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실었던 글을 옮겨놓는다. 내가 청탁받은 내용은 글의 서두에 적었다. 인터넷상의 인문학활동에 대한 소략한 '보고'라고 볼 수 있겠다. 책이 눈에 띄지 않아서 최종원고를 긁어왔는데, 지면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고유명사 표기 등은 창비식 표기로 돼 있다.  

 

창작과비평(2009년 여름호) 인터넷은 인문학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

내게 주어진 일차적인 과제는 인터넷 공간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인문학적 활동의 의의와 문제점을 짚어보는 것이다. 인터넷 (우주)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활동을 조감할 만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음에도 이런 과제를 떠안게 된 것은 주로 인터넷 공간을 중심으로 활동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래봐야 인터넷상에 블로그(서재)를 갖고 있고, 한 인터넷 카페에 자주 글을 올린다는 것이 내세울 만한 활동 이력의 전부다. 치명적인 건 활동반경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두루 알지는 못한다는 것. 시간적인 제약과 능력상의 한계 때문이지만, 사실 두루 안다는 것 자체가 과연 가능하며 또 바람직한 것일까도 의문이다.   

학문의 전문화와 함께 인문학에서조차도 자신의 전공분야에 정통하다는 것의 이면은 흔히 타 분야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무지는 오히려 권장된다. 거꾸로 모든 분야에 두루 식견이 있다는 것이 ‘얄팍한 박식’과 동일시된다. ‘국가적인’ 석학이 아닌 다음에야 깊으면 넓지 못하고 넓으면 깊지 않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통념 아닌가. 새로운 조어를 쓰자면 ‘인터넷 인문학’에 대한 시각도 그러한 통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싶다. 세계적인 석학 움베르또 에꼬(Umberto Eco)도 이렇게 말했다지 않은가. “인터넷에는 내게 필요한 정보가 없다.” 

물론 그렇게 말한 에꼬의 경우에도 잘 꾸며진 온라인 홈피를 갖고 있고, 일반 독자들은 그에 대한 다수의 정보와 지식을 인터넷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인터넷은 단편적인 지식과 기계적인 정보의 대명사이자 표피적인 앎의 상징물이다. 가령, ‘신지식인’ 이후 지식인 사회에 당혹감을 안겨줌과 동시에 새로운 ‘놀림감’이 된 ‘네이버 지식인’을 도마에 올려놓을 수 있다. “다크써클 없애는 데 브로콜리가 효과적인가요?”나 “‘카노사의 굴욕’에서 카노사가 도대체 뭐죠?”등의 질문에 네이버 지식인은 신속하고도 유익한 답변을 제공해주지만, ‘그’는 아직까지 움베르또 에꼬 기호학의 특징과 의의에 대해서는 질문하지도 답해주지도 않는다. 물론 이런 질문은 올라와 있다. “움베르또 에꼬 지금 살아 있나요? 현존인물이에요?”   

하지만 이런 표피성이 과연 인터넷 공간 자체의 본질과 연관된 것일까? 그것이 ‘사용 공간’인 한에서 문제는 그 사용자들의 의지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닐까? 알다시피, 오늘날 대부분의 편지(메일)를 대신하고 있는 건 이메일이다. 전달의 신속성과 편이성에서 편지는 이메일을 따라잡을 수 없다. 물론 이메일 또한 ‘표피적’이며 보내는 이의 정서와 체온을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메일 사용자들은 그러한 한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상쇄하거나 극복하려고 하지 다시금 예전의 편지로 돌아가려고 하지는 않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메일의 단점보다는 장점과 효용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은 ‘학술 공간’으로서의 인터넷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인터넷 공간은 학술활동의 ‘변방’이 결코 아니다. 대부분의 학술행사 소식과 관련 정보들을 우리는 인터넷으로 접하고 또 공유하고 있다. 대부분의 학술저널이 온라인화됨에 따라 우리는 굳이 도서관에까지 찾아가는 발품을 팔지 않고도 집에 앉아서 관심 있는 주제의 논문들을 읽어볼 수 있다. 그러한 개방성과 공유성이, 말하자면 인터넷 공간의 최대 강점일 것이다. 비록 그것이 아직까지 원하는 만큼의 ‘깊이’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면, 문제는 인터넷에 있다기보다는 우리가 인터넷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온라인 인문학’과 ‘오프라인 인문학’의 대립은 임의적인 유사 대립이다.  

알려진 것처럼 국내에서도 각 대학마다 온라인 강좌 혹은 사이버 강좌가 상당수 개설돼 있다. 수강생이 강의 동영상을 보고 필요한 내용을 숙지한 후 온라인을 통해서 과제를 제출하고 평가받는 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온라인 강좌는 공익을 위해서 선용될 수도 있다. 예컨대, 미국 MIT에서 시작된 강의자료 공개가 점차 확산되고 있고, 유튜브는 하바드대학을 포함한 100여개 대학의 강의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비록 영어권 얘기이긴 하나, 학점만 인정받을 수 없을 뿐 누구나 온라인상에서 이름난 교수들의 강의를 들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국내에서도 현재 몇개 대학이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서 강의 동영상을 시범적으로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비추어본다면, 학술활동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구분이 과연 유효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둘은 분명 성격이 좀 다르지만 서로 모순적이라거나 대립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 아닐까. 각각의 장단점을 갖고서 서로를 보완해준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  

