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사전이 출간됐다. <헤겔사전>(도서출판b, 2009). 이미 예고된 책이긴 하나 막상 나오고 보니 반갑고 놀랍다. 비록 번역이긴 하나 '사전'을 낸다는 일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온 사전은 일본의 헤겔 연구자 100명이 쓴 <헤겔사전>(고분도출판사, 1992)을 완역한 것이다. 이미 서양철학의 수용사에서 한일간의 격차가 상당한 만큼 '번역'의 흠을 잡을 수는 없다. 다만 생각에 국내 학계에서 10년내에 이만한 사전을 낼 수 있을는지는 좀 의문이다(이건 좀 유감스러운 일이다). 헤겔의 주요 저작만 하더라도 임석진본을 대체할 새로운 (세대의) 번역이 아직 나오고 있지 않다. 그러니 일반 독자들에게 이 사전이 어느 정도의 효용을 가질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각급 도서관에서라도 빠짐없이 비치해놓았으면 한다. 사전은 학문과 공부의 '기본'이고, 또 한편으론 그래야지만 '현대철학사전'으로 예고돼 있는 나머지 리스트(칸트, 마르크스, 니체, 현상학)도 빛을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론 지젝의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도서출판b, 2007),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인간사랑, 2004)와 헤겔의 <정신현상학>(한길사, 2005), 회슬레의 <헤겔의 체계1>(한길사, 2007) 등을 읽는 데 활용할 수 있을 듯싶다(회슬레의 책은 2권이 언제 나오는 것인지?). 참고로 영어로는 인우드(Inwood)의 <헤겔사전>이 있다. 내친 김에 최근 출간된 헤겔 관련서의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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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사전
가토 히사타케 외 지음, 이신철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9년 1월
80,000원 → 72,0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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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
테리 핀카드 지음, 전대호.태경섭 옮김 / 이제이북스 / 2006년 7월
48,000원 → 43,200원(10%할인) / 마일리지 2,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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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입문
황세연 지음 / 중원문화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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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헤겔
로이드 스펜서 지음, 윤길순 옮김, 안제이 크라우제 그림 / 김영사 / 2007년 6월
6,900원 → 6,210원(10%할인) / 마일리지 34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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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EAV 2009-01-15 01:19   좋아요 0 | URL
하지만 가격이 너무 충격적이더라고요. ㅠ,.ㅠ

로쟈 2009-01-15 09:19   좋아요 0 | URL
들으니 그렇게 밖에는 수지를 맞출 수 없다고 하네요...

paul 2009-01-15 11:27   좋아요 0 | URL
이런 사실은 몰라야만 실현될 수 있을텐데.....

로쟈 2009-01-15 12:4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노이에자이트 2009-01-15 23:43   좋아요 0 | URL
요즘 중원문화사가 황세연 황태연 형제들이 80년대에 쓴 책과 마르쿠제<이성과 혁명>등 헤겔 및 독일 사상 관련서들을 다시 내더라구요.

로쟈 2009-01-15 23:53   좋아요 0 | URL
네, 한데 워낙 고가로 나와서 소장할 엄두가 안 나던데요. 공간도 문제지만...

노이에자이트 2009-01-17 16:39   좋아요 0 | URL
헌책방에서 사길 잘했죠.소련시절 나온 세계철학사 10권도 제목만 살짝 바꿔 내던데,그 값이...
 

이번주에 나온 책 <인문학 스터디>(라티오, 2009)와 인문학 '교양'의 문제에 대해 몇 마디 적으려고 했지만 계절강의 준비 등으로 시간을 내지 못한다. 써야 될 아이템들만 쌓이고 있는데, 언제 다 방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늘 읽은 기사들을 옮겨놓을 시간도 부족하기에 대신 어제 읽은 기획연재를 옮겨놓는다. 고종석의 새로운 연재 '여자들'이 그 첫 번째로 여성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를 다루고 있다. 나는 간혹 '로쟈'라는 닉네임이 '로자'에게서 온 게 아니냐란 질문을 듣곤 해서 '친근감'을 갖고 있지만, 생각해보면 그녀에 관해 진득하게 읽은 것도 없다. 이 참에 읽을 만한 거리들도 챙겨놓아본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한국일보(09. 01. 12) [고종석 기획연재 여자들] <1> 로자 룩셈부르크

혁명의 희망이 가뭇없이 사라진 시대에 새된 목소리로 혁명을 구가하는 것만큼 허영심을 채워주는 일도 찾기 어렵다. 그 허영 놀이에는 아무런 위험도 뒤따르지 않는다. 비밀경찰의 감시도, 구사대의 폭력도, 고문의 공포도, 생명의 위협도.  



그 혁명은 현실 바깥의(차라리 중심부의) 패션이고 놀이다. 체 게바라의 초상을 아로새긴 티셔츠가 한 시절 세상을 휩쓴 것도 그런 '안전한' 허영 놀이였을 테다. 그 옷을 입은 누구도 실제로 체 게바라처럼 되고자 하지는 않았을 게다. 되고 싶어도 될 길이 (거의) 없었다. 혁명은 과거사다. 그것은 일어날 수 없는 가상의 서사다. 그래서 아무리 과격한 혁명의 언어를 발설해도 잡아갈 '에이전트'가 없다. 외려 유행에 민감한 '에이전트'라면, 제 아이에게 게바라 티셔츠를 입힐 것이다.

티셔츠에 아로새겨진 게바라는 체제의 안녕을 전혀 위협하지 않으면서, 진보, 혁명적 낭만주의, 세련된 지성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것은 지적 도덕적 데커레이션이었고, 이상주의자의 거짓 신분증이었다. 그래서 체제는 게바라 바람을 내버려두었다. 대학 강단의 '좌익' 교수가 우익 신문에 게바라를 기리는 글을 써도, 젊은이들이 그 '과격한' 혁명가의 '티셔츠 동지'가 되어도, 체제는 팔짱을 끼고 있었다. 자본에 빨려 들어간 게바라라는 이름은 임박한 혁명의 표징이 아니라 사라진 혁명의 전설이었으므로. 그것도 벌써 한 세대 전 얘기다. 

게바라 티셔츠를 팔아 돈을 번 의류업자에게 나는 또 하나의 세련된 아이콘을 소개하고 싶다. 게바라 못지않은, 아니 게바라를 넘어서는 소비사회의 매력적 혁명 아이콘을. 이번엔 여자다.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라는 이름의 여자. 명민한 자본가들이 아직까지 이 여자를 그대로 놓아둔 것이 신기하다. 우선 나부터도 허영심이 '체'보다 '로자' 쪽에 훨씬 더 쏠리는데 말이다. 그녀는 파리코뮌의 해, 그 코뮌의 달에 러시아령 폴란드에서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베를린의 스파르타쿠스단 봉기(고대 로마의 노예봉기 지도자 이름에서 따온 공산주의자들의 봉기다) 때 죽었다. 그 죽음도 게바라보다 더 극적이다.  

