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1956)를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금각사의 존재가 궁금하여 이미지를 찾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더 나아가 실제로 교토에 있는 실물을 한번쯤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기 마련인데, 일본문학기행 둘째날이었던 어제 기대를 이루었다. 워낙에 유명한 명소이다 보니(어제 오전에 들른 은각사에도 관광객이 적지 않았지만 금각사에 비하면 한적한 편이었다), 사람이 미어터질 정도였지만 홀연한 금각의 광채는 빛이 바라지 않았다. 다만 갑작스런 대면은 뭔가 거리감도 갖게 했다. 실제로 작품에서 주인공에게 금각과의 첫 대면은 싱거운 것이었고 금각의 아름다움은 그 이후에야 그의 기억과 상상 속에서 증폭된다. <금각사>를 다시 읽을 때에도 그런 효과를 기대해봄직하다.

이번에 가방에 챙겨간 것은 한동안 품절되었다가 새 장정으로 다시 나온 <금각사>(웅진지식하우스, 2017)다. 나로선 3종의 번역본을 모두 갖고 있는 셈(영역본까지 포함하면 4종이다). 미시마의 역작인 만큼 작품에 대한 해석은 자세한 검토과정을 필요로 한다. 두어 차례 강의한 작품이지만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 탐미파 작가들과 묶어서 언젠가 강의해서 다시 읽어볼까 한다. 금각사 사진을 같이 올려놓는다. 어느 날에도 금각사는 금각사일 테지만 이건 어제 오후의 금각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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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바깥의 독자들에게 일본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라면 196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를 빼놓을 수 없지만, 당시 일본의 최고 인기 작가는 시바 료타로였다. 작품세계도 ‘국민작가‘의 타이틀에 더 부합하는 이는 시바 료타로(1923-1996)이다. 둘다 오사카와 연고를 갖고 있어서, 짧은 문학기행의 마지막날 일정은 가와바타의 생가터를 찾고 시바의 기념관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생가터에는 ‘가비‘가 세워져있는데 현재 아파트가 건축중이어서 공사장 칸막이 사이에서 생가터임을 알려주는 비석을 찾을 수 있었다. 시바 료타로 기념관은 유명한 건축가 안도 타다오 작품으로도 기억됨직한데 명불허전의 공간감을 보여주었다. 내부촬영이 금지돼 있어서 출입구쪽 사진을 올려놓는다.

시바 료타로의 소설은 대부분 대하역사소설인데 전국시대 일본을 배경으로 한 작품과 메이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주종을 이룬다. 나로선 <언덕 위의 구름> 같은 소설에 관심이 있지만 절판된 지 오래고 다시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기념관에서 보니 영어판으로는 네권짜리로 번역돼 있다). 나중에라도 다시 나오면 강의에서도 다뤄보고 싶다. 오후에 오사카성을 둘러보고 일행은 현재 간사이공항으로 이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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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학기행차 새벽부터 서둘러 인천공항으로 나갔고 9시 35분발 비행기를 타고 간사이공항에 떨어진 건 11시 15분 남짓이었다. 공항과 연결된 호텔 뷔페에서 점심을 먹고서 대기하던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맨처음 향한 곳이 시인 윤동주가 마지막으로 다녔던 도시샤(동지사)대학. 그곳에 1995년에 세워진 윤동주 시비가 있어서였다. 육필로 쓴 ‘서시‘가 새겨진 시비다. 교토, 오사카와 관련된 일본작가들의 흔적을 둘러보기 전에 일행은 윤동주를 만났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그의 시를 마음에 되새기며, 시대의 아픔을 다시 상기하는 여정이다.

도시샤대학을 거쳐서 향한 곳은 윤동주가 일경에 체포되기 전까지 살던 하숙집이다. 지금은 교토예술대학의 기숙사가 되어 있는데 그 하숙집터에도 윤동주 시비가 있다. 역시나 ‘서시‘가 새겨진 시비다. 맑고 쾌청한 날에 만난 윤동주와의 만남은 그의 시제목을 비틀자면 ‘너무 쉽게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시인은 너무 쉽게 씌어진 시가 부끄럽다고 했는데 쉽게 이루어진 만남도 왠지 낯설고 부끄러웠다. 아니 죄송스러웠다(그의 순결한 삶과 죽음은 한국인에게 영원한 부채다). 그렇지만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의 의미를 그의 흔적이 남아있는 교토에서 생각해보는 것은 뜻깊게 여겨진다. 시인은 ‘슬픈 천명‘이지만 동시에 ‘영광‘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 오늘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하기에. 그의 이름과 시 앞에서 오늘 우리 일행은 잠시 흔들리는 잎새가 되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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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시예비치와 인터뷰가 계기가 돼 오랜만에 폴릿콥스카야(폴리트콥스카야)의 책을 검색하고 그 가운데 유작으로 나온 <저널리즘은 순교할 가치가 있는가>를 구입했다. 푸틴 정부에 대해 가징 신랄하게 비판하다가 불의의 암살을 당한 폴릿콥스카야가 바로 저널리즘의 순교자이다. 저널리즘 대신에 문학(목소리 소설)을 선택하지만 알렉시예비치 역시 폴릿콥스카야의 행동과 비판정신을 저널리즘의 최대치로 높이 평가했다. ‘숭고한 저널리즘‘이란 말을 이럴 때 쓸 수 있겠다(그에 견주어 알렉시예비치의 목소리 소설들은 ‘위대한 문학‘에 값한다). 그의 유작이 번역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페이퍼를 적는다. 국내에는 <더러운 전쟁>(이후, 2013)과 <러시안 다이어리> (이후, 2014), 두 권이 번역돼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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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 20세기>(현암사, 2017) 출간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양천도서관에서 6월 22일과 29일 저녁, 두 차례에 걸쳐 특강을 진행한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포스터를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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