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로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9)가 나온 지 한달이 지났다. 책이 나온 이후에 몇 차례 인터뷰를 했거나 하게 될 예정이고, 지난 금요일 독자와의 만남 행사를 치렀고, 책사랑강좌 회원분들과 '성대한' 출판기념회를 가졌고, 어제는 TV '책 읽는 밤' 프로의 패널로 참여해 녹화를 마쳤다(내 책을 소개하는 자리는 아니고, 패널 추천도서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자리였는데, 내가 추천한 책은 서경식의 <고뇌의 원근법>이다). 그런 게 책의 '여파'이고 근황이다(이런저런 일로 일주일에 7권 이상을 읽어야 하는 게 '살인자' 로쟈의 '살인적인' 근황이다). 두 주쯤 더 지나면 잠잠해질 듯하고, 다시 나만의 독서와 밀린 글쓰기를 위한 잠행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현재로선 그게 바람이다). 주말 북리뷰들을 읽어보다가 그런 '여파'와 관련된 칼럼이 있어서 스크랩해놓는다. '블룩'을 내는 바람에 '무시할 수 없는 블로거'의 한 사람이 된 로쟈에 대한 언급이 들어 있다. 

경향신문(09. 06. 27) [책동네 산책]끼어? 말어? 무시할 수 없는 블로거들의 세계 

지난주 인터넷에 블로그 계정을 하나 텄다. 블로그를 ‘만들었다’가 아니라 ‘계정을 텄다’인 것은 일단 공간을 확보했을 뿐 아직 ‘공사 중’이란 뜻이다. 블로그 개설이 처음은 아니다. 몇년 전 기자들에게도 블로그 바람이 불었는데 이때 만들어 제법 진지하게 글을 몇개 써서 올렸지만 얼마 안가 그만 뒀다. 게으름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조각 글이라도 메모를 해놓고 나중에 찾아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더 큰 이유는 출판계 사람들을 만날 때 파워 블로거나 블로그 세계의 현안을 모르면 머쓱해지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잦아졌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상대방이 “로쟈가 뭐뭐라고 썼던데…”라고 말을 시작하는데 내가 “예? 무슨 ‘쟈’라고요?”라고 되묻고, 상대방이 한심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상황을 말한다. 그 순간 ‘나이도 젊은데, 더구나 기자라는 사람이…’라는 상대방의 속말이 들리는 것 같다. 그래서 나의 블로그 개설엔 어떤 압박감 같은 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나와 비슷한 ‘블로그맹(盲)’들을 위해 잠깐 설명드리자면 여기서 ‘로쟈’란 인문서적에 대해 가공할 정도로 넓고 깊게 서평을 올리는 ‘로쟈의 저공비행’이란 블로그의 주인장을 말한다. 그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엮은 단행본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도 최근에 나왔다. 블로그와 책의 합성어인 ‘블룩(blook)’인 셈이다. 



사회·문화변화에 대해 신조어 72개를 소개하고 비판적 논평을 곁들인 ‘미래시민개념사전’(21세기북스)이라는 번역서를 보면 ‘라이프 캐싱(life-caching)’이란 단어가 나온다. 휴대용 전자기기와 전자적 저장장치가 흔해지고 어디서나 온라인으로 자료를 저장하는 게 흔해지면서 사람들이 공적인 자료든 사적인 신변잡기이든 디지털 형태로 축적하는 데 열중하는 현상을 말한다. 틈만 나면 블로그에 글과 사진을 올리고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이른바 ‘블록질’을 연상하면 되겠다. 



새로운 필자와 콘텐츠에 항상 목말라하는 출판계에 입장에서는 이런 라이프 캐싱 풍조가 반가웠을 것이다. 출판사들이 블로그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2~3년 전이다. 실용서가 주종을 이루지만 앞서 언급한 블룩, 즉 블로그를 발굴해 나온 책들의 목록이 꽤 길다. 요즘엔 영역이 넓어지면서 글쓰기에 재주가 있는 전문직 또는 전업작가들의 글이 블로그에 어느 정도 고이면 책으로 묶어내거나 아예 출판계약을 맺고 블로그에 연재하는 경향도 있다. 블로거들의 서평이 베스트셀러 진입 여부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면서 출판사마다 블로거 마케팅에도 무척이나 신경을 쓴다. 책의 성격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신간이 블로거들에게 ‘씹히면’ 큰 타격을 예상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블로그와 집단으로서 블로거들의 파워는 점점 더 커져만 간다. 그럴수록 블로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던 나 같은 사람이 느끼는 압박감도 커진다. ‘미래시민개념사전’ 방식으로 이름을 붙이자면 ‘디지털 지체 공포증’ 정도 되지 않을까.(김재중) 

09. 06. 27. 

P.S. 중간에 <기획회의>의 이미지를 집어넣은 건 250호 특집이 '블로그의 진화'이기 때문이다. 특집기사들 외에 '출판계 리포트'란에서도 인터넷 북리뷰와 블로그들에 대한 글을 싣고 있는데, 필자는 김성동 알라딘 웹기획마케팅팀장(간단히 말하면 '서재지기')이다. 로쟈에 대한 코멘트도 있어서 옮겨놓는다.  

로쟈, 물만두, 글샘, 마노아, 울보, 아영엄마, 이매지, 바람구두, 하이드, 아프락사스, 마태우스, 세실, 순오기, 진우맘, 로드무비, 조선인, 드팀전, 마냐, kimji 등의 닉네임을 본 적이 있는가? 알라딘의 유명 리뷰어다. 이들 중 '로쟈'는 특히 몇 년 사이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리뷰어다. 2009년 5월에는 <로쟈의 인문학 서재>라는 이름으로 그동안 서재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추려 출간까지 하였고, 출간된 지 한달도 안되어 알라딘에서만 1,000부 이상 판매가 되었다. 현재 알라딘 인문학 주간베스트셀러 1위를 2주째 하고 있다.  

