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시름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책을 사지 못하고(쌓아놓을 공간이 없다), 읽지 못하고(마음놓고 읽을 시간이 없다) 책에 대해 쓰지 못하는(하루에도 몇 건씩 놓치게 된다) 시름이다. 그간에 벌여놓은 일들이 임계치를 넘어선 듯하다(사실 작정하면 페이퍼를 쓰는 일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란다).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조만간 '악몽'이 될 듯하다. 내가 동경하는 나라 아이슬란드(http://blog.aladin.co.kr/mramor/1338458)로 이민이라도 떠났으면 싶다("2006년 영국 레스터대 애드리언 화이트 교수가 발표한 ‘행복지도’는 178개국을 대상으로 건강(평균수명).부(GDP).교육(중등교육을 받을 가능성) 등 3가지 요소를 토대로 발표했다. ‘톱 10’에 덴마크 스위스 오스트리아 아이슬란드 핀란드 스웨덴 등 유럽 6개국이 포진했고, 미국은 23위, 한국은 102위에 그쳤다.") 일단은 '북유럽 문학이 몰려온다' 같은 기사나 옮겨놓지만 조만간 결단을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 아이슬란드...

한국일보(08. 02. 26) '살아 있는' 북유럽 문학이 몰려온다

안데르센 동화집, 입센의 <인형의 집> 정도로만 만나왔던 북유럽 문학이 최근 2, 3년새 성큼 다가왔다. 인터넷서점 알라딘(www.aladin.co.kr)의 ‘세계문학 분류’ 자료에 기초,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5개국 작품(어린이ㆍ청소년 대상작 제외)의 2000년대 출간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01~2005년 1~4건에 불과하던 번역작 수는 2006(8건), 2007년(11건)을 거치며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올해는 1월에만 5편의 장편이 나와 큰 폭의 증가를 예고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일부 국가에 편중된 해외문학 시장을 다각화하려는 출판계 전반의 움직임과 맞닿아 있다.

핀란드 소설가 아르토 파실린나(66)의 작품을 집중 소개하고 있는 솔 출판사 김지은 편집팀장은 “세계문학 시장에서 소외된 지역을 눈여겨 보던 중 파실린나를 호평하는 독일 언론 보도를 접했고, 작품 검토 후 소개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유럽 북페어에서 작가와 직접 계약했다”고 말했다.

2005년 하반기에 나온 덴마크 작가 페터 회(51)의 추리소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마음산책 발행)과 파실린나의 <기발한 자살 여행>은 출간 직후부터 독자의 호응을 얻으며 북유럽 문학 출간의 길을 텄다. 두 책은 현재까지 각각 3만여 부, 2만여 부가 팔렸다. 2000년대 소개되고 있는 북유럽 작가들은 대부분 1940, 50년대 이후 태어난 ‘젊은 현역작가’들이다. 한국계 입양아 출신으로 화제가 된 쉰네 순 뢰에스(33ㆍ노르웨이)나 페르닐라 글라세르(36ㆍ스웨덴)처럼 30대 작가의 작품도 나오고 있다. 원작 출간연도 역시 작고 작가인 크누트 함순(노르웨이ㆍ1920년 노벨문학상 수상), 이자크 디네센(덴마크), 미카 왈타리(핀란드)를 빼면 대부분이 90년대, 2000년대 작품이다.

북유럽 문학은 기존 유럽문학과 구별되는 매력을 갖췄다는 평이다. 알라딘 박하영 편집팀장은 “사변적인 프랑스 문학과 개인주의적인 일본 문학이 잘 절충된 느낌을 주는 것이 북유럽 문학”이라며 “소박하고 위트 있으면서도 삶에 대한 진지하고 지적인 사유가 담겼다는 것이 독자들의 반응”이라고 말했다. 김지은 팀장은 “다소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 인간-사회 혹은 인간-자연에 대한 속깊은 성찰 등 특유의 문학성이 한국 독자에게 어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유럽 작품을 활발히 내는 출판사들은 특정 작가에 집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솔 출판사는 파실린나, 현암사는 철학 소설 <소피의 세계>의 작가 요슈타인 가아더(56ㆍ노르웨이), 영림카디널은 아날두르 인드리다손(47ㆍ아이슬란드), 들녘은 카린 포숨(53ㆍ노르웨이), 좋은책만들기는 헤닝 만켈(60ㆍ스웨덴)의 작품을 주로 출간하는 식이다. 시장이 아직 성숙되지 않아 출판사들이 새로운 작가보다 상업적으로 검증된 작가 위주로 ‘안전 경영’을 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렇다 보니 지금의 출간작으론 북유럽 문학의 진면목을 알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재웅 한국외대 교수는 “1800년대 중반 이후 헨릭 입센(노르웨이 극작가), 게오르그 브란데스(덴마크 비평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스웨덴 극작가) 등 대문호가 대거 등장하고 20세기엔 스웨덴이 노벨문학상 시상국이 되면서 북유럽 문학은 일찌감치 세계적 반열에 올랐다”며 “현재 번역작들은 요슈타인 가아더처럼 이미 잘 알려진 작가나 헤닝 만켈 류의 인기 장르소설가의 작품에 치우쳐 희곡, 아동문학, 시, 소설 등 장르 전반에서 일고 있는 북유럽 문학의 활기를 보여주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 북유럽 언어에 정통한 번역가가 적어 구미 시장의 시각으로 선별된 영어, 독일어판 작품을 중역하는 경우가 많은 점도 현지 문학의 실상을 보여주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이훈성기자)