'체'는 미국 비밀경찰이 지휘하는 볼리비아 군인에게 총살당했지만, '로자'는 한 때의 동지가 집권한 '제2의 조국'에서 군인의 개머리판에 이마를 맞고 확인사살을 당한 뒤, 베를린의 운하에 내던져졌다. 그 죽음을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렇게 노래했다. "붉은 로자도 사라졌네/ 그녀의 몸이 쉬는 곳마저 알 수 없으니/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유를 말했고/ 그 때문에 부유한 사람들이 그녀를 처형했다네." 몇 달 후 로자의 시체가 물 위로 떠올랐을 때 그녀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패했다. 그 '붉은 로자'는 '피투성이 로자'였다.

로자의 삶도 게바라 못지않게 극적이었다. 그녀는 러시아 국적을 지닌 유대계 폴란드인으로 태어났고, 바르샤바의 중학생 시절 '프롤레타리아당'의 세포에 가입했고, 대학에 여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조국을 떠나 스위스의 취리히로 건너갔고, 위장 결혼을 통해 독일 국적을 얻었고, 러시아와 폴란드와 독일 세 나라의 혁명 운동에 발을 담갔다.

그녀는 친구보다 적이 훨씬 많은 사람이었다. 그 적은 부자들 사이에만 있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도 있었다. 사회민주주의운동을 폴란드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수행하려는 움직임을 비판함으로써, 그녀는 폴란드 동료들에게서 미움을 받았다. 로자가 선택한 '진짜' 조국은 폴란드도, 독일도, 러시아도, 가상의 시오니스트 국가도 아니었다. 로자의 조국은 프롤레타리아였고, 그녀는 죽을 때까지 철저한 국제주의자로 일관했다. 자신의 당, 독일사회민주당이 국방예산 증액을 거들자 그녀는 이를 격렬히 비판함으로써 당 동료들로부터 소외되었다. 애국주의가 모든 것을 삼켜버린 세계전쟁 시기에 반전주의자로 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독일에서도 프랑스에서도,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국제주의를 버리고 애국주의에 투항했다.  



로자는 감옥 안팎에서 그런 훼절을 통렬히 비판한 극소수의 사회주의자에 속했다. 그녀는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한쪽 발을 저는 유대인이었는데, 이것마저도 (반동진영으로부터만이 아니라 소위 혁명진영으로부터) 야비한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그 시절 사회주의의 지도적 혁명가들이 흔히 그랬듯, 로자도 학자와 기자를 겸했다. 그는 <자본축적론>과 <사회민주주의의 위기>를 쓴 경제학자였고, <노이에 차이트> <라이프치히 폴크스차이퉁> <로테 파네>를 비롯해 여러 매체에 쉴 새 없이 글을 써댄 기자였다.

그러나 그녀의 펜은 혁명을 선동하는 글보다 사랑을 갈구하고 고백하는 글에 훨씬 더 많은 잉크를 소비했다. 그 연애편지들의 수취인 가운데 로자가 제 가슴 가장 깊이 담은 사람은 그의 스승이자 동지이자 애인이자 사실상의 남편이었던 리투아니아 출신 유대인 레오 요기헤스였다. 로자의 친구였던 루이제 카우츠키(카를 카우츠키의 아내)의 레토릭에 따르면 "로자의 불같은 성격은 레오라는 기름을 만나 타오를 수 있었다." 



계급의 적에게 돌덩이처럼 단단했던 로자는 레오 앞에서 수줍은 아가씨가 되었다. 로자가 품었던 여러 모순 가운데 첫 번째가 레오와의 관계였다. 사민당의 가까운 동료들에게까지 가차없었던 그의 필봉은 레오에게 쓴 연애편지에선 한없이 말랑말랑한 응석으로 무뎌졌다. 그녀가 '디오디오'라는 애칭으로 불렀던 레오는 운동의 선배였지만 주로 지하활동에 종사해 사회주의자들 사이에 로자만큼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독립 여성의 상징이라 해도 좋을 로자가 레오 앞에서만은 순한 양이 되었다. 외면적 사회민주주의 운동에서 로자의 공적(公的) 짝은 한 날 거의 같은 시각에 살해된 카를 리히프크네히트였지만, 로자의 로맨스 속에서 그 자리는 그들보다 두 달 쯤 뒤에 처형된 레오의 것이었다.

그 시절엔 사회민주주의라는 말을 오늘날과 같은 의미로 쓰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베른슈타인 같은 수정주의자들도 자신을 사회민주주의자라 일컬었지만, 대체로 사회민주주의는 혁명적 사회주의, 곧 공산주의를 뜻했다. 독일 사민당의 전쟁 지지에 환멸을 느껴 탈당한 동료들과 함께 독일 공산당을 창건한 로자는 내심 공산주의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타협적, 혁명적, 국제주의적 사회주의자였다는 점에서 로자는 일생동안 공산주의자였다

 

1907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사회주의자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는 로자 룩셈부르크.

나는 로자의 만년에 러시아에서 실현되기 시작한 공산주의를 혐오한다. 그 점에서 나는 로자주의자가 아니다. 그런데 로자의 사회적 전망에는 모호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그는 레닌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지였지만, 10월혁명을 전후한 레닌의 독선적 행태에 부정적이었다. 이를테면 레닌이 독일군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로 잠입한 것이나, 제국주의 독일과 굴욕적 정전협정을 맺은 것 따위는 로자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거기서 그녀의 반전주의는 흐릿해졌다. 주로 선전선동의 일을 맡았으면서도, 로자는 레닌의 전위당 이론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말하자면 로자에게는 민중주의 편향이 있었다.

그러나 레닌이 로자를 가장 크게 실망시킨 일은 10월혁명 이후에 일어났다. 실질적 소수파였던 볼셰비키(다수파)를 이끌고 혁명에 성공한 뒤 실시한 총선에서 패배하자 레닌은 이를 힘으로 무효화했고, 로자는 서유럽의 부르주아 정치인들 이상으로 신랄하게 레닌을 비판했다. 그녀는 그 때 "일당의 당원들만을 위한 자유는, 그 당원들 수가 아무리 많아도, 결코 자유가 아니다"라고 일갈하며 소비에트 체제의 경직화를 우려했다. 로자에게 자유란,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었다. 그 점에서 그녀는 '위대한 반대자'라 불렸던 미국 법률가 올리버 홈스의 동지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녀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사회는 자신이 죽은 뒤 70년간 존속했던 사회주의 사회와는 크게 달랐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녀를 죽인 것은 공산주의자들이 아니었다. 그녀를 죽인 것은 군부와 결탁해 정권을 장악한 사민당 우파였다. 전쟁에 찬성하고 군부와 결탁한 사민당 우파는 여전히 자신을 사회민주주의자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1919년 상황에선 독일 대통령 프리드리히 에베르트도 사회민주주의자였고, 그가 살해한 로자 룩셈부르크도 사회민주주의자였고, 그녀가 비판한 레닌도 사회민주주의자였다. 그 세 사회민주주의의 내실은 전혀 달랐는데도 말이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자유'의 한계라면, 나는 잠재적 로자주의자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충실한 로자주의자는 못될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이 이상주의자이며 이상주의자로 남고 싶다고 되뇌었지만, 나는 현실주의자이며 현실주의자로 남고 싶기 때문이다. 

