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제작진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로 다시금 사법 권력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국민과 법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의 안위와 자리 보전에만 눈에 불을 켜고 있는 듯이 보인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도 아무런 브레이크가 돼주지 못한 걸 보면 자구책은 없는 게 아닌가 싶다. 법치주의를 되돌아보게 하는 책들에 눈이 간다. 원래 이 분야의 책들이 자주 출간됐던 것인지, 아니면 시국과 관련하여 부쩍 많이 출간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눈에 자주 띈다. 이번주에 눈에 띈 세 권에 관한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서울신문(09, 06. 20) [내 책을 말한다] 비열한 법치주의, 불온한 시민을 만든다

법대에 들어가 법조인의 꿈을 키우던 시절, 모래알을 씹는 것과 같다는 법서를 뒤적이며 생각하던 ‘좋은’ 법과 법률가의 모습을 그렸다. 공직자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며 마주한 시민들과 관료, 군인들의 모습이 있었다. 실제 마주한 법률가들과 우리 법의 현실은 감성적으로 이해한 우리사회의 민주화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였다. 교과서 속의 법과 권리는 늘 사람에 의해 왜곡되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법을 마주하였을 때를 스스로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법은 늘 우리 곁에서 우리 삶을 규율하고 있지만, 그 법이 자신의 근처에서 늘 서성인다는 사실을 느끼는 것은 아직 우리에겐 낯선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민들의 무관심은 ‘침묵하는 다수’로 호도되어 늘 권력자들의 구미에 맞게 이용되고 조작된다. 그 모습을 최근 우리 사회에서 여실히 목격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권력이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말한다.  

2007년 가을 한 주간의 뉴스를 통해 법이 담고 있는 의미와 실체를 분석하는 코너를 맡아 근 1년 가까이 라디오 방송을 했다. 그러나 KBS 인사파동 중에,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퇴보하는 징후가 노골화되는 가운데 방송을 중단하게 됐다. 많이 아쉬웠다. 그런데 방송원고를 모아 책으로 묶어 내자는 제의를 받았다. 방송도 얼떨결에 시작했는데 난생 처음 출판하자는 제의를 받고 보니 무척 당황스럽고 망설여졌다. 그 때 다루던 주제들이 이미 시의성을 잃고 있어 어렵겠다고 거절했다. 그러나 찬찬히 살피면 여전히 우리 사회에 유효한 주제로 남아 있다는 의견 앞에 시의성 부족의 항변은 더 이상 통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못내 씁쓸하기도 했다. ‘무엇이 시민을 불온하게 하는가’(갤리온 펴냄)는 그렇게 나왔다.  

진실은 여전히 땅 속을 맴돌고 정의는 도무지 활짝 피어나지 못한다. 과거에 비해 퇴보하고 있다는 우리 민주주의의 현실을 애써 포장하는 법률 기술자들의 행태는 변함이 없다. 집시법 개악, 집단소송제 도입, 광고주 불매운동, 김용철 변호사 양심고백사건, 삼성특검, 대법관 재판 개입사건 등을 헌법과 인권의 관점에서 다뤘다. 권력을 가진 쪽은 비열한 법치주의를 강요하며 불온한 시민을 양산한다. ‘불온’한지의 여부를 권력이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는 수많은 ‘불온’이 모여 발전해 왔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자 교훈이다. 군주의 절대적 권력이 사라진 오늘에도 ‘불온’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활보하고 있음은 우리가 성취한 민주주의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를 다시 생각게 한다. 

원래 생각했던 제목은 ‘삶의 법, 사람의 법’이었다. 시민들이 삶 속에서 항상 관심을 갖고 법과 그 법을 집행하는 권력을 꿰뚫어 볼 수 있을 때 진정한 사람의 법이 완성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다. 회초리를 든 법이 아니라 푸근한 울타리로서의 법이 피어날 때 우리는 분명 살 만한 세상을 아이들에게 선물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천학비재(淺學菲才)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스스로를 부끄럽게 한다. 하지만 깨어 있는 시민이 좋은 법을 만들고 좋은 나라를 이루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최강욱 법무법인 청맥변호사)   

한겨레(09. 06. 20) '석궁재판’ 법치주의 실태를 전하다

2007년 1월15일 저녁 6시30분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 김명호는 자신이 낸 교수지위 확인소송의 항소심 재판장인 서울고등법원 박홍우 부장판사의 아파트를 찾았다. 1층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퇴근하는 박 판사와 마주친 김 교수는 화살이 장전된 석궁을 들고 “항소를 기각한 이유가 뭐냐”고 따져물었다. 잠시 뒤 화살이 발사됐고, 아파트 경비와 운전기사에 제압당한 김 교수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연행됐다.

사건 직후 대법원은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고 재판장 집에 찾아와 흉기를 사용해 테러를 감행했다”고 발표했다.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는 대법원장의 발언과 “법치주의가 흔들리면 국가 질서도 혼란에 빠지게 된다”는 전국법원장회의의 담화가 잇따랐다. 그런데 여론은 법원 기대와는 반대로 흘러갔다. 사건을 보도한 인터넷 기사에는 “법치주의? 똥 싸고 자빠졌다” “나도 석궁을 쏘고 싶었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부러진 화살>은 “원칙대로 고집스럽게 살면서 주변에 적당히 사는 사람들을 괴롭게 만드는 ‘성질 깐깐한 한 수학자’가 벌인” 대한민국 법원과의 전투 기록이다. 책을 쓴 전문 인터뷰어 서형씨는 3대 권력기관(청와대·국회·대법원)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다 ‘1인시위계의 전설’이 된 김 교수를 뒤늦게 만났다. 석궁사건에 대한 7차 공판이 진행되던 시점이었다.

글쓴이가 지켜본 공판은 한 편의 부조리극이다. 피고인 신분의 김 교수가 판사와 검사를 향해 “법을 지켜라” 하고 호통치는가 하면, 재판장은 피해자 박 판사에 대한 변호인의 신문을 수시로 가로막는다. 피고인에겐 공공연한 경멸감을 표출하면서 박 판사에게는 깍듯하게 대하는 검사나, 부장판사를 지낸 사람이 맞을까 싶을 만큼 진술에 일관성이 없는 박 판사, 재판중임에도 문을 박차고 나가거나 소리를 질러대는 방청객들 역시 이해하기 어렵긴 마찬가지다.

