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에서 이번주 '백원근의 출판동향계'를 스크랩해놓는다. 과문한 탓에(아동도서에 무심한 탓도 있다) '북스타트'라는 독서 및 육아지원 운동이 있다는 걸 칼럼을 보고서야 알았다. 2년 전에 첫 전국대회가 열렸고 확산돼 가는 추세라고 한다. "책과 더불어 인생을 시작하자"는 운동 취지에 전폭적인 공감을 보낸다('책을 읽을 권리'는 갓 태어난 영아들에게도 주어져야 한다!).

 

한겨레(10. 09. 04) 지역공동체와 독서생태계 키우는 ‘북스타트’ 

9월은 독서문화진흥법이 정한 ‘독서의 달’이다. 그래서 매년 9월이면 다양한 독서 관련 행사가 전국의 도서관과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열린다. 이 가운데 특히 주목되는 것이 10일부터 이틀간 충북 제천 기적의도서관에서 열리는 ‘2010 북스타트 전국대회’이다. 2년 전 서울에서 첫 전국대회가 열린 뒤 지방에서 처음으로 개최하는 북스타트 축제이다.  

북스타트(Book Start)는 ‘책과 더불어 인생을 시작하자’는 취지를 담아 출생 후 1년 미만의 영아와 그 양육자를 대상으로 지역사회가 실시하는 독서 및 육아지원 운동이다. 지역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기들에게 탄생 축하의 그림책 2권과 도서관 이용 안내 등이 들어 있는 북스타트 가방을 선물하고, 가정마다 그림책을 매개로 아기와 소통하는 행복한 시간을 갖도록 계기를 마련한다. 맹목적인 조기 독서교육과는 뿌리가 다른 ‘책 읽기의 즐거움’과 ‘독서 평등’을 선사하는 사회적 모성의 실천이다. 그래서 시민과 행정기관이 협력하여 시행하는 민관 협력의 모범 사업으로 꼽히기도 한다.   

영국, 일본에 이어 2003년 시작된 한국의 북스타트는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대표 도정일)이 주도하여 조직한 북스타트코리아와 전국 활동가들의 노력, 정부·지자체 후원에 힘입어 현재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절반에 가까운 곳에서 시행중이다. 여기에는 <한겨레>의 기획기사 연재도 큰 도움이 되었다.  

제천시와 북스타트코리아의 지원으로 출범한 제천북스타트는 2005년 5월에 발족하여 올해로 6년차를 맞이했다. 매주 목요일을 ‘북스타트 데이’로 정하고, 제천시에 태어난 모든 아기들에게 첫 선물로 그림책 두 권과 손수건, 가방, 안내 책자로 꾸려진 북스타트 가방을 자원활동가가 도서관, 보건소에서 배부한다. 책 선물에 그치지 않고 2개월 과정의 체계적인 정규 부모교육 과정을 만들어 아기와 양육자(엄마 등)가 친교하며 아기의 사회성을 길러준다. 북스타트 후속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진 33개의 ‘품앗이 공동육아 동아리’에서 그림책을 읽어주며 ‘나의 아기’가 아닌 ‘우리의 아기’를 함께 키운다. 육아 스트레스도 날려버린다.  

제천북스타트는 무엇보다도 ‘찾아가는 북스타트’에 중점을 둔다. 즉 북스타트에 관심을 갖기 어려운 다문화가정, 장애우 및 소외지역 가정의 아기들 모두가 그림책을 보고 자라며 인생을 시작하도록 자원활동가 엄마들이 산 넘고 물 건너 집에까지 정기적으로 방문해 그림책을 읽어준다. 이러한 ‘얘들아, 그림책이랑 놀자’ 프로그램과 연계된 북스타트의 진화, 공동육아 동아리는 선진국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한국 시민사회의 놀라운 활동력을 보여준다. 제천북스타트 위원장인 김수연 교수(대원대학)의 최근 연구를 보면, 북스타트를 접한 아기들과 그렇지 않은 아기들 사이에는 책에 대한 태도와 창의력 등 여러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시민의 힘을 바탕으로 품앗이 공동육아와 함께하는 책 읽기 문화 조성으로 건강한 지역 공동체를 만드는 제천, 이외에도 진해를 비롯한 전국 여러 지역의 사례는 우리 사회의 희망이자 독서 생태계 발전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이번 전국대회를 계기로 북스타트 미실시 지역의 관심과 참여가 더욱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책 읽는 사회야말로 삶의 질이 높은 성숙한 민주사회를 만드는 첩경이기 때문이다.(백원근 재단법인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10. 09.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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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0-09-04 09:32   좋아요 0 | URL
학생때 북스타트가 있다는 것을 들었는데요. 92년도에 도서관사서 였던 웬디 쿨링이 제안한 아이디어(보건소에 갓 태어나 건강진단을 받으러 오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이 뜬 꾸러미를 무상으로 선물하자는~)로 시작되었다고 하네요.

