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문화진흥원에서 펴내는 월간 책&(426호)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로쟈의 주제별 도서 소개' 꼭지가 '인문학 서재'로 바뀌었고, 이달의 주제로는 '한국문화 바라보기'를 골랐다. 세 권의 관련서를 간단히 소개한다(덧붙이자면, 한국식 재난대응 문화를 다룬 책도 나옴직하다. 이렇게 주먹구구식인 것도 '문화'라면 말이다).

 

 

 

책&(14년 4월호) 한국인이 한국문화를 모른다?

 

한국인이 한국문화를 모른다? 물론 그렇게 등잔 밑이 어두운 이유는 여럿 있을 것이다. 친숙하기에 그냥 지나치거나 막연히 잘 안다고 생각하는 자신감이 주의를 소홀하게 만든다. 거기에다 습관적인 망각도 우리의 무지에 일조한다. <우리도 몰랐던 우리 문화>(인물과사상사, 2014)를 계기로 우리가 놓치거나 간과한 우리문화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일러주는 몇 권의 책을 책장에서 빼내보았다. 


먼저, <우리도 몰랐던 우리 문화>는 ‘화장실의 역사’부터 ‘립스틱의 역사’까지 아홉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얼핏 사소해 보이는 주제들이지만 우리 근‧현대 문화사 속의 일상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일례로 화장실을 보자. 전통적인 뒷간 혹은 변소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건 1920년대였다고 한다. 일제가 조선의 화장실을 개혁 대상으로 꼽았기 때문이다. 위생을 명목으로 재래식 화장실을 개량하고 요강을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단기간에 개량될 일은 아니었다.


해방 이후에도 서울역 공용변소의 분뇨와 악취 문제가 단골기사로 등장할 만큼 화장실 문제는 오랜 골칫거리였다. 그러다 1950년대 말 아파트가 등장하면서 화장실문화도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수세식 화장실이 등장하면서부터다. 하지만 수세식 화장실은 아직 일반 대중이 넘겨다보기 어려운 호사였고 공중화장실 문화는 여전히 낙후돼 있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1980년대에 ‘화장실 혁명’이 일어난다. 정부의 지원과 압력 하에 전국의 재래식 화장실이 수세식으로 개량된다. 불과 한 세대 전의 일인데, 한국의 도시화와 공업화 과정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진전이 도시 가정 내의 화장실 보급이라고 말해질 정도로 급속한 변화가 이 시기에 이루어진다.


‘한국 문화 교육 전문인’을 자처하는 정수현‧정경조의 <손맛으로 보는 한국인의 문화>(삼인, 2014)는 한국인의 의식주에 관련한 다양한 소재를 한국과 동서양 여러 나라의 문화와 비교하는 관점에서 기술한 책이다. “한국인의 생활상을 흥미롭게 전달해주는 이야기이자, 한국과 한국인이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유익한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고 적었는데, 특히 한국 식생활에 대한 비교서술은 이러한 길잡이로서 맞춤하다. 가령 ‘김치 vs. 샐러드’나 국 vs. 수프’ 같은 대비는 우리 식생활 문화의 특징을 단번에 압축한다.


가령 국물을 영어로는 주로 ‘수프(soup)’라고 옮기지만 우리가 아는 대로 국과 수프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음식이다. 국(혹은 탕)은 그 자체가 주 메뉴이지만 수프는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에 제공되는 부수적 음식이다. 조선시대 이후 문헌에 나오는 음식 종류에 구이류가 123가지인데 비해 국류는 204가지나 될 정도로 한국 음식엔 국이 많다. 왜 이렇게 국을 많이 먹을까. 몇 가지 설이 있는데, 첫째는 주식인 밥이 빡빡하지 않게 잘 넘어가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고, 둘째는 가난한 하층민이 국으로 배를 채움으로써 적은 밥으로도 포만감을 얻기 위해서라는 것이며, 셋째는 온돌이 발달한 나라에서 온돌에서 남는 열을 이용하다 보니 국물 음식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은 문화적으로 단순한 먹을거리 이상의 의미도 함축한다. 국은 밥, 반찬과 함께 먹는 음식이기에 ‘관계론적 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반면에 식전 에피타이저와 메인 요리, 식후 디저트를 각각 따로 먹는 서양음식은 ‘개체론적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국물 음식의 특징은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나눠먹는다는 데 있고, 이것은 집단의 동질성을 좀더 중요시하는 문화에 상응한다. 우리 식탁에서 국물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많은 것을 의미하게 되는 이유다.