08. 02. 25.

P.S. 아래는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의 야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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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5 2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2-25 23:52   좋아요 0 | URL
무엇보다도 아담하고 조용하고 깨끗할 거 같아서요(물론 좀 춥겠지만). 괜찮은 도서관만 하나 있다면 거의 '천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거길 다녀오시다니!^^

2008-02-26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2-26 09:57   좋아요 0 | URL
포잡까지 해야한다면 흠, 이민은 어렵겠는데요.^^;
 

'고대 그리스에 대한 최고의 입문서'라는 책이 출간됐다. 이름이 입에 익지는 않은데, H. D. F. 키토의 <고대의 그리스, 그리스인>(갈라파고스, 2008)이 그것이다. 알고 보니 저자는 그리스 고전 비극의 번역자로도 잘 알려진 학자이다(내가 갖고 있는 옥스포드판 소포클레스도 그의 번역이다). 1951년에 출간돼 그간에 수백만 부가 팔려나갔다고 하니까 '고대 그리스'에 관한 가장 저명한 책이기도 할 듯하다. 소개기사를 옮겨둔다.

조선일보(08. 02. 23) 그리스인, 지시에 따르는 삶을 거부하다

1951년 펠리칸 총서의 하나로 발간돼 수백만 부가 팔린 고대 그리스 입문서다. 그리스의 형성, 암흑기를 거쳐 폴리스 성립, 아테네 민주정, 융성과 쇠퇴 등을 풍부하게 그려낸다. 평생을 그리스 연구에 바친 저자는 '폴리스'를 '도시국가'로 부르는 것은 나쁜 번역이라고 비판한다. 폴리스는 도시와 비슷하지도 않았고 국가와는 완전히 달랐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리스의 보통 사람들은 '일리아스'가 시작되는 장엄한 장면을 외우다시피했다. 시인, 조각가, 철학자, 과학자는 물론 농촌의 수공업자도 그랬다. "인간의 왕인 아가멤논과 위대한 아킬레우스의 첫 다툼부터 노래를 시작하라. 이들을 적으로 만든 것은 어느 신의 작품인가? 제우스와 레토의 아들 아폴론이다…."

유럽 최초의 시인 호메로스가 쓴 문학작품은 이렇게 건조하다. 그는 '일리아스'에서 전쟁의 일부를 묘사하려 하지 않았다. 곧장 주제로 달려들었다. 이런저런 감상들로 이야기를 채색하려 하지 않고 자신이 고른 주제, 즉 전쟁의 한 국면을 마치 원재료처럼 사용했다. 이런 특징은 고전기 그리스 시인들 모두에게서 발견된다.

'일리아스'를 만든 것은 전쟁 같은 외적 요인이 아니었다. 두 인간의 분쟁이 수많은 이들에게 고난과 죽음과 불명예를 안겨준다는 비극적 개념이 이 서사시의 뿌리였다. 원인이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 그의 주제였다. 트로이의 높이 솟은 성벽, 철썩거리는 스카만드로스강 같은 배경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스인들에겐 진지한 비극이 대중예술이었다. 그들은 지시에 따라야 하는 삶, 전문적인 기술에 몰두해야 하는 삶을 거부했다.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것 같지만 "역사상 처음으로 인생의 의미를 해석하고 지적 능력을 온전히 구사한 사람들"이다. 서양중심주의적인 표현들이 흠이지만 지식 너머에 있는 본질에 다가가려고 한 교양서다. 원제 'The Greeks'(박돈규기자)

08. 02. 25. 

