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토프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비록 모든 텍스트가 생산적 노동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모든 텍스트가 이러한 작업의 흔적을 동등하게 드러내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환영적인 구경거리에서는 예술의 질료들끼리의 이음매가 매끈하기 때문에 작업 흔적이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실물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캔버스 위의 붓 자국을 제거하여 작업 흔적을 없애 버리듯, 환영적 영화 감독들은 제작 과정의 흔적을 은폐시킨다.  많은 할리우드 영화들과 달리, 베르토프의 영화는 스스로 생산 과정을 표면에 드러낸다.  그것은, 발터 벤야민이 다른 맥락에서 말했듯이, 도공의 손자국이 도자기에 들어 붙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로버트 스탬의 <자기 반영의 영화와 문학>(한나래, 1998) 중에서 혁명기 러시아의 영화감독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 1895-1954)에 관한 내용(128-131쪽) 발췌이다. 아마도 이전에 강의준비용으로 정리해두었던 듯한데, 파일들을 정리하는 김에 '창고'에 모아놓기로 한다.

 

베르토프는 동시대 라이벌이었던 에이젠슈테인과 함께 영화사의 두 가지 방향성을 대표했었는데, 여기서는 자세히 늘어놓을 수 없다. <영화운동의 역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영화사들에서 베르토프에 관한 기본사항들은 참조할 수 있다. 들뢰즈는 <시네마: 운동-이미지>에서 베르토프에 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데, 들뢰즈와 베르토프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뇌는 스크린이다: 들뢰즈와 영화철학>(이소출판사, 2003)에 번역된 논문들의 해설이 전문적이면서 수준이 높다. 러시아에서 나온 주목할 만한 연구서는 보지 못했으며, 영어권 서적으로는 블라다 페트릭(Vlada Petric)의 <영화에서의 구성주의(Constructivism in film : The man with the movie camera)>(캠브리지대 출판부, 1987)가 가장 훌륭한 개론서이다. 이론가로서의 베르토프는 현실에 대한 기록과 증언으로서의 영화의 기능을 강조한 '영화-눈(kino-glaz; film-eye)'론으로 유명한데, 감독으로서 베르토프의 대표작은 <카메라를 든 사나이>(1929)이다. 이하는 발췌정리. 

 

 

 

 

<카메라를 든 사나이>의 복합적인 주제-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한 개인의 삶, 도시 생활 중의 하루, 영화의 완성과 상영- 는 사실이 영화의 중심 주제에 종속된다. 즉, 생산력의 연결망이라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영화의 메커니즘을 해부해 보이는 일이 이 영화의 중심 과제이다. 문학은 생산의 한 형태이고 문학 생산자들은 공장의 노동자와 다름없이 자신의 재료를 다루어야 한다는 러시아 형식주의 사회학자들의 주장을 영화에 적용시키면서 <카메라를 든 사나이>는 영화를 산업 생산의 한 분야로서 제시한다. 아네트 마이클슨은 이 영화가 영화제작 활동의 거의 모든 측면을 통상적인 노동의 종류와 조목조목 비교한다고 지적한다.

 

 

편집은 재봉과 비교되고, 필름 청소는 길거리 청소에 비교된다. 영화산업은 섬유 산업에 비유되는데, 마르크스는 후자가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서 모범적인 역할을 한다고 간주했다. 방적기가 자본주의 사회를 변형시켰듯이, 궁극적으로 영화도 사회주의 사회를 변모시킬 것이라는 암시가 이 영화 속에 담겨 있다.  작업 리듬과 움직임의 유사성은 이 두 가지 형태의 생산이 지닌 연대성을 보여준다. 회전하는 실패와 영사기 위에서 돌아가는 필름 릴은 편집에 의해 병치되어 보인다. 섬유 산업을 위해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수력 발전소가 카메라맨이 타는 차량의 동력 역시 제공함이 드러난다. 모든 면에 있어서, 영화는 사회적 생산이라는 집단적 삶의 일부로서 제시된다. 

 

베르토프에게 있어서 카메라 눈의 의무는 영화 속 혹은 실제 삶에서 발견되는 신비화를 해독하는 일이다.  베르토프는 ‘예술적 드라마’의 신비화를 특히 싫어했다.  이 영화 형식의 목적은 관객을 도취시키고, 무의식 속에 특정한 반동적 견해를 심어 놓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베르토프는 그러한 영화가 인민의 새로운 아편이라고 비난하였으며, “스크린 속의 불멸의 왕과 여왕”을 타도하고 “평소의 일하는 모습을 찍은 보통 사람들”을 복권시키자고 주장했다.  그의 비난은 세 가지 종류의 비유, 즉 마술(“마법에 홀리게 하는 영화”), 마약(“영화 아편,” “영화관의 전기 아편”), 종교(“영화의 대제사장”)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들은 반환영주의 영화론자들의 논의에서도 자주 원용된다.  하지만 이 비유들은 그 시대의 역사적 현실에 구체적으로 기초한 것이다.  소외된 영화에 대항한 베르토프의 투쟁은 스탈린 이전 시기의 소비에트 혁명의 투쟁과 보조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활력이 넘쳤던 이 시기 타도 목표로 삼았던 세 가지 소외 형태는 농민 사이의 마법적 미신, 룸펜 사이의 마약 및 알코올 중독, 그리고 러시아 정교의 광범위한 영향력이다. 

 

<카메라를 든 사나이>는 영화 언어에 관한 영화인데, “대개의 영화에서는 숨기려 하는 영화적 수단들을 공개하고” “영화 기법의 문법을 지식처럼 전파하겠다고” 스스로 공언한다. 이 영화는 자기 재현 행위를 통해 스스로의 창작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영화를 생산하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베르토프의 야심을 충족시킨다. 이 영화는 현실을 거울처럼 비추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대신 영화 예술이 복잡한 의미 구축 행위임을 보여준다. 

 

 

많은 분석가들, 특히 아네트 마이클슨, 스티븐 그로프츠, 올리비아 로즈 등에 의해 정리된 베르토프의 자기 반영적 전략들은 다음과 같다. 카메라, 영사기, 스크린 등의 도구를 끊임없이 표면에 드러낸다. 돌아다니는 촬영기사의 모습이 직접 영화 속에서 보인다. 렌즈/눈 그리고 셔터/눈꺼풀 간의 유사성을 시각적으로 계속 대비시킨다.  영화 촬영의 속임수를 노출시킨다.  영화적 움직임의 인공성을 강조한다. 평범하게 찍은 시퀀스 속에 애니메이션과 슬로 모션 기법으로 찍은 장면을 삽입시킨다. 이미지의 분할, 그리고 시간과 공간의 왜곡을 통해 환영을 깨뜨린다. 그리고 계속해서 관객의 지성에 호소한다. 요컨대 환영주의에 대한 공격이 <카메라를 든 사나이>에서처럼 창의적이고 비타협적으로 실행된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06. 01. 11.

 

 

 

 

 

 

 

P.S. '영화의 혁명가 지가 베르토프'란 부제를 단 (이매진, 2006)가 드디어 우리말로도 출간됐다. "계속 공부하고 창조하는 영화 노동자"가 되고 싶다는 역자의 번역-노동의 산물이므로 믿을 만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젠 베르토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게 더이상 쑥쓰럽지 않겠다... 

 

06. 02.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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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12월 모스크바에서 김기덕의 영화 <빈집>을 보고 쓴 소감을 여기에 다시 옮겨놓는다. '환대의 윤리학과 유령의 존재론'이란 모스크바 통신에는 일기와 감상이 뒤섞여 있었는데, 창고 정리 차원에서 '감상'만을 따로 빼내오고자 하는 것이다. 약간의 첨삭을 가했는데, 나중에 오프라인용 글을 다시 쓰기 위한 '베이스캠프' 정도 되겠다...

 

 

 

 

 

 

 

 

 

낮에 <씨네21>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김기덕과 <빈집>에 관한 모든 것이란 제목하에 정성일의 영화평과 김기덕과의 대담을 읽었는데(정성일은 아마도 임권택 이후에 김기덕과 가장 많은 시간의 대담을 나누고 있는 듯하다), 김기덕이 이 영화의 영어제목으로 고른 것이 <3번 아이언(3-iron)>이었다고. 그건 아마도 빈집을 이해하지 못할 미국 관객들에겐 적합한 제목인 듯싶다(그들은 이라고 옮길까?). 하지만, 당연히 이 영화에 더 적합한 제목은 빈집이며 러시아어 제목도 푸스또이 돔(=빈집)이다. 더불어 알게 된 건 두 주인공의 이름인데, 선화(이승연)과 태석(재희?). 여주인공의 이름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와 동일한데, 김기덕의 설명에 따르면 이름이 없던 주인공을 스태프들이 그냥 그렇게 부르길래 선화로 했다고(감독은 善火란 뜻도 된다고 덧붙였다). 태석은 한 연출부원의 이름이고.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올해의 중요한 한국영화들, 그리고 내가 러시아에서 본 한국영화 3,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올드보이>, <빈집>은 모두 2+1, 두 남자와 한 여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각기 다른 시각에서. 그 차이를 집약하고 있는 건 각 영화의 결말이다(결말이란 건 운동/혼돈이 제거된 가장 안정된 상태를 지시한다). <여자>에서는 세 사람이 각각 다 혼자가 된다(우리는 저마다 다 혼자이다). <올드보이>에서는 복수자인 유지태가 제거되고 오대수 부녀(연인)가 남는다(가정을 이루는 건 두 사람이다). <빈집>에서는 선화와 남편, 그리고 태석, 셋이 한집에 동거하면서 남는다(가정을 이루는 건 세 사람이다).

