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전철을 타고 오면서 작년 11월말 한겨레 대담기사로 '송건호언론상에 강준만 교수를 선정한 이유'를 읽었다. 언젠가 프린트한 걸 가방에 계속 넣고만 다니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사실은 바삐 전철에 오르느라 매점에서 조간신문을 살 시간이 없었다) 읽은 것인데, 거의 두달 전 기사이지만 '시사적인' 내용이므로 귀가하기 전에 인용/정리해두려 한다. 이런 기사도 저작권 보호를 받는 것이므로 전문을 퍼오진 않고 부분 인용/발췌를 하면서(사실 이런 '인용'을 가장 잘,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강준만 교수이다) 드문드문 몇 마디 덧붙이고 하겠다. 대담은 '강준만 입문'으로서 아주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16년 동안 122권의 책을 낸 '우리시대의 볼테르'에 대해서 이번에 처음 상이 주어졌다면 과소한 듯도 한데, 이 기회에 '강준만의 시대'를 잠시 돌이켜보고 싶다(나는 강준만을 지지하지 않을 때라도 그의 작업만은 적극 지지한다). 비록 내가 적격자는 아니더라도.

나는 단행본으로 나온 그의 책을 한두 권 정도밖에 갖고 있지 않으며 다만 "성역과 금기에 도전한다"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인물과 사상>만은 여러 권 사서 읽은 적이 있다. 그 자신은 '국민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고 하지만, 내가 안티-조선에 동참하게 된 건 순전히 그의 '운동'  덕분이었다. 더불어, 아마도 그와 '인물과 사상'의 주도적인 문제제기에 따라 '문학권력'과 '주례사비평'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읽어보기도 했다. 여러 모로 도움을 받은 셈이다. 이건 겸손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제목으로 붙인 "겸손, 겸손, 겸손 이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요?"는 그의 수상소감문이며, 나는 과중한 겸손을 오히려 경계하는 사람이기에. 기사/대담의 중반으로 건너뛰겠다(기자와 강교수의 주거니받거니이다).

 

 

 


 

-언론학자로서도 훌륭하지만, 사회과학자, 정치평론가, 행동가로서도 폭넓게 활동했는데, 스스로를 언론인으로 생각하나?

=언론인까지야. 대중적 글쓰기하는 언론학자지. 나를 언론인라고 하면 과찬이고, 전업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물론 언론인 역할 하면 좋겠지.(*언론학자 강준만의 대표작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10년쯤 전에 보던 책들은 <언론플레이>나 <대중문화의 겉과 속> 같은 책들이었다. 과조교 시절이었는데, 과방에는 언론고시생들이 읽던 책들이 나뒹굴고는 했고 '강준만'도 그런 책들에 속했다. 고시에 뜻이 없었던 나는 그냥 훑어보는 걸로 충분했다.)   

-안티조선의 주요 활동가였는데 최근 언론상황에 대해서는 별로 발언하지 않는 것 같다. 최근 한 글에서 조중동의 문제에 대해서는 성실함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는데.

=조중동에 대한 생각은 같은데, 싸운 뒤에 이유를 생각해봤다. 내 생각은 국민이 호응을 안했는데, 그것은 강고한 ‘정치·경제 분리주의’ 때문이다(*나로선 적극 '호응'했지만, 원래 조선일보의 독자가 아니었으므로 실상 안티-조선일보 운동에 내가 보태준 건 별로 없다. 나는 주로 한겨레와 한국일보를 본다. 보다 정확하게는 김훈과 고종석의 독자였다. 두 지면의 사설들에 동의하는 건 아니므로. 강준만 교수는 요즘 한국일보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기도 하다. 어쨌거나 언론학자 강준만은 한국사회에 조선일보의 해악을 폭로하는 데 가장 앞장섰던 인물이다. 그맘때쯤 나는 강준만이란 이름과 다시 만났고, <인물과 사상>의 비주류 독자가 됐다. 매번 사읽은 건 아니었으니까).

 

 

 


 

유권자로서는 민주세력 찍지만, 신문은 안 바꾼다는 것이다. 어떤 민주 인사가 공직 들어서면 재산 공개했는데, 왜 돈이 그렇게 많은가(*다른 말로 하면, 좌파는 부유해도 되는가, 이다. 이건 일종의 '수행적 모순'이다. 기사가 달린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는 일부 노조위원장들의 사례도 마찬가지이다. 네그리의 말대로, 혁명의 원천은 '가난'이고 '빈곤'이다. 결코 '의식'이 아니다. '부자 아빠'에의 유혹과 '자발적 가난' 사이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정치와 경제를 분리한다는 것을 감안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또 주류 영합주의가 강하다. 내 삶의 경쟁력에 대한 판단이 정치적 선택과 다르다. 주류 매체고 영향력 있다는 그 판단이 크다. 이것이 가장 세고 주류라는 것이 한국인 특유의 경쟁력주의를 부추긴다. 기러기 아빠가 일반 국민뿐 아니라, 개혁·진보 인사에서도 있다. 진정성 갖고 운동해도 신문 안 바꿨다.

이제 경제를 치고 들어가야 한다. 이재현씨가 어느 글에서 “진보적 진영에서 문화운동하고 그러면서 경제를 중시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정확한 말이다. 경제는 감시 대상일 뿐이고 스스로 ‘경제 플레이어’라고 생각지 않는다. <한겨레>같은 언론도 재벌들로부터 독립해 신문사를 꾸려가고 독립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것에 치중한다. 한국 경제를 더 높은 어디로 가져가야 하는지 총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일탈·비리만 다루지 주도적 플레이 안 한다. 그러면 영원히 조중동에게 깨진다. 엉거주춤하지 말고 분명히 해야 한다. 다수 국민이 어리석은 게 아니라, 경제적으로 보수적이다(*때문에, 아직도 국민의 '어리석음'이나 탓하는 이들을 나로선 신뢰할 수 없다).  

-최근의 신문법이 시행됐고,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신문발전위원회, 신문유통원이 활동에 들어갔다. 이런 기구들이 신문시장 정상화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여러 가지로 불만족스럽지만, 기대가 있다. 이런 기구들로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에는 의문이 있다. 왜냐면 한국 독자들이 가진 묘한 체질이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광신도 노무현 광신도가 <조선일보>를 본다. 그런데 한국적 상황에서 합리주의다. 왜? 노가 개혁한다고 나서도 주변 핵심 인사들의 재산 규모가 역대 정권 비해 적지 않았다. 경제적인 문제는 보수고 진보고 다르지 않았다. 중요한 문제다. 사람들은 경제가 중심이고 가외로 개혁을 이야기한다.

진보적 입장의 정통 좌파들은 자본주의 경제에 대해 신자유주의라고 싸잡아 비판한다. 한편으로 노 정부 요직 인사들도 자기 재산 다 챙기고, 국민들은 신문에서 아이들 논술과외 서비스도 받아야 하고, 부동산·증권 투자 정보도 얻어야 하고, 각종 광고도 봐야 한다. 그런 신문이 유리하다. 경제는 이렇게 간다.(*그러니까 생각도 거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비판'론'이 아니라 '현실'에서부터.) 앞서 안티조선 운동 하면서 모멸을 가하는 공격도 해봤다. 소용없었다. 북·서유럽 복지 국가 모델? 나 죽을 때까지 안 된다고 본다. 자원 없고 수출로 사는 나라를 어떻게 북유럽 나라들에 비할 것인가?

 

 


 

 

우리 나라 사람 경제적 보수성을 낮은 곳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택시 타보면 운전기사들이 결코 무식하지 않다. 물론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도 많지만, 지혜를 갖고 있다. 장하준 교수 글에 대해 여러 말 많지만, 그 정도 글을 갖고 이야기해야 한다. <한겨레>가 장하준 정도의 시각을 받아들인 것만 해도 대단하다(*그런 식으로 대단한 건 창비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을 아는 체하는 인문·사회학도들이 경제를 모른다. 경제에 대해 뭘 알아야 국민들 마음 속으로 치고 들어갈 수 있다.(*경제에 대한 무관심에서 나도 예외는 아니지만, 그건 대개 '실물경제'에 대한 무관심이고 갈브레이스의 <불확실성의 시대>에서부터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에 이르기까지 읽느라고는 읽었다. 가정경제에 도움이 안 됐을 뿐이다.) 

-<한겨레>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아직 창간 정신을 잊지 않는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때 초심을 갖고 있는 게 문제다. 창간 당시는 기적이고 감동이었다. 독재정권에게 대항했던 이들이 자체 매체 가진 감격이었다. 지금은 민주적인 정권이 둘이나 나왔는데, <한겨레>가 비판을 넘어서서 의제를 스스로 만들고 끌어가지 못하고 있다. 과거 저항세력이 가졌던 견제·감시·비판 수준이다. 반면 조중동은 의제 설정을 멋대로 하지만 한국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말하고 독자들은 익숙해 있다.

