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 칼럼을 뒤늦게 읽고서 옮겨놓는다. '번역의 힘'에 대한 것이다. 필자는 지난봄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예담, 2008)란 책으로 화제를 모았던 노문학자 석영중 교수이다.

서울신문(08. 07. 14) [문화마당] 글로벌시대 번역의 힘

19세기 러시아 시인 중에 주코프스키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시도 잘 썼지만 유럽 문학을 러시아어로 번역하는 일에서 더욱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특히 그가 공들여 번역한 ‘오디세이’는 러시아 문학사에 큰 획을 그어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후배 작가 고골은 주코프스키의 ‘오디세이’ 번역이 문학의 새로운 시대를 연 사건이라고 환호하면서 미사여구로 가득 찬 아주 긴 에세이를 썼다. 한마디로 주코프스키의 번역은 기적이며 번역자는 원저자보다 더 생생하고 아름답게 고대 그리스의 삶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심지어 주코프스키가 평생 동안 썼던 창작 시는 이 번역을 위한 습작이라는 것이다!

나는 문제의 ‘오디세이’ 번역을 읽어 보지 못했으므로 고골의 평가가 어느 정도 공정한지 가늠할 수 없다.‘이거야 원 꿈보다 해몽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고골의 글을 읽으면 어쨌든 무척이나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번역을 기적적인 사건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문학 풍토가 부럽고, 번역가에 대한 지극한 예우가 부럽고, 번역을 창작보다 더 높이 둘 수 있는 독자의 열린 마음이 부럽다.

러시아는 옛날부터 번역을 중시했다. 특수한 역사적 상황 때문이다. 러시아는 17세기까지 유럽 문화로부터 고립되어 있었다. 따라서 표트르 대제가 서구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18세기 초부터 러시아인들이 당면한 과제는 서구 따라잡기였다. 번역은 서구화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었다. 지식인들은 서구 문화의 전통을 차용하고 번역하고 수용했다. 그러는 사이에 번역은 창작이 되고 수용은 서구를 향한 새로운 도전이 되면서 찬란한 러시아 문학과 예술을 탄생시켰다. 그러므로 푸시킨에서 파스테르나크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유명한 문인들 대부분이 창작과 번역을 같이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러시아의 번역문화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물론 러시아가 서구화를 향해 줄달음치던 시절과 오늘의 글로벌 시대를 같은 틀 안에서 얘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히려 글로벌 시대이기에 그리스 로마 문화도 르네상스도 모르던 러시아를 한 세기 만에 문학강대국으로 만들어준 번역의 힘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번역은 대화다. 원저자와 번역자 간의 대화이고 언어와 언어 간의 대화이며 문화와 문화 간의 대화이다. 우리가 세계를 향해 말을 하고 싶다면 세계가 하는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이해의 양과 질과 속도는 결국 우리 문화의 성장을 좌우한다. 글로벌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대화로서의 번역을 요구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나라에서도 번역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학부에 번역학과가 창설되기 시작했고 번역학회와 번역가들의 활동이 다원화되고 있으며 명저 번역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지속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전문 번역인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언어적 소양과 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전문가적인 양심을 갖춘 번역인 양성을 위해 지금이라도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더불어 번역 서평을 활성화하고 번역 윤리를 정착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무성의한 번역, 엉터리 번역, 기존 번역의 표절 같은 것들이 설 자리가 없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시급한 것은 번역에 대한 사회 통념의 전격적인 변화이다. 번역은 문화 발전을 위한 가장 강력한 원동력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굳건하게 뿌리내려야 한다. 우수한 번역가도 필요하고 명민한 번역비평가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번역에 대한 국민의 인식 자체를 바꾸어 글로벌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번역 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일이다.(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08. 09. 20.

Гомер Одиссея: Поэма (пер. с греч. Жуковского В.А.; предисл. Нейхардт А.; прим. Ошерова С.)