한걸음 더 나아가보면, 이러한 온라인 강의가 대학보다도 더 활성화돼 있는 쪽은 오히려 대학 바깥의 ‘재야’ 학술공간들이다. 철학아카데미나 연구공간 수유+너머, 문지문화원 사이 등에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인문강좌를 오프라인에서 운영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대학생이 아닌 직장인과 주부들이 보다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형식은 온라인 강좌다. 가장 대표적인 온라인 인문학강좌 사이트인 아트앤드스터디(www.artnstudy.com)의 경우에, 유료강의를 듣는 회원만 현재 3만여명에 이른다고 하며, 이는 2001년 6월 서비스를 처음 시작했을 때 300여명과 비교하면 100배 이상 증가한 수치이다. 특이한 것은 대학에서는 폐강되기 일쑤인 철학강좌들이 이곳에서는 최고 인기강좌라는 점이다. 한겨레교육문화쎈터가 운영하는 한겨레e한터(e-hanter21.co.kr)도 300여 강좌에 이르는 인문학 관련 온라인 강좌를 제공한다. 전문 강사들 외에 대학의 현직 교수들도 다수 강의에 참여하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인터넷은 이렇듯 다양한 인문학 강좌를 통해 누구나 인문교양과 지식을 쌓을 수 있는 통로이면서 또한 직접적으로 자신의 지식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 흔히 ‘대중 지성’의 공간으로 지칭되는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그러한 장으로서 활용되는데,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곳으로는 다음까페 비평고원(http://cafe.daum.net/9876)을 들 수 있다. 8000명이 넘는 회원을 거느리고 있는 ‘비평고원’에서 주로 활동하는 회원들은 국내외의 인문학 전공 대학강사나 대학원생들이지만 약사·회사원·군인 등 ‘비전공자’도 적잖게 참여하여 익명적 공간에서 인문학 전반에 걸친 비평과 담론들을 쏟아낸다.  

가령, 창비주간논평을 본딴 ‘화요논평’ 코너에 ‘언어현상학과 시차적 관점’에 관한 철학적 입론이 제시되는가 하면,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은 노무현 전(前)대통령이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의 반열에 올랐다”라는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시사적 발언이 어떤 함축적 의미를 갖는지 정밀하게 분석된다. ‘비평공간’ 같은 코너에서는 또 신간도서에 대한 소개와 서평이 올라오고, 하이네의 시가 가곡과 함께 자세하게 음미되기도 하며 베를린의 노동절 행사에 대한 현장르뽀가 ‘해외통신’이란 말머리를 달고서 당일에 게시된다. 이런 것이 ‘인터넷 인문학’이 강점으로 내세울 수 있는 현장성과 순발력이다. 모두 저널리즘이나 학술지면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일종의 ‘중간지대’의 담론이라 할 만하다.  

물론 전체 회원수에 비해 자발적인 글쓰기에 참여하고 있는 회원들의 수가 여전히 소수라는 점은 극복해야 할 문제이고, 인문교양과 학술담론의 대중화에 일조하고는 있지만 과연 새로운 학술담론을 창출할 수 있는 지적 ‘프론티어’의 공간도 될 수 있는가는 의문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러한 현재적 한계를 본질적인 한계로 간주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 아닐까. 인터넷은 인문학 활동의 새로운 가능공간이지 미리 앞질러 그 한계를 예단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학에서는 점점 홀대받고 있는 인문교양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아직도 적지 않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오프라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긴 하나 노숙자 인문학과 CEO 인문학 ‘열풍’도 바로 떠올릴 수 있다).  

그러니 필요한 것은 “인터넷에는 내게 필요한 정보가 없다”고 말하기 전에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와 지식을 인터넷 공간을 통해서 기꺼이 다수와 주고받고 공유하려는 ‘의지’를 우리가 갖고 있는지 자문하는 것이겠다. 한데, 그러한 의지를 만약 ‘제도권 인문학’ 혹은 ‘대학 인문학’ 종사자들이 갖고 있지 않다면 그건 혹시 그런 의지를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왜 필요가 없는가? 개인적으론 두 가지 원인을 지목하고 싶다. 하나는 소위 제도권 인문학이 근거하고 있는 물적 토대와 관련되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그리고 있는 인문학의 상(象)과 관련된다.   

비록 전세계적인 현상이긴 하나 수년 전부터 제기된 한국사회 ‘인문학 위기’의 특수한 원인에 대하여는 모두가 어림짐작하고 있는 바가 있다. 서울대 철학과 백종현(白琮鉉) 교수의 지적대로(백종현, "한국 인문학 진흥의 길", 한국학술협의회 편 <인문정신과 인문학>, 아카넷 2007, 136면.), 1980년대 초반 대학의 입학 정원이 대폭적으로 늘어나면서 사회적 수요와 무관하게 인문학 계열 학과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이에 따라 인문계열 졸업자들이 대량으로 양산된 점이 그것이다. 그로써 대학 졸업자들로 하여금 ‘인문학을 쓸모없는 것’이란 인식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직접적인 위기의 원인은 대학이 아닌 대학원 졸업자의 초과 배출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당시 학과가 늘어남에 따라 교수 요원의 충원이 필요했고, 이는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가수요를 낳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인문학 전공 박사의 수는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대학은 재정을 이유로 교수 충원비율을 최소화했다. 인문학이 ‘배고픈 학문’이란 이미지는 그렇게 해서 굳어진 것이 아닌지. 게다가 그러한 ‘배고픔’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인문학 전공자들은 비록 공공성을 위해서 국가가 지원하고 육성해야 할 학문분야도 있지만, 인문학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대신에 국가에 손을 내미는 ‘손쉬운’ 방법에 의존했다. 대학의 정규직 교수들은 강의에 정성을 쏟기보다는 논문 편수로 평가되는 연구업적에 더 공을 들였고, 비정규직 교수들은 자세를 한층 더 낮추어 대학 주변에 남는 일에 자족하거나 절망했다. 모두가 ‘지속가능한 인문학’의 새로운 물적 토대를 마련하는 일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던 것은 아닐까? 여전히 읽을 만한 국내 인문서가 부족하고 아직 번역되지 않은 국외의 고전이나 교양서가 적지 않은 현실은 생각해볼 여지를 남긴다.    

