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치료는 마무리되었지만 아직 정상 컨디션은 아니어서 서재에 글을 올리는 일도 빈도수가 많이 줄었다. 그래도 달이 바뀐 지 일주일이 돼 가니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부랴부랴 골라놓는다. 통념상 '독서의 달'의 읽을 만한 책이니 욕심을 내봐야 할까.

 

 

1. 문학예술 

 

문학분야에선 헬렌 맥도널드의 논픽션 <메이블 이야기>(판미동, 2015)를 고른다. "야생 참매 메이블을 길들이며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견뎌 나가는 과정을 정직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그려 낸 화제작 . 2014년 출간되어 새뮤얼존슨상과 코스타상을 석권하고, <가디언>과 <이코노미스트>에서 '올해의 책'으로 뽑혔"다. 워낙 평판이 좋은 화제작이라 어떤 책인지 궁금해서도 읽어볼 만하다. 

 

픽션 쪽으로는 중국작가 비페이위의 <마사지사>(문학동네, 2015). 2008년작이고 2011년 중국 마오둔문학상 수상작이다. <청의>(문학동네, 2008), <위미>(문학동네, 2008) 이후 오랜만에 출간됐는데, 차세대 대표작가의 솜씨를 감상해볼 만하다. 살만 루슈디의 단편집 <이스트, 웨스트>(문학동네, 2015)도 흥미를 끄는 책. 테리 이글턴의 촌평도 인상적이다. "이 작가의 짓궂음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예술 분야의 책은 따로 고르지 않는다. 나쓰메 소세키 전집 3차분 세 권을 읽는 게 나대로의 목표라서다. <문>은 해설을 쓰느라 읽었기에 두 권이 남았다.

 

 

2. 인문학

 

철학 쪽으로는 김상봉 교수와 고명섭 기자의 대담집 <만남의 철학>(길, 2015)을 고른다. "한 철학자의 정신세계를 어린 시절부터 대학 시절을 비롯해 본격적으로 ‘철학’에 몰두하기 시작하여 우리 사회에 주목할 만한 저서를 발표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통시적 관점에 바탕을 두되, 그(김상봉)에게 가장 중요한 물음인 우리에게 과연 고유한 철학이 있었는가와 이를 바탕으로 하여 자기철학을 갖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서양정신의 본질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그 한계를 극복하고 이 땅에서 고유하게 전개할 ‘주체적 철학’이란 과연 무엇인지" 살핀다. '김상봉의 모든 것'이라 할 만한데, '한국에서 철학은 어떻게 가능한가'란 물음에 대한 한 예시 답안으로 읽어도 좋겠다(정답이 있는 건 아니기에 예시라고 적었다).  

 

더불어 <문명이 낳은 철학, 철학이 바꾼 역사2>(길, 2015)가 마저 나온 김에 <문명이 낳은 철학, 철학이 바꾼 역사> 1,2권을 이 참에 통독해봐도 좋겠다('독서의 달'이잖은가). "<문명이 낳은 철학, 철학이 바꾼 역사 1>을 잇는 속편. 1권에서 동양과 서양의 전통적인 문명 전개와 철학 사상들, 그리고 이런 흐름이 근대에 들어와 겪게 되는 변용들을 보았다. 2권은 현대/탈근대라는 시대를 다루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서양의 사상 전개에 서술의 중심을 두었다."

 

 

역사 쪽으로는 베트남전쟁에 관한 책들을 고른다. 최근에 박태균의 <베트남전쟁>(한겨레출판, 2015), 윤충로의 <베트남전쟁의 한국 사회사>(푸른역사, 2015)가 나란히 출간됐기 때문인데 찾아보니 번역서 가운데서는 마이클 매클리어의 <베트남 10,0000일의 전쟁>(을유문화사, 2002)가 가장 묵직하면서 자세하다. 겹쳐 읽어도 좋겠다.  

