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문학사이'의 스무 번째 꼭지이다. 듣기에 시인으로는 마지막 차례이고 평론가는 동갑내기 시인 김경주를 꼽았다. 이미 관련 페이퍼(http://www.aladin.co.kr/blog/mylibrary/wmypaper.aspx?PaperId=1042368)를 올려둔 적이 있기에 나로선 덧붙일 군말이 없다. 다만, 읽어보시면 되겠다.

 

작가와 문학사이](20)김경주-비정형의 사유를 연주하다

시인 김경주는 전천후다. 목련의 처연한 죽음(‘목련’)과 헤겔의 ‘정신현상학’(‘정신현상학에 부쳐’)을 똑같은 톤으로 노래하고, 시나리오와 희곡과 장시(長詩)의 경계를 무람없이 오간다. 서정에 능한 가객인가 싶다가도 다시 보면 이렇게 치열한 사색가가 또 없다. 이 무모하리 만큼 완강한 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는 “외로운 날에는 살을 만진다”(‘내 워크맨 속의 갠지스’)라고 적었다. 이 시인은 저 자신의 살에서 우주의 기미(幾微)를 엿보고 영혼의 음악을 듣는다. 이 ‘살’(감각)의 직접성과 확실성이 그의 위력이다. 그는 시를 쓰지 않는다. 감각으로 시를 밀어붙인다. ‘나쁜 피’와 ‘취한 배’의 시인 랭보의 혈족이다.

1976년에 태어나 2003년에 시인이 되었고 2006년에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펴냈다.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대산창작기금 심사평), “무시무시한 신인”(권혁웅)과 같은 평가가 과장이 아니냐고 힐난할 일이 아니다. 과장하게 만드는 것도 재능이다. 그의 시에는 읽는 이를 몰아붙여 감탄과 탄식의 언사를 기어이 발설케 만드는 힘이 있다. “우리는 절박하게 부패해가는 생의 오류만을 시라고 불렀다.”(비정성시) ‘절박’과 ‘부패’와 ‘오류’로 밀어붙이는 시라니, 이렇게 대책 없이 젊은 시라니, 도대체 얼마만인가.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라는 선언이 그래서 얄팍해 보이지 않는다. 책상머리에 앉아 제작한 시가 아니다. 생을 절박하게 탕진해 본 자의 오만한 고독이 그의 시를 만든다. 그 진정성이 어색한 비문(非文)과 현학적인 각주까지도 다 삼켜버린다. 이런 잠언 투의 문장은 또 어떤가. “외롭다는 것은 바닥에 누워 두 눈의 음악을 듣는 일이다.”(‘우주로 날아가는 방 1’), “멸종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종의 울음소리가 사라져간다는 것이다.”(‘우주로 날아가는 방 5’) 금방 소비되고 마는 잠언들과 다르다. 지혜를 설파하는 잠언이 아니라 싸움을 선포하는 잠언이기 때문이다.

“황혼에 대한 안목은 내 눈의 무늬로 이야기하겠다 당신이 가진 사이와 당신을 가진 사이의 무늬라고 이야기하겠다// 죽은 나무속에 사는 방(房)과 죽은 새 속에 사는 골목 사이에 바람의 인연이 있다 내가 당신을 만나 놓친 고요라고 하겠다”(‘기미(幾微)’에서)

“불가피하게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니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 눈이 너로 인해 번식하고 있으니 오늘은 너를 사랑한다 오늘은 불가피하게 너를 사랑해서 내 뒤편엔 무시무시한 침묵이 놓일 테지만 너를 사랑해서 오늘은 불가피하다.”(‘몽상가’에서)

그의 첫 시집에서 이보다 더 잘 만들어진 시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런 문장들 앞에서 유독 서성거리게 된다. 잘 훈련된 시인의 시는 정련된 언어와 정확한 이미지로 명쾌한 전언을 실어 나른다. 그러나 시인으로 타고난 자들은 때로 의미를 제로로 만들고도 포에지를 100으로 끌어올리는 이상한 재능을 휘두른다. 우리를 사로잡아 사유를 강제하는 것은 절차탁마된 노회한 시들이 아니라 온 몸이 악기인 자가 연주하는 이와 같은 혼신의 노래들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때로 난해하지만 그 난해함은 읽는 이를 소외시키지 않고 외려 빨아들이는 이상한 난해함이다. 이 모든 것이 다 ‘사유하는 감각’의 권능일 것이다.



