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이동이 있는 날이어서 아침일찍 버스에 올랐다. 엊저녁부터 비가 내린 루가노는 오늘도 비예보로 채워져 있다. 날은 밝았지만 검은 구름 때문에 어둑한 아침. 오늘 향하는 곳은 스위스 남서쪽의 몽트뢰다. 이탈리아와의 접경 루가노가 5시 방향이라면 몽트뢰는 8시 방향이고 프랑스에 더 가깝다(이름도 불어식이다).

오늘의 일정은 시옹성 둘러보기(바이런의 서사시 <시옹성의 포로>(1816)의 무대인데, 정작 작품은 우리말로 번역돼 있지 않다)와 미국 시절을끝낸 나보코프가 여생을 보낸 팰리스 호텔 방문이다(나보코프의 동상이 서 있다). 여유가 있으면 공원묘지의 나보코프 무덤도 찾을 계획이다. 문학기행 시점에서는 나보코프 데이다.

이제 출발이다...

아래는 엊저녁 루가노 사진 몇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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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날 핵심 일정은 몬타뇰라의 헤세 박물관을 찾는 것이었다. 몬타뇰라가 스위스 시골의 작은 마을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루가노 시의 일부라고 해도 믿어줄 것 같다. 루가노 시는 이탈리아 국경에 가까운 도시로 이탈리아어가 통용된다(알려진 대로 스위스는 다언어 국가인데 독일어 사용자가 인구의 70퍼센트, 프랑스어 20퍼센트, 그리고 이탈리아어 10퍼센트라고 한다). 루가노는 루가노 호를 안고 있는 호반 도시이고 몬타뇰라는 루가노 호수의 전경이 발아래 펼쳐지는 산동네다. 산동네로는 대형차량이 진입할 수 없어서 일행은 버스에서 하차하여 20분 가량 언덕길을 올라갔다.

헤세가 몬타뇰라로 이주한 것은 결혼생활의 위기를 겪고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던 1919년이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아내의 정신질환, 그리고 자신의 신경쇠약으로 고통받던 헤세는 융의 제자 자크 랑 박사의 면담치료 덕에 위기를 극복한다. 그 치료담이기도 한 것이 <데미안>(1919)이다. 인생이란 각자가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여정이라는 깨달음을 담고 있다.

가족을 떠나서 홀로 몬타뇰라의 카사 카무치(카무치의 집)으로 옮겨온 것은 그러한 깨달음을 몸소 실행에 옮긴 것이라고 할까. 카사 카무치는 17세기 건축물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개성을 뽐낸다. 헤세는 작은 방 하나에 세 들어 살면서 새로운 삶을 실천한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람들과 어울렸다. 이 시절의 모습이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1919)에 그려진다.

헤세의 몬타뇰라 시절은 거주지를 기준으로 두 시기로 나뉜다. 카사 카무치(1919-1931)와 카사 로사(1931-1962) 시기. 카사 카무치 시기에 헤세의 첫아내 베르누이와 이혼하고 두번째 아내 루트 뱅거와의 짧은 결혼생활도 종지부를 찍는다. <싯다르타>(1922)와 <황야의 이리>(1927), <나르치스와 골드문트>(1930)가 이 시기에 쓰인다. 헤세의 마지막 대작 <유리알 유희>는 카사 로사 시기의 대표작. 니논과의 세번째 결혼생활이 카사 로사에서 이루어진다.

헤세 박물관은 바로 카사 카무치의 부속건물에 위치하고 있다. 미처 몰랐던 사실인데 카사 카무치나 카사 로사나 지금은 모두 개인 소유여서 박물관이 들어서지 못했다. 차선으로 마련된 것이 현재의 박물관이고(말하자면 헤세가 살았던 집의 옆집이다) 1997년에 개관했으니 역사도 생각보다는 짧은 편이다.