 

 

3. 사회과학

 

사회과학 쪽에서는 영국의 정치학자 존 던 교수의 책들을 일단 골랐다. <민주주의의 수수께끼>(후마니타스, 2015)에 이어서 이번에 <민주주의의 마법에서 깨어나라>(레디셋고, 2015)가 출간됐다. "저자는 민주주의가 이론으로든 실제로든 좋은 정부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며, 민주주의의 기본 개념 뒤에 숨겨진 미궁과도 같은 현실을 파고든다. 각 장에서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력과 민주주의가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한 유일한 정치체계로 자리를 잡게 된 경로, 민주주의가 가진 모순과 맹점을 분석하여 앞으로 민주주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살펴본다." '민주주의가 가진 모순과 맹점'을 피부로 경험하고 있는 우리로선 필독해볼 만하다. 

 

거기에 덧붙일 만한 책은 맷 타이비의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열린책들, 2015). "<롤링스톤>의 기자 맷 타이비의 신작. 미국 사회가 가난을 죄악시하는 것을 넘어 실제로 처벌하는 데까지 나아갔음을 여러 사례를 통해 생생히 보여준다. 타이비는 경제 논리에 잠식된 사법 시스템과 그 지배를 받는 디스토피아 미국 사회를 그리고 부의 양극화가 집어삼킨 미국의 사법 시스템을 해부한다." 부의 양극화라면 물론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덧붙여, 미셸과 모니크 팽숑 부부의 <만화로 읽는 부자들의 사회학>(갈라파고스, 2015), 제윤경의 <빚 권하는 사회, 빚 못 갚을 권리>(책담, 2015)는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도 읽어볼 수 있다. 일본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토바 아카히로의 <위험한 자본주의>(사람과나무사이, 2015)도 대학 신입생 수준에 맞춰 마르크스 경제학의 토대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4. 과학

 

과학 분야의 책으론 먼저 최근에 세상을 떠난 신경과학자 올리버 색스의 <엉클 텅스텐>(바다출판사, 2015)을 고른다. "제2차 세계대전의 암울한 시기를 과학에 대한 열정으로 버텨낸 한 어린 소년의 특별한 성장기이자, 로버트 보일에서부터 닐스 보어에 이르기까지 약 200년 동안의 화학의 역사를 조망한 개인적 회고록이다." 나머지 두 권의 환경분야의 책으로 마크 터섹, 조너선 애덤스의 <나는 자연에 투자한다>(사이언스북스, 2015), 토니 주니퍼의 <자연이 보내는 손익계산서>(갈라파고스, 2015)는 자연의 경제적 가치를 환기시켜준다. 자연을 개발하는 것보다 보존하는 게 우리에게 더 이익이 된다는. 공무원들이 좀 읽어야 할까 보다.

 

 

5. 책읽기/글쓰기

 

세 권의 책을 주저없이 꼽을 수 있다. 먼저 서경식의 <내 서재 속 고전>(나무연필, 2015). "에세이스트 서경식이 자신의 서재 속 책들 가운데 마음에 품고 있던 열여덟 권의 고전을 세상에 꺼내놓았다. 자신의 독서 이력과 사유를 한껏 드러낸 이 글들을 통해 우리는 그가 어떤 순간 그 책을 만났으며 어느 구절에 밑줄을 치며 성찰했고 또 어떤 깨달음과 위안을 얻었는지를 오롯이 들여다볼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의 작가이자 평론가 차이자위안의 <독서인간>(알마, 2015). 책과 관련한 모든 이야기를 담고자 하는데, "작게는 책의 형태, 책 냄새, 책갈피, 띠지, 장서인, 장서표 같은 소품에서부터 크게는 서가, 서재, 서점, 도서관 같은 책의 거처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을 넘나든다. 더 나아가 책 읽기, 책 빌리기, 책 수집, 책 도둑질, 금서, 책장사, 책벌레에 얽힌 이야기에다 책과 영화, 책과 여인, 책과 커피, 책과 치료, 책과 광고 등 책을 둘러싼 풍경까지 책과 관련된 25꼭지의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다." 

