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순서상 두어 주 밀린 저자들도 함께 다룬다. 먼저 슬라보예 지젝. 여섯 편의 글모음으로 <왜 하이데거를 범죄화해서는 안 되는가>(글항아리, 2016)가 출간되었다. 같은 형식의 책으로는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글항아리, 2015)에 이어지는 것이다. 시사평론집으로 분류할 수 있을까. <멈춰라 생각하라>(와이즈베리, 2012)에 이어지는 그의 '생각들'을 읽어볼 수 있다.

 

"슬라보예 지젝이 여러 지면에 발표한 글 여섯 편을 엮은 책. 하이데거의 나치 가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쟁, 시리아 난민, 전 지구적 자본주의, 그리스 국민투표 등 각기 다른 주제를 다루었지만 지젝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명하다. 사태를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나치에 동조했다. 여기저기서 반유대적인 발언을 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직접적으로 범죄화하는 것은 너무나 손쉬운 탈출구가 아닌가, 하고 질문을 던진다."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대표작 <작은 것들의 신>(문학동네, 2016)이 새 번역본으로 다시 나왔다. 1997년 데뷔와 동시에 부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인도의 이국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사회의 제도와 관습에 의해 한 가족의 삶이 파괴되는 과정을 그려낸 이 작품은, 출간 전 160만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선인세를 받았고, 출간 후 전 세계에서 40여 개 언어로 번역 출간돼 6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뉴욕타임스 '주목할 만한 책', 인디펜던트, 선데이타임스, 옵서버 '올해의 책' 등으로 선정되었다. <작은 것들의 신>은 아룬다티 로이의 유일한 소설 작품이다."

 

유일한 작품이 된 것은 로이의 관심사가 직접적인 사회운동 쪽으로 더 쏠렸기 때문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생태운동에 나선 문학평론가 김종철과 함께 아룬다티 로이를 '근대문학의 종말'을 보여주는 실제적 사례로 꼽기도 했다. 곧 문학이 할 수 없는 일, 문학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 <작은 것들의 신>과 로이의 다른 책들은 그런 면에서도 비교해봄직하다.  

 

 

그리고 나이지리아 출신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강연과 에세이를 모은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창비, 2016). 이미 알라딘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책이다.

"소설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페미니즘에 대한 온갖 오해를 단호하고도 위트 있게 반박하며 여성과 남성 모두를 페미니즘의 세계로 초대한다. 전통적인 성역할에 고착된 사고방식이 남성과 여성 모두를 짓누르고 있으며, 페미니즘을 통해 우리 모두가 더욱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한다. '모두를 위한 21세기 페미니스트 선언'이라 부를 만하다. 유튜브에서 250만에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한 2012년의 TED×Euston 강연을 바탕으로, 2014년 미국에서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번에야 검색해보게 되었는데, 아디치에의 작품들은 이미 여럿 번역되었다.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숨통><아메리카나> 등인데, 에세이에서 시작된 독서의 여정이 장편소설로 이어져도 좋겠다. 아디치에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여자든 남자들, 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합니다."

 

16. 0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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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막간에 '이주의 책'을 고른다. 대부분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있을 듯싶은데, 나도 저녁은 부모님 댁에서 할 예정이다(가까이에 사시기 때문에 명절 나기가 수월한 편이다). 그 전에 오후에 일을 많이 해야겠지만, 먼저 의무적인 포스팅부터. 타이틀북으로 고른 것은 조지 레이코프 등의 <이기는 프레임>(생각정원, 2016)이다. 세계적인 인지언어학자이지만 국내에서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등 프레임론의 저자로 더 유명한 듯.

 

저자는 심층의 사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진보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보수의 틀에 갇히지 않으면서 미래 가치를 생산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민주적 가치를 지닌 언어를 되살려야 한다. 그 방법으로 레이코프는 '진보의 가치를 반복하여 말하라', '일관성을 유지하라', '사실과 정책을 가치에 명확하게 연결하라'와 같은 구체적인 목록을 제시한다.

 

두번째는 마우리시오 라부페티의 <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부키, 2016)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널리 사랑받은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의 정치인과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집중 탐구한 책"이다.

