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천식 때문에 잠이 깨어 보니 2시 반이 넘은 시각이었고(알레르기성 천식이 나의 오랜 지병이다), 습관처럼 TV를 켰다. 보통 YTN의 뉴스를 소리없이 (자막만으로) 보거나 하는데, 일어난 김에 SBS에서 예고돼 있던 영화 <클린>의 마무리 장면을 보기 위해 채널을 돌렸다. 올리비에 아샤야스 감독의 영화 <클린>은 작년 칸느영화제에서 장만옥(장만위, 매기정, 메이첸)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던 작품(나는 수상식장에서 그녀가 호명되는 모습을 작년 모스크바에서 TV뉴스 시간에 볼 수 있었다).

 

 

원래 0시 50분부터인가 예정돼 있던 영화를 컨디션도 안 좋은지라 포기하고 일찍 잠자리에 누웠었는데, 마침 영화가 끝나는 시각인 3시 이전에 깨 잠을 설치는 김에 마지막 장면을 봐두기로 했다. 그건 문학평론도 겸하고 있는 영화평론가 강유정이 동아일보의 프로그램 소개란에서 강추해놓았기 때문. 장만옥의, 장만옥을 위한 영화라고. 그녀의 전남편 아샤야스에 의한.  

 

"잘나갔던 한때 이후, 곧 재기의 날이 오리라 허영 같은 자존심을 부리는 여자가 있다. 그녀가 바로 에밀리. 하지만 그녀에게 남은 것은 상처뿐이다. 약물 과용으로 죽은 남편, 그리고 자신과 헤어져 살 수밖에 없게 된 아들. 약물 소지 혐의로 실형을 언도받고 아이마저 시부모에게 뺏겨 버린 에밀리에게 일상은 고통이다. 마약의 습관과 유혹에서 벗어나야 하는 고통, 사랑했던 남편을 잃은 고통, 그리고 아들을 볼 수 없는 고통. 이 외로운 마음의 감옥에서 에밀리는 아들을 데려올 수 있을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프랑스 런던 샌프란시스코를 오가는 그녀의 유랑기는 장만위의 유창한 3개 국어 실력과 더불어 묘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녀가 멀리 방랑하는 만큼 그녀의 삶은 신산하고 애처롭다. 시아버지 역할을 맡은 닉 놀테의 우려하는 듯 고즈넉한 눈빛 연기 역시 일품이다. 아들을 위해 다 타버린 재와 같은 삶에서 희망을 찾는 여자 에밀리. 타인과 소통하기 힘든 삶의 상처를 지닌 자들에게 아마 <클린>은 속 깊은 상담자와 같은 위안을 줄 법한 영화이다."(★★★★★)

 

나는 영화의 끝에서 닉 놀테와 장만옥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 그리고 장만옥이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 등을 보았다. 비록 불우한 처지에 놓여 있긴 하나 내가 감정이입할 여지가 적은 영화여서 노래가 나오는 장면 빼고는 볼륨도 제로로 해놓고 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장만옥을 매개로 해서 몇 가지 추억을 떠올렸다. 작년 봄과 늦가을에 쓴 모스크바통신들도 새삼 들춰가면서. 먼저 작년 칸느영화제의 수상식장으로 잠시 돌아가본다.   

 

 

 

 

 

  

 

 

 

-지난 토요일에 제57회 칸느영화제가 폐막됐다. 나는 토요일밤 이곳의 심야뉴스를 통해서, 마이클 무어가 그랑프리를 받았다는 소식은 접했지만,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의 수상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TV뉴스를 들을 때는 일단 화면에 비치는 걸 토대로 들리는 단어들을 재구성해보는 것인데,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의 수상에 대한 장황한 소식을 전하면서도 두 번째 상(심사위원상)을 받은 감독과 영화에 대해서는 단 한 장면도 할애되지 않았고,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화면에 장만옥(메이 첸)의 모습이 잡히길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지 않았나 짐작해본 정도가 뉴스를 통해서 내가 받은 인상의 전부였다(수상소감을 말하는 장만옥이 아니라 객석에 앉아 있는 장만옥만 카메라에 잡았기 때문이다. 메이 첸이 장만옥의 이명(異名)이란 걸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이번주 월요일자 신문을 보면서이다).

 

-일요일 저녁에 사업을 하는 친구와 몇 주만에 만나서 같이 산책을 하고 맥주를 마셨다. 산책은 러시아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과 중 하나인데, 그건 친교를 나누기 위해서 가장 흔하게 쓰는 회화표현이 같이 차 마실래요?같이 산책할래요?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또 도심에 나무와 숲, 공원이 많기 때문에 산책을 즐길 만한 여건도 된다. 우리처럼 매연을 마시면서 산책하는 게 아니란 얘기다. 대로에서 몇 걸음만 옆길로 새면, 바로 숲속이고 새들이 지저귀는 자연의 품이다. 물론 비가 오는 날 산책하는 건(영화제목대로, 우중산책!) 권할 만하지 않지만.

 

-비가 흩뿌리지 않아도 잔뜩 흐린 날씨였다. 그가 사는 아파트에서 출발하여 가까이에 있는 작은 호수(어느 정도 크기의 못이면 호수로 쳐주는지 모르겠지만)를 한 바퀴 돌아서 도로변을 걷다가 숲길로 빠졌다. 그가 자주 애용하는 산책 코스라고 하는데, 저녁에 혼자 돌아다닐 때는 골프채를 들고 간다고(혹 다섯 명이 시비를 걸어와도 문제없다고 한다!). 호수를 한 바퀴 돈 건 가끔 그곳에서 낚시를 즐기는 북한 외교관들을 볼 수 있다고 해서였다. 북한대사관 건물은 바로 호수 건너편에 있었는데, 이날은 흐린 날씨 탓인지(외교관들이 바쁠 일은 없을 것이기에) 북녘 사람들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다른 유학생의 말에 의하면, 크레믈린 광장에서도 가끔 북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한번은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걸었더니 황급히 자리를 피하더라고. 덧붙여, 이곳의 북한대사관 직원들이 근래에 차를 새 걸로 다 바꿨다고 한다.

 

-숲길을 20분쯤 더 걸어가니까 바로 엠게우(모스크바대학) 정문 앞 광장과 연결되었다. 알고보니, 이전에 한 유학생이 한번 가보라던 산책로를 거꾸로 걸어온 셈이었다. 바로 앞이 참새언덕. 사전을 보면, 참새언덕은 엠게우가 위치하고 있는 레닌언덕의 옛 지명(地名)이다. 그렇다면 그 지명이 레닌언덕으로 완전히 대체되지는 않은 셈인데, 마치 러시아 혁명미완의 기획으로 남은 것과 상관적인, 하나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레닌은 끝내 이 언덕에서 참새들을 다 쫓아내지 못한 것이다! 그리하여, 남은 건 일종의 타협인데, 대로(大路)레닌이 차지하고 전망은 참새가 차지하는 식. 우편물의 주소엔 레닌언덕이라고 쓰지만, 전철역 이름은 또 참새언덕이다. 해서, 혁명은 혁명이고, 참새는 참새이다(유구한 참새들의 일상이여!).

 

-이전에 소개한 바대로, 참새언덕은 모스크바에서 가장 높은 지대이고, 그런 만큼 가장 좋은 전망을 제공하는 장소이다. 그래서 맑은 날이면 사람들이 북적대지만, 이날은 흐린 날씨 탓인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지는 않았다. 나는 친구가 안내하는 대로, 야외 레스토랑에서 러시아산 생맥주 두 잔과 러시아식 고치구이인 샤슬릭을 안주로 먹었다. 나중에 계산하는 걸 보니, 샤슬릭 한 접시에 250루블, 즉 만원이었다. 사업하는 친구도 굉장히 비싸다면서, 가격을 한번 더 확인했다. 요컨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전망도 돈을 주고 사야 한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칸느영화제 소식을 아느냐고 물으니까(친구는 낮에 사무실에 들렀다가 오던 길이었다), <올드보이>가 심사위원상을 받아서 한국은 난리란 얘기를 했다(왜 아니겠는가?). 타란티노가 좋은 일 한번 한 셈인데, 사실 (타란티노의 취향을 고려한) <올드보이>의 수상가능성은 (한국에서야 더 잘 알겠지만) 이미 외국 언론쪽에서도 점쳐온 것이었다. <이즈베스찌야>의 영화제 취재기자이자 영화담당 기자인 마리야 쿱쉬노바에 의하면, 영화제 중간에 타란티노가 <올드보이>를 밀고 있다는 소식을 이미 <버라이어티>지가 보도했고, 쿱시노바 역시 <올드보이>가 빈손으로 돌아가진 않을 거라고 예견했었다.

 

-그밖에 영화계쪽은 잘 모르는 친구가 전해준 소식은 일본의 14세 배우가 최연소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는 게 전부였다(나중에 신문을 보고 안 이름은 이유라 야기라인데, 러시아식 표기라 우리와는 다를 수 있다). 홍콩 여배우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느냐고 물으니까, 그건 아니라고 했는데(아마 장만옥을 모르든가, 메이 첸을 모르든가), 그건 그럴 만했다. 알고 보니까 프랑스 영화에 출연한 걸로 수상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 장만옥은 이전에도 프랑스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다. <이마베프> 같은. 어쨌든 홍콩영화의 디바 한 명이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것은 축하할 일이다(문득 든 생각이지만, 장만옥은 관금붕의 <완령옥>으로도 어디서 주연상을 받았는데, 그게 국내영화제였는지 국제영화제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번이 최초 수상이라면, 좀 늦은 감도 없지 않지만...

 

Irma Vep Demonlover (Unrated Director's Cut)  

<이마베프>(1996)는 <클린> 이전에 국내에 유일하게 비디오로 소개됐던 영화인데, 아샤야스가 찍은 영화라는 걸 나는 나중에 알았다. 영화는 장만옥이 주연을 맡았었는데, 감독과 주연배우로 만났던 두 사람은 이후 결혼에까지 골인하지만 3년 후에 다시 헤어진다고. 즉, <클린>(2004)는 헤어진 전남편이 아내를 위해서 (뒤늦게) 찍은 영화이다. 그 사이에 아샤야스가 내놓은 영화가 <데몬러버>(2002)인데, 나는 작년 겨울인가 모스크바에서 TV로 이 영화를 보았다. '산업스파이에 관한 사이버스릴러'인데, 씨네21에 실린 기사에 의하면 "<데몬러버>는 일본 성인 아니메의 세계배급권을 협상하는 프랑스 다국적 기업의 여성 간부가 거대 인터넷 기업의 사주를 받아 스파이활동을 하며 야심을 키우다가 온라인 SM클럽의 노예로 전락한다는 이야기"인데, "관객과 평론가들은 <데몬러버>의 형식적 '자폭'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영화가 포르노적 이미지를 비판하는 것인지 탐닉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고 꼬집었다."(김혜리 기자)

 

 

 

 

  

  

 

 

나 또한 내가 유일하게 본 아사야스의 영화를 불쾌하게(더불어 정신없게) 보았기에 그에 대한 인상이 그닥 좋지 않았다. 해서, 가스파르 노에나 프랑수아 오종, 아샤야스 등이 프랑스 영화의 '장래'라면 참 암담하다는 생각까지 했더랬다. 재치나 파격만으로 영화의 장래를 짊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여하튼 장만옥에 대한 생각은 그녀가 나온 영화들을 꼽아보는 순서로 이어졌는데, 내가 본 최초의 영화는 주윤발과 공연한 <로즈>(1984)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유금세월>(1988) 같은 게 조금이라도 기억에 남아있는 영화이다(모두 극장에서 봤다). 미인대회 출신으로 기억되는데, 글래머라는 것 말고 별로 인상에 남지 않았었다.

   

 

 

 

 

 

 

 

 

    

그러다 장만옥이란 이름을 기억하게 된 건 순전히 왕가위 <아비정전>(1990) 덕분이다. 아주 오래 전 대학가에서 하숙할 때, 가끔 비디오가게에서 아예 비디오와 함께 테이프 5개를 빌려다가 밤새 보곤 했는데(보다가 지쳐 떨어질 때까지), 어느 날 빌린 5개의 테이프 중 하나가 <아비정전>이었고, 나는 이 영화를 그 자리에서 연거푸 봤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여러 번 봤고, 지금은 테이프를 아예 가지고 있다(그때 이후로 물론 왕가위의 모든 영화이다!). 왕가위의 데뷔작 <열혈남아>(1988)와 관금붕의 <완령옥>(1991)은 그 이후에 본 걸로 기억된다.