09. 0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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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1-14 00:00   좋아요 0 | URL
고종석씨의 새 칼럼 기대되네요.

로쟈 2009-01-14 00:18   좋아요 0 | URL
'여자들'을 너무 밝힙니다.^^

릴케 현상 2009-01-14 00:14   좋아요 0 | URL
아내가 너무 재탕이라고 전해 달래요^^

로쟈 2009-01-14 00:18   좋아요 0 | URL
고종석씨가 어디 썼던 건가 보죠? 제가 '재탕'한 건 아닐 테니까요.^^

2009-01-14 0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4 0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4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9-01-14 22:33   좋아요 0 | URL
그랬군요.^^

PhEAV 2009-01-14 17:20   좋아요 0 | URL
로자 티셔츠라면 저라도 거부할수가...;;;;

로쟈 2009-01-14 22:45   좋아요 0 | URL
'상품성'이 있군요.^^

노이에자이트 2009-01-15 23:41   좋아요 0 | URL
노이에자이트 지에서 벌어진 룩셈부르크,카우츠키,베른슈타인,쿠노 간의 대논쟁이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사실 제 변명도 그래서 따왔는데요.물론 박호성,강신준 양인의 연구서도 좋습니다만 원자료를 직접 읽고 싶군요.

로쟈 2009-01-15 23:55   좋아요 0 | URL
강신준 교수도 이쪽으로 책을 썼나요?..

노이에자이트 2009-01-17 16:32   좋아요 0 | URL
예.베른슈타인 저서 번역도 했구요.그리고 박사학위 논문이 노이에자이트에서 벌어진 논쟁을 연구한 거예요.그게 단행본으로 <수정주의 연구1>(이론과 실천)로 나왔지요.

로쟈 2009-01-16 11:48   좋아요 0 | URL
그랬었군요...

2009-01-16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6 1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번주 시사IN에 실은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엊그제 스크랩한 기사(http://blog.aladin.co.kr/mramor/2516936)에서도 언급된 <희망의 인문학>(이매진, 2008)이 서평의 대상이다. 인문학의 활로와 관련해서는 예전에 쓴 '시민 가까이의 인문학'(http://blog.aladin.co.kr/mramor/2374561)도 같이 참조해볼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시사IN에 실은 마지막 서평기사여서 기억에 남을 듯싶다.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학사, 2007)을 다룬 것이 맨처음이어서 얼추 아귀도 맞는다(http://blog.aladin.co.kr/mramor/1729882). 해서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행복한 인문학'까지로 일단 매듭을 지어놓는다. 가뿐하게 이젠 다른 여정의 가방을 꾸려야겠다...      

시사IN(09. 01. 17) 배곯는 소외자들 인문학으로 배불리다 

“누군가 내게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참 좋았어요, 행복했어요, 그리고 많이 배웠어요, 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값지고 소중한 시간들을 내 입에서 너무 쉽게 가볍게 내뱉는 것만 같아 침묵으로써 모든 말을 대신하고 싶다.”  

이 소박하면서 지극한 인문학 예찬론은 대학의 인문학자나 인문학도의 것이 아니라 자활지원센터 인문학과정 졸업자의 것이다. 가난한 살림 때문에 일찍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이분의 최종학력은 초등학교 3학년이다. 뒤늦은 배움과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되었고 공부에 대한 열정도 다시 지피게 되었다고 말한다.  

2006년 방한하기도 했던 미국의 교육자 얼 쇼리스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인문학강좌’, 곧 ‘희망의 인문학’을 모델로 하여 국내에 여러 인문학 강좌가 만들어졌다. 노숙자를 위한 인문학, 교도소 수용자를 대상으로 한 재소자 인문학, 자활근로자와 지역주민을 위한 인문학 등 갈래는 다양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모두가 사회적 빈곤층이면서 인문학 소외계층에 속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은 그 인문학 코스의 강의를 수강한 사람의 사연과 성취에 대해서도 들려주지만 오히려 이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운 ‘교수님’들의 체험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장 끼니 한 끼가 절실한 사람에게,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보는 것이 소망인 사람에게 한 줄의 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두들 그런 의문과 함께 강의를 시작했지만 인문학의 희망과 새로운 가능성을 깨닫게 되었다고 입을 모은다. 어떤 깨달음인가. 다른 삶과 다른 사회를 꿈꾸려는 근원적인 충동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점, 그리고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과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점 등이다.  

흔히 인간의 욕구에는 위계가 있어서 생리적 욕구와 소속감, 자존심에 대한 욕구 등이 먼저 충족된 후에야 비로소 자아실현에 관심을 갖는다고 말한다. 도덕적인 삶과 문화적 향유는 경제적 성장 이후 생각해보자는 ‘성장 이데올로기’가 기대는 것도 그런 단계론이다. 불만의 소크라테스보다는 배부른 돼지가 먼저라는 얘기다. 과연 품위 있는 삶에 대한 욕구는 다른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된 이후에야 기대할 수 있는 것일까. ‘세상과 소통하는 희망의 인문학 수업’ 참여자들은 생각이 다를 듯싶다. 시인을 꿈꾸는 한 노숙인이 이런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니까 말이다. “교수님, 제가 시를 썼는데, 여기에 쉼표를 찍어야 할까요, 마침표를 찍어야 할까요?” 

09. 01. 13.  

P.S. 주간지 서평은 편집팀의 교열을 거쳐서 실리게 되는데, 그간에 가장 많이 교정을 받은 것은 복수접미사 '들'이다. 시사IN 편집팀은 좀 어색하다 싶을 정도로 '-들'이나 '-적'이란 접미사를 기피한다. 덕분에 불필요한 접미사를 나도 많이 경계하게 됐지만 그럼에도 매번 몇 군데씩 교정됐고 이번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 사안의 대부분은 수용하는 쪽이다. 하지만 교정에도 '미스'가 날 때가 있다. "도덕적인 삶과 문화적 향유는 경제적 성장 이후 생각해보자는 ‘성장 이데올로기’가 기대는 것도 그런 단계론이다"는 문장이 지면에서는 "도덕적인 삶과 문화적 향유는 경제적 성장 이후 생각해보자는 ‘성장 이데올로기’가 기대되는 것도 그런 단계론이다"로 수정됐다. '기대고 있는'이라고 적으려다가 간결하게 쓴답시고 '기대는'이라고 했더니 오히려 오해를 유발한 듯하다.  

