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문학기행 당일 아침에 공항으로 가는 길에 적은 소회를 하루 당겨서 적는다. 내일아침 공항버스로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익숙한 출국 절차가 진행될 터이다. 이번에는 참가자가 적은 편이어서(역대 두번째) 어깨가 가볍게도 느껴진다(일정은 하루 늘어서 짐은 더 늘어날지 모른다. 책짐이 관건이다).

오스트리아문학기행은 당초 지난해에는 중유럽문학기행으로 기획했다가 무산돼 재조정한 것이다. 오스트리아(빈)와 헝가리(부다페스트) 일정은 그대로이지만 체코(프라하와 브루노)가 빠지는 대신 슬로베니아(류블랴나와 블레드)와 오스트리아의 다른 두 도시(클라겐푸르트와 잘츠부르크)가 포함되었다. ‘중유럽‘이란 말은 쿤데라에게서 가져온 것인데 중유럽의 나머지 두 나라, 체코와 폴란드는 내년 1월에 찾을 예정이다(그렇게 치면 오스트리아문학기행은 2부작 중유럽문학기행의 1부가 된다).

슬로베니아와 헝가리가 포함됐지만 오스트리아문학기행이라고 정한 것은 이 지역이 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제국이 해체되기 전까지는 오스트리아제국(내지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속했었기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독일을 포함한(한때는 스페인과 이탈리아끼지도) 신성로마제국에 속했던 지역이다. 나중에 따로 다루겠지만 이번 문학기행의 초점은 세기말 빈(비엔나 1900)과 부다페스트(부다페스트 1900)이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 (1차세계대전을 경계로 삼으면 말 그대로 장기 19세기말이다) 범오스트리아의 지성사와 문화사는 세계사적으로도 주목을 끌 만큼 다채롭고 화려하다. 소위 ‘빈 모더니즘‘에 견줄 만한 모더니즘 예술운동은 파리의 모더니즘 정도가 아닐까 싶다(시간순서로는 빈이 가장 앞서고 취리히를 경유해서 파리로 건너가는 듯싶다).

나의 관심은 그러한 예술적 성취를 가능하게 한 사회적 조건을 이해하고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이다(예컨대 빈과 부다페스트의 카페 문화). 더불어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음악(모차르트와 말러, 쇤베르크 등)과 미술(클림트와 에곤 실레, 오스카 코코슈카 등), 그리고 건축들도 자연스레 감상하게 될 것이다. 빈과 부다페스트의 도시 경관과 함께 중유럽의 가장 아름다운 호수라는 블레드 호수와 잘츠부르크의 수려한 자연경관도 이번 문학기행의 볼거리이다.

전체 일정에 대한 어림은 이미 마친 상태에서 읽은 책(+읽어야 할 책)을 챙기는 일이 남았는데, 무게도 고려해야 해서 오스트리아 역사 관련서는 <아주 짧은 합스부르크사>를 골랐다. 장시간 비행(내일 인천공항에서 이륙하면 환승을 포함해 총 16시간반쯤 지나야 첫 목적지 류블랴나에 도착하게 된다)에 읽을 책 가운데 하나로. 역사서는 문학기행에서도 언제나 조감도로 필요하다. 책장에서 빼낸 책으로는 <케임브리지 세계사 콘사이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원제는 ‘가장 짧은 유럽사‘)를 경유해서 <아주 짧은 합스부르크사>로 넘어가는 것이 내가 선택한 경로다(가장 짧은 경로!)

마치 입시 전날의 수험생처럼 이 책들을 뒤적이며 최종정리를 하다가 잠이 들 것 같다. 그러고는 마침내 오스트리아문학기행의 첫날을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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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사이렌 소리와 뱃고동 소리

<이방인> 번역 논쟁이 벌써 11년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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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의 인기 없는 에세이가 한번더 나왔다.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 원제는 <인기 없는 에세이>(1950)로 러셀의 대표 에세이로 꼽힌다(러셀은 1950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앞서 나왔던 판본 가운데서는 <인기 없는 에세이>로 조금 읽은 듯싶은데, 새번역으로 다시 읽어봐도 좋겠다.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20세기 최고의 지성으로 손꼽히는 버트런드 러셀의 철학 에세이 모음집이다. 이 책은 1950년 출간 당시 사회적 통념과 권위에 도전하는 날카로운 비판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오늘날까지도 시대를 초월하여 깊은 통찰력을 제공하는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러셀은 전쟁, 교조주의, 이념 갈등, 교육 문제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며, 독단주의, 맹목적 믿음, 권위주의를 비판하고 이성적 사고와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특히, 당대 사회의 문제점을 꿰뚫어 보는 그의 예리한 시각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 읽어도 유의미하다면 1872년생 러셀은 여전히 우리의 동시대인이다. ‘우리시대의 러셀‘이라 부를 만한 지성으로는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러셀을 다시 읽으면 한번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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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25-03-25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로쟈님.
저기 체홉 소설 가운데 여주인공이 ‘살짝 사팔뜨기‘인 작품이 뭐죠?
‘귀여운 여인‘의 ‘올렝카‘인가요?

바쁘시겠지만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푸른괭이 2025-03-28 09:26   좋아요 0 | URL
살짝 주제 넘지만, 혹시 체호프 소설이 아니라(올렌카는 절대 아니고요), 톨스토이 <부활>의 카튜(츄)샤 마슬로바를 착각하신 건 아닐까요?^^;

심술 2025-03-28 12:49   좋아요 0 | URL
아, 그러고보니 카츄샤였던 거 같기도 하네요. 확인해 볼게요.
고맙습니다, 푸른괭이님.