 

 

장만옥의 베스트로 많은 이들이 꼽을 만한 영화는 역시나 왕가위의 <화양연화>(2000)이겠지만, 개인적으론 홍콩영화의 또다른 디바 임청하와 공동으로 주연한 영화를 나는 좋아한다(임청하에게 장만옥만큼 좋은 영화운이 따르지 않은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왕가위의 <동사서독>(1994)이 그것이다(그런 영화로 서극의 <신용문객잔>도 있다. 두 여우 주연의 연기 대결만으로도 볼 만한 영화). 이 영화에는 물론 장국영이 주연으로 나오며(<아비정전> 이후의 해후인가?) 다른 조연들도 모두 홍콩영화 최강의 배우들이다. 그렇게 1990년대 전반기가 (주로 왕가위의 영화들에서) 장만옥의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다. 적어도 내가 경탄하는 이미지와 연기의 장만옥은 그때 그 시절의 장만옥이다.

 

언젠가 나는 <동사서독>이 개봉하던 날 혼자 을지로 3가의 명보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그 길로 종로로 가 명보아트홀에서 연이어 같은 영화를 또 본 기억이 있다. 아마도 겨울이었던 것 같은 그날 저녁 을지로에서 종로까지 걸어가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혼자였지만 적어도 그런 날만큼은 덜 행복하지 않았다. 이후에 이 영화를 나는 비디오로도 소장하게 됐다. 하지만, 집에서는 거의 본 적이 없다(이 영화는 집안에서 보는 영화로 적절하지 않다. '집밖'에서 봐야한다). 한번 사그러진 시간의 재(Ashes of Time)는 다시 쓸어담을 수 없다. 우리에게 남은 건 일상일 뿐. 마약의 습관과 유혹에서 벗어나야 하는 고통, 사랑했던 남편을 잃은 고통, 그리고 아들을 볼 수 없는 고통. 이 외로운 마음의 감옥에서 아들을 데려올 수 있을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에밀리처럼.

 

 

 

05. 11. 21.

 

P.S. <동사서독>에 나오는 장만옥의 가장 아름다운/처연한 대사: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 나는 혼자였어요..."

 

P.S.2. 장만옥 대사의 풀버전은 이렇다: "전엔 사랑이란 말을 중시해서 말로 해야만 영원한 줄 알았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하든 안 하든 차이가 없어요. 사랑 역시 변하니까요. 난 이겼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러던 어느 날 거울을 보고 졌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었죠.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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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5-11-21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만옥과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
로쟈님, 천식 정말 조심하셔야 하는데.
집안에 약간의 내력이 있어서 잘 아는데, 별 것 아닌것 같지만
그게 사실은 사람 잡는 병이예요.
그런 주제에도 저는 잘도 담배를 피워대고 있습니다만.
아무튼 건강 조심하세요.

로쟈 2005-11-21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염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은 좋은 약들이 나와 있는데, 주말에 약이 떨어져서 하루 고생했던 것뿐입니다(그러니 염려 놓으시길). 그리고, 금연하세요!..

하이드 2005-11-21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린' 보며, 장만옥이 정말 부럽더군요. 불어와 중국어와 영어를 원어민처럼 자유롭게 하고, 노래하고, 연기하고, 예전에는 좀 식상한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전 임청하팬이었습니다.^^) 클린에서의 모습을 보니, 아시아배우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멋지게 나이들어가는 배우가 아닌가 싶더군요. 클린, 마지막 장면이 정말 찡한 영화였어요.

로쟈 2005-11-21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의 유일하게'?!(비교대상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데뷔 20년쯤 되는 장만옥의 나이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우리 나이로 42살이니까. 마돈나보다 6살이 적은. 그리고 임청하보다는 10살이 적은!..

이리스 2005-11-21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홀로 캔맥주 마시며 이 글을 보는 지금, 아.. 간절히 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ㅠ.ㅜ

로쟈 2005-11-22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 문턱에도 캔맥주를 즐기시나 보군요. 좀 춥지 않으세요?^^

이리스 2005-11-22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헷..집은 더운편이라서욤. ^^

하이드 2005-11-22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깐, 아시아계 배우중에서 사실, 40대에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아시아 배우 장만옥 말고는 떠오르지가 않네요. 임청하.. 가 52! 살이라구요. (그녀의 마지막 영화를 본게...)
 

 

 

 

 

 

  

 

 

한 지인의 블로그에 갔다가 어제 열렸던 한국과 세르비아-몬테네그로의 축구 경기를 빌미로 발칸의 나라 (구)유고에 대해 떠올리고 있는 글을 읽었다. 과거 걸출한 공산주의자였던 티토에 의해 스탈린식 사회주의와는 다른 '제3의 길'을 진작에 모색하기도 했던 유고 연방은 1989년부터 몰아친 동구권 사회주의의 연쇄적인 몰락과 함께 해체되어 현재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으로 분할돼 있다. 그간에 축구강국으로 이름을 떨치던 나라는 크로아티아였지만, 알다시피 내년 독일 월드컵에는 세르비아-몬테네그로가 출전하며 어제 우리 국가대표팀과 평가전을 가진 것.

 

Do You Remember Dolly Bell?When Father Was Away on Business

 

지난 90년대 초반 민족간/종교간 갈등 문제로 불거진 보스니아 내전으로 언론에서 자주 접하기도 했던 나라이고 지역이지만, 유고란 이름을 내게 처음 각인시켜준 이는 영화감독 에미르 쿠스투리차(1954- )이다('에밀 쿠스트리차'로 처음 소개되었었다). 기억에 88년쯤에 종로의 피카디리 극장에서 <아빠는 출장중>을 보았고 단번에 쿠스투리차의 세계에 빠져들었던 것(영화의 끝장면에 유고 대표팀의 축구 경기가 TV로 중계되는 장면이 나온다).

 

Time of the GypsiesArizona DreamUnderground

 

그는 작년까지 25년 동안 7편의 장편영화를 찍었는데, 기억을 더듬어 차례로 나열하면, <돌리 벨을 아십니까?>, <아빠는 출장중>, <집시의 시간>, <아리조나 드림>, <언더그라운드>,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삶은 기적이다> 등이다. 이 중 맨처음 영화와 마지막 영화가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고, <아리조나 드림>은 수입됐지만 내내 창고에 있다는 얘기를 들은 듯하다(이기팝의 주제가만이 드라마 등에서 자주 흘러나왔다).

 

Crna Macka, Beli Macor (Black Cat, White Cat) - PAL DVDZivot Je Cudo (Life Is a Miracle) - PAL DVD (Official Russian release)

 

알라딘에 이미지가 없어서 영화의 타이틀 이미지들은 아마존에서 따왔는데, 마지막의 <검은 고양이, 흰고양이>와 <삶은 기적이다> 두 이미지는 러시아판의 것이다.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를 나는 몇년 전에 동숭아트홀에서 봤었고, 국내에서 아직 개봉되지 않은 영화 <삶은 기적이다>는 작년 연말에 모스크바에서 비디오CD를 구해서 봤다(영화는 작년 칸느영화제 출품작이었고, 모스크바에도 일찍 소개됐다). 그때 쓴 모스크바 통신의 내용을 잠시 옮겨온다.

 

삶은 기적이다

 

-‘Life is a miracle은 에미르 쿠스투리차의 최근작 <삶은 기적이다>(2004, 155)의 영어/공식 제목이다(러시아어 제목을 영어로 옮기면, Life as a miracle). 이 영화는 지난 봄에 칸느영화제에 출품됐었고(내 기억에, 쿠스투리차는 <아빠는 출장중> <언더그라운드>로 칸느에서 두 차례 작품상을 받았으며, <집시의 시간>으로 감독상을 받은 바 있다. 이 신작의 돈줄도 프랑스이다), 지난 6월에 모스크바 영화제에 초청되었고(이 영화제에서 그는 공로상을 받았다) 이어서 8월에 공식 개봉되었다. 나는 최근에 비디오CD로 출시된 걸 사서 봤다(영화관람료의 1/2로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보존할 수 있기 때문에 출시되기를 기다렸었다).

 

 

-감독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보스니아 전쟁의 패러독스와 부조리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 영화는 에미르 쿠스투리차 종합선물세트 같다(*발칸의 운명을 다룬 영화들로 <언더그라운드>와 함께 꼭 비교해서 보아야 할 영화들은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율리시즈의 시선>과 밀코 만체브스키의 <비포 더 레인>이다). 나는 그의 영화 <아빠는 출장중>을 오래 전 피카디리극장에서 처음 보고서 한 방 얻어맞았고(그날 밤의 종로 3가를 아직 기억한다. 나는 비틀거리며 하숙방에 돌아오자 마자 혼수상태에 빠졌었다), <집시의 시간>을 개봉되기도 전에 조야할 필름으로 여러 번 보면서 넉다운됐었다. 그는 영화는 기적이란 걸 내게 보여주었다.

 

 

-<집시의 시간> 이후의 그의 영화들은 더 이상 나를 놀라게 하지는 않는다(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거기엔 낯선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친숙한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나는 그의 데뷔작 <돌리 벨을 아십니까?>와 미국에서 찍은 <아리조나 드림>을 보지 못했다. 그 영화의 주제가가 이기 팝의 노래이다. 나중에 국내의 드라마 주제가로도 쓰인). 모스크바에 곧잘 들르는 그가 지난 17일에는 자신이 조직한 밴드 를 이끌고 와서 연주공연을 했는데(영화감독들 중 열렬한 밴드부원들이 몇 있는데, 쿠스투리차와 함께 우디 알렌, 짐 자무시, 아키 카우리스마키 등이 내가 아는 사례들이다), 이를 계기로 언론에 게재된 인터뷰를 보고서 나는 이 친숙한 세계에 대해서 좀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세계, 혹은 집시의 시간을 그는 중세적 세계라고 불렀다(물론 자신에 영화에 등장하는 집시들은 언제나 은유라고 그는 <아피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리고 인터뷰어가 밝히는 바에 따르면, 세르비아에 다녀온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쿠스투리차가 낭만주의자가 아니라 리얼리스트라고 말한단다. 쿠스투리차의 영화세계가 (지나치게)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세르비아에 한번 가볼 일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포스트모던을 새로운 중세라고 불렀지만, 쿠스투리차에게 있어서 이 둘은 서로 대조/대립된다. 하지만, 에코와 쿠스투리차의 중세가 동일한 외연을 갖는 건 아니므로 이러한 의견차이는 수긍할 만하다. , 이탈리아 사람 에코의 중세가 중심부 중세라고 한다면, 세르비아(구 유고) 사람 쿠스투리차의 중세는 주변부 중세이기 때문이다(역사상 집시들이 중심부에 있었던 적은 없지 않은가). 하여간에 쿠스투리차에게 2004년은 아주 뜻 깊은 한 해였는데, 그건 그의 신작 영화 때문이 아니라 그의 도시 때문이다. 도시라고는 부르지만 우리식 명칭으론 마을이라고 해야 할 텐데(우리로 치면 민속촌 같은 집시촌이다. 한번에 50여명 정도가 거주할 수 있다고 하니까), 그는 실제로 영화 <삶은 기적이다>의 배경으로 나오는 이 마을을 직접 건설하여 자신의 소유로 갖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는 그 마을의 시장이자 촌장이다(그가 꿈꾸는 마을은 초기 기독교 수도원이나 히피공동체이다).

 

-쿠스투리차의 그 중세적 마을은 베오그라드로부터 200킬로쯤 떨어져 있으며, 여관/호텔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관광객(구경꾼들) 사절이다. 쿠스투리차는 자신의 말마따나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지만, 자선(自選) 시장으로서 자신의 시민들을 직접 뽑아서 살게 할 계획인데, 주로 영화나 미술, 문학 등을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2달 정도씩 (집시적으로 혹은 히피적으로) 함께 살면서, 전통 제련술부터 개념주의(예술사조로서의 개념주의를 말한다)까지 배우면서, 한마디로 Culture and agriculture하면서, 연구와 세미나, 잔치(축제) 같은 걸 벌이게 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도시/마을의 이름이 어떻게 정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쿠스투리차란 이름은 한 거장의 이름이면서 이젠 한 지명(地名)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쿠스투리차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요?(*구글 어스에서 찾을 수 있을까?)

 

Unza Unza Time

 

 -쿠스투리차가 베이스 기타를 맡고 있는 집시 테크노 밴드 <노 스모킹 오케스트라>의 지난번 모스크바 방문은 유럽 투어의 일환이었는데, 이들의 새 앨범이 바로 <삶은 기적이다>의 사운드트랙이었고, 이 앨범 출시를 계기로 이루어진 투어의 타이틀은 삶은 그냥 여행(투어)이 아니라 기적이다였다. 그런 걸 말하기 위한 투어였으니까 이들의 투어는 수행적 혹은 화용론적 모순의 일례라 할 만하다. 인생은 여행길이고 나그네길이고 소풍길이란 얘기들을 하지만, 나는 그러한 태도의 이면이 기적으로서의 삶에 대한 회피가 아닌가 싶다. 누가 여행을 하는가? 자신의 삶을 기적으로 만들기/연출하기가 두려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의 기적과 남들의 기적을 구경하러 다닌다. 그리고 그런 기적들 옆에서 사진을 찍는다. 남들의 기적이 자신에게 옮기를 바라는 듯이.