P.S. 주코프스키의 '오디세이' 번역은 http://az.lib.ru/z/zhukowskij_w_a/text_0180.shtml 에서 읽어볼 수 있다. 작가들의 번역도 '전집'에 포함하는 것이 '러시아의 번역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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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9-20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을 중시하는 나라가 문화대국입니다.우리나라도 대학원생들에게 공짜로 번역시키는 교수들이 사라질 때 문화대국이 될 것입니다.대학원을 안 다녀봐서 경험은 안 해봤지만 이런 일이 많다고 하더군요.

로쟈 2008-09-20 20:20   좋아요 0 | URL
우리의 '번역문화'죠.^^;

노이에자이트 2008-09-20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사람보다 더 뻔뻔한 종자가 모든 것을 맨입으로 해결하려는 놈들이죠.특히 위계질서 내세워서...

로쟈 2008-09-21 09:41   좋아요 0 | URL
덧붙여 현재와 같은 강사시스템도 세계적으로 희귀할 거 같다는 생각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9-21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달 전 주한외국인이 불법체류하다가 철창생활하면서 겪은 책이 소개되었는데 한국인은 감옥에서도 쉰살이 넘은 남자들이 누가 형이냐 동생이냐 따지더라는 일화가 나오더라구요.그 외국인 남자는 "한국엔 평등한 인간관계가 없다.모두 위아래를 따진다.아랫사람은 철저히 윗사람의 횡포를 감수해야 한다"고 결론냈는데 정확한 진단이라고 봅니다.

로쟈 2008-09-22 16:41   좋아요 0 | URL
네, 소개기사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Sati 2008-11-13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대그리스어를 모르던 주코프스키가 오디세이를 번역할 수 있도록 독일인 작가가 독일어로 축역을 해주었다니, 주코프스키의 명역도 팔자가 좋아서 탄생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

로쟈 2008-11-13 06:56   좋아요 0 | URL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군요.^^
 

귀가길 전철에서 박홍규의 <소크라테스 두번 죽이기>(필맥, 2005)를 읽기 시작했다. 최근에 나온 <반민주적인, 너무나 반민주적인>(필맥, 2008) 때문에 관심이 이어진 것이기도 하고, '너 자신을 알라'란 주제에 대해서 정리해야 할 필요 때문이기도 하다. 겸사겸사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관련한 책들에 눈길을 주어본다. 소크라테스 읽기 혹은 소크라테스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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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네 대화 편- 에우티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플라톤 지음, 박종현 엮어 옮김 / 서광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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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 문예교양선서 30
플라톤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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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 진리를 위해 죽다
안광복 풀어씀 / 사계절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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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서의 철학, 소크라테스의 변론
플라톤 원저, 나종석 지음, 신준식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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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오늘 아침 전철에서 읽은 책의 리뷰가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 도정일 교수의 '드문' 신간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생각의나무, 2008)이 그 책이다.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여러 잡지에 발표했던 글 6편을 묶은 것인데, 그나마 책으로 묶인 건 출판사측의 노고 덕분이다. "나는 내가 썼던 글들을 내 손으로 모으고 묶어서 출판을 시도한 적이 없다. 이 책도 내가 내자고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는 게 저자의 변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비유대로 이만한 '냉동고래'도 드물다. 여하튼 그래서 귀하고 드문 책이 나온 셈이니 아껴 읽을 만하다... 

