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장대 같은 소나기가 내리는 탓에 학교 강사실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마침 건축 전문 월간지 <공간(SPACE)>(6월호)이 배송되었기에 막간에 잡지에 실은 서평이나 옮겨놓는다. 예술경제학서로 분류되는 한스 애빙의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21세기북스, 2009)에 대한 것이다. 글은 잡지에 게재된 버전으로 수정했다.

SPACE(09년 6월호)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란 소설 제목도 있지만, ‘예술가’를 가장 빈번하게 수식하는 형용사는 ‘가난’이 아닐까 싶다. ‘가난한 예술가의 초상’이야말로 예술가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구성한다. 비록 ‘부유한’ 예술가들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가끔씩 발표되는 예술가들의 경제형편에 대한 설문결과는 그러한 고정관념과 배치되지 않는다. 대다수 예술가들의 평균소득이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며, 창작만으로는 한 푼도 벌지 못하는 ‘소득 제로’ 예술가도 적지 않다. 반면 생존 작가의 그림이 100억 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기도 하고 구스타프 클림트나 반 고흐의 그림은 1억 달러가 넘는 가격에 낙찰되기도 한다.  

상위 5%의 스타급 예술가들이 전체 소득의 95%를 가져간다니 예술사회 또한 전형적인 ‘승자독식사회’지만,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경제학 관점에서 보면 뭔가 특이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예술가들의 소득수준이 낮은 이유는 뭘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들이 예술가가 되려고 하는 것일까? 왜 예술분야에서는 각종 지원이나 기부 등의 후원영역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일까? 네덜란드의 예술가이자 경제학자인 한스 애빙은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21세기북스 펴냄)에서 바로 그런 질문들을 던진다.   

책의 부제는 ‘예술경제의 패러독스’로 간단히 말하자면 예술은 두 얼굴을 갖고 있다는 것. 멋들어진 오페라하우스와 화려한 오프닝, 엄청나게 부유한 예술가와 부유한 후원자들의 세상이 하나의 얼굴이라면, 자기 돈을 써가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다른 부업과 여러 가지 지원금을 통해서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또 다른 얼굴이다. 한편에서는 예술의 신성함을 주장하며 상업성을 외면하고 혐오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오히려 그러한 외면/혐오를 상업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대관절 예술이 무엇이기에?  

사회학적 관점에서 저자가 내리고 있는 예술의 정의는 이렇다. “예술이란 사람들이 예술이라 부르는 것이다.” 즉, 무엇이 예술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사람들의 사회적 인식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정의에서 ‘사람들’이 가리키는 건 대중이라기보다는 ‘예술계’에 속하는 일부 사람들이다. 즉, 보다 구체적으로 정의하자면 “예술이란 일부 사람들이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인 셈이다. 이 정의가 의미하는 바는 예술이 특정한 사회적 계층이 갖고 있는 예술적 취향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으며 예술을 정의하는 힘은 사회적으로 불평등하게 분포돼 있다는 것이다.   

보통 사회적 계층에 따라 각기 다른 예술적 취향을 갖고 있다. 우월한 예술과 열등한 예술, 상위예술과 하위예술의 구분은 그러한 취향의 차이가 낳는다. 그럼에도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다면 그건 한 그룹의 예술적 취향은 무시되는 반면에 다른 그룹의 예술적 취향은 존중된다는 뜻이다. 이것을 저자는 ‘문화적 비대칭성’이라고 부른다. 알다시피 부와 명예, 사회적 지위는 일부 계층이 독점하며, 예술은 그들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표시하는 수단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처럼 되고자 ‘신분상승’을 꿈꾼다. 즉 ‘사회적 사다리’에 올라타고자 하는 것인데, 상징적인 차원에서 그 ‘사다리’에 해당하는 것이 상위계층의 예술적 태도와 취향이다. 곧 상위계층은 하위예술을 무시하지만, 하위계층은 상위계층을 동경한다. 예술에 대한 신화와 일반적 숭배는 그렇게 탄생한다.  