2004년 이후 6년째 매일 두세 편 이상의 인문학이나 러시아 문학 북리뷰, 책 관련 글을 올리고 있다. RSS 구독까지 감안하면 하루에 2,000명 가까운 이들이 매일 로쟈가 쓴 서재블로그의 글을 읽는다. 로쟈는 전통적인 독자서평 형태의 리뷰도 쓰지만 한 포스트에서 이 책 저 책 혼합 언급하여 비교하고 분석하는 새로운 블로깅 스타일의 글을 잘 쓴다. 또 책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따로 두는 게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책으로 이야기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하여 그가 올린 글들은 그런 성격을 잘 보여준다. 로쟈의 서재블로그를 찾는 이들은 이런 로쟈의 총체적인 블로거로서의 성격에 관심을 갖는다. 로쟈가 책 머리말에서 얘기하듯이 책은 블로그와 떼어내서 생각할 수 없는 블로그와 책의 합성어인 블룩이다.  

흠, 아무튼 이런 것이 대략 로쟈의 대한 일반적인 평인 듯하다. 간간이 '안티-로쟈'를 자임하는 분들도 있는 것으로 보아 이젠 어찌해볼 도리 없이 '유명 리뷰어'에다가 '유명 블로거'이다. 이러다가 묘비명에도 '블로거'란 말이 들어가게  되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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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디북을 주세요 - 책의 새 이름에 대하여
    from 꿈노리 2009-06-27 13:12 
    예전에는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면 지은이, 내용, 출판사, 가격 등에 주로 눈길이 머물렀다. 이젠 일단 "전자판"이 있나 없나가 일차 관심이다. 일단 전자판이 없다면 관심 끝. 구글에 가서 관련 주제를 찾아 디노마드의 소풍을 떠난다. 디노마드의 재산은 시간. 돈으로 안되니 시간으로 밀어 붙이는 거다.
 
 
2009-06-27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7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7 1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7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7 15: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7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이] 2009-06-27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변 감사드려요^^
 

단테 <제정론>(경세원, 2009)의 새 번역서가 출간됐다. 역자인 성염 교수의 인터뷰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작년에 단테의 <신곡>을 읽으면서 참조해보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책이 <제정론>(철학과현실사, 1997)인데, 이번에 좀더 두툼하게 보완된 책이 출간되었으니 새롭게 독서욕이 생긴다. 자고로 이런 욕심은 할일이 많을 때 더 어깃장을 부린다. 언제나 해방될 수 있으려는지...      


최근 아우구스티누스의 라틴어 원전 번역에 몰두하고 있는 성염 전 서강대 교수는 “서양고전 번역은 정부의 지원이나 독자들의 관심 여부를 떠나 학자 자신의 책임의식이 필요한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경향신문(09. 06. 24) “서양고전 번역은 문화적 대화 우리 학문 살찌우는 밑걸음”

알레기에리 단테(1265~1321)는 <신곡>을 쓴 대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현실 정치가이자 사상가이기도 했다. 교황권과 황제권이 대립하던 당시 고국 피렌체의 정치에 깊이 관여했고 이탈리아 문제를 좌지우지하는 외교 교섭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황제권을 옹호하다 피렌체에서 영구 추방되기도 했다.   

이 같은 단테의 정치철학을 집약해놓은 책이 <제정론>이다. 이 책은 중세 정치철학의 가장 첨예한 논제인 교황과 황제의 정치적 권한을 ‘두 궁극 목적 이론’으로 해결함으로써 정교분리론을 사변적으로 확립한 중요한 정치철학서로 평가받고 있다.  

“단테는 황제의 속권(俗權)이 교황의 교권(敎權)에 통제받는다는 논리에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현세적 행복과 사후의 초자연적 행복을 인간의 두 궁극 목적으로 설정하고 각각을 주관하는 정치적 권위와 종교적 권위를 동등하게 설정함으로써 사실상 정치와 종교를 분리시켰어요.”

<제정론>(경세원)을 번역·주해한 성염 전 서강대 교수(67)는 지난 21일 “출간되자마자 금서로 지정된 <제정론>은 유럽 사회가 ‘세속화’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책”이라면서 “인간을 단순히 신앙인으로만 보는 ‘단극성’에 대해 신앙인이자 시민으로 보는 ‘양극성’을 주창한 저서”라고 밝혔다.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입각해 인간의 자연적 차원을 정립했음에도 속권을 교권에 귀속시킨 반면 단테는 “인류의 현세적 궁극 목적을 주관하는 황제와 인류의 영원한 운명을 주관하는 교황을 설정함으로써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종속된다는 이론을 타파했다”는 것이다.

2003~2007년 주교황청 한국대사를 역임하기도 했던 성 전 교수는 국내에 드문 라틴문학 및 중세철학 전문가다. 40세때 “우리나라에 정말 필요한 게 고전”이라는 생각에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라 교황립 살레시안대에서 라틴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라틴어 첫걸음>(경세원)과 <고전 라틴어>(바오로딸) 등 라틴어 학습서를 내놓았고 라틴어 원전을 비롯한 번역서만 100여권에 이른다.  