거기에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인문학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백종현 교수는 “교양과목으로서 인문학은 모든 시민이 익혀야 하지만, 한 사회에 인문학 전공자는 매우 탁월한 소수이면 족하다. 그리고 그 탁월한 소수는 사회에서 우대되어야 한다.”(146면)고 말하면서 ‘인적자원 관리에 있어서 공정성과 수월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대로 따르자면 탁월한 국가석학 몇명의 인문강좌를 TV나 온라인 동영상을 통해서 접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인문교육 방안이 될 성싶다. 하지만, 인문학을 하는 원동력이 ‘자유 만끽’과 ‘자기만족’이며(145면), 결국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평범한 다수’의 인문학에 대한 욕구도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하지 않을까. 인문(人文)이란 말이 ‘사람의 무늬’를 뜻하기도 한다면, 인문학의 목적은 다름 아니라 우리가 ‘무늬만 사람’인 동물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일이다. 대중적/다중적 매체로서의 인터넷을 그러한 ‘과업’에 유용한 수단으로 사용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문제는 우리의 의지다. 

09. 0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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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도권 밖 인문학의 양상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9-16 21:31 
    이번주 대학신문에서 '제도권 밖 인문학' 동향에 관해 짚어주고 있는 기사를 옮겨놓는다. <창작과 비평>(여름호)에 내가 실었던 글도 참조하고 있어서 먼댓글로 링크해놓는다.    대학신문(09. 09. 12) 제도권 밖 인문학, 지금 만나러 갑니다 독재정권 시절. 청년들은 소위 말하는 ‘불온서적’을 들고 자발적으로 한데 모여들었다. 제도권 밖 인문학 단체의 시작이었다. 지식에 대한 사회적 규제가 완화된 지금,
 
 
2009-06-18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18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기 자신의 이름이나 닉네임을 온라인상에서 검색해보는 걸 '허영검색'이라고 한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9)의 출간 이후에 그 허영검색이란 걸 종종 해본다. 책과 관련하여 나도 모르는 기사나 리뷰가 뜨기 때문이다(자주는 아니지만 의외의 리뷰를 만나면 반갑다). 어제는 '뉴스' 쪽에서도 관련기사를 읽을 수 있었는데, 블룩(blook)과 출판권력의 구조 재편을 다룬 주간한국의 기사였다. 그냥 읽고 지나치면 말 일이지만, "하루 70여만 명이 방문하는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이라고 엉뚱하게 소개돼 있어서 스크랩해놓는다. 최근 80만명이 넘어섰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총방문자수이다. '하루 70여만명'쯤 방문해야 '파워블로거'가 되는 거라면, 나는 아직 멀었다!..  

주간한국(09. 06. 17) 블룩(blook), 출판 권력 재편하나 

주부 김향숙(41ㆍ여) 씨는 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를 삶의 통찰과 연결짓는 에세이를 써왔다. 글을 쓰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생각도 정리되는 치유의 감정을 느꼈다. 자신이 쓴 글을 세상에 내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방법을 잘 알 수 없었다. 기성작가도 아닌 일반인이 출판사 문을 두드리는 용기를 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인 온라인 글쓰기 클럽을 발견한 것이다. 그도 고부간의 갈등을 비롯한 자신의 가족에 대한 고백적인 글을 나누기가 처음에는 어려웠다. 하지만 정기적으로 모여 글쓰기 정보를 공유하고 비평하며 내공을 길렀다. 이들은 결국 공동저작의 책을 내기로 뜻을 모았다. 수익금도 ‘어린이 재단’의 결식 아동 돕기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공유’하기로 했다. 이들은 출판사에 찾아가 자신의 글을 부탁하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한 가지 주제로 기획하고 쓴 글을 모아 출판사를 선택했다.  

지난달 4일 ‘지식노마드’에서 나온 ‘사랑하지만 한 번도 말하지 않았습니다’가 그 결정체. 이 책은 김 씨를 비롯해 온라인에서 만난 글쓰기 블로그 회원 10명이 자신의 가족이야기를 모아 엮은 것이다. 김 씨는 “책 출간이라는 꿈을 이뤄서 너무 기쁘다”며 “저술부터 출간까지 클럽 회원들 스스로의 힘으로 해 힘들기도 했지만 고생한 만큼 보람됐다”고 말했다.

블로그의 내용을 책으로 만든 ‘블룩(blook)’이 출판 권력의 지형을 재편하고 있다. 출판의 중심이 제작자에서 소비자로 급속히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작가와 일반인으로 나뉘는 출판 주체의 경계마저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블룩이란 ‘책(book)’과 ‘블로그(blog)’의 합성어로 블로그에 올라왔던 글을 묶어 낸 책을 일컫는 신조어다.

출판 순서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진다. 출판사가 작가의 글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네티즌이 블로그의 글을 먼저 선택한다. 경우에 따라 블로거가 출판사를 직접 선택해 출판하는 경우도 있다. ‘출판사-저자-독자’에서 ‘저자/독자-출판사-독자’의 구조로 제작과 유통의 순서가 뒤바뀌는 것이다. 자연히 출판 권력의 방향 역시 변화한다. 출판의 무게 중심이 출판사에서 저자, 독자로 기울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중태 IT문화원 원장은 “옛날 같으면 책을 한 권 내려면 출판사의 간택을 받으려 노력해야 했지만 블룩의 출현으로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며 “이 같은 변화는 창작의 주체로서 전업작가의 권위마저 위태롭게 할 정도”라고 말했다.