국가보안법 처리 문제 때 경호권 발동 문제가 핵심이었다고 본다. 유시민 의원·리영희 선생도 경호권 발동 반대했고, 열린당 그것을 망설였다. 당시 <한겨레>는 때묻히지 않으려고 원론 수준으로만 얘기했는데, 너무 무책임한 것이다. <한겨레>가 경호권 발동에 대해서도 더 구체적으로 된다, 안 된다는 이야기 마당을 펼쳤어야 했다. 경호권 발동 안 된다는 리영희 선생 얘기도 싣고, 또 예외적으로 경호권 발동해서 보안법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다뤘어야 한다. 기사로 다룰 수 있고, 나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야 고민하는 사람들이 그 문제를 정리할 수 있었다. 유시민 의원은 다 끝나고 국회 사망선고하면 뭐하나? 한겨레가 썼으면 여야가 심각히 고려했을 것이다. <한겨레>는 고급지로서 어젠다에 대한 영향력이 있다. 전술·방식의 차이는 얼마든지 다룰 수 있다.

 

 

 

 


국가보안법 말고 다른 것에도 적극성이 없다. 진보세력의 문제점 안 다룬다. 조중동 따라서만 조금 다룬다. 그러다 보니 어젠다를 다 넘겨준다. 정권 주류가 비주류적으로 일관하듯 <한겨레>도 그런다. 나는 그걸 아웃사이더 체질이라고 본다. 아웃사이더는 고귀하다. 권력·부에 욕심 없고, 옳은 소리하고 저항하고 감시·견제한다. 그러나 인사이더는 집단을 어디론가 끌고가면서 궂은일, 더러운일 하는 것이다. 아웃사이더는 욕할 것 많지만, 인사이더는 어렵고 욕먹을 일이 많다. 이해가 상충하는 경우 인사이더는 책임져야 한다. 아웃사이더는 휘말리지 않고 옳고 아름다운 이야기만 한다. 메이저로서 아웃사이더 하면 좋겠지만, 조중동 70%가 인사이더 하는데, 마이너만 아웃사이더 한다? 결단이 필요하다.

정파성을 강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노무현 비판도 더 하고, 개혁진보세력을 더 세게 비판하고, 적극적으로 의제를 만들어 가야 한다. 기사 쓸 때는 진보세력과의 유대도 끊어야 한다.(*2000년부터 격월로 간행되던 <아웃사이더>가 결국 폐간됐고, 나에겐 <다시 아웃사이더를 위하여>란 인터뷰집 두 권만이 남았다. 갖고 있는 책인 줄도 모르고 2,000원 떨이판매 하길래 또 산 것. 어쨌거나 '고귀한 아웃사이더'들이 많아지면 좋겠지만, 정의상 '아웃사이더'는 '소수'이며, 세상을 바꾸기엔 역부족이다. 해서, 보다 더 많아져야 할 것은 '인사이드 아웃사이더'가 아닐까 싶다. 자신도 이 진흙탕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의식 없이 목소리를 높이는 건 기만이다.)     

-최근 칼럼에서 신문산업이 지식산업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무슨 뜻인가?

=신문시장은 지금 조중동이 문제가 아니다. 조선·동아는 그래봐야 거대자본의 소유는 아니다. 그런데 앞으로 인터넷 언론 기업 성장하고 통신업체 중심으로 매체 융합 나타나면 엄청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이를테면 한나라 집권하면 케이비에스2·엠비시 민영화 안 할 것 같나? 신문이 살아야 민주주의가 산다. 루퍼트 머독 식의 거대한 미디어그룹이 나오면 현재의 조중동보다 민주주의에 더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아무리 당파적이니 편파적이니 해도 신문이 살아남아야 한다. 살 방법은 지식인 전통을 살리는 것이다. 아직 기자에 대한 신화가 있다. 그것을 살려서 지식 산업쪽으로 힘을 펼쳐야 한다. 거대 기업들속에 편입되면 절대 안 된다. 비교 우위는 지식 산업인데, 신문업계 선두주자인 조중동은 정권 죽이기에 몰두하고 있으니 큰 일이다. 제 무덤을 파고 있다.

 

 

 


 

-엑스파일 사건으로 이건희·홍석현에 대한 수사가 진행중이다. 최근 책 <이건희 시대>에서 삼성의 문제에 대해 평소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벼락공부하지 않으려면?

=한국 사회에 ‘홍수민주주의’가 있다. 지난 민주당 분당에 민주당의 책임만 있나? 삼성에 대해서도 그렇다. 문제가 있으면 평소에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평소에 잘못된 것을 잘 눈감아 주다가 건수 생기면 국민 모두 짱돌 하나씩 들고 나선다. 한꺼번에 쓸어버리고 처리하는 홍수식이 화끈한 맛은 있다. 그런데 홍수 났을 때 사람들이 신중하게 하겠나. 우격다짐식이다. 아무리 우리 체질이어도 이제 와서 삼성만 죽일 놈이라고 하지 말고 우리도 공부해야 한다. 평소에 대학 총장들도 삼성 포함한 재벌 돈을 끌어와야 한다. 재벌 은전 받는 것이다. 삼성의 문제를 평소에 이야기하면 문제가 덜 할 텐데, 이벤트성이 강하다. 한 번 걸리면 홍수 맛좀 봐야 한다는 쏠림이 강하다.(*이 '홍수민주주의'에 대한 지적은 예리하며 유익하다. '한국의 민주주의' 교과서에 들어갈 만한 항목이다.) 

-이번 사건에서 보면 <중앙일보>는 또다른 삼성이자, 언론계의 실력자다.

=<중앙일보>가 조·동에 비해 개혁세력으로부터 덜 얻어맞는다. 유시민도 조·동은 독극물, <중앙>은 불량식품이라고 했던가? 남북문제에서 비교적 자본의 합리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조·동은 자본의 합리성도 없이 생래적 거부감으로 접근했다. 한국사회에서 민족문제 다루면서 자본의 위험이 가려졌는데, 사실은 운동권도 그렇지만 민족문제와 자본문제가 쌍벽이다. 중앙의 잘못이 제대로 부각이 안 되고 있다. 조·동이 중앙을 키운 셈이다. 아마 조동이 남북문제 시각 바꾸면 중앙 입지가 위축될 수 있겠다.

-인물과 사상의 중단과 인터넷 시대와 무슨 관계가 있나? 휴대전화도 쓰지 않는데?

=최근 <한겨레21>에 휴대전화 관련 글을 썼는데, 일종의 균형잡기 지적이었다. 휴대전화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지 않다. 오히려 자본에 친화적이다. 새 기술에 대한 거부감은 자본주의를 보는 시각과 관련 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고 대중문화 자체를 좋아한다. 딴따라 끼도 있다. 영화도 엄청 좋아한다.

 

 

 

 


-전북 전주에 살고 전북대 교수를 하고 있다. 지방이라는 것은 언론사도 그렇고 한국 사회의 또다른 문제라고 했는데?

=내부 식민지이론을 믿는다. 여기는 식민지 체제인데, 열이 나지 않는가? 서울서 국회의원하는 지방의 엘리트 계층이 여기 사람인가? 여기를 대변하는가? 여기 사는가? 아이들이 여기 있나? 다만 여기 근거로 제 입신양명하는 것이다. 이 신문 제목 좀 봐라. 지역 언론이 정말 이러면 안 된다. (전북 지역의 신문 두 개를 보이며) “노대통령 전북홀대 심각” “전북 홀대론 확산 분노” 언론은 이런 보도 좀 하지 말고, 중앙정부는 지역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이 지역 엘리트들이 이런 문제 생각하나? 인구가 계속 줄어든다. 60년대 250만명이 넘었는데, 최근 190만명선이 무너졌다. 내가 처음에 전북대 와서 지역 문제 갖고 혈압 좀 올렸다. 그런데 나만 성격 이상한 놈으로 찍혔다. 가만 보니 이 곳 사람들에게는 체념의 지혜가 있었다. 괜한 소리 했다가는 “억울하면 출세해라” “서울 못 가서 배 아파서 그러냐” 그런다. 최근에 지역 신문 발전기금 나눠주는 것도 그렇다. 지방 언론사 사주가 토호라고 해서 매우 엄격한 기준 적용해 특정 지역 언론이 집중 지원받았다. 그런데 토호와 재벌이 다른가? 재벌은 선진적이라서 좋고, 토호는 비리 복마전이라서 나쁜가? 재벌처럼 토호도 장단점이 있다. 그런데 지역기업이 잘 되면 악질로 본다. 그 시각의 이중성을 지적하고 싶다.

좋은 지역 신문은 경제력에 달렸다. 어느 지역에는 <한겨레>만한 매출을 올리는 신문사가 있고, 대부분 다른 지역에는 그런 신문사가 없다. 기업의 건전성은 경제력에 달렸다. 이렇게 기준 만들다 보니 지원이 일부 지역에 몰렸다. 사람도 같다. 빈곤층을 볼 때 게으르고 못난 사람이라고 봐야 하나. 구조적인 원인이 있는 것이다. 양면을 봐야 한다. 지방을 썩어빠진 것으로만 보는데, 그렇지 않다. 이런 얘기하면 지방에 오래 있어 물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지방대 교수들도 지방언론사를 욕한다. 그리고 지방대에서 좋은 학생은 다 서울로 편입가고 교수도 서울로 떠난다. 지금은 무조건 서울에 있는 것이 경쟁력이다. 안면 몰수하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 지역안배는 안 된다고 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지역 안배가 지역 균형발전 정책이다.