 

마태우스님의 <서민적 글쓰기>(생각정원, 2015)는 예기치 않은 반가운 책. "<서민의 기생충 열전>의 저자 서민 교수가 전하는 글쓰기 방법. <서민적 글쓰기>는 그가 글을 쓰면서 경험했던 성공과 실패를 진솔하게 담은 자전적 글쓰기 분투기다. 서민 교수가 10여 년에 걸친 혹독한 글쓰기 훈련 과정에서 얻은 것은 책을 바라보는 관점과 글쓰기의 기초, 자기만의 글쓰기 방법의 발견 등이었다. 이 책은 이 내용들을 진실하고도 솔직하게 밝히고 있다." '10년간의 혹독한 글쓰기 훈련'이 주로 알라딘 서재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같은 알라디너로서 부듯함을 느낀다...

 

15. 09. 06.

 

 

P.S. '9월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보를레르의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문학동네, 2015)을 고른다. 불문학자 황현산 선생의 주해본으로 새 번역본이 나왔기 때문인데, "기존의 번역본들과는 차별되는 면밀하고 충실한 주해가 매 시마다 함께한다. 보들레르 문장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묻어나는 주해는 수많은 보들레르 연구서를 아우르는 정수이며 독자적으로 아름다운 또 한 편의 산문이다." 이로써 <파리의 우울>은 대략 3종의 번역본을 갖게 되었다. 마음놓고 읽어봐도 좋겠다. 한편, 듣기에는 보들레르 전집이 출간된다고 하는데, 예상보다 좀 늦어지는 듯하다. <파리의 우울>과 마찬가지로 황현산 선생의 주해본 <악의 꽃>나와주기를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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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일단 구입한 책은 스티븐 로즈, 힐러리 로즈 부부의 <급진과학으로 본 유전자, 세포, 뇌>(바다출판사, 2015)다. '누가 통제하고, 누가 이익을 보는가'가 부제. 무엇이 급진과학이고 어떤 내용을 담은 책인가.

 

1960년대부터 급진과학운동의 선구자로 활동한 힐러리 로즈와 스티븐 로즈 부부의 최신작. 급진과학운동이란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과학의 독립성을 주장하고 과학의 민주화와 민중을 위한 과학 건설을 추구한 운동이다. 오랫동안 각자의 영역에서 연구 활동을 하던 이들 부부가 유전체학(유전자)과 재생의학(세포), 뇌신경과학(뇌)으로 대표되는 생명과학의 과거와 현재를 되짚어본다. 저자들은 생명과학은 과연 누가 통제하고,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비판적으로 살핀다.

매우 당연한 질문과 의문을 현대의 거대 생명과학에 던지고 있는 걸로 보인다.  오늘날의 생명과학을 누가 통제하고, 누가 이익을 보느냐는 것. '과학의 민주적 책무를 말하다'가 후기의 제목인 것만 보아도 저자들의 문제의식을 가늠해볼 수 있다. 과학도뿐 아니라 일반 독자도 일독해볼 여지가 있다.

 

한편, 스티븐 로즈의 공저로는 <새로운 뇌과학>(한울, 2010)도 번역돼 있는데, 최신 신경과학의 여러 쟁점과 함의를 다룬 약간은 전문적인 책이다. '위험성과 전망'이 부제.

신경과학과 신경공학기술의 개발이 개인의 책임, 인간성, 주체성에 대한 감각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법체계, 윤리체계, 법무행정에는 얼마나 영향을 미치게 될까? 법학, 사회학, 윤리학, 교육학, 심리학, 신경과학, 유전학, 정신의학 분야의 전문가들의 논문을 모아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고치고 체계적으로 구성한 것이다.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고쳤다는 게 어떤 뜻인지 궁금하다...

 

15. 09.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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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다솜이친구(177호)에 실은 '감각의 도서관' 꼭지를 옮겨놓는다. 독성 생물의 진화를 다룬 EBS 다큐프라임, <독한 것들>(Mid, 2015)을 다루면서 다윈의 <종의 기원>(한길사, 2014)을 간단히 훑었다. 양자오의 <종의 기원을 읽다>(유유, 2013)도 참고한 책이다.

