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자투리 시간에 박상익 교수의 <번역은 반역인가>(푸른역사, 2006)를 읽었다. 4/5쯤 읽었는데, 번역 문제라는 '뜨거운 감자'에 대해서는 나중에 보다 진지하게 다룰 생각이다. 어쨌거나 저자의 과감하고 열성적인 문제제기가 반가웠고 다루어지고 있는 사안의 새삼스러움에 착잡했다. 번역 문제에 '감'이 없는 교수들이나 관료들께서 많이 읽어주었으면 싶다. 하지만, 젊은 인문학도들이 이 책을 읽는 건 말리고 싶다(우리의 '착잡한' 현실에 도전욕보다는 환멸감을 먼저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문득 번역 문제의 한 파트인 오역의 문제에 대해서 이전에 써둔 게 생각이 나 여기에 옮겨둔다. 재작년 5월에 쓴 것인데, 모스크바에서 <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새물결, 2001)을 우연한 계기가 읽다가 눈에 띈 오역들을 지적하게 됐고, 거기에 대해서 두 가지 ‘인상적인’ 반응이 있었다. 하나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역자의 반응이었고, 다른 하나는 한 독자의 반응이었다. 개별적인 사례이지만, 일반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듯하여 이 자리에서 '재탕'해둔다. 당시에도 적었지만, 상당히 ‘공격적인’ 비판에 대해서 (반)공개적으로 해명을 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내가 제기했던 의문들에 대해 성의 있는 답변을 주신 역자께 다시금 감사드린다. 

(나의 의문에 대한) 역자의 해명은 (1)(공동번역이 아닌가 하는 의혹에 대해) 3년간에 걸친 단독번역이라는 것과 (2)(작품명 등의 혼동/혼란에 대해서) 편집과정에서 빚어진 실수들이 포함돼 있다는 것, (3)(그럼에도) 모든 오역에 대한 책임은 역자에게 있다는 것, (4)(희박해 보이긴 하지만) 재판을 낼 경우, 오역들이 수정될 수 있도록 출판사측에 건의하겠다는 것, (5)(책의 나머지 장들에 대해서도) 계속적인 지적을 바란다는 것 등으로 요약된다(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의 ‘기억’에 따른 것이다).

먼저, (1)에 대해서는 역자의 ‘고투’ 대해서 사의를 표한다. 아마도 눈치 빠르게 이 책의 판권을 입수한 출판사측에서(현재 국내 출판계에서 지젝은 그 ‘난해성’과 무관하게 ‘상종가’이다. 다시 말해서, 그의 모든 책이 앞으로 번역/소개될 수 있다!) <삐딱하게 보기>의 역자를 번역의 적임자로 낙점했던 듯싶다. 소위 지젝 전문가가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므로 그건 자연스런 선택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게 2001년 하반기에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내가 가졌던 생각이기도 하다(그건 ‘번역이 그다지 나쁘진 않겠구나.’라는 안도감을 내포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젝의 책으로선 비교적 쉽다는 ‘영화책’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얘기일 뿐이고(해서 어떤 경우에도 지젝의 책이 촘스키의 책처럼 팔리거나 읽히길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이라크’에 대한 책이라 하더라도), 거의 ‘고공비행’ 수준의 이론적 담론을 제대로 포착해서 격추하기란, 즉 제대로 소화해서 번역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사실 지젝을 읽는 즐거움은 그러한 난해한 이론/담론들의 ‘액츄얼리티’를 맛볼 수 있다는 데 있지만. 하여간에 비록 오역들을 지적하긴 했어도, 그런 이유 때문에 나라도 이 번역에 선뜻 나서지는 못했을 것이다.

부르디외 전공자의 부르디외 번역이 상식 이하라거나(그래도 부르디외 연구서를 낸다!) 크리스테바 전문가의 크리스테바 번역이 기대 이하라는 것이 우리의 번역 현실이다(그래도 크리스테바 연구서를 낸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앉아 있어도 대충 ‘존경’받을 교수들이 굳이 번역이란 ‘고투’에 나선 데 대해서 비난만 할 수는 없다(물론 이런 경우 못 믿을 건 번역서들보다도 그 ‘놀라운’ 연구서들이지만).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전공자’나 ‘전문가’란 타이틀의 ‘허명’에 대한 부수적인 깨달음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굳이 그러한 오역들에 대해서 ‘인내’하지 못하고, 속된/헛된 ‘분별’에 나서는 것은 대략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는 저작권 보호법이 걸려 있기에, 한번 출간된 인문 번역서가 재번역/재출간되기를 기대한다는 것이 상당히 무망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번 오물을 뒤집어쓰게 되면 다시 손써볼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이건 역자들로서도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저작권이 적용되지 않는 고전의 경우라면 사정이 다르다. 나이브하게 말해서, 엉터리 번역서들이 난무해도 된다(나는 이 책들의 오역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 거기에 들인 사회적 비용이 아깝긴 하지만, 다시 제대로 번역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문 ‘이론서’들이 그런 기회를 잡을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지젝의 <향락의 전이> 국역본은 정말 그런 희박한 가능성을 붙잡았지만(그런 사례로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도 들 수 있다) 내차버린 경우이다(역자도 번역만 하지 않는다면 정신분석 ‘전문가’로서 충분히 존경받을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둘째는 인문학 자체/전체를 희화화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의 기본은 말(로고스)에 대한 사랑(필로스)이며 존중이다. 그 유구한 언어적 전승 속에서 거장들의 내면적 고뇌와 사유의 높이가 언어에 의해, 혹은 언어 자체로서 우리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하지만, 오역에서 우리는 이러한 ‘경이’는커녕, 짜증(‘고뇌’ 대신에)과 장벽(‘높이’ 대신에)만을 경험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것은 말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대상언어뿐만 아니라, 우리말에 대한 사랑과 존중도.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따금 이런 염치없는 오역서들을 통해서 젊은 대학생들이 ‘인문학에 대한 이미지’를 갖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경우 그들은 인문학을 포기하거나(“그 책 너무 어렵던데요. 제가 머리가 나쁜가봐요.”) 무시하게 된다(“인문학? 맨날 괜히 밥 먹고 알지도 못할 소리나 해대는 거 아닌가요?”). 서로 짝패인 이 포기/무시가 이들의 탓인가? 인문학을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이런 반응들을 접할 때마다 안타깝고 화가 난다. 그리고 전의를 다지게 된다. 앉아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으므로. 말로는 인문학을 한다는 인문학의 배덕자들에게…

다시 <히치콕>의 경우. 내가 앞에서 얘기한 것은 오역의 일반론이지 이 책이 오물의 범벅이라고 얘기하는 건 결코 아니다. 역자의 해명 이전에도 나는 이 책이 ‘읽을 만한’ 책의 범주에는 든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다른 책들에 비해서 특별히 오역이 많은 것은 아니란 점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다른 번역본(‘러시아어본’이나 ‘영어본’)을 참조하지 않는다면, 이 책을 읽어나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분류하자면, 그런 도움 없이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 ‘좋은 번역’이고, 그런 도움과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이 ‘읽을 만한’ 번역이며, 차라리 안 읽는 게 더 이해에, 그리고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번역이 ‘나쁜 번역’이다. 물론 나쁜 번역의 경우에도 반면교사로서, 오역의 교보재로서 충분히 활용될 수 있는 여지는 있다.

어쨌든, 아무리 ‘적임자’에다가 ‘경험자’라 하더라도 ‘영화학’을 전공한다는 이유만으로 지젝의 ‘영화책’을 누워서 떡 먹기로 번역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건 철학 전공자, 심지어 정신분석 전공자였더라도 마찬가지였을지 모른다. 작년 내한 강연 때의 번역문들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데, 그 번역문들이 올 가을쯤에 어떤 모양새로 출간될지 나는 (벼르면서) 기다리고 있다(복사된 유인물에서의 오역과 정식으로 출간된 책의 오역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물론 곧 쏟아져 나올 ‘지젝들’에 대해서도 나는 기대와 우려를 함께 가지고 있다.

다시 돌아가서, 요컨대, 지젝의 책을 번역하면서 일부 오역을 한다는 것은 역자 개인의 ‘역량’에서만 비롯되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그건, 현단계 우리 인문학 수준, 조금 좁혀서 인문서 번역 수준의 문제이고(지젝을 번역할 만한 지적 토양과 ‘언어’가 아직 우리에겐 잘 준비돼 있지 않다), 우리 출판계의 총체적인 번역 여건과 (출판)역량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말해서, 우리 인문학계와 출판계는 좋은 번역을 위해서 얼마나 투자하고 있을까? 번역에 대한 학계의 무관심은 이미 ‘관행’이 되어 있으므로 길게 늘어놓을 것도 없고(북매거진 <텍스트>의 지적을 옮기자면, “(우리 학계는) 다른 지식인의 논문이나 외국 문헌을 베끼는 ‘표절’은 예사이고, 응당 책임져야 할 ‘번역’도 나 몰라라 하면서 숨겨둔 무공비급인양 ‘원전’을 활용한다.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데 힘써야 할 학회는 조폭처럼 치열하게 지역(나와바리)을 관리하고 소속원을 비판하면 떼거리로 몰려가 비판자를 공격한다. 그러다보니 자기 지역을 침범하지 않는 이상 상대방에 대해 침묵하는 ‘기묘한 공존’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더 안타까운 점은 이런 부패가 소위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번역자들을 ‘등쳐먹고’ 사는 출판계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을까?

<히치콕> 번역을 예로 들어보자면, 이 책이 재판을 찍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3,000부를 찍었다고 할 때, 역자의 몫으로 돌아가는 번역 인세(대박이 안 날 만한 책들은 다 인세이다)는 17,800원(도서정가)*0.07%(인세)*3,000(부수)=3,738,000원이다. 물론 이건 내 추측이고, 실제와는 약간 차이가 있겠지만(*실제로는 훨씬 적은 액수의 번역료를 받았다고 한다), 개정판이 나올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역자의 예상을 고려하면, 그 차이는 크지 않을 거라고 본다. 그러니까, 대략 400만원 이하의 번역료를 보수로 받는 셈이다. 그러니까, 한 달 정도에 이 책의 번역을 해치울 수만 있다면, 그럭저럭 ‘수지’를 맞출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내가 보기에 이 책의 견적은 최소한 하루에 10시간씩 두 달 꼬박이다. 그것도 영화학과 근대철학, 그리고 정신분석학에 대한 ‘예비학습’이 얼마간 되어 있다는 전제하에서. 그리고 물론 번역 중에라도 구할 수 있는 히치콕의 영화들은 다 구해서 보는 편이 오히려 시간을 절약하도록 해줄 것이다(물론 이 비용은 역자 부담이다). 그렇게, 두 달 동안을 이 책에 전념할 때 받을 수 있는 보수가 한 달에 200만원이 안된다(대개의 인문서 번역 형편이 그렇다). 당신이라면 이 ‘자원봉사’ 수준의 번역을 하겠는가?

 

 

 



따라서, 3년에 걸쳐 <히치콕>의 번역이 이루어졌다는 역자의 고백을 그의 게으름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역자후기에 따르면, 이 번역은 “아내와 엄마로서, 선생이자 학생으로서 거의 분열적으로 살아가는 옮긴이”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남편과 아빠로서, 선생이자 연구생으로서의 분열적인 삶을 정상인양 살아온” 나는 5년 전에 맡은 번역도 아직 끝내지 못하고 있으므로 ‘게으름’으로만 치자면 내가 한 수 더 위이지만, 거듭 말해서, 그건 ‘게으름’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건’의 문제이다. 아주 실제적으로 말해서, <히치콕> 같은 경우 적어도 6개월간 매월 200만원 정도의 수입이 보장될 경우에나 번역에 전념할 수 있고, 제대로 된 번역이 나올 수 있다(*물론 학술진흥재단 등에서 번역지원 사업을 벌이고는 있지만, 박상익 교수의 지적대로 1년간 지원총액이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 정도에 머문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하긴 월터 카우프만의 <인문학의 미래>는 대표적인 우리말 오역서의 하나이다!).

가령,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 박사연구자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공모하는바, 채택될 경우 매월 200만원씩 1년간 지원을 받는다. 그리고 그 지원에 대한 의무는 등재학술지에 한 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 인문학계에서 제대로 된 <히치콕> 번역(400쪽)보다 더 많은 피와 땀을 요구하는 ‘논문’(30쪽)이 년간 과연 몇 편이나 될지 의심스럽다. 그러니 (논문을 쓰는 대신에) 누가 (바보같이!) 번역을 하는가? 번역이나 하고 있는가? 이러한 여건 때문에 ‘악순환’이 생기는바, 번역에 대한 사회적 (상징계의!) 무관심과 ‘부적절한’ 보수 때문에 번역의 질이 떨어지고, 번역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번역에 대해 신뢰가 형성되지 않으며(책을 사보질 않는다), 신뢰가 없기 때문에 번역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냉대가 정당화되는 것이다(그래서 책을 많이 찍지 않는다). 그러니, 다시 번역자에게 제대로 돌아갈 몫이 없는 것이고. 해서 또 ‘저렴한’ 보수에 맞춘 때우기식 번역이 양산될 수밖에…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디에서 끊어야 하나?