-지역을 살리기 위해 균형발전 정책, 행정도시, 기업도시, 공기업 이전 추진중이다.

=노 정부가 요만큼 지역 균형발전 하는 기미 보이더니 수도권을 풀었다. 지방에 공기업 이전 계획 발표하고 수도권에 공장 신·증설 허용한 것은 지방에 어음주고 수도권에 현찰준 꼴이다. 균형발전한다고 하면서 그렇게 하나?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지역 균형발전 정책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런데 서울쪽은 금방 효과가 나타나는 신도시, 공장 신·증설 풀어줬다. 갑갑하다. 인구가 아무리 수도권에 몰려도 아직 지방이 다수다. 전북 국회의원들은 서울서 아이들 교육시키고 또 본국(?) 미국으로 유학 보낸다. 지방은 묘한 이중 식민지 구조가 돼 있다. 이런 이야기하면 그러면 당신 애는 공부 잘 해도 지방대 보내겠냐고 말한다.

-서울대 문제 책도 쓰고 해법 제시했는데, 잘 바뀌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은 국공립대 통합안을 제시했는데?

=국공립대 통합은 정말 좋은 안인데, 민주노동당 집권해야 된다. 손호철 교수가 민주노동당 쓴소리 강연 갔다가 이래서는 집권 못한다고 호통쳤다고 한다. 진보진영 쓴소리 경청 했는데, 손 교수가 2010년대에 집권 못한다고 그랬다. <한겨레 21>하고 서울대 문제 갖고 토론도 했는데, 서울대 개혁 얘기하는 사람도 학벌에 대한 의견이 달랐다. 나는 정운찬 총장처럼 서울대와 연·고대 비중 축소해서 가자는 것이다. 명문 일류대도 경쟁의 필요성이 있다. 주요 권력기관 출신대를 봤더니 3개 대학이 50%를 먹어버리는데, 이것은 안 된다. 적어도 수십개 대학이 경쟁할 수 있는 체제는 돼야 한다. 그래야 대학에서 공부한다. 대학들이 공부하는 데 드는 돈 아끼려고 고교등급제를 하는 것이다. 또 고교 등급제보다 대학 등급제가 더 큰 문제다. 기업에서 원초적 차별 가하니 명문대 아닌 대학생들 공부할 맛이 안 난다. 노 대통령이 그런 이야기 좀 했으면 좋겠다. 적어도 사법고시 식으로 경쟁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시 덕에 노 대통령도 나온 것 아닌가?

 

 

 


 

-강 교수가 펴낸 책을 검색해보니 122권이었다. 왜 이렇게 많이 쓰는가?

=내가 창피해서 언제부터인가 권수를 세지 않는다. 나는 책을 작품으로 생각 안한다. 주위에서 심혈을 기울여서 역작을 내라고 하는데, 나는 아니다. 나는 책 내는 쪽으로는 디지털화돼 있고,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예전에 책이 귀할 때는 밟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책을 함부로 본다. 메모도 함부로 하고, 소모되는 것으로 본다. 물론 철학과 같은 분야는 다르다. 이론 분야는 작품이 나온다. 그렇지만 우리 신방과 쪽에서 작품이 나오겠나? 흐름이 빨리빨리 지나간다. 한 책을 오래 쓰다 보면 이미 낡은 것이 돼버린다. 내게 책 내는 데 불성실하다는 비판도 있다. 물론 공을 들일 수 있지만, 이 정도면 된다는 생각이다(*나는 다른 고종석, 김훈, 홍세화 등과 달리 강준만에게는 '문체'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 '문체없음'은 사실 그의 전략이기도 한 것. 더불어 '소모되는 것'을 자임하는 그의 미덕이기도 하다. 적어도 문체적으론 그는 나르시시즘으로부터 자유롭다.)   

내게 책 쓰는 것은 중독인 것 같고, 일종의 취미생활이다. 사명감 같은 게 없고, 누구는 내가 돈 때문에 많이 쓴다고 하지만, 오히려 거꾸로다. 자주 내는 것은 덜 팔려서 오히려 비효율적이다. 띄엄띄엄 내는 게 돈벌이로는 낫다. 나는 그냥 책 쓸 준비하고 책을 내는 게 취미다. 매우 재미있다. 요즘은 한국인의 특성을 범주화하는 책을 쓰고 있다. 이를테면 쏠림, 홍수민주주의, 소용돌이 현상, 빨리빨리. 냄비 근성 등 한국 상황을 보여주는 개념들을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이 재미있다고 하는데, 내겐 책 쓰는 게 그 재미다.(*책을 읽고 쓰는 재미에 나도 공감한다. 책에 대한 구속 덕분에 나는 '온라인 게임'과 '드라마'로부터 자유롭다.) 

-그렇게 쓸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가 따로 있나?

=무작위로 책을 보다가 재미있는 내용이 나오면 입력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한다. 또 신문 보다가 사례가 나오면 오려놓는다. 그런 것들을 각 주제별로 파일에 입력한다. 지금도 이미 쓸 책들이 정리돼 있다. 자료 입력을 미리미리 했기 때문이다. 보통 10~20권씩 진행한다. 주제별로 입력해놓은 것이 20권 정도 분량이 된다.(*이런 류의 페이퍼도 아니고 단행본들을 20권씩 진행하다니! 그나저나 그런 식으로 책이 쏟아지면 우리는 '강준만의 시대'를 언제쯤 면하게 되나?)

06. 0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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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6-01-20 21:56   좋아요 0 | URL
강준만의 의제설정 능력은 동의하건, 그렇지 않건간에 탁월합니다.

로쟈 2006-01-21 11:02   좋아요 0 | URL
가감없이 저는 한 10년을 '강준만의 시대'라 기록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사회의 현실에 대해서 그만큼 많이 말하고 개입한 '인텔리겐치아'가 따로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PC방에서 한 30분쯤 더 보탠 글이 날아가버려 허탈하군요...

2006-03-08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globebox 2006-11-28 11:32   좋아요 0 | URL
대중 수준에 맞춰, 뒤죽박죽 온갖 사건들로 혼란스런 시사를 보기 좋게 정리해주는 역할을 하는 지식인 또한 강준만 밖에 없죠. 집필 기동력과 적시성, 의제설정능력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 같습니다.
 

 

 

 

 

 

 

 

 

가라나티 고진의 <트랜스크리틱>(한길사, 2005)의 '제1부 칸트'를 지난번에 이어서 계속해 읽으며 정리해본다, 아니 읽은 걸 정리해둔다. 제1장의 2절 '문예비평과 초월론적 비판'의 내용을 따라가 보려고 하는데, 고진은 어떤 '새로운' 주장을 제기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 먼저 칸트에 대한 '교과서적인' 정리부터 챙겨두자. 서양근대철학회 편 <서양근대철학>(창비, 2001)에서 칸트에 관한 장의 한 대목이다(아마 다른 서양철학사들에서의 정리도 엇비슷할 것이다).

 

"<순수이성비판>이 순수이론적 이성에 대한 고찰로서 진리(眞)의 인식 문제를 다루고, <실천이성비판>이 도덕(善)의 실천문제를 논한 것이라면, 남은 문제는 이론과 실천, 현상세계와 이념세계는 서로 어던 관계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예술에서의 미적 판단(美)과 자연의 합목적성의 문제로 집약되어 1790년에 출간된 <판단력비판>에서 논의된다. 이 세 비판서는 인간의 이론적 인식과 도덕적 실천 그리고 감정과 정서를 다룸으로써 진․선․미 또는 인간의 인식과 의지와 감정의 세 영역을 포괄적으로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357-8쪽)

 

여기서 간과하기 쉬운 것으로 고진이 제기하는 문제는 그러한 세 영역의 구분이 칸트의 비판 이전이 아니라 이후에 정립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칸트의 세 비판은 각기 과학 인식, 도덕, 예술(과 생물학)을 대상으로 한다. 그리고 칸트는 각 영역의 특이성과 그것들의 관계구조를 밝힌다. 그러나 칸트 이후의 사람들이 잊어버린 것은 그런 구분이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칸트의 ‘비판’으로 발견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칸트 이전과 이후에 과학 인식, 도덕, 예술 등의 구분은 근본적으로 변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구분에 기초해서 칸트의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구분 자체를 초래한 칸트의 ‘비판’을 읽어야 한다.”(74쪽)

인용문의 마지막 문장은 영역본에 "One should read the Kantian critique that itself created the categorization."라고 돼 있다. 내가 읽기에 이 문장은 "우리는 그러한 구분(범주)를 창조해낸 칸트의 비판 자체를 읽어야 한다" 정도의 뜻이다. 고진의 논점을 다시 확인하면 이렇다: 칸트가 과학, 도덕, 예술의 관계를 명시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칸트가 제1비판, 제2비판에서 드러낸 ‘한계’를 제3비판에서 해결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칸트가 드러낸 것은 이들 셋이 구조적인 고리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현상, 물자체, 초월론적 가상이 그 가운데 어느 하나를 제외해도 성립하지 않는, 라캉의 비유로 말하자면 '보로메오의 고리'를 이룬다는 것과 대응하고 있다.”(75쪽) 

 

라캉의 '보로매오의 고리'는 흔히 ‘보로메오의 매듭’으로 번역되는 것이다.  상상계(I)와 상징계(S), 그리고 실재계(R)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로 엮어져 있다는 걸 보여주는 모델. 칸트에게서 감성과 오성, 그리고 상상력(구상력) 간의 관계 또한 그러하다는 것인데, 만약에 그렇다면, 칸트의 '비판'은 순차적인 과정을 통해서 '마침내' 제3비판에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순수이성비판>에서 이미 완결을 본 것이 된다. 이에 착안하여 고진은 <순수이성비판>에서 <판단력비판>의 문제틀을 독해/확인하고자 하는 것. 그렇다면, <판단력비판>과 마찬가지로, <순수이성비판>의 기원 또한 예술의 문제에 놓여 있다.