 

경남 함양 지리산 자락에 머물고 있는 성 전 교수가 최근 몰두하고 있는 일은 교부철학 최고의 사상가인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의 라틴어 원전 번역 작업이다. 2004년 4년여의 작업 끝에 아우구스티누스의 대표작 <신국론> 원전을 국내 최초로 완역한 그는 얼마 전 또 다른 대작 <삼위일체론>의 번역을 끝냈다. 지금은 초기 <대화록>을 번역 중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는 현대에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신국론>은 인간 실존의 핵심인 사랑이 사사로운 사랑과 사회적인 사랑으로 드러나 인류사의 두 축을 구성한다고 보는 역사철학서로, 결국 개인 구원이나 안식보다는 역사나 세계에 대한 책임을 강조합니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 60종 가운데 중요한 10종 정도는 노망기가 오기 전까지 번역해보자는 생각에 아예 산 속으로 들어갔다”고 웃었다.

한국서양고전학회 회장을 맡기도 했던 성 전 교수는 “대학에서 철학과도 없애는 판에 서양고전학과를 누가 만들려고 하겠냐”면서 “가톨릭 신자가 40만명밖에 안되는 일본도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서를 체계적으로 번역하는 등 문화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번역은 문화적인 대화입니다. 서구 문화의 주류를 이루는 저서들을 우리말로 번역해낼 때 동서양 교류뿐만 아니라 우리의 학문적 이론과 문화를 수립하는 밑거름이 된다는 생각으로 번역하고 있어요. 이런 책들을 한 번 번역하면 수십 년을 가는 만큼 지원이 있든 없든 학자들의 노력이 필요합니다.”(김진우기자) 

09. 0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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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일이지만, MBC의 'PD수첩' 제작진을 기소하면서 검찰이 제작진의 이메일까지 '증거자료'로 공개함으로써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헌법상에 보장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행위'일 터인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이 사건을 지휘한 서울지검장이 검찰총장으로 임명됐다. 이 사건 수사로 청와대의 호평을 얻었다는 후문도 있다). '비열한 법치주의'에 더하여 '편의적 법치주의' 또한 현 정부와 검찰의 신조인 모양이다. 이와 관련한 사설기사와 함께 '바람구두'님의 기고를 옮겨놓는다(어디 '장기 캠핑' 가신 걸로 알았는데, 멀리는 못 가신 모양이다). 문제가 된 김은희 작가가 MBC 작가 홈피에 올린 글에 대해서는 미디어오늘의 기사를 참조하시길(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80694).   

경향신문(09. 06. 21) [사설]간첩 수사 연상시키는 작가 e메일 공개  

검찰이 엊그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위험성을 보도한 MBC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제작진 중 한 명인 김은희 작가의 개인 e메일 3통을 공개했다. 지난해 작가가 가까운 지인에게 보낸 e메일에는 “이명박에 대한 적개심이 하늘을 찌를 때라서…” 운운하는 부분이 나온다. 검찰은 “e메일이 제작진의 (악의적인) 의도를 엿볼 수 있는 주요 자료라 판단돼 고민 끝에 공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뒤집어 말하면 작가가 대통령에게 강한 적개심을 갖고 있었으므로 프로그램 제작에 이 마음이 반영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정치적 목적을 갖고 시작돼 무리를 거듭해 온 이 수사가 이 대목에서 정점에 이른 듯하다. 왜 그런가. 첫째, 개인 e메일 공개는 헌법이 보장한 양심의 자유, 사생활 및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와 정면 충돌한다. 둘째, e메일 압수수색 권한을 인정하더라도 작가 개인의 정치 성향과 제작의도를 직접 연결하는 것은 비약이다. 이에 대해서는 방송작가협회가 성명에서 “개인적 생각이나 정치적 지향이 구체적인 방송 왜곡으로 연결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적절하게 지적했다. 이들은 “이것(정부에 대한 반감)은 법리적 근거라기보다 작가의 정치적 불온성을 강조하려는 이미지 전략”이라며 검찰이 개인의 머릿속까지 검열하는 수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사적 감정을 담은 e메일을 대발견이라도 되는 양 언론에 공표하는 모습에서 구시대적 사상 검증의 기억이 떠오른다. 지난 세월 공안기관들은 정권 안보를 위해 수많은 간첩사건들을 조작했다. 지난해 전두환 정권 당시 대표적 공안 조작사건인 ‘오송회’ 간첩단 사건 관련자 9명이 모두 26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들의 주요 혐의는 김지하 시인의 <오적> 등 이른바 불온서적을 읽고 정치 현실을 비판했다는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안 듣는 데서는 나라님 욕도 한다’는 속담도 있다. 그런데 이젠 개인 e메일까지 범죄의 단서가 되는 시대로 후퇴하고 있다. 정치사건 수사라면 물불을 안 가리는 검찰과 이를 일말의 문제 제기도 없이 확대 보도하는 수구신문들의 작태가 전율스럽다.    

경향신문(09. 06. 22) [판]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초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고 했을 때, 범접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조직으로 보이던 검찰도 대통령 앞에서는 움찔한다며 통쾌하게 여긴 사람들이 있었다. 대통령은 기업의 오너이고, 검찰은 휘하의 비서실이나 기획실쯤 되는 기관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실제로 권위주의 정권시절 검찰은 권력의 시녀로, 민주화 이후엔 가장 중요한 개혁 수단이자 파트너였다. 국민들은 검찰이 휘두르는 칼자루를 보며 정부가 추진할 개혁과 정책의 내용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이 ‘개혁의 수단’이 아닌 ‘개혁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희귀한 대통령이었다. 그는 인권변호사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검찰이 권력의 시녀나 정권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는 도구가 아니라, 국민의 인권과 민주주의 법질서 수호를 위해 독립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조직이라는 상식을 일깨우려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사법부 개혁을 주장했던 판사 출신의 여성 변호사 강금실씨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해 검찰개혁을 시도했다. 임기 초반이었지만 검사들은 검찰의 독립과 존중을 내세우며 조직적으로 반발했다. 과거 정권 같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대통령은 국민을 상대로 검찰 개혁에 대한 의지를 직접 전했다.  

