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전문잡지 '공간'(520호)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김동일의 <예술을 유혹하는 사회학>(갈무리, 2010)을 읽은 인상을 적었다. 모스크바에서 쓴 리뷰 중의 하나로 기억에 남는다. 책은 주로 딱딱한 논문들을 모은 것이어서 '예술을 유혹하는 사회학'이란 제목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걸 서두로 삼았다.    

 

공간(11년 3월호) 예술을 유혹하는 사회학

예술을 유혹하는 사회학? ‘사회 속의 예술(art in society)’을 다루는 책의 제목으로는 특이하다. 김동일의 <예술을 유혹하는 사회학>이 주는 첫인상이다. 저자는 “어쩌면, 예술과 예술가를 유혹하는 것은 이제 사회일지도 모른다. 사회는 예술가들이 창조해낸 예술보다 더 아름답고, 더 정교하고 더 마술적이다.”이라고 서두에서 미끼를 던지는데, 정작 그렇다면 ‘더 아름답고, 더 정교하고 더 마술적’인 사회가 예술보다도 더 주된 관심사가 되어야 맞을 것이다. 게다가 예술과 사회란 이분법을 지양하자는 것이 저자의 또 다른 제안이고 보면 제목만으론 초점이 모호하다. ‘부르디외 사회이론으로 문화읽기’란 부제도 마찬가지다. 부르디외의 사회이론이 저자가 동원하는 핵심적인 이론이긴 하지만 책의 구성은 광범위한 ‘문화읽기’보다는 ‘미술읽기’에 한정된다. 미술과 미술사, 미술관, 미술시장 등을 폭넓게 다룬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책은 예술에 대한 사회학적 관심의 결과이므로 자연스레 ‘예술사회학’으로 분류된다. 예술 속에 사회가 어떻게 반영돼 있는가를 묻기도 하고, 예술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생산되고 소통되는가를 연구하는 분야다. 저자는 이 가운데 특별히 ‘스타일의 사회학’을 주창하며 강조한다. 왜 그런가. 스타일이 예술을 예술로 만드는 토대이자 그 본질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스타일이 곧 예술이라면, 예술사회학은 달리 스타일의 사회학일 수밖에 없다.  

저자는 스타일을 ‘사회적 실천’과 그 ‘맥락’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보며, 이를 설명하는 데 부르디외의 사회이론이 최적이라고 판단한다. 부르디외의 ‘장’이나 ‘아비튀스’ 개념을 적용하면 스타일이 갖는 실천의 논리와 맥락을 정교화하게 개념화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고 제안이다. 그래서 부르디외의 용어들을 ‘스타일장’과 ‘스타일 아비튀스’이란 말로 새롭게 개념화한다. ‘성향의 체계’를 뜻하는 아비튀스는 스타일 행위의 보편성과 유사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며, ‘상대적 자율성’을 가진 사회적 공간으로서 ‘스타일장’의 지형과 역학은 개별 스타일행위자들에게 가능한 실천의 범위를 제공한다.   

이렇게 정립된 개념들을 예술에 적용하면, 스타일 실천자로서 예술가를 ‘주관적 천재’가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공간의 ‘합리적 행위자’로 앉힐 수 있게 된다. 가령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백남준의 미학적 성취 역시 그것이 가능하게 한 객관적인 사회적 조건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기발한 걸작을 생산한 광기 어린 전채가 아니라, 정확하게 예술장이라는 사회적 공간 속에서 미학적 실천의 방향성을 설정해 나간 사회적 행위자”라는 것이 백남준에 대한 그의 평가다.  

이러한 이론적 관점을 저자는 미술사, 구체적으론 전후 한국화단의 스타일장에도 적용한다. 그에 따르면 “전후 한국화단에서 벌어진 추상과 구상의 투쟁은 곧 사회공간의 정치적 영향을 스타일장 내의 특수한 내기물을 놓고 벌어진 인정투쟁으로 변환하는 과정인 동시에 결과”였다. 기존의 비평이나 미술사 기술에서는 스타일 투쟁을 소수 선구자의 미학적 성과 정도로 바라보는 데 반해서, 저자는 스타일장에 대한 자세한 분석을 통해 이 투쟁이 포괄적 스타일 네트워크 사이의 투쟁이라는 걸 보여준다. 현대미술가협회 같은 단체가 사회 변동에 대응하여 스타일장에서 변환의 주체 역할을 수행했으며, 일군의 비평가들이 추상스타일에 미학적 정당성을 부여하며 옹호했다. 전후 스타일 전쟁이 구상에 대한 추상의 승리로 귀결됐다면, 그것은 “추상 네트워크 내에 수렵되는 자원의 범위와 강도, 효율성이 구상스타일의 그것을 압도했음을 의미”한다. 

