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리스트 페렌치공항에서의 출발은 지연됐지만 프랑크푸르트공항에서의 환승에는 지장이 없어서 예정된 시각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이로써 오스트리아문학기행이 종료되었고 참가자분들도 무탈하게 귀가중이다.

로쟈와 함께하는 문학기행은 오스트리아문학기행에 이어서 이번 10월에는 중국현대문학기행을 진행힌다(10월 20일-25일, 5박6일. 참가신청은 펀트래블 홈피 참조). 관심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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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체증을 예상해 예정보다 일찍 출발하고 일찍 도착한 탓에 리스트 페렌치 공항에서의 대기시간이 길어졌다. 유럽의 공항들은 대개 비슷해보여서(낮은 천장이 그런 느낌을 주는 듯도) 헝가리만의 특징을 말하긴 어렵겠다. 다만 좀 한산해서 수하물을 보내고 출국심사대를 통과하기까지 속전속결이었다(입국이나 출국이나 내게 최악의 경험은 모스크바공항이었다. 문학기행 이전의 일이었지만).

환승을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먼저 가야하는데 항공편이 지연되는지 탑승 게이트 번호가 아직 뜨지 않는다. 어쩌면 출발이 다소 지연될 수도 있겠다(환승 대기시간이 짧아진다는 뜻이다).

빈과 부다페스트는 과거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수도들로서 여러 가지 공통점도 갖는데, 카페문화의 발달은 대표적인 사례다. 공식일정에는 포함하지 않았지만 여러 문인과 명사들이 찾았다는 유명 카페 방문도 문학기행의 여흥이다. 흥미롭게도, 어쩌면 자연스럽게도 과거 두 도시 간판 카페는 같은 이름을 갖고 있었다. 카페 첸트랄. 체트럴은 영어의 센트럴에 해당하니 굳이 우리말로 옮기면 ‘중앙카페‘쯤 될까.

아쉽게도, 하지만 당연하게도 두 카페를 방문하는 일은 불발로 그쳤다(일행 가운데는 다녀온 분도 있지만). 빈의 첸트랄은 입장 대기 인원이 너무 많아서 바로 포기했고, 부다페스트의 첸트랄도 예약이 다 차서 입장이 허용되지 않았다(하는 수없이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셨다). 다만, 부다페스트의 경우 사진촬영은 허용돼서 ‘뉴거트‘라는 잡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작가들과 잡지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부다페스트에는 1848년 3월 독립을 선언하면서 페퇴피의 시 ‘민족의 노래‘가 낭독되었던 카페 필박스도 아직 문을 열고 있어서 엊저녁에 찾아가보았는데 아쉽게도 휴일이었다. 문앞에서 발길을 돌린 카페들의 사진이다.

슬슬 대기시간이 끝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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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20분가량의 야경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유럽의 3대 야경으로 파리와 프라하, 그리고 부다페스트의 야경이 꼽히는데, 개인적으로는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맨마지막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야경투어를 끝으로 이번 문학기행의 모든 일정이 종료되었고 내일 오전,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일만 남았다. 큰 사고 없이 무탈하게 일정이 진행되었고 마지막날까지 날씨도 무난해서 다행스럽다(오늘은 부슬비가 왔지만 종일 오는 비는 아니었고 저녁 야경사진을 찍는 데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날 문학기행 일정은 루카치의 무덤을 찾는 것과 페퇴피기박물관을 방문하는 것, 두 가지였다. 코로나 이전에 한번 동유럽문학기행을 기획할 때는 부다페스트의 루카치 아카이브(자료와 연구센터)를 염두에 두었으나 오르도반 정권이 들어서면서 과거 사회주의 역사 지우기의 일환으로 루카치 동상을 철거하고 아카이브를 폐쇄했다. 2017년쯤의 일인데, 이후 부다페스트는 문학기행 방문지 목록에서 수년간 제외했었다. 그러다가 중유럽문학기행을 새로 기획하면서 루카치의 무덤을 찾는 일정을 대신 집어넜었고(자난해 시도였으나 여행이 불발되었다) 이번 오스트리아문학기행에서 드디어 <소설의 이론>의 저자에게 예의를 차리게 된 것.

루카치의 무덤은 국립묘지의 공산주의자 묘역에 있었고 가이드가 미리 위치를 확인해둔 터라 찾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루카치의 무덤 표석 앞에서 루카치의 생애와 업적, 한국문학사에 갖는 의의 등을 간략하게 강의하고 단체사진을 찍었다. 지난 연말 서울대 규장각의 김윤식 회고전을 떠올리기도 했는데 루카치에 대한 관심은 전적으로 선생에게 힘입은 바 크기 때문이다. 더불어 <소설의 이론>을 처음 접할 때부터 현재까지 문학 공부의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어느덧 38년의 시간이 흘렀다.