한겨레(08. 09. 20) 시장의 독재에서자유를 선언하라

문학평론가 도정일(67) 경희대 명예교수가 새 저서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을 내놓았다. 지은이는 여러 매체에 왕성한 필력으로 글을 써왔지만, 그 글들을 묶어 책으로 펴내는 데는 극도로 인색한 모습을 보였다. 대담집이나 공저서는 여러 권 있었지만, 단독 저작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번에 나온 책은 문학비평집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1994년) 이후 무려 14년 만에 펴낸 두 번째 단독 저작이다. 생각의나무 출판사가 기획한 ‘문(問)라이브러리’ 시리즈의 하나로 나온 이 저서에는 1990년대 후반에 쓴 에세이 다섯 편이 묶였다. 지은이는 머리말에서 “다시 읽어보니, 이건 꼭 내가 21세기에 부친 영혼의 안부편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썼는데, 그 고백 그대로 이 책은 10년 세월의 풍화작용을 이겨내고 생기를 발한다. 아니, 세월이 지나 오히려 더 생생한 문제의식으로 빛나는 글이 됐다고 해야 맞을 듯하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어휘를 하나만 고르라면, 이 책의 제목으로 채택된 ‘시장전체주의’라는 말일 것이다. 지은이는 문화·교육·대학·문학, 그리고 다른 어떤 것보다 인문의 풍경을 통해 우리 시대를 관찰하고 거기서 시장전체주의의 암울한 징후를 적발해 분석한다. 인문학자의 시선이 미리 포착한 21세기 대한민국의 살풍경이 이 책에서 묘사되고 있는 셈이다. 그가 말하는 시장전체주의란 “시장 논리의 지배가 확립된 사회”다. 시장이 유일 가치가 된 시장 유일체제가 시장전체주의 사회다. 시장에서 팔리는 것만이 가치 있고 의미 있고 효용 있는 것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그 사회다. 시장은, 바꿔 말하면, 돈이다. 돈이 모든 것의 주인, 모든 것의 척도, 한마디로 줄여 절대이념이 된 사회가 시장전체주의 사회다.

그 사회가 ‘전체주의’인 이유를 지은이는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먼저 이 사회가 시장 논리, 시장 원리, 시장 가치를 향해 사회 전체를 훈육하고 재조직하며 채찍질하는 ‘동원 체제’이기 때문이다. “정치전체주의의 사회 동원 방법이 강제적·강압적인 것이라면, 시장전체주의의 사회 동원은 자율성과 자발성의 외피를 입고 있다.” 사회 구성원이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한 것 같은 겉모습을 띠고 있지만, 그 체제만이 생존의 유일한 길임을 설득하고 납득시킴으로써 모든 구성원을 체제에 복속시킨다.

둘째로, 시장전체주의는 주민들을 겁주고 통제하고 관리하는 ‘감시 체제’다. 시장에 적응하고 순응한 자만이 이 무한경쟁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하는 이 체제는 그런 이데올로기의 반복을 통해 구성원의 의식을 장악한다. 그리하여 “시장 원리를 수락하는 것은 시민의 ‘의무’가 되고 거기 적응하는 것은 시민의 ‘미덕’이, 그리고 그 적응력은 시민의 ‘능력’이 된다.” 여기서 ‘자기 감시’가 발동하게 된다. ‘시장의 신’이 내리는 명령을 ‘자기 자신의 명령’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그 명령에 따른 의무·미덕·능력을 갖고 있는지 어떤지를 자기 스스로 점검하고 감시한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한 감시자·통제자·검열자가 된다.” 시장전체주의는 이렇게 작동하는 ‘자발적 감시 체제’다.

