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다(경찰의 허술한 수사로 보아 '자살'도 확정된 사실은 아닌 듯하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국내외 정세가 어수선하다. 두 사건의 절묘한 '타이밍'이 이번에도 의혹을 품게 하는데, '음모론'을 제쳐놓는다 하더라도 남북한의 대립정국이 강경파들의 입지를 더 강화시켜줄 것임은 자명하다(오늘 뉴스를 보니 전시작전권 환수조차도 유예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모양이다). 소위 '적대적 공존관계'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관련 인터뷰기사에 있기에 스크랩해놓는다.    

시사자키(09. 05. 27) “북한, MB 구출 작전에 나섰나?” 

▶ 진행 : 변상욱 대기자(CBS 라디오 '시사자키 변상욱입니다')
▷ 출연 :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손호철 교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국민들의 안타까움과 원망이 치솟는 듯했습니다만, 바로 뒤이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주춤하면서 모두가 당혹스러움과 혼란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정부가 PSI 전격 가입을 선언했으니까 잠시 뒤면 북한에서 뭔가 툭 튀어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사람들은 그런 얘기 많이 하죠. “참 잘도 맞아들어간다, 북한이 아예 때를 보면서 저렇게 해주는 것 아니냐, 현 정부가 정말 운도 좋다, 어떻게 적이 아니라 아군이 하나 있는 것 같다.” 이런저런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일부 학계에선 '이런 게 적대적인 의존관계'라는 해석도 나오는데요. 손호철 교수와 함께 이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 진행/변상욱 대기자> 현 남북 상황을 두고 '적대적 의존관계, 적대적 공범'이라는 얘기도 나오는데요. 이런 개념은 예전부터 있었던 겁니까?

▷ 손호철 교수> 그렇게 오래 되진 않았지만 십여년 전부터 사용되는 개념입니다. ‘적대적 상호의존’, ‘적대적 공존’, ‘적대적 공생’, 이런 단어들을 쓰는데요. 겉으로 보기엔 서로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공생관계인 것, 즉 자신의 존재가 상대방에 의존하고 있는 관계를 흔히 얘기하는 것이고요. 과거에 우리 군사정권, 소위 우익이라고 부르는 극우정권들, 그리고 사실 세습까지 해서 그걸 좌파라고 불러야 할진 모르겠지만 북한의 좌파정권이 서로 대립하지만 사실은 북한이란 존재가 있음으로써 한국의 극우세력은 소위 반공논리로 자기를 유지할 수 있고요. 북한의 경우엔 마찬가지로 남한정부나 미국이 있음으로해서 자기네들의 논리를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은 의존하는 관계, 이런 걸 흔히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진행/변상욱 대기자> 이건 평소 서로 간에 교감이 은밀하게 오고 간다는 것과는 다른 거죠?

▷ 손호철 교수> 그건 다른 거죠. 음모설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 사실상 구조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의도하지 않게 서로 도와주고 있는 관계를 지칭하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진행/변상욱 대기자> 예를 들면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대중, 김영삼이라고 하는 야당의 두 지도자는 아주 오래된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 역시 나름대로 수긍이 가는데요. 지금의 이 상황,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된 이 상황도 그렇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 손호철 교수> 북한의 핵실험 소식을 듣고 북한이 이명박 대통령 구출작전에 나섰나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는데요.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건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이명박 정부는 상당히 위기에 봉착해있고, 그런 국면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함으로써 사실상 굉장히 국민의 관심이 다른 쪽으로 흘러가고 이명박 정부가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줬다는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와 북한이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북한의 핵실험이라는 게 이명박 정부를 도와주는 공생의 관계라는 식으로 해석할 수 있겠죠.  

 

그런데 그것에 대응해서 이명박 정부가 그동안 미뤄왔던 PSI에 전면 참가하겠다고 얘기했는데요. 그렇게 되면 북한의 강력한 대응에서 우리도 강공책으로 대응하는 것인데, 남한의 PSI 가입이라는 게 북한 체제에 상당히 군사적 위협이 됩니다. ! 그래서 북한 국내적으로 경제도 어려운데 김정일을 중심으로 한 북한 체제를 강화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후계구도에도 도움을 주는, 그래서 사실상 서로 대립하고 있지만 서로 그 대립을 통해서 득을 보는 측면이 있는 거죠. 그런 것이 적대적 상호의존관계,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불리는 관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진행/변상욱 대기자> 북한으로서는 이렇게 한 대 툭 치면 보나마나 저쪽에서 반발이 일어날 테니 그걸 업고 자기들의 내부결속도 다질 수 있는 거겠군요?

▷ 손호철 교수> 네.

▶ 진행/변상욱 대기자> 이게 교감이 이뤄져서가 아니라 서로 운명적으로 그런 관계에 놓여있다는 말씀이겠죠?  

▷ 손호철 교수> 네.

▶ 진행/변상욱 대기자> 다른 나라에도 이런 예가 있나요?

▷ 손호철 교수> 그렇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게 냉전시기에 미국의 강경파, 특히 군부군수업체와 소련의 강경파 군부는 서로 공생관계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서로 대립하고 있지만 상대방이 군비를 늘리면 우리도 '야, 저거 봐라, 저기도 미사일 만들고 하는데 우리도 무기를 늘려야 한다'고 해서 국방예산을 늘리고, 그만큼 자기들의 영향력은 더 강해지는 것이고요. 그래서 사실 우리가 보면 탈냉전 이후에 힘을 잃어버린 군부가 서로 짜고서 의도적인 긴장을 만들어낸 영화들이 나오는데, 바로 그런 것들이 냉전시기에 있었던 소련과 미국이나 이런 국가들간에 강경파들의 의존적 관계를 얘기한 것이고요.  

 

또 가까이는 9.11 테러가 있었는데요. 오사마 빈 라덴과 거기에 아주 극우적인 대응을 했던 부시 대통령의 관계도 그런 대립적인 관계죠. 결국 9.11 테러라는 게 부시라고 하는 냉전적이? ?극우적인 대통령의 입지를 강화시켜줬는데, 그것이 결국 이라크 침공으로 일어나게 되니까 이슬람 강경파들을 더욱 강화시켜주는 악순환이 이뤄졌기 때문에 서로는 대립하지만 미국 내에서의 부시라고 하는 강경파의 입지, 그리고 이슬람 지역에서 오사마의 입지라는 건 서로 의존하고 있는 관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진행/변상욱 대기자> 말씀을 듣고 보니 중국에서 동북아공정을 하면 일본에서 역사 왜곡을 하고, 그럼 우리도 대마도도 우리 땅 만주도 우리 땅이라고 나올 수도 있는 거군요.

▷ 손호철 교수> 그렇습니다.

▶ 진행/변상욱 대기자> 그런데 시민사회 입장에서 보면, 나름대로 세력을 가지고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그룹들이 이렇게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 마치 가운데서 왔다갔다 농락당하는 기분도 들고요. 그럼 시민사회는 이걸 어떻게 파악하고 대처해야 할까요?

▷ 손호철 교수> 동북아를 얘기한다면 그런 의미에서 그런 대립을 반대하는 의식 있는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들, 이런 사람들이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그런 상호의존의 악순환을 깨는 노력이 더 필요한 것이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그런 적대적 상호의존에 반대되는 비적대적인 연대 같은 게 적대적인 상호의존을 깰 수 있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09. 05. 27. 