예술은 실용품이라기보다는 사치품이다. 어떤 실용적인 용도를 목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인 경험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듯 비실용적이고 사치스러운 예술이 진정한 예술로 정의되고 인정받는다. 왜냐하면 예술의 그러한 존재방식 자체가 귀족적이기 때문이다. 예술의 비실용성은 실용성에 크게 개의치 않는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매력이 된다. 자신의 지위와 우월성을 과시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술시장은 문화적 우월성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의 장이 되며, 특정한 예술가에 대한 주목과 과잉경쟁은 그렇게 해서 생겨난다. 결과적으로 예술시장은 극소수의 예술가가 천문학적 수입을 올리는 승자독식시장이 되며, 마치 복권에서처럼 ‘당첨자’를 제외한 대다수 예술가들은 빈곤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그렇다고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아무런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물론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해서 후원을 얻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강한 예술창작의 동인이 되는 것은 금전적인 보상을 대신한 ‘심리적 소득’, 혹은 ‘비금전적 내적 보상’이다. 바로 자신이 재능이 있고 뛰어난 인간이라는 자만심과 자기기만이 그들로 하여금 자발적인 가난을 선택하도록 만든다. 예술가들의 가난과 예술세계의 구조적인 빈곤이 지속되는 이유이다. 상위예술과 하위예술의 경계가 점차 사라지게 되면 예술경제의 특수성이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도 사회적 계층이 존재하는 한 예술경제의 특수성도 지속될 것이라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09. 06.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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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nusDei 2009-06-02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책 출간 이벤트에 실력과 운이 없고 타이밍도 맞지않아 참여를 못했는데, 대신 '예술가는 왜 가난해야할까'라는 제목에 몇자 씁니다. 얼핏 쓰려니 거친말 같아서 네이버 사전을 찾으니 '사물의 모양새나 됨됨이'라는 뜻이 있군요. 꼴. 예술의 값어치는 꼴값에 표현하려는 내용이나 의미가 더해지는 것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예술가도 돈을 벌수있어야한다, 돈을 벌 수있다 라는 생각자체를 폐기해야할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로쟈 2009-06-02 22:21   좋아요 0 | URL
저는 책을 예술사회가 왜 승자독식사회가 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진단과 분석으로 읽었습니다. 분명 일부 예술가들은 떼돈을 벌 수 있고, 또 벌고 있지요...

nanousee 2009-06-03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설치미술을 하는 작가입니다. 예술창작의 동인이 되는 것은 비금전적 내적 보상, 자신이 재능있고 뛰어난 인간이라는 자만심과 자기기만에서 비롯된다는 말은 여전히 예술가라고 정의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회가 만들어내는 작가신화 계급적 사고를 동의할 때만 가능하다고 봅니다. 작가는 자만심보다는 좌절때문에 자기기만보다는 해야 하기 때문에 움직입니다. 삶과 죽음이라는 결론은 같다고 인정하나 일종의 개별의견을 내는 과정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고호의 그림값, 5프로의 스타급 예술가 승자독식사회는 바로 지금 우리 여기에서도 같은 잣대를 쓰고 있기 떄문에 가능한 것이지요.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할까라는 질문에 이미 신화적 읽기가 반복되있다는 생각에 좀 긴 댓글남깁니다...

로쟈 2009-06-03 23:29   좋아요 0 | URL
예술가의 가난은 '신화'가 아니라 '사회학적 사실'이 아닐까요? 그리고 저자의 주안점은 '예술가'라기보다는 '예술사회'입니다. 사회학자의 관점은 예술가내부의 시각과는 좀 다르겠지요...

nanousee 2009-06-04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그런데요, 이 정부 들어와서는 미술쪽 탄압도 심해졌고 기금들은 줄줄이 삭감되었죠. 그러면서 늘 이런 식의 얘기를 하죠. 예술가는 배가 고파야 작품이 나온다..빨리 죽인 다음에 값을 올리는게 남는 장사라는건 알겠는데 일반인들도 그렇게 굶어죽어간 고독한 화가여야 신화에 의존해 작품을 보려든다는 문제를 말씀드린겁니다. 사회학적 사실이 어쨋건 상위계층이 만드는 취향에 부단하게 전복하려는 노력을 작업에서 읽어낼 수 있는가를 덧붙여 주문해봅니다..

로쟈 2009-06-05 08:41   좋아요 0 | URL
서경식 선생의 <고뇌의 원근법>이 새로 나와서 보고 있는데, "상위계층이 만드는 취향에 부단하게 전복하려는 노력" 같은 걸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예술경제학은 그냥 예술'시장'을 대상으로 하지 예술가의 고뇌를 다루지는 않고, 예술가에 대한 사회적 신화는 또 별도의 문제라고 봅니다...

nanousee 2009-06-05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뇌의 원근법도 로쟈님이 리뷰해주시리라^^믿으며..그리고 이 기회에 항상 보물창고같은 로쟈님 블로그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예술시장을 대상으로 하면서 예술가의 고뇌가 어떻게 가격으로 매겨지고 사회적 신화는 또 별도의 문제라고 보고 있다면 이 책 이상할 것 같아요-_-;; 신화를 만들고 팔기 위해 그리는 작가들의 전략이 얼마나 또 복합적으로 결탁하고 있는지 모르면서 취향의 계급을 어떻게 다루는지 궁금해지네요. 아 제가 읽어보지도 않고 로쟈님 리뷰 마지막 단락에서 마음이 걸려서 처음으로 댓글을 쓰기 시작했었습니다. 이 김에 한가지 딴 질문 더 물어봐도 될가요^^*왜 지젝사진? 지젝이 설마 잘 생겨서는 아니시죠?^^

로쟈 2009-06-05 16:13   좋아요 0 | URL
그의 열정과 광기에 대한 경의 표시입니다.^^;
 

이번주 한겨레21에 실은 출판기사를 옮겨놓는다. 마크 마조워의 <암흑의 대륙>(후마니타스, 2009)를 다루고 있다. 두툼한 책이어서 정독할 수는 없었지만 민주주의의 미래와 관련해서도 여러 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한겨레21(09. 06. 08) 유러피언 드림은 어디에 있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까지 읽던 책은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민음사, 2005)이었다고 한다. ‘아메리칸 드림의 몰락과 세계의 미래’란 부제가 말해주듯이 몰락한 ‘아메리칸 드림’의 대안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이 ‘유러피언 드림’이다. 무엇보다도 공동체 의식과 삶의 질을 중시하는 것이 유러피언 드림의 요체이며 이것이 새로운 시대의 비전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 비전은 유럽이 참혹한 현대사의 기억에서 길어낸 것이란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20세기 유럽 현대사’를 다룬 마크 마조워의 신간 <암흑의 대륙>(후마니타스 펴냄)은 유럽의 ‘꿈’을 빚어낸 그 ‘암흑’에 대한 철저한 탐사이고 성찰이다.  

