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부가 '역사' 교과서에 이어서 '도덕' 교과서에까지 손을 댄다는 기사가 떴다. "교과서가 이념적·정치적 논리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데, 언제나 그렇듯이 그 '실재' 취지는 그러한 부인의 제스처 속에 숨어/드러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연말 법무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도덕적으로 약점 없이 출범한 정권인 만큼 공직자가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는데, '도덕'이 자신의 아킬레스건임을 자인하는 것으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도덕성'이 문제인 정권인 만큼 도덕 교과서를 손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겠다. 이미 걱정할 수준은 한참 지난 듯하다...   

한겨레(08. 01. 06) 교과부, 새 도덕교과서 ‘평화교육’ 통째 삭제

교육과학기술부가 2010년부터 중학생들이 쓸 새 도덕 교과서에서 ‘평화교육’ 부분을 삭제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으로 ‘집필기준’을 갑자기 바꿔 집필자들과 출판사에 보냈다. 도덕 교사들과 집필자들은 “민족 통합과 통일을 강조하는 교육을 포기하고 옛 냉전시대의 안보교육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5일 교과부와 도덕 교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교과부는 기존의 ‘중학교 도덕 교과서 집필기준’에서 “평화의 가치와 갈등 해결 태도 및 기술을 중심으로 평화교육을 통일교육에 접목시킨다”는 등의 내용을 삭제한 ‘집필기준 수정안’을 지난달 새롭게 만들어 출판사 등에 보냈다. 기존의 도덕 교과서 집필기준은 옛 교육부가 교사와 관련 학회 등의 의견을 들어 2007년 8월 최종 확정한 것이다. 도덕 교과서는 2007년 2월 7차 교육과정 개정에 따라 국정에서 검정으로 바뀌었으며, 검정 교과서는 교과부의 검정을 통과하려면 ‘집필기준’을 따라야 한다.

집필기준 수정안을 보면,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사회문화적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되”라는 부분을 삭제하도록 했다. 또 애초 기준에서 ‘새터민’과 ‘북한 이탈 주민’이라는 용어를 구분해 쓰도록 한 것을 ‘북한 이탈 주민’으로만 쓰도록 했다.

북한에 대한 서술 기준도 대폭 수정됐다. 애초 집필기준에는 “남북한 간 체제의 차이와 경제적 우월성”을 구분하고 “객관적 사실을 기초로 북한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지나치게 부각하기보다는 긍정적 측면도 포함해 균형 있게 기술”하며, “북한의 변화하는 사회상을 반영할 수 있도록 교과서 내용 체제를 구성한다”고 돼 있었으나, 이런 대목이 대부분 삭제됐다. 대신 수정안은 “남북한 간 차이와 북한 사회에 대해서 객관적 사실을 기초로 균형적으로 기술”하고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통일 환경의 변화에 대해 진술하고, 통일 대비 과제들을 현실적인 관점에서 기술”하도록 했다. 김일성 항일무장투쟁과 주체사상의 경우 애초 기준에서는 역사적 증거 자료가 확인되면 언급할 수 있게 했지만, 수정안에서는 아예 다루지 못하게 했다.

현재 중학교 1학년 도덕 교과서는 출판사별로 이미 집필이 끝나 검정 절차에 들어갔으며, 중학교 2~3학년용은 최근 집필이 시작됐다. 진영효 전국도덕교사모임 회장(서울 상암중)은 “교과서가 냉전시대 북한을 바라보던 관점으로 돌아가고, 통일교육이 안보교육으로 바뀌는 것 같다”며 “남북 체제 차이를 인정한 민족 통합적 통일이 아닌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한 흡수통일을 강조하는 뉴라이트 계열의 이데올로기 공세가 도덕 교과서 집필기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교과서가 이념적·정치적 논리에 휘둘리지 않도록 ‘시각’을 배제한 채 사실관계 위주로 기술하자는 의견이 있어 수정안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김소연 기자) 

한겨레(08. 01. 06) 거꾸로 가는 통일교육…체제 우월성 내세워 북한 적대시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달 중순 만들어 고시한 ‘중학교 도덕교과서 집필기준 수정안’은 체제의 우월성을 내세워 북한을 적대시하는 등 옛 냉전시대의 통일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2007년 8월 마련된 집필기준을 근거로 도덕교과서 집필을 해온 저자들은 “어떻게 여론 수렴도 없이 이처럼 갑자기 내용을 바꿀 수 있느냐”며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교과부의 집필기준은 18쪽 분량으로, 중학교 1~3학년 공통 기준과 학년별 집필기준으로 나뉜다. 이번에 수정된 통일교육 영역은 △북한 사회에 대한 서술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한 언급 △평화교육 시각 도입 등 8개 항목으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 ‘평화교육’ 항목은 완전히 빠졌다. 평화교육은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을 낮추고 남북관계 진전에 따른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차원의 미래지향적 교육으로 도입됐다.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법학)는 “통일교육에서 평화교육을 빼자는 것은 어떻게 보면 통일교육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이런 식의 서술 방향 지시는 남북관계의 성과를 부정하고, 우리의 우월성을 앞세워 흡수통일을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교과부 관계자는 “평화통일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사안이고, 교육과정에도 ‘평화교육’이라는 용어가 없어 뺀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중학교 도덕교과서를 집필하고 있는 한 교사는 “교과서를 쓰는 데 집필기준은 하나의 가이드라인”이라며 “기준에서 평화교육이 빠지면 교과서를 집필할 때 ‘평화교육’ 자체를 언급하기가 어려워지는 등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번 집필기준 수정안은 북한 사회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는 관점을 부정하고 있다. 이를테면 북한의 인권 문제와 남북한 차이에 대해 ‘객관적 사실’를 강조하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과 잣대로 북한을 대하는 것은 북한을 대화와 협력의 대상으로 여기기보다는 자칫 대결구도를 강조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교과서 집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집필기준을 수정하면서 여론을 수렴하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중학교 도덕교과서 집필자인 또다른 교사는 “전체적인 (교과서) 틀 구상이 끝났는데, 관점이 바뀐 집필기준이 고시되니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진영효 전국도덕교사모임 회장은 “2007년 당시 교사·학자 등 7개 단체가 치열한 토론을 거쳐 평화교육 도입 등이 집필기준에 반영된 것”이라며 “이번 수정안은 사회적 합의를 무시한 일방적인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교과부 관계자는 “용어변경 수준의 수정이기 때문에 따로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김소연 정민영 기자)    