 

 

 

 

 

 

 

 

  

 

-세르비아인으로서 쿠스투리차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이보 안드리치이다. <드리나강의 다리>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유고 작가(안드리치의 허름한 작품집을 헌책방에서 봤지만 사지는 않았다). <도서평론>이란 저널에서 한 해를 결산하는 설문들을 명사(名士)들에게 돌렸는데, 그가 거기에 답한 내용이다. 연말이고, 이미 이달 초부터 발행년도가 2005년이라고 찍힌 책들이 나오고 있다. 내게 2005년이 갖는 의미는 다른 것이 아니다. 2005년의 책들이 나온다는 것. 이미 나온 2005년의 책들 가운데는 타르코프스키에 관한 책도 있고, 라캉 노트 포켓북 시리즈로 지젝과 류블랴나 학파의 책들도 있다. 지젝의 것은 <상호수동성>이란 제목으로, 돌라르와 보조비치, 주판치치 글을 묶은 책은 <사랑이야기>란 제목으로 나왔다(*주판치치의 글은 얼마전에 번역서가 나온 <정오의 그림자>에 부록 '희극으로서의 사랑에 대하여'이다)...

 

 

 

 

 

  

  

 

 

그랬던 게 작년말이니까 어느새 일년이 지나고 있다(곧 2006년의 책들이 나온다!). 이보 안드리치의 <드리나강의 다리>는 (무거운) 러시아어본을 구해왔었고, 지금은 친구에게 빌린 국역본과 함께 내 서가에 누워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들처럼(로쟈 왕자는 내내 일없이 출장중이다). 안드리치에 이어서 내가 떠올리는 이름이 슬라보예 지젝인데, 그는 과거 유고연방을 구성했던 슬로베니아가 낳은 최고의 스타 지식인이다. 슬로베니아 사람 지젝이 세르비아 사람 쿠스투리차에 대해 비판의 메스를 가하고 있는 대목이 <환상의 돌림병>(인간사랑, 2002)의 한 절 '인공청소의 시'이다(123-130쪽; 'The Plague of Fantasies', 60-64쪽). 이에 대한 정리는 물론 따로 자리를 마련해야 가능하다...

 

05. 11. 17.

 

P.S. 쿠스트리차와 자주 같이 작업을 하고 있는 고란 브레고비치의 집시밴드도 내한 공연을 했던 듯한데, <노 스모킹 오케스트라>의 음반이 국내엔 나와 있지 않은 것인가? 음악을 같이 올려놓지 못해 약간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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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레스 2005-11-17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평소에 월드뮤직...이랄 것까지는 없고, 중남미를 중심으로 세계 여러 곳의 음악을 듣는 걸 즐기는데, 로쟈님 글 보고 찾아보니 MP3가 몇 개 있더군요.
찾아서 구해놓기만 하고 듣지 않은 음악 파일이 몇 십 GB 단위까지 올라가는 마당에, 이렇게 기억을 되돌이켜 주시니 감사하네요.
"Bulgarian Dance"란 곡인데, 방문객 여러분도 한 번 들어보시죠? ^^

로쟈 2005-11-18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까지 서비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음악은 (취향이 좀 촌스러워서) 어코디언이 많이 들어간 쪽입니다. 피아노 소리보다 어코디언 소리를 더 맘에 들어하는 걸 보면 전생에 집시였는지도...

불한당들의 모험 2005-11-18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아노 소리도 좋지만,아코디언도 좋아요,집시까진아니지만멜로트론같은구닥음도 좋답니다.간만에 들으니 아싸!흥~이.삶은기적ost는 1년이 지났는데도못구해서Unza Unza Time으로 위로를 삼고 있죠.작년인생은기적을봤었는데,이글보면서또즐거운되새김질하고있습니다.쿠스트리차마을얘긴신기하면서재밌는소식이었요.

2005-11-18 16: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5-11-18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험님/ '신기하면서재밌는 소식'이셨다니 저도 신납니다. 밥먹으러 가야겠습니다.^^

jiwok 2005-12-28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십니까? 로쟈님.
저는 2차대전 러시아 사회에 대해 관심이 있는 회사원 입니다. 실례되는 것은 알지만 마땅한 자료를 구하지 못해서요. 궁금한 것은 한국에 번역된 서적 중 1940년대 독-소 전쟁 시기에 대한 경험담/개인적인 회고록/소설/ 역사서 등이 있는지요? "여기 들어오는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와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은 읽었습니다만 자주 인용되는 서적 중에 Vasilli grossman의 "Life & Fate"가 있던데 매우 궁금했습니다만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vandal 2006-01-26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밀 쿠스트리차의 아빠는 출장중 볼수없나요?? DVD도 품절이고 갖고 계신분 있으면 공유해서보면 안될까요??? 이작품아니고도 다른작품도 괜찮습니다. 구하기가 힘드네요.....
부탁합니다.^^
 

 

 

 

 

'토성의 영향 아래(Under the Sign of Saturn)'는 작년말에 세상을 뜬 수잔 손택(1933-2004)의 신간 <우울한 열정>(시울, 2005)의 원제이면서 책에 실린 '발터 벤야민'론의 제목이기도 하다. 소설가이자 비평가이기도 한 이 전방위 지식인이 특히 빛을 발하는 것은 에세이들을 통해서인데(에세이의 한 전범을 보여준다), <토성의 영향 아래>(1980)는 <해석에 반대한다>(1966)와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1969)에 뒤이은 세번째 에세이집으로서 1972년부터 1980년까지, 그러니까 40대 중년의 손택이 쓴 에세이 7편을 묶은 책이다. 그녀는 이러한 에세이 30쪽짜리를 쓰기 위해 (믿거나 말거나) 수천 페이지를 쓴다고 하는데, 그 '열정'이 경이롭다(동시에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우울한 열정>의 속표지에는 근간예정으로 손택의 또다른 에세이집과 소설들도 거명돼 있는 걸로 보아 이대로라면 조만간 '손택 전집'이라도 갖추어질 듯하다. 나는 그녀의 다른 책들을 현재는 품절된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을 제외하곤 모두 갖고 있다. 하니 나름대로 손택을 읽을 준비는 돼 있는 셈인데,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읽은 몇 편의 에세이들보다 이번 <우울한 열정>에 실려 있는 에세이들이(아직 다 읽지 않았지만) 더 편하게 다가왔다. 아마도 거꾸로 읽어나가야 할 모양이다.   

책을 열면, 처음에 '조지프 브로드스키에게'란 헌사가 나온다. 두 페이지 뒤에 가서 브로드스키에 대한 역주가 나오는데, 'Joseph Brodsky'(1940-1996)는 '러시아 태생의 미국망명시인'이다. 그의 이름은 러시아어로 '이오시프 브로드스키'라고 읽으며 국내에도 그렇게 소개돼 있다. 198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는데(러시아에서는 1990년대 이후에 소개되어 20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러시아 시인'의 한 사람으로 인정된다), 국내에서 브로드스키의 책들이 번역돼 나온 건 물론 그 수상을 계기로 해서이다.

예컨대 <소리없는 노래>(열린책들, 1987), <겨울결혼식>(정음사, 1987), <20세기의 역사>(문학사상사, 1987) 등의 시집과 에세이집 <하나반짜리 방에서>(고려원, 1987), 희곡인 <대리석>(한마당, 1987)까지 앞을 다투듯이 나왔던 것. 역주에서 '하나도 채 못되는(Less than one)'이란 옮겨진 것이 <하나반짜리 방에서>이며 안정효 번역이다(다른 역자에 의해 <하나도 채 못되는>(성원, 1987)이란 번역서도 나왔는데, 실물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안정효의 책과 원저를 갖고 있다). 원저(1986)가 5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인 걸 고려하면 국역본은 발췌역이겠다. 

 

 

 

 

시집이 여러 권 번역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말로 브로드스키를 읽고 감상한다는 건 먹다 남은 가시만 가지고 생선의 맛을 음미하는 거나 마찬가지로 넌센스에 가깝다(브로드스키의 성탄시 한 편에 대해서 나는 '모스크바통신'에서 자세하게 분석한 바 있다). 러시아시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일찍부터 영시에도 조예가 깊었던 브로드스키는 특히 존 던을 애송했었고, 미국 망명 이후에는 로버트 프로스트에 바치는 시들을 쓰기도 했다. 지난 2002년에는 그가 쓴 영시들이 (사후)출간되기도 해지만, 러시아시만큼 평가받는 것은 아니며 그의 본령은 역시나 러시아시이다. 하지만, 에세이스트로서 그의 명성은 언어에 구애받지 않는데, 손택과의 교분은 그런 배경하에서 이루어진 듯하다(브로드스키에 대한 에세이도 손택이 썼음 직하다. 한번 찾아봐야겠다!).  

어쨌거나 생각난 김에 브로드스키의 시 한편을 옮겨놓는다. 아마도 국내에서는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시이며, 노벨상 수상 기사와 함께 언론에 게재되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겨울 물고기>. 좀 드문 일이지만, 이 시는 우리말 번역으로도 시가 된다.

겨울 물고기

물고기는 겨울에도 산다.
물고기는 산소를 마신다.
물고기는 겨울에도 헤엄을 친다.
눈으로 얼음장을 헤치며,
저기
더 깊은곳
바다처럼 깊은곳으로.
물고기들
물고기들
물고기들
물고기는 겨울에도 헤엄을 친다.
영원히 같은
물고기 방식으로.
물고기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얼음덩이속에 머리를 기대고
차디찬 물속에서
얼어붙는다.
싸늘한 두눈의
물고기들이
물고기는 언제나 말이없다.
그것은 그들이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고기에 대한 시도
물고기처럼
목구멍에 걸려 얼어붙는다. 

아직은 11월이고 '가을 물고기'의 목구멍은 아직 멀쩡하기에 계속 떠들어보기로 한다. 여하튼 손택이 <우울한 열정>을 브로드스키에게 헌정하고 있다는 말씀이고, 엊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나는 책에서 세편의 에세이를 읽었다. '폴 굿맨에 대하여' '토성의 영향 아래' '바르트를 추억하며'. '폴 굿맨'은 손택이 다루고 있는 인물들 가운데 내겐 가장 생소한 이름이었는데(내가 아는 '좋은 사람'은 '넬슨'밖에 없다), 그의 부고를 듣고 쓴 '폴 굿맨에 대하여'(1972)에서 그녀는 그가 자신의 '영웅'이었음을 열정적으로 고백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손택에 따르면, "D. H. 로렌스 이래로 여어를 그만큼 설득력 있고 진실하고 독창적으로 구사한 사람은 없다."(18쪽)

그런 그와 손택은 친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그녀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그를 싫어했다. 이유가 (이해할 만한) 가관인데 "그의 생전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소연하곤 했듯 그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 그럴 만했던 게 "폴 굿맨은 원래 여자를 인간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나중에 그 자신이 터놓고 고백한 바대로 동성애자였기 때문이다. 해서 손택의 사랑은 일방적인 짝사랑일 수밖에 없었던 것. 아무려나 이 에세이를 읽은 독자라면 '폴 굿맨'이란 이름을 쉽게 잊어먹지 못할 것이다.

 

 

 


 

'바르트를 추억하며'(1980)는 풀 굿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바르트의 부고를 듣고 쓴 에세이이다. 짤막한 분량이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학비평가 롤랑 바르트의 초상을 생생하게 스케치하고 있다. 그리고 바르트 정도라면 내게도 낯설지 않다. 청년시절 병약했던(폐결핵을 앓았다) 바르트가 첫 책을 출간한 것은 37살의 일이니까 우리 기준으로도 좀 늦깎이다. 하지만 "뒤늦게 출발한 뒤에는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많은 책을 썼다." 특별히 손택만의 의견이랄 건 없는데, 하여간에 "그는 무엇에 관해서든지 간에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것 같"은 지식인이었다.

