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골의 웃음과 공포

이번주 주간한국의 '지식인의 서고' 꼭지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짧은 분량의 글이어서 고골의 대표작 <외투>에 대해 간단히 적었다(고교 독서평설에서 한번 다룬 적이 있다는 걸 지금 깨달았다!).   

주간한국(09. 12. 17) 우리가 욕망 없이 살 수 없다면… 

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강의하기 때문에 매학기 고정적으로 읽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러시아 명작’들입니다. 보통은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푸슈킨부터 시작하여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를 거쳐서 불가코프나 솔제니친까지 ‘투어’를 합니다. 이 거장들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작가가 고골(1809-1852)입니다. 올해가 그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이니 더더구나 그렇지요.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단편으로만 치자면 고골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외투>입니다. 페테르부르크의 한 하급관리가 어렵게 마련한 외투를 강탈당하고 죽은 후에 유령이 되어 다시 나타난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매년 다시 읽으면서 매번 경탄하게 되는 걸작입니다. 흔히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고 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을 인용하기도 하지요. 그만큼 러시아문학사에서는 압도적인 의의를 갖는 작품입니다.   

한데, <외투>는 한편으로 자주 오해받는 작품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인도적 박애주의와 관련지어 이해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그런 시각에서는 이 작품의 주제가 주인공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같은 ‘작은 인간’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라고 말합니다. “나도 당신들의 형제요.”라는 아카키의 말을 인용하면서요. 하지만 그렇게 이해하는 쪽에선 주인공이 자신의 일에서 발견하고 있는 지극한 즐거움을 간과하는 듯합니다.  

하급관리로서 아카키의 일이란 문서를 깨끗하게 정리해서 쓰는 정서(淨書)입니다. 그런데 이 정서가 단순한 직무가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자 자족적인 즐거움의 세계였습니다. 그는 정서 외에는 아무것도 거들떠보지 않아서, 길거리를 걸으면서도 글씨들만을 떠올리고, 근무가 끝나 집에 돌아와서도 음식에 파리가 붙었거나 말거나 요기만 하고는 다시 정서에 매달렸습니다. 정서하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글자들이 나오면 너무 기뻐하는 모습은 마치 딴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불행이 닥치게 됩니다. 겨울이 되어 페테르부르크에 사나운 북풍이 휘몰아치자 그의 낡은 옷은 더 이상 바람막이가 돼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는 수없이 새 외투를 장만하게 됩니다. 이게 문제였습니다. 새 외투에 대한 욕망을 갖게 되면서 아카키는 ‘욕망의 주체’로 변신하게 된 것입니다. 가령, 아카키는 외투 값을 마련하기 위해 그가 향유하던 모든 즐거움을 유보하고 포기합니다. 그렇게 하여 그는 충만한 만족의 세계에서 영속적인 결여의 세계로 옮겨가게 됩니다. 욕망은 언제나 채울 수 없는 결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니까요.  

아카키가 새 외투를 마련하고 얼마 안 있어 강도들에게 강탈당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필연적으로 보입니다. <외투>는 저에게 욕망이 몰고가는 파국을 보여주는 섬뜩한 이야기로 읽힙니다. 고골은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우리가 욕망 없이 살 수 없다면, 우리의 파멸 또한 필연적이라구요. 무섭지요?  

09. 12. 19.  

P.S. 찾아보니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무성영화 <외투>(1926)가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http://www.youtube.com/watch?v=ki-zGGXIbH4&feature=PlayList&p=EC0B7D5C62078945&index=0). 나도 못 봤던 것인데, 감독은 그리고리 코진체프와 레오니드 트라우베르크이며, 시나리오는 러시아 형식주의의 저명한 문학이론가 유리 트이냐노프가 맡았다(원작과는 좀 다르다). 오늘의 서프라이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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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09-12-19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투>의 마지막 장면은 "마술적 사실주의"<빌러비드/토니모리슨/들녁>라 할 수 있겠는데요.사람마다 하급관리(아카키)의 정서(淨書)가 있습니다. 개인의 삶이 관료적 권력앞에 왜곡되고 맙니다. 권력은 개인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보다는 감시하고 의심합니다. 개인 또한 입장이 바뀌면 굴림하기도 합니다. 종국에 개인은 조직(관료)에 대항 뿐입니다.고골의 사랑(정서)을 지켜주던 '외투'를 잃어버리고 자존 능력을 상실하고 맙니다. 저마다 하나의 끈을 붙잡고 사는 것처럼요.

로쟈 2009-12-19 23:01   좋아요 0 | URL
저는 아카키에게서 정서와 외투는 다른 성격의 대상으로 봤어요. 먼댓글로 링크해놓은 글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목동 2009-12-20 07:38   좋아요 0 | URL
재봉사 '페트로비치'에 의해 새 '외투'를 갖게된 '아카키'는 박봉을 절약하며 본연의 업무인 '정서(淨書)'에 충실히 근무합니다. 문제는 '페테르부르크 광장'에서 새 외투를 강탈당하면서 외투를 찾기 위해 경찰서장 등을 찾아 다니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못된 관리의 권위(권력)에 의해 묵살당하고 맙니다. 결국 그는 스트레스로 죽어서까지 유령으로 나타나 외투를 뺐습니다. 우리의 '전설의 고향'의 귀신처럼요.

과연, 외투를 찾으려고 했던 '아카키'가 '욕망의 화신' 일까요? 여리고 단순한 영혼의 당연한 권한이 아니였을까요? 저자 '고골'이 '인간 욕망의 허구성' 목적으로 이 단편을 썼다면 그런 왜곡된 의도성이 독자에게 외면당하여 그의 마지막 작품이 실퍠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자신의 것을 찾으려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사회구조권력이 개인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데서 오는 당연한 결과라 생각합니다. 개인의 존재가 무참히 사라지는 형국에서 '아카키'의 행위는 욕망보다는 정당한 것이었으며 약자의 최후 저항이라 생각했습니다. 즉 '아카키'의 새 외투에 대한 욕망은 과(소비)욕이 아니라 헤저 더 이상 수선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당연한 소비(구입)의식과 평범한 구매였으며 강탈당한 약자의 억울함이라 생각했습니다.

