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기사를 옮기는 일이 드물지 않아졌다. 다 아는 소식이지만 오늘 새벽에 소설가 이청준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는 뉴스는 이미 접했기 때문에 의외의 소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데뷔작 제목처럼 가뿐하게 '퇴원'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고인과 인연이 있는 후배 소설가는 문상을 다녀왔다고 문자를 보내왔는데, 나는 개인적인 인연을 따로 갖고 있지는 않아서 다만 한 세대 한국문학을 대표했던 작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명복을 빌 따름이다. 지금쯤 태평양 항로 어디메쯤 가고 계실까?.. 고인과 막역했던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의 추모의 글도 같이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8. 07. 31) '한국 현대소설’ 개척한 4·19세대 대표작가

작가 이청준은 삶을 캄캄한 밤에 산길을 더듬어가는 것에 비유하곤 했다. 그런 도정에서 문학은 ‘방금 누가 지나갔으니 빨리 가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는 거짓말이란다. 그가 평생을 바친 ‘소설이란 거짓말’은 그 말의 가치를 믿음으로써 일말의 희망을 안고 남은 삶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위무, 인생의 부끄러운 상처와 아픔을 풀어내는 씻김질이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지적인 작가, 서구 장르인 소설을 한국화시킨 작가 이청준의 타계 소식은 문단과 독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요즘 기준으로는 다소 이른 나이인 데다 투병 중에도 쓰던 소설을 마무리한 그의 창작혼이 더욱 애틋함을 자아냈다. 지난해 폐암 말기 소식이 전해진 뒤 1년여 투병해오던 그는 항암치료를 중단한 뒤 급속히 병세가 악화됐다.

최인훈, 김승옥과 더불어 4·19세대 작가로 출발한 이청준은 군사독재와 산업화의 억압된 시대를 살아오면서 비인간적인 권력과 사회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한국적 모더니즘의 언어로 수행했다. 100쇄를 돌파해 현대문학의 금자탑을 쌓은 ‘당신들의 천국’을 비롯해 ‘낮은 데로 임하소서’ ‘매잡이’ ‘이어도’ ‘소문의 벽’ ‘비화밀교’ ‘서편제’ 등 주옥 같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현실비판은 대상과 동일한 차원에 서는 법 없이 그 이면을 살펴봄으로써 삶의 원형질에 대한 탐구로 승화됐다. 그런 관심은 만년에 신화의 세계로 확대됐다. 그는 등단 초기 서너 군데 잡지에 관여하고 한양대 국문과 교수로 잠시 적을 둔 것을 제외하고는 글쓰기에만 골몰했다.

2003년 장편소설 12권, 중·단편 10권 등 25권짜리 전집(열림원)이 나온 뒤로도 장편 ‘신화를 삼킨 섬’, 소설집 ‘꽃 지고 강물 흘러’ 등 여러 권의 책을 발표했다. “벼랑에 서있다는 각오로 쓴다. 그렇기 때문에 벼랑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장인정신이 빚어낸 한국어와 한국문화의 집이다.

그의 대표작은 역시 ‘당신들의 천국’이다. 1976년 발표돼 2003년 100쇄를 돌파한 이 책은 소록도 나환자촌을 배경으로 권력의 문제를 추적한다. 주인공 조백헌 원장은 유토피아의 실현을 위해 매립공사를 강행하지만 환자들의 불신과 그로 인한 내적 방황을 겪는다. 권력은 그것을 쥔 자를 끝없이 시험한다는 문제의식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이 작품이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염두에 두었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그의 소설은 현실을 곧바로 인용하지 않으면서도 결코 현실과 떨어져 있지 않다. 영화 ‘서편제’로 유명해진 ‘선학동 나그네’, 역시 영화 ‘밀양’의 원작인 ‘벌레 이야기’에서 아무리 억압해도 무너지지 않는 존엄성, 가해자가 용서를 이야기하는 상황을 그린 데는 제5공화국과 광주항쟁에 대한 작가의 통찰이 담겨있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는 “현실에 패배한 사람들이 억압하는 현실과 상처받는 개인이라는 이항대립을 초월해 새로운 억압으로 추락하지 않는 이념의 질서를 창조하는 모색 과정”을 이청준 소설의 특징으로 든다. 실패하고 갈구하는 개인, 탐색과 추리 기법, 액자구조, 다원적 시점, 열린 결말 등은 그런 문학적 목표에 도달하는 문학적 장치다. 권오룡 한국교원대 교수 역시 “인정이냐, 부정이냐의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현실에 저항하는 이청준 문학의 애매성은 손쉬운 선택을 거부하고 모순의 긴장을 끝까지 견뎌내는 힘에서 나온다”고 지적한다.

세계에 대한 비극적 상황인식, 실패자에 대한 공감은 그의 가족사와 분리되지 않는다. 좌익활동을 했던 아버지는 작가가 여덟살 되던 해 세상을 떠났고 장남이던 형님도 일찍 유명을 달리했다. 어렸을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듣던 그는 자연스레 어머니와 가족, 일가친척의 기대를 한 몸에 모았다. 그것이 부담스러워 오히려 모두가 바라던 법대가 아닌 문리대를 택하고 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런 그의 삶의 원형이자 스스로 가장 특별하게 여긴 작품이 단편 ‘눈길’이다. 이미 남의 손에 넘어간 고향집에서 대처로 공부하러 간 아들을 기다리다가 마지막 잠을 재우고 다음날 새벽, 떠나보낸 뒤 눈위에 찍힌 자식의 발자국을 되밟아 돌아가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이 세상 정처없는 것들의 가엾음을 드러낸다. 광주 서중에 입학하면서 외사촌 누이집에 더부살이하게 됐을 때 어머니가 손수 갯벌에서 잡아온 게를 망태기에 넣어 들려보냈는데 그것이 썩어 아무렇게나 버려질 때의 심정 역시 작가가 즐겨 들려주던 유년기의 한 자락이다.

남도의 정서는 이청준의 삶과 문학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다. 남도 판소리와 문인화의 현묘한 경지는 ‘이어도’나 ‘서편제’의 신비로우면서 승화된 한의 정서로 고즈넉하게 되살아났다. 음악과 회화에 조예가 깊었던 작가는 임권택 감독, 김선두 화백 등 여러 예술가들과 친분을 나누면서 삶의 호사와 여유를 누렸다.

이청준을 만나본 사람들은 그의 겸손함과 자상한 배려를 잊지 못한다. 책이 나오면 막내 편집자까지 꼭 밥상에 초대했고 자신의 문학작품을 좋아하는 독자 앞에서 늘 겸손했다. 그의 손에는 담배가 꼭 들려있었고 여행을 떠날 때면 배낭에 술병을 반드시 챙겼다. 철저하면서 조용하고 익살스러웠으며, 평생 동지로 지낸 문학과지성사 동인들을 만날 때 빼고는 문단 나들이가 잦지 않았다. 자신의 병을 알았을 때 “석양녘 장 보따리 싸는 심정”이라고 했던 그가 먼 길을 떠났다. 이청준 없는 한국문학, 예정된 일이었지만 슬프다.(한윤정기자)

경향신문(08. 07. 31) 그대, 이제 그대의 천국으로 가시는가

쉬엄쉬엄 왔는데도 숨차고 다리 후들거려 ㅅ의료원 영안실 빈 의자에 잠시 앉아있자니 뒤에서 들리는 소리.