제가 다니고 있는 도서관에서도 이제 북스타트 도입하는 과정중에 있는데... 2003년도에 시작되었으니 약간은 늦은 감도 없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지만, 준비하시는 선생님이 잘 하고 계시니 준비가 잘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국의 도서관(만 해당되는 건 아니겠지만요.)에도 빨리 도입이 이루어 진다면 좋겠네요...ㅎㅎ

로쟈 2010-09-04 10:44   좋아요 0 | URL
네,모범적인 운영사례가 나오는 걸 보면 나름 잘 해보자는 '경쟁'도 있는 것 같아요. 지역주민들에게 흐뭇한 일입니다.^^

루체오페르 2010-09-04 12:15   좋아요 0 | URL
정말~ 마음에 들고 바람직한 취지의 운동이네요! 어떤 식으로든 잘 되길 저도 응원합니다.

로쟈 2010-09-04 12:25   좋아요 0 | URL
허접한 뉴스들 틈에서 그래도 청량감을 전해주는 칼럼입니다...
 
책을 읽을 자유와 권리에 대하여

두 번째 책 <책을 읽을 자유>(현암사, 2010)가 오늘 최종 마무리를 거쳐서 인쇄소로 넘어갔다. 내가 더 거든 일이 없어서 수고한 편집진에는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책은 내주에 나오고 아마 와우북 행사에 오시는 분들이 처음 구경하시게 되지 않을까 싶다. 서점 배포는 그 다음주에 이뤄질 것 같다. 궁금해하실 만한 몇몇 분들을 위해서 책의 표지 이미지를 미리 공개한다. 표지 디자인은 지난번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9) 때와 같이 나윤영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10.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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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내 2010-09-04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축하드립니다... 첫번째 책 표지보다 더 예쁘네요 ^^

로쟈 2010-09-04 00:55   좋아요 0 | URL
ㅎㅎ

2010-09-04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04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헌내 2010-09-04 18:30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앙티 - 오이디푸스는 Penguin Classic하고 Continuum 두 개 던데...^^

로쟈 2010-09-04 18:39   좋아요 0 | URL
역자는 같은 거로 아는데요...

이매지 2010-09-04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도 제법 두툼하네요 :)
와우북 때 만나볼 수 있다니 기대되네요~
로쟈님 두번째 책 축하드려요~

로쟈 2010-09-04 00:32   좋아요 0 | URL
네,감사합니다. 책은 600쪽 가량입니다...

hnine 2010-09-04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의 시간과 노력의 결실이 또 이렇게 탄생하는군요. 축하드립니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책과 자유가 필요한가?' 책의 띠지위의 물음에 시선이 잠시 머무릅니다. 글쎄요, '누릴 수 있는 만큼'이라고 해야할까요?

로쟈 2010-09-04 00:3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띠지 문구나 광고 문구 등은 제 소관이 아닙니다.^^;

2010-09-04 0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04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녹차 2010-09-04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보니 책을 읽고픈 자유가 퐁퐁 샘 솟는군요. 축하드립니다. ^^

로쟈 2010-09-04 09:1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10-09-04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축하드립니다.
펠렉스님 서재에서 저 띠지의 사진을 본 적이 있어요.
코엑스에서 직접 뵈었는데도 저 사진이 로쟈님일거라고 왜 생각을 못한건지...ㅋㅋ.

로쟈 2010-09-04 09:11   좋아요 0 | URL
다른 사진들에 익숙하셨나 봅니다.^^;

2010-09-04 0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04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Joule 2010-09-04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내용인지 스포일러 없어요? 저 좀 낚아주세요.

로쟈 2010-09-04 09:13   좋아요 0 | URL
'로쟈의 책읽기 2000-2010'이 내용입니다. 서평집이에요...

루체오페르 2010-09-04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네요. 2번째 2세 축하드립니다.^^

로쟈 2010-09-04 09:14   좋아요 0 | URL
감사. 흠, 조만간 다둥이 가정이 되겠는 걸요.^^:

마노아 2010-09-04 0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의 포스가 압도적입니다. 새 책 출간을 축하해요.^^

로쟈 2010-09-04 09:14   좋아요 0 | URL
디자이너에게 전해드려야겠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9-04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멋스럽네요. 내용은 더욱 기대되구요^^ 축하 드립니다.
전작에 비하면 분량이 많이 늘어났군요?

로쟈 2010-09-04 12:24   좋아요 0 | URL
그동안 쓴 걸 모은 거라 분량은 조정할 수 있었는데, 600쪽이 독자를 고려한 마지노선이었어요.^^;

Daniel 2010-09-04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구입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리겠죠?

출판사에 압력(?)을 넣으셔서 지방 서점에서도 좀더 빨리 보게 해주십시오^^.

