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극단의 고골 3부작에 대해서 몇 달 전에 소개한 바 있는데(http://www.aladin.co.kr/blog/mylibrary/wmypaper.aspx?PCID=1909487&paperId=1049610) 이번에 국립극장에서 재공연된다고 한다. 러시아 유학파 출신의 연출자와 배우들이 중심이 되어 새롭게 해석한 고골을 무대에 올린 작품들이고 그간에 호평을 받아왔다. 이번에는 놓치지 말고 한 작품이라도 구경을 좀 해봐야겠다. 

한겨레(07. 04. 07) 국립극장서 만나는 러시아 대문호

러시아 대문호 니콜라이 고골(1809~1852)의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는 연극 ‘고골 3부작’이 4일부터 잇달아 관객을 찾아간다. 러시아 유학파 출신으로 구성된 명품극단은 고골의 우크라이나를 다룬 소설 가운데 <비이(4~7일)>,  <광인일기(18~22일)>,  <행복한 죽음(13~17일)>을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라는 부제 속에 녹였다. 올 1월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공연 당시 평단과 관객의 호평에 힘입어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재공연하는 것인데, 러시아 문학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고골의 대표적 단편소설을 무대 위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3부작의 서막인 <비이(4~7일)>는 키예프신학교에 재학 중인 어린 신학생 호마부르뜨의 하루 일과를 그렸다. ‘봄’이라는 부재처럼 호마부르뜨의 일과는 참을 수 없도록 졸리운 봄날의 꿈처럼 장난스럽기도 하고 괴기스럽기도 하다. 세트의 구성보다는 배우의 신체행동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와 소도구를 통한 다양한 공간변화, 러시아 전통 민속음악과 한국의 전통악기 가야금의 조화를 엿볼 수 있다.

<행복한 죽음(13~17일)>은 노부부의 삶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하고 따뜻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작품이다. 노부부 아파나시 이바노비치와 쁠리헤리야 이바노브나는 한적한 시골에서 살고 있지만, 일상에서 전원의 목가적인 무료함이나 권태를 느끼지 않는다. 이들의 삶에 대한 태도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배우자의 죽음이나 자신의 죽음에도 똑같이 적용되는데 죽음은 비극이 아니라, 삶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광인일기(18~22일)>는 페테르부르크의 계급사회를 배경으로 인간의 고독한 삶을 표현했다. ‘여름’이라는 부제처럼 작품 속 주인공 뽀쁘리신의 일기는 한 여름의 열정이 만들어 낸 사랑과 그것에서 비롯된 절망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조하석의 간결한 마임연기와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 프로코피예프의 음악 <로미오와 줄리엣>이 시대적 분위기를 한껏 살린다.

기치스 모스크바 연극예술 아카데미에서 유학한 뒤 현재 명품극단 상임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원석씨가 세 작품의 연출을 맡았고, 그가 상임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 베르니사쥐 극장의 러시아 스태프와 배우가 결합했다.(김미영 기자)

07. 04.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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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작가와 문학사이'는 소설가 천운영(1972- )씨 편이다. '바늘'이란 데뷔작으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작가인데 기사에서도 '바늘'은 이 작가를 이해하는 키워드로 제시돼 있다. 몇몇 단편들을 더 읽어보았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장편인 <잘가라, 서커스>(문학동네, 2005)를 아직 소장하고 있지 못하다. 서커스 구경을 갈 기회가 언제 생기려는지(이 작가에 대해서 글을 쓴다면 아마도 그녀의 '카니발리즘'에 대한 것이지 않을까 싶다). 말미엔 첫 소설집 <바늘>(창비, 2001) 출간 이후에 진행된 인터뷰를 창비홈피에서 옮겨놓았다.

경향신문(07. 04. 07) [작가와 문학사이](13)천운영-‘바늘’로 우리를 자극하다

천운영은 ‘바늘’의 작가다. 특히 2000년도 신춘문예에 당선된 ‘바늘’이라는 단편은 바늘에 관한, 바늘에 의한, 바늘의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예리한 바늘이 정곡을 찔러 육체에 음산하고 정교한 수를 놓으며 살 속에서 맴돌던 언어를 해방시킨다”는 신춘문예 심사평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늘’은 이후 ‘원색의 고통과 절규로 점철된 사실화’로 상징되는 천운영식 소설을 직조하는 중요한 글쓰기의 도구가 되었다.

전통적으로 바늘은 여성적 도구로 인식되었다. 시대극의 여성들을 보자. 그들은 언제나 바늘을 들고 있다.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혹은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지느라, 그것도 아니면 그냥 자신들이 다소곳한 여성임을 보여주기 위해 그녀들은 바늘을 든다. 바늘은 그렇게 우리 사회에서 가부장제적 여성상을 상징하는 수동적 도구로 동원되어온 것이다.

그러나 천운영 소설에서 바늘은 ‘찌르고 꿰매는’ 동작에서 연상할 수 있는, 다분히 가학적인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능동적 도구다. 그리하여 이제 천운영 소설의 여성들은 더 이상 바늘을 바느질하는데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들은 문신사가 되어 바늘로 남성의 몸에 야만적인 상처를 내고 그 위에 자신의 욕망을 그려 넣는다. 그 순간 “어린 여자아이의 성기 같은, (중략) 가장 얇으면서 가장 강하고 부드러운 바늘”(‘바늘’)은 펜을 대신할 새로운 글쓰기의 도구로 탄생한다. ‘펜은 페니스다’(pen is penis)라는 가부장제적인 동어반복적 명제는 그 순간 부정된다.

그러나 천운영의 바늘로 글쓰기를 단순히 남성중심적 글쓰기를 부정하는 여성적 글쓰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바늘은 그 길쭉한 모양새 때문에 남성 성기의 상징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구멍 난 바늘귀 때문에 여성 성기의 상징물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남성적이되 강하지 않고 여성적이되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 오히려 바늘로 글쓰기는 육체라는 텍스트를 찌르고 고통스럽게 함으로써 지금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혹은 우리가 애써 부정하고자 했던 익명의 감각과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도착적 글쓰기에 더 가깝다.



모든 욕망은 다 도착적이다. 그래서 모든 연애는 다 기괴하다. 우리는 모두 사랑을 욕망하지만 결코 사랑은 사랑으로 충족되지 않는다. 물고 핥고 빨고 삼키는 사랑의 행위는 결코 충족되지 않을 사랑을 충족시키려는 불가능한 몸짓인 것이다. 사랑의 대상을 삼켜버림으로써 완전히 합체하기 전까지는 그 어떤 사랑도 만족스럽지 않다. 그러니 함부로 사랑한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천운영의 바늘을 통해 감각되는 사랑은 그렇게 자기 상실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대상과 합체하고자 하는 욕망에 불타오른다.(‘명랑’의 주인공은 할머니가 죽은 뒤 유골을 갈아서 먹기도 한다.)

그래서 천운영 소설의 독자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머물러온 삶과 질서의 세계 바깥으로 밀려난 낯설고 기이한 사랑의 감각을 체득하게 된다. 그 순간 우리의 감각과 욕망은 확장되고 심화되면서 죽음과 무질서의 세계에 견인된다. 천운영의 바늘은 그렇게 우리를 낯선 감각의 세계로 이끈다. 그 세계는 도착적이되 도착적이지 않으며, 추하되 결코 추하지 않다. 천운영의 바늘에 찔림으로써 새롭게 눈 뜬 우리의 감각법에 따르면 말이다.



그러니 바늘을 든 작가 천운영을 두려워하지 말지니. 아무리 바늘에 찔려도 우리는 죽지 않으니. 물론 찔리는 순간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은 우리를 낯선 즐거움의 세계로 이끄노니. 고통을 동반한 쾌락의 경험이야말로 우리를 진정한 사랑에 눈뜨게 할지도 모르니. 더불어 이 권태롭고 나른한 세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지도 모르니. 그러니 천운영의 바늘로 글쓰기는 계속되어야 한다.(심진경|문학평론가)

07. 04. 07.

P.S. 창비에서 가져온 아래의 인터뷰는 작가 천운영씨와 평론가 백지연씨의 대담이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바늘'의 전문은  http://www.donga.com/docs/sinchoon2001/sub03_2_01.html 참조.

백지연(이하 백): 첫 소설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천운영(이하 천): 고맙습니다.

백: 등단과 동시에 주목을 많이 받고 활발히 활동을 해오셨는데요. 등단한 다음해에 창작집을 내기가 쉽지 않은데 책을 내면서 뿌듯하기도 하고 부담도 많이 될 것 같아요.

천: 부담이 많이 되죠. 작년부터 작품 발표는 계절에 한번씩 꼬박꼬박 했어요. 여덟편 발표했으니까요. 책 내기 한 일주일 전부터는 잠이 안 오더라구요, 부담이 돼서.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요.

백: 출간에 관련해서 인터뷰도 하고 책도 부치느라 요즘 바쁘시겠어요.

천: 조금 바빠요. 인터뷰 몇개 하는 것보다는 인사 다니는 것, 아는 분들께 책 부쳐드리는 것 그런 것 때문에요.

백: 현재 전업작가로 생활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글을 써서 원고료로 생계를 부담해야 하는 생활을 막상 시작하니까 느낌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천: 원고료는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정도지요. 얼마전에 창작지원금 받은 것도 있고요. 처음에는 신춘문예 상금으로 몇달 버텼죠. 어떨 때는 원고료 나오기 전에 미리 필요한 돈을 쓰고 원고료로 막을 때도 있구요.

