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은 대개 가장 편안한 시간이지만 원고가 밀린 날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꼽으며 잠시 기분을 내본다. 어느덧 6월이고 여름이다. 오며가며 타고다니는 버스도 에어컨을 켜지 않지만 후덥지근하기에 체감으론 이미 여름이지만. 이 여름엔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  

 

1. 문학 

정과리 교수가 고른 건 필립 딕의 <화성의 타임슬립>(폴라북스, 2011)이다.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Library of America)’에 포함돼 화제가 되기도 했던 ‘필립 K. 딕 걸작선’(12권)이 나오고 있고 <화성의 타임슬립>은 그 첫 권이다. <죽음의 미로>, <닥터 블러드머니>가 같이 나왔다. 표지만으로도 탐을 내게 하는 시리즈이다.     

 

덧붙이자면 나보코프의 소설 <절망>(문학동네, 2011)이 세계문학전집의 하나로 출간됐다. '문학사상 가장 아름다운 미스터리'란 소개문구를 달고 있는데, 내가 붙인 추천사는 이 나보코프판 <분신>이 "나보코프가 도스토옙스키에게 던진 강력한 도전장"이란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열린책들)은 <이중인격>(누멘, 2010)으로도 번역돼 있다.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추천한 책은 정현백/김정안의 <처음 읽는 여성의 역사>(동녘, 2011)이다. 책의 의의에 대해선 이렇게 짚는다. "여성사 분야의 많은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사 입문서가 나오지 못한 실정이었고, 그동안 몇 권의 번역서가 있을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제목처럼 한국인에 의해 처음 시도된 여성사 책이어서 무척 반갑다. 이 책은 고대에서 현대까지 서양 여성사의 흐름을 개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공저자의 한 사람인 정현백 교수의 <여성사 다시쓰기>(당대, 2007)이 여성사의 문제성과 실제를 보여주는 책이라면 조선 여성의 살을 다룬 정해은의 <조선의 여성, 역사가 다시 말하다>(너머북스, 2011)는 "조선 시대를 살았던 25인의 여성과 무명의 여성들에 대한 해석을 담았다".    

개인적으론 '20권으로 읽는 20세기 한국사' 시리즈 가운데 <이승만과 제1공화국>(역사비평사, 2007), <박정희와 개발독재>(역사비평사, 2007), <전두환과 80년대 민주화운동>(역사비평사, 2011)도 스트레이트로 읽어봄직하단 생각이 든다. 80년대까지도 '역사'로 바라보게 된 시점에 도달해 있는 셈인데, 90년대 이후의 역사도 '20권'에 포함돼 있는지 궁금하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추천한 책은 오가와 히토시의 <철학의 교실>(파이카, 2011)이다. "저자는 고전철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일반인에게 쉽게 철학적 사고의 전개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철학적 고전에 대한 확실한 이해에 기초하면서 쉽게 풀어나가는 필력이 힘있게 펼쳐지는 작품"이라는 평이다. 철학교실에서의 문답식 철학이라면 피터 케이브를 강사로 초빙해도 좋을 듯한데,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철학적 이유>(어크로스, 2011)가 최근에 나온 책이다(물론 원제는 좀 다르다).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마젤란, 2009)라는 물음에서 철학을 이끌어내고 있으므로 '어려운 철학'이란 핑계는 대기 어렵겠다.    

'리더스 가이드'를 표방하는 철학 입문서 시리즈도 번역되고 있는데, 크리스토퍼 원의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입문>(서광사, 2011)과 존 프레스턴의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해제>(서광사, 2011)가 같은 시리즈의 원저를 번역한 책들이다(어째서 어떤 건 '입문'이고 어떤 건 '해제'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유사한 성격의 책으론 제임스 윌리엄스의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라움, 2010)도 꼽을 수 있다. <차이와 반복>(민음사, 2004)에 대한 '해설과 비판'을 시도한 책이다.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추천한 책은 김혜원의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오마이북, 2011)이다. 나로선 좀 생소한 책인데 소개는 이렇다. "탈식민주의를 연구하는 어느 학자가 <하위주체[소외된 자]는 말할 수 있는가?>라는 글을 써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바 있다.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인 김혜원씨가 열두 명의 독거노인들로부터 들은 절절한 인생이야기를 모아 놓은 이 책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우리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위주체'는 '서발턴'의 번역어로 쓰이는 말이다. 탈식민주의 역사학 쪽에서 소개한 책들이 눈에 띄는데, 김택현 교수가 쓴 <서발턴과 역사학 비판>(박종철출판사, 2003), 라나지트 구하의 책을 옮긴 <서발턴과 봉기>(박종철출판사, 2008)이 '서발턴'을 제목에 걸었다.   

