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재의 컴퓨터가 다운되고 아직 복구를 하지 못하는 바람에 거실에 있는 아이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있다. 같은 집구석이긴 하지만 뭔가 일을 하려니 좀 '고급한' 난민촌 같다는 생각이 든다. 파일이나 즐찾은 모두 남겨두고 빈손으로 몸만 빠져나와 있어서 그렇다. 기사 검색도 부자유스러운 가운데, 자서전에 관한 칼럼 하나를 스크랩해놓는다. 내달까지 마무리지어야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자서전 쓰기'이기도 해서다. 러시아에 잠시 다녀올 수도 있는데, 가방에 자서전 몇 권을 챙겨가야겠다. 벤베누토 첼리니의 자서전에도 흥미가 생긴다... 

 

경향신문(10. 12. 04) [서재에서]자서전 이야기 

삶 자체나 작품보다 솔직담백한 자서전 덕분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대표적인 인물이 르네상스 예술가 벤베누토 첼리니(1500~71)다. 미켈란젤로의 제자인 그의 자서전은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돼 있을 정도다. 기행(奇行)을 일삼은 그의 자서전은 르네상스라는 시대적 상황에 걸맞게 진솔하게 써내려간 문체로 인해 오늘날까지 뛰어난 자서전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첼리니의 자서전을 처음 독일어로 번역한 문호 괴테는 낯 뜨거운 정사 장면들은 아예 빼버렸을 정도다. 이렇듯 자신의 이름에 치명적인 사실도 솔직하고 대담하게 드러낸다. 심지어 적과 경쟁자를 살인한 사실도 숨김없이 기록했다. 괴테는 첼리니야말로 르네상스 정신의 실체를 보여준다고 여겼다. 첼리니는 자서전의 집필 자격을 언급하기도 했다. “상당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라면 누구든 출신에 관계없이 자기 업적을 기록한 자서전을 남겨도 괜찮다. 다만 나이는 적어도 마흔 이상이어야 한다.”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89)도 홍보 전략의 하나로 자서전을 출간하는 놀라움을 보였다. 대부분의 화가가 책을 쓴다는 생각조차 못하던 때다. 글 솜씨도 뛰어난 달리는 책 출판이 예술가의 이름을 선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는 자서전이 잘 팔리도록 자위행위, 성체험, 10살 연상이며 유부녀인 갈라와의 운명적인 사랑과 결혼, 독특한 예술관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얘기로 가득 채웠다. 



흔히 세계 5대 자서전으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장 자크 루소의 <참회록>, 괴테의 <시와 진실>, 한스 안데르센의 <내 생애의 이야기>,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한 혁명가의 회상>을 꼽는다. 크로포트킨 자서전에 대해선 덴마크 작가 게오르그 브란데스가 책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류의 큰 발자취를 남긴 대가들의 자서전은 크게 3가지 가운데 하나다. ‘이제까지 나는 길을 헤맸다. 그러다 마침내 참다운 길을 발견했다.’ ‘나는 정말 나쁜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나보다 낫다고 감히 나설 수 있는 자는 누구냐.’ ‘천재는 바로 이런 좋은 환경에서 내면으로부터 서서히 발전해 왔다.’ 첫 번째 사례는 아우구스티누스이고 두 번째는 루소이다. 세 번째는 괴테다. 크로포트킨의 자서전은 3가지 유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내가 본 자서전 중에서 최고다.” 



아우구스티누스와 루소의 자서전은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자서전과 더불어 3대 고백록으로도 일컬어진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명실상부한 최초의 자서전으로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널리 읽힌 자서전은 <벤저민 프랭클린 자서전>일 가능성이 높다. 하나같이 작품성이 탁월하면서도 솔직하게 썼다고 인정되기 때문이다. 