P.S. '자살'도 확정된 사실은 아니라고 적었는데, 적어도 현재까지는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다음의 아고라에서는 타살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데, 추측이긴 하나 경찰이 제시하고 있는 시나리오가 워낙에 허술하고 설득력이 떨어지기에 오히려 더 눈길을 끈다). 여기서는 정식으로 보도된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국경제(09, 05. 28) VIP 혼자 두고… 119 연락 않고…업고 뛰고…풀리지 않는 의혹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3일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이병춘 경호과장(45)에게 심부름을 시킨 뒤 투신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운우 경남경찰청장의 발표에도 불구,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한 몇 가지 의문점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정확한 사망시점은 언제인지,상식을 벗어난 응급처치와 경호수칙을 무시한 경호관의 행동,5분 거리의 119센터에 신고하지 않은 배경 등이 핵심 의혹으로 떠오르고 있다.

◆경호수칙 왜 안 지켰나
경찰 조사 결과 노 전 대통령은 사고 당일 경호관과 떨어져 혼자 있는 동안 투신했다. 이는 '경호 대상을 시야에서 벗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가장 기본적인 경호수칙을 지키지 않은 것.전직 청와대 경호실 관계자는 "특수한 경우까지 세세하게 명문화돼 있지는 않지만 대통령이 뭔가를 지시하면 자신은 대통령의 곁을 지키고 무전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게 요인 경호의 상식"이라고 설명했다. 경호관 한 명이 노 전 대통령을 수행한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김창호 경기대학교 경호학과 교수는 "보통 경호는 군대 경계근무처럼 복수의 인원을 통해 상호감시한다"며 "상식적으로도 전직 대통령이 산행을 하는데 경호관이 한 명밖에 수행하지 않은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응급처치 ABC도 몰랐나
이날 경호를 맡았던 이 과장은 투신한 노 전 대통령을 사고현장에서 업고 공터로 내려와 인공호흡을 실시한 걸로 밝혀졌다. 하지만 응급의학 전문의들은 추락환자에 대한 심폐소생술 등 구급조치 요령을 알고 있는 대통령 경호관의 대응으로 보기에는 '어이없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왕순주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사건현장에서 이 과장이 기본적인 생사 확인 절차를 거쳤는지 알 수 없다"며 "통상 추락환자를 발견했을 때 똑바로 눕혀 숨을 쉴 수 있도록 기도를 확보한 뒤 머리를 잡고 인공호흡을 하는 게 기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무리하게 업고 옮기면 부러진 뼈가 내장을 찌르는 등 심각한 부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인공호흡 조치 이후에는 119센터에 연락해 기다리는 게 최선책"이라고 덧붙였다. 추락환자에 대한 구급조치 요령을 모를 리 없는 대통령 경호관이 119센터에 신고하지 않고,낙상한 노 전 대통령을 들쳐 업고 옮겼다는 건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왜 119센터에 신고하지 않았나
김해 봉하마을 사저에서 불과 4.19㎞ 정도 떨어진 곳에 진영 119센터가 있다. 응급차로 5~6분 거리다. 지난번 사저 뒷산에 산불이 났을 때도 진영119에서 출동했었다. 환자가 심장이나 호흡에 심각한 장애가 있다면 사고 발생 후 5분 이내에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를 받아야 한다. '5분이 목숨을 살린다'는 소방격언도 있다.

하지만 23일 사고 당일 진영 119센터에는 노 전 대통령 추락 신고가 접수되지 않았다. 진영 119센터 관계자는 "신고가 들어온 적도 없고 모든 이송 과정을 청와대 경호팀에서 한 걸로 알고 있다"며 "온몸에 골절상을 입은 위급환자를 119응급차가 아닌 승용차로 옮겼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의아해했다.

◆정확한 사망 시점은
서거한 지 4일이 지났지만 노 전 대통령의 정확한 사망 시점은 여전히 의문이다. 세 차례 경찰조사 발표 어디에도 사건당일 사고현장에서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정확한 신체 상태에 대한 진술은 찾아볼 수 없다. 발견 당시 숨을 쉬고 있었는지,맥박은 뛰고 있었는지 등 사망 시점을 가늠해볼 만한 진술이 공개되지 않고 있는 것. 다만 시신을 수습한 부산대병원이 발표한 '23일 오전 9시 30분'이 노 전 대통령의 공식 사망 시간으로 기록돼 있을 뿐이다.

노 전 대통령을 응급치료한 병원 두 곳도 당시 상황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당일 오전 7시에 경호차로 실려온 노 전 대통령을 가장 먼저 살펴본 김해 세영병원 측은 "도착 당시 의식불명 상태"라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공식 사망을 발표한 부산대병원 의료진도 "호흡이 없고 심장이 뛰지 않아 사망상태라고 판단했고 심폐소생술은 응급조치 절차상 이뤄진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현재로선 사고발생 후 119응급차량이 노 전 대통령을 후송하지 않아 현장에서 즉사했는지,병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사망했는지 전혀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봉하마을=이재철/김일규/서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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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09-05-27 23:44   좋아요 0 | URL
셋이 빼닮았군요. 판박이에요.

로쟈 2009-05-28 07:40   좋아요 0 | URL
닮아가는가 봅니다...

푸른바다 2009-05-28 00:14   좋아요 0 | URL
자살이 확정된 사실이 아닌 건 아니겠지요... 아마 경호책임의 문제 때문에 허위진술이 있었을 것입니다...

로쟈 2009-05-28 07:40   좋아요 0 | URL
상식적으론 그런데, 사건의 진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의문점이 많습니다. 알려진 내용도 너무 적고...

푸른바다 2009-05-28 09:48   좋아요 0 | URL
의문점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여기서 온갖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는여지가 있겠지요. 여기서 기사는 경호원 'FM'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FM이란 말의 출처인 군대를 비롯해서 우리 사회 곳곳에는 'FM'이 지켜지지 않는 게 상식입니다. 제 경험으론 FM을 많이 말하는 한국 사람이 특히 FM을 지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투신'은 아마 그 경호원 입장에서 볼 때 단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충격적인' 사태였을 것입니다. 그 경호원도 그 상황에서 아마 누구도 느껴보지 못한 당혹과 충격 그리고 고독을 느꼈을 것입니다. 물론 훌륭한 경호원이었다면 FM에 따른 행동을 했겠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네요.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태에 대한 불안감, 이를 모면하려는 심리 등등이 비FM적인 행동을 하도록 하지 않았을까 하는게 제 생각입니다. 아무튼 이 문제는 본질적인 사항은 아닌 것 같습니다...

merci 2009-05-28 09:35   좋아요 0 | URL
의문점이 많은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각도 있군요. http://basil83.egloos.com/4960116 유의미한 지적이라고 생각됩니다.

푸른바다 2009-05-28 09:44   좋아요 0 | URL
인용하신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제 생각과 비슷하네요...
 

다들 비슷한 처지겠지만, 어제부터 책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할일은 태산이건만 자꾸 뉴스나 클릭하고 TV화면에 눈길을 준다. 사적인 인연은 없으니 비통하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조문 사진들을 보다 보면 저절로 눈물도 난다. 뭔가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어렵다. 5공 청문회부터 현재까지 그가 살아온 역정이 대부분 '공적 기억'에 입력돼 있으니, 즉 '우리의 기억'이니 이런 상실감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3김 시대'와는 또 다른 것이다). 작고한 평론가 김현이 팔봉 김기진을 두고 '뜨거운 상징'이라 부른 바 있는데, 아마도 노무현 또한 한국 정치사의 '뜨거운 상징'으로 우리에게 남을 듯싶다. 그걸 해석하고 거기에 적절한 의미부여를 하기까지, 그 의미를 실천할 때까지 우리는 망연할 듯싶다. 정처 없을 듯싶다...   