P.S. 책을 '오래된 새책'으로 분류하는 것은 예전에 출간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문화사: 그 역사와 문화>(탐구당, 1984)가 바로 그 책이다. 오래전에 서점에서 자주 보던 문고본인데 내가 소장하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다(현재 안 갖고 있는 건 확실하지만). '입문서'로서의 명성에 기대어 한번쯤 손에 들어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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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읽고 있다(http://blog.aladin.co.kr/mramor/1928797). 읽어야 할 너무 많은 책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겪는 피로를 잠시 씻어주는 책이다. 비록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나름대로는 아주 열심히 실행하고 있지만 말이다(저자가 전제하고 있다시피 어떤 책에 대한 독서와 비독서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읽은 책이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우리는 책을 읽어나가는 중에도 앞에서 읽은 것을 망각하기 시작하니까). 사실 비독서는 오히려 독서의 한 가지 방식이다. 그래서 비독서는 '독서의 부재', 즉 책에 대한 무관심과는 전혀 종류가 다르다.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에서 저자가 인용하고 있듯이 당신이 3백 50만권의 장서를 갖고 있는 도서관의 사서라면 '훌륭한 사서'가 되는 비결은 제목과 목차 외에는 책을 절대로 읽지 않는 것이다. 비독서야말로 '비정한 독서'이면서 '슬픈 독서'가 아닐까? 

내가 읽지 않은 허다한 책들의 목록에 레비스트로스의 <신화학>도 들어 있다. 네 권으로 이루어진 이 방대한 저작은 지난 세기의 가장 탁월한 구조주의 인류학자가 20년을 공들여 쓴 것이다(그는 20년 동안의 오전 시간을 순수하게 이 시리즈에 바쳤다. 그 자신의 회고에 따르면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불어본은 물론이지만 나는 <신화학>의 영어본은 갖고 있지 않다(이건 비용도 만만찮은 문제이다). '신화학'을 나의 잠정적인 마지노선으로 정해두었기 때문이다. 비독서의 마지노선. 하지만 독서와 비독서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만큼 나의 전선도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해서 '여생의 책'으로나 분류해놓은 책을 생각보다 일찍 집어들게 되었다(러시아어본을 구할 수 있다는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레비스트로스에 대한 마빈 해리스의 강력한 비판(<문화유물론>)에 따르자면 <신화학>에서 레비스트로스는 그저 '생각하기에 좋은 것(good to think)'을 차려놓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레비스트로스가 평생에 걸쳐 애호하던 서양 클래식 음악에 가깝다. 그럼에도/그렇기 때문에 메이저리그의 야구경기나 프리미어리그의 축구경기를 보듯이 <신화학>을 읽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혹은 아무 페이지나 펼쳐놓고 '감상'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여생의 책'이고 '여생을 준비하는 책'이다.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은 현실에서 잠시 여생을 꿈꾸어본다. 불과 몇 년 전 소개기사를 태곳적 기사인 양 옮겨놓는다(아래는 러시아어본 레비스트로스 선집 <가면의 길>의 표지). 

한겨레(05. 08. 08) 레비-스트로스, 그 ‘지성의 빙산’ 을 캐다

구조주의 이론을 개척한 프랑스 사상가 끌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신화학1-날것과 익힌것>(한길사)이 국내 처음으로 번역·출판됐다. 책을 번역한 임봉길 강원대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새로운 것을 알고자 하는 각오와 지식에 대한 호기심이 있고 인내심이 있는 독자”라면 두 팔을 벌려 반길 소식이다. 다만 “그냥 한번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생각한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날것과 익힌것>은 모두 네 권으로 이뤄진 <신화학> 시리즈 가운데 첫번째 책이다. 출판사 쪽은 ‘꿀에서 재로’, ‘식사예절의 기원’, ‘벌거벗은 인간’ 등의 부제가 붙은 나머지 세 권을 앞으로 매년 한 권씩 차례로 번역할 계획이다(예정대로라면 올해 완간되어야 한다!).

그동안 국내에 번역 소개된 레비-스트로스의 저술로는 <슬픈 열대>(한길사) <보다 듣다 읽다>(이매진)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강) 등이 있다(*기사를 처음 읽었을 때도 떠올린 것이지만 <야생의 사고>가 누락됐다). 인류학적 기행문(<슬픈 열대>)이거나 각 예술장르에 대한 사색을 담고 있거나(<보다 듣다 읽다>) 사상적 편력을 돌아보는(<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저술들이다. 그의 지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긴 하지만, 그 ‘정수’를 전하기엔 아무래도 부족함이 있다. 반면 레비-스트로스의 본격 연구서인 <친족의 기본구조>를 비롯해 <오늘날의 토테미즘> 등은 아직 번역되지 못했고, <구조인류학>은 1950년대에 잠시 출판됐다가 절판된 상태다(*오류이다. 1950년대에 나온 건 <구조인류학>의 불어본이고 국역본은 지난 1983년에 나왔었다).