손꼽히는 자서전이 모두 서양에서 나온 것은 현대적인 의미의 자서전이 동양에선 20세기 이후에야 등장한 영향이 크다. 흥미로운 일화가 이를 잘 말해준다. 마하트마 간디가 1925년 무렵 자서전을 집필하고 있을 때 한 친구가 중단하라면서 이렇게 충고했다고 한다. “어째서 모험을 시작할 마음을 먹었는가? 자서전을 쓰는 일은 서양에만 있는 관습이라네. 알다시피 동양에서는 서양의 영향을 받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자서전을 쓴 사람이 없다네.” 중국에서도 1933년 후스(胡適)가 40세 때 쓴 <사십자술(四十自述)>이 사실상 첫 자서전으로 꼽힌다.

자서전처럼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저술도 없지만 자서전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부풀리는 저술도 없다. 자서전이 ‘반(反) 자서전’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긴 듯하다. 이청준의 소설 <자서전들 씁시다>에 나오는 대필업자 윤지욱이 의뢰자인 인기 코미디언 피문오에게 대필을 중단하겠다며 보낸 마지막 편지가 무척 시사적이다. ‘과거가 아무리 추하고 부끄럽더라도 솔직히 시인할 정직성과 참회할 용기, 자신의 것을 사랑할 애정이 없으면 자서전 발간을 단념하십시오.’(김학순 대기자)  

10. 12. 05.  

P.S. 가장 최근에 구한 자서전은 앙드레 지드의 <한 알의 밀알이 죽지 않으면>(나남, 2010)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강만길 선생의<역사가의 시간>(창비, 2010). 올해는 두 전 대통령의 자서전이 나온 해이기도 하다. 연말 독서계획에 자서전을 포함시켜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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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6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1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06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1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phia49 2010-12-09 10:05   좋아요 0 | URL
첼리니 자서전, 시와 진실,루소의 참회록,성 어거스틴 고백록,프랭클린 자서전...
모두 추억속에서 한 번씩은 읽었던 책입니다.
편안한 러시아 여행이 되시기 바랍니다.
저도 '시와 진실'은 꼭 다시 읽으려고 새 책을 구입히였지요...

2010-12-11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 김삼웅의 <리영희 평전>(책으로보는세상, 2010)이 신간으로 뜨기에, 생전에 무슨 '평전'인가 싶었는데, 오늘아침 선생의 별세 소식을 접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부고기사와 함께 지난봄에 한번 만들어놓았던 리스트를 다시 만든다.    

한겨레(10, 12. 05) 시대의 실천적 지식인 리영희 선생 별세

우리 시대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이자 ‘큰 언론인’이었던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가 5일 별세했다. 향년 81. 지병으로 서울 중랑구 면목동 녹색병원에 입원했던 리 교수는 이날 오전 0시30분께 병원에서 가족과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그의 평생은 ‘반지성에 맞선 치열한 싸움의 역정’이었다. 근무하던 언론사와 대학에서 각각 두 번씩 해직됐고, 모두 다섯 차례 구속됐다. 1980년 신군부가 ‘광주소요 배후 조종자’ 중 한 명으로 그를 지목ㆍ투옥했을 때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리 전 교수를 ‘메트르 드 팡세’(사상의 은사)라고 불렀다.

1929년 평안북도 운산군에서 태어난 리 전 교수는 57년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로 언론인의 삶을 시작했고, 64년부터 71년까지 <조선일보>와 합동통신 외신부장으로 일했다. 69년 베트남 전쟁 파병 비판기사를 썼다가 조선일보에서 쫓겨났고, ‘군부독재ㆍ학원탄압 반대 64인 지식인 선언’에 참여했던 71년 합동통신에서 해직됐다. 한양대 교수로 재직하던 76년과 80년에도 각각 박정희 정권과 신군부의 압력으로 교수직을 박탈당했다. 리 전 교수는 88년 <한겨레신문> 창간 당시 이사 및 논설고문을 맡았다. 방북 취재를 기획했던 89년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ㆍ기소돼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160일간 복역했다.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그의 무기는 ‘관념’이 아닌 ‘사실’이었고, ‘이론’이 아닌 ‘실천’이었다. 그는 글쓰기를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라고 정의했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 듯’, 그는 오직 진실과 균형의 날개로 이념적 도그마에 저항했다. 그의 책 <전환시대의 논리>(1974)와 <우상과 이성>(1977)은 반공 이데올로기가 가린 베트남 전쟁의 실체와 중국의 현실을 정직하게 드러내며 당대의 대표적 금서로 탄압받았다.