 

이러한 결말만을 놓고 보자면, 가장 상식적이면서 영화적인 <올드보이>이다. 한 가정의 (질서를) 위협했던 은 제거되고(물론 한 치의 혀를 대가로 지불한다), 가정은 보존된다(해피엔딩이 아니더라도). 인간 관계에 가장 회의적인 홍상수의 영화답게 <여자>는 모든 관계를 미래의 것으로 남겨놓는다. 현재에 각자가 챙기는 몫은 자기 자신뿐이다. 따라서 <올드보이>가 관습적이라면(복수야말로 가장 유구하면서도 관습적인 테마이다) <여자>는 모더니즘적이다. 거기에 비하면 가장 전복적인 건 <빈집>이다. 거기서 안정된 가정세 사람의 동거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빈집>의 줄거리를 자세히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태석이란 이름이 붙어 있지만, 그냥 한 유령 같은 청년의 남의 빈집살이가 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동인이다. 그는 나름의 노하우를 발휘해서는 남의 집에 들어가서 숙식을 해결한다. 하지만 무얼 훔치는 대신에 망가진 물건들을 고쳐주거나 빨래를 해준다. 즉 선의의 참견을 한다(김기덕의 고백에 따르면, 그가 도둑이 아니란 걸 보여주기 위해 빈집에서 시켜볼 수 있는 게 빨래밖에는 없었다고). 그러다가 부유한 저택이지만 동시에 빈집 같은 곳에서 남편에게 폭행당하며 죽어지내는 선화를 만난다. 여기서도 태석은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이 집안일에 참견하는바, 그는 선화의 남편에게 골프공 세례를 퍼붓고는 자발적으로 따라나선 선화를 데리고 2인조 빈집살이를 시작한다. 이후에 두 사람이 순례하는 빈집들은 현 한국사회의 축도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에서 집이란 건 가족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배타적인 공간이다(우리집/너네집). 그런 자기만의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 한국사람들은 삶의 대부분을 희생하며 간혹 목숨까지도 건다(한국인들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집이고 집값이다). 그리고 그렇게 마련한 집을 행복한 집(스위트홈)으로 만들기 위해서 하는 일이란 주로 외부자/침입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비하는 것과 인테리어(interior)하는 것이다(집을 아예 으로 만들기도 하고 궁전으로 만들기도 한다. 타워 팰리스). 거기서 외부성의 배제는 행복의 조건으로 전제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폐쇄된 공간의 주인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아마도 그들의 행복은 집 없는 남의 불행과의 대비 속에서만 얻어질 듯하다). 가령, 선화의 남편은 자신의 부()를 통해서 (아마도 모델이나 배우였을) 아내 선화를 배타적으로 소유하려고 하지만, 그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건 영화 속에서 태석과 선화, 2인조 빈집살이 팀이 전전하는 집 대부분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그 빈집들은 행복이 비어있다는 의미에서도 빈집들이다. 유일한 예외는 한 한옥인데, 거기에서 비로소 (감독의 말을 빌면) 발 섹스를 하면서 태석과 선화는 일체감을 느끼고 하나가 된다. 그 집은 다른 집들과 달리 폐쇄가옥이 아니라 개방가옥이었다.

 


 

 

 

 

 

 

  

이 점은 나중에 태석이 감옥에 있는 동안에 선화가 안식을 위해서 다시 찾아갔을 때 이 낯선 이방인을 대하는 집주인 부부의 태도에서 확인된다. 그들은 그녀에게 아무런 이유도 묻지 않고,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는다. 다만 쉬었다 가게 할 뿐이다. , 그들은 외부인을 침입자로서 박대하는 것이 아니라 손님으로 환대한다. 고아와 과부와 이방인에 대한 환대는 레비나스-데리다의 윤리적 요청이기도 한데, <빈집>은 그러한 환대의 윤리학, 혹은 윤리적 요청이 일상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떻게 실천될 수 있는지 차분하고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거기까지가 이 영화의 절반이다.

 

하지만, 그 정도였다면 영화는 잠언적인 차원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비록 태석이 천사로만 묘사되는 것은 아니며 3번 아이언의 모티브가 김기덕 영화다운 면모를 어느 정도 보여준다고는 해도 말이다. 한 빈민 아파트에 들렀다가 태석과 선화는 (나중에 밝혀진바) 폐암으로 숨진 독거 노인을 발견하고는 염을 해서 매장해준다. 하지만, 뒤늦게 들이닥친 아들 가족에 의해 빈집살이가 발각된 두 사람은 경찰에 넘겨진다. 태석에게 납치된 걸로 간주된 선화는 남편에게 보내지고 태석은 무단침입 등의 죄목으로 수감된다. 거기부터가 영화의 후반부인데, 이 후반부에서 주제화되는 것은 유령의 존재론이며, 이에 의해서 전반부의 환대의 윤리학은 보충되고, 이 영화의 힘은 배가된다.       


 

이미 남의 빈집살이를 통해서 유령 같은 생활을 해왔지만, 태석은 감금된 독방에서 더욱 완벽한 유령-되기를 연마한다. 이 연마/수행은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의 겨울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와 비교해 보더라도 <봄여름가을겨울>이 얼마나 관념적인가, 반대로 <빈집>이 얼마나 현실적이며 뛰어난가를 알 수 있다<봄여름가을겨울>의 수행이 비변증법적인 공부인 반면에, <빈집>의 수행은 변증법적인 학습인 것('공부'와 '학습'의 차이는 다른 통신문에서 다루었다). 태석의 수행이 변증법적인 것은 간수한테 걸릴 때마다 매번 맞아가면서 학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태석은 배우고 때때로 익히며(시험해보면서/맞아가면서) 유령-되기를 터득해간다.

 

그 장면들에서 간수는 태석에게 그가 숨거나/없어지거나 하면 죽여버리겠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니까 사회로부터 격리돼 감금된 태석은 사회로부터 보여서는 안 되는, 즉 사회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감옥 안에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간수에게 반드시) 보여야 하는 존재이다. 말하자면, 이러한 이중적인 사회적 규정 자체가 이미 태석의 유령성을 강요하는 바이기도 하다. , 그는 사회에서 안 보이면서 보이는 존재여야 하며,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유령이기 이전에 사회적인 차원에서 이미 유령인 것이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 둘은 등가이다. , 사회적인 유령은 존재론적인 유령이기도 하다. 나는 이것이 이 영화의 핵심적인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영화 <빈집>은 그러한 메시지를 드라마화한 것이다(하지만, 이 영화를 그러한 드라마, 혹은 홍보문구에서처럼 멜로드라마로서만 제한/규정하는 것은 영화의 메시지를 부당하게 축소하는 것이다).

 


 

 

 

이 장면과 대조되는 것이 <올드보이>에서 세 사람이 동시에 등장하는 (아마도) 유일한 장면인바, 거기서 오대수는 (나중에 딸로 밝혀지는) 미도와 관계를 갖고 나서 알몸으로 잠이 들고 유지태는 가스를 살포한 방에 방독면을 쓴 채로 등장해 두 사람 옆에 눕는다. 거기서 유령적인 존재의 역할을 하는 것은 복수자인 유지태인데, <올드보이>유령 <빈집>유령과 갖는 차이점은 유지태의 경우 태석과는 달리 사회학적 차원이 전적으로 결여돼 있다는 점이다(그는 심리적 트라우마만을 가진 인물이다).

 

그걸 더 확장시켜 말하면, <올드보이>의 내러티브 공간은 어떠한 외부성도 갖고 있지 않다(그것은 폐쇄공간이다). 때문에, 관객은 영화 속의 어떤 인물과도 자신을 동일시할 수 없다. 그것은 <빈집>의 인물들이 우리 주변, 혹은 우리 자신과 동일시되는 것과 대조된다. <올드보이>가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반면에(<올드보이>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말하는 겸손한 영화이다), <빈집>이 윤리-철학적인 메시지로 가득 차 있는 것은 그러한 바탕에서이다(<빈집>당신의 집도 혹 빈집은 아닌가?라고 질문하는 불손한 영화이다).     

 

남편이 출근한 뒤에 선화는 보이지 않는 유령 태수와 함께 하게 되고 둘이 같이 올라선 저울의 눈금이 0을 가리키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눈금에서 0은 시작점/영점이면서 동시에 완성을 의미한다, 가령 100).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가 없다는 마지막 자막과 함께.

 

 

 

 

 

 

 

 

  

이 영화를 같이 본 러시아 관객들은 40여명쯤 됐는데, 영화가 끝나자 박수를 쳐주었다. 나 또한 <빈집>은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베니스에서 감독상을 받았지만, 나는 지난번 <사마리아> 수준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었는데, 내 기대를 뛰어넘는 영화였다. 해서 말하건대, 이 영화는 김기덕의 최고작이다(<수취인 불명>을 나는 아직 보지 않았지만, 그의 모든 영화를 다 본 평론가 정성일도 감독님의 가장 좋은 영화라는 평을 내린 걸 보면, 나의 단언은 허풍이나 과장이 아니다. *귀국 후에 <수취인 불명>을 비디오로 보았다. 나의 판단을 수정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이전까지 김기덕을 가장 과대평가된 감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빈집> 이후는 과대평가되어도 좋은 감독이다. 그런 의미에서 <빈집>김기덕 영화의 0이다. 