내 생각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한 가지 방법은 여건이 좋아지길 기다리는 것이다(여건이 문제라고 했으니까). 기다리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번역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고(아예 번역학과가 생기고, 번역가가 최고 유망직종이 되는 등) 번역자에 대한 대우가 달라질지(그래서 번역자들이 다 외제차를 타고 다닐지) 누가 알겠는가?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고, 아마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질 만한 일이다. 어쨌거나 ‘그런 무관심을 딛고’ 여전히 고도(Godot)를 기다려 볼 수는 있으리라.

그리고, 다른 한 가지 방법은 번역자들이 알아서(아쉬운 사람이 우물 파듯이) ‘어려운 여건을 딛고’ 번역의 질을 좀 높이는 것이다(이런 걸 ‘살신성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경이로운’ 번역서들을 턱턱 내놓음으로써, 독자의 발길을 되돌림과 동시에 번역을 무시하던 이들의 코를 좀 납작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전에 번역자 조합을 만든다는 전제하에서) ‘번역자 조합’의 조합원 결의를 통해서 일제히 ‘파업’에 돌입하는 것이다(나 또한 번역을 했고, 또 하고 있으므로 그 조합원의 자격을 갖고 있다). 번역자 인권과 제대로 된 보수를 보장받기 위해서. 번역자 시국선언과 양심선언이 뒤따르고, 한 번역자가 한강에 투신하는 등등…

어느 쪽이 더 리얼하고, 덜 리얼한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물론 가장 좋은 건, 두 가지가 상호 상승작용하는 것이다. 가령, 번역자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얼마나 고투하고 있는지가 TV에 방영되고, 거기에 연이어 사회적 관심이 갑자기 증폭되면서 번역자들을 위한 성금(지원금)이 물밀듯이 기탁되고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그 기폭제가 번역자들의 ‘고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현단계 부실 번역의 책임을 사회적 여건의 탓으로 돌리면서도 번역자들의 책임 또한 강조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동료 번역자들의 노고에 경의와 동정을 표하면서도, 우리 스스로를 더 채찍질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달리는 말끼리 서로 더 채찍질을 하는 것은 더 잘 달려보자는 뜻이지, 가긴 어딜 가냐는 뜻이 아니다.

그리고 (2)에 대해서. <히치콕>의 경우에 동일한 영화명이 다르게 번역된다든가 하는 실수는 역자의 실수였다 하더라도 편집/교정 과정에서 다 체크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편집/교정자가 눈대중으로 책을 읽는 사람을 뜻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도 ‘여건’의 탓이 크다. 편집/교정자들이 극빈층의 보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니까(그들의 ‘직업적’ 매저키스트 성향은 사회심리학적 분석대상이다). 그러니까, 그들로서는 두 눈 부릅뜨고 책을 볼 만한 여건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편집/교정자들에게도 다른 방도는 없어 보인다. 눈 빠지게 일하면서 빨리 그들만의 조합을 만드는 수밖에.

 

 

 



가령, <히치콕>의 46쪽에서 <히치콕의 스트레인저>로 출시돼 있다는 은 전부 <스트레인저>로 옮겨지고 있는 다른 대목들과는 달리 <열차 속의 이방인>으로 번역돼 있다(사실 이게 더 맘에 들지만). 이런 사례들 때문에, 나는 복수의 역자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었는데, 그건 알고보니 ‘분열적인’ 역자 한 명의 ‘오점’ 혹은 ‘얼룩’이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역자가 이런 영화명을 비롯한 고유명사들을 번역과정에서는 그냥 원어로 놔두었었는데, 나중에 (자료조사 등을 한 다음) 알아서 처리해야 할 편집진에서 제대로 일처리를 하지 않은 것. 그리고 다른 가능성은, 역자가 불우한 여건 속에서 정신없이 번역하느라 이렇게 저렇게 옮긴 것을 편집진에서 제대로 체크하지 못한 것.

사실, 이런 사례는 굉장히 사소한 것이지만(잘된 번역에서라면, ‘즐거운’ 옥에 티에 불과하다), 번역이 꼬이게 되면 그에 대한 신뢰를 무섭게 잠식해가는 계기가 된다. ‘의혹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는 것이다(요컨대 역자나 교정자가 독자만큼도 책을 세심하게 읽지 않은 것이 되기 때문에). 물론, 편집/교정자들이 박봉에 ‘고투’하고 있다는 건 이미 언급한 대로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실수’가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이건 책임 이전에 ‘자존심’의 문제이다. 내가 읽고 이해할 수 없는 책, 완벽하다고 내가 자신할 수 없는 책을 내지 않겠다는 것. 그게 ‘자존심’이다. 물론 이런 자존심을 격려하고 북돋아주는 것이 출판사의 사장과 편집장 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의 하나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3), (4)에 대해서는 특별히 덧붙일 말이 없다. 안면도 없는 역자를 난데없이 난처하게 만들었으니까 한편으론 내가 미안할 따름이다. 바라건대, 개정판을 찍었으면 하지만(그러자면 역설적이게도 많이 읽혀야 한다!), 많이 팔린다는 ‘지젝’이 그럴 형편이 아니라면…

결자해지, 매듭은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고,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라도 책의 나머지 장들에 대한 ‘독해’는 계속될 것이다(*실제로 계속됐었다). 다만, 다른 사정들도 있기 때문에, 그것이 언제 마무리될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이것이 (5)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 물론 한두 장씩 읽으면서, 영화를 보지 않고 이 책을 읽는 것이 얼마나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인지 실감하고 있지만…



그리고 두번째로, 한 독자의 반응. 그것은 (1)(오역에 대한 지적들을) 관심 있게 읽고 있다는 것, (2) (하지만 번역을 기피하는 풍조 속에서) 자칫 ‘인신공격’적일 수도 있는 지나친 비판은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다(*박상익 교수도 이런 문제는 조용히/넌지시 처리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충고한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짤막하게 나의 의견을 밝혔지만, 보다 상세한 의견 개진이 필요한 것 같아서 따로 자리를 마련한다.

번역/오역을 ‘응시’하는 나의 자리는 이중적이다. 그것은 (1) 같은 번역자, 즉 동업자로서의 자리와 (2) 일반 독자로서의 자리이다. 그리고 이 자리들에 따라서, 이미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공식적인’ 명분에도 불구하고, 번역/오역에 대한 태도는 상당히 달라진다. 내가 분열적인가? 언젠가 밝혔지만, 나는 (별로 안 팔린 책이지만) 번역서를 낸 바 있고(러시아 소설이다), 또 현재 번역중인 책이 있으며(러시아 소설이다),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다면(여건도 좋아져야겠지만!) 얼마든지 다른 종류의 인문서 번역에도 참여할 예정이다(서너 권 정도 검토중에 있다). 또 이전에 번역 스터디에도 여러 번 참여한바 있으며(가다머와 리쾨르, 에코, 굿맨 등의 번역이었는데, 완역/출간되지는 않았다), 교정이나 잡스런 번역에도 적잖게 동원되었었다(바흐친, 로트만 등). 요컨대, 나는 이 분야의 문외한이 아니다. 해서, “(그렇게 잘났으면) 옆에서 비판만 하지 말고, 직접 나서보지 그러느냐”는 식의 간혹 ‘뒤로 듣는’ 비아냥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나는 뒷짐지고 옆에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에크리>(라캉)와 <피네간의 경야>(조이스), <구조적 안정성과 형태발생>(르네 톰) 등의 ‘숭고한’ 책들을 번역하는 일만 아니라면(그건 나의 능력에 부치는 일이다, 마치 박상륭의 <칠조어론>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일처럼. 대신에 ‘교정’해 볼 생각은 있다. 그럴 만한 능력은 있다고 생각하므로), 여건이 허락하는 한, 나는 어떤 번역에도 도전해볼 의사를 갖고 있다(번역이란 언어를 통한 존재의 전이라는 ‘사건’이다. 그러한 ‘전이’에, ‘사건’에 어찌 무관심할 수 있을까?). 어쨌든, 이러한 ‘번역자’의 입장에서라면, 가급적 ‘동료’의 ‘실수’ 등에 대해서는 눈감아주는 것이 ‘의리’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 자신을 위해서도 유리하다. 동료 의사의 실수를 의사들이 눈감아주고, 동료 변호사의 비리를 변호사들이 눈감아주는 것처럼. 적당히.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리고, 실수는 누구나 하는 거니까. 그만한 일로 낯을 붉히는 건 서로에게 유익하지 않으니까. 나도 ‘한국인’으로서 그 정도의 ‘상식’은 갖고 있다.

그런데, 그게 ‘번역자’가 아닌 ‘독자’의 자리로 오게 되면, 전혀 문제의 양상이 달라진다. 번역자는 같은 업종의 ‘공급자’로서의 동일한 이해관계를 갖지만(간혹 불일치할 수도 있다), ‘독자’로서의 나는 ‘소비자’로서 ‘공급자’인 번역자와는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다(물론 일치한다면 더 좋겠지만). 이건 기본적으로 기브 앤 테이크의 관계, 주고 받는 관계이다. 독자로서 내가 읽는 책은, 누구한테 기증 받은 책이 아니라, 내 돈 주고 산 책이다(이 책에 대한 과도한 지출 때문에 나는 더러 수모도 당한다!). 그리고 그 돈은 어디 가서 주워온 돈이 아니다(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을 보라)!

때문에, 내 돈 주고 산 책이 엉터리라거나 불성실하다면 그건 관용의 윤리로 접근할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다!). 그건 ‘공급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일종의 ‘사기’니까. 내가 지젝을 샀는데(나는 지젝을 좋아한다!), 뜯어 읽어보니까 지젝이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무슨 ‘수작’이 들어 있다면(그래서 ‘지젝’을 망쳐놓았다면) 관대한 당신은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거라며 넘어가는가? 당신이 비싼 돈을 주고 이브닝 드레스를 샀는데, 알고 보니까 남대문 시장에서도 파는 ‘짜가’였다면, 그런데 반품도 안된다면, 그래도 당신은 울며 겨자먹기로 그냥 넘어가는가? 있는 건 돈밖에 없으므로? 그냥 모르고 입고 다니는데, 그걸 굳이 ‘짜가’라고 옆에서 찔러주는 친구가 있다면, 그런 ‘못된 친구’와는 차라리 절교할지언정 그걸 만들어 판 사람에게 무슨 잘못이 있나, 모르고 산 내가 잘못이지, 라고 생각하는가?

해서 사정은 복잡한 듯하면서도 아주 단순하다. 물론 번역서의 경우, 최종적인 책임은 번역자(피고용인)가 아닌 출판업자(고용주)에게 있다. 하지만, 역자 후기 등에 ‘사장님’에 대한 감사가 곧잘 언급되더라도, 책의 표지에는 저자와 함께 역자의 이름이 박힌다. 그건, 적어도 책의 만듦새는 출판사에서 책임지지만, 내용만큼은 역자가 책임을 감수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공급자(번역자)-소비자(독자) 간에는 일종의 거래가 성립되는 것이고, 이 거래에는 아주 기본적인 윤리가 개입한다. 제값을 치르고, 제값의 내용(읽을 거리)을 공급받는다는 것. 그리고 만약, 서로에게 제값이 아니었다는 게 밝혀지면, 이건 상대방에 대한 ‘기만’이자 ‘모욕’이다(당신은 그냥 대충 이 정도 수준에서 읽고 떨어져라? 나도 어려운 책이니까 그냥 구경이나 하고 말지 그래?). 오역에 대한 나의 지적/비판은 그런 기만/모욕에 대한 대응이고, 응전이다.

오역에 대한 그간의 지적이 지나치게 신랄해서 간혹 ‘인신공격’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한 독자의 반응 때문에 하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의 발단이 ‘공격을 위한 공격’이 아니라 ‘방어적인 차원’의 공격이라는 점이며(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또 그런 부실한 책들을 읽게 될 것이다), “이렇게 번역하다니, 당신 바보 아니냐?”는 식의 어조는 내가 받은 ‘모욕’(이렇게 번역해도 바보들이 뭘 알겠어?)과 금전적 손실(수입만을 따지자면, 나는 빈곤층에 속하는 시간강사이다. 소위 '화이트 프롤레타리아'이다)에 대한 대응으로서는 그래도 소심한 편에 속한다는 점이다(이 생각을 하면 다시금 분노가 솟구친다. <킬 빌>을 다시 봐야겠다!). 고작 카페 한두 곳과 인터넷 서점 한 곳에 ‘의견’을 올리는 게 내가 하는 일의 전부 아닌가?

