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문예이론가이자 철학자 미하일 바흐친(바흐찐)의 <밀의 미학>(길, 2007)과 미국의 바흐친 연구자인 게리 솔 모슨과 캐릴 에머슨의 <바흐친의 산문학>(책세상, 2006)은 나도 책소개를 몇 차례 한 적이 있지만(http://blog.aladin.co.kr/mramor/910803) 이 분야에서 근래에 출간된 가장 무게 있는 번역서들이다. 연세대학원신문에 이 두 번역서에 대한 본격적인 리뷰('바흐찐 소설론의 재검토'가 부제이다)가 게재되었기에 옮겨놓는다. 필자는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아카넷, 2001)의 공역자이기도 한 최건영 교수이다(기사 말미에도 언급돼 있지만 필자의 책임편집하에 15권의 바흐친 전집이 하반기부터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기사는 학술저널 담비에서 옮겨왔다.

연세대학원신문(07. 06. 04) 시학(詩學)과 맞장 뜨는 산문학(散文學)의 출현

바흐찐 저작 출판과 재출판 붐
구간들이 대부분 절판된 상태에서 한동안 소개가 뜸했던 미하일 바흐찐 관련 저작들이 다시 번역 출판 붐을 맞게 된 것일까.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온 바흐찐의 소설론 모음집 『장편소설과 민중언어』는 쇄를 거듭하여 인문학분야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고,『언어와 이데올로기』(푸른사상, 2005)와『도스또예프스끼 창작론』(중앙대출판부, 2003)이 새롭게 재출판 됐다. 전자는 1929년 러시아에서 나온 ‘마르크스주의와 언어철학’이 원제목이고, 후자는 ‘도스또옙스끼 시학의 문제들’이라는 제목으로 1963년 출판된 바흐찐 도스또옙스끼론의 개정증보판이다. 라블레론(『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아카넷, 2001)과 이번에 나온 『말의 미학』을 포함하면 현재 다섯 권의 한국어판 바흐찐 단행본이 유통 중인 셈이다.

『말의 미학』은 1919년부터 1970년대까지 바흐찐의 전체 시기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논문집이다. 기존의 소설론과 작가론(도스또옙스끼론과 라블레론)을 제외한 바흐찐의 중요 저작들을 드디어 우리말로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책에는 바흐찐 초기의 저작 중 「행위의 철학」과「내용 소재 형식론」등은 빠져 있지만 「작가와 주인공」이라는 미완의 대작이 포함돼있다. 구체적 시공간으로 한정된, 즉 ‘신체화된 정신’이라는 측면의 인격에 관한 논의를 통해 사실상 부정신학적 종교론까지 촉발시키는 이 문제작은 비록 미완의 초고로만 남아 있지만, 기존의 대화성, 폴리포니 등으로 요약되는 바흐찐의 핵심사상을 종교적 인격론을 중심으로 재검토해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하기도 하는 문제작이다.

바흐찐 생존 시 본인 명의의 단행본으로는 도스또옙스끼론(1929, 1963)과 라블레론(1965)만이 출판되었고, 그의 사후 보차로프와 꼬쥐노프라는 두 학자가 두 권의 논문 모음집을 편집하여 각각 1975년 1979년에 출간한 바 있다. 『말의 미학』의 원저는 이 두 권 중 1979년에 나온 논문집으로(역자들은 이 책의 1986년판을 사용한 듯하다), 원제목은 ‘언어(예술)적 창조의 미학’이다. 여기에 실린 가장 길고 중요한 논문「작가와 주인공」(필자의 번역으로는 ‘작자와 작중인물’)은 1920년대 초에 집필된 것이다.

이 육필원고는 1979년 논문집이 출간된 이후 일부 단어들이 추가로 해독되고, 누락된 앞 장이 별도로 공개되어, 러시아어판 전집에는 최종적으로 바로잡은 ‘결정판’이 수록되었는데 이번 한국어판에는 그러한 보정 내용이 반영되어 있지 않고, 역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해설에서도 밝혀주지 못하고 있다. 추가된 앞 장은 ‘서정시에서의 작자와 작중인물’에 관한 매우 중요한 내용인데, 현재로서는 영어판으로 보완해서 읽는 수밖에 없다. 영어판에는 그 논문 맨 뒤에 별도 항목으로 이 부분이 추가되어 있다.

초기의 대작 「작자와 작중인물」
문예학의 이론, 혹은 작품과 창작에 관한 미학적인 관찰이라는 측면에서 「작자와 작중인물」이 갖는 흥미로운 점은, 작품을 ‘작중인물과 작자’라고 하는 각각 고유의 가치를 지닌 두 능동성의 만남으로, 일종의 미적 사건으로 파악하는 그 접근 방법이다. 바로 그 관점에서 바흐찐은 당시 미학의 지배적인 두 조류를 비판하고 있다. 미적 활동이라는 것을, 대상을 향한 감정이입 혹은 공통체험으로 해석하는 감정이입의 이론이 그 하나이고, 포르말리즘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되는 소재주의 미학이론이 다른 하나인데, 문제는 이 두 가지 경향 모두 미적 가치를 한 개의 의식에 의해 내재적으로 실현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라는 것이다.

감정이입의 이론에서는 결국 작자의 부재가, 소재주의 미학에서는 주인공의 부재가 지적되어야 하는데, 이는 두 가지 경우 모두 미적 사건이라는 개념 자체가 설정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바로 최근까지도 문예학만이 아니라 인문학 전반에 나타났던 문제들의 기저에 암초와 같이 상존하고 있었다. 사실 구조주의든 기호론적인 접근이든 할 것 없이 그 연구대상이 텍스트인 이상 이제는, 그 텍스트라는 장이 결국 ‘나와 타자’라는, 결코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단 한번만 존재하는 사건(가치, 의미)의 관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함을 ‘바흐찐 이후(After Bakhtin)’의 연구자나 작가나 모두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바흐찐의 1950년대 ~ 1970년대 저작은 바로 그러한 문제를 아주 구체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저작을 90년대 전후해서야 접하게 되었고, 그러한 문제의식의 출발점인 이 논문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사실상 지금 막 접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상세한 편자 해제가 담긴 러시아어 원서 결정판이 최근에야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근대의, 단일 의식에 근거한 모놀로그적 인식의 원리를 비판하면서, 대화의 원리를 내세우고 작품을 작자와 작중인물의 능동성이 만나는 장으로 파악하는 방법론은 이후 바흐찐 전 저작을 통해 여러 형태로 확장, 변주된다. 「생활의 언설과 시의 언설」(1926)이나 『프로이트주의』(1927)에서는, 언설이 ‘발화의 장’의 문제라는 차원에서 검토되고, 『마르크스주의와 언어철학』(1929)에서는 악센트, 인토네이션, 화법(타자의 말)의 문제들이 원리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1929년 나온 도스또옙스끼론 초판에서는 바로 이 언설(言說)의 개념, 목소리의 문제를 도입하면서, 전권을 쥐고 있는 의식들의 대화가 만들어내는 폴리포니적 소설로서의 작품세계의 본질이 그려지게 된다. 이어 30년대의 소설론, 시공간론으로 가면 서술자, 타자의 말, 장르의 문제가 재검토되고, 40년대의 라블레론으로 가면 그로테스크, 카니발적 세계의 문제가 문명론적, 문화론적 스케일로 전개된다. 이렇게 바흐찐은 평생 전 저작을 통해, 현실세계를 향해 열려있는 이데올로기적 기호의 차원에서, 근대의 독백적 세계인식을 비판하는 역동적인 논의를 하게 되는데, 이 모든 문제의식의 출발점이 바로 이 논문이고 이 논문에 이 모든 문제의식들이 예고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끝으로 이번 한국어판에서는 누락된, 이 논문의 맨 앞에 오는 ‘서정시에서의 작자와 작중인물’에 대해 몇 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이 글은 미래의 소설이론가 바흐찐이 서정시를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논하는 초기의 희귀한 단편 초고이다. 서정시에서는 작자의 영역과 주인공의 영역이 융합하게 되고, 작자는 주인공의 모든 것을 간파하고 있기에 주인공은 완전히 무력한 존재가 되고, 따라서 주인공은 자기 자신하고만 관계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거나, 고독하고 타자에게는 의식되지 않고 있는 듯한 외관을 표출한다는 지적은, 서정시에 관한 우리의 통념을 완전히 역전시키는 면이 있다 하겠다.