한국 근대 문학‧문화 연구자인 권창규의 <상품의 시대>(민음사, 2014)는 출세, 교양, 건강, 섹스, 애국 등 다섯 가지 키워드를 통해서 한국 소비사회의 기원을 들여다본 책이다. 처음으로 상품이 유입돼 소비문화가 형성되던 일제 식민지 시기를 그 기원으로 본다. 저자는 주로 신문이나 잡지 기사와 광고 전단지를 자료로 활용하면서 한국인이 소비자와 교양인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일례로, 처음 만난 이성 남녀가 서로의 취미를 물어보는 것도 한국식 문화라면 그 기원은 1920년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1920년대 중반부터야 취미나 취향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스포츠는 ‘취미 위생’에 속했고, 영화나 연극에 대한 취미는 ‘연예 취미’로 불렸으며, 문학에 대한 관심은 ‘문예 취미’로 일컬어졌다.


문화인 혹은 교양인이란 ‘취미가 있는 사람’과 동의어였기에 취미에 대한 질문은 수준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취미는 독서입니다”는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그리고 교양 있는 가정이라면 음악 감상을 권유받았기에 1930년대에 보급된 유성기나 1960년대 초의 전축은 중산층 가정의 지표였다. 1930년대 한 일본축음기의 광고 문구에는 축음기가 ‘가정 단란’과 ‘웃음꽃이 핀 가정’을 선물한다고 했다. 상품은 바뀌고 문구는 조금 달라졌지만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소비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의 일상은 그렇게 만들어져왔다.

 

14. 0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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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게는 <이방인> 번역 시비부터 중차대하게는 세월호 참사까지 뒤숭숭한 한 주였고 난감하고 난해한 한 주였다. 아직 진행중이긴 하나 어떻게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겨우 떠올릴 수 있는 말은 러시아 작가 고골의 작품세계를 가리키는 '고골레스크'다. 참으로 고골레스크한 나라에서 산다는 느낌이 든다(차이라면 우리에겐 '우리 시대의 고골'이 없다는 것). '이주의 책'은 그런 느낌에 짓눌리며 고른다.

 

 

타이틀북은 <밀양을 살다>(오월의봄, 2014)다. 밀양구술프로젝트팀이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 17명의 구술기록을 모은 것인데, '밀양이 전하는 열다섯 편의 아리랑'이 부제. 소개에 따르면, "왜 송전탑을 받아들일 수 없는지, 송전탑으로 인해 마을이 어떤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었으며, 삶의 터전이 어떻게 짓밟히는지를 주민들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야기했다. 돈과 힘을 앞세운 한전과 정부에 대한 분노, 돈 앞에서 쉽게 무너지는 이들을 향한 배신감, 거대한 공권력 앞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무력감을 토로했다.(...) 이 책은 밀양에서 살고 있는, 그리고 밀양에서 계속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 대한 아주 편파적인 기록이다."

 

두번째 책은 CBS 정혜윤 피디의 르포르타주 에세이 <그의 슬픔과 기쁨>(후마니타스, 2014). "쌍용자동차 선도투 중 스물여섯 명의 구술을 바탕으로 집필되었다." 주로 독서 에세이를 펴내온 저자로선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는데, "‘책’을 매개로 하지 않은 최초의 본격적 시도이자, ‘르포르타주 에세이’라는 장르를 통해 인간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쌍용차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뿐 아니라 졍혜윤 피디의 독자들에게도 의미 있는 책이 될 듯싶다.