그로 인한 역효과?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역효과는 ‘인신공격’을 받은 번역자들이 ‘은퇴’하는 것이 아니라, 더 열성적으로 ‘현역’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즉 부실 번역들을 계속 양산해내는 것이다(게으른 자들에게 축복을!). 그런데, 그것은 동시에 나의 지적/비판의 정당성을 더 확증해 줄 것이기 때문에(“욕먹을 만하군!”) 그들의 전략이 궁극적으로 성공할 거 같지 않다. 그러니 내가 그 역효과에 대해서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닌 듯하다. 물론 잘못된 역자를 만난 몇 권의 책들이 더 희생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안타깝지만. 그리고 만약에, 그들이 자존심을 회복해서 더 좋은 번역서로 ‘컴백’한다면, 그건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며 이건 ‘역효과’가 아니라 ‘효과’이다.

나는 단지 (애서가로서!)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책’에 대해서 근심할 따름이며, 그에 대해서만 말할 따름이다. 내가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이유도 없이 욕할 이유는 전혀 없다. 나는 모든 오역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와 함께 제대로 된 번역에 대한 나의 의견을 밝혔다(그리고 그에 대한 반박 중 수용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수용하기도 했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번역자도 실수를 한다. 그런데, 그건 번역자 자신이 가장 잘 알아야 정상이다(독자의 입장에 서서 한번만 읽어보면 알 수 있으니까). 번역자 자신이 그 책을 가장 깊이 있게 읽기 때문이고, 또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대충 둘러대고, 틀어막고, 얼버무리고, 살짝 빼고 한 내용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번역자 자신일 수밖에 없다. 그걸 모른다면, 번역자로서는 수준 이하이고, 자격 미달이다(이런 번역자들에겐 ‘인신공격’도 부족하다).

거꾸로, 어느 정도의 수준과 자격을 갖춘 번역자에게서라면 문제가 되는 것은 그의 ‘역량’이라기보다는 ‘성의’이다(‘여건’이란 건 이 ‘성의’를 끌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요컨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 긍정문이 부정문으로 바뀐다거나 문맥상 전혀 맞지 않는 내용이 이어진다거나 고유명사 표기를 헷갈리게 한다거나 우리말 문법에 맞지도 않는 문장을 쓴다거나(통사론적으로나 의미론적으로) 하는 따위들은 대개 고등교육을 받은 번역자들로서는 능히 피해갈 수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내가 비판하는 것은 그의 무능력이 아니라 고집스런 불성실과 아집, 그리고 부정직이다. 대충 얼버무리고, 황당한 걸 갖다붙이고, 자신이 이해가 안 돼도 넘어가는 태도 말이다. 내가 문제삼는 것은 그런 노력하지 않는 태도, 거만하고 방만한 태도이다. 독자가 무서운 줄 안다면, 그런 식으로 함부로, 대충 번역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도 이해가 안되는 책을 번역해서 출간하는 만용을 부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나쁜 번역서’들을 두고 하는 얘기이다). 그게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따라서, 한 독자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독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은 부실한 번역서들에 대해서까지 “왜 그렇게 하셨어요? 감히 말씀드리거니와, 저라면 이렇게 옮겨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한번 봐주시겠어요?…”라는 식으로 예의를 갖출 생각을 나는 갖고 있지 않다. 사실, 그런 똘레랑스(불간섭의 관용주의)야말로 지젝 자신이 경멸해 마지 않는 태도이다(그가 가장 맘에 들어하는 영화 중의 하나가 <파이트클럽>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회피하거나 얼버무리지 않고, 외상적 실재와, 혹은 적대(나는 상냥하게 말하지 않는다!)와 직접 대면하는 것이다(이른바 ‘실재의 윤리학’이다). 오역의 실상과 직접 대면함으로써만, 그런 자극과 충격을 정면으로 응시함으로써만, ‘나의 번역’은 개선될 수 있다. 창피하다거나, ‘인신공격’이라거나 하는 것은 부차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이 참에 오역의 문제에 대한 나의 의견을 확실히 밝혀두고자 해서 이런 글을 쓰게 됐다. 결론은 독자에 대한 번역자의 예의란 것인데, 사실 거기에 덧붙여 ‘책에 대한 예의’ 또한 나로선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여기선 더 부연하지 않겠다. 다만, “복사된 유인물에서의 오역과 정식으로 출간된 책의 오역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라는 말에서 그러한 생각을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부실한 번역의 엉터리 책들은 도색잡지보다도 부도덕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기본적으로 책은 고급 누드집만큼이나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며, 그러해야 한다.



끝으로, 나쁜 번역서들만 판치는 건 아니라는 점을 밝혀두기 위해서, (드물긴 하지만) 좋은 번역서들에 대한 옹호도 곁들인다. 내가 직접 읽은 한정된 범위 내에서 말하자면 <데리다와 예일학파>(문학동네)나 <니체-데리다, 데리다-니체>(책세상) 같은 건 좋은 번역서였다(후자는 내가 갖고 있던 영역본을 불필요하게 만들었다). 역자들은 모두, ‘관행적으로’ 존경받는 교수들이 아니라 박사과정에서 ‘어렵게’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이 책들에서도 약간 미심쩍은 곳(동의하지 않는 곳)이나 오타 등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옥에 티에 불과하다. 해서, 나는 이들 번역자들의 이름을 기억해 두고 있으며, 그들의 또 다른 번역서들까지도 주목하고 있다. 다른 번역서들에서도 그러한 역자들이 속속 나오기를 기대한다…

06. 0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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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6-02-13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역투성이 번역본들이 "짜증"과 "장벽"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종종 '창조적 오역'으로 재생산되는 경우도 있지요..^^ 크리스테바 책을 오역투성이로 번역한 크리스테바전문자의 크리스테바 연구서들도 아마..이런 '창조적 오역'에 의한 결과물일지도 모를 일...^^;;
넘 미워만 해주지는 말자고요..^^
그런데 로쟈님이 번역하신 책을 한번 읽어보고싶은 생각이 드는데 어떤 책인지 좀 알려주세요... 읽어보고 싶네요^^

瑚璉 2006-02-12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생각하는 건데 출판사에서 어떤 책을 출간할 때는 하다못해 단순한 오자 교정이라도 담당할 수 있는 작은 그룹을 운용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참가자에게는 인쇄본 1권 정도 증정.

비로그인 2006-02-13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의 해결책을 보니깐. 거의 자조적이고 시니컬한 느낌이 팍팍 오는 군요.

 


로쟈 2006-02-13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oonta님/ 절판됐습니다. 새로 나오면 알려드리겠습니다.
壺裏乾坤님/ 그것도 방안이겠습니다.
스메르쟈꼬프님/ '전의'도 읽으셔야 합니다.

paby 2006-02-16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는 “왜 그렇게 하셨어요? 감히 말씀드리거니와, 저라면 이렇게 옮겨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한번 봐주시겠어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단순히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추는 문제가 아니라, 지적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문제인 것으로 생각되는군요.

로쟈 2006-02-17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보다는 '과공비례'라는 게 제 소신입니다. 미심쩍은 대목에 대한 '이견'일 경우에는 그런 식으로 자기견해를 밝힐 수도 있지만, (주관적으로) '분명한' 오역에 대해서는 그런 공손한 지적이 제가 보기엔 오히려 역겹습니다. 역자가 '제가 보기에는 이러이러한 뜻인 걸로 사료되옵니다'라고 번역하지 않은 인상...

외로운 발바닥 2006-03-05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지 않은 글이었지만, 후딱 읽어버렸습니다.^^; 로쟈님 덕분에 번역과 오역에 대한 문제점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되었는데 이 글에 압축적으로 번역에 관한 제반 문제가 총 망라되어 있네요. 파이트클럽 사진 밑에서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회피하거나 얼버무리지 않고, 외상적 실재와, 혹은 적대(나는 상냥하게 말하지 않는다!)와 직접 대면하는 것이다(이른바 ‘실재의 윤리학’이다).' 부분 정말 제맘에도 듭니다. 퍼가고 싶은데 언제부터인가 퍼짐이 안되서 부득이하게 복사로 퍼갑니다.

로쟈 2006-03-05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의식에 동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는 지난 1995년 성탄절에 세상을 뜬 프랑스 철학자 엠마누엘(에마뉘엘) 레비나스(1906-1995)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것만으로도 그에 관하여 몇 마디 해야 할 의무감을 갖게 되지만, 며칠전 레비나스의 저작들에 관한 간단한 리뷰를 청탁받기도 한지라 두주 정도 레비나스에 관한 이야기들을 간헐적으로 늘어놓을 참이다. 이건 그 첫번째 이야기이다.

먼저, 지난해 말에 출간된 강영안 교수의 <타인의 얼굴 - 레비나스의 철학>(문학과지성사, 2005)은 레비나스로 가는 여정에 있어서 여러 모로 유익한 길잡이이다. 국내 레비나스 수용에 있어서 '중간결산'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저작인데, 모아놓은 논문들의 절반 정도는 학술지나 문예지 등에 발표된 형태로 미리 읽었기에 나로서(그리고 아마도 일반 독자들에게도) 흥미로운 건 제1장 '레비나스, 그는 누구인가' 같은 총론격의 글이다. '네 문화의 철학자'란 이 글 제목의 인용문구도 거기서 얻어온 것이다. 그에 대해 몇 마디 하기 전에 먼저 간단한 레비나스 수용사. 이하의 인용쪽수는 모두 <타인의 얼굴>의 것이다.

저자가 서론에서 밝히고 있지만 국내에 레비나스를 최초로 소개한 이는 '레비나스의 철학 - '다른 이'의 얼굴'(<문학과지성> 1974년 봄호)이란 글을 발표했던 손봉호 교수이다. 이 글은 <현대정신과 기독교적 지성>(성광문화사, 1978)에 재수록됐다고 하는데, 나는 레비나스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되었던 지난 94년쯤에 찾아서 읽었더랬다. 손봉호 교수의 바톤을 이어받은 이는 제자이기도 한 강영안 교수이다. 1989년경부터 레비나스 철학에 대한 강연과 논문 등으로 가장 왕성하게 레비나스 수용에 앞장 선 공로가 있다.

레비나스 저작 중 최초의 국역본인 <시간과 타자>(문예출판사, 1996)이 또한 강영안 교수의 손을 거쳤다. 그리고는 그의 제자인 서동욱 교수가 그 바톤을 또 이어받게 되는데, <존재에서 존재자로>(민음사, 2003)를 번역출간했을 뿐더러 그의 <차이와 타자>(문학과지성사, 2000)나 <일상의 모험>(민음사, 2005) 같은 저작은 레비나스적 영감에 많은 부분 빚지고 있기도 하다.

세 사람은 모두 (후설 아카이브가 있는) 벨기에의 루뱅대학에서 수학한 경력을 갖고 있기도 해서(김형효 교수도 루뱅대학교에서 학위를 마쳤다) 얼핏 보아도 끈끈한 학연을 이어가고 있다(또한 모두 칸트 전공자/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만하면 '루뱅 마피아'라고 불러도 무방하겠다. 이 '루뱅 마피아'가 국내 레비나스 연구를 주도하게 된 건 레비나스 연구가 "네덜란드 언어권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다음, 영어권과 독어권에 이어 마침내 프랑스에서 뒤늦게 진행된다"(13쪽)는 사정과 연관이 있다.