한겨레(08. 01. 06) [사설] 이번엔 ‘도덕 교과서’ 조작인가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검인정 도덕 교과서 집필기준을 느닷없이 바꿔, 출판사들에 보냈다고 한다. 정부 직권으로 검인정 ‘근현대사’ 교과서를 누더기로 만들더니, 이번엔 집필이 끝났거나 집필 중인 도덕 교과서마저 정권의 입맛에 맞추어 다시 쓰도록 한 것이다. 검인정 교과서는 정부의 집필기준에 따라야 채택되는 만큼 출판사로선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야 한다.

변경된 집필기준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더 큰 문제는 변경 절차와 배경이다. 교육부는 국정이던 도덕 교과서를 검인정으로 바꾸기로 하면서 2007년 8월 집필기준을 마련했다. 역사는 물론 윤리나 경제·사회 영역의 경우 동일한 사안에 대해 다양한 시각과 해석 평가가 존재하는 만큼, 이런 요소들을 반영하는 과정은 집필보다 오히려 더 중요하다. 그 때문에 당시 교육부는 집필기준을 마련하기까지 오랜 시간 교육 현장과 학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이번엔 어떤 의견 수렴 과정도 없었다. ‘이명박식 속도전’을 교과서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물론 이 정부도 할 말은 있다. 집중적으로 변경된 집필기준은 통일교육 영역이었는데, 통일연구원은 지난해 5월 통일교육 지침서를 만들어 1만여 초중고교에 배포한 바 있다. 그러나 그건 국정 체제에서 교사 참고용으로 배포됐을 뿐, 학계나 교육 현장, 시민사회의 의견 수렴과는 무관하다. 지침에 포함된 것은 오로지 정파적 시각으로 무장한 뉴라이트 계열의 의견뿐이다.

변경된 내용도 국민 정서나 시대의 흐름과 동떨어져 있다. 통일교육을 미래지향의 평화교육에서 냉전회귀의 대결교육으로 돌려놓은 게 고작이다. 북 체제와 변화상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관점 대신, 안보 위협 요인으로서 북한, 실패한 체제로서의 북한 등 대결적 관점을 요구한 것이다. 학생에게 식민지 근대화론, 독재체제 불가피론, 냉전적 체제 대결론을 주입하려 했던 근현대사 교과서 왜곡과 같은 맥락이다.

검인정 제도는 같은 사안이라도 다양한 시각·해석·평가를 제시하고 학생이 주체적으로 판단하도록 해 창의적 학습력을 키우려는 제도다. 이렇게 정치권력의 목적과 이해관계에 따른 시각과 해석을 강제하고 학생의 사고와 판단을 조작하려 하면서, 검인정 교과서를 표방하는 것은 사실상 사기다. 사기꾼 소리를 듣느니, 시대착오적 독재자라는 비난을 듣더라도 국정 체제로 되돌리는 게 차라리 떳떳할지 모른다. 

09. 01.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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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9-01-06 09:25   좋아요 0 | URL
하하 이런. 제가 하고 있는 일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군요. 버텨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로쟈 2009-01-06 22:50   좋아요 0 | URL
아프님의 '교과서 이야기'가 아직 안 올라오네요. 재미있을 듯싶은데요.^^

마늘빵 2009-01-07 20:02   좋아요 0 | URL
쓰더라도 수위조절을 해야 해요. -_- 아직 발표도 안 난 교과서고, 회사에서 보면 안되니까요. 하하.

비로그인 2009-01-06 11:26   좋아요 0 | URL
고국의 어린 학생들이 걱정입니다.

로쟈 2009-01-06 22:52   좋아요 0 | URL
사실 학생들이야 어차피 별로 신경도 안 쓸 문제인데(역사도 그렇지만 교과서만 갖고 공부하는 건 아니니까요)저로선 이게 집권층과 관료층의 수준을 말해주는 지표라서 우려스럽습니다. 하긴 '우려'할 단계도 지났죠...

무해한모리군 2009-01-06 11:51   좋아요 0 | URL
걍 교과서 만들어서 배포하지 왜 저럴까요?

로쟈 2009-01-06 22:53   좋아요 0 | URL
네, 정답입니다. 드라마도 알아서 만든다고 하니까. 조만간 교과서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비로그인 2009-01-06 23:06   좋아요 0 | URL
"우려할 단계도 지났다"고 하시니 마음이 더욱 무거워지는군요. 조금 전, 아침 일찍 자동차 엔진 오일을 갈기 위해 딜러 서비스에 갔다 왔습니다. 대형 TV가 켜져 있는 대기실에서 몇몇 미국인들과 1시간 정도 기다렸습니다. TV에는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이 간간히 보도되고 있었지만 거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각자 책을 보거나 옆 사람과 잡담을 할 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TV에서 뉴욕 거리의 유태인 두 사람을 인터뷰했는데 모두 오바마가 이스라엘 폭격을 조금도 차질없이 전폭 지지할 것을 촉구하더군요. 아침부터 이런 광경을 보고 와서 그런지 로쟈 님의 댓글이 더욱 어둡게 느껴지는군요.
 

이번주 한겨레21에 실은 출판면 기사를 옮겨놓는다. 최근 출간된 <레닌과 미래의 혁명>(그린비, 2008)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근간 예정인 '혁명' 관련서들에 대한 소식을 덧붙였다. 이미지를 찾다 보니 (지면기사에 쓰인 건 못 찾겠고 대신에) 레닌 포스터에 오바마의 얼굴을 붙인 것이 눈길을 끈다. 포스터에 씌어진 문구는 "레닌은 살았다, 레닌은 살아 있다, 레닌은 살아있을 것이다!"이다. 더불어 '1917년'은 '2008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제 2009년이다...