블룩, 출판의 중심을 출판사에서 일반인으로
출판사가 저자를 고르고 선택하며 중심에 서는 출판 관행이 블룩을 통해 변화하고 있다. 전문적 작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모여 글과 글 쓰기 방법을 공유하며 공동저작으로 책을 내는 일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지만 한 번도 말하지 않았습니다’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SNS)에서 만난 29명의 블로거들이 다양한 온라인 툴을 활용해 직접 만들어 낸 ‘2009년 블로그로 살아남다’가 대표적인 예. 이들은 출판사의 도움 없이 기획부터 집필, 디자인, 인쇄, 유통까지 출판의 전 과정을 자신들의 힘으로 해내는 기염을 토했다. 저자의 직업은 기업가, 마술사, 프로그래머, 응원단장, 마케터, 디자이너, 컨설턴트 등 다양하다.

제작부터 출판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한 달. 블로거 클럽의 한 회원이 블로그에 대한 글을 함께 쓰자는 글을 올린 뒤 많은 댓글과 토론글이 올라왔다. 50명의 회원이 주제별로 글을 써서 원고에 응모했다. 2번의 준비모임과 작업 끝에 책이 나왔다. 제작 과정의 중심 역시 출판사가 아닌 블로거였다. 출판할 글은 각자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뒤 트랙백을 걸어 서로 연결했다. 디자이너가 MS오피스 퍼블리셔로 만든 표준 편집기로 각자가 글을 편집했다. 퍼블리셔 프로그램 사용법은 웹 카메라와 동영상 강의를 사용했다. 책의 표지나 표지시안은 구글 앱스(Apps)의 양식생성 기능을 썼다.  

생활ㆍ문화ㆍ시사, 담론의 주체 바꾸는 ‘블룩’
블룩의 출현은 출판권력과 저자의 변화를 통해 생활ㆍ문화ㆍ시사 담론의 주체를 전문가에서 일반인으로 역전시키고 있다. 일반인이 예술관련 비평이나 담론을 쉽게 꺼낼 수 없었던 분위기를 바꾼 것이다. 김홍기의 블로그, 문화의 제국(blog.daum.net/film-art)에 연재됐던 ‘하하 미술관(2009)’, ‘샤넬 미술관에 가다(2008)’ 등은 책으로 나와 더 인기를 끌었다. ‘샤넬 미술관에 가다’는 미술을 통해 보는 패션의 숨은 이야기다. ‘하하 미술관’은 미술 심리 치유 에세이다. 이철우의 심리학 책인 '인관관계가 행복해지는 나를 위한 심리학(2007)' 역시 블로그 연재를 먼저 한 블룩이다. 



블룩의 유행은 정치비평 등을 통한 시사담론을 이끄는 오피니언 리더를 교수, 언론인 등 일부계층에서 일반인까지 확대시키고 있다. 하루 70여만 명이 방문하는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http://blog.aladin.co.kr/mramor)’의 주인 이현우(42) 씨는 문화 에세이 ‘로자의 인문학 서재(2009)’를 펴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는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강사다.
  

블로거 ‘MP4/13’과 김용민 시사평론가가 공동 집필한 책인 ‘블로거, 명박을 쏘다(2008)’도 화제를 일으켰다. ‘MP4/13’는 ‘고소영’ 라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유명 블로거다. 그는 지난 2007년 2월 자신의 블로그에 ‘이명박 정부 고소영 라인이 뜬다’는 제목의 글을 써 하루 22만여 명의 방문자가 그의 블로그를 찾기도 했다. 의사인 박경철의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2008)' 역시 블로그 글의 모음이다.  



특히 요리 관련 블로그 글의 출간은 블룩의 활성화를 견인했다. 김용환 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쓴 요리법을 책으로 옮긴 ‘2000원으로 밥상차리기’는 지난 2003년 출간해 현재까지 70만여 부가 팔렸다. 이 책은 간단한 조리방법과 완성 사진으로 구성된 일반적인 요리책과 달리 사진으로 조리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해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요리책인 ‘혜나네 집에 100만 명이 다녀간 까닭은(2006)’도 인기를 끌었다. 



여행ㆍ생활 부문에서도 블룩은 베스트 셀러의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해왔다. 오영욱의 ‘오기사 여행을 스케치하다’(2008),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2006), ‘깜삐돌리오 언덕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2005)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박성빈의 여행책 ‘그리우면 떠나라-Nova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별스크랩(2006)’도 있다. ‘황혜경의 ‘반나절이면 집이 확 바뀌는 레테의 5만원 인테리어(2006)’, 송민경의 ‘명품 다이어트 & 셀프 휘트니스(2005)' 등도 온라인에서 인기를 끈 글이 오프라인 책으로 나와 히트한 블룩 성공사례다.

전문 작가들도 변화에 발맞추기 시작, 외국에서는 이미 대세
전업작가들도 일부지만 이런 변화에 발맞춰 블룩의 대열에 동참을 시도하고 있다. 블로그에 글을 먼저 올리고 책 출간을 나중에 하는 식으로 변화에 발맞추고 있는 것이다. 출판권력의 변화는 일부 출판사의 전횡에 시달리던 문단이 더 바라던 바일 수도 있다. 정도상 소설가는 신작 장편소설 ‘낙타’를 8일부터 문학동네 인터넷 커뮤니티(http://cafe.naver.com/mhdn)에 일일 연재하기 시작했다. 황석영은 ‘개밥바라기 별(2008)’을 블로그에 출간보다 먼저 연재한 바 있다. 박범신도 블로그에 ‘촐라체(2008)’를 연재했다.

