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체코폴란드)문학기행을 마치고 어제아침에 무탈귀국했다. 출발전에는 날씨 변수에 대한 염려가 있었지만 다행히 진행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폭설 같은 예기치않은 변수를 생각해보라). 여행의 감상과 기억은 이미 창고에 자리를 잡았고 오랫동안 영혼의 ‘식량‘이 될 것이다. 프라하는 세번째 방문이어서 친구와의 재회 같은 느낌이었다면, 여행 후반부의 폴란드 도시(크라쿠프와 바르샤바)들은 첫 방문지들이어서, 게다가 기온도 더 낮은 도시들이어서 몸에 더 와닿는 느낌이었다(시각적 기억과 촉각적 기억).

여행을 마무리하는 의미로 필립 로스의 <왜 쓰는가>를 다시 펼쳤다. 출발 전날 밀란 쿤데라와의 대화 장을 읽었는데, 오늘 펼친 곳은 아이작 싱어와의 대화(폴란드에서는 이디시어 작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망명작가 싱어까지 폴란드 수상자로 치는 듯했다). 브르노 슐츠가 대화의 화제인데, 되짚어 보니 폴란드 서점들에서 슐츠의 책을 보지 못했다(눈에 바로 띄지 않았을 뿐이겠지만). 미츠키에비츠 문학관에서 슐츠의 드로잉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기대했지만 볼 수 없었다(아마도 과거에 기획전이 있었던 모양). 그래서 브루노 슐츠만 여행의 공백으로 남았다. 갈리시아의 도시 드로호비치에 가볼 일이 있을까(필립 로스가 갈리시아 유대인 가계다). 그건 어렵겠지만 바르샤비의 브루노 슐츠를 찾는 건 가능할지도. 혹시나 폴란드를 다시 찾는다면 브루노 슐츠의 장소들도 챙기고 싶다...

로스: 1930년대 바르샤바에 관해 묻고 싶습니다. 슐츠는 젊은시절 리보프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그다음에는, 내가 아는 바로는, 갈리시아의 도시 드로호비치로 돌아가 여생을 고등학교에서 드로잉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긴 시간 드로호비치를 떠난 적이 없었는데 삼십대 중반 또는 삼십대 후반에 이르러 바르샤바에 갑니다. 그가 당시 바르샤바에서 어떤 문화적 분위기를 만났을까요?

싱어: 슐츠에 관해서는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끔찍하게 겸손한 사람입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 타운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가 매우 겸손하다는 것, 또 약간은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큰 도시로 나가 이미 유명해진 사람들을 만나는 걸 두려워하는 촌놈 같은 기분이었을 겁니다. 아마도 그들이 자신을 놀리거나 자신을 무시하는 걸 두려워 했을 게 분명합니다. 나는 이 사람이 신경이 극도로 예민했다고 봐요. 작가가 겪을 수 있는 모든 억제가 있었어요. 사진을 보면 평생 인생과 화해를 한 적이 없는 사람의 얼굴이 보입니다. 보세요, 로스 씨, 그 사람은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여자친구는 있었던가요? - 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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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문학기행의 마지막 9일차는 연장전 같은 느낌이었다. 오늘은 조식후 곧바로 공항으로 이동할 예정이어서 엑스트라 일정들이 남아있을 뿐. 시차가 있어서 내일아침 출근시간대에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무탈귀가만 남겨놓게 된다(지방에서 오신 분들은 다시 국내여행 모드로 전환, 한고비를 더 넘어야 하지만). 모든 게 식사후 설겆이에 비유될 수 있는 일정이다.

어제의 메인식사는 바르샤바봉기박물관 방문이었다. 이미 한강의 <흰>에 대해 글을 올리기도 했지만 우리가 아는 범위에서 봉기박물관 방문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작품은 <흰>이 유일하다. 그걸 고려해 봉기박물관 방문을 최초 일정에 추가했던 것인데, 쇼팽박물관 방문이 리모델링 공사로 무산돼(쇼팽콩쿨 기념동상 찾아가보는 것으로 대체했다. 동상주변도 공사중이었지만 멀찍이서 동상은 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마지막 핵심일정이 되었다.

방문 소감을 질문으로 표현한다면, 봉기박물관 견학을 빠뜨린 바르샤바 여행이 가능할까쯤이 되겠다. 바르샤바가 1944년 8월 봉기의 결과, 나치독일의 무자비한 파괴대상이 된 사실은 토막역사상식인데, 봉기박물관은 상식을 체험으로 바꾸어준다. 체험의 강도는 저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의 역사에서도 시민봉기와 저항의 경험은 낯설지 않아서 자연스레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3.1운동과 바르샤바봉기, 제주4.3, 그리고 80년 광주항쟁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고리들이 이어지면서 하나로 연결되는 경험.