 

 

세번째 책부터는 방향을 좀 틀어서 역사책을 고른다. 신명호의 <고종과 메이지의 시대>(역사의아침, 2014). '무엇이 조선과 일본의 운명을 결정했나'가 부제다. 제목과 부제가 내용을 짐작하게 해준다. "이 책은 을사조약이 체결된 1905년을 기점으로 하여, 고종과 메이지가 통치하던 무렵의 조일(한일) 관계와 동북아 역사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현존하는 사료의 분석과 인용을 통해, 조선과 일본 두 나라 앞에 산적한 수많은 문제와 그들이 직면한 다양한 사건을 살펴본다. 동시에 고종과 메이지를 포함하여 두 나라의 정국을 주도한 인물들이 그러한 사건과 문제를 어떻게 인식했으며 또한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경주했는지 등을 세밀히 관찰한다." 두달 전에 나온 책이지만 일본 학자 쓰키아시 다쓰히코의 <조선의 개화사상과 내셔널리즘>(열린책들, 2014)과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네번째 책은 미국의 일본사학자 미리엄 실버버그의 <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현실문화, 2014). 사실 '그로테스크 넌센스'는 지금의 우리를 가리키는 키워드로도 손색이 없다(바로 '고골레스크'다!). 근대 일본의 대중문화에 대한 연구서.

간토 대지진과 진주만 공습 사이, 이념대립과 호전적 기운으로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일본의 대중들은 정말 현실을 외면한 채 퇴폐적 눈요기와 감각적 쾌락, 엽기적이고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것만을 찾는 삶을 살았을까? 근대화의 물결과 국가 이데올로기, 팽창주의의 압력과 제국의 검열 아래서 대중문화는 어떻게 조응했을까? 캘리포니아 대학교 역사학 교수였으며 여성연구소 소장직을 맡기도 한 미리엄 실버버그의 책으로, 당대의 신문과 잡지, 영화와 공연을 통해 일본의 '모던 타임스'의 면면을 마주하고 당시의 대중문화가 퍼트린 욕망과 충동, 긴장과 에너지를 확인해 볼 수 있다.   

그야말로 타산지석이 될 만한 사례가 아닐까. 한국판 <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도 충분히 쓰여질 만하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개정판으로 나온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웅진지식하우스, 2014). 10년 전에 나온 초판보다 분량이 90쪽 가량 늘어났기에 '증보판'이기도 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건국과 주체사상 등 북한 현대사의 시작부터 고난의 행군, 개성공단 건립과 금강산 관광, 김정은 집권에 이르는 북한의 최신 동향까지를 알기 쉽게 정리했다. 300여 컷이 넘는 사진과 그림 자료, 흥미로운 읽을거리들은 북한의 어제와 오늘을 풍부하고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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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을 살다- 밀양이 전하는 열다섯 편의 아리랑
밀양구술프로젝트 지음 / 오월의봄 / 2014년 4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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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슬픔과 기쁨
정혜윤 지음 / 후마니타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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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과 메이지의 시대- 무엇이 조선과 일본의 운명을 결정했나
신명호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4년 4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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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 근대 일본의 대중문화
미리엄 실버버그 지음, 강진석 외 옮김 / 현실문화 / 2014년 4월
30,000원 → 27,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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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을 적는다.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웅진지식하우스, 2014). 부제가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이다. 국내 처음 소개되는 저자라고 생각했지만 <도덕적 판단에 관한 사회적 직관주의 모델>(서현사, 2003)이란 얇은 책이 오래전에 나왔었고 예상과 다르게 아직 절판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거의 존재감이 없던 책이라 '이주의 발견'으로 꼽아도 무방해보인다. 어떤 책인가.  

 

뉴욕대학 스턴 경영대학원 교수이자 현재 영미권의 가장 ‘핫’한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이 책 <바른 마음>을 통해 인간의 사고와 행동의 근원에 놓인 ‘바른 마음’을 발견한다. 그동안 윤리와 정의를 다룬 책들이 도덕적 딜레마의 상황에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가”에 초점을 맞췄다면 하이트는 직접 인간의 행동을 관찰하고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가”에 대한 그 이유를 밝혔다. 그가 굳이 ‘바른 마음’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것은, 이 도덕이라는 감정이 가지고 있는 권력으로서의 힘과 개인의 잠재력에 대한 측면을 새롭게 부각하기 위해서이다. 도덕은 사고와 판단의 영역이 아니라 감정과 신체적인 영역에서 더 중요하게 작용하며, 또한 집단적인 힘과 리더십의 문제, 개인의 행복이나 취향의 차원에서도 어떤 신념이나 이념보다 강력하다고 그는 역설한다.