"칸트의 '비판'은 애초에 예술의 문제에서 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칸트의 비판이 어디서 왔느냐에 대해서는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다양한 어원적 탐색이 이다. 하지만 어원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흔히 가까운 기원을 은폐한다. 오히려 나는 칸트의 비판(critique)은 말 그대로 비평(cirticism)에서, 다시 말해 아리스토텔레스에 기초한 고전 미학이 통용되지 않는 상업적 저널리즘에서 성립하는 비평, 즉 누구도 결말을 지을 수 없는 평가를 둘러싼 ‘아레나’(투기장)에서 왔다고 생각한다.”(75쪽, 강조는 나의 것)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이 흥미롭다:"칸트는 라이프니츠-볼프 학파의 형이상학 아래 있던 자신을 ‘독단의 잠에서 깨어나게 한 것’은 <인성론>의 흄이라고 썼다.(...) 파이잉거에 따르면, 칸트 자신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칸트를 깨어나게 한 것은 스코틀랜드의 사상가 홈(Henry Home; 1696-1782)의 <비평의 원리>(1762)였다고 한다(<순수이성비판 주해>, 1921)." 흄의 <인성론>, 즉 <인간본성의 논고>에 대한 해제는 이준호 교수의 <데이비드 흄>(살림, 2005)를 참조. 그런데, 보다 문제적인 인물은 이 아니라 이라는 것(위의 사진).  

참고로 한 백과사전의 짤막한 설명은 이렇다. "KAMES, HENRY HOME, LORD [Kames, Henry Home, Lord] , 1696-1782, Scottish judge and philosopher. A man of broad interests and a wide-ranging intellect, his works included dissertations on Scottish law, agriculture, and problems of moral and aesthetic philosophy. Among his writings were Introduction to the Art of Thinking (1761) and Elements of Criticism (1762)."

이러한 사실을 언급한 이는 한스 파이잉거(Hans Vaihinger)인데(세번째 사진), 그가 근거로서 인용하고 있는 것은 <논리학>(1782)의 이런 대목이다: "홈이 미학을 비판이라고 명명한 것은 옳다. 미학은 판단을 충분하게 규정하는 선천적 규칙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역본에는 "Home has more correctly called Aesthetics Criticism, because it does not, like Logic, furnish a priori rules."(37쪽)이라고 돼 있다. 여기서 칸트의 비판(critique)이 유래했을 거라는 얘기.  



 

 

  

지나가는 김에 번역에 대해서 한마디 하자면, 예전에 일역본을 따라 '선천적'으로 번역되던 'a piori'는 요즘 '선험적'이란 역어로 옮겨진다. (백종현 교수의 제안에 따라) '선험적/선천적'이 '초월적/선험적'이라고 옮겨지는 식이다. 하지만, 아직도 시중에 나와 있는, 국내 1세대 칸트학자들의 <순수이성비판> 번역본들은 '선험적/선천적'을 취하고 있고, 칸트철학을 '선험철학'으로 규정한다. 백종현 교수 등에 따를 경우엔 '초월철학'이라고 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용어상의 혼란은 정리된 게 아니어서, 가장 최근에 나온 <순수이성비판> 해설서로 백종현의 <존재와 진리 - 칸트 순수이성비판의 근본문제 >(철학과현실사, 2000/2003)와 바움가르트너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읽기>(철학과현실사, 2004)는 각각 '초월철학'과 '선험철학'으로 옮기고 있다. 해서 번역서들에서 '선험적'이란 말이 나오면 어떤 계열에 따른 번역인가를 확인해야 오해를 줄일 수 있다. 두 가지 '체계'가 있는 걸로 보아야 할까? 하지만 일반 독자들로선 불편하다.

아무튼 국역본 <트랜스크리틱>은 일역본의 용례를 따른다. 아직 새로운 관례에 따르는 새 번역본 <순수이성비판>이 아직도 출간되지 않는 것은 유감스럽다(백종현 교수의 <실천이성비판> 번역은 2002년에 출간된 바 있다. 개인적으론 칸트의 '도덕형이상학'을 '윤리형이상학'으로 '의역'하는 것에는 거부감을 느끼지만). '그들만의 철학', '그들만의 칸트'는 언제쯤 '우리의 칸트', '우리 세대의 칸트'가 될 수 있을까?   

다시 고진으로 돌아오면, “칸트가 홈에게서 배운 것은 ‘취미판단’, 즉 미학적 취미판단의 가능성에 대한 반성과 그 근거에 대한 연구였다. 홈은 취미판단의 보편성, 즉 미추의 기준을 찾아 그것을 인간 본성에 내재하는 원리에서 도출해내려고 애를 썼으며, 미추에 관한 인간 감수성의 선천성(=선험성)을 주장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을 칸트가 모범으로 삼았다는 얘기.  

칸트 전공자들의 문헌들을 별반 읽어본 바 없지만, 헨리 홈에 대한 내용은 국내 학자들에게서 거의 다루어진 바가 없지 않나 싶다(국내에 나와 있는 해설서들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해서 고진의 이러한 주장은 신선한데, 사실 이러한 견해는 고진 자신도 일본의 칸트 학자 하마다 요시후미에게 힘입은 것이다. 하마다의 <칸트 윤리학의 성립>(1981)이란 저작이 말하자면, '연기자' 고진에게 차려진 '밥상'인데, 하마다에 따르면 칸트가 '비평'이란 말을 인간의 이성 능력 자체의 근본적 음미를 의미하는 독자적인 '비판' 개념으로 다시 파악하여 자신의 용어로 사용한 것이라고. 

 

 

 

 

 

 

 

 

 

홈과 칸트에게서 문제된 것은 취미판단의 주관성(개인성) 주장과 보편성 요구 사이의 대립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이때 칸트가 도입하는 것은 일반성과 보편성의 구별이다. 그는 "미에 관한 취미판단이 확립하려는 것이나 요구하는 것은 (일반적 규칙이 아니라) 보편적 규칙"임을 <판단력비판>에서 적시한다(이 <판단력비판> 또한 새로운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할 만한 새 번역본이 나와야 할 것이다). 즉, "어떤 무언가를 '미'라고 인정하도록 강요하는 규칙"은 없지만, 단순한 쾌적함과 구별되는 취미판단은 '보편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보편성의 보증을 칸트는 '공통감각(common sense; sensus communis)'에서 찾는다.    

 

<새로운 학문>(동문선, 1997)의 저자 G. 비코(1668-1744)에 따르면, 공통감각이란 "어떤 계급, 어떤 민족, 어떤 국가, 인류 전원이 공유하는, 조금의 반성도 수반하지 않는 판단력"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통감각은 역사적으로 변화해가는 것이라면, 보편성을 보증해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보편성이 있다면 그러한 다수의 공통감각을 초월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딜레마가 취미판단의 영역으로서 예술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확실히 칸트는 자연과학, 도덕성, 예술을 구별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 자체는 그의 목적지점(terminus ad quem)이 아니다. 왜냐하면 칸트는 어디서든 보편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80쪽, 굵은 글씨는 국역본에 빠진 부분을 영역본 39쪽을 참조하여 채워넣은 것이다). 따라서, 미적 판단에서 보편성이 의심스럽다면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칸트는 거기서 출발했다. 칸트의 '비판' 근본적인 것은, 우선 모든 것을 취미판단에서 마주친 문제에서부터 다시 생각한 데 있었다."(80쪽, 강조는 나의 것)

 

이 점이 고진의 칸트 읽기에서 일차적으로 강조되는, 강조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나로선 이것을 고진의 첫번째 테제라고 부르고 싶다(요컨대, '<순수이성비판>을 <판단력비판>과 동일한 문제의식으로 읽어내기'이다). 영문으로 반복하자면, "The radicalism of his[=Kant's] critique exists in that he reconsidered the question of universality from the vantage of the judgment of taste."

 

이어지는 내용은 그렇다면, 공통감각이란 무엇이냐 라는 것. 고진은 이 공통감각을 개인의 쾌/불쾌, 쾌적함과는 구별하면서 '공동의 언어게임'의 문제로 재규정한다(이에 대해서는 조금 나중에 '타자'의 문제와 함께 상술된다). 이럴 때 "취미판단에서의 보편성은 서로 다른 규칙체계를 소유하는 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문제이다."(81쪽) 그리고 이 취미판단에서의 보편성 요구는 모든 종합판단에 흐르는 공통된 문제이므로 흔히 '대상에 대한 몰관심성'에서 미가 발견된다고 할 때의 몰관심성, 혹은 관심을 괄호 안에 넣기는 지적, 도덕적 관심의 경우에도 두루 적용된다.

