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 독자라면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모색, 1999)를 떠올릴 수 있을 텐데, 원제는 'Profit over People'이고 부제는 '촘스키의 신자유주의 비판'. 이미 10년 전에 나온 '고전적인' 신자유주의 비판서다. 요점은 이 제목들에서도 확인된다. '비즈니스-프렌들리'한 정부와 기업의 이익(profit)이 국민(people)보다 우선하는 게 신자유주의라는 얘기. 간략한 소개는 이렇다.   

  

노암 촘스키의 새로운 평론 모음집.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글들은 인터넷 진보잡지 <Z>에 기고된 글들이다. 이 책에서 촘스키는 전세계에서 일종의 계급 전쟁을 촉발하고 있는 친기업적 정치·경제정책인 신자유주의를 비판한다. 민주주의를 위한 역사적 투쟁을 통하여 신자유주의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소수의 부자가 다수의 시민권과 정치권을 제한하려는 책략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비판하고 있다. 또한 자유시장, 기업에 의한 여론의 지배를 통해 민간 기업의 이익만을 증대시키는 정책을 강요하여, 결국 사회보장과 환경을 철저히 무시하는 결과를 낳은 소수의 폭력을 비판한다.   

10년 전 책에 대해서 뒷북성 멘트를 붙이는 것은 내가 아직 안 읽은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구속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이 책의 제목을 다시금 상기하게 됐기 때문이다(내일 동네 도서관에서 대출해봐야겠다). 사실 촘스키의 또 다른 책 <미국의 제3세계 침략정책>(일월서각, 1999; 원래는 <미국대외정책론>(일월서각, 1985)이라고 출간됐던 책으로 원제는 '워싱턴 커넥션과 제3세계 파시즘')에 관해 찾아보던 차여서(유감스럽게도 절판됐다) 쉽게 연상됐을 수도 있다. 아무려나 경제상황 못지 않게 정치상황도 10년, 혹은 20년전으로 퇴행한 것처럼 보이는지라 읽어야 할 책도 덩달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듯싶다.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를 '오늘의 멘트'로 정하고 엠파스에서 검색해보니 뉴스쪽으론 이런 칼럼들이 뜬다. 조선일보의 시론은 오늘자이고, 한겨레의 프리즘은 작년 봄의 것이다. 이 대조적인 칼럼을 읽자니 '국민'에 대해서, 그리고 국민을 빙자하는 '저들'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새삼스럽지 않더라도 한번 읽어보시길. 엠파스 검색시 나타나는 형광펜 표시는 일부러 놔두었고, 굵은 글씨의 강조는 나의 것이다. 만평은 경향신문 '김용민의 그림마당'에서 가져왔다.

조선일보(09. 01. 10) [시론] 난동을 망각하는 죄(罪) 

1969년 일어난 도쿄대 야스다(安田) 강당 사건은 일본 학생운동의 전환점을 마련한 사건이었다. 도쿄대는 전해부터 좌파 학생조직인 전공투(全共鬪)가 점령하고 있었다. 이들의 목적은 더러운 제국대학 엘리트의 재생산을 막자는 것이었고, 그 뜻대로 도쿄대는 1969년도 신입생 선발을 포기했다. 1월 18일 경시청 기동대 8500명은 야스다 강당에 집결한 7000여 명 투쟁대에 대한 진압을 개시했다. 작전은 다음 날 강당이 불타면서 종료됐다. 이 치열한 공방전은 이틀간 TV를 통해 일본 전역에 생중계됐다.  

1960년대 일본의 학생운동은 풍속이나 패션으로 여겨질 만큼 막강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전공투는 야스다 강당 극렬투쟁으로 학생과 시민의 혐오를 사고 사회로부터 외면됐다. 결국 이들은 소수 과격화 집단이 되어 요도호를 납치하고 해외에서 테러를 자행하는 등 자멸의 길을 가게 된다. 도쿄대는 야스다 강당이 불에 탔던 흔적을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폭력집단의 극단적 일탈행위를 후대에 길이 기억시키기 위해서다.  

1989년의 부산 동의대사건은 한국판 야스다사건이라 할 만하다. 동의대 총학생회는 원래 입시부정행위 때문에 교내투쟁을 시작했으나 노동절 날 느닷없이 파출소를 습격했고, 사태가 확대되자 전경 다섯 명을 납치했다. 끝내 경찰이 투입되자 시너와 석유를 바닥에 붓고 불을 질러 경찰관 7명을 사망하게 했다. 일본의 야스다 강당 사건과는 달리 이 엽기적 난동행위는 뒤틀린 역사적 판정만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2년 민주화운동 보상심의위원회는 동의대 사건 주역 46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격상시켜 명예회복과 보상을 받게 해준 것이다. 또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헌법재판소는 동의대사건으로 희생당한 경찰 유족들이 이 같은 조치의 부당성을 호소하며 낸 헌법소원마저 각하했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는 극렬투쟁이 되풀이되고 오히려 고무를 받아 확대 재생산된다. 광우병사태의 경우 우리 국민 다수는 소수집단의 조작에 놀아난 자신을 치욕스러워하고 그 음모자가 다시 준동 못하도록 사회적 압력을 가해야 한다. 그러나 MBC의 왜곡방송 행태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사직당국은 이들을 소환조사조차 안 하고 있다. 광우병사태가 진정된 지 반년도 안 돼 작금의 국회의사당 난행사태가 발생했지만 이것도 곧 잊힐 것이다. 현 정치행태로 보면, 민노당 대표를 포함해 시정의 폭력배처럼 난동한 국회의원들, 그 보좌관들은 아무 처벌 없이 넘겨질 것이다. 결국 한국에서는 넘지 못할 선이 없다. 한국사회는 파괴적 소수 정치집단의 광분(狂奔)에서 해방될 면역력이 없는 것이다.  