 

영화가 끝나자 동행한 후배 역시 만족감을 표시했지만, 역시나 마지막 자막에 대해서는 좀 유치하다는 평을 했고, 나도 동감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가 없다라는 마지막 멘트는 이 깔끔한 영화에 남아있는 김기덕다운 군더더기이다. 이미 지적했듯이, 유령으로서의 태석은 꿈(환상)도 아니고, 현실도 아니다. 그러니까 현실이라는 이항적 규정을 넘어서는 제3항이다. 이 제3항을 사회학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존재론적 차원에서 견인해냈다는 데 이 영화의 의의가 있다(환대의 윤리와 유령의 존재론을 주제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빈집>은 데리다 철학의 탁월한 영화적 번안이기도 하다. 김기덕 자신은 결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걸 다시 이항적 논리로 환원시키는 것은 감독 자신이 무얼 찍은 것인지 잘 모른다는 얘기밖에 안된다(그건 물론 김기덕만의 불찰은 아니다. 창조자들은 종종 자신이 무얼 창조한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종종 자신이 어떤 괴물을 낳아놓은 것인지 알지 못하며, 창조주는 대체 자신이 어떤 세상을 창조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전하지만, 그는 한쪽 눈을 감고 보았음에 틀림없다).

 

해서 마지막 멘트는 무시해도 좋을 것이다. 김기덕은 이승연이 처음 시나리오를 받아 읽고서 태석이 선화의 환상이 아니냐고 말해서(즉 제대로 이해해서!) 바로 캐스팅했다고 하지만, 그게 말해주는 바는 이 감독과 여배우가 죽이 맞았다는 것이지, 그들이 이 영화와 태석이란 배역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얘기와는 무관하다. 한편으로 선화의 남편과 태석이란 두 남자가 <나쁜 남자>에서의 한기의 두 모습, 즉 두 분신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 듯한데, 나는 그러한 해석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일단 나쁜 남편과 착한 태석이란 이분법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뿐더러(태석에겐 나쁜 면모도 있다. 그런 그의 이중성은 감독이 의도한 것이다), 계급적 간극이 이 둘 사이를 빗장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 태석은 웬만한 차보다 비쌀 법한 외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아마도 그건 태석이 빈곤 때문에 어딜 털려고 빈집살이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강조하기 위한 설정인 듯하다. 하지만, 거기에 거꾸로 전제돼 있는 건 가난한 자들은 태석과 같은 온순한 침입자가 되지 못할 거라는 주류적 고정관념이다. 김기덕은 그런 식으로 간혹 중산층 의식을 드러낼 때가 있다. 맨 처음 빈집으로 등장하는 아파트가 감독 자신의 집이라고 하는데, 그는 어느새 그만한 평수의 의식을 공유하게 된 것인지?

 

 

 

 

 

  

 

 

몇 차례 지적한 바이지만, 김기덕 영화의 힘은 사회적 추방자들의 야생적 삶에 대한 묘사에서 나온다. 이건 현재로선 그만이, 혹은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임권택 감독이 찍는(다 찍었을 듯한데) <하류인생>도 같은 소재를 다룰 법하지만, 나쁜 놈들도 알고 보면, 다 본성은 착한 놈이라는 식의 그의 회고적 휴머니즘은 한국사회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봉합한다(그의 <노는 계집 창>이 고다르의 <비브르 사 비>보다 몇 십 년 뒤에 나왔으면서도 오히려 몇 십 년은 더 뒤떨어져 보이는 이유이다. 나는 임권택의 대표작은 <만나라> <서편제>가 아니라 <길소뜸>이나 (결말은 실망스럽지만) <티켓>이라고 생각하며, 그가 후자의 길을 가지 않은 것이 유감이다). 그래서, 그는 국민감독인 것이지만, 거꾸로 (예상컨대) <하류인생>에는 야생적 삶이 담기지 않는 것이다(*귀국 후에 <하류인생>을 비디오로 봤는데, 나에겐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영화였다).



들뢰즈에 따르면, (위대한 작가들이) 하는 것은 자신들의 표현수단이 다수언어에 대한 소수적 사용을 창출해내는 것이다.(<비평과 진단>, 195, 나는 가끔씩 이 책을 들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국역본을 다 읽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듯하다. 다 읽을 수가 없는 책이기 때문에. 해서 허다한 문학적 들뢰즈주의자들이 어디에서 자양분을 얻는지 궁금하다.) , 그들은 단조(短調)가 영원히 불균형상태에 있는 역동적 결합들을 지칭하는 음악에서처럼 다수언어를 소수화한다. 그들은 이렇게 소수화한 덕분에 위대한 것이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다시 옮기면, 그들은 이 (다수의) 언어를 음악에서의 마이너(=단조)처럼 소수화한다. 음악에서 마이너는 끊임없는 불협화음 속에 존재하는 역동적인 결합을 가리킨다.

 

 

 

 

 

 

 

 

  

<빈집>에서 태석은 마이너이며(남편에게 얻어맞은 선화 또한 마이너이다), 그의 침묵 혹은 묵언은 그 마이너의 언어, 소수화된 언어이다(듣기에, 은희경의 소설 <마이너리티>는 이 마이너의 세계를 다수의 언어로 말했다). 김기덕이 훗날 (국민감독이 아니라) 위대한 감독으로 기억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귀 기울임과 동시에 창출해내야 하는 것은 그러한 소수화된 언어이다(같은 묵언이지만, <봄여름가을겨울>에서의 묵언은 소수의 언어가 아니라 다수의 언어이다. 그건 절간의 보편어이기에. 해서 서로 놓여 있는 컨텍스트가 다른 두 영화의 침묵/묵언은 동일한 차원의 것이 아니다. 즉 그 둘은 상동적(相同的)이 아니라 상사적(相似的)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봄여름가을겨울>은 가장 김기덕답지 않은 영화이며, 나는 그 영화를 지지하지 않는다).


 

 

 

 

 

 

 

 

  

정성일과의 인터뷰에서 김기덕은 자신의 차기작이 <나는 살인을 위해 태어났다>라고 밝혔는데, 주인공은 총이고, 여러 주인의 손을 전전하게 되는 이 자기의식적인 총은 (러시아제인지) 러시아어로(!) 말을 한다고 한다. 이전에 박중훈이 주연한 <총잡이>이란 영화는 있었지만, 총이 주연한 영화는 한국영화상 최초일 듯하다(세계영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므로). 그 총에 대한 얘기가 다수의 언어로 풀어질지, 소수의 언어로 풀어질지는 얼마간 기다려봐야 할 듯하다. 그런 착상이 어떻게 영화가 될지는 의문스럽지만, 김기덕은 매번 그런 걸 멀쩡하게 영화로 만들어왔으니까, 좀 기다려보면 결과를 알 수 있게 될 터. 그건 김기덕의 열두 번째 영화가 될 것이다(*물론 이 예상은 빗나갔다. 그의 열두번째 영화는 '총'이 아니라 '활'이었으니까)...

 

06. 01. 10.

 

P.S. 내가 <빈집>을 본 건 모스크바의 아르바트 거리에 있는 '예술극장'에서였다. 눈짐작에는 아래 왼쪽 사진에서 왼편에 살짝 걸쳐 있는 건물이었던 듯(사진에선 집시 아이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아르바트 거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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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이 벌써부터 그런 국민감독의 길을 갈 채비를 하는 건 아니겠지만(*<활>의 흥행성적으로 봐서 '국민감독'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물론 임권택 감독조차도 <천년학> 제작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니까 '국민감독'은 허울만 그럴 듯한 말인가 보다), 그의 악어적 근성이 퇴색/양보하게 될까봐 약간은 걱정된다(<봄여름가을겨울> 같은 영화가 이러한 근심을 낳는다). 나는 그가 말의 진정한 의미에서 소수자(=마이너리티)의 감독으로 남기를 바라기 때문이다(역설적이지만, 그게 한국영화 전체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한 추방자/소수자들의 존재론적 지위가 <빈집>에서 규정되는바, 바로 유령이다. 그런 의미에서 <빈집>은 한국판 <디 아더스>이며, 하지만 그 철학적 함축에 있어서 <디 아더스>를 한참 뛰어넘는 영화이다(<디 아더스>는 궁극적으론 타자의 발견이 아닌 자기발견의 영화이니까). <빈집>유령 태석 또한 그러한 추방자/소수자의 일원인바(그렇지 않다면, 그는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재미로 빈집살이를 하는 것이 된다), 굳이 그러한 신원을 모호하게 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이러한 점들이 내가 <빈집>에 대해서 갖는 약간의 불만이다.