 

그러니까 "칸트가 취미판단의 특성으로 삼은 것은 인식에 대해서도 도덕에 대해서도 들어맞는다."(82쪽) 어떤 식으로? 과학에서의 대상인식에서는 도덕적, 미적 판단을 괄호에 넣고, 도덕적 영역에서는 쾌나 행복을 괄호에 넣는 방식으로. "우리는 어떤 대상에 대해 참인가 거짓인가, 선인가 악인가, 쾌인가 불쾌인가라는 적어도 세 영역에서 동시에 받아들"이지만, 이러한 괄호넣기(몰관심성)에 의해서 세 가지 영역을 구분해내는 것이다.

 

즉, "인식적, 도덕적, 미적 영역은 어떤 태도변경(초월론적 환원)에 의해 확정되는 것이지 그것들이 먼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고진의 두번째 테제라고 해둔다. 반복하자면, "[C]ognitive, moral, and aesthetic domains are all constituted by a change of attitude (i.e., transcendetal reduction); and in the beginning these domains do not exist in and of themselves."(41쪽)

 

그러므로, "칸트에게서, <순수이성비판>에서 <판단력 비판>으로의 이행을 찾아내는 것은 옳지 않다. <순수이성비판>은 이미 문예비평이 준 곤란함에 입각해서 쓰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순수이성비판>을 그러한 관점에서 다시 읽는 일이다."(83쪽) 고진이 리오타르를 비판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아렌트는 <판단력비판>을 정치학의 원리로 읽으려고 했고(<칸트의 정치철학강의>), 리오타르는 거기서 '메타언어의 설정이 없는 언어게임간의 조정'을 보려고 했다(<열광>). 그것은 사실상 휴머니즘으로 회귀하는 것이고, 보편성을 기껏해야  '공통감각'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는 일이다."(83쪽)

 

마지막 문장엔 착오이긴 하지만 문제가 되는 오역이 포함돼 있는데, 영어본을 옮기면 이렇다: "But Lyotard's reading is a regression to Hume insofar as it considers the issue of universality to be simply one of the coalition among common senses."(42쪽) 즉, 국역본은 '흄'을 '휴머니즘'으로 잘못 옮겼다. 역자는 후기에서 국역본 <트랜스크리틱>이 실질적으로는 일어본보다 영역본에 더 가깝다고 했지만, 영역본과의 대조는 소홀히 한 것 같아서 아쉽다(대조했더라면 '음역' 과정에서 생기는 이런 오역을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글을 너무 오래 끌었다. 이 2절도 아직 다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이어지는 3절 '시차(視差)와 물자체'와 함께 다음에 마저 다루기로 한다. 앞에서 고진의 두 가지 테제를 내 식으로 정리했는데, 반복하자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순수이성비판>을 그러한 관점에서 다시 읽는 일이다."

 

06. 01. 20 - 0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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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6-01-20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는 진도가 팍팍 나갔으면 좋겠네요:)

로쟈 2006-01-21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들을 가방에 다 싸들고 다닐 수가 없는 데다가(학교에 놔두고 왔습니다) 인터넷 사용에 제한이 있어서 진도는 아마 더디 나갈 것 같습니다. 양해해주시길...

yoonta 2006-01-24 0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랜스크리틱은 아직 읽지않고 있어서 일단 님이 정리한 글로 간접적으로 트랜스크리틱을 겸험하고 있는데요..

님의 글을 읽다가 한가지 의문점이 떠오르는데...
칸트가 취미판단의 '보편성'을 찾아내기 위해서 취미판단의 주관성과 보편성 사이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한 공통감각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것인가요...아니면 취미판단의 주관성과 보편성사이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취미판단의 보편성을 공통감각을 통해 제시하는 것인가요?

전자와 후자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어보이는데요..취미판단의 주관성이 공통감각을 통해서 취미판단의 보편성속으로 환원할수있다고 보는 것인지(공통감각=취미판단의 보편성이라고 보는건지 아니면 공통감각을 통해 취미판단의 보편성으로 이행되는것인지도 애매하네요) 아니면 취미판단의 주관성/보편성의 이원적 대립이 공통감각이라고 하는 제3의 어떤것을 통해 해소되는 어떤 것으로 보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군요...

고진이 강조하고 싶은 칸트의 중요지점으로 '공통감각'이 제시되는 것 같은데 칸트가 말하는 선험적(a priori)이라는 말이나 초월적이라는 말의 본래적 의미와도 연결되는 문제인것도 같고 들뢰즈의 '초월론적 경험론'과도 연결시켜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러고 보니 아직 이 페이퍼가 완료가 된게 아니네요.. 로쟈님 페이퍼가 완성될때까지 좀더 지켜봐야겠군요..^^

로쟈 2006-01-24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좀더 지켜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그나저나 책들이 학교에 있어서 매번 지체되는군요(오늘도 휴업입니다). 물론 <트랜스크리틱>을 직접 읽어보시는 게 더 빠르겠네요. 칸트에 관한 건 200쪽 정도의 분량이지만 금방 읽힙니다...

lastmarx 2006-02-15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진의 <트랜스크리틱>을 너무나도 즐겁게 일독했습니다. 다시 정독을 할 생각입니다. 앞부분 칸트의 '비판'은 솔직히 낯설었으나 고진의 비판, 비평은 명쾌했습니다. 뒷부분 맑스의 비판, 비평은 지금까지 그 어느 맑스 해설자보다 넓고 깊은 인식을 보여줍니다. 이 책을 읽고 다른 맑스주의자들의 논리와 주장을 보면 시시하게 느껴질 듯합니다. 로쟈님의 노트와 영역본 대조는 큰 도움이 됩니다. 천천히 전개되더라도 정확하게 논평, 정리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도 거의 완벽한 리뷰를 하셨지만 특히 이 책만큼은 더욱 기대하겠습니다. 건강하시고요.

로쟈 2006-02-16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진을 '발견'하신 건가요? 맑스에 대한 2부를 정리해주시면, 저랑 '계산'이 맞을 거 같습니다.^^ '완벽한 리뷰'라기보다는 '굼뜬 리뷰'인데, 언제 다 기어가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네요. 장애물들이 워낙 많아서...
 

 

지난 연말에 루마니아 출신의 작가 에밀 시오랑(E. M. Cioran, 1911-1995)에 대한 글을 몇 마디 적고자 했지만, 이런저런 일들로 계속 미루어졌었다(밀린 일들이 어디 한둘이랴!). 그리고, 도서관에서 대출했던 책 <독설의 팡세>(문학동네, 2004, 원제는 '고뇌의 삼단논법' 정도)을 다른 책을 대출하기 위해서 부득이 오늘 반납해야 했다. 해서, 아쉬운 마음에 몇 가지 메모만을 남겨둔다(세번째 이미지는 <고뇌의 삼단논법> 불어본(1952)이고, 네번째는 <존재의 유혹> 영역본, 그리고 마지막은 손택의 에세이집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Styles of Radical Will)>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폭발한다(Cogito ergo Boom)"는 물론 데카르트의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비튼 것인데, 이 새로운 명제의 출처는 수잔 손택의 시오랑론 '반(反)자기 사고 - 찌오런에 관한 고찰'(<급진적 의지의 스타일>(현대미학사, 2004)에 수록돼 있다)이다. 지나가는 김에 덧붙이자면, 국역본에서 '시오랑'이 루마니아 원음에 따라 '찌오런'이라고 표기된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원음주의'의 환상에 대해서는 자주 지적한 바 있다). 루마니아 태생이긴 하지만, 20대에 파리로 건너와 그가 평생을 산 곳은 프랑스 파리이며 이후에 대부분의 에세이도 루마니아어가 아닌 새로 배운 '불어'로 썼기 때문이다('외국어'로 글을 쓰는 일에 대해서 시오랑 자신이 비통해 했지만). 게다가 다른 번역본들과의 일관성 문제도 있다. 참고로 러시아어본들에서는 '시오란' 혹은 '쵸란'이라고 표기한다.

 

손택의 에세이는 영역본 <존재에의 유혹> 서문으로 씌어졌는데, 1960년대 중반에 나온 이 글이 영어권 최초의 본격적인 시오랑론이라고 한다. 거기에서 영감을 얻어 내가 쓰고자 했던 글의 제목이, 시오랑의 세계를 잘 요약해준다고 판단되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폭발한다"이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명제가 근대철학의 개시를 선언하는 것이었다면, 시오랑이 미덥잖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그 코기토의 불철저성이다. 그에 따르면, "철학의 잘못은 너무 참을 만하다는 것이다."(<독설의 팡세>, 39쪽) 사유를 철저하게 극단에까지 밀어붙인다면, 그것은 '존재'를 통과하여 의당 '폭발'에까지 이르게 되지 않을까?

