 논점은 다음과 같다. (1)폭력은 파괴를 수반할 수 있는 강렬한 힘이다. (2)그렇기 때문에, 폭력은 두려운 것이지만, 경험과 적응 여부에 따라서 그 강렬함의 정도와 두려움의 정도는 달라질 수 있다. (3)그렇기 때문에 폭력의 폭력성을 결정하는 것은 폭력의 사용자가 아니라 폭력의 대상이다. (4)폭력은 인간과 관련된 것이다. 이러한 논점이 어떤 성찰로 유도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저자는 '민주주의 사회와 폭력' 장에서는 '상징적 폭력'의 문제를 다루면서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대해 16쪽이나 할애하는데, '80년 광주'에 대해선 8줄을 할애하고 있는 것과 너무 대조된다(저자가 합창단 '음악이 있는 마을'의 테너라고 소개된 약력을 보고서야 어찌된 영문인지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동의는 할 수 없다).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폭력을 중지시키기 위해서는 폭력이 필요하며, 폭력을 더 큰 폭력으로 제압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강해져야 하고 더 큰 폭력에  익숙해져야 하지만, 그렇게 폭력에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지면 더 이상 타인이 겪는 폭력을 폭력으로 느낄 수 없게 된다. 이 폭력의 딜레마에서 우리는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140-1쪽) 흠, 다시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 차라리 내게는 사카이 다카시가 쓴 <폭력의 철학>(산눈, 2007)이 더 이해하기 쉽고 유익하다. 결들여 지적하자면, 책은 노무현 정부 시절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의 이름을 '정창호'라고 오기했다.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추천한 경제/경영서는 임상규의 <녹색희망, 농업의 미래>(매일경제신문사, 2009)이다. 저자는 참여정부의 마지막 농림부 장관이었다고 한다.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우리 농업의 현실에 대한 객관적 분석으로부터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이르는 광범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오랜 공직자 생활로부터 우러난 날카로운 정책 감각이 책 전반에 걸쳐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다."   

관심사가 다른 탓에 책을 손에 들 것 같지는 않지만, '녹색'이라는 말이 새로운 '전쟁터'가 되고 있다는 점만은 지적해두기로 하자. 사단은 <녹색평론>이 쌓아온 그간의 입지를 한순간에 어그러뜨리는 '녹색성장'이란 말이다. 우석훈에 따르면(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36940.html), '회색사업'이라 불러 마땅하지만 녹색으로 분칠하고 다니는 탓에 이 유행어는 경계해야 할 키워드의 하나가 되었다. 생태주의와 반생태주의가 모두 '녹색'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니 말의 경제가 '뒤죽박죽'이다. 개념 정리 차원에서 '생태경제학자' 우석훈의 말을 참조해두기로 하자.   

자, 상황은 그렇고, 이명박 정부에서 얘기하는 녹색성장이 과연 녹색인가 회색인가, 이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역사적인 의미로 말하자면, 녹색이라는 단어는 본디 생태주의나 환경주의라는 의미보다는 ‘핵폭탄 반대’라는 의미가 더 깊다. 1960~70년대, 냉전이 깊던 시절 핵실험은 사막과 바다에서 주로 이뤄졌는데, 이 핵실험을 막을 수는 없더라도 그 장소에서 ‘증인’이 되고자 했던 사람들이 녹색이라는 상징을 썼다. 숱한 박해를 당하고, 죽기도 많이 죽었지만, 냉전 시절 가장 강렬한 평화주의자들이 핵실험장에서 같이 죽겠다고 덤볐다는 것이 녹색이라는 색깔이 가졌던 상징이다. ‘그린피스’의 그린을 요즘은 환경 또는 생태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지만, 원래의 의미는 ‘반핵’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는 철저하게 원자력 위에 서 있기로 선택한 것이라서, ‘녹색’은 아니다. 정부의 저탄소 기본계획은 원전을 강화하는 것 위에 서 있기에, 어떻게 치장하더라도 열심히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정부는 기본적으로는 반녹색이다. 녹색 본래의 의미라면, 원자력 발전소의 이른바 ‘셧다운’에 관한 계획을 발표하면서 “우리는 녹색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러나 이 정부는 앞으로도 원전을 많이 지을 것이고, 원전 없이는 한국은 돌아가지 않으므로, 이미 수명이 다한 원전도 자기 마음대로 기술평가를 하고 수명을 늘리겠다고 하는 것이 기조다. 그런 점에서 기본적으로 반녹색이다.