 

세번째는 지난 12월에 나온 책이지만 지금 손에 들고픈 책으로 미국 대선후보 경선에서 가장 핫한 인물로 부상한 버니 샌더스의 <버니 샌더스의 정치혁명>(원더박스, 2015)이다. "2016 미국 대선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거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무소속 정치인 버니 샌더스의 정치 회고록이자 자서전"이다.  

 

 

네번째는 장신기의 <사람들은 왜 진보는 무능하고 보수는 유능하다고 생각하는가>(시대의창, 2016)이다. '보수화된 시민 32인을 심층 인터뷰하다'가 부제. "저자는 정치사회 보수화의 실질적인 주체인 시민들에 초점을 맞췄다. 보수화된 사람들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보수화 현상에는 계급, 가치, 세대 등 여러 원인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엘리트 세력에만 국한되어 있던 기존 진보 담론에서 벗어나 엘리트 세력의 행위와 이에 대한 대중의 반응 사이의 역학관계를 복합적으로 분석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다섯번째는 손석춘의 <새 길을 연 사람들>(어른의시간, 2016)이다. "건국대학교 교수이자 언론인인 저자가 인류사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간 20여 명의 인물들의 삶과 사상을 담은 책이다. 붓다에서 시작하여 무려 2,500여 년에 걸친 20여 인물들을 징검다리를 놓아 그들이 열어 간 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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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프레임- 진보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방법
조지 레이코프.엘리자베스 웨흘링 지음, 나익주 옮김 / 생각정원 / 2016년 2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2016년 02월 07일에 저장

호세 무히카 조용한 혁명
마우리시오 라부페티 지음, 박채연 옮김 / 부키 / 2016년 2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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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버니 샌더스의 정치 혁명- 버니 샌더스 공식 정치 자서전
버니 샌더스 지음, 홍지수 옮김 / 원더박스 / 2015년 12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2016년 02월 07일에 저장
절판

사람들은 왜 진보는 무능하고 보수는 유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보수화된 시민 32인을 심층 인터뷰하다
장신기 지음 / 시대의창 / 2016년 2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2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6년 02월 07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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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펴내는 소식지 출판문화(602호)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이현의 책읽는 세상'이 격월로 연재되는데, 이달에 읽은 책은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의 <인종차별의 역사>다. 이 책에 관한 국회방송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한 게 독서의 계기였고, 읽은 김에 몇 가지 내용을 정리했다.

 

 

출판문화(16년 2월호) 차이가 차별받지 않는 세상

 

‘차이가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라면 꿈꾸어볼 만한 세상이고, 꿈만 꿀 게 아니라 직접 만들어가야 할 세상일 것이다. 그 첫걸음을 자임하는 책으로 <인종차별의 역사>(예지, 2013)를 읽었다. <20세기 서양철학의 흐름>(이제이북스, 2006)이란 책으로 알려진 저자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는 <인종차별의 역사>와 <노예의 역사>(예지, 2015)를 통해서 다시금 우리에게 이름을 각인시키게 되었다. 사실 ‘인종주의’나 ‘인종차별’이 한국사회의 중대문제로 부각된 적은 드물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책이 많이 읽히는 것 같지는 않다. 남의 나라 일이거나 과거의 일로 치부되기 쉬운 것이다. 흥미로운 건 저자도 한때 그렇게 생각했다는 점이다. 1949년생인 저자가 20대를 맞은 1960년대 후반의 일이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대인 대학살을 뜻하는 ‘쇼아’의 진상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인종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전 세계적 운동이 있었다. 미국에서도 흑인차별에 반대하는 시민권 운동이 승리를 거두면서 1960년대 말에는 “인종차별과 반유대주의가 영원한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처럼 보였다.” 반유대주의가 나란히 언급된 것은 역사적으로 가장 대표적인 인종차별에 해당하면서 동시에 쇼아라는 참극을 낳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종식되었다면 인종차별의 역사는 ‘역사적 인종주의’로 분명하게 한정돼 기념관에서만 그 기억이 보존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희망에 불과했다. 1967년 벌어진 6일전쟁(3차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아랍연맹 국가에 승리를 거둔 뒤에 다시금 반유대주의는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1973년의 제4차중동전쟁과 석유파동 이후에 유럽경제가 위축되면서부터는 아랍인들이 인종차별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는 실업과 경제 불황의 책임이 이민자들에게 돌려지면서 새로운 인종차별이 촉발되었다. 요컨대 인종차별은 끝나지 않았고, 오늘날 세계화시대에는 어디서나 숨 쉬고 있다. 저자가 인종차별의 역사를 다시금 더듬게 된 배경이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인종차별은 항상 존재해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곧 인종차별이 인류의 체질이나 내력은 아니다. 고대 근동의 문헌들에서 인종차별과 관련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려우며 고대이집트 공문서에는 이방인에 대한 모욕적인 언급이 없다. 거꾸로 고대이집트는 외국인들에게 친절한 나라였다고 기록돼 있다. 구약의 창세기만 하더라도 인류는 아담과 이브의 후손이고 모두 한 형제다. 다툼은 있었을지언정 인종주의적 증오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저자가 겨우 찾아낸 것은 고대그리스 사회의 자민족중심주의다. 그리스인들은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다거나 같은 조상을 두었다고 믿지 않았다는 점에서 인종주의의 ‘원조’가 된다. 물론 인종이나 인종주의란 말이 탄생하기도 전의 얘기다.