루카치기 인용한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구를 매번 상기하게 된다. ˝나는 내 영혼을 입증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근대소설의 문제적 주인공의 출사표는 문학기행의 출사표이기도 하다. 2017년 첫번째 문학기행이었던 러시아문학기행부터 12번째 오스트리아문학기행까지가 하나의 사이클처럼 느껴진다(8년이 소요되었군). 올 10월에 중국근대문학기행을 진행하면 내년에는 4월에 체코(카프카와 쿤데라)와 폴란드(쉼보르스카와 토카르추크 등) 문학기행을 진행하려 한다. 2017년 가을에 찾았던 카프카문학관과 무덤을 재방문하는 게 될 것이다.

루카치 무덤을 방문한 뒤 마지막 문학일정으로 페퇴피문학관을 찾았다. 페퇴피 샨도르(1823-49). 헝가리의 민족시인이자 독립투사다. 부다페스트의 짧은 일정 속에서 가볼 만한 작가박물관을 물색하다가 정한 곳이었다. 문학관의 규모와 전시내용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큰 규모였고 페퇴피 이후 헝가리문학사를 수놓은 많은 작가들 사진과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었다.

아쉬운 것은 설명이 헝가리어로 돼 있고 국내에 소개된 작가가 많지 않다는 것. 수십 명의 작가들 가운데 (헝가리식으로 이름을 읽으면) 모리츠 지그몬트, 코스톨라니 데죄, 마라이 산도르, 콘라드 죄르지, 케르테스 임레,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등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문학관에 들어가기 전, 페퇴피의 시 ‘민족의 노래‘를 낭송하고, 관람 뒤에는 문학관 앞 광장의 페퇴피 동상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문학일정이 일단락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남은 건 무탈하게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일(공항의 이름이 리스트 페렌츠 국제공항이다. 헝가리가 낳은 세계적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리스트를 기념하는 이름이다. 독어로는 프란츠 리스트이지만, 헝가리어로는 리스트 페렌츠다). 가이드의 말로는 우리의 김포공항 정도의 규모라고 한다. 떠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경유하여 서울로 향하게 된다. 이번 문학기행의 자투리 이야기들은 귀국길에 더 적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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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라고 흐린 날만 있을 리 만무하지만 왠지 흐린 날과 어울릴 것 같은 도시가 부다페스트다.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 <글루미 선데이> 때문인 듯싶은데, 한편으론 영화도 글루미한 이미지 때문에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선택하지 않았을까.

어제부터 흐린 날씨였던 부다페스트에 아침에 이슬비가 내렸다. 우산을 쓰지 않은 이도 많았다. 어제오후 페스트(발음은 ‘페쉬트‘라고) 지역 투어에 이어서 오늘오전에 부다(국립미술관이 된 왕궁과 그 주변) 지역 투어에 나섰다(참고로 ‘부다‘는 물이란 뜻이고 로마시대 때부터 온천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물을 뜻하는 러시아어 ‘보다‘와도 어원이 같겠다 싶다). 내내 글루미 부다페스트의 풍경을 폰카에 담으면서.

마차시성당과 어부의 요새는 대표 관광지답게 관광객이 많았다(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눈에 띄었다). 어제와는 반대로 부다에서 바라본 페스트와 다뉴브강의 풍경을 즐겼다(이바노비치의 ‘다뉴브강의 잔물결‘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글루미 부다페스트의 분위기를 만끽했다.

이어서 찾은 곳이 부다왕궁(국립미술관). 헝가리 화가들의 작픔에 더해서 모네와 세잔 등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도 여러 점 전시돼 있었다. 눈길을 끌었던 그림은 헝가리 화가 비디츠 오토의 ‘엔젤-메이커‘(1881). 원하지 않은 임신으로 얻은 아이를 방치하여 죽게 놔두는 시설이 있었던 모양이다. 죽음을 앞둔 무구한 아이의 퀭한 눈빛이 그림에 담겼다. 글루미한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마지막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돌아와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30여분 뒤에 부다페스트 야경투어를 마지막으로 진행한다. 오늘 오후일정과 야경투어에 관해서는 따로 적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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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40분차로 빈을 떠난 일행은 12시 20분경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2시간 40분 소요. 여기까지는 예상과 다르지 않은데 함정은 부다페스트역이 몇개 더 있다는 것. 부다페스트-켈레치가 종착역이자 목적지였는데 부다페스트-켈렌푈드에서 하차했다. 두 역 사이는 20분 거리. 종착지에서 대기하던 픽업차량이 바뀐 장소로 오기까지 역전 대형 쇼핑몰(한번더 확인하지만 쇼핑몰은 무국적이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중이다(스타벅스 커피맛도 무국적이다).