조선일보와 한겨레에서 함께 일했던 임재경 전 한겨레신문사 부사장은 “리 전 교수는 미국이 만들어낸 뉴스로 세상을 바라보던 시대에 남북문제와 외교문제 및 베트남ㆍ중국 문제에서 독자적 탐구와 분석을 토대로 용기 있는 기사를 써냈다”며 “한국전쟁 후 우리 언론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보적 언론인”이라고 평했다.

2000년 뇌출혈로 쓰러져 오른쪽 몸이 마비된 뒤로도 시대를 염려하는 그의 발언은 그치지 않았다. 올 초 간경변으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고부턴 병원과 집을 오가며 치료에 전념해 왔다. 자신의 “책이 한 권도 팔리지 않아 인세가 0원이 되는 게 소원”이라던 리 전 교수는 그의 책이 필요 없는 사회를 끝내 보지 못한 채 이날 숨을 거뒀다. 부인 윤영자씨와 아들 건일ㆍ건석씨, 딸 미정씨를 세상에 남겼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다.(이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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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평전- 시대를 밝힌 '사상의 은사'
김삼웅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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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프리즘- 우리 시대의 교양
고병권.천정환.김동춘.이찬수.오길영.이대근.안수찬.은수미.한윤형.김현진 지음 / 사계절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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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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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
강준만 편저 / 개마고원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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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2-07 15:07   좋아요 0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푸른바다 2010-12-05 11:21   좋아요 0 | URL
신문보다 여기서 먼저 알았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목동 2010-12-05 12:07   좋아요 0 | URL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진실과 균형'을 생각하게 하는 12월에 고인의 평전을 읽어야겠습니다.

나무네숲 2010-12-05 19:54   좋아요 0 | URL
선생님의 음성이 귓전에서 들리는듯한 느낌으로 "대화"를 읽어내려가는 동안 뜨거운 시간을 살아내신 선생님의 삶 앞에 한없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부디
 

'이주의 관심도서' 중 이론서 범주에 해당하는 건 낸시 프레이저의 <지구화 시대의 정의>(그린비, 2010)다. 주제와 제목으로만 봐서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바로 이어지는 책이어도 좋겠지만('정의'에서 '정의의 스케일'로), 아직 그렇게 되기는 어렵겠다(그래도 똑똑한 고등학생들은 읽어볼 것이다).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는 생각에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10. 12. 03) 지구화 시대에 필요한 정의론 

“민족국가 안에는 안정화된 정치 제도가 있지만 국제적 영역에서는 그런 장치가 불완전하다. 따라서 정의의 개념을 국제 사회에서 적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지은이 마이클 샌델이 지난 8월 방한했을 때 기자간담회에서 했던 말이다. ‘민족국가라는 공동체의 틀을 벗어났을 때 정의는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가’란 문제 제기는 주로 민족국가의 틀 속에서 공동체주의의 입장에서 정의론을 펼쳤던 샌델에게 제기된 비판 가운데 하나다. 



최근 출간된 <지구화 시대의 정의: 정치적 공간에 대한 새로운 상상>은 이런 문제 제기에 답을 주기 위한 책이다. 지은이인 낸시 프레이저(사진) 미국 뉴스쿨 사회과학대학원 교수는 현대 정치철학 연구자로서 여성주의 이론, 비판이론과 정의론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한나 아렌트, 위르겐 하버마스 등 유럽 사상가들을 비판적으로 계승해 새로운 차원의 정의론을 구축했다고 평가받는다.