그리스인들의 구분법은 두 가지였다.  먼저 그리스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과 할 줄 모르는 사람들. 그들은 이민족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이들’이란 의미에서 ‘바르바로이’라고 일컫고, 이것이 야만인(바바리안)의 어원이다. 곧 그들의 첫 번째 구분법은 ‘우리↔야만인’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리스 사회 내부는 자유인과 노예로 구분되었다. 남성 시민이 자유인이었고 노예와 여자는 그와는 별개의 존재로 대우받았다. ‘자유인↔노예’가 두 번째 구분법인 셈이다. 사실 이런 구분이라면 고대그리스에서만 존재했을 성싶지 않다. 노예제라는 건 고대사회의 일반적인 특징이며 문명국가가 스스로를 오랑캐와 구별한 것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종주의는 이러한 구분 혹은 편견이 담론으로 정당화될 때 성립한다. 이론(대개는 유사이론)을 통해 뒷받침될 때 인종주의는 비로소 구색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철학자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이다. 흥미롭게도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이중적이다. 그가 인종차별주의자이면서 동시에 반인종차별주의자라는 것이다. 그럼 아리스토텔레스가 한입으로 두말을 했다는 것인가? 실상을 보면 거의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에서 ‘흰색’과 ‘검은색’은 인간들 간의 특별한 차이가 아니라고 말했다. “인간의 흰색과 검은색은 특별한 차이를 만들지 않고, 각각에 이름을 붙인다고 할지라도 백인과 흑인 사이에는 특별한 차이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형이상학>이 서양철학사에서 인종차별을 반대한 최초의 위대한 책이라고까지 치켜세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는 노예로 태어난다고 하여 노예제를 정당화하고자 했다. 소피스트들이 노예를 정복전쟁의 결과로 이해한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보다 본질적인 근거를 제시하려고 했던 것이다. 전쟁에서 패배하면 자유민도 노예로 전락하는 게 당시의 현실이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제를 정당하지 못한 폭력의 결과로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동원한 것이 유사 생물학적 근거였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노예와 여자는 자유로운 신분을 가진 성인 남자와 비교해 열등한 본성을 타고 난다. 그들은 태생적인 노예성과 기형성을 갖고 있기에 자유민과 동등하게 대우받을 수 없다. 인종차별이 사회적 불평등을 생물학적 지식을 통해 정당화하려고 할 때 시작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야말로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오명을 덮어쓸 만하다. 상황이 더 나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관점이 중세와 그 이후에 반향을 얻는다는 점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좇아 이방인들을 가리켜 ‘이성이 결여된 존재’라고 규정했고, 에스파냐의 신학자 세풀베다는 인디언들도 에스파냐인들보다 태생적으로 열등하기에 신대륙에 대한 정복 행위는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모두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직접 유래한 담론이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종차별의 원형’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례가 문제적인 것은 인종차별에 합리성을 부여하려고 한 시도 때문인데, 그와 같은 맥락에서 계몽주의 철학자들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 18세기 박물학자인 뷔퐁은 “백인이 사람이라면 검둥이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완전히 원숭이 같은 동물일 것이다”라고 썼다. 그가 검둥이를 지칭한 ‘네그르’라는 말은 불과 16세기에 등장했고, 인종(race)이란 말도 15세기 말부터야 쓰인 단어이지만 뷔퐁은 이런 단어들을 동원해 인종 간의 태생적인 차이를 지적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인종차별주의 혐의는 칸트도 비껴가지 않는다. 칸트 역시도 흑인은 인류 등급에서 가장 밑바닥에 두며 유대인에 대해서는 ‘탐욕스런 인간’이자 ‘사기꾼’으로 규정한다. 당대의 통속적인 편견들이 철학으로 포장돼 있을 뿐이다. 관용의 철학자 볼테르도 백인과 흑인은 “전적으로 다른 인종”이라는 주장을 편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시대의 한계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칸트와 볼테르의 일부 동시대인들은 여자나 흑인, 유대인에 대한 증오와 멸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소수였고, 인종차별적 관념은 더욱 확장돼 다음 세기에는 망상으로까지 발전해간다. 19세기 중엽 프랑스의 외교관 고비노가 펴낸 <인종 불평등론>이 대표적 사례다. 고비노는 피의 ‘생명력’이 많고 적음에 따라 흑인종과 황인종, 백인종 간에 위계를 세웠다. 물론 가장 우월한 것은 백인종으로 고비노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지적이며 가장 활동적인 인종’이라고 기술한다. 반면에 흑인종은 ‘지금 이 순간의 감각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는 인종’이다. 고비노는 인종을 하나의 사실이자 가치로 만들었으며 아리아인의 절대적 우위성을 최초로 부르짖었다. 그의 책이 당대에는 별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지만 소수의 광적인 추종자를 낳은 것이 문제인데, 그 가운데는 고비노를 비난하면서도 그의 생각을 더욱 과학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한 스튜어트 체임벌린 같은 인물도 있었다. 다윈을 사상적 지도자로 삼은 체임벌린은 애꿎게도 진화론 사상을 그의 게르만족 우월신화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한다. 인종주의가 얼마나 허약한 이론적 기반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체임벌린을 열광적으로 숭배한 이가 바로 히틀러였다. 20세기의 인종주의 대학살의 전조는 그렇게 마련되었던 것이다.

