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제3회 맑스 코뮤날레가 개최된다(아마도 자료집이 곧 출간될 듯하다). 초청된 학자들 중에는 국제헤겔연맹 의장 안드레아스 아른트 교수도 들어 있다. 그 정도면 거물급 인사가 아닌가 싶은데 한겨레에 인터뷰 기사가 실렸길래 옮겨놓는다. 헤겔에 대한 나의 관심은 거의 전적으로 지젝이 부추긴 것이기에 '로쟈의 지젝'으로 분류해놓고.

한겨레(07. 06. 28) “최근 영국·미국서 변증법 관심 되살아나”

28일 서강대 다산관에서 열리는 3회 맑스 코뮤날레에 발표자로 초청된 안드레아스 아른트(58·오른쪽 사진) 독일 베를린자유대 철학부 교수는 헤겔 변증법의 대가로 손꼽힌다. 1992년 이래, 전 세계 진보적인 헤겔(왼쪽 사진) 연구자 500여명이 참여한 국제헤겔연맹 의장을 맡아 왔다. 이 단체는 중도보수 성향의 국제헤겔회의와 함께, 세계 양대 헤겔학회로 꼽힌다. 그는 현실 개념을 파악하는 새로운 형태의 도구로서 헤겔 변증법의 의미를 재정립한 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저서 <칼 마르크스:그의 이론의 전체연관에 대한 연구>와 <변증법과 반성:이성개념의 재구성을 위한 연구>는 헤겔 변증법 철학과 변증법 일반에 대한 고전적 연구서로 평가받고 있다.

26일 고려대에서 만난 아른트 교수는 ‘복합적 구조들의 역사적 발전’을 기술하는 도구로서 헤겔 변증법을 적극 옹호했다. 그는 또 “‘노동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유시간과 관계하는 법을 잊어버렸다”면서 “자유시간을 쓸 수 있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경수 한신대 학술원 연구교수가 인터뷰를 도왔다.


-헤겔 철학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인가?

=헤겔 이론은 근대의 지반에서 나왔다. 근대를 역사적으로 반성한 것이다. 헤겔 철학의 새로움은 구조에 대한 기술 뿐 아니라 역사적 과정을 항상 같이 사유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새로움은 인권을 새롭게 조명한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추상적 자유가 아니라 사회 정치적 제도를 통해 확보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자유는 빈말이 아니라 구조 즉 시스템으로서 확보해야 한다고 봤다. 헤겔 변증법은 ‘복합적 구조들의 역사적 발전’을 기술하는 데 그 어떤 방법론보다 탁월한 도구이다. 변증법을 통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고 올바르게 보고 기술할 수 있다.

 

-동일성에 대해 차이의 우위를 강조하는 들뢰즈 등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은 헤겔 변증법을 싫어한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

=들뢰즈는 근대적(모던)이란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모던은 계속 발전되어 나가고 또 항상 현재화되는 개념이다. 현재 흐름 속에서의 발전의 개념인데,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은 모던을 ‘발전이 종결된 하나의 단위’로 오해하고 있다. 변증법은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이 말하는) ‘차이’를 하나의 연관 속에서 고찰하고 총체성 안에서 고찰한다. 이를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은 간과하고 있다. ‘동일성’에 대해 추상적으로 사고하며 ‘차이’와 대립시키고 있다.

-1990년 이후 한국에서는 데리다, 푸코, 들뢰즈 등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과, 이들과 철학적 영향을 주고 받은 자율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 네그리 등을 대안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이론을 어떻게 보나?

=네그리는 대중의 자발성 이론에 기초해 있다. 하지만 대중 조직화 등 실천 환경에 대한 분석은 충분하지 않다. 세계화의 대안 이론이 될 수 없다. 대중에게 이미 자발성이 있고 제국이 있으며 항상 대항하는 힘이 있다는 생각은 철학적으로 나이브(순진)하다.

-논문 ‘시간의 경제’에서 ‘자유시간’을 누릴 줄 아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어떤 의미인가?

=사회적으로 노동 시간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는 경제에 중요하다. 유한한 존재가 어떻게 행복한 삶을 가질 것인지, 우리가 가진 시간을 자율적으로 규정하고 구성해나가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노동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자유시간과 관계하는 법을 잊어 버렸다. ‘노동형식’이 자유시간 안에 침투해 들어왔다. 자유시간 조차도 노동이나 업적을 위해 쓰이는 휴식이 되었다. 또 여가나 소비 산업을 위해 휘둘리고 있다. 자유시간을 쓸 수 있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좋으면서 행복한 삶이 뭔지 근본적으로 고찰해야 한다. 생의 다른 대안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거기서 출발해 정치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출발점은 노동시간의 단축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끊임없이 허구적 욕구를 재생산해 낸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사용가치’에 근거한 요구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다시 한번 미래 생을 꿈꾸고 사회적으로 배워야 하고 정치적 대안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신자유주의와 정보혁명 시대에 유의미한 변혁적 도구는 무엇인가?

=마르크스는 국가가 자본주의를 규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본론>의 ‘1일 노동시간’장을 보면, 마르크스는 국가가 잔혹한 아동 노동에 대해 일정한 제한을 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단계에서 국가가 자본주의 잔혹성을 누그러뜨리는 기능도 한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국제적 비판적 운동도 중요하다. 고삐풀린 신자유주의 움직임을 제어해줄 수 있다. 유럽연합 등 모든 기관을 이런 식의 비판 운동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 유럽의 경우 노조간 연대 조직이 유럽노동헌장을 제정하려고 한다. 이런 움직임은 유럽의 최소 노동조건을 만드는 운동의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계급지배 철폐만을 외칠 게 아니라 구체적인 경제적 대안을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상품 생산과 분배, 소비를 어떻게 규정하고 계획적 생산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제시해야 한다.

-독일 등의 마르크스주의 연구 동향은?

=최근 미국과 영국에서 변증법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 마르크스 변증법 이해를 다루는 문헌들이 많이 나오고 있으며 토론도 활발하다. 이런 미국 쪽 움직임이 오히려 유럽 쪽에 영향을 주고 있다. 내가 맡은 대학 강좌를 보면, 최근 몇해 마르크스 철학이나 정치경제학 과목 수강 학생들이 점점 늘고 있다. 1989년 현실 사회주의 붕괴는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는 더 이상 정치적 의심을 받지 않으면서 위축되지 않고 마르크스 사상을 있는 그대로 과학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도그마(독단)에 빠질 가능성을 줄이는 긍정적 계기가 됐다.(글 강성만 기자)

07. 06. 28.

P.S. 갑작스런 '헤겔 붐'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주목할 만한 책들이 나오고 있다. 비토리오 회슬레 교수의 주저 <헤겔의 체계>(한길사, 2007)가 번역돼 나오기 시작했고, 헤겔 원저로는 오랜만에 <인륜성의 체계>(울력, 2007)가 우리말 번역본을 얻었다. 그리고 나종석 교수의 <차이와 연대>(길, 2007) 또한 최근에 나온 묵직한 연구서이다. '헤겔의 현재성' 정도는 허언이 아닌 듯싶다...

07. 0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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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에 읽을 사회적 독서 목록에 올려놓은 책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있거라>(창비, 2007)에 관한 서평을 옮겨놓는다. 책의 앞부분은 나도 읽어봤는데(마저 읽을 시간을 못내고 있다) 지난 80년대에 관한 것인지라 20대 시절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의미도 있다. 한나 아렌트의 표현을 빌면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을 다시 회고해보는 의미도 있고. 그래서 한 개인사를 따라가며 복잡한 반성과 성찰에 젖게 된다. 마치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을 읽을 때처럼. 저자인 황광우씨는 <철학 콘서트>(웅진지식하우스, 2006) 등으로 형 황지우 시인만큼이나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지만(논술교재들도 여러 권 펴냈다) 서평을 읽어보니 현재 병상에 누워있다고 한다. 쾌유를 바란다.   

오마이뉴스(07. 06. 27) 책에서만 보던 혁명이 현실이 되었을 때

사람을 빨아들이는 글쓰기는 황광우가 가진 남다른 재주인가보다. 어제(26일) 저녁을 먹고 펼쳐든 책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어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단숨에 읽었다. 1985년 대학에 입학해, 가을 무렵에 황광우가 쓴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와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을 단숨에 읽어 내려가며 절망하고 분노하였던 기억이 있다.

이듬해부터 나는 참 많은 후배들에게 그가 쓴 책 '소삶'과 '들역'(우리는 그 때 이렇게 불렀다)을 읽게 했다. 그리고 책을 읽었던 많은 후배들이 나처럼 절망하고 분노하며, 이른바 의식과 교육에 입문하였고, 곧이어 짱돌과 꽃병을 들고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소위 '운동권'이 되었다.