-김 선생님, 여기 웬일이세요.

돌아보니 그대가 아니겠는가.

-웬일이라니, 그대 장례식에 오지 않았겠소. 그런데 그대야말로 웬일이오? 이렇게 나와도 괜찮겠소?

-잠시 나왔을 뿐이외다. 뭐 별일 있겠어요?



그렇다. 무슨 별일이 따로 있겠는가. 우리는 평소처럼 낮은 소리로 또 눈짓으로 이런저런 말을 나눴소. 요즘 날씨란 장마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둥, 황소도 병에 걸려 자빠지기 일쑤라는 둥, 그야 대마도는 일본 땅이라는 둥, 기름 값이 천정부지라는 둥, 이승엽이 국가대표팀에 합류했다는 둥.

이 평소처럼 낮은 소리, 낯익은 눈짓 속에 있자니 어느새 숨결도 제대로 돌아오지 않겠는가. 후들거리던 다리도 거짓말처럼 멀쩡해지지 않겠는가. 대체 이 편안함이란 무엇인가. 이젠 일어설 수조차 있었소. 뿐이랴. 능히 걸을 수조차 있었소.

그대의 손에 이끌려 영안실 안으로 들어서자 놀라워라. 그대는 어느덧, 거짓말처럼 순백의 꽃밭 속 검은 사진 속으로 가물가물 사라지고 있었소. 또 놀라워라. 내가 향을 피워도 아무 말 없었소. 다시 또 놀라워라. 절을 두 번씩이나 해도 모른 척 하지 않겠는가. 그대 이래도 되는 일인가.

하릴 없이 쫓기듯 물러날 수밖에.

밖에는 그대를 보내는 친지들 꿀벌처럼 모여 웅웅거리고 있었소. 생수에, 깡통 맥주에 취해 무성히 그대 흉보기에 정신들이 없어 보였소. 옆에서 누가 듣는 줄도 모를 만큼 신바람이 났소.

이 무구한 자기기만, 이 천진한 인간다움.

나도 신바람이 날 수밖에.

대서양 해안까지 흘러간 제주도 문주란 씨앗을 소재로 소설 한 편 쓰기 위해 멕시코까지 찾아간 이 잘난 소설쟁이가 귀국할 때의 일. 금연의 비행기 속에서 위스키 한 병을 몽땅 비웠다 하오. 이 굉장한 애연가에겐 그 길이 상책이었으니까. 인천공항에 내려도 끄떡없었다고 그는 큰소리쳤다 라고. 주석에서 본인에게 직접 들은 이 얘기를 신바람 나게 했소.

그러자 누군가 대번에 항의했소. 왈, 반만 맞고 반은 틀렸소 라고. 이 목격자의 증언은 이러했소. 인천공항에 내린 이 잘난 소설쟁이는 가방 찾을 생각도 까맣게 잊고 호기롭게 리무진에 올랐다 라고.

나도 어찌 쉽사리 질까 보냐. 재빨리 이렇게 대들었소. 그래도 그는 귀국 직후 ‘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2005)를 썼다 라고. 또 덧붙였소. 이 소설쟁이는 소주에 취하기만 하면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저기 엉터리 평론가가 있다!”라고 외치기 일쑤였다고. 그래도, 아니, 그렇기에 그는, 키 큰 평론가 김현의 표현으로 하면 제 어미를 팔아 ‘눈길’(1977)을 썼고, ‘자생적 운명’을 다룬 천금 무게의 ‘당신들의 천국’(1976)을 썼소. 조국을 세 번씩이나 부인한 ‘다시 그곳을 잊어야 했다’(2007)를 그만이 쓸 수 있었소.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4·3 사건의 합동위령제를 다룬 대작 ‘신화를 삼킨 섬’(2003)을 썼소. 그것은 다름 아닌 이상욱(‘당신들의 천국’)이 정요섭으로 변장하여 제주도로 간 얘기에 다름 아닌 것.

민족적 악업에 대한 자기 정화력이란 무엇이며 치유의 가능성은 있는가 라고 스스로에 묻고, 있다 라고 스스로 우기는 이 야생 당나귀 모양 고집스러운 키 큰 소설쟁이 이청준이여, 우리의 국민작가 이청준 사백이여.(김윤식 |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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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8-01 0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김윤식 선생다운 글쓰기에 그만 슬며시 얼굴 위로 미소가 찾아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장례식장에서 있을 법한, 그런 미소였습니다.

로쟈 2008-08-01 12:20   좋아요 0 | URL
이청준의 '축제'도 떠올리게 하구요...
 

이번주 한겨레21의 '로쟈의 인문학서재'를 옮겨놓는다. 7월 30일부터 8월 5일까지 서울대학교에서 개최되는 '세계철학대회'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인데, 당초엔 그리스철학 연구자인 F. M. 콘퍼드의 <쓰여지지 않은 철학>(라티오, 2008)을 고려했다가 <서기 천년의 영웅들>(아테네, 2008)에서 우연히 읽게 된 중세철학자 이븐시나 이야기로 방향을 틀었다.

한겨레21(08. 07. 30) 이븐시나만으로도 얼마나 광활한가

‘철학자들의 올림픽’이라는 세계철학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된다. 1900년 제1회 파리 대회 이후 5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인문학 행사라고 한다. 이번 대회의 가장 큰 특징은 ‘비유럽 철학’과의 교류에 있으며, 그런 취지에 맞게 영미나 유럽 이외 지역의 철학자들이 다수 참여한다고. 이 ‘비유럽 철학’에 대한 관심이 대회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을까? 장피에르 랑젤리에의 <서기 천년의 영웅들>(아테네 펴냄)에서 중세 페르시아의 철학자 이븐시나(980~1037)에 관한 장을 읽으며 그런 의문이 들었다.

책은 지난 2000년 여름 <르몽드>에 3개월간 연재됐다가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인데, 서기 천년을 전후한 시기를 산 12명의 인물들에 대한 초상을 그리고 있다. 정치가에서 수도사, 여류문인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의 인물들이 고르게 배정된 가운데, 서구에는 ‘아비센나’란 이름으로 알려진 이븐시나가 서기 천년의 대표 학자로 소개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에 등장한 최고의 철학자’라고 일컬어짐에도 ‘철학자’라고 한정되지 않은 것은 그가 남긴 업적이 방대하면서도 넓은 영역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주저인 <의학정전> 때문에 사전류에는 ‘의사’나 ‘의학자’로 기재되어 있을 정도다.