5. 경제/경영 

박원암 교수가 고른 책은 감요식의 <소셜 리더십>(미다스북스, 2011). 제목상으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의 리더십을 다룬 책으로 보인다. "소셜 네트워크에 대해 많은 책이 출간되었으나 저자는 이 분야의 다양한 저작과 강의 활동을 바탕으로 독자들이 부담 없이 읽으면서 소셜 네트워크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고. 같은 컨셉의 책으론 김대중의 <소셜리더가 되라>(다음생각, 2011)도 있다. 소셜 미디어와 기업활동에 관해서는 에릭 퀼먼의 <소셜노믹스>(에이콘출판, 2009)도 참고해볼 수 있겠다. 2년전 책이면 이미 낡은 것인가?   

6. 과학 

장영애 동아사이언스 실장이 고른 책은 조나단 해링턴의 <기후 다이어트>(호이테북스, 2011). 제목과 표지 모두 생소한데, 이런 의미를 갖고 있다 한다. 

지구온난화 문제는 이제 새삼 거론할 필요 없이 우리의 삶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세계 각국은 기후 문제를 국가 아젠다로 정하고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일 수 있는 정책과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 인간의 활동이나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직접 또는 간접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총량을 뜻하는 ‘탄소발자국’이라는 용어가 알려지면서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일이 대규모 공장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해야 하는 일임이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구온난화를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 내 탄소발자국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해 봤지만 ‘어떻게?’에서 막혔다면 이 책은 정말로 도움이 된다. 

지구온난화 혹은 기후변화 문제가 중요한 이슈인 건 틀림없지만, 심각성/시급성으로 보자면 원전 문제가 더한 듯도 하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의 <원자력 딜레마>(사이언스북스, 2011)가 다루고 있는 문제다. 이미 '딜레마'란 말에서 저자의 입장은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는 있다.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추천한 책은 강판권의 <미술관에 사는 나무들>(효형출판, 2011)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우선 나무를 부모처럼, 아내처럼, 친구처럼 대할 줄 알게 되는데, 이렇듯 나무를 보는 감수성의 눈이 깊고 넓어지면 그림을 보는 시각도 더불어 확장되는 것 같다."는 소감을 적었다. 저자 강판권 교수는 중국의 농업경제사가 전공이라지만 지금은 '나무학'의 권위자라고 해야 하지 않나 싶다. 혹 '나무대학'이란 곳이 있다면 학장님 감이다.   

8. 교양 

철학자 탁석산이 고른 교양서는 지상현의 <한국인의 마음>(사회평론, 2011)이다. 부제는 '우래된 미술에서 찾는 우리의 심리적 기질'. 저자는 그 심리적 기질이 '조울증형'이며 '매닉친화형'이라고 말한다. 소개에 따르면 "매닉친화형이란 조울증의 병전(病前) 기질을 일컫는다고 하는데 이 개념을 이용하면 흥, 신명, 해학 등 한국인의 외향성과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인의 내향성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 주장인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한국인의 마음을 다룬 또다른 책으론 정운현의 <정이란 무엇인가>(책보세, 2011)도 있다. "'다정도 병이 되는 세상'에서 우리네 정의 의미를 되짚어본 정에 관한 종합 담론서"라고 소개되는 책이다. 개인적으론 탁석산의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창비, 2008)를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는데(특히 한국인의 허무주의를 설명하는 대목), 한국인의 마음을 다룬 책들도 우리 자신을 새롭게 돌아보게 해줄지 궁금하다.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고른 실용서는 한기호의 <베스트셀러 30년>(교보문고, 2011)이다. 1981년부터 교보문고가 집계한 베스트셀러를 바탕으로 한국출판 30년의 기상도를 압축한 책. 전두환시대부터 현재까지의 한국사회를 들여다보는 한 가지 유력한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10. 자유론 