우리 학번은 대학을 졸업하거나 혹은 감옥살이를 하고 나서는 반드시 '노동현장'으로 옮겨 가야 한다는 중압감을 가졌던 마지막 세대였다. 한두 학번 밖에 차이 안 나지만 86학번, 87학번은 이른바 '애국적 사회진출운동' 세대들이다.

현장에 들어갈 준비과정으로 생각하고, 대학 3학년이 되면서부터 노동야학에 참여하였다. 노동야학에서 만났던 100여 명이 넘는 노동자들과 함께 읽었던 입문서 역시 황광우가 쓴 '소삶'과 '들역'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정인이라는 필명으로 밖에 몰랐다. 어쨌든 그가 쓴 두 권의 책은 출간되자마자 소위 의식화교육의 입문서로 자리매김하였다.



철학공부의 입문서였던 <철학에세이>를 쓴 사람도 황광우와 함께 활동하던, 조성오라는 사실도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황광우와 함께 활동하던 이들이 쏟아낸 숱한 번역서를 읽고 공부하였던 이들이 이른바 '386세대'다. 나는 단 한 번도 그를 만난 적이 없지만 80년대 후반 사회과학서점을 통해 그가 참여했을 인민노련 기관지 '노길'(노동자의 길, 그때는 이렇게 불렀다)을 꼬박 꼬박 사서 읽었다.

황광우를 통해 만나는 우리시대의 '전사'들

오늘까지 단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지만, 수많은 팸플릿과 정세분석 문건으로 그와 만났으며, 이윽고 어제는 그에게서 그와 함께 빛나는 80년대를 살았던 '전사'들의 무용담을 자정 무렵까지 혼자서 들었다.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는 황광우의 개인사와 같은 책이다. 개인사의 형식을 빌었기 때문에 단숨에 읽어 내릴 수 있을 만큼 편안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읽는 이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단순한 자서전이나 개인사는 아니다.

그 내용이 어두운 과거와 시대의 아픔을 기록하고 있지만, 지은이 특유의 '혁명적 낭만주의'가 스며있기 때문인지 패배보다는 작은 승리를 읽으면서 기뻐할 수 있었다. 버스 환기통을 이용해서 유인물을 뿌리는 장면에서, 혹은 수배 중 어렵사리 경찰 검거를 피해나가는 장면에서 그리고 마침내 87년 6월 100만 민중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군사독재정권의 항복을 받아내는 승리의 장면들을 읽는 '재미'가 있다.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를 읽으며 우리는, 황광우를 통해서 혹은 황광우의 동지들을 통해서 혹은 그가 찾아낸 역사의 기록물들을 통해서 그 시절 전사들, 운동가들의 너무나 인간적인 진면목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그가 남긴 시 '전사'처럼 살았던 김남주, 저항의 구심 윤한봉, 그리고 박기순, 박관현, 윤상원, 강용주, 권인숙, 박종철, 전희식과 같은 이들이다. 그들 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고, 지금도 치열하게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특히, 윤한봉이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살이를 하면서 읽은 <다산시문선>에서 얻은 깨달음은 지금 읽어도 충격적이다.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있어요. 정약용은 식량 증산을 강조하지요. 놀리는 땅 없이 작물을 심고 개간하고, 저수지나 연못 같은 곳도 놀리지 말고 뗏목을 만들어 콩을 심으라고 해요. 그분은 민중들을 위한 생산적인 사고를 한 겁니다."

지난 봄 나온 <희망세상> 5월호를 보면, 그는 지금 폐기종으로 호흡량이 정상인의 11%밖에 안 되는 탓에 하루 15시간씩 산소 호흡기를 끼고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미 1978년 무렵부터 그는 동지는 유무상통(有無相通)하는 사이여야 한다고 믿고 있으며, 딱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사는 무소유의 삶을 살고 있다.

기록을 남기지 않는 시대에 대한 '기억'

나는 최근 6·10민주항쟁 20주년을 기념하여, 지역 운동사를 정리하는 작업 중 일부를 맡았었다. '기록'이 '기억'을 이긴다는 말이 있지만, 당시는 기록을 남기지 않는 시절이었다. 기록은 곧 국가보안법상 범죄의 증거가 되는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불과 20년 전의 지역 운동을 정리하는 데도 참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20년 전 활동가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시도하였다. 불과 20년 전의 일이지만, 사람들의 기억이 일치하지 않는 곳이 너무 많았다. 기억하는 과거 중에는 이미 '역사'가 아니라 '서사'가 되어버린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아주 작은 기록물 하나만 발견되어도 그것이 사실을 정확히 기록으로 남기는데 아주 중요한 근거자료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잘 안다. 이 정도 기록을 정리하는 데는 읽는 이들은 알 수 없는 어마 어마한 수고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책을 읽는 이들은 마치 지은이가 소주잔을 마주 놓고 자신의 무용담을 주저리주저리 풀어내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글을 쓴 이는 많은 이들의 실명을 담아서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야하는 많은 부담을 안고 있었으리라.

지은이가 책 쓰기를 마치고 중풍으로 쓰러진 것도 어쩌면 가슴을 짓누르는 중압감으로 가득 찬 시대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부담 없이 읽히는 소설처럼 써내려 가는데, 혼신의 노력을 쏟아 부었기 때문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황광우의 탁월한 기억과 지인들의 증언 그리고 이런 저런 자료를 모아 엮어진 이 책은 1970년대 민주화운동사, 80년대 한국 노동운동사를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실감나는 문장으로 정리하였다는 점에 있어서 또 다른 큰 성과라고 생각된다. 탁월한 감각을 지닌 어떤 영화감독이 이 책을 읽는다면, 감동적인 영화로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가 쓴 이 책은 1970년대 어느 때부터 민중의 힘으로 '항복 선언'을 받아 낸 87년 6월 29일, 그날까지의 기록이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온몸으로 살아온 '전사' 황광우가 전하는 6월 항쟁의 의미는 이렇다.

"1987년 6월 항쟁은 1919년 3.1 만세운동과 맞먹는 거국적 국민 항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1987년 6월은 우리가 꿈꾸는 혁명의 시절이었다. 우리는 혁명이란 무엇인가를 책에서만 봤지 현실에서 본 적은 엇었다. 6월 항쟁이 끝나고 나서야 이런 게 혁명적 상황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된 것이다. 그만큼 엄청났고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날로 기록될 1987년 6월을 뜨겁게 살았던 지은이에게도 고민이 있다.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의 서문을 보면, 1958년생인 지은이와 1985년생인 그의 아들 사이에 역사를 인식하는 간극이 얼마나 큰가에 대하여 밝히고 있다. 80년 광주항쟁과 87년 6월 항쟁을 온몸으로 살았던 아버지와 그 형제들, 이한열을 보내는 시청 앞 노제에서 아버지 어깨위에 앉아 있었지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들사이의 간극 말이다.

얼마 전 마산에서 열린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기념하는 한 토론회에서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로부터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과제는 하나는 세대를 잇는 일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나는 87년 6월 항쟁 당시 네 살배기 꼬마였던 후배와 함께 토론회에 참석하였다. 그 후배는 토론회를 마치고 나오며 "솔직히 모르는 이야기가 더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이 책은 1958년생인 지은이와 1985년생인 그의 아들 사이에 있는 역사인식 간극을 메울 뿐만 아니라 나와 후배 사이, 세대간 간극을 메우는 책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세대간 간극을 메우는 첫 시도로 내가 읽은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를 후배에게 권해볼 생각이다. 20~30여 년 전 그날, 그 사람들에게로 확 빨려 들어가 불과 서너 시간 만에 읽었던 책을 네 살배기 꼬마였던 후배는 어떻게 읽을지 궁금하다.

역사 속에서 호흡하는 실천가가 쓴 '역사'

중풍으로 병상에 누운 황광우는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전하고 있다.

"독자들이 우리의 젊은 날 이야기를 들으며 소설처럼 삶의 호흡을 느끼면서, 철학처럼 삶의 근본을 사유하는 뜻있는 기회를 만난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이 말에는 자신들의 젊은 날 이야기를 통해 세대간 간극을 메워보고자 하는 지은이의 간절한 바람이 담겨있다. 그래도 다행 아닌가? 우리는 우리의 우리 손으로 역사를 기록할 수 있으니. 지은이의 말처럼 "역사가는 역사 밖에서 역사를 보지만 실천가는 역사 속에서 역사를 만진다." 마오쩌둥은 대장정을 함께 한 작가 에드거 스노우가 그들의 호흡과 냄새를 기록하여 주었고, 김산은 님 웨일즈를 통해 <아리랑>을 남겼다는 그의 지적은 옳다.