어쨌든 이건 기본에 관한 얘기라고 하고, 실제로 뭘 하겠다는지 한번 살펴보자. 한반도 대운하를 슬쩍 ‘4대강 정비사업’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이게 정부가 사용할 돈의 대부분인 상황인 게 현정국이다. 이 4대강 정비사업은 누가 뭐라고 말해도 시멘트 사업이고, 강바닥을 긁어내고 시멘트 둑을 더 높게 쌓겠다는 게 사업의 실체다. 그래서 역시 회색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기괴한 토건자본의 ‘그린워시’, 즉 녹색 이미지를 뒤집어쓰는 녹색 마케팅이 바로 녹색성장인 셈이다. 그래서 사기다. 이 사기가 언제까지 통할까? 그건 모르겠다. 그러나 사기는 사기다. 골프광 토호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등에 업고, 땅값 올리기 사기사업을 벌이면서 ‘녹색 이미지’를 뒤집어쓴 이 거짓말 사업, 그 결과로 국토 생태는 결딴날 것이다. 녹색성장 사업이 벌어지는 전국 단 한 곳이라도 지역 생태가 버티는 곳이 있을까? 처절한 생태 파괴의 현장이 눈에 보이지 않는가? 이 정부의 사업이 녹색인지는 모르겠는데, 확실히 반생태적이기는 한 것 같다.  

'글로벌 식품의약기업의 두 얼굴'을 고발하는 스탠 콕스의 <녹색 성장의 유혹>(난장이, 2009)도 '녹색 마케팅' 비판서로 읽을 수 있다. "<녹색성장의 유혹>은 녹색 당의에 은폐된 우리들의 일상과 이 시대의 모순을 드러내 보여주는 책이다. 오늘날 전세계를 배회하고 있는 유령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친환경, 생태친화 등으로 불리는 이른바 ‘녹색’이란 은유적 색깔일 것이다. 바야흐로 녹색의 시대인 것이다."란 소개가 인상적이다. 책의 원제는 '병든 지구(Sick Planet)'인데, 전 지구적 '녹색성장'의 필연적인 귀결이 그러할 것이다(아니 이건 '미래'가 아니라 '현재'이다).    

 

6. 사회 

김문조 교수가 추천한 사회분야의 책은 마크 타이너의 <정직한 법조인 링컨>(소화, 2008).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인 만큼 한국인도 가장 숭배하는 미국 대통령이어서 링컨에 관한 책은 다수가 출간돼 있다. "링컨의 변호사 시절을 중점적으로 다룬 이 책은 짓밟힌 민중의 권익 향상을 위해 힘쓰다가 흉탄에 의해 사거한 ‘국민적 영웅’ 링컨의 실상을 파악하려는 동기에서 집필된 것이다. 옮긴이 역시 감상주의로 일관된 ‘링컨 신화’의 거품을 걷어내는 데 진력해 온 흔치 않은 링컨 전문가이다."라고 소개되는 책. 같은 역자가 옮긴 <가면을 벗긴 링컨>(소화, 2008)과 '세트'이다. 한국일보(08. 11. 08)의 서평은 두 권을 이렇게 소개했다. 