 

가령, 칸트의 비판철학을 떠받치고 있는 아포리아들을 하루만 물고 늘어져보아도 머리가 지끈지끈거릴 것이다. 세계는 유한한가, 혹은 무한한가에 대해서 우리는 무얼 사유할 수 있는가? 아이가 아이였을 때 흔히들 묻곤 하는 '왜 나는 나이고 너가 아닌가?'란 물음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대답으로 위안을 삼아야 하는가? 어떤 원리로부터 연역되는 가능한 철학적 귀결들을 그냥/마냥 참아낼 수 있는가? 하지만, '참을 수 없는 철학의 참을 만함'을 더이상 참지 못할 때, 우리는 '폭발'한다.

 

Emil Mihai (Michel) Cioran

 

때문에, 시오랑의 아포리즘들은 어떤 사유의 응집으로서가 아니라 그러한 폭발의 잔재로서 읽혀야 한다. 즉, 그의 아포리즘들이 지시하는 것은 사유가 아니라 사유의 종말로서의 폭발이다. '루마니아 출신의 작가, 철학자, 에세이스트'라는 백과사전의 정의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말하자면, '시오랑, 혹은 폐허의 철학자'로 이름붙일 수 있을까? 마치 폴란스키의 영화 <피아니스트>(2002)에서 폐허의 한가운데 놓였던 피아니스트 스필만을 떠올리게 한다. 혹은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1979/2001)의 한 장면. 하긴 그는 하루하루를 묵시록적 예언 속에서 살았던 사람이기도 하다: "매일 최후의 심판이 내일이라고 약속해주는 나의 광기. 그 자비심이 없다면 나는 한 나절이라도 견딜 수 있을까?"(45쪽)   

 

 

시오랑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건 내 기억에 1990년대 초반쯤 계간 <작가세계> 특집을 통해서였다. 나는 대번에 그의 아포리즘들에 끌렸고, 곧이어 출간된 <절망의 맨끝에서>(에디터, 1994; 강, 1997), <내 생일날의 고독>(에디터, 1994) 등도 반가운 마음에 사서 읽었다. 한데, 시오랑론을 쓰기 위해서 필요한 한국어 번역본들은 대부분 제목의 선정에서부터 신뢰감을 주지 못했다(불어본들을 읽고 쓸 수는 없지 않은가? 90년대 후반 이후로 영역본들이 많이 나와 있길래 작년말에 도서관에 대거 주문을 넣은 것 정도가 나의 성의 표시이다. 3권의 러시아어본도 갖고 있는데, 모음집이어서 작품수로는 7-8권 가량이다. 대부분이 아포리즘집 형태인 만큼 시오랑의 책들은 두껍지 않다).

 

가령, <독설의 팡세>도 비록 그런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손 치더라도 원제와는 동떨어진 것이며, <내 생일날의 고독>은 원제가 '태어남의 잘못(=불편)'에 대하여'이고, <세상을 어둡게 보는 법>(이땅, 1992) 혹은 <동구로 띄우는 편지>(이땅, 1990)의 원제는 <역사와 유토피아>이다. <노랑이 눈을 아프게 쏘아대는 이유>(산수야, 1995)의 원제가 <고백과 저주>라는 걸 어찌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러니 수면제 대용이 아니라면(실제로 시오랑은 거의 평생을 불면증에 시달렸다) 국역본들을 읽고 제대로 된 시오랑론을 쓴다는 건 치기에 가깝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아직 시오랑에 대한 글을 완성하지 못하고, 그 빚을 다 탕감하지 못하는 이유이자 변명이기도 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폭발한다"를 가지고 모두 입막음이 되는 건 아니다. 내가 진 또다른 빚은 '눈물의 일반이론'에 관한 것인데, 예전에 같은 제목으로 역시나 '변명'에 해당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거의 10년쯤 전의 일이다. 부분적으로 따라가본다.

 

 

"나는 울고 싶은데 神은 내게 계속 쓰라고 명령한다. 그는 내가 빈들거리는 걸 원하지 않는다. 내 처는 줄곧 울고 있다. 나 역시 운다. 나는 의사가 와서 내가 쓰고 있는 동안 아내가 울고 있다고 말할까봐 불안하다. 나는 그녀에게 가지 않겠다. 내게 책임이 있는 건 아니니까. 내 어린것은 온갖 것을 보고 듣는다. 그 애가 나를 이해해 주었으면 좋으련만. 나는 키라를 사랑한다. 내 어린 키라는 자기에 대한 나의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그 애 역시 내가 앓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그에게 그렇게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 애는 내게 내가 잘 잤는지의 여부를 묻는다. 그러면 나는 내가 언제나 잘 잔다고 말해준다. 나는 무얼 써야 할지를 모르겠는데 神은 내게 쓰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는 결함을 지녔다. 나는 인간이다. 神이 아니다. 나는 神이 되고자 한다. 그러므로 나는 나 자신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나는 춤을 추고 싶고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를 치고 시를 쓰고 싶다.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이것이야말로 내 생의 목표이다."(니진스키, <고백>) 

 

∴ ∴ ∴


 

 

"드디어 관에 뚜껑이 덮였다. 못이 꽝꽝 박히고 짐마차에 실렸다. 마차는 삐걱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거리가 끝나는 데까지밖엔 전송하지 않았다. 마부가 채찍을 휘둘렀다. 말은 속보로 달리기 시작했다. 노인은 그 뒤를 쫓아가면서 어이어이 소리를 내어 울었다. 뛰어서 쫓아가느라고 그 울음소리는 몹시 떨렸고 가끔 끊어지기도 했다. 가엾은 노인은 모자를 떨어뜨렸지만 그것을 집으려고 멈추어서지도 않았다. 비가 그의 맨머리를 적셨다.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노인은 그런 것쯤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소리를 내어 울며 마차의 이쪽저쪽을 겅중겅중 뛰어서 왔다갔다했다. 낡아빠진 프록코트의 옷자락은 날개처럼 바람에 나부꼈다. 호주머니란 호주머니에서는 책들이 비죽이 기어나오고 무슨 책인지 커다란 것이 한 권 소중하게 쥐어져 있었다. 길가는 사람들은 모자를 벗고 성호를 그었다. 어떤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놀란 얼굴로 이 가련한 노인을 지켜보고 있었다. 책들은 쉴새없이 호주머니에서 진창으로 굴러떨어졌다. 사람들이 그를 불러 세워 물건을 떨어뜨렸다고 가르쳐주었다. 노인은 그것을 집어들고는 다시 마차 뒤를 쫓아갔다. 길모퉁이에서 어떤 거지 노파가 그에게 손을 내밀며 들러붙더니 함께 관 뒤를 따라갔다. 드디어 마차는 모퉁이를 돌아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도스토예프스키, <가난한 사람들>)

∴ ∴ ∴

능글맞기도 하지만 괜히 잘 우는 사람들이란 고정관념을 나는 러시아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이 두 러시아인 댄서/작가에게 힘입은 것이라는 걸 부인하지 않겠다. 사실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런 그들의 정서가 나에게 맞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다지 잘 우는 편은 아니지만,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력에 대한 고백으로서의 울음이 우리 생의 첫 발성(언어)이었다는 사실에 언제나 감동받는다. 외롭고 힘들어 지칠 때마다, 우리가 이 근원의 장소를 찾아가고 이 원초적 정념에 호소한다는 사실에 언제나 고무받는다.

 

 

예컨대, <파리, 텍사스>(1984)에서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가정이 파탄나자 트래비스는 자신이 잉태되었던 바로 그 근원의 장소로서 '파리'(프랑스의 파리가 아니라 텍사스의 파리이다)를 찾아 사진 한 장을 들고 황량한 텍사스 사막을 헤맨다. 그의 그런 행위에 의해 물리적으로 동질적인 어떤 공간이 '파리 Paris/텍사스 Texas'로 분절된다. 이 분절은 성(聖)/속(俗)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의미론적이고 구제론적인 것이다. 이 고질적인 의미론/구제론은 아주 인간적이고 너무도 인간적이다. 우리는 그리 돼먹은 듯하다.

∴ ∴ ∴

 

"나는 한번도 울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나의 눈물들은 생각들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 생각들은 눈물과 마찬가지로 쓰라리지 않을까?" 이것은 루마니아의 작가 에밀 시오랑의 말이다. 철학을 공부하다가 그만둔 그는 1937년 파리로 건너가서 이후 죽을 때까지 인근의 창녀들이 야밤에도 소란을 피우는 싸구려 호텔 다락방에 은둔하며 살았다. 그가 철학을 그만둔 데에는 한 가지 일화가 있다.

 

칸트와 피히테, 쇼펜하우어, 베르그송을 읽으면서 철학을 제외하곤 시에도 무관심했던 그는 남들처럼 논문을 쓰기로 결정하고 어떤 주제를 고를까 고심했다. 그리고는 진부하면서 뭔가 독특한 주제를 찾았다고 생각해서 지도교수에게 달려갔다. "'눈물의 일반이론'이 어떻겠습니까? 그건 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가능이야 하겠지. 하지만 참고문헌을 찾는 게 어렵지 않겠나." 이에 "그건 문제가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 전체가 논문의 근거가 되니까요." 그는 자신에 차서 말했다. 그러자 지도교수는 경멸에 찬 시선을 보냈고, 그는 그 순간 철학에 대한 모든 기대를 포기한다.

