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 카우리스마키를 듣는다
그는 과거가 없는 남자다
그는 퍽치기를 당한 남자다
머리를 감싼 붕대가 그의 알리바이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그의 이름이 아니다
그는 이름을 잊었다
그는 과거가 없는 남자다
그는 결백한 남자다 
내가 기억하는 건 그것뿐
과거가 없는 하늘에도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칠까
아마도 신원조회가 이루어지리라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바람이 다녀가고
촛불은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꺼지리라
개들은 조용히 짖기로 합의하고
눈꺼풀은 준비된 자세로 안구를 덮으리라
무언의 행렬이 뒤를 따르리라
과거가 없는 남자가 과거로 돌아가는 행렬
비와 천둥이 마중나오는 길
그대는 아직 붕대를 풀지 않는 것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체 제목은 ‘철학자 김진영의 전복적 소설 읽기‘다. 때이른 타계 이후에 저자의 유고들이 책으로 나오고 있는데 이번 책은 아트앤스터디에서 진행한 소설강의록이다. 한창 문학강의를 하던 때(비슷한 시기에 나도 아트앤스터디에서 강의를 했던 듯하다) 저자의 강의에 대해 들었고 동영상도 일부 보았던 기억이 있다. 강의에서 다루는 작품도 겹치는 게 많았다. 책에서 확인하니 전체 8강에서 다루는 여덟 편의 소설 가운데 내가 다루지 않은 건 한트케의 <왼손잡이 여인>과 볼라뇨의 <칠레의 밤>, 두 편뿐이다.

주말 강의차 지방으로 내려가면서 강의책 외에 가볍게 읽을 만한 것으로 골랐는데 그건 이미 읽고 강의한 작품들에 대한 다른 해석을 음미해보려는 생각에서다. 그 가운데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변신>, <이방인>은 이번 하반기에도 강의가 있다. 어림짐작에 열번 이상씩 강의하지 않았나 싶다. 연구서나 강의록을 읽으면 나의 견해나 해석의 좌표가 가늠된다. 상대적 거리가 측정되기 때문이다. 머리말을 읽고서 본론(본 강의)로 넘어가기 전에 저자의 ‘주관적 소설 읽기‘ 내지 ‘전복적 소설 읽기‘에 대한 기대감을 적어놓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냘픈 시를 생각한다
가냘픔에 대한 시
가냘프디 가냘픈 그녀를 생각한다
그럼 누구를 
그녀 말고 가냘픈
그녀보다 가냘픈
그 무엇을 떠올릴 수 없어서
수초보다 가냘픈
코스모스보다 가냘픈
가냘픈 무엇을 떠올릴 수가 없어서
나는 가냘픈 마음이 된다
가냘픈 그녀를 따라가지 못해
가냘픈 마음은 수시로 꺾이고 쓰러진다
세상엔 어째서 가냘픈 것들이 있는가
이빨도 발톱도 덩치도 없는
가냘프디 가냘픈 풀꽃들이 있는가
가냘픈 어린 것이 자라 드디어
가냘픈 것이 되다니
가냘프게 존재하는 것이 된다니
나는 쓰러질 것 같은 마음이다
지푸라기여 나를 부축해다오
가냘픔에 대한 시는
가냘픈 마음으로 쓸 수 없다
가냘픔에 대한 시는 그녀에게 닿지 못한다
가냘픈 말들은 그녀에게 이르지 못한다
가냘픈 말들은 피죽도 못 먹은 말들
어째서 세상엔 가냘픈 말들이
잘나고 으스대는 것들도 많은데
어째서 가냘픈 말들이
겨우 가냘픈 존재들을 가리키는가
겨우겨우 가리키는가
가냘프게 
가냘프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모맘 2019-08-20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냘픈 마음으로 자꾸 읽게 되는 시입니다 가냘픈 아름다움~

로쟈 2019-08-20 11:08   좋아요 0 | URL
저도 자주 읽어봅니다.~

브람스 2019-08-20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냘픈 어린 것이 자라 드리어 가냘픈 것이 되다니‘ 이 구절이 맘에 드네요.
참 아름다운 시입니다.

로쟈 2019-08-20 17:51   좋아요 0 | URL
땡스.
 

강의 공지다. 롯데문화센터(본점)의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 강좌에서 이번 가을에는 러시아문학을 읽는다. 8회차에 걸쳐서 푸슈킨과 고골 두 작가의 작품만을 다룬다(러시아문학 강의는 겨울학기에도 이어질 예정이다).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와 같다(접수는 8월 20일까지다).


로쟈의 세게문학의 다시 읽기


1강 10월 10일_ 푸슈킨, <벨킨 이야기>



2강 10월 17일_ 푸슈킨, <보리스 고두노프> 



3강 10월 24일_ 푸슈킨, <대위의 딸>



4강 10월 31일_ 푸슈킨, <예브게니 오네긴>



5강 11월 07일_ 고골, <외투>



6강 11월 14일_ 고골, <검찰관>



7강 11월 21일_ 고골, <타라스 불바>



8강 11월 28일_ 고골, <죽은 혼>



19. 08. 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강의 공지다. 대전예술의전당 아카데미에서는 상반기에 이어서 하반기에도 '문학 속의 철학' 강의를 진행한다. 10월 8일부터 12월 17일까지 격주로 화요일 저녁(7시-9시)에 진행되는 강의다(신청은 8월 25일까지다).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와 같다.


로쟈와 함께 문학 속의 철학 읽기2


1강 10월 08일_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성장과 만남의 의미



2강 10월 22일_ 멜빌, <필경사 바틀비>: 바틀비는 누구인가



3강 11월 05일_ 카프카, <변신>: 변신의 의미와 한계



4강 11월 19일_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낭만적 연애와 사랑의 과정



5강 12월 03일_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죽음이란 무엇인가



6강 12월 17일_ 알렉시예비치, <체르노빌의 목소리>: 체르노빌은 무엇의 이름인가



19. 08. 15.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wingles 2019-08-15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앗! 마지막 알렉시예비치 저작들(특히 전쟁은 여자의~) 좋아하는데.. 대전에 갈수도 없고.. 언제 기회되면 수도권에서도 강의해주세요^^

로쟈 2019-08-15 15:27   좋아요 0 | URL
다 진행했던 강의들이에요.~

2019-08-16 0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16 0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