 

 


 

 

젊은시절에 바르트는 지방 극단에서 연기도 하고 연극비평도 했다. 거기서 비롯된지 모르지만, 그의 아이디어들을 극적이었다(His sense of ideas was dramatugical). "프랑스의 지적 무대에 스스로를 올리면서 그는 전통적인 적에 반기를 들었다. 그것은 플로베르가 '기성관념'이라고 불렀고 '부르주아'적 감성이라고도 알려진 것, 마르크스주의자가 허위의식이라는 개념으로, 사르트르 추종자들이 '나쁜 믿음'이라고 맹렬히 비난한 것, 고전 연구로 학위를 받은 바르트는 '최근 의견'이라고 이름붙인 것이다."(134쪽)

 

 

  


 

플로베르의 '기성관념'(received ideas)은 <통상관념사전>(책세상, 2003)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부르주아적 감성'은 부르주아적 멘탈리티를 가리키고 마르크스주의에서의 '허의의식'이란 말 그대로 '이데올로기'를 지칭하겠다. 사르트르의 '나쁜 믿음'은 흔히 '자기 기만'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바르트의 '최근 의견'이란 건 그리스어 'doxa'의 번역으로(예전엔 '억견'이라고 번역했다) 'current opinion'이라고 병기된 걸 참조한 듯하지만 오역에 가깝다. 근거 없는 믿음을 뜻하므로 '통속적인 의견' 정도가 어떨까 싶다. 어쨌든 그러한 '우상들'에 대한 바르트의 공격은 <신화학> 혹은 <현대의 신화>(동문선, 1997)로 묶여나왔다. 

"바르트를 매혹한 것은 정신적 분류학이다"라고 손택은 진단하는데, 구조주의자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지는 초기 바르트의 세계가 특히 그에 해당한다. "그는 문학에 대해 말하는 행위를 통해 문학을 만들어내는, 무책임하고 장난스러운 형식주의자였다"라는 게 손택의 지적이며, 변태적인 것에 면밀한 관심을 가졌던 바르트는 "그것이 해방적이라는 낡은 시각을 갖고 있었다"라고 그녀는 꼬집는다(폴 굿맨과 마찬가지로 바르트 또한 동성애자였으며 "그와 같은 성적 취향과 유명세를 가진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상당한 성적 특권을 누렸다"). 그래도 "그가 쓴 글은 무엇이든 다 재미있다."

두 권 정도가 예외인데, "초기에 쓴 라신에 관한 논쟁적인 책." 흔히 프랑스 문학에서 신구비평 논쟁을 가져온 저작인데, <라신에 관하여>(동문선, 1998)로 국내에는 소개돼 있다. 또 한권은 "보통 책 길이의 패션 광고의 기호학에 관한 책"인데, 우리말로는 <모드의 체계>(동문선, 1998)로 번역돼 있다. "학회 회비를 내기 위해 쓴 것으로 몇 편의 거장다운 에세이를 담고 있다."라고 했는데, '학회회비를 내다'는 'to pay his academic dues'의 번역이다. 그런 관용표현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드의 체계>가 바르트가 제출한 박사학위청구논문이었으므로 직역해서 (학위논문심사에는 비용이 듦으로) '학위논문 수수료를 내기 위해 쓴'이라거나 의역해서 '박사학위 논문으로 쓴' 정도의 뜻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바르트의 지적 생애에 관심있는 독자에게 궁금한 것 중 하나는 <기호학 요강>과 <모드의 체계> 같은 책을 쓰던 그가 <텍스트의 즐거움>이나 'S/Z'의 저자로 변신한 내막이다. 이에 대한 손택의 해명이 명쾌하다. "바르트의 작업은 극복되거나 부인된 슬픔에 관한 것이다. 바르트는 모든 것을 하나의 체계, 하나의 담론, 하나의 분류체계로 취급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모든 것이 체계이므로, 무엇이든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체계에 싫증을 냈다. 그의 정신은 너무 민첨하고, 야심적이고, 모험에 끌렸기 때문이다."(138쪽, 번역 일부 수정)

체계 이후에 바르트가 선택한 것은 자기 자신이었고, 그는 자기 자신의 '위대한 작가'가 되었다. 즉, "그는 자기 자신이라는 양떼를 끄는 양치기가 되었다."(139쪽에서 '바르트가 쓴 바르트가 쓴 바르트'란 책명은 '바르트에 대한 바르트에 대한 바르트'라는 '리뷰명'으로 바뀌어야 한다.)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나 <사랑의 단상> 같은 책들은 그 대표적인 목록이다. 1977년부터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뒤늦은 명성을 구가하던 바르트도 남모르는 욕심을 품고 있었으니 그건 그가 흠모하던 프루스트 같은(그는 프루스트를 자신의 '수프'라고 말했었다) '진짜 소설'을 써보고 싶어했다는 것. 그러나 그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 불의의 교통사고가 아니었다면 혹시 모를 일이다.

 

언제나 텍스트의 즐거움을 만끽할 줄 알았던 바르트는 '정신적 방탕자'이자 '위대한 화해자'였다. 해서 "그는 비극적인 것에 대해서는 별 감정이 없었다. 그는 늘 불리한 상태에서 유리한 점을 찾았다. 현대 문화비평가들의 고정 주제 중 여럿을 그도 다루지만 종말론적인 관념은 거의 없었다... 그는 극도로 정중하고, 약간 탈세속적이고, 쾌활했다. 그는... 언제나 슬픈 빛을 띤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 쾌락에 관한 그의 말 전체에 무언가 슬픔이 있다... 그는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며 그의 쓰지 못한 책의 목적은, 삶을 찬미하고, 살아있는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141-2쪽) 그의 '쓰지 못한 책'이란 그가 쓰려고 했던 '소설'을 말한다.

 

 

대략 이런 것이 생전에 "아, 수전, 언제나 충실한 친구(Ah, Suzan. Toujours fidele.)"라고 만날 때면 그녀를 호칭했다는 바르트에게 끝까지 충실하게 남은 손택의 스케치이다. 그리고 이만한 분량으로 바르트에 대한 이보다 더 예리하면서도 정감있는 스케치를 그려낼 수 있는 이는 따로 없을 듯하다. 그런 손택과 바르트가 만나는 또다른 지점은 바로 '사진'이고 국내에서 출간된 <사진론>(현대미학사, 1994)는 두 사람의 사진론을 묶어놓은 적이 있다(번역은 신뢰할 수 없지만). 각각 따로 읽어야 할 책은 물론 <카메라 루시다>(열화당, 1998)과 <사진에 관하여>(시울, 2005)이다(*<카메라 루시다>는 <밝은 방>으로 재번역돼 나왔다).

 

 

 

 

 


 

 

 

05. 11. 15.

P.S. 분량상 벤야민론, 즉 '토성의 영향 아래'는 다른 자리에서 정리하기로 한다. 한편, 얼마전 '북데일리'란 저널에 <우울한 열정>에 관한 리뷰 기사가 실렸는데(다시 확인해보니 '얼마전'이 아니라 '오늘자' 리뷰이다), '독일 지성 벤야민이 독일어를 몰랐다?"란 제목을 달고 있다. 전반부의 내용은 이렇다.

 

지난해 12월 백혈병으로 타계한 ‘행동하는 지성’ 수전 손택(1933~2004)이 7명의 예술가에 대한 평전 <우울한 열정>(시울. 2005)을 통해 독일 유태계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왕성한 독서가가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실천하는 사회운동가, 에세이스트, 소설가, 극작가, 예술평론가였던 그녀는 발터 벤야민에 대해 “그가 쓴 글은 무엇이든 다 재미있다. 쾌활하고, 빠르고, 조밀하고, 날카롭다”고 말하고 “그는 꼼꼼한 독서가였지만 왕성한 독서가는 아니었다”는 독특한 해석을 내린다. 이런 판단은 벤야민이 읽은 내용에 대해서는 대부분 자신의 글 소재로 삼거나 평론을 썼기 때문에, 쓰지 않은 것은 읽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에 근거한다.  

 

수전 손택은 “벤야민이 외국어를 몰랐고, 외국 문학은 번역된 것도 거의 읽지 않았다”고도 말한다. 독서를 하느라 글을 쓰지 못할 정도로 독서에 대한 호기심을 가졌던 사람은 아니며, 오히려 유명세를 즐겼다는 수전 손택의 평가는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극도로 정중하고, 약간 탈세속적이고, 쾌활했다. 그는 폭력을 혐오했다. 언제나 슬픈 빛을 띤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 쾌락에 관한 그의 말 전체에 무언가 슬픔이 있다”

 

짐작하겠지만, 인용문에서 주어 '벤야민'은 전부 '바르트'로 바뀌어야 한다. 무얼 읽고 쓴 리뷰인지는 모르겠지만, 엉뚱한 내용을 받아적은 듯하다. 독일 사람인데다가 불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던 '벤야민이 독일어를 몰랐다?" 이런 턱도 없는 '도발적인' 제목을 달고도 서평지 기자의 목이 아직 붙어 있는 건지, 나로선 그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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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16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5-11-1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브로드스키의 시집들을 저는 다 갖고 있었는데, 역시나 번역본의 한계를 넘어서기가 힘들더군요. 이장욱의 <혁명과 모더니즘>에 한 장이 브로드스키의 시세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도 여건만 되면 동참하고 싶지만.^^
 

11월도 어느덧 중순이다. 지난주 한겨레 책.지성 섹션에서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의 칼럼을 읽었다. '올해의 책으로 뽑을 책이 없다'라는 제목이었다. 시작은 이렇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한해를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올해 혁혁한 성과를 낸 책이나 출판사를 꼽아보는 일이 늘었다. 나 역시 책을 추천해달라는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 하지만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그런 물음에 답할 책을 별로 찾지 못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들의 생각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 전화를 받아본 적이 없는 나로선 특별히 고민할 일도 아니지만, 올해의 책이 없다는 출판전문가들의 견해는 그리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판단의 비교기준이 되는 책은 2000년말부터 출간되기 시작해서 작년에 12권으로 완간된 <한국생활사박물관>(사계절) 시리즈라고 한다(아직 소장하고 있진 않지만 명성은 익히 들어본 책이다). 무엇보다도 책의 디자인이 탁월하다고 하는데, 그 시리즈의 아트디렉터인 김영철씨가 최근에 디자인한 책이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휴머니스트)라고. 북디자인을 보고 책을 사는 일이 워낙에 드문지라 조만간 읽어볼 성싶지는 않지만, "그러나 앞으로 우리 출판계는 이런 책들을 펴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비감한 진단 앞에서는 괜히 덩달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출판환경이 그만큼 나빠진 모양인데, 한소장이 거론하고 있는 문제점은 인터넷서점들과 관련되는 것들이다: "인터넷서점들은 책의 입고율을 심하게 낮추고 있다. 게다가 경품,쿠폰, 광고 등 인터넷서점이 요구하는 조건을 모두 들어주면 출판사는 책을 팔아봐야 적자다. 실제로는 출판사들이 죽을지 뻔히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낮춰주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다 보니 책의 질은 형편없이 낮아지고 있으며, 출판시장에서 다양성과 창의성과 혁신성은 급속하게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결국 한 해를 대표하는 출판물을 뽑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라도 출판계의 대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한 사람의 독자로서 내가 출판계의 자구노력에 동참할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단지 좋은 책을 많이 산다, 정도가 나의 몫인 듯싶다(책값과 관련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입다물고 있더라도). 더불어, 좋은 책에 대한 입소문 정도는 많이 내줄 수 있으리라. 최근에 나온 책들에 대해서 줄기차게 떠벌이는 것도 자칭 그런 소문 진작의 일환이다. 그래도 이 연재와 관련한 땡스투 마일리지가 한달에 8000점까지 되는 걸 보면 헛짓은 아니겠다. 그걸 변명삼아 맘에 드는 책 몇 권에 대해서 잠시 또 입담을 늘어놓도록 한다.

 

 

 

 

맨처음에 꼽을 책은 장 자크 루소의 <고백>(박영률출판사). 이번에 새로 나온 게 아니가 작고한 김붕구 선생의 옛 번역본(성문각, 1976/1984)이 재출간된 것이다. 당시엔 7권짜리 '루소 전집'도 나왔었고 <고백>(혹은 <참회록>)만 하더라도 네댓 종의 번역서들이 즐비했었다. 하지만, 다 과거지시이고, 요즘은 눈을 씻고 봐도 구할 수 없었던 게(특히나 가로본으론) 루소의 자전적 주저인 <고백>이다. 흔히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 또한 여러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다), 톨스토이의 <참회록>(범우사)과 함께 세계 3대 고백록으로 꼽히기도 하는 작품(우리 나라 사람들은 이런 데 약하기 때문에 언급해 둔다).

