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주에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강의가 있어서 <초판본 프랑켄슈타인>에 잠시 눈길이 갔다. ‘초판본‘이라는 건 1818년판을 말하는데 가장 많이 읽히는 번역본 가운데 문학동네판도 1818년판을 옮긴 것이므로 초판이라는 건 ‘초판본 표지‘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표지야 구경만 하면 될 일이고).

참고로 열린책들판 <프랑켄슈타인>은 1831년 개정판의 번역이다. 저자 메리 셸리(1797-1851)가 생전에 수정해서 펴냈기에 한동안 정본으로 간주되었지만 현재는 미숙하더라도 1818년판의 문학사적 의의를 더 높이 평가하는 추세. 메리 셸리가 개정판은 낸 건 초판의 남편 퍼시 셸리(1792-1822)의 이름으로 나왔던 것도 감안되지 않았나 싶다. 작품의 저작권을 회복한다는 의미. 현재도 번역본들에는 남편 퍼시가 쓴 서문이 실려 있다.

번역상의 차이가 없다면 현재로서는 ‘초판본‘이라는 말에 현혹될 이유는 없다. 다만 <프랑켄슈타인>이 두 가지 판본이 있고 한국어판도 그에 따라 두 종으로 나뉜다는 것 정도를 상식으로 알아두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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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밤은 하루 일과뿐 아니라 일주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한 감상에 젖는 시간이다. 최근 두 주는 내내 폭염에다 열대야에 지쳐 있는 상태라 잠시라도 주말의 할일은 잊고 휴식을 취한다. 그런데, 침대 옆에 놓인 노회찬의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를 보니(옆에 두기만 하고 아직 읽지는 못한 상태다) 다시금 마음이 답답하다. 노회찬법(국회의원 특활비 폐지법안)이 폐기될 거라는 기사 때문이다.

민주당과 한국당, 두 거대 정당이 담합하여 영수증처리를 조건으로 특활비를 존속시키는 데 합의했다는데, 비난여론이 민주당을 향하는 건 당연하다. 기대할 것도 없는 당보다는 나은 모습을 기대했건만 벌써부터 촛불민심을 살피지 못하는 오만은 무슨 배포에서 나오는 것인가. 하루아침에 모든 적폐가 깔끔히 청산되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한 가지씩이라도 바꾸면서 변화에 대한 기대를 놓치지 않게끔 하는 게 중요하지 않은가.

여당 원내대표라는 사람이 업무추진비가 적어 특활비가 필요하다고 발언했다는데, 얼핏 들으면 ‘혼수성태‘의 발언으로 착각하겠다. 특활비 폐지는 고 노회찬 의원의 마지막 발의 법안이기도 하다. 예상컨대 ‘노회찬법‘의 폐기는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을 급락하게 만들 것이다. 지방선거에서의 민심을 이런 식으로 걷어찬다는 게 참으로 아둔하게 여겨질 따름이다. 민주당 지도부가 눈과 귀가 있다면 이제라도 특활비 문제를 재고하고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대단히 어려운 결단도 아니다. 국민과 함께 사느냐, 적폐들과 함께 사라질 것이냐의 선택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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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트의 <공중전과 문학>(문학동네)을 읽으며 관심을 갖게 된 주제가 폭격이다.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을 부제로 한 김태우의 <폭격>(창비), 폭격에 한 장을 할애하고 있는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이 참고할 수 있는 책이었는데, 시야를 확장하여 폭격의 역사를 다룬 책들도 궁금했다. 어제 배송받은 두 권의 <폭격의 역사>가 그래서 구입한 책.

아라이 신이치의 <폭격의 역사>(어문학사)는 길지 않은 분량으로 폭격의 역사에 대한 조감도를 제시한다. 절판된 책이라 중고로 구입한 스벤 린드크비스트의 <폭격의 역사>(한겨레출판)는 주로 인종주의와 관련하여 폭격의 역사를 짚는다. ˝이 책은 백인 우월주의가 낳은 학살과 야만의 기록이다. 지은이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들이 그토록 전쟁에 집착하는 이유가 백인 우월주의에 있다고 주장한다. 서구인들이 끝까지 부인하고 싶어하는 인종주의와 대량 학살은 그들의 인종차별 전통에 근거하고 있다.˝ 폭격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책이다.