 

말하고자 한 바의 요점은 '일단 배부르고 보자'는 식의 성장 우선주의 이데올로기와 인격 발달 단계론이 '공모'적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탈피해야 할 것은 그런 공모이고 결탁이다. '시는 영혼의 끼니'라고 프랑스 시인 르네 샤르는 말했다. 우리의 영혼 또한 우리의 위만큼이나 풍족함을 요구한다. 인간은 돼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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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ice 2009-01-13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로쟈님. 처음 글을 남기네요. 반갑습니다.
지금 노트북 앞에 시사인이 있는데, 이 글을 읽고 서평기사를 찾아봤습니다.
'이 글을 로쟈님이 쓰셨구나'하는 반가운 마음에 글을 남깁니다.
올 한해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_ _)

로쟈 2009-01-14 01:03   좋아요 0 | URL
네,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

비로그인 2009-01-13 0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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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의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시리즈를 챙겨서 본다. 오늘이 여덟번 째인 걸로 보아 매번 챙겨 읽은 건 아니지만 읽을 거리는 많다. 다 옮겨오진 못하고, 현 미국발 금융위기를 마르크스와 하이에크, 두 경제학자의 시각에서 비교 분석한 기사를 옮겨놓는다. 여전히 이번 위기의 본질이 정부의 지나친 개입에 있다는 '신자유주의론자'의 시각이 놀랍긴 하지만, 참조는 할 수 있겠다...   

경향신문(0. 01. 12)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금융위기를 보는 두개의 시각  

 

노동·자본간 불평등 심화…금융 독재는 역사적 침몰

금융위기 속 ‘마르크스의 반격’
“역사는 종말을 고했다. ‘우파의 이념적 승리’는 완료됐고, 모두가 만족한 가운데 자본주의는 사회구조의 결정적 형식으로 굳어졌다.” 우리를 거의 설득시킨 이 담론은 2008년의 금융 대지진으로 무너졌다. 런던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2008년 10월13일은 영국 자본주의 시스템이 실패한 날로 기록될 것”이라 평가했다. 뉴욕 월가의 시위대는 “마르크스가 옳았다!”라는 팻말을 치켜들었다.

<자본론> 등 한 세기 반 이전 마르크스의 저작 모두를 현 상황에 직접 대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늘날과 다를 바 없는 사회상을 제시한다. “금융 귀족이 법을 명하고 국정을 지도하며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넣어 여론을 지배한다. 이들이 전 영역에서 생산에 의하지 않고 타인의 부를 강탈하면서, 매춘, 사기 등을 재생산하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이는 1848년 혁명 직전 프랑스의 묘사다.

금융위기 원인으로는 복잡한 금융 상품의 휘발성, 자체 규제 불능의 자본시장, 금융계의 도덕적 해이 등이 거론된다. ‘실물경제’에 대한 ‘가상경제’의 시스템 붕괴가 원인이란다. 하지만 ‘가상’의 비극은 ‘실물’에 뿌리를 둔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은행 융자를 안고 집을 산 수백만 미국 가계의 부채상환 불능 상태에서 야기됐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축적의 일반 원칙’을 보자. 그는 자본가 계급이 생산의 사회적 조건을 사유할 경우 “생산 발전의 모든 수단이 지배 수단, 생산자 착취 수단으로 전복된다”고 설명한다. 생산자들이 희생되는 동안 축적된 자본은 자체 동력을 얻어 광적으로 비약한다. ‘한 극점에서의 부의 축적’은 정반대 극점에서 ‘비례적 빈곤 누적’을 초래, 격렬한 상업·금융위기를 낳는다.

신용위기의 파괴력은 생산위기로 전화됐다. 이는 노동·자본 간 분배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최근까지만 해도 시장 자유주의의 적실성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용납하지 않던 자유주의자들이 자본의 ‘도덕화’, 금융 ‘규제’ 등 위기 해결책을 들고 나선다. 자본의 도덕화란 블랙코미디다. 자유경쟁 체제가 망친 사회 미덕은 바로 ‘도덕을 고민하는 것’이었다.

진정 도덕적 경제생활을 원한다면, 악덕 기업주의 잘못 따위 지엽이 아닌 근본을 바로잡아야 한다. 모든 개인적 행위들 너머 자본주의 원칙, 그게 문제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부를 창출하는 수단, 상품으로 전락시킨다. 물론 국가의 규제 기능으로 사회의 비도덕을 개선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자 감세, 우정 민영화를 벌이는 사르코지 등 우파 정권에 규제자 역할을 기대하는 일은 순진하거나 위선적인 짓이다. 



사회적 관계가 근본적으로 재고돼야 한다. 마르크스는 <1844년 수고>에서 ‘소외된 노동’의 개념을 고안했다. 임금 노동자가 자신의 물질적, 도덕적 결핍을 감수하면서까지 남을 위해 부를 창출하는 저주스러운 상황을 뜻한다. 산업재해, 정리해고, 저임금 등 오늘날 임금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이 이 개념을 뒷받침한다. 자본은 생산자들을 끊임없이 생산 수단에서 괴리시키고, 무한경쟁 상태로 내몬다. 기술적, 경제적, 정치적, 이념적 과정으로 생산자를 포섭, 종속시킨다.

금융위기는 인간소외의 단면을 보여준다. 아무도 위기를 원치 않았지만 모두 위기에 노출된다. 자본주의는 ‘일반화된 규제 철폐’를 극단적으로 몰아붙여 규제 부재의 황무지를 만든다. 스스로 규제할 능력이 결여된 체제는 구성원에게 엄청난 대가를 요구한다. 우리는 즉시 자본주의를 초월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대안은 동유럽에서 실패한 공산주의 ‘실험’ 탓에 왜곡당한다. 스탈린-브레즈네프식 사회주의가 공산주의로 오인되는 동안 사람들은 진정한 ‘공산주의’의 의미를 도외시한다. “다른 사회란 파멸적 유토피아일 뿐이다. 우리는 인간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라는 냉소가 퍼진다.

자유주의 사상에서 ‘인간’은 사회로부터 유래되지 않은 자생체이고, 오직 자신의 이익에 충만한 동물(호모 에코노미쿠스)이다. 따라서 인간 사회는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지배하는 사유 재산의 사회만 가능하다고 한다. ‘경쟁적 인간’ 이데올로기는 ‘살인자가 되자’는 비인간적 교육을 권장한다. 일확천금의 광풍 속에 전방위적 탈문명화를 진행한다. 하지만 결국 금융독재의 역사적 침몰 맨 밑바닥에 자유주의적 인간 담론이 깔려버렸다.