내 맘대로 고르는 주제는 '자유'로 정했다. 밀이나 벌린의 <자유론>이 아니라 일본 학자들의 <자유론>이다. 사이토 준이치의 <자유란 무엇인가>(한울, 2011)가 시발점인데, 기본문헌 안내에서 눈여겨본 책들이 예전에 번역됐거나 이제 막 번역된 참이어서 같이 묶어보았다. 이노우에 타츠오의 <타자에의 자유>(아침, 2008)와 사카이 다카시의 <통치성과 자유>(그린비, 2011)가 그렇게 묶인 책인데, <통치성과 자유>의 원제는 <자유론: 현재성의 계보학>이다.  

11. 05. 28.  

P.S. 개인적으로 '6월의 읽을 만한 고전'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숲, 2007)로 골랐다. 군말이 필요없는 작품이다. 강대진의 <일리아스, 영웅들의 전장에서 싹튼 운명의 서사시>(그린비, 2010)가 유용한 안내서이다. <처음 읽는 일리아스>(웅진지식하우스, 2006)도 가이드삼아 구해놓았는데, 항해사에 딸린 작살잡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하튼 6월은 전장에서 보내게 될 듯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곧 여름방학이 되면 미술관 순례를 위해 유럽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적잖다. 한번도 그런 마음을 품어본 적은 없지만 서점이나 도서관 순례라면 한번 더 생각해볼 것 같다. 유럽의 명문서점을 안내하는 책, 라이너 모리츠의 <유럽의 명문서점>(프로네시스, 2011)을 우선은 읽어본 다음에... 

 

한겨레(11. 05. 21) 박물관·미술관 뺨치는 개성만점 ‘명문’ 서점들

“정말 멋진 서점들은 무자비한 도시계획에 밀려나거나 파산하여, 우리 기억 속에만 인상 깊게 남아 있을 뿐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독일 출판계에 오래 몸담아온 라이너 모리츠는 이렇게 적었다. 유럽도 다르지 않은가 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동네책방은 거의 멸종 단계에 접어든 듯하고, 대학가에도 서점이 사라진 지 오래다. 입시용 참고서와 문제집, 취업과 자격증을 위한 책들로 연명하는 서점들이 드문드문 남았을 뿐이다. 대신 도시 한복판에는 거대한 서점들이 대형 백화점처럼 좌판을 넓게 펼치고 있다.

그래서 라이너 모리츠의 아쉬움은 우리에겐 배부른 소리처럼 들린다. 그가 유럽의 독특하고 유명한 서점 20곳을 뽑아 소개하는 책 <유럽의 명문서점>은 괜찮은 서점조차 찾기 어려운 우리 독자들에겐 ‘서점의 로망’을 불러일으키고도 남는다. 아직도 이런 서점들이 버티고 있는데 서점의 몰락을 걱정하다니 말이다. 



책이 소개하는 명문 서점들은 아름다운 인테리어 자체로도 눈길을 끌지만, 서점이 들어선 공간이 독특한 점에서도 발상의 전환을 보여주는 곳들이 많다. 화려한 쇼핑가의 한가운데 있는 서점, 퇴근길 전차철로 고가 아래에 자리잡은 서점, 교회 건물을 서점으로 바꾼 서점 등등이 이어진다. 

수십년에서 수백년에 이르는 역사를 지닌 서점들은 첨단 시스템을 갖춘 곳도, 오래 묵은 박물관 같은 곳도 있다. 고서점에선 책에서만 만나온 옛 명사들의 흔적이 가득하고, 미술사에 등장하는 천장화를 감상할 수 있는 서점도 있다. 라이너 모리츠의 말마따나 이 책에서 ‘노스탤지어’만 확인하게 되는 건 아니다. 고객 전용 서가를 제공하는 곳도 있으며, 에코백 유행을 불러일으킨 서점도 있다.  