<정직한 법조인 링컨>은 법조인으로서의 링컨이 대통령 재임 기간의 5배인 25년 동안 변호사로 있으면서 수임했던 5,600여건의 사건을 통해 그를 조명하는 책이다. 이를테면 그의 공식적 측면을 둘러보는 것이다. 과부에게는 수임료를 받지 않았다든지, 불리한 상황에서도 무고한 사람들의 변호를 열정적으로 완수해 무죄 방면을 이끌어낸 일 등이 서술된다. 하지만 이 역시 통상적인 링컨의 전기작가들이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던 분야다. 책은 링컨이 인용한 영국 법률논문들의 제목까지 일일이 전거하는 등 실증적으로 많은 힘을 기울였다. 노예와 관련된 사건의 소송은 물론 각종 민사소송에서 보여준 링컨의 기민함이 생생하다. 특히 노예 관련 소송에서 그가 "도덕적 판단을 유보, 노예 소유주를 대리"(279쪽)한 일 등은 그가 변호사로서 실증법적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또 다른 한 권은 '달의 뒷면'을 들춰낸다. 진실은 과연 불편한 것인가. <가면을 벗긴 링컨>이 보여주는 링컨에 대한 이야기는 불편하다. 이 책은 '부정직한 링컨의 진짜 얼굴'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노예해방으로 알려진 링컨이 실은 평생 동안 골수 백인 지상주의자였다니. 남북전쟁 당시에는 북부의 정적 수만여명을 투옥하는 것도 모자라, 남부 도시의 포격은 물론 민간인에 대한 살상에까지 일일이 관여했다니. 그것들조차도 약과다. 좌든 우든, 링컨 숭배주의자들이 똑같이 보이고 있는 링컨을 향한 충성심에 비하면 예고편이다. 그들은 정부나 재단으로부터의 재정적 보조를 따내는 데는 귀재였다. 기금과 장학금은 물론, 수만달러가 걸린 '링컨 상'까지 그들의 몫이었다. 9ㆍ11 사태를 두고 "그 어느 때보다 우리가 강력한 중앙정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계기"라고 그들은 입을 모았다. 저자는 "링컨 숭배주의는 미국인들에게 왜곡된 역사를 주입, 오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좌파라고 해서 이런 국가주의적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링컨의 두 얼굴이 징후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이 '미국의 두 얼굴'이고 '두 역사'다. 몇달 전 '장정일의 책 속 이슈'가 생각난다(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23306.html). 미국사의 이해를 위한 기본 초식으로 이 참에 알아두도록 하자.  

남부의 경제적 기반이 대농장이었다면, 북부는 상·공업이 발달했다. 남북의 이질적인 경제구조는 자연 환경에 따른 것이지만, 제임스 M. 바더맨의 <두 개의 미국사>(심산, 2004)를 보면 애초부터 두 지역을 차지한 이민자의 성격이 달랐다. 영국은 장자 상속 원칙에 따라 차남 이하는 유산이 없었다. 남부에 정착한 사람들은 토지상속에서 배제된 지주 계층으로, 그들은 남부에 대농장을 짓고 노예를 부리며 고향의 귀족 생활을 재현했다. 반면 북부에 정착한 사람들은 종교적 자유를 찾아온 청교도로, 근면과 자기 절제라는 노동 윤리에 충실했다.  

남부 귀족들은 노예 노동으로 얻은 농산물을 영국에 팔았고, 영국산 제품으로 사치를 했다. 연방정부는 북부의 상공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영국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했는데 그것이 남북의 대립을 심화시키면서, 미합중국 헌법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었다. 미국 헌법은 연방정부의 통제와 각 주(州)들의 주권 범위를 모호하게 규정해 놓았다. 그래서 일부 남부 주들은 “어떤 주도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연방의 결정을 무효화할 권리”뿐 아니라, “필요하다면 연방으로부터 이탈할 권리까지 각 주에 있다”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건국 이후 지속된 연방주의자와 분리주의자의 한판 대결이 흑인 노예 문제로 불거진 게 남북전쟁이다. 오로지 분리주의자들에 대항해 연방을 건사하려는 목적에서였지 ‘노예해방’ 전쟁은 링컨의 안중에 없었다. 저 유명한 노예해방선언이 발표된 시점이 전쟁 직전이 아니라, 전쟁이 한창인 1863년 1월1일이었다는 점은 그래서 흥미롭다. 링컨은 그 선언을 통해 두 가지 전략적 승리를 거두었다. 남부의 흑인들이 대거 북부로 넘어 온 것과, 도덕적 우위를 확보함으로써 유럽 국가들의 남부에 대한 지원을 차단한 것.   