아마존 (www.amazon.com)에서는 블룩이 베스트셀러가 되는게 더 이상 이변이 아니다. 블로거가 책 창작과 유통의 중심이 돼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비즈니스 위크’에 따르면 블룩은 2005년 미국 출판계 베스트 셀러의 2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MS 프로그램 관리자 출신의 미국인 조엘 스폴스키는 경영에 관한 자신의 블로그(www.joelonsoftware.com) 글을 묶어 ‘조엘 온 소프트웨어(2005)’를 펴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독일인 필립 렌센은 자신의 블로그인 ‘구글 블로코프(blog.outer-court.com)’에 올린 글을 모아 ‘구글을 재밌게 사용하는 55가지 방법(2006)’을 내놓기도 했다. ‘블룩’이라는 출판의 방법이 구글을 즐겨 쓰는 평범한 사람을 화제작의 저자로 바꿔놓은 것이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도 언제든 출판계의 강자로 떠오를 수 있는 세상이다.(김청환기자) 

09. 0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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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블룩의 시대와 출판의 향방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11-12 12:29 
    올 한해 출판계를 결산하는 한국일보의 연재기사에서 '블룩(blook)'을 다룬 꼭지를 옮겨놓는다. 블록에 대해서는 나도 한 발을 담그고 있기 때문인데, 기사에서도 언급이 되고 있다. 더불어, 자세히 보니 관련이미지가 '로쟈의 저공비행'이기도 하다. 다시금 바닥이 좁구나란 생각이 드는데, 내년에는 더 많은 블로거들의 더 풍성한 '블룩'이 햇빛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흠, 나부터도 어서 2, 3탄을 준비해야 할까...   한국일보(09. 11
 
 
드팀전 2009-06-18 12:19   좋아요 0 | URL
최근에 제가 좋아하고, 자주 펴보는 블룩이...'산타벨라'분의 책입니다.ㅋㅋ
워터코인을 토양 위에 하는 수경재배로 완전히 성공시켰다는...이 만족감.
하나는 뚝배기에 하나는 못쓰는 법랑 주전자에...

로쟈 2009-06-18 14:07   좋아요 0 | URL
대단한 블로거들이 참 많은 듯해요.^^ 블룩 판매량이 의외일 정도로...

2009-06-18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1 1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게으름뱅이_톰 2009-06-22 18:22   좋아요 0 | URL
출판까지 한달! 놀라워요. 글쓰는 블로거들의 로망이 아닐까요? 블룩. ^^

로쟈 2009-06-22 23:11   좋아요 0 | URL
'로망'이라고 하기엔 너무 쉬워진 듯해요.^^
 

이번주 교수신문에 실은 서평칼럼을 옮겨놓는다. 가와이 쇼이치로의 <햄릿의 수수께끼를 풀다>를 읽은 소감을 현 시국과 연관지어 적은 글이다.  

교수신문(09. 06. 15) 헤라클레스 되기를 포기한 햄릿의 운명에서 ‘고귀함’을 보다  

가와이 쇼이치로의 『햄릿의 수수께끼를 풀다』(시그마북스, 2009)를 흥미롭게 읽었다. 셰익스피어만큼 유명한 작가가 없고, 또 『햄릿』만큼 유명한 작품이 없는데 ‘무슨 수수께끼란 말인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이 작품이 품고 있는 수수께끼가 아직 다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독자나 관객을 매혹시키는 게 아닐까. 

저자는 ‘우유부단하고 허약한 철학청년’이라는 햄릿에 대한 고정관념을 ‘허상’으로 치부하면서 그를 헤라클레스 신화와 연관지어 새롭게 해석한다. 단적으로 말해서 헤라클레스란 키워드가 없다면 『햄릿』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해석은 일본뿐만 아니라 국제 셰익스피어학계에서도 제출된 적이 없는 독창적인 견해라 한다.  

사실 단서가 없지는 않았다. 1막 2장에 나오는 독백에서 햄릿은 숙부이자 계부인 클로디어스를 평하면서 “내 아버지의 동생. 그러나 아버지와는 너무도 다르다. 나와 헤라클레스의 차이만큼이나”라고 말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을 근거로 흔히 햄릿을 헤라클레스와는 대척점에 놓인 인물로 인지하게 되지만 저자는 뒤집어서 읽는다. 애초에 ‘나는 헤라클레스와 다르다’고 시인한 햄릿이지만 차츰 헤라클레스처럼 행동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즉 이 작품에서 햄릿은 숙부의 범죄를 알게 된 이후에 헤라클레스와 같은 영웅이 되고자 하며, 그에 따라 변신하게 된다.     

하지만 어째서 그의 결심은 자꾸 유예됐는가. 사실 햄릿은 격정의 인간이기도 하다. 3막 4장에서 왕비인 어머니의 침소 휘장 뒤에 숨어 있던 폴로니어스를 “어, 이건 뭐야? 쥐새끼냐?”라고 외치며 칼로 찔러 죽이는 장면은 그의 제어되지 않은 격정이 표출된 사례다. 햄릿은 그러한 격정이 잘못된 상상과 판단, 그리고 행위를 낳을까 염려한다. 그래서 이성에 따라 참을 것인가(To be), 격정에 따라 행동할 것인가(not to be)를 고민한다. 유령의 정체에 대한 의구심도 거기에서 비롯한다. 때문에 그가 진정한 행동으로 나서는 데는 또 한번의 변신이 요구된다. 그 변신은 그가 헤라클레스와 같은 행동을 포기하고 모든 일을 신의 뜻에 맡기고자 할 때 달성된다. 그것을 잘 말해주는 것이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데에도 하느님의 섭리가 있는 법”이라는 햄릿의 대사다.  