백: 작품을 쓰면서 평론가나 동료 작가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작품에 대한 평을 들을 때가 있을 텐데요. 실제로 작품에 대한 일반독자의 반응을 직접 느낀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천: 신문에 「바늘」이 실렸을 때 팬레터를 몇통 받아봤어요. 그 작품에 문신 얘기가 나오잖아요? 교도소에 계신 분들이 자기한테도 문신이 있는데 그 작품을 읽고 감동받았다, 앞으로 꿋꿋하게 살아보겠다는 편지를 보내셨어요. 인터넷 문학 싸이트의 작가방 같은 곳에도 제 작품을 읽었다는 얘기들이 올라오구요.

백: 독자의 반응을 직접 실감할 때 기분이 어떠세요?

천: 처음에는 무작정 좋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무섭더라구요. 발표한 것을 한편도 빼놓지 않고 읽은 분도 계세요. 게시판에서 제 작품이 실린 지면을 누군가 질문하면 제가 답하기도 전에 그 작품은 어디 언제 실렸고 다른 작품과 어떤 면에서 유사하다는 식의 답변을 올리는 분도 있어요. 그런 거 보면 놀랍고 겁도 나고 그래요.

백: 실제로 창작과정에서 독자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쓸 때도 있습니까?

천: 요즘에는 좀 달라요. 어떤 독자들은 「바늘」을 비롯한 몇 작품의 강렬한 이미지들이 계속 등장하기를 요구하기도 해요. 그런 장면이 없으면 왜 이렇게 작품이 밋밋하냐는 식으로 말하는 분도 있죠. 도움이 되는 지적이기도 하지만 실제 쓸 때는 고정된 틀에 따르게 될까봐 의식하지 않습니다.

백: 창작활동을 구체화하게 된 건 아무래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다니면서일 텐데요. 그 곳에서 문학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 같습니다.

 

 

 

 

 

 

천: 대학을 졸업하고 소설 공부를 하고 싶어서 서울예대에 들어갔죠. 서울예대에서 얻을 수 있는 건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 함께 문학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주 가까이 있다는 거예요. 저는 고등학교 때 문예반 활동을 한 것도 아니고 계속 습작을 해왔던 것도 아니어서 친구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친구도 얻었고요. 몇명이 모여서 모임 비슷한 것도 하고 그랬죠. 사실 최인훈 선생님에 대한 기대를 많이 하고 갔죠. 다른 분들도 많이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불행히도 제가 들어갔을 때에는 선생님이 안식년이어서 직접 못 배웠구요. 이제하 선생님께 문학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를 많이 얻었어요.

백: 지금 문단에서 가깝게 교류하는 작가도 있을 텐데요.

천: 조경란씨가 우선 친해요. 저는 언니라고 부르는데요, 언니 데뷔하고 제가 습작 계속하고 있을 동안 옆에서 봐주고 북돋워주고 그랬어요. 아마도 그 언니 없었으면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백: 이제는 같은 위치에서 소설을 쓰니까 경쟁자이기도 하고 서로 자극을 주는 관계 아닌가요?

천: 언니는 등단 6년차잖아요? 저는 2년차고. (웃음)

백: 소설 공부하면서 선배 소설가들 중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는 누구죠?

천: 김소진의 작품에 한참 열광했었구요. 황석영의 단편소설이 주는 생생한 현실세계의 느낌, 성석제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활달한 입담을 좋아했어요. 좀더 위로 올라가자면 김유정의 단편소설들 아주 좋아했고요.

백: 본인의 소설과는 매우 다른 색채의 작품들을 좋아했군요.

천: 그렇게 써보려고 했는데 안 되더라구요. (웃음)

백: 소설을 쓰다 보면 아무래도 선배작가들을 의식하면서 이런 점에서 나는 뭔가 새로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텐데요. 천운영씨 소설의 어떤 부분이 기존의 문학적 규범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나요? 자기 작품이 동세대 작가들하고도 다르게 읽혀졌으면 하는 부분도 있을 테구요.

천: 제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자산은 사람들인 것 같아요.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방식, 그게 제 문학의 관심사예요. 우리 주변에는 대학생들이 많지만 실제로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을 만큼 형편이 넉넉한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잖아요? 제 소설에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사람들, 생활전선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요. 저는 제가 잘 모르는 음악, 미술작품 같은 것을 작품에 동원하고 싶지 않아요. 특정한 지식인들만이 느낄 수 있는 체험을 그리거나 일상인들의 생활체험을 배려하지 않는 작품을 보면 싫더라구요. 모든 사람이 읽어도 내 삶과 많이 다르지 않다, 혹은 다르더라도 아 이런 삶도 있었구나, 이렇게 비루하고 비참하게 사는 사람도 있었구나 하는 그런 걸 느끼게 했으면 좋겠어요.

백: 그런데 천운영씨 소설을 보면 직접적인 문화기호를 동원하진 않지만 상당히 미학적인 의도와 창작방식을 즐기는 스타일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생활의 리얼한 반영이라는 측면보다는 미적인 작법이 두드러지고요.

천: 제가 그리는 사실적인 대상에도 미학적인 아름다움이 있어요. 예를 들면 동태 지느러미를 손질할 때 어떤 방법으로 칼을 쓰는 게 좋다, 이런 건 미학적으로 사고하지 않아도 이미 그 안에 미학이 내재되어 있는 거죠. 저는 그런 것에 관심이 많아요. 흔히 음악이나 미술•영화 등 예술적인 대상에만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들 생각하는 거 같아요. 저는 오히려 아름다움의 절정이 일상의 밑바닥에 존재한다고 봅니다.

 

 

 

 

 

 

백: 지금 이야기한 부분이 천운영씨 소설을 읽는 데 매우 중요한 대목일 것 같아요. 일상의 비루한 삶 속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움을 미적인 장치로 이끌어내는 것 말이에요. 이와 관련하여 작품들을 읽다 보면 작가가 매우 부지런히 취재를 다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횟집, 마장동 축산시장, 병원 등 작가가 기자처럼 그 삶의 장소를 직접 세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소설을 쓰기 위해 일부러 그런 곳을 찾아다닌 건지 궁금해요.

천: 이 소설집에는 취재뿐 아니라 제가 우연히 겪은 생활체험이 많이 들어가 있어요. 예를 들면 마장동 축산시장도 우연한 기회에 갔다가 순간적으로 「숨」의 줄거리가 떠오르더라고요. 『바늘』에 실린 아홉편의 작품 중에서도 「숨」은 대상을 보는 순간 '이거 내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 작품이에요. 그래서 일주일 정도 축산시장을 찾아다녔어요. 작가의 말에도 썼는데 그때가 한참 마장동에서 소에게 물 먹이다가 적발되어서 난리가 났을 땐데요. 시장사람들이 저보고 여기자가 들어왔다고 난리쳤어요. 카메라 들고서 뭘 적고 그러니까요. 그때 정말 쫓겨날 뻔했지요. 그런데 다행히 소설 쓰려고 한다고 말했더니 "그럼, 소설 속에 제 이름을 좀 넣어주십시오"라고 말씀하신 한 아저씨가 있었어요. 그 아저씨가 일일이 칼 쓰는 법도 알려주시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구경도 시켜줬죠.

그리고 제주도에서 한달 동안 횟집주방에 있으면서 회 뜨는 것도 배웠어요. 배우려고 배운 게 아니고 횟집에서 일하는 친구 좀 도와주겠다고 내려갔다가 우연찮게 배웠고요. 꼼장어집 같은 경우에는 제가 친구와 3개월 정도 직접 실내포창마차를 운영했었어요. 소설을 쓰기 위해 일부러 현장들을 찾아다니지는 않았지만 실제 저의 생활경험들이 배어 있어요.

백: 다이내믹한 여러가지 생활방식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소설가가 아니었으면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겠는데요.

천: 이 인물로요? (웃음)

백: 신문기자도 어울릴 것 같아요. 다른 삶에 호기심이 많으니까요. 이제 개별 작품의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요. 아무래도 천운영씨 소설집에서 「바늘」 얘기가 빠질 수가 없겠죠. 어떻게 보면 모든 작가에게는 등단작품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있잖아요? 「바늘」은 천운영씨의 등단작이기도 하면서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 같아요. 「바늘」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일단 추악하고 그로테스크한 인물의 등장입니다. 이후의 작품들에도 천운영 소설 특유의 괴기스럽고 뒤틀린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인데요. 이런 인물들이 자주 나오는 이유는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비참하고 고단한 일상의 삶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작가가 유독 이러한 인물형에 애정을 갖기 때문인 것 같아요.



천: 저는 남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비루한 삶에 눈길이 많이 가요. 예를 들면 김기덕의 「악어」란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아주 추잡한 인생이잖아요? 그런데 미워할 수가 없더라구요. 아주 비굴하고 나쁜 인간인데, 가만히 보면 미워할 수 없고 측은하고. 그런 인물들에 애정이 많이 가요. 제가 소설인물들의 외모를 일부러 괴상하게 그리는 건 아닌데 무의식적으로도 그렇게 설정이 되는 걸 보면 많은 애정을 갖고 있는 거지요.