이 책은 역사 속에서 역사를 만지는 실천가의 눈과 가슴으로 씌어진 책이다. 소설 같은 호흡으로 읽을 수 있지만, 이 시대 실천가로서 역사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만나게 된다.(이윤기 기자)

07. 0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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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7-06-28 10:57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옛날 '소사'와 '들역'을 읽었던 기억은 나네요.
내용은 거의 기억이 안나지만...
저도 황광우님의 쾌유를 빕니다. 비까지 와서 그런지 맘이 더 짠하네요.

마늘빵 2007-06-28 16:11   좋아요 0 | URL
조성오의 철학에세이 고 2때 샀는데 뭣모르고 재밌게 읽었던 기억 납니다. :)
황광우씨는 몇달전 철학콘서트로 만났죠.

Koni 2007-06-28 16:49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지난해 황광우 씨의 <철학콘서트>를 읽었는데,아프시다니 마음이 안 좋네요. 이 책도 읽어봐야겠어요.

iamtext 2007-06-28 18:0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형제가 나란히 블로그에 올라오네요^^ 소삶뿌와 들녁(우리는 이렇게 불렀습니다)에 대해서는 저역시 아련합니다. 한참 후 황광우의 이름으로 나온 '뗏목'도 있었죠.

로쟈 2007-06-28 19:50   좋아요 0 | URL
역시나 독자들이 많군요.^^
 

제목 때문에 이 페이퍼를 들여다보실 분들이 많을 텐데, 얼마간 고의적이긴 하지만 내 탓은 아니다. 돌아가신 김현 선생 탓이다. 그의 비평집 제목이 <책읽기의 괴로움>(문학과지성사, 1993)이기 때문이다. 1992년에 나온 건 전집판이고 나는 80년대에 나온 민음사판을 갖고 있다(이 책과 관련한 얘기는 http://blog.aladin.co.kr/mramor/880102 참조). 한국일보의 '오늘의 책'에 이 책이 올라와 있는데, 다름 아니라 오늘이 지난 1990년 세상을 떠난 저자의 기일이기 때문이다. 바쁜 와중에 잠시 17년전 그날을 떠올려본다.

한국일보(07. 06. 27) [오늘의 책<6월 27일>] 책읽기의 괴로움

문학평론가 김현이 1990년 6월 27일 48세로 사망했다. 시인 황지우(55)를 1999년 인터뷰했을 때 했던 말이 생각난다. “김현 선생 돌아가시고 나서는 (문학이) 재미가 없어졌어요. 문학판이 구심점도 없고 이슈도 없는 요즘, 새삼 그 분이 그립습니다.”

황지우의 말처럼 김현은 한 시대 한국문학의 구심점이자 이슈의 창출자였다. 1960년 그가 김승옥 김치수 최하림 등과 만든 동인지 <산문시대>는 한글세대의 신화였고, 그것은 1970년 김병익 김주연 등과의 <문학과지성> 창간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그는 우리 문인들의 호명자였다.

자신보다 20년이 젊은 세대의 무협지적 상상력까지 한국문학의 자장 안으로 끌어들이고, 그들을 정확히 호명해준 것이야말로 김현의 가장 큰 공이었다. 시기적으로 묘하게도 그의 사망 이후 1990년대부터 한국문학은, 역시 황지우의 표현으로라면 “초라한 주변부 장르나 언더그라운드 꼴이” 돼버린 것도 사실이다. 그의 부재가 아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책읽기의 괴로움>은 폭력의 연대였던 1984년 나온 김현의 평론집이다. 표제 평론은 최인훈의 소설 <회색인>을 통해 그런 세상에서의 ‘책읽기’라는 문제를 다룬 글이다. 다시 읽어본다.

책읽기가 고통스러운 것은 책읽기처럼 세계를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세계가 책 속에서 이야기되는 것처럼 선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분명하지 않은 세계 속에서 분명하게 살 수는 없다.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다만 방황할 따름이다. 그 방황을 단순히 책상물림의 지적 놀음이라고 폄하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근본적인 질문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나도 최인훈의 회색인에 가깝다. 나는 내 자신이 불행이고 결핍이다.”

07. 06. 27.

P.S. 하지만 그의 <책읽기의 괴로움>을 구한 것도, 읽은 것도 모두 큰 즐거움이었다는 걸 고백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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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현..
    from 한사의 서재 2007-06-27 12:05 
    “책읽기가 고통스러운 것은 책읽기처럼 세계를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세계가 책 속에서 이야기되는 것처럼 선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푸른괭이 2007-06-27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릴 땐 몰랐는데 지금 보니, 사진 속 김현 선생이 너무 젊군요....

마늘빵 2007-06-27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현 책은 딱 한개 봤는데 제목이 기억이 안나는군요. 수필집 비슷한 성격이었는데. 책읽기가 괴롭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 요새 그래요. 읽고픈건 많은데 의욕이 나지 않을 때.

비로그인 2007-06-27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현씨의 글 좋습니다.
제가 한 부 먼댓글로 엮어 얻어갑니다.
고맙습니다. 로쟈님


수유 2007-06-27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옮겨가요~~ 저도 즐거움이었어요.
 

한겨레21에서 이청준 문학의 '보편성'에 관한 리뷰를 옮겨온다. 실상 이창동의 <밀양>을 아직 보지 못한 분풀이이다(7월초에도 상영하는지?). 주변에서 볼 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본 다음임에도 시간을 못 내는 처지라니! 예전에 읽은 원작 소설 <벌레 이야기>는 얼마전에 단행본으로 나왔고 한 지인으로부터 선물받았다(칸느 영화제 수상직후 이 책의 표지는 곧장 <밀양>으로 바뀌었다). 영화를 보게 되면 다시 읽어볼까 한다. 아래 기사는 문학평론가 방민호 교수의 이청준 문학에 대한 예찬으로 읽힌다... 

한겨레21(07. 06. 21) 이청준, ‘한국적’으론 감당할 수 없어라

전도연씨가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낭보가 들려왔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통해서다. 유럽 영화제에서 한국의 여배우가 여우주연상을 받게 된 것은 강수연씨 이래 20년 만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전도연씨와 <밀양>을 연출한 이창동 감독에 따라다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밀양>의 원작이 이청준씨의 중편소설 <벌레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벌레 이야기>에 없는 이야기들이 첨가되고, 있던 이야기들이 삭제되는 커다란 변용을 겪기는 했지만 결국 <밀양>은 <벌레 이야기>를 모태로 삼은 작품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다.

원작은 원작일 뿐이다. 영화는 원작을 하나의 텍스트로 삼아 여기에 영화가 필요로 하는 숱한 예술적, 기술적 독창성을 발휘해야 하는 고난도 장르다. 그러니 영화의 시대일수록 그 텍스트를 이루는 문학이 중요하다는 상식적인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는 게 좋다. 똑같은 주장을 오스카 와일드는 비평가와 소설의 관계에 대해서 펼쳤었다. 소설을 텍스트 삼아 이야기한다고 해서 비평이 소설에 비해 열등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2년 전에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가서 느낀 것은 한국 문학이 아직 고립된 예술의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때 황지우씨가 던진 말이 있다. 그곳 유럽에서는 고은도 황석영도 아직 신인이나 다름없는 무명작가일 뿐이라던. 이 두 문학인은 유럽에서 그래도 상당한 인정을 받고 있는 분들이다.

번역될 수 없는 까다로운 미학
물론 몇 년 사이에 문학도 ‘한국’ 문학이라는 고유명사 표지로 만족하는 단계는 확실히 뛰어넘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의 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인지도나 인식 수준은 미약한 편이다. 아마 이청준이라면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말보다 전도연씨가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밀양>의 원작자라고 소개하는 쪽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당연히 언어 때문이다. 문학에서 언어 문제는 근본적이다. 한국어라는 말, 한글이라는 문자의 고립성이 한국 문학을 왜소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면이 있다. 세계인들은 한국어로 된 소설에 대해서는 존재조차 알지 못하다 그것이 원작이 되어 영화라는 도상적 기호의 맥락 속에서 새롭게 제시되어 ‘보편화되면’ 그때서야 기립박수를 치게 된다.