마음을 붙잡기 어려워 궁여지책으로 지난주에 출간된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도서출판 숲, 2009)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천병희 선생의 노고로 그리스 3대 비극작가의 전집이 완역되었다(예전에 나온 단국대출판부판의 개정증보판이겠다). 다음 세대의 번역이 나오려면 한 30년은 기다려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널리 읽혀서 얼른 보급판까지 나오면 좋겠다는 바람을 적어둔다.      

한겨레(09. 05. 23) 비극의 한가운데 스스로 두 발로 선 인간 

‘그리스 정신의 가장 위대한 구현’으로 불리는 3대 비극작가의 작품이 완역됐다. 그리스·로마 고전 번역에 매진하고 있는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말 <아이스퀼로스 전집>(전 7편)과 <소포클레스 전집>(전 7편)을 펴낸 데 이어 이번에 <에우리피데스 전집>(전 19편)까지 완역·출간함으로써 그리스 3대 비극작가의 작품 전체가 국내 최초로 원전 번역을 통해 한국어본을 얻었다. 그리스 정신의 깊숙한 곳을 우리말로 읽어낼 수 있게 된 셈이다.  

세 비극시인은 그들의 고국 아테네의 전성기가 낳은 아들들이자 기원전 5세기를 그리스 문화의 황금기로 만든 주역들이다. 후대의 그리스인들은 세 사람을 모두 살라미스 해전(기원전 480년)과 연결해 기억했다고 한다. 살라미스 해전은 페르시아 대군의 침략에 맞서 아테네가 승리함으로써 그리스 패자가 되는 기점이다. 아이스퀼로스(기원전 525~456)는 45살 때 이 해전에 전사로 참가해 싸웠다. 10대 소년이었던 소포클레스(기원전 497~406)는 해전 승리를 찬양하는 축제에서 합창단 선창자로서 신을 찬미하는 노래를 불렀다. 또 그리스인들은 에우리피데스(기원전 485~406·사진)가 이해에 출생했다고 믿었다. 실제로는 그보다 4~5년 앞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지만, 어쨌거나 이 일화에는 세 비극시인을 살라미스 해전과 함께 기억하려는 그리스인들의 소망이 담겨 있다. 요컨대, 세 비극작가는 아테네의 영광과 거의 동일시되는 인물들인 것이다.

세 사람은 그리스 비극 전성기의 초기·중기·후기를 각각 대표한다. 가장 앞선 아이스퀼로스는 합창 중심의 조잡한 무대에 대화를 도입함으로써 비극을 정립한 사람이다. 아이스퀼로스와 더불어 비극이 비극으로서 탄생했다. 소포클레스는 극중 대화 장면을 늘리고 규모를 키움으로써 비극을 완성시켰다. 이어 에우리피데스는 인물들의 내면을 입체적으로 구현함으로써 비극의 성격을 전환했다. 에우리피데스 이후로도 그리스 비극은 만들어졌지만 한번도 앞 시대의 영화를 재현하지는 못했다. 3대 비극작가와 함께 그리스 비극은 태어나고 완성되고 변모한 뒤 사멸하고 만 것이다. 그것은 그대로 아테네 문화의 흥성과 쇠퇴를 반영한다.  


» 에우리피데스(기원전 485~406) 

세 비극작가의 작품은 거의 모두 영웅 신화를 소재로 삼는다. 그러나 주제로 들어가면 세 사람의 작품 세계는 뚜렷하게 나뉜다. 아이스퀼로스 비극의 주인공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신이다. 신들은 인간들의 운명에 직접 개입한다. 인간은 ‘죄와 벌’의 사슬에 묶여 극한의 고통에 몸부림친다. 아이스퀼로스의 최고 성과로 꼽히는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이 죄와 벌의 긴 사슬을 장대하게 보여준다. 아르고스의 왕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에 출전하기 위해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자, 왕비 클뤼타임네스트라는 돌아온 왕을 죽여 딸의 원수를 갚는다.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는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에게 복수한다. 오레스테스의 복수는 모친 살해라는 또다른 죄를 낳을 수밖에 없는데, 갈등하는 오레스테스에게 복수를 명령하는 이가 아폴론이다. 신이 주재하는 질서 안에서 한없이 고통받던 인간이 그 고통을 통해 지혜를 얻는다는 것이 아이스퀼로스가 비극을 통해 보여주려 한 세계인식이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인간이다. 주인공이 신에서 인간으로 바뀐 것이다. 소포클레스에게 신들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며, 그들이 인간에게 부과하는 운명은 당혹스러운 수수께끼다. 그 운명 안에서 인간은 결연한 의지로써 난국을 돌파하려 하지만, 그럴수록 인간은 운명의 수렁에 빠져든다. <오이디푸스 왕>에서 주인공 오이디푸스는 자기 나라에 역병이 돌게 된 원인이 선왕의 억울한 죽음에 있다는 말을 듣고 무슨 일이 있어도 선왕 살해자를 찾아내 응징하고야 말겠다고 다짐한다. 결국 그 자신이 범인으로 밝혀지는데, 스스로 현명하다고 믿었던 오이디푸스는 ‘보고도 보지 못한’ 자신의 눈을 찌르는 자기 응징을 감행한다. 소포클레스와 더불어 ‘비극적 아이러니’는 최고의 효과를 발휘하며 운명에 갇힌 인간의 한계를 겸허히 인식하게 한다.

에우리피데스에 이르러 인간은 신과 무관한 인간 자신이 된다. 인간들은 스스로 알아서 행동하되 모든 결과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존재다. 이때 비극을 끌어가는 힘으로 등장하는 것이 인간 내면의 심리작용이다. 증오와 사랑, 고통과 환희라는 내면의 격정이 무대 위에서 처음으로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에우리피데스 비극의 인물들은 격정 속에서 복수의 칼을 휘두른 뒤 후회와 두려움에 휩싸인다. 에우리피데스가 비극을 쓰던 때는 아테네 정치가 위태로운 국면에 접어든 때였다. 그의 작품에는 쇠락해가는 시대의 분위기가 짙게 배어 있으며, 안으로 민주주의가 위축되고 밖으로 제국주의적 행패가 심해진 아테네에 대한 깊은 걱정이 담겨 있다. 옮긴이는 이런 시대비판적 태도 때문에 에우리피데스가 앞 시대 작가들만큼 인기를 얻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에우리피데스의 우려는 펠로폰네소스전쟁 패배 후 아테네 몰락으로 현실이 된다.(고명섭기자)   

서울신문(09. 05. 23) 천병희 교수 희랍 원전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번역 출간

“아무도 안 하기에 그냥 재미로 시작했다.”는 번역일이 벌써 30여년. “뛰어난 후배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지만 희랍어 문학 번역에서 천병희(70) 단국대 명예교수는 여전히 독보적 존재다. 이번에는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숲 펴냄)을 두 권으로 옮겨냈다. 이로써 지난해 나온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전집과 함께 고대그리스 3대 비극시인의 작품을 모두 정리해 낸 것. 3대 시인 작품을 희랍어 원전 번역본으로 가진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뜻깊을 것 같은데 그는 그저 “전집을 내면 좋겠다 싶었는데 내고 나니 그냥 좋네.”라고만 말한다. 그가 처음 3대 비극시인의 작품에 손을 댄 건 1970년대 초다. “그때는 나도 힘이 들고 출판 사정도 그렇고 3대 시인들 대표작만 모아서 냈어. 더 냈으면 냈으면 하면서 한편 두편 늘리다 결국 이번에 그리스 비극 33편을 모두 끝낸 거지.”