원고 쪽이 밝힌 사건 전모 역시 석연찮은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박 판사의 복부에 난 상처는 1.5m 거리에서 쏜 화살을 정통으로 맞았다고 보기엔 턱없이 경미하고, 재판부에 제출된 증거품 가운데는 박 판사가 맞았다는 ‘부러진 화살’이 사라지고 없다. 박 판사의 겉옷과 내복에 남아 있는 핏자국이 와이셔츠에는 없는 점, 확보된 혈흔이 박 판사의 것이 맞는지조차 확인하지 않은 부실 수사도 의혹만 키울 뿐이었다. 그런데 증거의 부실함을 지적하며 박 판사에 대한 추가 신문과 혈흔 감정이 필요하다는 김 교수의 요청을 재판장은 모두 기각한다. 김 교수는 결국 항소심에서도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대법원 확정판결을 거쳐 교도소에 3년째 수감중이다.

글쓴이는 석궁 재판을 사실상의 징벌 재판으로 규정한다. 재판의 부당성을 고발하며 판사의 실명이 적힌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판사를 석궁으로 위협하고 재판정에서도 법조항을 들이대며 재판부의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하는 겁 없고 불손한 피고인에 대한 ‘법조 카르텔’의 집단보복이란 얘기다.   

사건 당사자인 김 교수와 주변 인물은 물론, 현직 부장판사와 법원 직원, 나아가 유사한 사법 피해자들과 사건을 취재한 언론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항소심 재판장과 김 교수의 법정공방을 속기록 형태로 정리한 5장은 대한민국 사법부의 문제점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현장 르포로도 손색이 없다.(이세영 기자)   

세계일보(09. 06. 20) 재판제도는 신이 만든 제도가 아니다

인간사회를 가장 명확하게 특징짓는 것 중의 하나가 ‘재판제도’다. 국가가 형성된 이후 인류의 역사는 ‘재판의 역사’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개체성이 강하고 지혜가 발달한 인간에게는 필연적으로 다툼과 분쟁과 반역이 있게 마련이고, 그에 따른 공정한 판단과 조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공정한 재판이 존재할까. 죄 있는 사람은 벌을 받고, 죄가 없는 사람은 무죄판결을 받는 것이 재판의 원리거늘 과연 그럴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왜 통용되며, 살인이나 반역죄로 수십 년을 감옥에서 보낸 사람이 무죄로 방면되는 일은 왜 반복해서 일어날까. 정권이 바뀌면 왜 전 정권 고위인사들은 줄줄이 쇠고랑을 찰까.

영국 변호사인 브라이언 해리스가 지은 ‘인저스티스―세기의 정치범 재판’(이보경 옮김, 열대림)은 부정 혹은 불의가 발생한, 즉 무고한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거나 유죄판결에 ‘합리적 의혹’이 존재하는 악명 높은 재판들을 탐구하여 그 재판이 ‘공정했는가’의 문제는 물론 피고는 ‘유죄인가, 무죄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불의’의 본보기로서 반역죄, 간첩활동, 폭동 같은 명백한 범죄뿐만 아니라 의무태만, 비겁함, 정치적 목적의 강탈, 불경죄, 노동쟁의 같은 다양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은 무엇보다도 ‘판결에 대한 균형 잡힌 검증’을 시도한다.

저자는 사법 살인의 대표적 희생자로 영국 해군 지휘관 존 빙 제독을 예로 들었다. 1756년 지중해 미노르카 섬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은 빙 제독은 영국 함대의 형편없는 전투력으로는 도저히 프랑스 함대를 이길 수가 없다는 전략적 판단을 내린다. 그럼에도 프랑스 함대와의 전투에서 무승부를 기록한다. 하지만, 왜곡된 보고서에 기초한 해군본부는 빙 제독이 일을 다 그르쳤다며 체포했고, 그 후 근거가 부족한 명령불복종죄, 근무태만죄, 영국 정부에 의해 선동된 전국적인 편견과 여론을 등에 업은 군사재판이 열렸다. 그를 구하기 위해 적이었던 프랑스 장군까지 서신을 보냈지만 정부 측에 의해 탈취되었고, 정부는 미노르카 섬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난을 무마하기 위해 빙 제독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당시 ‘뉴게이트 캘린더’지는 “존 빙 제독은 온 유럽을 경악시키며 처형되었다. 그의 과오와 무분별함이 무엇이었든 영국 정부는 그를 가혹하게 매도했고 비열하게 포기했으며 정치적 음모에 잔혹하게 희생시켰다”고 보도했다.

책은 이 밖에도 링컨 암살자들부터 영국 왕 찰스 1세, 방송인 윌리엄 조이스, 영국 영사였던 로저 케이스먼트, 노동조합운동의 등불로 여겨지는 톨퍼들 순교자들, 아나키스트였던 사코와 반제티, 대법관 토머스 모어, 그리고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의 나치주의자들, 그리고 원폭 기밀 간첩 로젠버그 부부에 이르기까지 ‘부당한 재판’으로 인식되는 13가지의 악명 높은 재판 사례를 통해 권력자 또는 국가가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대상을 어떻게 희생시켰는지,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불의’는 무엇인지를 꼼꼼하게 파헤쳤다.

“수많은 악명 높은 사건들을 살펴보고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는 저자는 “불확실함과 도덕적 모호함이 넘치는 정치범 재판은 인간의 행동방식을 관찰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시험대”라고 말한다. 지금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정치성 재판에 관여하고 있는 검사와 판사, 그리고 이를 보도하는 언론에 반면교사가 되기에 충분하다.(조정진기자)  

09. 0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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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h.의 생각
    from sanghyun's me2DAY 2009-06-20 12:04 
    대학교수가 판사를 석궁으로 쐈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전후사정이 책으로 엮어졌군요. via 로쟈의 저공비행
  2. 이제 검찰의 이빨을 뽑아야 할 때
    from 급진적 생물학자 Radical Biologist 2009-06-20 23:58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때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검찰개혁을 위한 여론이 형성되고 있지만, 여전히 검찰은 오만하기 짝이 없다. 박연차 게이트, 용산참사, 촛불시위, 피디수첩 등등의 개개사안에 대한 문제제기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제 근본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할때다. 이제 국민들은 더 이상 검찰의 수사를 신뢰하지 않는다. 문민정부 시절부터 검찰개혁에 관한 논의가 있어왔지만, 그 성과는 보잘것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
  3. 사코와 반제티 사건과 한국사회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9-12 09:13 
    이번주에 눈에 띄는 신간은 저널리스트들이 쓴 역사서이다. '알 카에다에서 9·11까지'를 다룬 로렌스 라이트의 <문명전쟁>(다른, 2009)과 '세계를 뒤흔든 20세기 미국의 마녀재판'이란 부제를 단 브루스 왓슨의 <사코와 반제티>(삼천리, 2009). 미국사/문명사의 한 단면을 자세하게 파헤치고 있는 책들인데, 개인적으론 내용보다도 이런 책들을 쓸 수 있는 필자와 시장 조건이 좀 부럽다. 이번주 한겨레2
 