지은이가 시장전체주의의 세 번째 특징으로 꼽는 것이 ‘사회적 이성의 마비’다. 시장의 효율·효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모든 이성적·비판적 담론들을 ‘헛소리’로 밀어내 버리고, 도구적·기능적 이성 이외에는 어떤 것도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 사회가 시장전체주의 사회다. “과거 정치전체주의가 사회적 이성의 학살을 중요한 정치적 목표로 삼았던 것과 유사하게 시장전체주의에서도 공적 이성은 학살 대상이 되고 그 사용 능력은 마비된다.” 지은이는 우리 시대가 그 ‘광기’의 사회를 향해 반성 없이 맹목적으로 내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지은이가 이 지점에서 강조하는 것이 인문정신과 인문가치이고, 그 정신과 가치의 담지자인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그 본질적 속성상 인간의 인간다움 실현을 주제이자 목표로 삼는다. 인문학은 시장의 효율·경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러므로 시장의 신은 인문학을 무가치한 것으로 보기 십상이다. 시장의 제국에는 인문학을 위한 자리가 없다. 여기서 지은이는 인문학이 시장과 돈을 무조건 배척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님을 환기시킨다. “인문학은 돈을 경멸하는 것이 아니라 돈밖에 모르는 사회를 경멸한다. 인문학은 시장을 과소평가하거나 시장 논리를 전면 거부하지 않는다. 인문학이 문제 삼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시장전체주의’이고 시장 논리가 아니라 ‘시장 논리의 유일 논리화’이다. 인문학은 돈 버는 사회를 우려하는 것이 아니라 돈에 미친 사회를 우려한다.”

교육이 사람다운 사람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돈 버는 인간’의 생산을 목표로 할 때, 대학이 학문을 닦는 곳이 아니라 오직 ‘지식 인력’만을 공급하는 훈련소가 될 때, 문학이 시대의 비인간성과 맞서지 않고 시장 논리에 함몰돼 한낱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할 때, 문화가 인간성의 풍요로운 성찰이 아니라 ‘문화자본’의 상품으로 그칠 때, 그때가 바로 시장전체주의가 도래하는 때다. 시장전체주의는 그 맹목성과 야수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을 잡아먹게 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문민정부 시절 날이면 날마다 ‘세계화’를 외치다가 결국 외환위기를 맞아 정권이 파산하고 국가가 부도났던 것이 시장의 자기파멸성을 증거한다. 지은이는 이 시장의 광기를 제어할 것은 비판적 이성이며, 비판이성을 가동할 주체는 시민사회라고 강조한다. “21세기를 통틀어 한국인에게 부과되는 중요한 사회적 과제 중에서도 가장 우선적인 것은 민주사회의 유지·발전·계승이다.” 그 사회를 감당할 민주시민을 길러내지 못하는 한,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고 지은이는 말한다.(고명섭 기자)

시대에 대한 6가지 질문과 대답 ‘문라이브러리’

생각의나무 출판사의 ‘문라이브러리’ 시리즈는 도정일 교수의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을 포함해 모두 여섯 권을 1차분으로 내놓았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의 <정의와 정의의 조건>,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한국 민주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의 <온생명과 환경, 공동체적 삶>, 강수돌 고려대 교수의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그리고 윤평중 한신대 교수의 <극단의 시대에 중심잡기>가 1차분에 포함됐다.

‘문라이브러리’는 1980년대 사회과학출판사들의 ‘신서’ 시리즈와 2000년대에 새롭게 등장한 문고본을 통합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예리한 사회적 문제의식을 단출한 문고본 틀에 담아냄으로써, 가독성과 진지함을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문라이브러리는 크게 세 가지 하위그룹으로 나뉜다. 1차분으로 나온 것이 인문적 담론의 마당을 펼치는 ‘휴머니티’ 시리즈이고, 예술 분야의 저술을 펴내는 ‘아트’ 시리즈, 문학적 에세이를 펴내는 ‘리터러처’ 시리즈가 따로 나올 예정이다. 문라이브러리는 ‘문’(問), 곧 ‘시대에 대한 물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름의 물음을 품고서 시대와 대화하는 가운데 얻은 답변이 책의 본문을 이룬다면, 그 답변 자체가 또다른 물음을 잉태하고 출산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고 출판사는 밝혔다.