랑젤리에가 그려낸 이븐시나의 초상을 잠시 따라가보면, 일단 그는 조숙한 천재였다. 990년, 그의 나이 10살에 코란 전체를 다 암송할 줄 알았다. 게다가 이 특별한 아이는 당시의 문학·수학 지식에도 이미 통달해 있었고 그를 가르치려던 많은 스승들을 곧 앞지르게 됐다. 이후에 그는 스스로 학문을 터득해나가는데,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라고 판단한 의학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오히려 숙련된 임상의들을 가르치기까지 한 것이 16살 때다. 밤낮이 따로 없이 독서하고 이해하는 일에만 매달린 그는 곧 지식의 대가가 됐다. 그런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도전해 마흔 번이나 읽은 것은 전설적인 일화다. 아마도 유일하게 애를 먹은 책 같은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석가였던 알 파라비의 책을 읽고서 비로소 <형이상학>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한다.

996년, 이븐시나는 그의 명성을 들은 사만 왕자의 병을 치유해준 덕분에 왕궁의 도서관에 출입할 수 있게 된다. 이 도서관의 장서가 4만5천 권이었다고 하니까 ‘지식의 탐구자’ 이븐시나에게는 경이로움 자체였을 법하다. 나중에 그는 왕궁으로 들어와서 살라는 제안을 받지만 거절하는데, 이유인즉 자신의 장서를 옮기려면 400마리의 낙타가 필요해서였다고 한다. 이븐시나는 18살에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독서를 통해서 지식을 완성한다. 그리고 이후 40년 동안은 지식을 확장시키는 대신에 글쓰기를 통해서 심화시켜나간다.

그가 21살 때 쓴 첫 저서 <편집>은 운율법에 관한 것이고, 법학자를 위해서는 <합과 실질> <양서들과 악> 두 권의 책을 쓴다. 그의 걸작인 <의학정전>(전 5권)은 7년에 걸쳐 쓴 것으로 무려 100만 단어가 들어가는 기념비적인 분량이다. 당대의 의학 지식을 집대성하고 있는 이 책은 12세기에 라틴어로 번역된 뒤에 16세기까지 유럽의 의학교에서 교과서로 사용됐다고 한다. 이븐시나는 평생 242권의 책을 남겼는데, <학문의 서> <치유의 서> <공정의 서> 등이 대표작이다. 특히 <치유의 서>는 5천 쪽이 넘는 분량으로 부피나 완성도에서 전대미문의 책으로 평가된다. 이성과 신앙, 그리스 철학과 코란을 조화시키려 했던 그의 철학은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중세 후기 스콜라철학의 기원이 됐다. 비록 너무도 방대하고 정교한 그의 철학을 요약하는 일은 아직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이븐시나의 생애와 저작을 잠시 들여다본 것은 우리에게 덜 알려진 ‘비유럽 철학’의 지평 또한 얼마나 광활한가를 확인해두기 위해서다. 어쩌면 매혹적일 수도 있다. 죽음이 임박한 것을 느끼자 이븐시나는 자신의 철학에 따라 자기 몸을 돌보는 것을 중단했다. <치유의 서>에 그는 이렇게 써놓았다. “육체는 여행의 목적이 달성됐을 때 떠나보내야 하는 짐승이다.” 아직 한 권도 소개되지 않았지만 그의 철학에 대해서 조금은 더 알고 싶어지지 않는지?

08. 07. 31.


 

 

 

P.S. 코르방의 <이슬람철학사>(서광사, 1997)와 몇몇 중세철학사/사상사 책에서 이븐시나에 관한 장을 읽어볼 수 있다. 정수일 선생의 <실크로드 문명기행>(한겨레출판, 2006)에도 이븐시나의 학문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븐시나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40번' 읽었다는 에피소드는 일부 책에 '4번' 읽은 걸로도 나오는데, '40번'이 맞는 듯싶다(적어도 그게 다수설이다).

오랜만에 학교에 나와 구내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더니, 여러 인종의 철학자들 다수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더 비싼 식당도 있지만 내가 들른 곳은 3000원짜리 메뉴를 판매하는 곳이었다.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러 온 '철학자'들의 식단으로는 너무 '착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란에서 온 철학자도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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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8-02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비에트 과학 아카데미 철학 연구소에서 나온 세계 철학사(중원출판사 번역본)에는 이븐 시나가 딱 한 줄 나와서 감질 났는데 자세한 정보를 얻게 되었군요.예전에 이븐 할둔도 페르샤 사람인 줄 알았어요.나중에야 페르샤인은 아랍인과 민족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죠.그런데 이븐 시나의 연구열은 대단하군요.

로쟈 2008-08-02 20:14   좋아요 0 | URL
압축된 전기여서 대략적인 생애만을 알 수 있지만 대단한 석학이었던 것 같습니다. 18세에 완성된 지식을 얻는다는 건 요즘 상상할 수 없지요...

노이에자이트 2008-08-02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군다나 우리나라처럼 초중고 내내 교과서와 참고서 문제집만 권하는 사회에선 더 어렵죠.
 

국방부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인문교양서와 소설 등을 '불온서적'으로 분류해서 차단 대책을 강구하도록 전군에 지시했다고 한다.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불온서적'이란 말을 들어본다. 그리고 궁금해진다. 대체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기나 하는 것인지?(아, 거꾸로 돌아가는 모양이다!) 이번에 제시된 목록은 '북한 찬양' '반정부/반미' '반자본주의' 세 범주로 분류돼 있고,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촘스키의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 등이 포함돼 있다(요컨대, 나쁜 놈들의 정복은 계속될 모양이다!). 후대에 사료로서의 가치도 가질 수 있겠기에 목록을 옮겨놓는다. 입대 대기자들은 미리 읽어볼 책의 목록이기도 하겠다. 2년간 못 읽는다니까(<벗>, <대학시절>, <북한의 경제발전 전략> 세 권은 찾지 못했다). 보충기사를 보니 군은 작년에도 문화관광부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한 <국가의 역할>, <한국사회의 성찰>, <민주화, 세계화 '이후' 한국> 등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해서 거둬들인 바 있다고 한다. 한심한 일이지만 어쩌겠나, 민주화 이후에도 군의 역할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고 할 수밖에(기사가 국방부 문건을 인용해서인지 도서명도 부정확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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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8-07-31 16:22   좋아요 0 | URL
전 불온한 인간인가 제가 감명깊게 읽은 책들이 목록에 아주 많이 올라가 있네요 ^^
양서 목록 아닙니까? ㅋㅎㅎ
근데 우리들의하느님과 대한민국사는 왜 불온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군요..

로쟈 2008-07-31 23:56   좋아요 0 | URL
저도 <우리들의 하느님>은 의외였습니다. 그렇담 <강아지똥>도 불온하지 않을까요?..

노이에자이트 2008-07-31 16:25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군대는 이런 행동이 잘 어울려요.주한미군 사령관을 충실히 모시는 한국군 수뇌부들.당연히 미국대외정책을 비판하는 촘스키는 그들 기준으로는 불온서적 쓰는 빨갱이죠.군대에 올 봄에 시장경제 지향적인 경제 교과서를 무료배포했다니 전경련,대한상의와 군대가 우호적인 제휴를 한 거죠.그러니 삼성 비판하는 책은 시장경제를 어지럽히는 불온서적이구요.이제 김대중 노무현에 호의적인 책들도 불온서적이 될 날이 머지 않은 것 같군요.