스타일과 함께 저자의 예술사회학을 지탱하는 키워드는 ‘일상’이다. 그는 미술을 일상적 실천이자 일상적 놀이로 본다. 이 놀이의 공간은 미술관, 화랑, 작업실, 강의실 등이며, 작가, 큐레이터, 미대 교강사, 문화부 기자, 미술사가, 평론가, 미대재학생, 관객, 독자들이 그 놀이의 참여자들이다. 미술이 곧 일상적 실천이기에 일상과 미술의 구분은 환영이다. 그럼에도 이 환영과 일상/예술이라는 이분법이 유지되는 주된 근거로 저자는 미술관의 존재를 든다. 일상과 미술은 원래 한 몸이지만 미술관이 이 한 몸에 작위적인 선을 긋는다는 것이다. 육체와 두뇌(기획력)을 갖춘 ‘위험한 실천자’로서 미술관은 제도적 권위와 자본주의 논리의 작동을 대리하며 아주 특별한 어떤 것들만 예술로 규정한다. 다분히 정치적이며 이데올로기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때문에 일상과 미술 사이에 미술관이 쌓은 거북스런 경계를 낮추는 작업이 절실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미술관의 존재 자체를 되묻게 하는 ‘게릴라적인 미술관’이 그의 대안인데, “이건 물론, 미술사와 미술이론에 정통하면서도, 일상에 투철한 게릴라들이 잔뜩 힘이 들어간 딱딱한 미술관 제도에 틈입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의문이 없는 건 아니다. 일상에 투철하면서도 미술사와 미술이론에 정통한 ‘일상인’은 가능할까, 라는 것이다. ‘사회학을 유혹하는 예술’에 사회이론으로 대응하는 일도 마찬가지인데, ‘독자를 유혹하는 사회학’이려면 일상과 딱딱한 논문 스타일의 경계를 좀 더 낮추는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  

11. 0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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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307 2011-03-07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현우님이 로자였군요..기자님한테 연락받고 <공간>지를 구입해서 잘 보았습니다..보잘 것 없는 책을 자세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로자님에 관한 얘기는 여러사람한테서 듣고 있었습니다..제 책에 대한 몇가지 반응에 대한 반론은 따로 준비하고 있습니다..여기는 제목에 대한 로자님의 지적과 관련해서 몇가지 생각만 적어 볼려구요..



"저자는 “어쩌면, 예술과 예술가를 유혹하는 것은 이제 사회일지도 모른다. 사회는 예술가들이 창조해낸 예술보다 더 아름답고, 더 정교하고 더 마술적이다.”이라고 서두에서 미끼를 던지는데, 정작 그렇다면 ‘더 아름답고, 더 정교하고 더 마술적’인 사회가 예술보다도 더 주된 관심사가 되어야 맞을 것이다. 게다가 예술과 사회란 이분법을 지양하자는 것이 저자의 또 다른 제안이고 보면 제목만으론 초점이 모호하다. ‘부르디외 사회이론으로 문화읽기’란 부제도 마찬가지다. 부르디외의 사회이론이 저자가 동원하는 핵심적인 이론이긴 하지만 책의 구성은 광범위한 ‘문화읽기’보다는 ‘미술읽기’에 한정된다. 미술과 미술사, 미술관, 미술시장 등을 폭넓게 다룬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첫째는 로자님이 지적하신 '사회' 개념에 관해서인데요..제가 이 책에서 말씀드리려는 '사회'란 두가지입니다..동시대 예술을 가능하게 하는 당대 한국의 사회공간이라는 뜻도 있습니다만..제가 앞 부분 논고에서 강조한 사회는 사실 부르디외적 관점에서 촛점이 되고 있는 '장'입니다..장은 특정한 방식의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조건입니다..'예술장'..'스타일 장'..'장으로서의 예술계'가 그것들입니다..동시대 예술의 상황은 곧 장의 논리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고..그러려면..일단..이 개념부터 규정해야 한다는 판단입니다..물론..한국의 모순적 사회공간에 대한 관심을 배제하지 않는데..이건 참 난해한 일입니다..로자님의 말처럼 사회공간에 작동에 관심을 둔다면..이 책은 그저 사회비평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구요..'사회'를 포괄적인 당대사회공간으로 규정하더라도 그것이 예술적 실천과 관련하기 위해서는 '장'을 경유하지 않으면 안될 듯 합니다..



둘째는 '미술읽기'가 더 낫다는 지적과 관련한 것인데요..이 역시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지만..제 입장은 '문화읽기'가 적합하다는 생각입니다..사실 '미술'이란 단어는 정체조차 의심스러운데요..영어로 번역하면 art, 혹은 fine art 일텐데..굳이 예술과 다른 의미를 가져야 하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그렇다면..굳이 앞서 '예술을 유혹하는 사회학'에 이미 반영된 단어를 중복해서 쓸 이유는 없을 듯 합니다..제가 '미술읽기'보다 '문화읽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두가지 입니다..첫째는 기존의 미술 개념에 제도는 포함되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미술개념이란 좀 더 순수한 예술적 실천과 그 결과물에 한정되어 사용됩니다..대략 미술의 역사란 작품, 작가, 스타일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제가 이 책에서 다루는 제도로서의 장의 요소들은 그저 '미술'개념에 한정되기 어렵다는 판단입니다..반면, 문화는 '이념'의 역사이면서 '제도'의 역사라는 점에서 좀더 포괄적인 설명범위를 가지고 있구요..둘째..제가 미술보다 '문화'를 선호하는 이유는 이 책에서 제가 설명하려는 내용들이 직접적으로 예술이라는 좁은 영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궁극적으로는 장-아비튀스에 대한 분석이 로자님이 전공하시는 문학이나 음악에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저는 문화사회학이라는 정체성 아래서 예술을 다루지만..예술이 문화와 다른 의미를 갖는다고 보고 있지 않거든요..