로쟈 2010-09-04 16:55   좋아요 0 | URL
지방에도 가긴 갑니다.^^

루쉰P 2010-09-04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좋은 책을 내셨네요^^ 읽고 싶어 지는데요. 요 근래 들어서 많이 글들을 못 봤습니다. 이제 취직도 됐으니 열심히 로쟈님의 글을 읽어야죠. 저번 달에 명동에서 박홍규 교수님과 하신 대담은 잘 들었습니다. 저도 참석해서 듣고 있었거든요. ㅋㅋㅋ 로쟈님 실제로 뵈니 재미난 얘기를 너무 많이 해 주시더군요.

로쟈 2010-09-04 16:56   좋아요 0 | URL
전에 잡지사에 들어가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옮기셨나요? 암튼 독서시간은 많이 빼놓으시길.^^

Songbi 2010-09-04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그인하게 만드는 포스팅이네요^^ 잘 지내시죠? 새 책 출간 소식이 너무나 반갑네요. 표지도 매혹적이지만 전 목차가 더욱 궁금하네요. 아무래도 인터넷에서 목차를 확인하기 전에 실물로! 확인하게 되겠지만요^^ 출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전 두꺼울수록 좋습니다. 늦더위 조심하세요!

로쟈 2010-09-04 16:57   좋아요 0 | URL
네, 잘 계시죠? 책은 쪽수는 많아졌지만, 두께는 지난번과 비슷할 거 같습니다. 그렇게 들었어요.^^

순오기 2010-09-04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지역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하겠습니다.^^

로쟈 2010-09-04 16: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자꾸때리다 2010-09-04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로쟈 2010-09-04 18:40   좋아요 0 | URL
감사.

노이에자이트 2010-09-04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통의 현암사에서 나왔군요!

로쟈 2010-09-05 08:13   좋아요 0 | URL
편집자가 자리를 이동한지라 저도 옮겨가게 됐습니다...

호모사케르 2010-09-07 0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끼오~축하축하해요. 근데 제목이 너무 싱거워요^^

책이 무지두꺼워도 안 읽은 미래의 책들이 더 많을테니 "더 많은 책을 읽지 않을 자유"라고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읽어야 될 책들이 많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헉헉거리지 않고 차분히 꼭 읽어야 될 책들을 읽게 끔 하기도 하고.. 주눅든 사람들이 부담없게 책을 집어들기도 하게.. 책이 나오면 선물용으로도 몇권 구입할게요^^

로쟈 2010-09-07 20:19   좋아요 0 | URL
'더 많은 책을 읽지 않을 자유'는 대부분 충분히 행사하고 있는 듯싶은데요.^^

2010-09-07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07 2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 8회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8회를 발췌해놓는다. '실재에 대한 열정'이 어떤 의미인지 다루면서 그것이 쿠바 혁명의 경우엔 어떻게 나타나는지, 까지가 따라 읽은 대목이다.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세기>라는 책에서 20세기의 특징으로 ‘실재계에 대한 열정(passion for the Real)’을 지목한다. 불어본은 2005년, 영역본은 2007년에 나왔지만 아직 우리말 번역본은 나오지 않은 책이고, 지젝이 참고한 건 책의 초고다. 바디우의 주장을 지젝은 이렇게 정리한다.

“유토피아적인 혹은 ‘과학적인’ 프로젝트와 이상들, 즉 미래에 대한 계획들을 목표로 삼던 19세기와는 대조적으로, 20세기는 물(物) 그 자체의 전달에 그 목표를 두고 있다. 20세기의 궁극적이고 결정적인 순간이라는 것은 일상적인 사회적 현실과 대조되는 실재계의 직접적인 경험이었으며, 실재계라는 것은 현실의 현혹적인 껍질 층들을 벗겨낸 작업에 대해 지불해야 될 대가로서의 극단적인 폭력 속에 있다.”(<실재계의 사막>, 30쪽)

무슨 말인가? 19세기와 20세기는 뭔가 대조적이며, 20세기에 중요한 것은 ‘실재계의 직접적인 경험’이었다, 정도인가? 조금 더 읽어내기 위해 다른 번역도 참고해본다.

“19세기가 유토피아적이거나 ‘과학적인’ 기획과 이상들을 꿈꾸고 미래를 설계했다면, 그와는 반대로 20세기가 겨냥한 것은 사물 자체가 나타나도록 하고 새로운 질서에 대한 갈망을 직접적으로 실현하는 데 있다. 20세기를 규정하는 궁극적 경험은 실재에 대한 직접적 경험이다. 이때 실재는 일상의 사회적 현실에 대립하는 것이고, 이런 실재는 환멸을 낳는 현실의 층위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에 해당하는 극단적 폭력 안에서 경험된다.”(<탈이데올로기>, 16쪽)

‘물(物)’과 ‘사물’로 옮겨진 단어는 독어의 ‘das Ding’의 번역어인 ‘the thing’이다. <실재계의 사막>의 역주에는 “언어의 밖에 존재하고 무의식의 외부에 위치하여 상징화를 넘어서는 알 수 없는 x로서 칸트의 물자체와 매우 유사한 개념”이라고 설명돼 있다. 상징계 바깥에 있는 것이란 점에서 ‘실재’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겠다. 그러한 ‘사물’을 전달하거나, 갈망하던 새로운 질서(New Order)를 직접 실현하려고 한 게 20세기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실재를 직접적으로 경험한다는 건 무슨 뜻인가? ‘일상의 사회적 현실(everyday social reality)’과 대립하는 어떤 것을 경험한다는 의미다.  