다소 분량이 많지만(719쪽), 그게 오히려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진작부터 이 책을 소장하고 싶었는데 마땅한 국역본을 구하지 못했었다. 해서 옥스포드대학의 영역 문고본을 갖고 있는 데 만족하고 있었는데(작년에 모스크바에서는 러시아어본을 들고 내내 망설이다가 중량이 부담스러워 끝내 놓고왔었다), 이번에 구색을 맞추게 되었다. 자전적인 내용인 만큼 객관적인 전기와 같이 읽어보는 것도 유용할 듯싶은데, 게오르크 홀름스텐의 <루소>(한길사, 1997)를 추천하겠다. 단숨에 읽을 만큼 재미있었던 책. 저자인 홀름스텐은 로로로시리즈의 <볼테르>로 썼는데, 아직 국역서가 나오고 있지 않다(내가 고대하는 책이다).

 

 

 

 

루소와 볼테르, 당대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의 대비가 아주 흥미로운데('듀오그라피'감이다), 상대적으로 국내에선 볼테르가 홀대받고 있는 듯하다(한국에서 볼테르는 <캉디드> 하나로, 말 그대로 깡으로 버티고 있다). 그나마 읽을 만한 책은 내 견문으론 윌 듀란트의 <철학이야기>(문예출판사)이며, 거기서 저자는 '볼테르와 프랑스 계몽운동'에 한 장을 할애하고 있다. 참고로, '한국의 볼테르'란 별명으로도 불리는 강준만 교수의 최근작은 <한국 논쟁 100>(인물과사상사)이다. 그럼, '한국의 루소'는 누구인가? '급진 좌파'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아이 다섯을 모두 고아원에다 맡길 만한 위인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군(자기 자녀 교육에 공들이는 '좌파'를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이 자리에서 루소의 책들을 나열하는 건 부질없는 일이다. 또다른 주저들인 <에밀>과 <사회계약론> 정도를 구경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대신에 아직 국내 불문학계에서 그만한 저작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평을 듣는 <보들레에르>(문학과지성사, 1997)의 저자 김붕구 선생의 번역서 몇 권을 음미해보도록 하자.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부터, 앙드레 말로의 <왕도로 가는 길>, <인간의 조건>, 그리고 스탕달의 <적과 흑>. 나는 <지상의 양식>과 <적과 흑> 정도는 (현재의 판본들이 아니지만) 김붕구 선생의 번역으로 읽은 듯하다. 젊은 날의 양식들.

 

 

 

 

두번째 책은 이미 각 언론의 북리뷰에서 크게 다루어진 책, 애덤 팬스타인의 <빠블로 네루다>(생각의나무)이다. 제목 그대로 칠레의 대표 시인 네루다(1904-1973)의 일대기를 그린 전기이고, 작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나왔던 만큼 방대한 분량(730쪽)과 읽을 거리를 자랑한다. 책에 대해서는 이미 일간지들에서 다룬바 있으므로 나는 좀 다른 얘기들을 덧붙이겠다. 사실, '네루다'란 이름이 내게 각인된 것은 정현종 시인 덕분이다.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민음사, 1989)를 번역하기도 했지만, 네루다는 정현종 시인의 20세기 최고의 시인으로 서슴없이 꼽았던 시인이다(로르카가 차석쯤 될까?). 하니 네루다의 전기는 그의 시집들과 같이 읽어야 제맛이겠다.

한편으로 네루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시네마 천국>으로 잘 알려진 배우 필립 느와레가 네루다 역으로 나왔던 영화 <일 포스티노>(1994)이다. 그 원작소설이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민음사, 2004). <인어와 술꾼들의 대화>(솔, 1995)란 시선집은 종로의 코아아트홀에 영화를 보러갔다가 받아온 시집이다. 그밖의 시집으로 <실론 섬 앞에서 부르는 노래>(문학과지성사, 2000), <100편의 사랑 소네트>(문학동네, 2004)가 더 번역/소개돼 있다. 그 정도면 네루다에 빠져볼 만하겠다.

 

 

 

 

세번째 책은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만능 지식인 움베르토 에코의 신작 <미의 역사>(열린책들)이다. 영역본은 작년 이맘때 나온 걸로 돼 있다. 소개에 따르면, "'미'라는 관념이 고대의 입상에서부터 기계 시대의 미학에 이르는 동안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추적하는 책이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예술과 미에 대해 생각하고 기록한 모든 것에 대한 웅대한 역사를 담아냈다. 회화, 조각, 건축을 비롯하여 영화, 사진, 뉴미디어에서 가져온 넉넉하고 화려한 도판과 문학과 철학, 예술가들의 자전적 증언을 통해, 미에 대한 시각과 사고의 변천을 압축해 보여 준다." 원래 중세미학 연구로 자신의 경력을 시작했던 만큼 이 걸출한 기호학자가 미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다만 상당한 분량에 상당한 책값이 다소 부담스럽다.

에코의 책은 제목만으론 크리스테바의 <사랑의 역사>(민음사, 1995)를 바로 떠올리게 하지만, 사실 크리스테바 책의 영역본은 'Tales of love'(1987)이고 내용도 말 그대로 '사랑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불어의 'histoire'가 두 가지 의미를 다 갖고 있지만 이 경우에 '역사'란 역어는 약간 오버다). 한편, 임춘갑 교수의 번역본이 몇 달전 재출간된 키에르케고르의 <사랑의 역사>(다산글방, 2005)에서도 '역사(役事)'는 'work'란 뜻이다. 해서 우리는 제대로 된 '사랑의 역사'를 아직 가지고 있지 않다. '미의 역사'에서 바로 '체위의 역사'로 건너뛰는 것. 이런 게 한국식 속도전인가?     

 

 

 

 

더불어, 에코의 제자로 <움베르토 에코의 문학강의>(열린책들, 2003) 등을 옮긴 바 있는 김운찬 교수의 <현대 기호학과 문화분석>(열린책들)도 언급해둔다. 말 그대로 기호학 입문서인데, 목차상으론 상당히 광범위한 내용을 카바하고 있다(실제적인 분석이 얼마나 포함돼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예전에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김광현 교수의 <기호인가 기만인가>(2000)보다는 업그레이드된 입문서로 보인다. 현재 나와 있는 '너무 많은' 입문서들이 평정될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미' 얘기가 나온 김에 덧붙여보는 책은 '영화가 사랑한' 시리즈이다. 얼마전 김석원의 <영화가 사랑한 사진>(아트북스)가 나왔고 그 전에는 정장진의 <영화가 사랑한 미술>이 출간됐었다. 미술값, 사진값 하는 책들로  보이는데, 한창호의 <영화, 그림 속을 걷고 싶다>(돌베개) 같은 책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주변에 리뷰해 줄 이가 없는 게 유감스럽다).

 

 

 

 

네번째 책은 자연과학계에서 에코와 맞장뜰 만한 스타 지식인 리처드 도킨스의 최신작 <조상이야기>(까치글방)이다. 에코가 미의 역사를 거슬러내려왔다면 도킨스는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이 순례여행의 형식을 그는 영시(英詩)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서 빌려온다.  "다른 점이 있다면 초서의 이야기에서는 모든 순례자들이 한꺼번에 출현하지만, 이 책에서는 인류가 길을 떠나면서 인류와 가장 가까운 종들과 차례대로 합류한다는 것이다. 이 합류 지점은 도킨스는 '랑데부'라고 하며, 인류와 함류하는 순례자 무리의 가장 최근 공통 조상을 '공조상'이라고 부른다." 지구상의 다양한 생물들의 조상을 찾기 위한 이 순례에서 고작 40번의 랑데부를 통해서 모든 생물의 공통조상을 만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여정이 어찌 경이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책들을 툭툭 써내는 도킨스도 경이롭다. 생명에 관한 이야기를 도킨스와는 달리 횡으로 펼쳐놓은 에드워드 윌슨의 <생명의 다양성>(까치글방, 1995)와 나란히 읽으면 좋겠다.

한편, 도킨스식의 진화론을 수용하면서도 그 무신론적 함의를 반박하는 <다윈 안의 신>(지식의숲)도 신간이다. 과학과 종교간의 상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저자 존 호트 교수에 따르면 다윈주의가 종교에 대한 이해에 나름의 빛을 던져 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과연 진화생물학이 원칙적으로 종교와 생명 자체에 더 할 나위 없이 깊은 설명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은 여전히 남는다. "진화를 유전자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유전자들의 맹목적이고 비인격적인 흐름뿐이다. 물론 그것이 전부이기는 하다. 여기까지는 도킨스가 옳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유전자 눈높이에서 생명을 읽는다고 해서 우리가 신을 보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분명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이는 다섯 살배기 아이가 자기 나름의 차원에서 멜빌의 <백경>을 읽어도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흥미롭게도 여기서 도킨스와 호트의 대결은 <캔터베리 이야기>와 <백경>의 대결이기도 하다. 짐작에 호트의 입장은 '목적론적' 진화론이라는 진화론적 신학을 정립한 테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의 <인간현상>(한길사, 1997)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도킨스가 절대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이 '목적(end)'의 유무라는 게 알튀세르(<철학에 대하여>)에 의하면 관념론과 유물론을 가르는 기준이다(유물론이란 어떠한 목적론도 거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과 종교, 혹은 유신론(관념론)과 무신론(유물론)은 어떻게 조화와 상생에 이를 수 있는가? 얼핏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생명현상으로서의 자연 자체를 신으로 간주하는 것 정도이다. 즉, 신을 초월적 존재자나 초월적 인격체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한데, 그 경우에도, 즉 (헤겔-지젝을 따라) '0'을 '1'로 카운트하는 경우에도 신학은 여전히 신학인가? 내가 대략 갖게 되는 의문은 그것이다(참고로 국내에는 제대로 번역된 <백경>이 나와 있지 않다. 우리가 주로 대하게 되는 번역본은 '똑똑한 다섯살 배기'라면 읽을 수 있는 아동용 축약본이 대부분이다. 즉, "읽어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백경>을 우리는 아직 안 갖고 있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젊은 '사회화학자' 고병권의 <화폐, 마법의 사중주>(그린비)이다. 이미 니체와 마르크스에 관한 저역서로 잘 알려진 역량있는 연구자인 저자는 학부 화학과를 나와서 사회학과에 진학해 니체에 관한 석사논문을 쓰고 이어서 화폐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남들이 보기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는데, 신간은 그의 박사학위논문을 단행본으로 다듬은 것이다(이젠 특이할 것도 없지만, 한국에서도 외국박사 못지 않은 논문들을 써낸다).

나는 점심을 먹으면서 저자의 머리말을 읽어보았는데, 제목의 '마법의 사중주'에 대한 해명은 이렇다. "나는 근대 화폐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무엇이냐'고 묻는 대신 '어떻게 산출되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근대의 시장, 국가, 사회, 과학에 주목했다. 화폐를 통해 상품을 거래하고 채무를 지불하는 시장, 화폐를 발행하고 그 질서를 관리하는 국가, 화폐적인 인간관계라고 할 수 있는 사회, 부(富)와 관련해서 화폐를 개념화하고 화폐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제공하는 과학. 이 네 요소들을 나는 화폐거래네트워크, 화폐주권, 화폐공동체, 화폐론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사중주이다. 그리고 저자는 "근대화폐를 이 네 요소들로 이루어진 성좌(constellation) 내지 구성체(formation)로 이해한다."

거기까지는 따라가볼 수 있는데, 감히 넘볼 수 없는 경지: "고대의 어느 철학자는 밤하늘의 별들을 보며 음악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모든 별들은 음악적 조화 속에서 운행된다는 것이다. 나 역시 화폐의 운행 속에서 어떤 노래를 듣는다. 상품들 사이에서, 권력들 사이에서, 인간들 사이에서, 개념들 사이에서 나오는 소리들." 해서 감탄하는 수밖에. 화폐의 운행 속에서 주로 내가 듣는 소리는 빈 깡통 소리이거나 하늘 같은 마누라의 잔소리뿐이기에. 그래서 더더욱 기대를 걸어보게 된다. 이 신간을 읽고 나면, 또 누가 알겠는가? 나도 화폐의 운행 속에서 쩔렁거리는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이왕이면 바스락거리는 소리로!  

 

 

 

 

화폐와 관련해서 읽어볼 만한 저작으로 문외한인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책은 케인즈의 <화폐론>(비봉출판사, 1992)이나 짐멜의 <돈의 철학>(한길사, 1983) 등이다. <돈의 세계사>(까치, 1998)나 <금과 화폐의 역사>(까치, 2000) 등은 돈 생기면 사서 읽어볼 생각이다. 하긴 갖고 있는 책으로 자크 르 고프의 <돈과 구원>(이학사, 1998)도 아직 안 읽어봤으니 돈으로 구원받기는 그른 셈이 아닌지 걱정된다.