이청준 문학만큼 이러한 아이러니를 크게 보여주는 작가도 드물다. 최근에 들어와선 문체가 이완된 감도 없지 않지만 이청준씨는 한국어 문장의 아름다움을 고양시켜 보여준 작가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1993)로 옮겨진 그의 연작들, <서편제> <소리의 빛> <선학동 나그네> 등은 한국어 문장의 운율미, 리듬감을 충만하게 실현한 것들이다. 이 언어적 요소는 마치 시가 완전하게 번역될 수 없는 것처럼 영화로도, 외국어로도 번역되기 어렵다. 여기에 흔히 한(恨)으로 표상되는 한국적인 정서들이나 문화적 전통들, 고전적 예술과 민속의 세계 같은 것들도 외국인들이 이해한다고 해야 오리엔탈리즘의 수준에서 벗어나기 힘든 측면이 없지 않다. 이청준 문학은 번역될 수 없는 미학적 특질들을 함축하고 있는 까다로운 문학이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원래 영화 <서편제>의 원작은 소설 <서편제> 한 편이 아니라 앞에서 열거한 세 개의 단편소설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각기 따로 떨어진 작품들이 아니라 <새와 나무> <다시 태어나는 말>이라는 제목의 작품들까지 합해서 모두 다섯 편의 연작으로 꾸며진 연작소설집 <남도사람>(1988)의 일부를 이룬 것들이었다. 임권택 감독은 이 가운데 영화로 ‘번역’하기 쉬운, 다시 말해 자신의 취향에 맞게 가감하기 쉬운 세 편만을 ‘적발’해서 <서편제>라는 화제작을 탄생시켰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보면 이 <남도사람>은 이청준 문학 쪽에서 보면 <언어 사회학 서설>(1977)이라는 또 다른 연작창작집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래도 영화가 된 쪽은 <남도사람> 쪽이지 <언어사회학 서설> 쪽이 아니었던 까닭은 아무래도 <남도사람>이 드라마타이즈(dramatize)하기 쉬운 요소들을 다량으로 함유하고 있었던 데 있다.



인간의 노래이자 생활의 노래
이런 사정은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서도 예외가 없다. 그 역시 <벌레 이야기>에 상당한 ‘작가적’ 삭감과 첨가를 가했는데 이것은 물론 영화감독의 창조적 권한 사항이다. 아무튼 <벌레 이야기>는 어떤 ‘희생’을 거쳐 영화라는 새로운 창조의 영역에 수용된 것이다.

여기서 한번 제기해볼 만한 문제가 있다.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이청준씨의 소설들만이 이토록 빈번하게 영화화되는 것일까? 김수용 감독의 <병신과 머저리>, 정진우 감독의 <석화촌>, 김기영 감독의 <이어도>, 이장호 감독의 <낮은 데로 임하소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축제> <천년학>, 그리고 이창동의 <밀양>까지. 우리는 작가 이청준의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 상당히 긴 목록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이청준 문학이 가진 보편적, 공통적 사상과 감정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옛 작가 이효석은 <화분>(1939)이라는 장편소설에서 하얼빈으로 떠나는 피아니스트 영훈이라는 인물을 등장시킨다. 그는 두 개의 웅대한 곡을 작곡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탄생, 싸움, 운명, 죽음”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노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름다운 것, 사랑, 행복, 잔치, 고독, 슬픔, 사상” 등으로 이루어진 ‘생활의 노래’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주제들을 “전 인류의 것” “동양의 것이며 동시에 구라파의 것이요, 구라파의 것이며 동시에 동양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가장 보편적이고 타당한 인류의 감정”에 호소하려고 한다.

이청준 문학이 바로 그렇다. 그의 문학에는 한국적인 표지를 붙여 만족할 수 없고 충당할 수 없는 인류 보편적 가치로 통하는 사상과 감정이 숨쉬고 있음이 인정된다. 우리는 이미 <서편제>나 <축제> 같은 작품에서 이것을 확인한 셈 아니던가?

<밀양>의 원작이 된 <벌레 이야기>는 분량으로 보면 크지 않은 작품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독자들로 하여금 인간의 생명과 죽음, 용서나 종교의 의미 같은 근본적인 문제로 시선을 돌리게 하는 깊은 작가적 역량이 투여되어 있다.

과연 종교적 믿음이 아들을 잃어버린 엄마의 고통을 거두어들일 수 있을까? 종교를 가진 사람들, 특히 기독교에 심취한 사람들은 단박에는 아닐지라도 이것을 수긍할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묻는다. 종교라는 것이 과연 삶의 일회적(一回的) ‘본질’에서 오는 인간의 비애를 가라앉혀줄 수 있는가? 또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진실’이 가져다주는 재생의 힘이 될 수 있는가?

기독교적 일원론의 견지에서 보면 삶은 신에게 귀의하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신의 의지를 따라 주인의 뜻이 무엇인지 탐구하려는 노예처럼 자비를 갈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다소 부정적으로 묘사된 종교적 세계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손에 죽음을 당한 아이의 엄마를 향해 신의 은총을 빌면서 사형을 받아들인 유괴범과 고통 속에서 신을 잃어버린 아이 엄마의 비극적인 ‘대결’은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근본적 문제를 제기한다.

보편과 공통을 향해 비약하다
실로 인간은 태어나 성장하여 사랑하고 죽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청준 문학은 이 근본적인 주제를 인간사 속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변주해나간다. 우리의 영화감독들은 비상한 사람들답게 이렇게 보편과 영원으로 통하는 이청준 문학의 가치를 간파한 것이리라.

이청준 문학은 드라마타이즈됨으로써 한국어와 한글이라는 언어문자 체계의 고립적 한계에서 벗어나 영어로 번역되지 않고도 세계에 널리 알려질 수 있는 ‘문학’이 된다. 동시에 언어적 숨결의 독특한 가치는 상실하고 만다. 그러나 이것을 아쉬워만 하지는 않기로 한다. 한국 문학에서도 영화처럼 보편과 공통을 향한 비약이 오래전에 이미 시작되었고 진전되고 있기 때문이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07. 0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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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26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낮은데로 임하소서 한권밖에 안 읽었지만...
인상깊었습니다. 요즘 소설들과는 다르다는 느낌이었어요.

로쟈 2007-06-27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배로는 아마 60년대 작가군에 들어가시니까요...
 

학기말에다가 밀린 일들이 겹쳐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이럴 때는 머리나 손가락보다 엉덩이가 공부한다는 말이 딱 맞지만 그간에 그쪽으론 살이 붙지 않았나 보다. 진득하게 붙어있질 못하는 걸 보면. 잠시 간식 타임에 뉴스기사들을 읽어보다가 이탈리아 감독 마르코 벨로치오(1939-)의 영화 <굿모닝, 나잇>(2003)에 관한 리뷰를 옮겨온다('벨로키오'라고도 표기돼 있다).

국내에 개봉 예정인 것인지(아니면 개봉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감독도 생소하다) '붉은 여단'이란 말을 오랜만에 접하게 됐다(영화속 사건은 1978년에 일어난 것인데, 따져보면 그때 감독이 지금의 내 나이이다). 한때는 TV에서도 자주 접하던 말이었는데, 어느새 30년이 지난 얘기라고?!.. 

참고로 세계 3대 테러조직으로 불렸던 "붉은여단은 이탈리아의 극좌파 비밀 테러 조직으로 1970년대초 납치·살인·사보타주 등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들의 목적은 이탈리아란 국가를 서서히 소멸시키고 혁명적 프롤레타리아들이 주도하는 마르크스적 대혁명으로의 길을 예비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붉은 여단의 창설자는 레나토 쿠르치오로서, 그는 1967년 트렌토대학교에서 처음으로 좌파사상단체를 만들어 카를 마르크스, 마오쩌둥, 체 게바라와 같은 인물들의 사상을 연구했다. 1970년 11월 붉은 여단은 밀라노에 있는 공장과 상점에 폭탄을 투척함으로써 그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1971년의 납치테러를 시작으로 1974년 토리노의 반(反)테러대 총지휘관 및 대원들을 살해하기 시작했으며, 1978년 이탈리아의 전(前) 총리 알도 모로를 납치하여 살해했다. 붉은 여단의 총책임자인 쿠르치오는 1974년 체포되었다가 1975년 탈출, 1976년 재생포되었다. 1981년 12월에는 NATO소속 미군인 제임스 도지어 준장이 붉은 여단에 납치되어 42일 동안 감금되는 사태도 벌어졌으나, 후에 그는 파도바의 붉은 여단 은신처를 급습한 이탈리아 경찰에 의해 무사히 구출되었다.

붉은 여단이 최전성기를 누리던 1970년대에는 정회원이 400~500명에 이르렀고, 그밖에 1,000여 명의 회원이 이들을 정기적으로 도와주었으며, 수천 명의 후원자들이 자금과 정보전달의 수단 및 은신처를 제공했다. 조심스럽고 체계적인 경찰의 검거작전에 의해 1970년대 중반부터 붉은 여단의 지도자들과 평회원들이 체포·감금되기 시작했으며 1980년대말에 이르러서는 그 조직이 대단히 약화되었다."

오마이뉴스의 기사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195500 도 참조할 만하다. 