짐작엔 부다페스트 외곽이어서 사진으로 보던 부다페스트와는 풍경이 많이 다르다. 그래도 어쨌든 여기는 부다페스트. 맨처음 부다페스트란 말을 접한 건 언제였을까. 기억나지 않지만 기억나는 시는 있다. 김춘수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1957). 짐작할 수 있지만 1956년 헝가리혁명(부다페스트 봉기)을 소재로 쓰인 시이다. 대학 1학년 때 읽었을 것 같다. 48년에 데뷔했으니 김춘수의 초기시. 나중에 무의미시를 주창하는 김춘수의 시 가운데서는 드물게도 앙가주망의 정신을 여실히 보여주는 시다(두 명의 김춘수가 있다고 해야 할까). 전문은 이렇다.

다뉴브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東歐)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쏘련제(製)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순간,
바숴진 네 두부(頭部)는 소스라쳐 삼십보(三十步) 상공으로 튀었다.
두부(頭部)를 잃은 목통에서는 피가
네 낯익은 거리의 포도(鋪道)를 적시며 흘렀다.

―너는 열 세 살이라고 그랬다.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죽어서 한결 가비여운 네 영혼은
감시의 일만(一萬)의 눈초리도 미칠 수 없는
다뉴브강(江) 푸른 물결 위에 와서
오히려 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소리 높이 울었다.
다뉴브강은 맑고 잔잔한 흐름일까,
요한슈트라우스의 그대로의 선율일까,
음악에도 없고 세계지도에도 이름이 없는
한강의 모래 사장(沙場)의 말없는 모래알을 움켜쥐고
왜 열 세 살 난 한국의 소녀는 영문도 모르고 죽어 갔을까,
죽어 갔을까, 악마는 등 뒤에서 웃고 있었는데

한국의 열세 살은 잡히는 것 하나도 없는
두 손을 허공에 저으며 죽어 갔을까,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네가 한 행동은
네 혼자 한 것 같지가 않다.
한강에서의 소녀의 죽음도
동포의 가슴에는 짙은 빛깔의 아픔으로 젖어든다.
기억의 분(憤)한 강물은 오늘도 내일도
동포의 눈시울에 흐를 것인가,
흐를 것인가, 영웅들은 쓰러지고 두 달의 항쟁 끝에
너를 겨눈 같은 총뿌리 앞에
네 아저씨와 네 오빠가 무릎을 꾼 지금,
인류의 양심에서 흐를 것인가,
마음 약한 베드로가 닭 울기 전 세 번이나 부인한 지금,
십자가에 못 박힌 한 사람은
불면의 밤, 왜 모든 기억을 나에게 강요하는가.
나는 스물두 살이었다.
대학생이었다.
일본 동경 세다기야서 감방에 불령 선인으로 수감되어 있었다.
어느 날, 내 목구멍에서
창자를 비비 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머니, 난 살고 싶어요.>
난생 처음 들어보는 그 소리는 까마득한 어디서,
내 것이 아니면서, 내 것이면서……
나는 콩크리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고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누가 나를 우롱하였을까.

나의 치욕은 살고 싶다는 데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내던진 죽음은
죽음에 떠는 동포의 치욕에서 역으로 싹튼 것일까.
싹은 비정의 수목들에서보다 치욕의 푸른 멍으로부터
자유를 찾는 소녀의 뜨거운 피 속에서 움튼다.
싹은 또한 인간의 비굴 속에 생생한 이마아쥬로 움트며 위협하고
한밤에 불면(不眠)의 담담한 꽃을 피운다.
인간은 쓰러지고 또 일어설 것이다.
그리고 또 쓰러질 것이다. 그칠 날이 없을 것이다.
악마의 총탄에 딸을 잃은 부다페스트의 양친과 함께
인간은 존재의 깊이에서 전율하며 통곡할 것이다.
다뉴브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딩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 발의 소련제 탄환은
땅 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부다페스트 켈렌푈드에 1956년 봉기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부다페스트 소녀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보인다. 기다리던 사이 버스가 왔다. 부다페스트 소녀에 대한 생각은 나중에 더 이어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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