바흐찐의 산문학

한편 영어권을 대표하는 러시아문학자 모슨과 에머슨의 1990년 연구서『바흐친의 산문학』의 한국어 번역은 기념비적인 연구번역으로 평가할 만하다. 홀퀴스트와 클락에 의한 전기 형식의 연구서와 함께 바흐찐 연구의 대표적인 저서로 널리 읽히고 있는 이 책은 우선 그 제목부터가 도전적이다. 언어예술 작품을 포함하는 인류의 모든 예술형식론을 말할 때 마치 대명사와 같이 사용되고 있는 ‘시학’이라는 용어와는 별도로, 일상의 산문적 언어를 소재로하는 소설이라는 장르는 새로운 방법론에 의한 새로운 명칭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 동안 바흐찐의 소설론 출현 이후, 소설적 구축학, 언설(담론)의 유형학, 소설적 철학 등 여러 형태로 불리던 것을 두루 수렴할 수 있는 대안적 가능성도 생각하게 하는 용어라 하겠다.

바흐찐 자신이 소설을 논하면서 ‘시학’이라는 용어를 ‘불가피’ 사용했던 사실을 생각해볼 때, 그리고 바흐찐을 응용해서 산문의 이론을 구축한 또도로프 같은 연구자가 ‘산문의 시학’이라는 표현을 ‘근사하게’ 사용한 것을 떠올려 볼 때, ‘산문학’이라는 용어는 매우 대담한 제안이라 하겠다. 게리 모슨이 이미 80년대 말부터 사용한 이 용어는 사실 그의 19세기 러시아 소설 연구에서 도출된 것이다. 이 용어는 단순히 산문에 관한 접근 방법론적 측면만이 아니고 문화적 세계관을 동시에 표현하는 개념으로, 그가 인문학과 똘스또이의 소설(특히「안나 까레니나」!)을 논하는 과정에서 언급하기 시작한 개념이다.

바흐찐이나 모슨만의 의견은 아니겠지만 특히 그 두 학자에게 19세기 러시아 문학은 매우 커다란 소설적 우주라 하겠다. 바흐찐이 뿌슈낀이라는 ‘소설’의 행간을 읽으며 살았던 학자라고 한다면, 모슨은 바로 그 바흐찐의 행간을 읽으면서 도스또옙스끼, 똘스또이, 그리고 체홉을 통해 자신의 ‘산문학’ 논의를 도출한 학자라고, 지난 수년간 19세기 러시아 소설을 강의하면서 필자에게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 소설 연구의 ‘악동’이라고 불러야 할 모슨의 생각은, 그의 전 저작을 두루 살펴볼 때 19세기 러시아 사상사, 러시아 정교의 종교철학, 그리고 상기의 세 소설가를 배경으로 형성된 것 같다. 과학이 인간을 설명할 수 있으며, 과학적 논리와 같이 역사의 법칙이 설명 가능하다는 사상이 19세기 러시아 지식인과 작가들의 논쟁사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밝히면서, 바로 그러한 러시아 사상사의 주류에 도스또옙스끼, 똘스또이, 체홉이 어떠한 소설과 어떠한 세계관으로 도전하고, 반박하고, 전복시켰는가를 규명하는 것이 모슨 작업의 핵심인 듯하다. 바로 현재 이 순간의 무게를 논하기 위해 「전쟁과 평화」가 존재하고, 결국 시간은 닫혀 있는 것인가 열려 있는 것인가에 관한 논쟁으로 19세기 러시아 지식인과 작가의 대립을 요약한다.

우리의 관심이 인문학이든 소설연구든 영화나 기호학이든 상관없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라는 역사성과 그 현재적 위력에 ‘맞장 뜨는’ 장면을 맛보는 것, 바로 그 하나만으로도 이 책의 독파에 도전할 가치가 있다. 소설이라고 하는 장르가 어쩌면 인류역사의 모든 예술적 장르와도 다른 새로운 세계관과 세계감각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거창한 문제의식 없이, 그저 왜 우리는 소설이라는 작은 언설에 이끌리는 것일까 하는 의문에서 이 책을 집어 든다면, 분명 모슨과 에머슨의 바흐찐 독해가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가 알게 될 것이다. 국문학도들의 번역으로 그 용어 선택이나 해석에 논쟁적인 부분이 있다고 할지라도, 가령 금년 말부터 출간이 시작되는 한국어판 바흐찐 전집의 책임편집을 맡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전집의 번역팀 모든 구성원에 커다란 타자가 되는, 연구번역의 모범이고 역작이라고 확신한다.(최건영/ 외국어문학부 교수)                                   

07. 06. 22.

P.S. 본문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만 '산문학'이란 말은 모슨의 독창적인 창안이다. 이 용어가 갖고 있는 '대담성'을 좀더 밀어붙이자면, 나는 문예이론의 패러다임이 '시학 vs 산문학'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그리고 이건 세계관의 문제이기도 하다). 무늬만 소설인(그래서 실상은 시에 더 가까운) 소설들이 주변에 많아지면서 '산문학'에 대한 이해와 음미가 우리에겐 좀더 필요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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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아버지가 무너졌다'"라는 동향 기사를 옮겨놓는다(하지만 '아버지의 이름'은 언제나 귀환한다! 아버지=신이 없다면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기사의 내용은 이미 지적되어온 것들이어서 새롭지 않지만 2학기 내내 한 독서모임에서 '아버지'란 주제로 <오이디푸스왕>부터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까지 강의하도록 예정돼 있기 때문에 자료로서 챙겨둔다. 그러고보니 여름호 <문예중앙>의 특집이 '아비들의 변천사'이다. 강의준비하느라 손에 물 묻히지 않아도 되겠다...

동아일보(07. 06. 22) "한국문학, ‘아버지’가 무너졌다"

한때는 금기이고 규율이었으며, 그래서 저항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던 ‘아버지’. 한국문학사에서 ‘아버지’는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아버지가 요즘 젊은 작가들에겐 다른 의미다. 김애란(27) 씨가 ‘아버지가 없는 아이라고 해서 특별히 나쁠 것도 다를 것도 없는 일상이었다’(‘달려라 아비’)고 썼듯, 최근 한국소설에서 ‘아버지’의 무게는 확 줄었다.