그러니까 90년대 이후 한국 지성계를 휩쓸고 있는 구조주의 이론가 가운데, 유독 레비-스트로스만은 자크 라캉, 루이 알튀세르, 미셀 푸코 등과 전혀 다른 ‘대접’을 받았던 셈이다. 레비-스트로스의 난해한 이론 전개와 다양한 문화권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이 번역을 어렵게 만든 가장 큰 이유였다(*국내에 필요한 만큼의 번역 인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그런 면에서 세계적으로도 영어판·프랑스어판만 존재했던 <신화학>이 이번에 국내에 소개된 것은 그 의미가 적지 않다. 명성은 있는데 그 실체는 분명치 않았던 레비-스트로스를 제대로 이해할 조건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신화학> 시리즈는 레비-스트로스가 1950년부터 시작해 1970년에 집필을 마친, 말 그대로 기념비적 저작이다. 남·북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신화 800여개를 서로 교차시키며 신화에 대한 논리·수학적 분석을 시도했다. 이를 통해 개별 신화의 감춰진 의미와 전체로서의 신화의 실체를 드러냈다. ‘현상 뒤에 숨은 보다 근본적인 실체로서의 구조’를 파악하려는 그의 방법론은 방대한 이 저술의 전체를 관통한다. 오케스트라 연주의 각 악장을 차용한 서술 방식은 ‘구조 속에서 비로소 분명해지는 개별의 실체’에 대한 레비-스트로스의 혜안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신화학 1>은 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한번쯤 도전해볼만한 학술서다.

08. 02. 24.

P.S. 레비스트로스의 육성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서 들어볼 수 있다(http://www.youtube.com/watch?v=u73chpnKKhQ 등). 레비스트로스의 책을 영어본이나 러시아어본으로 여러 권 갖고 있지만 그래도 또 탐나는 것의 하나는 2006년에 새로 나온 러시아아본 <신화학>이다. 차례대로 네 권의 표지이다(영어본 표지는 단색에 제목만 박혀 있어서 멋이 없다). 







이 네 권을 서가에 꽂아놓으면 이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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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2008-02-24 12:36   좋아요 0 | URL
부질없는 욕망처럼 보이긴 한데, 펭귄문고같이 이쁜 책들 보면 정말 읽게될 일 없을것 같으면서도 사버리게 됩니다. 위의 책들도 정말 디자인의 승리로군요. ^^;

로쟈 2008-02-24 21:41   좋아요 0 | URL
가격도 저렴합니다. 11,000-12,000원. 제일 두꺼운 4권은 좀 비싸서 그 두배 정도.

드팀전 2008-02-25 09:14   좋아요 1 | URL
책 모양이 예쁘군요.

로쟈 2008-02-25 17:09   좋아요 0 | URL
저 정도면 소장해둘만 하지요. '장식'으로라도.^^

2008-02-25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25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25 1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며칠전 마음먹고 레비 스트로스(1908- )의 <신화학1>(한길사, 2005)을 구입했다. 레비 스트로스의 압도적인 영향하에 쓰여진 나카자와 신이치의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를 주섬주섬 읽게 되면서 다시 관심을 갖게 됐다. <신화학>의 나머지 세 권과 <구조인류학> 두 권이 조속히, 마저 출간되기를 기대하는/촉구하는 취지로 리스트를 만들어둔다...


19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회고록
디디에 에리봉 지음, 송태현 옮김 / 강 / 2003년 1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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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가 육성으로 들려주는 자신의 생애. 기본서.
보다 듣다 읽다- 레비스트로스 미학강의, 개정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고봉만.류재화 옮김 / 이매진 / 2008년 6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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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열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박옥줄 옮김 / 한길사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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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의 출세작. '학자' 레비스트로스가 아닌 '작가' 레비스트로스와 만나게 해주는 책.
야생의 사고
레비 스트로스 지음, 안정남 옮김 / 한길사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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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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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ine 2008-02-24 01:04   좋아요 0 | URL
저도 공감합니다..특히 구조인류학은 죽기전에 번역서가 나와야될텐데... 따지고보면 레비스트로스영감님이 구조주의의 수장인데..어째 한국에선 젤 찬밥취급 받는것 같네요...-.-