로쟈 2008-07-31 23:55   좋아요 0 | URL
제정 러시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드팀전 2008-07-31 16:32   좋아요 0 | URL
다행이지요...군대를 다시 가지 않아도 되니까..예비군도 끝났고.


로쟈 2008-07-31 23:54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민방윕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31 16:39   좋아요 0 | URL
군대에서 오염된 머리가 평생가는 남자들이 많으니까 그게 문제죠.

로쟈 2008-07-31 23:54   좋아요 0 | URL
군복을 평생 못 벗는 사람들이죠...

열매 2008-07-31 16:57   좋아요 0 | URL
제가 육군생활할 때 소대장이 ㄱ산대 철학과를 나온 사람이었는데, 제가 읽던 러셀의 <서양철학사>2권에 '마르크스'에 대한 챕터가 있다고 가져가 외박시 반출한다는 단서를 달고 간신히 돌려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촛불이 아무리 일어난다고 해도, 교육감선거에서 볼 수 있듯 대한민국이 강남의 귀족들에 의해(을 위해) 돌아간다는 사실이 바뀌지 않았듯이, 대한민국이 아무리 사상의 자유를 누린다 하더라도 모병제가 없어지지 않는한 군대는 변하지 않을 듯 하네요.

아마 저 책들을 선정한 정훈장교같은 사람들도 제목이나 저자등의 선입견에 기인한 선정일 뿐 직접 읽어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로쟈 2008-07-31 23:53   좋아요 0 | URL
'변증법'이 제목에 들어간 책을 갖고 있으면 법대생이냐고 묻던 시절도 있었는데, 사정은 별반 안 나아진 듯하네요...

2008-07-31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7-31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8-07-31 23:31   좋아요 0 | URL
옛날에는 이런 불온서적 목록이 나오면 오히려 베스트셀러가 됐는데요. 뭐 비밀리에긴 했지만... 요즘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로쟈 2008-07-31 23:52   좋아요 0 | URL
유감스럽지만, 한국군대의 지능은 진화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람혼 2008-08-01 03:40   좋아요 0 | URL
'막스' 베버의 책을 '맑스'의 책으로 '오인사격'하여 불온서적으로 압수해가던 그 옛날과 전혀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에 참으로 '뭥미'라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갑자기 육군사관학교에 강의를 뛰고 싶다는 적극적이고 저돌적이며 무모하기까지 한 욕망에 휩싸입니다.

로쟈 2008-08-01 12:22   좋아요 0 | URL
육사에서 강의하면 '육사화'될 뿐입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는 며칠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살림, 2008)의 메시지라고 한다. 책의 띠지에 그렇게 씌어 있다. 좋은 말이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강의'도 분명 들을 만한 좋은 내용들로 채워져 있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 책의 이면은 그렇게 아름답지 못하다. 무려 6억 이상의 선인세를 지불한 책이기에 그렇다. 아래 칼럼에서 소설가 박상우씨가 지적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 금액이면 국내 필자 200-300명의 선인세와 맞먹는다. '번역서 1권 vs 국내필자 213명'이란 표현이 그래서 가능해진다. 간단히 말해서, 출판사로선 그 213명이 쓸 책보다는 이 한 권의 책이 더 가치가 있다고,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수 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 <시크릿>(살림Biz, 2007)의 교훈일까?

경향신문(08. 07. 31) [문화로 읽는 세상]‘번역서 1권과 국내필자 213명’

최근 번역 출간된 ‘마지막 강의’라는 책의 선인세가 64만달러(약 6억4000만원)라는 소식을 접했다. 지금까지 최고가를 기록한 책이 20만달러였다니 3배가 넘는 놀라운 기록 경신이다. 선인세를 그렇게 많이 지불했다는 건 대량 판매를 목적으로 삼았다는 뜻이므로 광고비 또한 비례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국내 10여개의 대형 출판사가 경쟁을 벌였다는 후문이니 가격이 올라간 것도 무리는 아닐 터이다. 하지만 우리보다 출판시장이 10배 이상 큰 일본에서도 선인세가 10만달러를 넘지 않는다는 걸 감안하면 64만달러는 무모한 경쟁의 결과인 것 같아 심히 우려스럽다.

그렇게 파이를 키워 놓으면 향후 외국 출판사들이 제시하는 기본 금액의 출발선이 달라질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결국 자본의 위력을 마음껏 과시할 수 있는 대형 출판사들만 살아남고 피땀 흘려 좋은 책을 출간하고자 하는 중소 출판사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출판사가 출판사를 죽이고, 출판사가 출판시장을 죽인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좋은 책과 좋은 출판시장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좋은 편집자와 좋은 필자가 많아져야 한다. 그것을 위한 아낌없는 투자는 전적으로 출판인의 몫이다.

출판에 대한 소신과 열정이 없다면 자칫 출판사업은 한탕주의에 대한 환상을 낳을 수도 있다. 그런 환상 속에서 명멸한 출판사들을 나는 지난 20년 동안 숱하게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런 출판사들은 지금도 나타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것이다. 그런 명멸의 이면에서 소리·소문 없이 좋은 책을 꾸준히 양산해내는 소금 같은 출판사들도 나는 알고 있다. 출판인이 누구인지 일면식도 없지만 나는 그들에게 참으로 깊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6억4000만원의 선인세는 국내 필자들의 질을 더욱 저하시킬 것이다. 블록버스터급 책이 아니면 출판을 하지 않으려는 출판 마인드가 자잘한 국내 필자들의 책에 관심을 기울일 턱이 없다. 그러다보니 어떻게든 책 한 권 출간하고자 하는 필자들은 더욱 선정적인 글쓰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너도 나도 책을 쓰고자 덤비는 세상이니 더욱 심각한 질적 저하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등단 작가는 작가가 됐음에도 소설집 한 권 출간하지 못하고 사라진다. 소설집은커녕 소설에 대한 자질을 검증받을 만한 발표 지면도 제대로 얻지 못하고 사라지는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평균적인 계약 관행을 예상수치로 삼아 300만원씩 선인세를 지급할 경우, 6억4000만원이면 국내 필자 213명과 계약을 할 수 있다. 번역서 한 권과 국내 필자 213명, 이것이 아마도 우리 출판 마인드의 현주소일 것이다. 안을 존중하지 않으면 밖에서도 대접받지 못하니 번역물 선인세가 100만달러를 돌파할 날도 그리 머지않은 일인 듯싶다.(박상우|소설가)

08. 07. 31.