검찰은 권력을 잡았어도 예외는 없다는 본보기라도 보이듯 살아 있는 권력인 대통령의 측근까지 구속했다. 변화는 성공적인 듯 보였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을 지켜보면 사실은 그렇지 못했던 모양이다. 독립과 존중을 주장했던 검찰의 최근 행보를 지켜보면 당시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건 서열존중의 관행에 불과했던 것이 아니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지도층을 이루는 불멸의 신성가족들은 임기제 대통령보다 강력한 힘과 뒤를 봐주는 결속·연대를 과시했다. 그들은 권력의 시녀가 아니라 권력의 일원이었다.

임기를 마친 노 전 대통령이 미련 없이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국민들은 행복한 전임 대통령을 가질 뻔했다. 검찰은 드러난 혐의에 따라 수사했다지만 정권이 바뀌자마자 10년 전으로 돌아간 듯 보이는 검찰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그들의 진실성을 신뢰하는 국민은 많지 않았다. 도리어 검찰과 전임 대통령 사이에 있었던 오랜 악연을 생각해보면 정치적 의도가 개입한 수사였을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의심까지 사고 있다. 설령 검찰의 해명을 받아들이더라도 재판에 들어가기도 전에 연일 수사 과정이 흘러나오고, 언론이 피의사실을 확정된 진실인 양 왜곡해 여론심판과 인격살인으로 이끌었던 현실이 뒤바뀌는 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양교도소에 전임 대통령을 가둘 독방을 비밀리에 추진했다는 보도는 이를 부인하는 법무부의 주장보다 신빙성 있게 들린다.

만약 검찰이 스스로의 억울함을 증명하고 싶다면 먼저 검찰이 국민의 인권과 민주주의 법질서 수호를 위한 조직이라는 상식을 증명해보여야 한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해 제작진이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2008년 4월)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에 관한 사실을 ‘고의’로 왜곡했다며, 그 증거로 작가의 사적인 e메일을 들춰내 이를 언론에 공개했다. 만약 이것이 증거라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국민의 인권과 민주주의 법질서를 부정하는 현실 속에 “원칙과 정도, 절제와 품격을 갖춘 바른 수사, 정치적 편파 논란이 없는 공정한 수사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받겠다는 검찰의 꿈은 너무 야무지다. 스스로의 존재 의의조차 자각할 수 없는 조직이란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되고 있는 이때, 국민들의 머릿속엔 이 말이 떠오른다.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전성원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09. 0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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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9-06-23 08:54   좋아요 0 | URL
왜 영화보면 적들에게 쫓겨 아지트를 옮겨야 할 때 모두 소각하고 가잖아요...그런 생각이듭니다. 만약 '제 2한국전쟁' 유사한 것들이 발생해서 '마녀사냥'의 대상이 된다면 알라딘에 있는 모든 글부터 추적당하면 빼도박도 못하겠구나...인터넷이 새로운 쌍방향매체로 해방의가능성도 있지만 다른면에서 보자면 훨씬 더 '총체적 관리사회'가 될 수 있는 면이 있다는 것의 예가 될 듯 합니다.아도르노가 여전히 유의미한..
편지는 불에 증거인멸이라도 하지 이메일은 지워도 남으니...이메일을 쓰지 않던지 아니면 정권을 쫓아내던지.

로쟈 2009-06-23 22:33   좋아요 0 | URL
후자가 더 좋은 선택 같은데요...

마냐 2009-06-24 02:22   좋아요 0 | URL
저도 전자는 별로 좋은 생각 같지 않슴다. 현실적으론 합리적 아이디어라 생각함에도 불구

무해한모리군 2009-06-23 09:14   좋아요 0 | URL
권력자들 대화내용 녹음은 사생활 침해라더니.. 검찰은 이메일 공표..
유전무죄 무전유죄

로쟈 2009-06-23 22:34   좋아요 0 | URL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합니다. 스스로는 얼마나 무능하고 졸렬한지 알고 있을까요?..

꼬마요정 2009-06-23 09:16   좋아요 0 | URL
이렇게까지해서 자기들이 얻는 건 뭘까요? 음.. 저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해가 안 가요.. 왜 이렇게 악수를 두는지.. 물론 그래서 국민들이 아우성 치고 경각심을 가질 수 있긴 한데요, 어째서 국민들을 달래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걸까요?? 채찍과 당근은 함께 가는 건데, 이 정부는 그저 휘두르기만 하네요. 정말 이해가 안 가요..

로쟈 2009-06-23 22:35   좋아요 0 | URL
지능이 낮은 건지, 극악무도한 건지 저도 헷갈립니다...

Mephistopheles 2009-06-23 09:39   좋아요 0 | URL
이젠...윈드토커란 영화마냥...
이메일도 나바호 인디언 언어를 체계로 암호화시켜야 겠군요..ㅋㅋ

로쟈 2009-06-23 22:35   좋아요 0 | URL
g메일로 옮긴다는 얘기도 많이 나오더라구요...

2009-06-24 0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주미힌 2009-06-23 09:44   좋아요 0 | URL
발암물질 함유 생수를 판 기업명 밝히는건 명예훼손 때문에 비공개라던데;;;
이젠 웃기지도 않아용...

로쟈 2009-06-23 22:36   좋아요 0 | URL
웃기는 법도 많지요...
 
종교를 둘러싼 과학전쟁

다윈 탄생 200주년, 진화론(<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을 맞는 기획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은 얼마전에 마무리된 한국일보의 '다윈은 미래다'이다. 지난주 출간된 화제작 <종교전쟁>(사이언스북스, 2009)과도 관련하여 참고가 될 듯싶어서 3부 '해외 석한 인터뷰' 가운데 '진화론 논쟁의 核 리처드 도키스' 편을 스크랩해놓는다. 이 걸출한 다윈주의자는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 등의 저작으로 이미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대담은 역시나 한국에선 가장 열정적인 다윈주의 전도사 최재천 교수가 맡았다.    