봉기박물관을 방문하고서 일행은 한식당에서 부대찌개로 점심을 대신했다. 오후는 자유시간. 나는 나대로의 숙제를 했는데, 15-20분씩 도보로 아이작 싱어의 현판이 있는 크로치말나 거리를 지나 스탈린양식의 건축, 문화과학궁전 건물을 보고(모스크바에 온 것 같은 착시를 갖게 했다), 코스타커피점에서 브레이크타임을 가진 뒤(막간에 적자면 폴란드는 커피값이 우리보다 비싸다), 숙소 쪽으로 이동해서 문인들이 자주 찾았다는 북카페(부제니에 시비아타), 그리고 성십자가성당 옆에 있는 바르샤바 대표서점(작가의 이름을 딴 볼레스와프 프루스 서점)을 찾았다. 문학쪽에는 폴란드어 책뿐 아니라 영어책들도 같이 꽂혀 있었다. 강의에서 다루는 작가들의 대표작 폴란드어판 실물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폴란드, 아니 문학기행의 마지막 조식을 하면서 어제의 일정을 바삐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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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소설 <흰>은 태어나서 두 시간만에 죽은 언니를 애도하는 소설이면서, 바르샤바 체류 시기에 상당 부분이 쓰인, 그리고 바르샤바의 이곳저곳 다녀본 경험이 밑바탕이 된 바르샤바 소설이다(바르샤바란 지명은 나오지 않는다. ‘이 도시‘로만 지칭된다). 한강은 광주 소설 <소년이 온다>를 출간한 해 여름 바르샤바로 떠나와서 겨울까지 머물렀다. 인용한 대목은 바르샤바봉기박물관(소설에서는 ‘기념관‘이라고 지칭된다)에서 영상자료를 보고 귀가하는 길의 느낌을 적고 있다.

그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오래전 성이 있었다는 공원에서 내렸다. 제법 넓은 공원 숲을 가로질러 한참 걸으니 옛 병원 건물이 나왔다. 1944년 공습으로 파괴되었던 병원을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한 뒤 미술관으로 사용하는 곳이었다. 종달새와 흡사한높은 음조로 새들이 우는, 울창한 나무들이 무수히 팔과 팔을 맞댄소로를 따라 걸어나오며 깨달았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들이 한번죽었었다. 이 나무들과 새들, 길들, 거리들, 집들과 전차들, 사람들이 모두.
그러므로 이 도시에는 칠십 년 이상 된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구시가의 성곽들과 화려한 궁전, 시 외곽에 있는 왕들의 호숫가 여름 별장은 모두 가짜다. 사진과 그림과 지도에 의지해 끈질기게 복원한 새것이다. 간혹 어떤 기둥이나 벽들의 아랫부분이 살아남았을 경우에는, 그 옆과 위로 새 기둥과 새벽이 연결되어 있다. 오래된 아랫부분과 새것인 윗부분을 분할하는 경계, 파괴를 증언하는 선들이 도드라지게 노출되어 있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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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엔키에비츠박물관을 떠난 버스는 2시간반쯤 지나 바르샤바에 입성했다. 예정과 다르게 1일차에 1박했던(비록 2-3시간밖에 못 잤지만) 터라 구면이지만 한밤중과 새벽에 본 바르샤바 외곽과 한낮에 보는 도심이 같을 수는 없다.

숙소에 짐을 맡겨놓고 일행은 인근의 지중해식당으로 향했다. 바르샤바 구경도 식후경. 새로운 가이드의 안내로 바르샤가 구시가지 투어에 나섰다. 기온은 크라쿠프와 비슷해서 영하10도 안팎. 이미 익숙해져 투어에 지장은 없었다.

바르샤바는 알려진 대로 수난의 도시다(자세한 건 오늘 방문할 봉기박물관을 둘러보고 적으려 한다). 특히 2차세계대전 종전을 앞두고 독일군이 전력으로 파괴에 나서 전체 도시의 85%가 초토화된 일은 지금까지도 아물지 않은 상처다. 파괴된 자리에 건물들이 다시 들어섰지만 모든 건물에 흉터자국이 남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숙소에서 바르샤바왕궁을 지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구시가지까지는 도보로 20-30분 소요되는 듯싶다(시간을 재지는 않았다. 낮시간에 다시 걷는다면 더 짧을 수 있다).

