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의 말년작들을 읽으며 자연스레 노년과 늙어감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10년 뒤 이야기들임에도 그렇다). 더이상 노년이 강건너 일만은 아닌 나이가 되니 늙어감을 주제로 한 책들에까지 눈길이 멈춘다(늙어감 혹은 죽어감).

최근에 영어판으로 첫 비평판이 나왔기에 톨스토이의 <인생론>을 다시 구입했는데, 그가 58세에 쓴 책이다. 노년의 문턱에서 쓴 것이라고 할까. 인생론을 쓰고픈 충동을 느낀다면 그때가 바로 노년의 기점인지도 모른다.

노년 역시 죽음과 마찬가지로 다섯 단계의 반응태도를 갖게 하는지. 부정과 거부에서 체념과 수용까지 말이다. 죽음과의 차이라면 어떤 포즈(허세)가 그래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꽤 유지될 수 있다는 점. 물론 방심은 금물이고 언제든지 탈락자의 대열로 옮겨갈 수 있다.

책을 읽는 독서가들에게는 아마도 노안이 충격의 시작이리라. 나는 아직 시력에 불편을 느끼지는 않지만 조만간 시력이 아니더라도 지력이나 체력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그런 게 늙어감의 문제다).

방과 현관에 쌓여있는 책들을 보다가 이제는 정말다 읽을 수 없겠다는 실감이 들었다. 갑자기 무연한 상태가 된 것. 책을 읽는 게 문제가 아니라 찾는 게 더 큰 문제가 된 이후로 책과의 관계도 많이 데면데면해졌다. 책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이고 관계의 문제다.

늙어감을 주제로 한 책 몇 권도 찾아서 모아두어야겠다. 젊은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지도 않지만 자진해서 노년의 수감생활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은 묘한 선택장애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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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2022-07-30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공감!!
 

프랑스 제2졔정기를 다룬 역사서로 가시마 시게루의 <괴제 나폴레옹 3세>(글항아리)가 출간되었다. 저자는 이제 보니 <백화점의 탄생> 같은 책으로 소개된 바 있다. 졸라의 소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을 강의에서 읽을 때 구입한 책이었다. <괴제>도 마찬가지인데 졸라의 소설들을 읽을 때 유익한 참고가 되지 않을까 한다. 프랑스 제2제정기를 자세히 다룬 책이 상대적으로 희소하지 않았나 싶다. <괴제>의 부제는 ‘현대 프랑스를 설계한 막후 실력자‘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위대한 황제 나폴레옹 3세를 오명으로부터 제 위치로 복권시킨 책이다. 심모원료의 정치, 노동자에 대한 관심, 파리 개조와 만국박람회 등 업적 재조명하였고, 나폴레옹 3세가 이끈 제2제정의 역사를 다시 읽어내 19세기 프랑스사를 재인식한다.˝

나폴레옹 3세가 프랑스에서도 재평가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시대에 프랑스사회가 대대적인 변화를 겪은 것은 사실이다. 도시계획에 따라 파리가 오늘날의 파리로 재탄생한 것도 바로 그 시대이기 때문이다.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를 다룬 것으로는 데이비드 하비의 책과 함께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떠올릴 수 있다. 벌써 언제적인가 싶을 정도로 지나간 시절의 책이야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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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한 상태에서 하루를 보내다(요즘 흔히 말하는 남성 갱년기에 접어든 것인지도) 요시모토 다카아키(책에는 ‘타카아키‘로 표기. 여성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버지다)의 신간을 펼쳤다. <진짜와 가짜>(서커스). 일본의 대표 사상가의 한 명으로 꼽히지만 주저들은 번역되지 않았고 이번 책처럼 몆 권의 가벼운 책만 소개되었다. 내가 갖고 있는 건 <일본 근대명작 24>(새물결) 정도.