P.S. 바야흐르 대한민국 1%가 승승장구하고 있다. 어제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도 강남 땅값을 걱정해주던 '교육감' 후보가 결국엔 당선됐다(저조한 투표율이 이미 예견케 한 결과이다. 선거결과에 대한 분석은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807/h2008073102454922020.htm 참조). 해서, '촛불의 중간평가' 운운하던 이들은 '입방정'을 탓하게 됐다(촛불은 '다수'가 아니었다!). 나는 다른 결과를 예상하진 않았지만(서울시민이 아니어서 나는 투표권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 '최악의 결과'에 환멸과 분노를 느낀다. 나는 '수 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이 최고 베스트셀러가 되는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정말 능력만 된다면 이민가고 싶다). '리치스탄(부자동네)'에 대한 선망과 함께 모든 아빠는 '부자 아빠'와 '가난한 아빠'로 나뉜다고 주입시키는 교육환경 속에서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한다면 기적 같은 일이다(언제부턴가 '글로벌 인재 양성'이란 문구가 각 시군 교육청의 교육목표가 돼버렸다. 좀 환멸스럽지 않은가?). 그래도 포기하지 말라고? 컴퓨터공학 교수였던 랜디 포시는 이런 교훈을 남겼다고 한다('이게 다예요'라고 덧붙였을 법하다).

★ 감사하는 마음을 보여주세요. 감사할수록 삶은 위대해집니다. ★ 준비하세요. 행운은 준비가 기회를 만날 때 온답니다. ★ 가장 좋은 금은 쓰레기통의 밑바닥에 있습니다. 그러니 찾아내세요. ★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벽은 깨라고 있는 것. ★ 꿈을 꿀 수 있다면 이룰 수도 있다. ★ 당신이 뭔가를 망쳤다면 사과하세요. 사과는 끝이 아니라 다시 할 수 있는 시작입니다. ★ 완전히 악한 사람은 없어요. 모두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세요. ★ 가장 어려운 일은 듣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전해주는 말을 소중히 여기세요. 거기에 해답이 있답니다. ★ 그리고 매일같이 내일을 두려워하며 살지 마세요. 오늘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세요. ★ 누군가 당신을 위해 했던 일을 당신도 다른 이들을 위해 하세요. ★ 당신 스스로 당신의 꿈을 허락하세요. 당신 아이들의 꿈에도 불을 지피세요.

내가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지침은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가 아니라 "가장 좋은 금은 쓰레기통의 밑바닥에 있습니다. 그러니 찾아내세요."이다.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쓰레기통이나 뒤지는 일이지 않을까? 거기, 줄 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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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2008-07-31 16:59   좋아요 0 | URL
'살림'출판사의 살림이 제대로 될런지 살짜쿵 의문이 드는군요^^? 양귀자씨 책 팔아 이렇게 오바를 해도 되는 것인지...<마지막강의>가 마지막 출판이 되는 건 아니길 바래봅니다. 그 마지막 강의가 무슨 알짜배기 강의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리고 영원히 모를 가능성이 높지만, 그 마지막 강의를 책으로 들으신 분들께 그 책 가격만큼의 댓가가 있길 바랍니다.

로쟈 2008-07-31 15:33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고전'하지 않을까 싶네요. 잘 돼도 문제입니다. 선인세가 더 치솟아오를 테니까. 한국에서만...

qualia 2008-07-31 04:00   좋아요 0 | URL
천박한 대한민국 인종들, 정말 좌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촛불이 타올라도, 이 개한민국의 “개민”들은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반복되는 역사가 증명합니다. 우리 자신에게 경고하건대, 촛불의 힘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오판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가장 강력한 적은 누구인가? 대한민국의 위신, 주권, 살림살이(경제), 정신을 하나둘씩 말아먹어 가고 있는 이명박 정권인가? 수구꼴통 친외세의 주구 조중동인가? 경복궁을 자금성 화장실쯤으로 깔보는 기고만장 짱께들인가? 독도를 빌미로 야금야금 재침략을 노리는 노회하고 야비한 쪽발이들인가? 그 누구도 아닙니다.

우리의 가장 강력한 적은 바로 “우리 국민들” 자체입니다. (우리의 가장 강력한 적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상투적인 말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남한 사회의 주류는 바로 『시크릿』 따위를 열독하는 일반 국민들입니다. 『시크릿』에 따위에 감동하는 그들의 (집단적) 심성이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남한 사회의 “시대 조류”입니다. 이 일견 평범해 보이는 시대 조류가 (저는 이것이 지극히 괴이하고 변태적이라 판단하는데요) 이명박 같은 천하의 범죄꾼을 일국의 대통령으로, 강남 땅값 걱정 후보를 서울시 교육감으로 뽑은 주범입니다.

이런 심성이 고착화돼 가는 남한 국민들, 이 심성들이 만들어내는 남한 사회의 변태적 시대 조류 따위가 『마지막 강의』 선인세 64만 달러 지불 같은, 제 살 뜯어먹는 밥통 같은 짓을 자연스럽게 저지르도록 만든 것입니다. (타의 추종 불허, 국제적인 “봉” 짓을 대한민국은 참으로 잘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 짓을 지식계, 혹은 지식산업계의 출판사들이 앞장서서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좌절하게 만듭니다.)

(너무나 슬픈 사건이지만) 금강산 피격 사건을 싱가포르 아세안 안보 포럼(ARF)에 가져가서, 일종의 민족의 집안 싸움을, 민족끼리 해결할 집안 문제를, 국제 마당에 나가 제 민족 못난 꼴을 멍청하게 이리저리 떠벌리고, ㄱ망신 흠씬 당하고, 이런 따위 쓸개 빠진, 민족 의식이라곤 전혀 없는, 자학적이고, 국제적 반푼이를 자처하는, 너무나 무뇌아적인 이명박 정권은, 그러나 또다시 남한을 집권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남한 국민들 과반수 이상이 『시크릿』 따위의 독자류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촛불이 아무리 수십만, 수백만 타올라도, 남한 사회의 시대 조류, 남한 국민들의 심성을 희망적으로 돌려 놓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오판해선 안 됩니다.

qualia 2008-07-31 04:40   좋아요 0 | URL
말이 너무 거칠고 천박해서 죄송합니다. 감정이 치밀어서 좀 입이 걸었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로쟈 2008-07-31 15:36   좋아요 0 | URL
'천박한 대한민국 인종들' 안에 qualia님이나 저도 포함된다는 게 문제입니다...

nada 2008-07-31 08:32   좋아요 0 | URL
정말 요즘 이 나라가 너무 우울하네요. 교육감 선거도 결국 그렇게 되고.
애 낳을 생각은 원래도 안 했지만, 이런 세상을 아이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면 공포스러울 정도예요.
사회적인 연대로 뭔가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그런 개인적 선택뿐이라는 게 답답해요.
우리 현실이 정말로 저 쓰레기통하고 다를 바 없어 보이네요.

로쟈 2008-07-31 15:35   좋아요 0 | URL
우울 모드하고 꽃양배추님은 안 어울리시는데요. 힘 내시길.^^

가을산 2008-07-31 10:44   좋아요 0 | URL
랜디의 '마지막 강의'는 작년에 인터넷에서 히트친 동영상 '마지막 강의'를 바탕으로 쓰인 책 같네요. 저도 그 영상 봤는데 재미있고 젊은이들에게 꿈을 주는 괜찮은 강연이었어요. 그런 꿈의 실현이 가능한 시스템이 부럽기도 했구요. 인세 내면서 책 사보기보다는 동영상을 보는 것을 더 추천합니다.
http://kr.youtube.com/results?search_query=randy+pausch+%EC%9E%90%EB%A7%89&search_type=&aq=f

로쟈 2008-07-31 15:36   좋아요 0 | URL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만으로도 충분히 괜찮고 감동적입니다.^^;

유리우스 2008-07-31 10:34   좋아요 0 | URL
저도 이민가고파요...-_- 더군다나 '서울시'교육감의 권한이 사실상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는.