네덜란드와 가까운 벨기에의 루뱅대학에도 일찍부터 레비나스 연구가 진행되었던 것인지라(레비나스는 생애의 50년간을 무명의 철학자로 지냈다) 루뱅 유학파들이 가장 먼저 그 수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최근에는 국내 대학에서도 레비나스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이 나오고 있고, 젊은 연구자들의 논문들도 '상대적으로' 넘쳐나고 있으므로 한국의 '레비나스 텃밭'은 앞으로 풍성한 수확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하지만, 그 기대는 아직까지는 기대에 머문다. 일단은 기본이 되어야 할 레비나스 저작의 국내 번역본이 지극히 소략하기 때문이다(대담집을 포함해서 고작 4종이다). 게다가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꼽히면서 전공 논문들에서는 수없이 인용되는 <전체성과 무한>(1961)과 <존재와 다르게 또는 존재 사건 저편에>(1974), 두 권의 철학적 주저가 아직 번역/소개되지 않았다. 그러니 일반 독자들에게 레비나스는 아직 '풍문'에 불과하며 '레비나스 텃밭'은 '그들만의 텃밭'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알렝 핑켈크로트의 <사랑의 지혜>(동문선, 1998) 같은 일급의 에세이를 좋은 번역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 적어도 일반 독자들이 '철학'에 대한 부담감을 다소간 지우면서 '레비나스의 지혜'를 맛보게 해주는 데 아직까지는 가장 좋은 책이 아닌가 싶다(물론 이런 책은 만만한 '에세이'인지라 <타인의 얼굴>의 부록으로 실린 방대한 2차문헌 서지에는 빠져 있다). 더불어 꼽자면, <현대 사상가들과의 대화>(한나래, 1998)에 실린 리처드 커니와의 대담.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왜 '네 문화의 철학자'인가? 그의 태생에 대해서는 이미 적었지만, 그가 타계하고 나자 프랑스의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그를 '네 문화의 철학자'라 일컬었다는데, "리투아니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히브리어 성경과 러시아 문학을 읽으면서 자랐고 독일철학자 후설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에 정통하였으며 1923년 스트라스부르 대학 철학과에 입학해서 1930년 프랑스에 귀화한 뒤 줄곧 프랑스 철학과 함께 숨쉬고 생각해" 온 이가 바로 레비나스였기에, 그리고 "히브리어러시아어, 독일어프랑스어로 책을 읽고 그 문화와 함께 숨을 쉬면서 작업한 철학자였기에" '네 문화의 철학자'라고 부른 것이고 그건 설득력 있는 호명이다. 레비나스의 전체상을 압축해주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니까, 독일과 프랑스 철학의 테두리 안에서만 레비나스를 독해하는 것은 그를 '두 문화의 철학자'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레비나스는 누구인가? 1906년 1월 12일 리투아니아의 카우나스(코우노)에서 태어나서 1995년 12월 25일 새벽에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난 프랑스 철학자이다(폴란드, 라트비아, 벨로루시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리투아니아는 발틱 3국 중 하나로 수도는 빌니우스이고, 카우나스는 두번째로 큰 도시라 한다). 리투아니아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기 이전이라 그의 모국어는 러시아어였으며, 여섯 살때부터 히브리어를 교습받고 그가 처음으로 읽은 책은 히브리어 성경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히브리어 성경(과 탈무드), 그리고 러시아문학이 그의 유년기를 채운 수프였던 것.

 

 

 

 

"자신의 철학적 관심이 히브리어 성경과 톨스토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스토예프스키와 푸슈킨을 읽으면서 형성되었다고 말하는 데서 보듯이 성경과 더불어 문학작품도 (그의) 철학적 사유를 이끌어준 바탕이 된다. 만일 철학이 '인간적인 것의 의미' 또는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행위라면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 셰익스피어와 같은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일은 칸트와 플라톤을 공부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준비가 될 수 있다고 레비나스는 말한다."(20쪽, 이 인용문은 <윤리와 무한>(다산글방, 2000)에서 재인용된 것이다) '철학은 모두 셰익스피어에 관한 명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도 레비나스의 것이다.

그러니까 레비나스를 이해하기 위해서 칸트나 하이데거에 대한 독해 못지 않게 필요하고 또 중요한 것은 도스토예프스키와 셰익스피어에 대한 독해이다(최근에 '레비나스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다룬 논문들이 영어권에서는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레비나스의 철학을 신학적으로 접근하려는 몇몇 시도에도 불구하고 레비나스가 남긴 상당한 분량의 '탈무드 강의'에 근거하여 그의 철학을 이해해보려는 시도는 아직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며, 도스토예프스키 등 러시아문학과의 연관성도 전혀 조명되고 있지 않다(레비나스는 특히 자신이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진 빚을 인정하고 있다). 이런 것이 레비나스 '중간결산'이다. '네 문화의 철학자'로서 그의 크기가 제대로 밝혀지고 그의 철학이 풍족하게 음미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과제들을 남겨놓고 있는 셈...

06. 02. 10 

 

 

 

 

P.S. 자크 데리다와 레비나스의 철학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이미 데리다 생전부터 충분히 주목되어온 바다. 레비나스 연구사에 대해 다루면서 강영안 교수가 던지는 코멘트. "프랑스어권에서는 가장 고전적인 연구로는 역시 데리다를 들 수 있다. <전체성과 무한>에 대해 데리다는 '폭력과 형이상학'이라는 장문의 논문을 써 <형이상학과 도덕평론>(저널)에 두 차례 나누어 싣는다. 이 글은 1967년 데리다의 <글쓰기와 차연>에 약간 개정된 형태로 다시 실린다. 후설과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사유를 극복하려는 레비나스의 시도에 대해 철학을 하는 한 결코 존재론적 사유를 벗어날 수 없음을 데리다는 지적한다."(301쪽) '글쓰기와 차연'은 '글쓰기와 차이'의 오기이다. 참고로, 휴 실버만의 <데리다와 해체주의>(현대미학사, 1998)에서도 한 꼭지를 이 '폭력'의 문제를 둘러싼 데리다와 레비나스의 '싸움'에 할애하고 있다.

하지만 "데리다는 말년에 갈수록 초기 비판보다 훨씬 더 레비나스 철학에 가까이 다가간다. 레비나스 장례식 때 데리다가 했던 조사와 1주기 추모 강연을 담고 있는 <에마뉘엘 레비나스여 안녕>을 보면 데리다가 얼마나 가까이 레비나스에게 다가섰는지 드러난다.(...) 데리다의 후기 철학은 전적으로 레비나스의 영향 아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환대에 관하여>(1997)는 레비나스와 클로소프스키의 환대 개념을 데리다가 자기 식으로 수용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법의 힘>(1994)에서는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 환대라는 레비나스적 '정의'를 세속적인 '법'에 대립시키고 있다."(302쪽)

보다 자세한 논증이 필요한 주장이긴 하지만, 여하튼 데리다를 읽는 데에도 레비나스는 필수적이다. 그리고 거꾸로 레비나스를 읽는 데에도 데리다의 <레비나스여 안녕>은 기꺼이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이 또한 신속히 번역되기를 기대한다(그러니 아직도 구만리이다. 우리는 레비나스에게 '아듀'를 건네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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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6-02-10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되는군요...

로쟈 2006-02-10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많은 과제들을 남겨놓고 있는 글입니다...

비로그인 2006-02-11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사진을 보니 지젝이 화장실에서 바지를 입고 똥을 싸네요. 대략 난감.

yoonta 2006-02-11 0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쓰기와 차이에서의 차이를 차연의 오기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힘들듯..데리다는 차이 la diffe'rence를 차이/차연 la diffe'rance로 표기함으로써 음성중심주의적 동일성이 해체되는 효과를 표현하기위해 저런 신조어를 만들었죠. 소리로는 구분되지는 않지만 문자로는 구분되는 문자의 효과를 보여주기위해서인걸로 알고있습니다. 이것의 한글표기를 차이로 할것이냐 차연으로 할것이냐는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요.. 차이로 해야된다는 사람들은 음성적으로는 차이와 차연이 구분이 없다는 점에 착안하는 것이고 차연으로 하는 사람들은 철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으로 압니다...때문에 어느쪽이 옳은 표기냐라는 문제라기보다는 어디에 강조를 두느냐는 문제라고 봅니다..


로쟈 2006-02-12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기에 책의 원제가 'L'ecriture et la difference'입니다. 'la diffe'rance'가 아니므로 '차연'이라 옮겨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yoonta 2006-02-12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고보니 제가 님 글을 약간 잘못봤네요..
저는 동문선에서 나온 번역본의 제목<글쓰기와 차이>의 제목해석을 '오기'라고 말씀하신것으로 봤는데 그게 아니네요..

님 글을 다시 읽어보니..강영안씨의 저서(301쪽)을 인용하면서..그 글속의 오기를 지적하시는 거군요..^^


로쟈 2006-02-12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데리다의 책명을 <글쓰기와 차연>으로 표기했는데, 그게 오기라는 얘기였습니다.

yoonta 2006-02-12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지금 다시 봤어요..지송...^^
 

집에서 학교로 가는 길은 버스-전철-전철-버스로 이어지는 80분의 여정이다. 방학이라 격일출근 비슷한 걸 하고는 있지만, 당장 다음달부터는 아침 1교시 수업이 이틀이나 잡혀 있는 관계로 보통의 직장인들과 같이 '찌든' 출근길을 보내야 할 참이다(시간도 90분으로 늘어난다. 그 정도면 풀타임 영화상영시간이다). 그런 경우 끼여 있는 몸도 여유가 없지만, 더 유감스러운 건 무언가를 읽을 여유가 없다는 것. 보통 때 오며가며 읽는 신문/잡지도 만원 지하철(일명 '지옥철')에서는 언감생심이기 십상이다. 그러다 좀 느지막하게 출근하는 날이면 '올모스트 헤븐'이다. 유식한 유한계급들은 잘 모르겠지만, 삶은 그렇게 '단순무식'하다.

 

 

 

 

아침에 전철을 타고 오면서는 신문을 읽고 버스를 갈아타고 오면서는,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기 위해서 지젝의 <실재계 사막으로의 환대>(인간사랑, 2003)을 뒤적거렸다. 전체 5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4-5장이 '호모 사케르'를 중심적인 테마로 다루고 있기 때문인데(지젝은 동시대의 가장 중요한 생존 철학자로 자신의 동료들이기도 한 알랭 바디우와 조르조 아감벤을 꼽았다. 나는 <언어와 죽음>이란 책으로 처음 아감벤을 접했지만, 아감벤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은 지젝을 경유한 것이다), 1995년에 처음 출간된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는 이미 여러 외국어로 번역되면서 '고전'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해가고 있다(세번째 이미지가 영역본, 그리고 네번째 이미지는 불가리아어본이다). 아마도 올해는 국역본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한편, 웹진 '자율평론'에서는 아감벤에 관한 자료들이 많이 제공되고 있으므로 관심있으신 분들은 참조하시길). 

한데, 예기치 않은 대목을 다시 읽게 되면서 아감벤에 대한 글은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다(그러니까 그 글에 대한 나의 생각들은 잠시 '대기소'에 머물러야만 되겠다. 그것들도 나름대로 '사케르'이군). 국역본은 이미 지적되어온 대로 '번역의 사막'인지라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내가 읽을 한 문단은 국역본 97-8쪽, 원서 ' Welcome to the desert of the real'(Verso, 2002)의 47-8쪽이다. 국역본에서 인용하되 필요할 경우 별도의 표시없이 수정하여 인용하겠다. 그럼, 웰컴, 지젝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정치체제의 붕괴, 이를테면 1990년 동유럽 공산주의 체제에 대해 생각해 보라. 어느 한 순간에 갑자기 사람들은 게임이 끝났음을, 공산주의가 패배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 단절은 전적으로 상징적이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으로부터 체제의 최종적인 붕괴까지는 단 며칠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같은 순서의 일이 (2001년) 9월 11일 이후에 일어났다고 하면 어쩌겠는가? "

"아마도 WTC(세계무역센터)의 붕괴가 낳은 궁극적인 희생자는 '미국 권역(American Sphere)'이라는 어떤 대타자(the big Other) 형상일 것이다." 이러한 지적에 이어서 지젝이 막바로 떠올리는 것은 미국의 '파트너'였던 러시아(과거 소련)이다. 말하자면 '소비에트 권역(Soviet Sphere)'이 될까? 때는 1956년 2월 제20차 소련공산당 전당대회 때이다. 이때 스탈린 사후(1953) 당 제1서기였던 흐루시초프는 비밀연설(비공개연설)을 통해서 절대권력이었던 스탈린의 과오(!)를 비판한다.  

이 장면에 대해서는 이전에 잠깐 써둔 것을 옮겨온다. 먼저, 스탈린 체제의 과오에 대한 한 논문에서의 인용: "사실 스탈린의 독재와 테러가 국가와 공산당에 가져다 준 피해는 엄청난 것이었다. 우선 스탈린 시대, 특히 1930년대의 테러는 일반 시민들뿐만 아니라,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수많은 공산당 당원과 국가 관리들에게도 엄청난 타격이었다. 예컨대, 흐루시초프의 연설문에 따르면, 17차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당 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 139명 중 98, 70% (주로 1937-38년에) 체포되어 총살당했으며(*니키타 미할코프의 <위선의 태양>(1994)은 이 시기에 대한 영화적 증언이다) 표결권과 심의권을 지닌 [17] 전당대회 대의원 1,966명 중 절반이 훨씬 넘는 1,108명이 반혁명 범죄로 고발되어 체포되었다.’"(*그 연설문이 <개인숭배와 그 결과들에 대하여>(책세상, 2006)로 번역돼 나왔다. 역자는 인용한 논문의 필자인 박상철 교수이다.)

 

 

 

 

그리고 아래 포스터는 <위선의 태양>. 영화 속 코토프 대령 역은 감독 니키타 미할코프가 직접 연기했으며, 딸 나쟈(나디야)는 실제로 미할코프의 막내딸이다(<러브 오브 시베리아>에서도 카메오로 나온다).