 

한겨레21(09. 01. 12) 혁명의 시대, 레닌을 생각한다

"레닌은 생각도 하지마!”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자들, 그러니까 반공 우파뿐만 아니라 급진 좌파까지도 공유하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다면 그것은 레닌에 대한 ‘사고금지’다. 2008년 5월 국내에도 소개된 <지젝이 만난 레닌>(교양인 펴냄)의 편저자 슬라보예 지젝이 레닌을 반복하려는 기획을 시도하면서 처음 접했던 반응이 빈정거리는 폭소였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마르크스는 좋다, 하지만 레닌이 뭔가?”라는 식이다. 그러한 반문이 전제로 하는 레닌은 마르크스주의를 실천에 옮기려는 노력의 실패이며, 20세기 정치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역사적 재앙이자, 독재로 치달은 현실 사회주의 실험의 원흉으로서의 레닌이다. 요컨대, 레닌은 현실사회주의 몰락과 소위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가져온 실패이자 재앙이고 원흉이다. 이것이 혁명가 레닌에게 들씌워진 표준적 이미지다.    

 

‘레닌의 현재적 의미를 묻는다!’는 구호를 내걸고 출간된 <레닌과 미래의 혁명>(그린비 펴냄)은 시류를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레닌에 대한 표준적이면서도 상투적인 이미지에 괄호를 치고 현재의 자본주의 위기 국면에서 레닌과 러시아혁명을 다시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이 제안이 처음 발의된 것은 박노자 교수가 러시아혁명에 대해 강의한 2007년이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그린비출판사의 학술심포지엄이 개최된 것이 2008년 7월이었다. ‘촛불 시대에 다시 생각하는 레닌과 러시아혁명’이 심포지엄의 타이틀이었다. 이번에 나온 책은 발제자로 나선 세 명의 발표문과 현장 토론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고 보리스 카갈리츠키의 러시아 자본주의론과 루이 알튀세르의 레닌론 등이 보충되었다.     

이 모임의 형식이 ‘심포지엄’이라는 단어로 표현됐지만 러시아어로는 ‘소비에트’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발제자의 한 사람인 박노자 교수가 짚어주는 대로 소비에트란 원래 ‘조언’이란 뜻이며 러시아 혁명기의 소비에트란 무엇보다도 서로 조언을 주고받고 논의하는 기구이자 장소였다. 조언은 명령이 아니며 평등한 관계를 전제로 한 수평적 소통을 지향한다.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바로 그런 의미에서의 소비에트, 혹은 평의회가 촛불집회를 계기로 레닌을 재평가하기 위해 열렸던 셈이다. 그 ‘소비에트’의 대체적인 분위기는 “지금 레닌을 불러낸다는 것은 뼈아픈 실패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실패 속에서 실패를 사유하는 것이다.(...) 그 실패를 통해 새로운 출구를 찾는 것이다”는 발언 속에 집약돼 있다.   

‘레닌의 정치학에서 외부성의 문제’를 다룬 이진경 교수는 계급과 당, 국가와 혁명, 사회주의와 이행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외부성’의 사유가 레닌에게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본다. 이러한 검토를 통해 그는 프롤레타리아 정치와 프롤레타리아 혁명, 그리고  혁명적 정치 모두가 부르주아 국가권력에 대해 외부적이고, 외부적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가 보기에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후 국가장치를 이용해 국가장치를 사멸시켜야 하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되는데, 이 난감한 역설을 돌파하기보다는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레닌은 외부성을 사유했지만 그것을 끝까지 관철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비판의 요점이다.   

한편, 조정환 다중네트워크 대표는 ‘제헌권력’의 문제를 화두로 삼아 레닌을 다시 생각한다. 그에 따르면 헌법에는 성문화된 헌법을 가리키는 형식적 헌법 외에 헌법을 제정하는 행위로서의 물질적 헌법이 있다. 이 경우 물질적 헌법이 형식적 헌법에 선행하며 더 우선적이다. 레닌은 이 두 가지 헌법의 차이를 분명하게 의식하고 1917년 2월 혁명 이후 사회주의의 물질적 헌법(프롤레타리아 독재)과 형식적 헌법(소비에트 헌법)의 쟁취를 주장한다. 하지만 1917년 7월 이후에는 제헌권력의 최종심을 소비에트에서 볼셰비키로 귀속시키게 되며, 조 대표는 이것이 소련 사회주의는 물론 세계 사회주의 역사에 혼란과 불행을 가져온 것이 아닌가라고 비판한다. 그런 의미에서 '레닌에게 배우기'는 '레닌을 극복하기'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지막 발제에 나선 박노자 교수는 레닌에게서 반자유주의적, 혹은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는 다른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발견하는데, ‘소비에트 민주주의’가 그것이다. 이 소비에트의 시발은 노동자들이 처우 개선을 위한 공장주와의 협상에 대표자를 내보낸 것에서 비롯한다. 소비에트는 혁명기에 볼셰비키들과 ‘협력’했지만 그들의 지도에 ‘순응’하지는 않았으며 특정 정당의 하부조직으로 편입되지도 않았다. 다른 볼셰비키들과 달리 레닌은 소비에트의 잠재력을 크게 평가하고 소비에트와의 동등한 협력관계를 강조했다. 박 교수가 보기에, 이러한 ‘민주주적인’ 레닌이야말로 정치가로서 그의 비범한 면모다. 하지만 내전으로 치달은 혁명 이후의 과격한 상황은 레닌으로 하여금 자신의 민주적인 원칙을 지킬 수 없도록 했고, 내전의 종료와 함께 소비에트 민주주의도 의미를 상실하게 됐다. 레닌을 다시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실패와 좌절의 교훈을 지금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되새길 것인가를 고민하도록 한다.   