1차분으로 나온 책들은 국내 인문·사회과학계의 1급 학자와 논객을 불러내 이 물음과 답변을 들려준다. 시리즈 첫 권인 김우창 교수의 <정의와 정의의 조건>은 이 시리즈의 성격에 정확히 들어맞는 경우다. 김 교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중심적인 화두’인 정의의 문제를 다룬다. 그는 좋은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라고 잘라 말한다. 그러면서도 “‘극단의 정의가 극단의 손상’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러 경우의 수를 찬찬히 따져보는 그의 사유 방식이 여기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최장집 교수의 <한국 민주주의 무엇이 문제인가>는 지은이가 정년퇴임 후 펴낸 첫 책이다. 최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등장과 촛불집회 같은 최근의 사례에 대한 평가를 통해 자신의 지론인 정당 민주주의 강화론을 펼친다. 그는 촛불집회를 민주주의 제도 실패의 결과로 보면서, ‘운동’이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바와 그 한계를 함께 살핀다. 장회익 교수는 <온생명과 환경, 공동체적 삶>에서 그의 고유한 생태사상인 ‘온생명 사상’을 풀어놓는다. “진정한 의미의 생명은 낱생명 속에서가 아니라 온생명과 낱생명의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새로운 생명 이해에 도달할 때, 인간 중심의 관념에서 형성된 국가관의 제약을 좀더 쉽게 벗어날 수 있다.” 장 교수는 생태계 파괴의 문명을 극복할 실천방안으로 대안공동체 운동을 제시한다.

강수돌 교수는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에서 상품경쟁·생존경쟁·시장경쟁은 결국 우리를 합리적으로 분열시키는 메커니즘에 불과하며, 경쟁에서 누가 일등을 하는지와는 무관하게 모두가 권력과 자본의 지배 아래 종속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윤평중 교수의 <극단의 시대에 중심잡기>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편향적 사유의 중심잡기’를 시도한다.(고명섭 기자)

08. 09. 19.

P.S. 세기말에 씌어진 첫번째 글 '밀레니엄, 오, 밀레니엄!'(1999)에는 주요 미래소설들, 혹은 반(反)유토피아 소설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첫 타자는 러시아작가 예브게니 자미아친의 <우리들>(1923)이다. '자미아친'은 'Zamyatin'을 읽어준 것으로 보통은 '자먀친'이나 '자먀찐'이라고 읽는다('자먀틴'이라고 읽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1920년에 씌어진 소설이어서 '1923'이란 연도의 출처는 모르겠다.

"러시아 작가 예브게니 자미아친이 그린 이 26세기의 세계에는 단 하나의 국가(이름도 '단일국'이다)만 있고, '대시혜자(大施惠者)'라 불리는 단 한 사람의 통치자가 그 거대 단일국을 다스린다."(15쪽)  

이 원조 반유토피아 소설의 국역본을 따르자면, '단일국'은 '단일제국'이고 '대시혜자'는 '은혜로운 분'이다. 그리고 소설의 배경은 '26세기'가 아니라 '29세기'이다. 어차피 미래소설이니 그게 그거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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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9-19 22:10   좋아요 0 | URL
인문학의 위기를 논하면서 결국은 연구비를 더 달라고 국가에 요구하는 것도 시장전체주의의 한 모습이 아닐까요?

로쟈 2008-09-20 20:21   좋아요 0 | URL
인문학자뿐 아니라 지식인 일반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최장집 교수의 인터뷰에 이런 지적이 나옵니다. "이를테면 학술진흥재단과 같은 국가기관이 많은 학술사업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면서, 어떻게 보면 지식인들은 거대한 국가기구의 하나의 관료적 고리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시민사회의 자율성, 시민운동을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예전에 운동을 실제로 했던 지식인들이 과연 국가로부터 얼마나 자율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스스로 비판적 거리를 가질 수 있느냐 하는 점에서도 회의적입니다." 저 또한 회의적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9-20 15:32   좋아요 0 | URL
하기야 이공계를 살리자면서 그 분야도 똑같은 요구를 하더군요.결국은 이런 식으로 하면 국가에 포섭된다는 말씀이지요?