“그들의 삶은 늘 유배였고 그들의 교양은 갈 데까지 가보는 것이었으며 그들의 상식은 죽어가는 가축의 쓸쓸한 눈빛을 기억할 줄 아는 것이었다.”(‘비정성시’) 이것은 김경주가 포착해 낸 유목민의 본질이지만 우리가 읽어낸 김경주 시의 본질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는 시인과 나이가 같다. 책상에 앉아 세상을 저울질 하는 이 백면서생은 거칠고 아름다운 유목민의 노래를 밤마다 경외와 질투가 범벅된 눈으로 야금야금 읽는다. “나는 전생에 사람이 아니라 음악이었다”고 말하는 벗이여, 너의 현생까지도 음악이다.(신형철|문학평론가)

07. 06.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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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러시아의 세기 마지막 편이다.  가장 음울한 내용은 담고 있는데, 타이틀부터가 '사회주의의 죽음'이다. 소위 '현실 사회주의'의 죽음을 증언하는 사진들이다.

한겨레(07. 05. 28) 사진으로 보는 러시아의 20세기 ⑥ 사회주의의 죽음

» 우크라이나에서 만난 죽음의 현장. <북폴리오> 제공
우크라이나에서 만난 죽음의 현장 = 남자들이 먼저 죽고, 그 다음에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여자들이 죽었다. “가장 끔찍한 광경은 꼬마들이었다.”고 한 당 활동가는 썼다. “굶주림은 아이들의 얼굴에서 어린아이의 자취를 깡그리 앗아갔고 그들은 고통받는 괴물을 닮아갔다. 두 눈에만 아이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가는 곳마다 우리는 남자와 여자가 엎드려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얼굴과 배는 부풀어 오르고 두 눈은 멍했다.”

» 부랑아의 작별. <북폴리오> 제공
부랑아의 작별 = 1921년 볼가 강 유역에서 끔찍한 기근이 발생했다. 신생 소련과 교역한 미국인 공업자본가 아먼드 해머는 “팔다리가 막대기처럼 시들고 풀을 뜯어 먹어 배가 끔찍하게 부풀어 오른 아이들”에 대해 기록했다. 미국의 원조에도 불구하고―볼셰비키는 그 후 되풀이된 대규모 기아 사태에서와는 달리 이 기근을 부인하지 않았다―수백만 명이 아사했다. 탐보프 주에서 볼셰비키 통치에 맞서 궐기한 농민들이 무더기로 총살당했다.

» 블라소프와 동지들. <북폴리오> 제공
블라소프와 동지들 = 블라소프와 동지들은 1946년 8월 1일 루뱐카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제일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블라소프다. 그와 함께 11명이 교수되었다. 이 사진은 스탈린과 고위 지휘부를 위해 특별히 찍은 것이다. 이 사진은 루뱐카에서 행해진 교수형과 관련해 유일하게 알려진 사진이며 블라소프의 KGB 파일에서 나왔다. 전쟁이 끝난 뒤 독일 협력자들 수천 명이 소련으로 송환되어 총살당했다. 1941년의 키예프 포위와 모스크바 전투의 영웅이었던 블라소프만이 스탈린의 관심을 끌었다.

» 모스크바에서 장보기. 사진/가브릴로프. <북폴리오> 제공
모스크바에서 장보기 = 1970년대 중반 사람들은 소도시에서는 구할 수 없는 식품과 옷가지를 사기 위해 소련 전역에서 모스크바를 비롯한 대도시로 몰려들었다. 열차가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보조금 덕분에 비행기표가 엄청나게 저렴해 비행기도 주부와 물건으로 미어터진 가방으로 꽉 찼다.