한국일보(09. 05. 20) "우주의 시작·생명의 의미 답할 수 있는 건 종교아닌 과학"

도킨스를 만난 곳은 옥스퍼드 외곽에 있는 그의 자택이었다. 널찍한 거실 벽을 책으로 가득 채웠는데, 수십 가지 언어로 번역된 그의 저서만으로도 서가가 촘촘했다. 물철쭉 빛이 도는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도킨스는 예상보다 작은 체구에 차분한 목소리였다. 생명의 근원과 종교의 본질을 얘기하는 도킨스의 가랑이 사이를, 하얀색 말티즈종 강아지 두 마리가 헤집고 돌아다녔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1976년 <이기적 유전자>를 낼 때 겨우 35세였습니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의 생각, 그리고 당신의 삶을 바꿨습니다.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대 교수= 그때는 반(反)집단선택론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콘래드 로렌스, 로버트 아드리 등의 책들이 아주 인기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면서 인류를 위한 행동을 한다는 거죠

▲최= 몇 해 전 한국의 어떤 미술공모전에서 '이기적 유전자'라는 제목의 조각작품이 우승을 차지했어요. 호기심에 가봤는데 제목과 작품을 연결시키기 힘든 기묘한 것이었습니다.(웃음) 당신 저서 제목을 딴 '눈먼 시계공'이라는 SF소설도 한국의 한 신문에 연재 중입니다. 당신은 대중을 사로잡는 표현력을 지닌 것 같습니다. 혹시 작가가 되려고 했던 적은 없었나요. 



▲도킨스= 그런 야망을 가진 적은 없어요. 옥스퍼드대 학부생은 쓰기 훈련을 받습니다. 일주일에 에세이 하나씩 써야 하는데, 난 그걸 즐겼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은 편이고요. 그런 경험이 날 도운 것 같네요.  

가벼운 질문을 이어 던졌는데 돌아온 도킨스의 대답은 짧고 신중했다. 책 속에서 거침없이 기존의 통념을 무너뜨리는 그의 이미지와 거리가 있었다. 최 교수가 "사람들은 당신을 '다윈의 불독'이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날더러 '도킨스의 푸들'이라고 한다"는 말을 하고 나서야 도킨스는 웃음을 보였다. 한참 웃고 난 뒤 그는 "다윈의 불독은 내가 아니라 허버트 헉슬리의 별명"이라고 말했다. 숱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만들어진 신>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자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최= 흥미롭게도 에드워드 윌슨, 다니엘 데넷, 당신이 2006년 모두 종교에 관한 책을 썼습니다. 윌슨이 제게 말하기를, 당신은 윌슨의 책을 읽고 "당신은 (기독교를 대하는 태도가) 외교관 같다"고 말했더니, 윌슨이 당신에게 "넌 기독교에 맞서는 전사 같다"고 답했다고 하더군요. <만들어진 신>을 보면 당신은 거의 기독교에 전쟁을 선포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도킨스= 나는 과학자로서 우주와 생명과 진리를 이해하려면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세계관이 있을 수 있더라도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 잘못된 믿음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나는 맹렬한 적대감을 느낍니다. 표면상 설득력이 있고 매혹적이지만 수백만 인구를 오도하고 있는 겁니다. 기독교뿐 아니라 이슬람교, 힌두교 다 마찬가집니다. 아무 증거도 없이 그저 수천 년 전에 씌여져 있다는 이유로 곧이곧대로 믿는 겁니다. 사람의 마음이 이토록 쉽게 꾐에 넘어간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패착입니다. 나는 싸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인류가 종교를 갖게 된 것도 일종의 진화적 적응의 산물 아닙니까?

▲도킨스= 아, 물론 그럴 겁니다. 심리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중요한 연구주제입니다. 당신이나 나나 다윈주의자니까 그 관점에서 얘기해 봅시다. 종교는 그 자체로서 생존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기질의 부산물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겁니다. 나방과 비슷한 겁니다. 촛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의 성향은 당연히 아무런 생존가치가 없죠. 불빛의 원천이 오직 태양이나 달, 별이었던 시절에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한 곤충 신경계의 부수적 산물일 뿐입니다. 나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자신의 '종교 딱지'를 붙이는 것을 죄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들이 기도하는 소리를 들으면, 부모들을 앉혀두고 "그런 걸 시키면 안 돼"하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행동은 어린이들에게 공산주의를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최 = 사실 아내를 따라서 수년 간 교회에 다닌 적이 있습니다. 제 아들은 아주 독실한 기독교인이 됐죠. 제가 잘못한 걸까요?

▲도킨스= (웃으며)아내 말을 들은 건 잘했죠. 다만 아들이 안 됐네요.

▲최= 저는 사실 스티븐 J 굴드(도킨스와 대척점에 서있었던 고(故) 하버드대 고생물학자로 종교와 과학이 충돌하지 않을 수 있다는 NOMA(Non-overlapping Magiseria)라는 관점을 견지했다)의 생각에 가깝습니다.

▲도킨스= 궁극적으로 NOMA가 가능할까요? 종교는 예수가 물 위를 걷는 것 같은 기적을 말하는데 이는 결국 종교와 과학 사이의 선을 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은근슬쩍 기적을 믿으면서 한편으로 굴드가 말한 궁극의 질문이나 윤리는 종교의 몫이라고 하는 거죠. 하지만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윤리적 판단을 하기 위해 꼭 종교가 필요합니까?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우리는 왜 여기에 존재하는가'와 같은 궁극의 질문도 종교의 전문분야는 아닙니다. 아직 답은 나오지 않았을지 모르나 그 대답을 할 수 있는 건 종교가 아니라 과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바마는 외교적 협상을 하면서 중간지대에서 타협을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과학자에겐 그런 '중간지대'가 불가능합니다. 그런 말로 스스로를 속여서 굴드의 편에 서지 않기를 바랍니다.