로쟈 2008-09-20 20:24   좋아요 0 | URL
소위 지식인의 국가비판이 한낱 '행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 국가체제 바깥에서 일상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므로 대안이 있을 성싶진 않고, 다만 그에 대한 자의식을 갖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주 중대신문에 게재한 기획서평을 옮겨놓는다. 월러스틴의 <유럽적 보편주의>에 대해서는 한겨레21에 실은 '보편적 보편주의를 향하여'(http://blog.aladin.co.kr/mramor/2293474)에서 이미 다룬 바 있지만 '과학적 보편주의'에 대한 월러스틴의 비판적 검토를 좀더 언급하고 싶어서 추가적으로 지면을 빌리게 됐다(사실 <유럽적 보편주의>에 대한 독후감은 중대신문의 서평으로 먼저 고려됐지만 한 주 연기되는 바람에 한겨레21의 연재가 먼저 나가게 됐다). 분량에 비해 거창한 제목이 돼버렸는데, 여하튼 이행기 지식구조의 변동과 대학의 변화는 지속적인 관심사로 두려고 한다(그런 이유에서 최근에 대출한 책이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리오리엔트>와 사미르 아민의 <유럽중심주의>이다).

중대신문(08. 09. 16) 유럽의 보편주의를 넘어 근대 대학이 나아갈 길은

가을이다. 이 결실과 조락의 계절에 사회과학서를 읽는 일이 분위기에 맞지 않을지 모르지만 저명한 세계체계 이론가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유럽적 보편주의>(창비)는 예외라고 해야겠다. 우선은 강연문을 묶은 것이어서 읽기가 용이할 뿐만 아니라 분량이 짧다. 그리고 수십 년간 세계체제이론을 가다듬어온 저자의 핵심적인 사상이 압축돼 있어서 월러스틴 입문서로 유익하다. 한 가지 이유를 더 들자면 이 또한 ‘가을의 책’이다.



 

 

 

 

 

저자는 이미 소비에트식 현실사회주의가 무너지던 해 ‘자본주의 문명’이란 강연(1991)에서 “자본주의 문명은 그 존재의 가을에 다다랐다”고 진단한 바 있다. 자본주의라는 역사적 사회체제가 바야흐로 막바지, 곧 종말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따라서 현시대는 이행기라는 주장이었다. 월러스틴이 16세기(1450-1650)에 형성된 근대 자본주의 체제의 이데올로기로 지목하고 있는 ‘유럽적 보편주의’ 또한 이 종말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은 자명해 보인다.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비록 구체적 상이 제시된 건 아니지만, ‘보편적 보편주의’이다. 월러스틴은 이 두 가지 보편주의 사이의 싸움이 향후 20년에서 50년 사이에 진입하게 될 미래의 세계체제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이데올로기 투쟁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유럽적 보편주의라는 편파성을 갖는 근대 보편주의의 두가지 양식으로 월러스틴은 오리엔탈리즘과 과학적 보편주의를 든다. 보다 우리의 흥미를 끄는 쪽은 과학적 보편주의이다. 실상 근대의 학문적 이념이기도 하기에 과학적 보편주의에 대한 회의는 현재의 지식구조와 대학제도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이기 때문이다.

월러스틴에 따르면 근대적 대학의 출현은 19세기 중반의 일이며 세계전역에 대학제도가 완전한 융성기에 도달하게 되는 것은 1945년 이후이다. 물론 이것은 1945년에서 1970년까지 세계경제의 거대한 팽창과 연동돼 있었다. 이미 19세기 중반에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제도적인 분화가 이루어졌고 1945년 이후에는 근대세계체제 운용에 새로운 기술개발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됨에 따라 자연과학이 인문학을 크게 앞지르게 되었다.