헤세 박물관에서 나온 노 여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카사 카무치 주변과 외관, 그리고 박물관의 전시물들을 구경했다. 일부는 이미 사진과 영상으로 보아온 것이어서 친숙했다. 관람을 마치고 단체사진을 찍은 뒤에 일행은 헤세의 무덤으로 가기 위해 언덕길을 내려왔다. 곧바로 가로수가 멋지게 늘어선 아본디오 성당으로 항했으나 성당 부속의 묘지는 도로 맞은 편에 있었다. 성당 묘지라고는 해도 규모가 있는 편이었는데 미리 사진에서 보고온 터라 헤세의 무덤을 찾는 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번째 아내 니논이 헤세 곁에 나란히 묻혀 있었다.

헤세 일정을 마무리하며 나는 주로 <데미안>의 주제와 문제성에 대해 짧게 강의했다. 스위스문학기행 3일차의 일정이 그렇게 소화되었고 일행은 점심을 먹은 뒤 루가노 호숫가와 구도심 산책에 나섰다. 이탈리아어 지역에 온 만큼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언덕길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해가 지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우중산책 길이 되었다. 핵심 일정을 끝낸 뒤여서 어떤 비가 오더라도 무방했다. 루가노 호수를 바라보며 여행자의 마음도 호수를 닮아가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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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일찍 다보스를 떠나 몬타뇰라로 향하고 있다. 3시간 소요되는 거리. 헤세박물관으로 직행할 예정인데, 가이드 예약시간이 10시반으로 당겨져 출발도 당겼지만 아무래도 늦어질 모양이다. 스위스에서는 버스의 제한속도가 80킬로여서(산길이 많아서 그런 듯싶다) 시간을 줄이지 못하는 면도 있다.

오늘의 일정은 몬타놀라를 찾아 헤세박물관과 무덤을 둘러보고 점식식사 후에 근교의 관광도시 루가노 도심산책을 하는 것이다. 취리히에서 시작하여 취리히에서 마무리하게 이번 여행의 동선은 대략 스위스를 시계방향으로 한바퀴 도는 것이다. 어제 찾은 실스마리아가 3시 방향이라면 오늘 가볼 몬타뇰라는 5시나 6시 방향이다.

이동중에는 가이드의 스위스 이야기와 함께 문학강의를 곁들이게 되는데 어제부터 계속 토마스 만과 헤세를 비교하는 강의, 그리고 헤세문학 전반에 대한 소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헤세의 몬타뇰라 시기는 1919년부터 1962년 사망할 때까지이므로 42년간이고 생의 절반이다. 작품으로는 <데미안> 이후 <유리알 유희>(1942)에 이르는 모든 작품이 몬타뇰라의 소산이다. 헤세의 생애와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라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2018년 독일문학기행 때 찾은 헤세의 고향 칼프에 이어서 그가 생을 마친 몬타뇰라 방문을 앞두게 되니 감회를 품게 된다. 에드거 앨런 포와 함께 중학생 시절 최애작가였던 <수레바퀴 아래서>의 작가 헤세. 곧 그의 공간으로 들어갈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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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의 무덤을 보고나서 향한 곳은 생모리츠다. 스위스 동남부 그라우뷘덴(불어로는 그리종)주의 도시. 사실 목적지는 실스마리아의 니체하우스이지만 실스마리아에는 단체관광객을 수용할 만한 식당이 없다고 하여 경유지로 택한 곳이다. 취리히에서 생모리츠까지의 거리는 대략 200킬로미터이고 차량으로 2시간 40분 가량이 소요된다. 언덕길이고 우리 대관령처럼 구불구불한 곳이 많아서 3시간거리로 잡아야 좋겠다.

생모리츠도 인구는 5천밖에 되지 않지만 고급호텔과 부자들의 별장이 있다는 도시다. 그에 비하면 실스마리아는 작은 마을.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 덕분에 이름이 좀 알려지긴 했으나 누군가 그 이름을 기억하고 찾아온다면 니체의 독자일 확률이 높다. 니체하우스의 오픈시간이 3시-6시여서 여유가 있었으나 점심식사가 다소 늦어지면서 식사 후에 우리는 곧바로 실스마리아로 향했다. 영화에서 보던 풍광이 그림 같이 펼쳐지는 마을로.