이런 명문 서점들의 흥미진진한 면모는 텍스트를 넘어 전문 사진작가 두명이 찍은 사진들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유럽 여행 가이드북으로 삼아도 좋을 듯 싶다. 책 뒤편에는 스무곳의 주소와 연락처 등 외에 이밖에 더 가볼 만한 서점들을 소개해뒀다. 지도가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다.(김진철 기자)  

11. 05. 27. 

 

P.S. 서점 이야기로는 루이스 버즈비의 <노란 불빛의 서점>(문학동네, 2009)도 챙겨놓아야겠다. "이 책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고대 로마, 6세기의 중국 등 역사의 구석구석을 간단없이 누비며 서적판매업이 어떻게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는지 상세하고도 매혹적으로 서술해놓았다. ‘관능적인 독서 공간’에 관한 세밀한 고증이자 애정의 기록"인 책. 도서관쪽으로도 책들이 나와 있다. 유종필 전 국회도서관장의 <세계 도서관 기행>(웅진지식하우스, 2010)에서 가보고 싶은 도서관들의 리스트를 얻을 수 있다. 최정태 교수의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한길사, 2011)도 최근에 개정판이 나왔다.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들이 발로 쓴 <유럽 도서관에서 길을 묻다>(우리교육, 2009)란 책도 나와 있는 건 이번에 알았다. 도서관에는 다 비치돼 있을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雨香 2011-05-27 12:47   좋아요 0 | URL
신문에서 소개기사를 읽고 아쉬어 했습니다. 3년전에 파리(2박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2년전에 런던을 다녀온 터라 일찍 나왔으면 좋았었을텐데요.
미국에서 별 유명하지 않은 대학 도서관에 잠깐 들렀다가 깜짝놀랐습니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도서관 모습에 .. 우리로써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서점, 도서관 문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로쟈 2011-05-28 07:38   좋아요 0 | URL
관심과 열의만큼의 문화를 갖는 것이죠...

Daniel 2011-05-28 04:37   좋아요 0 | URL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읽고는 유럽 여행을 책마을들 위주로 꼭 한번 가고싶다했는데 더 갈 곳이 많았졌네요^^;;

로쟈 2011-05-28 07:36   좋아요 0 | URL
네, 책마을도 있었지요. 찍을 곳이 너무 많네요.^^;
 

직장인이라면 이제 막 점심메뉴를 골랐거나 골라야 할 시간이겠다. 이번주에 나온 폴 그린버그의 <포 피시>(시공사, 2011)에 눈길이 갔다면 생선구이나 참치 전문점 쪽으로 발길이 가지 않았을까. '포 피시(Four Fish)', 말 그대로 네 종류의 물고기가 주인공인 책이다. 부제는 '네 종류 물고기를 통해 파헤친 인간의 이기적 욕망과 환경의 미래'. 제목에다 쓴 연어, 농어, 대구, 참치가 우리의 '빅4'다.

   

번역본 표지는 낚시를 연상시키지만, 원저는 생선 시장이나 마트의 생선 코너 분위기다. 아무려나 제목만으로 '오늘의 책'에 값한다(순수한 책벌레의 입장에서 나는 이런 책을 좋아한다. '로쟈의 낚시'에 잘 부합하기도 하고). 저자의 발상이 특별하진 않으면서도 참신한데, 소개는 이렇다.  

작가이자 평생 낚시를 하며 살아온 폴 그린버그는 우리의 식탁을 장악해온 연어, 농어, 대구, 참치의 역사를 탐험하는 여정으로 우리를 인도하면서 이 중요한 변화의 시기에 물고기가 어떤 상태에 처했는지 밝히고 있다.

맘에 드는 책이 나온 만큼 원서의 이미지를 찾아봤다. 실제 크기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키워보면 아래와 같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위에서부터 차례로 연어, 참치, 농어, 대구다. 물론 한국인이 더 좋아하는 고등어나 갈치, 삼치 등이 주인공은 아니지만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보자면 이들이 '빅4'란 얘기다.   