그렇지만 세계경제가 장기침체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세계 대학제도를 떠받치고 있는 사회경제적 토대가 약화되었고 변화에 대한 다양한 압력이 생겨났다. 동시에 인문학과 자연과학이라는 ‘두 문화’의 분리도 자연과학에서의 복잡계 연구와 인문학에서의 문화연구 등에 의해 도전받게 되었다. 이 두 경향은 모두 사회과학적 성격을 지니면서 전통적인 분과학문의 경계를 지워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인식에 근거하여 월러스틴이 내놓는 전망은 세 가지이다. 근대적 대학이 더이상 지식 생산과 재생산의 거점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지식구조의 새로운 구심적 경향을 갖게 되면서 새로운 인식론으로 재통합될 거라는 것, 그리고 이것은 ‘모든 지식의 사회과학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 지식구조 전체가 근대세계체제와 똑같이 무질서와 새로운 분기의 시기로 접어들었다는 진단에 공감한다면 월러스틴의 전망은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곧 ‘겨울’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08. 09. 18.

P.S. 한겨레21과 중대신문에 보낸 원고에는 '장기 16세기'라고 적었는데, 모두 '16세기'로 교정됐다. 1450-1650년 간의 200년을 가리키기 때문에 '16세기' 앞에 '장기(長期)'란 표현이 붙는데, 기사로 나가기에는 번거로웠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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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8-09-18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럽적 보편주의> 읽어보고 싶네요.
사미르 아민의 책은 구하기가 영 힘들더군요.

로쟈 2008-09-18 19:15   좋아요 0 | URL
막상 읽어보면 소략합니다. 대신에 다른 책들을 더 읽게 해줍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9-19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미르 아민은 맑스의 자본주의 이행과는 다른 발전단계설을 제시했을 때부터 서구 자본주의 위주의 근대화론과는 다른 것을 생각했겠지요.그의 변경혁명론도 그런 성격이 강하구요.1985년에 서울대 방문했을 때 기념으로 쓴 논문을 <계급과 민족>뒤편에 실었던데 그때 이미 베버류의 자본주의론이나 맑스의 아시아적 생산양식과는 결별할 준비를 한 것 같아요.

로쟈 2008-09-20 20:19   좋아요 0 | URL
방한까지 했었군요. <유럽중심주의>는 얇은 책이라 만만하게 생각하고는 있는데, 시간이 잘 안나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9-20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무렵이 우리나라에서 아민이 슈퍼스타였죠.번역도 하고...90년 이후 갑자기 유행이 뚝!!! 모르는 사람은 우간다의 이디 아민의 동생인줄 알았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죠.

로쟈 2008-09-21 09:41   좋아요 0 | URL
전설 같은 이야기로군요.^^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1,2>(새물결)가 6권으로 분권된 소프트카바로 재출간됐다. 1권만 반양장본으로 갖고 있었는데, 카바가 바뀌니 또 욕심이 난다(꽂아놓을 곳도 없건만). 휴대가 간편해진 김에 맘잡고 읽어봄 직하다. 19세기 파리의 회랑을 거닐어봄 직하다. 관련서 몇 권도 같이 읽어볼 만한 책으로 묶어놓는다(아래는 영역본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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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원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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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2008-09-16 23:55   좋아요 0 | URL
페이퍼백으로 새로 출간했다면 가격도 좀 싸져야 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가격은 더 비싸져버리니, 페이퍼백 출간이 또다른 상술로 전락해버린건 무슨 조화인지 싶더군요-.,-;

로쟈 2008-09-17 00:01   좋아요 0 | URL
요즘은 2-3만원 하는 단행본들이 부지기수라 저도 책값에 대한 감이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람혼 2008-09-17 05:12   좋아요 0 | URL
열매님 말씀이 정말 맞습니다. 보는 것이야 분책이 조금 더 편할 거라고 생각되지만 이것 참 가격이 이래서야...! 저는 아직 국역본을 하드커버든 소프트커버든 사지 않았는데, 구입을 결심할 때에는 '다른 의미에서' 고민하게 생겼군요.ㅡㅡ;

로쟈 2008-09-17 17:38   좋아요 0 | URL
부자들을 위한 인문학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