 

이미 ‘유럽 공동의 교과서’가 우리에겐 소개된 적이 있다. 1997년에 개정판이 나온 <새 유럽의 역사>(까치, 2002)가 그것이다. 14명의 유럽 역사학자들이 공동집필한 이 책에서 20세기 유럽의 역사를 다룬 마지막 세 장은 각각 ‘자기파괴를 향하여(1900-1945)’ ‘분열에서 상호 이해로(1945-1985)’ ‘통합 유럽을 향하여(1986-1996)’라고 제목이 붙여졌다. 1998년에 출간된 <암흑의 대륙>도 역시 1940년대를 20세기의 분수령으로 본다.  

단순한 통계만으로도 그 앞뒤의 두 시기는 확연히 구분된다. 1950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 시기에 전쟁이나 국가 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6천만 명이 넘는데 반해, 그 이후엔 유고내전을 포함하더라도 10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하기 때문이다. 인류사에서 갈등과 분쟁은 새로운 것이 전혀 아니지만, 20세기 전반기 유럽에서 일어난 희생은 적어도 규모에서만큼은 달리 유례가 없다. 현대적 관료체제에 기술이 동원되었기 때문인데, 1870년에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의 사망자가 18만4천 명이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800만 명이,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4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숨졌다. 이 정도면 ‘암흑의 대륙’이라는 비유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러한 유혈과 야만의 역사야말로 ‘유러피언 드림’의 밑자리가 아닌가.   

계몽주의의 유산을 자랑하는 유럽에서 이러한 참상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20세기의 역사에서 정치가 경제로 환원될 수 없다는 교훈을 끌어내는 저자는 가치나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보기에 유럽은 “거대한 묘지 위에 세워진 실험실”이었다. 혹은 서로 경쟁하는 세 이데올로기의 교전장. 20세기 초에 자유주의자 윌슨은 자유민주주의의 이상향을 꿈꾸었고, 레닌은 해방된 공산주의 사회를 약속했다. 그리고 히틀러는 순수 혈통의 종족들이 숭고한 목적을 지향하는 제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저마다 인류를 위한 새로운 질서, 곧 유토피아를 탄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 나은’ 세계에 대한 실험은 모두 엄청난 희생만을 남긴 채 실패로 돌아갔다.  

1945년 나치즘의 몰락과 1989년 공산주의의 붕괴는 궁극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승리를 뜻한다는 시각도 있지만 저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유럽에서 민주주의 체제의 정착이 한편으론 자본주의의 승리를 동반한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론 이데올로기에 지친 유럽인들이 정치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된 결과라고 본다. 민주주의에 대한 높은 지지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상관적이며 서로 비례관계에 놓여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분명 유럽은 변화했다. 많은 교훈을 얻어서라기보다는 시대가 바뀌어서다. 과거 전쟁의 빌미가 되었던 전쟁이나 제국, 영토 같은 것이 국가적 안녕에 덜 중요한 새로운 시대에 접어든 탓이다. 유럽이 갈등과 경쟁 대신에 협력과 합작을 선택했다면 그것이 자신들의 번영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이라는 체제는 정치적 기획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순응’이라는 것이 저자의 냉정한 판단이다. 그렇다면 유러피언 드림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유럽이 갖고 자랑할 만한 유산이 아니라 이제라도 창안해내야 할 어떤 가치이고 이념이 아닐까? 유럽의 ‘빛’은 그 ‘암흑’이 거꾸로 드러내는 반면교사로서의 빛이다

09. 06. 02.  

P.S. <암흑의 대륙>의 번역은 유려한 편인데, 한 군데 오역이 눈에 띄어 지적해둔다. 러시아 혁명에 관한 대목인데, "레닌을 포함한 좌파들도 제헌의회를 도와,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따를 경우에도 불필요한 단계였던 '부르주아의 지배'를 수용하기 위해 노력했다."(29쪽)는 구절. 번역으로만 읽어도 오역이어서(마르크스는 단계론적인 혁명을 주장했다) 원문을 확인해봤다. "The Left, including Lenin, was pressing for a Constituent Assembly in order to usher in the period of 'bourgeois rule' which according to Marxist theory was now needed."(10쪽) 짐작엔 'was now needed'를 'was not needed'로 잘못 본 게 아닌가 싶다. 사소한 착오이지만 정반대로 옮긴 것이어서 결과는 사소하지 않다. 교정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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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9-06-02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의 책에 나오는 데리다-하버마스의 성명인가요 ^^ <암흑의 대륙>은 한겨레에서 봤을때부터 보고 싶어지더군요.
로쟈님의 책을 보면서 그동안 별로 생각해 보지않았던 로쟈님에 대한 구성-그래봐야 부질없는 조각맞춤이겠지만-을 해본다는... 어쨋거나 별 무리없이 잘 읽고 있다는 중간보고를 말씀드립니다. 리뷰를 써야할까에 대해 고민중인데..아직 알라딘에 리뷰다운 리뷰가 올라오고 있지 않은 것은 로쟈님과의 근접성때문이 아닐까 싶기도하고...^^