평론가 손정수 씨가 계간 문예중앙 여름호에 기고한 ‘오이디푸스 극장’에 따르면 우리 문학이 갖고 있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2000년대 이후 새롭게 바뀐다. 서정주 시인은은 ‘애비는 종이었다’(‘자화상’에서)고 식민지 시대의 정체성 문제를 드러냈고, 이문열 씨의 ‘남로당 아버지’는 분단 이데올로기 시대를 대표했으며, 1990년대 장정일 씨가 장편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서 ‘신버지’(신격화한 아버지)를 무너뜨리려고 온 힘을 다했던 게 그간의 ‘아버지들의 변천사’다.

평론가 서경석 씨는 “아버지의 존재를 둘러싼 서사가 우리 소설에 절대적인 우위를 점해 왔다”고 말한다. 가부장으로서 봉건시대를 지나 근대 이후 그 위엄이 많이 약화되긴 했지만 아버지의 억압은 여전히 존재했던 게 사실. 그렇지만 1990년대 후반 이후의 우리 사회에서 아버지는 억압적 존재가 아니다. 이를 두고 김정현 씨는 소설 ‘아버지’(1996년)에서 가장으로서의 위상이 추락하는 아버지를 안타깝게 여기기도 했지만, 요즘 소설에선 그런 안타까움마저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아버지’의 자리에 다른 것들을 놓는 게 젊은 작가들의 경향이다. 아버지가 현실의 무게를 가지고 삶을 끌어당기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돼 버리는 것이다. 한유주(25) 씨의 단편 ‘K에게’에서 화자는 자신의 존재와 연관된 질문이 떠오를 때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닌 ‘백과사전’을 찾는다. 김애란 씨의 ‘달려라 아비’에서 처음부터 아버지가 없는 화자는 그 문제를 고민하는 대신 ‘반짝이는 야광바지를 입고 달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이문열 씨가 소설 ‘영웅시대’ 등에서 부재하는 남로당 아버지를 커다란 상처이자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 데 대해 김애란 씨는 “아버지가 나에게 금기는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자주 언급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해 버린다.

심지어 박민규(39) 씨는 단편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에서 사라져 버린 아버지가 기린이 돼서 돌아온다는 극단적 설정을 내놓는다. ‘아버지’가 이젠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의미 없는 동물 같은 대상’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박 씨는 한발 더 나아가 단편 ‘깊’에서 아버지가 아예 없는 미래사회를 그려놓았다.

새로운 소설은 달라진 사회 현실을 반영한다. 아버지가 위엄 있는 존재가 아니라 친구 같은 대상이 되면서, 소설에서도 이제 삶의 의미를 증명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손정수 씨는 “새로운 형태의 오이디푸스 구조들은 ‘아버지의 이름’이 약화된 현실로부터 생산된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현실을 드러내는 소설적 징후들”이라고 설명했다.(김지영 기자)

07. 0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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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으며 신간들을 검색해보다가 두 권의 책이 관심을 끌기에 주문을 넣었다. 테어도르 데일림플의 <브레이크 없는 문화: 문화엘리트와 대중>(이카루스미디어, 2007)과 주디스 허먼의 <트라우마: 가정폭력에서 정치적 테러까지>(플래닛, 2007)가 그 두 권의 책이다. 공통점은 둘 다 저자가 의학전공자라는 것. 그리고 두 권 다 관심을 끄는 신생출판사의 책이라는 것(배송이 늦어지는 건 그런 이유에서인가?).

 

 

 

 

먼저, <브레이크 없는 문화>는 "의사이자 작가인 테어도르 데일림플의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적 에세이"라는데, 저자는 생소하다. 하지만 목차가 흥미를 끈다. 크게 2부로 나뉘어져 있는 책의 "전반부에서는 문학과 예술에선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와 셰익스피어, 마르크스, 투르게네프, D. H. 로렌스, 버지니아 울프 등의 문학 작품들과 제임스 길레이, 메리 카사트, 뒤샹의 미술작품들 그리고 현대의 센세이셔널리즘에 대한 성찰을 통해 퇴락해가는 현대 문화의 일반적인 특징을 설명"하고, "후반부에서는 정치와 사회에 대한 에세이가 주를 이루는데 현대국가에서 점차 비대해지고 있는 관료주의를 비판하며 복지라는 명목으로 국민을 스스로의 삶을 개척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진 인간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노예로 만들고 있는 현상을 설명한다"고 한다.

원제는 <우리시대의 문화, 거기서 뭐가 남을까?(Our culture, What's left of it)>(2005) 정도로 보이며, 논조로 보아 '우리시대의 쓰레기 문화들'에 대한 분노/분통을 담고 있는 듯하다. "다양한 글들을 통해 지은이는 현대사에서 독재와 권위주의의 폐해에 분노한 우리 사회는 전통에 대한 거부와 센세이셔널리즘을 찬미하며 정작 보존해야 할 권위나 가치관마저 잃어버린 채 대중문화의 비속성과 타락을 찬양하고 고무하기까지 하고 있지는 않는지를 묻는다."로 정리될 수 있는. 가령 '쓰레기, 폭력 그리고 베르사체 그런데 그것이 예술일까?' 같은 절 제목이 이 책의 성격을 집약해주는 듯.

국역본의 부제는 '문화엘리트와 대중'이지만 여기서 '문화엘리트'는 중국의 관리를 뜻하는 '만다린'의 번역이다. 다분히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겠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문학 분야의 저자들을 포함해 사회 제도와 전통에 대한 비평가들은 문명이 적어도 변화만큼이나 보존을 필요로 하며 무절제한 비평주의나 유토피아적 관점을 우선시하는 비평주의는 치명적- 사실 파괴적 - 일 수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말하자면 지식인은 스스로 지적 오만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  

역자는 <나타샤 댄스: 러시아 문화사>(이카루스미디어, 2005)를 우리말로 옮긴 채계병씨이다(고유명사 표기에 약간의 아쉬움을 갖게 되지만 이 만한 분량의 러시아 문화사를 번역해낸 노고는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둘러보니 그가 번역한 책으로 카트린 클레망의 <악마의 창녀>(새물결, 2000)도 나는 갖고 있다(기억엔 1/3쯤 읽었던 듯하다). 그 책의 부제가 '20세기 지식인들은 무엇을 했나'인데, 일종의 지식인 소설로서 보부아르의 <레망다랭>('만다린들'이란 뜻)과 크리스테바의 <사무라이들>의 계보를 잇는 성격의 책이다(이 책들은 모두 절판된 듯하다). 소설의 내용과 무관하게 계열체를 만들어보자면, 지식인들은 만다린이거나 사무라이이거나 창녀 들이다.  

이어서 주디스 허먼의 <트라우마>. 소개에 따르면, "지은이 주디스 허먼은 가정폭력이든 정치적 테러이든 폭력의 메커니즘은 어디에서나 동일하며, 이러한 폭력을 종결짓기 위해서는 인권 운동 같은 정치적이고 공적인 행위의 개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트라우마를 개인적 차원에서만 다루거나 해결하려고 해서는 곤란하다는 주장이겠다.