Sati 2009-12-20 20:20   좋아요 0 | URL
요즘같은 날씨에 겉옷이 없었다고 생각하면... 아카키의 외투가 욕망의 대상은 아닌 것 같아요. 뭔가 측은지심을 유발하는 대목이 있지 않나요, <외투>에는? 자발적 88만원 세대의 한 인물이 있다고 할 때, 그가 어머니의 수술비 500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 끼니를 굶어가며 돈을 마련했는데 그 돈을 어이없이 강도에게 빼앗겨서, 어머니는 치료도 못받고 돌아가시고 본인도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서 귀신이 된다면 그건 펠렉스님 말대로 억울함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요? 만약 내 가족 건사를 위해 88만원 자족생활을 버리고 돈을 버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가, 부도라도 나서 홧병으로 죽는다면 그건 욕망의 희생양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르지만.

로쟈 2009-12-21 22:04   좋아요 0 | URL
그게 작품에선 아카키가 전혀 다른 인물로 변화한 것으로 나옵니다. 예전처럼 정서에만 빠져 지내는 게 아니라 길거리를 거닐며 여자의 다리가 그려진 간판에 눈길을 주고, 지나가던 여자를 괜히 쫓아가보기도 하는 식으로요. 외투도 분에 넘치게 고급스러운 것으로 맞추게 되죠. '바람막이' 수준을 넘는 것으로요. 그러니까 저는 외투를 마련하기 이전과 이후의 아카키가 전혀 다른 존재 양식을 갖는 것으로 보는 것이죠. 욕망을 가진(갖게 된) 주인공의 파멸은 고골의 작품에서 자주 나옵니다. <광인일기>의 포프리쉰이나 <넵스키거리>의 피스카료프도 모두 자기 욕망(판타지)의 희생자가 됩니다...

Sati 2009-12-20 21:29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서재에서 강의를 듣는 기분인걸요^^

목동 2009-12-21 21:3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아인스 2009-12-19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줌파 라이히의 장편소설 <이름 뒤에 숨은 사랑>(원제 The Namesake)의 주인공이 '고골리'라는 이상한(?) 이름을 갖게 된 경위가 주인공의 아버지가 좋아하는 바로 이 작가의 이 작품 때문이었습니다. 고골의 <외투> 속에서 잉태된 아이라는 뜻을 갖고 있지요. 마침 궁금했었는데 이 글을 보니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로쟈 2009-12-19 23:02   좋아요 0 | URL
네, 그래서 <이름 뒤에 숨은 사랑>도 구해놓았는데,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안 보이네요.^^;

Sati 2009-12-19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따가 <뉴문> 보러갈까 했는데, <외투>라니, 정말 서프라이즈네요. 오늘은 기쁜 일이 연발로... /^0^/

로쟈 2009-12-19 23:02   좋아요 0 | URL
보고 싶었던 영화인데, 너무도 가까이에 있더군요.^^;

sophie 2009-12-19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재밌어요. 로쟈님한테 듣는 러시아문학 이야기 또 기다려지네요. 그나저나 모자달린 외투를 사야하나 말아야하나... 에궁..

로쟈 2009-12-19 23:03   좋아요 0 | URL
너무 큰돈은 들이지 마시길.^^

페크pek0501 2009-12-22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리는 모두 고골리의 <외투>속에서 나왔다"라고 <외투>를 격찬했지요.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이란 작품이 그 영향을 받은 작품이지요. 전 <외투>라는 작품을 이렇게 읽었어요. 민중의 힘없는 비참한 현실의 이야기이며 그런 가엾은 사람을 도와 주지 못하는 무력한 권력 이야기라고. 멋지게 장만한 외투라기보다는 억울하게 빼앗긴 외투로 봅니다. 외투를 빼앗기고 도움을 요청하지만 아무도 도와 주지 않습니다. 순경도, 경찰서장도, 유력한 인사도... 그러니까 '이것이 현실이다. 세상이 이래서야 되겠는가'라고 작가가 말하고 있다고 봅니다. 문학(또는 예술)의 매력은 해석의 다양성에 있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보는 게 옳은가, 하며 따지는 것보다 그저 많은 해석이 나오는 작품이라면 흥미로운 작품이다, 라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요. 우리의 사고영역을 확장시켜 주니까요. 다른 해석이 많이 나오길 기대하며...

로쟈 2009-12-23 23:48   좋아요 0 | URL
네, 작품의 뒷부분만 보면 그런 해석도 가능합니다. 한데, 고골 자신이 아카키에 대해 조롱하는 듯한 표현도 서슴지 않아서 해석이 복잡해집니다...

페크pek0501 2009-12-22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신 :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주인공 아카키는 자신의 세계 안에 갇혀 서류를 정서하는 것을 좋아하며 살 땐 행복했는데, 그가 외투를 마련하여 세상에 나오자 불행이 시작된거죠. 그러니까 인간은 개인의 영역에서의 삶에선 아무 문제 없이 살 수 있지만 한 걸음만 내딛어 밖으로 나와 세상 사람들과 부딪히게 되면 고단한 삶을 살게 된다는 거죠. 혼자 살며 행복을 누리는 것은 가능하지만 세상과 부딪히며 살기 시작하면 힘든 삶이 시작된다는 것. 저도 현재 평화롭게 살고 있지만 만약 누군가가 제게 소송을 걸어 법(세상)과 싸우게 되면 제 인생은 엉망이 되어버리는 식이죠. 힘없는 사람이 살아가기엔 이 세상이 녹록치 않다는 것. - (지금 생각난 것을 적어 봤을 뿐이며, 이런 제 생각이 옳은지에 대한 확신은 없습니다.)

로쟈 2009-12-23 23:49   좋아요 0 | URL
'개인의 영역 VS 세상'은 좀 모호하구요, 저는 '충동 VS 욕망'의 구도라고 생각해봤습니다...
 
자기계발의 의지와 민주화의 역설

사회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문학사회학자라고 해야 하나?) 김홍중 교수의 <마음의 사회학>(문학동네, 2009)이 출간됐다. 엊그제 산 책인데, 어제 한 송년모임에서 우연히 저자와 몇 마디 나눌 기회가 있었다. 서문만 읽은 상태라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진 못했는데, 그런 기회가 있을 줄 알았다면 몇 개 장 정도는 미리 읽어볼 걸 그랬다. 오늘자 한겨레에 책에 대한 리뷰가 실렸기에 옮겨놓는다. 주로 첫 장인 '진정성의 기원과 구조'의 내용을 따라가고 있는 듯싶다.  