 
승주나무 2009-06-20 16:43   좋아요 0 | URL
제목 없음

안녕하세요. 승주나무입니다.
알라딘 서재지기와 네티즌들이 함께 시국선언 의견광고를 하려고 합니다.
알라디너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참여의사를 댓글로 밝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강요는 아닙니다^^;;

즐찾 서재들을 다니면서 통문(댓글)을 돌리고 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남기는 스팸성 댓글이지만 어여삐 봐주세요~~~

http://blog.aladdin.co.kr/booknamu/2916466


2009-06-21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삭 바벨의 비극적 삶을 모티브로 한 픽션 <사라진 원고>(난장이, 2009)도 그렇지만, 이번주에 나온 책에는 역사의 희생자들을 다룬 책이 도드라진다. 중국 작가 리궈원의 <중국문인의 비정상적인 죽음>(에버리치홀딩스, 2009)도 그렇고, 문인/지식인의 죽음을 다룬 건 아니지만 여순사건을 다룬 김득중 박사의 <빨갱이의 탄생>(도서출판선인, 2009)도 그렇다. 관련기사를 모아놓는다.  

한국일보(09. 06. 20) 사마천은 궁형, 이백은 투신… 그들은 왜?

고래로 중국의 지식인들은 '사농공상'의 맨 앞자리에 그 이름이 놓였다. 때로 사당에 위패로 모셔져 사람들의 절을 받을 수도 있었다. 잘하면 문선왕(文宣王)이라는 시호를 받은 공자처럼 명예로나마 왕 대접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치병에 걸린 문인은 약도 없다'는 말이 있다던가. 지식인들은 명예라는 상징권력에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고 호시탐탐 정치권력을 탐했다. 지식인들에게 정치권력이란, 먹고 싶지만 입천장이 델까 두렵고, 안 먹자니 좀이 쑤셔 못견디게 만드는 달콤한 독약이었던 셈.  

중국의 원로작가 리궈원(79)은 이 달콤한 독약을 마실까 말까 고민하며 속세와 탈속의 중간지대에서 끊임없이 방황했던 지식인들의 행태를 주목한다. 그 회색지대에서 최고권력자로부터 혹은 동료 문인들로부터 목이 베이고, 팔 다리가 잘리고, 허리가 끊기고 혹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지식인들의 비참한 말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지은이는 한 무제의 심기를 건드려 궁형을 당한 사마천, 당 현종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부르다 말년에는 줄을 잘못 서 감옥에 갇히고 결국 투신으로 생을 마감한 이백, 갑골문을 정리한 위업에도 불구하고 동료 문인과의 갈등으로 호수에 몸을 던진 청 말의 고증학자 왕궈웨이까지, 중국 지식인 36명의 죽음을 재조명한다.

문인들의 비극적 말로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것은 최고 권력자들에 의한 보복이다. 지은이는 중국사에 300명이 넘는 황제가 군림했지만 그 중에 지식인을 높이 평가하고 진정으로 대접한 현군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말한다. 비교적 교양있는 축은 지식인들을 질투했고, 교양이 없는 자들은 지식인을 증오했으며, 반편이 같은 이들은 지식인들을 괴롭혔다는 것. 조조가 금주령을 발표하자 "요 임금은 술을 즐겼기 때문에 성현의 반열에 올랐다"며 공공연히 조조를 비꼬다 사형당한 공융, '명사(明史)'를 편찬해 이민족 정권의 약점을 건드린 죄목으로 청의 강희제에게 처형당한 장정롱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동료들의 질투로 목숨을 잃은 문인도 부지기수다. 사부(詞賦)에 능한 문장가이자 뛰어난 역사학자, 서예가, 작곡가로 동양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꼽히는 후한의 채옹이 그런 인물이다. 그의 죽음이 중국인들의 '참치통조림 법칙'과 연결돼 있다는 저자의 설명은 흥미롭다. 오랫동안 자급자족의 농경사회에 살아 경쟁에 대한 관념이 결여돼있는 중국인들은 "네가 나보다 나으면 얼마나 나으며, 내가 너보다 못하면 얼마나 못하겠냐"는 생각에 사로잡혀 평균적인 것을 생산하는 데 익숙하다는 것. 채옹은 너무나 특출했기 때문에 죽음을 당했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지식인들에 정치보복을 일삼은 황제들이나 그들의 재주를 질투한 동료들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지식인들의 죽음은 권력에 대한 그들의 이율배반적 태도에 기인했다는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문장가로 명성을 날렸지만 벼슬을 탐하다가 교수형을 당한 서진시대 육기의 죽음에 대해 그는 "글쓰기가 자신의 최대의 무기라면, 관직이 바로 자기자신에게는 최대의 약점"이었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지식인들에게 "어떤 종류의 유혹이든, 그것이 금빛이든, 은빛이든, 핑크빛이든, 심지어는 오색찬란하고 거대하고 아름다운 것일지라도 가능한 한 그것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중국작가협회 명예위원인 리궈원은 1957년 공산당의 관료주의를 비판하는 소설을 내놓았다가 우파 작가로 낙인찍혀 문화혁명기에 철도 건설현장에 하방돼 20여년간 붓을 꺾어야 했던 인물. 그같은 경험이 권력과 지식인의 관계에 대한 그의 성찰에 무게를 더해준다.(이왕구기자)  

  

한겨레(09. 06. 20) '빨갱이’는 국민-비국민 가르는 이분법에서 태어났다

여순사건을 상징하는 사진 한 장이 있다. 학교 운동장처럼 보이는 넓은 공터에 주민 수천 명이 양쪽으로 패를 나눠 앉아 있다. 두 무리를 나눈 폭 3미터 남짓한 중간지대에는 무장 군인들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는데, 담장 뒤편 시가지에서 치솟는 검은 연기가 주민들이 맞닥뜨릴 운명의 가혹함을 예고하는 듯하다. 당시 <동아일보>를 통해 ‘피난민 수용소’로 소개됐지만, 실은 여수 진압 직후 여수 서국민학교에서 벌어진 좌익 협조자 색출 장면이다. 오른쪽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부역 혐의자들로, 사진 촬영 직후 89명이 학교 뒤편으로 끌려가 즉결처분됐다. 운동장을 가로지른 중간지대는 양민과 혐의자의 편의적 구분선이 아닌, 삶과 죽음의 절대적 경계선이었다.

“진압군이 시가지를 점령한 뒤 가장 먼저 한 게 주민을 한곳에 모아놓고 ‘빨갱이’를 골라내는 일이었습니다. 경찰 생존자와 우익 인사들이 대열을 훑고 다니다 ‘저놈’ 하고 지목하면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주민들은 이것을 ‘손가락 총질’이라고 불렀어요. 그들을 기다리는 건 무자비한 몽둥이질과 총살, 참수형이었습니다.”