한 사회는 물적 토대로만 형성되지 않는다. 국가사회에는 누구나 지켜야 할 사회적 가치가 있고 이를 수호하려는 국민적 의지가 있어야 한다. 곧, 지식과 이성 수준, 법률, 도덕과 질서를 건전하게 유지하려는 국민정신이 존재해야 함을 말한다. 국민이 동의대사건, 광우병사태, 국회난동 등 되풀이당하는 유린(蹂躪)에 무감각한 것은 그만큼 국민정신이 마비됐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런 국민 새로운 사회발전을 수용할 수 없다. 비열한 소수 야만집단에 앉아서 당하는 국민 국제사회에서도 제 대접을 받을 수 없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현 정권이 우선 정신적으로 강력해져야 한다. 광우병과 국회의 무정부 난장판은 모두 이명박 정권 아래서 일어난 일이다. 이 정권은 상황을 피하고 타협했을 뿐이지 과거정권의 적폐를 청산하고 법질서를 세움에 치열하게 나서지 못했다. 국가경영자의 결단력이 훼손됨을 보면 국민 정권에 대한 신뢰와 기대치를 상실하고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 압도적 지지로 탄생한 정권이 국가 운영방향을 단호히 세우고 명백한 범법자를 처벌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향후 국정파괴의 책임자를 유권자가 심판해야 한다는 말은 옳지만 그들은 기억력이 짧고 단기적 인기영합 약속에 쏠리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언론과 사회단체들이 국민을 대신해 정치가들의 언행을 모두 기록, 보존해서 때가 되면 적극적으로 투표자에게 알려야 한다. 국회는 이미 18대 의원의 역사적 난동현장을 모두 청소해 버렸다. 그러나 지난 20일간의 국회파괴사건은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아 있다. 우리 국민 이 기록물을 국회 로텐더 홀에 365일 24시간 전시하도록 강력히 꾸준하게 요구해야 한다. 과거 잘못에서 배우지 못하는 국민이 어떻게 선진국을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김영봉 중앙대 교수·경제학)    

한겨레(08. 04. 25) [한겨레프리즘] 철탑에서 본 대한민국 주식회사

인천지하철 부평구청역 3번 출구 옆 지상 25m 0.6평짜리 공간. 잠깐 올려다봐도 아찔한 철탑에선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는 지엠대우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규가 터져 나온다. 한 사람은 그곳에서 시린 겨울을 보냈고, 또 한 사람은 잔인한 봄을 견디고 있다. 회사 서문 앞에선 또다른 노동자가 해고자 전원 복직을 요구하며 단식농성 중이다. 오늘로 120일을 넘긴 고공농성과 18일째 이어온 단식. 원청업체인 지엠대우차는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고, 정부도 이렇다 할 중재 노력이 없다. 대화를 기다리는 이곳엔 철거 위협과 벌금 고지서가 날아든다.   

지엠대우차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찾아가 노사 화합의 상징으로 치켜세운 곳이다. 비정규직의 철탑 농성장엔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비즈니스 프렌들리’. 그는 이번 미·일 방문에서 “나는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시이오(최고경영자)다”라고 말했다. 이쯤 되면 ‘친기업’을 넘은 ‘국가의 기업화’ 선언이라 할 만하다. 외국인 투자자들한테 박수를 받은 발언 뒤편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300일을 넘긴 이랜드 노동자들의 복직 요구에 대해 노동부 장관은 ‘노사 자율로 해결해야 한다’며 팔짱만 끼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학교도 자율화하겠다’며 0교시-우열반을 허용해 아이들을 입시경쟁으로 내몬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건강보험을 민간의보로 바꿔 가겠다고 말한다. 고공철탑 위 비좁은 공간에서 새우잠을 자는 노동자, 등수 공개 압박감에 모의고사를 잘못 봤다며 몸을 던지는 아이, ‘손가락이 잘려도 돈이 없으면 병원에 가서 봉합수술을 받지 못하는’ 영화 <식코> 장면처럼 의료비 부담에 가슴을 졸이는 환자들.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풍경이다. 경쟁과 시장화라는 구호 아래 사회 공공성은 뿌리째 흔들린다. 정부는 국민 섬기기보다 기업에 대한 봉사를 우선시한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경쟁력 없는 건 희생돼도 어쩔 수 없다는 섬뜩한 맹신이 퍼져간다. 사회적 약자는 ‘다수의 이익이 먼저’라는 이데올로기 앞에 침묵을 강요당한다. 이런 모습은 국민과 소통 없는 통상정책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을 위해 광우병 위험까지 수입하는가’라는 물음에 돌아오는 것은 “(미국산 쇠고기가)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된다”라는 대한민국 최고경영자의 소신이다. 정부는 국회에 비준동의를 조속히 해 달라고 압박할 뿐 보완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는 대답이 없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의 정책위의장마저 “정부는 대책을 내놓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최대 피해가 예상되는 농민들의 절박한 호소는 ‘희생 불가피론’에 묻힌다. 함께 대책을 고민해 주길 바라는 최소한의 희망조차 번번이 배신당한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공공성을 지키는 건 정부가 할 일이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무책임을 자율로 포장하는 이명박 정부. “(국가의) 기업화는 대중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하도록 하고, 여론을 조종하며, 세상의 운영방법에 대한 기본적 결정권을 소수 권력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촘스키의 저서 <그들에게 국민 없다>에 실린 경고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민에서 졸지에 대한민국 종업원으로 바뀌어 버린 듯한 지금, 대한민국 주식회사에 묻는다. 국민이 낸 세금을 쓰면서 정부를 기업처럼 운영해도 되는가?(정태우) 

09. 01. 10.   

P.S. 김영봉 교수의 칼럼에서 배울 점이 많다. 조선일보를 요즘 거의 보지 않아서 이렇게 노골적인 '선동'도 오랜만에 읽어본다. "향후 국정파괴의 책임자를 유권자가 심판해야 한다는 말은 옳지만 그들은 기억력이 짧고 단기적 인기영합 약속에 쏠리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언론과 사회단체들이 국민을 대신해 정치가들의 언행을 모두 기록, 보존해서 때가 되면 적극적으로 투표자에게 알려야 한다." 유권자들의 기억력이 짧기 때문에 언론과 사회단체에서 정치가들의 언행을 모두 기록, 보존해서 때가 되면 적극적으로 투표자에게 알려야 한다는 말. 백번 맞는 말이다. 다음 총선과 대선을 위해서도 그 말 그대로 해주었으면 좋겠다. 왜 있잖은가. '747'이니 '3000포인트'니 '뉴타운'이니 하던 말들. 제발 현 정권과 정치인들의 언행을 모두 기록, 보존해두었다가 알려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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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기의 생각
    from bbb's me2DAY 2009-01-11 11:09 
    로쟈님 알라딘 블로그 (제대로된 읽을꺼리들을 이야기해주시다니 느무 좋음)
 
 
노이에자이트 2009-01-11 00:08   좋아요 0 | URL
조선일보 칼럼 정말 과격하고 섬뜩하네요.무서워요.야스다 강당 사건을 왜 저런 식으로만 볼까요? 전형적인 강경우익의 시각으로 그 사건을 보았군요.굉장히 익숙한 논리예요.5공 때도 야스다 강당 사건 그리고 적군파...비판하는 다큐멘타리를 텔리비전에서 방영했지요.