윤리학자가 아닌 사회심리학자가 밝힌 '바른 마음'의 메커니즘이라고 하니 구미가 당긴다. 사회생물학 에드워드 윌슨도 추천사에서 "이 책은 사회심리학, 정치 분석, 도덕적 추론의 내용을 놀랍고도 독창적인 방식으로 종합해내면서, 관련 과학 분야의 최고 성과까지도 잘 반영했다. 거기 더하여, 사회를 존속시켜 나가는 데 필요한 품위와 도덕적 감정을 우리가 본래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는 증거도 함께 제시해주고 있다"고 평했다. 요즘 한 가지 추세이기도 한데, 이 책 역시 TED 강의 화제작에 속한다.

 

 

사회심리학 얘기가 나온 김에 한권 더. 엘리어트 애런슨의 사회심리학 교재 <인간, 사회적 동물>(탐구당, 2014)이 출간됐다. 1996년, 2002년에 이어서 세번째로 나온 것인데, 원서의 제목이 <사회적 동물>이고 무려 11판을 옮긴 것이다. 교재로서 상당히 많이 읽힌다는 걸 알 수 있다. 소개는 이렇다.

사회심리학의 이론들을 현실 사회 속의 예를 들며 설명한다. 따라서 전공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우리 사회의 사건들을 심리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특히 미국 심리학회의 National Media Award는 심리학 연구 내용을 대중에게 알려주는 데 있어 큰 공헌을 한 저작에 수여하는 상으로서, 본상을 수상한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사회심리학의 연구 내용을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아주 재밌게 쓴 책으로 유명하다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건 <보보스>의 저자 데이비드 브룩스의 <소셜 애니멀>(흐름출판, 2011)이다. "관계와 만남을 통해 성장하는 인간의 본성을 밝히며 경험과 학습, 가풍, 주변 사람과 문화, 제도의 중요성을 다룬다. 우리 인간이 어떻게 기능하고 또 어떻게 삶을 이끌어 나가는지 심리학, 사회과학, 신경과학 등 광범위한 학문을 넘나들면서 생생하게 포착해낸다."

 

14. 0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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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공지다. 5월 14일부터 6월 18일까지 마포평생학습관에서 '청춘의 고전'이란 타이틀로 강의를 진행한다.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읽는 작품들을 일부러 골랐고, 우리 고전으론 <춘향전>을 다룬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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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책 홍보만 되는 듯싶어서 별로 끼어들고 싶지 않지만 새움판 <이방인>에 대해서 한마디만 보탠다. 어제 경향신문 기자와 전화 인터뷰한 것이 기사화됐기 때문이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4152119195&code=960205). 기사 내 사진은 오마이뉴스에서 가져왔다.

 

 

카뮈의 <이방인> 번역을 둘러싸고 번역자의 도덕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익명으로 원문 번역자를 과도하게 비판해 노이즈 마케팅이란 지적을 받기도 했던 <이방인>(새움출판사·사진)의 번역자 이정서(익명)가 책을 출간한 새움출판사의 이대식 대표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 프랑스어 원문의 오독과 오역을 비판해온 이 대표가 정작 자신은 영어판 <이방인>을 갖고 번역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대식 대표는 15일 새움출판사 블로그에 글을 올려 “이정서와 새움출판사 대표 이대식이 동일인인 것이 맞다”고 인정했다. 그는 “필명을 써서 번역서를 낸 일을 두고 언론이 ‘도덕적 해이’라고 하는 이유를 정말이지 이해하기 힘들다”며 “같은 출판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출판사의 번역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일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우려스러워서였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필명을 사용한 이유는) 모든 선입관을 버리고, 이 책 <이방인>이 제대로 번역되었는지 아닌지 전문가들이 살펴달라는 취지였다”며 “우리 사회 문화계에 음으로 양으로 큰일을 해주신 김화영 교수님을 욕보인 결과가 되었고, 교수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르던 많은 후학들의 가슴에도 상처를 드리게 되었다. 그 점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썼다. ‘김화영의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고 했던 기존 태도와는 달리 “김화영 교수님의 <이방인> 번역이 없었다면 정말이지 이러한 미묘한 차이들을 찾아내면서까지 재번역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번역자가 실명을 밝혔지만 도덕성 논란은 더 커지는 분위기다. 이 대표가 번역 과정에서 프랑스어판이 아니라 영어판을 번역했다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새움출판사 블로그 연재와 이를 묶은 <이방인> ‘역자노트’에서 프랑스어 원문을 제시하며 김화영 교수의 오독과 오역을 비판해왔다. 그러나 복수의 출판계 관계자들은 이날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이 대표가 영어판을 기본 텍스트로 삼아 번역을 한 다음 새움출판사 편집자들이 프랑스어판과 대조하는 작업을 했다”고 주장했다. 서평가 이현우씨는 “같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실이라면 사기 번역”이라며 “언제까지 비밀이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편집자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점은 이 대표도 인정한 부분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8월부터 6개월 동안 이정서라는 필명으로 김화영 교수의 <이방인> 번역을 비판하는 연재글(경향신문 1월25일자 17면 보도)을 올렸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진 후 문학계에서는 출판사의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어났다. 최근에는 이 출판사가 기존 번역들을 “왜곡과 난삽”이라고 매도하는 출간 기념 고사를 지낸 사실까지 알려지며 논란이 증폭됐다. 급기야 서평가 이현우씨가 13일 밤 자신의 블로그에 이 대표의 정체를 폭로하며 논란은 정점에 달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책 판매를 위해 원로학자를 공격한 것”이라며 “상식에서 벗어난 마케팅”이라고 말했다. 새움출판사의 <이방인>은 알라딘 고전분야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2주 연속 2위를 지키고 있다.(경향신문)