<‘빨갱이’의 탄생>을 펴낸 김득중(44)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여순사건의 핵심적 의미를 ‘대한민국 국민 만들기’에서 찾는다. 출범 두 달을 갓 넘긴 이승만 정부에 여순사건은 “대한민국 국민의 자격 조건”을 심사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국민’으로 승인하는 것은 항상 ‘국민이 아닌 자’를 구분하고 배제하는 과정을 동반하는데, 이승만 정부한테 ‘비국민’은 ‘빨갱이’였다.

“빨갱이란 말은 일제 때부터 있었고, 해방공간에서도 공산주의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빈번하게 사용됐어요. 그런데 여순사건을 거치며 그 의미가 변합니다. 단순히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자가 아니라 ‘양민을 학살하는 살인마’ ‘같은 하늘 아래서 살지 못하는 인간 이하의 존재’라는 악마성을 획득하게 된 것이죠. 부역자 색출 작업이 벌어진 학교 운동장은 양민과 빨갱이, 인간과 비인간, 국민과 비국민을 준별하는 공간이었던 겁니다.”

물론 우익의 ‘빨갱이 사냥’은 봉기 기간 좌익이 벌인 학살행위가 빌미가 됐다. 실제 반군이 장악했던 여러 지역에서 반군과 좌익세력에 의해 경찰과 우익 인사들이 대량으로 살해됐다. 하지만 글쓴이는 좌·우익의 살상행위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학살의 규모나 대상, 지속 기간에서 차이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조사를 보면, 전체 희생자 1만여명 가운데 95%가 국군과 경찰에 의해 죽었습니다. 지방 좌익과 반군이 죽인 사람은 500명 정도예요. 그리고 행위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좌익의 학살은 표적이 분명했습니다. 친일 경찰과 한민당 세력, 좌익 탄압에 앞장섰던 청년단원들이었지요. 그런데 우익은 달랐어요. 반란을 일으킨 14연대 군인들과 반군 점령기에 인민위원회 활동을 한 남로당원뿐 아니라 그들에게 밥 해준 사람, 분위기에 휩쓸려 부화뇌동한 학생, 반군이 남기고 간 소지품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이 변변한 자기변론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살해당했습니다. 복수심 때문이라고 보기엔 정도가 지나쳤습니다.”  

실제 희생자 중에는 평소 경찰과 사이가 안 좋았던 검사, 좌익에 온정적이었던 여중 교장 등 우익 명망가도 있었다. 이들은 반군에 협조한 증거가 없었는데도 심증만으로 잡혀가 처형됐다. 전 시민을 적으로 간주하는 초토화 진압작전의 산물이었다. 그들은 빨갱이라서 죽은 게 아니라, 죽은 뒤에 빨갱이가 된 경우였다.

이런 ‘빨갱이 만들기’에는 언론과 문인들의 구실이 컸다는 게 글쓴이의 분석이다. 실제 신문들은 정보 획득의 통로가 제한된 상황에서 정부와 진압군의 발표 내용, 시중에 떠도는 소문들을 여과 없이 보도했고, 시찰단 자격으로 현지를 방문한 시인과 소설가들 역시 공산주의자의 비인간적 잔인성을 부각시키는 글을 경쟁적으로 발표했다. 이를 통해 ‘빨갱이’란 기표에 담긴 ‘살인마’ ‘비인간’의 이미지는 국민의 의식회로 안에 견고하게 자리잡았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 되려면 반공의식을 내면화해야 했고, 이렇게 내면화한 반공논리는 대한민국 60년사를 통해 지배권력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빨갱이라는 유령을 어김없이 불러냈다.

“인터넷에서 ‘좌빨’(좌익빨갱이)이란 표현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누리꾼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대북 강경책에 반대하고 집회·시위와 사상의 자유, 노동자의 파업권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거침없이 빨갱이 딱지를 붙이려 드는 이들의 사고 구조에는 여전히 양민과 빨갱이, 국민과 비국민을 나누는 이분법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여순사건은 아직도 진행형인 셈입니다.”(이세영기자)  



» 1948년 10월26일 여수 서국민학교에서 벌어진 좌익 협조자 색출 장면. <호남신문> 이경모 기자가 찍었다. 같은 장면을 당시 <동아일보>는 피난민 수용소로 소개했다. 

여순사건은 ‘반공국가’ 건국공신
1948년 10월19일 제주 4·3사건 진압을 위해 전남 여수에 주둔중이던 국방경비대 14연대 군인들이 제주 출병을 거부하며 일으킨 무장반란. 지방 좌익세력과 주민들이 봉기에 호응해 가세하면서 여수와 순천, 광양, 구례, 보성 등 전남 동부지역으로 파급됐다. 당시 정부는 북한과 남로당의 지령에 따른 계획적 반란으로 규정했으나 최근 연구 결과 남로당 중앙조직이나 북한과는 무관하게, 숙군(肅軍) 움직임에 위기를 느낀 14연대 내 남로당 조직원들이 우발적으로 일으킨 사건으로 확인되고 있다. 군인봉기가 광범위한 대중운동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친일파 재등용과 토지개혁 지연, 단독정부 수립에 따른 사회·정치적 불만의 누적 등이 꼽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승만 정부는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강력한 반공국가를 구축했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기도 하다.  

09. 0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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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9-06-20 09:51   좋아요 0 | URL
서글픈 역사입니다. 친일 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한 게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네요.. 책 두 권 모두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로쟈 2009-06-21 10:26   좋아요 0 | URL
아직도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이죠.--;

노이에자이트 2009-06-20 15:07   좋아요 0 | URL
남부군을 쓴 이태가 유작으로 남긴 실록이 <여순병란>이었습니다.14연대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여순 병란이지요.

로쟈 2009-06-21 10:27   좋아요 0 | URL
역사로서 제대로 조명되면 좋겠어요...
 

스탈린 시대에 숙청된 러시아 작가 이삭 바벨(1894-1940)의 삶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 번역돼 나왔다. 트래비스 홀랜드의 <사라진 원고>(난장이, 2009). 출판사 소개를 잠시 옮겨보면, "<사라진 원고>의 모티프가 되어준 이삭 바벨. 그는 유대인 출신 러시아의 작가다. 그가 쓴 <적군기병대>는 20세기의 가장 참혹했던 전쟁 가운데 하나인 러시아-폴란드 전쟁의 단면을 40개의 단편으로 그려낸 소설이다. 바벨은 1920년 6월부터 9월까지 약 3개월 가량 부조니 장군의 제1기병대에 배속되어 우크라이나의 갈리치아 일대에서 복무하는데, 이 시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소설이 바로 <적군기병대>이다. 이 소설은 1926년 모스크바에서 출간되었고, 곧이어 독일어 번역판이 나오기도 했는데, 이후 나치시대에 이 책은 금서목록에 오른다. 1920년대 이삭 바벨은 소련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이었다."  