로쟈 2008-02-24 11:53   좋아요 0 | URL
번역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도 지원여건도 불비한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yoonakim 2008-02-24 01:22   좋아요 0 | URL
아, 나카자와 신이치의 까이에 소바주 시리즈 저도 아주 흥미롭게 봤습니다..방가워서 한마디합니다^^

로쟈 2008-02-24 11:54   좋아요 0 | URL
나름 '일본통'이시죠?^^

yoonakim 2008-02-24 23:09   좋아요 0 | URL
모(우물우물)...나름입니다^^

2008-02-24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24 2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주중에 <시사인>에서 읽은 기사는 최근 <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1,2>(고즈윈, 2008)을 펴낸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과의 인터뷰 기사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52). 지난 10년간 역사 분야의 저술가로 단연 두드러진 활동을 선보이고 있는 저자의 새로운 신간 또한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데 요즘 수위를 다투고 있는 건 박영규의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웅진지식하우스, 2004), <한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웅진지식하우스, 2008) 등이다. 후자가 편술인 만큼 직접 비교할 수는 없겠다. 아울러 지난 몇 년간 국내 학계에서 유난히 18세기에 대한 주목할 만한 연구/저술 성과들이 나오고 또 주목 받고 있는 현상은 흥미를 끈다(학문사가들의 좋은 주제가 될 만하다). 대중적으로 요약하자면 '정조 신드롬'쯤 되겠다. 이에 관한 기사도 생각이 나서 같이 옮겨놓는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7). 한국사회의 무의식을 읽을 수 있는 한 가지 지표가 아닌가 싶다. 

시사인(08. 02. 19) "노론의 당론 여전히 작동 중"

지난 10여 년 사이 역사학의 결과물이 대중화한 성과는 눈부시다. 정치사에 국한된 연구자들의 관심이 생활사와 미시사 따위로 확장되어 간 것이 한 축이라면, 정치사 가운데에서도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했던 인물의 복권 흐름도 거셌다. 요즘 역사서와 역사소설은 출판 시장에 활력을 더하는 주력군이다.



그 중심에 역사 평론가 이덕일이 있다. 펴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리는 그가 최근 <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 1, 2>(고즈윈 펴냄)를 펴냈다. 다시 정조이다. 그는 이미 ‘이덕일의 조선 후기 3부작’이라고 불리는 <사도세자의 고백>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을 통해 당쟁에 얽힌 후기 조선의 성격을 드러낸 바 있다. 이 가운데 1997년 출간된 <사도세자의 고백>은, 추리 소설 못지않은 긴박한 구성과 생생한 묘사로 선풍을 일으켰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여드레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축조함으로써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세력의 존재와 영향력을 부각시켰다. 뒤를 이은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은 정약용의 이름을 전면에 내걸었지만, 사실 정조와 그의 시대에 관한 소고이다. 

그런 이덕일이 이번에는 정조 치세를 정면으로 다루고 나왔다. 위 3부작이 쓰일 때 구상했던 것인데, 4~5년이 늦춰진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자료를 더 섭렵했고, 구성도 파격적이다. 아예 소설을 방불케 하는 일화로 시작한다. 정조가 독살되었다며 거병했다 처형된 영남 양반 장시경 형제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 근거는 명확히 문헌에서 찾았다.

지금까지 그의 저서는 마흔 권 가까이 된다. 박사 논문을 털 무렵부터 집필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12년째가 된다. 숨가쁘게 책을 쏟아냈지만, 그 흔한 출간기념회나 홍보 행사 한번 변변하게 치르지 못했다. 이씨는 “책이 50권쯤 나오면 그때 출간기념회를 하겠다”라며 웃었다. 숭실대학교 사학과에서 <동북항일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년 정도 강사 생활을 했으나 점차 자기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확연해졌다. 교수 충원 방식, 또 이후 강단 생활이 자기 생리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 섰다고. ‘라면 3개와 소주 1병이면 된다고 여긴’ 그는 곧바로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길에 뛰어들었다. 