브레히트의 경험을 예로 들자면, 그는 1953년 7월 극장으로 가던 길에 노동자들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진주한 소련 탱크들의 대열과 마주치게 됐다. 일상적으로 경험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현실과 직면하자 당원이 아니었던 그는 생애 처음으로 공산당에 가입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미래에 대한 전망 때문이 결코 아니었다. 이 ‘가혹한 폭력’이 어떤 진정성의 표지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실재’는 그렇게 기만적인 ‘현실’의 더께를 벗겨내는 폭력으로 경험된다.

그런 경험의 맥락에서 보자면, ‘현실 대 실재’의 대립은 ‘가짜 대 진짜’의 대립이라고 할 만하다. 현실에서 우리는 각자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건 다 연기일 뿐이고 진정성이 결여된 걸로 비칠 때가 있다. 대신에 계급장 떼고 맞장 뜨는 게 ‘진짜’처럼 여겨진다. 혹은 폭탄주를 돌려 마시고 바지는 걷어붙인 채 넥타이를 머리에 동여매는 수준에 도달해야 ‘진짜’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전장에서라면 일 대 일 육박전으로 맞붙는 것이야말로 ‘진짜’라고 고집할 수도 있다. 가볍게 입 맞추는 걸로는 성에 차지 않아서 아예 입술을 깨물어준다거나 긁어도 피가 나게 긁는 것 따위도 이런 ‘진짜 경험’의 목록에 올려놓을 수 있겠다. 그렇듯 ‘진짜’라고, 어떤 진정한 무엇의 경험이라고 간주되는 것, 그것이 바로 ‘실재의 열망’이고 ‘실재의 경험’이다.  

(...)

지젝은 실재에 대한 이러한 열정의 또 다른 예를 쿠바 혁명에서 찾는다. “사회적 현실에서 ‘물자 공급’과 대조되는 ‘실재계에 대한 열정’의 또 다른 변형은 쿠바 혁명에서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다.”(<실재계 사막>, 31쪽) 이 대목에서 ‘물자 공급’은 ‘servicing of goods’의 번역이다. <탈이데올로기>에서는 ‘선의(善意)의 봉사’라고 옮겼는데, 선의의 오역이 아닌가 싶다. 쿠바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선 <실재계의 사막>이 <탈이데올로기>보다 조금 더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공통되는 결론은 이런 것이다.

“쿠바에서는 단념 그 자체가 혁명적인 사건에 대한 진실성의 증거로 경험되고 강요되는데, 그것을 정신분석에서는 거세의 논리라고 부르다. 쿠바의 전반적인 정치-이데올로기적 동일성은 거세(castration)에 대한 충성(fidelity)에 놓여 있다(지도자를 Fidel Castro라고 부르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실재계의 사막>, 33-34쪽)

“쿠바에서는 포기 승인장 자체가 혁명적 사건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증거물로 경험․부과되고 있는데, 이는 정신분석에서 거세의 논리라 불리는 것에 해당한다. 쿠바의 정치-이데올로기적 정체성 전체는 충실한 거세(fidelity of castration)에 기초하고 있다(그러므로 지도자의 이름이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라는 것은 하등 놀라운 일이 아니다!)”(<탈이데올로기>, 17쪽)

‘단념’ 혹은 ‘포기 승인장’은 ‘renunciations’의 번역이다. 욕망의 ‘자제’나 ‘금욕’도 가리키는 단어다. 구체적으로 쿠바에서는 “폐기물과 계획된 진부화라는 자본주의적 논리(the capitalist logic of waste and planned obsolescence)”를 계속해서 영웅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걸 염두에 둔 말이다. ‘계획된 진부화’ 혹은 ‘계획적 구식화’란 제품이 계획적으로 구식이 되도록 하는 걸 말한다. 제품의 평균수명이 정해져 있어서, 가령 냉장고의 수명이 10년이라고 하면 사용자는 10년 정도 사용한 이후에 새 냉장고로 교체하는 식이다. 그렇게 제품을 폐기하고 제 때 새로운 걸 구매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을 것이다. 너무 튼튼한 물건을 만들었다가 망했다는 기업들은 이런 ‘자본주의적 논리’를 간과했던 게 된다. 하지만 쿠바에서는 그렇게 쓰레기로 폐기처분됐을 만한 물건들이 여전히 사용된다. 1950년대 미국산 자동차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캐나다산 노란색 스쿨버스가 돌아다닌다. 그래서 쿠바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역동성(dynamics)이 아니라 혁명적 정체(standstill)다. 벤야민이 말하는 ‘정체 변증법(Dialektik im Stillstand)’, 혹은 ‘정지 변증법’을 떠올릴 정도다.