어쨌든 간수의 충고대로 그림자마저 숨기는 법을 연마해서 완벽하게 유령적인 존재가 된 태석은 출감하자 이전에 들렀던 집 몇 곳을 돌아서(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자신의 유령-되기를 연습한 것이라고) 선화의 집을 찾아간다. 그의 출감 소식을 형사로부터 전해들은 선화의 남편은 잔뜩 벼르고 있지만, 유령이 된 태석을 볼 수 있는 건 선화뿐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영화의 주제를 요약하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되는바, 그것은 선화가 남편과 포옹한 채로 태석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키스하는 장면이다(<빈집>의 포스터는 이 장면의 또 다른 변형이다). 선화가 남편과의 관계를 버틸 수 있는 건 태석이라는 유령을 매개로 해서이다. 그것이 함축하는바, 유령을 집안에 들여놓을 때, 유령적 존재로서의 외부자/침입자를 환대할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그나마 견딜 만한 것이 되고 행복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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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과 Ghost house
    from 해방촌 게스츠하우스 빈집 팀블로그 2009-09-14 20:46 
    빈집님의 [빈마을 공동체에 대한 단상] 에 관련된 글.
 
 
2006-01-10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1-11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많이 비판받는 바대로 김기덕 영화에서 여성은 '남성 판타지의 도구'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여성주의 감독이 아닌 김기덕에게 '정치적 올바름'을 주문하는 것도 제 생각엔 생산적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는 그가 잘 찍을 수 있는 걸 찍는 게 낫다고 생각하니까요. '올바름'을 가장하거나 포장하지 않고. 한편으론 <도쿄 타워> 같은 소설이나 영화들이 여성들에게 환영받는 듯한데, 그런 류가 김기덕의 대안일 리도 없으므로 더 기다려봐야겠죠. 여성영화는 남성영화의 미래이다?^^

2006-01-12 0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 연말에 나온 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한길사, 2005)을 미처 읽기도 전에 2005년의 책 가운데 한권으로 꼽기도 했으니까 나로선 이 책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와 기대를 부여한 것이 된다. 물론 아주 안 읽은 건 아니어서 (한국어판 서문을 비록하여) 저자의 서문 정도는 읽었고, '트랜스크리틱이란 무엇인가'란 서론은 내 기억에 <윤리21>(사회평론, 2001)에서도 읽은 바 있다(정확히 겹치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윤리21>은 박스에 들어가 있어서). 그러니 생짜로 호언을 한 것은 아니었던 것.

지난 며칠간 나는 책의 제1부 '칸트'를 영역본과 함께 거의 다 읽었는데(2부 '마르크스'는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릴 듯하다), 역시나 고진은 기대만큼의 힘, 비평의 힘을 보여준다. 나는 언제나 그의 비평이 좀더 긴 분량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는데, <트랜스크리틱>은 그런 바람도 상당 부분 충족시켜준다. 칸트에 관한 내용만 거의 200쪽이 되니까. 이런 것이 내가 갖는 만족감인 반면에 한편으론 책의 교정상태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미 일부에서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인명의 오기에서부터 내용상의 오류에 이르기까지 국역본은 얼마간 교정되어야 할 대목들을 포함하고 있다. 당분간 짬짬이 고진의 칸트 읽기를 따라가면서 그런 내용들까지 지적하고자 한다. 분량상 몇 차례 나뉘어 진행될 것이다.

 

 

 

 

서론에 해당하는 '트랜스크리틱이란 무엇인가'를 제쳐놓으면 제1부의 제1장은 '칸트적 전회(The Kantian Turn)'이다. 칸트를 기점으로 사고의 물줄기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이 '전회'는 "당시까지의 형이상학이, 주관이 외적 대상을 '모사'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에 비해 주관이 외계에 '투입'한 형식에 의해 '대상'을 '구성'한다는 식으로 역전된 것을 의미한다."(65쪽) 요컨대, 모사론(모방론) 대 구성론인 것. 이걸 칸트 자신은 <순수이성비판>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고 불렀는데, 고진이 가장 먼저 밝히고자 하는 것은 지구(주관) 중심의 사고를 부정한 코페르니쿠스와 다소 상반된 것으로 보이는 '주관적' 구성주의가 어떻게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에 값하는 것인가이다.

 

 

 

 

이에 대해서 고진은 단번에 '물자체'(와/혹은 '초월적 대상')에 대한 칸트식 사고에 그러한 전회(=혁명성)이 놓여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고진에 따르면, 칸트가 주관의 능동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그래서 칸트가 세계를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주관성 철학의 시조로서 '잘못' 간주되었지만) 실상 칸트는 그러한 '소박한' 관념론을 부정한다. 이에 따라 고진은 칸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의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자체의 의미를 먼저 검토해보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토머스 쿤에 따르면(<과학혁명의 구조>가 아닌 <코페르니쿠스 혁명>에서의 인용이지만 후자는 아직 국역돼 있지 않다), 실상 자신이 죽은 해에 출간된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1543)에서조차도 코페르니쿠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을 따르고 있다. 다만, 당시까지의 천동설에 따라다니는 천체 회전운동에서 보이는 어긋남(불일치)이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회전하는 것으로 보면 해소된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지동설인가 천동설인가가 아니라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나 태양을, 경험적으로 관찰되는 것과는 별도로 어떤 관계 구조의 항으로 파악한 일이다."(68쪽)

마찬가지로 칸트에게서도 중요한 것은 경험론(감각)이나 합리론(사유)이냐가 아니었다. 칸트가 도입한 감성의 형식이나 오성의 범주는 '초월론적인 구조'이며(이 점을 고진이 내내 강조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나 태양이라고 불리는 것을 어떤 관계 안의 항으로 발견한 것과 같다." 이런 이유에서 고진은 토머스 쿤이 "프로이트 자신은, 지구는 단순한 혹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코페르니쿠스의 발견과, 무의식이 인간 행동의 대부분을 제어한다는 그의 발견의 병행적인 효과를 강조했다"고 지적한 것에 대해 부정확하다고 교정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획기적인 것은 '무의식이 인간 행동의 대부분을 제어한다'는 생각 자체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초기의 <꿈 판단>(*<꿈의 해석>이 왜 이렇게 번역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일역본은 정말 <꿈 판단>인 것인지?)이 보여준 것처럼, (그것은) 의식과 무의식의 어긋남을 초래하는 것을 언어적인 형식에서 보려고 한 데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무의식의 '초월론적인' 구조가 발견되었다"(69쪽)

 

 

 

 

칸트나 프로이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갖는 의미에 대한 토마스 쿤의 오해, 혹은 부족한 이해는 사실 그만의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통념적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이고 통념적인 칸트상에 문제가 있으며 고진은 일차적으로 그걸 교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상식/통념은 "칸트가 말하는 형식이나 범주가 유클리드 기하학과 뉴턴 물리학에 기초한다는 오해이다." 사실, 칸트 철학이 '뉴턴 역학의 철학적 해명'이라는 건 대부분의 철학사나 철학 개론서들에서 반복하고 있는 통념이다. 한데, 고진은 그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칸트가 감성의 '형식'을 생각한 것은 오히려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가능성을 상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클리드적 칸트 대 비유클리드적 칸트?(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다루어진다.)

"칸트는 항상 주관성의 철학을 연 사람으로 비판의 표적이 되었다. 그러나 칸트가 한 것은 인간의 주관적인 능력의 한계를 드러내고, 형이상학을 그 범주를 넘어선 '월권'행위로 보는 것이었다.(...) 칸트에게서 감성, 오성, 이성 등은 프로이트의 이드, 자아, 초자아와 마찬가지로 경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어떤 작용으로 존재한다. 초월론적 통각(주관)도 마찬가지여서, 그것들을 하나의 체계이게 하는 작용으로 존재한다. 초월론적이라는 것은 무로서의 작용(존재)를 찾아낸다는 의미에서 초월론적(하이데거)이다. 동시에 '의식되지 않는' 구조를 본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정신분석적 또는 구조주의적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칸트가 말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는 주관성 철학으로 전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통해 이루어진 '물자체'를 중심으로 하는 사고로 전회하는 것이다."(72-3쪽)

 

 

 

 

그렇다면 '물자체' 무엇인가? 이 점에서 내가 보기에 고진의 독창성이 드러나는 것 같은데, 그는 '물자체'를 윤리적인 문제, 즉 '타자'의 문제로 본다: "'물자체'는 <실천이성비판>에서 직접적으로 말해지기 이전에 기본적으로 윤리적인 문제와 관련된다. 다시 말해 '타자'의 문제인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칸트의 '전회'가 '타자'를 중심으로 하는 사고로의 전회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칸트 이후 호언장담해온 그 어떤 사상적 전회보다도 근원적이라는 사실이다."

단순하게 정리하면, 칸트의 '물자체'는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마찬가지로 인간 이성/의식 주관적인 능력의 한계를 드러내는 '지동설'이며, 그런 의미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에 값한다. 이어지는 장들에서 고진이 자세히 드러내는 바이지만, 그러한 전회의 비밀을 고진은 <실천이상비판>이나 <판단력비판>에서 찾지 않고 <순수이성비판>에서 찾는다(이를 테면, <순수이성비판>은 칸트의 알파요 오메가이다). 그 비밀이란 '타자'의 발견과 그와 병행적인 윤리학적 문제의 제기에 놓여지며, 그것을 흔히 인식론에 관한 저작으로 읽히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독해해내는 것이 가라타니 고진의 득의의 전략이다(요컨대, <순수이성비판>을 윤리학 책으로 읽는 것이다).

이른바 <순수이성비판> 다시 읽기를 강제한다는 점에서, 고진의 '비평가'로서의 몫을 다하고 있다. '비평가'란 무엇보다도 우리로 하여금 다시 읽도록 만드는 이들을 가리키니까. 그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틀렸습니다. 공부하세욧!"