전문 연구자인 그가 펴내는 역사서는 단박에 대중을 사로잡았다. 사료에 기반하면서도 호소력이 넘치는 긴박한 문체가 상상력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원전 번역이 많이 진행되어 집필 작업이 수월해졌지만, 여전히 원전 해독 능력은 필수이다. 게다가 실록 같은 기록은 편년체이기 때문에 배경 지식이 있어야 기술된 ‘간략 정보’의 의미를 파악하고, 다른 문헌과 대조해보는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

그는 특히 사료의 행간을 짚어보는 데 관심이 많다. 이른바 정사는, 집권 세력이 감추고자 했던 정보가 누락되거나 간략하게 기술되는 경우가 많아서이다. 정조 시대의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서도 관찬 사서뿐 아니라 개인 문집과 외국의 기록을 망라했다. 그의 책에 유독 대화체가 많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실록이나 <승정원일기> 외에도 <일성록> <홍재전서>, 채제공의 문집인 <번안집>, 규장각 사검서였던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박제가의 <정유집>과 유득공의 <고운당필기>, 교황청이 갖고 있는 황사영 백서를 포함한 선교사들의 편지까지 섭렵했다.

사료 더미를 헤치는 것만이라면 수고를 더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기술에는 복병이 만만치 않다. 드러나게 발목을 잡는 일은 관련 문중의 항의와 고소 위협이다. 근거를 들어 설명해보지만, 숫제 고소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일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윤휴와 강화학파에 관심 커

“망자에 대한 명예훼손의 경우 몇 백년 후손이라도 할 수 있어 위협적이다. 지금도 공민왕에 대한 특정 기술 때문에 형법으로 단죄될 수 있으니 우스운 일 아닌가.” 그러나 그에 따르면 무형의 걸림돌이 더 문제이다. 역사학계의 치우친 관점이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는 역사 지식, 특히 조선 시대나 상고사에 관한 대목은 노론의 당론과 마찬가지다”라는 매우 ‘센’ 발언을 내놓았다. 그는 특히 과거 정조 시기 노론의 행태에 선명한 비판의 각을 세운다. 그에 따르면 아직도 노론 후예의 힘은 여전하다. 그들은 일제 시대에도 부귀영화를 누렸고, 유무형의 자산으로 현재까지 유리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 

그는 “한창때는 과거 사례와 당대의 현실을 비교하며 언급하기도 했는데, 3~4년 지나고 보면 그런 대목이 탁탁 걸린다”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큰 언급까지 포기할 생각은 없다. 그는 과거 김대중 정부에 대해, 태종을 닮아야 할 때 세종의 길을 걸으려 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는 더 박하다. 그는 “정적을 죽이는 게 개혁이면 누가 그것을 못하겠는가. 개혁이 어려운 것은 때로는 자기 팔을 도려내는 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지금 거대한 선거 혁명을 치르는 중이다. ‘기존 집권 세력은 안 된다’는 보통 사람들의 정서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어느 시기에나 가진 사람, 배운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자기 방어 능력이 있다. 국가는 유일한 소속 단체가 국가밖에 없는 사람들의 삶을 보살펴야 한다. 지금은 비정규직이나 힘없는 사람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가 앞으로 집중하고 싶은 인물이나 주제는 송시열에 의해 사문난적으로 몰렸던 윤휴와 강화학파이다. “너무 관심이 집중되어 자꾸 과부하가 걸린다”라며 그는 웃었다.(노순동기자)

시사인(07. 10. 22) 2007년 정조가 귀환하는 까닭은?

정조에게는 두 개의 8일이 있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숨이 끊어지는 데 걸린 8일(1762년). 그로부터 30여 년 후. 재위 19년째인 을묘년(1795년)에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사갑(死甲)을 맞아 화성에 있는 사도세자의 묘 현륭원을 찾은 ‘을묘원행’의 8일. 전자는 사도세자의 8일, 후자는 정조의 8일이라고 부르자.

그동안 대중문화 영역에서 영-정조는 ‘사도세자의 8일’을 중심으로 배치되곤 했다. 그 틀에서 영조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넣어 죽인 비정한 아비였고, 혜경궁 홍씨는 그것을 애닯게 지켜보아야 했던 지어미였다. 그들이 주인공인 드라마 속에서 정조는 항상 조연에 머물렀다. 아비의 비극적인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던 어린 왕손, 혹은 신하의 충직한 보필 덕에 가까스로 왕위에 오르는 위태로운 군주가 정조에게 맡겨진 배역이었다. 단적으로 문화방송의 조선실록 시리즈 ‘조선왕조오백년’에서 영?정조 시대의 타이틀은 혜경궁 홍씨의 동명 저서에서 따온 <한중록>이었다.