 

 

저자는 19세기에 만들어진 인종차별 담론의 통합이 20세기에는 실제적인 결과를 이끌어낸 것으로 이해한다. 고비노와 체임벌린의 망상이 히틀러에 의해서 실행된 것이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600만 유대인의 대학살이다. 이 전대미문의 폭력은 여전히 철저한 반성과 성찰의 대상이지만, 저자의 우려대로 반유대주의는 여러 가지 형태로 다시금 현실정치에 출몰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인종갈등과 차별을 부추기는 극우정당이 득세하더니 미국에서조차 인종차별 발언을 서슴지 않는 정치인이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부상하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인종주의란 다른 게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타자에 대한 증오에 객관적인 근거를 부여하려는 태도를 우리는 모두 인종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다시 말해, 인종차별의 역사는 남의 역사, 과거의 역사로만 머물지 않는다. 오늘의 현실이기도 하다. ‘차이가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아직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니라면 말이다. <인종차별의 역사>가 무겁게 던지는 문제의식이다.

 

16. 0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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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후마니타스의 서평 강좌가 엊그제 마무리되었는데, 강좌에서 서평도서로 다룬 책 가운데 하나가 <능력주의는 허구다>(사이, 2015)이다. '21세기에 능력주의는 어떻게 오작동되고 있는가'를 부제로 한 책으로 출간 당시 언론 리뷰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른바 수저론이 지난해 한국사회의 핵심 키워드이기도 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사회과학 분야의 서평도서로 골랐던 이유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윌밍턴 캠퍼스의 사회학과 교수 두 명이 21세기 능력주의 신화의 문제점과 그 부작용, 위험 등을 낱낱이 파헤친다.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이 성공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가정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개인의 능력과는 무관한 비능력적 요인들이 우리 삶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능력주의는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이러한 요지만으로도 책을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강의를 준비하면서 도서관에서 원서를 구해 대조해본 결과 번역본은 원저와 너무 차이가 났다. 