» 빵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진/B. 미할료프킨. <북폴리오> 제공
빵을 기다리는 사람들 = 1980년대 초. 사진에서 마을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마을 생활은 야만적이었던 집단화와 숙청에 대한 기억 때문에 여전히 왜곡되어 있었다. 밀고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공동체 의식이 파괴되었다. 농업은 집단농장으로 인해 여전히 망가진 상태였다. 차르 시대 곡물 수출국이었던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가 이제는 자급자족이 불가능하고 충분한 빵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과 캐나다, 아르헨티나에서 수입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 공산주의의 몰락 1991년 8월 공산주의 쿠데타가 실패한 뒤 잘려나간 마르크스와 레닌의 두상. 사진/G. 보드로프. <북폴리오> 제공

07. 0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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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레비나스에 관한 페이퍼를 쓴 바 있는데, 내용을 간추려서 마이리스트에 올려두기로 한다. 레비나스 철학에 처음 입문하시려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9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레비나스 평전
마리 안느 레스쿠레 지음, 변광배.김모세 옮김 / 살림 / 2006년 6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2006년 08월 05일에 저장
품절
레비나스 탄생 100주년 기념하는 평전으로서 기대에 값한다. 일단 부피가 신뢰감을 주는 책. 레비나스의 삶과 철학에 입문하고자 하는 이라면 가장 먼저 손에 들어야 할 필독서.
사랑의 지혜
알렝 핑켈크로트 지음, 권유현 옮김 / 동문선 / 1998년 7월
6,000원 → 5,400원(10%할인) / 마일리지 300원(5% 적립)
2006년 03월 10일에 저장
절판
레비나스 철학의 핵심은 '지혜에 대한 사랑'(필로소피아)로서의 철학을 '사랑의 지혜'로 전도시키는 것이다. '존재자에서 존재로'의 전환(하이데거)를 '존재에서 존재자로' 재전도시키는 것과 같은 것. 핑켈크로트의 이 에세이는 이러한 전환의 의미와 의의를 가장 쉬우면서도 유려하게 짚어주고 있다. 그의 '베스트' 에세이. 참고로, 레비나스 관련서들은 모두 이보다 어렵다.
현대 사상가들과의 대화
리처드 커니 지음, 전예완 외 옮김 / 한나래 / 1998년 7월
15,000원 → 15,000원(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06년 03월 10일에 저장
절판
레비나스와 리처드 커니와의 대담은 레비나스 철학(윤리학) 전반에 대한 유익한 조감도이다. 번역 또한 무난하며(한두 군데를 제외하면) 부분적으론 뛰어나다. 약간의 배경지식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 정도는 대담을 반복해서 읽을 정도의 '흥미'를 갖고 있다면 문제되지 않겠다. 이 대담 정도를 이해할 수 있다면 레비나스에 대해서 더이상 '문외한'은 아니다.
윤리와 무한
엠마누엘 레비나스 지음, 양명수 옮김 / 다산글방 / 2000년 7월
6,000원 → 6,000원(0%할인) / 마일리지 180원(3% 적립)
2006년 03월 10일에 저장
품절
레비나스의 또다른 대담. 필립 네모는 레비나스 철학을 연대기적으로 짚어가면서 필요한 대목들에 대한 레비나스의 해명을 유도한다. 리처드 커니와의 대담과 보완적으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 가독성이 좋은 편이지만 군데군데 부정확한 대목들이 있는 게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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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krad 2006-04-08 09:02   좋아요 0 | URL
레비나스에 대해 로쟈님이 소개해 주신 책들 중에 김연숙 선생의 '레비나스 타자 윤리학'은
빠져 있던데요. 우리 연구자에 의한 글로 의미가 있을 같은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

