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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책이 나온 지 벌써 5년이 되었다. 10쇄를 거듭하고 있다니 아직까지 잘 팔려나가는 소설인 듯싶지만, 왠지 뒤늦은 책읽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읽으면서 김빠진 사이다나 식은 죽을 먹는 듯한 느낌이 내내 들었으니까. 요컨대, '그래, 너는 너를 파괴할 권리가 있겠다만,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작가는 분명 재능이 있고 아직 젊다. 따라서 그의 가능성을 미리 예단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닌 듯싶다. 다만, 그의 소설이 지닌 '가벼움'이 '경쾌함'을 지나서 '무료함'에 이르는 여정이 나같은 독자에게는 마땅찮을 따름이다.
작가는 후기에서 몽상가 기질과 역마살을 소설쓰기의 동력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런 맥락에서 이 소설이 여행안내서를 모델로 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럽다. 자살안내자로 등장하는 주인공 '나'는 압축할 줄 모르는 자들을 뻔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너저분한 인생을 하릴없이 연장해가는 자들도 그러하다. 압축의 미학을 모르는 자들은 삶의 비의를 결코 알지 못하고 죽는다.'(10쪽) 그런 의미에서 여행안내서는 압축의 미학의 교본이자 소설의 전범이다. 이를테면, 소설에는 조서(調書)체(3인칭), 고백체(1인칭)과 함께 안내서체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삶의 비의'라는 것이 반드시 압축파일식으로만 저장되고 다시 해독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작가의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는 그의 특장이지만, 등장인물들 어느 누구도 '사람다운' 면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은 적잖은 약점이 아닐까. '나'건, 'K'건, 'C'건, 그리고 '유디트'건 '에비앙'이건 모든 등장인물은 모두 그럴 듯한 이미지와 기호로 포장돼 있을 뿐 현실감이라는 아우라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맥빠지고 공허하다.
'자살보조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말짱 거짓말이지만 그것을 가능한 삶의 이야기로 읽게 하는 능란한 장인적 기예가 돋보인다'(148쪽)고 예심평은 적고 있는데, 나는 이 소설이 '말짱 거짓말'(꽃으로 치면 조화)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가능한 삶의 이야기'라는 데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도대체 이 작품 어디에서 향기가 나는지?). 소설 내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그림 이야기들과 CD플레이어의 노래들만이(마리아 칼라스며 레너드 코헨 따위) 가능한 삶의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독자들을 잠시 착각 속에 빠뜨릴 따름이다(작가는 인터넷 자살사이트를 그런 '가능한 삶'의 현실화(!)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줄거리가 같다고 해서 현실과 허구가 동일시될 수는 없다.)
나는 소설이 (여행의) 구경거리라기보다는 체험의 형식이라고 믿는 쪽이다. 여행안내자로서의 작가는 이미 나같은 독자들에 대해서 '나는 너무 많은 의로인을 원하지는 않는다'(140쪽)고 일침을 놓고 있다. 그런 그의 인생은 '거실 가득히 피어 있는 조화 무더기들처럼' '언제나 변함없고 한없이 무료하다'(그러니 그에게 무얼 더 닦달할 것이냐!). 그의 마지막 말: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141쪽) 거기에 덧붙여, '왜 읽어도 변하는 게 없을까, 소설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