아..마지막으로..문체에 관련한 지적에 관해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이 책은 '논고', '에세이', '작가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로자님의 서평은 주로 '논고'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입니다..반면..에세이나 작가론은 조금 더 쉽게 읽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논고편은 말 그대로 논고로 읽혔으면..합니다..그저 막연한 흥미가 아니라..'스타일' '미술관' '한국현대미술사' '실천' 등 기존 예술학의 지평을 참조하면서 또 다른 설명을 요구하는 문제에 접근할 때 아무래도 논고의 형식이 더 낳지 싶습니다..물론..'논고' 뿐 아니라 '에세이'나 '작가론' 역시 그리 쉽게 읽히는 글쓰기는 아닙니다만..그런 글쓰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미술시장의 활성화와 비평의 자율성'이란 에세이 항목에서 미약하지만..조금 피력해 두었습니다..



로자님의 서평을 받은 일은 너무나 영광스럽고 감사합니다만..제가 이 책을 통해 평가받고 싶은 내용을 다소간 비껴가고 있다는 생각도 다소간 있습니다..특히 서평의 몸통에 해당하는 이 책의 내용에 관해서 정작 아무말씀도 않으셨더라구요..사실..저자로서 제가 하고 싶은 말들이었고..반응을 듣고 싶은 부분들이기도 합니다..혹여 일부러 지적 않하셨을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더군요..기회가 되면..그런 점들에 관해 로자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이거 서평을 서평한거 같아 죄송합니다만..저도 앞으로 로자님의 저작들에 관해 관심을 갖도록 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로쟈 2011-03-09 07:39   좋아요 0 | URL
서평 때문에 책까지 구입하셨군요.^^; 제목과 관련해 말씀드렸던 건, '사회 속의 예술'로 충분한데, '예술을 유혹한 사회학'이란 건 좀 모호하다는 거였구요(사회학을 주제로 삼은 예술이란 뜻으로 들리니까요), '문화읽기'에 대한 지적은 부르디외의 방법론이 문학이나 음악에도 적용될 수 있겠지만, 책에서는 미술에 한정하고 있기 때문에 너무 포괄적인 부제다 싶었습니다(제목에 대한 독자의 기대를 염두에 둔다면요). 아, 문체에 대한 지적은 단순히 책의 주력이 논고(논문)이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생각입니다. 교양서라기보다는 학술서 범주에 속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인상을 적은 것이구요, '몸통'에 대해 제가 다루지 못해 죄송합니다.^^; 12매란 분량은 한두 가지 관심사만 다루는 것 정도로도 다 차기 때문에요. 개인적으론 단토와 부르디외를 비교한 장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본격적인 서평은 미술전문잡지나 학술지 등에서 다뤄지길 기대해봅니다...

kdi307 2011-03-11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엥..'사회속의 예술'으로 충분하다뇨..이거 참..'책을 읽을 자유'의 저자가 그런 말씀을 하시다뇨..전 그냥 '로자의 책읽기'보다 낫던데요..제목에 관해서 더 부연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저도 몇군데..서평을 써야할 입장이어서 요즘 좋은 서평이 무엇인지 생각하고있습니다..로쟈님의 작업도 참조하고 있구요..그런데..정말 힘든 일이더군요..저자의 의도에 다가서면서도 어느지점에선가 독자의 입장에서..재구성하고 또다시 의문해야하고..짧은 글일수록 더 많이 고민해야 하고..

로쟈님께도 저자와 독자를 유혹하는 서평 기대해 봅니다..저자는 서평의 가장 중요한 독자 가운데 하나거든요..

좋은 의견 감사드리구요..기회가되면 인사드리고 '단토 대 부르디외'에 의견도 듣고 싶네요..

참..잘 알고 계시겠지만..<공간>은 단순한 건축잡지가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한국 문화예술 분야 최고권위의 전문지입니다..기회가 되시면 메타서평론..혹은 서평의 논리와 윤리에 관한 참조할 만한 전문서를 써 주시면 서평을 쓰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많을 것 같아요..이 분야에는 아직 실천적인 전문서들이 많지 않은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로쟈 2011-03-11 11:23   좋아요 0 | URL
흠, '사회 속의 예술'은 책의 표지에 영어제목처럼 붙어 있는 'art in SOCIETY'를 옮긴 건데요. 부정확한(불충분한) 번역인가요?