06. 01. 09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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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1-09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가타리니 고진에 함 도전해 볼까요?

딸기 2006-01-10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칸트를 몰라 고진에 고전;;했는데, 로쟈님의 '진행중'인 글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릴케 현상 2006-02-05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he Interpretation of Dreams 을 꿈의 분석이라고 번역한 사람도 있던데 상관없을까요??

로쟈 2006-02-06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의 해석>이라고 나와 있는 책을 굳이 '분석'이라고 할 건 없지 않을까요?(<꿈의 분석>이란 책을 직접 쓰면 되겠죠.) 일역본은 <꿈 판단>이라고 하던데, 일어의 '판단'은 우리말과 용례가 많이 다릅니다. 역자들이 주의할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리센코'란 이름을 검색하면 한달쯤 전 칼럼들이 몇 개 뜬다. 지난 12월 중순, 그러니까 황우석 사태가 점입가경으로 치달을 무렵에 씌어진 칼럼들이다. 트로핌 데니소비치 리센코(T. D. Lysenko; 1898-1976)는 스탈린시대 러시아의 농생물학자로서 멘델의 유전학설을 비판하고 소위 '리센코학설'(리센코주의)를 주창한 인물이다. 그에 따르면, 이 유전자라는 입자적인 것만으로 유전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환경조건을 변화시킴으로써 생물체 내의 물질대사형을 변화시키고 이것이 유전성을 변경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내가 이해하기론 용불용설 같은 것이어서 환경조건에 따른 개체 변이가 유전된다는 식인 듯하다(이른바 획득형질 유전론). 문제는 그의 이 유사-과학이 멘델의 유전학 같은 '부르주아 과학'에 대항하여 스탈린시대에 '프롤레타리아 과학'으로 공인받았다는 것. 

 

물론 이후에 그의 '정치적' 과학은 농업생산 분야에서의 부진으로 인하여 신뢰를 상실하게 되며 스탈린 사후에는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모스크바 유전학연구소장 직에서 완전히 사임하게 되는 것은 흐루시초프시대인 1965년). 하지만, 그의 유사-과학은 유전학 분야에서 러시아가 서구에 최소한 10여 년 이상 뒤처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게 20세기 과학사의 최대 스캔들의 하나인 소위 '리센코 어페어'이다.  

 

개인적으론 대학원 시절 언젠가 이를 풍자한 러시아 현대소설을 읽을 일이 있어서 리센코주의에 대한 자료들을 모으기도 해서(비록 거기에 대해 글을 쓰는 기획은 엎어졌었지만) '리센코'란 이름이 친숙한데, 그때 가장 읽고 싶었던 책은 <프랑스 인식론의 계보>(새길사, 1996)의 저자이자 얼마전 <인간복제논쟁>(지식의풍경, 2005)이 번역/소개된 도미니크 르쿠르의 <리센코, 프롤레타리아 과학의 실제 역사>였다(이 책은 얼마전에 지인의 도움으로 영역본을 구했다). <인간복제논쟁>의 부제는 '인간 복제 이후의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이며 원제는 "Humain, Posthumain"(2003), 즉 '인간과 포스트인간'이다. 이미 '인간복제'의 기술적 가능성과 문제점에 관한 책들은 여러 권 출간돼 있으므로 이 책과 더불어 '테마 독서'를 해봄직하다.

 

 

 

 

흥미로운 건 르쿠르의 책 부록으로 '유나바머'론이 포함돼 있다는 것(*최근에 <산업사회와 그 미래>(박영률출판사, 2006)로 다시 출간됐다). 유나바머? 시사상식인데, 본명이 시어도르 카진스키인 그는 하버드대 출신의 수학 천재로 버클리대 교수를 지낸 인물이다. 극단적인 문명혐오주의자로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지난 1978년부터 1995년까지 16회에 걸쳐서 과학기술 관련인사들에게 우편물 폭탄테러를 감행해왔다. 초기에 주로 대학과 항공사를 공격해 대학(University), 항공사(Airline)와 폭파범(Boomber)의 Un+A+Bomber 를 조합, '유나바머'로 불렸다. 그는 95년 테러를 중단하는 조건으로 유력지에 과학문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과학기술문명비판논문(=유나바머 선언문) 게재를 요구함에 따라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지에 3만5000자의 논문이 실렸다. 동생의 제보에 따라 96년 4월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고 현재 복역중이다. 이른바 '유나바머 어페어'이다. 르쿠르가 인간복제문제와 유나바머 문제를 어떻게 접속시키고 있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이하에서 옮겨오는 칼럼들은 그런 궁금중과는 무관하며 (아마도 21세기 전반기 과학계 최대 스캔들로 기록될) '황우석 어페어'에 촉발되어 '리센코 어페어'를 상기시켜주고 있는 글들이다. 첫번째 칼럼은 한겨레신문(2005. 12. 13)에 실렸던 김환석 교수의 칼럼 "'영웅만들기'의 함정;이고, 두번째 칼럼은 동아일보(2005. 12. 12)에 실렸던 소설가 복거일의 칼럼 '과학윤리기준 과학자에 맡겨야'이다(복거일은 대표적인 보수주의 논객이다). 모든 강조는 나의 것이다.

***

섀튼의 결별선언 이후 한 달 동안 전국을 폭풍처럼 혼란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었던 황우석 스캔들은 이제 서울대의 조사위원회로 공이 넘어갔다. 따지고 보면 한 과학자의 연구논문에 대한 논란일 뿐인데, 이렇게 ‘핵폭풍’에 비유될 만큼 국가적 재앙의 위기에 몰려 정부와 온 국민이 하루하루 불안과 조바심에 떨고 있는 것은 처음부터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이게 정상적인 나라에서 일어날 법한 일인가?  

정상적인 나라라면 과학계 내부의 자정 메커니즘으로 쉽게 처리되었을 사건이 우리나라에서는 이 지경으로 사회적인 대혼란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은 황우석 교수가 단지 한 과학자가 아니라 이른바 ‘국민적 영웅’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엠에프(IMF) 사태 이후 깊은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계층과 지역과 성별과 세대 그리고 지지정당의 차이를 뛰어넘어 미래 과학한국의 비전을 또렷이 보여주며 나라의 발전을 이끌고 갈 어떤 메시아와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그는 가난한 농촌 출신이지만 복제와 줄기세포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업적을 나타낸 과학영웅일 뿐 아니라,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겐 조국이 있다”는 그의 발언이 표상하듯 진한 애국주의로 무장되어 있다. 더구나 여기에 전세계 난치병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라는 인류애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위인’이 아니고 무엇이랴?  

황우석 교수가 이렇게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것은 물론 그 자신의 업적과 자질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정부와 언론이 손을 맞잡고 이끌어 온 ‘황우석 영웅 만들기’의 결과 때문이다. 그는 원래 생명공학에서는 주변적 분야에 속하는 동물복제의 전문가였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초기에 그는 복제 소 ‘영롱이’의 성공으로 갑자기 생명공학의 스타로 떠올랐고, 심지어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 복제한 백두산 호랑이 새끼를 대통령이 북쪽에 선물할 계획(결국 실패하였지만)에 관여할 만큼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서는 박기영 보좌관과 정동영 장관 등 청와대와 정부 및 여당의 전폭적 지원 아래 배아줄기세포 분야로 그의 영역을 확장하여 마침내 한국의 생명공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세계에 떠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어떤 과학자를 국민영웅으로 만들려고 국가가 기획하고 개입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불행한 결과만을 낳았다. 옛 소련의 스탈린 치하에서 기존의 유전학을 비판하고 획득형질 유전과 이를 이용한 농업증산을 주장하여 ‘사회주의 과학’의 영웅으로 떠받들던 리센코, 북한에서 1960년대 초 원자물리학적 방법으로 경락의 존재를 증명했다고 주장하여 ‘주체과학’의 영웅으로 한때 칭송받았던 김봉한 등이 좋은 예이다. 이들은 모두 과학적 연구성과가 국가 개입에 의해 부당하게 부풀려져 과학계에서 제대로 검증받을 기회를 못가졌던 것이 치명적 문제였다. ‘영웅 만들기’의 폐해는 또한 특정한 과학자 내지 그의 분야에 국가의 연구자원이 집중되어 과학의 균형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큰 부작용을 초래한다.  

인위적인 ‘영웅 만들기’를 통해 과학을 키우겠다는 국가의 야심은 잘못된 것이다. 과학자 스스로도 과학계의 검증보다 국가의 지원을 통해 영웅이 되겠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과학에서는 위대한 발견 못지 않게 조작과 사기 논란도 종종 나타나는 것이 정상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처럼 온 나라를 뒤흔들지는 않는다. ‘영웅 만들기’는 과학과 국가의 잘못된 결합이고 결국 핵폭풍의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다.(김환석/국민대 교수·과학사회학)

 

 

 

 

***

현대사회의 모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종교와 과학의 충돌이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논란도 그런 충돌을 배경으로 삼아 나왔다. 종교와 과학은 진리에 이르는 방법에서 다르다. 종교는 믿음에 의지한다. 과학은 검증에 의존한다. 믿음이 종교가 의지하는 방법론이므로 경전에 계시된 진리를 반박하는 사실이 아무리 많이 쌓여도 그것들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검증에 의존하고 이론들 사이의 경쟁을 허용하므로 과학은 꾸준히 나아간다.