백: 인물들의 외향도 그렇고 대체로 보면 소설 속 인물들이 의식하는 성(性)이 굉장히 황폐해요. 노화했거나 선천적인 성불구거나 정신적•육체적으로 거세된 인물들이 많이 나옵니다. 인물들의 성적인 상징이 사회적인 의미도 띠고 있겠지만 그 자체로 대단히 강렬하고 섬찟한 이미지를 줍니다. 특히 인물들이 육식에 집착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띠는데요, 불구화된 자신의 육체적 성징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육체의 생생함을 갈구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심한 말로 작품 곳곳에 '피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은데요.

천: 작품집을 내기 전에 아홉편의 작품을 봤는데 정말 피냄새가 나는 것 같더라구요.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봤어요. 육식과 성적인 것에 내가 굶주려 있는 게 아닌가 하고요. (웃음)

백: 작가의 실제 식생활이 그런 거 아니에요?(웃음)

 

 

 

 

 

 

천: 정말 저의 식생활은 소설 속 인물들과 비슷해요. 저는 육식과 날것을 좋아해요. 회도 좋아하죠. 그리고 닭도 퍽퍽한 살은 안 먹어요. 연골, 목뼈 이런 부분을 좋아하거든요. 인물들의 식성을 묘사하는 부분에는 제 모습이 조금씩 들어가 있어요. 「바늘」에서도 "쌀눈이 살짝 비치도록 말간 밥알에 약간 검어진 육류의 핏물이 스며들 때, 고기의 맛은 정점에 이른다"는 구절도 나오죠. 정말 저는 고기를 먹을 때 밥과 같이 먹는 그 느낌을 좋아해요.

백: 주인공들의 강렬한 캐릭터의 묘사는 작가의 전략적인 부분이기도 한데요. 중심인물의 강한 개성에 비해 그 인물들이 소설 내의 다른 인물들과 맺는 관계는 서사적인 연결고리가 좀 약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도 들어요. 작가가 의도적으로 폭넓은 사회적인 관계를 차단하고 주로 가족, 핏줄의 이야기에 집착한다는 생각도 들구요. 예컨대 「바늘」에서 딸과 어머니의 삶이 겹치는 이유가 특정한 서사로 설명되기보다 운명적인 동질성으로 읽히구요. 어머니가 스님에게 느끼는 억눌린 욕망이나 딸이 문신해주는 남자들에게 암암리에 품고 있는 욕망이 상징적으로만 암시됩니다.

천: 저는 인물들의 관계를 표현할 때 실제 가족관계에 있어서의 억압이나 상처들을 구체적으로 거명하기보다 그걸로 인해서 주인공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얼마나 고립되어 있는가 하는 점을 주로 표현하죠. 직접적인 사회관계를 맺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좀더 상징적인 것으로 쓰고 싶어요. 예컨대 욕망의 억눌림 역시 남성적인 거대제도와 그렇지 않은 것으로의 상징으로 쓰게 된 것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싸워야 할 대상이 사회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운명, 아버지라는 대상과의 싸움이 바로 사회와의 싸움이에요. 그런 점에서 어떤 분들은 제 작품의 인물들이 열려 있지 않는다는 지적을 하시기도 하죠.

백: 그런 맥락에서 보면 작가가 인물의 특정한 행위를 예술적으로 묘사하는 데 공을 무척 들인다는 건 확실합니다. 등장인물들이 추악하고 그로테스크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은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장면에서 대단히 아름답지요. 여자가 문신을 새기는 장면의 섬세함이라든지 소를 도살하여 다루는 장면 하나하나, 회를 뜨는 장면, 심지어 소설 속의 인물들은 무엇인가를 먹을 때조차도 예술적(?)입니다. 「등뼈」에서 여자가 닭튀김을 먹을 때 세심하게 뼈를 발라내는 장면은 바라보는 남자에게 놀랍고 매혹적인 장면이지요. 이러한 탐미적 경향 때문에 비루한 현실조차도 판타스틱하게 그려지는 게 아닐까요.

천: 「바늘」에서 제가 천착했던 게 '미'와 '추'였어요.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는 도대체 무엇인가, 정말 우리가 아름답다고 믿는 것은 정녕 아름다운 것인가, 추함 속에 아름다움은 없을까.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작품을 구상할 때 2, 3주 정도 절에 보살로 들어가서 생활을 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스님이 저한테 툭 내뱉은 물음이 있어요. "새가 나뭇가지를 물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간다. 왜 가냐?" 저는 장난삼아 "집 지으러 가겠죠"라고 답했어요. 그랬더니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파리가 어디에 집을 짓느냐"고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네?" 하고 반문을 했더니 "파리는 변소에다 집을 짓는다. 거기서 새끼가 나오고 그 새끼들이 다시 변소통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좌선하는 동안에 계속 그 질문을 생각했어요. 정말 새가 왜 날아가지, 하고요. 그러던 어느 순간 그 질문이 어떤 대답을 요구하는 건지도 모르고 새가 날아가는 장면이 그려지면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집'이라는 단어와 '아름답다'는 단어를 계속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바늘」을 쓰게 되었거든요. 물론 다른 에피쏘드도 있었지만요. 그래서 아름다움이란 것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요.

백: 한 인간의 내면에 묻혀 있는 이미지나 관찰하는 사람의 시선에 포착되는 아름다움을 감각적으로 추구한다는 점에서 천운영씨의 소설을 영상적인 스타일과도 연관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이 천운영씨도 영화 보는 것 무척 좋아하지요? 어떤 영화가 특히 인상에 많이 남는 편인가요?



천: 네. 아까 김기덕의 영화를 이야기했지만 「하이 힐」(Tacones Lejanos)을 만든 뻬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ovar)의 영화도 좋아해요. 섬찟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런 영화들을 좋아해요.

백: 최근 영화작품 중에서 재미있게 본 것 있어요?



천: 여행을 갔다가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낯선 극장에서 봤는데, 장면 하나하나가 뇌리에서 떠나질 않네요. 주인공이 단란주점에서 발가벗고 무표정하게 기타를 치는 장면도 그랬고 기타 선생님 얘기도 그렇고요. 인물들의 느릿느릿한 말투에서 나오는 그 생활들이 말을 하지 않아도 보이더라구요. 사람들의 표정이 콸콸 눈물을 쏟아내게 하진 않지만 은근하게 슬퍼지더라구요. 지나가다가도 문득문득 그 생각이 나요.

백: 영화 보고는 노래 부르러 가지 않았어요? 다들 이 영화 보면 노래 부르고 술 마시는 게 절차라고 하던데. (웃음) 형식적으로 시도하는 스타일은 다르지만 바탕에 자리한 생리적 감수성에 공감이 가나 보군요. 소외된 인물들을 세심하게 들여다본다는 점에서요.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소설을 쓸 때 그 이미지들이 의식되지 않나요?

천: 아뇨, 그렇지는 않아요. 저는 우연히 떠오르는 이미지들로 연상시켜 쓰는 스타일은 아니예요. 소설을 쓸 때는 자세히 구상하는 편이지요. 실제로 학교 다닐 때 수학 과목을 무척 좋아했거든요. 처음부터 끝까지 답이 딱 나오는 걸 참 좋아했어요. 소설 쓸 때에도 문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드는 게 아니라 원인과 결과를 구성하고 생각해서 써요.

백: 예를 들어 역사소설 쓸 때 흔히 시도하는 인물 사건 도표 같은 걸 만들어놓으시나요?

천: 네. 전 도표를 만들어요. 장면마다 뭐가 나오는지, 거기서 상징으로 들어갈 단어 몇개 쓰고 이 장면의 분량은 몇 매쯤 되겠다, 이런 식으로 장면을 구성해요. 어쩌면 그게 영화 씨놉시스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죠. 영화가 나에게 직접 들어온다거나 영화의 카메라 기법을 따라가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스토리 구성을 할 때 그렇게 하죠.

백: 그 방식은 추리소설가들이 즐겨 쓰는 방법이기도 한데요.

천: 나중에 추리소설을 써볼까 생각도 조금 하고 있어요. 부커상(The Booker Prize)을 받은 맥완(Iwan McEwan)의 『암스테르담』(Amsterdam)을 보면 굉장히 추리소설적이지만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작품이거든요.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추리소설 하면 판타지하고는 분리된 별도의 영역으로 자리잡고 있잖아요? 전 추리소설의 박진감 넘치는 부분과 문학적인 상상력과 상징들을 합쳐서 새로운 양식을 시도하고 싶어요. 사실 초등학교 때 열광했던 게 추리소설이거든요. 홈즈부터 시작해서 씨드니 쎌던까지요. 생각해보니 하이틴로맨스도 무척 많이 읽었네요. (웃음)

백: 여학생 시절 때 하이틴로맨스 안 읽어본 사람 없잖아요? 쉬는 시간에 가방에서 꺼내 서로 돌려 읽던 기억이 나네요. 그 당시는 그게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였던 것 같아요. 백마 탄 왕자님을 찾아가는 다소 야한 이야기들…… 남학생들의 도색잡지보단 약하지만 하이틴로맨스가 유일한 성인로맨스의 분위기를 제공했던 것 같은데…… (웃음) 다시 소설쓰는 이야기로 돌아와서, 작품은 규칙적으로 쓰나요? 한번에 몰아서 쓰는 스타일인지 아니면 조금씩 나누어서 쓰는지.