그래서 덧붙여진 것이 "'외상을 경험한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외상을 경험한 국가 또한 외상을 재경험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를 기억하고, 애도하며 속죄해야 한다'는 이 책의 문장은 그러한 지은이의 생각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는 말이겠고. "때문에, 이 책은 인간이 폭력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얼마나 사악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이겨나가기 위한 가능성을 동시에 열어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10년전인 1997년에 출간됐는데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표현을 빌면 '하나의 이정표'가 될 만하다고. 책을 낸 플래닛에서는 <우울증에 반대한다>(2006)를 작년에 처음 냈었는데, <트라우마>는 그 <우울증>과 나란히 꽂아둘 만하다.

Father Daughter Incest New Edition Cover

한편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듯한 저자 주디스 허먼의 또다른 책으론 <부녀 근친상간(father-daughter incest)>(하버드대출판부, 2000)이 눈에 띈다. 이 또한 '트라우마'감이지만 문학에서는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기도 하여 읽어볼 만하겠다는 생각은 든다. 당장에 나보코프의 <롤리타>만 하더라도 '부녀 근친상간'의 외양을 갖고 있지 않은가. 사실 <죄와 벌>과 <롤티타>에서의 근친상간 모티브에 대해서는 얼마전부터 페이퍼를 쓰려고 짬을 보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7월에는 몇 자 적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07. 06. 22.

P.S. 대저 책만 보면 손가락이 근질거리는 나의 습성은 어떤 트라우마의 소산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브레이크가 좀 필요한 듯싶다(진득하게 책을 읽고 번역을 해야 할 시간에 이러고 있으니 말이다). 이건 어딜 가서 구해야 하나? 감옥에라도 가야 하나? 프리즌 브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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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많은 역사와 생존이 담긴 ‘트라우마’
    from 일다의 블로그 소통 2009-04-25 10:13 
    마음의 고통에 대해서 많이들 이야기합니다. 심리적 어려움에 대한 지식이 전달되면서 누군가는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었을 테고, 누군가는 변화와 회복의 기회를 얻었을 것입니다. 만약 이곳 저곳 몸이 아픈데 왜 아픈지 알지 못한다면 통증 앞에서 참으로 무기력하게 되지요. 마찬가지로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특히나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마음의 고통은 더 깊어질 우려가 있습니다. 심리장애 '아는 것이 힘', 의미가 정확히 사용되어..

어제 읽은 기사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스크랩해둘 만했던 건 우리에겐 아주 먼 북유럽의 작은 나라 아이슬란드의 작은 수도 레이캬비크에 관한 것이다. 얼음땅(아이슬란드) 인구의 3/5인 12만명이 산다는 도시인데(이 나라의 전체인구가 20만쯤이란 얘기다), 인구 규모로 치자며 우리의 지방 소도시 수준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많이 읽었던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한번은 아이슬란드를 특집으로 다루었었는데, 내게 남아있는 아이슬란드의 인상은 그게 거의 전부이다. 작고 춥고 조용한 나라(TV도 8시 이후에는 안 나온다고 했던가). 이번에 사진으로 보니 레이캬비크는 기대에 잘 부응하는 도시이다(아담하고 깨끗하지만 별로 볼 건 없는 도시). 그곳의 사람들도 대부분은 과묵하지 않을까 싶고, 날씨가 잘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좀 지내보고 싶은 도시이다(어느 정도 규모의 도서관과 서점만 있다면 금상첨화이겠다). 그런 욕심도 일단은 '창고'에 넣어둔다.

경향신문(07. 06. 21) [세계의 컬트여행지](23)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

‘레이캬비크, 아이슬란드’면 됐다. ‘나라 이름 대기’도, ‘수도 이름 대기’에서도 ‘레이캬비크, 아이슬란드’를 들이대면 어린이들은 입술을 깨물며 두 손을 들었다. 나스카 땅 그림과 이스터섬의 모하이가 나오는 ‘소년중앙’에도 레이캬비크는 나오지 않았다. 레이캬비크는 사회과부도에만 나왔다. 빨고 있던 사탕 국물을 지도에 떨어뜨리며 레이캬비크, 레이캬비크, 라고 발음하면 입 속의 혀가 복잡하게 꼬였다. 세상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수도. 그것은 세상의 끝처럼 보였다. 지구가 아무리 둥글다 해도, 레이캬비크를 넘어 전진하는 배들은 수직의 절벽으로 추락할 것 같았다.

그 때처럼 코가 빨갛게 짓무르도록 내려다본 비행기 유리창 너머의 아이슬란드는, 황당했다. 땅은 화산재로 때묻은 것처럼 얼룩덜룩했고, 산은 마법사의 모자처럼 끝이 휘어져 있었다. 케플라빅 국제공항에서 레이캬비크 시내까지 가는 동안 단 한 그루의 나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항 바닥에서 건져올린 것처럼 초록색 이끼로 덮인 땅에서는 이따금 김이 솟았다. 아이슬란드 도로교통의 허브, 레이캬비크 버스터미널엔 매표소와 피자를 파는 카페테리아만 있었다. 딱 가평 시외버스터미널만 했다. 여기가 아이슬란드 인구의 5분의 3, 12만명이 살을 붙이고 사는, 세상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수도, 레이캬비크다. 시내까지는 걸어서 20분. 물론 시내 전역을 걸어서 돌아볼 수 있다.

맥도널드와 스타벅스가 없다는 것을 빼면 시내는 평범했다. 집들은 레고 모형에서 집어와 꽂아놓은 것 같았다. 시청이 있고, ‘호수(트요른)’라는 이름의 호수가 있고, 시골 역사 같은 총리 공관이 있었다. 바이킹의 서사시가 ‘사가’ 자료를 모아놓은 박물관, 1940년대에 지은 현대식 교회도 있었다. 표백이라도 한 듯 유난히 밝은 금발의 사람들은 유모차를 끌거나 팔짱을 끼고 거리를 누볐다. 8월인데도 쌀쌀했다. 공항에서 꺼내 입은 점퍼를 결국 아이슬란드를 떠날 때까지 벗지 못했다. 급기야 기념품 가게에서 점퍼 하나를 더 사서 껴입어야 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엔 아이슬란드의 첫 개척자, 잉골퍼 아날순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874년. 그 까마득한 시대에 얼음 바다를 건너 올 사람은 바이킹밖에 없었다. 뭍이 나타나자 아날순은 바이킹 풍습대로 의자 손잡이를 집어 던졌고, 의자가 닿은 곳에 형제와 가족, 10여명의 노예가 정착했다. 거기가 바로 ‘김나는 만(Smoky Bay)’, 레이캬비크였다. 아날순의 동상은 여전히 의자 손잡이에 몸을 기대고 있다.

뭍을 만나면 배를 머리에 쓰고 전진했다는 바이킹의 후예들은 용감했다. ‘사가’에는 붉은 머리 에릭슨이 대서양을 건너 ‘빈랜드’에 도착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학자들은 빈랜드를 아메리카 대륙이라고 보고 있다. 기록이 불충분해 ‘우길’ 수는 없지만, 콜럼버스보다 500여년 먼저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이다. 용감한 에릭슨은 지금도 홀그림 교회 앞에 동상으로 서 있다. ‘빈랜드’로 추정되는 미국에서 만들어 보낸 동상이다. 홀그림 교회의 종탑에 오르면 에릭슨이 항해한 대서양이 보인다.