 

 

다솜이친구(15년 9월) 더 독해진 진화를 만난다

 

생물과 그 진화만큼 놀라운 미스터리가 있을까. 생활환경의 변화, 기생생물 먹이의 변화 등 생물의 진화는 다양하다. 그중 가장 경이로운 부분은 바로 독(毒)이다. <독한 것들>은 맹독을 가진 생물들의 생태를 관찰하고 독이란 무엇인지, 독과 자연선택의 상관관계는 무엇인지 등을 살피고 있다. 진화생물학의 시초가 된 고전 <종의 기원>과 함께 읽어본다. 

 

생물 진화의 대표적 미스터리 중 하나는 독의 진화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으로도 10만 종이 넘은 생물이 독을 사용하고 있다. 왜 생물들은 독을 가져야만 했을까. EBS 다큐프라임 <진화의 신비, 독>을 단행본으로 엮은 <독한 것들>(엠아이디)는 이 문제를 다룬다.


먼저 알아두어야 하는 것은 수많은 화합물과 단백질로 구성된 독을 생산하기 위해서 많은 에너지를 희생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가령 독을 가진 뱀의 경우 독이 차지하는 무게는 몸무게의 0.5% 이내이지만, 다 쓰고 난 독을 재충전할 때 기초대사량이 11% 이상 증가한다. 만만찮은 비용이기에 사냥할 때도 가급적이면 독을 아껴 써야 한다. 그럼에도 독을 가지게 된 사연이 있다.


대표적인 독성생물로 뱀이 독을 갖게 된 건 약 6,000만년 전부터라고 한다. 원래는 아나콘다처럼 거대한 몸짓으로 먹잇감을 제압했으나 생태계의 격변으로 공룡 같은 대형 생물이 멸종하던 시기에 뱀도 그런 몸집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뱀은 커다란 몸집 대신에 독을 갖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뱀의 진화가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의 진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아프리카나 아시아에 서식하는 구세계 원숭이와 아메리카 대륙에 서식하는 신세계 원숭이 간의 차이점 중 하나는 시각 능력의 차이인데, 구세계 원숭이들이 가시광선을 모두 볼 수 있는 데 반해서 신세계 원숭이들은 붉은색과 주황색을 잘 보지 못한다. 이런 차이가 빚어진 유력한 원인은 구세계의 원숭이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뱀의 위협에 시달려온 데 반해서 신세계 원숭이들에게 그 위협은 상대적으로 최근의 일이었다는 데서 찾아진다. 독사가 없는 마다가스카르에 사는 여우원숭이가 영장류 가운데 시력이 가장 나쁘다는 사실도 뱀과 영장류의 시력 간의 상관성을 말해준다. 독사는 주로 화려한 색깔을 띠고 있기 때문에 색상을 구별할 수 있는 시각의 발달은 뱀을 피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이렇듯 한 종의 진화는 생태계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종 생물들의 진화를 자극하고 촉진한다. 독의 진화도 마찬가지여서 고추의 매운 맛을 나게 하는 캡사이신은 대표적인 식물독의 하나이지만 포유류와 달리 조류는 이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고추는 캡사이신을 통해 설치류나 포유류는 피하면서 자기 씨앗을 가장 널리 퍼뜨릴 수 있는 조류와 함께 진화해온 것이다. 물론 캡사이신을 너무 좋아하여 독특한 음식문화로까지 만든 한국인에 대해선 미처 고려하지 못한 전략이긴 하다.