내가 조금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있는 쪽은 '화폐와 언어'의 문제이다. 이미 소쉬르의 <일반언어학강의>(민음사, 1997)에서부터도 언어의 체계를 설명할 때 화폐는 주된 참조대상이었다(<일반언어학강의>는 현재 절판되었다. 소쉬르의 책을 서점에서 사 읽을 수 없는 '아주 드문' 나라가 한국이다). 가라타니 고진의 <은유로서의 건축: 언어, 수, 화폐>(한나래, 1999)가 이쪽으로는 유익한 참고문헌이고, 김상환 교수의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창비, 2002)에도 '화폐, 언어, 무의식'이란 글이 실려 있다.

참고로, 혹은 보너스로 말하자면, 돈에 가장 궁색했으며 작품에서 돈 얘기를 가장 많이 하는 러시아 작가가 도스토예프스키이다. 사실, '도스토예프스키와 구원'의 문제보다 더 감동적인 테마는 '도스토예프스키와 돈'이다. 그걸 놓친다면, 도스토예프스키 읽기는 '내용없는 심오함'에서 멈추게 될 것이다.

05. 11. 15.

 

 

 

 

P.S. <해석에 반대한다>(이후, 2002),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현대미학사, 2004)에 이은 수잔 손택의 세번째 에세이집 <우울한 열정>(시울, 2005)이 출간됐다. 원제는 '토성의 영향 아래서'.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자 이 걸출한 에세이스트에 대해서 본문에서 따로 언급하지 않은 것은 따로 페이퍼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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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5-11-15 12:57   좋아요 0 | URL
우연히 들어왔는데 거의 실시간으로 로쟈님의 리뷰를 볼 수 있겠네요 ^^

생활사시리즈는 2권 정도 봤는데 읽으면서 정말 그 시대에 사는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중고등학생들에게 특히 좋을 듯 합니다.

로쟈 2005-11-15 16:25   좋아요 0 | URL
예, 저도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 사주려고 합니다. 설마 절판되지는 않겠죠.^^

이리스 2005-11-17 21:31   좋아요 0 | URL
음, 언제나 드는 생각인데 이런 님의 글을 날로 (-.-) 먹어서 죄송해요. ㅎㅎ
그리고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05-11-17 22:01   좋아요 0 | URL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와 생활사 박물관의 북디자인이 같은 사람이었군요. 저도 북디자인은 별로 관심없지만 예외적으로 이런류의 책은 북디자인이 반은 먹고 들어갑니다. 그런면에서 정말 탁월한 책이예요. 둘다....화보와 사진 삽화만으로도 할 얘기를 다 할 수 있는 책이 아니라 싶은데.... 출판사가 어려워 이런 책을 만드는게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는건 역시 우울한 소식이네요.

로쟈 2005-11-18 11:14   좋아요 0 | URL
낡은구두님/ 떡국을 드린 것도 아니고 고작 책소개에 고마워하시다니요?^^
바람돌이님/ 저도 활자가 빽빽한 책들을 좋아하는 취향이지만, 어쨌든 좋은 책들, 공들인 책들은 인정받고 대우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리스 2005-11-18 20:08   좋아요 0 | URL
어흠, 겸손의 말씀을... 로쟈님의 책소개는 고작 책소개... 가 아니랍니다. ^^;
모니터로 읽는것보다는 인쇄해서 읽고파서 프린트 해가지구.. 오늘 출근길에 다시 읽어보았습니당.. 호호..
 

 

 

 

 

3년전 '한겨레21'에 러시아계 한국인 박노자 교수의 칼럼으로 도스토예프스키 비판이 두 차례 실린 적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 카페도 운영하고 있었던지라 그와 관련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적은 생각들을 (그닥 달라진 바 없기에) 그대로 여기에 옮겨놓는다. 그리고 후반부엔 그때 다른 분이 퍼온 칼럼을 붙여놓는다. 그 글들은 <하얀 가면의 제국>(한겨레신문사, 2003)에 재수록돼 있다(나는 책을 갖고 있지만 다시 읽어보진 않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나라, 러시아'란 제목의 첫머리에.(사실, 그 글들의 초점은 도스토예프스키 자체라기보다는 러시아에 대한 한국인들의 스테레오타이프적인 선입관이 교정될 필요가 있다는 문제제기에 있다.)

기본적으로 나는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와 인간 도스토예프스키는 분리해서 고려해야 한다는 보는 입장이다. 인간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아내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의 증언대로라면), '위대한 인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작가로서의 도스토예프스키는 위대하다. 그것이 차이이다. 박노자 교수는 대개 (잡지 발행인으로서도 활동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시론(時論)을 근거로 하여 그의 국수주의적이고 반동적인 태도를 비판하지만, 그것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전모를 대신할 수는 없다(한 작가의 세계관이나 정치관이 그의 문학의 크기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박노자 교수도 작가의 '위대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거인'의 명암을 올바로 보자고 제안할 뿐이다. 내게 그 명암이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러한 '결함'이 도스토예프스키를 더욱 신뢰하도록 만든다(나이브한 이들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을 지지하며, 그의 정치학이나 윤리학은 자신의 <작가일기> 등에서 공표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대심문관' 편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지만 작가로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리의 현실과 인간조건을 (단순하게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복잡하게 사고했다. 소설은 복잡성의 정신이라는 쿤데라의 주장에 따라 그것을 달리 '소설의 승리'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정치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쓴 답장입니다. 박노자 교수의 도스토예프스키 비판과 관련한 저의 견해이기도 하니까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은 정치와 별 상관이 없긴 하지만 좋아하는 작가인만큼 궁금하고, 또 박노자의 칼럼으로 더욱 궁금해졌거든요. 박노자의 말을 받아들인다 해도 그 과정이 이해가 되는것도 아니구요. 그와 같이 다층적인 성격을 가졌던 사람이 황제에게 충성한 보수파였다거나 평생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요."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이 정치와 별 상관이 없다는 건 좀 편향된 의견입니다.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한 특징은 시류적인 문제들에 대한 작가의 의견이 강하게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투르게네프가 그러하고(그의 성격은 비사교적, 비정치적인데, 벨린스키와의 교우가 그를 사회소설 작가로 이끕니다. 하지만 그의 성격이 어디 가지는 않아서 대개의 소설이 페시미즘적인 결말을 갖고 있습니다), 고골과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러합니다. 톨스토이는 푸슈킨과 마찬가지로 좀 예외인데, 이들은 서구식 미학주의를 수용한 경우입니다. 즉 미는 진과 선의 영역과는 좀 다른 걸로 생각하는 것이죠.

-<안나 카레니나>를 쓴 이후의 톨스토이는 물론 자신의 그런 미학관을 포기/비판하고, '미=선'의 자리로 복귀합니다. 반면에 고골과 도스토예프스키는 <친구들과의 왕복서한>이나 <작가일기> 등과 같은 저널적인 글들에서 아주 노골적으로 국수적인 슬라브주의와 러시아 정교주의를 지지하고 옹호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왈, "인간(유럽인들)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먼저 러시아인이 되어야 한다."(*고골의 <친구들과의 왕복서한>은 근간 예정이고, 도스토에프스키의 <작가의 일기>(벽호, 1995)는 발췌역으로 나왔었는데 현재는 절판됐다.) 

"하지만 그의 타민족에 대한 관점은 상당히 편벽되고 유치한 수준이니(폴란드, 독일, 동양에 대한 경멸, 프랑스에 대한 선망과 멸시 등등. 러시아에 대한 자학적인 비판도 만만치 않지만), 그에겐 사회적인 시각에 대한 균형이 결여되어 있었다고도 볼 수 있을까요?"

-적어도 인간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저는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와 인간 도스토예프스키가 좀 구별된다고 봅니다)는 유치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건 그의 전기들에 묘사되고 있는 기묘한 성벽들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회적 시각에 대한 균형의 결여'는 좀더 탐구해야 하는 주제인데, 가령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와 나치즘의 관계가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와 유사하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어떻게 그처럼 위대한 철학자가 국수적 민족주의(나치즘)에 동조할 수 있었을까? 그건 어떤 '실수'가 아니라 그의 사상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어떤 성향의 발로로 보는 것이 최근의 시각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도 비슷하지 않을까요?(이 문제는 좀더 세밀한 논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인지 도스토예프스키 특유의 '혼의 리얼리즘'은 곧바로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비약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죄와 벌>은 황당한 작품이었지요. <죄와 벌>을 읽은때가 몇 년 전인데, 그때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훨씬 자연스러웠거든요. 그렇게 치밀하고 논리적으로 파격을 행했던 사람이 갑자기 회심을 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느낀대로 하자면 '자존심도 없는' 결말이었지요. 자기를 그렇게 솔직하게 드러내는 작가인데도 도스토예프스키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인물입니다."

 

 

 

 

-<죄와 벌>에 관한 건 좋은 지적이십니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란이 되는 문제이구요. 라스콜리니코프의 '회심'은 정확히는 에필로그에서 이루어집니다.(이 주제에 관해서는 르네 지라르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김현 편, <르네 지라르 혹은 폭력의 구조>에 부록으로 실려 있습니다.) 따라서 이 에필로그의 성격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적인 의견이 있었고, 저도 그러한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적어도 소설의 본문에서는 라스콜리니코프에게서 회심의 계기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죠(그러면 에필로그의 회심은 좀 억지스러운 것이 될 터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페테르부르크라는 폐쇄적(악마적) 공간에서 그러한 회심이 가능하지 않게 묘사한 것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볼 수도 있습니다.

 

 

 

 

-(독백적인!) 시사적인 글들 속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리의 이문열이나 조갑제 스타일의 인물처럼 보입니다.(이문열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아주 좋아합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사정이 좀 다르다고 봅니다. 바흐친이 다성악적 소설이라고 했지만, 거기엔 작가의 이념적 목소리는 결코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이 (도스토예프스키적) 소설의 승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의 소설들에선 어떠한 문제도 단순하게 처리되고 있지 않습니다.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는 <악령>만 하더라도 단순한 (소설이 아닌) 정치 팜플렛을 의도했지만, '소설'로 확장된 <악령>은 거대한 형이상학적 심연이 되고 맙니다. 그것을 단순한 정치적 주장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좀 무리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의 소설들은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를 뛰어넘고 있다고나 할까요(이 점이 도스토예프스키와 이문열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박노자의 세계와 한국] 2002년08월13일 제422호

거인 도스토예프스키의 명암

-그의 끔찍한 군사주의·배타주의 사상은 빨갱이 딱지를 떼기 위한 노력이었나

1877년 말, 러시아와 터키의 전쟁이 막바지를 향할 무렵이다. 우세한 무기를 갖고 있는 러시아 군대는 터키의 수도인 이스탄불(비잔틴 제국 시절의 옛 이름은 콘스탄티노플)을 위협할 정도로 확실한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서구의 금융자본에 의한 착취, 러시아의 끊임없는 남하, 근대화 부진으로 ‘유럽의 병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약해진 터키 제국은, 발칸 지역에 대한 패권을 러시아에 넘겨주는 셈이 되었다.

-독일인과 손잡고 프랑스를 박살내자?

30여년 뒤에 바로 발칸의 패권 문제가 발단이 되어 러시아 제국을 무너뜨릴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질 줄 알 리 없는 러시아의 보수적 지식인들은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이라는 이슬람식 명칭을 그들은 외면한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토론하고 있다. ‘러시아 문명론’을 내놓은 당대 우파의 유명 논객 다닐레프스키(N.Y.Danilevsky)는, 콘스탄티노플을 “러시아를 위시한 모든 동방민족을 위한 자유 도시로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당시의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꽤 관대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서구에 대한 멸시와 러시아의 ‘영성’에 대한 거의 광적인 집착에서 다닐레브스키보다 한수 위인 우파의 저명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1821∼81)는 “그 따위 비열한 타협”이라며 단호하게 반대한다:

“러시아인과 기타 슬라브 민족들이 서로 비교라도 될 만한가? 러시아는 기타 슬라브의 각 민족보다 위대하고, 모든 민족들을 하나로 묶어도 그들보다 위대하다. 거인이 난쟁이들 보고 평등을 설교해봤자 쓸데없는 일 아닌가? 우리가 점령한 콘스탄티노플은 영원히 우리만의 도시로 남아야 하고, 콘스탄티노플과 인근 지역, 그리고 흑해와 지중해 사이의 해협을 지키기 위해 육·해군을 주둔해야 한다”(<작가의 일기>,1877년 11월)

이 정도면, 도스토예프스키를 ‘도덕성의 절대성과 인간의 심층적인 심리를 매우 깊숙이 아는 작가’로만 알고 있는 한국의 일반 독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무고한 생명을 살해한 일은 절대로 선(善)이 될 수 없다”는 이념을 기조로 전 세계의 독자를 매료시킨 <죄와 벌>을 쓴 사람이, 콘스탄티노플을 ‘우리 도시’로 만들기 위해 어느 정도로 많은 무고한 생명들이 죽어야 하는지는 몰랐던 것일까? 위대한 인본주의자로 알려진 사람이 폭력으로 남의 것을 빼앗는 일에 왜 그토록 열중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1인 잡지인 <작가의 일기>를 읽으면, 더 큰 수수께끼에 맞닥뜨린다. 왜냐하면 그 다음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짐승 같은’ 터키인들을 쫓아낸 뒤에 “사회주의의 모태가 된 프랑스를 독일인과 함께 손잡아 박살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때문이다. 즉 권위주의적인 독일 제국과 함께 사회주의를 허용할 만큼 ‘타락한’ 민주적 프랑스를 멸망시키는 것이 러시아의 ‘민족적 사명’이라는 이야기다. 그 과정을, 도스토예프스키는 “이슬람 짐승들과 적그리스도인 사회주의를 예수의 이름으로 이기는 성전(聖戰)”이라고 부른다.

