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에서 발행하는 다솜이친구(174호)에 실은 '감각의 도서관' 꼭지를 옮겨놓는다. 쥘 르나르의 <박물지>와 중국의 고전 <산해경>을 비교해달라는 주문을 받고 쓴 것이다. '올재 클래식스'판으로 <박물지>와 <산해경>이 다시 나온 게 계기인데, 알라딘에서는 판매되지 않는 책이기에 이미지는 다른 판본으로 올려놓는다.

 

 

다솜이 친구(15년 6월호) 동서양의 자연세계를 보는 눈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동서양에 차이가 있을까. 표본적인 비교는 아니지만 인문고전으로 다시 나온 프랑스 작가 쥘 르나르의 <박물지>와 중국의 신화집 <산해경>은 그러한 차이를 엿보게 한다. 혹은 동서양의 차이와 무관하게 실제로 눈에 보이는 동물들에 대한 묘사와 상상의 동물들에 대한 기록으로 대비시켜볼 수도 있겠다. 아니 차라리 한 개인의 관찰기와 집단적 상상력의 집적으로 비교해야 할까?


<박물지>의 원제는 ‘자연사(自然史)’다. ‘자연의 이야기’라고 부르는 것도 가능한데, 과거 ‘자연학’을 ‘박물학’이라고 부른 것처럼 ‘박물지’란 이름으로 소개되었다. 1896년에 초판이 간행되고 1904년에 결정판이 나온 이 책은 <홍당무>란 소설로 유명한 작가가 전원이나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동식물에 대해서 쓴 일종의 관찰기다.

 

작가 자신은 ‘영상(映像)의 사냥꾼’을 자임하는데, 그가 아침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자연으로 나갈 때 사냥총은 놔두고 가는 대신에 크게 뜬 두 눈을 챙기기 때문이다. 눈이 일종의 그물이어서 그는 시야에 잡히는 모든 것을 포획한다. 움직이는 밀밭과 식욕을 돋우는 개자리풀, 지나는 길의 종달새와 방울새가 포획물들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그런 영상들을 되새겨보며 다시금 선명하게 떠오르는 영상들을 글로 옮겼다. <박물지>의 탄생이다.


<박물지>라고 해서 파브르의 <곤충기>나 시튼의 <동물기>처럼 정밀한 관찰과 끈질긴 묘사를 앞세우지 않는다. 르나르는 주로 동물인 대상을 묘사하면서 한편으론 자신이 받은 인상을 부각시킨다. 당나귀를 ‘어른이 된 토끼’에 비유하다거나 뱀에 대해서는 그 묘사를 ‘너무나 길구나’라는 한 줄로 압축한다. 비유와 시정(詩情)이 그의 보조적인 ‘사냥 도구’다. 그의 이미지 사냥은 주로 간단한 에피소드를 낳지만 짧게 응축될 때 더 흥미롭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밤 9시인데 아직 그 집에 불빛이 보이네”는 개똥벌레에 대한 심상이고, “꾸아(Quoi 뭐야)? 꾸아? 꾸아? -아무것도 아니야.”는 까마귀에 대한 기술이다.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더라도 아주 정확하다. <박물지>를 읽는 재미라고 할 수 있다.


<산해경>은 중국 최고(最古)의 대표 신화집이다. 산경(山徑)과 해경(海經)을 합해서 ‘산해경’이라고 부른 것이니 얼핏 지리서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신화집이면서 지리서인 셈인데, 가령 첫머리를 장식하는 ‘남산경’은 작산을 출발점으로 하여 다시 동쪽으로 300리를 가면 당정산이 있고, 다시 동쪽으로 380리를 가면 원익산이 있으며, 거기서 다시 동쪽으로 370리를 가면 유양산이란 곳이 나온다는 식으로 서술된다. 그런데 초점은 이러한 지리의 소개와 설명보다는 그 지역 특유의 동식물에 대한 묘사에 두어진다. 곧 산천의 형세를 말한 다음에 그곳에서 산출되는 광물 및 동식물, 특이한 괴물이나 신령에 대해서 언급하고 제례(祭禮)를 덧붙인다.