처음 희랍어 원전 ‘아가멤논’, ‘오이디푸스왕’을 묶은 뒤 이번에 완역까지 35년가량 걸린 셈이다. 물론 그 사이 ‘일리아드’, ‘오디세이’ 등 문학작품은 물론 헤로도토스 ‘역사’, 플라톤 ‘국가’ 같은 역사·철학서들도 그의 손을 거쳤다. 하지만 그는 “35년 세월동안 다른 일을 하면서도 마음은 늘 거기 가 있었다.”고 한다.

희랍어와 인연을 맺은 지 50년이 지났지만, 그 시작은 우연에 가까웠다. “라틴어 수업 들으려다가 시간표가 안 맞아서 그냥 희랍어를 들었지. 처음에는 별로 재미가 없었는데 장익봉 교수의 플라톤 ‘향연’ 강독을 들으면서 푹 빠졌지.” 강독이라지만 너댓명 정도 학생이 돌아가며 읽고 번역하는 수업, 학생이 하나둘 빠지더니 언젠가는 혼자 강의를 들은 날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술자리 이야기처럼 편안한 ‘향연’을 읽는 게 너무 좋아 계속 희랍어를 공부했다. 그러다 “아무도 하지 않고 있더라.”는 이유로 번역까지 손댄 것이다.

그는 “희랍 문학 등 서양 고전을 모르면 문화 전반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힘주어 말한다. 요즘에는 좋아하는 ‘향연’같은 술자리도 가지지 않고 “본래 작가의 뜻을 최대한 냉정히 전달하겠다.”며 하루 7시간씩 번역에 매진한다는 천 교수. 지금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번역 하고 있다. “그거 끝나면 쫌 쉬어야지. 철학서적 번역이야 잘하는 후배들 많은데 뭐. 다음에는 쉬엄쉬엄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이나 정리하려고.” ‘쉬엄쉬엄’이란 그의 말이 가벼이 들리지 않는다.(강병철기자) 

09. 05. 24. 

 

P.S. 주요 그리스 비극 작품이 완역되었다는 것은 이제 그리스 비극에 관한 입문서나 연구서를 마음놓고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도 된다. 천병희 선생의 <그리스 비극의 이해>(문예출판사, 2002), 김상봉 교수의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한길사, 2003), 그리고 임철규 교수의 <그리스 비극>(한길사, 2007)이 국내서로 우리가 참조할 수 있는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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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9-05-25 08:54   좋아요 0 | URL

한겨레에서 에우리피데스 완간 기사를 읽었습니다.
지난주 신문에서는 큰 기사던 작은 기사던 로쟈님 책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예상대로 알라딘에서는 종합 1위군요...^^

로쟈 2009-05-25 09:19   좋아요 0 | URL
네, '홈그라운드'라고 많이 응원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릴케 현상 2009-05-25 10:36   좋아요 0 | URL
지금은 사회과학 주간베스트 2위네요^^ 홈그라운드 응원이 좀 더 필요해!!요

로쟈 2009-05-25 23:36   좋아요 0 | URL
1위가 <예수전>이예요. 불경한 일은 삼가하렵니다.^^;

가넷 2009-05-25 20:08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서 전면적으로 광고 해주는 건가요? 접속하자마자 크게 뜨네요.ㅋㅋㅋ;;

로쟈 2009-05-25 23:37   좋아요 0 | URL
아직도 뜨나요?^^

드팀전 2009-05-25 21:16   좋아요 0 | URL
오늘 낮에 서점에 나갈 일이있어서 간 김에 샀습니다. ^^ 편집이 갈끔하데요...앞쪽 진열대에서 어떤 뇌성마비 총각이 로쟈님의 책을 힘겹게 넘기며 훑어보는 것을 봤습니다. 이제 잘 나가줘야 할텐데요...

로쟈 2009-05-25 23:38   좋아요 0 | URL
제가 봤다면 감동할 뻔했습니다.^^ 책이 좀 무겁죠?^^;

[해이] 2009-05-25 21:37   좋아요 0 | URL
악... 책을 읽고싶어 미치겠습니다. 빨리 다음달이 되어야 카드를 긁을수가 있기에ㅋㅋ

사회과학서적1위 재탈환을 위한 대장정을 시작해야지요 ㅋ

로쟈 2009-05-25 23:38   좋아요 0 | URL
그게, 글의 제목을 서재에서 검색하시면 한 80%는 읽으실 수 있는데요.^^

베토벤 2009-05-27 00:58   좋아요 0 | URL
저작권때문이겠지만 로자님이 직접 링크하셨던 사진들이 없어서인지 살짝 밋밋한 느낌이. ^^; 물론 모니터가 아니라 책의 질감을 느끼면서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로쟈 2009-05-27 01:19   좋아요 0 | URL
네. 이미지는 제약이 많더군요. 김기덕 영화의 포스터를 넣지 못해서 개인적으론 아쉽습니다...

sophia49 2009-05-29 05:17   좋아요 0 | URL
천병희교수님의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구입했습니다.
우리아이...책 표지목록이 하나 더...늘어갑니다.
어제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민음사>를 가지고 놀고있더군요...

로쟈 2009-05-30 10:09   좋아요 0 | URL
^^
 

국민적 애도 분위기 속에서도 책은 읽어야 하고 밀린 원고도 써야 하는 게 현실이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책은 마크 마조워의 <암흑의 대륙>(후마니타스, 2009)이다. '20세기 유렵 현대사'가 부제이긴 하나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파시즘이라는 세 개의 경쟁적인 이데올로기의 투쟁에 초첨을 맞추고 있는 '독특한' 역사서다(현대 유럽사가 원래 이런 방식으로 씌어지는 게 아니라면). 그러한 이데올로기 투쟁이 아직도 한반도의 경험적 현실인 점을 고려하면 여러 모로 반면교사가 될 만한 책이겠다(저자는 그 20세기 유럽사를 통해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하며 유럽이 본래 얼마나 전체주의적인가를 보여준다). 관련리뷰를 옮겨놓는다.   

한국일보(09. 05. 23) 20세기 유럽사, 중세보다 더 암흑적인…

악다구니 드잡이를 가리켜 "구라파 전쟁"이라 하는 관용적 표현은 옳다. 유럽의 자중지란적 양상은 절대왕정, 제국주의를 거쳐 현대로 올수록 더하다. 19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의해 정치ㆍ경제적으로 통합돼 현재 27개의 회원국을 거느리고 있는 유럽연합(EU)으로 발전하기 전까지, 대략 1세기 동안 유럽은 '암흑기'였다. 그 양상은 중세의 암흑보다 더 궤멸적이었다.  



이 책은 20세기 유럽을 두고 "거대한 묘지 위에 세워진 실험실"이라 축약한다. 민주주의, 진보, 자유 등의 가치 위에 20세기 유럽사가 기반한다는 어설픈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뭐라 둘러대도, 그 결과가 고작 나치의 인종주의적 파시즘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었다는 사실은 살아남은 자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저자는 지난 세기 각축을 벌였던 전체주의(파시즘), 자유주의, 사회주의(공산주의) 가운데 가장 유럽적이었던 것이 전체주의라고 단언한다. 현대 사회의 모든 가치들을 세계대전이라는 현장에서 과격하게 실험했던 유럽의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 당시를 재현한다.