-끈질긴 ‘훈육주의’경향

작품 속에서는 ‘생명 존중’을 그토록 강조한 도스토예프스키가, 왜 자신의 사회 참여적인 잡지에서 이처럼 끔찍한 군사주의적·배타주의적 언어를 썼을까? 일설에 따르면 자신의 농노를 학대하다가 살해당한 가혹하고 속물적인 아버지를 두었고, 군사기술자학교(일종의 사관학교)에서 온갖 집단 괴롭히기를 목격·체험한 도스토예프스키는, 젊었을 때부터 악(惡)의 문제에 대해 매서운 성찰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1840년대)에 그는 초기 사회주의적 성향의 혁명가와 어울려 개혁·혁명을 통한 악의 제거와 인간·사회의 개선을 꾀했다.

그러나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젊은 도스토예프스키의 구도(求道)를, 제정 러시아 정권은 가혹하게 차단해버렸다. 갑작스러운 체포(1849년)와 사형 선고, 총살 현장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영원한 듯한 수십분, 그리고 마지막 순간의 감형(사실 ‘훈육을 위한 연극’이었다.). 그 뒤 4년간 시베리아 감옥살이를 하고 졸병으로 오지에서 4년간 복무한 그에게는 ‘사상범 전과자’라는 빨갱이 딱지가 붙었다. 혁명적 신념이 강한 사람이라면 그러한 상황에서 망명을 하거나 혁명에 투신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베리아에서 사회주의를 포기한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때부터 정반대 길을 가기로 한다. 그는 자신의 ‘불온한’ 과거를 애써 부정하고 오히려 반사회주의운동의 선봉에 서는 특별한 ‘충성’을 보인다. 특히 귀족계·황실과 관계가 가까워진 1870년대 후반에 그는 ‘빨갱이 딱지를 떼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일제 시대의 많은 전향자들처럼 러시아 제국의 국체(國體)인 정교회 신앙과 관제 민족주의로 돌아온 전향자 도스토예프스키는 ‘국체 명징(明徵)’- 즉 어용적 이념의 강조·선포- 에 남다른 공을 들였다.

‘전향’ 이후에도 그의 평생 화두인 ‘악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고민의 형태는 완전히 바뀌었다. 악을 가능하게 하는 환경을 ‘단순한 표피’로 규정한 채 도스토예프스키는 ‘영혼 속의 악의 본질’에 대한 탐구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종교적 색채가 강한 이러한 탐구는 종교를 명분으로 내거는 제정 러시아 사회에서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영혼 속에 악한 본질이 내재돼 있다는, 성악설(性惡說)적인 면모가 짙은 그의 결론은 러시아 국교인 정교회의 교리보다는 고대·중세의 신비주의적 이단인 그노시스교(Gnosticism·靈知敎)에 더 가깝기도 했다. 자신의 ‘온건함’을 입증하려는 욕망에 불탄 도스토예프스키는 교회와 국가의 역할을 더 강조했다. 러시아 진보진영으로부터 오랫동안 비웃음을 받아온 최초의 ‘반사회주의적 소설’ 가운데 하나인 <악령>을 쓴 1870년대의 도스토예프스키는, 교회와 국가가 없는 한 인간의 악한 본질이 그대로 드러나 사회가 생지옥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는 ‘기독교적 국가’의 광신도였다.

“하나님이 없는 한 모든 것들이 다 허용돼 있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명언은, “하나님의 신앙을 강요·훈육하는 교회와 국가가 없으면 모든 악이 허용돼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작가의 일기>에서 체벌과 범죄에 대한 엄벌을 옹호한 것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끈질긴 훈육주의적 경향과 연결지어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악을 억제해주는’ 국가와 교회를 비판하는 사회주의자들은 물론 제1호 적이었다. 19세기 초반의 유토피아적 사회주의 책을 읽었을 뿐, 그 외의 진보운동 관련 소식을 보수적 신문을 통해서만 읽은 도스토예프스키는, 모든 사회주의자들을 ‘억제를 받지 못해 악한 본질이 발전된 적그리스도형 인간’으로 취급했다. 노동자들이 빼앗긴 여유의 자유, 경영 참여와 정치 참여의 자유를 노동자에게 돌려주려는 것이 사회주의의 취지였다는 것은, 사회주의를 배태한 유럽의 문화토양을 매우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도스토예프스키로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작가로서의 위대성을 바로보기 위하여

그는 사회주의를 배태한 유럽- 특히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강한 프랑스- 의 자유주의마저도, ‘하나님의 은근한 부정’으로 규정해 저주하기에 이르렀다. 기독교 문화권인 유럽에 대한 인식이 그 정도였으면 러시아 제국의 경쟁자인 터키 같은 비유럽 국가에 대한 그의 생각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결국 ‘인간의 악한 본질을 억제하는 구세(救世)의 위업(偉業)’으로서 가장 ‘건전한’- 즉 보수적이며 권위주의적인- 러시아와 독일의 세계 제패는 그의 열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위에서 언급한 <작가의 일기> 1877년 11월호에서 러시아 육·해군에 대한 애착과 관심의 비결은 바로 이 같은 세계관과 욕망의 구조였다.

이념가로서의 도스토예프스키가 광적인 수구주의로 기울어졌다고 해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천재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 천부적 재능에 고생과 고민으로 점철된 그의 인생은 그를 위대한 작가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소설의 저변에 흐르는 인간에 대한 불신과 ‘외부로부터의 훈육’에 대한 기대 심리, 국가 권력에 대한 거의 맹목적 시각 등을 바로 이해해야 그의 작가로서의 위대성도 바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거인의 명암을 다 아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거인에 대한 존중이 아닌가 싶다.

-이 글은 410호에(아래 참조) 실린 ‘도스토예프스키를 선망한다고?’를 읽은 독자들이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내용을 요청해 쓴 것입니다. 편집자  

[박노자의 세계와 한국] 2002년05월22일 제410호

도스토예프스키를 선망한다고?

-한국과 러시아, ‘서구인들이 강요한 색안경’을 벗고 서로의 진실을 아는 길

88올림픽 때 미국과 축구 경기를 벌인 옛 소련팀이 한국 관중의 응원을 받아 미국인의 질투를 산 획기적인 사건이 어언 15년이 지났다. 두 나라의 관계가 그동안 온갖 기복을 거듭했지만, 민간교류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한국 유학생들이 러시아 대학의 외국 학생의 주종을 이루고, 러시아 출신의 노동자·기술자·상인·프로그래머 수천명이 한국의 곳곳에 흩어져 있는 현재, 두 나라의 민간인들은 더 이상 서로에게 생소하지 않다. 그러면 그들은 이미 낯익은 서로를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가? 어떤 스테레오타이프(고정관념)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가? 한·러 교류의 발전을 지켜봐온 필자는 이에 대해 간단한 인상을 적어보겠다.

-사실과 허위의식의 비율

한국과의 교류에 관여하는 러시아인 쪽의 ‘눈’을 이야기하면, 맨 처음 느끼는 것은 한국의 과거나 역사·문화에 대한 무지다. 한국학(내지 인접 학문)을 직업으로 하는 극소수를 제외한다면, 대다수의 한국 인식 수준은 서구인의 평균과 다르지 않다. 무지의 원인인 자국(自國)과 서구·미국 중심의 편향된 오리엔탈리즘적 학교 교육과 매체의 보도를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지만, 러시아에서 살고 있는 한인 교포나 러시아와 한국의 해방운동의 역사적인 관계를 생각하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은 그나마 영문 자료라도 읽어가면서 ‘한국 공부’를 조금씩 하려고 하는 재한 프로그래머나 교수 등과 달리, 한국과 업무상 관련이 있는 고급 관료들은 그러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해 전 협상에서 통역을 맡은 부장관급의 러시아 관료와 사석에서 나눈 대화가 지금도 기억난다. 한국의 경제발전으로 화제를 돌리자, 원래 직업이 교육자(!)인 부장관이 마치 상식적인 사실을 이야기하듯 “100년 전에는 동굴에서나 살던 한국 사람들을 고층 아파트에서 살게 한 것이 미국의 원조지 딴 요인이 있나”와 같은 말을 거듭 했다. 주변부 국가의 매판형 지배층다운 그런 관료들의 숭미(崇美)의 병과 한심한 무지는 두 나라 관계에서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 쉽다. 러시아를 독일 중심의 유럽에 예속시키려는 푸틴 정권의 종속적 노선은, 고질화된 오리엔탈리즘의 병폐를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시킨 셈이다.

러시아를 보는 한국인들의 눈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 러시아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있는 한국인들의 러시아어나 문화에 대한 학습 열의는, 주한 러시아인의 한국에 대한 관심도보다 더 높다는 것도 필자가 많이 본 일이다. ‘학이시습’(學而時習)을 이상시한 조상의 문화정신에 감사해야 하는지, 아니면 주러 서구인들이 주한 서구인들보다 주재 국가의 문화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는 사실과 연결시켜야 되는지는 모르겠다. 문제는,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러시아에 관한 상식에서, 사실과 서구·미국의 프로파간다에 의한 허위의식의 비율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제정 러시아 관료층의 위선과 아첨, 철저한 인간성의 말살을 천재적으로 풍자한 살티코프-시체드린(Saltykov-Shchedrin)보다 관료층의 상부와 밀접하게 유착한 골수 보수주의자 도스토예프스키를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꼽는다는 것은, 미국·서구 보수층의 ‘가치 서열’을 그대로 따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적인 인간의 해방을 갈망한 미래 지향적인 스크랴빈(A.Skryabin)의 음악보다 보수적인 차이코프스키를 선호하는 것도, 서구의 ‘정전’(正典·canon)을 추종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한 마디로 ‘평균적인’ 한국인이 러시아에 대해 덜 무지하지만, 러시아를 ‘서구인의 러시아관(觀)’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향은 마찬가지다.

-상인과 노동자의 판이하게 다른 만족도

두 나라를 오가는 사람들의 서로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가? 필자의 관측으로 체감적인 만족도는 객관적인 현실뿐 아니라 주관적인 기대의 수준에도 많이 달려 있다. 물론 기대의 주체인 여행자의 사회·경제적인 신분도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한국의 공산품을 사러 다니는 러시아의 상인(‘보따리꾼’이라고 하지만, 그 규모는 ‘보따리’의 수준을 넘는다)들은, 한국을 ‘바이어’가 장사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세계적 규모의 ‘무역 대국’이라는 기대를 안고 온다. 필자가 지켜본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기대는 충족됐다. 기대 이상의 상운(商運)을 만난 일도 많았다. 한국을 늘 만족해하는 한 상인이 필자에게 “한국은 실제로 기적의 나라야! 아니, 재고에 없는 물건마저도 주문하기만 하면 1주 내로 이렇게 많이 만들다니, 라인을 어쩜 이렇게까지 돌릴 수 있어?”라고 묻곤 했다.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인 비정규직들이 하루에 10∼12시간씩 고함소리를 들으며 사람을 기절시킬 만한 속도로 일한 그 공장의 라인이 돌아가는 모습을 상인이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한국에 노동(특히 미등록 막노동)을 하러 오는 러시아 출신들이 한국을 ‘착취와 폭력의 대국’으로 본다는 사실이 과연 이상한 것일까? 그들의 실망의 정도를 이해하려면, 한국의경제 기적과 근대화를 찬양하는 주류 신문 외에 한국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접하지 못한 그들은 한국의 ‘합리적인 노무 관리’(?)에 큰 기대를 걸고 온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에 대한 러시아인의 만족도는 한마디로 한국 근대의 어느 측면을 접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수출 능력으로 득을 얻는 사람의 ‘한국’과, 그 수출 능력을 뒷받침해주는 착취공장에 건강과 인권, 생명까지도 바쳐야 하는 사람의 ‘한국’을 보는 눈은 천양지차다.