생물의 진화와 그 미스터리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다윈의 <종의 기원>(한길사)에 손길이 가도 좋겠다. 독의 진화와 같은 주제도 따지고 보면 <종의 기원> 이후에야 가능해진 발상이다. 그렇지만 <종의 기원>은 많이 읽히지 않는 고전이다. 이미 진화론이 기본 상식이 된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1859년 처음 출간된 <종의 기원>이 던진 충격파로부터 훌쩍 벗어나 있는 셈이랄까. 그럼에도 <종의 기원>을 읽는다는 것은 ‘다윈 혁명’의 기본 발상이 어떤 것이고, 그것이 어떠한 근거를 바탕으로 제기되었는지 ‘원전’을 통해서 확인해본다는 의미가 있다.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서 자연선택을 다윈은 이런 식으로 설명한다. 자연계에는 많은 변이가 출현하며 이 중에는 개체에게 유리한 변이도, 해로운 변이도 있기 마련이다. 거기서 “유리한 변이가 보존되고 해로운 변이가 제거되는 것”을 다윈은 자연선택이라고 부른다. 자연에서는 사소한 차이도 생존경쟁에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으며 이 차이는 오랜 시간동안 축적된다. 그런 차이를 보존하고 축적하는 과정이 자연선택의 과정이다.


다윈은 다른 한편으로 성선택이라는 개념도 도입하는데, 성선택은 생존을 위한 투쟁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들 사이의 투쟁에 따른다. 성선택의 결과는 개체가 죽는 것이 아니라 후손을 남기지 못하는 것 정도이기 때문에 자연선택보다는 덜 가혹하다는 게 다윈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자면 후손을 남기지 못하는 개체는 결국 그 존재가 지워질 것이기에 덜 가혹한다는 판단에는 이견도 가능하겠다. 자연선택과 성선택, 이 두 개념이 자연계의 온갖 미스터리를 설명하는 다윈의 특별한 도구이다.

 

15.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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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치레를 하는 중이라 관심도서로 더 눈길이 가는 책은 게이버 메이트의 <몸이 아니라고 말할 때>(김영사, 2015)다. '당신의 감정은 어떻게 병이 되는가'가 부제. 원서의 부제는 '스트레스와 병의 상관성에 대한 탐구'라고 되어 있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란 말도 친숙하니까 새로운 시각을 내보이는 책은 아니다. 우리의 상식을 좀더 폭넓게 확증해주는 책에 속한다(철학적으로는 심신문제를 다룬 책으로도 읽을 수 있겠다). 저자는 벤쿠버의 내과 전문의로 여러 베스트셀러의 저자.

 

누구나 한 번쯤 마음의 고통과 동시에 몸이 아픈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마음의 고통을 피하면 몸은 스스로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몸이 보내는 고통의 신호를 대중의 눈높이로 풀어냈다. 수백 명 환자들의 삶과 경험에 대한 인터뷰와 세부적인 고찰들이 담겨 있으며, 저자는 우리 몸 안에 존재하는 본래의 지혜를 찾아가는, 고통스럽지만 필수적인 여행을 제안하고 있다.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당신을 병들게 하는 스트레스의 모든 것'을 부제로 갖고 있는 로버트 새폴스키의 <스트레스>(사이언스북스, 2008)가 가장 흥미로운 책. 너무 두꺼워서 스트레스를 줄 수도 있겠지만...

 

15.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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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알렉상드르 졸리앵의 <인간이라는 직업>(문학동네, 2015) 출간기념 행사가 있었다. 추천사를 쓴 인연으로 저자와 책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몇 가지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맡았는데, 이를 위해 준비차 적은 글을 옮겨놓는다. 행사 전 저녁식사를 같이하면서 졸리앵의 두 자녀가 밥을 먹고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도 봐서(아이들은 한국 학교에 다녀서 한국어에 제법 능숙하다) 부쩍 가까워진 느낌이다('만남'은 그런 의미에서 붙였다). 올해 안으로 그의 책이 또 나온다고 하는데, 미리 기대가 된다.  

 

 

‘인간이라는 직업’이란 문구에 눈에 띄어 책을 손에 든 당신이라면 먼저 두 가지 사실에 놀라게 될 것이다(내가 그랬다). 저자 알렉상드르 졸리앵이 뇌성마비 환자로 17년간 요양시설(센터)에서 생활한 경력이 있는 ‘장애인 철학자’라는 것이 하나이고, 한국어판 서문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현재는 ‘서울 대흥동’ 주민이라는 사실이 다른 하나다. 두 번째 사실이 우리와의 ‘인연’에 해당한다면, 첫 번째 사실은 그의 책과 생각을 읽어나가는 데 실마리가 된다. 경험이 사유의 바탕이라면 고통의 경험은 그 단단한 중핵일 것이기에.