로쟈 2009-01-11 20:50   좋아요 0 | URL
5공때와 뭐가 다른지 슬슬 의문을 갖게 됩니다. 똑같이 반민주적 정권인데, 사실 경제는 더 안 좋죠...

cretois 2009-01-11 00:28   좋아요 0 | URL
조선의 어제 사설도 막상막하죠. 국민 혹은 유권자의 상당수가 이런 신문에 동조(!)하는 현실 역시 괴기스럽습니다. 미네르바와 아고라들에 찬성하진 않지만 이런건 정말 옛날의 '토끼몰이'를 연상케하는군요.

로쟈 2009-01-11 20:50   좋아요 0 | URL
당장은 이렇게 망해가는구나, 내지는 말아먹는구나란 생각밖에는...

2009-01-11 0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9-01-11 20:51   좋아요 0 | URL
네, 재미있고 다이나믹하죠. 외신란에도 자주 오른다잖아요...^^;

jouissance 2009-01-11 19:50   좋아요 0 | URL
정말이지 괴기스러운 풍경입니다. 70%의 이 나라 신문독자들이 저런 어처구니 없는 선전선동으로 도배된 기사를 매일 읽고 있다니 말입니다.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퍼센티지입니다. 저 70%가 이 나라 저질 민족주의와 결합해 유사시 어떤 형태로든 파시즘 태동의 토양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미래입니다. 어떻게 보면 파시즘에 가장 취약한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지금 쥐박이 정권은 유사 파시즘이라 봐야겠지요. 로쟈님도 조심하세요^^ 쥐박이 친위대원들이 로쟈님 글까지 호시탐탐 감시하고 있을 줄 모릅니다. 아다시피 저들이 들이대는 죄목이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잖아요. 정말 쥐박이 무리들이 벌리고 있는 짓거리들을 보고 있자면 화염병 던지는 사람들의 심리를 알겠어요. 대체 무슨 이런 회괴망측한 놈들이 있습니까..ㅠㅠ

로쟈 2009-01-11 20:52   좋아요 0 | URL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여럿 계시네요...^^;

jouissance 2009-01-11 22:02   좋아요 0 | URL
저는 훗날 무지 쪽팔릴 것 같아서 기회가 주어지면 최소한 '구류'라도 살고 나오려구 준비하고 있습니다. 10년 뒤에 '그래도 이 아빠는 쥐박이 정권에 저항했단다' 한마디는 날릴 수 있는 명분은 쌓아야지 않겠어요...^^ 어제 미네르바 동영상을 보면서 조금 아쉽더라구요. 쥐박이 정권을 향하여 '의연하게' 한마디 던지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했는데..ㅠㅠ

로쟈 2009-01-11 22:21   좋아요 0 | URL
아고라에는 문체를 분석한 글들도 올라오던데, 아무래도 제 생각엔 '미네르바들'이 있는 거 같습니다...

고티 2009-01-11 23:59   좋아요 0 | URL
ㅋㅋㅋ '국민'은 '없'군요!
 

모처럼 흥미를 끄는 영화이론서가 출간됐다. 바바라 크리드의 <여성괴물, 억압과 위반 사이>(여이연, 2008). '씨네 페미니즘' 분야의 책인데, 원저가 1993년에 나왔으니 나이값만으로도 이 분야의 '고전'이겠다. 대략적인 소개는 이렇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관통하는 씨네 페미니즘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친 책이다. ‘왜 영화가 여성주의의 관심사이며, 어째서 여성주의적 관점이 영화 안에서 중요한지를 보여주면서 씨네 페미니즘에 주목할 만한 공헌’을 한 작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크리드의 <여성괴물>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공포영화를 둘러싼 담론은 대체로 남성 괴물 대 여성 희생자의 구도로 이루어져 있었다. 1990년대가 되어서야, 크리드의 작업을 통해, 이제까지는 힘없는 희생자의 자리에만 위치 지어졌던 여성이 드디어 괴물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했던 여성괴물을 설명하기 위해 크리드는 정신분석학의 방법론을 경유한다. 이 책의 1부에서 크리드는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비체’ 개념을 통해 여성괴물성을 추적하며, 2부에서는 프로이트의 거세 이론을 비판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내가 막바로 떠올리게 되는 책은 이 분야의 원조격인 몰리 해스켈의 <숭배에서 강간까지>(나남출판, 2008)이다. '영화에 나타난 여성상'을 다룬 이 책은 "해스켈이 1974년에 발표한 영화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이다. 문학에서의 페미니즘 비평이 남성 작가들의 작품에서 표현된 여성 이미지 연구에서 출발한 것처럼 페미니즘 영화 비평도 주류 영화에서 묘사된 여성 이미지의 분석에서 출발하였다. 여성을 성녀와 창녀로 보는 남성들의 이율배반적이고 이분법적인 이해가 영화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었는지를 분석한다." 해서 두 책을 모아놓고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리스트는 그래서 만들어놓는다.


8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여성괴물, 억압과 위반 사이
바바라 크리드 지음, 손희정 옮김 /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 / 2008년 12월
17,000원 → 16,150원(5%할인) / 마일리지 490원(3% 적립)
2009년 01월 10일에 저장
구판절판
The Monstrous-feminine : Film, Feminism, Psychoanalysis (Paperback)
바바라 크리드 지음 / Routledge / 1993년 9월
94,020원 → 77,090원(18%할인) / 마일리지 3,860원(5% 적립)
2009년 01월 10일에 저장
품절
여성 없는 페미니즘
타니아 모들스키 지음, 노영숙 옮김 /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 / 2008년 8월
15,000원 → 14,250원(5%할인) / 마일리지 430원(3%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2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09년 01월 10일에 저장

너무 많이 알았던 히치콕?- 영화.여성.가부장제적 무의식
타니아 모들스키 지음, 임옥희 옮김 /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 / 2007년 10월
16,500원 → 15,670원(6%할인) / 마일리지 480원(3% 적립)
2009년 01월 10일에 저장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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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모로 특이한 책이 출간됐다. <무감각은 범죄다>(이루, 2009). 일단 번역서가 아니라는 점. 저자인 이희원씨는 독일에서 유물론 미학을 공부하다가 페터 바이스의 <저항의 미학>이란 책("<자본론> 이후 최고의 책"이란 평도 있다고 한다)을 접하고 흠뻑 빠져서 박사학위논문을 썼다고 한다. ''저항의 미학'으로서의 성 미학'이란 부제를 보고 나는 페터 바이스 연구서 정도를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다. <저항의 미학>에 대한 소개는 차후에 이루어질 모양이고, 이번에 나온 책은 저자의 '성 미학'이다. 그런데, 이게 또 흔하게 연상할 수 있는 '섹슈얼리티의 미학'이 아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섹스의 미학'이다. '대상적 활동으로서의 성행위'를 주제로 한 책이기 때문이다. 짐작에 가장 유사한 범주의 책이라면 빌헬름 라이히의 <성혁명>이나 <오르가즘의 기능> 등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여하튼 '성 미학'과 '저항의 미학'을 틀거리로 한 독특한 책이다. 그런 독특한 이론적 작업으로 이종영씨의 '이행총서'와도 견주게 하는데, 왠지 <성적 지배와 그 양식들>(새물결, 2001)과 짝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책을 읽기 전 인상이 일단은 그렇고, 관련리뷰를 미리 읽어본다.   