7. 과학 

장경애 편집장이 추천한 과학분야의 책은 닉 레인의 <미토콘드리아>(뿌리와이파리, 2009). '뿌리와이파리'는 언젠가 언급한 대로 주목할 만한 교양과학서 출판사이고, <미토콘드리아>는 재작년에 낸 <삼엽충>과 함께 소장해둠직한, 탐나는 책이다(나는 아직 구입하지 못했지만). 추천의 변은 이렇다. "한 동안 과학자들은 세포핵을 생명체의 중심으로 간주한 채 미토콘드리아를 주변적 존재로 홀대했다. 그러나 미토콘드리아가 다세포 생명체를 창출하는 진화의 실세임이 밝혀지면서, 생명계의 역동성을 미토콘드리아의 작동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미토콘드리안 패러다임’이 풍미하고 있다. 총 5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에서 저자는 생명체의 탄생, 성장, 분화 노화, 및 죽음과 같은 현상들을 ‘생체 에너지 발전소’에 비견되는 미토콘드리아의 역능을 중심으로 상세히 설명한다.(...) 생소한 개념과 이론들을 소통 가능한 방식으로 알기 쉽게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는 점에서 저자와 역자 모두에게 찬사를 보낸다." 저자의 다른 책으론 절판됐긴 하나 560쪽의 방대한 책 <산소>(파스칼북스, 2004)가 있다.   

8.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재즈책'이다. 정우식의 <언제나 재즈처럼>(고려원북스, 2008). 라디오를 잘 듣지 않아서 저자의 이름이 생소하지만 '올 댓 재즈'란 프로그램의 PD라고 한다. 소개는 이렇다. "음악을 좋아하는 이든 아니면 별로 관심이 없는 일반 생활인이든 간에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하나 나왔다. 엄밀히 말하면 음반 한 장을 권하고 싶다는 말이 더 맞을 듯싶다. 우리나라에서 재즈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유일하게 안식처를 제공하고 있는 CBS FM의 <올 댓 재즈>라는 프로가 있고 이 프로그램 뒤에는 프로를 제작하고 있는 정우식 PD가 있다. 프로를 진행하고 있는 재즈 색소포니스트 이정식은 정우식을 영원한 ‘jazz kid'라 일컫는다. 이 책은 100여 년 이어져 내려온 재즈의 역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33인을 추려, 아주 쉽고 간명하게, 그 인물들의 역사성, 음악적 특징, 대표작, 대표적 음반 등을 소개하고 있다." 참고로 책의 목차는 이렇다. 몇몇 아티스트의 전기는 '현대예술의 거장' 시리즈로 출간돼 있다.   

Jazz의 위대한 순간 Ⅰ New Orleans Jazz & Swing(1895-1940)
위대한 재즈의 발명가 루이 암스트롱 Louis Armstrong
세상에서 가장 슬픈 목소리 빌리 홀리데이 Billie Holiday
The King of Swing 베니 굿맨 Benny Goodman
재즈 보컬의 퍼스트레이디 엘라 피츠제럴드 Ella Jane Fitzgerald
재즈의 연금술사 듀크 엘링턴 Duke Ellington
스윙 백작의 리듬 혁명 카운트 베이시 Count Basie