홀그림 교회 광장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레이캬비크는 아이슬란드 여행의 관문이다. 관광객들은 레이캬비크를 기점으로 ‘골든서클’ 투어를 한다. 갑자기 물줄기를 뿜어내는 간헐천 게이시르, 폭포 굴포스, 아이슬란드 의회가 태동한 싱비르를 둘러본다. 4륜구동 차량을 빌려 여름에만 길이 열리는 내륙을 가로지르고, 배낭을 짊어지고 일주일씩 하이킹을 하기도 한다.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엔 ‘블루라군’에 들러 몸을 푼다. 빙하 녹은 물과 바닷물을 근처 지열발전소의 지열로 데운 일종의 온천이다. 지열 처리 과정에서 나오는 실리카가 노천온천 곳곳에 비치돼 있다. 공상과학영화에 나올 법한 파이프와 공장을 배경으로 한가롭게 온천욕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무래도 낯설다.

‘블루라군’이란 이름 그대로 물 빛깔은 형광색에 가까운 하늘색이었다. 블루라군 홈페이지엔 블루라군을 너무 좋아해 여기서 결혼식까지 올렸다는 커플의 이야기가 소개돼 있었다. 이 초현실적인 물빛은 사진가도 매료시켰다. 하늘에서 본 지구를 찍는 프랑스 사진가 얀 베르트랑도 블루라군을 내려다보고 셔터를 눌렀다. 블루라군 주변 땅에선 계속 김이 올라왔다. 정말 ‘김나는 땅’이다.

레이캬비크의 ‘명동’, 아달스트래티 거리에 세워진 파이프에서도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손을 갖다대니 따뜻했다. 사람들이 돌아간 광장에 주저앉았다. 여기가 레이캬비크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다. 1752년 지어진 포게틴은 가장 오래된 건물로 가이드북에도 나왔다. 당시만 해도 레이캬비크엔 겨우 300여명이 살았다. 다른 유럽 도시처럼 르네상스 양식도, 고딕 양식이랄 건물도 없었다.



땅에선 김이 올라오고, 이따금 화산이 폭발하고, 뿔 달린 고래가 해안가로 밀려오는 곳. 훗날 톨킨은 아이슬란드를 다녀와 ‘반지의 제왕’을 썼다. 지옥의 땅, 모르도르의 무대가 바로 아이슬란드다. 이 험악한 땅에 고립돼 살아온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언어는 12세기 이후로 거의 변하지 않았다. 아이슬란드 가수 비요크도 그 중세의 언어로 노래부르는 것일까. CD플레이어에선 빗자루로 눈을 쓸 때처럼 사각거리는 비요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눈발을 뿌리며 몽환의 세계로 인도하는 듯한 나른한 목소리. 고개를 흔들고 CD를 꺼냈다. 태양이 분홍빛으로 내려앉는 지금은 밤 11시다.



▲여행정보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를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아일랜드는 영국 옆, 아이슬란드는 덴마크 위에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 영국 런던 스텐스테드 공항에서 아이슬란드 케플라빅 공항행 비행기가 출발한다. 코펜하겐·런던에서 약 3시간 걸린다. 저가항공인 아이슬란드 익스프레스(www.icelandexpress.com)가 가장 저렴하다. 일찍 예약할수록 할인 폭이 커진다.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려면 버스 패스인 링로드 패스를 구입하거나 렌터카를 이용해야 한다. 가이드북엔 ‘아이슬란드 렌터카는 브루나이의 술탄도 빌리기 힘들 정도로 비싸다’고 나와 있지만, 최저 사양으로 고르면 1일 8만원 정도에 빌릴 수 있다. 레이캬비크 시내만 둘러보려면 걷기만 해도 된다.

숙소는 유스호스텔 홈페이지(www.hostel.is)를 통해 예약하거나, 여행자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소개받으면 된다. 대학 기숙사나 호스텔급 숙소가 1박 8만~12만원이다. 관광객이 몰리는 6~9월에만 운영하는 숙소도 많다. 한끼 식사가 2만~3만원으로 물가가 높다. 체감하기로는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비싼 나라인 것 같다.



가이드북은 론리플래닛사의 ‘아이슬란드, 그린란드&패로 제도(Iceland, Greenland & Faroe Islands)’와 디스커버리의 ‘아이슬란드(Iceland)’가 나와 있다. 홈페이지나 여행 블로그를 통해 얻는 정보가 더 알차다. 아이슬란드 여행(www.visit.is), 레이캬비크 여행 홈페이지(www.tourinfo.is), 데스티네이션 아이슬란드(www.destination-iceland.com), 블루라군(www.bluelagoon.com) 등이 추천할 만하다.(글·사진 최명애기자)

07. 06. 22.

P.S. 아이슬란드 관련서를 찾아보니 현재 구할 수 있는 책은 한권도 없는 듯하다. 단, 픽션쪽에서 뜻밖으로 눈에 띄는 책은 아이슬란드 작가 아날두르 인드리다손(1961- )의 <저주받은 피>(영림카디널, 2007). 너무도 조용할 것만 같은 도시 레이캬비크와는 전혀 어울려보이지 않는 제목이다! 소개에 따르면,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상처를 다시 끄집어내야 하는 피해자와 가족들, 그리고 그것을 파헤쳐야 하는 수사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슬픔을 다룬 추리소설이다. 아이슬란드 작가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을 일약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작품으로, 2000년 발표되어 스칸디나비아 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 관련기사를 이참에 읽어둔다. 올여름에 예정에 없이 추리소설을 한편 읽게 된다면 제일 먼저 고려해 볼 책이다. 찾아보니 작품은 작년에 아이슬란드에서 영화화됐다.

동아일보(07. 04. 07) [한혜원의 펄프픽션]아이슬란드서 온 ‘저주받은 피’"

사람이 죽고 사는 이야기인 범죄수사 드라마는 늘 흥미진진하다. 범죄수사 드라마의 주인공은 크게 세 유형으로 나뉜다. 먼저 파이로 번스, 브라운 신부, 엘러리 퀸처럼 순전히 취미로 수사에 뛰어드는 유형이 있는가 하면, 홈즈, 뤼팽, 포와로처럼 아예 사무실을 내고 사립탐정 행세를 하는 유형이 있다. 마지막으로 그리섬, 스타페카, 콜롬보처럼 제도권 내에서 본업 삼아 범죄를 해결하는 유형이 있는데, 이를 흔히 ‘경찰소설(police procedural)’로 분류한다. 이때 경찰소설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개성과 카리스마 넘치는 수사 반장의 캐릭터 설정에 있다.



빙하와 온천의 나라, 아이슬란드식 수사 반장인 ‘저주받은 피’(영림카디널)가 국내에 소개됐다.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저주받은 피’의 작가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은 스칸디나비아 일대에서는 ‘흥행 보증수표’로 알려진 추리소설 작가이다. 그는 ‘저주받은 피’(2002년), ‘무덤의 침묵’(2003년) 등 ‘에를렌두르 반장 시리즈’로 북유럽 최고의 추리소설상인 ‘글라스 키(glass key)’를 최초로 연속 수상한 바 있다.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전형적인 아이슬란드식 살인사건, 즉 우발적이고 무의미하고 어설픈 노인 살해사건이 발생한다. 단 한 가지, 살인 현장에 남아 있는 ‘내가 바로 그다’라는 메시지만이 유일하게 이것이 계획된 범죄임을 암시한다. 수사반장 에를렌두르는 이 단서를 토대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범죄의 씨앗을 찾아 올라간다.