말을 만들자면 전반적인 '번역 성형'이 가해졌다. 원저 자체는 3판까지 나왔고 판이 바뀔 때마다 적잖은 첨삭이 이루어졌다(알라딘에 소개된 정보를 기준으로 판단하자면). 가령 분량만 놓고 보자면 1판(2004)은 240쪽인데 반해 2판(2009)은 285쪽으로 45쪽 가량이 늘어나며, 3판(2013)은 264쪽으로 다시 20쪽이 줄었다. 번역본은 3판을 옮긴 거라서 내가 참고한 1판과는 얼마간 차이를 보일 거라는 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번역본은 너무 많은 삭제와 윤문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 번역에 대한 신뢰를 심각하게 잠식할 정도다.

 

일단 목차가 모두 바뀌어서 원저와 번역본을 대응시켜서 읽기도 어려운데, 그 때문인지 원저에 실린 장별 참고문헌과 색인이 번역본에서 모두 누락되었다(참고문헌과 색인이 빠진 번역서는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 원저가 갖고 있는 학술서적 성격이 번역본에서는 모두 제거되고 시사적인 읽을 거리로 탈바꿈했다. 강의에서는 두 대목을 지적했다. 먼저 저자들이 '능력주의'란 말을 '아메리칸 드림'의 동의어로 쓴다는 걸 알게 해주는 대목이 번역본에서는 이렇게 옮겨졌다.   

교육기회의 평등은 능력주의 시스템에서 중요한 부분이지만 교육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진 적은 거의 없다.(80)

이에 대한 원문은 이렇다.

Equality of educational opportunity is a crucial component of the American Dream, but it has never come close to existing in America. 

미국 사회에 대한 분석을 담고 있는 책을 한국사회에도 통할 만한 얘기로 바꾸려고 하다 보니 '아메리칸 드림'이란 말은 번역본에서 모두 지워졌다. 원저의 경우 (1판에서는) 1장의 제목이 '아메리칸 드림: 기원과 전망'인데 반하여 번역본은 '금수저, 흙수저, 릴레이 경주, 그리고 능력주의 신화'로 되어 있다. 물론 내용 자체가 맞대응하지 않기도 하지만, 금수저/흙수저를 들먹인 것도 원저와 무관하다. 영어에는 우리도 알고 있듯이 '은수저'란 개념만 있고 책에서도 '은수저(실버 스푼)'만 나온다.   

 

대체적으로 번역이 잘 읽히기 때문에 원저에는 충실하지 못한 책이더라도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수룩하게 옮겨진 부분도 적지 않다. 가령 아래 대목.  

사회적 자본에 대해 최초로 진행된 현대적인 연구 중 하나로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1980년대에 발표한 분석이 있다. 부르디외는 특정 그룹에 소속되고 원하는 자원을 직접 만들겠다는 목적을 갖고 사회적 관계를 발전시키려는 계획적인 시도를 함으로써 개인이 얻는 이익에 초점을 맞추었다. 가치 있는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내는 전략은 개인의 능력을 암시하거나 반영하지는 않는다. 부모, 친인척, 멘토 등 타인이 투자를 한 자본일 경우에는 특히 더 그렇다.(88-89 

어떤 내용인지 바로 눈에 들어오지 않아 원저에서 해당 대목을 찾았는데(이것도 시간이 걸렸다. 원저 색인에서 '부르디외'가 나오는 페이지들을 찾아 하나씩 대조해보는 방식을 취했다), 뜻밖에도 상당히 긴 문단이었다.    