로쟈 2009-06-02 13:15   좋아요 0 | URL
사실 글모음, 내지는 글보따리여서 서평을 쓰기도 애매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눈치들도 보시겠지만.^^;
 

달이 바뀌었다. 아니 계절도 바뀌었군. 게다가 바쁘게 또 한주들을 시작하는 월요일이지만, 이번 학기에는 시간표상 딱 월요일 오전이 자유시간이다. 하지만 대개 이 자유는 무기력에 바쳐지곤 한다. 아무일도 하지 않고 지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저명한 중국사학자 레이황(황런위)의 <1587 만력 15년 아무일도 없었던 해>(새물결, 2004)에 대한 기사를 읽으니 '이 책이다!' 싶다. 아무일도 하지 않을 때, 혹은 하고 싶지 않을 때 읽어볼 만한 책! 나는 <1587 아무일도 없었던 해>(가지않은길, 1997)로 읽었는데, 어느새 12년 전이다(이런 역사서도 가능하구나, 라고 경탄했던 책이다). 그 사이에 두 판본은 모두 절판된 상태다. 책이 다시 나오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9. 06. 01) [책읽는 경향] 아무 일도 하지 않아 결국 나라가 망하다

1587년은 명(明)의 운명이 걸린 해였다. <1587 만력 15년 아무일도 없었던 해>(레이 황·새물결)는 위기상황에서 혁신이냐 쇠락이냐의 갈림길을 가늠하지 못하면 한 국가가 어떻게 망해가는지를 보여준다. 중국계 미국사학자인 저자는 명 말기 만력제·장거정·신시행·해서·척계광·이탁오의 평전과 정사 등을 꼼꼼하게 분석, 실타래처럼 얽힌 역사적 사실을 소설처럼 풀어낸다.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가 패배한 역사적 전환점이던 1년 전, 중국은 사소한 일이 다소 있을 뿐이었다. 조정을 좌지우지하던 장거정이 5년 전 죽고 만력제는 지루한 일과에 지쳐 ‘죽은 것이나 다름없이’ 무위이치(無爲而治)하고 있었다. 대학사 신시행이 감독하는 경연(經筵)은 황제에겐 고된 과외였다. 관료들은 경연을 통해 황제를 제어하려 했다. 황제에게 충성하기보다는 도덕적 통치기풍(陽)과 숨겨진 욕망(陰)을 황제를 통해 조절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고안해낸 것이다. 



군사제도의 혁신을 꾀한 척계광은 모함으로 문관들에게 탄핵되고 1588년 1월 병사했다. 척계광의 개혁이 성공했더라면 30년 후 청(淸)에 패하는 상황은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해 이탁오는 머리카락을 깎고 중과 유학자의 경계를 넘나들다, 문관들의 고발로 체포돼 결국 옥중에서 자신의 목을 베었다. ‘왜 자해했는가’ 묻는 옥사장에게 그는 “늙은이가 다른 어떤 일을 할 수 있었겠소” 하고 숨을 거두었다. 자유로운 사상과 과감한 언설을 거리낌없이 설파하던 그에게 조정이 선물한 것은 죽음이었다. 1587년 그 해, 뭔가 혁신적인 변화가 있었으면 명은 망하지 않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무일도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 세력들, 그들이 결국 나라를 망하게 했다.(민철기 임원경제연구소 번역팀장) 

09. 06. 01. 

P.S. 물론 '혁신적인 변화'와 그러한 변화를 차단하는 '변화의 제스처'는 구별되어야 한다. 공권력을 남용하고 상상 이하의 일들을 벌이느라 바쁜 정권도 실상은 '아무일도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 세력들'이다. "그들이 결국 나라를 망하게 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그런 교훈과 함께 또 월요일 아침을 짜증스럽게 하는 소식 한 토막(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46180).   

 

1.5km 정도 거리를 가볍게 걸어서 봉하마을에 들어섰더니, 눈에 띄는 '알림판'이 두 군데나 붙어 있었습니다. 아마 국민장이 끝났음에도 전국 각지에서 봉하마을을 찾아오는 조문객들에게 밥 한 그릇은 고사하고, 물 한 그릇도 대접할 수 없는 자원봉사자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써 붙인 안내문인 듯하였습니다. 