실제로 연쇄살인이 끊이질 않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아이슬란드는 추리소설의 배경으로 적합하지 못하다고 지레짐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 보급률 세계 최고, 한국과 비슷한 크기의 국토면적, 단일민족 구성 등 의외로 우리와 닮은 면이 많기 때문일까. 지명과 이름이 낯선데도 불구하고 사건과 인물의 실체가 생생하고 절실하게 다가온다(*국역본은 아마도 영역본에서 중역을 했을 듯한데, 아래는 아이슬란드어본이다).



‘저주받은 피’는 범죄수사라는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를 가장 아이슬란드적으로 풀어내 성공한 작품이다. 특히 동물적인 감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하드보일드파 에를렌두르 반장은, 할리우드의 명탐정 부럽지 않게 장수할 수 있는 캐릭터이다. 21세기 한국형 수사반장과 경찰소설은 언제쯤 등장하게 될는지. 가장 아이슬란드적인 수사반장으로 세계 추리소설계에 도전장을 낸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에게 질투가 날 따름이다.(한혜원 계원조형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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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슬란드
    from 2007-06-27 10:29 
 
 
딸기 2007-06-22 0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길에 비행기 옆좌석에 아주 젠틀한 중년신사가 앉아 있었어요.
가방 넣고 꺼내는데 친절히 도와준 덕에, 이야기를 하게 됐죠. 아이슬란드에서 왔대요.
"아이슬란드 사람과 만나는 건 처음이다"라고 했더니
"아이슬란드에는 사람이 많지 않거든요"라고 농담을 하더군요.
아이슬란드에 대한, '유일한' 기억이고 또 좋은 기억입니다. :)

드팀전 2007-06-22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이슬란드다...ㅜㅜ
30대 초반 우울모드에 접어들때 궁시렁 궁시렁 "아이슬란드에 가서 살고 싶어" 라고 했습니다.옆에 있는 사람들이 '왜?' 냐고 물었지요.
글쓴이도 썼듯이..왠지 제가 아이슬란드는 세상의 끝처럼 여겨졌습니다.왕가위의 영화<해피투게더>의 마지막 등대장면 처럼.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는 뉴스를 봐도 신문을 봐다 아이슬란드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미국도 나오고 프랑스도 나오고 가끔 남아프리카 공화국도 나오는데..
아이슬란드는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아마 알라딘의 페이퍼 중에서도 아이슬란드에 관련된 기사는 오늘 처음 보는 듯 합니다.아이슬란드는 어떤 말을 쓰는지 어떤 역사가 있는지..한국 사람들은 몇 명이나 사는지... 아이슬란드는 제게 사라진 아틀란티스 같은 상징이었습니다...^^ 왜 그곳에 가고 싶었을까요.제가 스스로를 수증기라고 착각해서 그랫나봅니다.죽지 않고 소멸할 수 있는 장소로 그곳이 낭만적으로 보였겠지요...청춘 나 참...

죽기 전에 꼭 갈 수 있겠지요.

비연 2007-06-22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여기 가고 싶어요...

로쟈 2007-06-22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 20만 중의 한 사람이었군요.^^
드팀전님/ '가정 먼 나라'이면서 '가장 조용할 것만 같은 나라'죠. 그린란드는 너무 땅이 크고...
비연님/ 물가가 의외로 비싸다니까 실행은 쉽지 않을 거 같습니다.^^;

수유 2007-06-22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이슬란드 하면 제겐 Sigur Ros가 떠오르죠..북구적인 사운드. 제 얼음집에 소리 있습니다만.:)

로쟈 2007-06-22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음집은 아이슬란드와 가깝겠군요.^^

수유 2007-06-22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맨 위의 도시 사진. 보니까 s시 같기도 하고..^^ 일자로 뻗은 도로하며, 바다도 보이고. 참 좋은 곳이었죠.

2008-02-25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2-26 01:10   좋아요 0 | URL
^^
 

한겨레에 연재됐던 황석영의 소설 <바리데기>가 대단원의 막을 내린 모양이다. 작가는 연재를 마치고 난 소감을 이메일 인터뷰에 응하여 답하고 있다. 연재소설을 읽어본 바 없지만(책은 7월초에 나온다고 한다) 마침 그의 <오래된 정원>에 대한 강의를 다음주에 맡아놓고 있어서 이 인터뷰도 자료삼아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7. 06. 21) “한반도의 삶 세계인과 공유하고 싶었다”

- 우선 6개월 가까운 연재를 끝내신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 작품을 한편 끝낼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뭔가 내장의 주요부분이 빠져나가 버린 것 같은 허탈감이 남지요. 그런 기분은 아마 한 일주일쯤 지속될 거예요. 전에는 한달쯤 갔는데 요새는 일상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좀 빨라졌다고나 할까. 아기를 낳은 산부들을 위한 산후조리원도 있는 모양인데 우리는 뭐 그런 거 없나.(^^) 그동안 동참해주신 <한겨레> 독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리고 무엇보다도 줄거리를 열심히 따라오며 장면들을 구체화하려 노력해오신 노원희 화백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노 선생의 바깥양반이 저하고는 죽마고우인데 장면에 나오는 인물 대신 여러 가지 포즈도 취해 주었다고 합니다. 만나면 제게 한바탕 할 것 같아서 은근히 걱정이지요.

- <바리데기>는 처음 구상하셨던 대로 연재가 진행되었는지요?

= 거의 구상대로 되었습니다. 사실은 이번 작품으로 감옥에서 큰 선으로 그려 놓았던 집필 계획은 절반쯤 마무리가 된 셈입니다. 아직 두어 가지가 더 남아 있습니다만. <오래된 정원>은 저의 우여곡절 많던 인생에 대한 자기 치유의 과정이자 지난 세기를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이를테면 작가로 되돌아오려는 ‘손풀기’였다면 <손님> <심청>, 그리고 <바리데기>로 이어지는 작품들은 여러번 밝혔던 대로 일관된 기획이었지요. 현실적 내용을 우리 형식에 담아 풀어내겠다는 포부였는데요, 이제 그 윤곽이 대충 드러났다고 봅니다. 앞으로 더욱 심화시킬 작정입니다.

- 7월초에 책이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책으로 내시면서 연재분과 달리 수정하거나 보완하시는 부분이 있습니까?

= 진작에 종결원고를 신문사에 넘기고 나서 연이어 교정 작업에 들어갔는데요, 별로 손본 것은 없습니다. 다만 문장 몇 줄 대화 몇 마디 첨삭이 있었지요. 오랫동안 가지고 주무르던 주제와 소재라서 디테일까지 모두가 저에게는 낯익은 것들이었지요. 공들여서 구성하고 집필했다는 느낌입니다. 특히 북의 기근과 산불이라든가 밀항 부분과 서천 끝 세상에서 세계를 향한 공수를 내리는 부분은 오래 지니고 있었던 장면들이지요.