마르크스는 자유주의 담론에 대항할 혁명의 초안을 제시한다. 그는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자신의 여섯 번째 테제에 “인간의 본성은 개별적으로 분리된 개인의 고유한 어떤 추상물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 속에서 전체 사회적 관계의 총체이다”라고 썼다. 자유주의 담론과 반대로 ‘인간’은 ‘인간의 세상’에서 유래한다. 인간과 사회는 서로 상대방을 발달시킨다. 그렇다. 우리는 인간의 삶을 바꿀 수 있으며, 이는 사회를 바람직하게 바꾸는 조건하에서 가능한 것이다.(루시앙 세브 프랑스 공산당 중앙위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발췌(www.ilemonde.com)) 

 

 ▲마르크스

자본주의는 내재적 한계를 끊임없이 극복하려 노력하지만, 극복 수단들이 결국 더 큰 한계를 새로 만들어낼 뿐이다. (자본론 3권)

금융거래 활동이 스스로 가치를 생산해낸다는 생각은 ‘가장 바보 같은 망상’일 뿐이다. (자본론 3권) 



시장실패 아닌 정책 잘못…위기본질 지나친 개입 탓 

신자유주의는 실패했나?
최근 비우량 담보 시장에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로 경제가 혼란에 빠지자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시장 개입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금융위기의 원인이 규제 완화와 작은 정부 때문이라고,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선언하면서 큰 정부의 도래를 환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같은 진단과 해법은 금융위기의 본질에 대한 잘못된 접근에서 나온 것이다.

그 본질에 접근하는 중요한 단서는 상환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에 대한 주택 담보 대출이다. 이 담보 대출의 부실화에서 부동산 시장의 거품 붕괴가 촉발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저소득층에 대한 주택 담보 대출을 늘려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야기한 원인이다.

그 원인은 세 가지이다. 첫째로 1995년 지역재투자법(CRA)을 대폭 개정해 은행들로 하여금 저소득층에 대한 담보 대출을 늘리도록 했다. “누구나 내 집 갖기”라는 주택 보급 정책을 위해서였다. 의회와 정부는 연방주택청(FHA)이나 주택도시개발부(HUD) 등 정부기관을 동원해 은행들에는 대출심사 기준을 대폭 낮추도록, 패니메이(Fannie Mae)와 프레디맥(Freddie Mac)에는 비우량 주택 담보와 이에 근거한 유동화 증권을 구매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그러자 은행들은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위험한 담보 대출을 늘리고 이를 유동화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주택가격의 버블을 야기한 두 번째 요인은 서민들의 주택보유를 확장하기 위해 정부가 지원하는 모기지 전문회사의 도덕적 해이다. 정부와 의회는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손실에 대한 보증을 약속했다. 그래서 그들은 손실은 생각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비우량 담보 구입과 이에 기반을 둔 유동화 증권의 규모를 늘려갔다. 그 결과는 서민층 주택구입의 활성화와 주택가격의 버블이다.

금융위기의 세 번째 원인은 연방준비은행의 방만한 통화정책이다. 심지어 1%라는 초저금리정책을 통해서 유동성을 확대시켰다. 은행들은 늘어난 유동성을 소화하기 위해 저마다 대출처를 찾아 나섰다. 이것이 주택시장의 과열로 연결되었다.  



이 세 가지 요인은 자유와 책임, 작은 정부를 국정원리로 하는 신자유주의를 저버린 정책이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의 금융위기는 시장실패가 아니라 정부정책의 잘못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시장규제와 손실의 보증이 없었더라면, 유동성을 과잉 공급하지 않았다면 지금 같은 위기는 없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위기가 월가의 탐욕 때문에 생겨났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접근법은 옳지 않다. 탐욕은 자기 이익추구로서 특수한 사람이나 상황에서 관찰되는 것이 아니라 늘 어디에서나 목격되는 인간의 불변적인 심성이다. 따라서 이것을 가지고는 평시와는 전적으로 상이한 금융충격의 발생을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탐욕을 위기로까지 몰고 간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 시장에 거침없이 풀린 돈과 정부의 시장 개입이 그 이유다.

금융위기가 규제 완화의 탓이라는 주장도 터무니없다. 80년대 말 이래 지속적으로 규제가 증가해왔는데 규제가 가장 많이 늘어난 부문은 주택 부문이고 그 다음이 금융 부문이다. 99년 ‘그램-리치-브릴리 법’으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겸업이 허용됐다. 이런 규제 완화가 금융위기의 원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겸업이 금지됐더라면 이번 금융위기로 상업은행들이 신용위기에 몰려 있던 투자은행을 흡수 합병하지 못해 위기의 여파가 더욱 극심했을 것이다.

감독부실이 위기의 원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지식 문제 때문에 정부의 시장에 대한 감독이 어렵다. 감독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언제, 그리고 왜 감독해야 하는지에 관한 지식이 필요한데 정부는 그런 지식을 전부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정부의 감독은 늘 부실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감독에 필요한 지식과 관련해 시장이 정부보다 현명하다. 시장은 그 같은 지식을 발견하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시장이 교란되면 ‘발견의 절차’가 작동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시장을 교란시킨 요인이다. 그것은 방만한 통화 공급과 정부의 시장 개입이다.

금융위기의 원인이 정부의 개입임에도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문제의 해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한 때문이다. 시장 개입은 경제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고 지금의 고통을 미뤄 나중에 더 큰 고통을 겪을 위험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다고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손놓고 뒷짐지고 있으라는 말이 아니다.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은 시장경제의 원리를 확립하는 일이다. 개인의 책임과 경제활동을 방해하는 제도와 규제들을 걷어 내고,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고 세금을 낮춰야 한다. 그러면 우리 경제는 지금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안정적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정도(正道)다.(민경국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하이에크

국가의 경제 개입은 모든 개인을 노예로 만든다. <노예의 길>(1944)

정부의 시장 개입은 문제이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자유의 헌법>(1961)

세상을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은 치명적 자만이다. <치명적 자만:사회주의의 오류>(1988) 

09. 01. 12.  

P.S. '마르크스냐 하이에크냐'라는 이분법적 문제설정에 대한 비판은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50840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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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1-12 23:50   좋아요 0 | URL
오...민경국 씨가 경향신문에 글을 쓰다니...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군요.요즘 민 씨와 같은 주장을 하는 해외인사들의 글이 세계일보에 자주 실리고 있지요.하지만 한국판 뉴딜이라면서 전형적인 정부개입형 경기부양책을 쓰고 있는 현정부의 경제정책엔 뉴라이트 경제학자들이 별다른 말을 안하던데요.

로쟈 2009-01-13 01:25   좋아요 0 | URL
특이하게도 강원대에 (신)자유주의 학풍이 있습니다. 신중섭 교수 같은 양반도 있고...

