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부르크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빈으로 이동중이다. 4시간쯤 소요되는데, 휴게소에 한번 들를 거라 4시간반쯤을 예상하고 있다. 저녁을 먹기에는 좀 늦은 시각에 빈에 입성할 것 같다. 출발이 늦어진 건 츠바이크센터 방문이 예상보다 길어졌기 때문인데 센터의 연구원(20대로 보이는 해맑은 청년이었다) 츠바이크의 생애에 대해서 자세하게 소개해주었다. 순차통역으로 진행했기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 것. 무질박물관이 연구센터를 겸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츠바이크센터는 작가박물관을 겸하고 있었다.
잘츠부르크에 츠바이크센터가 들어선 배경은 앞서 적었는데 사실 츠바이크의 저택이 센터가 된 건 아니다(막연히 그런 줄로 알았다). 츠바이크가 살던 집은 현재 개인 소유이고 현재의 센터는 그와는 떨어진 곳에 있다. 원래의 집은 츠바이크가 한눈에 반해서 1919년에 구입했다고 알려진다. 그러나 1920년에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개최되면서 츠바이크는 잘츠부르크에 거처를 정한 일을 후회했다고. 사교성이 없는 편이었던 빈 출신의 츠바이크가 사람들을 피하려 옮겨온 곳이 잘츠부르크의 언덕집이었는데 페스티벌이 열리면서 해마다 여름이면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는 장소가 되었던 것이다. 연구원에 따르면 츠바이크는 해마다 축제기간 때면 잘츠부르크를 떠나 있다가 되돌아왔다고 한다.
잘츠부르크에서 생활은 1920년에 결혼한 첫아내 프리데리카와 함께했으나 나치의 박해를 피해 망명길에 오르면서 부부 사이에도 금이 가게 된다. 두번째 아내가 되는 로테 알트만과의 불륜이 발각되면서 츠바이크는 1938년 프리데리카와 이혼하고(그렇지만 이혼 뒤에도 두 시람은 편지를 교환하며 친구로 지냈다고) 이듬해에 로테와 재혼한다. 1940년 2차대전이 격화하면서 유럽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판단이 들자 츠바이크는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에서도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한 츠바이크가 최종 망명지로 선택한 곳이 브라질이다. 그는 브라질을 ‘미래의 나라‘라고 불렀다. ‘어제의 세계‘를 떠나 ‘미래의 나라‘로 온 셈. 그렇지만 전쟁이 장기회되고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츠바이크는 1942년 2월 아내와 동반자살의 길을 선택한다. 오스트리아 빈의 부유한 유대한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나 당대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인기를 누렸던 츠바이크의 마지막이 머나먼 나라 브라질에서의 자살일 것이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짐작에 츠바이크는 국내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오스트리아 작가다(오스트리아 작가라기보다는 독어 작가로, 아니면 그냥 ‘츠바이크‘로 읽히는 듯싶지만). 작가로서 츠바이크의 성취는 무엇인가? 작가 평전(그는 세계 3대 전기작가다. 나머지 두명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게 함정이지만)과 몇몇 인상적인 중편소설을 떠올리게 되지만, 그에 더해서 자서전 <어제의 세계>를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전기와 소설, 자서전이라는 세 장르가 츠바이크의 장르이고 그의 성취는 이 세 장르에 고르게 배분돼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생전의 그의 인기와 대중성이 시기와 의혹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지만 그 인기와 대중성이 지금까지도 이어지면서 오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발자크 평전>과 유일한 장편소설 <초조한 마음>, 그리고 <어제의 세계>만으로도 츠바이크는 오래 기억되고 사랑받을 만한 작가다. 잘츠부르크의 츠바이크센터 방문의 의의를 되짚어보면서 내리게 되는 결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