관심은 매혹에서 시작된다. 처음 추천사를 제안 받으면서 책을 자세히 보지도 않고 바로 응낙한 것은 제목 때문이었다. ‘인간이라는 직업’이라니! 졸리앵은 이렇게 적는다. “인간이라는 이 망할 직업! 즐거우면서도 엄격한 이 직업은 위험을 무릅쓰고 매 순간을 투자할 것을 요구한다.” 멋진 시적 비유를 만났을 때처럼 유쾌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라는 직업’은 사실 졸리앵이 진작부터 쓰던 표현이다. <인간이라는 직업>보다 3년 전에 나온 데뷔작 <약자의 찬가>(1999)에서 ‘인간이라는 직업’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센터’의 우리는 인생에서 완전히 정해진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금세 깨달았어요. 우리는 매일매일 치료와 훈련을 다시 시작하고, 어려움을 하나씩 풀어가고, 우리가 처한 조건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책임져야 했어요. 바로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의 진정한 소명이에요. 달리 적당한 말이 없으니 ‘인간이라는 직업’이라고 부를 수밖에요.”


센터(뇌성마비 아동 수용기관)에서 다른 수용자들과 마찬가지로 졸리앵은 읽고 쓰기를 배우기 전에 양치질을 배워야 했다. 칫솔은 아주 유용한 도구이지만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는 건 고투를 요구했다. 센터의 좌우명은 그래서 ‘아무리 조그만 것이라도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에 맞서 싸워야 한다’였다. 꽤 오랫동안 두 발로 걷지 못하고 기어 다녔던 졸리앵이 ‘직립보행’을 하게 된 것도 엄청난 모험이면서 반복적인 훈련의 결과였다. ‘인간이라는 직업’이 뜻하는 것은 말하자면 인간조건의 원점 같은 것이다.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쉽게 허락되는 것 같은 일들이 어떤 경우에는 눈물겨운 고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과의 조우다. 이러한 원점의 확인과 경험은 비단 장애인에게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리 누구도 예기치 않은 장애에서 자유롭지 않기에(나부터도 최근 갑작스레 입원생활을 하면서 실감한 문제다). 


<인간이라는 직업>에서 졸리앵이 ‘즐거운 전투에 대하여’로 말문을 여는 것은 그런 점에서 자연스러우면서 정당하다. “일찍부터, 내게 실존은 그러니까 하나의 전투처럼 예고되었다. 삶에서 최초의 몇 해 전부를 나는 짐승을 길들이는 일에, 뻣뻣한 몸으로 일상에 적응하는 일에 바쳤다.” 졸리앵의 미덕은 그 전투를 즐거운 모험을 수락하는 데 있다. <금강경>의 구절을 비틀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장애는 장애가 아니니, 내가 그것을 장애라 부른다.” 미처 몰랐던 불교의 고단수 유머다. 우리는 웃음 짓게 하는. 졸리앵도 자주 인용하는 니체는 인간만이 웃을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했던가. 웃음을 고안해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깊이 괴로워했기 때문에! 졸리앵은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즐거운 고통, 즐거운 전투로 우리를 이끈다. ‘인간이라는 직업’에 대한 다면적 성찰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리고 원점에 서게 한다.


“인간이라는 직업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영과 육, 두 차원을 조화시키고 잘 관리하는 법을 배워야 하니까요. 그러려면 언제나 자신을 극복하고 끊임없이 초월하고 다시 태어나고 이미 자기 안에서 실현된 것을 더 완벽하게 만들어야 해요. 이것은 정말 중요한 점이에요.”(<약자의 찬가>) 그렇다, 그것이 정말 중요하다.      

15. 09. 02.

 

 

P.S. 졸리앵에 대해서는 중앙선데이의 인터뷰 기사가 유익하다(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8410147&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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