비로그인 2009-01-13 00:15   좋아요 0 | URL
"위기의 본질이 정부의 지나친 개입에 있다는 '신자유주의론자'의 시각"은 정말 놀랍군요. 아무리 보아도 반론을 위한 반론 제기, 그 이상으로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정치경제에 대한 제 상식이 얕은 수준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만 보더라도 금융과 기업에 대한 정부의 신자유주의적인 방임 정책을 자성하고 비판하는 소리가 높지요. 미국 정치의 본질이 금권 정치임을 잊지 않는다면, 그리고 현재의 위기를 초래한 것이 그릇된 정책이라면, 이 그릇된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힘을 행사한 것이 금권이고, 이 금권이 누구에게서 나온 것인지를 안다면, 이 금권의 출처가 되는 거대 기업이 정부를 비판한다는 것은 제 꼬리를 무는 격이 아닐까요? 의식 있는 미국 국민의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난은 대기업, 특히 초국적 거대 기업에 대한 비난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한국의 실정에 대한 직접적인 포섭 기제로 적용하여 설명할 수는 없겠지요. 정부의 규제가 너무 강력해서 불행을 초래했다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사실일지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이 규제의 제정과 적용이 편파적이었고, 이 편파적인 규제의 밝은 편에 선 무리가 힘 있는 쪽이고 어두운 편에 선 무리가 금융권을 비롯한 피해자들이라면 말입니다.

그냥 제 관찰과 소견일 뿐입니다. 극구 주장할 것을 못되지요. 다만 신자유주의 자체에 아무런 잘못이 없으며, 가야 할 길인듯 하는 경향신문의 뒤의 사설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기가 힘이 듭니다. 로쟈님 말씀대로 참고나 할까요...

로쟈 2009-01-13 01:27   좋아요 0 | URL
경제학계에서도 소수의견이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아랫글은 '사설'은 아닙니다. 경향에서는 두 가지 상반되는 시각을 소개하고 있을 뿐이예요...

비로그인 2009-01-13 04:47   좋아요 0 | URL
네, 그렇군요.

PhEAV 2009-01-13 00:22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시장의 정부개입에 대해 쓴소리를 해야 할 때인 것입니~! (변사풍으로)

로쟈 2009-01-13 01:2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시장의 정부개입은 왜들 자연스럽게 여기는 걸까요...
 

고교 독서평설 1월호에 실은 '갑론을박' 꼭지를 옮겨놓는다. 계획상으론 올 한 해 세계문학 작가들을 갑론을박의 쟁점으로 다루게 되는데, 제일 첫머리에 올린 작가는 역시나 셰익스피어다(두 번째부터는 좀 고민이지만). 그건 셰익스피어에 대한 찬양 못지 않게 비판도 더러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건상 두루 다루지는 못하고 셰익스피어의 만년작 <폭풍우>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봐야 '문제제기' 정도에 불과하지만...  

고교 독서평설(09년 1월호)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인가? 

세계적인 문호, 셰익스피어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는 흔히 세계적인 문호의 대명사로 꼽힌다. <햄릿>, <오셀로>, <리어 왕>, <맥베스>의 4대 비극을 비롯해, 그가 남긴 대부분의 작품이 세계 전역에서 읽히고 무대에 오른다. 또 많은 작품이 영화화되어 스크린에서 상영된다. 이렇게 보면, 셰익스피어만큼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대중화된 작가도 드물다. 아예 ‘셰익스피어 산업’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다. 이러한 현상은 얼핏 그의 문학이 갖는 보편적 호소력에 기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누구나 그의 문학을 공감하며 즐길 수 있고 더불어 그의 작품에서 삶에 대한 보편적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해지기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보편성, 장벽에 부딪히다
‘진실로 위대한 작가 셰익스피어!’ 이것이 셰익스피어에 대한 우리의 통념이다. 그러한 통념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자주 인용되는 말이 있다. “나는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라는 19세기 영국의 비평가 토머스 칼라일의 말이다. 대단한 자부심의 표현이다. 하지만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았던 인도인들도 공감할 수 있을까? 인도의 대학 영문학과에서도 셰익스피어를 읽고 공부하며 ‘과연 셰익스피어!’라고 맞장구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은 셰익스피어 문학의 보편성에 대해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셰익스피어의 문학 역시 한 천재의 소산(所産, 어떤 행위나 상황 등에 따른 결과로 나타난 것)인 동시에, 그가 살았던 시대의 산물이다. 이를 고려한다면, 방대한 식민지를 경영한 17세기 대영 제국의 한 극작가의 작품이 시대와 국적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문학적 감동을 선사한다는 것은 어딘지 미심쩍다.  

그리고 사실 셰익스피어에 대해서 호평만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셰익스피어의 유려하고 시적인 언어에 대해 ‘가식적’이란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셰익스피어의 인물들은 모두 가식으로 가득한 부자연스러운 언어로 말한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 톨스토이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이렇듯 과장되고 가식적인 언어가 환영을 받는다면, 그건 셰익스피어의 생존 당시나 현재에나 상류층의 비종교적이고 부도덕한 심리 상태에 잘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톨스토이는 꼬집는다. 요컨대, 셰익스피어의 문학이 톨스토이를 설득하지는 못한 것이다. 하물며 전혀 이질적인 문화권의 독자라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미국의 한 여성 인류학자가 인간의 본성은 다 마찬가지이므로 자신이 방문했던 서아프리카의 티브족 사람들도 <햄릿>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그녀가 <햄릿>의 첫 장면을 원주민들에게 설명할 때부터 ‘셰익스피어의 보편성’은 장벽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밤, 성(城)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세 사내 앞에 얼마 전에 죽은 부왕(父王)이 나타났다고 말하자, 티브족 사람들은 죽은 자가 다시 걸어 다니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이들은 특이하게도 유령의 존재를 전혀 믿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시체도 아니고 좀비도 아닌, 죽은 부왕의 유령에 대해서는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또 부왕과 그를 죽인 동생 클로디어스가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는지를 물어서 인류학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보기엔 이 문제가 매우 중요하지만, 정작 <햄릿>에서는 아무런 설명도 주어져 있지 않다.   