한겨레(09. 12. 19) '진정성’ 대신 ‘무사유’가 판치게 된 까닭 

타인을 누르거나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것을 수치이자 슬픔으로 여겼던 감수성, 자신을 온전히 던지지 못한 시대적 죄책감과 부채의식으로 괴로워했던 마음을 광범위하게 공유했던 이른바 ‘진정성의 시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도래와 함께 그 시대는 급속히 종말을 고했다.

“이제 진정성의 에토스를 전경으로 하는 삶은 낡고, 효율적이지 않으며, 안쓰럽고, 심지어 역겨운 것으로 비춰진다. 남아 있는 유일한 진정성은 386세대적인 냉소와 멜랑콜리의 가면 뒤로 숨었다. 그리고 도래한 세계는 속물과 동물들의 세계, 몰렴(沒廉) 또는 무치(無恥)의 에토스에 의해서 지배되는 세계다. 무치는 단순한 무례나 실례가 아니라 부끄러움의 실질적인 마비에 기초한다. 그것은 포스트-87년체제의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뻔뻔한 당당함이다.”

웰빙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거리지 않는 삶의 피상성과 천박성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몰염치와 과시적 파렴치가 판치는 승자독식, 무한경쟁, 적자생존의 유사 정글사회. 사회학자 김홍중 대구대 교수는 그의 첫 저서 <마음의 사회학>에서 이런 우리사회를 스노브(속물)들이 지배하는 가짜 민주주의 사회, 스노보크라시(snobocracy)의 사회라 부른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부자 되세요’가 덕담이 되는 신자유주의적 스노비즘 세계로의 이런 급작스런 집합적 심리 전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먼저 진정성 에토스 자체와 그 한계를 파악해야 한다. 김 교수는 라이어넬 트릴링의 ‘신실성과 진정성’ 개념을 끌어온다. 신실성은 전근대의 도덕적 가치로,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적 의무와 자신이 실제로 욕망하는 것 사이에 어떤 단절이나 간극도 느끼지 못하는 태도다. 이에 비해 진정성은 개인주의적 가치를 내면화한 근대적 인간이 공동체가 요구하는 역할모델과 자신의 진정한 욕망 사이에 괴리를 발견하고 이를 주체적으로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이상이다. 뉴레프트적 지식인들은 진정성과 반란을 동일시했다. ‘진정한 나’의 추구는 ‘진정한 사회’를 추구하는 현실정치가 결합해야 비로소 가능하며 한국 사회에서 그 접합은 민주화와 386세대에서 최고도로 구현됐다.

김 교수에 따르면, 진정성은 두 가지로 나뉜다. 윤리적 진정성과 도덕적 진정성이 그것이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기초한 내성적이고 사적인 윤리적 진정성과 사회와의 관계에 기초한 참여적이고 공적인 도덕적 진정성 사이에는 화해하기 어려운 간극이 있다. ‘내면의 참된 목소리’를 듣기 전엔 움직이지 않는 윤리적 진정성은 망설임이며 주저이며 때로는 실천적 무능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공동체가 외적으로 부과하는 삶의 형식들을 통해 구현되는 도덕적 진정성은 사회가 인정하고 규정한 행위패턴이나 감정의 방식을 추종하고 모방하면서 집합체의 지배적 가치와 이상을 절대시할 가능성이 있다. 1997년 이후 체제가 도래할 때까지 한국 사회에서 그 둘은 전반적 시대정신의 결속력 아래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했다. 그 정점에 분신으로 표출된 요절과 열사들의 탄생이 존재한다. 살아남은 것이 추악한 것으로 인지된 것은 그때다.

“진정성의 세계에는 비극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유머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진정성의 실천이 죄와 고독 혹은 파멸을 야기하는 항상적인 급진성을 동반하게 되며, 진정성을 추구하는 자는 세속에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괴물’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로 진정성의 고원한 이상을 쉽게 따를 수 없을 때 주체는 비진정성의 극단적 추구를 통해 진정성의 불가능성을 보상받고자 한다.”

1997년 이후 무한경쟁시장에서 살아남는 경제적 생존투쟁은 치부와 강박적 노동으로 이어지고 성공지상주의, 입신출세주의, 노골적인 속물주의를 낳았으며, 상품화를 통해 인간의 삶을 육체적 조건으로 환원시키는 무차별적 건강주의로 귀결됐다. 격렬한 순수에의 열망은 그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이 무너지면서 급속하게 타락하거나 전도됐다.

김 교수에 따르면, 스노브(속물)의 최대 특성은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의 결여, 아렌트가 말한 ‘순전한 무사유’다. 김 교수는 스노비즘 최대의 스펙터클을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상투적인 죽음’에서 찾는다. 아이히만은 처형당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고 회오, 회심은 끝내 없었다. 놀라운 집중력으로 자신을 통제한 성찰성을 지니고 있던 아이히만은 바보가 아니라 영악했다. 하지만 그 성찰은 특정 지점에서 정지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받은 명령의 원천, 그 의미를 문제삼지 않는 도구적 성찰에 머물렀다. 성찰 그 자체를 성찰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를 횡행하는 스노보크라시하의 자기계발 담론들이 명령하는 도구화된 성찰성, 그 영악함도 아이히만의 그것을 닮았다. 김 교수는 의심하고 회의하고 주저하는 윤리적 비판에서 희망을 찾는다. 다만 비판의 주체 스스로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스노비즘 비판 자체가 또다른 스노비즘으로 전락하는 역스노비즘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도 빼놓지 않는다.(한승동 선임기자) 

09. 12. 19.  