문제는 <산해경>에 등장하는 갖가지 괴물들에 대한 묘사가 너무 황당무계하고 허망할 정도로 신비롭다는 점이다. 사마천이 “감히 말할 수 없다”고 평한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닐 정도의 기서(奇書)가 <산해경>이다. 가령 소요산에 사는 어떤 짐승에 대해서 “생김새가 긴꼬리원숭이 같은데 귀가 희고 기어다니다가 사람 같이 달리기도 한다. 이름을 성성(狌狌)이라고 하고 이것을 먹으면 달음박질을 잘하게 된다”고 서술하며, 저산에 사는 어떤 물고기에 대해서는 “생김새가 소 같은데 높은 언덕에 살고 있다. 뱀꼬리에 날개가 있으며 그 깃은 겨드랑이 밑에 있는데 소리는 유우(留牛)와 같다. 이름을 육(鯥)이라고 하며 겨울이면 죽었다가 여름이면 살아나고 이것을 먹으면 종기가 없어진다”고 소개한다.


이렇듯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의 퍼레이드가 <산해경>이니 오늘의 기준으로는 신화집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상상동물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언제 누구에 의해 이루어졌는지 불분명하지만 <산해경>은 대체로 기원전 3-4세기경에 무당들에 의해 쓰였고 무당들의 지침서라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물론 오늘날 그런 지침서로는 유효하지 않다. 그럼에도 동아시아적 상상력의 뿌리이자 보고(寶庫)라는 평가는 <산해경>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동기가 된다. 우리 곁에는 눈에 보이는 동식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끔 해준다.

 

15. 0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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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기 시대를 연, 물리학의 두 거장'을 다룬 책이 출간됐다. 제목대로 <패러데이와 맥스웰>(반니, 2015). 분명 전자기력에 대해 큰 흥미를 갖지 않았고, 시험문제를 다 맞힌 기억도 없지만 막상 평전 형태의 책이 출간되니 읽어볼 만하지 않을까 싶어진다.

 

 

찾아보니 처음 소개되는 건 아니다. 청소년 책들이 몇 권 나와 있고, 두 사람을 같이 다룬 책으론 정동욱의 <패러데이 & 맥스웰>(김영사, 2010)도 있다. 패러데이만을 다룬 평전으론 랄프 뵌트의 <전기로 세상을 밝힌 남자, 마이클 패러데이>(21세기북스, 2011)가 자세해 보인다. 이번에 나온 <패러데이와 맥스웰>을 표준으로 삼아도 좋겠다.

패러데이와 맥스웰이라는 두 위대한 과학자들의 삶의 디테일을 따라가며 그들의 삶과 과학적 성과, 고민을 모험가의 이야기처럼 흥미진진하게 구성한 책이다. 당시까지 비밀에 싸여있던 전기와 자기라는 자연현상을 어떻게 이성과 과학의 영역으로 환원되었는지 그 과정도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두 거장의 생애와 연구뿐 아니라 맥스웰의 자작시, 그들이 주고받았던 편지, 일기까지 수록되어 있어 독자들에게 소설을 능가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저자 표기가 달라서 깜박 놓칠 뻔했는데, 공저자 중 한 명인 배질 마혼(바실 메이헌)이 쓴 제임스 맥스웰 전기로 <모든 것을 바꾼 사람>(지식의숲, 2008)이 번역돼 있다. 듀오그라피와 각각에 대한 전기가 한 권씩이면, 공평하다고 할까. 아무려나 19세기 물리학의 두 거장과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15. 0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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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시사IN(402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윌리엄 데레저위츠의 <공부의 배신>(다른, 2015)에 대한 서평이다.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에 비해서 번역본의 제목이 너무 좁게 붙여진 듯한 느낌이다. 엘리트 교육의 결과로 양산된 '똑똑한 양떼'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전반부보다 그 시스템을 비판하는 후반부 쪽에 더 주안점을 두었다. 저자가 언급하는 책들 가운데 하버드대 학장을 지낸 해리 루이스의 <영혼 없는 똑똑함>도 소개되면 좋겠다 싶다.