"이런 상황은 하위 기관들이나 지방의 경우에도 비슷하였다. 모스크바 시() 당위원회와 모스크바 주() 당위원회에서 1935-37년에 근무했던 서기 38명 중 35, 시 또는 구 당위원회 서기 146명 중 136, 그리고 수많은 국가기관, 노동조합, 경제계, 과학 및 문화계의 지도적인 인사들이 체포되었다.” 하여,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긴 하지만, 대략 스탈린 시대에 처형되거나 감옥에서 죽은 이들의 숫자는 2,000-2,5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체포된 사람은 4,000만 명 가량). 이런 식의 공포정치로 형성된 스탈린 체제’ 덕분에, 당시 소련이 높은 경제성장률을 계속 유지하면서 가장 후진적인 문맹자들의 농업국가에서 국민 다수가 문맹에서 벗어난 도시 중심의 산업국가로 완전히 변모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이러한 체제의 가장 큰 문제는 국가와 당의 기간요원들이 느꼈던 신분의 불안정이었고, 이미 상당한 규모로 팽창되었던 공산당, 행정부, 군부, 경제계 등의 관료계층은 신분 안전과 업무 자율성이 어느 정도 보장되기를 원했. 그리고 그렇게 해서 스탈린 사후에 형성된 것이 안정적인/특권적인 거대 관료조직이다. 이것은 이후에 노멘클라투라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그러니까, 스탈린 시대에서 포스트-스탈린 시대로의 이행 (라캉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주인-담론에서 대학-담론으로의 이행에 대응한다(라캉의 관심은 현대 사회에서 헤게모니적 담론이 주인-담론에서 대학-담론으로 이행한다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지젝, <이라크>, 도서출판b, 171).

 

 

 

 

서구의 경우 그러한 이행이 표시되는 지점이 1968년 혁명이었다면, 소련의 경우에는 이보다 앞선 1956년 제20차 공산당 전당대회(2 14-25)에서의 흐루시초프의 反스탈린 비밀연설이었다. 요컨대, 서구의 68혁명에 짝이 되는 것은 러시아의 1956년 비밀연설이다.

 

 

지젝은 <이라크>에서 이 연설을 본래적인 정치적 행위의 사례로 들고 있기도 하다(물론 비민주적인 형식의 것이긴 하지만). 본래적인 정치적 행위는, 그것의 형식과 관련해서, 민주적인 것과 동시에 비민주적인 것일 수 있다 다른 한편 대중적 의지의 본래적 행위는 폭력적 혁명이나 진보적 군부 독재 등의 형식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스탈린의 범죄를 비난하는 흐루시초프 1956년의 연설은 진정한 정치적 행위였다…”(116-7쪽, 강조는 나의 것) 세번째 이미지가 러시아어본(2004)이다. 

 

 

<이라크>(2004)에서의 이러한 언급은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2002)에서 잠깐 언급된 내용을 보다 확장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02년의 언급은 이 비밀연설이 불러일으킨 파문에 일단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제20차 소비에트 당대회에서 니키타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의 범죄행위에 대해 비난하는 비밀연설을 하는 동안 12명 정도의 대표자들이 신경쇠약을 일으켜서 밖으로 실려나와 의사의 치료를 받았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인 폴란드 공산당의 강경파 서기장 볼레슬라프 비에루트(1892-1956, 왼쪽 사진)는 며칠 뒤 심장마비로 사망한다.(그리고 모범적인 스탈린주의 작가 알렉산드르 파제예프(1901-1956, 가운데 사진)는 며칠 뒤에 권총자살한다.)" 참고로, 파제예프의 소설작품으론 <궤멸>(예문, 1988)과 <젊은 근위대>(중앙일보사, 1990)가 번역돼 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논문에는 <해빙>(중앙일보사, 1990)의 작가 일리야 에렌부르그(1981-1967, 오른쪽 사진)의 회고가 인용돼 있는데, 그에 따르면 “2 25일 비공개회의에서 흐루시초프가 보고할 때, 몇몇 대의원들은 실신했다... 그 보고문을 읽으면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정말 이것을 복권된 사람이 친구들 사이에서 말한 것이 아니라, 중앙위원회 제1 서기(=흐루시초프)가 전당대회에서 말했단 말인가. 1956 2 25일은 나에게, 그리고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에게 위대한 날이 되었다.”(해서 러시아의 1956년은 프랑스에서의 1968년에 값한다.)

 

 

 

 

 

 

 

 

 

  

물론 이 연설의 효과가 문학에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것은 몇 년이 지난 후이다. 수용소에서 돌아온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발표되는 것이 1962년이니까(우리의 경우 4.19와 최인훈의 <광장> 간의 관계가 여기에 대응할 것이다. 한편 우리는 1987년 체제에 대응하는 문학을 갖고 있는가? 혹은 그에 대응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얼른 생각이 나지 않는다). 

 

 

사진 왼쪽은 연설중인 흐루시초프, 오른쪽은 스탈린과 함께 한 흐루시초프. 레닌과 스탈린에 이어서 소비에트의 권좌에 오르지만 소위 '막돼먹은' 언동으로 국내외적으로 많은 물의를 일으켰던 흐루시초프는결국엔 심복이었던 브레즈네프에게 퇴위당한다. 그는 소련의의 권력자들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의 회고록과 증언 등이 우리말로 번역됐었지만 현재는 모두 절판됐다. 다시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이라크>에서 지젝을 조금 더 따라가본다: 이 대담한 조치의 기회주의적 동기들은 뻔한 것이지만(*이 연설을 계기로 흐루시초프는 당권을 장악한다), 여기엔 분명 단순한 계산 이상의 것이 있었으며, 전략적 추론에 의해 설명될 수 없는 일종의 무모한 과잉이 있었다. 이 연설 이후에 사태는 다시는 전과 같지 않았으며, 지도자의 무오류성이라는 근본적 도그마는 침식되었고 따라서 연설에 대한 반응으로서 노멘클라투라 전체가 잠시 마비 상태에 빠진 것도 놀랄 일이 아니었다.(117) 그러니 흐루시초프가 1956년 봄(4월 30일자)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하게 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겠다(그는 1955년 2월에도 표지를 장식했었다).

 

 

여하튼 이러한 지젝의 지적/판단은 옳은 것이다. 다만, 그가 사용한 노멜클라투라란 말에 대해서 나는 유보적이다. 스탈린의 최측근들조차도 그가 신임하는 동안에만 생존할 수 있었던 시대에 (안정적인) 사회계급으로서의 노멘클라투라라는 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소련에 노멘클라투라가 사회계급으로 부상하는 것은 흐루시초프 이후에 들어선 브레즈네프 시대에 와서이다. 따라서 표면적으론 소프트 스탈린 시대처럼 보이지만, 브레즈네프의 시대는 주인-담론의 시대(=스탈린 시대)가 아니라 대학-담론, 혹은 관료-담론의 시대이다. 대학-담론(University Discourse)을 소련의 상황에 맞는 보다 적절한 용어로 바꾸자면, 관료-담론(Bureaucracy Discourse)이 될 것이기에(자가용 운전을 즐겼던 브레즈네프가 출근길에 곧잘 자신이 직접 관용차를 몰았다고 한다. 운전기사는 조수석에 태우고).

 

이 관료-담론 시대의 (유토피아적)최대치는 79년에 만들어진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에 반영돼 있다('모스크바의 지하철'에서 영화의 이미지들은 소개한 바 있다). 소련의 유토피아는 그 영화 속에 있()(냉전시대였던 1970년대가 소련식 현실사회주의 체제의 유금세월이자 화양연화였다. 그 시절의 종말이 다들 브레즈네프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증언하는 아프칸 침공이다(덕분에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서방측에 보이콧됐다. 그리고 이 전쟁의 와중에 브레즈네프는 사망한다). 그러니, 소련보다 한술 더 떠서 아프칸에 이어 이라크에 침공한 미국의 패권 또한 (징후적으로) 사양길에 들어선 것은 아닐까? 적어도 역사는 그렇게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진리는 황제보다 강하다란 푸슈킨의 유언을 비틀어서 말하자면, 역사는 패권보다 강하다.      

 

 

흐루시초프의 정치적 제스처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1980년대 중반의 고르바초프이며, 그의 페레스트로이카이다(페레스트로이카의 문학적 상관물이 요즘 TV시리즈로 방영되면서 다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아나톨리 리바코프(1911-1998, 왼쪽 사진)의 <아르바트의 아이들>(열린책들, 1988; 우아당, 1988)이다. 전체 3부작 가운데, 1부가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 아니, 2부도 번역돼 있다. 이 작품은 2004년에 TV 미니시리즈로 제작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덕분에 재출간된 작품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가운데가 소설 3부작, 그리고 오른쪽이 DVD로도 출시돼 있는 미니시리즈). 한데, 국역본은 절판중인가? 

 

나중에 고르바초프 자신이 고백한 바이기도 하지만, 브레즈네프 시대의 부정적 유산을 물려받은 그에게 소련의 가장 큰 적은 미국이 아니라 (거대)관료체제였다. 그는 (흐루시초프와 마찬가지로) 직접적으로 인민대중과 상대하면서 관료주의를 타파해나가려고 하지만, 그러한 이상주의는 흐루시초프 때와 마찬가지로 조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실패와 함께 소련의 역사는 종말을 맞았고. 고르바초프를 대신하여 들어선 1990년대 옐친 시대를 상징하는 단어는 과두지배를 뜻하는 올리가르흐(복수형은 올리가르히)이다.

 

현재 러시아를 지배하는 계급은 민영화(자본주의화) 과정에서 막대한 이윤과 부를 챙긴, 과거 노멘클라투라의 새로운 버전으로서의 올리가르흐이다(같은 제목이 영화도 만들어졌었다. 옐친 시대의 최대 갑부였던 베레조프스키를 모델로 한). 옐친 시대의 부정적 유산을 물려받은 현 푸틴 정부 최대의 정치적 과제는 (테러와의 전쟁이 아니라) 신흥 노멘클라투라, 혹은 '신종 러시아인'으로서의 올리가르흐를 개혁하는 것인바(그는 석유재벌이자 러시아 최대 갑부 호도로프스키를 감옥에 집어넣었고, 영국으로 도망간 베레조프스키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최근에 그가 지방 자치주 지사를 직접선거에 의한 선출에서 대통령 임명제로 바꾼 것도 나는 그러한 방향에서 이해한다(이건 물론 민주주의의 후퇴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민주적 직접선거에 의해서 선출되는 지사들의 대부분은 지역 마피아였다).

 

요컨대, 푸틴은 일관되게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잡고 있는데(한국사 패러다임으로 얘기하자면, 왕권(王權)이냐 신권(臣權)이냐), 문제는 그 궁극적인 지향점/회귀점이 스탈린이냐, 브레즈네프냐 하는 점이다. 하지만, 나는 임명제 대통령으로서 푸틴이 (주인-서기장이었던 스탈린의 경우에서처럼) 주인-대통령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물론 부정적인 전망만이 있는 건 아니다. 전임자들과는 다르게 푸틴 정부에는 (원유 수출로 챙기고 있는) 막대한 자금력이 있으니까(현재 러시아의 외환 보유액은 1,000억 달러가 넘는다). 과연 좋은 나라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상이 대략 재작년에 쓴 글이다. 주절이주절이 늘어놓았는데, 우리가 떠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자. 제20차 당대회에서 흐루시초프의 비밀 연설이 끼친 파문들, 곧 여기저기서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권총으로 자살하고 난리도 아니었다는 것. 다시 지젝. "여기서의 요점은 그들이 '순수한 공산주의자'였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 대부분은 소비에트 체제의 본성에 대한 어떠한 주관적 환상도 갖고 있지 않았던 잔혹한 조종자들이었다. 무너진 것은 그들의 '객관적' 환상, 곧 '대타자(big Other)'의 형상이다. 이 대타자를 배경으로 해서만 그들은 권력에 대한 무자비한 충동(욕동)을 발휘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자신의 신념을 옮겨놓은 대타자, 즉 그들을 대신한다고 믿어왔던 대타자, 그들의 믿는다고-가정된-주체로서의 대타자가 붕괴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그리고 9. 11 이후에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2001년 9월 11일은 제20차 아메리칸 드림 전당대회의 날이 아니었을까?"(강조는 나의 것) 물론 여기서 '전당대회'가 뜻하는 바는 제20차 소비에트의 전당대회가 의미했던 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대타자'의 붕괴이고 파국이다. 그리고 실상 이 '아메리칸 드림'에 내가 새삼 주목하게 된 것은 며칠전부터 대서특필되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미식축구 선수 '하인즈 워드'  덕분이다. 분량상 이 '아메리칸 드림'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페이퍼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06. 02. 08.  