로쟈 2008-07-31 15:37   좋아요 0 | URL
정작 이민가도 좋을 만한 이들은 남아서 민폐들을 끼치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7-31 12:19   좋아요 0 | URL
댓글들이 슬프네...

로쟈 2008-07-31 15:38   좋아요 0 | URL
좀 과장하면, 1848년 게르첸의 심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31 16:12   좋아요 0 | URL
투표의 힘이 무섭군요.다 도둑놈이야! 투표같은 거 안 해! 이런 사고방식이 이런 결과를 낳았죠.투표 안 한 이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깊이 생각해야겠네요.부작위의 책임이란 것도 있으니까요.

로쟈 2008-08-02 20:16   좋아요 0 | URL
정치적 냉소주의도 그것이 가능한 최소한의 '토대'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냉소주의자들은 그걸 간과하는 것 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31 16:32   좋아요 0 | URL
이쳥준 씨도 불귀의 객이 되었군요.장흥의 쌍벽중 이제 한승원 씨만 남았네요.

로쟈 2008-08-02 20:17   좋아요 0 | URL
한승원 선생도 기사에서 언급되더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08-02 20:58   좋아요 0 | URL
이청준 씨 고향이 장흥군 회진면인데 거기 천관산은 아래의 골짜기에는 물이 콸콸 쏟아지고 정상에서 보는 바다경치가 일품이라 경상도에서도 많이 등산 와요.전라도 특유의 요리도 괜찮고...근데 서울 경기 지방에서 오기엔 너무 멀겠네요.광주에서도 좀 멀지요.
 

번역 관련 글들이 많아져서 따로 카테고리를 만든다. '번역과 번역가'라고 이름을 붙였다. 최근 번역가들에 대한 주목도 늘어나서 한 일간지에서는 '번역가의 서재'란 꼭지도 연재하고 있다. 번역과 번역가에 대한 관심이 우리의 일상적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확장되고 심화되면 좋겠다. 인문서의 경우 현재 출간되는 책들의 절반 이상이 번역서라는 점은 번역에 대한 관심이 결코 사소한 관심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는지? 여하튼 그래서 따로 카테고리를 만들었다는 것이고 관련 페이퍼들은 시간이 나면 모아놓도록 할 생각이다. 첫 꼭지는 전문번역가 정영목씨를 다룬다. 이미 유명한 번역가이지만 내가 특별히 주목하게 된 건 올해 나온 몇 권의 책들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 아주 두툼한 융 평전이 나온 걸 보고는 입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알라딘에는 아직 입고되지 않은 듯). 다행히 얼마전에 일간지에 게재된 장문의 인터뷰기사가 눈에 띄어 수고를 많이 덜었다. 충분한 소개가 될 듯싶다.

매일경제(08. 07. 05) “이 사람이 손대면 10만부가 더 팔린다”

“사람이니 실수도 많이 한다.” “칼 융의 책을 번역했을 때인데 황금 당나귀(ass)를 황금 엉덩이라고 옮겼다. 몇 번을 봤는데도 실수를 발견하지 못하고 넘어갔다. 책이 나간 뒤 어떤 분이 점잖게 지적해서 고쳤다. 그런데 번역가를 모델로 소설을 쓰고 있던 한 친구가 주인공의 실수 사례로 그 얘기를 넣었다.”

웬만한 작가보다 더 유명한 번역가 정영목(47)이 털어놓은 실수담이다. 유명인사가 됐지만 그는 여전히 실수도 할 줄 아는(?) 보통사람이다. “때로는 단어를 잘못 보는 경우도 있다. 한번 잘못 본 단어는 눈에 무언가 씌워졌는지 계속 그렇게 본다. 교열을 몇 번 봐도 신문에 오탈자가 계속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보통사람이 현재 손꼽히는 번역가가 된 비결은 무엇일까. 그의 손을 거친 책에는 아주 다양한 표현들이 등장한다. 분명 정확한 우리말인데도 많이 접하지 못한 것들이 곳곳에서 고개를 내민다. 그는 그런 단어나 표현들이 결코 도를 넘어서지는 않았다고 강조한다.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뜻을 가장 충실히 나타내는 단어를 선택해 옮긴다는 것이다. 그런 노력과 능력이 오늘날 그를 가장 잘 나가는 번역가로 만든 셈이다.



번역가의 길

정영목은90년대 초 첫 번역서로 ‘세계 미스테리 걸작선’을 낸 뒤 지금까지 100권 정도를 옮겼다. “숫자 감각이 없어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 정도 될 것”이라고 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그가 옮긴 책들은 대부분 베스트셀러 대열이 끼였다. 마이클 클라이톤 원작의 ‘쥬라기 공원’이나 ‘펠리칸 브리프’ ‘가스실’ 등 존 그리샴 원작의 스릴러물 등이 그랬다. 가장 최근에 나온 게 코맥 매카시의 ‘로드’ 역시 베스트셀러 대열에 들었다.

정씨는 소설 뿐 아니라 비소설 번역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미 ‘마르크스 평전’이나 칼 융의 ‘사람과 상징’ 등을 옮겼다. 지금도 두 가지 번역을 하고 있는데 둘 다 비소설이다. 그중 하나는 칼 융 평전의 성격을 띤 내용인데 ‘융-분석심리학의 창시자’라는 제목으로 곧 나올 것이라고 했다. 또 하나는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이라는 것으로 러시아와 영국이 중앙아시아를 놓고 쟁탈전을 벌이던 내용이라고 했다.

90년대 초 처음으로 번역한 책이 나왔지만 사실 그의 번역인생은 훨씬 거슬러 올라간다. 정 씨는 평범한 삶을 원해 부모가 원하던 법대나 상대를 마다하고 영문과에 진학했다. 80학번이니 시절이 뒤숭숭할 때다. 학교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로 번역 일을 했다. 대학 졸업 후 잠시 문예진흥원을 다니던 그는 공부를 더 하려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렇지만 공부는 진척이 더뎠다. 그렁저렁 지내면서 ‘새벗’이라는 잡지에 실릴 글을 번역했다. 이 인연으로 한 지인이 출판사를 소개해줘 본격적으로 번역에 손을 댔다.