한국일보(09. 01. 10) 인간의 성행위에 깃든 저항의 미학 

이 책을 소화하려면 '대상적 활동'이라는 마르크스 철학의 개념부터 이해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모든 사물은 그 자체로 독립돼 설명되지 않고, 다른 것과의 연관 관계 속에서 파악된다고 본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자기 바깥의 세계를 조작해 변화시키고, 그 과정에서 자기도 변화하는 관계를 통해서만 인간은 이해된다. 이 책은 그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인간의 성행위를 분석한 결과다.

저자는 이 책을 쓴 이유를 "넘쳐나는 성 담론 중에서 그 어떤 것도 '성적 존재로서의 나'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서문에 밝혔다. 저자에 따르면 성행위는 한 개인의 이기적 만족을 위해 상대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성행위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표현할 뿐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고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노동 및 예술 활동과 마찬가지로 철저히 대상적"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대상적 행위로서 성행위를 규명하기 위해 '오르가즘 체험'을 분석한다. 인간의 성적 능력이 제대로 펼쳐졌을 때를 가정하고, 그때의 성감 기제가 움직이는 원리를 밝힘으로써 성행위의 철학적ㆍ미학적 의미를 추출해낸다. 빌헬름 라이히의 오르가즘 이론과 조르주 바타유의 에로티즘 이론이 동원되고, 발전적으로 해체ㆍ수용된다. 그리고 오르가즘 체험이 지닌 인성론적 함의를 구성해 간다.

대상적 활동으로서 성행위를 다루는 저자의 관점은 결국 '성행위는 능력의 문제다'라는 명제로 수렴된다. 오르가즘은 전방위적 자기실현을 위한 자기 인식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르가즘 불능은 생리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자기를 표현하고 그럼으로써 자기를 취하는' 저항능력의 부재를 의미한다. 이 부분에서 저자의 성 담론은 저항의 미학으로 연결된다.

내밀한 영역에 감춰져 있던 감각 기제들을 현대 미학의 복잡한 이론을 거푸집 삼아 사출해 낸 결론은, 마르크스의 테제이기도 한 '인간적 감각의 회복'을 향해 간다. 저자는 자신의 고통에 견주어 남의 그것을 감지해 낼 수 있는 것이, 대상적 활동으로서 성행위를 경험해 본 이들의 공통점이라고 강조한다. 반면 성관계를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상대의 고통을 정면으로 뚫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감각의 기능 장애로서 무감각'을, 저자가 '범죄'라고 규정한 까닭이다.(유상호기자) 

09. 01. 10. 

 

P.S. 몇 권의 이미지를 나열했지만, 바타이유와 라이히의 책들이 <무감각은 범죄다>를 읽기 위한 '베이스'이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 책에서 전개할 성에 대한 모든 논의들에 공통적으로 깔려 있는 전제는 인간의 성적 행위는 그 핵심에서 대표적인 '대상적 활동'의 예라는 것이다. (...) 인간의 성적 능력의 변화, 발전, 쇠퇴 등은 오르가즘 이론을 통해 매우 효과적으로 설명된다. 이를 위해 대상적 활동으로서의 성 행위라는 지평 위에서 빌헬름 라이히의 오르가즘 이론과 조르주 바타유의 에로티즘 이론이 적극적으로 수용된다."(20쪽)  

한편, 저자가 관심을 부추기는 페터 바이스의 <저항의 미학>은 영역본 기준으로 3권으로 구성된 방대한 분량의 '소설'이다. 아무래도 쉽게 소개될 성싶지 않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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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jjismy의 생각
    from jjjismy's me2DAY 2009-01-11 02:19 
    성행위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표현할 뿐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고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노동 및 예술 활동과 마찬가지로 철저히 대상적
 
 
비로그인 2009-01-10 11:15   좋아요 0 | URL
페터 바이스<저항의 미학>은 엄두가 나지 않는군요. 전체가 1천 쪽이 넘는데 영역본은 1/3만 나와 있습니다.Austerlitz(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책)의 저자 W.G. Sebald에서 Magnum Opus 라고 해서 구미는 당기지만 한두 장 읽어 보니 "밀림 속"에 들어가는 기분이더군요. 영역을 역자가 애 좀 먹었을 것 같아요. 읽는 것은 나중에 시간이 한꺼번에 많이 날 때 고려해볼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로쟈 2009-01-10 11:32   좋아요 0 | URL
네, 1권만 뜨더군요. 안 그래도 대작은 많은데...--;

비로그인 2009-01-10 11:17   좋아요 0 | URL
Sebald가 에서 -> Sebald가 에서.

비로그인 2009-01-10 11:19   좋아요 0 | URL
미안합니다. 'Sebald가'와 '에서' 사이에 책의 링크가 있는데 저장을 하고 나니 계속 안 보이는군요. 입니다.

로쟈 2009-01-10 11:22   좋아요 0 | URL
계속 안 보이는데요.^^ 알라딘 댓글에 용량 제한이 있는가봐요.

비로그인 2009-01-10 11:20   좋아요 0 | URL
알 수 없는 일이군요. On the Natural History of Destruction이 계속 안먹히니... 이번에도 보이지 않으면 그냥 두겠습니다.

로쟈 2009-01-10 11:33   좋아요 0 | URL
제목과 표지만으로도 흥미를 끄는 책이네요.^^

비로그인 2009-01-10 11:32   좋아요 0 | URL
댓글에 저자 이름이나 책 이름에 link 를 할 수 있는 html tag 를 씌워주었는데 그래서 변칙적인 현상이 보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공연히 지면을 지저분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비로그인 2009-01-10 11:46   좋아요 0 | URL
제발드의 작품은 아직 한국에 소개가 안 되어 있는 것 같군요. 대표작 <아우슈터리츠>조차도 번역이 안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좀 의외입니다. 그는 그렇게 일찍 죽지만 않았어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것입니다. 그의 대표작은 저자가 아직 생존해 있었을 때 저자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영국의 Anthea Bell 할머니가 영역되었는데 원작 못지 않은 번역이라는 평입니다. 제발드 자신도 영어는 영국 작가 못지 않지만 작품 활동은 계속 독어로 했지요. 제가 독문학을 번역할 실력이 되면 출판사에 이 책을 들고가 내자고 할 것입니다.