 

그의 말: "나는 철학이 어려움에 처한 인간에게 아무런 말도 할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철학은 인간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법을 가르치지만 결국은 인간을 각자의 운명속으로 내팽개치고 마는 것이다."

∴ ∴ ∴

나는 언젠가 나 자신이 그런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오랑이 포기한 '눈물의 일반이론'이란 것. 현재 이러고저러고 하는 것의 대부분은 이 '눈물의 일반이론'을 위한 연습이고 밑그림이라는 생각도 한다. 거꾸로 철학에 대한 나의 관심은 이에 근거한다. 어려움에 처한 인간에게 아무런 말도 할 게 없는 철학의 무능력 자체는 바로 우리의 무능력을 닮은 것이다. 우리는 거기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무엇을? 내던져지고 내팽개쳐진 각자의 운명(시오랑은 해체de-composition라고 부른다. 이 해체가 그의 글쓰기 양식을 규정한다.) 속에서, 각자의 눈물 속에서 의미있는 일반이론, 즉 연대(solidarity)를 끌어내는 일 말이다. 개인의 울음을 집단의 통곡으로 바꿔놓는 일 말이다. 언젠가는.

 

그 '언젠가'는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도 유예상태이다. 핑계로 무덤을 세웠다면 거의 마을묘지 수준이 되겠다. 다만, 시오랑에 기대어 말하자면, "우유부단하다는 것은 정직하다는 표시이고, 무언가에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사기의 표시이다."(37쪽) 그러니 나의 우유부단이 죄악이 될 수는 없겠다. 바로 앞에서 시오랑의 철학도 시절 일화를 소개했는데, 출처를 따진다면 바로 <독설의 팡세>에 나오는 내용이었다. 다른 역자의 번역이기에 전문 인용해보겠다(내용은 비교해 보시길).

 

경험부족으로 철학에 취미를 갖게 되었던 나이에,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논문을 쓰기로 결심했다. 어떤 주제를 선택할 것인가? 나는 진부하면서도 동시에 특이한 주제를 원했다. 그것을 찾았다고 믿었을 때 나는 서둘러 스승에게 알렸다. "눈물에 대한 일반이론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수준으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군. 그러나 참고문헌을 찾기 곤란할 텐데." "상관없습니다. 역사의 권위가 뒷받침해줄 것입니다." 나는 무례하고도 당당하게 대답했다. 조급한 스승이 내게 경멸의 시선을 던졌을 때, 나는 내 안에서 그의 제자를 죽이기로 결심했다.(51-2쪽)

 

 

비록 계획했던 '눈물의 일반이론'은 아직 못 쓰고 있지만, 나는 전공관련으로 논문을 쓸 때마다 시오랑의 일화를 되새기곤 한다. 적어도 내가 살아온 삶의 내적 요구에 부응하는 주제들에 대해서만 쓰겠다는 것(시오랑과 달리 나는 참고문헌도 열심히 찾는다!). 그건 책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폭발한다"란 주제의 시오랑론을 쓰는 것도 그러한 요구의 하나이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살아온 만큼 살아가기도 해야 한다는 것. 어쨌거나 (당분간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이건 또다른 요구이다. 이 둘 사이에서 내가 짜낼 수 있는 묘안은 이런 류의 페이퍼로 잠시 자리를 데우는/때우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릿광대이다.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있으니까."(34쪽)

 

06. 0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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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1-20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핑계로 무덤을 세웠다면 거의 마을묘지 수준이 되겠다, 에서 한참 웃었네요.
저는 아마 국립묘지 수준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묘비명에는 게으름이라는 단어에만 볼드 처리되어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로쟈 2006-01-20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파님/ 이보 안드리치를 전공하시나요? <드리나강의 다리>를 읽을 때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군요.^^
 

 

 

 

 

지젝의 <삐딱하기 보기>(시각과언어, 1995)를 다시 읽는다. 같이 읽을 원서는 'Looking Awry'(MIT출판부, 1991). 작년 2월쯤인가 나는 책의 3부를 마저 읽었고, 1-2부는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더랬다(당시에는 원서를 갖고 있지 않았다). 지젝의 영화론에 대한 글을 쓸 일이 생겨서 이 참에 그의 영화책들을 전반적으로 다시 훑어볼 계획을 세우게 됐다. 어디까지 진행될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시작은 <삐딱하기 보기>부터이며, 내가 의도하는 건 '<삐딱하게 보기> 제대로 읽기'이다.

'제대로'라는 건 읽는 흉내를 내는 게 아니라 읽는 것처럼 읽겠다는 얘기. 혹은 <나의 결혼원정기>(2005)에서 홍만택(정재영)의 말투를 빌면, “다 자쁘뜨러”, 곧 '다 자빠뜨려'가며 읽는다는 것이다('다 잡뜨라 Do zavtra!'는 러시아어로 “내일 또 만나요!”라는 뜻이다. 이게 한국에 오면 "그녀들을 자빠뜨리기?"로 와전되지만). 다음에 다시 만날 때까지 가능하면 말끔하게 정리해두는 것이 그 목표이다. 무릇 고전들이란 그렇게 '다 자빠뜨려'가며 읽어야 하는바, <삐딱하게 보기>나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 등은 내가 조만간 자빠뜨릴 계획으로 있는 책들이다(물론 <그라마톨로지>는 상당한 견적이 나오는 책인지라 언제 작업에 들어갈지 장담할 수 없지만, 아마도 내달쯤 집에서 인터넷을 하게 되면 계획은 생각보다 빨리 구체화될 수도 있을 듯하다. 작업의 '속도'가 현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테니까). 계획상으로야 올해 쓸 책만도 댓권이지만, 머릿속으로야 무얼 못하겠는가.

untitled 250

먼저,  머리말부터 읽어본다. 지젝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작업의 내용이 발터 벤야민의 추천에 따르는 것임을 밝힌다. 벤야민은 뭐라고 추천했는가? '고도로 정신적인 문화적 산물들'을 '통속적이고 평범하며 세속적인 문화적 산물들'과 나란히 독해하라! 예컨대, 모차르트(1756-1791)의 오페라 <마술피리>에 등장하는바, 사랑하는 커플(love couple)의 숭고한 이상형(사랑한다면 이들처럼!)과 모차르트와 동시대인이었던 칸트(1724-1804)의 결혼에 대한 정의를 병치시키는 것. 칸트는 뭐라고 정의했던가? "결혼이란 반대의 성(性)을 가진 두 성인 사이에서의 성기의 상호사용에 대한 계약이다"! 독신자이긴 했어도 역시나 래디컬한 칸트이다. 해서 내가 병치시켜놓은 것은 오페라 <마술피리>의 한 장면과 미국의 사진작가 신디 셔먼의 'Untitled #250'이다. 좀 삐딱하다고? 하지만, <삐딱하게 보기>에서 지젝이 내내 하는 일이 이런 삐딱한 짓 아닌가!

지젝식의 '삐딱한 짓'이 의도하는 것은 책의 부제대로 '대중문화를 통한 라캉 이해(=입문)'을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이 책의 작업은 자크 라캉의 고상하기 그지없는 이론적 주제들을 현대 대중문화에서 본보기가 될 만한 경우들과 아울러, 또한 그것들을 통해서 해독하는 것"이다(나중에 지젝이 밝힌 바에 따르면, 그 자신이 라캉을 이해한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러한 독해에 선행하는 라캉이 있다기보다는 이러한 통해와 '아울러', 이러한 독해를 '통해서' 비로소 그 자신도 라캉에 대한 이해에 도달했던 것. 이런 게 '변증법적 학습' 아닌가?).

 

 

 

 

대중문화의 사례들로 그가 자주 참조하게 되는 것은 히치콕(물론 요즘에는 '진지한 예술가'로 간주되지만, 히치콕은 당대에 가장 '대중적인' 감독이었다)을 비롯하여 필름 느와르, SF소설, 탐정소설, 감상적인 키치(Kitsch), 그리고 스티븐 킹 등을 망라한다. 라캉의 공식 '사드와 함께 칸트를(Kant wirh Sade)'을 라캉 자신에게 되돌려주면서 '히치콕과 함께 라캉을',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와 함께 라캉을', '스티븐 킹과 함께 라캉을' 하는 식으로 변주/응용하는 것이다(거기에 간혹 '셰익스피어'나 '카프카' 같은 '위대한 이름'들도 끼어들지만).  

한편으로 라캉에 대한 '삐딱하게 읽기'를 제안하는 지젝은 그러한 독해가 오히려 아카데미에서의 '주류적' 라캉 수용이 놓치고 있는 것들을 더 잘 설명해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라캉 자체가 "히치콕의 <현기증>으로부터 스티븐 킹의 <애왕동물 공동묘지>(황금가지, 2006)에 이르는, 맥컬로우의 <음란한 강박관념>으로부터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 이르는 광란의 질주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해서 라캉 교리론(dogmatics)에 대한 '삐딱한 읽기'로서의 <삐딱하게 보기>는 이 양방향의 운동이고 질주이며 탐닉이다. 혹은 그러한 운동/질주/탐닉에 제대로 몸을 맡길 때에야 우리는 제대로 '삐딱하게 보기'의 여로에 들어선 것이 된다. 마치 롤러코스터 같은 여로에.   

