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공지다. 영종하늘도서관에서 7월 6일과 27일, 두 차례에 걸쳐서 '영화 속의 문학' 강의를 진행한다.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 원작의 <칠드런 액트>가 7월에 개봉되는 걸 염두에 두고 매큐언 원작과 각색의 영화 두 편을 주제로 골랐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포스터를 참고하시길.


로쟈와 함께 읽는 '영화 속의 문학'


1강 7월 06일_ 이언 매큐언, <체실 비치에서>



2강 7월 27일_ 이언 매큐언, <칠드런 액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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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곳의 지방강의를 마치고 귀경중이다. 서울역에서는 다시 버스로 환승해야 하기에 자정이 넘어 귀가하게 된다. 요즘은 버스보다도 KTX를 더 자주 타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이동간에 생각난 작품은 체호프의 단편 ‘우수‘다. 가난한 마차꾼 이오나의 이야기. 아들을 잃은 슬픔을 하소연할 곳이 없어서 나중에는 마차를 끄는 말에게 아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단편에서 아들을 잃은 슬픔보다 이오나를 더 슬프게 하는 것은, 제목을 빌려, 우수에 잠기게 하는 것은 그걸 공유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이동간에는 낯선 사람들 속에서 아무런 대화 없이 묵묵히 시간을 보내야 하니 이오나의 처지와 비슷한 면이 있다. 비록 ‘우수‘의 배경은 겨울이라는 점에서 눈발을 맞으며 고개를 푹 수그린 이오나까지는 흉내내지 못하겠지만 차창으로 비치는 충혈된 눈을 보자니 상태가 크게 다른 것도 아니다. 무얼 잃어버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젊음을 잃어버렸나?

로렌스의 <사랑에 빠진 여인들>(1920)을 강의에서 읽다가 두 여주인공 어슐라와 구드룬의 나이가 스물대여섯임을 다시 확인한다. 소위 ‘사랑에 빠진 여인들‘의 나이다. 지금 기준으로는 아직 어린 나이일 수 있으나 당시에는 세상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나이였기도 하다. 남자 주인공인 버킨과 제럴드는 그보다 조금 위이고. 사실 이 소설에서 연애하는 커플은 버킨과 어슐라, 제럴드와 구드룬 외에 버킨과 제럴드가 추가된다. 이른바 남자 사이의 완벽한 관계를 모색하는 남남커플이다.

<사랑의 빠진 여인들>의 차별성은 제목과는 달리 이 남남커플의 모색에 두어진다. 로렌스의 마지막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서는 그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것이 이러한 남남커플 혹은 남자끼리의 사랑이다. 나는 그것이 로렌스 소설이 수축이라고 생각한다. 이성간의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사랑에 빠진 여인들>의 결론이라면 제목은 ‘사랑에 빠진 남자들‘로 읽어도 틀리지 않는다. 로렌스가 발을 디뎠으되 끝까지 가지 않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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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라면 종강 시즌이다. 대학강의를 그만둔 지 꽤 되었음에도 이럴 때는 편승하고 싶기도 하다. 종강과 방학(물론 성적처리는 빼고). 강의가 일상이다 보니 일상의 피로감이 강의의 피로감으로 대체되었다. 기계가 아니다 보니 이런저런 정념들도 피로를 가중시킨다. 내 경우 강의와 관련하여 가장 큰 스트레스는 강의책과 참고서적을 제때 찾는 것과 필요한 만큼 읽는 것이다. 제때 찾지 못해 다시 구입하거나 구입한 자료들을 제때 읽지 못하는 것이 늘 스트레스가 된다.

가령 워즈워스의 <서곡>(1850)에 대해 강의하기 위해 구입한 책들도 상당히 많은데 극히 일부만 참고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의 중요 판본으로 1805년판도 번역본이 나와있지만(다소 늦게 구입했다), 두 판본을 비교해서 읽어볼 여유는 없었다. 관련 자료들에서 차이에 대한 언급만 읽었을 뿐. 워즈워스 사후에야 출간된 <서곡>은 프랑스혁명에 대한 워즈워스의 견해와 태도 변화가 수정과정에 반영되어 있어서 판본에 대한 꼼꼼한 비교독해가 필요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 정도 되면 전공자의 영역이어서 교양강의의 수준을 넘어선다.

그런 관점에서 두 판본을 비교한 국내논저를 보지 못해서 이런 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인데 현재로선 그럴 여유를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나로선 프랑스혁명과 워스워스의 관계를 러시아혁명과 블로크와의 관계와 비교해보면 유익하겠다고 생각을 했고 강의에서는 그 비교의 포인트를 지적했다. 비단 두 시인의 비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나는 <서곡>과 블로크의 서사시 <열둘>이 역사(혁명)을 서사시라는 장르가 어떻게, 어디까지 다룰 수 있는지 보여주는 표본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두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동일하게 그 성취와 한계다. 근대소설과 비교될 수 있는 성취와 한계이기도 하다.

더 자세한 해명이 필요하고 또 가능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기본 자료와 번역서가 갖춰져야 한다. 아쉬운 대로 <서곡>은 두 종의 번역본이 나와있지만 <열둘>은 번역이 절판된 상태에서 다시 나오지 않고 있다(블로크 시선집에서 빠진 건 특이한 일이다). 책은 있어도 문제고 없어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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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1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2 0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주에 공지한 극단 산울림의 고전극장과 연계하여 여섯 편의 공연 작품에 대한 소개 강의를 세 차례에 나누어서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진행한다. 구체적인 날짜와 세부 일정은 아래 포스터를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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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gles 2019-06-11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정이 연극 본 후 강연으로 짜여져 있어서 작품을 연극으로 표현한 부분에 대한 감상도 기대됩니다. 더불어 샘과 극장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행운도 있기를~^^

로쟈 2019-06-11 08:00   좋아요 0 | URL
네 사후강의가 될듯.
 

에밀 졸라의 예술가소설 <작품>(을유문화사)이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다시 나왔다. 친구 세잔을 모델로 이 소설은(결별의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앞서 두 차례 번역본이 나왔다가 절판됐었다. 이번 가을부터 프랑스문학 강의를 다시 시작하는데 졸라를 다룰 때 강의에서 읽어볼 수 있겠다. 나로선 강의에서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출간의 의의인 셈.

<작품>은 루공마카르총서(전20권)의 14권으로 1886년작이다. 한해 앞서서 <제르미날>(1885)이 출간되었고 이듬해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대지>(1887)가 나올 터였다. 총서가 완결되는 1893년까지 졸라는 여전히 놀라운 필력을 과시하게 될 것이다.

졸라의 작품을 강의하지 않을 때에도 졸라는 강의실에서 자주 소환된다. 최근에는 같은 자연주의 작가로 토머스 하디와, 그리고 ‘더블린의 에밀 졸라‘로 불린 조이스와 비교되었다. 러시아문학강의에서라면 인간관에 있어서 대척적인 위치에 놓인다고 생각되는 도스토옙스키와 비교될 수 있다. 지난해에 졸라의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강의한 덕분이다.

세계문학전집판으로 읽을 수 있는 졸라의 총서 가운데서는 <작품>과 함께 <나나>(1880)와 <꿈>(1888)이 아직 강의에서 읽지 못한 작품들이다. 이 가운데 내년까지는 두 편 이상 읽게 될 듯하다. 그렇게 되면 전체 총서의 1/3 이상을 강의에서 읽은 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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