P.S. 저자가 정의하는 '진정성(眞正性, aunthenticity)'은 "좋은 삶과 올바른 삶을 규정하는 가치의 체계이자 도덕적 이상으로서, 자신의 참된 자아를 실현하는 것을 가장 큰 삶의 미덕으로 삼는 태도를 가리킨다."(19쪽) 이번에 알게 된 건 "서구의 경우 진정성의 문화, 진정성의 정치, 진정성의 윤리가 시회적으로 확산되고 공유되어 인정받게 된 것은, 1960년대 이후 본격화된 청년 대학생들의 '신좌파' 운동을 계기로 해서"라는 사실. 생각보다는 상당히 '젊은' 개념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진정성'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게 된 것이 그다지 오래 되지 않는다(처음엔 낯설고 좀 어색한 단어였다). 기억에는 마샬 버먼의 <현대성의 경험>에 대한 황종연 교수의 논의에서 '진정성'이란 말을 처음 접한 듯하다. 버먼의 책 가운데 <진정성의 정치>란 것이 있어서 사후적으로 재구성한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십수 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이 말의 용례에 대한 개념사적 추적도 해볼 만하겠다).  

김홍중 교수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진정성의 에토스, 혹은 진정성이라는 마음의 레짐(체제)은 1980년대 이후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형성되었다가 1997년 IMF 외환위기와 함께 급격하게 퇴조하였다. 즉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진정성의 모델이 현실적으로 융성할 수 있는 환경과 사회적 토대를 상실하게 된다. 승자독식, 무한경쟁, 적자생존의 유사-자연적 정글로 변화한 사회에서 가장 절박한 관심은 '진정한 삶'이 아니라 '목숨 그 자체' 즉 '생존'의 문제로 집약되기 때문이다."  

아감벤의 문제의식도 상기시켜주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현재 한국사회는 소위 '포스트-진정성 체제(post-authenticity regime)'로 진입한 것 같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그 진정성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건 '부자 되세요'라는 덕담과 자기계발에 몰두하는 신자유주의적 '스노비즘'과 '동물성'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책의 짝이 될 만한 것은 얼마전에 나온 서동진 교수의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돌베개, 2009)일 듯싶다. '자기계발의 의지'야말로 포스트-진정성 체제의 키워드라고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말에 마땅한 독서거리를 원하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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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9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19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목동 2009-12-19 12:35   좋아요 0 | URL
<마음의 사회학/김홍중/문학동네> 프롤로그에서 '이병헌' 주연 영화<달콤한 인생>에서 인용했던 문구도 나오더군요. 저서에 대한 느낌이 '슬라보예지젝'을 생각케 했습니다. 어제 전 총리가 출두하기전 한 스님의 자해행위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자해 사실성은 다른 마음의 표현이라 생각되더군요. 그 다른 마음도 저자가 말하는 <집단표상>에 속할지도 궁금했구요.

로쟈 2009-12-19 23:06   좋아요 0 | URL
'참된 자아'는 사실 지젝의 '주체'와는 거의 반대되는 개념이어서 대조해볼 수 있을 듯해요...

사량 2009-12-19 16:21   좋아요 0 | URL
유용한 포스팅 고맙습니다. 그런데 최근 '진정성'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언급되던 인물이 전, 현 대통령이라는 점은 아이러닉하네요. 한 사람은 FTA로, 다른 한 사람은 4대강 살리기로 말이지요. 그들도 "격렬한 순수에의 열망"으로, 확신을 갖고 밀어붙였다고들 하잖아요.-_-; (핫, 현 대통령과 '진정성'을 쳐서 검색해 보니 정말 화려하네요;;)

로쟈 2009-12-19 23:08   좋아요 0 | URL
네, 그래서 '진정성의 정치'란 것도 사실 의혹의 대상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내면의 참된 목소리'가 어떤 것인지 개인적으로 궁금한데, 책을 마저 읽어봐야겠습니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9)가 한국일보에서 주관하는 제50회 한국출판문화상의 저술(교양) 부문 수장작으로 선정됐다. 수상 후보작으로 올랐다는 소식은 두 주 전에 접했고, 수상작 선정 소식은 며칠 전에 알았다. 저술상은 2003년부터 학술 부문과 교양 부문으로 나뉘어 시상되며, 2007년엔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부키, 2007), 2008년엔 박태순의 <나의 국토 나의 산하>(한길사, 2008)가 수상작이었다. 뜻밖의 수상으로 아직 얼떨떨하긴 하지만 서재를 자주 찾는 분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수상자 인터뷰 기사와 심사평을 옮겨놓는다.     



한국일보(09. 12. 18) [한국출판문화상] 저술(교양) 부문, '로쟈의 인문학 서재' 이현우  

<로쟈의 인문학 서재>의 저자 이현우(41ㆍ서울대 노어노문학과 강사)라는 이름은 낯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 책깨나 읽고 영화깨나 본다는 사람치고 그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동유럽의 털북숭이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얼굴을 아바타 삼아, '로쟈'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공간에 글을 쓰는 자칭 "곁다리 인문학자"가 바로 그다. 이 책은 그의 왕성하고도 분방한 인문적 주유를 보여주는 문화 비평집이다. 



그는 서울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2004년 이 대학 대학원에서 '푸슈킨과 레르몬토프의 비교시학'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교수신문' 등에 서평을 연재하고 있고,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로쟈의 저공비행'이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개설해 서평을 쓰고 있다.

"좁게는 러시아 문학이 전공이죠. 그 분야의 대학 강의도 하고 있고. 그런데 문학이 문체분석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삶을 깊이 그리고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자연스레 다방면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철학이나 역사에도 굳이 칸막이가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세상이 '경계 없는 인문지성'으로 부르는 그의 외연을 금 그어 보려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이다. 이씨에겐 영역의 경계뿐 아니라 문화의 생산과 소비 사이의 경계도 큰 의미가 없는 듯했다. 온라인 글쓰기 특유의 '제스처'(댓글 형태의 글 등)도 간간이 보이는 이 책을 통해, 이씨는 비평적 글쓰기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시나 소설도 직접 써 보면 더 잘 읽을 수 있게 되고, 강의도 직접 해봐야 자신의 앎을 정확히 할 수 있습니다. 막연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것의 빈 틈을 보게 되는 거죠. 일종의 앎의 변증법이랄까요. 어떤 텍스트를 소비하는 것은 그 텍스트에 대한 글을 씀으로써 완성된다고 해도 될 겁니다."