 

책 대신에 생선들을 서재에 올려놓으니(서재의 좌판화?) 날씨따라 궂은 마음이 조금 펴지는 기분이다. 비록 점심메뉴가 생선구이는 아니더라도... 

11. 05. 26.  

P.S. 네 종류 물고기 가운데, 대구는 마크 쿨란스키 덕분에 이미 조명을 받은 바 있다. <세계를 바꾼 어느 물고기의 역사>(미래인, 1998) 정도되면 대단하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은 절판된 책이군...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1-05-26 14:23   좋아요 0 | URL
말씀대로 번역본 표지는 좀 덜 싱싱해 보이네요 ㅋㅋ 오늘은 대구탕이 당겨서 그런지 대구가 유독 반가운데요^^

로쟈 2011-05-27 08:33   좋아요 0 | URL
네, 원서의 표지가 훨 싱싱해보이는데 말이죠...

雨香 2011-05-27 12:51   좋아요 0 | URL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인지 구미가 당기는 책입니다. 음식에 관심을 두다 보니 음식이라는 것이 사회,문화,역사,자연을 모두 품고 있다는 생각에 미치고 있습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로쟈 2011-05-28 07:40   좋아요 0 | URL
전 어제 서점에 들렀는데, 허탕치고 왔습니다.^^;
 

문학평론가 백낙청 선생의 새 평론집이 나왔다.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창비, 2011). 기사를 보니 첫 평론집인 <민족문학과 세계문학1>과 <인간해방의 논리를 찾아서>도 합본호로 재출간됐다. 말 그대로 '백낙청 비평의 어제와 오늘'을 한꺼번에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마침 내달에 '문학들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의할 일이 생겼는데, 유용한 참고가 될 듯하다.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알라딘에는 아직 입고가 안 됐는지 이미지가 뜨지 않는다).  

  

한겨레(11. 05. 26) 문학, ‘촛불’ 앞에 당당할 수 있나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2007년 이후 쓴 문학평론들이 제1부에 실렸고, 찰스 디킨스와 토머스 하디, 조지프 콘래드 같은 영국 작가들을 다룬 글들이 2부로 묶였다. 이 가운데 표제 평론인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은 ‘촛불과 세계적 경제위기의 2008년을 보내며’라는 부제가 가리키듯 2008년 한국을 뒤흔든 촛불 집회를 지켜보면서 문학이 당대 현실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점검한다.

백 교수는 “평론가들이 자기네끼리만 읽히는 글쓰기로 자족하고 작가들조차 상당수가 그런 평론에 언급되기 위한 작품만 쓰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며, 지금이야말로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다시 던져야 하는 때라고 주장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가 강조하는 것이 ‘사실주의’와 ‘리얼리즘’의 구분이다.  

오늘날 평론가들이 사실주의와 리얼리즘을 엄격히 구분하지 않고 리얼리즘을 낡은 것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그는 ‘자연주의적 모사론’으로서의 사실주의와 이를 극복한 심화된 리얼리즘을 구분하자는 쪽이다. 그가 보기에 리얼리즘은 “여전한 열쇠말”이다. 그는 일부 작가들이 사실주의적 기율을 ‘함부로’ 어기고 자의적인 묘사와 서사를 되풀이함으로써 독자에 대한 예의를 방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인식 위에서 그는 윤영수의 <소설 쓰는 밤>이 지닌 날카로운 현실비판 정신, 그리고 박민규 소설 <핑퐁>의 경쾌하고 자유분방한 스타일을 높이 평가한다.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과 함께 나온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1/ 인간해방의 논리를 찾아서>에서는 ‘백낙청표 민족문학론’의 초기 형태를 엿볼 수 있다. 1966년 계간 <창작과비평> 창간호 권두논문인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 민족문학론의 전 단계를 보여주는 ‘시민문학론’, 그리고 “‘민족’이라는 단위로 묶여 있는 인간들의 전부 또는 그 대다수의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위한 문학”이라는, ‘민족문학’에 대한 유명한 정의를 담은 ‘민족문학 개념의 정립을 위해’ 등이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1>에 포함되었다면, <인간해방의 논리를 찾아서>에 묶인 글들은 문학평론이라기보다는 나중에 분단체제론 등으로 발전해 나갈 사회과학적 성격의 논문과 시사 칼럼이 대종을 이룬다. 