프레시안(07. 06. 24) 영화는 종종 핏빛 역사의 교훈을 들려준다

베니스영화제에 마르코 벨로치오가 새영화를 내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언제 때 마르코 벨로치오래? 베르톨루치와 동시대 사람이잖아. 그 사람, 아직 거기서는 작품을 만드는 모양이네. 근데 무슨 영화라구? 알도 모로? '붉은 여단' 얘기? 웬 '붉은 여단' 얘기래? 30년이나 지난 얘기잖아.
  
70년대 중후반이니 아마도 중학교를 다닐 때쯤이었을 것이다. 정치의식이 전혀 없었던 나이임에도 알도 모로 수상이 참혹하게 살해돼 발견됐다는 뉴스가 꽤나 시선을 사로잡았던 모양이다. 알도 모로와 '붉은 여단'이라는 이름이 각인돼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래서일까. '붉은 여단' 얘기라는 벨로치오 감독의 새영화 <굿모닝, 나잇>은 DVD를 받아들고도 그것을 보기까지 사나흘이 걸렸다. 마치 불쾌했던 기억은 다시 들추고 싶지 않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영화는 복잡한 구조로 돼있지 않다. 겨우 4명에 불과한 '붉은 여단' 조직원이 알도 모로 전 수상을 유괴,납치해 제멋대로 프롤레타리아 재판을 한 후 50여일간을 억류해 놓고 있다가 결국 살해한다는, 역사적 사실 그대로를 재현하고 있다. 드라마적 구성이라곤 이 얘기 전체를 납치극에 참여한 20살짜리 여성 키아의 시점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것 정도다. 그렇지 않았으면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웠을 만큼 밋밋하고 평면적이다.

당시 사건에 대해 극도로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려는 벨로치오 감독의 태도가 느껴진다. 벨로치오는 이탈리아에서 과거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는 좌파 감독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종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상업영화 감독으로, 다분히 우향우의 자세로 변신을 한 것과 비교되곤 한다. 베르톨루치처럼 우파로 변절하기 보다는 벨로치오처럼 좌파임을 반성하는 것. 어느 쪽이 더 맞고 또 옳은지는 각자가 판단할 문제다.
  
영화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어 신세대 관객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당시 '붉은 여단'이 알도 모로를 납치한데는, 그가 유럽 정치인으로서는 거의 최초로 좌우 코아비타숑, 그러니까 좌우 합작정부를 구성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기독민주당 당수로 합리적 우파의 대표주자였던 그는 이탈리아 공산당과 손을 잡고 갈라진 국론을 봉합하려 애썼다. 그래서 일부 우파로부터는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었으며 또 일부 좌파로부터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본질을 희석시키는 우파기회주의의 전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 와중에 '붉은 여단'이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여론의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채.


  
당시 '붉은 여단' 사건은 역설적으로 좌파 맹동주의와 극단적 공산주의자를 솎아내는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운동의 몰락을 재촉하는 길이 되고 말았다. 구구절절 이런 얘기는 다 필요없고, 벨로치오는 왜 지금에 와서 케케묵은 당시의 사건을 들춰내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일까. 세상 곳곳에서 지금 갖가지 테러가 자행되고 있고, 그럴 때마다 정치적 이유와 이념적 명분이 앞세워진다. 테러를 자행하는 자들이나 거기에 복수하는 자들이나 모두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을 뿐이다. 벨로치오가 얘기하려고 한 것은 바로 그점이 아닐까.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굿모닝, 나잇>같은 영화가 더 나은 정치인과 지도자를 선택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영화는 종종 과거로의 여행을 안내하며 여행길은 늘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는 법이다.(오동진 편집장) 

07. 06. 25.

P.S. 알고보니 작년 가을 끝자락에 한겨레에도 영화의 리뷰가 실렸었다. 짐작에 영화는 작년 그맘때 개봉됐었나 보다. 한겨레와 씨네21의 기사까지 옮겨놓는다(벨로치오의 영화세계 전반을 정리해주고 있는 씨네21의 기사가 유익하다).

한겨레(06. 11. 29) 흔들리는 레지스탕스의 서글픈 초상

1977년 말 로마의 한 아파트, 어느 신혼부부가 부동산 중개업자의 안내를 받고 있다. 새를 키울 만한 정원이 있고, 적당히 널찍한 침실과 부엌이 있으며, 거실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스며드는 곳. 얼핏 평온한 삶의 안식처처럼 보이나 실은 극좌파 무장세력 ‘붉은 여단’의 아지트가 될 공간이다. 신혼부부로 위장한 남녀는 급진적 혁명노선을 함께 걷는 동지이며, 이들 외에도 두 남자가 더 숨어들어 위험한 미션을 수행한다. 새해가 밝아오고 온 거리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일 때조차 이들에겐 사치스러운 감정을 나눌 여유가 없다. ‘노동자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거사(巨事)를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가 본격적인 아지트 역할을 시작한 것은 1978년 3월16일, 붉은 여단 멤버들이 전 총리이자 기독민주당 당수 알도 모로(로베르토 헬리츠카)를 납치하는 데 성공하면서부터다. 이날은 알도 모로가 공산당과 우파 여당 5당을 연합한, 연립내각이 승인되는 날이다. 알도 모로. 시민들에게는 두터운 신망을 얻고 있는 여당 당수지만, 붉은 여단에는 보수정치세력을 대변하는 반동주의자이자 수정주의자일 뿐이다. 단원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이름으로 처형한다”는 명목하에 모로를 아파트에 감금하고, 정부와 교황을 상대로 요구조건을 제시한다. 그러나 협상에 실패하고 국민의 비난만 거세지자, 그토록 견고했던 신념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굿모닝, 나잇>은 이탈리아의 거장이자 대표적인 좌파 감독 마르코 벨로키오의 2003년작으로, 그해 베니스영화제가 ‘미래의 영화상’과 각본상으로 화답했던 작품이다. 함께 이탈리아 영화계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에 비해 벨로키오는 고집스럽게 계급과 정치를 영화의 중심으로 삼아왔다. <굿모닝, 나잇> 역시 감독 개인의 정치적 성향과 정신분석이라는 화두를 관통한다. 거친 화면의 뉴스릴과 픽션이 교차하는 이 영화는, 1978년 이탈리아 전 총리 알도 모로가 납치됐다가 55일 만에 암살당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이탈리아인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을 역사적 트라우마지만 감히 입 밖에 내기 어려웠던 민감한 기록들을, 벨로키오는 대담하게 끄집어낸다.

그러나 벨로키오의 관심은 역사의 한 자락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데올로기와 평범한 일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붉은 여단의 흔들리는 표정에 더 주목한다. 그중 유일한 여성 단원 키아라(마야 산사)는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인물이다. 자유의 대안은 과연 죽음인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신념이 현 이탈리아사회를 구원할 수 있을까? 혹은 혁명이라는 명분으로 사람을 죽일 권리가 있을까? 벨로키오는 섣부른 도덕적 판단 대신 이런 질문들을 통해 조용하지만 파장이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제목 ‘굿모닝, 나잇’은 19세기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 <Good Morning… Midnight>에서 가져온 것. 극중 키아라의 동료 엔조(파올로 브리구글리아)가 테러리스트들을 소재로 쓴 시나리오 제목이기도 하다. 엔조는 건조하게 살아가는 키아라를 자극하는 인물로, 일상생활이 전혀 없는 붉은 여단 멤버들을 비난한다. 바깥세상의 사람들 역시 수군댄다. “붉은 여단은 혁명활동을 하지 않을 때 포르노영화를 볼 것”이라고. 이들의 지적은 과장된 말이 아니다. 붉은 여단은 모로를 가두고 감시하는 동시에, 자신들 역시 모로와 함께 감금된 자들이다. 아파트가 그들의 유일한 세상이고,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뉴스만이 세상과의 유일한 통로가 되는 것이다.