천: 쓰다 보면 보통 밤을 새긴 하는데요, 잘 쓰는 분들처럼 사오십매는 못 쓰고요 십매, 십오매 정도 하룻밤에 쓰죠. 전 한 장면씩 써요. 그 장면을 쓰고 다음날 다음 장면을 쓰고 그래요. 보통 한시에서 해 뜨기 전 일곱시까지 쓰고 그랬는데, 마지막 소설을 쓰면서 조금 바뀌었어요. 아침이 좋더라구요. 네다섯시쯤 일어나서 씻고 해 떠올라서 비출 때까지 썼어요.

백: 몸이 힘들 때도 많죠? 소설쓰기는 그야말로 체력과의 싸움이라고 하는데요. 지금이야 젊으니까 못 느끼겠지만. (웃음) 작가로서 내가 관리해야겠다 하고 느낀 적은 없나요? 어떤 작가는 달리기를 규칙적으로 하기도 하고 헬쓰클럽을 다니는 분들도 있고 나름대로들 체력을 관리하는데……

 

 

 

 

 



천: 저도 한동안 조깅도 하고 수영도 하고 그랬는데요, 요즘은 통 안 해요. 소설쓰다 지치면 같이 사는 친구하고 고기 먹어요.

백: 고기요? (웃음) 천운영씨의 유일한 힘은 처음부터 끝까지 육식에서 나오는군요. 채식주의자들이 보면 놀라겠는데요. 지금까지 여러 작품 중에서도 「바늘」만 가지고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은데 첫 소설집 중에서 특별히 애착이 가는 다른 작품 이야기도 좀 해볼까요.

천: 네 있어요. 물론 「바늘」이야 첫 작품이니까 애착이 가고요. 저는 「월경」을 좋아해요. 왜냐하면 첫 소설집의 모든 작품이 「바늘」 이후에 쓴 작품들인데, 「월경」만 그 전에 쓴 작품을 손질한 거예요. 신춘문예 최종심에 올랐던 작품이죠, 제목은 물론 그게 아니었지만. 아마도 이 작품이 최종심에 오르지 않았으면 소설을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이 작품 가지고 주어, 서술 시제 이런 걸 다 써봤을 거예요. 현재형으로도 써봤고 과거형으로 써봤고. 그런 연습을 제일 많이 했던 작품이죠. 인물도 특별히 애정이 가고요. 「월경」 마지막 부분에 "보름달은 스스로 몸을 허물어 경계를 지우리라"는 부분하고 여성성의 이미지하고 다 제게는 의미가 있는 것이어서 더 그렇죠. 그리고 가장 오래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애착이 더해요. 그 외에 「눈보라콘」은 아주 즐겁고 유쾌하게 쓴 작품으로 기억에 남아요. 제 나름대로 여러가지 문화적 기호들을 다양하게 사용하여 재미있게 썼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 모양이에요.

백: 작가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과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죠. (웃음) 전 개인적으로 「눈보라콘」의 새로운 면도 주목하지만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어요. '눈보라콘'이라는 응집된 이미지를 보여주면서도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가려는 새로운 시도가 의도만큼 충분히 살아나지는 못한 것 같아요. 하나의 섬세한 이미지가 모든 인물들과 사건을 묶어주기에는 너무 약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구요. 그 부분이 앞으로 천운영씨가 소설을 쓸 때 중요한 문제로 계속 부각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이 작품을 보면서 뭔가 방법론을 변화시켜나가고 싶어하는 작가의 의도가 느껴졌어요. 아마 앞으로 이 작품이 발단이 되어 여러 종류의 스타일을 보여줄 것 같아 이후의 작품이 궁금해지기도 해요.

어쨌든 천운영씨의 첫 소설집 『바늘』은 신인으로서는 상당히 과감하고 뚜렷하게 자기 스타일을 부각시키고 있는 편인데요. 작품집이 전체적으로 상당히 고르고 짜임새가 있고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모여 있어서 탁월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이러한 개성적인 특징이 이후의 작품 스타일을 변화시키는 데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때요?

천: 네 부담이 많이 돼요. 한권을 묶어내고 나서 다음의 첫 작품이 특히 그렇죠. 사람들이 일단 주목을 할 테니까요. 또 이렇게 계속 나갈 수 없지 않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고요. 제가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쓸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시선은 변하지 않을 것 같고 다만 방법적인 거, 소재나 묘사적인 부분들에 좀더 상상력을 넣는 그런 쪽으로 나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설핏 하고 있어요. 그리고 '육체'나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잠시 접어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백: 현재 살아가면서 소설 쓰는 것만큼 좋아하는 일이 또 있나요? 전문가적인 식견을 쌓는 분야가 있을 것 같아요.



천: 소설을 위해서건 아니건 여행을 좋아하고요. 요리하는 것 좋아해요. 그래서 문화쎈터 같은 데서 요리강좌도 듣고요. 양식조리사, 중식조리사 그런 수업도 들었어요. 아마도 그래서 횟집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시장 보는 것도 좋아하죠. 시장 보고 요리하면서 모든 스트레스 다 푸는 것 같아요. 영화 「301 302」 보면 다른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고 먹는 걸 보면서 만족감을 얻잖아요? 저도 그래요. 제 동거녀가 거의 모르모트죠. (웃음) 음식재료를 만지고 쓰다듬어보고 냄새 맡고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요리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백: 지금까지 주로 단편작품을 써오셨는데, 장편소설도 나름대로 구상하고 있을 것 같아요. 출판사에서 제의도 들어올 것 같고요.

천: 다들 좋은 중편, 장편 써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러는데요, 아직은 제 호흡이 그렇게 조절이 안되는 것 같아요. 점차 늘려가려고 계획은 잡고 있어요.

백: 구체적으로 다루고 싶은 소재나 취재하고 있는 거 있나요? 물론 비밀이겠지만요.

천: 비밀인데요. (웃음)

백: 추리소설 얘기도 하셨지만 장르를 넘나들고 싶은 생각도 있겠죠?. 판타지에도 관심 많을 테고…… 또 작가들 보면 동화에도 관심을 갖는 것 같던데요.

천: 판타지에는 관심 많아요. 그런데 저는 아직 동화는…… 제가 동화 쓰면 얘들이 무서워할 것 같아요. (웃음)

백: 동화가 항상 따뜻하고 예쁜 이야기만은 아니잖아요?

천: 사실 영국이나 독일동화 보면 상당히 현실적이고 어두운 면을 반영하고 있어요, 때론 엽기적이구요. 늑대 배를 가르는 장면 같은 건 아이들 보기엔 잔인하다 싶구…… 제 소설에서도 가끔 그런 면을 들여오긴 하죠. 하지만 동화는 그래도 뭔가 아름답고 따뜻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해요.

백: 소설을 쓰면서 지금까지 느꼈던 것,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약속 같은 게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천: 『바늘』에 실린 소설 아홉편을 쓰면서 정말 빨리 달려왔거든요. 청탁 받은 거 쓰기에 급급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완급도 조절해야 할 것 같고요, 조금 천천히, 좀더 깊이 생각하고 나아가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박완서 선생님처럼 오래도록 그 나이를 느낄 수 있는 소설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백: 앞으로도 좋은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천: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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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에 교보에 들렀다가 손에 든 책은 루틀리지의 '크리티컬 씽커즈'의 한 권인 <폴 드 만과 탈구성적 텍스트>(앨피, 2007)이다. 폴 드 만(1919-1983)은 대중적으로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문학비평과 이론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지나칠 수 없는 '예일 마피아의 대부'로서 예일대학에 오래 봉직했던 벨기에 태생의 비평가이다.

 

 

 

 

드 만의 높은 지명도(혹은 악명?)에도 불구하고 국내에는 단 한권의 저작도 번역돼 있지 않아서 사실 이런 입문서의 출간이 반가운 것만은 아닌데, 어쨌거나 이번 출간이 계기가 되어 적어도 두어 권 이상은 번역/소개되었으면 한다(러시아어로도 <맹목과 통찰>, <독서의 알레고리> 두 권이 번역돼 있다. 짐작에 일어로는 더 많은 책들이 번역돼 있을 법하다). 적어도 데리다나 스피박의 책들이 번역되는 만큼은(드 만은 데리다의 친구였고 스피박의 지도교수였다) 소개되는 게 공평하다고 나는 생각한다(문학이론쪽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지라 나는 세 사람의 책들은 거의 닥치는 대로 긁어모았다).

번역본이 나온 김에 원서(2001)는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복사했다. 같은 시리즈의 여느 책들과 마찬가지로 143쪽의 콤팩트한 분량(국역본은 254쪽). 바쁜 일들에도 불구하고 제 버릇 남 못 주기에 서론(왜 드 만인가?)을 읽어보았다.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 몇 가지를 적어놓는다('비워놓는다'는 게 정확하겠다. 자꾸 어른거리기에 다른 일에 방해가 된다).

앨피출판사의 이 시리즈로는 올초에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과 <트랜스 비평가 프레드릭 제임슨>이 출간된 바 있고(<제임슨>과는 좀 '시끄러운' 인연을 갖게 됐다) <폴 드 만>은 세번째 책이다. 이어서 나올 근간 목록에는 <줄리아 크리스테바>, <주디스 버틀러>, <시몬 드 보부아르> 등이 눈에 띄는데, 모두 여성이론가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덕분에 하반기에는 이 여성이론가들에 대해 정리할 기회가 생길 듯하다.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앨피, 2005)로부터 시작된 이 시리즈의 책들을 나는 다 갖고 있다. 개인적으론 내가 갖고 있는 많은 책들의 저자들을 다루고 있기에 일종의 '로드맵' 삼아서 소장해두는 격이다(이 시리즈의 의의는 입문서이면서 동시에 이론가 사전을 겸한다는 데 있다). 매우 요긴함에도 불구하고 간혹 불만스런 번역이 없지 않아서 역자에 좀 민감하게 되는데, <폴 드 만>의 경우는 낭만주의와 벤야민의 문학이론 연구로 독일에서 학위를 받은 '전공자'가 번역을 맡았다.