책을 내고서 25일 낮 기자들과 만난 백 교수는 “첫 두 책을 개정 출간하느라 30, 40년 전에 쓴 글들을 다시 읽어 보았는데, 처음의 문제의식이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스스로 자부한다”며 “그러나 ‘민족문학’이 주제목에서 부제로 내려간 데에서 보듯, 지금은 민족과 민족주의라는 말을 그 전보다 훨씬 조심스럽고 상대적으로 써야 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신실하게 계속 하는 일은 문학하는 사람에게는 긴요하다고 봅니다. 좋은 글을 읽고 생각한 것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것이 비평이라면, 그것은 인문교양의 기본 중의 기본이고 그 중요성은 문명사회의 누구에게나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죠. 평론가란 어디까지나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다음 독자를 위해 자신이 읽은 바를 이야기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11. 05. 2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푸른바다 2011-05-25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이 책이 다시 나왔군요. <인간해방의 논리를 찾아서>는 지금 보니 창비가 아닌 "시인사"라는 출판사에서 나왔었네요. 두 권모두 헌책방에서 구했었습니다. 백낙청 선생의 요즘 글들은 읽다보면 좀 고리타분하단 느낌도 들기도 하지만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에 실린 "시민문학론"은 참으로 포괄적이고 밀도 있는 명문장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다시 출간 된다니 반갑네요. <백낙청 대화록>과 이번에 새로 출간된 평론집을 빼면 백낙청 선생의 저술은 모두 소장하고 있는 셈인데 훨씬 짧은 기간 활동했던 김현 선생에 비해 비교적 저술이 많지 않은 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책이 아직 입고가 되지 않은 듯 인터넷 서점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네요. 책이 깔리기도 전에 신문에서 다루어지는 건 백낙청 선생의 힘일까요? ㅎㅎ

로쟈 2011-05-26 12:27   좋아요 0 | URL
어제 언론인터뷰를 가졌나 봅니다. 보통 서점보다 언론사에 먼저 뿌리긴 하죠...
 

남미의 해방철학자 엔리케 두셀의 <1492년, 타자의 은폐>(그린비, 2011)가 출간됐다. 부제는 '근대성 신화의 기원을 찾아서'. 당초엔 2009년에 출간도서로 예고돼 있었는데, 다소 늦어졌다. <공동체 윤리>(분도출판사, 1990)란 책이 오래전에 나온 바 있으므로 국내에 소개되는 첫 저작은 아니지만 본격적인 의미에서는 '처음'이란 인상을 받는다. 관심도서를 올려놓으면서 한겨레의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시리즈 가운데 '엔리케 두셀' 편을 자료로 옮겨놓는다.    

한겨레(10. 02. 27) 식민성의 세계화…해방철학은 ‘진행형’ 

엔리케 두셀은 1934년 아르헨티나 멘도사에서 태어나 철학을 공부했다. 스페인 콤플루텐세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프랑스 소르본대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대학에서 인류학과 윤리학을 가르치던 중 1973년 극우집단의 살해 위협을 받고 멕시코로 망명했다. 윤리학, 정치철학, 라틴아메리카사상사 분야의 저술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지금도 건축중인 해방철학의 기본 골격을 마련했다. 카를 오토 아펠, 잔니 바티모, 위르겐 하버마스, 리처드 로티, 에마뉘엘 레비나스 등과 지속적으로 철학적 대화를 나누었으며 50여권의 저서와 400편이 넘는 글을 발표했다. 대표적인 저술로는 <해방철학>(1977), <말년의 마르크스(1863~1882)>(1990), <타자의 은닉>(1992), <철학을 넘어서-역사, 마르크시즘, 해방신학>(2003), <정치학에 관한 20개의 명제>(2006), <해방정치학- 비판적 세계사>(2007) 등이 있다.  