키아라는 “상상력이 현실을 구하진 못한다”고 믿고 있지만, 그녀가 그토록 굳게 믿었던 이데올로기 역시 현실을 구하지 못했다. 미묘하게도 그녀는 감시 구멍을 통해 모로의 늙고 지친 모습을 목격한다. 예정된 죽음을 기다리는 모로는, 키아라에게 적이기 이전에 인간의 존엄을 일깨워주는 존재로 변모한다. 동시에 ‘혁명’이라는 명분으로 살인을 정당화하려는 자신의 동지들과 ‘그의 동지들’에게 버림받은 모로 사이에서, 키아라는 점점 정신분열에 가까운 판타지에 시달린다. 이를테면 파시스트들에 대항하다 죽은 키아라의 아버지가 등장한다거나, 모로가 감금에서 풀려나 유유히 걸어나가는 장면들이다. 이제 키아라가 꿈꾸는 것은 혁명적 투쟁 이전에, 인간성이 회복된 세상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녀가 꿈꾸는 판타지가 한낱 백일몽에 지나지 않음을, 냉혹하게 보여준다. 총성이나 끔찍한 구타장면 하나 없이 흔들리는 현실을 잡아낸 벨로키오의 연출솜씨는 놀랍다. 이웃집 여자나 지역 사제의 예기치 않은 방문, 좀도둑들의 침입 등은 언뜻 히치콕 스타일의 스릴러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침묵 속에 감도는 긴장감, 서늘한 시선 속에 감지되는 뜨거운 열기는 어떤 장르적 장치만으로 연출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벨로키오는 대사나 동선을 절제하는 대신 이미지와 음악(핑크 플로이드의 터질 듯한 사운드와 슈베르트 협주곡의 대비!)의 절묘한 조합 또는 배우들의 떨리는 눈동자만으로 짙은 후유증을 남기는 경지에 이르렀다. 테러리즘에 대한 공포가 극도에 달한 포스트 9·11 시대, 그 후유증은 좀처럼 쉽게 가시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굿모닝, 나잇>은 철저하게 감성에 호소하는, 기묘한 정치스릴러다.(글 신민경)

씨네21(06. 12. 14) 마르코 벨로키오의 영화세계와 <굿모닝, 나잇>

자유를 염원하는 사형수들의 노래

이탈리아 영화계는 60년대 들어 두명의 ‘천재감독’을 동시에 배출하는 호사를 누린다. 불과 23살의 나이로 <혁명전야>(1964)를 만든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와 바로 1년 뒤 26살의 나이로 데뷔작 <주머니 속의 주먹>을 발표한 마르코 벨로키오가 그 장본인들이다. 두 사람 모두 당시 유럽의 들끓었던 사회변혁 열기를 대변하는 좌파 경향의 젊은이들이었다.

두 젊은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60년대 정치영화의 수작들을 연이어 발표했다. 이들이 데뷔할 때, 선배 격인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마르코 페레리 등이 이데올로기적 주제가 강한 사회비판영화들을 발표하며 이탈리아 영화계의 좌파 전통을 계승하고 있었는데, 두 젊은이는 그런 전통을 계속 이어갈 인재들로 인식됐던 것이다. 이탈리아는 2차대전이 끝난 뒤, 방송은 우파가, 그리고 영화는 좌파가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는 전례를 남겼고, 이는 지금도 이 나라의 문화전통으로 남아 있다.

정치적 리얼리즘을 고집한 작가

베르톨루치가 <순응주의자>(1970), <거미의 계략>(1970) 등을 발표하며 보수우파의 억압과 허위를 비판했다면, 벨로키오는 <아버지의 이름으로>(1971), <괴물을 1면에 실어라>(1972) 등을 발표하며, 그런 우파의 이데올로기가 형성되는 과정에 더욱 주목했다. 다시 말해,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통용되는 가치관들이 도대체 어떻게 생성되고 재생산되는지 세밀하게 관찰하는 식이다.

아마 알튀세르가 살아 있다면, 자신이 주장했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성격을 추적하는 영화로 벨로키오의 작품들에 큰 관심을 보였을 것이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우리의 가치관을 재생산하는 대표적인 제도가 바로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라고 불리는 가족, 학교, 교회 등인데 벨로키오는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그런 제도 속의 인간관계를 질문해왔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는 배타적인 관계 속에 갇혀 있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이 거의 차단된 자기들만의 공간에서 존재의 모순에 빠지는 운명을 갖고 있다. 그런 공간의 상징은 가족이다. 그의 정치영화가 특별히 ‘가족 정치드라마’라고 불리는 까닭도, 바로 그의 영화에 가족관계가 표나는 상징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68년 이후 베르톨루치는 정치적 테마에서 한발 벗어나, 에로티시즘과 정치를 뒤섞는 센세이셔널한 작품들로 자신의 작품 방향을 바꾸었다. 반면에 벨로키오는 여전히 정치적 색깔이 강렬한 작품들에 집착했다. 68년 이후 유럽에서는 이미 ‘잔치는 끝났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는데, 계속해서 정치적 리얼리즘에 주목한 벨로키오는 교조적인 인물로 비치기 쉬웠다. 벨로키오는 이런 전투적인 좌편향 성향 때문에 외국에서는 더욱더 무명으로 남았다. 1987년 베르톨루치가 좌파적 시각에서 보자면 변절에 가까운 <마지막 황제>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며 전세계적인 스타 감독으로 부상할 때, 벨로키오는 이념에 집착하는 한물간 고집쟁이처럼 비치기도 했다. 바야흐로 두 경쟁자의 승부는 한쪽으로 아주 유리하게 진행됐던 것이다.

유럽 영화계에서 서서히 잊혀져가던 벨로키오가 다시 재발견된 데는, 프랑스 영화인들의 관심이 큰 구실을 했다. 1997년 칸영화제는 <홈부르크의 왕자>를 경쟁부문에 초대, 이탈리아 본국에서도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던 노감독의 건재를 다시 전세계에 알렸다. 딱딱한 정치영화일 것으로 짐작한 영화인들은 벨로키오가 보여준 꿈과 몽유병에 관한 경쾌한 역사 코미디물을 보고 노장의 능란한 솜씨와 품위에 다시 매력을 느끼게 된다. 칸영화제쪽은 이 작품에 이어 연속해서 두 작품을 다시 경쟁부문에 초대한다. 90년대 이탈리아 영화계의 대표주자는 틀림없이 난니 모레티인데, 이때의 분위기로 보자면 이탈리아의 진정한 ‘작가’ 감독은 단연 마르코 벨로키오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두 작품은 <유모>(1999)와 <종교시간>(2002)이다.

<굿모닝, 나잇>이 진정성을 확보한 이유

특히 <종교시간>은 죽은 어머니가 바티칸에 의해 성녀로 추대되는 과정을 놓고, 그 가족들이 보여주는 갈등과 가치관의 모순을 마치 명상하는 종교화처럼 묘사해 벨로키오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치에 접근한 작품으로 종종 해석됐다. 다시 돌아온 노장의 발걸음은 더욱 당당해졌고, 또 그를 기다리는 이탈리아 관객의 마음도 자긍심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이런 기대감을 충족시켜줄 작품으로 발표된 게 바로 <굿모닝, 나잇>(2003)이다. 제작단계부터 다루는 내용 때문에 세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알려진 대로 이 영화는 이탈리아인들이 기억에서 영원히 지우고 싶어하는 70년대 테러리즘의 대표적인 사건인 알도 모로 전 총리의 납치와 살인에 관한 이야기다.



아마 벨로키오가 좌파의 대표적인 인물이 아니었다면, 그 누구도 이 영화의 진정성을 믿지 못할 것이다. 당시 모로 전 총리를 죽인 인물들은, 별 모양으로 상징되는 극좌파 테러리스트 ‘붉은 여단’의 멤버였기 때문이다. 사건의 가해자가 어쨌든 좌파인데, 좌파의 대표적인 감독인 벨로키오가 그 사건을 다룬다고 하니 자기 성찰의 엄숙한 분위기마저 느끼게 된 것이다.

모로는 이탈리아 정치사에서 최초로 좌우합작의 연정을 이끌어낸 탁월한 협상가였다. 우파인 기독교민주당 리더인 그는 당시 엔리코 베르링게르가 이끄는 제2의 정당 이탈리아공산당에 권력의 일부를 양도하여 좌우가 함께 정부를 책임지는, 대단한 정치실험을 단행했다. 그래서 그는 노련한 정치가로 추앙받기도 했고, 동시에 우파로부터는 빨갱이와 놀아난 배신자로, 좌파로부터는 무산계급을 현혹하는 악마와 같은 존재로 해석되기도 했다. 그가 총리에서 물러나 기독교민주당의 리더로서만 활동하고 있을 때, 그는 납치됐고, 또 2개월 뒤 살해됐던 사건이 바로 이 영화의 주요 내용이다.