해서, "지젝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제 곧 '현실에서 실재로'(1부 1장)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같이 복창해 보실까요? "다 자빠뜨려!"

06. 01. 19-20.

 

 

 

 

P.S. 지난 80년대인가 <성자가 된 청소부>란 베스트셀러가 있었다. 저자가 인도 사람이고 부제가 '산다는 것과 초월한다는 것'이니까 대략 어떤 내용일지 짐작할 수 있는 책이다(검색해 보니, <이슬람 성자가 된 청소부>란 제목의 책도 있다. 하긴 '성자'와 마찬가지로 '청소부'도 종교를 초월할 테니까!). '청소부'란 말이 '환경미화원'으로 대체되기 이전에 나왔던 책이었다. 한데, 제목에서 비치는 그러한 '상향 초월'은 나로선 별로 달갑지 않았다. 제대로 된 초월이라면 거꾸로 '청소부가 된 성자'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검색해보니, <백화점 청소부가 된 이목사>란 책은 있다. 이재정 목사의 책이란다). '낮은 데로 임하셨던' 그리스도의 모범도 그런 게 아닌가.

 

 

 

 

성서의 대표적인 이야기들에서 가장 많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아무래도 '다윗과 골리앗'의 다윗 같다(나중에 '다윗왕'이 되는). '시편'에 실린 노래들의 상당수도 또한 다윗의 노래이다. 거기서 제일 처음 등장하는 다윗의 노래가 시편의 제3편이며, 반란을 일으킨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다니는 신세가 되어 여호와께 간구하며 부르는 노래이다.

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2.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를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도다
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 천만인이 나를 둘러 치려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8. 구원은 주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지난주에 또 교회에 붙들려가 들은 설교가 이 3편에 관한 것이었는데, 내게 가장 흥미로운 절이었으나 목사님의 '진지한 말씀'에서는 다른 절들과 달리 자세히 음미되지 않은 절이 있었으니 바로 7절이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영역으로는 "Arise, O Yahweh! Deliver me, O my God! For You have struck all my enemies on the jaw; You have smashed the teeth of the wicked."

주께서 이제껏 나의 원수들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어으셨다는 걸 상기시키며 다윗은 한번 더 그래주십사 하고 간구하는 것이다(짐작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은 신약의 것이지 구약의 것은 아니다. 아니면 신약의 경우에도 '사랑'의 방식이 좀 특이한 것이든지. 축귀(逐鬼)용 안수기도 같은 걸 생각해 보라). 마지막 구절이 가진 함축을 알기 쉬운 말로 하면, "주여, (이번에도) 적들의 '아구창'을 갈겨주소서!"라는 것. 

물론 이것만이 기도/신앙의 핵심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를 점잖게 제쳐두는/빠뜨리는 '고상한' 설교말씀에 나는 공감할 수 없다(어떤 이는 이 시편을 '스트레스의 대처'라고 이름붙였다!). 그것은 '다윗의 모범'을 따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원수를 용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원수의 아구창을 먼저 갈긴 이후의 문제가 아닐까? "기도와 함께 주먹을!" 지젝의 '삐딱하게 보기'는 그런 깨달음도 부수적으로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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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다루어질 내용은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 이후>(미술문화, 2004)의 '서문'이다. 먼저, 원서의 표지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그래서 이미지를 키웠다). 저자는 이 표지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은 화가 데이비드 리드(David Reed; 1946- ).

 

"내가 이 책의 권두화로 선택한 이미지는 유명하고도 친숙한 영화인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1958)에서 오려낸 한 장면을 약간 수정해서 찍은 스틸 사진이다. 수정은 화가 데이비드 리드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그는 자신의 그림중 하나 - 1990년작 <#328> - 를 호텔 침실 장면 속에 집어넣었다. 원래 그 자리에는 히치콕이 영화의 신빙성을 보태기 위해 침대 위에 걸어놓았을지도 모르는 특징없는 호텔 그림이 있었다.(...) 스틸 사진 자체는 1995년작이다."(19쪽) 아래의 작품이다(그 아래는 변주 작품). 

 

"리드는 오려낸 이 장면을 TV수상기에서 반복해서 방영되는 일종의 순환 테이프로 변형시켰는데, 당연히 이 TV수상기는 킴 노박이 분한 <현기증>의 여주인공 주디가 빌려 쓰고 있던 샌프란시스코의 호텔 침실에 있는 가구들처럼 별다른 특징이 없다.(...) 리드가 영화의 장면을 수정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TV수상기는 이 예술가에 의해 침대 바로 옆에 놓여졌는데, 그것은 정확하게 영화 속의 침대를 복원하고 있으며 리드 자신에 의해 임의로 만들어졌다는 점만 빼면, 그 영화에 등장하는 침대와 마찬가지로 전혀 특징이 없다."

 

단토는 리드의 이러한 작업이 갖는 의의를 설명하기 위해서 리드가 갖고 있는 몇 가지 강박관념을 지적한 이후에 이것을 자신의 이론적 맥락 속에 집어넣는다: "나의 목표는 리드가 - 침대, 욕실 가운, 심지어는 침실 설치작품의 일부로 삽입된 그림 <#328> 등은 말할 것도 없고 - 순환테이프라고 하는 영화장치, 그림 더빙 메커니즘, 그리고 모니터 등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컨템퍼러리 미술 실천의 견지에서 무엇을 예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화가들이 이제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전혀 다른 매체 - 조각, 비디오, 영화, 설치 등등 - 에 속하는 장치들을 갖고서 자신의 그림을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 컨템퍼러리 미술의 실천방식이다. 리드와 같은 화가들이 대단한 열정을 갖고서 이런 일을 행하고 있다는 것은 동시대의 화가들이 매체의 순수성을 자신의 규정적 의제로 고집하였던 모더니즘의 미적 전통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벗어났는지를 증명하고 있다."(22쪽, 강조는 나의 것)

 

해서, 단토가 보는바, "시각예술에서의 동시대를 잘 보여주는 표본"이 데이비드 리드이다.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비평가 그린버그와는 다르게, 단토는 이러한 탈모더니즘적 미술, 탈역사적 컨템퍼러리 미술에 대한 성찰과 옹호를 통해서 예술철학자이자 비평가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정당화한다. 이성복의 시구를 빌면,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를 (역사)철학적으로 해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예술의 종말 이후>에 설정된 과제이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예술의 종말 이후>는 1995년 미국의 워싱턴 소재 국립미술관에서 여섯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앤드류 멜론 강좌 강연에 바탕을 두고 있다. 거기서 단토는 '컨템퍼러리 미술과 역사의 경계'라는 제하의 강연을 했는데, 이것이 이 책의 부제이다(번역서에서 이 동일한 부제는 '동시대 미술과 역사의 울타리'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역자들이 '반복'을 싫어하는 듯하다). 

 

예술이론에 관한 멜론 강좌는 1951년부터 시작됐다고 하는데(이샤야 벌린의 <낭만주의의 뿌리>도 이 강연에 바탕을 둔 책이다. '낭만주의적 사유의 원천들'이란 주제의 벌린의 강연은 1965년에 있었고, 각각 1954년과 1956년에 강연한 허버트 리드 경과 곰브리치도 또한 단토의 선배 연사였다), 단토의 강연은 44회인 셈이고 그의 지적대로 리드의 (영화수정) 작업은 1958년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작업이다. 그것은 '역사적 불가능성'이다. 그러한 불가능성이 암시하는 것은 예술사/미술사에서 회귀불가능한 어떤 내러티브의 구성 가능성이다. 그리고, 예술의 종말이란 그러한 내러티브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자세한 건 본문에서 밝혀질 것이다).

 

 

 

 

 

 

 

 

 

이 책의 목표를 다시금 정리하면 이렇다: "이 책은 미술사의 철학, 내러티브의 구조, 예술의 종말, 그리고 예술비평의 원리는 논하는 데 바쳐진 책이다. 이 책은 어떻게 해서 데이비드 리드의 예술과 같은 것이 역사적으로 가능해졌으며, 그러한 예술을 얻허게 비평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을 묻고자 한다. 또한 나의 책은 이런 견지에서 모더니즘의 종말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고, 예술에 관한 전통적인 미학적 태도에(게) 불경스러운 짓을 가하는 형태로 나타난 모더니즘의 신경과민을 진정시키고자 할 것이며, 탈역사적 현실에서 즐거움을 얻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약간이라도 밝혀내고자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역사의 문제로서 어디를 향해 나아갔는지를 알게 되면 어떤 마음의 위안을 얻게 될 것이다."(25쪽, 강조는 나의 것)

 

 

요컨대, <택시드라이버>1976)의 단토-드니로 버전으로 말하자면, "예술의 신이시여, 어디로 더 가시나이까? 다 왔거든요!"(옆에 있던 술취한 아저씨: "이봐요, 아가씨, 어데까지 가요? 거, 몸매가 예술이네!")

 

06. 0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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