심술 2025-03-28 13:40   좋아요 0 | URL
<부활> 카튜샤 마슬로바 맞네요.
다시 감사드립니다.

두 눈 중 하나는 약간 사시였다.

16쪽.서상국 교수 옮김. 작가정신. 08년6월.

박상철 2025-04-05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중에라도, 우리 시대의 러셀을 꼽아주시길 원합니다! 궁금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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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에 한 일로 기록해둘 만한 것은 한강 소설 전작 읽기와, 그와 무관하지 않은 한국문학기행이다(한강의 첫 책 <여수의 사랑>을 염두에 두고서 군산, 목포, 장흥, 여수를 찾았다). 각각에 대해 자세히 정리하는 글을 써야 마땅하겠지만, 이런저런 사정이 언제나 복병처럼 가로막는다. 간단하게는 글을 쓸 에너지가 없다(여수 향일암에 오르는 일도 계단길에서 포기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무슨 일을 해야 할지는 적어두는 게 좋겠다. 한강 문학의 여정에 대한 것.

한강의 책은 동화와 산문집을 제외하면 총 12권이다. 시집 1권, 소설집 3권, 그리고 장편소설 8권이다(처음 연작소설이라고 나왔던 <채식주의자>를 한강은 ‘장편소설‘로 분류하며 개정판도 그렇게 나왔다. 장편이라기엔 좀 짧은 <흰>은 ‘한강 소설‘로 표기/분류된다). 전작 읽기에서 나의 관심사는 이 작품들 간의 연결성이었다. 어떻게하여 <소년이 온다>(<작별하지 않는다>는 그 속편이라고도 볼 수 있기에 같이 묶인다)에 이르게 되는가. <소년>과 <작별>이 한강 문학의 정점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적을 것이다). 1994년 신춘문예로 데뷔하여 한강은 2년간 일곱 편의 단편을 몰아 써서 이듬해 첫 소설집을 묶어냈다(개정판에서는 한편을 빼고 여섯 편만 수록한다).

인상적인 것은 곧바로 장편소설로 넘어간 점. 3년간의 시간을 쏟아부어서 첫번째 장편 <검은 사슴>을 펴냄으로써 한강은 작가로서 교두보를 확보한다. 이른바 출발점이다. 그에 이어지는 (장편)소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검은 사슴>(1998)
<그대의 차가운 손>(2002)
<채식주의자>(2007)
<바람이 분다, 가라>(2010)
<희랍어 시간>(2011)
<소년이 온다>(2014)
<흰>(2016)
<작별하지 않는다>(2021)

알려진 대로 <채식주의자>(영어판 2015)로 국제부커상(2016)을, <작별하지 않는다>(불어판 2023)로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은 기세를 몰아 2024년에 그간의 성취에 대한 찬사와 함께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다수의 작품이 검토대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결정적인 건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 두 작품이었을 걸로 보인다(참고로 스웨덴어로는 <소년이 온다><채식주의자><흰><작별하지 않는다>. 네 편이 번역돼 있다). 물론 한강 소설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촉발한 작품으로서<채식주의자>의 의의도 빼놓을 수 없다.

<채식주의자>가 기폭제가 되었고 영어판을 포함한 대부분의 번역판들에서 <소년이 온다>(영어판 2016)가 그 뒤를 이었기에 한강 독서 순서는 <채식><소년><흰><작별> 순일 가능성이 높다(<희랍어>가 그 사이에 끼워넣어진다). 그렇지만 전작 읽기를 진행하면서 내가 갖게 된 생각은 <채식주의자>보다는 <바람이 분디>가 한강 소설의 전환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불어판으론 예외적이게도 <바람이 분다>가 <채식주의자>보다 먼저 나왔다).

제목이 시사하는 바대로 삶에 대한 긍정과 의지를 주제로 한 <바람이 분다>가 나무-되기를 통해 (동물적) 삶에 대한 부정과 거부를 주제화하고 있는 <채식주의자>보다는 이후 작품들의 주제와 더 잘 호응한다. 내가 보기에 <채식주의자>(단편 <내 여자의 열매>의 연장선에 있다)와 <바람이 분다>는 서로 이어진다기보다는 주제적으로 맞서는 작품이다. 나는 이를 ‘한강 소설의 두 계열‘이라고도 표현했다.

한강 문학은 궁극적으로(결과론적이라 하더라도) <소년>에 이르는 여정이다. 즉 80년 광주(5.18)와 등치될 수 있는 <소년>이 한강의 소설들을 읽고 평가하는 시금석인데, 한강 문학 안에서는 <여수의 사랑>(특히 표제작)과 <검은 사슴>에서 <소년>과 <작별>에 이르는 여정이고, 80년 광주의 소설화라는 맥락에서 보면 1988년에 나란히 발표된 홍희담의 <깃발>과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점 꽃잎이 지고>에서 임철우의 <봄날>(1997)을 거쳐서 <소년이 온다>에 이르는 여정이다. 이 작품들이 한강 문학을 꽃피우기 위해 봄부터 울어댄 소쩍새들이다.

<창작과 비평>에 발표된 <깃발>의 리얼리즘과 <문학과 사회>(구<문학과 지성>)에 발표된 <꽃잎>의 모더니즘이 창비에서 나온 <소년>에서 화해하고 융합되는 점도 음미해볼 만한 사실이다. 1970년대 이후 두 계간지를 중심으로 대립되어 왔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원융과 회통이 한강의 <소년>에서 달성된 걸로 보면 한국문학의 장관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이것이 한강 전작 읽기를 통해서 내가 갖게 된 생각이다. 그리고 이번 봄학기에 1970년 이후 한국문학을 다시 읽어나가려는 동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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