비평서라는 책들이 쉬 두루뭉술한 칭찬으로 흐르기 쉬운데 <로쟈의 인문학 서재>는 때로 무람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신랄하다. 이씨는 "심성이 본래 그렇다"며 웃었다. 그리곤 "좋은 면만 보기엔(*보기에도) 인생이 짧지 않냐고도 하지만 비평은 분명한 가치 판단이 있어야 한다"고 말을 이었다. "아이들도 좋은 면만 보면 다 천사 같지만, 야단치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

'로쟈'라는 필명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이름. 그런데 다소 험상한 지젝의 얼굴을 그 아바타로 사용하는 까닭이 궁금했다. "지젝은 코뮤니스트죠. 코뮤니스트는 생산 수단을 공유한다는 개념(공산주의)으로 주로 쓰이는데,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을 거예요. 함께 즐길 수도 있고요. 내가 방점을 찍는 부분은 앎을 공유하는 거예요. 지식이라는 재화는 얼마든지 나눠 가질 수 있으니까요."(유상호기자)   

  

'대중지성'의 교양서 쓰기 새로운 지평 열어  

● 심사평

교양 부문 저술상 심사에서는 '교양이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 질문이 좌중을 선회했다. 시민의식과 상식의 최대공약수를 교양의 핵심으로 볼 것인가, 반짝이는 예지와 지적 정밀성에서 교양의 위안을 구할 것인가, 시선들이 엇갈렸다. 저자가 책의 단독 책임자인가, 편집자의 개입은 어느 선까지 허용되는가도 쉬운 결론을 허용치 않았다.

하지만 여러 갈래의 논의는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관심사를 반영하는 책들이 교양의 영역을 확장하는 길잡이로 떠올랐음을 말하는 것일 터. 그런데 길잡이라. 책에 대한 책이야말로 교양의 길잡이로는 제격이 아니겠는가.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서 우리 시대의 독서꾼 로쟈가 보여준 책 읽기의 황홀함 혹은 고통은 그가 일관성 있게 책을 집필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을 넘어서게 하는 힘이었다. 심사위원들이 이 책을 수상작으로 선정한 것은 대중지성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그의 작업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다.

한정숙ㆍ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09.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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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출판문화상 시상식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1-14 23:02 
    오후에 한국출판문화상 시상식이 있었다. 박사학위 수여식이 있던 날을 제외하면 가족들의 꽃다발을 받아본 게 처음이지 싶다. 자주 있는 일도 아닌데, 수상소감을 말하면서 몇 사람 언급하지 못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이 블로그를 아끼시는 분들과 <로쟈의 인문학 서재> 독자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한국일보(10. 01. 15) "안팎 어려움 속 출판계 격려… 사회적 자랑"  "제 56년 출판 인생의 고비마다 한국출판
 
 
다락방 2009-12-18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축하드립니다, 로쟈님!! :)

hnine 2009-12-18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읽고 넘어갈 수가 없네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하루 아침에 터진 '대박'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보람있으시겠어요.
위의 기사중 하이라이트 해놓으신, '텍스트를 소비하는 것은 그 텍스트에 과한 글을 씀으로써 완성된다'는 말씀이 눈에 특히 들어옵니다.

순오기 2009-12-18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축하합니다.
12월 첫주문으로 샀는데~ 깐깐한 독서본능 끝내고 읽으려고요.^^

2009-12-18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스탕 2009-12-18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멋진 일이에요 ^^

토토랑 2009-12-18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지금 읽고 있는데 ^^*

무해한모리군 2009-12-18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긴세월 곰삭여 뽑아낸 작품인데 상받으셔야죠
축하드립니다 으흣^^*
참 영상, 사진 이런거 잘받으시는거 같아용~~~

eleos 2009-12-18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로쟈님의 작업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가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많은 도움을 받고도 늘 눈팅만 해서 정말 죄송했답니다.;;
바쁠수록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목동 2009-12-18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제와 애정이 있는 저서였습니다. 우리는 상호 독자의 입장인데요. 선택의 독립성과 원활한 균형감 그리고 지적 호환성을 잘 유지한 저서라 생각했습니다.(저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 감사합니다 **.

나비80 2009-12-18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하십니다. 로쟈님의 글을 늘 갈무리해가며 보고 있는 저로서도 영광이네요. 축하드려요!^^

비로그인 2009-12-18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인에게 자유란 무엇인가'를 읽을땐 소름돋는 공감을 느꼈습니다. 축하드려요^^*

쥬베이 2009-12-18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축하드려요!!

stella.K 2009-12-18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산체보고파 2009-12-18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늘 눈도장만 찍었는데, 한줄 안 적을 수 없네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계속 좋은 등대지기가 되어주시길 바라며
새해에도 건승하십시오.

mcjhu 2009-12-18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2권도 기대합니다.^^

폭설 2009-12-18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축드립니다.^^

종횡무진 막힘이 없으시던데... ^^
아마, 님의 신도수는 순복음교회를 능가하지 않을까 싶네요.^^

앞으로도 시베리아 원시림과도 같은
깊고, 넓고, 심오하고,
그리고 고독도 적당히 묻어나는 글 많이 쓰시기를~~~

게슴츠레 2009-12-18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로자의 저공비행"도 '무보수 중노동' 처지를 조금이나마 벗어나게 된 건가요?ㅎㅎ 앎에 있어서나 삶에 있어서나 이래저래 신세를 지고 있는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서 수상 정말 축하드립니다.

이네파벨 2009-12-18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이 책 읽어봐야겠네요^^

마노아 2009-12-18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9년을 멋지게 마무리해주는 의미있는 수상이네요. 로쟈님 축하해요.^^

수유 2009-12-18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Mephistopheles 2009-12-18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로쟈님..더불어 보내주신 책 잘 읽겠습니다..^^

L.SHIN 2009-12-18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이 책을 보관함에 담고 말다니.

goghim 2009-12-18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받아 마땅합니다!!

딸기비누 2009-12-18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그럴 것 알았어요~ 축하드려요!^^ 인문숲 강의도 기대할게요~~

침경 2009-12-18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생 댓글 한번 잘 안다는데,
정말 축하할 소식이네요.
축하 드립니다.

leopard 2009-12-18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노이에자이트 2009-12-18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어떤 직함보다도 '우리시대의 독서꾼'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고 봅니다.