- 북쪽 동포들의 대규모 탈북 행렬은 안타깝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방북 산문집을 통해 남북 동포 사이의 이질성을 극복하고 민족 화해를 염원하셨던 선생님이 <바리데기>에서 탈북의 현실을 정면으로 다룬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탈북자들을 다룬 소설은 다른 작가들에게서도 조금씩 나오고 있는 중이지요. 남북간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는가 하면 북쪽 사회 내부의 불안이 이어지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작가들이 취해야 할 문학적 대응은 어떤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1989년 당시에는 우선 북에 대한 우리의 냉전의식을 깨는 것이 급선무였지요. 그래야 사상 표현의 자유도 앞당겨질 것이니까. 개인적으로는 희생이 컸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국가보안법 때문에 사회 전반 또는 국가 자체로부터 왕따를 당했지요. 연재를 시작하면서 밝힌 바와 같이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동구권의 변화 이후 시작된 새로운 세계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주변부 나라들은 국제적인 양극화 속에서 새로운 분쟁과 굶주림에 빠져들었고 북한은 그들 중의 하나입니다.

내가 2003년 영국 체류 시기에 <바리데기> 얘기를 했더니 런던대학의 이집트 교수 한 분이 어느 사진작가 얘기를 하더군요. 나는 당장에 그의 작품집들을 샀습니다. 브라질 출신으로 망명하여 프랑스에 체류 중인 사진 작가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사진집이었어요. 예를 들어 ‘이주’와 같은 사진집은 세계적으로 충격을 준 작품집입니다. 그 속에 동구와 동남아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지의 현실과 형편들이 생생하게 찍혀 있었지만 북한만 빠져 있었어요. 누군가 세계를 향해서 발언을 해야 한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습니다.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를 정점으로 북한은 동구 붕괴 이후 십여년 이상 오랜 기근 속에서, 유엔의 지적에 의하면 삼백여만이 굶주림과 영양실조 후유증으로 죽어 갔습니다. 우리들 풍요의 대한민국 지척에서였지요.

저는 북한 통치권의 책임과 함께 남북의 분단체제를 경영해온 강대국들의 위선적인 인권 논리를 여러 차례 비판해 왔습니다. 이런 사실은 비현실적인 ‘북한붕괴 유도’라는 이념적 전술적인 논지들에 묻혀서 세계적으로 잊혀지거나 북한 정권의 반인도주의적 정체성을 선전하는 데만 활용된 점이 많습니다. 저는 북한 난민을 세계화체제의 그늘로 보고 있으며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주변부는 비슷한 참상을 겪고 있지요. 실제로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아프리카는 도처에서 동식물이 멸종하듯이 종족 전체가 사라져가고 있어요.

내가 늘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는 마치 한쪽 창문으로만 경치를 바라보고 그쪽으로만 바람을 소통하는 듯한 생각이 드는군요. 세계는 더욱 이행기의 혼란 속에 있는데 우리는 언제나 서구 세계의 표피만 보면서 심지어는 그 잣대로 자신을 재고 맞추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가 공유하는 ‘문예사조’ 따위는 없습니다. 자신과 한반도의 현재의 삶을 세계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것이 작가가 국경이나 국적 따위에 구애받지 않는 ‘세계시민’이 되는 길입니다. 세계문단이 한국문학에 바라는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자기와 비슷하게 흉내낸 것을 그 누구도 원하지 않겠지요.

- 바리가 중국을 떠나 유럽으로 향하는 화물선 콘테이너 안의 지옥 같은 상황을 환상적 필치로 묘사한 대목이 특히 감동적이었습니다. 판소리로 치면 눈대목에 해당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부분을 어떻게 구상하셨는지요?

= 세계의 어느 민담에 보든지 현실에서 초현실로 ‘이동’하는 줄거리가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겪는 초현실이란, 꿈도 마찬가지지만, 현실을 근거로 한 메타포거나 자기 왜곡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무턱댄 환상과 환영은 마땅히 경계해야 합니다. 현실의 그림자로서의 환상은 예술적 기법으로뿐만 아니라 논리적인 것보다 더욱 깊이있게 현실을 포착하게 해줍니다. 소설에는 부분적으로 저의 꿈도 써먹었는데요, 무격의 원조인 ‘바리할미’가 나타나는 장면은 제가 파리에서 집필하던 어느 날 직접 꿈에 보았던 형상을 그린 것입니다. 특히 뒷부분에 서천 끝으로 가면서 피바다 불바다 모래바다를 지나는 것과 공수 장면은 ‘황천무가’에 나오는 대목들입니다.

런던에서 저에게 자료를 모아주고 이주민들과의 인터뷰를 주선해 주는 등 도움을 준 한국근대사 전공의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영국인 청년이 있었어요. 그가 가져온 자료들을 섭렵하면서, 특히 <가디언>에 소개된 런던 시내 이주민들의 분포도는 내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종교와 인종과 문화가 런던을 표범 무늬처럼 잠식하고 포위하고 있더군요. 그들은 거의가 구식민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직접 개개인을 만나는 중에 특히 나이지리아 사람의 어린 시절 체험이나 남아프리카 사람의 무속 얘기는 이러한 인간 심층의 환상들을 구성해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런던에서는 행방불명 되었던 영국 국적의 파키스탄인 2세 청년들이 미군 관할인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되돌아온 사건으로 떠들썩했고 나는 그것을 소설의 한 대목으로 넣으려 했지요. 나중에 영국 감독이 다큐 형식의 영화를 만들어 베를린 영화제에서 발표를 해버렸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바리의 ‘서천’ 장면으로 환상적인 처리를 하게 되지요. 

- 바리는 옛 제국의 수도인 런던 변두리에서 다양한 인종 집단과 섞여 생활하며 파키스탄인 남자와 결혼까지 합니다. 그리고 9·11 테러와 영국 지하철 테러, 미국 주도의 대테러 전쟁 같은 것이 바리의 삶에 끼어듭니다. 탈북자라는 바리의 신분이 상징하는 한반도의 현실과 지금의 세계적 혼란은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겠습니까?

= 베를린 장벽 이후 부시 이전까지의 세계가 세계화체제 재편성 기간이었다면 9·11은 그것이 본격화되는 막이 열리는 분기점이 됩니다. 미국의 일방주의가 세계에 노골적으로 강행되는 근거가 되었지요. 지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는 개인과 사회를 넘어서서 국가간에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중입니다. 9·11은 21세기 이행기의 가장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계기로 ‘악의 축’으로 지명된 나라들을 보면 그 당사자들 보다도 중동이니 중국이니 하는 지역이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더불어 주목되는 점을 눈치챌 수가 있지요.

우리가 베트남 전쟁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미국이 일으킨 전쟁에 ‘부끄럽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나는 금강산 관광이나 6·15 이후 오히려 ‘분단’을 낡은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의식 속에서 지워 버리려고 하는 세태를 우려합니다. 세계로 나가 보세요. 택시 운전사나 웨이터들, 그러니까면 시정 사람들도 모두 사우스, 노스 하고 되묻지요. 심지어는 서구권에서 우편물을 보낼 때 ‘사우스’를 명기하지 않으면 분명해지지 않는다는 점을 현지 교포들이 먼저 알려줍니다. 한반도의 분단이 세계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는 이 운명적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반국적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인식에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현재 사용하지 않는 뒷마당도 우리 집이니 집 수리할 때를 염두에 꼭 두어야 합니다. 사실 바리를 뉴욕으로 보내지 왜 런던으로 보냈느냐고 이의를 제기한 친구도 있었는데요. 제가 19세기를 배경으로 <심청>을 먼저 쓰고 난 다음에 <바리데기>를 쓴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 두 작품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요. 19세기의 제국주의와 21세기의 신자유주의가 서로 연결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나는 미국 문명의 이를테면 ‘안동 김씨’ 본가인 영국이 현재 서구권의 모습을 잘 드러내 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옛날의 업보가 많고 축소되어 있으므로 훨씬 더 자세히 보이지요.