이러한 포기와 단념이 쿠바에서는 ‘혁명적 사건에 대한 진정성’으로, 곧 ‘진짜’로 경험되며, 정신분석 용어를 갖다 쓰자면 이런 게 ‘거세의 논리’다. 즉 쿠바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정체성은 ‘거세에 대한 충실성(fidelity to castration)’에 놓인다. ‘피델리티 투 카스트레이션’이란 말에서 음성적으로 쿠바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를 연상하게 되는 것은 우연의 일치이긴 하지만 절묘하다(그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우리는 은연중 ‘거세’를 상기하게 되는 것일까?). 하지만 이러한 ‘충실성’의 이면은 낡아가는 건물들과 함께 사회적 삶이 점점 더 타성과 무력증에 빠져든다는 점이다. 역설적인 것은 이것이 혁명을 배반한 결과가 아니라 그 혁명적 사건에 오히려 충실한 결과라는 점이다. “이런 더렵혀진 타성이 혁명적인 숭고함의 ‘진실’이다.”  

 

이 대목에서 지젝은 쿠바 혁명의 특수성에 대해 각주로 보충하고 있는데, 그것은 “피델과 체 게바라라는 이원성”에 의해서 가장 잘 표현된다. “실제적인 지도자이고 국가의 최고 권위로서의 피델은 체와 대조되는데, 체는 국가 경영을 포기할 수 없었던 영원한 혁명적인 반항아가 된다.”(<실재계의 사막>, 35쪽) 국가 경영을 포기할 수 없었던 영원한 반항아?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데, 그건 오역 때문이다. 원문은 “the eternal revolutionary rebel who could not resign himself to just running a state”이고, “단지 국가 경영을 위해 물러날 수는 없었던 영원한 혁명적 반항아”를 뜻한다. 거기에 덧붙이는 지젝의 지적은 소련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란 것이다. 물론 트로츠키가 혁명의 반역자로 숙청되지 않았더라면, 이란 가정 하에서다(실제로는 스탈린이 보낸 자객에게 암살당했지만). 지젝이 상상하는 시나리오는 이런 것이다. 체와 피델 대신에 트로츠키와 스탈린을 대입한 시나리오다.  

(...) 

10. 09. 02.  

P.S. 남미와 쿠바에 관한 책들은 체 게바라 관련서만은 아니더라도 적잖게 출간돼 있다. 그 중에서 비교적 최근에 나온 건 헨리 루이스 테일러의 <쿠바식으로 산다>(삼천리, 2010). 현실사회주의 붕괴 이후에도 쿠바가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을 쿠바 고유의 이웃공동체에서 찾고 있는 책이다. 박세열, 손문상 두 저자의 남미 여행기 <뜨거운 여행>(텍스트, 2010)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 그려진 바 있는 체 게바라의 젊은 날 남미 여행 행적을 그대로 따라가본 기록이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이 여행기의 의미를 이렇게 짚었다.  

손문상과 박세열의 '뜨거운 여행'이 의미 있는 것은 혁명 박물관에서 박제화된 체 게바라를 찾는 여행이 아니라 그의 이상을 실현하는 현실적인 방식을 찾는 또 하나의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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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dersens 2010-09-02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he eternal revolutionary rebel who could not resign himself to just running a state" 부분에 대한 재고를 부탁드립니다.

"국가 경영을 포기할 수 없었던 영원한 혁명적인 반항아"를 오역이라 하시면서, "단지 국가 경영을 위해 물러날 수는 없었던 영원한 혁명적 반항아"를 제시하셨는데요. 동명사 "running"을 원형으로 보시고는 to부정사의 부사적 용법("~하기 위해")으로 옮기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resign oneself to"는 "~에 몸을 맡기다; ~에 순순히 따르다"라는 의미가 있어서, 다시 옮겨보면 "그저 나라를 운영하는데 몸을 맡길 수 없었던 영원한 혁명아"가 되고, 이는 알려진 그의 행적과 일치되기에 제대로 옮겼는지에 대한 검증도 된다고 봅니다.

로쟈 2010-09-03 00:23   좋아요 0 | URL
말씀대로 옮기는 게 좀더 정확합니다. 다만 번역문을 최소한으로만 수정하려다 보니 조금 어색하게 됐네요...

헌내 2010-09-02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 게바라 하니 아침이슬 출판의 '체 게바라 파울루 프레이리 혁명의 교육학'이 생각나는군요..