"행안부와 김해시의 식사 및 식수지원이 중단되어 부득이 조문객 여러분께 지급해드리지 못함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 자원봉사자 일동"

김해시와 행자부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이 지나고서 여론의 질타를 당한 후에야 부랴부랴 식수와 식사를 지원하더니, 국민장이 끝나자마자 모든 지원을 완전히 중단하였다는 것입니다. '뻑' 하면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는 이놈의 나라, 참 인심 한 번 야박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국민장 기간이 끝났다고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는 국민들이 끊이지 않고 봉하마을을 찾고 있는데, 밥 한 그릇은 고사하고, 물 한 그릇도 대접해주지 못하는 것이 김해시 인심이라는 것 아닙니까?  

'그들' 또한 아무일도 하지 않기 위해서 정말로 혼신의 힘을 다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열과 성을 다해 모든 집회를 봉쇄하고 모든 비판을 틀어막는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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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9-06-01 11:42   좋아요 0 | URL
하하핫, '그들에겐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군요.

로쟈 2009-06-01 23:18   좋아요 0 | URL
애들 크는 걸 보면 시간도 아니죠...

비연 2009-06-01 12:29   좋아요 0 | URL
정말, 그들이 하는 짓을 보면...동네 개가 다 웃을 짓을 하고 있습니다..;;;;;;
주어진 시간이 빨리 가급적 빨리 소멸되기를...

로쟈 2009-06-01 23:18   좋아요 0 | URL
시계에 밥을 더 많이 줘야겠습니다...

푸른바다 2009-06-01 13:10   좋아요 0 | URL
이 사람들은 임기중 가능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국가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로쟈 2009-06-01 23:17   좋아요 0 | URL
그 전에 물러나면 더 좋긴 한데요.^^

베토벤 2009-06-01 18:54   좋아요 0 | URL
어떻게 타이밍이 맞았는지 출판사 측에서 한달 정도 있으면 재발간된다는군요.

로쟈 2009-06-01 23:17   좋아요 0 | URL
오, 굿뉴스네요.^^

치타 2009-06-01 19:26   좋아요 0 | URL
맨 아래 차단된 '광장'사진,
이보다 더 완벽하게 우리의 시대를 표현하는 것이 있을까요.

로쟈 2009-06-01 23:17   좋아요 0 | URL
명박산성이 있었죠.^^;

테레사 2009-06-03 12:39   좋아요 0 | URL
로쟈라니, 박노자의 서재라고 생각한 적은 있는데, 역시 러시아와 관련이 있긴 있었구나..혹시 알런지 모르겠지만, 아무일도 없었던 해를 펴낸 가지않은 길은, 나를 포함한 몇 명이 만든 출판사였지요. 모호한 꿈만큼이나 그냥, 모호하게 끝나버린 어떤 시도였던 셈인데, 그 책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긴 있구나 하는 사실에 놀랍네요. 어제 처음 로쟈씨의 정체를 신문광고란에서 우연히 보고, 블로그란 곳을 찾아가 보기도 하였는데, 그리고 댓글 한줄 남겼는데 지워졌나보네요...시집을 낸게 아니라 에세이(?)를 내다니..암튼...

로쟈 2009-06-03 23:30   좋아요 0 | URL
ㅎㅎ 아는 분 같군요...

rei 2009-06-04 19:55   좋아요 0 | URL
와,,,이책 저도 예전에 도서관에서 보고 재발간 소식 기다렸는데..근데 위에 이책 만드신 분이 오셨네요..레이황의 이 책과 더불어 같은 년도의 서양에서 있었던 큰이라고 하시면서 아르마다 다룬 한권도 같이 내셨던거 같은데 억시 그책도 굉장히 재밌었구요.....그쪽은 재발간 소식 없나요..^^

로쟈 2009-06-05 08:48   좋아요 0 | URL
네, 그런 책도 있었죠. 재간 소식은 못 들었는데, 다시 나오면 좋겠네요...

노이에자이트 2009-06-04 22:35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에선 만력제가 임진왜란 때 군대 파병해 줬다고 만동묘를 만들어 기념하고 대단했는데...사대주의의 상징이지요.사실 중국사에서 만력제도 무능군주에 속합니다.우리나라에서는 거의 혈맹이라면서 떠받들었지만요.

로쟈 2009-06-05 08:49   좋아요 0 | URL
유능군주가 예외적인 거 같아요.^^;
 
로쟈의 인문학 서재 이벤트(2)
<로쟈와의 인문학 토크>에 초대합니다.

지난 20일에 올린 <로쟈의 인문학 서재> 출간 기념 '이벤트(2)'의 당첨자를 발표합니다. 아시다시피,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이벤트 당첨자 발표는 좀 늦추었었습니다. 이 이벤트는 지난주 '한겨레21'의 새책 소개 코너에서도 짤막하게 언급되었는데요, 이랬습니다.   

하루에 1천 명이 꾸준히 방문하는 서재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 주인장이 자신의 본명을 오프라인 책의 저자 이름에 박았다. 로쟈는 거의 매일 신간을 훑고, 그것을 다시 네트워크로 엮어내는 신념의 책지상주의자다. 어머니가 알려주길 당사주에도 ‘책읽기’가 나와 있다고 한다. “책은 전부다. 그런데 이 전부인 책들은 책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책의 패러독스….” 그의 블로그에서는 출간 기념 퀴즈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표지에 등장하는 인물 중 안경 낀 사람 8명의 이름은?” 등 꽤나 어렵다.  