- 우리 설화에서 바리는 약수를 구해 죽은 부모를 살립니다. 소설 <바리데기>에서 바리가 구한 생명수는 어떤 것일까요? 분열과 증오와 죽임의 21세기 지구촌에서 생명의 길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 숨은 그림 찾기입니다. 글쎄요, 이 작품에서 생명수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고 바리는 그것을 찾기라도 했을까요?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 될 것입니다. 

- <바리데기>의 해외 번역 출간 계획이 잡혀 있는지요?

= 현재 <심청>이 번역 진행 중이므로 프랑스쪽의 에이전트는 당분간 그 일에 전념할 모양입니다. 작년에 뉴욕과 런던쪽의 출판 에이전트 측에서 제의가 들어와 어쩌면 그들에게 맡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영독불 언어 중에 하나가 잘 된 프린트본이 있다면 거기서 막바로 다른 서구어로 번역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라고 보고 있는데, 현재의 우리 번역 시스템은 너무 원칙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하지요. 가령 밀란 쿤데라의 경우에는 체코어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뒤에 그것을 작가가 정본으로 정하여 프랑스어에서 다른 나라 말로 번역하게 하지요. 주변 소수 언어 출신들 중에 이런 예는 많이 있습니다. 일본은 현재의 위치까지 오는 데 백년이 걸렸구요, 현재도 자기네 문화를 세계화하는 사업에는 기업과 정부가 용의주도하게 힘을 들여서 계속 중에 있습니다. 아마 우리가 하는 노력에 비하면 거의 수십배는 될 겁니다.

- 다음 소설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제 완전 귀국하시는지요?

= 집필 계획이 분명히 있지만 어느 걸 먼저 하게 될지 모르니 현재는 대답을 못하겠네요. 책이 나올 때쯤 잠깐 귀국했다가 오는 10월에는 완전히 보따리를 싸서 들어올 생각입니다. 지난 4년 가까이 런던대학과 파리대학 초청으로 있었는데, 늙마에 너무 오래 체류했다는 느낌입니다. 귀국해서는 시골에 칩거할 생각입니다. 앞으로 책이 나올 때에만 해외 행사에 참가하고 되도록이면 나다니지 않을 생각이구요. 이제 다시 집필실에서 자기와 대면하는 일만 남아있는 셈이지요.

- 문학과는 관련이 없는 질문이지만,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아서 여쭙습니다. 손학규 전 지사가 탈당한 뒤에도 여권은 여전히 대통합을 이루지 못한 상태입니다. 앞으로 손 전 지사를 위해서든 민주 세력의 대통합을 위해서든 선생님께서 추가로 하실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요? 

= 문학과의 관련이 없다고 단정하고 묻는 질문은 또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형식적 민주화 시기 이후 우리의 자가당착이지요. 앞으로 책 나올 일에 흙탕이라도 튈까 하여 탈탈 털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살아온 대로 말하렵니다. 작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많아서 늘 설명해야 하는데요. 저는 문단에 나온 이후 동료 문인들과 함께 시대와 정치적 현실에 대한 일관된 비판적 관여를 해온 셈입니다. 작가도 시민의 한 사람이고 유권자의 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 두었으면 합니다. 내가 막말로 현실정치에 개입해서 무슨 국회의원이나 높은 사람 해먹겠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작가는 오로지 ‘글이나 써라’는 말은 문학에 대한 관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보면 그런 분들이 오히려 현실정치의 덕을 보고 살더군요. 

앞서도 얘기했지만 저는 때가 되면 그 당대마다 발언을 할 것입니다. 작년 가을부터 발언을 시작했는데 현재 상황을 보면 대개 다 맞아떨어진 것 같군요. 내가 점쟁이라서 그렇게 되었겠어요? 상황이 그랬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겠지요. 나는 김근태 의원의 최근 결단에 대해서 ‘그러면 그렇지’ 하고 무릎을 친 사람입니다. 나는 그를 늘 존경하고 사랑해온 오랜 벗인데, 그이는 행동이 좀 굼뜬 대신에 사려가 깊은 분입니다. 화려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는 매우 정직하고 언제나 정도를 걷는 중요한 지도자의 한 사람이지요. 

그가 얼마 전 6월항쟁을 돌이켜보며 양김의 분열과 삼당합당을 회고할 적에 나는 다시 가슴이 아파오더군요. 사실 84년 광주 홍남순변호사의 고희 때에 있었던 그 모임을 아쉬워하고 그때로 돌아가야 한다고 늘 얘기하던 사람이 바로 김근태씨였습니다. 그가 이제 자기를 버리고 총대를 멨으니 나는 누구도 아닌 그의 편입니다. 그를 도와줘야겠지요. 그가 나섰으니 통합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을 보면 우리 사회가 새로운 체제 교체의 전환점에 서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이는군요. 역사적 상상력은 이 시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단 한마디만 덧붙이고 싶습니다. 휴전선을 등지고 반도의 아래쪽만 보고 있을 게 아니라 제발 한번만 지도를 돌려서 제주도 서귀포쯤에 눈을 대고 위를 보라구요. 저 너머에 무한한 신대륙이 펼쳐지고 있지 않나요? 만주를 넘어 흥안령 산맥 지나 바이칼, 시베리아까지 보이는군요.(최재봉 문학전문기자)

07. 06. 21.

P.S.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사진집에 관심을 갖게 된다. 유감스럽지만 국내에는 아직 소개돼 있지 않다. 다만 <클라시커50 사진가>(해냄, 2005)와 최민식의 <사진이란 무엇인가>(현실문화연구, 2005) 등에서 살가도 항목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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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랑스에서 만난 황석영..
    from 기인 책 읽다 2007-06-21 03:22 
    파리가서 느낀 것인데, 황석영의 번역서가 꽤 눈에 뜨였어요. 무라카미 하루키 영문판을 찾으려고 그랬던 것인데, 정작 하루키는 안보이고 황석영은 보이더라고요 ^^ ㅎㅎ
 
 
로쟈 2007-06-21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마 프랑스쪽으로는 많이 알려진 모양이군요. '하루키'가 안보였다고 하신 건 의외인데요.^^

프레이야 2007-06-21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가도의 저 사진집, 아마존에서 구입했어요. 옆지기가..
충격적인 사진들이었어요. 바리데기, 기대됩니다.
로쟈님, 서재 스킨이 저랑 같아요. 놀랐어요. 클릭하는데 제 서재가 도로 뜨는 줄
알았거든요. ^^

지나다 2007-06-22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재작년 여름 서울 놀러왔다 프레스센터 1층에서 전시회를 봤던 기억이 나네요.
작가도 잘 모르면서 흑백 사진의 깊은 울림 땜에 엽서, 포스터도 사고, 뜻밖의 수확이었죠.
괜히 지나다 아는 척~ㅎㅎ 로그인 하기 귀찮아 그냥 갑니당.

로쟈 2007-06-22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장마철 동안엔 같은 스킨을 사용할 것 같네요.^^
지나가다님/ 사진들이 왠지 낯에 익다 싶었는데, 전시회가 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