정 씨는 89년에 결혼을 했는데 이것이 본격적인 번역 인생을 살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고 한다. “91년 첫 아이를 낳았다. 그 무렵부터 번역이 생계의 중심이 됐다.”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가장의 전형이다. 우연한 기회에 번역 일을 시작해서인지 그는 “한참 뒤에야 ‘업’ 의식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직업의식이 투철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는 것. 그는 스스로를 중간(2세대 번역가)세대로 분류한다. 본업으로 하고 있지만 의식은 철저하지 못하다는 것. 지금 번역을 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본업으로 의식을 갖고 해서인지 아주 철저하다고 한다. 반면 선배들은 또 다르다고 했다. 안정효, 김석희 씨 등 1세대 번역가들은 소설가로 글을 쓰면서 겸업 형태로 번역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세월은 보통사람인 그를 전문가로 만들었다.

‘그들은 누군가가 팔짱을 끼는 것을, 초조한 표정으로 손가락으로 이를 잡고 흔드는 것을,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한쪽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을 살피며, 계속 그런 행동을 해주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존 그리샴 ‘사라진 배심원’에서, 2003년 번역)

‘호수 건너편에서 어떤 생물이 둑 모양의 돌로 둘러싸인 웅덩이에서 물이 뚝뚝 듣는 입을 들어올리더니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거미알 같은 희끄무레한 눈으로 빛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생물은 보이지 않는 것의 냄새를 맡으려는 듯 물 위로 낮게 고개를 숙였다. 벌거벗은 채 웅크린 생물은 창백하고 투명했다. 설화석고 같은 뼈가 뒤쪽 바위에 그림자로 비쳤다. 내장과 고동치는 심장도. 흐릿한 유리 종 안에서 팔딱이는 뇌도. 생물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낮은 신음을 토하더니 비틀비틀 몸을 돌려 소리 없이 어둠 속으로 성큼성큼 뛰어 갔다.’ (코맥 매카시 ‘로드(The Road)’에서, 2008년 번역)

9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나온 그의 번역물들을 보면 문체나 단어 선정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진전된 것을 볼 수 있다. 원저의 차이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작가가 사용한 단어나 표현 등을 훨씬 더 잘 살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엔 만족하지 않는 그의 자세가 잘 반영되고 있다. 가장 잘 된 번역을 꼽으라고 하자 그는 “앞으로 나올 것이다”라고 했다.

“내고 나면 늘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보면 볼수록 고칠 것이 많아져서 점점 더 여러 번 보게 된다. 이렇게 하다가는 아마 무한히 고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는 보다 완벽한, 보다 실수 없는 번역을 위해 정신을 집중한다. 그게 “굉장한 압박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그렇지만 조금은 다른 이유로 술을 즐긴다. “옛날 사식집 다니고 할 때는 책 나오면 술을 나눴다. 지금은 웬만한 것은 이메일로 처리하니 그 때보다 교류는 줄었지만 그래도 작은 출판사들은 거의 동호인처럼, 친구처럼 만나서 일하기 때문에 지금도 책이 나오면 술잔을 건넨다.”

대신 건강은 등산으로 다진다고 했다. “앉아만 있으면 푹 가라앉기 때문에 자주 간다. 재미도 있고 몸에도 좋고. 북한산을 주로 가는데 가끔 멀리 가기도 한다.” 빨리 걸으면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일산의 친구 사무실 한 귀퉁이를 얻어 쓰고 있는 그는 매일 출근한다. 또 거의 매일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간다. 이렇게 해야 일 년에 4~6권 정도를 낼 수 있다고 했다. 책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초고잡고 검토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만만찮은데다 출판사에서 보고 다시 역자교정까지 보아야 하므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

최근 여러 권이 나온 것은 전에 번역했는데 출판사에서 들고 있다가 한꺼번에 내놓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성공한 번역가지만 그는 경제적으로 크게 여유는 없고, 그렇다고 특별히 아쉽지도 않은 정도라고 했다. 비슷한 나이의 직장인들 월급과 비교하면 많지 않은 수입이라는 것. 그렇지만 대우는 예전보다 나아졌다. “(원고료는) 매절(저작권을 통째로 넘기는 것)로 받기도 하고 인세를 받기도 한다. 옛날에는 매절 밖에 없었지만 요즘엔 섞어서 받는 게 많다. 돈도 돈이지만 아무래도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조금은 더 신경을 쓰지 않겠나.”

번역한 책 가운데 추천할만한 책을 꼽으라고 하자 그는 “글쎄. 다들 괜찮은 책인데”라면서 “꼭 꼽으라고 한다면 코맥 매카시 의 ‘로드’나 마커스 주삭의 ‘책도둑’, 존 반빌의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 등이 어렵지만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독자의 수준이 높아져서 어려운 책도 좋은 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독자의 토양은 우리가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넓고 또 열려 있다는 얘기다.

정영목의 번역론

“말이란 게 의식과 무의식을 합한 것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어떤 게 좋은 번역인지는 답이 없는데 구지 말한다면 ‘빙산의 일각’인 말을 풍성하게 반영한 게 아닐까. 작가가 쓴 글은 매우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 번역가는 그중 한 가닥만 가져올 수도 있고 또 피상적으로 가져올 수도 있다. 그 의미를 충실히 옮기는 게 좋은 번역이다.”

좋은 번역에 대한 그의 정의다. 그렇지만 그는 번역가의 ‘절제’도 강조한다. “원문을 얼마나 충실히 따랐는가를 중시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표현도 원문이 그렇지 않다면 과잉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번역을 할 때 작가가 튀는 표현을 쓰면 나도 튀고, 작가가 가라앉는 표현을 쓰면 나도 가라앉고, 작가가 진부하게 하면 나도 진부하게 한다. 작가가 진부하게 간다면 거기엔 나름대로 진부하게 간 뜻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래도 그의 손을 거친 책에는 참신한 표현이나 단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에 대해 그는 “튀는 표현은 아니다”고 못 박았다. “가령 로드에 나오는 ‘빗방울이 뚝뚝 듣다’라든가 ‘우듬지’ ‘날빛’ 등의 표현이나 단어들은 생소할지는 몰라도 제법 쓰이는 것 들이다. 문맥에 맞으면서 그 정도면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해 사용했다.”

외국 글을 옮기면서 이런 표현들을 동원할 수 있는 비결을 그는 소설에서 찾았다. “우리나라 소설을 보면서 배우려고 애를 쓴다. 소설가들은 우리말 전문가들이다. 소설은 좋은 표현의 보고이다.”
주위 사람들의 대화를 들으며 그때그때 좋은 표현들을 메모하고 기억하는 것은 또 다른 그의 숨은 노하우다.

우리말의 어휘가 영어의 어휘에 비해 부족하다는 느낌은 받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 ‘눈’에 대해 에스키모들은 여러 가지 표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특수한 경우는 예외이겠지만 일반적으로 보면 영어 어휘가 꼭 많은 것만은 아니다”고 말한다. 많은 경우 단어라는 알갱이가 정형화되지 않고 뿌옇게 안개처럼 싸여있다는 것. 이 때문에 “번역은 블록을 끼우듯 단어를 맞춰나간다고 되는 게 아니다”고 한다. 단어 하나하나를 끊어가며 최대한 살려내는 게 중요하지만, 때로는 단어를 1대1로 대응시키는 것 이상으로 문맥을 읽어내는 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영어에만 있고 우리에겐 없는 표현이 나왔을 때 그는 ‘최악의 경우에 쓰는 비법’을 공개했다. “영어를 있는 그대로 써주고 주석을 다는 방법”이다.