파울루 프레이리 (페다고지 저자) 하고 체 게바라를 좌파 교육학적인 측면에서 흥미롭게 연관시킨 책이었는데... ^^

로쟈 2010-09-03 00:24   좋아요 0 | URL
책은 어떻게 선별해서 읽는지 궁금하네요.^^
 

어제 강의 때문에 신촌에 나갔다가 홍익문고에 들렀는데, 메모를 해두지 않아서 미처 구하지 못한 책이 있다. 하영식의 <얼음의 땅 뜨거운 기억>(레디앙, 2010)이다. 제목에서 연상되는지 모르겠지만, 저자의 시베리아 기행기다. 무려 일곱 차례나 시베리아를 찾았다고 한다. 나도 언젠가는 한번 가보고 싶지만, 현재로선 독서 경험만으로도 더위를 얼마간 덜어보고 싶다(오늘은 태풍이 지나간다고 하니 좀 시원하려나?).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국민일보(10. 08. 27) “시베리아 7차례 여행하며 찾아낸 키워드는 자유”… ‘얼음의 땅 뜨거운 기억’ 펴낸 하영식씨 

시베리아로 추방됐던 러시아 정치범들은 종종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예르마크! 왜 시베리아를 정복해서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 예르마크는 16세기 시베리아 왕국을 정복한 해적 출신 러시아 장군이다. 시베리아 정복 직후 시작된 죄수들에 대한 유형 제도는 20세기 소비에트 혁명이 성공할 때까지 잔존했다.

‘남미 인권 기행’의 저자 하영식(45·사진)이 이번에는 시베리아 이야기 ‘얼음의 땅 뜨거운 기억’(레디앙)을 펴냈다. 겨울이면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는 시베리아의 ‘뜨거운 역사’를 기행문 형식으로 담아냈다.

“러시아를 여행하며 학자들을 굉장히 많이 만났어요. 하지만 시베리아나 데카브리스트(러시아 최초로 근대적 혁명을 꾀한 자유주의자들)의 역사가 별로 알려진 게 없어 역사기행 형식으로 쉽게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인들에게는 추위와 도스토예프스키 정도밖에 떠올려지는 게 없는 곳이지만, 러시아인에게 시베리아는 혹한의 압제에 맞선 투쟁가들의 삶이 가득한 역사의 현장 그 자체다.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파스테르나크가 펴낸 불멸의 문학도 시베리아라는 척박한 땅 없이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저자가 시베리아를 7차례 여행하며 찾아낸 키워드는 ‘자유’. 특히 19세기 러시아의 급진적 엘리트였던 데카브리스트들이 시베리아에 남긴 유산에 관한 서술이 눈길을 붙잡는다. 데카브리스트들의 주체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당시 러시아군의 젊은 장교들이다. 이들은 프랑스군을 격퇴하고 파리까지 추격하는 과정에서 혁명을 거친 근대 유럽을 보았고 자유를 알았다. 그때껏 농노가 전 국민의 90% 정도를 차지하는 러시아 사회만 보던 이들에게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대개가 귀족 출신으로서 가만히만 있으면 기득권을 움켜쥐고 살아갈 수 있었던 이들은 1825년 ‘위로부터의 혁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차르 니콜라이 1세는 이들 중 다섯 명을 처형하고 121명을 시베리아로 추방했다. 저자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자유를 위해 헌신했던 데카브리스트들은 물신주의로 가득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희생’의 가치를 전해준다”고 말했다.

실패한 혁명 이후 100년간 절대군주의 압제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던 러시아의 역사를 따라가노라면 책상에 책을 펴놓고 앉아 ‘만약’을 읊조리는 바보가 될 수밖에 없다. 데카브리스트 혁명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죄책감 속에서 평생을 살았던 푸쉬킨과 미국으로 망명을 오라는 솔제니친의 제의를 평생 거부했던 파스테르나크 이야기도 가슴을 울린다. 가벼운 기행문으로 시작했다가 역사의 뒤편 깊숙한 곳까지 들춰내는가 하면, 어느덧 풍경에 대한 감상을 비치는 저자의 자유로운 서술은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박노해 시인으로부터 ‘지구 시대의 슬픈 여행자’라는 말을 듣기도 한 하영식의 다음 목적지는 티벳이나 아프리카가 될 예정이다. 그는 “가보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며 “티벳에 갈 계획을 세워는 놨는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책 말미에는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의 인터뷰도 실려 있다.(양진영 기자) 

10. 09. 02. 

 

P.S. 시베리아에 관한 책들이 간간이 출간되는데, 가장 최근에 나온 것으로는 리처드 와이릭의 <너의 시베리아>(마음산책, 2010)가 있다. 미국의 작가이자 변호사인 저자가 딸아이를 입양하기 위해 시베리아에까지 갔던 경험을 담고 있다. 일종의 여행기. 감수자로 내 이름이 올라가 있기도 하다. 그리고 콜린 더브런의 <순수와 구원의 대지 시베리아>(까치글방, 2010). 얼마 전에 소개한 책인데, 후배에게 부탁한 원서도 마침내 구한 김에(아직 입수까지 한 건 아니지만) 읽어볼 기회가 생길 것 같다. 더브런의 책은 제임스 포사이스의 <시베리아 원주민의 역사>(솔출판사, 2009)와 함께 리처드 와이릭이 참고한 책이기도 하다. 시베리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독자라면 필히 챙겨둘 만한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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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2 0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02 0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02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 여자를 집으로 데려가면 어떨까?"