The social science community is just beginning to catch up to the folk wisdom on this issue. The first systemic modern analysis of social capital was produced in the 1980s by the French sociologist Pierre Bourdieu(1986, 248). Bourdieu focuses attention on the benefits that accrue to individuals from their participation in groups and deliberate attempts by individuals to foster social relations for the purpose of creating this resource. Despite peoples’s efforts to draw social networks to enhance their power, wealth, or status, Bourdieu points out that these investment strategies do not always work. Further, those strategies that are successful, that is, those that produce valuable social capital, are not necessarily attributable to individual merit, especially in cases in which investments are made by others (parents) or involve substantial economic capital that is inherited or otherwise unearned. Through social capital, individuals can get access to economic resources such as desirable jobs, subsidized loans, investment tips, protected markets, and the like. They can increase their cultural capital through contacts with experts or individuals of refinement. In addition, they can affiliate with institutions that confer valued credentials, such as diplomas or degrees.

1판을 기준으로 하면, 이 전체 문단이 번역서에서는 1/3도 안 되게 축약되었다. 부정확하고 불성실하며 그냥 얼버무리는 식의 번역이다. 이것이 원저 1판과 3판 사이의 차이라고는 믿기 어렵다(오히려 3판은 1판보다 분량이 24쪽 더 많다). 나로선 매우 불량한 번역서라고 볼 수밖에 없다. 실상에 맞게 말하자면, <능력주의는 허구다>란 번역서는 <능력주의 신화>라는 원저를 저본으로 하여 입맛에 맞게 변형/각색한 책이다(그러면 그렇다고 적시해야 할 게 아닌가).

 

이런 식의 번역이 출판계에서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언제까지 '관행'으로 방치할 것인가. 정부가 국민을 호구로 아는 것처럼 출판사도 독자를 그저 호구로 생각하는 것인가. 우리는 좀더 나은 책을 읽을 권리가 있다...

 

16. 0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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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주 출간예정으로 예판이 뜬 책 가운데 '박이문 인문학 전집'(미다스북스)이 있다. 총10권으로 세트판매만 하는 듯싶다. 상당수의 책을 이미 소장하고 있는 터라, 내겐 말 그대로 기념품적인(소장용) 성격의 세트인데 가격을 고려하면 당장 구입하기는 어렵겠다(다른 책들도 밀려 있는 터라). 그렇더라도 학부시절 탐독했던 저자의 한 명인지라 감회가 없지 않다. 대학 1학년 때 처음 읽었으니 얼추 30년이다.

 

 

'전집'이라고는 했지만 분량상으론 선집이다. 전제 2,000쪽이면 권당 200쪽이라는 얘기인데, 이건 착오가 있지 않나 싶고(생각보다 너무 얇은 분량이다. 최근에 나오기 시작한 무지막지한 분량의 김우창 전집과 비교해봐도 그렇다). 전체 구성은 아래와 같다.(*예상대로 분량은 착오였다. 출판사쪽에서 알려온 바에 따르면 권당 600-800쪽으로 전체 분량은 7,000쪽 가량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전집'이다). 

 

박이문 인문학 전집 1 하나만의 선택 - 우리시대 최고의 인문학 마에스트로
박이문 인문학 전집 2 나의 문학 나의 철학 - 문학과 철학 넘나들기
박이문 인문학 전집 3 동양과 서양의 만남 - 노자와 공자, 그리고 하이데거까지
박이문 인문학 전집 4 철학이란 무엇인가 - 철학적 사유의 발자국
박이문 인문학 전집 5 인식과 실존 - 존재의 형이상을 제시하는 언어철학
박이문 인문학 전집 6 죽음 앞의 삶, 삶 속의 인간 - 종교와 윤리
박이문 인문학 전집 7 예술철학 - 한국 미학의 정수
박이문 인문학 전집 8 생태학적 세계관과 문명의 미래 - 과학기술문명에 대한 대안적 통찰
박이문 인문학 전집 9 둥지의 철학 - 철학으로서의 예술, 예술로서의 철학
박이문 인문학 전집 10 울림의 공백 - 가혹한 생에서 피어난 청정한 시

 

마지막 10권은 시집인 듯하고, 각권의 제목 가운데 <하나만의 선택><철학이란 무엇인가><인식과 실존><예술철학><둥지의 철학> 등은 단행본 제목이기도 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거의 첫 저작인 듯싶은 <시와 과학>(일조각, 1975)이 빠진 것. 1,2권에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게 가장 강한 인상을 주었던 책이라(맨처음 읽은 책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원래의 제목으로 나오길 바랬는데, 결과적으로는 무산될 듯싶다. 1975년판 <시와 과학>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대략적인 내용을 어림해볼 수 있을 것이다.(*역시 출판사 쪽에서 알려온 바에 따르면 <시와 과학>은 전체 내용이 5권에 포함돼 있다고 한다.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목차