그는 좋은 번역을 하는 또 다른 노하우도 공개했다. 다름 아닌 ‘역량 있는 좋은 편집자를 만나라는 것.’ “편집자는 제1독자로서 번역한 글을 처음에 보고 리드를 해 준다. 어떤 표현이 ‘생경하다’거나 ‘참신하다’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데 편집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책이 달라진다.” 편집자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수정을 요구하기도 하고 부족한 집중력을 보완해주기도 하는데 “다행히 출판업이 다른 산업에 비해 박봉인데도 뜻과 사명감을 가진 양질의 인력이 많다”며 그는 낙관했다.

그러면서 번역의 길을 걸으려는 후배들에게 조언도 했다. “먼저 많이 읽어야 한다. 연애할 때 한 마디 듣고 파악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말에 담겨진 뜻을 파악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 “다음으로 좋은 편집자를 만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기 원고를 객관화해주는 사람이 편집자이다. 좋은 편집자를 만나는 게 운이기도 하지만 일정부분은 자신의 노력도 따라야 한다.”

‘번역은 머리가 아닌 엉덩이로 하는 것’이란 지론을 펼치는 그는 유능한 번역가가 되는 비결 역시 ‘시간’에서 찾는다. “절대적 시간을 투여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게 번역이다. 한번 보는 것보다 두 번 보는 게 나으니 어쩔 수 없다.”

많은 책을 번역해 냈지만 그는 책을 쓰고 싶은 욕심은 없다고 했다. “번역은 작가보다는 배우나 연주자와 비슷하다. 언어를 다룬다는 점은 같지만 작가와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시나리오 작가는 자기 목소리가 있지만 배우는 자기 목소리가 있으면 안 된다. 번역가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책을 쓰라는 것은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쓰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워낙 이 길을 오래 걸어서 다른 길로 간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한다고 했다.

■ 정영목은
서글서글한 눈매에 강원도 억양이 약간 섞인 정감어린 말투. 정씨를 처음 접했을 때의 이미지다. 서울서 나서 서울서 자랐다. 말투는 원주가 고향인 부친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 관악고와 서울대 영문과(80학번)를 나왔다. 1년 남짓 문예진흥원에서 일하다 공부를 더 하려고 들어간 서울대 대학원을 늦깎이로 졸업했다. 최근엔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강의도 하고 있다. 첫 작품인 ‘세계 미스테리 걸작선’을 비롯해 ‘펠리컨 브리프’와 ‘쥬라기 공원’ ‘가스실’ ‘마르크스 평전’ ‘서가에 꽂힌 책’ 등 수 많은 책들을 번역해왔다. 최근에 ‘책도둑’과 ‘로드’ 등을 번역했다. 전문 번역가로 출판사에서 의뢰가 왔을 때 자신이 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거절할 수 있을 정도로 입지를 굳혔다. 그렇지만 번역은 팀으로 하는 것보다 단독으로 하는 것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글·사진 = 정진건 기자)

08. 0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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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8-07-30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분 덕을 많이 봤어요.. 책이 술술 읽힙니다. ㅎㅎㅎ

로쟈 2008-07-31 15:41   좋아요 0 | URL
요즘 들어서 더 좋아진 게 아닌가 싶어요...

paviana 2008-07-30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스테리걸작선부터 봤으니 저 분 책 알게 모르게 참 많이 읽었네요. ^^

로쟈 2008-07-31 15:41   좋아요 0 | URL
알게 모르게 팬들이 많군요.^^

hnine 2008-07-30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보다 훨씬 나이가 많으신 분인줄 알았네요.
잘 읽고 갑니다.

로쟈 2008-07-31 15:41   좋아요 0 | URL
아직 40대니까 '젊은' 편이죠...

perky 2008-07-31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에 대해 깐깐하기로 유명한 '강대진'씨가 '잔혹한 책읽기'에서 정영목씨의 번역에 대해 칭찬을 아주 많이 하셔서 이분이 번역하면 무작정 신뢰부터 가더라구요. (사실 번역의 질도 과히 수준급이구요.) 평소 궁금했더랬는데, 정영목씨 이렇게 생겼군요. ^^

로쟈 2008-07-31 15:43   좋아요 0 | URL
그런 대목이 있었나요? 여하튼 좋은 번역자들이 인정받는 풍토가 마련돼야겠습니다...

아프락사스 2008-07-31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가 하면 최악의 번역을 쏟아내는 번역가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죠. 특히 SF팬덤 사이에서 그런 평가가 강한데, 일각에서는 정성호 씨와 엮어 '정 Bros.'라고 부를 정도더군요. 왕년에 정영목 씨 번역으로 <낙원의 샘>이 출간되었을 때는 최용준 씨가 번역전문평론서 <미메시스>에서 무자비한 혹평을 가하기도 했죠. "얼치기가 감히 SF를 번역할 꿈도 꾸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는데, 귀담아들을만한 내용입니다. 최용준 씨 본인이 번역 관련 상을 여럿 수상한 적도 있는, SF팬덤 내부에서는 상당히 신뢰받는 역자 중 하나라는 걸 감안하면 더욱 그렇죠.

뭐, 번역 전문 비평서라 하는 미메시스도 그 간행처인 열린책들이 <도스또예프스끼 전집> 오역 사태에 휘말리면서 더이상 간행되지 못하고 폐간되어버렸으니 이 또한 재미있는 일이긴 합니다만.

로쟈 2008-07-31 15:45   좋아요 0 | URL
기사에도 있지만 번역자들도 시행착오를 거치지요. 저도 <영원한 이방인>은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지젝이 만난 레닌>을 읽으면서 감탄했습니다. 일부 실수가 없는 건 아니지만 단기간에 그렇게 가독성 높게 이론서 번역을 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라서...

노이에자이트 2008-07-31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영국과 러시아의 대결에 대한 번역을 준비 중이라니 정말 기다려집니다.제가 러시아와 영국의 팽창정책이 중앙아시아와 서남아시아(저는 작년부터 중동이란 단어 안쓰기로 했어요)에서 충돌한 데 대해 관심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로쟈 2008-07-31 15:45   좋아요 0 | URL
저도 기대가 되는 책입니다.^^

람혼 2008-08-01 0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golden ass'를 '황금 당나귀'가 아니라 '황금 엉덩이'로 번역하는 '실수'를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김소진의 소설에서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게 번역가 정영목의 진짜 이야기였다는 사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차용해 쓴 '한 친구'가 김소진이었다는 사실, 그런 것들이 이 글을 읽는 여담으로서 개인적으로 참 흥미롭습니다.^^

로쟈 2008-08-01 12:21   좋아요 0 | URL
얼핏 기억이 나네요. 김소진이 2년 후배였겠는데요...

달리는여자 2009-04-27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영목 선생님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입니다. 인터뷰 내용 보니 새삼 반갑네요- 제 미니홈피로 퍼갑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