그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햄릿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복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신의 채찍’이 돼 천벌을 내리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만약에 이 작품이 진정한 복수극이라면 마지막 장면에서 한번 더 유령이 등장하는 것이 합당할 테지만, 셰익스피어는 그렇게 처리하지 않았다. 햄릿은 헤라클레스가 되려는 시도를 포기하며 모든 것을 다만 순리에 맡기고자 한다(Let be). 이러한 변신에 따라 ‘To be, or not to be’라는 햄릿의 고민은 ‘Let be’라는 깨달음으로 바뀐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셰익스피어가 말하는 진정한 ‘고귀함’은 인간이 가진 한계를 아는 데, 그리고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데 있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데리다가 『마르크스의 유령들』(이제이북스, 2007)에서 자세히 분석하고 있는 햄릿의 저 유명한 대사 “The time is out of joint.”를 다시금 환기하자면, 우리는 시간이 경첩에서 빠진 시대, 이음새에서 풀려난 시대, 그래서 제멋대로 가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가와이 쇼이치로의 새로운 해석에 기대면, 그렇다고 우리에게 헤라클레스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순리에 따라 행동하면 될 따름. 그리고 “나머지는 침묵.” 

09.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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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9-06-16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쥐'만 나오면 그 분이 생각나서...폴로니어스마저도...지난 번 소개로 저 책을 가지고 있는데 아직 읽지는 못했습니다. '신의 채찍'으로의 '자기 변용'에 약간의 두려움이 생기긴합니다.슈바니츠의 <햄릿> 역시 기다리고만 있구..쯥

로쟈 2009-06-16 13:28   좋아요 0 | URL
네, 셰익스피어는 모든 걸 다 써놓았죠.^^ 장문의 리뷰 잘 읽었습니다. 그렇게까지 근접조우했었는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꼬마요정 2009-06-18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만 존 에버릿 밀레의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죠. 저 책의 표지에 있는 녹색 수초에 쌓인 처연한 여인 오필리어요.. 제 노트북 배경도 이 그림이랍니다. 사람들이 보더니 저더러 미쳤다고 하죠..^^;;

로쟈 2009-06-20 08:34   좋아요 0 | URL
네, 속으로만 맘에 드셨다고 해야겠어요.^^
 

지난 '6.9 작가선언'에는 "촌스러워서 살 수가 없다"는 한줄선언도 포함돼 있었는데, 정말로 촌스러운 일들이 너무도 태연하게, 너무도 자주, 게다가 '강압적'으로 벌어지고 있어서 감정의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이젠 '촌스러운'보다도 몇 단계 아래인 '명박스러운'이라고 해야겠다). 어제는 국세청 게시판에 내부 비판의 글을 올린 직원을 파면시켰다는 기사가 뜨더니 오늘은(내일자) 경찰이 좌파서적 판매동향 파악에 나섰다는 기사가 또 할말을 잊게 한다. 물론 상투적인 '좌파 프레임'으로 시국을 재단하려는 의도이겠지만, 이런 일들이 어이없는 작태에 무감각해지도록 만들려는 '음모'가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다(이젠 '상식 이하'가 '상식'에 돼가고 있는 것 아닌가). 정말로 두려운 건 이제 이런 행태가 '일상화'되는 것, 더이상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 것이다! 

 

세계일보(09. 06. 15) 경찰, 좌파서적 판매동향 긴급파악 나서 배경에 관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학계, 시민사회의 시국 선언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최근 인터넷 서점 업체에 좌파적 시각을 담은 서적들의 판매 동향을 일일이 점검하고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2일 인터넷 서점 업체 A사 측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 11일과 12일 서울 본사와 출판 공장 등에 잇따라 전화를 걸어 서울대 김수행 교수의 저서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 경제를 말하다’(시대의창)와 ‘자본론 1·2·3’ 시리즈(비봉출판사),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시대의창) 등 소위 좌파 서적을 특정하며 이들 서적의 최근 판매 현황에 대해 상세하게 파악했다.   

인터넷 서점 A사에 전화한 경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시국이 어수선한데 좌파 서적 판매량이 요즘 많이 늘어났느냐”며 특히 ‘자본론’ 시리즈 등 3권의 판매 추이를 집중적으로 물었다고 A사 관계자는 전했다. 특히 경찰은 “최근 정부로부터 공문이 내려와 인터넷 서점 등에서 좌파 서적의 판매고 현황을 급히 파악 중이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가정보원이나 검찰 등 정보·사정 기관이 최근 시국 선언 정국에서 이명박 정부에 반하는 좌파 세력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A사 관계자도 “경찰이 이른바 반 정부 세력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기울이며 동향을 상세히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최근 출판 시장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추모 열기에 힘입어 노 전 대통령 관련 서적이 베스트셀러 상위에 오르며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가 교보문고와 예스24 등 전국의 온·오프라인 서점 11곳에서 지난 5일∼11일 판매된 부수를 종합한 결과, 노 전 대통령의 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가 6월 둘째주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1위에 올랐다. 또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도 14위에 올라 출간 7년 만에 20위 안에 들었다.  