이러한 견해 차이가 더욱 극명해지는 것은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의 처신을 문제 삼을 때였다. 보통 서양의 독자들은 남편을 여읜 거트루드가 적절한 애도 기간이 끝나기 전에 너무 빨리 재혼했다고 생각한다. 극 중의 햄릿도 같은 생각이어서 “오 하느님, 이성적 사고가 결여된 짐승도 그보다는 더 오래 애도했을 텐데!”라고 어머니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티브족 사람들은 거트루드가 그렇게까지 오래 기다렸다는 사실에 오히려 놀랐다. “남편이 없다면 누가 당신 밭의 김을 매 주나요?”라는 것이 티브족 아낙의 물음이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 <햄릿>이라지만, 이 작품에 대한 티브족 사람들의 반응은 그러한 ‘명성’이 반드시 보편적 공감을 보증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셰익스피어 작품 뒤집어 읽기 - <폭풍우>
그런데 셰익스피어 읽기는 문화적 차이가 빚어내는 이러한 견해차를 확인하는 정도에만 그치지 않는다. 정반대의 평가도 제시되기 때문이다. 통념적인 셰익스피어 읽기와 이해에 맞서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라고 주장하는 박홍규 교수는, 무엇보다도 셰익스피어의 문학이 팽창주의의 길로 접어든 대영 제국 시기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곧 그의 작품이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대는 어떤 시대였을까? 영국사에서 셰익스피어의 시대는 튜더 왕조(1485~1603) 말기에서 스튜어트 왕조(1603~1688) 초기를 가리킨다. 정치사적으로 보면 이 시대는 봉건주의에서 절대주의 국가로 넘어가는 이행기였다. 절대주의 국가에서 권력은 국왕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엘리자베스 여왕(1533~1603) 시대에도 왕권에 반대하는 세력은 철저하게 탄압받았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왕위 찬탈을 둘러싼 권력 다툼을 자주 다루는데, 명확하게 왕권을 지지하는 것이 그의 정치적 입장이었다. 

   

한편 경제적으로 셰익스피어의 시대는 봉건적 공동사회에서 상업적 이익사회로 넘어가는 이행기였다. 상업적 이익사회는 상품 거래를 통해서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 자본주의의 융성과 맞물려 형성되며, 이 상업 자본주의는 ‘지리상의 발견’의 결과로 촉진되었다. 1492년 콜럼버스(1451~1506)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약 100년간 식민지 쟁탈전을 주도한 나라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었다. 영국은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격파하여 대서양의 패권을 차지하고, 17세기에 들어서 식민지 경영의 선두 국가가 된다. 흥미롭게도 셰익스피어의 작품 활동은 이러한 영국의 식민 사업과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되었다. 그의 작품에 중세 이래 유럽의 무역 중심지였던 베니스가 자주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셰익스피어의 여러 작품 가운데 식민주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마지막 작품 <폭풍우>(1611)다. ‘태풍’ 또는 ‘템페스트’란 제목으로도 번역·공연되는 이 작품은 보통 희비극으로 분류되는데,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나폴리의 왕 알론소 일행은 아프리카 튜니스에서 결혼식을 마친 뒤 배를 타고 돌아가던 중, 폭풍우를 만나 난파하여 어느 섬에 도착한다. 그 섬에는 12년 전 밀라노의 공작이었다가 동생 안토니오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어린 딸 미란다와 도망쳤던 프로스페로가 살고 있다. 알론소 일행을 난파시킨 폭풍우는 그가 복수를 위해 마법을 부려 일으킨 것이다. 

처음 프로스페로가 도착했을 때 섬은 시코락스라는 여자 마법사가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프로스페로는 그녀를 물리치고 그녀의 아들이기도 한 ‘야만인’ 칼리반과 많은 요정을 노예나 부하로 삼는다. 그는 알론소와 안토니오를 다시 만나 용서하고서 미란다를 알론소의 아들 페르디난드와 결혼시키고, 그 자신은 밀라노 공작의 지위를 회복한다. 한편 칼리반은 주인인 프로스페로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반란을 계획하지만 실패하고 그에게 용서를 구한다.    

작품의 중심 플롯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알론소 일행에 대한 프로스페로의 복수’와 ‘프로스페로에 대한 칼리반의 반란’이다. 전자가 권력 쟁탈전의 양상을 띤다면, 후자는 ‘식민지 해방 투쟁’이라 이름 붙일 만하다. 여기서 제국주의 또는 식민주의 문제와 관련하여 보다 관심이 대상이 되는 것은 ‘프로스페로와 칼리반의 관계’다. ‘칼리반(Caliban)’이라는 이름 자체가 식인종을 뜻하는 ‘캐니벌(cannibal)’에서 왔다는 점은, 이 작품에서 ‘원주민’ 칼리반이 어떻게 형상화되는지 미리 짐작해 볼 수 있게 해 준다.  

작품 속에서 그는 주로 ‘야만적이고 흉측한 노예’로 소개된다. 2막에서 칼리반을 처음 본, 알론소의 광대 트린쿨로는 아예 이렇게까지 말한다. “이게 뭐야? 인간이야? 생선이야? 죽은 거야? 산 거야? 생선이네. 생선 냄새가 나. 잡은 지 오래된 생선 냄새야. 싱싱하지 않은 말린 대구 같은데. 괴상한 생선인걸!” 그는 이 ‘괴물’을 영국으로 데려가면 한밑천 잡을 거라고 상상한다. 영국인들은 죽은 인디언을 구경하는 데도 돈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식민 시대에는 원주민들이 서커스단의 동물처럼 구경거리로 전시되어 돈벌이에 이용되기도 했다. 프로스페로의 표현을 빌리면, 칼리반은 ‘악마와 사악한 마녀 사이에서 태어난 사악한 노예’일 뿐이다. 이런 부정적인 묘사 때문에 <폭풍우>의 공연사에서 칼리반은 17세기에는 야만스러운 괴물로, 18세기에는 다양한 악행의 구현자로, 19세기에는 반인반수(半人半獸)로, 그리고 20세기에는 인간에 내재한 야수성의 상징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평가는 식민주의적 시선만을 일방적으로 반영하고 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애당초 섬의 주인은 칼리반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칼리반은 이렇게 말한다. “이 섬은 내 거야, 내 어머니 시코락스 거였으니까. 그걸 네가 나한테서 뺏어 갔지.” 처음 프로스페로와 대면했을 때 칼리반은 그의 온정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섬의 구석구석을 보여 주었다. 프로스페로는 그런 칼리반에게 미란다를 강간하려 했다는 죄를 씌워 마법으로 제압하고, 바위 안에 가둔 다음 노예로 삼아 버린다. 칼리반을 부를 때마다 욕설을 입에 담지만 형편상 그가 없으면 곤란하다. 칼리반이 불도 지피고, 나무도 해 오고,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약탈과 지배는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미란다의 말은 시사적이면서도 노골적이다.  

“난 너를 측은히 여겨 말을 가르쳐 주었고, 매번 이것저것 가르쳐 주었다. 이 야만종, 네가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짐승처럼 어버버거릴 때 내가 말이 통하게 해 주었다. 아무리 가르쳐도 네놈의 비천한 천성은 고쳐지지 않아. 선량한 우리로선 곁에 두고 봐 줄 수가 없어. 그러니 바위 속에 가둬 두는 것은 당연하지.”

하지만 칼리반 가르치기는 결코 시혜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칼리반에 대한 ‘계몽’은 부차적이며, 오히려 그에 대한 지배를 더욱 원활하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곧 프로스페로와 미란다의 언어 교육은 칼리반이 말을 더 잘 알아듣게 만들어서, 더욱 쉽게 부려먹고 착취하기 위해 이루어졌을 뿐이다. 19세기 이후 ‘영어’가 식민지 지배의 중요한 도구로 사용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대목은 셰익스피어의 날카로운 통찰로도 읽힌다.  