 

 

시사IN(15. 05. 30) 엘리트 교육의 불편한 진실

 

통상 한국사회에서 자녀 교육의 대미는 명문대학 입학으로 장식된다. ‘좋은 대학’이라고 얼버무리기도 하지만 대학은 철저하게 서열화되어 있고, 자녀 교육의 성공 여부는 어느 대학에 들어갔는지로 판가름된다. 미국의 명문 예일 대학 교수를 지낸 윌리엄 데레저위츠의 <공부의 배신>을 보면 미국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그렇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만 하면 과연 아무 문제가 없을까'라는 것이다. 여러 명문대학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을 근거로 그는 문제가 자못 심각하다고 진단한다. ‘똑똑한 양떼’란 원제가 겨냥하는 것은 미국 엘리트 교육의 실패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 국가들이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복기국가 모델을 만들 때 미국은 고등교육의 확장을 통해서 물질적 지원 대신에 기회를 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러한 기회의 제공은 대규모의 중산층과 새로운 상류층을 낳는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오늘의 대학 교육은 불평등에 맞서 싸우기는커녕 불평등한 시스템 자체가 되어버렸다. 높은 대학등록금도 문제지만 입시경쟁에 들어가는 비용의 비약적 증가로 가정의 경제적 배경이 곧 성적과 직결되게 되었다. 가령 하버드대학 학생의 40퍼센트는 연소득 상위 6퍼센트에 속하는 가정 출신이다. 저자가 보기에 “명문대는 불평등사회를 역전시키는 데 무기력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정책적으로 불평등사회를 적극 조장하고 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우리도 수월성 교육이란 명목으로 온갖 특목고가 난립하는 양상이지만 그런 엘리트 교육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유대인 가정 출신으로 폐쇄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저자가 직접 겪은 일인데, 어느 날 그가 집수리를 위해 배관공을 불렀다. 한데 배관공이 부엌에서 일할 준비를 하며 머뭇거리는 동안 저자는 그에게 변변하게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교육 과정에서 배관공을 만날 일이 없었던 탓이다. 그가 받은 엘리트 교육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대신에 오히려 그런 일로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엘리트 교육이 '실력 사회'를 낳았지만 그 실력 사회의 이면은 진정한 리더십의 부재다. 저자가 현재 미국 지배세력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대목이다. 가령 1988년 이후 주요 대통령 후보자 10명 가운데 대다수가 하버드나 예일 등 명문 사립대학 출신이다. 1948-1984년 대통령 후보자 14명 가운데 단 3명만 명문 사립대에 다녔던 것과 비교되는 수치다. 이들 가운데 명문가 출신이 단 2명이었던 데 비해 그 이후로는 10명 중 6명이 ‘상속자’에 속한다.


그런 배경을 가진 기술관료의 전형으로 저자는 오바마 현 대통령을 지목한다. “오바마는 자신만의 비전이 있는 척하지만 그의 비전은 기술관료 그 자체다.” 오바마는 잘하지 못하는 과목의 수업은 듣지 않으려고 하는 학생처럼 힘겨운 정치적 싸움은 회피하려 한다고 저자는 비꼰다. 하지만 그것은 오바마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똑똑하지만 그렇듯 순응적이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비전을 갖지 못한 인재들만을 배출해내는 엘리트 교육 시스템의 문제다. 실패할지도 모르는 일은 아예 회피하기에 실패할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바로 엘리트 교육이었다.