 

이미 지난해 ‘촛불 정국’에서도 확인한 바 있지만 대의 민주주의 체제의 위기와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들이닥친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국면은 새로운 사회와 체제에 대한 사유를 요구한다. 이에 발맞추어 올해 출판계의 한 가지 화두는 ‘혁명’이 될 전망이다. 올해 프레시안북에서는 ‘레볼루션(Revolutions)’ 시리즈를 선보일 예정이다. 전체 10권 가운데 마오쩌둥의 <실천론․모순론>, 로베스피에르의 <덕치와 공포정치>, 호치민의 <식민주의를 타도하라>, 예수의 <가스펠>, 트로츠키의 <테러리즘과 공산주의> 등이 1월 중 발간될 1차분에 포함될 예정이다. 그리고 도서출판 마티에서도 이번 봄에 슬라보예 지젝을 포함하여 에티엔 발리바르, 프레드릭 제임슨, 테리 이글턴 등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철학자들의 레닌론을 묶은 <레닌 재장전>(가제․Lenin Reloaded)을 출간할 계획이다. 바야흐로 출판계에서만큼은 “혁명이 문 앞에 있다!”  

09. 01. 05.  

P.S. <지젝이 만난 레닌>에 대해 작년에 쓴 글은 '자본론보다 더 긴요한 책'(http://blog.aladin.co.kr/mramor/2146648)을 참조. 그리고 그린비출판사의 학술심포지엄 스케치는 출판사의 블로그(http://greenbee.co.kr/blog/296)에서 읽어볼 수 있다. 이번에 나온 <레닌과 미래의 혁명>은 레닌과 러시아혁명에 대한 약간의 배경지식을 갖고 있다면 흥미로운 독서를 제공한다. 전체 3부 가운데, 초심자라도 가장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대목은 2부의 토론이다. 발제자들이 자신의 발표를 요약/정리해주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대의를 파악하고자 한다면 2부를 먼저 읽는 게 좋을 듯싶다. 가령 박노자 교수의 이런 비교는 어떤가. 

레닌의 생명력이 궁금하다면 1917년도, 혁명의 해에 레닌의 움직임들을 자세히 봐야 합니다. 나중에 레닌이 독재자란 비판을 받짐만, 1917년 10월까지만 해도 레닌은 모범적인 소비에트 민주주의자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1917년 러시아의 부르주아 임시정부는 이명박 정권하고 어떤 면에서 비슷하기도 했어요. 이명박보다는 훨씬 약했지만, 외부 권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는 차원에서는 비슷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임시정부는 자구책으로서 독일과의 전쟁을 중단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도 할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연합국들의 채권 때문이죠.(...)   

지금 대한민국이 그것보다 국력 상태도 좋고, 여러 가지 점에서 당시 러시아처럼 파산 위기는 아니라고 할 수는 있죠. 그럼에도 이명박 정권이 미국 자본주의에 상당한 의존성을 보이고 있고, 또 그것이 대(對)국민적으로는 굉장히 안 좋게 보이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그런 상황을 보면 왠지 1917년의 임시정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임시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다른 점은 전자에게는 이렇다 할 경찰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전의경이 없었던 것이죠.(166-7쪽)  

흠, 말하자면 임시정부의 수장이었던 케렌스키에게는 이명박과는 달리 어청수가 없었다는 것이 차이점이라는 얘기겠다...   

P.S.2. 대부분 그렇지만 마감에 쫓겨 원고를 넘긴 탓에 이번에도 제대로 퇴고를 하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교열부에서 손을 봐준다는 점인데, 이번호 지면기사에서는 몇 가지 이견도 생겼다. 첫 문단에서 "그러한 반문 전제로 하는 레닌은"이 지면에서는 "그러한 반문 전제로 하는 레닌은"으로 수정됐는데, 나는 전자의 뜻으로 썼다. 그리고 고유명사 표기 두 가지. 지면에서는 '알튀세르'가 '알튀세'로, '호지민'이 '호찌민'으로 수정됐는데, 한겨레의 방침에 따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거명한 책에서의 표기는 전자이며 내가 지지하는 쪽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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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닌 재장전' 예고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1-14 12:13 
    2009년에 이어서 2010년에도 '1월의 책'은 '레닌'이다. 두툼한 분량의 <레닌 재장전>(마티, 2010)이 곧 출간될 예정이다. 부제는 '진리의 정치를 향하여'. 아래가 원서의 표지이고, 번역본의 표지는 좀 크게 넣었다.       <지젝이 만난 레닌>(교양인, 2008)과  박노자 외, <레닌과 미래의 혁명>(그린비, 2008)에 이어
 
 
2009-01-06 0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06 0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재작년부터 연말이나 연초에 교수신문에서 학술출판 트렌드에 관한 기사를 옮겨놓았다(아래쪽의 '학술출판'이란 태그를 클릭해보시길). 올해는 며칠 늦어진 셈인데, 사실 작년의 출판 전망과 결과를 대비시켜보는 페이퍼를 연말에 계획하기도 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상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이럴 땐 '로쟈 2'가 있었으면 싶다). 그냥 올해의 전망기사를 읽어보는 걸로 넘어갈까 한다. 얼른 보기에 아주 예기치 않은 기대작이나 대작은 눈에 띄지 않아서 좀 실망스럽긴 한데, 그건 기사가 올해의 라인업을 다 망라해서 보여주지는 못하기 때문인 듯싶다. 그런 허전함을 채워줄 예기치 않은 책들과 분명 맞닥뜨릴 수 있으리라고 믿어본다. 흠, 올해도 이제 시작이다!.. 