아무래도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체감 난이도가 더 높았던 듯합니다. 그 '꽤나 어려운' 문제들은 아래와 같았습니다(처음 두 문제에다가 세번째 문제를 추가했더랬습니다). 표지에는 모두 26명의 인물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문제1) 이들 가운데 안경을 쓰고 있는 8명의 이름을 적어주세요.  

문제2) 26명 가운데에는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서 한번도 거명되지 않는 인물이 '실수'로 들어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을 적어주세요.  

문제3) <로쟈의 인문학 서재>의 부제는 '곁다리 인문학자 로쟈의 저공비행'입니다. 또다른 부제가 될 만한 '카피'를 적어주세요.  

미리 말씀드리면, 문제(2)는 아직 정답자가 없습니다. 나중에라도 맞히시는 분께는 나름대로  '선물'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정답자가 정 없을 경우에는 적당한 때에 답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제 나머지 문제의 정답과 함께 당첨자를 알려드립니다.   

 

문제(1)의 정답인 8명의 이름을 앞표지 좌측상단에서 우측하단순으로 말씀드리면, "니체, 벤야민, 사르트르, 푸코, 로쟈, 김현,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 라캉"입니다. 아무래도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는 맞히기가 좀 어려웠습니다. 정답자가 없을 경우엔 가장 많이 맞히신 분을 당첨자로 하겠다고 했는데, 허리우스님이 유일하게 나머지 7명의 이름을 적어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문제(3)에도 많은 분들이 응모해주셨는데, 문제(2)의 당첨자가 없는 관계로, 두 가지 카피를 뽑았습니다.  

"저공비행사 로쟈, 인문학의 문턱을 낮추다" (leecre님)  

"주름진 일상의 인문학 보톡스" (lucasss님)  

축하드립니다. 당첨자 세 분께서는 저에게 댓글로 주소를 알려주시면 다음주 안으로 <로쟈의 인문학 서재> 사인본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벤트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09. 05. 31. 

P.S. 다음 이벤트는 알라딘과 오마이뉴스에서 공동으로 주관하는 '로쟈와의 인문학 토크 http://blog.aladin.co.kr/culture/2878079'이다. 조촐한 정담(토크)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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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형사의 생각
    from lucasss' me2DAY 2009-06-01 11:23 
    로쟈의인문학서재 이벤트 당첨!!! 신재상 고맙삼~
 
 
2009-05-31 2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9-05-31 22:4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제가 딱 기대했던 독자신데요.^^

2009-05-31 2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9-06-01 00:20   좋아요 0 | URL
네, 축하드려요.^^

2009-06-01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9-06-01 00:20   좋아요 0 | URL
니진스키입니다.^^

루체오페르 2009-06-01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멋진 이벤트가 있었군요. ^^ 늦었지만;ㅋ
재밌네요.ㅎㅎ 축하합니다!

로쟈 2009-06-01 10:4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한데, 멋지다기보다는 '어려운' 이벤트였던 듯합니다.^^;

2009-06-01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9-06-01 11:28   좋아요 0 | URL
아, 정말 구면일 수도 있겠네요.^^

2009-06-01 1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9-06-01 11:28   좋아요 0 | URL
네, 축하드립니다.^^

2009-06-01 1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01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01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9-06-01 23:56   좋아요 0 | URL
영화감독 에미르 쿠스투리차이고, 책에 나옵니다.^^

어느멋진날 2009-06-01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로만 듣던 로쟈님의 서재에 와보네요^^ 오늘 한겨례 신문을 보는데 로쟈님이 짧게 평해준 책이 나오더군요. 로쟈님의 이름을 거기서 봐서 무지 반가웠다는 ㅎㅎ 앞으로 종종 와서 좋은 글 많이 읽고 갈께요~

로쟈 2009-06-01 23:57   좋아요 0 | URL
혹시 <불멸의 신성가족> 광고인가요? 종종 들러주시길. 들르실 때마다 '멋진 날'이 되겠네요.^^

2009-06-04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9-06-04 23:19   좋아요 0 | URL
제가 모르는 분인데요.^^;

어느멋진날 2009-06-10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맞아요~ <불멸의 신성가족> 광고에서 로쟈님을 뵈었답니다. 그리고 알라딘에서 뵈니 어찌나 반갑던지요. 로쟈님~ 제가 너무 자주 여기 놀러와도 귀찮아 하지 마세요^^

로쟈 2009-06-11 00:00   좋아요 0 | URL
ㅎㅎ 이곳은 입장료가 없습니다.^^
 
로쟈식 코뮤니즘과 즐거운 계몽주의

장례 기간 동안 연기한 <로쟈의 인문학 서재> 관련 일도 많이 밀렸다. 이벤트 결과발표도 오늘중으로 해야 하고 2쇄 발간을 위한 점검도 해야 한다('지속가능한 글쓰기'를 위해서도 가까운 시일 안에 손익분기점을 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다). 아직 독자 리뷰들은 별로 접해보지 못했지만('블룩'이란 책의 성격상 리뷰의 가닥을 잡기가 좀 어려울 듯도 싶다. 오늘 알게 된 것인데, 국립국어원에서 발표한 '블룩'의 우리말 순화어는 '누리글보따리'다. 이건 뭘 해도 '보따리 장사'로군!), 언론리뷰는 조금 더 눈에 띈다. 일단 부산에서 발행되는 국제신문에 실린 리뷰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기사의 타이틀이 '인터넷 서평꾼 로쟈의 소풍'인 것이 눈길을 끈다. 아, 매일같이 서재로 소풍을 가다니!..  