kdi307 2011-03-14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정확한 것은 아니지만..제 의도를 전달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그냥 카피 정도로 보아주셨으면 합니다..'사회 속의 예술'에는 SOCIETY를 대문자로 놓고..art를 소문자로 놓은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거든요..공식적인 제목에도 뺐구요..사회란 예술 밖에 있기도하지만(사회공간이라는 의미에서), 예술 속에 있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예술장이란 의미에서) 사회학은 예술 안과 밖에서 작용하는 사회를 포착해야 한다는 생각이구요.."예술을 유혹하는 사회학"은 생각보다 특이한 제목은 아닙니다..적절하게 괄호치기를 하면..결국 "예술(을 유혹하는) 사회학"이고 결국 "책은 예술에 대한 사회학적 관심의 결과이므로 자연스레 ‘예술사회학’으로 분류된다"는 로자님의 지적과 일치합니다..다만..그 제목이 기존의 예술학이나 사회학의 지평에서 그닥 설명되지 않았던 지점에 이 책을 두려는 의도를 충분히 설명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을 뿐 이죠..유혹이라는 부분에서도 잠시 말씀을 드리자면..예술이 더이상 사회와 분리될 수 없는 상황속에서 예술학은 사회학적 설명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고..그런 의미에서 예술학 종사자들에게 이 책의 내용이 도움(일종의 유혹)이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예컨대 '단토를 부르디외적으로 독해할 때 단토가 단토 자신보다 더 단토스럽게 된다'는 생각입니다..그런 의미에서 단토에 관심을 갖는 예술학 전공자들에게 단토에 대한 부르디외적 독해는 일종의 유혹이거나 최소한 참조할만한 도움이 될 수 있겠지요..결국 제목에 대한 비판의 관건은 예술현상에 대한 저의 부르디외적인 독해가 과연 동시대 예술상황을 설명하는데 유익한 것인가의 논의로 이어지는 것이고..자연스럽게 제목 자체 보다는 내용에 대한 논의와 검토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밤늦게 귀가해 신간들을 훑어보다가 '오늘의책'으로 고른 건 제니퍼 워시번의 <대학 주식회사>(후마니타스, 2011)다. 얼마전에 나온 <대학의 몰락>(동연, 2011)을 바로 떠올리게 하는데, 두 책의 부제를 비교하면 우연은 아니다. <대학 주식회사>의 부제는 '대학의 상업화에 대한 심층 탐사 르포'이고, <대학의 몰락>의 부제는 '자본에 함몰된 대학에 대한 성찰'이다. '자본에 함몰된 대학'이 곧 '대학의 상업화'를 가리키는 것이니 문제의식은 공유하는 셈이다. 미국 대학의 역사를 다룬 책으로 클라이드 바로우의 <대학과 자본주의 국가 1894-1928>(문화과학사, 2011)이 거기에 덧븉여질 만하다. 우리의 당면한 현실과 관련해서는 <미친 등록금의 나라>(개마고원, 2011)를 <새로운 대학을 말하다>(매일경제신문, 2011)에서 '새로운 대학'을 말하는 대학 총장님들의 생각과 같이 읽어봄직하다. 내일부터 개강이고 오늘은 눈이 내리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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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주식회사- 대학의 상업화에 대한 심층 탐사 르포
제니퍼 워시번 지음, 김주연 옮김 / 후마니타스 / 2011년 3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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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학의 몰락
서보명 지음 / 동연출판사 / 2011년 1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22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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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 자본주의 국가- 기업자유주의와 미국 고등교육의 개조, 1894-1928
클라이드 W. 바로우 지음, 박거용 옮김 / 문화과학사 / 2011년 1월
23,000원 → 20,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22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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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대학을 말하다- 대학 총장 21인의 혁신 제안
매경출판주식회사 엮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1년 3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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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nstitutions Thinking of Their Students as Cash Bags
    from tran/ SLATE 2011-03-01 23:44 
    돈을 좇는 대학들 | 로쟈 선생은 오늘자로 게시한 글에서 「대학의 상업화」를 다룬 신간 서적 2 권과, 같이 읽으면 좋을 만한 책들을 소개했다. PBS 방송국의 시사 프로그램 「Frontline」에서는 이미 지난 해에 유사한 주제를 다룬 에피소드를 방영한 바 있다. 고맙게도 PBS 측에서는, 굳이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웹사이트에서 해당 에피소드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50분의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2011-03-01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1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번주 리뷰기사들에서 문학만을 놓고 보자면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독일의 젊은 작가 다니엘 켈만의 <명예>(민음사, 2011)이다. 소개에 따르면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여러 층의 실험적 구성을 시도한 작품으로, 아홉 편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큰 그림을 그린다." '재능있는 이야기꾼'이란 인상을 주는데, 그래서 같이 떠올리게 된 작가가 최제훈이다. 안 그래도 그의 소설을 '3월의 읽을 만한 책'에 올려놓은 김에 같이 묶어서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사실 켈만의 소설은 세 권이 번역됐고, 최제훈은 두 권의 소설을 발표했기 때문에 같이 묶어야 리스트가 채워진다. 동시대 작가들의 재능을 감상해보는 기회가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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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고양이 눈- 2011년 제44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최제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11년 02월 26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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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르발 남작의 성
최제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9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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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2월 26일에 저장