교수신문(08. 12. 31) 2009년 미리 보는 출판 트렌드

주요 학술출판사들이 올해 출판을 계획하고 있는 책의 면면을 보면, 갑갑한 현실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물색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인문사회과학 전문 출판사들의 출간예정 도서목록을 보면 무겁지만 역량이 기대되는 책들의 귀환이 점쳐지고 있다. 멀게는 이국의 저자에서부터 가깝게는 국내 신진 저자의 뚝심이 역력한 책들이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우선 ‘혁명적 에너지와 상상력의 귀환을 꿈꾼다’라는 모토의 세기의 혁명가들의 시리즈를 계획하고 있는 프레시안북이 눈에 들어온다. 마오쩌둥, 로베스피에르,  호치민, 예수, 트로츠키, 카스트로, 제퍼슨, 볼리바르, 페인, 마르크스 등의 저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살림출판사는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민음사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정치적 무의식』을, 도서출판 길은 자크 데리다의 『마르크스와 그 적자들』과 에른스트 블로흐의 『유토피아의 정신』 그리고 울리히 벡의 『세계화 시대의 권력과 반대권력』을 내놓는다. 특히 프레드릭 제임슨의 저작은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 있어, 좀처럼 역자들이 달겨들지 않은 저작이라, 국내 첫 번역이 자못 기대된다.   

국내 필진 이론적 역량 과감히 선보여
국내 필진이 직접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현실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책으로 펼쳐내는 경향도 엿보인다. 서울대학교출판부는 『한국사회 트렌드를 읽는다』(정진성 외), 『한국의 사회운동가 진보정당』(임현진) 등의 저서를 출간 예고하고 있다. 도서출판 길은 『소수자의 정치학』(이정우)과 『스피노자-현대철학에의 함의』(진태원) 등의 책으로 사회를 근본에서 해독하는 국내 필진의 이론적인 높이를 과감히 선보일 예정이다. 이정우 박사는 들뢰즈·가타리 철학에 기반을 둘 것이고, 진태원 박사는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의 철학에 기반을 둘 것으로 보인다. 이참에 두 저자의 관점차를 비교하면서 프랑스 철학 내부의 이론적 긴장을 파악해보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매진은 『학출-80년대와 공장으로 간 대학생들』과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을 통해 이미 전설이 되고 있는 뜨거웠던 시절을 돌아보고자 한다. 따듯한 방구석에서 ‘설’만 풀어내기에 바쁜 요즘 지식인들의 현주소를 반추하는 계기도 기대해본다. 단, 한 때 유행했던 ‘후일담’의 토로에 그치지 않을까하는 염려도 공존한다.

한편 정치사상의 울타리를 벗어나 보다 세부적이고 다양한 각도에서 미래를 고민하는 저작도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우선 꾸준히 출판 트렌드의 상수로 자리 잡은 여성주의 관련 저작도 올해 역시 선을 보인다. 책세상은 『여성, 섹슈얼리티, 국가』(이성숙)와 『식민지 이후를 사유하다-차이의 정치학, 탈식화와 재식민화이 경계』(권명아)등의 저작들과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 권리 옹호』와 올리브 슈라이너의 『여성과 노동』을 번역서로 준비 중이다. 무게 있는 철학서로 알려진 철학과현실사도 『여성 리더쉽의 공간과 철학』(윤혜린)과 『지구화 시대 여성주의 철학』(윤혜린)을 내놓을 예정이다. 여성주의 관련 저작의 경우, 예전의 단순 개괄서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심층적인 주제를 신선한 포맷으로 서점에 등장하는 것이 최근 추세다. 올해 출간이 예고되는 몇몇 저작들이 동어반복적인 주장을 하지 않길 기대해본다.  



환경 역시 오늘을 사유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고민거리 중의 하나이다. 도서출판 한울은 『비판적 생태학과 환경정의』(최병두)와 찰스 하퍼의 『환경과 사회』를 잇달아 출간할 예정이다. 단순한 자연 보호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환경정의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방법론이 주목을 끈다. 다만 자칫하면 인간 중심주의로 환경을 사유하는 한계에 갇힐 수도 있는데, 저자들이 어떤 지혜를 발휘할지 지켜볼 대목이다. 민음사의 『저탄소 경제, 경제의 지도를 바꾼다』(김현진)는 정책적인 관점에서, 인간사랑의 『마르크스의 에콜로지 : 유물론과 자연』(존 벨라미)은 사상적 관점에서 환경의 문제를 사유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아시아라는 지역에 대한 연구 성과를 선보이는 저작도 포진을 하고 있다. 휴머니스트는 『동아시아사』(제임스 팔레 외)를, 도서출판 한울은 『중국과 베트남 : 비대칭의 정치학』(브레틀리 워맥)을, 창비는 『21세기에 다시 보는 동아시아 3국 근대이행기』(김동노 외)와 『일본의 역사인식 비판』(미야지마 히로시)를 예고하고 있다. 그린비가 출간 예정 중인 『80년대 중국과의 대화』(자젠잉 외)와 『거울 속에 있는 듯』(다이진화)은 현대 중국에 초점을 맞춘 저작들이다.

동아시아를 읽는 차분한 시선들
아울러 동아시아에서 활약한 유명인들의 자서전 내지는 평전도 다수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삼인출판사는 『히로히토 평전』(허버트 빅스)과 『문동환 자서전』(문동환)을 준비하고 있고, 시대의 창은 『안중근 평전』(김상웅)을 예고하고 있다. 돌베개도 『황종희 평전』(쉬딩바오)을 선보인다. 동아시아 지역 연구는 아무래도 우리의 역사적 경험과 무관할 수 없어 편향된 주장을 할 가능성이 있기도 하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경향은 차분한 시선을 보여주고 있어 기대가 된다.  



예년에 비해 대안적 삶과 사회를 염두에 둔 저작들이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전통 철학 저작들이 위축된 것은 아니다. 학술 연구의 무게가 더해져야 실천적 고민의 질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을 저자와 역자 그리고 출판사들이 모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들의 인식 변화이겠지만 말이다. 학술 출판의 좌장격인 아카넷은 무게있는 학술서 다수를 출간 예고하고 있다. 딜타이의 『정신과학에서 역사적 세계의 건립』을 가다머 전공자인 김창래 교수가,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칸트 전공자인 백종현 교수가 준비하고 있으며, 꾸준히 하이데거 책을 번역해 온 신상희 박사가 하이데거의 『횔덜린 시의 해명』을 번역한다.