루체오페르 2009-12-18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것도 다른 쟁쟁한 후보작들을 보니 수상이 더욱 빛나네요.^^

Joule 2009-12-18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명 저자 되시기 전에 로쟈 님 스튜디오나 사진 잘 찍는 친구 통해서 정말 로쟈 님 다운 사진 하나만 찍어두세요. 작가에게는 그 사람만의 사진이 한 장 있어야 해요. 수염이 안 난 에코와 프로이드, 지젝을 상상할 수 없잖아요. 그들은 아이 때도 젊었을 때도 항상 그런 모습이었을 것 같죠. 하루키의 최근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너무 느끼한 중년 아저씨가 되어 버려서. 하루키가 레이먼드 카버가 사진 찍은 스튜디오에서 자기도 프로필 사진 찍었다고 어느 수필집에서 자랑하던데 그 사진은 도대체 어디에 쓰이고 있는 건지.

카스피 2009-12-18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시페루스 2009-12-18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로쟈의 인문학서재"책을 다읽지는 않았지만 좋은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정된것을 축하드립니다.^^ 참고로 저는 처음 댓글을 달았습니다.

kimji 2009-12-19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저도 괜히 제 일처럼 기쁩니다^^

PhEAV 2009-12-19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얼떨떨하긴 하지만" 이라고 쓰신 것을 읽고 사진을 보니 사진도 왠지 그런 표정이신 것 같은 느낌이 ^^;;
정말 축하드립니다~

2009-12-19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냐 2009-12-19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우리들의 로쟈님인듯한 기분에 으쓱했는데...이젠 모두의 로쟈님이군여ㅎㅎ 넘넘 축하드립니다. 진짜 신나는 일이 많네요. 알라딘...여러가지 이슈도, 사건도 많고 올 한해 정말 근사한 소식도 많았슴다. 정점을 찍으신 것 거듭 축하요....제 수준에 안 맞는 거 같아 좀 미뤄두고 있는데...기어이 보긴 봐야겠군여 ㅎㅎㅎ

로쟈 2009-12-20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일이 답글을 달지 못하지만, 축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활약'까지는 장담하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암약'하도록 하겠습니다.^^

2009-12-19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19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ti 2009-12-19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축하드려요!!!!!

로쟈 2009-12-20 22:55   좋아요 0 | URL
감사.^^

stefanet 2009-12-19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축하드립니다.
기념(?)으로 사놓고 여지껏 시작하지 못한 로쟈님 책을 올해 안에 꼭 다 읽어야겠습니다.
다음달 한겨레 문화센터 강연때 뵙겠습니다. (제가 그 때 졸지 않기만을 바랄뿐...;;;;;;)

로쟈 2009-12-20 22:56   좋아요 0 | URL
흠, 졸지 않게 해드려야 할텐데요.^^;

jhokug 2009-12-21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로쟈 2009-12-21 20:0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09-12-22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축하드립니다(솔직히 놀랐음ㅋ). 같은 블로거로서 기분좋은 일입니다. "지식이라는 재화는 얼마든지 나눠 가질 수 있으니까요."- 이 말 맞습니다. 누군에겐가 차 한 잔을 사준다면 내겐 재화의 손실이 생기지만 지식은 누구에게 아무리 나눠주어도 전혀 손실이 없습니다. 탈무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빼앗을 수 없는 것은 ( )( )이다." 바로 (지)(식)입니다. 만약 전쟁이 난다고 해도 재산을 빼앗기고 건강을 빼앗길 수 있어도, 지식은 그대로 가질 수 있는 재산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그 사람의 고유한 가치라고 할 수 있지요. 앞으로도 지식을 나눠주는 일에 애써 주시길... 다시 한 번 축하 드립니다.

로쟈 2009-12-24 17:5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지식의 공유가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면, 대학 등록금도 낮아지지 않을까라는 게 바람이기도 하구요...

homania 2009-12-24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사서 읽지는 않고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었슴다..
어쨌든 독자는 독자. 축하날려요 ㅎㅎ

로쟈 2009-12-24 17:59   좋아요 0 | URL
어쨌든 감사는 감사.^^
 

한국일보의 2009년 출판계 결산 연재 가운데, 번역서에 관한 꼭지를 스크랩해놓는다. 특별히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건 아니지만, 엊그제 한 인터뷰에서 몇 마디 거든 게 인용돼 있다. '태반이 날림'이라고 한 표현은 과한데, 날림으로 나온 번역도 적지 않다 정도이다. '중국산 번역'이란 표현은 내가 곧잘 쓰는 것이다.   

한국일보(09. 12. 17) [책의 풍경, 2009] <8> 번역서, 당신이 읽는 거의 모든 것

"번역서 비중? 글쎄, 한 20%쯤?"(장재용ㆍ직장인) "읽고 싶은 책의 절반 이상이 번역서."(홍수완ㆍ한신대 경제학과 강사) "번역서 말고는 읽을 게 없다. 심지어 황우석 사건에 관한 것도 독일인이 쓴 게 제일 낫더라."(최성일ㆍ출판평론가)

책과 가까이 생활하는 사람일수록, 번역 도서에 대한 체감 비중은 높다. 올해 출판시장이 낳은 숫자 가운데 일반인들의 눈에 띄는 것은 단연 '100만'(신경숙씨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판매부수)일 것이다.

그러나 출판의 생리를 아는 사람들에게 보다 무겁게 다가온 수치는 '31%'(발행종수 기준 2008년 국내 출판도서 중 번역서 비중)일 듯. 시장점유율을 기준으로 하면 번역서의 비중은 훌쩍 더 커지는데, 한국인의 서가는 번역자의 탈초와 윤문을 거친 외국인의 목소리에 차츰 점령돼 가고 있다. 

번역서 의존 갈수록 심화
한국 출판시장에서 번역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10%대 중반에 머물렀다. 그러던 것이 외환위기를 거치며 2000년 20%를 돌파한 후 꾸준히 확대, 2008년 드디어 30%를 넘어섰다. 그러나 이것은 종수를 기준으로 한 단순 집계일 뿐이다. 판매량으로 따지면 학습지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출판 분야에서 번역서의 비중은 이미 50%를 넘어섰다는 것이 출판계의 중론이다.