Jazz의 위대한 순간 Ⅱ Modern Jazz(1940-1959)
비밥(Bebop)의 쌍둥이 찰리 파커/디지 길레스피 Charlie Parker/Dizzy Gillespie
스타일도 하나의 연주다 델로니어스 몽크 Thelonious Monk
늘 새롭지 않다면 그건 더 이상 재즈가 아니다 마일스 데이비스 Miles Davis
재즈계의 원조 꽃미남 쳇 베이커 Chet Baker
재즈와 클래식의 크로스오버 모던 재즈 쿼텟 Modern Jazz Quartet
풍부한 감성으로 재즈를 노래하다 사라 본 Sarah Vaughan
하드밥(Hard Bop) 사관학교의 수장 아트 블래키 Art Blakey
여전히 살아 숨쉬는 색소폰의 전설 소니 롤린스 Sonny Rollins
일평생 ‘스윙’만을 고집한 재즈 피아노 장인 오스카 피터슨 Oscar Peterson
구수한 알토 색소폰의 명인 캐논볼 애덜리 Cannonball Adderley
실험성과 대중성의 인상적인 만남 데이브 브루벡 Dave Brubeck
신과 대화하는 색소폰 연주자 존 콜트레인 John Coltrane 

 

Jazz의 위대한 순간 Ⅲ Soul/Fusion/Contemporary Jazz(1960-1993)
인상파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 Bill Evans
보스 기타(Boss Guitar)의 출현 웨스 몽고메리 Wes Montgomery
새로운 물결, 보사노바의 두 거장 스탄 게츠/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Stan Getz/Antonio Carlos Jobim
재즈계의 카멜레온 허비 행콕 Herbie Hancock
퓨전재즈의 소장파 웨더 리포트 Weather Report
피아노 즉흥연주의 신기원 키스 자렛 Keith Jarrett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베이시스트 자코 파스토리우스 Jaco Pastorius
라틴 향 물씬한 퓨전재즈 칙 코리아 Chick Corea
재즈 기타리스트에서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조지 벤슨 George Benson
건반 위의 마술사 밥 제임스 Bob James
색소폰으로 노래하는 연주인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 Grover Washington Jr.
모두에게 다가온 재즈의 설렘, Feels so good 척 맨지오니 Chuck Mangione
재즈 보컬 4인방의 즐거운 재즈 맨해튼 트랜스퍼 Manhattan Transfer
황금비율로 만난 컨템퍼러리 재즈 명콤비 데이브 그루신/리 릿나워 Dave Grusin/Lee Ritenour
우리 시대 진정한 재즈 스타 팻 메스니 Pat Metheny  

9. 교양 

이한우 기자 꼽은 교양서는 고종석의 <어루만지다>(마음산책, 2009). 이미 소개한 적이 있는 책이다(http://blog.aladin.co.kr/mramor/2514691). <도시의 기억>(개마고원, 2008)과 마찬가지로, 한국일보의 연재를 묶은 것이다. 추천자에 따르면, "입술, 감추다, 메아리, 미끈하다, 혀놀림, 가냘프다, 발가락, 손톱, 잇바디, 꽃값, 모름지기, 바람벽, 그네, 무지개, 미리내, 누이, 엇갈리다, 궂기다, 어둑새벽, 켤레, 간지럼, 밴대질, 눈물, 딸내미, 속삭임, 스스럼, 술, 한숨, 보름, 그믐, 거품, 춤, 그대, 구슬, 어루만지다, 서랍, 버금, 비탈, 엿보다, 주름. 모두 40개의 우리말을 단서로 고종석이 준비한 향연은 때로는 외설적이다가도 어느새 순정적이다.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그의 해박함을 즐기는 것 또한 고종석만이 줄 수 있는 뜻밖의 즐거움이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낀 것만으로 ‘언어학자’ 고종석에게 참 고맙다." 언어학자가 아닌 '객원논설위원'으로서 고종석이 쓴 시평들을 묶은 <경계긋기의 어려움>(개마고원, 2009)도 이번에 출간됐다. 실생활의 경험에서 말하자면, 고종석은 전철에서 읽기에 가장 좋은 저자의 한 사람이다. 3월엔 고종석 '3종 세트'와 함께해보시길...   

