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사적인 문제가 아니다

경향신문의 '문화와 세상' 칼럼을 옮겨놓는다. 오전에 잠시 궁리해보다가 공공철학을 소재로 쓰게 됐다. 최근에 자유와 공공성을 주제로 한 책들과 <아렌트 읽기>(산책자, 2011) 등을 들춰본 탓이다. 한겨레에 이어서 경향에서도 필명이 '로자'라고 나갔는데, '로쟈'에서 '로자'로 개명해야 할는지도 좀 생각해봐야겠다...  

  

경향신문(11. 06. 07) 공공철학, 광장, 촛불

“지금 인터넷에서 ‘공공철학’을 검색해 보면 수많은 관련 사이트가 눈에 띕니다.” 그렇다고 바로 검색해 보시지는 마시라. 이웃 나라이면서 언제나 ‘먼 나라’ 일본 얘기니까. 일본 학자 야마와키 나오시가 쓴 <공공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인용한 말인데, 저자에 따르면 ‘공공철학’은 사실 일본에서도 생소한 학문이라 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대학마다 공공철학 강좌가 생기고 도쿄대학에서는 공공철학 시리즈를 출간하기 시작했으며 인터넷에는 ‘공공철학 네트워크’라는 홈페이지가 등장했다. 굳이 남의 나라 유행에까지 참견할 필요는 없겠지만, 사정을 들어보면 우리와 다르지만도 않다. 왜 갑작스레 공공철학이 주목받게 됐는가.

흔히 공공성은 국가나 정부가 전담하는 것으로 여기지만 일본에서는 ‘정부 기관의 공(公)’과는 다른 의미의 공공성을 학문적으로 해명해야 한다는 관심이 일어났다고 한다. 거기에는 그냥 손 놓고 있으면 저절로 사회 공공의 이익이 보장되는 게 아니라는 자성이 깔려 있다. 대규모 공공사업이나 공공기관 민영화에 대한 재평가 요구가 그래서 터져 나왔다. 

후쿠시마 원전사태만 하더라도 공공성 담론을 정부가 독점할 때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 보여주는 일례다. 원자력발전이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원전신화가 말 그대로 ‘신화’에 불과하다는 걸 말해주기 때문이다. 원전 발전비중이 전체의 34%나 되는 세계 5위의 원전국가인 우리로서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비단 원전문제만이 아니다. 국민의 반대여론에도 밀어붙이고 있는 정부의 4대강 사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만료된다고 해서 파괴된 자연과 낭비된 예산이 저절로 복원되지 않는다. 공공성과 공익에 대한 관심을 정부에만 내맡길 수 없으며 공공철학에 대한 관심이 남의 나라의 관심일 수만은 없는 이유다.

 

지난해 미국의 ‘공공철학자’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유독 한국과 일본에서 큰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하버드대 명강의’란 간판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공통적인 열망과 관심사를 두 나라 국민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정의란 무엇인가>보다도 이후에 소개된 <왜 도덕인가>란 책을 인상 깊게 읽었는데, 그 원제가 ‘퍼블릭 필로소피’, 곧 ‘공공철학’이었다. 책으로 묶은 평론들을 ‘공공철학의 모험적 시도’라고 이름붙이면서 샌델은 그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우리 시대의 정치적, 법적 논쟁거리들에서 철학의 근거를 찾기 때문이라는 것과 도덕철학과 정치철학을 동시대의 대중 담론과 관계 맺게 하는 시도, 즉 공개적으로 철학을 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이다.  

물론 이러한 공공철학과 공공성에 대한 강조가 혹 사적 자유에 대한 홀대와 침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가란 의혹을 가질 수도 있다. 최인훈의 <광장> 이후에 우리가 갖게 된 ‘광장’과 ‘밀실’의 이분법 때문에라도 그렇다. 하지만 공적 영역의 회복을 철학적 과제로 삼았던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공적 영역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개인적인 교우관계나 목표 추구를 통해서 자기를 실현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가능하지도 않다. 진정한 자유란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타자와의 만남이라는 정치적 행위를 통해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광장은 그러한 만남을 가능케 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광장의 자유가 없다면 밀실의 자유도 없다. 이 광장의 자유가 억압받는 시대를 아렌트는 ‘어두운 시대’라고 불렀다. 우리는 어두운 시대를 살고 있는가. 광장에 다시금 하나둘 촛불이 켜지고 있다.  