20세기 유럽사는 야만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하루에 6,000여명씩, 모두 800만여명의 남자가 숨졌다는 악몽을 떨쳐내기 위한 각종 노력에서 이미 감지됐던 바이다. 1차대전의 악몽에 시달리던 좌우 진영은 우생학, 즉 보다 나은 인간형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열망에 매달렸다.  

나치당은 권력을 잡게 되자 정신질환자는 물론 혼혈아와 청소년 범죄자에게까지 불임 수술을 강제로 실시했다. 나치에서 볼셰비키까지, 국가는 "우생학적 입장에서 인적 자원의 양뿐만 아니라 질에도 관심을"(142쪽) 기울여야 한다는 구실로 집시 박해 등 인종 청소의 징후를 드러냈다. 아우슈비츠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시도했던 자본주의 실험은 우리 시대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무솔리니가 경제적 자유주의를 사문화시키고 시도했던 '파시즘적 자유주의, 서유럽 진영이 시도한 '민주주의적 자본주의' 등은 자본주의적 질서로 통합된 21세기가 자세히 들여다 봐야 할 대목이다. 두 차례 대전의 사이, 유럽은 공적 권력과 사적 권력 간의 균형점을 모색했고 민족경제에 눈떠 경제 호황의 길을 열었다.

유럽이 유럽인 것은 미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중문화 등 일상의 부문에서 미국의 영향이 두드러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반미주의, 다민족사회의 가능성 등은 유럽을 왜 다시 읽어야 하는지 환기시켜 주고 있다. 미국의 20세기가 물질문명의 탐욕과 증식을 보여준다면 유럽의 20세기는 그 후속편이다. 저자는 "1989년 격변의 진정한 승자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였다"(533쪽)며 "과거의 정치적 이정표가 사라지고 선두에서도 밀려난 유럽은 이제 다양성과 차이의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가야 할 것(540쪽)"이라 전망했다.

복잡다단한 사실들의 틈바구니에는 현대를 통찰할 촌철살인적 명제가 숨어 있다. 1930년 바이마르 공화국의 총리가 했다는 "민주주의가 없는 민주주의는 대내외적으로 위험하다"(46쪽), 1941년 히틀러의 "유럽은 지리적 실체가 아니라 인종적 실체"(222쪽), 1953년 이탈리아의 한 경영인이 했다는 "여성이 제일 중요하다. 그 다음이 개와 말이고, 남자는 제일 마지막이다"(410쪽)는 등의 말은 21세기를 내다본 것은 아니었을까. 



영국 출신으로 미국 콜럼비아대 역사학 교수인 저자 마크 마조워(사진)는 이 책으로 '에릭 홉스봄, 닐 퍼거슨과 함께 현대 유럽사 3대 연구자'라는 저간의 평가를 새삼 확인시켰다.(장병욱기자) 

09. 05. 24.   

P.S. 발칸 지역 연구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는 저자 마조워의 책으론 <발칸의 역사>(을유문화사, 2006)가 먼저 소개돼 있다. 히틀러 시대에 관한 두 권의 책, <히틀러의 제국>과 <히틀러의 그리스>도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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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09-06-02 13:28   좋아요 0 | URL
로쟈라니,어쩐지 러시아냄새가 난다 했는데...결국...내 짐작이 완전 틀린 것은 아니었어. 처음엔 박노자인가 했던 것을...아무튼, 한마디 덧붙이면 가지않은 길 출판사는 로쟈씨가 아는 사람이 야심차게 동업(?)했던 출판사였다는 사실을 로쟈는 모르겠지....돈도 벌고 세상도 빛나게 하고...하지만 둘은 양립불가능하다는 사실과 꿈이 모호하면 오래 갈 수 없다는 진실을 일깨워준 경험이었던....그 옛날, 그야말로 12년 전이 생각나는군.

로쟈 2009-06-02 13:32   좋아요 0 | URL
"가지않은 길 출판사는 로쟈씨가 아는 사람이 야심차게 동업(?)했던 출판사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요.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자살로 추정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놀랐다. 이런저런 뉴스 시청과 검색 등으로 오전 두 시간을 흘려보냈다. 청와대만큼 '침통'하지는 않더라도 애석한 마음은 금할 수 없다. 불명예스런 검찰 수사와 향후 '일정' 등을 감안하면 더이상의 '추락'을 방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방책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그를 지지하긴 했지만 대통령 임기 중에 그는 많은 이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 사실이다(지지자들의 기대가 너무 컸거나 수구세력의 반발이 기대 이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왜 그랬던 것인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더 연구/분석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당장은 여하한 사정과 무관하게 착잡한 마음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    

'노무현'과 특별한 연고나 사적인 기억을 나로선 갖고 있지 않다. 모두가 글이나 이미지 등의 매체를 경유한 '노무현'이었다. 다만 떠올려보니 직접 가까이(?)에서 한번 보고 육성을 들은 적은 있다. 그게 특이하게도 한국이 아니라 러시아에서다. 지난 2004년 9월 하순에 노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했고 모스크바국립대학에서 기념강연을 가진 적이 있었다(당초 9월초로 예정돼 있었지만 베슬란 테러 사건 때문에 하순으로 늦춰졌었다). 나는 청중으로 한국학생들과 함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때의 소감을 지금은 비공개로 돌린 '모스크바통신'에 올려 놓은 적이 있는데('크레믈린-보드카-러시아여성'이 제목이었다), 내겐 유일한 '인연'인지라 다시금 소환해놓는다...   

어제(*9월 22일인가 23일이다) 모스크바대학에서는 노대통령의 강연이 있었다. 강연 장소는 기숙사가 있는 본관 건물의 2층 강당이었기 때문에(입학식 등의 행사가 치러지는 곳이기도 한데, 내 방 창문 밖으로 바로 보이는 곳이다) 딱히 안 가볼 수도 없었다(이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도 같은 장소에서 강연을 한바 있다고). 강연은 11시 15분쯤으로 예정돼 있었고, 나는 기숙사에 있는 다른 한국 학생들과 같이 10시쯤에 방을 나서서 본관 로비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줄을 섰다. 생각보다는 많은 러시아학생들이 이미 줄을 서 있었다. 2층 출입구 양쪽에 있는 보안 검색대를 한 사람씩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줄은 좀처럼 줄지 않았고, 우리는 30분을 기다려서야 강연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높은 천장의 단층 강당은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 않았는데, 얼추 좌석만 봐서는 2,000명이 못 들어갈 듯싶었다. 좌석 배치는 ‘교회식’이었는데, 정면을 향해서는 1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두 줄로 죽 늘어서 있었고, 좌우 측에는 서로 마주보면서 계단식으로 5-6줄의 좌석이 늘어서 있었다. 단상 정면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양식의 커다란 벽화가 그려져 있고, 그 양 옆 벽면에는 마르크스와 레닌의 두상과 함께 각각 그들의 발언으로 ‘열심히 공부하라’는 얘기가 적혀 있었다. 볼쇼이 극장 맞은편에 있는 마르크스의 대형 흉상처럼(“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자본주의 러시아’와는 좀 어울리지 않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풍경이었지만, 이것도 ‘역사’이지 싶었다.    

11시가 넘어서자 좌석은 거의 다 찼고(한국인 학교에서 단체로 온 어린 학생들도 있었다), 영부인과 보좌진들이 먼저 일반 객석에 착석한 이후에 아나운서의 우렁찬 소개와 함께 노대통령이 모스크바대학 총장의 안내를 받으며 입장했다. 참석자들은 기립 박수로 한국의 대통령을 맞이했다. 그리고 곧장 울려 퍼진 건 모스크바대학 교가였다(이런 게 러시아식인가 보다는 생각을 했다).  