국제신문(09. 05. 30) 넘나들고 통합하는 지성…인터넷 서평꾼 '로쟈'의 소풍 

'로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터넷 서평꾼'으로 알려져 있다. 유명한 서재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의 주인장인 것이다. 이 블로그에는 하루에 1000명 정도가 꾸준히 접속해 로쟈가 적어놓은 인문학 관련 신간 소식과 지적 흐름을 엿듣는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는 오프라인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로쟈의 새로운 글쓰기다.

왜 새로운 글쓰기인가.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쓴 글이지만 대부분의 글을 다시 손봤기 때문이다. 온라인 버전과는 제목과 내용이 다르다는 뜻이다. 1997년부터 2009년까지 블로그에 올려둔 글들 가운데 알맹이만 골라 편집해 만든 책으로, '블룩'(blook·blog+book)이라고도 칭한다. 이 책에서 새로운 출판 문화의 한 단면을 읽을 것 같다.

부제를 통해 저자 스스로 '곁다리 인문학자'라고 말한 부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내가 전공하지 않은 분야들까지도 건드리다 보니 부득불 딜레탕트에다가 곁다리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도 정색하고 정통 인문학이란 이런 것이라고 읽고 말하는 고식적인 태도가 아닌 '제멋대로 읽고 기우뚱하게 쓰는' 경쾌한 시선이 돋보인다. 만화나 리빙, 자기계발서 분야의 도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식 분야를 넘나들고 통합하는 저자의 능력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 책에는 문학과 영화, 예술, 철학에 대한 진지한 에세이와 지젝 읽기, 그리고 번역비평에 대한 주요 글들이 망라돼 있다. 부제에서 암시하듯 '본격적인' 인문학과는 좀 거리가 있는 글들이다. 저자는 그러나 "이런 종류의 글을 너무 쉽거나 말랑하게 느끼는 독자들이 앞으로 더 늘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인문학 독자층'을 넓히는 데 일조하는 것이 그의 진정한 욕심인 것이다. 



책은 다섯 개의 서재로 구성돼 있다. 여기서 '세계 철학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슬로베니아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가 슬라보예 지젝을 다룬 네 번째 서재가 눈길을 끈다. 지젝을 즐겨 읽는 이유와 함께 그의 기본적인 생각이 어떤 것인지 살짝 드러내줄 수 있는 글이 몇 편 실려 있는데, 앞으로 본격적인 '지젝론'을 쓰겠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저자가 오래 전부터 지젝의 글을 꾸준히 올린 덕분에 지젝은 이제 한국 '지식장'에서 현대 철학 혹은 '통합 지성'의 일반명사가 되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다.

'로쟈의 예술 리뷰'라는 부제가 붙은 두 번째 서재는 재미있다. 미술 에세이 한 편을 제외하면 주로 영화에 대한 글을 모았으며, '생명복제 시대'의 예술로서 영화 텍스트 깊이 읽기다. 이 가운데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와 '빈집'에 대한 비평은 압권이다.

"내가 비판하는 것은 그의 무능력이 아니라 고집스런 불성실과 아집, 그리고 부정직이다. 대충 얼버무리고, 황당한 것 갖다 붙이고, 자신이 이해가 안 돼도 넘어가는 태도 말이다." 저자는 다섯 번째 서재에서 우리나라의 잘못된 번역 문제를 아프게 건드린다. 서늘하고 신랄하게 번역의 윤리 문제를 거론하는 그는 "독자가 무서운 줄 안다면, 함부로 대충 번역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 이면에는 아름다운 책에 대한 숭배와 '제대로 된' 번역자의 고통과 노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진하게 묻어 있다.(강춘진 기자) 

09. 05. 31. 

P.S. 대학신문의 기사도 같이 옮겨놓는다. "하나의 책을 다른 책과의 관계 속에서 읽어내고 분석"하는 일은 사실 책읽기의 기본임에도 로쟈의 특징으로 주목받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다루는 리뷰들에서 주로 '박학다식'이 화제에 오르는데(대개 '소문'을 밑천 삼아 책소개를 하는 탓이리라), 이번 책은 '비평적 에세이'와 '텍스트 읽기'를 모은 것이다. 나중에 따로 묶으려고 하는 '서평집'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블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블룩적'이지도 않다. '블룩'이 어떤 것이어야 할지는 나도 더 생각해봐야겠다...   