11. 06.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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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시대와 분노 신드롬

프랑스의 노(老) 레지스탕스 스테판 에셀의 소책자 <분노하라>(돌베개, 2011)가 번역돼 나왔다. 원저가 20여쪽 분량이라고 하니까 '책'으로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제목에 80%는 들어가 있는 '전언'이다. '부당한' 대학 등록금에 대한 대학생들의 분노가 마침 촛불로 번져가고 있는 즈음에 '분노하라!'는 전언은 더없이 강한 울림을 갖는다.    

경향신문(11. 06. 06) 분노하라, 전세계 뒤흔든 외침

“젊은이들이여,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면 참지 말아야 하는 게 어떤 것인지 곧 알게 된다.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내가 뭘 하겠어? 내 일이나 잘해야지…’라는 태도다. 그러면 인간을 이루는 기본요소의 하나인 분노의 힘을 잃게 된다. ‘참여’의 기회도 영원히 놓치는 것이다.”

세계 제2차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대원으로 활약했던 94세 노인 스테판 에셀은 20여쪽짜리 소책자(팸플릿)에서 젊은이들에게 노골적으로 ‘분노하라’고 말한다. 책 제목도 분노하라는 뜻의 <앵디녜 부!(Indignez-vous!)>이다. 지난해 10월 직원 2명의 작은 출판사에서 초판 6000권으로 시작한 이 책은 현재 프랑스에서만 200만부 가까이 팔렸고 영국,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분노 신드롬’을 일으켰다. 미국, 일본, 브라질 등에 이어 곧 한국어로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에셀의 메시지는 간결하다. 각자 분노의 동기를 찾되 폭력을 거부하자는 제안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뭔가에 분노할 때 투사가 되어 역사에 합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더 많은 정의와 자유가 생긴다는 믿음이기도 하다. “다양한 문화가 서로 화해하는 시대”에 폭력을 멈추게 하는 확실한 수단은 ‘비폭력’ 평화적 봉기라고 그는 말한다. 

‘분노하라’는 메시지 외에 깊이 있는 분석도, 새로운 내용도, 구체적인 행동계획도 들어 있지 않다. 그런데도 세계는 왜 이 책에 열광하는 것일까. 영국 일간 가디언은 에셀의 책이 니콜라 사르코지 우파 정권에서 발생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강한 분노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영국 번역판의 편집자 찰스 글래스는 미국 주간지 더 네이션에 “사르코지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왔고 그 정신은 미국, 영국의 청년들도 다를 것이 없다”고 진단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2008년의 위기는 단순한 금융위기가 아니라 문명의 위기”라고 지적하면서 시장제도에 대한 광범위한 분노가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에셀이 꼽은 분노의 첫 번째 대상은 빈부격차다. 그는 “서구의 생산 집착적인 사고가 세계를 위기로 이끌었다”고 지적했다. 또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 프로그램과 독립된 언론, 차별 없는 교육 등 과거 레지스탕스가 얻은 사회적 성과가 대부분 위협받고 있다고 말한다.

둘째는 전 지구적으로 보편적 인권이 무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 초안 작성에 참여했던 에셀은 인권가치의 퇴보에 분노할 것을 촉구했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5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이 책은 94세의 노 혁명투사가 젊은이들에게 잘못된 현대사에 대해 고뇌하고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역량을 키우라고 던지는 메시지”라며 “프랑스보다 분노할 게 더 많은 한국 젊은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 스테판 에셀… 나치에 저항한 인권활동가

<앵디녜 부> 열풍의 가장 큰 배경은 저자인 스테판 에셀 자신이다. ‘분노하라’는 메시지와 어울리는 영화 같은 삶 자체로 울림을 준다는 평가다. 1917년 독일 베를린 태생의 에셀은 유대계 독일인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한 여인과 그 여인을 사랑하는 두 남자의 동침을 다룬 앙리 피에르 로셰의 53년 소설 <쥴과 짐>은 실제 에셀의 부모님을 모티브로 했다.

24년 가족은 파리로 이민했다. 1937년 파리 고등보통학교(ENS)에 입학한 그는 <구토> <존재와 무> 등을 읽으며 장 폴 사르트르를 사숙했다. 개인의 책임과 참여 의지를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41년 드골 장군의 런던 ‘자유 프랑스’에 합류했고 3년 뒤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던 중 게슈타포에게 체포돼 고문을 당한다. 사형 집행 하루 전 다른 수용소로 옮겨지는 동안 다른 수감자와 신분을 바꿔 탈출에 성공한다.