구시가지 광장에는 또다른 방문지 미츠키에비츠문학관이 있다. 아담 미츠키에비츠는 문학기행 출발을 앞두고도 적었듯이 폴란드를 대표하는 낭만주의 시인이자 민족문학(지금은 국민문학)의 아버지다. 크라쿠프 광장에서와 마찬가지로 바르샤바에도 도시 중심부에 동상이 서 있고 문학관도 세워져 있다. 방문 전에는 미츠키에비츠뿐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전시도 같이 하는 줄 알았는데 기획전들이 병행돼서 오해한 것이었다. 현재는 바르샤바의 음유시인이라는 스타니스와프 스타셰프스키전이 열리고 있었다. 아쉽게도 우리에겐 소개된 시인은 아니었다.

1층이 기획전으로 활용되고 2층이 미츠키에비츠 상설전시관으로 보였다. 우리의 관심사였던 <판 타데우시> 초판본(1834년)과 육필원고 전시돼 있어 반가웠다. 시인의 초상화뿐 아니라 당대 인물들의 초상화도 다수 걸려 있었는데 1812년전쟁의 맞상대였던 프랑스와 러시아의 두 황제, 나폴레옹과 알렉산드르 1세의 초상화도 포함돼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폴란드는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프랑스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청년들이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 참여했다. 나폴레옹이 승리했더라면 폴란드의 역사는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물론 유럽의 역사가 달라졌겠다).

미츠키에비츠문학관 방문을 끝으로 이번 문학기행의 공식적인 문학일정은 일단락되었다. 일행은 구시가지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로 저녁을 대신하고 예약해둔 프레데릭 콘서트홀로 향했다. 쇼팽의 심장이 묻혀 있는 도시, 바르샤바를 방문한 만큼 프레데릭 쇼팽의 피아노곡을 들어보기 위해서. 바르샤바의 밤이 피아노 선율과 함께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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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문학기행 8일차였다. 통상의 경우라면 마지막 날이었을 텐데 이번여행은 9박11일 일정이라 오늘 하루가 더 남았다. 정확히는 반나절 정도의 일정이 남은 상태다. 오전 일정만 진행하고 한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것이 마지막 공식일정이기 때문이다. 오후는 자유시간.

어제아침 일찍 크라쿠프의 숙소를 떠나 1시간반쯤 거리의 오블렝고레크로 향했다. 이 낯선 지명은 헨릭 시엔키에비츠박물관(통상 시엔키에비치로 표기돼 왔는데 폴란드문학 전공자들이 시엔키에비츠로 옮기고 있다. 통일되지 않고 병행될 듯하다)이 거기에 있지 않다면 인연이 없었을 장소다. 문학기행이 시작된 이후에도 여행사의 문의에 회신이 없어서 일정 진행여부가 불확실했는데(방문하고 나서야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담당직원이 영어를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엔키에비츠박물관(시엔키에비츠궁전으로도 불린다) 진입로는 버스가 출입하기엔 폭이 좁아서 도보로 이동했는데 라임나무 가로수가 길 양쪽으로 멋들어지게 늘어서 있어서 걷기에 좋았다. 길 끝 언덕에 박물관이 보였는데 눈이 쌓여 있는 설경과 어울려서 근사한 모습이었다. 짐작에 한국인을 포함해 외국인 방문자는 거의 없을 것 같은 박물관에 단체로 입장해서 1, 2층 전시물들을 둘러보았다.

1층만 보면 작가의 서재와 침실 등 여는 작가박물관과 다를 바 없는 전시여서 단출하다는 인상이었는데 새로 꾸민 것 같은 2층은 시엔키에비치의 노벨상 수상 관련 사진과 자료, 작품들, 특히 <쿠오바디스>(여러 차례 영화화된)와 연관된 사진들이 전시돼 있었고 장식용 서가의 <쿠오바디스>를 비밀문으로 한 비밀의 방까지 마련돼 있었다. 방문자들의 흥미를 자아내는 새로운 구성이었다.

시엔키에비츠박물관에서는 주로 역사소설에 주력했던 그의 작품세계를 톨스토이와 비교 설명했다. 월터 스콧부터 시작되는 근대 역사소설의 역사에서 시엔키에비츠가 차지하는 독특한 위상과 특징은 국권 상실기 폴란드 작가라는 특수한 사정과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했다(<쿠오바디스>도 마찬가지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비해 퇴행적으로 보이는 그의 역사소설은 민족주의와 결합된 신낭만주의적 문학관의 소산이다.

바르샤바로의 이동 시간 때문에 박물관에는 오래 머물 수 없었다. 들어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곧게 뻗은 가로수길을 걸어나와 다시 버스에 올랐다. 마지막 목적지 바르샤바를 향하여 다시 출발. 등산으로 치면 문학기행은 이제 8부능선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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