 

과학의 성취는 필연적으로 종교의 토대를 허물었다. 종교는 과학에 거세게 저항했지만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대한 종교재판 이후 과학적 지식에 의해 자신의 신조들이 하나씩 허물어지는 것을 바라보아야 했다. 불행하게도 과학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과학은 이 세상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자리를 줄곧 줄였다. 과학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 중심임을 보여 주었다. 이어 태양 또한 은하계의 뭇별 가운데 하나이고 다시 우리 은하 역시 수많은 은하계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음을 밝혀냈다.

 

반면에 종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세상만큼 중요한 존재며 그들의 영혼은 영원히 살아남는다고 안심시킨다. 과학의 성과들을 누리면서도 사람들이 결정적 순간엔 종교에 의지하는 것은 그래서 이상하지 않다.

 

이번 줄기세포 논란에도 사람의 왜소화가 포함되었다. 진화생물학은 모든 생명체가 첫 생명체의 후손이고 외양에서의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전자를 많이 공유하며 그런 뜻에서 혈연을 지녔음을 이론의 여지없이 밝혀냈다. 이런 발견은 사람은 다른 종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우리의 통념과 어긋난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구호로 흔히 포장되는 이런 통념은 모든 종교의 가장 근본적 신조다. 여기서 다시 종교와 과학은 부딪친다. 종교는 ‘인간의 존엄성’이 과학적 연구를 인도하는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은 그것이 환상임을 지적하면서 현대의 윤리는 과학적 사실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의 이런 주장은 과학적 연구를 인도할 윤리는 과학자들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필요한 지식들은 과학자들만이 지녔기 때문이다. 과학이 워낙 빠르게 발전하고 전문화가 가속되므로 윤리적 판단에 필요한 지식들을 일반 시민들이 지니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과학이 경쟁을 통해서 발전한다는 점이다. 검증을 통해서 이론들의 우열이 가려지므로 과학은 어느 분야보다도 경쟁이 치열하다. 자연히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내용이 허술한 연구나 이론은 이내 밀려난다. 반면에 종교는 경쟁을 거부한다. 배교나 이단을 허용하는 종교는 아직 나온 적이 없다. 10여 년 전 미국 생물학자들이 황 교수의 연구에 선행적인 배자분할 실험에 성공했을 때 교황청 기관지는 ‘광기의 터널로 들어서는’ 과학자들을 규제하라고 미국 정부에 요구했다.

 

역사를 살피면 우리는 권력이 잘못 작용하면 과학이 사악하게 쓰인다는 사실을 만난다. 나치 독일과 군국주의 일본의 생체실험이 대표적이다. 또 하나 교훈적인 사례는 공산주의 러시아에서 트로핌 리센코의 학설이 초래한 비극이다. 스탈린 시대의 농업생물학자인 리센코는 멘델의 법칙에 입각한 유전학설을 비판하며, 환경 조건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생물학적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자연과학마저 이데올로기의 잣대로 바라보던 스탈린 시대의 광풍(狂風)에 힘입어 “채소를 교육시킬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이 공식 이론으로서 지위를 차지했지만 이로 인한 농업 실패로 수많은 농민이 굶어죽었다. 권력이 개입해 이론 사이의 경쟁을 배제하고 특정 이론에 독점적 지위를 부여하면 이런 폐해가 생겨난다.

 

소비자의 이익을 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자유로운 시장에서 나오는 경쟁이다. 이런 이치는 과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종교 등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정부가 나서서 인간 줄기세포 연구에 관한 윤리적 규정을 만든다면 걱정스럽다. 어떤 윤리나 법도 과학의 빠른 발전을 따라갈 수 없으므로 그런 규정들은 윤리를 지키기보다는 과학의 발목을 잡는다. 그저 경쟁하게 하라. 기업가들이든, 과학자들이든.(복거일/소설가)

 

 

 

 

두 사람 모두 황우석 사건과 관련하여 국가 개입의 문제성을 지적하고 있지만, 초점은 약간 다르다. 김환석 교수가 "과학과 국가의 잘못된 결합"을 문제삼고 있다면, 복거일씨의 경우는 '국가권력의 개입' 자체에 잘못이 있음을 지적한다. 이유가 특이한데, 국가는 종교 등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라고(그런 연장선상에서라면 복거일의 본격적인 '종교비판론'을 기대해봄직하다! 더 나아가 지극히 종교 정향적인 미국식 정치 마인드에 대한 비판도!). 여하튼 나는 '인용'만 하며,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은 당신의 몫이다...  

06. 01. 09.

P.S. '리센코 어페어'에 대한 참고자료로 '맑스 코뮤날레'에서 발표됐던 논문 "혁명기의 러시아 과학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를 옮겨놓는다(복거일과는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다. 비록 '노동자-농민'이 이런 문제에서도 '해결사'가 되어줄 거란 전망에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필자는 김해민(노동자의 힘 회원)님이다.

리센코 사건
1936년, 소련의 과학기술계에서는 특별한 논문이 발표되었다. 모스크바의 레닌 농학아카데미에서 발표된 "유전학에서의 두경향"이라는 논문에서 리센코(T. D. Lysenko)는 환경적 조작과 접목에 의해 유전이 변형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당시 주류였던 멘델과 모건의 유전학을 반진화론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견해가 진정한 다윈주의에 기초한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그 발표는 과학기술계의 논쟁으로 끝나지 않았다. 1948년에 개최된 같은 회의 에서 우크라이나 농부의 아들인 리센코를 지지하는 과학자들은 멘델의 과학을 "반동적이면서 퇴폐적이다"고 규정하고 그들의 과학을 추종하는 자를 "소비에트 인민의 적이다"라고 공격하며 자신들의 학설을 사회주의 생물학 중 하나로 당이 공식적으로 채택해 줄 것을 요구했다. 당은 이를 승인함으로써 과학기술계의 논쟁은 일단락 되었지만 비극은 시작되었다. 이 여파로 유전학 과목은 폐강되고 관련 연구소는 폐쇄되었다. 과학기술자들 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당의 결정을 찬양하는 공개적인 '사상전향서(?)'를 쓰지 않은 사람은 내쫓기거나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당시 곡류의 기원에 관한 연구를 통해 현대 식물 육종학에 대한 기초를 세운 과학자 바빌로프도 이 과정에서 실각되고 볼가강 중류의 사하로프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그러나 스탈린 시대에 맹위를 떨치던 리센코주의도 분자생물학의 발전으로 인해 사라지는 운명에 처해 버렸다. 맑스주의 내에서도 리센코 학설은 '맑스주의와 정반대 되는 것' 혹은 '과학적 특성이 결코 없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아울러 소련의 사회주의 과학의 영향을 받은 영국의 급진과학운동은, 소련의 폐쇄적인 흐름과는 다르게 다양한 논의를 바탕으로 운동의 흐름을 형성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급진과학운동은 무려 10여 년 간의 소강상태에 빠져버렸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물론 단편적인 사건으로 혁명기 러시아의 과학기술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스탈린시기에 과학기술은 매우 큰 발전을 이룩한 것 또한 사실이다. 냉전이 살벌한 시기에도 미국의 과학기술자들은 소련의 과학기술 수준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건이 자본주의 과학기술의 우수성을 인정해주는 사건도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숙련노동자의 조직된 힘을 분쇄하기 위해 과학기술을 도입해 왔고, 기계에 의한 노동의 대체로 줄곧 노동자들을 소외시켜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혁명기 러시아에서 그것도 과학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소련에서 무엇 때문에 이러한 웃지 못할 사건이 발생하였고, 그것도 20년이나 지속되었을까?