잠시 인터뷰의 주객이 바뀐 듯한 분위기가 흐른 뒤, 진화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도킨스는 33년 전 쓴 <이기적 유전자>가 한국에서 여전히 교재로 사용되며 많은 학생들의 세계관을 흔들어 놓고 있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받아들였다.

▲최= 인류는 어떻게 진화할 것이라고 보십니까. 인류는 놀라운 기술들, 예컨대 인공지능이나 로봇 기술을 갖게 됐습니다. 스티븐 J 굴드는 "인류는 진화를 멈췄다"고 얘기한 적도 있는데요.

▲도킨스= 기간을 나눠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300만년쯤 오래 지나면 인류의 뇌가 두 배쯤 커져 월등해지지 않을까 궁금해 합니다. 그러려면 뇌가 큰 사람들이 가장 자식을 많이 낳아야겠죠?(웃음) 하지만 이런 전망에는 회의적입니다. 보다 짧은 기간을 두고 이야기해보면 에이즈에 대한 면역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보츠와나처럼 전체 인구의 상당수가 에이즈에 감염된 나라에는 에이즈 바이러스에 면역이 있는 여성들이 있어요. 그것은 강력한 자연선택의 한 예일 수 있습니다. 신장 변화를 볼까요. 20세기 들어 사람들의 키는 극적으로 커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영양 공급의 개선 덕으로 생각하지만, 거기에 어떤 복잡한 선택 작용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여성이 성적으로 성숙하는 연령도 계속 낮아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문화적 진화는 훨씬 빠르고 드라마틱하겠죠. 지금까지의 진화와는 아주 다른 중요한 진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 '이기적(selfish)'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면, 이 단어는 당신을 엄청나게 유명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오랜 세월 엄청난 두통을 줬을 것 같은데요.

▲도킨스= 첫 질문으로 돌아가보죠. <이기적 유전자>를 쓴 동기가 뭐냐는 질문 말이에요. 다시 말하지만 그건 '반 집단선택론' 움직임의 일환이었습니다. 나는 집단이 아닌 자연선택의 단위, 그리고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단을 찾았어요. 그 답은 각각 '유전자'와 '이기적'이라는 것이었죠. 그런데 그것을 조합해 놓고 나니, 생명의 본질에 대한 인류의 오랜 관념을 통째로 뒤집는 것이 되고 말았죠. 



▲최= 다시 그 책을 쓴 시점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이기적 유전자'라는 제목을 쓸 건가요.

이 질문에, 도킨스는 잠시 창 밖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그리고 확신에 찬 "Yes"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도킨스= 글쎄요. '이기적 유전자-이타적 개체' 정도는 어떨까요. 그때 '불멸의 유전자'로 하자는 제안도 있었는데, 그때 그걸 왜 안 받아들였을까요. '불멸의'라는 표현이 더 사람을 고양시키고, 시적인 표현인데….

▲최= 마지막 질문입니다. 두 세기 전의 인간인 다윈이 현대에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왜 우리는 다윈을 기억해야 하는 것일까요. 



▲도킨스= 다윈은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했습니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죠. 이 행성(지구)에서도 우주 다른 모든 곳과 마찬가지로 물리학의 법칙이 지배합니다. 하지만, 이 행성에서는 어쩌면 우주에서 유일할지도 모를 특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죠. 생명체가 날개를 펄럭이고, 헤엄을 치고, 점프를 하고, 죽이고, 지배합니다. 그 신비로운 현상은 자연선택이라는 과정에 의해 이뤄집니다. 그 과정은 마침내 그것을 이해하는 신경계, 곧 뇌의 진화에까지 이르렀어요. 그것에 대한 앎이 다윈이 우리에게 준 것입니다

09. 06. 21.  





P.S. 2006년에 <만들어진 신>과 나란히 출간된 걸로 소개된 에드워드 윌슨의 <창조>와 다니엘 데넷의 <주문 깨기>도 마저 번역되면 좋겠다. '해외 석학 인터뷰'에 연재된 데넷과 윌슨의 인터뷰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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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비의 알림
    from seoulrain's me2DAY 2009-06-23 00:40 
    리차드 도킨스 인터뷰 — via 로쟈
 
 
델러웨이부인 2009-06-25 13:19   좋아요 0 | URL
이기적 유전자가 그런 뜻이었군요. <이타적 인간의 출현>도 같은 맥락인가 보아요.

로쟈 2009-06-26 12:28   좋아요 0 | URL
네, '이기적'이란 건 '의인화'한 표현이죠. 인간의 이타적 행동의 진화에 대한 설명은 <이기적 유전자>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종교에 미래는 있는가?

장대익 외 2인의 공저 <종교전쟁>(사이언스북스, 2009)에 대한 서평기사를 프레시안에서 옮겨놓는다. 필자는 물리학자이면서 새로운 생명사상을 펼친 과학철학자이기도 한 장회익 교수이다. 책을 접하기 전에 유용한 가이드가 될 듯하다.    

프레시안(09. 06. 20) '과학 vs 종교'…종교의 유통기한은 끝인가?