예상할 수 있는 결론은 물론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최고의 무상 고등교육 이상을 제공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대학 지원자들에게 성취 목록과 함께 ‘실패 이력서’도 제출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도 그럴 듯하게 들린다. “아이들이 배움에 대한 애정으로 공부하고 사람들이 일에 대한 애정으로 일할 수 있는 사회”가 저자만의 이상향이 아니라면 우리도 충분히 경청해볼 필요가 있다.

 

15. 0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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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고전 깊이 읽기' 시리즈의 하나로 이경원 교수의 <파농>(한길사, 2015)이 출간됐다. " 탈식민화와 인종주의 철폐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프란츠 파농의 생애와 활동 그리고 사상을 다룬 책"으로 국내 저자가 쓴 것으로는 첫 저작이라는 의의가 있다. 파농의 책과 그 관련서를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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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농- 니그로, 탈식민화와 인간해방의 중심에 서다
이경원 지음 / 한길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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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피부, 하얀 가면
프란츠 파농 지음, 노서경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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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검은 피부, 하얀 가면- 전면개정판
프란츠 파농 지음, 이석호 옮김 / 인간사랑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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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프란츠 파농 지음, 남경태 옮김 / 그린비 / 2010년 5월
15,900원 → 14,310원(10%할인) / 마일리지 79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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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책이지만, 부제는 '세상을 보는 가장 큰 시선들의 대립'이다. 샤피크 케샤브지의 <왕비와 수도사와 탐식가>(궁리, 2015). 이름에서 어림할 수 있지만 저자는 인도인이다(인도인이지만 케냐 출생이고 스위스에서 목사와 교수로 재직했다 한다). 찾아보니 영어권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저자로 좀 알려진 듯하다. 책은 불어로 썼다.

 

 

그렇다고 국내에 처음 소개된 저자는 아니다. 이미 <세계 종교 올림픽>(궁리, 2008)이 나왔었기에. 원제는 <임금과 현자와 광대>. 제목만 보아도 <왕비와 수도사와 탐식가>의 짝이란 걸 알 수 있다. 직접 이어지는 내용은 아니더라도. 그리고 생소한 저자를 같은 역자가 계속 옮긴 걸로 보아 역자가 적극적으로 출간을 주선한 게 아닌가 싶다(역자는 독일에서 공부하고 프랑스의 고등학교에서 종교문화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어떤 효용에 주목한 것일까.

 

슬하에 네 자녀를 두었던 샤피크 케샤브지는 2005년 백혈병에 걸린 만 13세 아들 시몽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게 된다. 그 경험 이후로 그는 ‘삶과 죽음’을 주제로 한 우리 인생의 이야기를 구상하기 시작했고, 10년여 간의 성찰과 숙고의 시간을 지내고서 이 책 <왕비와 수도사와 탐식가>를 펴내었다. 정치학과 신학을 공부하며 다양한 철학과 사상들에 정통한 저자는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의 이야기 형식을 책 속에 도입하여, 자칫 어렵고 묵직할 수 있는 우리네 삶의 크고 작은 철학적 주제들에 대한 사상·종교의 입장과 논쟁점, 죽음과 이별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인생의 희비를 오가는 사람들의 심정 등을 심도 있게 묘사하며 객관적이고도 재미있는 종교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핵심은 '종교 이야기꾼'이라는 데 있는 듯싶다. 특정 종교의 편에 서지 않고서 다양한 신앙과 신념들간의 토론을 주선할 수 있는 역량이 종교 이야기꾼의 역량이다. 이 역량은 머리가 굳은 기성세대보다는 한창 성장하는 청소년들에게 더 요긴하게 다가갈 듯싶다. 혹 역자가 프랑스 학생들에게 이 책을 교재 삼아 강의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는 종교판(내지는 신념판) <소피의 세계>로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왕비와 수도사와 탐식가>의 토론 배틀 참여자는 각각 일심론과 일체론, 유물론의 세계관을 대표한다. '아무 생각없이 산다'주의자가 아니라면, 이 '신념토론대회'의 참관인이 돼 보아도 좋겠다...

 

15. 0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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