1917년 혁명 후 볼셰비키 혁명 정부 앞에 놓인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레닌은 자국의 정세와 제국주의 국가들간의 전쟁에 휘말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독일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체결하여 연합군을 탈퇴하였다. 하지만 전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연합국측의 간섭전쟁과 국내 반-볼셰비키세력들에 의한 격렬한 내전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내전은 혁명을 더욱 힘들게 했다. 산업 생산량은 극도로 하락하였고, 농촌은 황폐화되었다. 이 시기 볼셰비키 정부는 소련의 낙후된 생산력 복구가 무엇보다 절실했다. 레닌은 생산력의 복구를 위해 내전동안 전시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산업경영권을 중앙집권화하고 자주적 '노동자 관리'기구를 강제 폐지시켜 버렸다. 또한 자본주의사회에서 발전된 과학기술 중에서 선진적인 부분 채택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과학적 관리 기법이라는 테일러 시스템을 도입시켰다. "근로인민 자신들에 의해 적절히 통제되고 현명하게 적용된다면 테일러시스템은 전 근로인민의 필요노동일을 훨씬 절감시키는 믿음직한 수단이 될 것이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른바 이 '소비에트 테일러시스템'은 스탈린 시대까지 이어졌다. 1921년 3월 제10차 전당대회에서 전시공산주의 정책을 완전히 폐지하였으나 노동부에서 차등임금제와 식량배급량 차별제, 노동카드와 성과급제 및 반-볼셰비키 성향의 부르주아 지식인과 기술자들을 중용하였다. 이들이 당과 국가의 여러 정책들을 주도하는 핵심적인 위치로 상승하게 되었고 이들은 대개 산업행정, 고등기술교육, 연구 기관, 기획기관에서 최고의 기술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의 전문성과 영향력을 근거로 정책 결정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려 하였고, 이러한 면들이 기술관료주의적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1924년 레닌이 죽은 후, 권력을 잡은 스탈린은 레닌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급격한 산업화를 주장하였다. 1929년에 스탈린은 집단농장화를 실시하고 대규모 산업화 정책에 착수하게 되었다. 스탈린 시대에는 과학을 생산력이라기보다는 상부구조인 이데올로기로 인식하였다. 모든 과학을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재편할 것을 요구하였고 과학과 철학 모두에 대한 당성의 우위를 강조하게 되었다. 부르주아 기술관료들은 공산주의 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붉은 전문가'로 교체되었다. 무엇보다도 스탈린은 급격한 산업화를 추진함과 동시에 형식상으로 남아 있던 산업의 집단적 관리 원칙과 노동자들의 복지를 위하는 노조의 마지막 권한을 모두 폐지해 버렸다. 혁명 이후 스탈린 시대까지 흘러온 이러한 사회적 관계들은 혁명기 러시아가 리센코주의를 받아들이게 한 것이었다. 레닌과 스탈린 모두 소련의 낙후된 생산력을 복원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급박한 과제로 다가왔다. 레닌은 과학을 생산력으로 주요하게 파악했고, 부르주아의 선진 과학을 수용해야 한다는 실용주의적 입장으로 나아간 것이다. 레닌의 이러한 생각은 이후 과학기술에서 자본주의적 이용만 제거하면 순수한 기술만 남아 이를 사회주의적으로 이용하면 된다는 기술 중립론적 시각으로 비판받고 있다. 스탈린의 경우는 좀더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낙후된 경제의 복원과 반-볼셰비키 성향의 기술관료의 관료주의 폐지라는 과제를 안고 있었고, 당시 거의 쿠데타적 권력 쟁탈과정은 스탈린으로 하여금 과학을 상부구조인 이데올로기로 보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부터 출발해야 하는가?
스탈린처럼 과학기술을 이데올로기로 보는 관점은 과학기술과 사회관계를 잘 설명해 주기는 하지만 과학기술의 내재적 발전 경향을 지나치게 무시할 수 있기 때문에 올바르지 않다. 그리고 과학기술은 단지 누가 이용할 것인가라는 문제로도 환원되지 않는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아무리 생산수단이 사회적 소유로 되었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의 과학기술혁명이 수준 높은 생산력으로 되어 인민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인간적인 것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은 과학기술 생산과정/이용과정(노동과정)속에서 주체와의 관계와 사회관계속에서 판단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즉 과학기술에 있어서도 소유관계의 문제와 아울러 과학기술 생산과정에서의 기술적 조직적 생산관계와 개발 생산단위들 간의 경제운영관계의 문제 그리고 사회관계의 문제를 복합적으로 사고 해야한다. 결국, 당시 급박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공산당의 잘못된 과학기술에 대한 입장은 소유문제가 해결된 사회주의국가에서도 과학기술을 왜곡시켰던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혁명기 러시아라면 무엇을 했어야 했는가? 어떻게 과학기술에 대한 잘못된 관점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을까? 맑스는 이러한 질문에 한가지 해답을 제시한 바 있다. 맑스에 따르면 진리를 파악하는 자는 관념적 몽상가들이나 학자가 아니라 가장 실천적인 계급, 즉 이론적인 수준에 한정되지 않고 실천을 통해서 실천적 수준에서 진실을 증명코자 하는 계급, 즉 대다수 노동자 계급과 그 노동자 전위세력으로 파악하였다. 맑스는 인식에 있어 실천의 중요성, 그리고 가장 실천적인 계급적 관점을 명확하게 하였다. 그렇다면 한번 상상해 보자. 레닌이 자주적 노동자관리기구를 폐지시키지 않고, 노동자-농민의 자주성을 고양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진행했다면, 그리고 스탈린이 그나마 남아있던 노동자들의 마지막 자주권을 박탈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노동자-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주장하고, 개선해 나갈 수 있는 민주적 의사 통로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비록 많은 문제들이 있을 수 있지만 실천적 주체인 노동자들은 테일러 주의를 사회주의에 적용하면서 테일러 주의의 문제점을 실질적으로 인식하고 폐기시키지 않았을까? 그래서 새롭게 사회주의적 노동과정을 구성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농민들은 리센코주의의 과학을 집단 농장에 적용하면서 리센코주의의 진실성을 적어도 20년보다는 빨리 확인할 수 있지 않았을까?(강조는 나의 것) 

  

P.S.2. 이너파벨님이 알려주셨는데, 하인리히 야곱의 <빵의 역사>(우물이있는집, 2005)에도 리센코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아마도 '러시아의 빵 - 1917년'이란 절에서인 모양이다. 재인용하자면, 가혹한 기후를 견뎌낼 수 있는 최상의 품종의 밀을 찾아내 육종을 통해 종자로 공급하려는 계획을 가진 바빌로프에게 리센코의 제자가 이렇게 말한다: 

"식물학은 시간이 남아돌지 모르지. 그러나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우리는 여기, 러시아에서 혁명 과업을 완수했다. 거만하게도 인종적 특성과 불변하는 성질을 내세우는 멘델의 과학 따위는 우리에게 필요치 않다.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자다. 그렇지 않은가? 마르크스주의자라면 살아있는 생명체를 변화시키는데 몇 세대가 걸린다고 믿을 수 없다. 다윈과 마르크스에 의하면 생명체를 변화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환경이다. 새로운 조건에서는 새로운 품종이 만들어질 수 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이미 인간을 통해 관찰한 바 있다. 과연 식물이 인간보다 더 반동적인지 살펴보자." 그러자 바빌로프가 응수한다: "만일 환경만으로 생물학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면 아마 리센코는 아무 씨앗이나 집어들고 시베리아의 툰드라지대로 가지고가서 심은 뒤 씨앗이 얼지 않도록 평원 전체를 데워야 할 것이다."

그렇다, 분명 새로운 조건에서는 새로운 품종이 만들어질 수 있다. 새로운 물적 토대는 새로운 인간을 형성해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무엇이 그 새로운 조건이며 그것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조건 없이 가능하지 않은) '새로운 인간'은 어디서 굴러떨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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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1-09 23:17   좋아요 0 | URL

솔직히 전 황우석 사태 보다는 아직도 음모론 가지고 끝까지 황우석을 옹호하는

"황빠"들의 정신구조가 더 궁금합니다.


이네파벨 2006-01-10 10:14   좋아요 0 | URL
예전에 제가 번역한 책 <빵의 역사>에서 바빌로프와 리센코의 일화가 나옵니다. 반가운 마음에 책장을 들추어보았어요.
가혹한 기후를 견뎌낼 수 있는 최상의 품종의 밀을 찾아내 육종을 통해 종자로 공급하려는 계획을 가진 바빌로프에게 리센코의 제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식물학은 시간이 남아돌지 모르지. 그러나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우리는 여기, 러시아에서 혁명 과업을 완수했다. 거만하게도 인종적 특성과 불변하는 성질을 내세우는 멘델의 과학 따위는 우리에게 필요치 않다.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자다. 그렇지 않은가? 마르크스주의자라면 살아있는 생명체를 변화시키는데 몇 세대가 걸린다고 믿을 수 없다. 다윈과 마르크스에 의하면 생명체를 변화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환경이다. 새로운 조건에서는 새로운 품종이 만들어질 수 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이미 인간을 통해 관찰한 바 있다. 과연 식물이 인간보다 더 반동적인지 살펴보자."
그러지 바빌로프는 이렇게 응수합니다.
"만일 환경만으로 생물학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면 아마 리센코는 아무 씨앗이나 집어들고 시베리아의 툰드라지대로 가지고가서 심은 뒤 씨앗이 얼지 않도록 평원 전체를 데워야 할 것이다."

역시...nature vs. nurture의 해묵은 논쟁이군요........

과학과 정치...정치와 과학...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결코 뗄레야 뗄 수 없는 한 쌍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무섭고도 슬프게 느껴지네요....
(웰즈의 타임머신에 나오는...그 지하인과 지상인의 끔찍한 공존(상호의존)관계에 비유한다면 억지일까요?)

로쟈 2006-01-10 10:58   좋아요 0 | URL
유익한 정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데, 저로선 nature vs. nurture의 해묵은 논쟁이라기보다는 과학 대 유사-과학의 해묵은 논쟁 같습니다. nature주의자나 nurture주의자나 토대는 '과학'이니까요...
 

아침에 전철을 타면서 이번주 <씨네21>을 집어들었고("포르노 혁명은 어떻게 시작됐나"라는 기사제목도 눈에 띄고 해서),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끄트머리쯤에서 씨네 블로그 소식란에 '타르코프스키가 묻혀 있는 묘지에 다녀오다'(http://blog.cine21.com/spotkanie)를 읽었다. 내용은 대략  "1986년 12월 29일,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가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2005년 12월 28일,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를 추모하러 레지던스 감독들 셋과 그의 친구들이 파리 근교에 있는 묘지에 다녀왔다. 파리에 러시아처럼 함박눈이 쏟아지는 날이었다."라는 것. "기념일이니 많은 추모객이 와 있고 콘서트도 열릴 예정이라는 정보에 쉽게 무덤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묘지는 너무 조용했다"고.