그러면 칼리반은 이러한 ‘주인의 논리’에 어떻게 대꾸하는가? “네년이 내게 말을 가르쳤지, 덕분에 난 저주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붉은 종기 역병에나 걸려라, 이년.” 칼리반의 욕설은 그가 받은 교육의 결과이며 ‘되받아치기’다. 칼리반은 제국의 언어를 배우지만 그 언어로 욕을 한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문명화’ 교육의 이면을 드러내 주면서 저항의 가능성도 제시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칼리반의 저항, 곧 반란 기도는 실현되지 않는다. 알론소의 집사인 술주정뱅이 스테파노를 새로운 왕으로 모시고 프로스페로에게 대항하려 하지만, 그의 반란은 희화적으로 묘사될 뿐 결국 프로스페로의 사냥개들에게 단숨에 제압당한다.  



고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빼앗긴 자신의 섬을 되찾으려는 칼리반의 시도는 식민지 해방 투쟁에 값하지만, 그는 이것이 스테파노라는 새로운 주인을 섬김으로써 가능하리라고 본다. 셰익스피어의 정치적 입장이 드러나는 것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다. 그는 지배 권력에 대한 저항을 탐욕과 환상이 빚어낸 어리석은 행동으로 줄곧 그려 왔고, <폭풍우>에서 칼리반의 반란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프로스페로가 자신의 적들을 모두 용서하는 5막은 전형적인 셰익스피어식 대단원으로, 그의 용서를 받은 칼리반은 다시금 ‘길들여진 노예’ 상태로 돌아가 자발적으로 순종을 맹세한다. 그들의 확고한 주종 관계가 재차 확인되고 마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결말을 통해 셰익스피어는 ‘야만인’ 칼리반이 교정이 필요한 위협적인 존재이고, 강간이나 모반 같은 그의 반(反)사회적 행위는 반드시 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결론은 그 당시 연극의 주된 관객이었던 영국 지배 계급의 식민주의적 태도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자면 <폭풍우>는 프로스페로식의 ‘식민주의’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다시 읽을 수도 있다. 셰익스피어의 원래 의도가 무엇이었는가와 무관하게 말이다. 셰익스피어를 제국주의자로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을 읽을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폭풍우>가 그렇듯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비판하는 용도로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으며, 그것이 고전의 의의이기도 하다. 

09. 01. 11. 

 

P.S.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원고지 30매는 얼마간 준비를 필요로 하고, 개인적으로는 공부할 핑계도 된다. <폭풍우>를 중심으로 글을 쓰기로 작정한 덕분에 관련 자료를 제법 찾아읽었다. 물론 챙겨놓고 미처  읽지 못한 자료가 더 많지만, 국내에서 씌어진 논문과 관련서만 해도 10여 종 이상 읽은 듯하다(나중에 좀더 긴 분량의 글을 쓰려고 한다). 챙겨놓은 자료들 가운데 가장 부듯하게 생각하는 것은 '논쟁 작품 연구(A Case Study in Critical Controversy)' 시리즈의 한 권으로 나온 <템페스트>(2000)이다. 제랄드 그라프와 제임스 펠란의 편집이고 350쪽 분량. <템페스트>의 원문과 함께 관련 쟁점을 일목 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주요 논문들을 싣고 있다(한국문학에도 이런 기획을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손에 넣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챙겨보려고 하는 자료는 해롤드 블룸 편집의 <템페스트>(2007). 역시나 주요 비평모음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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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1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1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9-01-12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티브족 사람들의 얘기 인상적이네요. 김정환씨가 번역한 세익스피어를 올해 한 번 읽어볼까싶은데 그게 세익스피어 자체보다도 김정환씨가 그걸 완역한 이유가 뭘까가 더 궁금해서라고나 할까요? 뭐 세익스피어를 제대로 읽어본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도 이유가 되긴 하지만요. ^^ 새해죠.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고 올 한해도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

로쟈 2009-01-13 01:20   좋아요 0 | URL
김정환 시인은 영문과 출신이고 셰익스피어 번역을 오래전부터 필생의 숙원사업으로 얘기하던 분입니다. 바람돌이님도 새해 건강하시길...

비로그인 2009-01-12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셰익스피어 읽기(해석)의 시금석이 되는 작품을 택하셨군요. 콜리지(Coloeridge)는 템페스트의 프로스페로는 바로 셰익스피어 자신이라고도 했지요. 식민지화에 대한 화두를 비롯해서 많은 화제를 풍부히 제공해주는 템페스트 연재, 기대됩니다. 혹시 원문도 함께 인용해주실 건가요? 예를 들어, 프로스페로가 칼리반을 언급하며 'this thing of darkness I / Acknowledge mine.' 이라고 한 부분에서 주어 'I'에서 동사 'Acknowledge'가 떨어져 다음 줄에 쓰이기 때문에 칼리반과의 자신과 닮았음을 인정하면서 잠시 주저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그런 것 말입니다. 본문에 가득한 그런 장치가 한글 번역에서 표현되었다면 모르지만요. 어쨌든 셰익스피어는 무엇보다 언어의 마술사요, 인간심리의 마술사이니까요. 마노니 때문에 프로스페로가 수난이군요. ^^

비로그인 2009-01-12 22:28   좋아요 0 | URL
아, 그런데 고등학생들이 대상이라면 원본까지 인용하기는 좀 그렇겠군요... 아무튼 이 복잡한 작품에 대한 로쟈님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로쟈 2009-01-13 01:21   좋아요 0 | URL
아, 이건 연재가 아니고요, 단타성 글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푹풍우>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고는 싶지만요...

비로그인 2009-01-13 04:50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아쉽습니다. 언제 <폭풍우>에 대해 좀더 다루시게 되면 혹 제가 놓치지 않도록 알려주세요. ^^

드팀전 2009-01-12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실제로 세익스피어 작품을 가지고 원주민들에게 그런 실험을 한 학자들도 있군요.^^ 웃기는 에피소드 같지만 문화인류학자의 입장에서는 해 보고 싶은 실험이었으리라 생각도 듭니다.
<햄릿>의 아버지 유령을 보니-올리비에 영화 속 사진 같습니다- 지젝이 말한 '죽은지 모르는 아버지'도 생각이 나구요.
<템페스트>이야기는 '식민지근대화론' 논쟁의 세익스피어버전 같습니다. 결론이 탈식민주의와 고전에 대한 옹호로 이어져서 좋네요.^^

로쟈 2009-01-13 01:23   좋아요 0 | URL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 나오는 에피소드입니다. 피에르 바야르가 소개하고 있는 것인데, 바야르의 책에 <햄릿에 관한 앙케트. 귀머거리들의 대화>가 있죠. 제가 소개해보자고 출판사들에 얘기한 적이 있는데, 별로 관심들을 안 갖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