전후에는 유엔 주재 프랑스 대사, 유엔 인권위원회 프랑스 대표 등을 역임했다. 48년 유엔 비서로서 세계 인권선언문의 초안 작성에 참여했다. 레바논 침공과 가자지구 공격 등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인권에 대한 범죄라고 규탄해왔다.(이지선기자) 

11. 06. 06. 

 

P.S. 프랑스 얘기가 나온 김에 '왜 프랑스는 문화정치를 발명했는가?'란 부제를 단 장 미셸 지앙의 <문화는 정치다>(동녘, 2011)도 참고해볼 만하다. 역자는 <이제는 문화대통령이다>란 책을 준비중이라는 목수정 씨. 영어권의 '문화정치'와 비교해서 읽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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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서점에 들렀을 때 헤밍웨이 책 두 권이 나란히 진열돼 있기에 어떤 책인가 궁금했다. 전쟁을 주제로 한 엔솔로지로 보였지만 더 자세히 살피진 않았다. 전후사정을 알려주는 기사가 있기에 옮겨놓는다. 마침 현충일이니 전쟁의 의미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서울신문(11. 06. 04) 開戰 후에 휴머니즘은 승리뿐인가

올해도 현충일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전쟁을 기억해야 함은, 그 전쟁에서 비롯된 죽음을 위로해야 함은 살아남은 자의 의무다. 문제는 기억하는 방식이다.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을 기리는’으로 시작하는 여러 공식석상의 언사는 의미 있지만 틀에 박혀 있다.

전쟁은 현실이다. 죽음과 죽임이 일상으로 반복되는 공간이자 현실적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맞서는 공간이다. 생명의 가치를 포기할 수도, 치기 어린 낭만만으로 바라볼 수도 없다.

‘전장의 인간 1, 2’(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 엮음, 이윤기 옮김, 섬앤섬 펴냄)는 각각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를 부제로 달고 있다. 1942년 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헤밍웨이가 낸 책이다. 1978년 처음 국내에 번역 소개됐지만 출판사가 없어지며 1년 만에 절판됐다가 다시 30여년 만에 두 권짜리 개정판으로 빛을 보게 됐다. 



헤밍웨이 자신의 글은 물론 빅토르 위고, 윌리엄 포크너와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글을 비롯해 율리우스 카이사르, 윈스턴 처칠 등 인류사 속 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이, 그리고 영국군 무명 장교의 글까지 모두 42편의 글을 담았다. 소설, 에세이, 보고서 등 형식은 다양하지만 품고 있는 문제의식은 하나다. 전쟁의 진실, 그리고 전쟁 속의 인간들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상처와 고통, 죽음의 기억이다.

헤밍웨이는 42편의 글을 모두 8개 장으로 나눴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나오는 구절이 첫 머리마다 인용된다. 클라우제비츠의 가르침을 인용한다는 것 자체는 열아홉 나이부터 시작해 4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1, 2차 세계대전에 직접 뛰어든 헤밍웨이에게 전쟁은 어떻게든 피해야 하는 일이지만, 맞닥뜨렸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상황임을 역설적으로 웅변한다.

‘전쟁을 진심으로 증오한다.’고 말하면서도 전쟁의 패배를 용납하지 않는 철저한 현실주의자 헤밍웨이의 면모가 엿보인다. 특히 헤밍웨이가 직접 쓴, 43쪽에 이르는 서문은 그가 갖고 있는 전쟁에 대한 통찰과 문제의식, 전쟁을 통해 이뤄야만 하는 간절한 가치를 담아냈다는 평가다.

작가의 역할에 대해 언급한 부분도 의미심장하다.

“작가의 일이란 진실을 말하는 것…만일 전쟁 중에 국가의 안보 문제 때문에 작가의 진실을 출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면, 출판할 수는 없더라도 쓰는 일은 계속해야 한다.… 만일 그 자신이 생각해 봐도 진실하지 않은 걸 쓰게 된다면, 그것이 애국적인 동기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로서는 끝장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기여 잘 있거라’ 등 전쟁 문학의 일가를 이룬 헤밍웨이가 전쟁의 공간 안에 들어가 어떻게 관찰하고 참여했는지 그의 자세를 짐작하게 한다.