한편 정부는 지난해 ‘나쁜 사마리아인들’, ‘지상에 숟가락 하나’, ‘대한민국사’ 등 23권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했으나,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오히려 판매량이 평소보다 7배 이상 늘어나는 등 급증한 바 있다. 당시 네티즌들은 “2003년 MBC ‘느낌표’ 선정도로서 뽑혔던 현기영 작가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나 작고한 아동문학가 권정생씨의 글을 모은 ‘우리들의 하나님’을 불온서적으로 선정하는 현실이 이해가 안 간다”, “누구의 머리 속에서 ‘불온’의 기준이 정해지는지 궁금하다”, “이 참에 좋은 책들 소개해줘서 고맙다”며 정부를 비난했다.(김형구기자) 

09. 0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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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9-06-14 19:23   좋아요 0 | URL
토 나오네용;;

로쟈 2009-06-15 08:08   좋아요 0 | URL
식전에 읽으면 안되겠네요.--;

비로그인 2009-06-14 20:12   좋아요 0 | URL
파하하하하하하하하하
무덤에서 일어난 시체들이 정권을 잡으니
이렇게 웃을 일도 생기는군요

로쟈 2009-06-15 08:07   좋아요 0 | URL
좀비들인가요...

게으름뱅이_톰 2009-06-14 21:10   좋아요 0 | URL
하아아아... 촌스러움의 강도로 말하자면
촌스러움 <<<<<<<<<<<<<<넘사벽<<<<<<명박스러움

정부에서 공문이 내려와...를 보다가 멍해졌어요. 기도 안 막히네.

로쟈 2009-06-15 08:07   좋아요 0 | URL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 과장인 줄 알았어요...

바람돌이 2009-06-14 22:27   좋아요 0 | URL
왜 또 좌파서적 리스트 만들어 좌악 돌리면 되겠네요. 판매량 증가을 위해...
mb가 싫어하면 모든 국민이 좋아하잖아요.

로쟈 2009-06-15 08:06   좋아요 0 | URL
30% 지지자는 빼고요...

마늘빵 2009-06-14 22:35   좋아요 0 | URL
ㅎㅎ 이건 뭐. 이제 책 판매량 검열까지 하는군요.

로쟈 2009-06-15 08:06   좋아요 0 | URL
소설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다면 리얼리티가 떨어진다고 욕먹을 텐데요...

비연 2009-06-15 00:11   좋아요 0 | URL
판매량 늘리고 싶은 책들 리스트업해서 보내줘야겠어요. 불온서적으로.

로쟈 2009-06-15 08:05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출판계가 불황인데, 나름 애써주네요...

노이에자이트 2009-06-15 00:19   좋아요 0 | URL
한나라당이 여당이 되더니 역시 민정당이 되는군요.오늘은 김대중 전대통령이 정권타도 지침을 내렸다고 주장하네요.1980년에 내란음모 사건을 통해 김대중에게 사형선고 내리던 기세와 비슷합니다.

로쟈 2009-06-15 08:05   좋아요 0 | URL
5공 청산이 아직 안된 것이죠...

게슴츠레 2009-06-15 10:40   좋아요 0 | URL
'반정부세력'을 찾으려면 굳이 이런 뒷조사까지 하지 않아도 시청이나 용산에만 가도 쉽게 볼 수 있을텐데요...어쩌면 그분들은 뒤에 '배후''음모'가 있다고 '믿고 싶어하는 것'일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눈앞에 있는 현실의 공포를 외면한 채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에서 모든 재앙이 시작되었다는 음모론 식으로요.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보다는 그렇게 '나쁜 사람들'의 존재를 상정하는 게 그쪽에서는 나름 마음이 편할 것 같기도 합니다.

로쟈 2009-06-15 15:27   좋아요 0 | URL
'음모론'을 서로 공유하고 있는 건가요?^^

가을산 2009-06-15 15:25   좋아요 0 | URL
자신들이 오른쪽 끝에 있으니
자기들보다 왼쪽에 있는 자들은 온통 좌파로 보이나봅니다.

로쟈 2009-06-15 15:27   좋아요 0 | URL
오른쪽도 아니죠. 그냥 무지와 편견과 탐욕의 복합체죠...

가을산 2009-06-15 15:57   좋아요 0 | URL
그건 현실로 받아들이기에 너무 끔찍한 표현이잖아요.... ㅡ,ㅡ

그나저나... 쿠폰 할인 받으려고 새로 번역된 자본론 시리즈 구입을 늦추고 있었는데, 이거 빨리 사야 하는걸까요?
잘못하면 출판마저 금지되겠네요.

로쟈 2009-06-16 13:29   좋아요 0 | URL
길에서 나온 <자본>도 있는데 그건 미처 체크가 안되나 봐요.^^

노이에자이트 2009-06-16 16:19   좋아요 0 | URL
인터넷으로도 자본 영역본을 볼 수 있는데 이건 어떻게 단속할런지...

로쟈 2009-06-17 08:20   좋아요 0 | URL
거긴 터치 안하죠.^^
 

이번주 한겨레21에 실린 신형철 평론가의 '시 읽어주는 남자' 꼭지를 옮겨놓는다. 어제 검찰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결과 발표가 있었는데, 역시나 기대할 것 없는 용두사미였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60233.html).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우려성 발언에 "김대중씨도 자살하라"는 말이 오고가는 게 현 정부와 그 겁없는 지지자들의 수준이다. 무얼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여준다. “그 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시간이 올 것이다.”는 시구절을 읽으며, 버린 눈을 씻는다.    

» 1990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 김영삼 민주당 총재의 3당 통합 연설 중 항의하고 있다.  