로쟈 2009-01-10 13:29   좋아요 0 | URL
<이민자들>(창비, 2008)이란 책이 얼마 전에 나왔는데요. 다른 책들도 소개될 여지가 있겠네요...

비로그인 2009-01-10 19:17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한 권이 얼마 전에 소개되었군요. 이제야 제발드가 국내에 소개되는군요! 그의 아름다운 글이 잘 소개되기만을 바랍니다. 독일인이고 독일어로 글을 썼지만 20대 초반부터 줄곧 영국에서 살았고 영미권에서 제발드라고 계속 들어서인지 제발트라고 하니 다른 사람처럼 들리는군요.^^

로쟈 2009-01-10 19:59   좋아요 0 | URL
덕분에 저도 한 사람 더 챙기게 됐습니다.^^

비로그인 2009-01-10 20:39   좋아요 0 | URL
로쟈님의 레이다에 걸리지 않고 저공비행한 작가가 다 있었군요.^^ 그것도 저공비행하는 로쟈님의 레이다에 말입니다.^^

로쟈 2009-01-10 20:48   좋아요 0 | URL
'세계의 책'이란 카테고리도 두고 있지만 러시아책 모니터링을 그만둔 지도 오래됐습니다. 쏟아지는 국내서만 카바하기도 어렵습니다.^^;

비로그인 2009-01-10 21:09   좋아요 0 | URL
제발드 인터뷰 링크를 소개합니다. 2001년 12월6일자 인터뷰입니다. (그는 며칠 뒤 12월14일에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이 인터뷰에서 그의 글이 어떤지 약간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제가 흠모하는 베테랑 번역가인 안시아 벨 할머니가 <아우슈털리츠>의 번역에 대해 한 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습니다. 제발드의 독일어는 의도적으로 19세기의 독일어를 구사하여 많은 부분에서 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작품이 그러합니다. <이민자들>도 예외는 아니겠지요. 그의 정교한 문체가 한글 번역본에서 - 많이는 못하더라도 - 어느 정도 유지되었으면 합니다. 이 인터뷰는 <이민자들>로 얘기가 시작됩니다. 처음에 잠시 광고가 나오고 인터뷰가 방송됩니다. (이 인터뷰어인 Silverblatt는 KCRW 에서 많은 유명작가들을 인터뷰했습니다.) http://www.kcrw.com/media-player/mediaPlayer2.html?type=audio&id=bw011206w_g_sebald

노이에자이트 2009-01-11 00:27   좋아요 0 | URL
제가 작년에 로쟈 님과 초창기에 댓글 교환했을 때 페터 바이스<부모와의 이별>가지고 있다고 말한 적이 생각나네요.저는 이 작가를 사회주의자이면서 혁명에 대한 작품이 많은 것으로만 알았는데 이런 책은 여기서 알게 되었습니다.자본론 이후의 명저라...궁금하군요.
 

책관련 기사들 말고도 스크랩해둘 만한 기사는 얼마든지 있지만 여건상 하루에 서재로 옮겨놓는 건 10-20% 정도밖에 안된다(책관련 기사도 사실 관심을 끄는 기사의 20-30% 정도를 스크랩해둘 뿐이다). 이런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가불 놓치고 지나가는 기사가 많은데, 오늘 읽은 외신기사 하나는 그래도 챙겨두려고 한다. 외신기사라고는 하지만 한국 관련 기사다. 유감스럽지만, 자랑할 만한 기사는 전혀 아니고, 과거 우리의 치부를 환기시켜주는 쪽이다. 한국 정부가 미군 기지촌 여성들의 매춘을 '관리'하면서 '거대한 뚜쟁이' 노릇을 했다는 것이 기사의 요점인데, 이건 '근대 국가론'을 보강해줄 수 있는 소스이다. 국가라는 '거대한 괴물'(리바이어던)은 '거대한 뚜쟁이'이기도 하다는. 지나가긴 했지만 건국 60주년을 맞이하여 집중조명을 했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이런 건 '역사 강의'에서 왜 빼놓는지?..  

 

 

 

 

 

 

 

 

   

  

 CNB뉴스(09. 01. 09) '한국정부, 거대한 뚜쟁이’ 파문

“한국 정부는 과거 미국의 보호를 받기 위해 매춘부들이 미군들에 몸을 팔도록 허용했다. 한국 정부와 미군은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기지촌 매춘부들이 미군에 성병을 옮기지 않도록 직접 관리했다”

한국의 전직 매춘부들이 과거 한국 정부가 미군기지촌의 '매춘(Sex Trade)'을 허용하고 미군당국과 함께 매춘부들을 관리했다고 뉴욕타임스는 8일(현지시간) A섹션 6면에 서울발 기사로와의 인터뷰에서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이와 함께 타임스는 “한국이 일본군의 성노리개로 활용된 위안부의 추한 역사를 공격하고 있지만 이는 또다른 학대의 모습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고 기지촌 매춘부와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를 빗대 새로운 파장도 예고되고 있다.

타임스는 올해 80세로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사는 배모 할머니의 사진과 인터뷰를 실어 전직 기지촌 매춘부들의 비참한 삶을 부각시켰다. 신문은 “한국의 전직 매춘부들은 매춘이 강제로 이뤄졌지만 항의 할 수 없었으며 과거부터 지금까지 한국정부가 자신의 추한 역사를 돌이켜보지 않고 일본에 대해 위안부 배상을 요구하는 위선을 보이고 있다고 비난한다”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 매춘부들은 한국정부가 한국전쟁이후 피폐한 경제를 돕는데 자신들을 활용했으며 효율적인 기지촌매춘을 위해 영어와 에티켓을 가르치고 몸 팔아 달러를 마련하는 것을 칭찬했다고 주장했다.  



타임스는 김모씨(58)의 말을 인용, “한국정부는 미군을 위한 ‘거대한 뚜쟁이(Big Pimp)’였다”면서 “그들은 가능한 우리가 미군에 몸을 많이 팔도록 독려했으며 달러를 버는 애국자라고 불렀다”고 말해 충격을 주었다. 일부 매춘부들은 “미군과 한국 공무원들이 정기적으로 이들이 있는 집창촌을 단속해 성병의심자를 골라내 단골고객들이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한국경찰은 병에 걸린 것으로 의심되는 매춘부들을 창문이 철망으로 막힌 이른바 ‘몽키 하우스'에 완치 될 때까지 가두기도 했다고 전했다. 타임스는 이들이 2차대전 때 끌려간 일본군 ‘위안부(Comfort Women)’들처럼 보상과 사과를 바라고 있다면서 “그것이 선택이든, 필요에 의한 것이든, 강요이든 우리 모두는 정부 정책의 희생양”이라는 말을 전했다.