내년에(정확히는 1월이다) 설립 250주년을 맞는 모스크바대학에 특별히 한국의 대통령이 방문해 주신 것에 감사한다는 총장의 환영사에 이어서 대통령의 강연이 있었다. 30분 남짓 진행이 됐는데, 강연 내용은 한국의 언론이나 방송에서도 이미 소개가 됐을 것이므로, 자세히 언급하지 않는다. 으레 행사 때의 강연문들이 그렇듯이 강연은 ‘상식적인’(혹은 상투적인) 회고와 앞으로의 전망으로 채워져 있었다. 요점은 모스크바대학 학생 여러분은 러시아의 장래인바, 한국과 러시아가 상호협력적이고 발전적인 관계로 새로운 동북아 시대를 열어가는 데 관심을 갖고 함께 노력해가자는 것.   

이 강연문은 행사가 끝나고 나오면서 기념품(볼펜과 샤프 세트)과 함께 받았기 때문에, 지금 내 책상에 있다. 내가 새롭게 안 사실은 두 가지인데, 첫째는 모스크바대학이 노벨상 수상자를 6명 배출했다는 것과 현재 이 대학에 200여명의 한국인이 수학중이라는 것(어학연수생이나 연수주재원을 다 포함한 숫자일 것이다). 어쨌든 한국에서도 직접 보지 못한 대통령을 먼 이국 땅에서 보게 된 건 좀 특이한 경험이었다(거짓말 같은).  

강연이 끝나고 간단히 질의응답이 있었는데, 시간관계상 2명의 질문만을 받았다. 하나는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무얼 하고 싶으냐는 것이었는데, 대통령의 대답은 대학생이 되고 싶고, 특히 모스크바대학에서 공부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물론 학생들은 박수로 환호했다). 두 번째 질문은 한국의 (경제)성공 비결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는데, 대통령은 한국인들의 ‘의지’와 교육열을 들었다. 다른 일정 때문에 질문을 더 받을 수 없다면서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덧붙인 ‘립 서비스’는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을 보충하는 것이었는데, 모스크바대학 여학생과 결혼하고 싶다는 것(좀 썰렁한 ‘농담’이었는데, 러시아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것이 공식적인 마지막 멘트였다.   



강연에 이어서는 노대통령에 대한 명예박사학위 수여와 (학교를 대표하여) 총장의 기념품(나무로 조각한 수공예품 백조였다) 증정이 있었고, 끝으로 한 한국인 성악가(여기 유학생인가?)와 모스크바대학 합창단이 우리 가곡 ‘선구자’를 불렀다(이 노래가 3절까지 있는 줄은 새삼/처음 알았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생각나는 대로 가사를 적어놓고 보니(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구절은 모호하다. “거친 꿈이 깊었나?” 왜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가란 뜻인가? 선구자는 이미 어딘가에 묻혀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불러서 될 일이 아니고 발굴해야 될 일 아닌가?..   

강연과 관련한 기록은 거기까지다.  

09. 0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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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2009-05-23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근데 글이 너무 재미있어서 돌아가신 분에게 누가 되는 것 같아요.

로쟈 2009-05-23 13:40   좋아요 0 | URL
네, 중간에 일부를 삭제했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읽을 때마다 많이 배우게 되는 칼럼이 있다. 한겨레에 연재되는 '시대를 읽는 문학'이 그런 종류다. 내일자 칼럼을 읽고 생각난 김에 지난달 칼럼까지 옮겨놓는다. 연재의 타이틀 자체가 쉽게 '감당'할 수 성질의 것이 아닌데, 박혜영 교수의 칼럼은 유려함과 침착함, 그리고 날카로움을 겸비하고 있다. 본받을 만하다.    

 

한겨레(09. 05. 23) 작가여, 누구의 사랑을 받을 것인가 

경제사상가인 슈마허의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세 명의 친구들이 모여 누구의 직업이 가장 오래된 것인지를 두고 내기를 벌였는데, 먼저 외과의사인 친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를 떼어내 이브를 만드시는데, 이게 바로 외과에서 하는 수술이지.” 그러자 건축가인 친구가 말했습니다. “글쎄, 하지만 하나님은 그 일을 하시기 전에 먼저 혼돈으로부터 이 우주를 만드셨지.” 두 사람의 논쟁을 듣던 경제학자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 혼돈을 누가 만들었지?”

가장 오래된 직업이 경제학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요즘 우리 사회도 태초의 혼돈만큼이나 여러 가지 경제문제로 어지럽습니다. 환율과 주식 가치는 급변하고, 외환위기설은 끊이지 않으며, 공기업의 구조조정과 공공재의 민영화 논란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돌이킬 수 없는 가장 큰 혼돈은 바로 정부가 ‘경제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우리 국민을 향해, 우리의 계곡과 강을 향해 선전포고도 없는 개발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는 데 있습니다. 경기부양을 위해 정부가 시작한 이 소리 없는 전쟁으로 무고한 철거민들은 반체제 테러리스트로 체포되었고, 지금까지 평화롭게 흐르던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은 그동안 방치되었다며 느닷없이 대토목공사용 정비소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일견 평화롭게 보이는 일상의 한가운데 앞으로 대혼란을 초래할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이 보이지 않는 전쟁에 주목하는 작가들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는 제국주의 전쟁으로 무너진 자기 시대를 돌아보며 “선인은 모든 신념을 잃어버리고, 악인은 강렬한 열정에 사로잡혀 있다”라고 슬퍼했지만 우리 시대의 개발 전쟁으로 인한 이런 파괴는 누가 지켜보며 슬퍼해줄까요? 매스컴의 관심을 끌 만큼 웅장한 서사도, 대규모의 학살도, 대폭발의 섬광도 없는 시시한 이 전쟁을 예민한 작가들이 아니라면 과연 누가 주목해줄까요?  

이 총성 없는 전쟁은 ‘이름 바꾸기’로 시작됐습니다. 강제철거 사업이 ‘뉴타운 개발사업’으로 바뀐 것처럼 경인운하 사업도 ‘아라뱃길 잇기’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마찬가지로 한반도 대운하 사업도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친근하게 개명됐습니다. 물론 이름이 달라진다고 정체가 바뀐 것은 아닙니다. 아라뱃길 잇기도 김포에서 인천까지 수심 6미터의 깊이로 한강을 파내는 사업이고, 4대강 살리기도 4대강을 모두 수심 6미터의 깊이로 파내는 사업입니다.  

거기다 4대강에는 물을 가둬둘 총 16개의 콘크리트 보와 96개의 중소 규모의 댐을 잇달아 만들 계획입니다. 2011년 완공까지 예산 규모가 14조원이 넘는 대규모 사업입니다. 참고로 세계 최대의 간척사업이었다는 새만금 사업이 10년 동안 1조2000억원 규모였습니다. 실제로 민간에서는 4대강 정비사업 예산이 앞으로 더 불어나 20조원이 넘을 거라며 흥분하고 있습니다. 새만금의 20배에 가까운 돈을 불과 3~4년 만에 그야말로 폭포수처럼 4대강에 쏟아붓는다면 우리의 강은 어떻게 될까요? 강물도 저들 관료와 건설업자와 학자들처럼 흥분될까요? 이 사업이 첫 삽을 뜨는 순간 정부 발표로도 여의도 면적의 22배에 해당되는 농지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오래된 마을이 수몰되고, 나무가 잘려나가고, 농지는 매립되고, 이웃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이것은 수백억원짜리 댐을 하나 건설할 때도 반복되던 일입니다. 하물며 14조원이 넘는 사업이면 얼마나 많은 파괴가 일어나겠습니까? 