프레이저는 “정의가 적용되는 범위가 근대적인 영토국가 내부”라는 인식이 오늘날 정의론을 위기에 빠뜨린 주범이라고 본다. 그런 정의에 대한 인식은 근대 주권국가가 이뤄진 토대인 ‘베스트팔렌 체제’와 ‘케인스주의’로부터 이뤄진 틀(framing)에서 비롯됐다. 기존 정의론이 전념했던 문제는 경제적인 차원에서의 ‘분배’ 또는 문화적인 차원에서의 ‘인정’ 등 일차원적인 문제들이었다. 곧 한 영토국가 안에서 경제적 부가가치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 구성원들의 신분질서는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가 등이 기존 정의론의 주요 내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구화의 확대는 기존 정의론이 가진 내용과 방법, 실현방법 모두에 혼란을 가져왔다. 예컨대 에이즈의 확산, 국제 테러리즘, 유전자조작곡물, 이주노동자 등 영토국가의 경계를 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기존 정의론은 더이상 보편적인 문법으로 작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되레 부정의를 확산하는 강력한 악효과까지 낳는다.

따라서 프레이저는 ‘삼차원적 정의론’을 제기한다. 기존 정의론이 다뤘던 내용인 경제적 차원의 분배와 문화적 차원의 인정을 묶고, 여기에 정치적 차원까지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치적 차원의 핵심을 이루는 개념은 ‘대표’(representation)다. 대표는 분배와 인정에 관한 투쟁들이 펼쳐지는 무대를 제공하는 장치다. 이런 정치적 차원의 도입은, 일상적인 정치적 부정의를 바로잡기도 하지만 정치적 공간을 잘못 설정해 누군가를 늘 배제하는 ‘대표 불능’의 부정의도 바로잡는 의미를 갖는다.

정의의 가장 일반적인 의미를 ‘동등한 참여’라고 보는 프레이저는, 민주적 의사결정을 왜곡하는 부정의들을 제거함으로써 민주주의와 정의를 서로 연결할 수 있다고 본다. 곧 분배와 인정을 위해 투쟁을 벌여야 할 사람들이 아예 무대에 올라가지 못하는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무대를 만드는 과정까지 민주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의 ‘내용’에만 매달렸던 기존 정의론들과 다르게 ‘당사자’와 ‘방법’을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프레이저 정의론은 지구화 시대에 정의가 어떻게 논의되어야 하는지 하나의 중요한 방향을 제시한다.(최원형 기자) 

10. 12. 04 

 

P.S. 책갈피의 저자 프로필을 읽다가 떠올린 건 역시나 비판이론에 젖줄를 대고 있는 여성철학자 세일라 벤하비브이다. 한나 아렌트를 연결고리로 갖고 있다는 점도 두 사람을 묶어주는 듯싶다(실제로 친하게 지내는지는 모르겠지만). 벤하비브의 책은 <비판, 규범, 유토피아>(울력, 2008)와 <타자의 권리>(철학과현실사, 2008)가 번역돼 있다. 그녀의 신작 <어두운 시대의 정치학: 한나 아렌트와의 만남>(2010) 도 관심이 가는 타이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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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함에 새로 넣은 책이 어느새 좀 쌓였다. 어제오늘 눈에 띈 책만으로도 다섯 권이 넘어가기에 다시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이주의 책'은 아마도 기름 유출 사고 이후 3년, 다시 쓰는 태안 리포트' <태안은 살아있다>(동녘, 2010)가 될 듯싶다.   