아카넷이 간혹 프랑스철학서를 번역해왔지만, 올 예정 책들은 독일철학에 편향된 것이 눈에 걸린다. 독일철학은 무거운 학술 고전의 대접을 받고, 프랑스철학은 유행에 영합하는 대중용 서적의 취급을 받는 현실을 반영하는 듯해 개운하진 않다. 고전의 번역 이전에 무엇이 고전인가, 고전을  선정하는 기준은 객관적인가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소소하고 기발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학문적 깊이를 유지하고자 하는 최근 역사학 저서의 경향은 올해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휴머니스트는 『소문사설-조선의 기술사』(부유섭 외)와 『조선의 문자생활사』(심경호), 『동다기-차의 문화사』(정민)를 소개할 준비를 하고 있다. 같은 출판사의 『인과성의 문화사』(스티븐 컨)도 기대를 모은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사소해 보이는 것들의 역사에 정통한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되는 것은 이런 책들의 기여 덕분이 아닐까.  



고전은 어떻게 선정되는가
모티브북은 셸던 와츠의 『전염병의 역사: 질병, 제국주의의 힘』을 선보인다. 전염병과 역사는 이미 출판시장에서 여러 번 재미를 보았던 소재인데, 이번엔 다른 관점과 주장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는 ‘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아서’시리즈를 예고한다. 『한국의 김치』(김숙희) 등이 그것이다. 서양의 차, 전염병, 관습, 의상 등 별의별 사소한 것들의 역사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는 출판 시장의 트렌드에 비춰 눈길이 가는 소재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일까. 올해는 특히 우리의 일상사에 대한 출판계의 관심이 큰 듯하다. 일조각은 『경기민요』(정동화)를 내놓을 예정이고, 소나무는 『한국의 아악은 없는가?』(한흥섭)와 『육담 박물관』(김선풍)을 준비하고 있다. 돌베개의 『한국 주거의 미시사』(전남일 외)도 빼놓을 수 없다.

건축 관련 저작들도 예년에 이어 꾸준히 흐름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휴머니스트는 『노마드철학과 서양건축』(이진경)을 통해 서양건축에 대한 철학적 독해를 선보일 예정이다. 동녘은 『표면의 건축』(데이빗 레더 배로우 외), 『전통건축 해체도』(김왕직 외), 『영건의궤와 조선의 건축』(김동욱 외) 등 건축 관련 저작을 대거 내놓을 전망이다. 소나무 역시 『건축학과 함께 하는 백제 도읍지 기행』을 내놓을 예정인데, 전통 건축을 역사와 접목해 소개하는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책이다. 건축에 대한 관심은 종합적 문화에 대한 열망을 일정 부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오주훈 기자)  

09. 0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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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2009-01-05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들러 구경만 하고 갑니다. 새해가 며칠 지나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로쟈 2009-01-05 22:57   좋아요 0 | URL
오늘은 댓글도 다셨네요.^^ 복많이 받으시길..

마늘빵 2009-01-05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보 감사합니다. ^^ 글에 익숙한 분이 계시네요.

로쟈 2009-01-05 22:59   좋아요 0 | URL
네, 발모님이 계시네요. 연말에 뵀지요...^^

사량 2009-01-05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몇 책들은 이미 한 해 전 같은 기사에서 언급된 책들이네요. ^^; 올해에는 꼭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로쟈 2009-01-05 23:02   좋아요 0 | URL
제때 내기 어렵죠. 저도 작년에 내려던 책이 역량이 부족해 미뤄져서 괴롭습니다.^^;
 

신간이지만 '로쟈의 낚시'가 아니라 '번역과 번역가' 카테고리에 분류하고픈 책이 있다. 도올 김용옥의 <논어 한글역주>(통나무, 2008). 한겨레의 서평을 읽고 출간 사실을 알았는데, 전3권 가운데 알라딘에는 아직 1권만이 떠 있다. 기자로도 방송인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었지만 도올의 본령은 아무래도 동양 고전학이고 그간에 자신의 역량을 너무 허비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자신의 '본업'으로 복귀한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중국 고전 13경을 완역하는 첫 작업으로 <논어>의 역주를 출간한 것인데, 이후의 후속 작업도 기대가 된다. 저자로서도 <도올 논어>를 두고 벌어졌던 학문적 시비와 세간의 비아냥을 불식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고전학에서 '역주'란 진검승부가 아니던가!).  

한겨레(09. 01. 03) 도올이 안내하는 논어 읽기의 오르가슴 

도올 김용옥(61) 전 세명대 석좌교수가 한자문명권의 최고 고전인 <논어>를 번역하고 주석한 <논어 한글 역주>(전 3권)를 펴냈다. 권당 6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완역판이다. 1982년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이래 줄곧 고전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스스로 번역의 범례를 세우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던 그는 이제야 그 약속의 일단을 실천한 셈이 됐다. “한 갑자를 돌고 난 내 인생을 회고해 보면서, 나는 갑자기 나의 학문세계의 초라한 모습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사서삼경을 포함한 중국 고경 13경 전체를 번역하고 주석하는 작업이었다고 그는 이 책 서문에 밝히고 있다. 그 첫 작업이 <논어> 역주인 셈이다.

지은이는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논어>의 세계사적·문명사적 위치와 의미를 찾는 긴 서문을 통해 ‘인류문명’을 ‘전관’하고 있다. 이 문명사적 조망은 그리스·로마 문명을 뿌리로 삼는 서구 문명을 상대화하려는 뜻을 품고 있다.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더스·황하 문명이라는 세계 4대 문명이 범아시아 대륙에서 태어났음을 고려하면, 그리스·로마 문명은 그 문명권 바깥에서 일어난 역외의 문명이다. 고대문명 전체의 시야에서 보면 ‘원류 속의 말류’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그 문명이 오늘날 지배문명이 된 것은 ‘연역적 사유’의 발견에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근대 서구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를 일으키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켰으며, 과학기술을 흥성시킨 것은 이 그리스 문명의 사유 방식에 기댄 성과였다. 지은이는 서구의 지배를 가능케 한 이 세 위업 가운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동아시아가 어느 정도 따라잡았으며, 아직 미치지 못한 것이 자연과학 분야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학이라는 것이 보편타당한 최종적 진리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 진리’ 이상의 어떤 새로운 진리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바로 여기서 <논어>라는 서구 문명 바깥의 사유를 새로이 탐구할 필요성이 나타난다. 