벤야민과 드 만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모르겠지만(아, 알레고리론으로 연결된다!) 드 만이 낭만주의에 관한 권위있는 저작들의 저자인지라 '낭만주의 전공'이라는 이력은 그래도 의지할 만한 대목이 아닌가 싶다. 맨앞에 실린 '옮긴이의 글'에서 프랑스의 비평가 '제라르 주네트(Gerard Genette)'를 '제라르 자네트'라고 표기한 건 상당히 특이해 보이지만('쥬네트'나 '즈네트'란 표기는 본 적이 있지만 '자네트'는 처음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구조주의 비평가의 한 사람인 주네트의 경우에도 '제라르 즈네뜨'의 <서사담론>(교보문고, 1992) 이후에는 전혀 소개되지 않고 있다(폴 드 만이나 제라르 주네트가 대단하지 않기 때문에 번역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에 딱히 우리가 읽어야 할 문학이론서는 몇 권 되지 않는다).  

폴 드 만을 포함하여 힐리스 밀러, 제프리 하(르)트만, 해롤드 블룸 등 예일대학의 쟁쟁한 문학비평가 네 사람을 미국 대학가에서는 '예일학파'라고 칭하고 일부에서는 '예일 마피아'란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는데, 드 만은 (가장 연장자이기도 하지만) 그 대부격의 인물, '돈 파올로(Don Paolo)'로 간주됐다(더 친숙한 인물로 고르자면 '돈 꼬레오레'라고 해야할까?).

이 예일학파에 대한 소개로는 페터 지마의 <데리다와 예일학파>(문학동네, 2001)가 단행본 분량으로서는 유일하면서도 유용하다(서론을 읽은 바로는 <폴 드 만>의 저자 맥퀼런은 드 만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지마와 의견이 좀 다를 듯하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최악의 번역서란 평도 얻은) 프랭크 렌트리키아의 <신비평 이후의 비평이론>(문예출판사, 1994)의 한 장이 폴 드 만에 할애돼 있고('폴 드 만: 권위의 수사학'), 빈센트 라이치의 <해체비평이란 무엇인가>(문예출판사, 1993)와 조너던 컬러의 <해체비평>(현대미학사, 1998)에서도 드 만은 자주 언급된다.(*<이론에 대한 저항>과 <독서의 알레고리>도 번역돼 나왔다.)  

그리고 "청년시절 드 만이 전쟁 중에 전쟁 중에 점령된 벨기에에서 나치에 협력적인 언론을 위해 글을 썼다는 사실이 알려진 1987년 소위 '드 만 사건'"에 대해서는 책의 6장('저술과 책임: 드 만의 전시 언론활동') 외에 가라타니 고진의 <언어와 비극>(도서출판b, 2004)의 12장('파시즘 문제 - 폴 드 만/하이데거/니시다 기타로')를 참고할 수 있다.

두터운 교분을 나누었던 데리다에 의하면 드 만의 업적은 '문학이론 영역의 변혁(transformation)'에 놓인다(두 사람은 1966년 존홉킨스대학에서 열린 '구조주의 논쟁'을 주제로 한 컨퍼런스에서 처음 만났다). "이 변혁은 대학 내외의 그리고 미국과 유럽 양쪽의 문학이론 영역에 물을 대는 경로들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동료였던 힐리스 밀러의 단언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이 드 만적 감각의 좋은 독자가 된다면 보편적 정의와 평화적 평화의 밀레니엄이 도래할 것"이다. '드 만적 감각의 좋은 독자(good readers in de Man's sense)'는 나라면 '드 만적 의미의 좋은 독자'라고 옮기겠다(일급의 비평가였던 '드 만적 감각의 좋은 독자'가 되는 것보다는 '드 만적 의미의 좋은 독자'가 되는 게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일 아닐까?).

1970년대 예일대학에 몸을 담게 된 드 만과 동료 비평가들의 "선구적 작업으로 형성된 (*프랑스의) 후기구조주의에 대한 관심은 (*미국) 학계에 상당한 마찰을 불러왔다. 문학비평의 전통적 형식들이 새로운 지식체계의 극단적 함의들로 위협받는다고 여겨졌다. 이 무렵에 종종 옛것과 새것 사이의 '매서운 토론'이 잇따라, 흔히 이 시기(대략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말까지)는 영미권 지식인의 삶 속에 이른바 '이론 전쟁(theory wars)'이라는 극적인 명칭으로 불린다."(21쪽) '이론 전쟁'이란 말은 '예일 마피아'란 별명과 잘 어울리는군.

"드 만의 저술은 상대적으로 그렇게 많지 않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부터 사망하기까지 약 65편의 에세이와 평문을 남겼다."(23쪽)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지만 '계산'은 정확하게 해둘 필요가 있겠다. 드 만의 저술은 ' 75편(some seventy-five)'이다. "책으로 출간된 드 만의 첫 에세이 모음집은 <맹목과 통찰>인데, 이는 1971년에 출간되어 1983년에 수정판이 간행되었다.(...) 이 책에 이어서 문학과 수사학을 탐구하는 <독서의 알레고리>(1979)가 간행되었다."

"드 만의 글 중 영향력이 가장 큰 몇몇 글들은 사후 첫번째 간행된 모음집인 <이론에 대한 저항>(1986) 속에 실려 있다. 이 책의 표제 제목으로 선택된 논문은 소위 '이론 전쟁' 기간 동안 이론적 질문의 방향을 규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낭만주의의 수사학>(1984)은 <독서의 알레고리> 속에 표현된 이론들을 확장시키는데, 낭만주의적 사유에 대한 드 만의 작업의 중요성을 공고히 한다. <낭만주의와 현대비평>(1993)은 어떤 의미에서 <낭만주의의 수사학>과 한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24쪽) 국역본에서 <낭만주의와 현대비평>에 병기된 원어 'Romanticism and Contemporary' 다음에 'Criticism'이 누락됐다.

"이상의 모음집들에 이어 <미학적 이데올로기>(1996)가 나온다. 1977-83년 사이에 씌어진 에세이들이 포함되었으므로 이 저작은 <독서의 알레고리>의 후속편으로 생각하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이 책은 수사학, 지식의 생산과 미학 사이의 관계를 정치적으로 심도 깊게 숙고하는데, 이는 드 만의 저작이 비정치적이라는 비난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그것은 드 만 저작의 정치적 정향성을 재획인해주며 그의 다음 프로젝트가 부분적으로 카를 마르크스에 집중될 것임을 예시한다. 유감스럽게도 드 만은 이 프로젝트를 완수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24-5쪽)

이 책에서 역자가 새롭게 시도하는 번역어들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물론 제목에도 포함돼 있는 '탈구성(deconstruction)'이다. 흔히 '해체(론)'라고 옮겨지는 데리다의 이 용어를 역자는 '텍스트 이론적 맥락에서' '탈구성'이라고 옮길 것을 제안한다(일본에서는 '탈구축'이라고 옮겨지는 걸로 안다). 나는 이러한 시도에 반대하지 않는다(데리다 자신이 어떤 고정적인 'key word'를 거부한다). 하지만 몇 가지 다른 번역은 새로운 시도가 아닌 부주의의 소치로 보인다.

가령 26쪽의 박스에서 데리다를 '파리대학의 철학자'라고 소개했지만 그는 '고등사회과학원의 철학자'였다(원문에도 그렇게 표기돼 있다). 같은 파리 하늘 밑에 있는 것일 테니 대수로운 건 아니지만. 하지만, 29쪽에서 "예일에서 문학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드 만은 제프리 하르트만, 해럴드 블룸, 힐리스 밀러 등을 가르쳤다."고 한 건 오역이다(동료들이 드 만에게 감화를 받았을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번역대로라면 세 사람이 드 만의 '제자'란 것인데 넌센스이다).

원문은 "While teaching on the literary studies program at Yale, de Man taught alongside the critics Geoffrey Hartman, Harold Bloom and J. Hillis Miller."이다. 하르트만, 블룸, 밀러와 함께 가르쳤다는 뜻이다. 거기에 1975년부터 데리다가 객원교수로 가세하게 되어 소위 '예일학파'가 형성된다는 것. 비록 저자가 부적절한 명칭이라고 지적하고 있지만. 왜냐? "드 만,  하르트만, 밀러, 데리다의 글에 어떤 유형적 유사성이 있긴 하지만, 그들이 한 가지 목소리로 말한 것은 아니었으며, 그들 자신을 결코 어떤 특정한 유의 비평적 과업과 관련지어 묘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형적 유사성'은 'family resemblances(가족 유사성)'의 번역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용어를 굳이 다르게 옮길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밖에 'desire'를 '욕구'라고 옮기는 것 등도 특이한 선택으로 보인다...