 

P.S. 아래 성화는 16세기의 것인데, '천국으로 가는 러시아(인)의 계단(A Russian Ladder to Heaven)'이란 제목을 갖고 있다. 멀고도 가까운, 혹은 가깝고도 먼 나라,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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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부터 미열과 두통 때문에 일과를 놓치고 있다. 할일은 많은데 머리는 아프고 손은 더디다. 게다가 어제는 발목까지 삔 탓에 (자업자득이긴 해도) 이래저래 불만이 터져나온다. 그린버그의 글을 정리하는 일을 미루고 잠시 재작년에 "걷어차야지만 자리에서 일어난다!"란 제목으로 모스크바통신에 올렸던 글을 창고에 다시 정리해둔다. 새학기에 러시아문화에 대한 입문 강의도 (다시) 맡게 되었기에 워밍업도 좀 해두어야겠고. 주된 내용은 "러시아에는 얼마만큼이 자유가 필요한가"에 대한 러시아의 영화감독 안드레이 콘찰로스프스키의 인터뷰 갈무리이다. 그런데, 콘찰로프스키가 누구냐고? 이런, 젠장...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1937- )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와 모스크바영화학교 동기생이다. 둘 다 미하일 롬에게서 배웠는데, 비슷한 시기에 졸업작품을 만들고, 1960년대 중반 러시아 영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다.

콘찰로프스키의 데뷔작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타르코프스키의 경우 졸업작품은 <증기롤러와 바이올린>이고 데뷔작이 <이반의 어린시절>(1962)이었다(콘찰로프스키는 <증기롤러와 바이올린>의 시나리오도 썼다). 1962년 베니스영화제의 황금사자상 수상작이다.

참고로, 주인공 ‘이반’으로 나왔던 소년도, 지난달에 우연히 TV 인터뷰를 보니까, 중견 영화감독이 돼 있었다. 그의 이름은 니콜라이 부를랴예프이다. 혹 소년의 얼굴이 생각나시는가? 아래는 그 '소년'의 어린시절과 최근 모습이다.

그리고, 타르코프스키의 두번째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1966)의 시나리오가 바로 콘찰로프스키와의 합작이다.

콘찰로프스키는 내가 알기로 타르코프스키보다 먼저 70년대 중반에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소비에트 몰락 이후 1990년대 중반에 다시 러시아로 돌아왔다(정확한 년도는 알지 못하며 짐작에 그렇다). 그의 헐리우드 시절 초기 대표작이 <폭주기관차>이며, 스탈린의 전속 영사기사의 삶을 다룬 <이너 서클>이 또한 그의 작품이다(<아마데우스>에서의 ‘모차르트’가 주연을 맡았다. 톰 헐즈이던가?). 그밖에도 미국에서 활동하며 많은 영화와 TV시리즈를 만들긴 했지만(<탱고와 캐쉬>, <마리아스 러버> 같은 영화들도 떠올려볼 수 있겠다), 비평가들은 보통 그가 젊은 시절의 ‘재능’을 낭비한 걸로 평가한다. 동기였던 타르코프스키의 예술적 성취와 비교해서도 그렇고, 러시아 영화의 ‘황제’라고도 불리는, 그의 동생 니키타 미할코프와 비교해서도 그렇다(콘찰로프스키의 풀네임은 ‘안드레이 미할코프-콘찰로프스키’이다. 거기서 ‘미할코프’를 떼버린 이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며, 이 형제의 사이가 원만한지에 대해서도 나는 알지 못한다).



러시아로 되돌아온 이후에도 콘찰로프스키는 영화를 만들고 있으며, 내가 알기로 그의 최신작은 1996년의 제1차 체첸전쟁을 다룬 <바보들의 집>(2003)이다(실화를 다룬 이 영화의 배경이 전장(戰場)의 정신병원이다). 이 영화로 그는 제59회 베니스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영화의 비디오CD를 사놓고 아직 다 보지는 않았는데, ‘문제의식’에 있어서 에밀 쿠스투리차의 <언더그라운드>와 유사한 종류가 아닐까 짐작하고 있다.

어쨌든 ‘타르코프스키의 친구’ 혹은 ‘미할코프의 형’ 정도로 나는 그를 자리매김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읽은 인터뷰는 그의 ‘존재감’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래서 아예 번역까지 해버렸다. 번역은 ‘정확성’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의역했는데, 그게 ‘유려함’에 이르지는 못할지라도 읽기에는 더 무난할 듯해서이다. 참고로, 나는 인터뷰 내용 중 많은 부분에서 콘찰로프스키에게 공감하는데, 이 때문에 같이 수업을 듣는 독일 학생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내 의견(‘자유론’)은 번역문 뒤에 간략히 밝히기로 하겠다.

인터뷰가 게재된 지면은 주간신문인 <논거와 사실(영어로는 ‘Arguments and Facts’)>인데(사진), 발행부수가 많은 주간지의 하나라고 한다(우리의 <일요신문> 같은 종류이다). 어제 처음 한 부 사봤는데, 9루블로 표시된 정가와는 달리 구내에서는 11루블(450원쯤)에 판매하고 있었다. 전체 32면. 일간지인 <이즈베스찌야>나 <니자비씨마야>(우리말로는 ‘독립신문’)와는 달리 활자나 체제가 좀 조잡해서, 정말로 ‘유력지’인지는 의심스러웠다(하긴 대부분의 신문이 그렇지만). 그리고, 정확한 인터뷰 시점은 확인하지 못했다. 러시아 두마(=의회) 선거 직후인 듯한데, 그 선거가 언제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인터뷰에서 제기된 문제가 여전히 현재적이기 때문에(지난주에도 ‘러시아에서의 자유’라는 주제의 TV토론이 있었다), 시점에 구애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인터뷰의 제목은 “걷어차야지만 자리에서 일어난다”이다. 인터뷰는 한 문단의 서론 이후에 시작되며, ‘기자들’이라고 표시되지 않은 문단은 전부 콘찰로프스키의 말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인 주석에는 *표시를 했다. 이하는 번역문이다.

의원 선거가 끝나고 러시아에 사실상 단일정당 체제의 두마(=의회)가 형성되자 우려의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논거와 사실>의 지면에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아버지’ A. 야코블레프, 반체제작가 V. 부코프스키 등 여러 사회활동가들의 목소리가 실렸다. 그들은 러시아에 대두되고 있는 ‘우려할 만한 정세들’에 대해서 지적했다. 즉, 우리가 지난 수년간 각고의 노력으로 쟁취해온 시민권적 자유들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한편, <러시아에는 얼마만큼의 자유가 필요한가?>란 문제와 관련하여 이와는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 저명한 영화감독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는 <논거와 사실> 기자들과의 대담에서 예기치 않은, 역설적이면서 상당히 논쟁적인 자신의 견해를 표명했다.

-무엇보다도 먼저, 러시아 국민에게 어떤 요구들이 존재하는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만약에 무엇인가에 대한 요구(*영어의 ‘need’에 해당한다)가 사람들에게 없을 경우에는, 아무리 유익한 것을 제공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수요를 얻어내지 못할 것입니다. 가령 캐비어(*상어알젓) 한 양동이를 세네갈 사람들한테 제공한다고 해봅시다. 과연 얼마나 먹고 싶어할까요! 그들은 이 특별한 음식에 거의 손도 대지 않을 텐데, 그건 캐비어가 나쁜 음식이어서도 아니고, 그들이 모자란 사람들이어서도 아니죠. 세네갈 사람들, 물론 훌륭한 국민들인데, 단지 그들에겐 캐비어에 대한 요구가 없을 뿐입니다.

같은 질문을 러시아에도 던져봅시다. 과연 이 나라에서 언제 자유에 대한 요구가 객관적-역사적 조건으로서 제기된 적이 있습니까? 대답은, 유감스럽게도, 부정적입니다. 플레하노프(*러시아 맑스주의의 ‘아버지’)조차도 레닌에게 미리 경고했었죠. “러시아의 역사는, 구워서 사회주의란 고기만두를 만들 밀가루를 빻지 못했다네.” 즉, 러시아의 역사는 유사 이래 그 발전과정 속에서 개인의 자유에 대한 요구를 창출해내지 못했던 것이죠.

라디오 <스바보다>에서 “당신에게 자유란 무엇입니까?”란 여론 설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두 가지 답변이 기억에 남는데, 첫번째는, “자유란 무엇보다도 국가로부터 간섭 받지 않는 것이다.”이고, 두번째는, “자유란 만약 당신에게 말이 있고, 초원에 천막이 있다면, 그 이상은 아무것도 필요 없는 것이다.”예요. 이 두 가지 정의는 특별히 러시아적입니다. 두 정의는 그냥 러시아 철학이 아니라, 러시아 농민의 철학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농민들의 철학이란 언제나 국가와의 대립관계 속에서 자신을 설정해 왔기 때문이에요. 국가는 농민들에게 한번도 뭔가를 주어본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빼앗아가기만 했죠. 농민들의 역사, 이것은 국가와의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입니다.

의원 선거결과 집계가 끝나자 사회학자들은 어째서 젊은 층들이 그렇게 무기력하게 우파에 표를 던졌을까를 분석하려고 했습니다. 이건, 그 정치세력(*우파)이 그들(*젊은 층)의 권리와 자유를 중지시킬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하는데도 말입니다. 몇몇 사회학자들은 아주 슬픈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젊은 층들에게 자유란, 단지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의 시간, 그러니까 일할 필요가 없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는 것이죠. 러시아에서 모든 서구적 가치들(*사상), 루소나 디드로 등등의 계몽사상가들이 공표한 그 가치들은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그 가치들은 단지 소수의 계몽된 그룹, 인텔리겐치아 층에서만 받아들여졌죠. 인텔리겐치아, 이건 순전히 러시아적인 현상입니다. 다른 나라들에는 인텔리겐치아 대신에 그냥 전문지식인들(*인텔렉츄얼)이 있죠(*‘비판적/혁명적 지식인’이 하나의 ‘사회적 계급’으로 존재했던 나라는 러시아가 유일하다).

러시아 인텔리겐치아는 교육받은 소시민계급에서 생겨났습니다. 이 소시민계급이란 해방된 농노들이죠. 그 때문에, (의사, 교사 등) 19세기의 ‘잡계급’(*1)들은 ‘나로드’(*2)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죠. “나는 여기서 포도주를 마시고 있는데, 나로드는 여전히 노예상태에 있구나!”(*1860년대의 비평가 도브롤류보프는 딸기잼을 먹을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바로 그랬죠, 나로드는 너무도 오랫동안 노예상태에 있었고, 이 때문에 어떠한 삶의 안락도 체험할 수 없었다는 걸 인정해야만 합니다. 러시아의 모든 재앙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한쪽에는 서구사상을 수용하여 진보적으로 사고하는 인텔리겐치아가 있고, 다른 쪽에는 이러한 사상에 관심도 없고, 그걸 이해할 수도 없는 절대 다수의 나로드가 있다는 것(*이러한 분열현상에 대해서 참고할 수 있는 문헌은 이인호, <지식인과 역사의식>(문학과지성사)이다).



 

 

 

(*1) ‘잡계급’은 소수 귀족과 다수 농민/농노가 아닌 제3의 계급을 가리키는데, 19세기 전반기에 형성된다. 러시아 인텔리겐치아는 그 출신에 따라 (소수) ‘귀족 출신’과 (다수) ‘잡계급 출신’으로 대별되는바, 전자의 대표자가 작가이자 사상가 게르첸(Herzen)이라면(그는 대귀족의 사생아였다) 후자의 대표자가 비평가 벨린스키(Belinsky)이다(그는 사제의 아들이었다). 단적으로 말해서, 19세기 러시아문학은 인텔리겐치아의 문학이었다. 하지만, 교육받지 못한 대부분의 나로드 때문에 당시 문맹률은 95%에 달했는바, 다르게 말하면, 그 위대한 러시아문학은 5%에 의한, 5%를 위한 문학이었다.

(*2) 우리에겐 ‘브 나로드’ 운동(심훈의 <상록수>)이라고 할 때의 그 ‘나로드’이다(‘브’는 ‘toward’란 뜻의 전치사). ‘민중’ 혹은 ‘인민’이라고도 번역되는데, 실내용은 주로 ‘농민’이다. 대략 1840년대부터 제정러시아의 사회적 계급은 짜르(=황제)/귀족과 나로드, 그리고 인텔리겐치아로 3분 된다. 인텔리겐치아는 주로 ‘참회하는 귀족’(작가로선 톨스토이가 대표적이다)과 대학교육을 받은 잡계급 지식인들로 구성되었다. ‘브 나로드’ 운동은 1880년대 인텔리겐치아들의 농촌 계몽운동이었는데(‘농활’의 원조이다), 그 진보적/혁명적 취지와는 달리 이 운동은 참담하게 실패했다. 농민들의 고발로 이들은 (다행히 총살을 면할 경우) 대부분 시베리아로 유형을 갔다.