혁명 사상에 치명상을 입힌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뒤 인류는 혁명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음을 깨닫고 있지만, 그 후 20년이 채 안 된 시점에서 발생한 월가의 파산은 혁명 이후를 생각하기에도 너무 성급한 시점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포스트­’(post­)라는 접두어의 범람은 옛것은 사라지는데 새로운 것은 나타나지 않는 시대적 불안을 보여주는 뚜렷한 징표다. 마르크스에게 혁명이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면, 베냐민에게 혁명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역사를 멈추게 하는 제동장치였다. 세계 도처에서 목격되는 사회적 불의와 생태계의 파괴는 좌우를 불문하고 패러다임의 전환이라 부를 만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마르크스와 ‘더불어’, 마르크스를 ‘비판했던’ 베냐민의 새로운 혁명 개념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새로운 혁명 개념은 1960년대 말 서구 근대성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서구 근대성의 본산인 유럽에서는 탈근대적 비판이, 서구 바깥에서는 라나지트 구하를 중심으로 포스트식민주의운동이 태동했고,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두셀을 중심으로 해방철학이 등장했다. 해방철학 연구자들의 글을 모아 놓은 첫번째 책(1973)에는 다음과 같은 선언문 형식의 글이 실려 있다. “해방철학은 ‘에고’(ego)로부터, ‘나는 정복한다’, ‘나는 생각한다’ 혹은 ‘권력의지로서의 나’로부터 사유하지 않는다.… 해방철학은 억압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주변화된 사람의 처지에서, 가난한 사람의 관점에서, 종속국가의 위치에서 사유한다.… 해방철학은 타자의 외부성으로부터 사유하고자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해방철학은 레비나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근대적 주체와 가치, 진리와 형이상학을 붕괴시키기 위해 고투했던 니체와 현존재(Dasein)를 통해 주체의 주체성을 비판했던 하이데거가 완고한 내부성의 철학의 외부를 탐색하는 지점에 머물러 있었다면, 레비나스는 이성의 외부가 타자임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레비나스는 외부를 근대적 범주(예컨대 이성의 외부로서의 광기)로 한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푸코의 타자와도 달랐다. 그러나 해방철학은 레비나스가 유럽 내부에서 사유하고 타자에 대한 순수한 윤리적 책임만을 요구하는 지점에서 레비나스와 갈라진다.

두셀은 해방철학이 객관적이고 탈정치적 입장에 머물지 않고 체계의 희생자, 가부장주의에 의해 억압받는 여성, 황폐화된 지구를 상속받을 미래의 세대 등 가능한 모든 부류의 타자성을 위해 투쟁할 책임을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해방철학은 자기비판적 자세로 주변부에, 서발턴(하위주체)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두셀의 주장에는 비판철학자로서의 결기가 드러난다. “체계 안에서, 체계 앞에 서 있는 타자를 위한 책임은 모든 우선성보다 앞서는 우선성이다. 그것은 수동적인 것처럼 보이는 형이상학적 능동성이다. 그것은 세상의 시작보다 앞선 시작이고, 세상을 있게 한 시작이며, 세상의 선험적 실재이기 때문이다. 해방의 영웅은 체계의 반(反)영웅이고 위험에 자신의 삶을 던진다. 따라서 (억압받는 타자에 대한) 책임은 최상의 용기이고, 부패하지 않는 요새며, 총체성의 구조를 드러내는 진정한 통찰력이자 지혜다.”