베트남 전쟁에 참가해 직접 목격한 참혹한 실상을 문학(‘하얀 헬리콥터’, ‘크레슨트 비치’, ‘가설극장’ 등)으로 발화했던 이윤기(1947~2010)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적도 우리들과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것은 전쟁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인간애의 바탕이 될 것이며 전쟁에서 휴머니즘을 완성하는 지름길”이라면서도 “인간에 대한 연민을 갖는다고 해서 적에게 패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 박았다. 헤밍웨이와 마찬가지다. 이윤기는 2005년부터 번역을 시작해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지난해 초 원고를 탈고했다.

헤밍웨이도, 이윤기도 모두 전쟁의 복판에 서 있었던 작가다. 서로 다른 시간, 공간이지만 죽음과 삶의 경계선상에서 비틀거리며 내디딘 걸음걸음은 고스란히 각자 문학 세계의 주된 흐름을 이루게 됐다. 전쟁은 추악했고, 인간은 비참했으며, 평화는 요원했다. 하지만 전쟁은 냉정한 현실이었다. 이렇듯 직접 전쟁을 겪은 이들의 현실 인식은 감성적, 관념적으로 접근하는 이들과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전쟁을 인문학적으로 살피고자 하는 이들에게, 혹은 철저히 현실의 영역에서 전쟁을 고민하는 정치인 또는 전투의 지휘관들에게, 용감하지 않으면 안 되는 병사들에게, 그리고 궁극적으로 문학의 영역에서 전쟁을 다루지 않으면 안 되는 작가들에게 던지는 조언이자 계언이다. ‘종전’이 아닌 ‘정전’ 상태인 한반도에서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환기다.(박록삼기자) 

11. 06. 06.  

P.S. 한국 독자들에게 헤밍웨이만큼 널리 알려진 작가도 드물지만(헤밍웨이란 이름의 출판사도 있다), 번역본은 드물게 나오고 있다. 그의 전쟁문학도 범우사판 정도가 남아있을 뿐이고 세계문학전집판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정본' 역할을 해줄 번역본이 출현하기를 바란다.   

한편, 한국전쟁과 한국사회란 주제를 한번 더 되짚어본 책으로 박명림 교수의 <역사와 지식과 사회>(나남, 2011)도 이번에 출간됐다. 주저였던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1,2>(나남, 1996)에 뒤이은 것으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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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무기력증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관심도서에 대한 리뷰기사가 뜨지 않는 것이다. 주목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책들이 어떤 이유에서건(책이 늦게 배부돼 언론리뷰가 다음주로 미뤄지는 경우도 많다) 관심밖으로 밀려났다는 점이 유감이고, 덧붙여, 할일들을 제쳐놓고 이렇게 뭐라도 적어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도 또다른 유감이다. 제 살 깎아먹기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가장 먼저 꼽을 만한 책은 제러미 벤담의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나남, 2011)이다. 공리주의의 원조 철학자이자 법학자의 주저 가운데 하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2010)에서도 샌델이 벤담의 공리주의를 소개하면서 가장 먼저 인용한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개인적으론 벤담과 사회진화론자 허버트 스펜서의 책이 번역되지 않는 이유가 늘 궁금했는데, 이번에 책이 번역됨으로써 갈증의 일부는 해소됐다(얼마나 읽히는지는 별개이지만). 1789년에 초판이 나오고 1823년에 신판이 나온 책의 첫 장에서 벤담은 공리성의 원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자연은 인류를 고통쾌락이라는 두 주인에게서 지배받도록 만들었다. 우리가 무엇을 할까 결정하는 일은 물론이요 무엇을 행해야 할까 짚어내는 일은 오로지 이 두 주인을 위한 것이다.

이러한 전제에서 시작하여 벤담은 도덕의 과학과 입법의 원리를 이끌어낸다. 이게 '대단한' 과업으로 보인다면, 적어도 '신기한' 작업으로 여겨진다면,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은 일독해볼 만한 책이다.  