명예
다니엘 켈만 지음, 임정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2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11년 02월 26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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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재다
다니엘 켈만 지음, 박계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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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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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3.1절에 '3월의 읽을 만한 책'을 꼽았던 듯싶은데, 며칠 앞당겨본다. 아직 꽃샘 추위를 남겨놓고 있지만 이미 봄은 문턱에 있기도 하고. 한달 넘게 끌던 원고들을 어제 넘긴 터라 잠시(아주 잠시!) 휴식도 취하는 김에 '이달의 읽을 만한 책' 구경에 나선다. 방송용어를 빌리자면 '밧데리 교체 타임'이라고 해야 할까. 언제나처럼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선정도서 목록에 두 권씩 보태놓는다.   

1. 문학   

정과리 교수가 고른 책은 지난해 우리 곁을 떠난 이윤기 선생의 유고 산문집/소설집이다. <위대한 침묵>(민음사, 2011)와 <유리 그림자>(민음사, 2011). 번역서를 보태자면 <천로역정>(섬앤섬, 2010)도 있다. 정 교수는 고인이 무엇보다도 '후각적인 존재'였다고 평하고 이렇게 적었다. 

이윤기의 고유한 문체는,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그이의 문장 한 줄만으로도 독자의 머리 속에 꽤 특별한 글 세상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였다. 게다가 후각은 또한 깊이 스며드는 감각이다. 그래서 거기서는 “정신과 감각의 혼융”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윤기의 글은 느낌이 곧 지성이고, 지성이 곧 느낌인 글이었다. 그래서 그이는 없어도 있었고, 조금 있어도 많이 있었다.

 

이윤기 소설집 얘기에서 신예 작가 최제훈이 떠올려지는 이유는 모르겠다. 데뷔작 <퀴르발 남작의 성>(문학과지성사, 2010)이 뛰어난 '번역소설'이란 평을 들었던 기억 때문인가. 새 소설집 <일곱 개의 고양이 눈>(자음과모음, 2011)도 그가 여간한 작가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고. 요즘 소설의 트렌드도 확인할 겸 독서목록에 올려놓아도 좋겠다.   

 

2. 역사 

김기덕 교수의 추천도서는 김인희의 <1,300년 디아스포라, 고구려 유민>(푸른역사, 2010)이다. 요지는 이렇다고 한다. 간추린 요지에서도 저자의 발품이 느껴진다.

668년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당한 후 669년 20만 명에 이르는 고구려 유민이 중국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그 중 10만 이상으로 추정되는 고구려인은 강회, 산남과 같은 중국 남방으로 이주해야 했다. 이 책은 그 중국 남방으로 이주한 고구려 유민이 현재 중국의 56개 민족 중 인구수가 5번째로 많은 먀오족을 형성한 중심세력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복식, 장식품, 축제, 혼례, 상례, 체질인류학 등 19가지의 증거를 들고 있는데, 그것은 그대로 이 책의 목차를 구성하고 있다. 

 

한편 최근 설문조사에서 한국 성인의 35% 가량은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역사책을 읽은 적이 없다고 한다.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전5권)>(웅진지식하우스, 2011) 시리즈로 기억을 돌이켜보는 것도 좋겠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이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추천한 책은 줄리언 바지니의 <가짜 논리>(한겨레출판, 2011)다. 어떤 내용의 책인가는 아래의 사례가 잘 말해준다.   

매일 아침 해가 뜰 때마다 모이를 먹었던 칠면조는 “나는 늘 해가 뜰 때마다 모이를 먹는다”는 보편법칙을 수립한다. 그러나 어느 날 목이 비틀려 죽고 만다. 버트런드 러셀의 귀납적 오류에 관한 이야기다. 오랫동안 일정한 현상을 반복 경험하면, 그것이 일반화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오류라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오류로부터 해방될 때 우리는 진정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줄리언 바지니는 <빅 퀘스천>(필로소픽, 2011)의 해제를 쓰면서 알게 된 철학자인데, 의외로 국내에 책이 많이 소개돼 있었다. 영국에선 '가장 대중적인 철학자'란 평판을 얻고 있다고(음, 알고 보니 나와 동갑내기다). 개인적으론 수다스럽지 않은 <빅 퀘스천>이나 <무신론이란 무엇인가>(동문선, 2007) 등에 더 끌리지만 <가짜 논리>에 구미가 당긴다면 <호모 사피엔스, 퀴즈를 풀다>웅진지식하우스, 2009)를 연이어 손에 들 수도 있겠다.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추천한 책은 박명준의 <사회적 영웅의 탄생>(이매진, 2011)이다. "독일에서 성공한 사회적 기업가 14인을 직접 인터뷰해서 그들의 성장과 활약상 및 비전을 소개"하는 책이다. 그러고 보니 사회적 기업에 관한 책이 최근 몇년간 꾸준히 나온 듯싶다. 정인철의 <빅 소사이어티>(이학사, 2011)과 무하마드 유누스의 <사회적 기업 만들기>(물푸레, 2011)이 최근에 같이 나온 책들이다.   