한편 뉴욕 타임스가 기지촌 매춘부들을 일본군 위안부와 비교한 것과 관련, 논란이 확산될 가능성과 함께 한국 정부의 대응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동맹속의 섹스()’라는 저서를 1987년 출간한 캐더린 문 웰슬리 대학 교수는 “이런 기지촌이 한국정부와 미군당국에 의해 지원됐다면 공범관계가 성립된다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여성문제를 관장하는 한국의 성평등부는 이같은 문제에 대해 논평을 거부했고 주한미군 사령부는 “인신매매나 매춘을 묵인하거나 지원하는 불법적인 일을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타임스는 이번 기사를 위해 모두 8명의 전직 기지촌 매춘부를 인터뷰했다면서 관련 문서와 사진에 따르면 상당 부분 이들의 말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한국과 미군당국은 수십년동안 기지촌의 매춘을 용인했기 때문에 사실 이들의 주장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면서 미군기지가 있는 다른 나라들처럼 한국도 기지주변에 술집과 매음굴이 퍼져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전직 매춘부들은 한국 국민들이 정부가 이 일에 얼마나 깊숙이 관여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006년 한 전직관리는 TV에 나와 정부가 기지촌 매춘부들을 적극적으로 독려하지는 않았을지라도 당시 공무원들이 나라를 위해서 나쁜 일은 아니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인정했다. 



국회 기록에 따르면 일부 한국 지도자들은 매춘의 필요성을 용인하기도 했다. 1960년 두명의 의원이 동맹국의 군인들이 일본에서 달러를 쓰는 것을 막고 이들의 ‘자연적 욕구’ 충족을 위해 매춘부 공급을 촉구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당시 내무부 이성우 차관은 정부 답변에서 ‘미군을 위한 매춘부 공급과 여가활용 시스템’의 개선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1969년 닉슨독트린 선언 이후 미군의 철군 가능성을 두려워했고 이를 막기 위해 주한미군을 잘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한국과 미군 당국은 매춘부들을 등록하고 적절한 성병치료를 받도록 공동 노력을 기울였고 미등록됐거나 정기검진을 받지 않는 매춘부들을 단속한 1976년 보고서 기록도 있다. 이들 기지촌은 현재도 존속하지만 한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필리핀에서 온 외국여성들로 대체되고 있다. 전직 매춘부들은 주류사회와는 소외된 채 기지촌에서 대부분 궁핍하게 살고 있으며 해외로 입양을 보낸 혼혈자녀들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전모씨(71)는 18살이던 1956년 고아가 돼 굶주림을 못이겨 동두천의 기지촌을 찾게 됐다. 전 씨는 60년대에 아들을 낳았으나 아이가 열세살이 됐을 때 장래를 위해 미국으로 입양시켰다. 훗날 미군이 된 아들은 10년전 엄마를 찾아왔지만 전 씨는 아들에게 “난 엄마로서 실패했다. 나를 잊으라”고 말했다. 정부 보조와 폐품 수집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전 씨는 “아들에게 의존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면서 “나같은 여성들은 한미 동맹을 위한 최대 희생자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녀는 “내 몸은 나의 것이 아니라 정부와 미군의 것이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김진의 기자)  

09. 0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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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1-09 23:41   좋아요 1 | URL
가부장적 민족주의 정서로만 종군 위안부 문제를 접근하던 우리의 자세에 일대 경종을 울려주는 사건입니다.<동맹 속의 섹스>가 제기하는 문제의식만 있으면 일제시대 종군위안부는 민족의 순결한 여성이고 기지촌 여성과 감히 비교할 수 없다는 말은 할 수 없지요.박노자도 <만감일기>에서 정대협이 종군위안부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을 비판한 바 있습니다.길지 않은 글이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리영희<전환시대의 논리>에도 통금이 있던 시절에 정부가 직업여성에게 특별통행증을 주어 외국인 대상 매춘을 허용한 데 대한 글이 있었지요.

로쟈 2009-01-09 23:52   좋아요 1 | URL
기사를 읽고 든 생각은 대한민국이 정말 임시정부의 적통을 이은 게 아니라 일본 총독부와 미군정을 계승한 거구나, 란 거였어요. 해전사의 '재인식'이라고 할까요...
 

지난 연말에 나온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궁리, 2008)은 읽기 시작했다가 일더미에 떠밀리는 바람에 제쳐두었는데, 이번주 북리뷰 때문에 다시 책상맡으로 갖져왔다. 알고 보니 <미학 안의 불편함>(인간사랑, 2008)도 그 사이에 출간돼 있었다(잠시도 한 눈을 못 팔게 하는군!). <미학 안의 불편함>은 <감성의 분할>(도서출판b, 2008)과 겹쳐읽으면 좋겠다. <무지한 스승>에 대한 마땅한 리뷰가 없다 싶었는데, 마침 두 권의 책을 같이 다룬 리뷰기사가 올라왔기에 옮겨놓는다.   

한겨레(08. 01. 10) '지적 평등’이 두려워 저들은 ‘독학’을 깔본다 

지난해 말 한국을 다녀간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에 관한 관심이 고조된 가운데 그의 또다른 책 두 권이 잇따라 번역돼 나왔다. 먼저 나온 <무지한 스승>은 1987년에 출간된 초기작이며, <미학 안의 불편함>은 미학이라는 틀을 통해 정치를 새롭게 이해하려 하는 랑시에르의 최근 관심을 반영한 2004년 저작이다. 두 책 사이의 시간상 간격은 크지만, 평등·민주주의·정치라는 정통적 주제를 급진적으로 재구성하려는 랑시에르의 문제의식이 일관성 있게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무지한 스승>은 소재의 독특함 때문에 특히 눈에 띄는 책이다. 랑시에르는 1830~1850년대 프랑스 노동자 운동의 문서고를 뒤지는 고고학적 방법으로 자신의 문제틀을 세웠는데, 그 첫 성과물이 박사학위 논문인 <프롤레타리아의 밤>(1981)이었고, 그 고고학적 발굴의 성과에 기댄 또다른 작품이 <무지한 스승>이었다. 랑시에르가 발견한 것은 노동자들이 지적으로 각성함으로써 노동자적 정체성과 자긍심을 키운다는 전통 좌파의 가정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노동자상이었다. 낮의 노동이 끝난 밤 시간에 노동자들은 시를 쓰고 철학을 공부함으로써 노동자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노동자가 아닌 한 명의 시인 또는 철학자로서 살아가는 인간들, 그들이 바로 프롤레타리아들이었다. 노동자들은 ‘사유하는 인간’과 ‘노동하는 인간’이라는 전통적인 나눔(분할)을 가로질렀다. 그들이 보여준 것은 다른 인간들과 똑같이 읽고 쓰고 말하고 토론할 수 있는 ‘평등한 지적 능력’이었다.  