일찍이 인도 작가인 아룬다티 로이는 국가가 추진하는 ‘개발’이란 그 사회의 가장 약한 자들에게 싸움을 걸어 이들을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작은 것들의 신>으로 일약 세계적 명성을 얻었던 로이는 1999년 인도 대법원이 나르마다 강의 댐 공사 재개를 결정하자 명성과 부를 뒤로하고 바로 반정부 운동에 나섰습니다. 왜냐하면 인도의 아름다운 계곡과 강은 그녀의 작가적 상상력의 원천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슴까지 차오르는 강물 속에서 가난한 농부와 어부들과 함께 저항하면서 로이는 3200개의 댐을 건설하는 나르마다 강 재개발 사업이란 결국 이 강에 생존을 의지했던 무수한 약자들의 삶을 무너뜨리려는 전쟁임을 알아챘습니다. 로이는 나르마다 강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한 사람의 작가를 간절히 찾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누가 밀려나고 누가 이득을 챙겼는지, 약자들의 삶은 어떻게 무너지고 어떻게 다시 이어질 수 있는지, 전문용어와 회계 수치 뒤에 가려진 이런 보이지 않는 진실들을 들려줄 작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곧 낙동강과 금강의 아름다운 금모래, 은모래들이 사업비를 벌기 위해 골재로 팔려 나가게 됩니다. 구불거리던 물길은 쫙 펴지게 되고, 갈대밭이 있던 강둑은 시멘트벽으로 미끈하게 포장되고, 곳곳에 생길 담수용 댐으로 주변 산들의 허리는 벌겋게 깎이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분명히 어떤 선을 넘고 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저 아름다운 계곡과 강이 우리 세대만의 것일까요? 겨우 유람선이나 바지선 몇 대 띄우려고 농지를 파괴하고 농부들을 내는 것이 과연 발전일까요? 이 거대한 대토목공사의 이해관계는 또 서로 어떻게 얽혀 있을까요? 개발로 누가 쫓겨나고 누가 이득을 보게 될까요? ‘알타이문화연합’이나 ‘중도실용정부’만 작가를 부르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계곡과 강도 나르마다 강처럼 작가를 찾고 있습니다. 하천 준설이니, 수상 레저니, 다기능 복합발전 인프라 구축이니 이런 추상적인 말이 아닌, 강에 의지해 살아온 사람들과 작은 생물들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언어로 들려줄 작가를 말입니다. 국가나 대통령이 아닌 우리의 계곡과 강으로부터 영원한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그런 작가를 말입니다.(박혜영 인하대 교수·영문학)   

 

한겨레(09. 04. 18) '필요’만 허용되는 헐벗은 삶이여 

최근 정부는 208명이던 국가인권위의 규모를 164명으로 대폭 축소시켰다. 인권위의 인원이 ‘불필요하게’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로는 인권위가 처음 생겼던 2002년에 비해 인권 관련 민원이 10배 이상 증가했지만 정부는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구조조정을 했다. 또 거의 비슷한 시기에 정부는 국립오페라 합창단도 해단시켰다. 42명의 단원들이 그동안 4대 보험도 안 되는 비정규직으로 일했지만 알고 보니 규정에 없는 임의단체라는 이유에서였다. 인권위와 마찬가지로 2002년 처음 창단된 이래 오페라합창단의 공연 횟수는 두 배 이상 늘었지만, 정부는 ‘필요없다’며 전원을 해고시켰다.  

사람을 필요한 사람과 불필요한 사람으로 가르는 것은 비단 정부만 하는 짓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효율성이나 필요성이란 말은 정부, 기업, 학교, 병원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사람을 털어낼 때 사용하는 구조조정용 잣대가 되었다. 아마도 ‘자른다’는 말을 사람에게 처음 쓰기 시작한 것도 우리 시대부터일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엔 눈에 보이는 것만 존재하는 게 아니며, 사람이 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지 못할 때 우리 삶이 어떤 비극으로 떨어질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은 한때 왕이었던 리어의 처참한 몰락을 통해 사람살이의 비극적인 모습을 그린 희곡이다. 흔히 리어는 욕심 사나운 두 딸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모욕과 분노를 겪은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사람다운 삶을 오직 ‘필요성’의 잣대로만 재단하는 그런 세계가 사실은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묻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늙은 리어는 세 딸 가운데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고 허풍을 떤 두 딸에게만 영토를 물려준 뒤 자신은 100명의 수행원들을 데리고 두 딸의 왕국을 오가며 편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리어의 낭만적인 생각은 이내 본색을 드러낸 두 딸들의 현실논리 앞에 여지없이 무너진다.  

먼저 불필요한 수행원 수를 줄이지 않으면 받아줄 수 없다고 한다. 큰딸은 100명은 많으니 50명으로 줄이라고 하고, 둘째딸은 50명도 많다며 25명으로 줄이라고 한다. 그러자 다시 큰딸은 우리가 돌봐드리니 실은 한 명도 필요 없다고 되받아친다. 두 딸의 배은망덕에 격분한 리어는 사람의 삶을 필요성으로 논하지 말라며 이렇게 고함친다. “오, 필요를 논하지 말라! 가장 미천한 거지도 가장 보잘것없는 것이나마 여분을 갖는다. 자연이 인간본성에 필요한 것 이상을 허락지 않는다면 인간의 삶은 짐승만큼 비천할 것이다.” 늙은 왕은 마침내 사랑하던 막내딸도, 드넓은 영토도, 왕의 지위도 모두 잃어버린 채 껍데기만 남아 거지와 광대와 광인들과 함께 황야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끝끝내 리어는 두 딸들이 말한 필요성의 현실논리에 순응하지 않는다. “싫다! 늑대나 올빼미와 한 무리가 되어 필요성의 날카로움에 쥐어뜯기느니 맹세코 모든 거처를 버리고, 모든 증오에 맞서 싸우는 편을 택하겠다.”  

리어의 말대로 사람이 단지 생을 연명하기 위한 것, 그 이상을 삶에서 누릴 수 없다면 우리는 더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두 딸들에게 ‘불필요한’ 것을 모두 빼앗기고 광야를 헤맸던 미친 리어처럼 그런 삶에서는 인간 정신이 깊이 병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위 불필요한 것은 모두 빼앗기고, 오직 필요한 것만 허용되는 삶이란 짐승처럼 그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만 사는 삶이며, 이런 ‘헐벗은 삶’을 강요하는 사회에서는 당연하지만 예술이나 인권은 결코 뿌리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필요성의 논리로 보면 마치 물이 빠진 갯벌이나 물이 고인 늪지가 모두 불필요하게 보이듯이 예술이나 인권도 불필요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찍이 리어가 두 딸에게 절규했듯이 만물은 눈에 보이는 ‘필요성’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봄날 새싹도 보이지 않는 땅의 힘으로 움터 나오는 것이며, 가을날 알곡도 밤하늘의 달빛과 별빛으로 익어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제대로 여물려면 보이지 않는 것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마치 나무에게 물만 필요한 것이 아니듯이, 새에게 먹이만 필요한 것이 아니듯이. 만약 가끔 잎사귀를 흔들어주는 바람이 없다면, 그리고 마음껏 날갯짓할 텅 빈 하늘이 없다면 나무도 새도 모두 살지 못할 것이다.  