문학동네 블로그에 연재하는 로쟈의 스페큘럼을 옮겨놓는다. 캐서린 맨스필드의 <차 한 잔> 읽기의 계속인데, 한 차례 더 다뤄야 마무리가 된다. 이후에 예정으로는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 읽기로 넘어갈 계획이다. 전문은 http://cafe.naver.com/mhdn/17666 에서 읽어보실 수 있다.  

우리의 이야기는 젊고 부유한 귀부인 로즈머리가 길에서 차 한 잔 값을 구걸하는 한 여인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는 대목에서 멈췄었다. 그들은 이제 2층에 있다. 로즈머리는 최대한 ‘손님’이 불편하지 않게 배려하면서 벽난로 앞 안락의자에 않도록 권한다. 여자는 아무 대답 없이 두 손을 허리에 대고 입을 약간 벌린 채 앉아 있다. 밀어다 앉힌 자세 그대로다. 어딘가 좀 모자라게도 보인다. 로즈마리는 머리카락이 젖었으므로 모자와 코트를 벗도록 권유한다. 그러고는 코트를 벗는 일을 도와주려고 하는데, 상대방이 좀 ‘비협조적’이다. 개인적으론 아주 마음에 드는 이 장면에 대한 묘사를 읽어본다.  

“여자가 일어섰다. 그러나 그녀는 한손으로 의자를 붙잡고서 로즈머리가 끌어당기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무척 힘이 드는 일이었다. 그녀는 조금도 거들려고 하지 않는 것이었다. 여자는 마치 어린 아이처럼 비틀거렸고, 로즈머리의 머릿속에는, 남의 도움을 받고 싶다면 자신도 약간은, 아주 약간만이라도 거기에 반응을 보여야지 안 그랬다가는 정말 난감해진다는 생각이 오고갔다. 그런데 이제 이 코트를 어떻게 한다? 그녀는 그것을 방바닥에 놓고 또 모자도 그렇게 했다.”

“그녀는 조금도 거들려고 하지 않는 것이었다.”는 “The other scarcely helped her at all.”을 옮긴 것이다. ‘여자(the girl)’라고 줄곧 지칭되다가 이 대목에선 ‘그쪽(the other)’이라고 일컬어지는데, 말 그대로 ‘타자(the other)’와 로즈머리가 접촉하는 장면으로 읽어도 좋겠다. 어째서 타자인가? 로즈머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떤 생각인가? 그녀가 코트를 벗겨주면서 혼자 되뇌는 생각이다. ‘남의 도움을 받고 싶다면 자신도 약간은, 아주 약간만이라도 거기에 반응을 보여야지 안 그랬다가는 정말 난감해진다’는 것. ‘이제야 당신을 붙들었군요(I've got you).’라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집에까지 데려왔지만 이 장면에서 ‘손님’의 반응은 그녀의 계산과 기대 밖이다.

물론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가냘프고 이상한 목소리로 “대단히 죄송하지만, 사모님, 저는 지금 쓰러질 것만 같아요. 뭘 좀 먹지 않으면 쓰러지겠어요, 사모님.”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로즈머리의 ‘여자’는 약간이라도 반응할 여력도 없는 것이라고 봐야겠다. 하지만 그런 객관적 정황과 무관하게 이 장면에서 로즈머리가 한순간 ‘타자’ 혹은 ‘사물’과 조우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자신을 도와주려고 하는 데도 아무런 기척도 내보이지 않는 ‘타자’ 앞에서 난감함을 느낀 경험을 로즈머리가 과연 또 갖고 있을까? 아마도 없지 않을까. 왜냐하면 로즈머리의 세계란 타자가 전적으로 부재하는 세계였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떠올리게 되는 건 프로이트의 ‘네벤멘쉬(Nebenmensch)’란 말이다. ‘이웃집 사람’ 혹은 ‘옆집 사람’과 같은 의미이지만 일상적으로 사용하지는 않는 독일어라고 한다. 프로이트는 <과학적 심리학을 위한 기획>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각을 제공하는 대상이 주체를 닮았다고 가정해보자. 대상은 바로 동류 인류(네벤멘쉬)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대상은 주체에게 유일한 도움을 주는 힘일 뿐 아니라, 최초의 만족을 주는 대상인 동시에 더 나아가서는 주체의 최초의 적대적인 대상이었다는 사실이 이론적 관심도 해명해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한 사람이 인식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사실은 동료 인간과 관련된다.(케네스 레이너드 외, <이웃>(도서출판b, 2010), 51쪽에서 재인용)