07. 04.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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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영어, 내 마음의 식민지>(당대, 2007)에 관한 리뷰를 올려놓았는데, 생각난 김에(멍석이 깔린 김에) 영어 강의('외국어강의'라고도 표현하지만 99%는 '영어강의'를 가리킨다)에 관한 자료들도 모아놓는다. 대학 경쟁력 강화와 세계화를 명분으로 영어강의의 비중을 늘이는 게 대학가의 추세인데, 그것이 필요한지에서부터 얼마나 가능한지, 또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영어공용어론'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신 분들도 제한적인 범위에서의 공용어론, 곧 '학문어로서의 영어공용어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강의 현장의 교수 두 분과 작년 경향신문의 '대학 영어강의의 그늘'이란 타이틀의 기획기사들을 옮겨놓는다.

교수신문(07. 03. 16) 외국어로 강의하기와 한국어로 학문하기

여러 대학에서 외국어로 강의를 진행하는 과목을 늘이고 있다. 외국어로 강의를 진행하는 과목에 대해서는 연구보조비를 지급하고, 폐강 기준을 완화하며, 절대 평가도 허용하고, 강의 시수도 높게 인정하겠다고 하면서, 신임 교수는 반드시 1과목 이상을 외국어로 강의하도록 하고, 학생들은 반드시 외국어로 진행하는 과목을 수강하도록 강제하려고 한다. 

국제화 시대에 우리 대학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외국어로 강의하는 과목을 설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내 대학에도 외국 유학생이 늘어나고, 우리 학생들도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기 위해서는 전문 분야의 차원에서 외국어에 능통할 필요가 있으니 더욱 그러하다. 또 우수한 외국인 교수를 초빙하여 교수진 구성도 다양하게 한다면 당연히 외국어로 강의하는 과목이 개설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외국어로 강의하는 과목의 확대가 한국어가 학문의 언어로서 자리 잡아 나가는데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은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학문 분야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학 강의실에서 쓰이는 한국어는 정상적인 한국어라 하기 어렵다는 점이 거듭 지적되어 왔다. 주요 용어는 물론 서술어조차 외국어 일변도이고 한국어는 ‘토’로만 쓰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예 강의를 외국어로만 하는 과목이 늘어난다면 한국어는 지식의 생산과 소통의 역할을 급격하게 상실하게 될 위험이 있다(*이미 의학, 공학, 자연과학 분야의 경우 한국어는 학문어로서의 위상을 거의 상실한 것 아닌가? 가령, 의학 드라마들에서 주요 용어들을 우리는 '한국어 자막'으로나 접수하듯이 말이다).

사실 근대 직전까지 우리는 한문으로 학문을 해왔고, 학문의 영역에서 한글은 기껏 경전의 번역용이었을 뿐이었다. 한글이 공용문자가 된 것은 1894년부터이며, 대학에서 학문의 언어로 자리 잡은 지는 이제 겨우 60년이 되었다. 그것도 난삽한 한자어, 번역어, 외래어 및 외국어로 점철된 한국어로 우리는 학문을 해왔던 것이다. 제대로 된 한국어로 학문을 하려는 노력도 전개되어왔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외국어로 전공 강의를 하도록 하니 우리 학문의 세계에 마치 제 2의 중세가 도래하는 느낌이다. 그래도 지난 중세에는 한문으로 학문을 했어도 수업만은 한국어로 했는데, 이제는 수업도 외국어로 하자니 말이다. 

원효, 퇴계, 율곡 등 여러 선인들이 한문으로 세계적인 학문을 했으니 장차 우리가 외국어로 세계적인 학문을 할 가능성은 충분하다(*하지만 그때의 '세계적인 학문'이 '한국 학문'이며 '한국 철학'인 것일지는 의문이다. 한국인이로서 '세계적인 학자'가 된다는 것과 '세계적인 한국 학문'을 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가 아닐까?). 세계에 널리 쓰이는 언어로 학문을 하여 곧장 외국 학자들과 소통하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세계화는 일원화의 방향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다원화의 방향에서도 이루어진다. 지식의 창조 역시 다양한 언어로 이루어질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라틴어 못지않게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가 훌륭한 학문의 언어 역할을 하듯이 한국어도 한문 못지않게 세계적인 지식을 창조하는 언어로 자리 잡아야 한다(*현재와 같은 한국어의 위상과 역량으로 가능한 일인지에 대해서 나는 회의적이다. '우리말로학문하기모임' 도 없지는 않지만. 가령, '한국어 철학'이 현재 가능한가?). 그것을(*그것은) 학문하는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그러므로 외국어로 강의하는 과목을 개설한다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한국어로 창조적인 학문을 하는 일에 이바지하는 것이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김종철/ 편집기획위원` 서울대) 

대학신문(07. 04. 01) 영어 강의, 우리말 강의

우리 대학도 국제화 촉진의 일환으로 영어로 하는 강의가 부쩍 늘어날 전망이다. 우리 학생들의 영어능력 향상은 물론, 늘어나는 외국인 학생들이 들을 수 있게 하라는 시대적 요구에 의해서도 영어 강의는 필연의 대세로 자리잡을 것 같다. 교재와 강의 내용이 이미 영어로 잘 정리되어 있는 전공 분야에서는 그런대로 큰 문제가 없을지 모르나 교재 개발이 잘 되지 않은 과목이나 인문 사회 예술계의 특수 전공 분야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가능성도 있겠다.

나는 1992년 봄 학기 이래로 대학원 과목을 벌써 16년째 줄곧 영어로 강의해 왔다. 농생대 대학원 공통과목인 ‘세포생물학특강’, ‘분자유전학’, ‘유전자조작론’, ‘유전체학’을 두꺼운 원서로 개정판이 나올 때마다 바로 바꿔 가며 학생들을 위해 독파해 주었다. 범위도 많고 어렵다고 하는 학생들에게 ‘나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바로 이 교재를 하버드, 엠아이티, 캠브리지 대학은 물론, 이웃 일본과 중국에서도 그리고 국내 다른 경쟁 대학에서도 사용’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자긍심과 명예를 걸고 노력해 줄 것을 호소했다.

학생들은 고맙게도 열심히 공부했고, 정말 좋은 성과를 올렸다. 학생들이 최신 논문을 읽어 발표할 때 영어로 하면 가산점을 주어 독려했다. 앞으로 국제 학술대회에 나가서 자신의 논문을 발표하게 될 날을 생각하며 준비하라고 했다.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호응했고, 해가 갈수록 그 수와 수준이 많이 향상되었다. 그 당시 내 영어 강의를 듣고 유학의 길에 올랐던 많은 학생이 이제는 귀국도 하여 여러 곳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

영어 강의를 시작할 그 시절, 주소와 성명을 밝히지 않은 어느 암자의 수도승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대학에서 영어로 강의한다는 것은 나라말을 버리고 민족정신을 흐리게 하는 심각한 사안이니 즉시 중단하라는 권유였다. 깊은 생각 끝에 시간을 내어 글을 썼을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우물 안 개구리들을 탈출시켜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감에 불타는 나의 영어 강의는 계속되었다. 국제화로 치닫는 지구촌 시대가 지속되는 한, 대학의 영어강의는 더욱 확대 보급될 것이 분명하다. 한 사람이 3~4개 국어를 구사하는 시대도 도래할 것이다.

한편 우리말의 세계화도 크게 신장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이제 달리 깨닫고 있다. 영어로만 읽고 쓰기를 계속하는 한, 과학 기술은 우리 학생들에게는 먼 서양에서 빌려 온 동화 속 이야기 또는 수입 상품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배울 것은 배워야 하되, 과학적 사고 자체를 영어를 통해서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언제까지 얼마나 철저하게 요구할 것인가? 젊은이와 일반인이 과학과 문화를 우리말로 배우고 생각하고 쓰는 가운데, 창조적 과학과 원천 기술이 샘솟아 나오는 시대를 원한다면, 이는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망상일까?(*현재로선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이나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일반에게 보급한 마틴 루터가 처했을 시대적 상황과 관념의 두터운 장벽을, 그리고 후세에 끼친 영향을 잠깐만이라도 음미해 본다면, 우리말 교재와 강의의 병행은 너무나도 작은 망상이 아닐까? 영어도 처음부터 국제어로 군림했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언젠가 누군가 물줄기를 바꿀 것이면 그것이 오늘 우리들여서는 안 될까?(김병동 교수/ 농생대·식물생산과학부)

경향신문(06. 06. 27) [대학 영어강의의 그늘](上) 준비안된 부실수업

수업을 영어로만 진행하는 대학 강의들이 늘고 있다. 학생들의 영어실력이 천차만별이고 교수들의 영어수업 역량도 떨어지면서 부실강의로 이어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글로벌화의 명분 아래 진행되는 영어강의의 그늘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주

#1. ㄱ대의 ‘수리물리학’ 시간. 원서를 보며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지만 책을 보고 읽는 수준이었고 어려운 개념을 설명할 때는 학생도 교수도 진땀을 뺐다. 수업에 참여한 한 학생은 “교수와 학생들 사이에 의사소통에 문제가 많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주요 대학들이 글로벌화 명분 아래 영어강의의 비중을 급격히 높이고 있지만 오히려 부작용만 속출하고 있다. 학생들의 영어실력이 천차만별인 데다 일부 교수들은 영어강의를 소화할 역량이 없다. 영어에만 집착한 나머지 부실한 강의로 이어지는 게 현실이다.