<무지한 스승>은 이 ‘지적 능력의 평등’이라는 문제를 파고든 작품이다. 이 책에서 랑시에르는 문서고 탐사를 통해 찾아낸 독특한 인물 조제프 자코토(1770~1840)를 등장시킨다. “1818년 루뱅 대학 불문학 담당 외국인 강사가 된 조제프 자코토는 어떤 지적 모험을 했다.” 자코토는 19살에 법학 박사학위를 받고 이른 나이에 에콜 폴리테크니크 교장 대리를 지내기도 한 수재였다. 1815년 부르봉 왕정이 복귀하자 그는 네덜란드가 지배하던 벨기에로 망명해 루뱅 대학의 강사 자리를 얻었다. 기이한 경험은 이때 이루어졌다.  

불문학 강사였던 그는 네덜란드어를 몰랐고, 학생들은 프랑스어를 몰랐다. ‘무지한 스승’은 학생들에게 <텔레마코스의 모험>이라는 책의 프랑스어-네덜란드어 대역본을 교재로 삼아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네덜란드어 번역문을 사용해 프랑스어 텍스트를 익히라고 주문했다. 스승과 학생 사이에 서로 통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가 없는 상태에서 학생들은 스스로 프랑스어를 기초부터 학습했다. 스승은 그 자기학습의 조건이자 계기로만 존재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그들은 단어들을 조합해 프랑스어 문장을 만들었고 철자법과 문법도 스스로 익혀 완성시켰다. “더구나 그들이 구사하는 문장은 초등학생 수준이 아니라 작가 수준이었다.” 

이 우연한 경험을 통해 발견한 교수법을 자코토는 ‘보편적 가르침’이라고 명명했다. 그것은 전통적 교육을 넘어선 새로운 교육이었다. “자코토는 다른 선생들처럼 학생들에게 지식을 주입하고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게 하는 것이 관건이 아님을 알았다.” 랑시에르는 자코토의 경우를 들어 통상의 교육을 ‘바보 만들기’ 교육이라고 말한다. 계몽주의자들의 진보적 교육조차 흔히 ‘바보 만들기’의 개선된 형태에 머무르고 만다. 랑시에르는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사이에 놓인 불평등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스승이 학생보다 지적 능력에서 우월하다고 전제하고서, 우월한 스승이 열등한 학생을 가르쳐야 한다는 교육관념으로는 영원히 불평등을 벗어날 수 없다.  

랑시에르는 불평등을 출발점으로, 평등을 목표로 삼는 사고방식을 전복시켜야 한다고 제안한다. “우리의 문제는 지적 능력이 평등하다고 가정함으로써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는 것이다.” 스승과 학생 사이의 나눔·분할을 거부하고 평등한 자들의 공동체를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식한 자가 지도하고 무지한 자는 지도를 받는다는 발상을 극복할 토대가 마련된다. 모르는 자가 모르는 자를 가르칠 수 있으며, 모르는 자가 스스로를 가르칠 수 있다. 이런 지적 능력의 평등은 기존 질서의 위계와 자리를 무효로 만들 수 있다. 지배의 작동 조건인 나눔과 분할의 선이 지워지는 것이다. 

<미학 안의 불편함>은 이 ‘나눔을 통한 지배 질서의 작동’ 문제를 미학의 틀로 다시 사유하는 텍스트다. 랑시에르는 미학을 ‘감성적 인식에 관한 학문’이라는 고전적인 정의에 가깝게 이해한다. 이때 감성적(감각적) 인식에 깊이 연루돼 있는 것이 정치다. “미학은 우연히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것이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만들고 들리지 않던 것을 들리게 만드는 것이 정치다. 불평등의 구획 아래서 지배받거나 배제당한 자들이 그 구획을 거부하고 평등한 주체로 등장하는 것, 그것이 정치다. 그때 정치는 감성(감각)을 바꾸고, ‘감성의 분할’을 재구성하는 일이 된다.(고명섭 기자) 

09. 01. 09. 

P.S. 조금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그런 '지적 평등'의 또다른 사례로 들고 싶은 것이 <행복한 인문학>(이매진, 2008)이다. 소외층을 위한 다양한 인문학 코스의 강의 체험담을 모아놓았는데, 이 경우의 '지적 평등'을 낳는 것은 강의를 맡은 교수들의 무지가 아니라 수강자들의 예기치 않은 관심과 열의이다. '행복한 인문학'은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는 인문학이 아닐까. 오전에 나도 이 책에 대한 간단한 서평을 썼는데, 내일자 한겨레의 북리뷰는 그 두 배가 넘는 분량으로 이 책을 다루고 있다. 메인으로 다루어진 듯하다. 

 

한겨레(09. 01. 10) 인문학교실의 노숙인 “학교 오은 것 아니라 병원 오은 것 같다”

경제적 지원이 급한 사람들한테 인문학이라니,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경기광역자활지원센터, 노원성프란시스대학, 관악인문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해 온 우기동 경희대 교수는 그런 얘기 하는 사람들에게 “그분들 인격을 모독하지 마라”고 했다. ‘그분들’은 노숙인, 교도소 수용자, 임대아파트 주민, 자활근로자들이고 나이는 20대에서 70대까지. 실천인문학·현장인문학·평화인문학·시민인문학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인문학 강좌의 나이 많은 수강자 ‘선생님’들이다.

“나은 요지 움에 들어 학교을 가은 것이 아니라 병원에 가은 것 같다. 성프란시스 대학병원에 …. 잊혀지고 버려지고 외곡된 모던것들이 … 새롭게 환희로 덮쳐온다. 한번도 보지도 상상조차도 하지 못한 엄청난 파고로 밀려온다.” 인문학 강의는 까막눈을 갓 벗어난 이분에게 새 세상을 열어주었다. “나의 최종학력은 초등학교 3학년”이라고 한 또다른 분은 말했다. “지금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나의 잠재력 속에 무한한 지식의 능력이 감추어져 있었다는 것을 글쓰기 연습을 하면서 발견하게 된 것이다. … 나는 이 비밀을 찾았다. 인문학을 통해 나의 정체성을 알게 되었고 공부할 수 있는 문이 열린 셈이다.” 그들 중엔 고학력자들도 있고 한때 기업체 사장으로 ‘잘나가던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제 집도 절도 없는 그들은 어느날부턴가 ‘웰빙’이 삶의 최고가치인 양 떠들어대기 시작한 이 사회에서 영낙없는 ‘낙오자’들이다.  