  • 第1部 詩와 科學
  • 詩와 科學
  • 1. 意味論의 立場 = 3
  • 2. 言語와 意味
  • 1) 存在와 言語 = 10
  • 2) 意味와 意味 = 11
  • 3) 意識과 그 指示對象 = 13
  • 4) 外延的 意味와 內包的 意味 = 15
  • 3. 科學的 知識
  • 1) 認識으로서의 科學 = 17
  • 2) 觀察的 知識과 理論的 知識 = 19
  • 3) 科學的 知識의 構造 = 21
  • 4) 科學의 客觀性 = 26
  • 5) 客觀性의 抽象性 = 28
  • 4. 詩的 表現
  • 1) 詩的 表現 = 31
  • 2) 科學的 認識과 詩的 敍述 = 37
  • 3) 詩的 敍述의 對象 = 41
  • 4) 詩的 意味 = 45
  • 5. 眞理
  • 1) 眞理의 槪念 = 49
  • 2) 科學的 眞理의 主觀性 = 52
  • 3) 事物과 그 解釋 = 56
  • 6. 人間과 自然
  • 1) 自然 아닌 自然 = 61
  • 2) 事實과 價値 = 67
  • 3) 人間의 根本的 欲望 = 74
  • 4) 征服과 疎外 = 79
  • 5) 詩的 解決 = 82
  • 第2部 言語와 藝術
  • 文學的 言語와 哲學的 言語
  • 1. 言語의 두 機能 = 88
  • 2. 敍述言語와 '言語에 대한 言語' = 90
  • 3. 文學과 哲學의 言語 = 91
  • 4. 文學言語는 評價言語 = 92
  • 5. 文學 속의 哲學과 文學哲學 = 96
  • 6. 文學과 哲學의 價値와 機能 = 98
  • 藝術과 眞理
  • 1. 藝術과 思想 - 意味論的 觀點에서 = 99
  • 2. 文學的 眞理 - 科學的 眞理와 區別해서 = 103
  • 詩的 言語 = 116
  • 第3部 藝術批評
  • 非文字藝術에 있어서의 '意味' = 135
  • 藝術的 經驗 = 151
  • 文學批評의 機能과 限界 = 163
  • 現象學으로서의 文學批評 = 184
  • 藝術의 批評과 評價
  • 1. 說明과 評價의 性質 = 197
  • 2. '藝術的인 것'의 規準 = 200
  • 3. 規範의 設定問題 = 201
  • 4. 藝術史의 存在 = 203
  • 5. 藝術的 觀點과 非藝術的 觀點 = 205
  •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었던 1975년판은 양장본이었고, 이후에 한번 반양장본으로 나왔던 듯싶은데(검색해보니 1990년판이다), 내가 갖고 있는지도 불투명하다. 아무려나 내게 박이문은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둥지의 철학>의 박이문이 아니라 <시와 과학>, <하나만의 선택>, <인식과 실존> 등의 박이문, '사르트르주의자' 박이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와 과학>이란 제목이 저작 목록에서 사라진 데 대한 아쉬움을 따로 적는다...(*앞서 추가로 적었지만 내용은 전집에 다 포함돼 있다. 전집 목차에만 빠졌을 뿐이니 큰 아쉬움은 아니다.)

     

     

    16. 02. 06.

     

     

    P.S. 전집 구성에서도 알 수 있지만  박이문 인문학 여정의 종착지는 <둥지의 철학>(소나무, 2013)이다. 몇년 전부터 그의 삶과 철학 전체를 조명한 책이 나오고 있는데, 사회학자 정수복의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알마, 2013)과 철학자 강학순의 <박이문: 둥지를 향한 철학과 예술의 여정>(미다스북스, 2014) 등이다. 이번에 전집이 나온다면 그에 대한 조명과 평가도 더 활발해질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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