한편, 역자는 머리말에서 "지성사의 위대한 고전 하나를 한국 최초로 완역해냈다는 사실에 보람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고 소감을 적었는데, 최초의 '완역본'은 맞겠지만 최초의 번역본은 따로 있었다. <도덕 및 입법의 제원리 서설>란 제목으로 휘문출판사의 세계 대사상 전집 가운데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70년대에 나온 책이다). 오래전에 어디선가 책을 보고 이런 책도 번역돼 있구나라고 무심하게 생각했었는데, 돌이켜보면 <자유론>, <자서전> 등과 합본이었기 때문에 완역이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후에 벤담의 책으론 <파놉티콘>(책세상, 2007)이 출간된 게 전부이다. 그리고 공리주의에 대해서라면 밀의 <공리주의>(책세상, 2007)가 '고전'으로선 유일한 번역이 아닌가 싶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공리주의 장을 읽은 다음에 참조할 수 있는 책이 이렇듯 몇권 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참고로 대학 도서관을 검색해보니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 일역본은 1928년에 나왔다. 완역본인지 최초 번역본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와는 상당한 격차다(<입법의 원리>로만 한정하면 명치기인 187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두번째 책은 마르틴 브로샤트의 <히틀러 국가>(문학과지성사, 2011)다. 중요한 나치즘 연구서를 지속적으로 번역하고 있는 역자 김학이 교수에 따르면 "1969년에 간행된 이 책은 1945년 이후 '독일'에서  생산된 가장 위대한 나치즘 연구서"이다. 그래서 이 책을 모르면 나치즘의 '연구사' 자체를 모르게 된다고. 두 가지 사례로 드는 것이 로버트 팩스턴의 <파시즘>(교양인, 2005)과 리처드 오버리의 <독재자들>(교양인, 2008)이다. 팩스턴의 책은 "브로샤트에 의거하면서도 브로샤트를 넘어서려다 실패한 시도"이며, 오버리의 책은 "브로샤트가 이 책에서 개진한 것을 반복한 것일 뿐"이라는 게 역자의 평가다. 요컨대 나치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소홀히 할 수 없는 책이다.   

 

세번째 책은 엘리자베스 영-브루엘의 <아렌트 읽기>(산책자, 2011)이다. 이미 마이리스트로 올려놓은 책인데, 방대한 분량의 <한나 아렌트 전기>(인간사랑, 2007)의 저자로 아렌트의 삶과 사상에 정통한 영-브루엘이 아렌트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안내한다. 역자는 <과거와 미래 사이>(푸른숲, 2005)를 번역한 바 있는 서유경 교수다. 새롭게 아렌트를 읽어보려는 독자들에겐 가장 요긴한 길잡이가 아닌가 한다.   

 

네번째 책은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의 국제정치경제학 교수로 있는 대니 로드릭의 <자본주의 새판짜기>(21세기북스, 2011). '세계화 역설과 민주적 대안'이 부제다('세계화의 역설'이 원제이며, '얕은 세계화'가 저자의 핵심 주장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책소개를 보고 흥미가 생겨 전작인 <더나은 세계화를 말하다>(북돋음, 2011)까지 같이 주문해서 받았다. 발전경제학이란 관점에서 장하준 교수와 비교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추천의 말에서 이병천 교수는 이렇게 적었다. 

올해는 경제학 책의 번역 사업에서 수확이 좋은 해가 될 듯하다. 그중에서도 대니 로드릭 교수의 책이 번역된 것은 무척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지난 3월 <더 나은 세계화를 말하다>가 번역된 데 이어, 이번에 다시 <자본주의 새판짜기>가 나왔다. 짧은 기간에 그의 책이 연이어 두 권이나 번역출간되었으니, 위기 이후 경제학의 새로운 혁신에 목말라 있는 한국의 '경제 시민'들에게 좋은 선물이 배달된 셈이다. 로드릭의 책은 자유시장주의와 '묻지마' 개방주의가 득세해온 보수적 공론의 장과 한국의 경제학계에 독소를 씻어내는 신선한 해독제와 자극제가 될 것으로 믿는다. 

유료이긴 하지만 '경제 시민'들이라면 받아둘 만한 선물이다.    

그리고 다섯번째 책으로 9.11 10주기를 앞두고 미리 나온 마이클 웰치의 <9.11의 희생양>(갈무리, 2011)도 이주의 관심도서다. 부제는 '테러와의전쟁에서 증오범죄와 국가범죄'. 조나단 사이몬의 추천사가 책의 의의를 잘 요약하고 있다.  

마이클 웰치는 9.11 테러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대응이, 그 끔찍한 날이 있기 오래 전부터 미국의 민주주의를 불구로 만들어온, 공포의 동원과 희생양 만들기의 인정화된 패턴의 확장에 불과하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주장하고 있다.