26일 각 대학에 따르면 고려대는 전체 강의 중 30%가 영어강의이며 2010년까지 절반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2007학년도부터 5개 이상 영어전공강의를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졸업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연세대도 전체 수업 중 18%가 영어로 진행되고 있다. 연세대 관계자는 “2010년까지 40% 선으로 영어강의를 늘리려 한다”며 “영어강의시 강의료를 추가 지급하는 등 인센티브를 줘 더 많은 영강이 개설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강대 역시 2006학년도 입학생은 3과목, 2007학번은 4과목 이상 들어야 졸업할 수 있게 된다. 서울대는 2006학년 1학기 전체 교양강좌의 10%를 영어강의로 지정했다. 이중에는 한국 근현대사·한국문학 등 한국학 관련 과목도 포함됐다.

문제는 이런 영어강의의 확대가 대학본부로부터 상명하달식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굳이 영어로 할 필요가 없는, 혹은 해서는 안 되는 강의를 영어강의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고려대는 한국사학과 등 역사관련학과를 ‘한국학의 세계화’를 위해 영강의무화 학과로 지정했다(*강의를 담당할 만한 교수를 끝내 구하지 못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고려대 한국사학과 김모씨(21)는 “영어에 없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선 결국 학생·교수 모두 한국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학생간 영어 실력차와 교수들의 영어강의능력 부족도 걸림돌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영어원서를 읽는 수준이거나 아예 영어회화수업으로 변질된 강의도 많다. 문제는 강의 질이 떨어지더라도 전공필수 과목이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수강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양대 영문과 조모씨(22)는 “지난 학기에 영어강의 ‘문학과 시’를 수강했는데 영어능력 향상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학생 허모씨(24·여)는 “교수님들도 영어강의를 하면 의미가 70%밖에 전달되지 않는다며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지난 3월 고려대 학보인 고대신문이 재학생 375명을 대상으로 영어강의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56%가 “불만족스럽다”고 답했다. 불만족의 이유로 ‘영어수준이 너무 높아 이해하기 힘들어서’가 42.5%였다. 연세대 언더우드국제학부의 모종린 학장은 “굳이 영어강의가 필요없는 곳도 많다”며 “전공별로 차별화해서 영어강의 비율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김준일·이호준·김유진기자)

경향신문(06. 06. 28) [대학 영어강의의 그늘](下) 교수들도 피해자

독일에서 10년 넘게 여성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은 김모씨(42)는 지난해 모 국립대에서 사회학과 교수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여성학에 관해서는 상당한 자신이 있던 김씨는 면접자리에서 당황했다. 면접위원들이 독일어가 아닌 영어로 인터뷰를 했기 때문이다. 무사히 면접을 마치긴 했지만 임용에는 실패했다. 김씨는 “임용된 사람을 알아보니 그 학교 출신에, 영어회화가 뛰어난 사람이었다”며 “실력보다는 영어가 중요시되는 것 같아 씁쓸했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유럽에서 공부한 박사들은 요즘 좌불안석이다. 김씨는 “사회학이나 법학은 세계적으로 독일이나 프랑스를 더 알아주지만 국내 분위기는 오직 영·미권을 우대한다”며 “같이 공부한 사람끼리 만나면 미국으로 유학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한탄한다”고 전했다. 대학들의 영어강의 확대로 피해를 보는 것은 학생뿐 아니다. ‘영어 강의능력’이 능력평가의 주요 지표가 되면서 영·미권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각광받는 반면 유럽출신 박사들은 임용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다.

‘영어강의 능력’ 우대는 국내 학계의 영·미 편향성이 더욱 심화되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상명대 영어교육학과 박거용 교수는 “최근 유럽에서 공부해 임용되는 교수가 거의 없을 정도로 학문의 미국 종속이 심화되고 있다”며 “영어지상주의가 불러오는 폐단”이라고 지적했다. 박교수는 이어 “학자라면 외국 학문을 우리말로 정착시켜 ‘한국적인 학문’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한데 번역없이 영어로 떠든다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했다. “영어를 잘하는 것과 강의를 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상당수 대학들이 신규임용 교수들에게 영어강의를 의무화하고 있어 ‘울며 겨자먹기’로 영어강의를 진행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해 임용된 고려대의 한 교수는 “내 전공은 실습위주 과목인데 억지로 영어로 진행하다보니 의사소통이 안돼 어려움이 많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나이든 교수님들이 영어강의를 안하다보니 영어강의 부담은 전부 젊은 교수들에게 지워지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영어만능주의에 대한 반발기류도 나타나고 있다. 고려대 이상신 교수는 지난 3월 어윤대 총장에게 보낸 공개 질의서에서 '“교수가 되려면 대학원 과정부터 미국에서 다녀야 한다”는 발언과 학문적 능력이 검증 안된 외국인 교수를 채용하도록 여러 학과에 요구한 점, 학문을 고려치 않고 영어강의 능력을 채용기준으로 설정한 점’ 등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지난 5월 고려대 문과대 교수회는 “문화적 정체성을 위협하고 자유로운 진리탐구 역량을 훼손하는 영어강의 전공과목 이수 의무화 방침을 거부한다”고 결의했다. 전공과목을 영어교육의 실습수단으로 여기는 발상에 대한 항의였다. 고려대도 교수회의 일부 주장을 받아들이겠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영어강의 확대 방침은 여전히 확고한 상황이다.

물론 세계화의 거센 파고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영어강의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도 많다. 고려대 화학과 최동훈 교수는 “어느 나라에서 공부하든 국제어인 영어로 소통할 일이 많기 때문에 교수들 역시 영어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세대의 한 교수는 “영어강의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대학측이 운영의 묘를 살려 학문과 영어실력 둘 다 키울 수 있는 방안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김준일·이호준·임지선기자)

경향신문(06. 06. 27) [대학 영어강의의 그늘]조기 어학연수 붐

“이왕 갈 어학연수라면 일찍 가는 게 낫죠.” 대학들이 영어강의를 확대하면서 캠퍼스 풍속도 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조기 어학연수 붐. ‘영어강의 스트레스’를 못 이긴 신입생들이 영어실력을 높이기 위해 조기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

고려대 언론학부 이모씨(20)는 “친구들 절반 정도가 2학년 마치기 전 어학연수를 생각하고 있다”며 “영어 스트레스로 군입대를 서두르는 후배도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재외국민 특례입학 학생들의 약진도 눈에 띠는 현상.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경험 덕분인지 의사표현이 적극적인 데다 최소한 영어강의시간에 자기 뜻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학점을 잘 받고 있다.

서강대생 박모씨(26)는 “교수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학생들은 영어회화를 잘하는 특례입학생의 학점이 더 잘 나온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전공지식보다 영어로 학점이 결정되는 현실에 분개하는 사람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학원생들도 죽을 맛이다. 각종 과제와 시험 채점은 대학원 조교의 몫인데 영어강의가 늘면서 채점 스트레스가 늘었기 때문이다. 고려대 대학원생 김모씨(28)는 “문법이 틀리는 영어를 읽는 것도 괴롭지만 정확한 점수 매기기가 어려워 단어 중심으로 채점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틀이면 끝나던 채점이 일주일을 넘길 때는 정말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김준일기자)

07. 04.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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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04-07 12:46   좋아요 0 | URL
취업 인터뷰 할 때, 혹시 영어로 강의가 가능하겠냐는 질문을 많이 하시더군요. 듣는 사람의 자질과 수준의 문제 아니겠냐고 대답했는데, 별로 바람직한 대답은 아니었나봅니다 ^ ^

로쟈 2007-04-07 13:59   좋아요 0 | URL
바람직한 대답은 아마 '물론입니다!'였을 거 같네요.^^;

마늘빵 2007-04-07 14:35   좋아요 0 | URL
영어가 필요한 학문이 있고 그렇지 않은 학문이 있다 생각합니다. 필요하더라도 강의까지 하느냐, 아니면 그저 읽고 해석하는 수준이냐도 달라질 것이고요. 최근의 학부에서의 모든 강의를 영어로 하겠다는 흐름은, 본질에서 한참 벗어났다고 봅니다. 국어국문학과 교수 채용시에도 영어를 보고, 강의도 영어로 하라고 한다면 말 다 했죠. 영어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은 아주 적습니다.

로쟈 2007-04-07 18:38   좋아요 0 | URL
경영학과나 이공계 학과처럼 아예 '영어 교재'를 사용하는 경우에 '영어강의'가 필요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실제적으로 그 분야의 의사소통이 '영어'로 더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영어강의'의 비율을 세계화의 척도로 삼으려는 것이죠. 그 논리에 있어서 '영어공용화론'을 그대로 답습하는 거라고 생각됩니다.

기인 2007-04-07 19:28   좋아요 0 | URL
보다 바람직한 대답은 'of course~!'였을까요.. 국문학도의 입장에서, 한국어의 풍요로움이라는 방향, 한국어로 학문를 해야한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이것이 세계적으로는 궁극적으로는 다양성이라는 점에서 도움이 될 것이고요. 이다/있다 라는 구분 등 언어와 사유에는 분명 긴밀한 끈이 있고, 인류의 입장에서 다양한 언어들이 다기하게 발전하는 것이 길게 보았을 때 좋을 것이라는 원칙에 동의합니다.
바벨탑을 세우는 것도 좋은 점은 있겠지만, 그것이 '영어'라는 데에는 일정 거부감이 드네요. 에스페란토어 같은 '국제적 인공어'를 다시 부흥할 수 있다면 각 집단의 언어와 함께 전세계 공용어 같은 것은 좋을 것 같습니디만.. 어쨌든 퍼갑니다.
한국문학사 영어로 강의하면.. 정말 암담할 것 같네요.