더듬어 올라가면, 기억엔 유병선의 <보노보 혁명>(부키, 2007)이란 책이 있었다. 그리고 데이비드 본스타인의 <달라지는 세계>(지식공작소, 2008)이 화제를 모았고, 전 세계 사회적 기업가들과의 만남을 다룬 <아름다운 거짓말>(북노마드, 2008)도 나왔었다. <사회적 영웅의 탄생>의 전사라 할 만하다. 어느 책이 가장 요긴한 가이드 역할을 해주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테마 서평거리로 한번 고려해봄직하다.   

5. 경제/경영 

박원암 교수가 고른 책은 댄 애리얼리의 <경제심리학>(청림출판, 2011)이다. 저자는 <상식 밖의 경제학>(청림출판, 2008)으로 소개된 바 있는 듀크대 경제학과 교수. 경제학에서 '비합리적' 심리와 행동 패턴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관심사인 듯하다. <경제심리학>의 원제도 'The Upside of Irrationality'이다. 간단한 소개는 이렇다.   

저자는 2008년에 이미 베스트셀러가 된 <상식 밖의 경제학>을 출간하여 인간 행동이 매우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임을 강조한 바 있다. 이 책에서도 비합리성을 강조하지만 앞선 저서와는 달리 비합리성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여주려 한다. 인간의 비이성이 우리의 습관, 데이트 상대의 선택, 일터에서의 동기의식, 기부행위, 물건이나 아이디어에 대한 애착, 적응력, 복수욕 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흥미 있는 실험 결과를 통해 보여준다.

   

경제학에서 (비합리적) 감정을 변수로 다룬 책이 또 없는 건 아니다. 아예 이 분야를 '이모셔노믹스'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 댄 힐의 <이모셔노믹스>(마젤란, 2011)란 책을 보건대 그렇다. 이건 원제 자체가 'Emotionomics'이다. 저자는 소비자 행동에서 감각(바디)의 문제를 주로 연구해온 마케팅전문가라고.   

6. 과학 

과학분야의 책은 최준곤의 <행복한 물리여행>(이다미디어, 2011)이다. 이런 '여행' 시리즈는 워낙에 많이 나왔었기에 어떤 특징이 있는 건지 궁금한데, 장경애 동아사이언스 실장에 따르면 "이 책이 기존의 과학 상식 책과 다른 점이 바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호기심이다. 학생들에게 현상을 설명하려고 글을 썼다기보다 개인적인 관심과 흥미를 덧붙여 ‘자신이 궁금한 것을 해결한 비밀노트’ 같은 느낌이다." 일간지에 연재한 '생활 속의 과학' 칼럼을 묶은 것이라고.  

<행복한 물리여행>은 청소년 과학도서로도 분류되는데, 서울과학교사모임에서 지은 <시크릿 스페이스>(어바웃어북, 2011)도 학생들이라면 챙겨둘 만하다. "지퍼, 전자레인지, 프린터, 바코드, 3D영화 등 늘 사용하는 물건과 그 물건을 통해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함으로써 어려운 과학원리를 쉽게 풀어내고 있다." 거기에 보태자면 '이윤석의 웃기지 않는 과학책' <웃음의 과학>(사이언스북스, 2011)도 부담없이 읽을 만한 책이다. 개그맨이자 신문방송학 박사인 저자가 '웃음의 과학'을 총정리했다.  

 

한편 개인적으로 '웃음'하면 떠올리게 되는 책은 베르그송의 <웃음>인데, <웃음의 과학>의 참고문헌에 빠져 있어서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국내에 3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지만 어느 사이엔가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돼버린 듯하다...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고연희의 <그림, 문학에 취하다>(아트북스, 2011)이다. 부제는 '문학작품으로 본 옛 그림 감상법'. 저자는 우리 옛그림에 관한 책들을 꾸준히 펴내고 있다. 몇 페이지만 둘러봐도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책 자체가 고급스럽게 느껴진다.    

그림을 읽어보기로 '작정'한다면, 인상파부터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이택광의 <인상파, 파리를 그리다>(아트북스, 2011)로 '산책'의 걸음을 떼고 존 리월드의 <인상주의의 역사>(까치글방, 2006)로 무게를 보탠 다음에 홍석기의 <인상주의>(생각의나무, 2010)으로 '학술'까지 카바하는 여정이 한 가지 코스이다.   