다른 건 차치하고, 번역자를 자임한 이정서는 자신이 영어판도 참조했지만 그것도 일개 '번역판'에 불과하기에 그에 따르지 않았다고 하면서 영어판의 오류들까지 들먹였었다. 영어판을 같이 껴서 판매한 '더클래식'판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난센스"라고 일갈하면서 영어판 중역의 문제를 이렇게 꼬집었다(http://saeumbook.tistory.com/429).

그건 원본 번역이랄 수 없습니다. 그건 아마 역자가 자신이 번역에 정확성을 기했다는 걸 내세우기 위한 장치로서 사용한 것일 수도 있고, 불어를 모르는 독자들이 더 많을 테니 영어 원본이라도 참고하라는 좋은 의도일 수도 있습니다. 하긴 내가 번역을 잘 몰랐을 때는 그것이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는데 실제 번역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되니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불어 소설은 불어 원본을, 독어 소설은 독어 원본을 실어줘야 그나마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 다만 불어 번역을 말하면서 그에 실린 영어 문장을 가져다 설명하려다 보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자신은 영어본을 대본으로 번역했지만 편집자들이 불어본과 대조했기 때문에 '원본 번역'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낭패'에서 벗어낫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까?

 

 

 

그리고 이휘영본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덧붙이자면, 일전에 <이방인> 마지막 대목에서 사이렌 소리와 뱃고동 소리, 두 가지로 번역된 걸 제시하자(http://blog.aladin.co.kr/mramor/6966576) 이렇게 반응했다.

김화영의 이 오역의 시발은 어디서부터일까? 사실 나는 알고 있다. 그건 로쟈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휘영 교수의 번역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소린가, 하면 김화영 교수 역시 자신의 스승인 이휘영 교수의 번역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 나는 정말이지 보고 싶지 않았다. 언급하고 싶지도 않았다. 거기까지 가면, 정말이지 이 나라의 도제 시스템이 만들어낸 학문 체계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지 밝히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듯  로쟈라는 젊은 후학이 나로 하여금 그렇게 보고 싶지 않았던, 의식적으로 외면했던 이휘영 교수의 <이방인>을 끝내 보게 하고 말았다.

이런 반응에서 나는 역자가 얼마나 자기도취적 세계에서 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방인>의 최초 번역자인 이휘영본이 문제의 시발점이라면 애초에 김화영본이 아니라 이휘영본을 문제삼았어야 논리에 맞다. 도제 시스템을 벗어날 수 없기에 김화영본도 이휘영본을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게 하고 싶은 말 아닌가(지나는 김에 말하자면 나는 이정서라는 선학을 둔 적이 없다). 그런데 이전 페이퍼에서 내가 인용한 대로 사이렌 대목은 이휘영본과 김화영본이 다르다.