종교문명사적 차원에서도 <논어>의 자리는 의미심장하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고대 문명 초기에 등장한 다신교적 신앙은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하여 일신교 신앙으로 나아갔고, 이어 인더스·갠지스 문명을 통해 일신교 자체의 극복인 불교를 낳았다. 불교가 보여준 신 없는 종교 체계는 중국 문명에서 그대로 재현됐는데, 그것이 유교 문명이다. 공자는 신을 배제한 인간 중심의 사유, “인문학적 윤리학”의 건설자였다. 그런 점에서 “고대 문명 세계에서 가장 콘템포러리한(현대적인) 문명”이며, 바로 그런 이유로 <논어>를 탐구한다는 것은 우리 시대 사유의 새 지평을 탐색하는 일이 된다.   

지은이는 공자의 생애에 관해서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렇게 공자의 삶 자체를 추적하는 것은 공자가 살았던 구체적 삶을 알지 못하고 <논어>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것은 공자의 삶을 가장 구체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책이 바로 <논어>라는 사실이다. “공자는 오직 <논어> 속에만 살아 있다. 나는 <논어> 이상 진실한 공자에 관한 기록을 발견할 수 없다. 공자의 숨결이 생동치고 있는 것이다.” 공자는 55살 때 노나라를 떠나 14년 동안 ‘천하주유’를 한 뒤 고국에 돌아왔다. <논어>는 그가 귀환한 68살 때부터 73살 때까지 말년의 생각을 뼈대로 삼고 있다. 원숙기의 사상이 담겨 있는 셈인데, 그 사상이 수미일관한 체계 속에 추상적으로 기술돼 있지 않고 상황적 텍스트들의 콜라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 이 경전의 특징이다. “‘논어’의 ‘어’는 공자가 그의 제자들이나 당시의 사람들과 대화한 말, 그리고 제자들끼리 토론한 말, 그리고 공자에게 접문한(가까이 가 들은) 말이다. ‘논’은 ‘집이논찬’이란 뜻으로, 그 말들을 편찬했다는 뜻이다.”

이어 <논어> 해석의 역사를 살핀 ‘논어해석사강’과 신주의 틀을 세운 주자의 ‘논어집주서설’ 번역문, 그리고 지은이 자신의 번역론을 본문 앞에 배치했다. 본문에서 지은이는 ‘학이 편’에서 마지막 ‘요왈 편’까지 20편을 차례로 번역하고 고주와 신주 등 동서고금의 주석문들을 가능한 한 폭넓게 참조한 뒤 지은이 자신의 시각으로 새 주석을 단다. 가령,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정명’(正名)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자로 편’의 해당 구절을 지은이는 이렇게 번역한다. “자로가 말하였다. ‘위나라의 군주가 선생님을 모셔다가 정치를 하려 한다면,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는 정명을 먼저 할 것이다.’ 자로가 말하였다. ‘역시나 했더니만, 선생님도 참 아둔하기 그지없으시구려. 왜 하필 이름을 바로잡는다고 하십니까?’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바른 논리를 따라가지 않고, 말이 바른 논리를 따라가지 않으면 사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생한 현대 구어체로 이루어진 번역이다.

<논어>를 읽고 깨닫는 즐거움에 대해 정자가 이런 말을 했음을 지은이는 상기시킨다. “논어를 읽으매, (…) 어떤 자는 읽고 나서 그중의 한두 구절을 깨닫고 기뻐한다. 또 어떤 자는 읽고 나서 참으로 배움을 즐기는 경지에 오르는 자도 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읽고 나서 곧바로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춤을 추고 기뻐 발을 구르는 자도 있다.” 이 책은 이 희열로 가는 긴 여행이다.(고명섭 기자) 

09. 01. 03.  

P.S. 동양 고전에 관해서라면 나 자신이 초입자여서 '수준'을 말하기 어렵다. 어림짐작으론 리쩌허우의 <논어금독>(북로드, 2006)과 남회근의 <논어강의>(씨앗을뿌리는사람, 2002)가 국내에 소개된 중국어권 저작으로선 명망이 높은 책인 듯싶다. 나로선 도올의 <논어 한글역주>를 견주어볼 만한 기준점이다.   

 

국내 저자의 책으론 이기동의 <논어강설>(성균관대출판부, 2005), 배병삼의 <한글세대가 본 논어>(문학동네, 2002)가 얼른 떠오르는 책이다. 물론 고전적인 주석으로 치자면 대부분의 주석서들이 한마디씩 걸치고 지나가야 하는 주희의 <논어집주>를 빼놓기 어렵겠다. 성백효 역주본(전통문화연구회, 2006)에 이어서 박헌순본(한길사, 2008)도 출간돼 있다...

   

한편, <논어> 읽기에 관해 예전에 쓴 칼럼은 '논어를 읽었다는 자 누구인가'(http://blog.aladin.co.kr/mramor/188417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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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슴츠레 2009-01-04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문학자는 아니지만 이수태 씨의 <논어의 발견>과 <새번역 논어> 역시 '논어읽기'에 참고하면 좋은 책이지 않나 싶습니다. 저도 일독하고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만 주변 지인들의 추천이 압도적이더군요. 저의 추천은 그 분들에 대한 개인적이고 전적인 '신뢰'에 근거할 따름입니다..

로쟈 2009-01-04 23:12   좋아요 0 | URL
오래전 책이어서 눈에 잘 안 띄었나 봅니다. 도서관에 갈 때 한번 들춰봐야겠네요...
 