특히 출판의 정수라 할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의미있는 책은 십중팔구 번역서"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철학서의 경우 번역서 비중이 60%를 넘어섰는데 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학문은 여전히 식민국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돈다. 베스트셀러 목록도 마찬가지. 교보문고가 지난 15일 발표한 '2009 연간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전체 종합 상위 30위(외국어학습서 제외) 가운데 번역서가 14권 포함돼 있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번역서가 범람하는 일차적 원인으로 "외국 저작물의 질적 비교우위"를 꼽았다. 하지만 그는 출판계의 '단기 승부' 구조도 함께 지적했다.

▦상품성이나 판매량이 검증돼 최소한의 수익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 ▦저렴한 번역비용으로 신속하게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는 점 ▦저작권료 부담이 대체로 국내 인세나 원고료보다 저렴한 점 등이 그것이다. 결국 "사회의 지식ㆍ문화적 인프라 수준과 출판사들의 상업적 기동성이 결합, 출판 산업에 그대로 투영"돼 번역서 의존 심화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2007년 '한국 출판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766개 출판사 가운데 이전 3년(2004~2006년) 동안 번역 출판 경험이 있는 출판사는 55%에 달했고, 이들의 번역물 발행 비중은 46.2%였다. 번역 대상이 미국과 일본에 치중(2009년 67%)돼 있는 점과 저작권료의 급격한 상승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오염된 번역, 탁해지는 출판시장
번역서의 범람이라는 현상에 비해, 번역의 수준을 비판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출판계에선 수치로 드러나는 양보다 무분별한 번역이 해치고 있는 출판의 질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로쟈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서평 활동을 하는 이현우씨는 "번역의 질 자체는 태반이 '날림'"이라고 꼬집으며, 이를 유해 농산물에 빗대 '중국산 번역'이라 표현했다. 이씨는 "먹거리라면 그렇게 무분별하게 수입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라며 "대중이 더 안전한 먹거리를 요구하듯, 독자도 품질 높은 번역서를 읽을 권리를 출판사에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번역 출판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급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에서 외국어 능력과 필력을 두루 갖춘 번역자는 양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서 정상급 번역자에게는 늘 1~2년씩 번역 물량이 몰려 있는데, 그들에게 번역을 맡기지 못할 경우 부실 번역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저작권 수입 비용이나 국내 저자의 인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번역료도 이런 현상을 부추긴다. 200자 원고지 1매당 3,000원 미만의 번역료를 받는 번역자의 비중이 3분의 1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꼭 필요한 분야의 책이 제때 번역돼 나올 수 있는 환경의 구축도 필요하다. 국내에서 저자를 찾기 힘든 선진 담론을 소개하는 것이 번역 출판의 본래 의미. 그러나 기초학문 도서 등의 출간을 위한 사회적 지원은 거의 없다. 주일우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은 "올해는 다윈 탄생 200주년이었지만, 쟈넷 브라운 등의 훌륭한 다윈 관련 책들은 정작 번역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번역가 김석희씨는 "전공 분야의 고전을 번역해도 연구 업적으로 쳐주지 않는 등 학계의 닫힌 현실도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유상호기자) 

09.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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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국산 번역?
    from 일방통행로 2009-12-17 19:52 
    로쟈의 저공비행은 내가 즐겨찾는 블로그다. 비평고원이 쿤데라와 고진의 고원(이름도 가물가물하고나..)일 때부터 그의 글을 봐 왔고, 특히 번역에 대한 그의 문제제기, 혹은 그러한 상황을 바로잡아 보려는 시도에 마음으로나마 지지를 보내왔다.(지지를 꼭 드러나게 해야하는 건 아니니까.) 그 지지의 한 방식으로 나도 중국쪽 원전이 잘못 번역된 부분이 있으면 조금씩 고쳐 두고는 했다. 천성이 게을러 눈에 띄게 하지는 못했지만. 양만 다른 게 아니라 질적으로..
 
 
목동 2009-12-17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지원사업이 정부나 민간기업차원에서 우선되었으면 합니다.

로쟈 2009-12-18 08:50   좋아요 0 | URL
도서관부터 먼저 잘 정비되면 좋겠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12-17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새책을 사면 운이 없어 그런지 오탈자, 잘못된 번역을 너무 자주 만나요. 참 이상하지요.. 틀림없이 세월가면 줄어야 될거 같은데 --

로쟈 2009-12-18 08:50   좋아요 0 | URL
그게 쉽게 달라질 것 같진 않구요, 출판문화 혹은 독서문화의 수준과 나란히 변화해가야 할 듯해요...

카스피 2009-12-18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문제같군요.독서인구 감소>출판사 경영 악화>부실 번역>독서인구 감소라고나 할까요.
개인적으론 정부가 쓸데없는 토목 공사에 비용 지출하지 말고 도서관에 책이라도 한권 더 넣어주었으면 합니다.

로쟈 2009-12-19 08:14   좋아요 0 | URL
그게 뭐 쥐귀에 경읽기가 돼서요...
 

오늘 택배로 받은 책의 하나는 도올 김용옥의 <대학 학기 한글역주>(통나무, 2009)이다. '동방고전한글역주대전'의 세번째 책이라고 하는데, <논어>와 <효경> 역주에 이어지는 모양이다(알라딘의 에러로 오늘 검색이 되지 않는다. '정전'인 셈치고 서재질도 쉬어야겠다!). 책은 생각보다 큰 판형의 하드카바. 이런 역주 작업이 도올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진작에 나섰어야 할 분야가 아닌가 싶다. 혹시나 싶어 관련기사를 찾으니 엉뚱하게도 지난 초가을에 있었던 그의 딸 김미루 작가의 사진 전시회에 관한 것만 잔뜩 뜬다. 뒷북이긴 하지만, 흥미를 끄는 작업이어서 관련기사와 몇 작품의 이미지를 옮겨놓는다. 사진은 오마이뉴스 기사(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05962)에서 가져왔다.    