 » 2007년 1월, 아홉달동안 철학과 역사, 문학 등 5과목을 이수하고 최종심사를 통과한 11명의 성공회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과정 학생들의 수료식. 한 여성 수료생이 교가를 부르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자신들의 자녀를 임대아파트 주민의 자녀와 같은 학교에 다니게 할 수 없다며 다른 학교로 배정해줄 것을 요구하는 사회, …건축 주택단지에서 작은 평수 아파트를 한구석에 몰아서 짓고 조경으로 담장을 치는 사회, 장애인 임대아파트가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지고 자녀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반대서명을 받으러 다니는 사회, 일용직 근로자의 쉼터가 들어서면 우범지역이 된다고 쉼터의 건축을 반대하는 사회, 그리고 겉으로는 물질만능주의와 배금주의를 경멸하고 비난하면서도 속으로는 앞다투어 물질적 가치와 돈을 최우선 가치로 추구하는 사회.”

그렇게도 아득바득 달려온 경제성장의 최종 목적지가 여기일까? 우 교수가 보기에 이런 사회에선 제아무리 제철 과일 먹고 등푸른 생선을 즐기고 틈나는 대로 러닝머신에 올라타 몸매를 가꿔봤자 ‘웰빙’은 ‘꽝’이다.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 능력을 잃어버린 ‘웰빙’은 자본의 논리에 충실한 이기적 탐욕 극대화와 타락의 또다른 변종일 뿐이다. 재학생 절대다수를 고시 지망생들이 차지하고, 대학마다 인문학 과목들은 정작 전공학생들에게조차 외면당해 폐강 위기에 몰리지만 취업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만한 실용과목들은 강의실이 미어터질 지경이 되는 이런 사회에서 인문학의 박제화·고사는 당연지사라는 게 소설가 임철우씨의 생각이다.

인문학의 죽음과 약육강식의 가짜 웰빙사회는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역코스를 가속적으로 질주해 간다. 그럴수록 빈곤한 약자들은 타인의 시선, 소외, 가정폭력, 질병, 마약, 범죄, 굶주림 등의 강고한 포위망에 겹겹으로 에워싸이면서 저항능력을 상실하고 체념하게 된다. 그리하여 일견 강자의 승리로 게임은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국은 모두 패자가 된다. 그런 사회는 지속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금융공황을 통해 이 말기적 증세가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를 뒤덮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1995년 미국의 작가 겸 사회평론가 얼 쇼리스가 이 죽음의 코스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쇼리스는 죄수와 마약중독자, 노숙인 등을 대상으로 한 ‘가난한 이들을 위한 희망수업’을 통해 빈민들에게 정치적 삶을 일깨우고 ‘공적 세계’로 그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세상을 바꾸는 혁명(클레멘트 코스)을 시작했다. <희망의 인문학>이 그 교본이었다. 

2005년 9월 서울 노원구에서 성프란시스대학이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강좌’를 개설함으로써 한국판 쇼리스 혁명이 시작됐다. 임철우씨는 이를 “저 광포한 자본주의의 질주에 맞서는 최초의 작은 반역”이라고 했다.시민인문학 강좌는 지금 모두 30여개로 늘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도종환 <담쟁이>)

구세군브릿지센터에서 시인 도종환씨가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시작 배경을 얘기하고 낭독했을 때 박수친 수강생들 중엔 난생처음 시에 감동한 사람들도 있었다. “20대 대학생들한테서는 거의 경험해보지 못한 진지한 반응과 열기” 속에 인문학은 그렇게 그들을 자긍과 자존의 존재로 바꿨다. 존재의 소리에 목말라 하고 영혼의 물음에 민감한 ‘소외된 삶’들이야말로 인문학 혁명의 프롤레타리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경기광역자활지원센터에서 2학기(1학기는 12주)에 걸쳐 인문학(문학)을 강의한 임철우씨는 “정작 훨씬 많은 걸 배운 쪽은 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고 했다. 성프란시스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한 박남희씨는 구제받은 것은 수강생들이 아니라 “인문학 자체”라고 고백했다. 성프란시스대와 관악인문대학에서 글쓰기와 문학을 강의한 최준영씨도 “결국 인문학 강좌의 가장 큰 수혜자는 인문학 그 자신인 셈이고, 노숙인을 비롯한 시민인문학 수강생들에게 큰 빚을 지게 됐다”고 했다. 쇼리스가 말한 대로 “가르치는 사람 역시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고, 타자와의 올바른 관계 맺기를 배워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이들 시민교수들이 인문학 강좌에 대한 생각과 강의 체험을 고백록 형식으로 엮은 것이 <행복한 인문학>(이매진 펴냄)이다.(한승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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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1-09 23:00   좋아요 0 | URL
이 포스트를 읽고 방금 아마존에서 랑시에르의 책 한 권을 주문했습니다. (알라딘은 아니지만 어쩔 수가 없군요.) 좋은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그리고 좋은 안내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로쟈 2009-01-09 23:20   좋아요 0 | URL
저도 찾아보니 <미학 안의 불편함>의 영역본은 올해 나오는 것 같네요...

biosculp 2009-01-09 23:31   좋아요 0 | URL
이 기사 보다가 미네르바가 생각이 나던데요.
지적 평등에 대한 랑시에르의 증거같기도 하고요.

로쟈 2009-01-09 23:58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 반신반의하고 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1-09 23:32   좋아요 0 | URL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기존의 위계질서를 깨뜨린다...위계질서 하면 한가락하는 우리나라에서 저런 교육철학이 필요합니다.

로쟈 2009-01-09 23:59   좋아요 0 | URL
민주주의 교육이 뜻하는 바가 그게 아닐까 싶어요...

게슴츠레 2009-01-10 00:08   좋아요 0 | URL
마침 최근에 『무지한 스승』을 읽고 있었는데 반가운 포스트군요ㅎㅎ 저는 "평등"한 "지적 능력"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랑시에르의 모습에서 "오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칸트의 모습이 가장 많이 떠오르더군요. 『미학 안의 불편함』의 '요약본'으로 랑시에르의 홍대 강연문을 참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강 목차만 훑어봤는데 홍대 강연문과 유사한 논지를 구사하는 듯 싶더군요. 강연문은 랑시에르 방한 강연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습니다.

로쟈 2009-01-10 08:50   좋아요 0 | URL
네, 방한시 프린트는 해놓았는데 아직 읽어보진 못했어요...

푸른바다 2009-01-10 00:13   좋아요 0 | URL
그런데 우리나라 보통의 교육 현장에서는 이러한 감동적인 모습이 연출되지 않을까요?

로쟈 2009-01-10 08:49   좋아요 0 | URL
'무지한 스승'이라면 쫓겨날 거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