그때 밤의 저 끝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에게는 영원히 관계없는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는 것이었다.(이휘영본, 문예출판사)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어진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김화영본, 민음사)

이정서의 근거 없는 예단에 어긋나게도 이 대목에서 김화영은 스승의 번역을 무시하고 감히 반역을 시도하고 있다. 내 식으로 분류하면 '사이렌파'와 '뱃고동파'가 그렇게 갈라졌던 것이다. 이정서가 이 대목의 '뱃고동 소리'를 '사이렌'으로 다시 번역한 건 사실 전혀 새롭지 않다. 맨 처음 번역으로 다시 돌아가면서 거기에 얹어 '밤의 경계'라는 어색한 말로 얼버무린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데, 이 문제 제기에 답하면서 이정서는 엉뚱하게도 거기에 이어지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김화영)는 문장에 대한 시비로 넘어갔다. 그러면서 내가 그 대목을 빼먹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서문(역자의 말)에 무얼 적어놓았는지도 확인하지 않은 걸까? 그가 8-9쪽에서 문제삼은 건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와는 영원히 관계가 없어진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두 문장이다. 반복이지만,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보다시피 김화영은 여기서 limite를 '끝'으로, sirènes를 '뱃고동'으로 보고 저렇게 번역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limite는 '경계'를, sirènes는 '사이렌'을 가리킨다. 하여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울린" 게 아니라, "한밤의 경계선에서 (감옥의) 사이렌 소리가 울린" 것이다.(...) 따라서 이 문장은 김화영이 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얼마나 오해하고 번역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마지막 문장이라 할 것이다.(새움판, 8-9쪽)

이정서의 주장에 따르면 이 대목이 김화영 오역의 화룡점정이자 피날레다. 애초에 내가 이 대목을 문제삼은 건 그 때문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결정적인 오역이라고 서문에서부터 표나게 윽박지르고 있는 이 대목이 사실은 오역이 아니라는 것. 마무리에서 이렇게 적었다.

정리하자. 새움판 새 번역 <이방인>에서 역자는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는 문장을 근거로 "이 문장은 김화영이 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얼마나 오해하고 번역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마지막 문장이라 할 것"이라고 '탄핵'했지만, 나는 '사이렌 소리' 대신에 '뱃고동 소리'라고 옮길 만한 근거도 있으며 그렇게 옮긴 번역본도 적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다. 그리고 어느 편이냐를 묻는다면, 적어도 이 대목에서만큼은 '뱃고동파'의 편을 들어주고 싶다. 번역은 "여기서 limite는 '경계'를, sirènes는 '사이렌'을 가리킨다"고 단언할 만큼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그런 번역이라면 구글이 더 잘할 수 있다). <이방인>의 인용 준거가 되려는 번역이라면, 좀더 많은 걸 살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더러 불어와 전공인 러시아어판을 비교해보라고 충고까지 했지만(하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이런 거 비교한다고 '세계적인 대학자'의 반열에 오르거나 하지 않는다. 매우 단순한 일이라서), 그 페이퍼는 이미 러시아어판 외에 몇 개 국어판을 살펴본 다음에 쓴 것이다. 러시아어판에서도 '뱃고동 소리'(пароходные гудки)라고 옮기고 있어서 더 확신을 갖고 말한 것이다. 그렇게 옮긴 영어판이나 러시아어판 모두 엉터리이며 "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얼마나 오해하고 번역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사례일까? 하긴 <이방인>을 유일무이하게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자임하는 역자에게 이런 식의 방증이 통할지는 의문이지만, 다른 이들이 그런 신앙을 공유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하하거나 모욕할 권리는 없다...

 

 

 

단순한 역자이기를 넘어서 야심찬 출판사의 대표이기도 하니까 이 정도 '스캔들'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스캔들은 언제나 매출에 도움이 되므로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독자도 한 번 속지 두 번 속지는 않는다. 이번 번역에 잔뜩 고무돼 <마담 보바리>까지 손봐주려는 듯한데, 이번 일로 마음이 약해지지 않았다면, 건투를 빈다! <이방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간의 허접한 엉터리 번역본들을 '싹쓸이'해줄 명번역을 기대한다...

 

14. 0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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