로쟈 2006-08-05 22:17   좋아요 0 | URL
몇 권의 책이 빠져 있긴 합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로는 제가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는 것이고(책은 갖고 있습니다만), 학위논문인지라 일반 독자들로선 <타인이 얼굴> 정도로 충분하지 않을까란 판단에서입니다. '전문서적'으로 분류한 것인데, 물론 이 분류는 임의적이긴 합니다...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읽기 위한 여정에서의 몇 가지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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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우정의 역사- 발터 벤야민을 추억하며
게르숌 숄렘 지음, 최성만 옮김 / 한길사 / 2002년 3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05년 08월 22일에 저장
품절
발터 벤야민과 가장 절친한 교우관계를 유지했던 숄렘의 생생한 증언. 벤야민을 '추억'하기 위해서라면 가장 먼저 펼쳐볼 만하다.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밑배경을 읽을 수 있다.
맑스주의의 향연- 컬리지언총서 22
마샬 버먼 지음, 문명식 옮김 / 이후 / 2001년 9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05년 08월 22일에 저장
품절
12장이 '도시의 천사' 벤야민에게 할애돼 있다. 비록 최상의 맑스주의자는 아닐는지 모르겠지만, 버먼은 맑스주의자들에 대한 최고의 '해설가' 중 한 사람이다. 벤야민에 대한 글(서평) 역시 유려하면서도 핵심을 찌른다.
매혹의 도시, 맑스주의를 만나다
앤디 메리필드 지음, 남청수.김성희.최남도 옮김 / 이후 / 2005년 7월
17,000원 → 15,300원(10%할인) / 마일리지 850원(5% 적립)
2005년 08월 22일에 저장
품절
3장이 최고의 도시맑스주의(Metromarxim)의 이론가 벤야민에게 할애돼 있다. 비록 신뢰할 수 없는 번역이지만, 벤야민의 '나폴리'에 관한 해설이나 '세속적 계몽'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설명은 아주 유익하다.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
그램 질로크 지음, 노명우 옮김 / 효형출판 / 2005년 3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2005년 08월 22일에 저장
품절
'벤야민과 도시'란 주제에 대한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친절한 안내서(번역은 친절하지 않지만). 수잔 벅 모스의 책보다 나중에 씌어졌지만, 먼저 읽기를 추천한다. 서론과 결론을 먼저 읽고 본문을 읽는 게 더 유용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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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teny 2006-02-05 08:46   좋아요 0 | URL
아아.. 정말 요긴한 로드맵입니다! +_+

앞으로의 공부에 요긴하게 이용하겠습니다... 새삼 경의를 표합니다.
 

최근 박노자의 신간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한겨레출판, 2007)가 출간되었고, 이 책은 구입 예정도서 목록에 올라가 있다. 대개는 한겨레21에 연재된 칼럼들이 아닌가 한다. 가장 최근에 한겨레21에 게재된 그의 칼럼을 옮겨놓는다. 한국 교회에 대한 비판이어서이다(나는 그의 교육론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종교론에는 대부분 공감한다. 그에 대한 정리는 http://www.aladin.co.kr/blog/mylibrary/wmypaper.aspx?PaperId=862545). 가까운 가족들이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태신자'인 내가 대놓고 교회비판을 늘어놓을 수는 없고 다만 이런 믿음직한 칼럼들을 즐겨 읽음으로써 '내적 무신앙'을 다질 따름이다.