2007년, 정조는 대중문화 영역에서 가장 강력한 아이콘이 되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정조 혹은 정조 시대와 관련된 책들이 약속이나 한 듯 쏟아져나왔다. 명패도 케케묵은 정조가 아니라, 이산이라는 자연인의 이름으로 귀환했다. 가장 화려한 귀환은 MBC 창사 46주년 기념 드라마 <이산>이다. 여기에 소설 <이산>, 정조  시대에 천착한 소설가 김탁환의 3부작 완결판 <열하광인>, 정조 시대 천재 화가였던 김홍도와 신윤복의 대결을 그린 이정명 소설 <비밀의 화원>, 이상우 소설 <정조대왕 이산>, 강신재 소설 <이산 정조대왕>이 가세했다. 7월에 출간된 이상우(*이상각) <조선의 이노베이터 이산 정조대왕>도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소설과 드라마, 만화책까지 정조 '붐'

‘사도세자의 8일’이 과거 숱한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듯 ‘정조의 8일’에 주목하는 작품도 늘었다. 대표 작품이 올해 11월 케이블 CGV에서 선보일 10부작 미스터리 시리즈 <정조 암살 미스터리 8일>이다. 정조가 사도세자의 묘인 현륭원에 행차한 을묘원행을 소재로, 원행 8일 동안 정조 암살 기도가 벌어진다는 설정 아래 이를 막아내기 위한 정약용의 활약이 긴박하게 펼쳐진다. 지난해 출간된 오세영의 소설 <원행>이 원작이다. 이인화의 화제의 소설 <영원한 제국>을 영화로 만들었던 박종원 감독이 연출을 맡아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만화책도 가세했다. 베스트셀러 인기 시리즈물인 ‘노빈손 시리즈’가 한국사 시리즈를 선보이는데, 첫 책이 <노빈손, 정조대왕의 암살을 막아라>이다. 노빈손이 정약용의 제자가 되어 정조 대왕의 암살을 막기 위해 활약한다는, 파격적인 내용이 아동용 만화책으로까지 나온 것이다. 흡사 정조와 정조가 아꼈던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이유로 정조와 대립했던 이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와 논쟁을 벌이는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9월17일부터 방영 중인 MBC 사극 <이산>은 공중파 사극다운 출발을 보이고 있다. 사도세자의 8일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춧돌을 놓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다. 우선, 사도세자가 기행을 일삼던 광인이라는 정보가 없다. 뒤주에 갇히기 전 상황에 집중하지도 않았다. 그냥 뒤주에서 출발해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는 이어 정조의 즉위부터 치세, 그리고 죽음까지 온전히 이산의 삶을 기록하게 된다. <이산> 연출을 맡은 이병훈 프로듀서는 “홍국영의 활약상을 다루면서 정조의 즉위기를 망라했으나, 정조를 제대로 조명할 기회는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제대로 군주 노릇을 해야 했던 이산의 인간적 번민과 치적을 비로소 다룰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했다(82쪽 상자 기사 참조).



1795년 을묘원행으로 기록되고 있는 ‘정조의  8일’은 왜 중요한가. 정조는 간난신고 끝에 왕위에 오른 뒤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천명해 정적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선언이 힘을 얻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재위 기간 어렵사리 시도한 숱한 개혁의 결과와 그 주체들을 한자리에서 과시하는 행사가 바로 을묘원행이었던 것이다.



사학자  한영우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8일간의 화성 행차는 화성을 무대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모든 친위 세력을 하나로 묶어 세우는 정조의 거대한 정치 드라마였다”라고 평가했다(<정조의 화성 행차,  그 8일>). 그 시위는 한양에 잠복된 구 질서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혼신의 도전이기도 했다. 물론 그의 도전은 기득권 층의 은밀하고도 격렬한 반발을 불렀고, 정조의 급서 이후 급격한 반동의 물결이 밀려온다.



정조를 픽션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것은 1993년 출간된 이인화의 소설 <영원한 제국>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유산은 대중문화 영역에서 쉽게 계승자를 찾지 못했다. 대신 1990년대 말부터 영?정조 시기에 관한 연구 성과가 대중적인 저작의 형태로 봇물을 이루었다. 1998년 박광용 교수는 <영조와 정조의 나라>를 펴내면서 ‘조선의 진정한 큰 임금은 세종이 아니었다. 조선의 르네상스 76년을 이끈 두 대왕 영조와 정조, 그리고 그 시대를 움직인 사람들을 보라’고 선언하고 나섰다.



이후 유봉학, 박현모, 정옥자로 이어지는 전문  연구자들이 각각 역사와 정치, 국문학 영역에서 정조 시대의 의미를 대중서에 녹여내기 시작했다. 2000년 이후 쏟아진 이덕일의 시리즈 <송시열과 그의 나라>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사도세자의 고백> 등은, 정조 시대의 지형과 그의 사람들을 더욱 생생하게 복원시켰다.