8. 교양 

철학자 탁석산의 교양서는 토마스 크로웰의 <역사를 수놓은 발명 250가지>(현암사, 2011)이다. '250'가지나 다루고 있으니 '527쪽'의 분량이 오히려 '겸손'해 보인다. 추천의 이유는 이렇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수많은 발명품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너무나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를 잡아 이제는 그것이 역사를 바꾼 획기적인 발명품이라는 것도 잊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보면 에어컨, 안전면도기, 파리채, 손목시계, 포스트잇 등등의 역사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꼭 이런 것을 알아야 하는가? 알아도 몰라도 그만인 것 아닌가. 네모난 종이 봉지를 마거릿 나이트가 발명했다는 것을 몰라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빵을 살 돈이 우선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책이 필요한 것은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굳이 인용한 것은 '알라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지식'이 추천자의 교양관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교양/지식을 편애한다(그렇게 치면 사실 '목숨 걸고' 읽어야 하는 책은 많지 않다).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모멘토, 2011)도 '알라도 그만 몰라도 그만'일까? 혹 아는 게 유익하다 싶다면 <우리가 먹고 사랑하고 혐오하는 동물들>(살림, 2011)에 대해서 좀더 읽어봐도 좋겠다.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고른 책은 박상진의 <우리 나무의 세계 1,2>(김영사, 2011)이다. 이미 지난달에 '2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꼽아놓은 책이다. 저자는 <궁궐의 우리나무>(눌와, 2001)의 저자. 추천자는 책의 의의를 이렇게 짚는다. 

이 책에는 목재조직학자, 수목학자로서 40년을 보낸 저자의 학문적 열정이 담겼다. 1000여 종이 넘는 우리나라 나무 가운데 일반인들이 접할 수 있는 242종의 나무에 대한 식물학적 정보에다 문화적 의미를 보탰다. 그래서 우리는 또 하나의 든든한 텍스트를 곁에 두면서 알뜰살뜰 나무 공부를 할 수 있게 됐다.

'이달의 책'을 고를 때마다 '실용'이란 범주를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데, 소설가 김연수의 말대로 '모든 책은 실용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 역사, 철학... 과학... 이렇게 나가다가 '모든 책', 이런 게 말이 되는 건가? 그런 시비를 가리는 게 내 소관은 아닐 터이므로 나대로 '실용서'를 보태자면 폴 콜린스의 <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양철북, 2011)을 들겠다. '상식의 탄생과 수난사'가 부제. 며칠전 관련기사를 포스팅해놓기도 했지만 덕분에 페인의 <상식, 인권>(필맥, 2004)에 관심을 갖게 됐으니 내겐 '실용'이 있는 셈. 덧붙에 유골 훔치기에 관한 책으로 패트릭 기어리의 <거룩한 도둑질>(길, 2010)에도 관심을 갖게 했다. '중세 성유골 도둑 이야기'이다. 한때 도굴범에 관한 뉴스가 심심찮게 등장했고 그걸 소재로 한 영화도 만들어진 나라에서 재미있는 '유골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것은 의아한 일이다. 내가 모르는 책이 있는 건가..  

 

10. 세계철학사  

내 맘대로 고르는 책은 주제를 '세계철학사'로 잡았다. 물론 이번에 나온 이정우의 <세계철학사1>(길, 2011)을 염두에 둔 것이다. 전체 3부작으로 기획된 '세계철학사' 시리즈의 1권이 나온 것인데, 부제가 '지중해세계의 철학'이다. 연이어 나올 2권은 '아시아세계의 철학', 3권은 '근현대 세계의 철학'이 될 것이라고 한다. 완간된다면 그 시도만으로도 기념비적인 저작이 되지 않을까 한다. 저자가 '여는 말'에 적고 있듯이 <세계철학사>란 타이틀 달고 나와 있는 기존의 책들, 가령 한스 요아힘 슈퇴리히의 <세계철학사>(자음과모음, 2008)이나 소비에트과학아카데미의 <세계철학사>는 '서구철학사'에다 중국과 인도 철학사 정도를 '얹은' 형태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세계'를 다루고 있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철학사' 기술 시도는 흥미를 끈다. '지중해철학'을 부제로 내건 만큼 클라우스 헬트의 <지중해 철학기행>(효형출판, 2007)과 같이 읽으면 더 '입체적인' 독서 여행이 될 듯싶다. 

11. 02. 26.  

P.S. '3월의 읽을 만한 고전'으론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고른다. 세계문학전집류 쪽에서는 아직 새 번역본이 나오지 않고 있어서 현재로선 김석희 번역의 <모비딕>(작가정신, 2010)이 가장 신뢰할 만한 듯싶다. 부피와 가격이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아무튼 3월에는 '바다 구경'을 좀 할 수 있을 듯싶다. 아니 그렇게 하려고 한다. 바닷바람 좀 같이 쐬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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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 책들이 연이어 나온다고 며칠 전에 적었는데, 한국문학에서 동물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읽어주는 칼럼이 있어서 옮겨놓는다. 지난주 한겨레21의 '신형철의 문학사용법'이 다루고 있는 주제다. '우리에게 동물이란 무엇인가'를 한번 더 묻는다. 

한겨레21(11. 02. 25) 생명경시 시대를 향한 탄원서

구제역 얘기다. 지금까지 300만 마리가 넘게 파묻혔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나. 첫째, 더 싼값에 더 많은 고기를 먹겠다는 인간의 욕망(주요 육류 소비량은 20년 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둘째 동물을 대규모로 사육하고 도살하는 이른바 ‘공장식 축산업’의 전면화(그 탓에 구제역은 빠른 속도로 퍼진다), 셋째 잡아먹기 좋은 동물만을 기르기 위한 선별 교배와 품종 개량(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들어 바이러스에 약해졌다)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구제역 사태를 낳았다고 알고 있다(844호 초점 ‘육식인간의 탐욕이 부른 재앙’ 참조).