해방철학의 비판적 범주가 근대적 주체성을 겨냥한다면, 비판의 구체적 실천은 역사적 접근으로부터 얻는다. 역사적 접근이란 ‘장기 16세기’에 시작된 세계체제(world-system)를 뜻한다. 해방철학을 (푸코, 데리다, 바티모, 레비나스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세계체제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데카르트가 1637년에 암스테르담에서 ‘나는 생각한다’를 말하기 훨씬 이전에, 스페인 국왕이 서류에 서명할 때 사용했던 ‘나’는, 코르테스가 1521년에 ‘나는 정복한다’라고 말했을 때 사용했던 ‘나’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프랑스 ‘고전 시대’의 인식론을 탐구하는 문제가 아니라, 지난 500년 동안 근대성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깨닫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세계체제 분석은 근대성, 식민주의, 세계체제, 자본주의, 아메리카의 발견·정복이 동시적이고 상호구성적 사건임을 말해준다. 따라서 계몽주의 근대성은 15세기 말 식민주의와 함께 시작된 근대성을 은폐하는 근대성의 신화다. 이런 맥락에서 두셀은 근대성의 신화가 독자적인 체제를 이루고 있었던 유럽에 대한 서술이 아니라 유럽을 마치 세계의 중심인 것처럼 서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메리카의 발견·정복으로 시작된 근대·식민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근대성 신화의 토대이면서 동시에 전지구적인 중심-주변 구도의 출발이었다. 아메리카 정복 초기에 ‘인디오 전쟁의 정당한 명분’을 주장했던 세풀베다가 최초의 옥시덴탈리즘 이데올로그였다면, 원주민의 인권을 옹호했던 라스 카사스는 중심-주변의 구도에서 근대성에 대한 대항담론을 설파했던 최초의 인물이었다. 또한 현재 진행중인 세계화가 근대·식민 자본주의의 정점이라는 점에서 볼 때, 식민주의가 종식된 이후에도 ‘권력의 식민성’은 여전히 견고하게 지속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해방철학이 단지 라틴아메리카사상의 한 가지 양상에 국한되지 않는 것은 근대적 이성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면서 동시에 근대·식민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착취 구조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두셀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유럽중심적 ‘거대서사’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체계 외부의 타자들은 자신들을 대변하기 위해 단지 작은 이야기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리고베르타 멘추, 사파티스타, 아메리카의 흑인, 미국에 거주하는 라티노, 페미니스트, 주변인, 전지구화된 초국적 자본주의의 노동계급 역시 그들의 기억을 재건하고 그들의 ‘인정 투쟁’을 정당화하는 역사적 서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서 두셀이 경계하는 것은 피상적이고 환원론적인 방식으로 적용되는 이원론(중심-주변, 발전-저개발, 종속-해방, 총체성-외부성 등)이다. 다시 말해, 근대성에 대한 비판은 전통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전근대로 회귀하는 것도 아니고, 보수주의자, 포퓰리스트, 파시스트 집단이 추구하는 반근대적 지향도 아니며, 파편화된 순수한 차이만을 긍정하는 탈근대적 비판도 아니라는 점이다. 두셀은 해방철학을 트랜스모던(transmodern)적 기획, 즉 근대성에 내재된 합리적 해방의 특성을 실재적으로 포섭하는 것이며 근대성이 저질렀던 희생제의적·신화적 특성을 부정함으로써 은폐되었던 타자성을 포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복음화→문명화→근대화→세계화’라는 근대성의 신화와 수사학에 가려진 근대·식민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폭력과 불의를 비판할 수 있을 때 칸트가 설파했던 계몽의 이성은 비로소 해방의 원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계몽적 이성을 앞세운 유럽중심주의와 발전주의의 오류가 드러날 때 추상적 보편주의에 가려져 있는 현실의 다채로운 풍경이 온전하게 드러날 수 있다. 두셀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완의 기획은 근대성이 아니라 탈식민성이다.(김은중/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11. 05. 25.  

 

P.S. 두셀의 책은 대학원 시절에 <근대성의 이면>을 구해서 갖고 있었는데, 지금은 행방을 알지 못한다. <철학을 넘어서>나 <정치학에 관한 20개의 명제> 같은 책도 눈길을 끄는데, 후자는 번역중이라고 들은 듯싶다. 조만간 읽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참여민주주의와 해방철학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6-08 08:04 
    방한중인 남미의 해방철학자 엔리케 두셀의 인터뷰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라틴아메리카 참여민주주의의 현주소와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 그리고 필요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정보기술 발전에 따른 전자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눈길을 끈다. 경향신문(11. 06. 07) "남미 참여민주주의는 세계 정치의 새 경험”우리 사회의 문제를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데 있어 미국과 유럽 등 서구 학문이 중심이 돼 왔다. 마찬가지로 지난 10년 동안 중도좌파 정권이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