두 가지 서로 다른 요구, 즉 캐비어 혹은 거위간의 맛을 아는 소수의 요구와 캐비어가 뭔지, 거위간이 뭔지도 모르고 그에 대한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 다수의 요구는 서로 충돌하게 되는 것이죠. 결국 이 계몽된 소수는 나로드가 무얼 원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에겐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레닌의 오류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플레하노프는 레닌에게 이렇게 말했죠. “자넨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할 걸세.” 그러자 레닌이 말하길, “아니요, 혁명은 역사의 산파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앞으로 끌고 나갈 겁니다.”

하지만, 좌건 우건 갑작스런 진동(*혁명)은 매번 재난을 초래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1990년대에 ‘역사를 앞으로 끌고 나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체험했습니다. 혁명적인 방법으로 자본주의로의 길로 진입한다는 게 그런 것이죠. 무엇을 얻게 되었습니까? 다수의 절대 빈곤화와 국가 체제의 완전한 붕괴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더 이상 아무런 구심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물론, 나로드에게 자유는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누가 자유를 향유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돈을 빨리 벌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 고작 한줌의 무리들뿐이죠(*이 한줌의 무리를 ‘노브이 루스끼’, 즉 ‘새로운 러시아인’ 혹은 ‘신종 러시아인’이라고 부른다. 그 말의 함의는 그들이 ‘본래의 러시아인’이 아니란 얘기다. 그들은 자본주의 이행기에 한몫잡음으로써 백만장자, 억만장자가 되었으며, 현 러시아 사회의 새로운 ‘귀족계급’을 형성하고 있다. 모스크바에 독일의 어느 도시보다 많은, 비싼 독일차들이 굴러다니는 건 이들의 과시적인 부(富) 덕분이다).



그것이 우리가 우리 국민의 요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얻게 된 결과입니다. 누가 국민의 요구를 이해했을까요? 스탈린입니다. 그의 어머니가 한번은 서기장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소파에 누워서 대답하기를, “어머니, 짜르가 무엇인지는 아시죠?” “그럼, 그럼, 알지.” “그게요, 그거랑 거의 비슷한 거예요.” 스탈린은 나로드의 요구가 절대권력에 있다는 걸 이해하고 있었고, 러시아인들이 그를 지지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이건 비극이 아닙니다. 짜르가 폭군이 되느냐, 성군이 되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기자들) 당신의 생각대로 한다면, 우리는 짜르시대로 후퇴해야만 할 거 같군요. 자유로운 사회로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왜 자유 곧 전진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우리는 1990년에 자유로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우린 러시아 나로드에게 그들이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자유를 부여했습니다. 우리가 얻은 게 무엇입니까? 우리가 앞으로 전진했습니까? 대답을 해보세요! 러시아는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가 돼 버렸어요. 그걸 타고 어디로 갈 수 있을까요?

-(기자들) 가긴 가겠죠. 하지만, 문제는 어디로, 어떤 속도로 가느냐겠죠.

-그게 그겁니다. 요컨대, 자유가 반드시 전진은 아니라는 것이죠… 1990년대 초의 그루지야를 예로 들어봅시다. 거기서는 절대 자유선거에 의해서 감사후루지아(Gamsakhurdia)가 선출됐었죠(*그때 선출된 대통령인 모양이다. 사진). 98%가 표를 던졌습니다. 그가 시작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루지야 인텔리겐치아의 절반을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이게 전진입니까? 대답해 보세요! 감사후르지아는 실상, 권력의 찬탈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루지야가 전진했던가요?

-보통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자유와 안전 중에서 어느 걸 선택할 것인지.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기자들) 안전.

-당연하죠! 러시아인들에게도 필요한 것은 자유가 아니라 보살핌입니다. 나의 증조부이자 저명한 철학자 표트르 콘찰로프스키는, 1940년대에 파리에서 돌아가셨는데, 이렇게 쓰셨더랬죠. “자유란 위대한 선물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축복은 아니다. 자유를 잘 다룬다는 건 원자력 에너지를 다루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 때문에, 자유가 러시아인들에게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슬프지만은 않다.”

만약에 어떤 사람에게 만족스런 조건이 주어진다면, 그는 동물이 될 겁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남아있기 위해서는 불만스런 조건이 필요합니다. 물론, 합리적인 한도 내에서 말입니다. 예컨대, 인간은 적당히 추울 때 적극적으로 일을 합니다. 어째서 3,000킬로미터의 적도 부근이 절대 빈곤지대입니까? 거긴 덥거든요. 당신이 누워 있으면 나무에서 바나나가 떨어집니다. 그걸 먹으면 되고, 일을 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너무 덥기 때문에. 하지만, 좀 추운 곳으로 가면, 일을 해야 따뜻해질 수 있고, 그런 곳에서 정상적인 부르주아사회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국가는 이 ‘만족스런 조건들’과 ‘불만스런 조건들’ 사이에서 균형을 창출해야만 합니다. 국가(=정부)란 것 자체가 나로드를 보살피기 위해 만들어진 건 아니죠. 그건 커다란 환상입니다. 국가란 인간이 동물이 되는 걸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국가는 인간의 탐욕과 본능을 제한합니다. 인간은 걷어차야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니까요…

 

 


 

유감스럽게도, 러시아 문화의 몰락은 넘쳐나는 정보가 서서히 인간의 정신적 체험을 잠식해가고 있는 것과 관계 있습니다. 체험이 더 증가하는 게 아니라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의미는 줄어듭니다. 인터넷, 이건 쓰레기통입니다. TV도 쓰레기통이고, ‘맥도널드’도 쓰레기통입니다(*쓰레기가 정말 많이 나온다!). 이런 게, 오늘날 전세계에 퍼져나가고 있는 ‘미국식 대중문화’이고, 이건 ‘미국문화’와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위대한 시인이 출현한다고 해도 아무도 그에게 귀 기울이지 않을 것입니다. 시의 역할은 끝났습니다. 오늘날엔 영화도 끝났고, 예술은 자신의 권위와 대중에 대한 매혹을 잃었습니다.



 

 

 

프랑수아 모리악이 말한 대로입니다. “20세기는 축구의 세기가 될 것이다.” 그의 예언은 약간 빗나갔는데, 20세기가 아니라 21세기가 스포츠의 세기가 되었습니다. 어디로 돈이 흘러 들어가고 있습니까? 축구, 테니스, 야구, 농구, 각종 레이스들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슈마허나 베컴은 톰 크루즈만큼이나, 더는 아니더라도, 유명합니다. 왜인가요? 돈이죠! 시장은 이미 예술에서 스포츠로 옮겨갔습니다. 나는 이것이 어떤 의미에선 다행스런 일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발가락으로나 썼을 법한 작품을 터무니없는 돈을 받고 팔아넘긴다든가, 원칙적으로 배우로서의 조건이 안되면서 마지막 사무라이를 연기하는 것보다는(*톰 크루즈를 염두에 둔 얘기 같다. 원한이 좀 있는지?) 잘 뛰어다니는 게 그래도 나으니까.



-(기자들) 러시아의 영혼은 남아있습니까?

-러시아의 영혼은 어디로 가버렸을까요?! 영혼이 반드시 청렴을 뜻하는 걸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돈은 악이고, 영혼은 선이라는 이분법은 큰 오류입니다. 영혼이 사악할 수도 있고, 반면에 돈이 순수할 수도 있으니까요.<끝>

여기까지이다. 이상, 콘찰로프스키의 다소 ‘도발적인’ 견해에 대해서, 독일 학생들은 상당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헤겔의 후손들답게(그들이 헤겔을 거명하진 않았지만), 인류사의 진보는 자유가 확대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전제가 그들의 뇌리에는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도 모르겠다(그것이 '러시아 영혼'과 대비되는 '독일 정신'이다). 하지만, 나는 콘찰로프스키에게 거의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동의는 그의 주장에 깔려있는 ‘역설’에 대한 동의까지 포함한 것이기에 ‘전적’이다. 그가 말하는 러시아가 내가 알고 있는 러시아이다. 전제주의나 독재는 나쁜 것이지만, 그것이 자본의 ‘합리적인’ 독재보다 더 나쁜 것일까? 이 질문은 “과연 후세인이 부시보다 더 나쁜 놈일까?”란 질문과 같은 것이다.

 

 

 

 

현재 러시아에서 이 ‘자본’(대부분 유태계 자본이라고 한다)의 독재를 얼마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국가’이다. 이 국가란 푸틴의 국가관료체제를 말하는바, 그래도 그 점이 자본과 결탁했던 옐친과는 다른 푸틴의 면모이다. 그리고, 현 러시아적 문맥에서, ‘자유에 대한 요구’는 현재 감옥에 있는 ‘기업가’ “호도르코프스키에게 자유를!”과 거의 같은 의미이다. 요즘(물론 재작년 얘기이다) 씨아일랜드에서 열리고 있는 G8(러시아언론은 ‘G7+1’ 대신에 ‘G8’이란 표현을 쓴다) 정상회담 얼마 전에 러시아에서의 민주주의와 인권상황을 주제로 미의회에서 열린 청문회(헬싱키위원회)에서도 호도르코프스키 사건은 도마에 올랐었다.



이 청문회에는 세계 체스챔피언으로 이름을 날렸던 카스파로프가 푸틴을 맹비난하는 증인으로 나서 눈길을 끌었는데, 이 소식을 전하는 <이즈베스찌야>의 기사 타이틀은 ‘카스파로프 대 푸틴’이었다. 카스파로프는 푸틴이 임기중에 개헌을 밀어붙이고 다음 대선에 또 나올 것으로 믿고 있으며, 이에 대한 반대 운동을 미리부터 전개하고 있다. 현행 러시아 헌법상 대통령은 1회에 한하여 연임이 가능하기 때문에, 지난 3월의 대선에서 연이어 대통령에 당선된 푸틴은 다음 대선(2008년)에는 출마할 수 없다. 푸틴에 대한 불만의 대부분은 몇몇 기업인들과의 불화에서 비롯되었는바, 탈세혐의로 체포된 러시아 최대의 부호(富豪) 호도르코프스키 사건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요컨대, 일부 러시아의 지식인들과 미의회 지도자들이 보기에, 러시아는 정치적 경쟁자라고 해서 (무죄한!) 기업가를 감금하는 나라, 그래서 아직도 ‘덜 민주적인’ 나라라는 것이다. 그런 일은 미국같이 ‘민주적인’ 나라에서는 물론 어림도 없는 일이다. 기업인들의 기부금으로 정치하면서 대통령도 되고, 대통령이 되어선 기업들 뒤를 봐주기 위해서, ‘자유의 이름으로’ 전쟁도 서슴지 않는 나라야말로 ‘자유주의’의 천국 아닌가?(이 ‘천국보다 낯선’ 천국의 일상에 대해서는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이 자세하게 보고해 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민주적인’ 나라가 ‘덜 민주적인’ 나라보다 과연 ‘더 좋은’ 나라인지 확신할 수 없다.

 

 

 

 

사실, 러시아에서 ‘자유’나 ‘민주주의’는 이제 겨우 십수 년의 역사밖에 갖고 있지 않다. 걸음마 단계인 셈. 다른 한편으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는 자유(주의)나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공부해볼 수 있는 아주 유익한 ‘현장학습장’이다. 여기선 ‘민주주의의 발생과 진통’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민주주의의 ‘빅뱅’ 현장처럼. 그러니, 민주주의를 공부하려면 미국에 갈 게 아니라, 러시아에 와야 할 것이다(물론 한국도 민주주의의 생생한 ‘학교’이지만).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민주주의가 어떤 공모관계에 있는가를 배울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자유에 대한 ‘원자론적’ 이해가 아니라(“내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이란 숭고한 구호들에서처럼), 자유라는 가치가 놓여있는 시스템에 대한 ‘체계론적’ 이해이다.



지난 화요일(6월 8일) <이즈베스찌야>의 쟁점란의 주제도 요즘 유행하는 ‘자유’였다. 거기에서는 러시아인들이 생각하는 자유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짐작하게 하는 설문결과도 제시됐는데, 열거된 단어들 가운데 즉각적으로 긍정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는 무엇인가란 설문의 결과, 1위는 질서(61%)였다. 이어서 2위가 정의(53%)이고, 자유(43%), 애국심(40%), 안정성(40%), 러시아인(34%) 등이 뒤를 이었다. 민주주의(19%)가 15위이고, 시장(13%)이 19위로서 20위인 사회주의(12%)와 비슷했다. 35개의 단어 중 1%로 공동 꼴찌를 차지한 단어들은 개인주의, 혁명, 자유주의, 자본주의 등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러시아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혁명’이며, 러시아인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개인주의’나 ‘자유주의’, ‘자본주의’ 모두 ‘혁명’적인 걸로 인식된다는 사실이다(이 ‘자본주의 혁명’에 대한 콘찰로프스키의 견해를 상기해 보라).