<적군기병대>는 국내에 <기병대>라고 번역 소개됐다. 오래전에 '소련동구문학전집'(중앙일보사)의 한권으로 출간됐었고, 작년엔 발췌본이 역사 <기병대>(지만지, 2008)란 제목으로 나왔다. 20세기 러시아문학사의 중요한 작가이지만(특히 '장식체'라는 문체가 유명하다), 한국어로는 마르크 슬로님의 <소련의 작가와 사회>(열린책들, 1985), 마샬 버먼의 <맑스주의의 향연>(이후, 2001) 등에서 간략한 전기적 스케치를 읽을 수 있는 정도다. 그의 단편 전집과 평전 정도는 소개되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절친했던 친구의 전공이 '바벨'이었고, 그가 남긴 번역 원고도 갖고 있다. 손을 보아서 책을 내기로 했는데, 차일피일 미뤄져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살아있다면 <사라진 원고>의 출간을 꽤나 반가워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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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ivist's Story (Hardcover, Large Print)
트래비스 홀랜드 지음 / Thorndike Pr / 2007년 10월
55,780원 → 45,730원(18%할인) / 마일리지 2,290원(5% 적립)
2009년 06월 19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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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원고
트래비스 홀랜드 지음, 정병선 옮김 / 난장이 / 2009년 6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09년 06월 19일에 저장
품절

맑스주의의 향연- 컬리지언총서 22
마샬 버먼 지음, 문명식 옮김 / 이후 / 2001년 9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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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대
이사크 바벨 지음, 김홍중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8년 11월
12,000원 → 11,400원(5%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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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6-19 23:43   좋아요 0 | URL
중앙일보사에서 나온 문학전집 시리즈 중 동구문학 시리즈만 없어요.제 것은 삼진사 전쟁문학전집(1972)에 있던 김학수 번역본입니다.장편이었으면 더 좋았을텐데...하는 생각이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폴란드는 그저 강대국들에게 당하고만 사는 나라라는 편견이 있는데 폴란드-소비에트 전쟁을 안다면 생각이 달라질 거에요.그 전쟁도 그렇고 1차대전 종전에서 2차대전 직전의 폴란드는 좀 동정받기 힘든 짓을 많이 했죠.

로쟈 2009-06-20 08:38   좋아요 0 | URL
전쟁문학전집은 처음 들어보는데요.^^ 바벨은 '장편소설'을 쓸 수 있는 역사적 전망을 갖지 못했어요. 그와 동시대 작가들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게 자연스럽죠...

옥탑방 2009-06-21 22:21   좋아요 0 | URL
이삭 바벨의 <적군 기병대>를 단편으로 분류하는 것도 좀 애매할 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건 연작이라고 해야 할 듯 하거든요. 마치 <난쏘공>처럼.

로쟈 2009-06-21 22:38   좋아요 0 | URL
네, 단편들로 구성된 연작소설집이죠...

craykim 2009-06-23 10:29   좋아요 0 | URL
마사까, 옮긴이 정병선님이 그 정병선님은 아니겠죠?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로쟈 2009-06-23 22:32   좋아요 0 | URL
전문번역자 정병선씨입니다...
 

이번달 <고교 독서평설>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니콜라이 고골을 다룬 '갑론을박' 꼭지다. 당초엔 이번 봄에 <외투>에 대한 논문도 쓰려고 했으나 여러 가지 사정을 실현되지 못해 아쉽다. 탄생 200주년을 맞은 작가를 위해서 뭔가 더 할일을 찾아봐야겠다...  

고교 독서평설(09년 6월호) 보이는 웃음을 통해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리다

러시아 근대 문학의 토대를 닦은 작가, 고골
“날 좀 내버려 둬요, 왜 그렇게 나를 못살게 구는 거요?”
이 한 대목만 가지고 작가와 작품을 떠올리기는 어렵겠지만,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1809~1852)의 걸작 단편 「외투」(1842)를 읽고 난 다음이라면 이 대목을 잊기도 어렵다. 이번 달에는 러시아 문학에서 가장 수수께끼 같은 작가로 불리는 고골의 문학 세계를, 그의 대표작 「외투」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사실 동기는 충분하다. 올해는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과 함께 러시아 근대 문학의 토대를 닦은 고골이 태어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고골은 과연 러시아 문학사, 더 나아가 세계 문학사에 어떤 족적을 남겨 놓았을까? 그의 문학은 어째서 아직도 많은 수수께끼를 남기고 있는 것일까?   



‘웃음’과 ‘공포’의 환상적인 조화
고골은 1809년 4월 1일에 러시아의 지배 아래 있었던 우크라이나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말하자면 그 당시엔 ‘소러시아’라고 불린 우크라이나가 그의 출신지이고 고향이다. 그가 처음 문학적 명성을 얻게 된 작품집이 그곳 민담들을 소재로 한 <지칸카 근촌 야화(夜話)>(1831)인 것은 그런 배경을 갖고 있다. 고골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지역의 소지주 출신이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고골을 낳기 전 두 차례나 사산(死産)을 경험한 어머니는 자신의 불행을 다독이기 위해 더욱 독실한 정교회 신자가 되었다. 그리고 어렵게 얻은 맏아들의 이름을 교회 이름을 따서 ‘니콜라이’라고 지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면서 늘 기도를 드리던 어머니의 신앙은 미신적인 성향이 강했다. 아들을 각별히 사랑하면서도 그녀가 어린 고골에게 입버릇처럼 들려준 이야기는 주로 최후의 심판과 지옥의 고통에 관한 것이었다. 이런 미신적이고 광신적인 신앙을 물려준 어머니와 달리, 아마추어 극작가이자 연극 애호가였던 아버지 바실리 고골은 아들에게 어릴 때부터 문학과 연극에 대한 열정을 심어 주었다.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을 맡고 배우로 무대에 서기까지 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고골은 연극에 대한 관심과 문학적 감수성을 키워 나갔다.  

이렇듯 다소 이질적인 부모의 영향은 이후 작가 고골의 삶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러시아 사회의 속물성과 관료주의적 폐해를 풍자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묘사함으로써, 고골은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재능이 진지한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통받았다. 덕분에 우리가 얻게 된 것은 ‘너무도 경쾌하고 코믹한 고골’과 ‘너무도 진지하고 우울한 고골’이라는 서로 상반되는 작가의 이미지다. 그는 자신의 재능과는 잘 맞지 않는 과제, 혹은 사명을 스스로에게 부과함으로써 고통을 자초한 것은 아니었을까.    