  

여성신문(09. 09. 04) 김미루의 사진전시회 ‘나도(裸都)의 우수(憂愁)’ 

거물급들도 쉬이 전시를 하기 힘들다는 갤러리 현대 강남점에서 한 20대 신진 작가의 첫 개인전 ‘나도(裸都)의 우수(憂愁)’전이 열리고 있어 눈길이 쏠리고 있다. 그 주인공은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회화를 전공한 김미루씨. 버려진 도시공간의 이면을 속속들이 잡아내어 과거로 침잠해 있던 시간을 끌어올리는 50점의 작품을 이달 13일까지 선보이는 중이다. 



작가는 의대 진학을 포기하고 사진작가로 변신하기까지 겪었을 그 감정의 위태로움처럼 까마득한 도심지의 교각, 버려진 설탕공장의 창고 등 방치된 도시구조물에 홀로 올라가 위험을 감수하며 거대도시의 황폐함 속에서 느껴지는 인간의 왜소함을 사진 속에 담았다.

황량한 도시풍경 속에 옷을 벗은 여성의 몸을 시각적 프리즘으로서 사용하고 있는 일련의 사진작업들을 보면 ‘왜소함’을 통해 오히려 해방감과 안락감을 얻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맨발로 콘크리트 바닥을, 차가운 철로를 걷고, 맨가슴으로 도시의 음습한 치부를 호흡하고 대화하는 젊은 여성으로 분한 작가의 발가벗은 몸은 지극히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존재로 연출된다. 그리고 이 취약함은 2007년 뉴욕타임스에서 포착했던 지점이기도 하다. 기사는, 작업이 인간의 나약함과 거대도시를 극적으로 대비시키고 있는데 그러한 효과는 “단지 에로티시즘이라기보다는 여자의 벗은 몸이 인간의 취약함(vulnerability)을 강조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자신이 직접 작업의 누드모델이 된 경위를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살아있는 생물을 표현하고 싶었다. 사실 나 스스로 하는 것이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다. 나는 모델을 고용할 수도 없었고, 더군다나 그런 위험한 곳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다. 나는 이런 곳을 들어가길 좋아하니까 가능하다. 누드는 문화적·시간적 요소를 모두 제(거)하기 위한 방법이자, 전 세계적인 공통 언어가 인간의 몸이기에 자연스러웠다. 옷을 벗고 촬영하다 보면 공간이 변한다. 위험하게 느껴지는 공간이 편안하게 다가오며 나만의 공간으로 변한다.” 또 누드로 작업한 것에 대해서는 “나의 작업은 누드 그 자체에 초점을 두기보다 장소에 대한 느낌을 전하는 것이 더 크다”고 밝히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너무나 ‘개인적(private)’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토록 ‘유명인의 딸’(김씨는 도올 김용옥의 딸로 일찍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여자의 누드’(많은 언론이 여성인 작가 본인의 누드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었다)에 대한 색안경을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는 현실을 작업과정에서 좀 더 노련하게 다루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작품은 20대 젊은 여성이 나체 상태로 후미진 도시의 버려진 공간에 들어가, ‘누구라도 행여 들어올까’ 싶어 조마조마하게 재빨리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업들이 ‘이 세상의 지배적 시선’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는 수많은 ‘다른 시선의 소유자’들에게 긴 여운이 남는 한 가닥의 떨림으로 다가서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바람일까. 어쩌면 지금 한국에서 김미루씨의 작업은 사회의 시선과 평가로부터 차단된 무균무떼의 예술이라는 진공관에서만 살아 숨 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페미니스트 사진작가이자 사진 전문 트렁크갤러리 관장인 박영숙씨는 김미루의 작품세계에 대해 “사람들은 속은 안 보고 겉만 보는 데 익숙하다. 김미루씨는 이번 전시에서 사물의 속을 본 것”이라고 평한다. 그에 따르면, 김미루의 작업은 작가 자신의 말처럼 탐험이며, 한 명의 탐험가로 마치 위, 심장, 콩밭 등 우리 몸 내장을 들여다보듯 아무도 가지 않는 도시의 속을 들여다본 것이다. 박 작가는 “그가 옷을 벗고 도시 속으로 들어간 것은 옷을 입고 도시의 원시림으로 들어가면 옷자락이 여기저기 걸리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며 향후 트렁크갤러리에서 김미루의 이러한 ‘탐험가로서의 측면’을 보다 상세하게 조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많은 이들에게서 잊힌 도시의 공간에 잠시나마 내가 거함으로써 낯설기만 했던 곳은 친숙한 곳으로, 위험한 곳은 놀이터로, 거친 곳은 평화로운 곳으로 탈바꿈하였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이러한 사회로의 탐험에 나침반이 필요하다면 작가의 작업노트와 작업설명을 참고해도 좋을 듯하다. 김미루 홈페이지 www.mirukim.com (정필주 객원기자/ 이화여대 예술사회학 박사과정)  

09.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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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jjismy의 생각
    from jjjismy's me2DAY 2009-12-16 21:52 
    [알라딘서재]김미루와 벌거벗은 도시의 우수
 
 
목동 2009-12-16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문학을 전공하고 해부학을 공부하다 말고 사진작가의 길을 가군요. 미국 대학은 부전공 제도가 잘 된듯 합니다. 해부학은 몸의 내부를 해체하여 구조적인 면 등을 공부하는 것인데, 그 몸의 외형을 지상의 사물 사이에 배치하는 전환성에 관심을 갖게 합니다. 차가움과 따뜻함, 죽은 것과 산 것, 정지와 흐름 등을 연상케합니다. 또한 <도울 김용옥 비판/김상태/옛노을>과 MBC 여성 앵커모습도 생각납니다.

로쟈 2009-12-17 08:11   좋아요 0 | URL
꽤 화제가 됐던 듯한데,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sophie 2009-12-17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옷을 모두 벗은 여자의 몸이 추가되었을 뿐인데 상당히 다른 느낌이 드네요. 인간의 몸이 말랑말랑하기 때문인가 싶기도하고요.

알케 2009-12-17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열살인 아들 이름이 미루입니다 ^^ 두루 彌 새길 鏤 아이 이름을 짓고 보니 도올선생 아이 이름과 같더군요. 아이 낳기 전 언제부턴가부터 그 이름이 입에 맴돌더니...^^

저는 도올선생의 <논어한글역주>를 읽고 있습니다. 주희 역주 위에 沃案이라고 역주를 단 도올의 서지학, 고문학 지식과 도발적 역주에 경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