10.  기형도

아동분야에 추천된 알렉상드르 자르뎅의 <알록달록 공화국>(파랑새, 2009)도 흥미를 끌지만(예전엔 '알렉상드르 자르댕'으로 소개됐었다), 이달에도 내 맘대로의 카테고리를 만든다. 오늘(3월 7일) 20주기를 맞은 '기형도'가 이 달의 특별한 카테고리이고, 사실 늦게라도 이 페이퍼를 쓴 이유의 절반은 이미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된 그의 이름을 상기하기 위해서다. 어제 귀가길에 나는 심야극장 대신에 대헝서점에 들러서 이번에 나온 추모문집 <정거장에서의 충고: 기형도의 삶과 문학>(문학과지성사, 2009)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좌석버스의 침침한 불빛 아래서 몇 편의 글을 읽었다. 89년 봄의 몇몇 일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살아있었다면 그도 어느덧 지천명의 나이다! 

물론 기형도에 대한 개인적인 안면이나 기억은 갖고 있지 않다. 중앙일보의 기사들과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입>(문학과지성사, 1989)이 나오기 전에 발표된 시편들을 기억할 따름이었다. 그의 죽음도 시집이 나온 뒤에야 알았거나 그냥 '단신'으로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시집을 읽은 뒤, 기형도란 이름은 지나칠 수 없는 이름이 됐다. 10년쯤 전에 기형도 시에 대해 나대로 글도 쓰고 강의도 한 적이 있다. 그가 첫시집의 제목으로 생각해두었다는 <정거장에서의 충고>를 읽고 덧붙일 말이 더 있을지 생각해볼 작정이다. 그래서 '3월의 읽을 만한 책'에 포함시켜둔다.   

09. 03. 06-07.  

P.S.  이달에 읽을 고전은 밀턴의 <실낙원>이다. 작년 6월에 한번 꼽아본 적이 있지만, 고전은 '읽기'의 대상이 아니라 '다시 읽기'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두 번 꼽는 일이 흠은 아니겠다(사실은 이번에야 읽는 것이지만). 밀턴 전공자인 박상익 교수의 <밀턴 평전>(푸른역사, 2008)과 편역서 <아레오파기티카>(소나무, 1999)도 같이 읽을 책이다. 낙원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의 신세가 '신화'로만 읽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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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r 2009-03-07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이 페이퍼가 올라오지 않길래, 새학기가 시작되어서 정신없이 바쁘시구나 했습니다. 이번달도 고맙습니다^^

로쟈 2009-03-07 11:33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시간을 좀 잡아먹는 페이퍼라서 늦어지게 됐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3-07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0년대에 정음문고나 삼성미술문고로 번역된 휘이어가 쓴 링컨전기에도 링컨은 연방을 구하기 위해 전쟁을 했지 노예해방을 위해 한 것이 아니라고 링컨이 말했다고 나와 있는데 한국인은 커녕 미국인들도 그런 걸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그런데 저는 성인이 된 뒤에 그 책을 읽어서 그런지 그다지 큰 충격은 안 받았습니다.물론 당시 남북전쟁 때 영국노동자들이 남군에 가는 물자하역을 거부하면서 노예해방에 공감했고, 마르크스 역시 링컨을 지지한 점을 간과해선 안되지만요.

로쟈 2009-03-08 08:57   좋아요 0 | URL
그래서 '두 얼굴'이겠죠. 이면만을 볼 건 아니라는 의미에서도...

노이에자이트 2009-03-08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저는 링컨을 좋아해요.정치가로서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전쟁을 지휘했다고 봅니다.

로쟈 2009-03-08 16:10   좋아요 0 | URL
제가 어릴 때 읽은 전기는 '좋은 쪽'만 얘기해서, 뒤늦게 균형을 잡으려고 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3-08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도 역사적 인물들의 어두운 면을 그릴 수 있는 풍토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