제발트는 공중폭격의 파괴적 외상 체험에 대한 문학적 증언의 빈곤을 질타하는데, 돌이켜보면 2차세계대전에 사용된 총량보다 더 많은 폭탄이 사용되었다는 한국전쟁에서의 폭격은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궁금하다(폭격을 다룬 문학작품이 있던가?). 김태우의 <폭격>에 참고문헌이 있는지 봐야겠다. 하지만 책으로 폭탄 맞은 듯한 집구석에서 <폭격>을 찾을 수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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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문학자이자 번역자, 문학평론가, 그리고 덧붙이자면 산문가 황현산 선생이 타계했다는 부고기사가 뜬다. 암이 재발해 투병중이라는 건 알려졌는데 최근에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었다고 들었다. 1990년에 세상을 떠난 김현 이후 한국문학은 중요한 문학평론가를 잃었다. 특히 시비평과 번역에서 고인은 탁월한 안목과 언어에 대한 감각, 그리고 깊은 성찰적 사유를 보여주었고 말년에는 <밤이 선생이다> 등의 산문집을 통해 젊은 세대로부터도 존경받았다. 이례적이고 희귀한 사례였다.

모든 저자는 육신의 삶을 마친 이후에 책과 함께 사후의 삶을 살아간다. 결코 욕심에 다 차는 건 아니지만(선생은 결국 보들레르 전집의 출간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래도 고인이 남긴 평론집과 산문집, 그리고 번역서가 적지 않다. 이 책들이 모두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황현산이라는 이름은 좀더 오래 우리 곁에 남아있을 것이다. 선생의 엄정한 시선 속 인자한 미소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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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oo 2018-08-08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물들래 2018-08-08 16: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밤이 선생이다>를 읽고, 필사하고 싶었는데 마음을 흔들어댔던 문장부터 적어나가야겠네요.

hope&joy 2018-08-08 2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분씩 떠나가시는게 너무 안타까워요.
명복을 빕니다.

미국사람 2018-08-09 0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황선생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적은 없지만 황선생 동생과 동창이라 한마디 적읍니다.
대학시절 김인환교수가 황선생의 글을 보고 문학에의 뜻을 꺽고 비평에만 전념하기로 했다고 할 정도의 문청이었다 합니다. 아깝게도 선생의 남은 글이 책으로 나온게 몇개 없고 번역도 대부분 초현실주의 계통의 시뿐이어서 아쉽네요. (어린왕자 번역이 있긴합니다만) 좀 더 살아 계셨으면 좋은 글이 많이 남았을텐데.

누군가 선생의 흩어진 글을 모아 전집을 내었으면 하는데 어렵겠지요.

황선생님 극락왕생하시길 빕니다.

미국사람 2018-08-09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 2018.5.7 황선생 트위터입니다.

보들레르의 <악의꽃> 초간본(1857)이다. 이 책은 원래 저의 스승 강성욱 교수의 장서 가운데 하나였으나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사모님이 제게 물러주셨다. 나는 적절한 시기에 학교 도서관에 기증하기로 맘먹었는데 이제 그 적절한 시기가 온 것 같다.

흘려들었는데 진담이 되었네요..

로쟈 2018-08-09 23:49   좋아요 0 | URL
네, <악의 꽃> 초간본 얘기는 저도 전에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보들레르 전집은 순차적으로 나올 예정인 것으로 아는데, 생전에 보셨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방파제를 달려가던 바람이 기억나
바람은 누굴 보고 달려갔던 것인지
세찬 파도가 집어삼킬 듯 밀려오던 날
그럼 바람은 어느 방향으로 달려간 건지
그래도 달려나가던 바람 소리를 들었어
바람은 달려오기도 하고 달려가기도 하나
물어보면 바람의 변덕이라고 하겠지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던 바다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와 소나기를 뿌리고
바람은 어느 새 비바람으로 돌변했지
바람은 마음먹은 게 있다는 듯이 내달렸지
방파제의 콘크리트 바닥을 쿵쿵 울리며
어쩌면 기합소리도 냈는지 몰라
방파제 아닌 건 모두 다 날려버리려는 것처럼
바람은 방파제를 내달려가고
그런 바람이라면 나도 온몸으로 맞고 싶었지
비바람에 흠뻑 젖고 싶었지
방파제를 내달리는 바람이 되고 싶었지
여기가 세상의 끝이라고 해도
뒤도 안 돌아보고 내닫는 바람이 되고 싶었지
바람은 귀가 없어 듣지 못할까
바람은 바람의 미친 소리를 듣지 못하는구나
그런 바람소리를 들어주고 싶었지
방파제를 달려가는 바람에게 이유가 필요했을까
바람의 사생활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세상의 모든 방파제야
바람이 맨발로 뛰쳐나갈 방파제
내달리는 바람과 함께 몸을 던지고픈 방파제
바람의 발작이 느껴져
바람이 오고 있어
바람이 될 테야
방파제를 달려가는 바람
그래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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