한국의 근대성에 큰 기대를 걸고 오는 러시아인과 달리, 러시아로 가는 한국인들은 역시 서구·미국의 매체를 따르는 한국 매체의 보도대로 ‘위험한 후진국’으로 가는 줄로 알고 경계심·체념의 태도를 미리 준비한다. 그들이 실제로 부정적인 경험(경찰관의 돈 갈취나 폭력·사기·범죄)을 할 때마다, 실망보다는 “역시 생각대로구나!”를 반복한다. 처음의 상상조차 뛰어넘을 만한 정도의 부정적인 경험만 아니면, 러시아에서 체류하는 한인은 쉽게 분노를 터뜨리지 않는다. 경찰이 이유 없이 돈을 요구해도, 학교 당국이 노골적인 전횡을 저질러도, 행정 관료들이 뇌물 갈취에 혈안이 돼도, 재러 한인의 대다수는 “후진국은 다 그렇지”라고 하며 그대로 따른다.

현재 러시아 관료들의 저질성에 대해서는 필자도 의심하지 않는다. 문제는 ‘돈 먹는 하마’인 러시아의 관료 체제에 돈을 계속 먹인다고 해서 선진화의 날이 오겠는가? 서로의 앞날을 위해서라면 러시아의 발전을 막는 관료 기구들에게 오히려 당당한 모습으로 맞서는 것이 낫지 않을까?

-'제정 러시아’흠모와 ‘소련’혐오

스테레오타이프를 이야기하자면, 역시 서구적인 오리엔탈리즘 식으로 한국인들을 ‘동양인’으로 여겨서 역대 극우정권이 악질화·고질화한 온갖 봉건적인 폐습들을 ‘동양 문화의 유산’으로 오해하는 러시아인들의 태도부터 꼬집어야 한다. 즉 주한 서구인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러시아인들도 학교 체벌을, 동양 사회에서 동양인의 사고방식이나 체질상 없어서는 안 될 문화 형태로 보고 있다. 제정 러시아에서도 만연한 체벌들을 레닌의 초기 공산당 정부가 전면 폐지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물론 주머니 사정이 허락한다면 주한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의 귀한 ‘서양 아이들’을 외국인 학교로 보내려고 한다. 마찬가지로, 군번·학번을 숭배하는 권위주의 사회가 낳은 연령 차별주의나 연소자 하대를, ‘동양 사회에서 당연한 일’로 취급하여 본인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한 분통을 터뜨리지 않는다. 많은 한국인들의 스테레오타이프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으로, 서구·미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서 배운 듯한 제정 러시아의 ‘고급 문화’에 대한 흠모와, 옛 소련 시기를 ‘기형’으로 보는 태도를 꼽을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로마노프 왕가의 왕궁(겨울 궁전)의 사치 앞에서 넋을 잃는 한국 관광객들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지만, 70%의 문맹률과 흉년마다 아사자 몇십만명씩을 낸 제정 러시아를 흠모하는 것은 고혈을 빼앗긴 백성에 대한 모독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너무나 많은 면에서 서로 닮은 한국과 러시아는 지금 서구인들이 강요한 ‘색안경’을 끼고 서로를 쳐다보는 셈이다. 주한 러시아인들이 갖고 있는 ‘한강의 기적’, ‘무역의 대국’, ‘유교적인 규율과 서열의 나라’의 이미지도, 러시아를 접촉하는 많은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와 차이코프스키의 찬란한 고향, 공산주의 때문에 후진국이 된 나라’라는 생각도, 결국 냉전시대의 미국·서구의 보수 언론·학계가 만들어낸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스테레오타이프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상대 나라 민중의 고생과 투쟁의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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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YG의 생각
    from vizualizer's me2DAY 2008-07-19 12:42 
    도스토예프스키 비판에 관하여 - 로쟈의 저공비행
 
 
urblue 2005-11-11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퍼갑니다. (__)

릴케 현상 2005-11-11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한 칠팔 년 전에 마광수의 산문을 읽었는데,(기억은 잘 안나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보수성에 대해 치를 떨며 일반인들이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톨스토이가 오히려 비교적 낫다고 했던 것 같네요. 그런데 제 기억으로는 마광수는 시론을 얘기한 게 아니라 소설 작품들을 보수적이라고 해석했던 것 같은데...제가 잘못 기억한 걸까요?

yoonta 2005-11-11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을 쓰셨군요..(혹시 학위논문도 도스토예프스키로 쓰셨나요?) 저야 문학도 잘 모르는 사람이고..도스토예프스키도 잘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간 도스토예프스키와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다르다는 로쟈님의 평가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데요..인간의 내면 혹은 심리의 다층성과 다면성을 보여주는 그의 글쓰기를 단순히 사회,정치적 요소로 환원시키는 일과 작가로서의 그와 보수주의자로서의 그를 혼동하는 일은 그에 대한 편향된 시각일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위 글에서 님은 도스토예프스키와 이문열 그리고 하이데거를 비교하셨는데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문열보다는 하이데거에 가깝다는 논지의 말씀을 하시면서 하이데거의 나치연루는 단순히 그의 정치적 판단의 실패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그의 철학의 본질적 구성부분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라는 말씀을 하셨네요..

최근 번역된 데리다의 <정신에 대해서>라는 책을 보면 하이데거의 정신/정신적인 것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방식을 분석하면서 데리다는 하이데거가 '사유의 경건함'을 유지시키고 '기술'에 의한 '정신'의 퇴락을 방지하기 위한 '정신'Geist의 역할을 강조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정신에 대한 강조로 인해 결과적으로 그는 그가 그렇게 단절하려고 했던 서양의 전통형이상학과 인간중심주의 그리고 기독교적인 성격과 독일국수주의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인데요..도스토예프스키도 마찬가지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사로잡히면서 인간 내면을 심층적으로 서술해내고 있기는 하지만 그 질문의 제기방식 자체에서 오는 인간중심적이고 기독교주의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을 제기할수 있다는 것이죠..때문에 하이데거나 도스토예프스키 양자 모두는 그들의 근원적 출발점들(기독교주의적이며 인간중심적인)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볼수있지 않을까요? 하이데거(독일민족주의와 기독교주의)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정치적 수구성(슬라브주의와 기독교주의)도 이러한 근원적 한계에서 나오는 것이고요..

때문에 비록 도스토예프스키를 하이데거에 대한 평가에서도 적용될수있는 것처럼 작가적 그와 정치적 판단 주체로서의 그를 분리해서 사고할 수있을지라도 그의 문학과 정치적 판단은 보다 근원적 지점에서는 양자가 결합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그렇다면 그를 (요 전 페이퍼에 쓰신 것처럼) 니체를 넘어선 '윤리적 주체의 구체성'의 한 예로 제시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지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니체는 비록 전통형이상학이라는 양식성의 한계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기독교적) '신'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반기독교주의자임을 자처했기 때문이지요..

그런 점에서 저는 도스토예프스키보다는 니체가 서양적 사유의 한계밖으로 한 발 더 나아간 사고를 보여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승주나무 2005-11-11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잘 읽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좋아해서 장편을 다 읽고, 그에 대한 글도 써 보았지만, 이렇게 작품 외적인 그의 견해를 들여다볼 기회는 없었는데..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비로그인 2005-11-11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생각하기에 도스또예프스끼는 포스트모더니티를 예견하였고 동시에 그 포스트모더니티가 가져올 문제점을 스메르쨔꼬프를 통해 갈파하고 있었던 정말이지 위대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이반과 스메르쨔꼬프...

로쟈 2005-11-13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산책님/ 예상하실 수 있는 바이지만, 혁명 이후 톨스토이는 레닌에 의해서 '러시아 혁명의 거울'로 추앙받은 반면에 도스토예프스키는 반동적이고 퇴폐적인 작가로 격하됩니다(적어도 1930년대까지는 이러한 경향이 지속됩니다). 자신의 문학에 끼친 도스토예프스키의 영향에 대해서 고리키가 자아비판까지 해야 했으니까요. 도스토예프스키의 부상은 제1, 2차 세계대전 등이 가져온 '폐허의식'과 유럽식 합리주의에 대한 회의와 맞물려 있는 거 같습니다. 해서, 마광수의 도스토예프스키 보수성 비판은 일리있되 독창적인 건 아닙니다. 성에 대한 집요한 관심도 마광수는 톨스토이와 공유하고 있죠. 차이라면 톨스토이는 약골이 아니어서 아주 왕성한 '생활'을 누렸다는 것 정도겠죠.

yoonta님/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서는 학부 졸업논문을 썼더랬죠.^^ 공정하게 말하기 위해서라면 니체와 하이데거를 읽으신 만큼 도스토예프스키도 읽어주시면 되겠습니다. 참고로, 스위스의 한 광장에서였나요, 니체가 학대받는 말을 끌어안고 흐느끼다가 정신을 잃은/놓은 장면. <죄와 벌>에서의 장면을 반복하고 있기도 합니다. 삶을 문학이 모방한다지만, 삶 또한 문학을 모방하기도 하는데, 그 한 가지 사례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톨스토이가(보다 정확하게는 투르게네프가) 러시아문학의 '쇼펜하우어주의'를 대표한다면, 도스토예프스키는 '니체주의'와 가장 강한 친연성을 갖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건, 아직은 그들간의 차이보다는 친연성입니다.

yoonta 2005-11-13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어보지 않은건 아니에요..^^ 죄와벌 그리고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정도는 보았죠..특히 까라마조프는 감동적으로 본 작품입니다. 다만 니체나 하이데거등에 대해서 공부했던 것 만큼은 아니라는 점에서 로쟈님 말대로 좀더 '읽어줄' 필요는 있는 것 같네요.

문제는 철학이라는 것과 문학이라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지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니체의 글쓰기나 들뢰즈의 글쓰기가 일부러 전통적인 철학적 글쓰기를 지양하고 '사건'으로서의 '생성'으로서의 글쓰기를 하였던 이유에 대해서 동의한다면 어떻게보면 철학은 문학으로서 '완성'되어야하는 어떤 건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럼에도 철학과 문학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 차이는 마치 정신분석학에 비유하자면 정신분석가와 '증상'을 보이는 환자와의 차이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양자가 서로에 대해서 '전이'한다는 점에서 '친연성'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님과같이 니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비교하다보니 누가 더 '잘났나?'를 비교하는게 부질없는 짓인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치네요...^^

로쟈 2005-11-14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oonta님의 비유에 따르자면(물론 yoonta님만의 비유는 아니지만) 철학이 '정신분석가'라면 문학은 '환자'가 되겠군요. 일리 있는 의견이나 그런 만큼 '통속적'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비평과 진단>의 들뢰즈라면 동의하지 않을 의견입니다. 문학과 정신분석학의 관계는 사실 더 복잡하니까요. 프로이트의 '도스토예프스키와 부친살해'도 한 가지 사례가 될 것입니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 혹은 '정신병동의 셰익스피어'에게서 많은 걸 배우고 있습니다(자신의 이론을 적용하는 게 아니라).

yoonta 2005-11-14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통속적'이라..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보셨는진 모르지만 제 말은 어디까지나 비유지 문학이 정말로 '환자'라는 이야기는 아닌데요? 그리고 설령 문학이 환자라고 하더라도 그때문에 문학이 '폄하'되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요. 정신분석학자처럼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어야만 '우월한'사고라는 편견을 가지고 계신건 아닌지..그리고 프로이트는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만 배운게 아니라 그들의 '환자'들에게서도 배운 것 아니었던가요?

로쟈 2005-11-14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자'란 말이 폄하의 의미가 아니듯이 '통속적'이란 말이 폄하의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흔히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는 의미에서 쓴 말입니다. 제 의견은 의사-환자의 이분법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정신분석학자처럼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어야만 '우월한'사고라는 편견을 제가 갖고 있다면, 굳이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문학을 옹호할 필요가 없습니다(정신분석학이 얼마만큼 논리적/이성적인가란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덧붙이자면, yoonta님은 문학/예술이 비논리적이며 비이성적(감성적)이라는 편견을 갖고 계신 건가요?

yoonta 2005-11-14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까지나 상대적인것 아닌가요? 문학과 철학사이의 관계는 이런 댓글로 답하기에는 쉽지않은 복잡한 관계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철학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문학/예술은 감성적이고 '기표'의 효과에 의한 '사건'으로의 생성의 측면이 강하다는 거죠. 그것이 편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로쟈님이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게 아니냐는 말은 기분나쁘시다면 취소..^^ 꼭 그렇다는 의미로 쓴 문장은 아닙니다..

로쟈 2005-11-14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댓글로 다루기에는 덩치가 너무 큰 문제입니다. 나중에 책 한 권씩 쓰도록 할까요?^^ 더 좋은 건 그런 주제를 다룬 책이 나와주는 것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