한때나마 기독교에 몸담아본 일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기독교의 가르침과 과학이 말해주는 내용 사이에 일정한 모순이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이들은 기독교를 믿지 못할 것으로 판정하여 아예 이를 버리고 뛰쳐나왔을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 의혹을 품고 있으면서도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그대로 간직해나가고 있을 것이다. 기독교를 버렸든 아직 그 안에 머물고 있든 간에 이 문제는 참으로 찜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이러한 사람들이 한번 찬찬이 읽어보고 그간 자신을 괴롭혀 온 이 문제에 대해 그 어떤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게 해줄 좋은 책이 나왔다. 신재식, 김윤성, 장대익 이렇게 세 사람이 함께 엮어 만든 <종교 전쟁>(사이언스북스 펴냄)이 그것이다.

과학 vs 종교…흥미진진한 대리전
사실 '종교 전쟁'이라는 표현은 이 책의 내용을 대변하기에 그리 적절하지 않다. 필자들 자신의 말대로 이것은 '종교 간 전쟁'이 아니라 '종교를 둘러싼 전쟁'이라 하더라도 그 내용이 과연 '전쟁'에 해당하는 것인가 하는 데에는 여전히 의혹이 남는다.

그러나 책의 제호는 어떻던, 현대 과학과 현대 이성의 조명에도 불구하고 현대 종교 특히 기독교가 그 신앙의 아성을 지켜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은 뜨거운 쟁점이 될 수 있으며, 여기에 관련하여 서로 다른 입장에 서 있는 세 젊은 학자가 서로 간에 매우 우호적이면서도 날카로운 논지를 펴나가고 있다. 한 사람은 과학의 내용을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기독교 신앙을 수용하고 있으며, 또 한 사람은 신앙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으면서도 나름대로 과학과 종교를 긍정적으로 포용하고 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종교 자체를 과학이 없던 시대에 만들어진 시대착오적인 유물로 보고 있다.

그러니까 독자들은 이 안에서 각자 자기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대리자를 만나게 되며, 이 입장이 이들의 입을 통해 어떻게 변호되며 어떻게 비판되고 있는지를 보게 된다. 독자들은 어렵지 않게 이 가운데 어느 하나를 자신의 입장으로 택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럴 경우 자신의 논지가 이 안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그리고 이에 대한 반론은 어떠한 것이 있으며 이것은 또 어떻게 막아낼 수 있는지를 흥미롭게 추적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은 더욱 확고한 바탕 위에 자신의 신조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 지녔던 미비점을 확인하고 좀 더 나은 입장을 모색해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 세 저자와는 전혀 다른 입장을 지녔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안에서 자신의 입장이 설 자리는 어디쯤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고, 이들의 논지에 비추어 과연 자신의 입장이 적절한 것인지를 자문해볼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다채로운 학문적 파노라마
논의를 펴고 있는 세 사람의 저자는 서로 간의 차이만큼이나 공통점 또한 지니고 있다. 세 사람 모두 성장하던 시기에 기독교(개신교) 신앙을 경험했으며, 적어도 한 때나마 복음주의적 기독교의 신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왔다. 그러다가 한 사람은 과학 분야를 전공하고 다시 과학사와 과학철학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초기의 신앙에서 멀어져갔고, 급기야는 무신론자로 자처하게 되었으며, 지금은 종교라는 것 자체가 조만간 사라져야 할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하는 논지를 거침없이 펴나가게 되었다.

다른 한 사람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이미 기독교의 성직자가 되기로 작정하고 우선 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하여 사고의 폭을 넓힌 후 다시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개신교 목사가 된 진보적인 신학자로서 신학의 핵심적 내용뿐 아니라 대학에서 '과학과 종교'에 대한 교육과 연구를 담당하면서 과학을 통해 오히려 신앙의 폭과 깊이를 더해 나갈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비해 또 다른 한 사람은 일관되게 종교학을 공부해 온 전형적인 종교학자이다. 그 또한 처음에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보수적 신앙의 개신교인으로서 창조 과학을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사람으로 "점차 진보적인 자유주의 개신교로 옮겨갔다가, 다시 개신교를 비롯한 개별 종교들을 넘어 종교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종교학자로, 그리고 종국에는 거의 무신론에 가까운 색체를 띤 불가지론적 입장의 세속적 종교학자"라고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들 세 사람이 지닌 또 하나의 중요한 공통점은 이들이 모두 과학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함께 나름의 깊은 안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종교학이나 신학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흔히 과학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그 이해가 지극히 일천한 사람들이 적지 않음에 반해 이들은 모두 현대과학에 대한 소양에 있어서 전문 과학자를 능가하는 혜안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세 사람이 과학과 종교 사이의 관계를 논하면서 펼쳐내는 학문적 파노라마는 다채로움 그 자체라 할만하다. 이들은 한편으로 도킨스, 데닛, 윌슨 등이 선도하고 있는 진화론적 설명 체계를 다각적으로 조명하면서 과학에서 바라보는 종교의 성격을 살피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간 과학과 기독교 사이에 있었던 역사적 관련성의 개관과 함께 현재 과학을 대하고 있는 신학의 여러 관점들을 잘 정리해주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이들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진화론을 둘러싼 기독교인들의 반응에 관한 것이며, 특히 최근 미국과 한국의 개신교도들 사이에서 기세를 떨치고 있는 이른바 '창조 과학'에 집중적인 조명을 해주고 있다. 사실 창조 과학이라는 논제는 현대 과학에서는 물론이고 현대 신학에서조차도 진지한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특히 한국 개신교에서 유난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점에 대해 이들은 나름대로의 진단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를 전해주고 있다. 