로쟈 2007-04-10 08:29   좋아요 0 | URL
미국 학생들에게만 '영어'로 강의하면 되지 않을까요?^^;

jalousies 2007-04-11 08:25   좋아요 0 | URL
학교를 떠난 지 10년 정도 되는데, 또 그만큼의 시간이 흐르면 영어로 불어를 가르치는 날이 오겠군요. 어쩌면 그 시절에 불어과는 하나도 살아남지 못할지도 모르겠네요. 세상이 미쳐가는건지, 대학이 미쳐가는건지...
 

지난 2월에 출간된 <궁정전투의 국제화>(그린비, 2007)란 책에 대해서는 예전에 이미 리뷰를 소개한 바 있는데(http://www.aladin.co.kr/blog/mylibrary/wmypaper.aspx?PaperId=1067249) 이에 대한 읽을 만한 리뷰가 다시 눈에 띄기에 자료삼아 옮겨놓는다. 소장도서이긴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언제쯤 읽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리뷰들만 열심히 읽다 보니, 덩달아 읽은 듯한 느낌도 들고). 책은 라틴아메리카의 경우를 다루고 있지만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시사점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리뷰의 필자인 이승원 연구교수는 '새로운 지식네트워크'의 형성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라고 제안한다. 고민해볼 문제이다.

교수신문(07. 04. 02) 미국 유학파와 전통적 엘리트의 힘겨루기

1917년 1월 1일 한국 근대문학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춘원 이광수가 총독부기관지 ‘매일신보’에 <무정>을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다. 민족주의자로서 제국주의에 협력했던 이광수는 구시대의 유학자들과 철저하게 단절하고 서양 학문으로 무장한 신세대 엘리트였다.



<무정>의 주인공인 경성학교 영어교사 이형식은 이광수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식민지 조선 민족의 계몽을 위해 목청을 돋웠던 이형식은 조선의 무궁한 영광과 발전을 위해 미국 ‘시카고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어떤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과연 이광수가 걸어갔던 길을 이형식도 따라 갔을까. <무정>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광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땅은 날로 아름다워 간다.” “우리의 어둡던 정신에는 날로 빛이 난다.” 이광수의 바람대로 이형식이 귀국한 식민지 조선은 과연 아름답고 빛이 났던가.

이광수의 혜안이 그야말로 글로벌했는지는 몰라도 이후 시공간을 뛰어 넘어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이형식과 같은 존재들이 등장한다. 이른바 시카고 보이스다. 이들은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유학한 칠레 경제학자들의 별칭이다. 시카고 보이스는 칠레로 돌아와 전통적 엘리트들인 대지주·법률가들과 치열한 힘겨루기를 벌인다. 구시대 엘리트들은 자본과 가문으로 무장했고, 시카고 보이스는 미국산 경제학을 무기로 삼았다.

<궁정전투의 국제화>의 두 저자는 이들의 대결을 은유적으로 ‘궁정전투’라 부른다. 그러나 저자들이 단순하게 칠레 내의 정치적 헤게모니의 싸움 혹은 국가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궁정전투’로 은유한 것은 아니다. 미국이 만들어낸 지식 네트워크와 이를 기반으로 정치·경제적인 권력을 행사했던 라틴아메리카(칠레,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의 소수 관료들과 국제적 엘리트들 사이의 ‘은밀한 동맹’이야말로 궁정전투의 본질이다.

이 책은 라틴아메리카를 사례로 미국산 지식의 국가권력화를 미시적인 차원에서 분석한 역작이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유럽대륙을 지향하는 법률의 강조에서 미국을 지향하는 경제학으로의 이동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가’이다. 또한 그 변동의 순간들을 미국의 전략적 차원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궁정전투의 국제화>는 라틴아메리카에 한정하지 않고 국가권력을 둘러싼 지식투쟁의 흔적들을 국제적인 차원에서 분석한 실증적 사례 보고서이다.

저자들이 분석 대상으로 삼은 모델은 미국의 시카고학파와 그의 적자들인 시카고 보이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의 경제·법률 엘리트들을 비롯한 국제적 법률 엘리트들 간의 역학관계이다. 저자들이 말하는 시카고학파는 케네디 정부와 함께 형성된다. 케네디는 동부 아이비리그 출신인 케인즈학파 경제학자들을 정부의 관료로 대거 등용한다. 마침 미국 중부에 위치한 시카고대학에서는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시카고학파가 서서히 자라나고 있었다.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시카고학파는 공화당의 소수 보수주의자들과 연대하면서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해 갔다.

시카고학파는 대부분 미국 이민 1세대와 2세대였다. 그들은 그동안 미국을 지배해왔던 토착 엘리트들과 경쟁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들에겐 가문의 영광도 자본도 사회적 ‘빽’도 없었다. 하여 그들은 지적 경쟁을 전면에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지적 경쟁을 위해 동원한 학문은 수학적인 기술이었다. 수학적인 엄격성이야말로 케인즈학파를 이길 수 있는 유용한 도구였다.

이 무렵 미국은 라틴아메리카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전략을 마련한다. 1960년대는 이른바 냉전 전략 모델이 절정에 도달했던 시기였다. 포드재단, 국제개발처, 진보를 위한 동맹, 법과 발전 등의 기관과 프로그램이 가동됐다. 이런 것들은 라틴아메리카의 젊은이들을 미국으로 불러들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미국의 해외지원 프로그램에 힘입어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된 라틴아메리카의 젊은이들은 자연스럽게 시카고학파의 제자가 되었다.

시카고학파가 주장했던 수리경제학은 언어·문화적인 능력의 중요성을 최소화했다. 따라서 수리경제학은 미국에 있는 외국 학생들을 통합하는 데 매력적인 학문이었다. 미국인들과는 문화도 언어도 인종도 다른 라틴아메리카 유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형식이 문명의 상징을 서양의 기계문물과 영어로 파악했듯이, 라틴아메리카의 젊은이들에게는 수리경제학이 곧 세계화의 상징이었다.



시카고학파가 길러낸 칠레의 시카고 보이스는 쿠데타와 함께 등장했다. 이미 그들은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이 형성했던 것과 유사한 정치동맹을 칠레에서 형성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1973년 피노체트는 아옌데 정권을 쿠데타를 통해 무너뜨리고 권력을 잡았다. 피노체트는 그동안 권력의 심장부에 포진해 있었던 구엘리트 세력을 추방·살해하고 그 자리에 시카고 보이스를 등용했다. 그들은 기술적 전문성과 정치적 개입의 결합을 강조하는 용어인 테크노폴(technopols)로 찬양되었다.

시카고 보이스는 단순한 경제학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정치가였고, 권력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의사(擬似) 군인’이었다. 미국의 시카고학파는 자신들의 지식을 국제시장에 유통시켰으며 라틴아메리카는 이러한 지식을 수입하여 국가의 헤게모니를 미국식으로 장악해갔다. 신엘리트에 의해서 축출된 구엘리트들 역시 새로운 상징권력을 마련했다. 법률로 무장한 전통적인 엘리트들은 인권을 무기로 신엘리트들과 투쟁하였다.

그렇지만 군부의 억압적인 정치권력에 저항하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쳤던 지식인들 또한 미국과 연루되어 있었다. 인권운동이나 시민운동의 주축들은 칠레와 브라질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권력을 획득하자 곧 정치계로 입문했다. 더욱이 새로운 형태의 초국가적인 NGO는 세계화를 정당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힘썼다. 그들은 사회적 폭력을 줄일 수 있는 새로운 정치 기술을 발명하는 열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사업 법률가가 되어 재계의 이익에 봉사하는 ‘고용된 총잡이’의 역할을 자임하였다.

한쪽에는 경제, 다른 한쪽에는 법률이 라틴아메리카의 정치권력을 구성하는 핵심이었다. 미국이 생산한 법률과 경제학은 라틴아메리카에 이식되어 상징권력이자 상징자본으로 변화했다. 막스 베버의 말처럼 정치란 ‘악마적인 힘들’과 관계를 맺는 일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정치가들이 이런 악마적인 힘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동원한 것은 미국산 지식이자 그들이 구성한 지식 네트워크였다.

이브 드잘레이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냉전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한 라틴아메리카의 궁정전투는 동남아시아나 한국에서도 익숙한 시나리오다. 따라서 <궁정전투의 국제화>는 한국 사회의 정치권력을 분석하는 유용한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다. 현재 한국에는 수많은 ‘이형식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고급 기술과 지식으로 무장하여 전문기술지식을 독점하는 테크노크라트이다. 지식인은 권위를 통해 대중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누구보다 대중적이어야만 한다.



한국의 ‘궁정전투’를 분석하는 것도 물론 의미는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질문해야 할 것은 그동안 한국을 지배해 왔던 미국산 지식 네트워크에 균열을 내고 이를 재배치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 네트워크의 형성은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그것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가 아닐까. 어린 시절 해외에 살다가 장성한 뒤 일자리를 찾아 국내로 들어오는 젊은이들을 가리켜 ‘연어족’이라 부른다. 조기유학 열풍에 따라 급증하는 미래의 연어족들은 과연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까. 그들이 이 ‘궁정전투’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의 네트워크는 어떤 모습일까.(이승원 / 한양대·국어국문학)

07. 04.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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