이탈리아 영화계는 이런 민감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리얼리스트 감독이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감독 본인이 그 시절을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아남은 장본인이 아닌가. 그래서 벨로키오의 리얼리즘은 진정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고, 요즘은 이런 감독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2001년의 뉴욕 사건 이후 세계의 관심은 테러리즘에 쏠려 있었는데, 모로 사건을 다루는 테러리즘 영화가 발표되어 이탈리아 좌파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도 없지는 않았다. 좌파들은 붉은 여단과 자신들과의 관계를 시종일관 부정하지만, 시민들은 반드시 그렇게만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모로의 납치와 살해에 이르는 약 두달간에 한정돼 있다. 붉은 여단의 네 멤버 중 여성인 키아라(마야 산사)와 에르네스토(감독의 아들인 피에르 조르지오 벨로키오)는 부부로 가장하여 아파트를 하나 빌린다. 다른 두 멤버는 리더인 마리아노(루이지 로 카시오)와 행동대원 프리모(조반니 칼카뇨)이다. 1978년 3월16일 이들은 로마 시내에서 총격전을 벌인 끝에 5명의 경찰과 경호원을 살해하며 알도 모로 전 총리를 납치하는 데 성공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이름으로 부르주아의 상징인 전 총리를 납치했으며, 프롤레타리아의 재판에 따라 모로에겐 사형이 언도됐다. 이들은 자신들이 빌린 아파트에 밀실을 만들어 모로를 감금한다. 단, 감옥에 갇혀 있는 붉은 여단의 동료들을 석방한다면, 전 총리의 목숨도 협상 가능하다는 여지는 남겨둔다. 전세계의 자유국가가 경악했던 납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자신들의 신념에 갇힌 죄수들

자그마한 노인으로 나온 알도 모로(로베르토 헤를리츠카)가 화면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낼 때 이탈리아의 관객은 경악했다. 모습도 그렇지만, 분위기가 죽은 모로와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바싹 마르고, 지적이며 예민하고 불안한 눈빛 등 과거의 그를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한 배우였다.

납치범들은 여전히 그를 ‘총리’(이탈리아어 대사로는 ‘프레지덴테’인데 영어의 President에 해당하는 말로, 이탈리아에선 총리를 그렇게 부른다. 말 그대로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이므로)로 부르고 예우하며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하나씩 공개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뭔가 어긋나기 시작하는 게, 이들 납치범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시민 대중에 의해 찬양받을 줄 알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신문, TV를 보니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거사’에 기뻐하지 않으며,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지지 성명서를 발표하는 단체 하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이탈리아공산당 당수 베를링게르가 나와, 이들의 행동을 테러리즘으로 간주하고, 이들을 멍청한 살인자라고 비난하는 대목에선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같은 불안감이 밀려들기도 한다. 극단주의 좌파들은 베르링게르를 우파와 타협한 변절자라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좌파들은 그를 자신들의 친구이자 영웅으로 대접했다. 다시 말해, 좌파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베르링게르에게 비판받는다면 이들은 고립된 소영웅주의자로 몰리기 십상인 것이다. 벨로키오의 인물들이 늘 그렇듯 붉은 여단 멤버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맹신하며, 불행하게도 타인의 다른 생각에는 별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 테러리스트 리더인 마리아노는 “우리는 신념에 따라 항상 죽을 준비가 돼 있다”고도 말한다. 모로는 “당신들 코뮤니스트들 이전에 기독교인들이 그랬지(신념에 따라 죽었지)”라고 답하며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감지한다.



신념에 의해 혹은 대의에 의해 자신들의 목표를 행동에 옮겼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음 한구석에선 모순의 갈등이 밀려오는 것으로 영화는 전환점을 맞는다. 그 모순의 상처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은 유일한 여성대원인 키아라다. 레지스탕스의 딸로, 그녀의 아버지도 극우 파시스트들에게 죽음의 공포에 늘 위협받으며 살았다. 아버지가 딸에게 읽어주던 책이 하나 있었는데, 파시스트들에게 사형선고를 받은 빨치산 대원들이 아내와 연인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들이다.

붉은 여단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은 알도 모로도 아내에게 마지막이 될지 모를 편지를 쓰고 있고, 키아라는 자신의 아버지처럼 빨치산 활동을 하다 비참하게 죽어간 사람들이 남긴 편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키아라는 모르긴 몰라도 그 슬픈 편지들을 읽으며 수없이 눈물을 흘렸을 테고, 우파 파시스트들의 잔인함과 완고함에 치를 떨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자신과 자신의 동료들이 결과적으로는 과거의 파시스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순을 느낄 때면 키아라는 환상을 보곤 한다. 흑백의 환상은 레닌 시절과 스탈린 시절의 민중의 모습, 그리고 바다 위에서 사형집행을 당하는 빨치산 대원들의 비참한 모습들로 이어진다. 핑크 플로이드의 <샤인 온 유 크레이지 다이아몬드> 연주에 맞춰 보여지는 잔인한 다큐멘터리풍 화면들은 붉은 여단의 행위가 결코 일방적인 것이 아니며, 저들 파시스트들은 더욱더 악질적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키아라는 자신의 행위에 자긍심을 느끼기는커녕 더욱더 도덕적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천부의 자유에 대한 염원

어쨌든 영화는 테러리스트의 입장에서 서술됐다. 이들은 명백히 한 정치가를 납치하고 살해했는데, 그들의 행위를 파시스트들의 원죄와 연결하여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우파들이 불편해하는 점이 바로 여기다. 감독이 좌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폭력분자들에게 동정심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감독은 붉은 여단의 신념을 완고한 어리석음이라고 (자기)비판을 하며 일정한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그럼에도 <굿모닝, 나잇>은 좌파의 시각에서 서술한 최고의 정치드라마로 남을 것 같다. 감독은 쉬쉬하며 감추고 있던 부끄러운 부분을 과감히 드러내어 자신들의 과거도 한때는 맹신주의로 치달을 때가 있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키아라의 눈물은 자기반성에서 나온 연민의 결과물로 보인다. 그녀의 환상 속에서, 죽은 알도 모로가 유령처럼 밀실에서 빠져나와 슈베르트의 <악흥의 순간>에 맞춰 발걸음도 가볍게 거리를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우리 모두의 ‘천부의 자유’에 대한 염원으로 해석해도 괜찮을 것 같다.(한창호 영화평론가)

P.S.2.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붉은 여단 T셔츠를 판매하는 사이트도 눈에 띈다(여성용과 아동용까지 있다). 혁명뿐만 아니라 테러도 판매된다는 건 더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새로운 지향보다도 먼저 필요한 것은 새로운 반성이 아닐까 싶다...

P.S.3. 붉은 여단과 관련하여 떠올릴 수 있는 또 다른 이름은 안토니오 네그리이다. 작년에 출간된 그의 자전적 대담 <귀환>(이학사, 2006)은 "붉은 여단이 저지른 이탈리아 전 수상 알도 모로의 납치ㆍ살해를 배후조종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1979년 체포수감된 이후, 1983년 프랑스로 망명해 1997년 이탈리아로 돌아오기까지 그의 파란만장한 경력을 웅변"하는 책이기에 그러하다. 실제 대담에서 네그리는 자신이 붉은 여단에 깊이 공감했지만 암살활동에는 반대했다고 말한다. 붉은 여단 내부에도 강경파와 온건파가 있었다는 얘기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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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자님과의 댓글
    from to be immortal 2007-06-27 01:28 
    알도 모로, 몇 년 전, 이 사건의 내막을 정리해 본 일이 있는지라 좀 재있는 논쟁을 헤보고 싶었으나 잘 안된다. 가설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nbs...
 
 
퍼그 2007-06-25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이 추천하신 <<사랑의 지혜>>에도 붉은 여단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로쟈 2007-06-25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8년 이후의 좌파를 다룬 책들에서도 심심찮게 언급은 됩니다. <사랑의 지혜>는 이미 8-9년전에 읽은 책이 돼 버렸네요...

쿠자누스 2007-06-27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도 모로> 납치극이 벌어질 때 로마 시내의 전화 통화는 두절되었습니다. 모로가 납치된 곳을 알리는 수많은 제보가 있었으나 무시되었고요. 붉은 여단의 핵심에는 나토 비밀 부대 요원들이 침투해 있었음을 붉은 여단 생존자가 폭로했고 그 비밀 부대의 존재는 1990년 안드레오티 총리가 이탈리아 국회에서 증언한 바 있습니다.

비슷한 사건이 독일에도 있습니다.독일이 통일되던 무렵, 도이체방크 총재 <헤어하우젠>이 피살되고 독일 극좌테러단 '적군파'가 '3세계 민중의 착취차'를 징벌하는 차원에서 암살했다는 편지를 남겼는데 그는 암살되기 직전 독일과 소련이 손잡은
'동구 경제 부흥', '제3세계 채무 면제'를 주장하여 IMF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었지요.

이 두 사람의 프로젝트가 실현되었다면, 냉전 이후 유럽 한복판 발칸에서의 전쟁도
10년 전 러시아, 아시아, 남미를 흽쓸은'외환 위기'도,
<유럽연합>이 카지노 자본의 독재기구로 굳어지는 오늘의 사태도 없었을 겁니다.