대학신문(09, 06. 01) The Reader: 책 읽어주는 로쟈

인터넷 블로그의 글이 지면의 활자로 재탄생한 ‘블룩(blog+book)’이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달 18일 출간된 『로쟈의 인문학 서재』의 저자 이현우씨는 ‘로쟈’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인터넷 서평꾼이다. 학문 간 경계를 넘나들며 박학다식을 자랑하는 그가 블로그에 자유롭게 써 온 ‘책 이야기’ 중 고갱이를 추려 다시 책으로 엮어낸 셈이다.

책은 문학·예술·철학 영역에서의 비평으로 시작해 세계 철학계의 이단아인 지젝의 저서를 둘러본 뒤 번역비평으로 끝을 맺는다. 저마다 다른 주제의 글들이 이어지지만 대중지성을 희망하는 저자의 시각에서 비켜나가지 않고 있다. 로쟈는 세상에 대한 ‘즐거운 저항’인 책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포르노보다 더 음란한 포퓰리즘의 정치를 경계한다. 또 지식의 오만에서 비롯된 오기(誤記)를 비판한다.

로쟈의 서평이 주목받는 점은 하나의 책을 다른 책과의 관계 속에서 읽어내고 분석한다는 데 있다. ‘니체와 여성’이라는 주제에 접근하기 위해 그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안에서만 맴돌지 않는다. ‘니체와 여성’을 제각각의 관점에서 다루는 다른 저자들의 책들과 함께, 니체의 다른 저서  『선악의 저편』 등을 검토하고 있다. 학문의 경계를 초월한 그의 지식의 종횡무진함은 바로 이러한 책읽기 방법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는 지식인과 대중 간 거리를 좁히는 방법으로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을 꼽는다. “블로그는 그 빠름을 감당할 수 있는 젊은 세대에만 유용한 데 비해, 느린 활자는 모든 세대에게 유효하다”는 저자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블로그가 대중지성의 지적 보고 중 하나로 각광 받고 있다 할지라도, 지식 공유의 폭을 확장시켜 사회적 의사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활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느리지만 넓고 깊이 있게 모두에게 다가가는 것, 그것이 활자이고 책이다. 대중은 책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며 지성인으로 자라나고 세상을 변하게 한다. 대중의 시대는 왔을지 몰라도 로쟈의 시각에서 볼 때 ‘대중지성’의 시대는 아직 뻗어나가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뻗어나감을 돕는, 지식인의 겸손과 대중지성의 도래를 돕는 징검다리로 놓여 있다.(김빈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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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31 1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31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유새 2009-05-31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시민의 `후불제민주주의`와 허지웅의 '대한민국표류기'가운데 어느 것을
먼저 읽을까"를 갈등하면서 책방에 들렀다가 눈에 띄어 언급한 두권을 제쳐
두고 구입해서 열독하고있는중입니다.

로쟈 2009-05-31 14:51   좋아요 0 | URL
흠, 제 주변 말고도 독자들이 있네요!^^

건조기후 2009-05-31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국제신문에서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는데.. 이 곳에서 마주치니 반갑네요.ㅎ 저도 조만간 일이 끝나면 꼭 사서 읽어보겠습니다. ^^

로쟈 2009-05-31 23:38   좋아요 0 | URL
부산에 계셨군요.^^

에피쿠로스 2009-06-02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6/1 pm 10시 39분에 일독 했습니다.처음에는 재미 있었는데 지젝읽기는 좀 어려웠습니다.아마 지젝 책은 한번도 안 읽어 생소 해서 그런가 봅니다.번역에관한 비평도 흥미 진진했는데 번역이 잘못됐다고 말하니 알겠는데 원서도 안보고 볼일도 없는 사람에게는 잘 됏는지 잘못 됐는지 자체도 모르니.....원 참...전에 뉴레프트리뷰인가 로쟈님이 지적한 번역오류가 고쳐졌느지 모르겠네요...비싼돈 주고 샀는데 그말 듣고 책 덮었습니다.
다음 책은 비평이나 서평이 아닌 한가지 주제에관한 단행본으로 책이 나왔으면 합니다.아참 한가지 김규항에관한 비평...저는 김규항도 로쟈님 지적한 문제도 있지만 나름대로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로쟈님 지적도 좋았습니다.한마디로 이상하지만 둘다 공감이 갑니다.어쟀든 오늘 한권 떼니 기분이 좋군요.다음번엔 더 좋은 책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로쟈 2009-06-02 00:27   좋아요 0 | URL
데리다부터 지젝까지는 그냥 지나치셔도 되는 부분인데요. 그래도 일독하셨다니 반갑습니다. 거의 첫 (완독)독자가 아니실까 싶어요.^^ 다음번 책은 흠, 두 종류가 다 될 듯싶습니다...

비로그인 2010-03-13 06:12   좋아요 0 | URL
저는 이런 책 너무 좋아요.. 다음번에도 다음에도 계속 나왔으면 좋겠어요.
책에도 영혼이 있다면 이런 책이 아닐까 합니다.

무얼 번지게 하는데 그게 아주 랜덤하거든요..
제 생각엔 어렵지도 않고 신선하기고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번져나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 있죠.. 이것도 21식 혁명사업에 복무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