"2007년 사고 당시 구성된 재난관리 전문가 조직이 사고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연구하기 시작한 데서 출발해 2010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연구자들이 애정을 가지고 태안을 지속적으로 방문하며 연구한 자료를 모은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 유출 사고’의 총체적 보고서"라고 소개되는 책이다. 처음 소개되는 미국의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의 <지구화 시대의 정의>(그린비, 2010)도 궁금증을 갖게 하는 책이다. 젊은 세대 '인문블로거' 박가분의 <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인간사랑, 2010)도 기대를 갖게 하는 책이다. 프랑스의 중국학자 알랭 루의 <20세기 중국사>(책과함께, 2010)와 '동아시아와 그 너머’ 시리즈의 두번째 책으로 나온 <냉전문화론>(너머북스, 2010), 그리고 그리스철학 전공자인 장영란 교수의 <영혼의 역사>(글항아리, 2010)까지가 관심도서다. '12월의 읽을 만한 책'에 꼽아두기도 했지만, 조르조 아감벤의 <세속화 예찬>(난장, 2010)도 빼놓을 순 없다. 다섯 권의 이미지는 '색감'을 고려하여 골라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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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은 살아 있다- 기름 유출 사고 이후 3년, 다시 쓰는 태안 리포트
노진철 외 지음 / 동녘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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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 시대의 정의- 정치적 공간에 대한 새로운 상상
낸시 프레이저 지음, 김원식 옮김 / 그린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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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화 예찬- 정치미학을 위한 10개의 노트
조르조 아감벤 지음, 김상운 옮김 / 난장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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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 박가분의 붉은서재
박가분 지음 / 인간사랑 / 2010년 12월
15,000원 → 14,250원(5%할인) / 마일리지 43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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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과 거기 적힌 일정을 보며 올해의 마지막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기로 한다. 오전에 연재 원고를 쓰는 틈틈이 분야별로 몇 권씩 골라볼 참인데, 간행물윤리위원의 추천도서 목록을 보니 절반은 이미 언급한 적이 있는 책이다. 좀 예외적이다 싶은 문학부터 골라본다.    

 

1. 문학 

정과리 교수가 추천한 책은 홋타 요시에의 <고야>(한길사, 2010)다. 이미 한번 나왔던 책인데, 그래도 의의가 없지 않다고 말한다. 그 이유에 대해선 이렇게 설명한다.  

"이 책은 1974년에서 77년 사이에 일본에서 출간되었다. 한국에는 1998년 처음 번역되었고, 이번에 개정판이 나왔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무척 낡은 책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우리는 세계의 격변에 대해 그의 지척에서 세계와 같은 규모로 성찰하는 작품을 거의 만들지 못했다. 최인훈과 이청준의 몇몇 소설들, 그리고 지금은 독자의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있으나 홍성원의 어떤 작품들이 그러했을 뿐이다. 게다가 우리는 그런 성찰을 한국 바깥을 대상으로 시도한 작품을 한 권도 갖고 있지 못하다. 이 책이 35년 전에 보여준 세계는 한국 작가들의 전인미답의 세계다. 이 낡은 책은 아직도 한국에 도래하지 않았다. 이 책을 소개하는 소이다." 

 

<고야>는 구해놓지 못했었지만(이번에 다시 나왔으니 다행인 셈이고), 그의 <몽테뉴>는 몇년 전에 구해놓았다. 어디선가 작가의 명성을 접하고 한권씩 구입한 듯하다. 음, 하지만, 어디에 두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추천한 역사분야의 책은 <누가 베이컨을 식탁으로 가져왔을까>(알마, 2010). 한번 소개한 책이기도 하다. 다시 소개를 덧붙이자면, "제목을 퀴즈처럼 제시한 이 책은 선사시대 여자의 역할을 복원한 책이다.(...) 엄마와 자식으로 이루어진 짝은 인간은 물론 모든 영장류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단위라는 점에서 언어의 발명도 여자일 것이며, 더 나아가 농업의 발명도 여자들이 했을 것이라는 추론을 실제 고고학 자료를 통해 전개한다. 여성이 인류의 등장과 진화에 남성보다 훨씬 중요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균형 잡힌 선사시대를 복원하고 있다." 여성의 역사를 다룬 책으로 내가 같이 꼽았던 건 로잘린드 마일스의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동녘, 2005)였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추천한 철학분야의 책은 마이클 샌델의 <왜 도덕인가?>(한국경제신문, 2010). 이 역시 한번 언급한 적이 있는 책인데, 하기에 샌델에 대해서는 더 보탤 말도 없다. '도덕철학'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공공철학' 내지 '정치철학'을 말하는 책이라는 것 정도. 그의 주장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고. 