지금처럼 오직 경제논리로만 삶을 저울질하게 되면 그동안 필요성의 영역 밖에 존재했던 모든 것들이 점차 필요성의 영역 안으로 넘어오게 된다. 곧 나무는 목재가 되고, 강은 운하가 되며, 갯벌은 용지가 된다. 이렇게 자연이 그저 쓰고 버리는 자원이 되면 다음엔 사람도 그저 쓰고 버리는 인력이 된다. 그래서 필요성의 논리가 횡행하는 사회는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고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불필요할 때는 희소하지 않던 것들이 일단 필요성의 테두리 안에 들어오게 되면 갑자기 희소해지기 때문이다. 가령 물은 희소하지 않지만 수자원으로 바뀌면 늘 부족하게 되고, 땅은 희소하지 않지만 택지로 바뀌면 늘 부족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부족하지 않지만 인력으로 바뀌면 경쟁력 있는 인적 자원을 늘 부족하게 된다. 이런 사회는 오직 경쟁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사람들은 더 많은 필수품을 확보하기 위해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하게 되고, 일평생 이런 악다구니에 시달리다보면 인간의 존엄성도, 아름다운 예술도 마침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 땅에서 짐승처럼 살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보이지 않는 불필요한 것들의 필요성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극작가 이오네스코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우리가 쓸모없는 것의 유용성과 쓸모 있는 것의 무용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라는 바로 노예와 로봇의 나라가 될 것이다.” 예술이나 인권은 노예나 로봇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필요성’이나 ‘효율성’의 논리에 갇혀 있는 한, 우리가 자유인으로 살 수 있는 가능성도 닫히게 될 수밖에 없다.(박혜영/인하대 교수·영문학)  

09. 05. 23. 

P.S. '날카로움'으로 치자면 요즘 내가 애청하고 있는 CBS 시사자키의 '서화숙의 송곳' 코너를 빼놓을 수 없다(http://www.cbs.co.kr/radio/pgm/?pgm=1383). 한국일보 서화숙 편집위원의 매섭고도 재치있는 시사만평이 그나마 답답한 현실에 청량제가 돼준다. 지면 칼럼으로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한국일보(09. 05. 07) [서화숙 칼럼] 고리를 끊었습니까

모란은 향기가 있다. 한 그루만 꽃이 펴도 삽상한 내음이 온 마당을 채운다. 모란이 향기가 없다는 속설은 <삼국유사>에서 비롯된다. 선덕여왕이 공주 시절, 중국에서 모란 그림을 보내왔는데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꽃이 향기가 없다는 것을 맞췄으니 공주는 영특하다는 내용이다. 식물에 무지한 일연의 시각이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문화에서 과거의 왕후(王候)를 영웅시하는 것은 이와 비슷하다.

박지원이 당대로서는 진보적이었다지만 한자로만 글을 쓴 사람인데, 박지원의 개혁성조차 참아내지 못한 정조가 개혁 성군이고 시아버지와 권력투쟁을 하느라 나라를 말아먹은 명성황후는 구국의 여신이 된다. 그보다 더 한심한 대원군도 연속극으로 들어가면 꽤나 현명한 인물로 나온다. 천추태후나 광개토대왕이나 당대의 권력가였을 뿐 양식이라고는 21세기의 범인 축에도 못 낄 인물을 불세출의 덕성을 가진 영웅으로 불러내는 문화에는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이 훌륭하다는 이 시대의 가치관이 들어있다. 



돈 많고 권력 있어야 영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과 이혼율이 가장 높고 출산율은 가장 낮으며 노동시간이 가장 많고 일에 대한 만족도는 가장 낮으면서 잠조차 가장 적게 자는 한국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영웅이 아니다. 양익준 감독의 영화 '똥파리'에는 좀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영웅이 등장한다.

주인공 상훈은 용역깡패니 공적으로는 비루하기 짝이 없는 인생이지만, 사적으로는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때문에 누이와 엄마를 잃고도 배다른 큰누이와 조카에게는 살갑다. 강한 자로부터 받은 폭력을 약한 자에게는 되물림하지 않는 영웅으로는 남편으로부터 학대 받으면서 자식은 지키던 여주인공 연희의 엄마와 상훈의 큰누이도 있다. 연희의 엄마는 폭력가정을 떠나지 못하다가 죽어서 딸에게 물려주지만 보다 젊은 상훈의 큰누이는 이혼하고 자식을 데려옴으로써 폭력의 고리를 끊는다.

가난한 사람들과 글쓰기 공부를 할 때 30대 중반의 남성이 발표를 했다.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어머니는 형만 데리고 집을 나갔다. 아버지는 재혼을 했다. 그는 계모와 친부의 학대에 시달리다 못해 초등학교 4학년 때 가출을 했다. 공부는 그걸로 끝이었다. 음식점에서 일하면서 요리솜씨는 익혔지만 조리사 시험을 볼 때마다 필기 시험에서 떨어졌다. 좌절감에 술에 빠지기도 했다. 나중에 엄마를 만나보니 형은 고등학교는 마쳤다. 배다른 동생도 고등학교는 나왔다. "공부는 내가 제일 못했지만 그래도 나쁜 짓은 절대로 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말을 할 때 그도 입술을 깨물었고 같이 듣던 사람들도 모두 울었다. 그에게 밀어닥친 불행의 주먹질을 그는 온몸으로 맞으며 그걸 남에게 풀지 않았다.

폭력 불행의 고리를 끊는 게 영웅

그러나 이 영웅들은 대접받지 못한다. 상훈은 그가 공적인 영역에서 배출하던 폭력성의 대가로 맞아 죽고, 현실의 30대는 알코올 중독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불행과의 싸움에서 완전히 져서 자살을 선택하는 이들도 많다. 가정이 불행하면 학교가, 사회가 잡아줘야 하는데, 학교에는 불행한 청소년을 117대나 때리는 정신 나간 교사가 있다.

폭력과 불행의 대물림은 꼭 가난한 가정의 일만은 아니다. 부모의 냉대가 가슴 아팠다며 늙고 약해진 부모를 냉대하거나 자식들에게 화풀이하는 어른들은 도처에 있다. 그러니 내 아버지처럼 어머니처럼, 혹은 내가 겪은 교사처럼 내 자식에게 화풀이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는 이들은 이 폭력의 고리를 끊는 위대한 싸움을 하는 영웅들이다. 그 힘겨운 투쟁에서 져서 죽지 말라고, 당신은 위대한 싸움을 하는 중이라고 격려해주는 문화가 필요하다. 돈 많이 버는 것을 성공이라고, 한 자리 차지한 사람을 영웅이라고 부르지 말자. 다만 제게 닥친 불행을 더 약한 이에게 대물림하려는 욕망을 끊는 이를 영웅이라고 부르고 영웅이 되기 위해 조금씩이라도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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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5-23 00:13   좋아요 0 | URL
폭력의 고리를 끊는 게 영웅-매우 좋은 내용입니다.평소 제 소신을 시원하게 말해주네요.

로쟈 2009-05-24 11:47   좋아요 0 | URL
네, 학교 교육도 그런 사례를 다루면 좋겠어요...

2009-05-24 0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24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요시비 2009-05-24 12:10   좋아요 0 | URL
효우리(소년법6호처분시설아동들)들의 이야기를 판박이 해놓은
내용입니다. 불행과의 싸움에서 이길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면 합니다. 저의 까페에 퍼갑니다. 감사

로쟈 2009-05-24 20:36   좋아요 0 | URL
'효우리'라고 부르나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