한겨레21(07. 05. 23) 교회, 장기적 보수화의 일등공신

거의 한 세기 전인 1906년에, 자칭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독일의 저명한 경제사학자 좀바르트(Werner Sombart·1863∼1941)는, <미국에 왜 사회주의가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책을 펴낸 적이 있었다. 노동자 사이에서 이미 헤게모니를 확립한 독일 사민당과 정반대로 미국 사회주의자들이 주변적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좀바르트가 문제의식을 갖게 된 출발점이었다. 좀바르트는 노동계급의 권리투쟁에 자극을 줄 수 있는 봉건적 잔재의 부재나 비교적 높은 임금 수준, ‘기회 균등’ 신화의 설득력 등을 들어 미국의 ‘예외성’을 설파했다. 이후 미국에서 좌파 운동이 지지부진한 이유를 고민해본 진보적 지식인들은 인종들 사이에 위계서열을 두어 교묘한 분리통치를 해온 미국 지배층의 사회통제 정책과 ‘적색 공포’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그리고 늘 지적되는 또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일부 정통 가톨릭 국가들을 논외로 한다면 어떤 산업사회보다도 미국인들의 의식 세계에 종교가 강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대체로 미국 성인의 약 40∼44%가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고, 약 73% 정도는 신의 존재를 믿는다. 교회에 출석하는 이들이 성인의 3∼4%에 불과한 스칸디나비아 같은 지역과는 천양지차다. 빈곤과 같은 사회적 문제들을 ‘개인 문제’로 환원하고 권리투쟁 대신에 신앙적인 ‘개인적 해결’ 방향을 제시하는 교회가 사회적 헤게모니를 장악한다면 과연 ‘모두를 위한 해결’을 모색하는 좌파적 담론이 쉽게 확산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교회의 영향력이 사회 전체의 보수화를 가져온다는 것은 미국만의 상황인가? 한국의 경우에도 1980년대 후반까지 자본주의에 대한 본격적 문제 제기의 결여를, 단지 ‘위로부터의 억압’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한국 평민들을 ‘시키는 대로 일하는’ 순치된 ‘산업 전사’로 만든 것은 학교에서의 체벌부터 군대에서의 ‘얼차려’까지 병영국가의 폭력적 ‘국민화’ 과정, 그리고 중앙정보부의 고문실로 상징되는 ‘백색 공포’였다. 그런데 박정희 체제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싱가포르에서조차도 1970년대에 노동자 1천 명당 쟁의로 인한 노동 손실 일수가 한국(연평균 약 4천 일)에 비해서 두 배나 높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1980년대 후반까지 한국 노동자들은 다른 권위주의 국가의 노동자에 비해서는 물론, 일제 강점기의 노동자들에 비해서도 매우 순치된 모습을 보였다. 예컨대 노동자 수가 식민지 시절에 비해 몇 배로 늘어난데다 정치적 분위기까지 자유로웠던 1960년에 파업 참가자 수(6만4천 명)는, 일제의 탄압이 자행됐던 1923년 노동쟁의 참가 인원(6만1천 명)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와 같은 순치 효과를, 박정희 시대를 ‘대중 독재’로 개념화하는 일군의 연구자들처럼 애국주의적 ‘이념적 동원’으로만 이해할 수 있을까?

물론 탄압과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의 철저한 주입이 노동자들 사이에 계급의식이 형성되는 것을 원천 봉쇄했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자신의 계급적 존재를 깨닫지 못하는 ‘국민화된’ 노동자의 탄생을 이끌었던 주역은 반공주의, 성공 이데올로기, 자본주의와 친미주의의 기수 노릇을 해온 이른바 ‘대형 교회’들이 아니었나 싶다(*이건 거꾸로 한국교회의 자화자찬이 될 만하겠다!). 어떤 측면에서는 대형 교회들이 보급했던 신앙 형태야말로 1950∼80년대 무수한 민초들의 진정한 이데올로기였기 때문이다.

해방 당시 겨우 조선인의 2∼3%에 불과하고 주로 서북 등 일부 지역에서만 밀집해 거주했던 기독교인들은 과연 어떻게 해서 오늘날처럼 총인구의 약 24%를 차지하게 됐는가? 물론 6·25 전쟁 이후의 폐허 속에서 ‘근대·문명’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던데다 미국의 구호물자를 재분배할 능력을 갖추고 ‘기독교인 대통령’ 이승만을 그 ‘힘’의 표징으로 자랑할 수 있었던 교회는 이미 제1공화국 시절에 남한 사회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1950년대에 교회의 성장은 빠르지 않았다. 개신교의 경우 1950년 50만 명 정도였던 신도 수가 1960년에 70만 명 정도까지 늘어났을 뿐이다.

기독교의 ‘붐’은 고속성장과 대량이농의 시대인 1960∼80년대에 일어났다. 개신교의 경우 교인 수가 1980년 600만 명, 1990년 약 800만 명에 이르러 한국 도회지의 야경은 네온 빛이 번쩍이는 ‘십자가의 숲’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교회는 해체된 농촌 공동체를 대체해 이농 인구를 통합하면서 국가가 제공하지 못하던 일부 복지 서비스(자녀 장학금, 직업 알선 등)를 제공해주는 사실상의 ‘국가 안의 또 하나의 국가’로서 위치를 굳혔다.