일이 있어서 인사동에 나갔다가 아이에게 문구도 사줄 겸 반디앤루니스에 잠깐 들렀는데, 의외의 신간이 눈에 띄었다. 러시아문학 전공자인 이덕형 교수의 <이콘과 아방가르드>(생각의나무, 2008). 근간 예정이라는 건 알았지만 리뷰보다도 실물을 먼저 보게 될 줄은 몰랐다(사실 내가 찾아보려고 했던 책은 승계호 교수의 학문세계를 다룬 <서양철학과 주제학>(아카넷, 2008)이었지만 아직 들어와 있지 않았다. 알라딘에도 그렇고).  

 

책 자체는 지난 2004년에 발표한 소설 <검은 사각형>(생각의나무, 2004)에 이미 예고돼 있었는데, 그 소설의 얼개가 출판사 사장인 주인공이 어느 겨울날 러시아 작가의 출판권 계약과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이콘과 아방가르드’의 원고수집을 위해 길을 떠나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쳐 프랑스, 이탈리아, 터키 등을 경유하며 각 도시에서 작가나 화가의 흔적을 만나고 그들의 미학적 의미를 되새겨본다는 것이었다.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주인공이 그렇게 수합한 자료와 사색의 결과가 <비잔티움, 빛의 모자이크>(성균관대출판부, 2006)와 이번에 나온 <이콘과 아방가르드>로 갈무리된 것. 하므로, 아직 한권도 읽어보진 못했지만, 이 세 권의 책이 하나의 삼부작처럼 읽혀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콘과 아방가르드>에 대한 출판사 소개는 이렇다.  

이 책을 쓴 성균관대학교 이덕형 교수(러시아어문학 전공)는 러시아 문학과 그리스도교 이콘을 20여 년이 넘게 연구한 학자이자 소설가로서 국내에서 보기 드문 이콘 전문 연구가이다. 그는 국내에서 러시아어문학을 전공한 후 소련 유학이 불가능했던 1980년대에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 가톨릭 예수회 수도사들의 정교 공동체인 파리 근교 뫼동의 생조르주에서 4년 동안 정교의 교리와 함께 이콘의 제작기법을 배웠다. 이때 그는 러시아 문학과 예술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정교 사상을 비로소 체감하게 됐고 나아가 그 뿌리가 되는 비잔틴 문화까지 탐구하게 됐다. 

저자는 이미 19세기 러시아 르네상스의 중심이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특유의 감성과 아름다운 문체에 담아 예술기행서 <빛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펴낸 바 있으며, 신간 <이콘과 아방가르드>의 모태가 된 소설 <검은 사각형>을 몇 해 전 출간하기도 했다. <검은 사각형>은 러시아 비잔틴 이콘의 흔적을 찾아 나선 구도적 여정을 글로 옮긴 것으로서 미학과 문학을 넘나들면서 초월에의 욕구를 예술(구체적으로는 러시아 이콘)이라는 틀에 담아 자신을 표현하고 성찰하는 한 존재의 지적 여정을 담아낸 자전적 소설이다. 이 소설 속에서 전개되는 주인공의 여정(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파리, 니스, 밀라노, 뫼동)은 <이콘과 아방가르드>에서 저자가 직접 수집하고 고른 200여 장이 넘는 생생한 이콘 도판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또한 2천 년 이콘의 역사를 읽어내기 위한 저자의 각고의 노력(러시아어, 프랑스어, 라틴어, 그리스어 등 다양한 언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 수많은 국내외 참고도서들)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러시아 문화사와 문화시학을 다룬 저자의 첫번째 책은 <천년의 울림>(성균관대출판부, 2001)이었다. 묵직한 책이지만 전공 교재로도 많이 사용되었고 일반 독자들에게도 러시아문화에 대한 훌륭한 안내서 역할을 해준 책이다. 이어서 나온 책이 <빛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책세상, 2002)인데, 페테르부르크 문화사의 서론격인 책이다. '서론격'이라고 한 것은 저자가 이 주제에 대한 보다 본격적인 저작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기 때문이다. <다쥐보그의 손자들>(성균관대출판부, 2002)은 동슬라브 신화를 다룬 '소품'이다. 소품이라고 한 건 <천년의 울림>이 보여준 스케일에 견주어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스케일은 <이콘과 아방가르드>에 이르는 삼부작에 이르러 다시 폭발적으로 확장된다.   

물론 다른 언어로 된 이 분야의 관련서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저자의 노고 덕분에 초기 그리스도교의 교부 미학과, 비잔티움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 아방가르드의 이콘을 역사적으로 가로지르는 '초월적 성스러움'의 미학을 우리말로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가뜩이나 빛도 성스러움도 모자라는 세태인지라 서가에 꽂아두고 자주 쓰다듬어볼 만하다... 

09. 01. 03. 

P.S. 저자 인터뷰기사는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901091751005&code=900308 참조. 이런 멘트가 눈에 띈다. “이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부정신학이라고 불렸던 그리스 교부철학이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장 뤽 마리옹 등 현대철학자들의 주장과 비슷한 걸 알게 됩니다. 초월자를 언어라는 테두리에 가둘 수 없으며 침묵과 관조, 이콘과 모자이크 같은 ‘빛의 예술’을 통해 존재와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부정신학은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와도 통하지요. 서유럽 교회의 예술이 모든 것을 소실점으로 모으는 원근법을 발명했다면 그리스 정교의 이콘 미학은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채택한 다초점과 나열의 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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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4 00: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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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4 0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북 2009-01-14 17:1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입니다. 이덕형 교수님 신간이 나와서 검색해 보던 중 로쟈님의 글을 보게 되었는데요, 글이 좋아서 저희 블로그에 스크랩하고 싶어서 댓글 남겨요. 허락해주신다면 담아가고 싶습니다. ^^

로쟈 2009-01-14 17:38   좋아요 0 | URL
독전감이어서 별 내용은 없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