사진에서 본 인상으론 마을에서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았으나 니체하우스는 마을의 여느 집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정면으로 공간이 트여 있어서 따로 독립돼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 니체가 1881년부터 88년까지 여름마다 찾았던 집으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포함한 후기의 대표작들이 생산된 곳이다.

니체하우스 앞에서 먼저 단체사진을 찍은 뒤 일행은 니체하우스의 관람객이 되었다. 흔히 고흐의 방과 비교되는 니체의 작은 방을 포함해서. 니체 전집 관란 자료와 편집자들의 업적이 소개된 게 눈길을 끌었다. 대부분 자료와 소개글이 독어로만 되어 있어서 다소 아쉬웠는데 파스테르나크가 니체에 관해 쓴 1959년의 편지도 독어로 쓰여 있어서 해독할 수 없었다(바로 전 해인 1958년 파스테르나크는 노벨문학상 수상 파문을 겪었다. 수상의 계기가 된 <닥터 지바고>를 펴내기 전까지 그는 주로 괴테와 셰익스피어 번역을 생업으로 삼았었다. 니체 번역도 포햄됐었는지 확인해봐야겠다).

니체하우스를 둘러본 뒤 관리인의 조언에 따라 우리는 니체의 산책로를 걸어보기로 했다. 실바플라나 호수까지 다녀오는 산책길의 풍광은 니체가 왜 이 마을과 지역(엥가딘)에 매료됐던가를 충분히 납득하게 해주었다. 언젠가 다시 찾는다면 니체처럼 한계절(니체는 주로 여름을 이곳에서 보냈다)을 머물러보아도 좋겠다.

이 페이퍼를 적고 있는 곳은 다보스의 숙소다. 어제의 마지막 일정은 <마의 산>의 배경이 된 요양원-호텔 외관을 보는 것이었는데 실스마리아에서의 돌발 산책으로 인하여 시간이 늦어져 진행하기 어려웠다. <마의 산>의 모델이 된 요양원은 아내 카챠가 실제로 입원했던 발트 요양원과 소설에서 실명이 나오는 샤츠알프 요양원 등인데 그 샤츠알프 요양원(현재의 호텔)이 리모델링에 들어갔다는 것이고 <마의 산>과의 인연은 아마도 더 멀어지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 <마의 산>의 장소라는 의미가 다 지워지지 않는다면 다보스 일정은 주변의 키르히너 미술관 관람까지 포함하여 더 비중있게 꾸려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보스를 둘러보기도 전에 우리는 오늘 아침 일찍 숙소를 떠나야 한다. 몬타놀라의 헤세가 일행을 기다리고 있어서다. 곧 스위스문학기행의 3일차 헤세의 날이 빍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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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첫 일정은 예정대로 토마스 만의 무덤을 찾는 것이었다. 취리히 근교 킬히베르크 공원묘지의 가족무덤이라는 게 사전정보였는데(그리고 사진상으로는 외진 곳 같은 인상이었다), 막상 가보니 작은 규모의 교회묘지였고 어렵지않게 무덤을 찾을 수 있었다. 1955년 사망하자 묻힌 자리에 아내와 자녀들도 같이 묻혔다(망명지 미국에 남았던 장남 클라우스 만은 따로 묻혔겠다).

흐린 날씨였지만(오후가 되면서 개었다) 묘지 주변의 경관이 아담하고 조용하고 아름다워서 작가의 안식처로 좋아보였다. 묘비도 크지 않고 조촐했다. 토마스 만의 장소로는 뮌헨과 뤼벡, 그리고 베네치아에 이어서 네번째로 찾은 곳. 오후에 찾을 다보스가 다섯번째이자 아마도 마지막 장소일 것 같다. 토마스 만의 무덤 앞에서 독일소설사와 세계소설사에서 토마스 만이 갖는 위치와 의의에 대해 짧은 강의를 진행했다. 그리고 단체사진을 찍었다.

이어서 생모리츠로 향하고 있는데 스위스의 산과 호수, 계곡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막 단풍의 계절로 진입하고 있어서 한국에서 보지 못한 올해의 단풍을 스위스에서 먼저 즐기고 있다. ‘지루한‘ 나라 스위스의 자연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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