세계화의 또다른 측면으로서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충돌의 양상을 관찰하고 분석한 아르준 아파두라이의 <소수에 대한 두려움>(에코리브르, 2011)도 어제 배송받은 책인데, 저자는 '지구화의 문화적 역동성'을 다룬 <고삐 풀린 현대성>(현실문화연구, 2004)의 저자이기도 하다... 

11. 06. 05. 

 

P.S. 독서인 혹은 독서광을 위한 아이템들도 매주 출간되는 형편인데, 이주의 책은 알베르토 망구엘의 <밤의 도서관>(세종서적, 2011)이다. <독서일기>(생각의나무, 2006)와 <독서의 역사>(세종서적, 2000)의 독자라면 안 챙길 수 없는 책이다. 번역본 표지는 정겨운 느낌마저 주지만 원서의 표지는 좀 으스스하다. 이게 독서의 실상에는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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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1-06-05 14:54   좋아요 0 | URL
휘문출판사에서도 <도덕과 입법원리 서설>이 번역되어 있더군요.소개를 송건호씨가 썼어요.

로쟈 2011-06-05 15:05   좋아요 0 | URL
제가 잘못 봤습니다. 휘문출판사가 맞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6-05 15:40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노이에자이트 2011-06-05 15:52   좋아요 0 | URL
김학이 씨 같은 학자 덕에 두툼한 나치연구서들을 번역본으로 보게 되는군요.라울 힐베르크 저서도 번역하고...어떻게 이런 엄청난 분량의 저서들을 번역하는지 감탄만 나옵니다.

로쟈 2011-06-06 17:43   좋아요 0 | URL
학자다운 욕심과 사명감이겠지요...

헌내 2011-06-05 20:50   좋아요 0 | URL
옛날에 홍사중 씨의 '히틀러'라는 책이 있었는데...... 꽤 괜찮은 책이었는데 지금은 절판되고 없더군요...ㅠㅠ

로쟈 2011-06-06 17:42   좋아요 0 | URL
'옛날에'라고 하니까 웃음이 나오는데요.^^
 

아렌트의 제자로 <한나 아렌트 전기>(인간사랑, 2007)의 저자이기도 한 엘리자베스 영-브루엘(혹은 영-브륄)의 아렌트 입문서 <아렌트 읽기>(산책자, 2011)가 출간됐다. '읽기'의 대상으로 여러 저작 가운데 <전체주의의 기원>과 <인간의 조건>, 그리고 <정신의 삶> 세 권을 골라 자세히 살폈다. 아렌트에 대한 독서를 자극하는 유용한 길잡이가 될 듯싶다. 원제는 <왜 아렌트가 중요한가>로 예일대학출판부에서 나오는 입문서 시리즈(why X matters)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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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 읽기- 전체주의의 탐험가, 삶의 정치학을 말하다
엘리자베스 영-브루엘 지음, 서유경 옮김 / 산책자 / 2011년 6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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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전기- 세계 사랑을 위하여
엘리자베스 영 브륄 지음, 홍원표 옮김 / 인간사랑 / 2007년 11월
55,000원 → 52,250원(5%할인) / 마일리지 1,57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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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체주의의 기원 1
한나 아렌트 지음, 이진우, 박미애 옮김 / 한길사 / 2006년 12월
35,000원 → 31,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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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의 기원 2
한나 아렌트 지음, 이진우, 박미애 옮김 / 한길사 / 2006년 12월
28,000원 → 25,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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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1-06-04 22:48   좋아요 0 | URL
추천, 추천, 추천, 추천, 추천, 추천, 추천.......감사합니다~ 로쟈님^^

로쟈 2011-06-05 09:08   좋아요 0 | URL
빵가게님이 제일 먼저 생각나긴 했습니다.^^

2011-06-05 1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05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1-06-05 13:39   좋아요 0 | URL
아렌트라. 저도 한동안 안 읽다가 빵가게님 때문에 다시 시작했습니다. 아렌트 읽기라..조만간 도전해봐야겠습니다. 가끔 로쟈님 EBS에 나오시더군요^^

로쟈 2011-06-05 15:06   좋아요 0 | URL
EBS가 아니고 방송대TV입니다. 파업중이라 아마 재방송이 계속 나가는 것 같습니다.^^;

saint236 2011-06-07 11:39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채널 16번...무척 반가왔지요....그게 재방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