유럽의 극좌 테러단이란 앵글로 색슨 헤게모니, 카지노 자본주의에 반기를 든 정치, 경제 요인들을 제거하고 좌파 사회 세력을 분쇄하는 비밀공작을 위장하는 데 이용된 별동부대 (유령 조직)입니다. 21세기 '반테러 전쟁'의 구실이 된 '알 카에다'는 그 후발 조직이라 보면 될 것입니다.


로쟈 2007-06-26 0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그리도 몰랐던 내용이군요...

쿠자누스 2007-06-26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그리가 몰랐을까요?

납치극의 미스테리를 추적한 저널리스트는 1979년 암살되었고
국가헌병 장군 Chiesa는 모로가 잡혀 있던 곳을 파악, 내무장관에게 보고했으나
'작전 불가'라는 명령을 받은 후 1982년 암살되었고
모로는 <붉은 여단>에게 잡혀 있을 때 나토의 비밀 작전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고 합니다 ->

Investigative journalist Mino Pecorelli thought that Aldo Moro's kidnapping had been organised by a "lucid superpower" and was inspired by the "logic of Yalta".

He painted the figure of General Carlo Alberto Dalla Chiesa
as "general Amen", [...] that

it was him that, during Aldo Moro's kidnap, had informed Interior Minister Francesco Cossiga of the localization of the cave where Moro was detained.

But he would have been ordered not to act on his information,
because of the opposition of a "lodge of the Christ in Paradise."

Pecorelli then wrote that Dalla Chiesa was in danger and would be assassinated (Dalla Chiesa was murdered four years later).

After Aldo Moro's assassination, Mino Pecorelli published some confidential documents, mainly Moro's letters to his family.
In a cryptic article published in May 1978, wrote The Guardian
in May 2003,

Pecorelli drew a connection between Gladio, NATO's stay-behind anti-communist organisation (which existence was publicly acknowledged
by Prime Minister Giulio Andreotti in October 1990) and Moro's death.

During his interrogation, Aldo Moro had referred to "NATO's anti-guerrilla activities."

Mino Pecorelli, who was on Licio Gelli's list of P2 members
discovered in 1980, was assassinated on March 20, 1979.

The ammunitions used for Pecorelli's assassination, a very rare type, where the same as discovered in the Banda della Magliana 's weapons
stock hidden in the Health Minister's basement.


-> http://www.guardian.co.uk/print/0,,4665179-105806,00.html

로쟈 2007-06-26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사대로라면, Fasanella 등이 모로 사건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유럽의 극좌 테러단이란 앵글로 색슨 헤게모니, 카지노 자본주의에 반기를 든 정치, 경제 요인들을 제거하고 좌파 세력을 분쇄하는 비밀공작을 위장하는 데 이용된 별동부대입니다"라는 결론으로 귀결되는 것인가요? 네그리는 또 거기에 한몫하구요? 모두가 다 아는 '음모'도 여전히 '음모'인가요?..

쿠자누스 2007-06-27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BC가 1992년에 방송한 기록 영화를 보셨나요? ->
http://www.youtube.com/watch?v=l2MOpkriXb4&mode=related&search=

여기서 보시다시피 단순한 의혹이 아니라 '극좌파 테러'의 '공식 버전'을 100 % 뒤집는 증언과 증거가 나왔기 때문에 그런 결론을 낼 수 있는 것이지요. 네그리가 거기에 한몫을 했느냐 하는 건 그 자체로 흥미로운 질문이 되겠지요. BBC가 아는 걸 네그리가 모른다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1974년 육영수 저격 사건이라든가 1987년 KAL기 실종 사건이라든가 2001년 9.11 테러라든가 2003년 앵글로 색슨의 이라크 침공이라든가 2005년 7.7 런던 테러라든가 2007년 4.16 버지니아 공과 대학 사건이라든가 모두가 다 아는 음모는 음모가 아닌가요 ?

로쟈 2007-06-26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겠습니다. 전부 4.16사건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네요...

쿠자누스 2007-06-27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히 납치현장의 정황이 4.16과 비슷합니다.

버지니아에서는 아무런 증거가 없지만 정신병자 하나가 강의실 다섯 군데를 돌아다니며 순식간에 30명을 죽이고 28명을 부상시키고 자살했다는게 공식 버전입니다. -> http://cafe.naver.com/416911/284

로마에선 <붉은 여단>에 유별난 저격수가 없었고 심지어 누구는 방아쇠 당기는 것도 벌벌 떨었다는데 자동차 안의 모로는 부상도 당하지 않고 나머지 다섯 명만 즉사했지요. 그 정도 정밀 사격은 불가능하다고 <붉은 여단> 두목이 증언했구요.

현장에서 수거된 탄피 93 개 중에 절반쯤은 나토 군에서 사용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 Fünf Leute im Auto wurden getroffen. Moro selber blieb unverletzt: Der BR-Chef Moretti gab Jahre später im Wortlaut zu Protokoll, dass es „mit der militärischen Präzision der BR nie weit her gewesen ist“, bei dem Aktionsablauf seien „keine hervorragenden Schützen“ gewesen. Bei einem habe die Maschinenpistole gar Ladehemmungen gehabt. Trotzdem wurden, auch das wird erst Jahre später bekannt, am Tatort 93 Patronenhülsen gefunden. Knapp die Hälfte war mit militärischem Speziallack überzogen, der nur bei den Gladio-/NATO-Truppen verwendet wurde. Munition mit diesem Lacküberzug konnte man für einen längeren Zeitraum vergraben. (http://de.wikipedia.org/wiki/Rote_Brigaden)



로쟈 2007-06-26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붉은 여단 사건과 조승희 사건을 동일선상에 놓으시는 건 음모론이라기보다는 음모신학으로 여겨집니다. 만약에 그런 진실이 따로 있고, 그걸 확신하신다면 이런 댓글을 다시는 건 넌센스입니다. 다른 행동을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쿠자누스 2007-06-27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붉은 여단에 대한 저의 진술은 그럴 듯 하나 버지니아 사건과 등치하는 건 황당하다는 말씀이신가요? 두 사건의 본질, 핵심은 다르지 않다는 저의 가설을 입증하는 증거와 단서는 제가 소개한 카페에서 보실 수 있읍니다. -> http://cafe.naver.com/416911/467

진실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진실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일까요?
님에게 진실과 허구(넌센스)를 분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님의 블로그에 이런저런 정보나 저의 주장(가설)을 올려 님과 논쟁(소통)을 하는 것도 제게는 재밌고 의미있는 행동입니다.

로쟈 2007-06-27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여러 정치적 사건들이 음모/공작의 결과였다는 사실이 차후에 밝혀지곤 합니다. 하지만 모든 의혹이 음모설을 정당화하는 건 아니며, 버지니아 사건의 경우에도 '가설을 입증한는 증거와 단서'는 설득력이 부족해 보이네요. 사실 기독교신학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의 시나리오도 믿는 자의 진실이죠. 저는 맨정신으로 부활을 말하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습니다(신앙과 일상생활의 양립에 대해서도 의아하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음모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쿠자누스 2007-06-28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양'을 보면서 속이 후련했던 게, 모두가 은혜를 받아 '믿습니다'를 외치며 아우성을 치는 순간, "거짓말이야"(김 추자)가 울려 퍼질 때 였지요. '기획 테러'가 터지면 언제나 뒤따르는 '공식버전'이 활개칠 때 마다 이 노래를 퍼뜨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정보를 독점하고 왜곡하는 권력과 미디어가 퍼뜨리는 '공식버전' 치고 사실로 입증된 게 없는데도 이 터무니 없는 '공식버전'을 음모라고 부르면 '음모론자'가 되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Aldo Moro를 입력해서 해외 사이트를 검색하다 보니 별별 괴담이 다 나옵니다. 이렇게 모르고 살았나 하는 한숨밖에 나오질 않네요.버지니아 사건도 <알도 모로> 사건 처럼 국회 차원의 조사가 들어가고 내부 증언이 쏟아져 나오면 진상이 드러날텐데 아직까지는 로마에서처럼, 초기 진압 작전을 사보타지했다는 증언 하나 밖에 없네요. ( http://cafe.naver.com/416911/2 )

쿠자누스 2007-11-25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좌파' 감독이 만든 영화,
1986년 전 영화(원제: Il Caso Moro/감독: 주세페 페라라)에 비하면 완전 초딩 버전이네여.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 상황을 모르는 시청자들에겐 스릴러 영화처럼 느껴질 만한 영화다...주세페 페라라 감독은 영화를 통해서 당시 이탈리아 정치인들이나 비밀경찰, CIA까지 모두 모로가 죽기를 바랐다고 주장했다"
http://www.ebs.co.kr/Info/CyberPR/Board/HighLight_list.asp?paramdate=2007-11-25#h8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