가령 고골 창작의 전환점이 된 희곡 <검찰관>(1836)을 들여다보자. 이 작품은 지방 여행 중에 돈이 떨어져 여관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한 하급 관리 흘레스타코프가, 수도 페테르부르크에서 온 검찰관으로 오인되는 바람에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을 그린 5막 희극이다. 흘레스타코프가 떠나고 난 뒤에야 자신들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장과 지역 유지들은 분통을 터뜨리는데, 바로 그때 진짜 검찰관이 도착했다는 전갈을 듣는다. 무대 위의 모든 인물들이 경악과 함께 몸이 화석처럼 굳어져 버리고 관객은 폭소를 터뜨리는 것으로 이 작품은 막을 내린다. 한데, 고골은 지문에서 이 마지막 장면을 모든 배역이 거의 1분 30초가량 굳어 버린 자세를 취하고 있는 ‘정지 장면’으로 처리하도록 요구했다. 그리고 실제 공연에서 이 요구가 잘 지켜지지 않자 화를 내기도 했다. 그렇다면 작가는 어떤 효과를 거두기 위해 그토록 이 장면을 강조한 것일까? 

<검찰관>에는 “제 낯짝 비뚤어진 줄 모르고 거울만 탓한다.”라는 러시아 속담이 제사로 쓰였다. 고골은 자신의 작품을 일종의 ‘거울’로 간주했다. 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우스꽝스러운 소동을 보면서 마음껏 웃음과 조롱을 퍼붓는 동시에, 마치 거울처럼 관객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정지 장면에 섬뜩함을 느끼게 된다. 고골은 관객이 그런 깨달음을 얻기를 기대했고, 그 깨달음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 1분 30초라고 본 것이다. 따라서 이 장면은 처음엔 웃음을 유발하지만, 차츰 그 웃음은 자신도 무대의 속악한 인물들과 다를 바 없다는 깨달음과 더불어 공포로 바뀐다. 고골의 의도는 그 공포와 함께 관객들을 도덕적인 정화(淨化)와 참회에 이르도록 하는 데 있었다. 얼핏 상반되어 보이지만, ‘웃음’과 ‘공포’는 그런 점에서 고골 문학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다. 곧 그의 이야기들은 기본적으로 우스운 이야기면서 동시에 무서운 이야기다

충동의 인간에서 욕망의 인간으로 - 「외투」
머리가 벗겨진 중년 9급 관리의 불행한 이야기를 다룬 「외투」의 경우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일단 작품은 기본적으로 코믹하며 언어유희적이다. 주인공의 이름부터가 그런데,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가 그의 이름과 부칭이고, ‘바슈마크(구두)’라는 말에서 유래한 ‘바슈마치킨’이 성(性)이다. ‘아카키예비치’가 부칭이라는 사실은 아버지의 이름도 ‘아카키’였다는 걸 뜻한다. 곧 아버지도 아카키고 아들도 아카키다. 새로 태어난 아이의 이름 후보들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자 그의 어머니는 그냥 남편의 이름을 아이에게 물려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란 이름에서 반복되는 ‘카카(kaka)’란 말이 러시아 어에서는 ‘똥’이나 ‘응가’를 뜻하는 유아어이기도 해서, 주인공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러시아 독자들은 묘한 재미를 느끼게 된다. 이 가련한 주인공은 동시에 가장 우스꽝스런 주인공이기도 한 셈이다. “세례를 받을 때 아기는 울어 버렸고, 마치 9급 관리가 될 것을 미리 예상이라도 한 듯 얼굴을 찡그렸다.”    

러시아 관료제는 18세기 초반 표트르 대제(1672~1725) 시대에 관료제 개혁 이후 14등관제로 개편되었으며, 9등관(9급)은 가장 대표적인 하급 관리에 속했다. 서류를 정서하는 일이 주된 업무인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역시 9급 관리였다. 그는 사무실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존재이며, 경비조차도 그가 지나갈 때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그저 파리 한 마리가 지나가는 정도로 여겼다. 같이 근무하는 동료들은 그를 조롱하거나 짓궂게 놀려 댔다. 아카키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팔까지 건드리며 정서를 방해할 때는 “날 좀 내버려 둬요, 왜 그렇게 나를 못살게 구는 거요?”라고 애처롭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얼떨결에 남들을 따라서 아카키를 조롱하던 젊은 직원은 이 말을 듣고서 뭔가에 찔린 듯이 움찔했다. 거기엔 “나도 당신들의 형제요.”란 소리도 반향으로 묻어났다. 그 뒤 이 젊은이는 평생 동안 인간의 잔인함에 몸서리를 쳤다고 이야기의 화자는 전해 준다.     

사실 고골의 「외투」는 러시아 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단편이면서, 또 가장 많이 오해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을 박애주의를 표방한 것으로 이해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러한 시각에서는 작가 고골이 이 소설에서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같은 ‘작은 인간’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근거로 “나도 당신들의 형제요.”라는 구절을 자주 인용한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주인공이 자신의 일에서 발견하고 있는 지극한 즐거움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그에게 정서는 단순한 직무가 아니라 어떤 사랑의 대상이었고, 자족적인 즐거움의 세계였다.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처럼 자신의 일에 충실한 사람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단순히 열성적으로 일한다고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아니, 그는 애정을 갖고 근무했다. 이 정서하는 일에서 그는 다양하고 즐거운 자신만의 어떤 세계를 발견한 것이다.”  

아카키는 이러한 자기만의 세계에 몰입해 있는 인물이었다. 그에게는 정서하는 일 외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서, 옷차림 따위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거리를 걸으면서도 오로지 자신의 필체로 쓴 글씨들만을 떠올렸다. 근무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도 그는 수프와 양파를 곁들인 쇠고기 요리에 파리가 붙었거나 말거나 무슨 맛인지도 모른 채 간단히 요기만 하고는 다시 정서를 시작했다. 서류를 정서하기도 하고 취미로 필사본을 만들어 두기도 했다. 일에 대한 열정만을 가지고 본다면 아카키는 5급 직책을 하사받을 만도 한 인물이었다. 말하자면 아카키에게는 두 가지 모습이 있었다. 혹은 두 명의 아카키가 있었다. 평소의 9급 관리 아카키와 5급 관리의 열정을 갖고 정서할 때의 아카키. 정서하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글자들이 나오면 너무 기뻐하는 모습은 마치 딴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렇듯 “즐거운 자신만의 어떤 세계”를 갖고 있는 인물이 동정의 대상이 된다면 좀 이상하지 않을까? 