샌델은 세 가지 주장을 확실하게 펼친다. 첫째, 정의로운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가장 소중하거나 유일한 가치는 아니다. 모든 사회는 평등과 공동선에 대하여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둘째, 공정한 자원배분이 시장에서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 매매할 자원과 재능을 결여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셋째, 도덕적 가치에 대하여 무관심한 정치인은 정권을 담당할 자격도 없고, 기회도 갖지 못한다. 도덕적 가치에 대한 강조는 이상정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현실정치에서의 파워를 추구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 책에서 샌델은 풍부한 현실정치에서의 사례와 근거를 통해서 자신의 정치철학적 입장을 우리에게 펼쳐보인다.

샌델의 책은 내년에도 몇권 더 출간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내가 기대하는 것은 데뷔작인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와 더불어 대표작 <민주주의의 불만>이다.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고른 정치/사회분야의 책은 대니얼 골든의 <왜 학벌은 세습되는가?>(동아일보사, 2010)이다. 가장 간단하게 말하면 미국식 입학사정관제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책이다(그래서 출판사를 한번 더 확인하게 되는 책이다). 추천자의 소개는 이렇다.  

이 책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는 저자가 미국의 명문대 입학이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와 특전을 대물림하는 제도로 종종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예리하게 파헤친 걸작이다. 저자는 전문적인 탐사보도의 형식으로 듀크대, 브라운대, 하버드대 등 미국의 명문대학들이 편법적인 특혜입학을 통해 주로 소수의 백인 특권계층의 자녀들을 입학시키고 있는 관행을 폭로하고 있다. 그러한 관행으로 거액기부자, 유명인사, 동문 및 교수 자녀들의 특혜입학 또는 기부입학제나 체육 특기생 제도를 통한 특혜입학을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이러한 관행의 결과 제2의 유대인이라 할 수 있는 우수한 아시아계에게 가장 엄격한 입학 기준이 적용되는 역차별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이처럼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입학사정관제를 개선할 것을 제안한다.

이럴 땐 듀이의 <민주주의와 교육>을 정독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미국식 교육의 이념이 본디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우리 교육의 이념은 무엇인가? '글로벌 인재' 양성?..  

5. 경제/경영 

박원함 교수가 추천한 경제/경영분야의 책은 스티글리츠의 <끝나지 않은 추락>(21세기북스, 2010)이다. 이미 지난달에도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장하준 교수의 책과 함께 꼽아놓았으니 나로선 덧붙일 말이 없다. 추천자에 따르면 저자는 "이 책에서 신고전파 경제학을 신랄하게 공격하며 시장과 정부에 대해 균형된 시각을 가지는 케인스 경제학을 지지한다. 아울러 이번 위기로 정책과 사상도 변화되어야 한다고 촉구한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스티글리츠 보고서>(동녘, 2010)과 같이 읽어봄직하다.   

6. 과학 

장경애 과학동아 실장이 추천한 책은 그레고리 코크란의 <1만년의 폭발>(글항아리, 2010이다. 진화론 책을 좀 읽어본 독자라면 제목부터가 약간 '도전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1만 5천 년 전에 늑대에서 가축화된 개는 치와와와 그레이트 데인처럼 형태와 크기가 다양하다. 이러한 개는 사람의 목소리와 몸짓을 잘 읽어낸다. 물론 늑대는 그렇지 못하다. 저자는 개들이 지난 200년 동안 상당한 변화를 겪었으며 이러한 개의 진화가 문명의 테두리에서 일어난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지난 1만 년만 놓고 보면 인류의 진화가 지난 600만년 평균보다 약 100배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문화를 발달시킨 덕분에 진화의 원동력인 자연선택의 압력에서 벗어났으며 그 때문에 인류에게 더 이상 의미 있는 진화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진화생물학자들의 생각과는 사뭇 다른 논의다.

'사뭇 다른 논의'에 흥미를 가져볼 수 있겠다. 진화론 관련서로는 <진화의 탄생>(바다출판사, 2010)과 <진화의 무지개>(뿌리와이파리, 2010)도 같이 묶어볼 수 있다. 모두 구해놓은 책이긴 한데, 읽을 여가가 없는 게 유감스럽다(누군들 서평만 읽고 싶겠는가?)...    