한겨레21(09. 06. 12) 그가 남몰래 울던 밤을 기억하라 

순결하고 아름다운 말들이 이미 많아서 누추한 말 보태기가 버겁다. 그러나 아니 할 수가 없다. 고인을 ‘미화’하지 말라고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들이 있다. 미화는, 없는 아름다움을 인위적으로 부여하는 일이지만, 고인은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부분으로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려는 마음들은 이해할 만한 마음들이다. 고인의 잘잘못을 냉철하게 따지지 않고서는 고인을 추모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일정 부분 업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잘못을 범했으니 무작정 감상에 젖지들 말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이 옳다. 그들은 늘 옳다. 그래서 싫다. 그저 내가 아는 바와 믿는 바를 쓰겠다.  

고졸 출신 변호사가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고, 정치판에 나가 자신을 내던져가며 지역구도와 싸웠고, 마침내 대통령이 되어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들과 싸웠고, 권력을 국민에게 넘겨주고 권위마저 잃어버려서는, 그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비판을 모조리 감내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갔고, 자신이 지켜온 가치가 무너지자 뒷산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이 살아야 할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되어 그렇게 살았고,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죽어야 하는지를 마침내 알게 되어 그렇게 죽었다. 나는 늘 문학은 ‘성공’을 찬미하는 세계에 맞서 ‘몰락’의 의미를 사유하는 작업이라고 믿어왔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인간 노무현의 몰락이 내게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문학적이다.

죽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대개의 인간에게는 그의 삶을 떠받치는 척추 같은 것이 있다. 고인의 그것은 ‘깨끗함’이었을 것이다. 권력은, 한 인간이 가장 소중하게 지켜온 가치, 바로 그 척추를 하나씩 부러뜨렸다. 뜻을 함께했던 동지들을 잡아들였고 가족들을 소환해 목을 졸랐다. 가족과 측근이 돈을 받은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는 그의 말을 나는 믿는다. 억울함과 죄책감이 동시에 목을 조였을 것이다. 억울함을 해소하려면 주변이 고통받는 것을 묵인해야만 했고, 죄책감을 덜려면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말해야 했을 것이다. 진퇴양난이었을 것이다. 억울함과 죄책감을 동시에 해결하는 길은 자살뿐이라고, 5월23일 새벽에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 밤이 나는 아프다.

“아마 그는 그 밤에 아무도 몰래 울곤 했을 것이다/ 어느 시인은 세상에 어느 누구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고 말했지만/ 세상은 이제 그가 조용히 울던 그 밤을 기억하려 한다// 어둠 속에서 조용히 흐느껴본 자들은 안다/ 자신이 지금 울면서 배웅하고 있는 것은/ 아무도 보지 못하는/ 자신의 울음이라는 사실을/ 이 울음으로/ 나는 지금 어딘가에서 내 눈 속을 들여다보는 자들의 밤을/ 마중 나가고 있다고// 그리고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 밤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것이라고.” 시인 김경주가 네이버 ‘문학동네’ 카페에 발표한 추모시 ‘그가 남몰래 울던 밤을 기억하라’의 전반부다. 이 시는 이렇게 끝난다. “그 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시간이 올 것이다.”

아마 많이들 그러했으리라. 5월23일 저녁이 되어서야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그는 죽을 수밖에 없었을까’를 생각하다가 ‘누가 그를 죽였을까’로 생각이 바뀌면서였다. 비열한 권력과 그 하수인들이 견딜 수 없이 혐오스러워서, 그들 밑에서 백성 노릇 하는 일이 수치스럽고 서러워서 울었다. 그날 내가 마음속으로 조문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욕할 자격이 내게 있는지 모르겠으나 무릅쓰고 말하거니와, 그날 죽은 것은 머리가 없는 이명박 정부와 영혼이 없는 검찰과 심장이 없는 언론이다. 그날 하루 동안, 나는 그들을 내 안에 잔혹하게 장사 지냈고 조문하지 않았다. 역사가 그들을 부관하고 참시할 것이다. 이제는 우리 각자가 하나씩의 정부, 하나씩의 검찰, 하나씩의 언론이 되어야만 하나.(신형철 문학평론가) 

09. 06. 13. 

P.S. 후렴 삼아 적어둔다. "그날 죽은 것은 머리가 없는 이명박 정부와 영혼이 없는 검찰과 심장이 없는 언론이다. 그날 하루 동안, 나는 그들을 내 안에 잔혹하게 장사 지냈고 조문하지 않았다. 역사가 그들을 부관하고 참시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다들 살아남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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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할 일
    from 실낱처럼 2009-06-14 00:45 
    김대중도 자살하라는 막말이 오고 가는 시절. 68 혁명과 6.10 항쟁을 기억하며 6.9 작가선언을 해야 하는 시절. 나 먹고 사는것도 급급한 세월이지만 이 땅이 창피하고 속상해서 도저히 못 살겠다고 웅얼거리고야 마는 순간들. 그럼에도 살아 남아야 한다고, 언젠가 역사가 부관, 참시할 때 함께 해야 한단다. 내가 무얼 알겠는가. 내가 아는 정치
 
 
2009-06-13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14 1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14 0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14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람혼 2009-06-14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호 이 '시 읽어주는 남자' 꼭지를 종이잡지로 읽고 나서, 이건 지금까지 <한겨레 21>에 실린 신형철의 원고 중 나름 '절창'에 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후배의 자격으로 형철 선배께 감사의 문자 메시지까지 보냈더랬습니다. 저도 저 '후렴구'를 몇 번이나 되뇌어 보았답니다... 꼭 살아남아서 저 역사의 부관 참시에, 참관인의 자격으로나 집도의의 자격으로나, 반드시 참석하고 싶어졌습니다.

로쟈 2009-06-14 11:22   좋아요 0 | URL
네, 저는 잡지가 안 와서 늦게야 읽었습니다. '집도의' 람혼님의 역할도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