정신 분석학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정서하는 일에서 지극한 만족감을 얻는 아카키는 ‘충동’에 의해 지배되는 인물이다. 충동(drive)은 어떤 대상을 끊임없이 손에 넣으려고 애쓰는 욕망(desire)과는 달리 어떤 대상의 주위를 맴도는 데서 만족을 얻는다. 곧 충동의 목적은 주체와 대상 간의 순환적인 경로를 반복하는 것이다. 아카키가 정서하는 일에서 느끼는 만족은 바로 이러한 충동에서의 만족이다. 이런 성격의 만족에는 외부적 현실이 필요하지 않으며, 따로 방해자만 없다면 언제까지라도 지속될 수 있다. “400루블의 급료로 자신의 운명에 만족하며 살아가던 한 인간의 평화로운 삶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고 아마 또 그렇게 순조롭게 말년을 맞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카키의 사회적 고립과 소외는 결코 불운하거나 불행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보는 시각은 단지 외부적 시점을 투사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날 좀 내버려 둬요, 왜 그렇게 나를 못살게 구는 거요?”란 아카키의 항의는 그에 대한 조롱뿐만 아니라 동정에도 적용될 수 있을 듯싶다. 그리고 그 항의의 또 다른 대상이 될 만한 것이 있으니 바로 페테르부르크의 겨울에 사납게 휘몰아치는 북풍이며, 이것이 그의 가장 강력한 적이기도 하다. 고골 스스로가 처음 페테르부르크에 상경했을 때 추위 때문에 크게 고생한 경험이 있으므로 남의 일만도 아니라고 해야겠다. 불행하게도 아카키의 낡은 외투는 더 이상 바람막이가 되어 줄 수 없어서, 그는 재봉사 페트로비치의 강력한 권유에 따라 새 외투를 장만하는 데 몰두한다. 곧 페테르부르크의 겨울 추위는 아무런 결핍도 없이 자기만의 세계에 만족해 있던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를 바깥으로 끄집어내어 ‘외투 없는 존재’로 새롭게 규정한다.  

새 외투를 욕망하게 되면서 아카키는 전혀 다른 인물로 변모한다. 그는 외투 값을 장만하기 위해서 지독한 내핍 생활을 감수하며 습관처럼 저녁을 굶는다. 요컨대,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그는 현재의 만족을 기꺼이 포기하고 유예한다. “그 대신에 미래의 외투에 대한 끝없는 이상을 머릿속에 그려 보며 정신적인 포만감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인가가 결여된 상태에서만 작동하기 시작하는 욕망은 근원적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충족될 수 없다. 새 외투를 장만하여 행복해한 것도 잠시, 아카키가 곧 불량배들에게 자신의 외투를 강탈당한 것은 이러한 욕망의 메커니즘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는 파출소장과 고위층 인사를 찾아다니며 외투를 되찾기 위해 애를 쓰지만, 관료제 사회의 몰인간적이고 사무적인 습성에 젖은 인물들에게 차별 대우만을 받고서 앓아누웠다가 결국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관료제 사회의 사무적인 무관심이 아카키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자면, 아카키가 충동의 인간에서 욕망의 인간으로 변신한 데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그 변신의 원인은 ‘페테르부르크의 추위’였다. 



피할 수 없는 욕망에 대한 공포
고골은 욕망을 가진 인물들, 곧 자신의 신분과 직분을 벗어나서 더 높은 사회적 지위와 숭고한 가치를 갈망했던 인물들이 파멸하는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이러한 욕망이 두려운 이유는 그것이 그 주체를 떠나서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죽어도 욕망은 죽지 않는다고나 할까. 「외투」는 죽은 아카키의 유령이 자신의 외투를 찾기 위해 배회하다가 고위층 인사의 외투를 강탈해 간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그런 점에서 「외투」는 욕망의 섬뜩한 공포까지도 되새기게 해 주는 작품이다.  

결코 충족되지 않는 것이 욕망인 만큼 욕망의 세계에서 구원이란 없다. 때문에 고골의 세계에서는 욕망에 빠진 인간에게 구원의 계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고골은 자신의 문학적 재능 안에서는 그러한 계기를 찾을 수 없었다. 고골 또한 자신의 ‘외투’(창작의 의미)를 강탈당한 ‘불운한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가 아니었을까. 

09. 0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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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골의 '외투'가 말해주는 것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12-19 10:26 
    이번주 주간학구의 '지식인의 서고' 꼭지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짧은 분량의 글이어서 고골의 대표작 <외투>에 대해 간단히 적었다(고교 독서평설에서 한번 다룬 적이 있다는 걸 지금 깨달았다!).    주간한국(09. 12. 17) 우리가 욕망 없이 살 수 없다면…  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강의하기 때문에 매학기 고정적으로 읽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러시아 명작’들입니
 
 
반딧불이 2009-06-20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외투>를 하급관리를 통해 관료제를 비판하는 것으로만 이해했었는데, 욕망과 관련지으니 또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아요.

로쟈 2009-06-20 08:36   좋아요 0 | URL
네, 그게 제 요점이에요.^^

목동 2009-07-14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을 낭독해주는 성우의 목소리를 통해 읽었습니다. 낭독자의 생생한 목소리에 매료된 경우라지만, 하급관리로서 그의 소통방법은 정서입니다. 그에게 유일한 위안입니다. 같은 형제의 꿈이 공익성이 없다고 강탈당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고골의 <외투>에서 태어났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틀에 안주한 하급관리지만 그것이 무너지면 자신을 잃게 되던데요.

로쟈 2009-06-21 10:31   좋아요 0 | URL
언제 낭독까지 나왔었나 보군요.^^

돈케빈 2009-06-21 0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와의 서신교환선>을 읽고.. 고골을 러시아 문학의 김구라로 임명하기로 했습니다. ^^;

로쟈 2009-06-21 10:30   좋아요 0 | URL
'김구'로 읽을 뻔했네요.^^;

지별 2009-06-22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골의 3부작 이런식으로 연극을 통해서 그를 만났는데...연출도 독특하고 때론 홀리거나 졸리거나~ 그래도 (뜬금없이) 체홉이 좋아요~

로쟈 2009-06-23 22:29   좋아요 0 | URL
변변찮은 인물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고골과 체홉이 상통하는 면도 있습니다.^^
 

'로쟈와의 인문학 토크'(http://blog.aladin.co.kr/culture/2878079)가 예정돼 있는 날이다. 저녁시간인데, 오후에는 무슨 '토크'를 해야할지 궁리를 잠시라도 해봐야겠다(질문에만 답하면 되는 것인지?) 생각해보니 오늘로써 책이 나온 지(책을 받아본 지) 딱 한 달이 되었다. 이미 '적응'이 되어서 '새로 나온 책'이라기보다는 '원래부터 있던 책'이란 인상마저 든다. 아직 많은 리뷰를 접해보지는 못했지만, 반응 또한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책은 좀 어렵다는 평과 생각만큼 어렵진 않다는 평 사이에 있다). 어떤 눈높이에서 독자를 만날 수 있는지 확인해보는 계기랄까. 눈에 띄는 언론리뷰들을 대충 스크랩해놓았는데, 하나 빠진 것이 있어서 마저 옮겨놓는다. 기사의 경쾌한 속도감이 마음에 든다.  