케네스 레이너드의 정리에 따르면, “네벤멘쉬는 주체와 그 최초의 모성적 대상 사이에 서있는 ‘인접한 사람’으로서의 이웃이며, 주체의 현실을 표상 가능한 인식의 세계와 프로이트가 ‘사물’이라 부르는 ‘동화할 수 없는’ 요소로 분할하는 섬뜩한 지각의 복합체이다.” 즉 이웃은 주체가 경험하는 현실을 ‘표상 가능한 인식의 세계’와 ‘동화할 수 없는 사물의 세계’로 분할한다. ‘표상 가능한 인식의 세계’라는 건 주체가 경험하는 것과 닮은꼴의 세계이다. ‘나’와 좀 다르지만 비슷비슷하구나, 쟤는 저렇게 밥을 먹는구나, 저렇게 하품을 하는구나, 저럴 땐 저런 표정을 짓는구나, 등등을 ‘나’는 ‘이웃’에게서, ‘이웃 아이’에게서 보고 배운다. 따라하기도 하고 공유하기도 한다. 이것을 프로이트는 “인간은 동료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인식하기를 배운다”라고 표현한다. 반면에 그가 사물(das Ding; Thing)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적으로 낯선 타자 안에 있는 어떤 것과의 마주침”이다. 라캉에 따르면, 그것은 자기와 타자의 구성물을 넘어서는 이질성의 침입이다.  



<차 한 잔>에서 로즈머리는 거리에서 마주친 낯선 여인을 ‘포획’하여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 그녀의 ‘자선적’ 행위에는 나르시시즘적 동기가 지배적이었다는 것은 이미 확인한 대로다. 하지만 “여자가 일어섰다. 그러나 그녀는 한손으로 의자를 붙잡고서 로즈머리가 끌어당기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무척 힘이 드는 일이었다. 그녀는 조금도 거들려고 하지 않는 것이었다.”라는 대목에서만큼은 그녀의 손님은 로즈머리에게 ‘사물’이다. 낯설고 이질적이고 동화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내가 ‘사물로서의 타자’와의 조우라고 부르고 싶은 이유다. 하지만 이 조우, 혹은 마주침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로즈머리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은 손님의 상태였다. 곧 쓰러질 정도로 허기진 상태라는 것을 잠시 잊은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저런, 내가 미처 생각을 못 했네!”라고 말하며 하녀에게 빨리 차와 브랜디를 가져오라고 주문하다. 하지만 거의 울상이 되어 소리친다.

“아니에요, 브랜디는 필요 없어요. 저는 브랜디는 안 마셔요. 전 차 한 잔이면 돼요, 사모님.” 그러고서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놀랍고 황홀한 순간이었다.

이 ‘놀랍고 황홀한 순간’은 이 작품의 유사-클라이맥스다. 왜 놀랍고 황홀한가? 로즈머리가 기획했던 시나리오의 가장 완벽한 구현이기 때문이다. 불쌍하고 가련한 한 여인의 눈물과 그것을 다독여주는 따뜻하고 고귀한 품성의 로즈머리! 이 장면에서 로즈머리의 연기를 보자. 그녀는 우선 여자가 앉은 의자 옆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는 더없이 자상한 태도로 손님을 위로한다.

“울지 말아요, 가엾기도 해라.” 그녀는 말했다. “울지 말아요.” 그러고 나서 여자에게 레이스가 달린 자기 손수건을 꺼내 주었다. 그녀는 실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감동되었다. 그녀는 가냘픈 새와 같은 그 어깨에 자기를 팔을 감았다.

번역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울지 말아요, 가엾기도 해라.”는 로즈머리의 말은 “Don't cry, poor little thing”을 옮긴 것이다. 여기서 ‘가엾은 것(poor little thing)’을 ‘사물(the Thing)’이 순치된 걸로 볼 수 있을까? 로즈머리에게는 이제 아무것도 낯설지 않고 두렵지 않다. 그녀는 ‘가냘픈 새’와 같은 ‘이웃’을 온전히 포획했고 감싸 안았다. 숨을 헐떡이면서 더 이상은 못 살겠다고 울먹이는 여인을 다독이며 자신이 돌봐주겠다고까지 말한다. 로즈머리에 읽은 소설이나 영화에 나올 법한 감동적인 장면이다. 로즈머리 자신이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나를 만나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같이 차를 들면서  뭐든지 죄다 이야기해봐요. 그러면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약속할게요. 정말 이젠 울음을 그쳐요. 기진맥진하게 될 테니까. 자, 부탁이에요!”

(...)

10. 0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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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지만 저 여잔 너무 놀랄 정도로 예쁘잖아"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9-06 11:44 
    문학동네 블로그에 연재하는 '로쟈의 스페큘럼'을 옮겨놓는다. 맨스필드의 단편 <차 한 잔>을 계속 다루고 있는데, 이번에도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다음에 한 차례 더 '읽기'를 덧붙일 계획이다. 전문은 http://cafe.naver.com/mhdn/17837  에서 읽으실 수 있다. 참고로, 이 작품의 번역본은 범우사판과 시사영어사판 대역본 두 종을 참고했는데, 대화 장면의 번역은 나대로 다시 옮겼다. 동서문화사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