물론 교회가 열악한 생활에 지친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의 만성적인 불안을 약간이나마 덜어주었던 것은 긍정적 구실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문제는, 그 시대의 경제가 몇 개 재벌들을 위주로 해서 성장했듯이, 그 성장에 편승한 교회의 성장도 ‘교계의 재벌’이라고 할 대형 교회들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다. 예컨대 이미 1980년에 대표적 ‘초거대형 교회’라 할 순복음교회가 10만 교인을 기록해 단일 교회로는 ‘세계 최고의 규모’를 자랑했다. 이 ‘종교 재벌’들이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그 귀에 무엇을 속삭여온 것인가?

‘민족의 중흥’과 보조를 맞춘 ‘민족의 복음화’를 외치고, ‘기독교인들의 총화안보와 반공궐기’를 이끌고 ‘해방신학, 혁명신학, 흑인신학’을 ‘악마적 공산주의의 앞잡이’로 봤던 한국대학생선교회의 김준곤 목사나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 등이 유신 독재를 열성적으로 지지하면서 반공 담론 대중화의 일익을 맡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그들이 외쳤던 ‘상징적 반공국가 만들기 위한 분골쇄신’(‘기독교와 공산주의 갈림길에서’, 김준곤, <크리스챤신문>, 1975년 7월26일)과 같은 끔찍한 전체주의적 언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초고속으로 늘어나는 교인들이, 주일마다 교회에 출석하고, 정기적으로 헌금을 내고 ‘평신도 합숙전도훈련’이니 ‘철야기도’니 특정 도시의 ‘성시화’를 위한 집회니 하는 각종 대형 행사에 동원되면서 권력에의 복종으로서 ‘규율적 근대’를 교회를 통해 익히게 됐다. 그런데 예컨대 1992년에 한국의 가장 독자적인 신학자이었던 변선환 목사를 감리교 교단에서 출교하는 데 앞장서면서 “자유주의 신학이 사탄의 도구다!”라고 외쳤던 김홍도 목사의 모습에서 그 신도들이 주체적 개체들 위주의 ‘해방으로서 근대’를 발견할 수 있었겠는가? 교련 수업과 ‘얼차려’의 군사주의 못지않게 극우적 교회의 ‘유일사상’은 민중 사이의 비판적 이성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었다.

지금부터 한국이 장기적 보수화에 들어간다면 그 일등공신 중 하나는 바로 여태까지 ‘한국적 파시즘’의 버팀목 구실을 해온 대형 교회들일 것이다. 이 섬뜩한 시나리오를 막기 위해 무엇보다 기독교 신도 사이에 사랑과 평화의 화신으로서, 일종의 ‘원시 무정부 공산주의자’로서 예수재발견이 절실할 것이다.(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참고 문헌

1. “군사정권기 한국교회와 국가권력: 정교유착과 과거사 청산 의제를 중심으로”장규식,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24호, 2006, 103∼133쪽
2. “박정희 체제의 지배담론과 대중의 국민화”황병주, 임지현·김용우 엮음, <대중독재> 제1권, 책세상, 2004, 475∼517쪽
3. <변선환 신학 새로 보기> 대한기독교서회, 2005
4. 〈American Fascists: The Christian Right and the War On America〉 Chris Hedges, Free Press, 2007

07. 0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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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5-28 05:27   좋아요 0 | URL
최근 돌아가신 권정생 선생도 -교회에 다니기는 하셨지만- 원시 무정부 공산주의자로서의 예수(정확히 그런 표현이 옮바른지는 모르겠으나.) 를 그리고 계셨던 듯 합니다.대게 기독교와 예수의 본질을 짚고 실천하는-지극히 소수겠지만 - 사람들은 그런 성향이 있더군요,^^ 오늘은 아침에 일찍 출근했어요.5시...^^
자..이제 바닷바람 좀 맞으러 가 볼까...좋은 아침,좋은 한 주 되세요.

로쟈 2007-05-28 08:41   좋아요 0 | URL
한국형 대형교회들의 번성이 기이한 현상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건 기독교와도 무관한 '한국적' 현상이 아닐까 싶어요. 근데, 바닷가로 출근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