  

대학내일(09. 05. 29) 로쟈는 읽는다, 고로 로쟈는 존재한다 

인문학 책을 왜 읽어야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사람 잡지 않기 위해서.” 문학 책을, 경제학 책을, 사회과학 책을, 실용서를 왜 읽어야 하느냐고 물으신대도 답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사고가 빈약할수록 주워듣거나 알고 있는 일부 사실만으로 섣불리 판단할 수 있으므로. 몸의 건강을 위해서 고른 영양소를 섭취하듯 정신의 건강을 위해서 책도 골고루 읽을 필요가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문학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하나 더 꼽는다면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기 때문이 아닐까. 매주 소개하는 책들 중에는 개인적 취향이 담긴 것들도 있지만, 더러는 필요에 의해서 읽는 책들도 있다. 두툼하고, 각주의 압박에 한숨이 절로 나오고, 데리다·푸코 등의 철학자 이름이 친구라도 되는 양 자주 등장하는 책. 주로 인문서나 사회과학 책들의 특징인데, 그런 책들도 여러 권 읽다 보니 어느덧 ‘생각의 결’과 ‘생각의 망’이 촘촘해진 느낌이 든다.  

이번 주에는 한 인문학자의 서재를 들여다본다. 생각의 결과 망뿐만 아니라 폭까지 넓힐 수 있는, 세상을 저공비행하며 인문학적 지식으로 읽고, 보고, 담아내는 일명 ‘겉다리 인문학자’의 서재로 첫 걸음은 가볍게 Go!   

멀미 날 만큼 풍성한 호모 사피엔자의 서재 
로쟈는 누구인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는 한 인터넷 서점에서 ‘로쟈의 저공비행’이라는 이름의 블로그로 널리 알려진 ‘인터넷 서평꾼’이자, 대표적인 ‘인문학 블로거’이다. ‘로쟈’라는 이름을 듣고 흔히들 철학자 ‘로자 룩셈부르크’를 떠올린다는데,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로쟈’는 소설 ‘죄와 벌’의 주인공 ‘로지온 라스콜리니코프’의 애칭이라고 한다. 이 책은 로쟈라는 ID(필명)로 더 많이 알려진 저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엮은 블룩(blook, blog+book의 합성어)으로, 1997년부터 2009년까지 쓴 글을 간추려 실은 것이다. 다시 로쟈의 말을 빌리자면, “너무 쉽거나 어렵지 않은 글, 너무 말랑하지도 딱딱하지도 않은 글”을 골랐다는데 인문학과 예술, 영화 등 장르를 넘나들며 펼쳐 보이는 로쟈의 박학다식함에 누군가는 “너무 어렵고, 딱딱하게”읽을 수도 있겠다.  

책은 다섯 개의 서재(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다. 첫 번째 서재 ‘걷어차야지만 자리에서 일어난다’에서는 로쟈가 들려주는 문학 이야기를, 두 번째 서재 ‘순간에 완성되는 사랑이 있을까요?’에서는 로쟈의 예술 리뷰를, 세 번째 서재 ‘아, 이 겸손한 느릅나무들’에서는 로쟈의 철학 읽기를, 네 번째 서재 ‘내 머리는 불타고 있어요’에서는 로쟈의 지젝 읽기를, 마지막 서재 ‘내 울부짖은들 누가 들어주랴’에서는 로쟈의 번역 비평을 담고 있다. 각 서재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을 보면 알겠지만, ‘호모 사피엔자(Homo Sapienza)’라는 그의 별칭이 절로 떠오를 만큼 로쟈의 관심사는 무궁무진하고, 독서량 또한 엄청나다. 가볍게 첫 걸음을 내딛었다 서재 입구에서 입을 떡 벌리고 주저앉기 십상이다. 지식이 또 다른 지식으로 이어지고, 한 권의  책 이야기가 관련 분야의 여러 권의 책으로 뻗어나가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에 보면 지리학자가 사는 별이 나오는데, 그는 여행자들이 보고 온 내용을 책에 기록하기만 한다. 즉 그가 하는 건 편력이 아니라 기록이다. 나는 책들의 성좌, 문학과 사상의 ‘지도’를 작성하는 데 취미가 있다.”     

현상의 본질과 이면을 파고드는 인문학의 근성 때문인지 로쟈는 단어와 문장을 꾹꾹 짚어보며 글을 전개해 나간다. 그리고 거기에 시를 즐겨 읽는다는 ‘촉촉한’ 마음이 더해진다. 블로그를 통해 로쟈를 알게 되었다면 책으로도 한번 읽어보자. 그는 “스냅사진으로 찍은 걸 증명사진으로 내놓은 격”이라고 말하지만, 종이 책에는 천천히 음미하며 읽을 수 있는 행간의 매력이 있으니. 마지막으로, 로쟈에게 책은 무엇일까? “내 인생의 빛, 내 허리의 불꽃…나의 지옥이자 연옥이자 천국이며, 나의 연인이자 친구,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나의 무덤.”   

09. 06. 19. 

P.S. 로쟈에 대한 가장 흔한 선입견 중 하나는 '엄청난 독서량'이다. 가장 자주 듣는 질문도 "그 많은 책을 언제 다 읽으세요?"이니까 이게 꽤 단단한 선입견이다. 책에 실은 '독서문답'에서도 사정을 밝혀놓았지만 사실 집중해서 책을 읽을 시간이 별로 없고, 그게 개인적으로는 가장 큰 스트레스 가운데 하나이다(그러니까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에 견주면 로쟈는 '가끔'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잘 믿어주지도 않는다(간혹 실망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러니 그냥 "틈나는 대로 읽지요"라고 답하는 게 나을 듯싶다. 하긴 "읽고 쓰고 떠드는 일"로 치자면 대한민국 0.001%쯤은 될 듯하니 너무 빼는 것도 예의는 아니겠다. 단, 읽는 것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 중요한 건 즐겁게, 악착같이 즐겁게 읽는 것이고, 또 그렇게 읽기 위해선 쓰고 떠들 필요가 있다는 것. 그런 걸 나름대로 널리 알린 '공로'가 있지 않은가 한다. '곁다리 책상물림' 로쟈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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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9 1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19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19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0 0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qui 2009-06-22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외의 고차원적 시크 개그센스를 발휘하셨던 로쟈님..뵈어서 반가웠어요!

로쟈 2009-06-22 10:46   좋아요 0 | URL
참석하신 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해 좀 아쉬웠습니다. 나중에 어디서 뵈면 아는 체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