기독교인이 꼭 읽어야 할 책
이들의 논의에서 특별히 돋보이는 점은 종교적 신앙에 대한 각자 다른 입장에도 불구하고 서로 간의 입장을 존중해가며 서로 다른 전문 분야에서 각자의 전문성을 최대한 동원하여 상호보완적인 논의를 매우 자연스럽게 엮어나간다는 점이다. 학문 간의 대화에서 누구나 추구하면서도 좀처럼 이루어내기 힘든 시너지 효과를 이들은 매우 잘 이루어내고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과학의 본질이나 또 이를 수용하는 자세에서 거의 아무런 차이도 보여주고 있지 않으면서도 신앙의 문제에 이르러서는 각자 자신의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인데, 이를 보기에 따라서는 과학에 대한 이해가 신앙의 문제와는 무관한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내면을 한 층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들 모두가 문자주의적 성경 해석이나 기복주의적 신앙 형태를 배격한다는 점에서 과학이 일정 정도 신앙을 정화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기독교 특히 개신교와 특별한 관련을 가졌고 따라서 그 소재의 많은 부분이 여기에 치우쳐 있음이 사실이다. 그렇기는 하나 종교에 관련된 이들의 논의가 기독교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저자 가운데 적어도 두 사람은 이미 기독교의 입장을 넘어서고 있으며 다른 한 사람 또한 편협한 기독교 신학자가 아니라 종교 간 대화의 문을 크게 열어놓고 있어서, 이들의 이야기는 종교인 일반 그리고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도 흥미로운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들은 이미 기독교에 몸담고 있는 젊은 신도들과 기독교 목회자 그리고 기독교 교사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것은 그들이 원하던 원치 않던 간에 자신들 내부에서,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주위에서, 이 책이 제기하고 있는 물음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들 자신 이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지 대답을 제공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지닌 다른 한 가지 장점은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간의 편지라고 하는 부드러우면서도 자유로운 형식을 취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큰 부담감을 주지 않고 다층적인 담론을 종횡무진으로 열어간다는 점이다. 특히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이 안에서 저자들이 그 동안 겪어온 내면적 고뇌와 함께 그들이 현재 토로하고 있는 여러 어려움들까지 가감 없이 읽어낼 즐거움을 얻어낼 수 있다.

저자들은 현재 우리나라의 비교적 젊은 학자들로, 자신들의 직접적 경험을 바탕으로 학문 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세계 학계와의 폭넓은 소통을 이루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형식에 있어서나 저자 자신들이 보여주는 자세에 있어서 완결된 하나의 결실이라기보다는 지속적인 모색의 한 단면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듯하다. 



남은 문제들
이러한 점까지 고려하여 이 책의 주제와 관련된 내 개인적 견해 몇 가지만을 덧붙이기로 한다. 첫째 하나는 논의의 흐름이 지나치게 '이기적 유전자' 그리고 이것의 확장형인 '밈(meme)'이라는 메타포에 갇혀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사실 유전자든 밈이던 그 자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것은 그 주변에 이를 가능케 하는 '보작용자'(장회익, 1990, <과학과 메타과학> 193쪽 참조)가 함께 해야만 가능한 것이데, 이 부분에 대한 고려가 불충분하면 지나치게 유전자 또는 밈 환원론으로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것이지만, 오랫동안 필자 자신이 천착해온 생명의 단위 문제를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필자가 그간 밝혀온 견해에 따르면 생명의 진정한 단위는 유전자도 아니고 또 여타의 낱생명도 아닌 온생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을 인정할 경우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인간과 종교에 대한 모든 패러다임이 바뀌게 될 것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과학과 종교를 논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자연의 물리적 질서와 생명체의 의식 속에 나타나는 주체의 문제가 어떻게 연관되는가를 풀어야 한다. 이것은 이미 '신체/마음의 문제'라고 하여 전통적인 난제로 찍혀있는 것이지만, 어렵다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학문적 이해가 진전됨에 따라 거듭 되묻고 잠정적이나마 그 해답을 찾아내어야 할 문제이다.

종교가 과학으로 환원되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궁극적으로 이 해답에 달려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나 자신의 견해로는, 이들이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로 환원될 성격의 것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 

09. 0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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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기적 유전자, 이타적 개체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6-21 20:59 
    다윈 탄생 200주년, 진화론(<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을 맞는 기획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은 얼마전에 마무리된 한국일보의 '다윈은 미래다'이다. 출간된 화제작 <종교전쟁>(사이언스북스, 2009)와도 관련하여 참고가 될 듯싶어서 3부 '해외 석한 인터뷰' 가운데 '진화론 논쟁의 核 리처드 도키스' 편을 스크랩해놓는다. 이 걸출한 다윈주의자는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
 
 
hnine 2009-06-21 17:25   좋아요 0 | URL
과학 관련 책들은 주로 저자를 따라서 읽게 되는데 위의 저자는 제가 선호하는 과학 저술가 중의 한 사람이라서 위의 책에 관심이 가네요. 물리학자 출신이지만 글을 참 잘 쓰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읽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쓴다는 것은 그만큼 저자가 그 분야에 대해 깊이, 근본부터 알고 있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로쟈 2009-06-21 20:18   좋아요 0 | URL
네, <과학과 메타과학>은 쉬운 책은 아닌데, 이후엔 더 편하게 쓰시죠...

hnine 2009-06-21 20:41   좋아요 0 | URL
에궁, 저는 위의 책 장대익 님을 두고 한 말이었답니다.
장회익 교수님의 명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요 ^^

로쟈 2009-06-21 21:01   좋아요 0 | URL
물리학 전공이라고 하셔서요.^^; 장대익 교수는 기계공학이 전공이었다고 돼 있고요...

목동 2009-06-26 20:36   좋아요 0 | URL
'지적설계론'과 '진화론'에 대한 법정논쟁을 본적이 있읍니다. '지적설계론'의 발상이 흥미롭읍니다.

로쟈 2009-06-25 06:00   좋아요 0 | URL
지적설계론을 주장하는 책을 '진지하게' 읽은 적이 없긴 하지만, 그게 '진지한' 주장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선입견으로 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