그러니까 연구자들 사이에 정조의 현재적 의미에 대한 탐색이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활발히 시도되었고 일정 부분 합의가 끝난 것이다. 그런데 대중문화 영역에서는 뒤늦게 지금 그 관점에 기반한 생산물이 쏟아지고 있다. 문화평론가 이영미씨는 이 현상을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좌절되는 개혁에 대한 아쉬움이 드라마 속에서 아우성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83~84쪽 참조).

“개혁 군주로서의 이미지 획일적” 비판도

한편 개혁 군주 정조에 대한 유보 없는 찬사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최근 문화평론가 김헌식씨는 ‘정조는 과연 개혁적이었는가?’라는 기고 글을 통해 현재 정조에 대한 해석이 너무 획일적이라고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정조는 개혁을 추진한 사람으로만 평가할 수 있을까, 근본적 개혁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보면 결국 그는 왕권 강화를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되풀이한 것은 아닐까라는 문제의식이다.

김씨는 “<한성별곡-정> <이산> <정조 암살 미스터리>로 이어지는 세 편의 드라마가 모두 개혁 군주로서의 정조, 그리고 반개혁 세력에게 핍박을 당하는 구도를 설정하고 있지만, 그가 행한 획기적 정책들은 사실 강한 왕권이나 성리학적 질서를 회복하고자 한 복고적 행태일 수 있다”라고 말한다. 나아가 그는 정조가 암살된 것은 수구파의 책동이라기보다는 개혁파의 정조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 아닐까라는 파격적인 가설을 제시하기도 했다.



소설가 김탁환씨는 이런 메시지를 더 밀고 나간다. 그는 최근 <방각본 살인 사건> <열녀문의 비밀>에 이어 <열하광인>을 내놓아 이른바 정조 시대 3부작을 완결지었다. <열하광인>은 ‘개혁을 추진하던 정조가 왜 ‘문체반정’이라는 반동적 조처를 취하면서 돌연 절대 군주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김씨는 “혁신의 기치를 반성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 수구와 혁신에서의 양자 택일은 이미 낡은 도덕적 틀이다. 이제는 누구를 위한 혁신인가를 더 깊이 따져보아야 한다. 1792년 정조의 혁신이 있었고, 백탑파(금서가 된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중심으로 한 이들의 모임)의 혁신이 있었다. 둘은 오랫동안 한 몸인 듯했으나 결국 다른 미래를 꿈꾸었음이 분명해졌다”라고 말한다.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내내 주자의 마니아였고, 주자의 세계관으로 조선을 ‘품격 있는 나라’로 만들고 싶어했을 뿐이어서 어느 순간 근본 개혁을 꿈꾸며 자신을 지지했던 이들과 갈라설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정조는 결국 왕, 자신의 편일 뿐이었다”라고 단언한다.



<열하광인> 김탁환 "왕은 왕의 편일 뿐"

그는 자신의 작품이 현재적으로 읽히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정조의 눈부심은 정조 사후에 펼쳐진 19세기 초반의 엄청난 암흑으로 인한 부분이 크다. 한국 사회가 1987년 이후  2007년까지 20년 동안, 어쨌든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이룩한 것들이 한순간에 암흑으로 떨어지지는 않을까, 그래서 그 암흑 속에서 과거의 한때는 아름다웠노라고 한심하게 추억하게 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 작품을 썼다”라고 말했다.

정조가 펼친 개혁의 한계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이미 지적되어온 바이다. <영조와 정조의 나라>의 저자 박광용의 문제 의식을 보자. 그는 1998년 이미 “정조는 진보적 개혁을 꿈꾸면서 보수적 개혁을 추진했으며 이것이 정조 개혁의 한계이다”라고 지적했었다. 그러나 박 교수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조 개혁은 그 성과가 매우 컸다고 평가했다. 지식인들에게 급진적 개혁을 추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넣어줌으로써 그 지식인들의 업적이 오늘날 우리에게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다 함께 사는 복지사회’라는 방향을 지닌 다산 정약용의 저술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인간이 등장한다’는 연암 박지원의 소설 등을 예로 꼽았다. 

개혁이라는 말이 이미 염증과 양가 감정을 빚어내고 있는 지금, 대중은 대리 만족할 대상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철이 든 순간부터 죽음의 위협에 시달리면서 개혁을 시도하고, 변화를 꿈꾸던 숱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정조와 그의 시대에 매료되는 이들이 늘고 있다.(노순동기자) 

08. 0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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