7. 예술 

이은주 교수가 추천한 책은 사진쪽이다. 최현주의 <사진의 극과 극>(학고재, 2010). '사진 읽기' 책이니 사진이 없는 설명은 별 효과가 없겠다. 저명한 사진작가들의 사진론을 담은 책으론 최민식의 <다큐멘터리 사진을 말하다>(하다, 2010), 강운구의 <강운구 사진론>(열화당, 2010)도 같이 꼽아봄직하다. 사진 책 독자라면.    

8. 교양 

철학자 탁석산이 추천하는 교양서는 이정원의 <전을 범하다>(웅진지식하우스, 2010). "‘서늘하고 매혹적인 우리 고전 다시 읽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제목에 충실하다. 요즘 바람이 일기 시작한 우리 고전 다시 읽기라는 것도 맞고 내용이 서늘하고 매혹적인 것도 맞다. 고전을 읽어내는 깊이가 그 시대의 인문학적 깊이의 척도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은 꽤 괜찮은 책이다."이라는 게 추천 이유다. 많이 읽히는 듯한 책이므로 군말은 덧붙이지 않는다. 내친 김에 <장화홍련전> 같은 고전도 다시 읽어볼 수 있겠다. 대부분 초등학생 시절에나 읽어보았을 테니 감회가 없지 않겠다...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추천한 실용서는 김정후의 <유럽의 발견>(현암사, 2010)이다. "유럽의 건축에 담긴 역사와 문화, 사회상을 깊이 있게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 간단한 추천사다. '유럽의 발견'이라고 하니까 엠마뉘엘 토드의 <유렵의 발견>(까치, 1997)이나 볼프강 슈말레의 <유럽의 재발견>(을유문화사, 2006)도 떠오른다. 박용진의 <중세 유럽은 암흑시대였는가?>(민음인, 2010) 같은 책도 청소년 교양서 컨셉이지만 유럽을 다시 보는 데 도움을 줄 만하다.   

10. 세속화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셰속화 예찬>(난장, 2010)이 출간되었기에 떠올린 나대로의 주제는 '세속화'다. 짧은 견문으론 신학자 하비 콕스와 철학자 찰스 테일러 등을 이 주제와 관련한 저자로 꼽게 되는데(아직 번역되지 않은 테일러의 주저가 세속화를 다루고 있다), 각각 <세속도시>(문예출판사, 2010)와 <세속화와 현대문명>(철학과현실사, 2003)에서 기본적인 사상을 간취해볼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아감벤은 아감벤의 다른 책들과 같이 묶어서 읽어도 좋겠다...  

10. 11. 30.  

P.S. '12월의 읽을 만한 고전'으론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고른다(<롤리타>가 식상한 분은 <사형장으로의 초대>를 읽으셔도 좋겠다). 개인적으론 20세기 러시아문학을 강의하면서 마지막으로 읽을 작품이기도 하다(영어로 먼저 쓴 작품이지만 나보코프는 직접 러시아어로도 옮겨놓았다). 내게 <롤리타>는 무엇보다도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향수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 읽힌다. 어린시절은 진작에 놓쳤지만, 이제 2010년과도 조만간 우리는 작별할 것이다. 한번 흘러가버린 시간의 강물에 우리는 두 번 발을 담그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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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1-30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경화면이 러시아적으로 바뀌었네요! // <롤리타>는 러시아 태생 작가가 미국을 배경으로 써서 많이 이색적, 현대적으로 다가왔던 책입니다. 님프같은 의붓딸에 대한 집착(사랑?). Lolita, Lolita, Lolita... 로쟈님의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향수", 마음에 드는 표현입니다.

로쟈 2010-12-01 06:45   좋아요 0 | URL
나보코프에게 미국은 별로 의미가 없었던 듯해요. 롤리타로 돈이 생기자 바로 떠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