첫 머리에 실린 글이 ‘선악 이원론의 한계‘인데 다자이 오사무 얘기여서 눈길을 끈다. 밝음과 어두움의 이분법에 대해서 재고해봐야 한다면서 다자이의 예민한 통찰을 예로 든다. 단편 ‘우대신 사네모토‘에 나오는 사네모토의 대사를 가장 좋아한다고 밝히는데 이런 대사다. ˝헤이케는 밝다. (중략) 밝음은 스러짐의 모습일까. 사람도 집안도 어두울 때는 아직 멸망하지 않는다.˝

이 역설적인 표현에서 다자이다운 감각을 읽어내는데, 알려진 대로 그것은 다자이의 불행한 유년기에서 왔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하녀와 유모 슬하에서 자란 과정에 그런 날카로운 감각이 몸에 배었다는 것. ˝하지만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에게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그만한 작품을 쓸 감성이 갖춰지지 않았을 거라는 견해도 있을 수 있습니다.˝

강의에서 주로 <인간실격>과 <사양>을 읽기에 다자이의 단편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단펀집 <만년>은 강의에서 읽은 적이 있다) 다카아키 덕분에 ‘우대신 사네모토‘에도 흥미가 생겼다. 찾아보니 도서출판b의 다자이 전집 가운데 <인간실격>에 수록되어 있다(유일한 수록본 같다). 소장도서이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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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7 0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7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강의에서 읽었다. 몇년 전에는 펭귄클래식판으로 읽었는데 품절된지라 이번에는 열린책들판으로 선택했다. 둘다 1891년판의 번역. 연도를 적은 건 어떤 번역본들의 경우 원저의 출간연도가 1890년으로 나와있어서다. 두 개의 판본이 있어서인데 통상적으로는 잡지 발표본(1890년)보다 단행본(1891년)판을 정본으로 간주한다. 형식상의 차이는 1890년판이 13개 장으로 구성된 데 비하여 1891년판은 20개장이고 분량도 증보되었다.

그렇지만 나로선 동성애적 요소가 들어가 있다는 1890년판에 더 관심이 있다. 1891년판은 문제를 제기한다기보다는 수습하면서 타협한 판본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영어판으로 나와있는지 확인해봐야 하고 번역본 가운데 실제로 1890년판 번역본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판본 문제는 기초적이면서도 작품 이해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교양강의에서 그런 차이를 비교하는 건 드문 일이긴 한데(그래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프랑켄슈타인> 같은 작품을 강의할 때는 항상 언급한다. <춘향전> 같은 우리 고전도 판본 문제가 본질적이다) 강의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문제에 좀더 예민해진다. 물론 펭귄판 등에 실린 서문(해설)을 참고하는 것으로 수고를 대신할 수는 있다. 그래도 번역이 있으면 읽어볼 생각이 있기에 간단히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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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작가 조지 엘리엇의 대표작 <미들마치>(주영사)가 재출간되었다. 조지 엘리엇은 후기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올해가 탄생 200주년이기도 해서 <미들마치>가 재출간되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1990년대에 금성출판사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나왔었기에 재출간이라고 썼는데, 이번에 나온 번역판이 정확히 같은 판이다.

번역에 수정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역자가 같다. 차이라면 두권으로 분권되어 있던 것이 통권으로 나왔다는 점. 무리하게 여겨지는데, 그래서 분량이 1,400쪽이 넘어간다. 책값도 액면으로는 58,000원이므로 과연 구매독자가 얼마나 될지도 궁금하다. 아쉬운 일이지만 가격과 분량 때문에 나로선 강의교재로 쓸 수 없다. ‘그림의 책‘이 한권 더 늘어난 셈. 이전에도 그랬고 엘리엇의 작품으로는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나온 <플로스강의 물방앗간>(민음사)을 대표작으로 다룰 수밖에 없다. 연구자들은 보통 이 두 작품을 그의 대표작으로 본다.

이번여름 영국문학강의에서도 조지 엘리엇의 작품은 <플로스강의 물방앗간>을 읽는다. <아담 비드>와 <다니엘 데론다>도 번역돼 있지만 역시 분량과 가격이 맞지 않다. 기대하는 건 <사일러스 마너>와 <미들마치>의 새 완역본이 나오는 것인데 가능한 일일지는 미지수다. 예전판 <미들마치>는 복사본으로 갖고 있는데, 같은 번역본이라면 이번 번역판을 구입할 이유는 없다. 고대하던 책이 나왔지만 걸음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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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뱃살 2019-06-15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자인 이가형씨는 2001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이전 판을 그대로 옮긴 것 맞죠.

로쟈 2019-06-16 12:32   좋아요 0 | URL
네, 30년된 번역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