일행은 20주년인 줄 알고 갔지만, 계산대로 20주년이 되는 건 올 2006년 12월 29일이다. 그리고 러시아식으로 하자면, 지난 7일이 크리스마스였으니까 내일 모레가 그의 사망 19주기가 될 듯하다. 망명감독이었던 만큼 그가 러시아 밖에 묻혀 있다는 건 자연스럽지만 그가 파리 근교에 묻혀 있는지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한두 달 전에 올해가 사망 20주년이 된다는 걸 페이퍼에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기회가 닿은 김에 그에 대하 몇 가지 이미지들을 띄워놓는다(당연한 일이지만, 타르코프스키에 대한 글을 한편 쓰는 것이 올해의 목표 중 하나이다). 먼저 블로거님이 올려놓은 묘지 사진들 중 두 장(원경과 근경).

그의 묘비에 생몰연대와 함께 기록돼 있는 건 러시아어로 '천사를 본 사람에게 (바침)'란 뜻이다. 말하자면, '천사를 본 사람'이 그의 묘비명이 되겠다. 묘비 옆에 놓여 있는 건 러시아 정교의 상징물인 성모상(이콘화)이다. 아직 시들지 않은 붉은 카네이션(?)이 화병에 꽂혀 있는데, 마음으로나마 꽃송이를 더 보탠다.

'천사를 본 사람'이라고 돼 있지만, 사실 타르코프스키 자신을 천사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다. 독일 감독 빈 벤더스가 그런 경우이다. 페터 한트케의 대사 “아이가 아이였을 때, 이런 질문을 하던 때가 있었다. 왜 나는 네가 아니라 나인가?"로 시작되는 그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1987; 영어제목은 <욕망의 날개>)의 마지막 장면에는 이전에 천사였던 오즈 야스지로, 프랑수아 트뤼포,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에게 바친다는 자막이 엔드타이틀로 들어가 있다(내가 그 영화를 제일 처음 본 건 아주 오랜 전 남산 독일문화원에서였다. 미어터지는 관객들 때문에 끼니도 굶었던 그날 나는 줄곧 서서 영어자막의 이 '흑백' 영화를 봐야했다. 그 전에 보았던 <파리, 텍사스>가 아니었다면 그런 수고를 무릅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 벤더스 영화제가 연초부터 개최되어 진행중이기도 하다(일시 2006년 1월 3일(화)~2006년 1월 10일(화) I 장소 서울아트시네마 I 상영작 <베를린 천사의 시><랜드 오브 플렌티> 등 5편). 소식을 전한 기자는 70년대 대표작들인 <페널티킥을 맞이한 골키퍼의 불안><도시의 앨리스><길 위의 왕들>이 빠져 있어서 아쉽다고 했는데, 그 점은 나도 아쉽다. <베를린 천사의 시> 이후로 벤더스의 영화는 내게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아무려나 이 참에 타르코프스키의 필모그라피를 한번 따라가본다(이미지들은 러시아의 타르코프스키 사이트에서 가져왔다).

1. 증기롤러와 바이올린(1960, 46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모스크바영화학교 졸업작품이고 뉴욕학생영화제(1961)에서 1등상을 수상했다. 나는 화질이 안 좋은 복사본으로 두어 차례 영화를 봤었는데, 길을 닦는 증기롤러 기사와 바이올린 레슨을 받는 한 어린 학생간의 짧은 만남을 줄거리로 한 영화.

2. 이반의 어린시절(1962, 96분)

타르코프스키의 공식적인 '데뷔작'. V. 보고볼로프의 소설 <이반>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2차 세계대전이 배경이다. 장르상 '전쟁영화'이면서 '비극적 서사시'로 분류되기도 한다. 62년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장상 수상작이고, 철학자 사르트르가 '초현실적 리얼리즘' 영화로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나는 좋은 화질과 나쁜 화질로 두 번쯤 봤는데, 장편영화 중 유일하게 소장하고 있지 않다.

3. 안드레이 루블료프(1966, 185분)

장르는 사극, 즉 역사드라마인데, 제목 그대로 러시아의 전설적인 성상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학교 동기인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와 함께 각본을 썼는데, 루블료프의 전기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만큼 몇 개의 일화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타르코프스키의 '야심작'이면서 그의 영화로선 가장 방대한 스케일을 자랑하지만 권력과의 마찰을 빚기 시작하면서 이후 감독으로서의 험난한 여정을 예고하게 된 작품.  

4. 솔라리스(1972, 169분)

알려진 바대로 스타니슬라프 렘의 SF소설을 원작을 한 영화(렘은 영화에 불만을 표시했었다. 사실 타르코프스키는 'SF'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몇 년 전에 스티븐 소더버그가 리메이크함으로써 다시금 관심을 끈 바 있다. 1972년 칸느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

5. 거울(1975, 108분)

타르코프스키 자신의 어머니에게 바쳐진 가장 '자전적인' 영화. 그의 노모가 직접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사진 이미지는 도입부에서 전쟁터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던 젊은 어머니의 모습. 타르코프스키의 아버지 '아르세니'는 러시아의 저명한 시인이며 <거울>과 <향수> 등에 나오는 시들은 모두 아르세니 타르코프스키의 시이다.

6. 잠입자(1979, 163분)

타르코프스키가  러시아에서 찍은 마지막 영화. 러시아의 대표적 SF작가인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하지만, 역시나 영화의 방점은 'SF'와 무관하다. 1982년 칸느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작. 이미지는 영화 속 주인공, '잠입자' 혹은 '안내인'의 모습.  

7. 향수(1983, 127분)

이탈리아의 한 온천을 배경을 한 영화이며, 1980년대 서구 평단에 '타르코프스키 르네상스'를 가져온 작품. '80년대 국내에서 타르코프스키가 '전설'로만 회자될 때 가장 자주 들먹여지던 작품이 이 <노스텔지아>와 유작인 <희생>이었다. 주연을 맡은 배우 올렉 얀코프스키는 최근까지도 현역 배우로서 영화를 찍고 있다. 이 영화로 타르코프스키는 로베르 브레송과 함께 칸느영화제에서 감독상을 공동 수상했다.

8. 희생(1986, 153분)

잉마르 베르이만의 주선으로 스웨덴에서 만든 타르코프스키의 유작.  영화를 찍을 당시 그는 암투병중이었으며, 그는 이 영화를 자신의 아들에게 바친다. 국내에는 1995년에 처음 개봉되어 예상'밖'의 관객들을 동원하기도 했었다(그리고 작년 봄에는 이를 기념하여 <노스텔지아>와 함께 재개봉되기도 했었다). 1986년 제39회 칸느 영화제에서 유일무이하게 그랑프리, 예술 공헌상, 기술상, 국제 영화 비평가 협회상 등 4개 부문 동시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작품. 곧 타르코프스키는 영화예술의 '신화'가 되었다. 여러 번 영화를 봤지만, 위의 이미지는 기억에 없다(어찌된 것인지?). 흔히 알려진 런닝타임(143분)보다 10분 더 긴 것과 관련돼 있는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미지는 아래와 같은 것이다.

영화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는 그냥 멋쩍음을 덜기 위해서 집어넣은 것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물론 다른 자리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타르코프스키의 장편 영화들은 5작품 '컬렉션'을 비롯해서 모두 출시돼 있다. 그리고 <봉인된 시간>과 <순교일기>도 아쉬운 대로 소개돼 있고. 하지만, 본격적인 영화론이 할 만한 책이 김용규의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이론과 실천, 2004)밖에 없다는 건 유감이다. 전문가의 글로는 <세계영화작가론2>(이론과실천, 1994)에 실린 정성일의 타르코프스키론이 '전설'로 회자되고 있는 정도이다(언젠가 '러시아영화감상'이란 수업을 할 때 리포트를 받으면, 타르코프스키론의 1/3 정도는 이 글을 베껴쓴 것이었다). 타르코프스키에게 빚진 바 없는 이들이라면 상관없는 얘기이지만, 그게 아닌 이들이라면 분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본격적인 감독론은 아니지만, 타르코프스키를 부분적으로 다룬 책들은 여럿이다. '클라시커 50'의 <영화감독>(해냄, 2004)에서 개괄적인 소개를 참조할 수 있고, '시사인물사전' <쾌락의 독재>(인물과사상사, 2000)에도 타르코프스키가 항목으로 포함돼 있다. 이윤영의 <영화, 피그말리온의 꿈>(문학과지성사, 1999), 조광제의 <인간을 넘어선 영화예술>(동녘, 2000), 송희복의 <영화, 뮤즈를 만나다>(문예출판사, 1999) 등에도 타르코프스키론이 실려 있다(이윤영의 글 정도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가장 최근에 나온 책들로는 한창호의 <영화, 그림 속을 걷고 싶다>(돌베개, 2005)와 김정란의 <빛은 사방에 있다>(한얼미디어, 2005)가 타르코프스키에 관한 장을 포함하고 있다. 후자에 실린 '타르코프스키를 만나다’에서는 저자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과 상상 속에서 나눈 대화를 담고 있다고 한다(이 두 권의 책은 아직 읽지 못했다)...  

 

 

 

 

06. 0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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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05-01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가져가요. 필요해서. 그림이 안보여요. 영화포스터들.

로쟈 2007-05-01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새 다운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