러시아인들이 선호하는 이데올로기는 “정의-안정성-노동-평등-집단주의”를 내세우는 사회주의(19%)였고, 민족주의(12%), 자유주의(8%), 공산주의(5%)의 순이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이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환상을 갖고 있지 않지만, “자유-시장-서구-비즈니스-민주주의”라는 개념쌍들로 구성된 ‘자유주의’보다는 ‘사회주의’를 훨씬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콘찰로프스키의 견해는 특별히 ‘도발적’이거나 ‘논쟁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 그는 ‘정의나 평등이 없는 자유주의’보다는 ‘자유나 민주주의가 없는 사회주의’에 더 호감을 갖고 있는 다수 러시아인들의 ‘주류적인’ 정서를 ‘역설적’으로 대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우리에겐 ‘병역’만큼이나 신성한 ‘민주주의’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지지는 생각보다 낮다. 장년세대는 아직도 1970년대 브레즈네프 시대에 대한 ‘시대착오적 환상’을 갖고 있다. 얼마전 이 브레즈네프와 그의 시대에 대한 역사 다큐멘터리가 방송되기도 했다. 우리의 ‘박정희 판타지’와 비슷한 현상).

자유(주의)에 대한 체계론적 이해라는 것은 그것을 “자유-시장-서구-비즈니스-민주주의”처럼 일련의 개념적-가치론적 사슬 속에서 이해하는 걸 말한다. 이러한 사슬은 물론 다른 모든 개념들과 마찬가지로 발생론적, 계보학적 근거를 갖는다. 이것이 자유에 대한 나의 논점이다. 그에 따를 때, ‘자유’에는 두 종류가 있는바, ‘장사꾼(부르주아)들의 자유’와 ‘농부들의 자유’(러시아의 경우엔 ‘나로드의 자유’)가 그것이며, 이 둘은 구별되어야 한다. 오늘날에는 그걸 뭉뚱그려 ‘시민의 자유’라고 하는데(이 ‘시민’은 오지랖이 넓어서 재벌도 시민이고, 백수도 시민이다), 거기에는 두 가지 다른 ‘자유’가 혼종돼 있어서 오해를 초래하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러시아어에서는,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지만, 유용하게도 두 종류의 자유를 적절하게 구별해서 표시할 수 있는 단어들이 있다. ‘볼랴(volya)’와 ‘스바보다(svoboda)’가 그것이다. ‘볼랴’는 ‘의지로서의 자유’이며, ‘스바보다’는 ‘법적인 권리로서의 자유’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농부들이 요구하는 자유는 ‘볼랴’이며, ‘스바보다’는 장사꾼들이 요구하는 자유이다. 영어의 경우 ‘freedom’과 ‘liberty’가 거의 구별없이 쓰이는 듯하지만 굳이 구별하자면, 각각 ‘볼랴’와 ‘스바보다’에 대응될 수 있다. Free-will이란 조어에서 볼 수 있듯이, freedom에는 생래적/자발적 의지의 관철이란 의미가 들어가 있으며, 'liberty'는 'liberalism'(자유주의)과 연계되는 단어이다. 그리고 이 리버럴리즘은 콘찰로프스키가 이의를 제기하는바, ‘진보주의’란 함의도 갖는다.



 

 

 

자유가 하나의 이념으로서 전면화되는 것은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 이후이다(*대혁명의 이념은 1812년 나폴레옹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에도 파급되며, 1825년 12월의 ‘제카브리스트 봉기(=12월당 봉기)’를 낳는다). 그리고 이념으로서의 자유, 혹은 ‘자유주의’는 혁명의 주체인 부르주아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농부들도 장사꾼(부르주아)들과 마찬가지로 자유를 요구하지만, 그 요구는 내 생각에 ‘이념화’될 수 없다. 그러니까 ‘농부들의 자유주의’란 말은 넌센스이다. 즉 ‘스바보다’는 ‘이즘’이 될 수 있지만, ‘볼랴’는 ‘이즘’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콘찰로프스키가 들고 있는 예에서처럼, 농부들에게 자유란 자기 말과 천막이 있는 걸로 충분한 자유이기 때문이다.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자기가 경작할 수 있는 논밭을 소유한 걸로 충분한 것이 농부의 자유이다. 그것은 ‘더 많이!’(볼셰)라는 요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더 많이!’라는 건 장사꾼들의 요구이며, 볼셰비키들의 요구이다.



 

 

 

<근대성의 구조>의 저자가 잘 보여준 바대로, ‘기업가 정신’과 ‘혁명가 정신’은 동일하다. 레닌은 탁월한 혁명 사업가이며, 예컨대 정주영은 비즈니스에서의 특출한 레닌주의자이다. 그들은 밀가루 없이도 빵을 만들어낸다. 그들을 묶어주는 키워드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기투(project)로서의 헌신이고 투자(project)이다. 그리고 이 헌신/투자는 중단 없는 과정이다. 편집증적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공산주의’란 미래, ‘초일류기업’이란 미래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지평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인들이 ‘멀미’를 느끼는 것이 바로 이 ‘비즈니스로서의 혁명’의 질주, 혹은 ‘혁명으로서의 비즈니스’의 질주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농민의 마인드, 나로드의 마인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닷새 일하고, 이틀 쉬는 걸로 더 바랄 게 없는 (순환적인) 삶! 

‘자유’는 언제 ‘자유주의’가 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이미 주어졌다. 그것이 ‘돈(=근대 자본주의)’과 결합될 때이다. 농민의 자유가 ‘농민-영주’, ‘나로드-국가’라는 2자적 관계에서 문제되는 것이라면, 장사꾼의 자유는 돈을 매개로 한 3자적 관계를 전제로 한다(모든 형이상학의 문제가 1이냐 2냐의 문제로 환원된다면, 모든 정신분석학의 문제는 2냐 3이냐의 문제로 환원된다). 즉, ‘부르주아-돈-국가’. 라캉-지젝이 즐겨쓰는 도식을 빌어와서 말하자면, 농민의 자유는 충동적 자유, 즉 충동으로서의 자유라면(2자적 관계에서 욕망은 발생하지 않는다. 모든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기 때문에), 장사꾼의 자유는 욕망으로서의 자유이다(이때의 자유는 항상 자유에 대한 금지로서의 ‘법’과 연관된다. 금지가 없으면 욕망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법의 제한이 없으면 자유도 없다. 그래서, 법과 자유는 서로 길항하지만 공모적이다). 이 ‘자유에 대한 충동’과 ‘자유에 대한 욕망’이 일치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할 때, 중요한 건 모든 사람이 자유에 대한 욕망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콘찰로프스키는 같은 생각을 캐비어와 거위간에 대한 ‘요구’는 다를 수 있다는 사례를 들어서 말했다(욕구로서의 자유!). 비록 요구(필요)와 욕망이 구별되어야 할 것이긴 하지만, 나는 콘찰로프스키의 논변이 궤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보 이반’의 나라 러시아에는 욕망으로서의 자유(=돈)에 대한 요구가 없다는 것이며, 그런 자유(=돈)는 없어도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발상의 근거가 장사꾼도 아니고 인텔리겐치아도 아닌 ‘나로드’(=농민)이다. 나로드의 자유는 인텔리겐치아나, 시민(부르주아)의 자유와는 다르다는 것(러시아에서 부르주아 계급은 19세기 후반에서야 비로소 형성되며, 서구에 비해서 상당히 미약했다). 그리고 그 점에서 나는 그에게 동의한다(물론 한국은 러시아와는 또 사정이 다르지만)...

06. 02.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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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2-06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려워 어려워요

로쟈 2006-02-06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이 좀 길어졌지만, 제 의견은 '자유의 문제'가 간단하지 않은, 어려운 문제라는 것입니다.^^

happyant 2006-02-07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ostrov 2008-12-29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재미있어서 훔쳐다 놓(http://blog.naver.com/ostrov/140060310614)습니다!

헛헛헛헛 2009-09-20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재밌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ㅁ'
 

모스크바 지하철에 관한 이미지들을 검색하다가 기억도 되새길 겸 몇 장을 모아놓는다. 자주 드나들던 '우니베르시쩨뜨'(=대학) 역과 그 주변 사진들이다.

맨 처음 건 주로 이용하던 역사 건너편 사진인데, 오른쪽으로는 가판들이 좀 있고, 트롤레이버스의 종점과 함께 시장이 있다. 가로에 보이는 건물들은 모스크바의 전형적인 건물들이다. 하단부에 쳐 있는 철망들이 고드름 보호망이다. 2003년 6월에 찍은 사진으로 돼 있는데,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졌을 리 만무하다.

아래 사진이 자주 이용하던 역사. 사진에 나오지 않지만 오른편으로 더 가게 되면 자주 이용하던 출입구가 나온다. 전면에 보이는 건물은 그래도 생긴 지 몇 년 안되는 쇼핑몰 건물인 '유니버시티'이다. 딸아이에게 보내는 크리스마스 선물들을 산 곳이기도 하고, 간혹 구내 환전소에서 환전을 하기도 했다. 약속 장소로도 자주 이용되는 곳.

역사 안으로 들어가서 표를 사고 개찰구를 통과하게 되면, 아래 흑백사진과 같은 에스컬레이터가 등장한다. 대부분의 전철역이 이 정도 혹은 그 이상의 '깊이'를 자랑한다(그리고 비슷비슷하다). 70년대 영화 속의 모습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좌우 벽면의 광고판들 정도가 달라졌을까.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 서게 되면, 아래 사진과 같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이 거의 없는 걸로 보아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시간이 아닌가 싶다(사진의 사이즈를 좀 늘렸더니 약간 흐리게 나온다).

전철 차량은 좀 낙후돼 있지만, 그래도 별다른 사고 없이(폭탄 테러만 아니라면!) 운행되고 있는데, 아래 사진과 같은 차량이 승강장에 진입해 들어오고 문이 열리게 되면 얼른 타면 된다. 사전 예고 같은 거 없이(인정사정 없이) 문이 닫히고 열리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날치기도 주의해야 한다. 어리버리한 행색을 보이면 여지없이 당한다!).

아래 사진은 신설역으로 모스크바강을 가로지르는 철교에 위치한, 그래서 가장 좋은 전망을 자랑하는 '참새 언덕' 역에 전철이 진입하고 있는 모습.  

Фотографии -> Поездки -> Поездка в Москву (27-28 декабря 2002) -> 002

그리고 끝으로, '참새 언덕'에서 바라본 모스크바 시 전경. 2004년 10월에 찍은 사진으로 돼 있으니까 내가 보았던 '그 가을'이기도 하다. 전면에 보이는 경기장이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의 메인스타디움이었다고. 지표상으로 가장 두드러진 건축물이다. 낙엽수들 사이로 살짝 드러나고 있는 것이 모스크바 강이다.  

06. 02. 06.

 

 

 

 

P.S. '모스크바'란 지명과 떼놓을 수 없는 영화는 (1988년 12월) 국내 최초 개봉 '소련영화'였던 블라지미르 멘쇼프의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1979, 150분)이다(1980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러시아 사람들이 흔히 말하길, "이 영화를 보지 않은 러시아인,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사랑하지 않을 러시아인은 없다". 그러니까 '러시아적 감성'의 바로미터가 되는 영화('베사메무초'가 주제음악으로 흘러나왔을 때 다들 뒤집어졌었다). 음반 <백만송이 장미>(아울로스, 2002)에는 영화의 엔드타이틀과 함께 흘러나오는 주제가 '알렉산드라'가 포함돼 있다.

왼쪽은 영화의 (VCD)포스터, 그리고 오른쪽은 영화를 모티브로 한 발렌친 쵸르느이흐의 소설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2004). 영화의 주인공 카챠(베라 알렌토바 분))와 고샤(알렉세이 바탈로프 분)가 처음 만나는 장소가 모스크바의 지하철이다(아니다 교외선 같다! 여하튼 기차다). 아래 장면. 그리고 그 아래 장면은 영화를 본 사람들은 기억할 소풍 장면이다.

Вера Алентова. Кадр из фильма Москва слезам не верит_Фото_Актеры советского и российского кино 

Вера Алентова, Наталья Вавилова и Алексей Баталов в фильме Москва слезам не верит_Фото_Актеры советского и российского кино

그리고 영화의 히로인 베라 알렌토바(1942- ). 영화 속에서 그녀는 20대 처녀와 40대 중년의 카테리나를 연기한다. 멘쇼프의 영화에 자주 출연한 듯하다. 오른쪽은 영화 속 스틸. 50년대 후반의 '꽃처녀' 카테리나와 친구 류드밀라. 이 꽃처녀들도 이젠 다들 60이 넘은 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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