예방 체제 확립이나 사후 관리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육식’이라는 필요(욕망)에 대한 성찰일 것이다. 멜라니 조이는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에서 ‘육식주의’(Carnism)라는 신조어를 제안한다. 채식주의라는 말은 있는데 왜 육식주의라는 말은 없는가? 채식은 특별한 신념이고 육식은 당연한 것이라는 오도적인 전제 때문이라는 것. 육식주의에 대한 논의보다 더 근본적인 것도 있을까? 그것은 아마 인간이 동물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윤리학적 논제일 것이다. 문학은 이 층위에 개입한다.  

“이 몸은 다섯 번 죽고 다섯 번 살아났다.” 황정은의 단편소설 ‘묘씨생’(猫氏生)(<2011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의 첫 문장이다. 죽어도 자꾸만 다시 태어나는, 이름이 ‘몸’인 특별한 길고양이의 자전적 고백이 소설을 이끈다. 길고양이의 천적은 인간이라서 ‘몸’ 역시 세 번 이상을 인간 때문에 죽었다. 그래서 ‘몸’의 묘생(猫生) 역정 고백은 고스란히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폭로가 된다. 소설 후반부에서 ‘몸’은 결국 인간의 잔혹한 손에 붙들려 또 한 번 죽음을 맞는다. 목숨이 곧 저주인 생이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은 마음이 아파 차마 옮기지 못하겠다.

모든 좋은 소설이 그렇듯 이 소설의 호소력도 정의로운 메시지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소설 미학의 측면에서 이 작품의 포인트는, 흔히 비천하다 여겨지는 길고양이의 내레이션을, 고귀한 이의 일생을 기록하기에 적합한 고전한문학 문투에 얹었다는 점에 있다. 덕분에 독자는 길고양이에 대한 편리한 통념이 궁지에 몰리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이 고양이 화자의 목소리가 기품 있고 의연할수록, 그를 파괴하는 인간의 비천함은 더욱 도드라지고, 이 소설을 인간으로서 읽는 독자의 수치심은 가중된다. 이렇게 어떤 미학은 윤리학이 된다.  

한편 허수경의 새 시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에는 어느 양(羊)의 삶과 죽음을 기록한 ‘카라쿨양의 에세이’라는 장시(長詩)가 있다. “아기의 연하고도 부드러운 가죽털을 얻기 위하여 인간들은 이제 수태 시기가 임박한 어미를 죽여 그 자궁에서 아기를 끄집어낸다. 그 아기의 털가죽을 벗긴다. 그 털가죽은 페르시안이라고 불리우는 고급 가죽이 된다. 검은 아기 털가죽. 아직 양수가 묻어 촉촉한 그 가죽. 그 가죽을 위하여 어미와 아기는 도살되는 것이다.” 시집에서 가장 긴 이 시를 시인은 한달음에 썼다고 했다. 그럴 수 있게 한 에너지는 슬픔과 분노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의 문장은 냉혹한 인간 경제학의 언어를 되비추듯 건조하다. “그 산 작은 풀밭에서 봄과 여름, 가을을 났던 채식하는 포유류는 이제 목으로 들어오는, 그리고 정확히 자궁 근처를 지나가는 날카로운 칼을 받는다.// 뱃속에 든 아가는 더운 숨을 품어내며 이 지상으로 나와서는 컴컴한 어둠 속에서 젖꼭지를 찾을 것이다. 그러나 아기는 젖꼭지를 찾기도 전에, 그리고 단 한 번도 젖꼭지를 물어보기도 전에 한 생명이었다는 본능적인 원기억만을 지니고 죽는다.” 폭력이 반복되면서 죄의식이 망각되는 사태에 대한 시인의 아연함이 ‘칼을 받는다’라는 현재형 문장에 응축돼 있다.

우리에게 동물이란 무엇인가. 그간 한국 문학은 이 물음을 충분히 묻지 못했다. 앞의 두 작품은 예외적인 고투다. 그러나 이 작품들의 의의가 저 물음에 갇히는 것은 아니다. 동물을 깊이 성찰하는 문학은 필연적으로 인간을 성찰하게 된다. 동물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사회가 인간의 생명을 귀하게 여길 리 없는 것이다. 위기는 늘 생명 일반의 층위에서 발생할 것이다. 두 작품은 동물에 대한 절박한 동일시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욕망에 대한 진지한 근심이고, 결국 우리 시대 생명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탄원이라고, 나는 읽었다.(신형철_문학평론가)  

11. 02. 24.  

P.S. 구제역 사태와 최근 출간된 동물/육식주의 관련 서적을 중심으로 돼지와의 가상인터뷰를 꾸민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의 기사도 필독할 만한다. 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10225141920&Section=0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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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5 06: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28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